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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술년 김병선(金秉璿)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秉璿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임술년에 김병선(金秉璿)이 가족들의 소식을 전하면서 상주(尙州) 족인(族人)의 소송 진행 상황을 알리고 원임(院任)의 임명 등에 관해 소식을 전하는 내용의 간찰 임술년 8월 7일에 김병선(金秉璿)이 보낸 간찰이다. 먼저 보내준 편지를 받고 그동안 쌓인 그리운 회포가 조금 위로가 되었다고 인사하고, 요즘의 생활이 편안한지, 각 집안 모두 평안한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부친의 건강은 우선은 편안하신데 모친의 병이 점점 깊어져 온갖 약을 시험해보았지만 효험을 보지 못하고 있어서 애가 탄다고 소식을 전하였다. 그리고 읍폐(邑鬧)로 인해 지난 6개월 동안 온통 소란스러워 밥 짓는 연기가 거의 끊어질 지경이었는데, 지금은 안정되었으니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하였다. 상주(尙州)의 사간을 지낸 어른의 사안은 향란(鄕亂)으로 인해 아직 처결을 받지 못하여 비국(備局)에 정소(呈訴)하였는데도 사관(査官)을 정해서 속히 바로잡으라는 처분을 받지 못했다고 상황을 알렸다. 원임(院任)이 말한 내용은 잘 명심하고 있지만 일이 이런 상황이니 어떻게 하겠느냐고 하였고, 구임(舊任)은 아직 사단(辭單)을 제출하지 않았으니 추후에 다시 도모해보라고 하였다. 올해 추향(秋享) 때에 원임이 체차되지 않으면 자신의 사종숙(四從叔) 조영(祖永) 씨가 이미 전에 말을 한 적이 있으므로 상대방이 원중(院中)에 망통(望通)을 해서 도모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의견을 물었다. 농사는 가뭄으로 인해 흉년을 면치 못할 것 같아 염려스럽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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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진년 박원호(朴遠浩)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朴遠浩 妻家宅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580 경진년에 박원호(朴遠浩)가 처가(妻家) 댁에 아내상과 계수씨의 상을 위로하고, 자신과 가족들의 소식 등을 두루 전하면서 상대 쪽에서 한번 방문해주기를 요청하는 내용의 간찰 경진년 2월 1일에 박원호(朴遠浩)가 처가(妻家) 댁에 보낸 간찰이다. 가장 먼저 수신인의 아내상을 위로하면서 노년에 이런 애통한 일을 당해 어떻게 견디고 계시냐고 위로하였다. 부고를 받지 못하다가 평성(坪城)의 벗을 통해 소식을 듣게 되었는데 아마도 제대로 전달이 되지 못했던 것 같다고 하였고, 또 계수씨(季嫂氏)의 상(喪)은 너무도 뜻밖이라 부음을 듣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하였다. 봄추위에 정양하시는 체후는 편안하고 집안 식구들 모두 잘 지내는지 안부를 묻고, 형 집안의 변고는 말하고 싶지 않지만 자신과도 우의가 있어서 말하지 않는 것도 안 될 것 같아서 말을 하는 것이니, 모든 일들을 물 흐르듯 흘려보내고 잘 조처하시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자신은 근년 들어 쇠약해진 모습이 더 심해졌고 작년 봄에 중병을 앓다가 다행히 죽음을 면하기는 했지만 서리 맞은 파리 꼴을 하고 있다고 하였다. 매번 한번 찾아뵙고 싶은데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뜻을 이루지 못하고 거리조차 멀어서 기약할 수 없으니 탄식만 할 뿐이라고 하였다. 또 형도 연로하기는 하지만 이 죽게 생긴 병든 벗을 생각해서 한 차례 오셔서 오래도록 막혔던 회포를 터놓을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올해 정초에 어린 손자가 관례(冠禮)를 올렸고 새 사람의 범절이 매우 흡족해서 다행이며, 여러 식구들도 큰 탈이 없으니 이것 역시 다행이라고 소식을 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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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노인택(盧仁澤)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盧仁澤 盧鍾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5년 4월 25일, 족종 노인택 등 3명이 노종룡에게 노씨문중 선단 비용 문제로 보낸 서간. 1935년 4월 25일, 족종(族從) 노인택(盧仁澤) 등 3명이 노종룡(盧鍾龍)에게 노씨문중 선단(先壇) 비용 문제로 보낸 서간이다. 