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 장대영(張大榮) 등 고목(告目) 고문서-첩관통보류-고목 茂城書院 李生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9년 11월에 무성서원 서재 장대영 등 5인이 이 생원에게 무성서원의 집강에 추천되었으므로 삭분향에 와줄 것을 알리는 고목 1929년 11월 15일에 무성서원 서재(茂城書院西齋) 장대영(張大榮) 등 5인이 이 생원(李生員)에게 무성서원의 집강(執綱)에 추천되었으므로 삭분향(朔焚香)에 와줄 것을 알리는 고목이다. 무성서원의 원장(院長)과 원이(院貳)는 경재상(京宰相)이 맡고 집강·장의(掌議)·색장(色掌)·유사(有司)는 도내(道內) 지조 있고 신중한 선비에게 맡기는 것이 전래하는 규례이다. 이번 도회(道會) 때에 사림의 공의(公議)에 따라 이 생원을 집강으로 천망하여 망첩(望帖)을 올리니 이번 초하루 분향례(焚香禮)에 와서 배알하고 봉심(奉審)할 것을 아뢰는 내용이다. 무성서원은 전라북도 정읍시 칠보면 무성리에 있는 서원이다. 고려시대에 최치원(崔致遠, 857~?)의 생사당(生祠堂)으로 태산사(泰山祠)를 건립하였는데 1483년(성종 14)에 정극인(丁克仁)이 세운 향학당(鄕學堂)이 있던 지금의 자리로 이전하였다. 1549년(명종 4)에 신잠(申潛, 1491~1554)의 생사당을 짓고 향사하다가 1615년(광해군 7)에 태산서원으로 창립, 1696년(숙종 22)에 무성서원으로 사액 받았다. 1630년(인조 8)에 정극인(丁克仁, 1401∼1481), 송세림(宋世琳, 1479∼?), 정언충(鄭彦忠, 1706∼1771), 김약묵(金若默, 1500∼1558)을, 1675년(숙종 1)에 김관(金灌, 1575~1635)을 추가 배향하였다. 이 서원은 1868년(고종 5)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존속한 47개 서원 중의 하나이다. 1968년 12월 사적 제166호에 지정되고, 2011년 7월에 정읍무성서원(井邑武城書院)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2019년 7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