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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강재호(姜載浩) 준호구(准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嘉慶六年辛酉正月日 行郡守 幼學 姜載浩 嘉慶六年辛酉正月日 靈光郡守 姜載浩 전라남도 영광군 行郡守[着押] 靈光郡守之印(적색, 정방형), 周挾字改印(흑색, 장방형) 영광 진주강씨 강항 종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A004_01_A00025_001 1801년(순조 1) 유학(幼學) 강재호(姜載浩, 52세)의 준호구. 1801년에 영광군에서 幼學 姜載浩에게 발급한 准戶口. *주소: 佛甲面 雲堤里 第二統 第四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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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15년 나주향교(羅州鄕校)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사회-조직/운영-통문 乙卯正月日 羅州鄕校 多士 羅亮集 吳繼洙 梁時默 靈光鄕校 乙卯正月日 羅亮集 靈光鄕校 전라남도 나주시 羅州鄕校(흑색, 장방형) 영광 진주강씨 강항 종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A004_01_A00047_001 1915년 1월에 나주향교(羅州鄕校)의 나양집(羅亮集) 등이 영광향교(靈光鄕校) 유림(儒林)에게 보낸 통문(通文). 1915년 1월 일에 羅州鄕校의 羅亮集 등 25명이 靈光鄕校 儒林에게 보낸 通文. 靈光 佛甲面 龍山里에 사는 鄭氏가 龍溪祠의 터를 강학소로 이용하다가 그 땅의 주인 노릇을 하며 睡隱 姜沆 본손들에게 돌려주지 않자 羅州鄕校의 儒林이 靈光鄕校의 유림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영광 유림이 정씨문중에 전해 용계사의 땅을 본손에게 돌려주길 요청하는 내용. *참여자: 羅亮集 등 25명 가운데 개인 도장을 찍은 사람이 16명, 지장을 찍은 사람이 9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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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병인년 정동유(鄭東維) 등 상서(上書)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丙寅十月日 幼學鄭東維 等 29人 城主閤下 丙寅十月日 1770년대 후반 鄭東維 靈光郡守 전라남도 영광군 官[着押] 3顆(6.8×6.8) 영광 광주이씨 퇴암공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병인년에 유학(幼學) 정동유(鄭東維) 등이 영광군수(靈光郡守)에게 올린 상서(上書). 병인년 10월에 유학(幼學) 정동유(鄭東維) 등 29인이 영광군수(靈光郡守)에게 정려(旌閭)를 청원하기 위해 올린 상서(上書)이다. 영광군에 성균진사(成均進士) 이택(李澤)이란 사람이 있는데, 그는 대대로 충의와 절의가 있는 집안 출신으로, 부모에게 공경하고 형제와의 우애가 깊으며 학문에 정진하기를 힘쓰는 인물이다. 그래서 그를 위한 정려를 세우기를 청원한 것이다. 이에 영광군수는 동월 23일에 행의(行誼)가 매우 가탄(嘉歎)할만 하니 더 많은 실적(實蹟)을 찾아 전보(轉報)한다면 헤아리겠다고 제사(題辭)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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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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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령류

1879년 이복필(李馥弼) 고신(告身) 2 고문서-교령류-고신 정치/행정-임면-고신 光緖五年六月日 李馥弼 光緖五年六月日 高宗 李馥弼 서울특별시 종로구 施命之寶(10.5×10.4) 영광 광주이씨 퇴암공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A007_01_A00002_001 1879년(고종 16)에 이복필(李馥弼)을 절충장군(折衝將軍)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겸(兼) 오위장(五衛將)으로 임명한 고신(告身). 1879년(고종 16) 6월에 고종(高宗)이 이복필(李馥弼)을 절충장군(折衝將軍)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겸(兼) 오위장(五衛將)으로 임명한 문서이다. 국왕의 [시명지보(施命之寶)]가 안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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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4년 이돈필(李敦弼)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道光十四年甲午式 行郡守 幼學 李敦弼 道光十四年甲午式 靈光郡 李敦弼 전라남도 영광군 行郡守[着押] 1顆(7.4×7.1), 靈光郡戶口(흑색, 12.3×3.5) 영광 광주이씨 퇴암공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A007_01_A00013_001 1834년(순조 34)에 영광군(靈光郡)에서 발급한 이돈필(李敦弼)의 준호구(準戶口). 1834년(순조 34)에 영광군(靈光郡)에서 발급한 유학(幼學) 이돈필(李敦弼)의 준호구(準戶口)이다. 이돈필은 영광군 변산면(卞山面) 제10 신촌리(新村里) 제1통 제2호에 거주하였고, 나이는 36세 기미생이며, 본관은 광주(廣州)이다. 처(妻) 류씨(柳氏)는 38세 정사생이며, 본관은 고흥(高興)이다. 이돈필과 처의 부(父)·조(祖)·증조(曾祖)·외조(外祖) 4조의 직역과 이름을 함께 기재하였다. 이외에 노비의 명단 '천구질(賤口秩)'이 기재되었다. 