봄에 만났던 뒤로 항상 그리웠다는 인사로 편지를 시작하여 4월의 날씨에 상대가의 여러분들이 모두 잘 있는지 안부를 물었다. '족종등(族從等)'인 자신들은 별 탈 없이 똑같이 지낸다고 한 뒤 선단(先壇)을 의보(義補)하는 일에 대해 언급했다. 의연금으로 보조하는 자손이 되어 선조를 섬기는 일로 당연한 일이며, 자신들이 잔문(殘門)으로 많은 의연금을 모으는 일로 지난 3월의 행사에서 자신들의 가문 형편을 조사하여 여러분들에게 일일이 고했다고 했다. 그런데 편지로 말씀해주신 2두락에 대한 값 120원(圓)을 언급하신 것은 무슨 까닭이냐고 묻고 60원으로 허락을 받았는데 20원은 너무 적다며 당신의 종문(宗門)에서 선출된 사람을 내보내 꼭 모두 돈을 모아 주기를 당부했다. 편지 봉투에 적힌 이름이 노영원(盧永源)인 것으로 보아 편지의 발기인은 여럿이나 작성자가 노영원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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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이문량(李文亮)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李文亮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5년 3월 8일에 이문량이 노진영에게 안부를 묻고 물건을 보낸다는 내용을 전한 서간. 1925년 3월 8일에 이문량(李文亮)이 노진영(盧軫永)에게 안부를 묻고 물건을 보내며 전한 서간(書簡)이다. 소식이 오간지 오래라 마음 아팠다며 요즈음 복중(服中)인 상대의 안부와 가족들이 잘 있는지 물었다. 상대에게 형이 되는 자신은 딸자식이 권귀(勸歸)를 받은 이래로 다만 그 집을 보며 길게 한숨을 쉬고 늙은 처는 구석에서 울고 있다고 전했다. 두 건의 물건은 이제야 겨우 보내드린다며 죄송하다고 하고 또 그 물건이 두 다리에 흠이 있어 실로 죄스럽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진 동생이 잘 살펴봐주어 너무 책망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나머지는 송 아(宋雅)가 말로 전할 것이라고 말하며 편지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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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장정극(張正極) 서간(書簡) 간찰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張正極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5년 4월 3일에 장정극이 노진영에게 위문을 하지 못한 미안함과 물건을 잘 받았다는 내용을 전한 서간. 1925년 4월 3일에 장정극(張正極)이 노진영(盧軫永)에게 위문을 하지 못한 미안함과 물건을 잘 받았다는 내용을 전하기 위해 쓴 서간(書簡)이다. 뜻밖의 편지를 받고 전날 자신이 위문을 빠뜨리는 죄를 저질렀음을 알았다는 것, 하물며 그 편지 속에 '스스로가 괴롭고 가련했다'라고 했던 한 구절은 자신을 계칙한 간곡한 말이었다고 했다. 자신도 때맞추어 직접 가서 최근의 회포를 풀고 싶었지만 평생의 한 단서 때문에 지금까지 가지 못하고 있다며 부끄러워 뭐라 할 말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청화(淸和)한 지금의 상대 안부를 묻고 자신은 거리는 식구들이 그럭저럭 평안하다고 전했다. 상대가 보내온 물건을 절하고 받으면서 상대가 평소 나를 아끼는 마음을 알았다고 인사하고 그럼에도 곡식 한 톨 갚아 보낼 수 없는 상황에 죄송하다고 인사했다. 편지의 끝에는 자신이 받은 닭 한 마리, 돈 5원(圓)을 잘 받았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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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김우영(金雨英) 서간초(書簡草)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雨英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5년 노진영이 김우영에게 보낸 서간의 초본. 1935년 생(生) 모(某)가 김우영(金雨英)에게 보낸 서간의 초안본이다. 