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錦城返駕已有日 而一未進叙 雖緣奔忙 而悚悶則切矣 刊所相分時 以拜直員後 卽書之意牢約 而直員高敞之返駕 在於去旬日故詳陳內容于後使理當 卽郵書 而計其日子 則想必書到於發 駕之後 故未果矣 豈意費了多日留連耶 甚悚甚悚 刊所事 旣詳聞於鄙從 玎枉▣(臨)矣 更謹詢秋末兄體上在省安重 溸仰且祝 弟一是奔走 而秋事今日畢役牟耕明當告功 則以後活勤似是任意矣 餘在日間拜晤 不備上 甲子九月卄四日 弟 高翊柱 二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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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년 김윤규(金潤奎) 혼서(婚書) 고문서-서간통고류-혼서 金潤奎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정해년에 신랑측 김윤규(金潤奎)가 신부측에 사주단자를 보내면서 속히 혼례를 치르자는 내용의 혼서 정해년 1월 15일에 신랑측인 김윤규(金潤奎)가 신부측에 보낸 혼서이다. 상대방이 혼인을 허락해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하면서 사주단자를 보내니 속히 혼례를 치르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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宣城后人金潤奎再拜伏惟孟春尊體動止萬重 仰溸區區之摯就親事旣承頷可私家之倖耳 玆修剛儀兼呈柱單從速成禮伏望伏惟尊察 謹再拜 上狀丁亥正月十五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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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辛亥求禮試初場 終場金宗彦 求禮 白東杓 長興千敬學 順天 趙仁夏 順天徐鎭成 鎭安 朴齊龍 茂朱鄭英昫 鎭安 李鍾敏 康津鄭觀旭 長水 玉思亨 求禮李亨泰 南原 盧鼎壽 南原張檉年 求禮 鄭學茂【會入】 光州金斗海 潭陽 孔載東 谷城鄭學鉉 龍潭 申慶休 光陽姜弘瑞 光陽 韓甲浩 光州朴丙震 玉果 房煥榮 南原申尙龜 順天 曺灝承 和順崔命九 南原 李基銓 寶城金白珪 和順 鄭東連 順天韓榮祚 谷城 張斗錫 南原徐啓煥 康津 崔榮錫 南原裴應䐹 龍潭 盧逢吉 南原禹尙在 南原 尹在學 南原安錫欽 泰仁 金錫源 順天金起鏞 潭陽 鄭陽黙 和順李鵬善 潭陽 金鴻源 南原蘇在大 南原 金應秀 玉果崔榮俊 南原 廉輟煥 寶城兪成煥 長水 金基輔 綾州史秉直 潭陽 趙泳學 南原南錫煦 順天 李鵬善 潭陽崔㠙 南原 孟文日 寶城金性九 南原 鄭燾 昌平崔必亨 玉果 李正華 樂安吳陣觀 寶城 李德錫 光陽趙成浩 求禮 金玉鉉 長水崔詳謙 玉果 金夢贇 康津安廷昌 順天 李基振 寶城高時言 昌平 姜斗會 長興鄭煥成 淳昌 朴正基 綾州崔東翼 南原 李中夏 長水孔泰東 谷城 崔仁得 南原朴在憙 康津 李一浩 南原梁時容 南原 李萬球 長水李來鎭 康津 高榮鎭 昌平文在質 順天 金榮魯 龍潭李鉉榮 靈岩 李春亨 康津金履恒 興陽 李明稷 長水李在泓 長水 宋和榮 同福郭宗泰 康津 趙英鎭 光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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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5년 장욱(張旭)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同福縣監 張旭 行縣監[着押] *周挾無改印, 1顆(墨印, 17.9×5.7)*1顆(6.5×6.9)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2722 1825년 8월에 전라도 동복현에서 호주 장욱에게 동년의 호적대장을 토대로 작성하여 발급해 준 등본 성격의 준호구 1825년(순조 25) 8월에 전라도 동복현(同福縣)에서 호주 장욱(張旭)에게 동년(同年)의 호적대장을 토대로 작성하여 발급해 준 등본 성격의 준호구이다. 