1882년 백낙관(白樂寬) 원정(原情) 초본(抄本)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고흥 밀양박씨 하구정(1차)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82년에 충청도 유생 백낙관(白樂寬)이 고종(高宗)께 올린 원정(原情) 필사본. 1882년에 충청도 유생 백낙관(白樂寬)이 고종께 올린 원정(原情) 필사본이다. 이 원정은 세로 20.8cm에 가로 190cm가 되는 장문의 문서로, 원정 서두에 ‘▣疏本抄’라는 제목이 적혀 있으나 문서 내용에 의해 ‘백낙관 원정 초본’으로 명명하였다. ‘白樂寬’의 ‘寬’을 ‘觀’으로 잘못 기입하였다. 이 원정에는 개화파의 의견을 수용해 서원을 철폐하는 문제를 비난한 내용, 미국, 러시아, 일본 등 외국과 강화(講和)를 비판하는 내용, 일본 신하 하나부사 요시타다[花房義質]의 계책을 비판하는 내용 등 위정척사(衛正斥邪) 사상을 드러낸 내용이 주를 이룬다. 이 원정 내용은 위정척사를 주장했던 당대 유림이 공감했던 부분이었을 것이다. 이에 고흥 하구정에서도 이 원정을 필사하여 돌려보았기에 하구정에 이 필사본이 남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백낙관(1846~1883)은 조선 말기의 유학자로 전국 유생들의 신사척사상소운동이 일어났을 때, 충청도 유생으로서 상소를 올리는 데에 참여하였고, 1882년(고종19) 5월에는 단독으로 서울 남산에서 봉화를 올리고 척사 상소를 제출하였다. 이때에 체포되어 투옥되었으나 6월 9일 임오군란이 일어나 난군에 의해 탈옥하게 되고, 이어 10일에는 대원군이 집권하여 군란을 수습하면서 공식적으로 석방 처리하였다. 그 뒤 8월 21일에 백낙관의 처벌을 요청하는 전 정언 김재봉(金在鳳)의 상소로 다시 투옥되어 10월 6일에 제주목(濟州牧)에 위리안치되었다가 1883년 6월에 의금부로 끌려와 국문을 받고 범상 부도 죄로 처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