본 편지는 김우영(金雨英)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보내온 1935년 3월 27일자 서간과 한 봉투에 들어 있었으므로 시기상 당시 노진영이 김우영에게 답장을 쓰기 위해 작성한 편지로 보인다. 내용은 정사를 돌보고 있는 상대에게 3월의 안부를 묻고 자신[生]은 집안 노인이 평안하시어 다행이라고 인사한 후 상대방의 종씨(從氏)가 경영하는 일이 진실로 활발하게 널리 은혜를 펴려는 뜻에서 나온 것이니 그 말을 누가 따르지 않겠느냐며, 자신의 알선이 도리어 병통이 될 것이라며 겸양하면서도 관청에 들어가는 때에 잘 말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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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술년 최세하(崔世夏)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崔世夏 李生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655 경술년 9월 그믐날에 횡계에 살고 있는 최세하가 부모 상중인 옥계의 이 생원에게 수십 일 동안 눈병을 앓고 있는 자신의 안부와 함께 상대방이 앞뒤 편지에서 한번 왕림하겠다는 말만 있을 뿐 끝내 찾아오지 않고 자신의 바람을 저버려 서운하다는 내용 등을 전한 간찰 경술년 9월 그믐날에 횡계(橫溪)에 살고 있는 최세하가 부모 상중인 옥계(玉溪)의 이 생원에게 수십 일 동안 눈병을 앓고 있는 자신의 안부와 함께 상대방이 앞뒤 편지에 한번 왕림하겠다는 말만 있을 뿐 끝내 찾아오지 않고 자신의 바람을 저버려 서운하다는 내용 등을 전한 간찰이다. 소식이 끊긴 뒤에 상대방이 먼저 편지를 보내와 손을 바삐 놀려 편지를 뜯어보고서 기쁘고 감사한 마음 한량없었다는 내용, 국화 핀 가을에 어버이 상중인 상대방 형제들의 건강은 괜찮으며 아드님도 별 탈없이 잘 자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위로되고 축하드린다는 내용, 자신의 어버이는 그렇저럭 편안하여 다행이지만 자신은 근래 눈병의 증세로 수십 일 동안 앓고 있어 다양한 방법으로 약을 써 보았으나 끝내 효력을 보지 못했다는 내용, 올해 농사 형편은 처음에는 풍년이라고 했다가 수확한 뒤에는 흉년이라고 하니 우리같은 곤궁한 선비가 대신 걱정스럽다는 내용, 소식이 끊긴 매형(妹兄)이 자신을 방문하여 매우 위로되었는데 겨우 하룻밤만 묵고 헤어져 오히려 만나지 않으니만 못했다는 내용, 상대방의 앞뒤 편지에서 한번 자신을 방문하겠다는 말만 하고 끝내 자신의 바람을 저버려 편지를 쓰고 있자니 서운한 마음만 더할 뿐이라는 내용을 담았다. 자리 하나와 삿갓을 보낸다는 내용을 추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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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축년 정화(珽和)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珽和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계축년 10월 15일에 방촌 정화가 옥산의 동상댁에 부탁하신 민어포를 보내는데 품질이 좋지 못해 부끄럽다는 내용과 재상 집에 감사인사 하러 가는 일에 대해 여러 의견으로 나뉘어 개탄스럽다는 내용 등을 전한 답장 계축년 10월 15일에 방촌(芳邨) 정화가 옥산(玉山)의 동상댁(東上宅)에 부탁하신 민어포를 보내는데 품질이 좋지 못해 부끄럽다는 내용과 재상 집에 감사인사 하러 가는 일에 대해 여러 의견으로 나뉘어 개탄스럽다는 내용 등을 전한 답장이다. 달포 전에 보내준 편지에 대해 아직까지 답장을 하지 못하고 있어서 그리움만 간절했다는 내용, 서리 내리는 계절에 상대방 형제들과 가족들 모두 평안한지 안부를 묻고, 지난번에 상대방 조카를 만나 간략하게 소식을 듣고 매우 위로되고 그리웠다는 내용, 어버이 모시고 사는 자신은 예전과 똑같이 보내고 있고, 아이들도 각자 잘 지내고 있으며, 그 외에는 드릴 말씀이 없다는 내용, 흉년으로 괴로워 차라리 멀리 달아나고 싶다는 내용, 부탁하신 민어포를 보내는데 좋은 품질이 아니라서 부끄럽지만 너그럽게 받아주시라는 내용 등을 담았다. 