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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령류

1892년 공명첩(空名帖) 1 고문서-교령류-공명첩 高宗 施命之寶(10.0×10.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144 1892년(고종 29) 10월에 임금이 아무개를 통정대부 행돈녕부 도정에 임명하는 공명첩 1892년(고종 29) 10월에 임금이 아무개를 통정대부 행돈녕부 도정(行敦寧府都正)에 임명하는 공명첩(空名帖)이다. 발급 연호에 찍혀있는 '시명지보(施命之寶)' 위에 휘지(諱紙)가 부착되어 있다. 이름이 적혀 있지 않은 공명첩이나 소장자료 '1892년 이규행(李圭行) 고신(告身)'의 임명내용과 발급 연월이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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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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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령류

1892년 공명첩(空名帖) 2 고문서-교령류-공명첩 高宗 施命之寶(10.0×10.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144 1892년(고종 29) 10월에 임금이 아무개를 통정대부 승정원 좌부승지에 추증하는 공명첩 1892년(고종 29) 10월에 임금이 아무개를 통정대부 승정원 좌부승지(承政院左副承旨)에 추증(追贈)하는 공명첩(空名帖)이다. 발급 연호에 찍혀있는 '시명지보(施命之寶)' 위에 휘지(諱紙)가 부착되어 있으며, 좌방(左傍)에 추증 사유가 기재되어 있어 통정대부 행돈녕부 도정에 임명된 손자로 인하여 그의 할아버지를 법전에 따라 추증한 공명첩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규행(李圭行)의 할아버지인 이시준의 추증교지인 소장자료 '1892년 이시준(李時濬) 추증교지(追贈敎旨)'와 연관되어 있으며, 추증내용과 발급 연월도 서로 동일하다. 그러나 이시준의 추증교지에는 추증 사유가 방서(傍書)되어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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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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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4년 최동룡(崔東龍) 호구단자(戶口單子) 고문서-증빙류-호적 1804 谷城縣監 崔東龍 谷城縣監<着押> 周挾無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186 1804년에 곡성현 석곡면에 사는 호주 최동룡이 주소와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 등을 기록하여 관에 제출한 호구단자 1804년(순조 4)에 곡성현 석곡면에 사는 호주 최동룡이 주소와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 등을 기록하여 관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최동룡의 거주지 주소는 곡성현(谷城縣) 석곡면(石谷面) 운와곡리(雲臥谷里) 13통 1호이다. 최동룡은 양인(良人)으로 올해 나이는 56세 기사생(己巳生)이며,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최동룡의 사조(四祖)는 아버지 학생 귀선(龜善), 할아버지 증가선대부 공조참판 오위도총부 도총관(贈嘉善大夫工曹叅判五衛都摠府副摠管) 성남(聲南), 증조(曾祖) 증통정대부 공조참의(贈通政大夫工曹叅議) 석벽(錫壁), 외조(外祖) 학생 오태위(吳泰位)는 본관이 동복(同福)이다. 최동룡의 아내 황씨(黃氏)는 나이 57세 무진생(戊辰生)이며, 본관은 장수(長水)이다. 황씨의 사조는 아버지 학생 경하(慶河), 할아버지 가선대부(嘉善大夫) 진상(進相), 증조 가선대부 서(叙), 외조 학생 김노적(金老迪)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이외 가족으로 최동룡이 모시고 살던 어머니 오씨(吳氏)는 사망하였으며, 아들 덕련(德連)의 나이는 16세 기유생(己酉生)이다. 