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2년 정석량(鄭錫亮) 등 등장(等狀) 2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壬寅五月日 奉山面化民 鄭錫亮 等 9人 城主 壬寅五月日 鄭錫亮 靈光郡守 전라남도 영광군 [着押] 7顆 영광 동래정씨 죽창공(정홍연)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82년(정조 6)에 화민(化民) 정석량(鄭錫亮) 등이 영광군수(靈光郡守)에게 올린 등장(等狀) 1782년(정조 6) 3월일에 봉화면(奉山面) 화민(化民) 정석량(鄭錫亮) 등이 영광군수(靈光郡守)에게 김흥재(金興才)가 투장(偸葬)한 묘를 파내어 가도록 엄한 처분을 요청하며 올린 등장(等狀)이다. 동래정씨는 자신들의 5대조 죽창공(竹窓公) 정홍연이 서울 회현동(會賢洞)에서 내려와 살았던 땅은 가지산(歌芝山)이고, 장사지낸 땅은 장두산(長頭山)으로 이 땅을 수호하고 금양한 것이 100여 년이라고 하였다. 지난 임진년(1772)과 갑오년(1774)에 금양 용호혈(龍虎內) 내에 투장한 일이 있었는데 관가에 고발하여 곧바로 파내 가라고 하였다. 그런데 지난 12월 사이에 또 그곳에 투장의 변고가 생겨 관가에 고발하였더니, '면임을 임명하여 투장자를 수색하여 잡아오라'는 제사를 받았는데 찾아내기가 어려워 지금 간신히 투장한 놈인 동면(同面) 하염소(下塩所)에 사는 김흥재를 찾아냈다고 하였다. 이에 김흥재에게 특별히 관차(官差;관청의 하급관리)를 보내어 투장자 김흥재를 잡아와 투장한 죄를 무겁게 다스린 후 굴거(掘去)할 수 있도록 요청하였다. 이에 영광군수는 3월 10일에 김흥재를 잡아가두고 독촉하여 파가도록 잡아오라고 제사를 내리고 주인(主人)에게 담당하게 하며 발패(發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