서쪽에서 온 소식은 사람을 미치게 하는데 다행히 우리들로 하여금 다시 해를 보게 할는지, 재상 집에 감사인사를 하러 가야 하는데 논의가 여러 의견으로 나뉘니 개탄스럽다는 내용을 추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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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미년 신국보(辛國輔) 혼서(婚書) 고문서-서간통고류-혼서 辛國輔 李生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계미년 9월 16일에 신부측 신국보가 신랑측 이생원 집에 보낸 혼서 계미년 9월 16일에 신부측 신국보(辛國輔)가 신랑측 이생원 집에 보낸 혼서이다. 자신의 딸 혼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이전에 연길(涓吉)을 받아 매우 기쁘다는 인사와 함께 의제(衣製)를 적어 보낸다는 내용이다. 의제(衣製)는 신랑의 의복 길이와 품의 치수를 신부측에 알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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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아버지가 아들에게 식구들 안부를 전하는 간찰 아버지가 아들에게 보낸 간찰이다. 피봉이나 이름이 없어 자세하지 않다. 아들 네가 슬하를 떠난 뒤로 소식이 없어 마음이 매우 울적하였는데 편지를 받고 보니 매우 위안이 되었고, 이후로 또 며칠이 지났는데 그사이 객지 생활은 무탈한지 묻고 멀리서 염려가 적지 않다고 하였다. 아버지는 별일 없이 잘 지내고 있고, 며느리와 손주 며느리도 모두 큰 탈 없으며, 증섭(曾燮) 남매도 잘 지내니 다행이라고 식구들 안부를 전하였다. 약을 복용할 때는 반드시 그 마음을 먼저 바르게 하고 또 정력을 수고롭지 않게 해서 조리해야 한다고 당부하였다. 조제약은 분량이 많기도 하고 일수도 길어서 맛이 변질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3분의 1을 덜어서 보내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족형(族兄)인 원오(元五)씨는 근래 편안하냐고 묻고, 바빠서 별도로 편지를 쓰지 못하니 대신 인사를 전하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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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수(金驥秀)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驥秀 盧地燮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김기수(金驥秀)가 처조부인 노지섭(盧地燮)에게 일본 유학생활의 안부를 전하는 간찰 손서(孫婿) 김기수(金驥秀)가 처조부인 노지섭(盧地燮)에게 일본 유학생활의 안부를 전하는 간찰이다. 내용과 피봉에 날짜 표기가 없어 연도는 미상이다. 김기수는 일본 동경에 유학중이고 처조부 노지섭은 광주에 살고 있다. 처조부 내외의 안부와 빙모(聘母)의 기력은 좋으며, 처남들도 잘 크고 있고 자신의 소식에 안도하고 있는지 물었다. 자신은 객지에서 무탈하게 지내고 있고 학업도 열심히 하고 있으니 마음 놓고 계시라고 하였고, 타국에서 농촌 풍경을 보면 추수기에 접어들었을 조선의 고향이 연상된다고 하였다. 신문에 보도되어 알고 계시겠지만, 학교령(學校令)이 전시체제(戰時體制)로 들어가서 대학과 고등전문학교의 연한을 6개월 단축해서 내년부터 9월에 졸업이고, 올해에 한해서는 종래의 방침대로 12월에 졸업하므로 금년 졸업반의 부담과 사회의 기대가 어떠할지에 대한 것이 요즘의 화제라고 전하였다. 가을 날씨가 점차 싸늘해지므로 건강을 잘 보전하시기를 당부하며 편지를 끝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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伏未審秋陽大舅主外內分 哀體候奉筵安支하옵시며 聘母主氣力萬支하옵시고 令胤諸君次第善長하며 令抱地燮君聲息에 安故하는지 伏慕且祝이로소이다 孫婿는 客狀眠食이 無恙하오며 學業專攻하오니 放念伏望하나이다.氣候의 變遷에 森羅萬象의 色이 變轉萬化하옴은 自然의鐵則이오나 鄕土에 晩秋譜想像하기에 繁多하며 異域에農村光景을 目擊할 際는 더욱 秋收期의 朝鮮을 聯想함니다. 時代의 變轉萬化도 臆測의 限이아니며 新聞報道上으로 周知하심과갗이 學校令이 臨戰体制에 卽應하야大學高專年限期를 六箇月短縮하여 明年度부터 九月에 卒業이며 今年에 限하여는 從來方針에 依하야 十二月에 卒業하니 今年卒業班의負擔 社會의期待는 如何케될는지 時의 話題이옴니다. 