이 문서는 관인(官印)과 주협무개인(周挾無改印) 등이 찍혀있지는 않으나 주묵(朱墨)의 오가작통 통호(統戶)와 외조 오태위에 대한 주기(註記)가 있어 1801년에 작성한 호적과 대조 확인을 마친 뒤 최덕련에게 다시 돌려준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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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갑진년 김경인(金卿仁)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卿仁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갑진년에 김경인(金卿仁)이 상대방 집안이 은전을 받은 것을 축하하고 서울 집에 왔다가 돌아갈 날짜가 확정되지 않았음을 알리면서 더불어 새해 인사를 전하는 내용의 간찰 갑진년 12월 21일에 김경인(金卿仁)이 보낸 간찰이다. 섣달 추위에 어른 모시며 지내는 생활은 좋은지 묻고, 자세하지 않으나 나라로부터 무언가 가상한 은전을 받은 것에 대해 축하하였으며 상대 가문의 이런 경사는 실로 연원이 있는 것이니 어찌 그렇지 않겠느냐고 하였다. 다만 이런 시기에 직접 찾아뵙지 못하는 것이 한탄스러울 뿐이라고 마음을 전하였다. 자신은 지금에서야 서울 집에 돌아왔는데 곳곳이 걱정스럽고 통탄할 일이 많아서 사람 사는 일이 어찌 이렇게 고단하냐고 한탄하였다. 그리고 상대방은 그 사이에 아이를 얻는 경사가 있지 않았냐고 물었다. 자신은 나이 50이 되도록 일점혈육이 없으니 삼불효(三不孝) 가운데 하나를 어찌 면할 수 있을지 한탄하였다. 돌아갈 날짜는 아직 확정하기 어려운데 이는 마음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돌아가는 상황이 그렇다고 하였다. 한해가 저물어 가는데 새해에 복 많이 받으시라는 인사를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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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년 김호영(金祜永)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祜永 査頓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576 기사년에 김호영(金祜永)이 옥산(玉山)의 사돈댁에 안부 인사를 전하며 달력을 보내드린다는 내용의 간찰 기사년 12월 26일에 김호영(金祜永)이 옥산(玉山)의 사돈댁에 보낸 간찰이다. 한해가 저물어가는 요즘 생활은 편안하시고, 먼 길은 편안히 다녀오셨는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가을 이후로 넉 달 동안 계속해서 걱정거리가 이어지니 편안할 날이 없어 가련할 뿐이라고 하였다. 새해에 복 많이 받으시라고 인사하고 새 달력 1건을 보내드린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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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년 김호영(金祜永)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祜永 李生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576 임신년에 김호영(金祜永)이 옥산(玉山)의 사돈 이생원 댁에 안부 인사를 하고 통유(通諭)한 일에 대해 언급했으며 청장력(靑粧曆) 1건을 보낸다는 내용의 간찰 임신년 12월 27일에 김호영(金祜永)이 옥산(玉山)의 사돈 이생원 댁에 보낸 간찰이다. 세월이 골짜기로 들어가는 뱀처럼 빨라서 그리움이 평소보다 큰데, 보내준 서신을 받고 그동안 쌓인 그리움에 조금 위로가 되었다고 인사하고, 상대의 건강이 편안한지 묻고 아들 소식도 듣고 싶다고 하였다. 자신은 예전 모습 그대로 지내고 있어서 말할만한 것이 없다고 하였고, 사안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미 통유(通諭)한 일은 온당하지 않은데 만류해도 할 수 없으니 매우 불행한 일이라고 하였다. 봄에 찾아오겠다고 말씀해주셔서 미리부터 탁상을 들고 기다리겠다고 하였으며, 새해 큰 복을 받으시라는 인사도 하였다. 청장력(靑粧曆) 1건을 보낸다는 말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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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7년 박씨(朴氏)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1837 谷城縣監 朴氏 谷城縣監<着押> 周挾無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186 1837년에 곡성현 석곡면에 사는 호주 과부 박씨가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과 소유 노비 현황 등을 기록한 호구단자를 관에 제출하여 확인을 마치고 돌려받은 준호구 1837년(헌종 3)에 곡성현 석곡면에 사는 호주 과부(寡婦) 박씨가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과 소유 노비 현황 등을 기록한 호구단자를 관에 제출하여 확인을 마치고 돌려받은 준호구이다. 