이 문서에는 [영광군수지인(靈光郡守之印)]과 [영광군호구(靈光郡戶口)]가 찍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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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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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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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783년 과부(寡婦) 숙인이씨(淑人李氏) 준호구(准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乾隆四十八年癸卯正月日 行郡守 寡婦 淑人李氏 乾隆四十八年癸卯正月日 靈光郡守 淑人李氏 전라남도 영광군 行郡守[着押] 靈光郡守之印(적색, 정방형),周挾字改印(흑색, 장방형) 영광 진주강씨 강항 종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A004_01_A00025_001 1783년(정조 7) 영광군에서 과부이씨(寡婦李氏, 47세))에게 발급한 준호구. 1783년에 영광군에서 寡婦 李氏에게 발급한 准戶口. *주소: 佛甲面 雲堤里 第一統 第三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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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이씨가(廣州李氏家) 시권(試券) 2 고문서-증빙류-시권 정치/행정-과거-시권 영광 광주이씨 퇴암공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광주이씨가(廣州李氏家)의 누군가가 과거시험에 응시하여 작성한 시권(試券). 광주이씨가(廣州李氏家)의 누군가가 과거시험에 응시하여 작성한 시권(試券)이다. 응시자의 인적사항을 적는 명지(名紙)가 없어서 누가 작성한 것인지 알 수 없다. 또한 우측 부분의 심한 마멸로 판독이 어려워서 시권에 대한 정보(시험과목, 시제 등)를 알기 어렵지만, 성적은 '次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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雙溪樓。謹次圃隱先生韻 天慳靈境屬高僧。詩未能吟畫未能。白石當秋寒骨出。淸溪得月道心增。幾人題詠苔全掩。千劫經過水獨澄。喜結來生緣業重。夕陽回首一筇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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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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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暮入鶴巢庵 星掛西峯月欲殘。孤僧擊磬禮雲壇。霏微落靄僮衣濕。飆颯輕風佛骨寒。仙客鞭羊巖化白。道人招鶴藥成丹。此身自愧顔毛俗。笑把儒冠換釋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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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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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別翫虛上人 八年再到鶴庵遊。却看雲師已白頭。非爾多情三笑地。使余無意獨登樓。松嵐翠滴千峯雨。梧露寒鳴一葉秋。知有蓮花臺上月。西峯怊悵隔潭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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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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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和吳難窩寄示。三首 年來漸覺化兒眞。自愧吾生有此身。書劍無成驚歲晩。昇平空負六旬春。訓子課孫勤食力。弊廬遺業古潭州。家貧歲暮兒盈室。先我淵明有是憂。錦水東流龍岫下。碩人高臥杳難承。春來戒勿桃花綱。更理漁舟夾岸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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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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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答奇會一【宇萬】別紙 禫祀云云。以愚見禫者。趨吉之祭。故喪中不行而過時不禫。禮有明文。若待喪畢。則終無禫矣。以本生喪而無禫於所後喪。可乎。況宗歸在堂。而主祀幼未將事。尊旣攝行。則似無不可。而或人以爲後喪爲主祀之本生父。則禫不可行。末知其可也。又以爲吉祭亦不可行。而當竢喪畢後行之。不行吉祭。則改題遞遷。亦不得行。無乃未安乎。此亦以主祀塡祝。以尊攝行。何嫌之有。先儒之論曰。生母是朞年服也。所後承重。禫祭恐當行而不可廢。又曰因私喪之服。廢傳重之禫。不可。又曰。正統私恩禮意甚嚴。又曰。心有所不安。使子攝主。況在主祀幼而尊旣攝行地乎。然何敢質言。更加叅考。如何。豈意貴中遭此變禮。函席已曠。此等變禮。無處可質。痛隕痛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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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與李校理【建昌】 比年信息。惟宗兒往復是憑。已迄無以一字仰候。自處疏外。愧怍不可言。乃者。專人瓊函卽賜。答家兒字也。曷勝驚感。從審大府華蓋。近次安衙。氣力寧靖。晨昏婉侍。和悅可掬。爲之奉賀萬萬。書中云云。君子欲成人之美之盛德。逈出尋常。在渠迷昧。何以得此勤摯。區區感結。有不可言者。因念兒也之受知於宗執。實非偶然。幸益有以勸勉策勵。俾免下流之歸。則爲賜大矣。宗下病隨年深。志與日退。有何奉浼。時事日非。訛言日至。不無風鶴之搖搖。都不如不見不聞之爲愈。而恨不從先王考先生於丙寅當日也。適因家兒之出外。暫此不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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