秋冷이 緊하야사온듸 支安하심伏祝하오며 餘不備伏惟孫婿 金驥秀上書【피봉】〈前面〉朝鮮全南光州府大正町一一二▣地燮宅入納〈後面〉東京市杉並區高円寺三ノ二五九 住好莊金驥秀拜上 謹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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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鶴)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鶴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학(鶴)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부탁한 것을 들어달라고 다시 요청하는 내용의 간찰 신(辛)자 들어가는 해 12월 6일에 학(鶴)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보낸 간찰이다. 종종 만나기는 하지만 제때에 뵙지 못하니 쌓이는 회포를 붓으로 다 적기 어렵다고 인사를 하고, 형의 아버님은 조섭에 심한 문제는 없고, 형님도 건강하고 편안하며 아드님도 공부 잘하고 있는지 두루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궁벽한 집에 앉아서 후회해도 어쩌지 못하는 탄식만 하면서 지내고 있다고 근황을 전하였다. 구체적으로 적지는 않아 알 수 없지만, 자신이 부탁한 바를 잊지 않고 있는지, 마음의 결정을 내렸는지 물었다. 그리고 입으로 말하고 글로 부탁하는 것이 매우 염치없지만 형이 아니면 누구에게 하겠느냐며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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省式言賢閤夫人喪事 夫復何言 仰想衰老之境 遭此叩盆之痛 撫舊悼今 何以堪遣 爲之悲念萬萬 便使積阻 竟未承訃 近因坪城友 果聞之則似有洪喬之歎矣令季嫂氏喪事 千萬夢外 承訃驚愕 不能已已 伏惟春寒靜養服體候連護晏重 閤下諸節 第次平善 並慰溸區區 實愜願聞之私 兄家家變 都不欲說志 而以我親愛舊誼 無言亦非情也 是是非非都付之水流雲空 善爲措處 千念萬仰 未知兄意之如何耳 弟近年以來衰狀益甚 而去年春 以無何之重病幾乎殊矣 以宜以藥 幸而免死 而可謂霜後蠅也 每欲一進攄懷 而身憂如右 未得遂意 山川夐越 合並無期 只切東南生長之歎 兄亦老矣 而勿較此將死之病友 一賜惠然 以攄積歲相阻之懷 則死而何恨 回念疇昔 慨歎無比 今正初穉孫冠首 而新人凡節極愜所望 幸私幸私 諸率姑無大頉 亦爲幸也 餘心眩 姑此不備謝候狀庚辰二月初一日 弟朴遠浩拜拜【피봉】〈前面〉謹拜謝候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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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축년 신재곤(辛載坤)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辛載坤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615 을축년 1월 26일에 모평에 사는 신재곤이 옥산에 살고 있는 상대방에게 동접인을 구성했는지 여부를 자세히 알려 주어서 자신의 거취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내용 등을 전한 간찰 을축년 1월 26일에 모평(茅坪)에 사는 신재곤이 옥산(玉山)에 살고 있는 상대방에게 동접인(同接人)을 구성했는지 여부를 자세히 알려 주어서 자신의 거취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내용 등을 전한 간찰이다. 상대방 형제의 아내 상(喪)은 너무 뜻밖에 생긴 일이라 부고를 받고서 놀라고 슬픈 마음 억제할 수 없었다는 내용, 상제방 형제들과 합부인의 안부를 묻는 내용, 자신은 앓고 있던 병이 이달 초순에 또 본래 있던 증세까지 더해져 거의 죽을 지경이 되었다가 탕제 10여 첩을 복용하고 나서야 다시 소생하여 이전의 모습을 되찾았으나 답답한 기운이 가슴에 가득차 있다는 내용, 과거시험은 지난해에 만났을 때 상의한 적이 있었는데 오랫동안 과거시험을 보지 않은 자신이 늘그막에 망령되게 행동하고 분수에 맞지 않는 희망을 품어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될만 하지만 이미 시험을 보려고 움직였으니 어찌 대충 시험 준비를 해서 요행을 바랄 수 있겠느냐는 내용, 상대방의 과감한 성격으로 그쪽에 과거시험 공부를 함께 할 인원을 구성하였는지를 물은 뒤, 지금까지 통보가 없으니 무슨 일 때문인지, 상대방이 혹 시험을 보지 않으려고 그런 것인지, 아니면 그쪽 일을 아직 