박씨의 거주지 주소는 곡성현(谷城縣) 석곡면(石谷面) 운와리(雲臥里) 4통 1호이다. 올해 나이는 65세 계사생(癸巳生)이고 본적은 밀성(密城)이다. 박씨의 사조는 아버지 학생 광욱(光旭), 할아버지 학생 경(璟), 증조 학생 무춘(茂春), 외조 학생 장시엽(張時燁)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가족으로 아들 유학 최종득(崔宗得)은 나이 41세 정사생(丁巳生)이고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소유하고 있는 종 상원(尙元)은 나이 54세 갑진생(甲辰生)이다. 이 문서에 '호구단자(戶口單子)'라고 적혀 있고 호구단자의 기재 형식인 열서(列書)로 되어 있으나 곡성 현감의 관인과 서압(署押), 주협무개인(周挾無改印)이 찍혀있고 주묵(朱墨)의 오가작통 통호(統戶)가 기재되어 있으며, 1834년 호적과 대조 확인을 마쳤다는 '갑오상준인(甲午相凖印)'이 적혀 있다. 이는 제출한 호구단자를 구호적(舊戶籍)과 대조 확인을 마친 뒤에 박씨에게 다시 돌려준 것이므로 준호구로 분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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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869년 조희식(趙熙軾)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趙熙軾 崔在鳳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707 1869년 4월 13일에 수교에 거처하는 조희식이 강원도 강릉의 초당에 살고 있는 최재봉에게 자신의 관직 발령이 이 해 안에 있을 듯하니 고생이 예상된다는 내용 및 답장을 바란다는 내용 등을 전한 간찰 1869년(고종 6) 4월 13일에 수교(水橋)에 거처하는 조희식이 강원도 강릉(江陵)의 초당(草堂)에 살고 있는 최재봉(崔在鳳)에게 자신의 관직 발령이 이 해 안에 있을 듯하니 고생이 예상된다는 내용 및 답장을 바란다는 내용 등을 전한 간찰이다. 일체 소식이 끊긴 것은 형세 때문이지만 이런 때의 그리움은 해와 함께 길어진다는 내용, 오늘 사촌을 만나서 상대방의 안부를 탐문하였다는 내용, 어버이 모시고 지내는 상대방과 가족들은 모두 평안한지 안부를 묻고, 가난한 살림살이에 부모님을 극진하게 봉양하는 일을 잇기 어려울까 근심하는 마음이 어찌 없을 수 있겠느냐며 간절히 그립고 염려된다는 내용, 자신의 맏형은 어려움에 처해 있으나 고향의 여러 집안과 창아(昌牙)의 요즘 안부가 아직은 모두 편안하니 다행이라는 내용, 자신의 관직 발령이 이 해 안에 있을 듯하니 고생이 예상된다는 내용, 상대방의 답장을 바란다는 내용 등을 담았다. 편지 뒷면에는 편지를 연습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간찰의 작성년도는 1849년 조희식(趙熙軾)의 간찰 내용 중 정재용(鄭在容)의 간성군수(杆城郡守) 재임 연도인 1842년부터 1847년까지의 기간과 조희식의 관직 기록을 기준으로 하여 산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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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 박재빈(朴載彬)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朴載彬 康津縣監 <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6년에 康津縣監이 幼學 朴載彬(48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1876년에 康津縣監이 幼學 朴載彬(48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父 學生 千益 祖 學生 碓俊 曾祖 學生 師正 外祖 學生 金龍郁 *주소: 古郡內面 朴東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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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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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879년 박재빈(朴載彬)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朴載彬 康津縣監 <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6), □…□(적색, 직방형,12.3×5.8)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9년에 康津縣監이 幼學 朴載彬(51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1879년에 康津縣監이 幼學 朴載彬(51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父 學生 千益 祖 學生 碓俊 曾祖 學生 師正 外祖 學生 金龍郁 *주소: 古郡內面 朴東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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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관통보류

1929년 장대영(張大榮) 등 고목(告目) 고문서-첩관통보류-고목 茂城書院 李生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9년 11월에 무성서원 서재 장대영 등 5인이 이 생원에게 무성서원의 집강에 추천되었으므로 삭분향에 와줄 것을 알리는 고목 1929년 11월 15일에 무성서원 서재(茂城書院西齋) 장대영(張大榮) 등 5인이 이 생원(李生員)에게 무성서원의 집강(執綱)에 추천되었으므로 삭분향(朔焚香)에 와줄 것을 알리는 고목이다. 무성서원의 원장(院長)과 원이(院貳)는 경재상(京宰相)이 맡고 집강·장의(掌議)·색장(色掌)·유사(有司)는 도내(道內) 지조 있고 신중한 선비에게 맡기는 것이 전래하는 규례이다. 이번 도회(道會) 때에 사림의 공의(公議)에 따라 이 생원을 집강으로 천망하여 망첩(望帖)을 올리니 이번 초하루 분향례(焚香禮)에 와서 배알하고 봉심(奉審)할 것을 아뢰는 내용이다. 무성서원은 전라북도 정읍시 칠보면 무성리에 있는 서원이다. 고려시대에 최치원(崔致遠, 857~?)의 생사당(生祠堂)으로 태산사(泰山祠)를 건립하였는데 1483년(성종 14)에 정극인(丁克仁)이 세운 향학당(鄕學堂)이 있던 지금의 자리로 이전하였다. 1549년(명종 4)에 신잠(申潛, 1491~1554)의 생사당을 짓고 향사하다가 1615년(광해군 7)에 태산서원으로 창립, 1696년(숙종 22)에 무성서원으로 사액 받았다. 1630년(인조 8)에 정극인(丁克仁, 1401∼1481), 송세림(宋世琳, 1479∼?), 정언충(鄭彦忠, 1706∼1771), 김약묵(金若默, 1500∼1558)을, 1675년(숙종 1)에 김관(金灌, 1575~1635)을 추가 배향하였다. 이 서원은 1868년(고종 5)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존속한 47개 서원 중의 하나이다. 1968년 12월 사적 제166호에 지정되고, 2011년 7월에 정읍무성서원(井邑武城書院)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2019년 7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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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노상용(盧尙鏞)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盧尙鏞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435 노상용(盧尙鏞)이 노진영(盧軫永)에게 올해 농사 준비에 필요한 종자용으로 쓸 곡식을 도와달라고 당부하는 내용의 간찰 모년 3월 27일에 노상용(盧尙鏞)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보내는 간찰로 국한문 혼용으로 작성되었다. 지금 농사 준비를 하느라 분망한 시기에 아무 준비와 주선이 없어서 적수공권(赤手空拳) 형편에 몹시 딱한 형편이므로 지금 얼마간이라도 자신의 형편을 헤아려주어서 올해 농사에 지장이 없게 해달라고 간절히 부탁하고 있다. 혹시 준비가 어렵다면 무엇보다 긴급한 것이 종자(種子)이므로 색조(色租) 2석(石)을 반드시 빌려달라는 것이다. 빌려주지 않으면 사실상 올해 농사는 아예 시작하지 못하게 되므로 동정한다는 마음으로 빌려주시면 성심성의껏 갚겠다고 하면서 약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도 사회사업가의 일이 아니겠냐고 하였다. 