언급하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 자신의 거취를 결정할 수 있도록 상세히 알려 줄 것을 부탁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 편지와 함께 종형(宗兄)에게 돈 2민동(緍銅)을 부쳐 보내니 이것을 종형에게 전해주라는 내용을 추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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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신년 최세휘(崔世徽)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崔世徽 査頓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659 경신년 1월 5일에 석동에 사는 최세휘가 옥계의 사돈 형제들에게 지금 역병이 돌고 있는데 사돈의 외손은 매우 잘 넘겼으며, 가까운 시일에 자신을 방문하여 회포를 풀기를 바란다는 내용 등을 전한 간찰 경신년 1월 5일에 석동(石洞)에 사는 최세휘가 옥계(玉溪)의 사돈 형제들에게 지금 역병(疫病)이 돌고 있는데 사돈의 외손은 매우 잘 넘겼으며, 가까운 시일에 자신을 방문하여 회포를 풀기를 바란다는 내용 등을 전한 간찰이다. 지난번에 잠깐 만날 것은 이미 지난해의 일이니 그뒤에 서글픈 마음 더욱 간절하다는 내용, 새 추위에 형제분들의 생활이 새해를 맞이하여 복이 증대하고 다른 가족들도 모두 잘 지내고 있는지 안부를 묻는 내용, 자신은 겨우 졸렬한 모습을 보전하고 있는데 지금 역병을 만나 8, 9명의 아아 가운데 잘 넘긴 아이가 이미 절반이 넘었으며, 상대방의 외손은 더욱 순순히 넘겼으니 매우 경사스러운 일이라는 내용, 나머지는 가까운 시일 내에 왕림하여 회포를 푸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내용, 인편이 바빠 이만 줄인다는 내용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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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봉_앞면)光州府 大正町 一一二番地盧 兄 軫永 氏[消印: 全南·長城 13.7.24 ][消印: 全南·長城 13. 7. 2?](피봉_뒷면)長城郡 北上面 鈤峴里金龍植氏方梁會得敬.(簡紙)日谷在天亡耶. 如是以間縮, 瞻悵有倍於他時. 謹不審春府丈, 隆老氣力對時康寧, 曁侍中體度益護萬重, 渾眷濟濟平善, 旣深仰祝. 弟狀今方滯在于長城郡金龍植氏家, 而送了夏日, 不家食情怳, 姑依前樣子, 他無可喩者耳. 就兄我間年來事, 鄙之累度所向意表出, 於不義中不啻, 亦出於不信之誼. 故到今慨難而已. 于先欲爲仰煩, 第營事年來幾多. 明日與 貴族永洙氏等覽于各勝地, 而占得於何處何山耶. 數三處占得料,想必存矣. 第推想時局, 于此營事,促進歲月也. 倘無轉眄無暇之日乎. 更爲勵志精慮, 無至於敀虛狼貝之地, 至祝至祝. 前者所送, 付之一笑, 更爲一者奉握, 是所祝企, 而未知 尊貴之意(同紙內 小字 書簡)一別修鬲之霜, 繼綣之意, 何日可已. 欲探高燭査, 若白雲深處, 只自咄悵矣. 謂外承惠感下不息耳.謹詢庚炎, 旅中侍體上淸珍, 而家音種種所承而亦得勻禧否. 慰溸之至. 弟省候粗保, 而外無足放道耳. 就近間看得幾據佳山麗水而占了幾個處利之過乎?願聞耳. 鄙則近來經於宗事, 無由淂到於山水之間, 悶悶耳. 那時更有光接引期乎. 企企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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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노승현(盧承鉉)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盧承鉉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365 1939년 12월 25일, 종생 노승현이 노진영에게 노진영 자손의 휴학중 생활을 당부하고 광산에 관한 일의 진행을 어찌 할지 답해 줄 것을 청하는 내용의 서간. 1939년 12월 25일, 종생(宗生) 노승현(盧承鉉)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노진영 자손의 휴학 중 생활을 당부하고 광산에 관한 일의 진행을 어찌 할지 답해 줄 것을 청하는 내용의 서간이다. 상대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무사히 통근을 하고 있으며, 몸도 점차 회복되고 있다고 안부를 전하였다. 본론으로 상대에게 부탁할 일은 상대의 아들이 광주로 내려간 뒤에 특히 건강에 유의하면서 매일 규칙적인 생활을 계속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도록 할 것을 당부하였다. 