이 편지는 노은경(盧殷卿) 간찰(簡札)과 합봉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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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ᄅᆡ뵈온지가 발서 여러날이 되엿슴니다 그동안 問候도 살피기兼하야 다시한번 가서 뵈얼야고 하엿으나 애러가지 事情에 ᄯᅡ라서 마음되로 못하엿사오니 넓이 諒恕하심을 비나이다. 그런ᄃᆡ그동안 日氣가 和暢하온ᄃᆡ侍中體度氣후健康하시오며 大小諸宅도 均一히 安寧하신지오 아울너 늘祝禱하나이다. 저는 省率이 如前하오니 多幸으로 思하나이다. 그런ᄃᆡ 日前의 相議事件에 對하야는 未安한 말삼이오나 그동안에 잇어서 엇더케 思量하시는지오 아ᄅᆡ에마즘春丈ᄭᅦ서 안게신다 하옵기에 여러가지 具体的 仔詳한 말삼은드리지 못하엿음니다만은 事實上 今番의 形便이 퍽이나 難處함니다 方今耕農準備가 紛忙하는 이ᄯᆡ에 아모準備와 周旋이업서 赤手空拳그ᄃᆡ로 안저서 農作時期를 맛게되오니 이러한 ᄯᅡᆨ한形便이 어듸ᄯᅩ잇슬가요. 이러한 말삼을 들으실ᄯᆡ에 ᄯᅩ 엇더한生覺을 가지실는지도 몰으겟음니다만은 實로 저는親愛하는 處地에서 허물업시드리는 말삼임니다. 日前의 말삼애對하야 春府丈과의 協議가 엇지되신지는 알수가 업슴니다만은 이것이아로신바와갓치 農作準備애 要用코저한 것임으로 저도ᄯᅩ한 返償하는ᄃᆡ애도 多少라도 等閒한 生覺은 업겟사오니 넓이諒察하시와惠澤으로써 今年農作上支障이업게하여주심을 切切히 바람니다. 그런ᄃᆡ 或엇더한處地애 ᄯᅡ라서 現金 그것이 마음ᄃᆡ로 準備가어려우시다면 더욱未安한 말삼이오나 第一緊急한 것이 무엇보다도 苗代種子이오니 色租라도 二石만은 決코 借惠하여야 耕農을하게될 모양임니다. 만일 그리안되신다하면 事實上 저의今年農作은 千萬夢外의 事가 되겟사오니 特히下諒하시와 同情하신다는厚意를 가지시고 誠意ᄃᆡ로 應하야주시면 저도ᄯᅩ한 다른것보다도誠意로 返償하여 드리겟음니다. 弱者를 扶助하야주시는것도 ᄯᅩ한社會事業家가안인가오 나머지 말삼은 가는便애 付托하옵고다맛侍候來來健康하심을바람니다三月二十七日 尙鏞拜【피봉】〈前面〉日谷盧軫永氏省執回納〈後面〉錦溪謹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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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오년 곽진우(郭縉佑)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郭縉佑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무오년에 곽진우(郭縉佑)가 누군가에게 안부를 묻고 약재를 쓰는 방법에 대해 상세하게 전하는 내용의 간찰 무오년 7월 8일에 곽진우(郭縉佑)가 누군가에게 보낸 간찰이다. 병을 앓고 있는 중에 편지를 받고 보니 병이 낫는 듯이 반가웠다고 인사하고, 상대방의 생활은 편안하고 식구들도 잘 지내지만 자제의 병이 아직 낫지 않는다고 하니 위안과 염려가 교차한다고 하였다. 자신은 근래 원인을 알 수 없는 증상으로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지내며 털고 일어날 기약이 없어 답답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무엇인지 자세히 말하지는 않았지만, 상대방이 말한 증상은 효험이 있는듯하니 지나친 염려는 하지 말라고 하였다. 자향산(紫香散)을 조제하는 가운데 청피(靑皮)가 없으니 대신 진피(陳皮)와 백개자(白芥子)를 각각 7푼씩 넣어서 써도 무방하지만 빠르게 효험을 보는 방도는 청피만한 것이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석약(石藥)은 근자에 다른 사람에게 주어서 남은 것이 많지 않지만 있는 대로 보내니 시험 삼아 복용해보는 것이 어떠하냐고 물었다. 곤담초(滚痰艸)는 정지하지 말고 석약과 함께 복용하는 것이 더 좋고, 자신이 있는 곳에 이렇게 해서 효험을 본 사람이 많다고 하였다. 석약에 대해서 어떤 사람들은 오래 복용하지 않는 약재라고 하는데 이것은 억측일 뿐이라고 하면서 병을 치료하는 방법 가운데 병이 위중하면 약의 독도 해를 끼치지 못하므로 의심하지 말고 많이 써도 좋으니 이른바 다다익선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여러 약재를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 자세하게 전하면서 나머지 이야기는 병중이라 손이 떨려서 그만 마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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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簡札)病中承書 足以甦省感荷何等 靠審卽辰棣中震艮益復頥重 各致均慶 而惟以愛鸞之所咎 尙爾彌留 慰慮交臻 記下近以無何之症 伏抱呌囈 食飮全却 振作無期 私悶何達 第示事謹悉詳審症情 