공부를 하는 구체적인 방식을 제시해 주었는데, 아침 먹기 전 2시간은 매일 국어(國語)와 독서를 하고, 점심 먹기 전 2시간쯤은 매일 글씨 쓰는 것과 작문 창작 연습을 하고 책을 읽을 것, 저녁 먹기 전 2시간쯤은 학교규정에서 내는 숙제를 열심히 하도록 하고, 저녁 먹고 1시간 뒤부터 10시까지는 작문(作文) 수험준비서를 연구하고 암송할 것, 국어의 의미 연구 등에 전심전력 하라고 전했다. 이와 같은 매일의 일과를 충실히 하면 건강도 증진되고 공부에 재미도 붙을 것이라며, 낮의 휴가 시간에는 되도록 산과 들을 걸으며 산책하도록 할 것을 당부했다. 다음으로 자신이 서울에 올라갈 때 말씀하셨던 광산(鑛山) 일에 대해서는 휴가를 이용하여 활동해 볼 것이니 어떻게 일을 진행할지 편지로 알려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휘문(徽文) 측의 운동 등은 휴가를 이용하여 연락해 볼 것이고, 시세에 맞는 운동을 선택해 볼 것이니 안심하라고 했다. 결과는 훗날에 말씀드리겠다며 편지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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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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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41년 노경수(盧京壽)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盧京壽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41년 8월 15일, 종하 노경수가 노진영에게 소해정 운과 송해당 차운시를 보내는 내용으로 쓴 서간. 1941년 8월 15일, 종하(宗下) 노경수(盧京壽)가 노진영(盧軫永)에게 소해정운(蘇海亭韻)과 송해당차운시(松海堂次韻詩)를 보내는 내용으로 쓴 서간이다. 음력 8월의 날씨에 효성스런 상대가 잘 지내는지 안부를 물었다. 종하(宗下)인 자신은 여전히 못난 모습으로 지낸다고 하고, 여름에 광주부에서 만났을 때 급히 돌아온 것이 아직까지 안타깝다고 인사했다. 주요 내용은 소해정(蘇海亭) 운(韵)을 맞춘 시와, 송해당(松海堂) 차운시를 솜씨 없지만 지어 올린다며 부끄럽다고 했다. 돈독히 잘 지내는 사이에 경앙(景仰)하는 마음이 배가 된다며 고치면서 봐주시기를 바란다고 했다. 반춘(伴春)에 한번 찾아뵙겠다고 인사하고 편지를 마쳤다. 소해(蘇海)는 노진영의 아버지 노종룡(盧種龍, 1856~1940)의 호(號)이다. 송해당(松海堂)은 광산노씨(光山盧氏) 노문규가 은거하기 위해 원래는 1860년에 지어진 것을 1906년에 중수한 집이다. 전라남도 광주군 석제면(石提面) 월곡리(月谷里)에 있었다. 노문규(盧汶奎, 1850~1935)는 18세 때 모든 경사經史를 통독할 만큼 문장이 뛰어났고 향시에 여러 번 합격하였으나 대과에는 실패하였다. 한말에는 향약을 세우고 전라남도 사림의 추천으로 관찰부주사를 지냈으며 이듬해 6품인 승훈랑이 되었다. '송해(松海)'라는 의미는 그의 뜻이 솔처럼 곧고 그의 마음이 바다처럼 넓다는 뜻으로 붙인 것이다. 노문규의 둘째 아들 노석정은 경술국치를 슬퍼하여 항일 독립투쟁을 전개하다가 일본 헌병에게 체포되어 7년 옥고를 치른 당시의 우국치사이다. 정부는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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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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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갑자년 안효각(安孝珏) 혼서(婚書) 고문서-서간통고류-혼서 安孝珏 鄭生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갑자년 2월 6일에 신랑측인 안효각이 신부측인 정생원 댁에 보낸 혼서 갑자년 2월 6일에 신랑측인 안효각이 신부측인 정생원 댁에 보낸 혼서이다. 주요내용은 성첩(星帖)을 보낸다는 내용인데, 성첩은 사주단자를 말한다. 혼인하기로 결정하면 신랑측에서 사주와 예단을 신부 집에 보내는데 이를 납채(納采)라고 한다. 성첩, 즉 사주단자는 신랑의 생년월일시(生年月日時)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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