則乃是變動 而似有成效矣 幸勿過慮 如何如何紫香散劑中 已無靑皮 則代入陳皮白芥子各七分式準用 無妨 然其於速效之道 似不如靑皮耳 石藥近者又給於他人處餘存者不多矣 隨所存伴還試用如何 滚痰艸更勿停止 與石藥望服則尤好耳 鄙處多有見效者耳城堞其寺塔之久石原不如墻中年久者耳 以此諒之期於求用如何 石藥或有說之曰匪久服之材云 此是臆料者也 治病之法 病重則藥毒不爲肆害 且湯武之時不得已用兵具 勿爲生訝 期於多用爲好耳 正所謂多多益善耳 此等香散並用之於處暑之后 則香芎不入爲好耳 亦爲諒處之如何 餘委席手戰 倩不備上戊午七月八日夕 記下郭縉佑拜手(皮封)謹拜謝上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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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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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28년 박태경(朴泰慶)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朴泰慶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8년 음력 3월 8일에 생 박태경이 노진영에게 약속한 지불금을 3주 안에 지급하겠다는 내용으로 보낸 서간. 1928년 음력 3월 8일에 생(生) 박태경(朴泰慶)이 노진영(盧軫永)에게 약속한 지불금을 3주 안에 지급하겠다는 내용으로 보낸 서간(書簡)이다. 최근 상대의 안부를 묻고 자신이 5일내로 꼭 뵈러 가려고 했으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가지 못하게 되었다며 죄송하고 답답하다고 했다. 그러나 3주일간에 꼭 납상(納上)하겠다며 용서해 달라고 하고 편지를 마쳤다. 세로줄이 있는 규격편지지를 이용하여 국한문혼용으로 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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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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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관통보류

기묘년 첩보(牒報) 고문서-첩관통보류-첩보 □…□ 2顆 (적색, 정방형, 7.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기묘년에 어느 고을의 수령이 관찰사의 감결 내용에 따라 면검(面檢)과 리검(里檢)의 성명과 오가작통(五家作統)의 소명성책(小名成冊)을 작성하여 보고하는 내용의 첩보 기묘년 8월 25일에 작성된 첩보의 일부분이다. 점련된 문서의 일부로 보이고, 어느 고을의 수령인지는 알 수 없으나, 관찰사가 감결(甘結)을 통해 내린 지시를 수행하고 나서 그 내용을 관찰사에게 보고하는 내용이다. 관찰사가 감결을 통해 지시한 내용은, 백성들에게 도둑들의 피해가 막심하므로 이를 뿌리 뽑기 위한 방책으로 면(面)에는 면검(面檢)을, 리(里)에는 리검(里檢)을 두며, 오가작통(五家作統)에는 통수(統首)를 두어서 이웃에서 아침저녁으로 경비를 하여 좀도둑을 정탐하고 살핀다면 강도가 나타나는 대로 힘을 합쳐 붙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강도를 붙잡으면 리에서는 면에 보고하고, 면에서는 해당 관(官)에 보고하며 진(鎭)을 거쳐 감영(監營)에까지 보고하게 되면 도적들을 깨끗이 소탕할 수 있을 것이므로, 리검과 면검의 성명 및 오가작통의 소명성책(小名成冊)을 먼저 보고하라는 내용이다. 이 지시를 거행한 수령이 지시대로 작성하여 관찰사에게 올려 보내면서 이 문서가 작성되었다. 오가작통법은 민호(民戶) 다섯 집을 한 통(統)으로 편성하는 호적법으로, 범죄자의 색출과 세금의 징수, 부역의 동원을 효과적으로 실시하기 위하여 시행한 제도이고, 통 내의 한 사람을 골라 '통수'로 삼아서 통 내의 일을 관장하게 하였다. 소명성책은 성명을 기록해서 책으로 만든 것인데, 어느 사안에 따른 인적사항과 세부 조목 등을 분류하여 정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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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노문영(盧文永)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盧文永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8년 4월 11일에 족제 노문영이 노진영에게 조씨와의 혼담 소식을 전한 서간. 1928년 4월 11일에 족제(族弟) 노문영(盧文永)이 노진영(盧軫永)에게 혼담(婚談) 등의 소식을 전한 서간(書簡)이다. 만나지 수일이 지났다며 최근 숙부님의 기력과 형님 그리고 일문 여러분들의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객지의 노정 중에 침식부분에서 족장(族丈) 대련(大蓮)씨의 후의를 입어 집과 다름없이 지낸다고 했다. 또 조씨(趙氏)와의 혼담(婚談)에 관한 일은 대련씨에게 긴히 부탁을 하여 수차례 직접 가서 그 기미를 상세히 살폈는데, 쾌히 승낙하고 거절할 의사가 없어 우선은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는 것, 일후에 일이 성사가 되던 되지 않던 간에 사실을 상세히 말씀드릴 것이라고 했다. 마지막부분에는 이달 18일을 혼일(婚日)로 정했는데 그날이 어그러질 듯하다고 말했다. 별지에는 조씨가에서 칭탁(稱托)하고 있는 조항을 4가지로 정리해서 적었다. 첫째는 신랑이 나이가 신부와 적당했으면 하는데 너무 높다는 것, 둘째는 조(趙) 처사(處士)는 무남일녀라서 집안일을 누구에게 부탁할 수 없다는 것, 셋째, 대도 항구 여자가 우귀(于歸)하는 경우에는 궁벽한 향촌에 머물 의사가 없다는 것, 넷째는 궁합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상의 여러 칭탁은 우선 놓아두고, 대련(大蓮) 족장의 말씀으로는 우선 기대할만하다고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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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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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박하청(朴夏淸) 등 6명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朴夏淸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301 1935년 6월 6일에 박하청 등 6명이 노진영에게 영화재 수행안 개정 담당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전한 서간. 1935년 6월 6일, 박하청(朴夏淸) 등 6명이 노진영(盧軫永)에게 영화재(永和齋) 수행안 개정 담당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전한 서간이다. 가물고 더운 지금의 상대 안부를 간단히 물었다. 주요 내용은 본향(本鄕, 光州를 가리킴)의 이번 수행안(隨行案)을 개정(改整)하는 일에 귀하의 이름이 향의(鄕議)의 일치로 선출되었다며 오는 10일에 소촌(素村) 박씨영당(朴氏影堂)에 왕림하시어 함께 관광(觀光)하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발신자의 이름은 박하청(朴夏淸), 기종섭(奇琮燮), 유영선(柳永善), 고광우(高光雨), 최종우(崔鍾宇), 이계만(李啓萬)이다. 작성자의 실수로 고광우(高光雨)의 이름을 두 번 쓴 것이 특이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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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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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27년 고언주(高彦柱) 등 3인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高彦柱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7년 1월 16일에 향교의 고언주 등 3인이 노진영에게 석전제의 제관을 맡아줄 것을 요청한 내용의 서간. 1927년 1월 16일에 광주향교(鄕校)의 고언주(高彦柱) 등 3인이 석전제(釋奠祭)의 제관을 맡아줄 것을 요청한 내용으로 노진영(盧軫永)에게 보낸 서간(書簡)이다. 새해 첫 달의 상대 안부를 묻고 다음 달 초1일에 거행하는 석전제의 제관(祭官)으로 귀하의 이름이 선정되었다며 이에 서함을 보내니 양해해 주시고, 제사기일 하루전날에 본 향교의 당(堂)에 와서 치재(致齋)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발신자는 향교의 제(弟) 고언주, 송재근(宋在根), 최수화(崔洙華) 3인이다. 피봉에 적힌 '본향교(本鄕校)'는 광주향교(光州鄕校)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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