장욱의 거주지는 내서면(內西面) 학당리(學堂里) 2호이다. 직역은 유학이고, 나이는 62세 갑신생(甲申生)이며, 본관은 흥덕(興德)이다. 그의 사조(四祖)는 아버지 학생 한신(漢臣), 할아버지 학생 효지(孝智), 증조 학생 치언(致彦), 외조(外祖) 학생 김진채(金振採)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장욱의 아내 이씨(李氏)는 나이 57세 기축생이고 본적은 전주이다. 김씨의 사조는 아버지 학생 필달(苾達), 할아버지 학생 갑훈(甲勳), 증조 성균생원(成均生員) 상회(相會), 외조 학생 이택후(李宅垕) 본관은 공주이다. 이외 가족으로 첫째 아들 유학 윤문(允文), 나이 32세 갑인생과 둘째 아들 유학 윤빈(允彬), 나이 28세 무오생이 있으며, 소유하고 있는 종으로 돌윤(突潤)이 있다. 문서에는 동복현감의 관인(官印)과 서압(署押), '주협무개인(周挾無改印)'이 찍혀있으며, 1822년 호적과 대조 확인을 마쳤다는 '임오호구상준인(壬午戶口相凖印)'이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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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文右文爲通諭事玉蘊荊山寶彩輝世蘭蔵幽谷淸香襲人仅者士固純孝篤行之美不求名譽然賁行卓蹟及於遠邇者豈不類於荊玉之輝也谷蘭之香歟側聞 貴郡士人鄭溵弼系出東萊藝文舘大提學兼應敎公諱承甫之十六代孫大護軍諱絪之十五代孫吏曺判書諱昇之十四代孫禮曺判書諱可宗之十三代孫吏曺判書賜號楓川諱守弘之十二代孫兵曺判書諱傑之十一代孫生員進士諱孝孫之十代孫參奉公諱確之九代孫甲山府使諱緝之八代孫而名節古家淸宦世族斯人也自在孩提天賦仁孝性率謹愼事親之道敬長之節自悟自警年甫十歲親老家貧全無菽水之供晝以耕耘夜以織梱僅得數畝之田克盡奉供之道一以養志其親沉病累年不離病側每日侍湯長夏扇枕允合於古孝子之宲蹟至於丁憂也泣血面墨哀毁逾制遽經襄禮三年廬墓朝夕哭哀望朔祭奠終始不懈年將七旬逐日省掃山磎成路每當先代與考妣之諱日前期三日行素食粥一遵禮制自少至老知分樂道勤儉節約守口如甁防意如城口不道惡言足不入亂方大矣顔之處巷賢㦲董之隱淮篤老年光不知公門遯名於山水之間付趣於松竹之節處士之志操君子之氣像齊家庭訓子侄敦宗族接賓客之諸節不失尺寸十室忠信一鄕善義復覩於斯人矣是以一道公議齊發聯名告稟 巡相之意玆以發文望須 僉執史齊聲同應之地千萬幸甚右敬通于古阜儒林 丁丑正月日 [印]全州首長舘多士發文 李重榮 朴時昌 柳弼養 宋佑鉉 蘇相述 任泰悅 李時浩 權鴻壽 鄭海文 姜昌永 吳永煥 李炳憲 金益聲 安基祥 尹興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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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년 전주장관도회소청(全州長館道會疏廳)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全州長館 道會疏廳 古阜鄕校 1顆(墨印, 7.4×5.4)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2989 1880년 4월 전주장관 도회소청 선비 27인이 고부향교에 효의 지극한 정성과 수신의 큰 근본을 실행한 정은필이 아직까지 포장 받지 못하고 있어 조정에 보고할 할 생각이므로 함께 동참하여 이 실행이 초야에서 사라지는 일이 없도록 해줄 것을 촉구한 통문 1880년(고종 17) 4월 전주장관 도회소청 선비 27인이 고부향교(古阜鄕校)에 효의 지극한 정성과 수신(守身)의 큰 근본을 실행한 정은필(鄭溵弼)이 아직까지 포장(褒獎) 받지 못하고 있어 조정에 보고할 할 생각이므로 함께 동참하여 이 실행(實行)이 초야(草野)에서 사라지는 일이 없도록 해줄 것을 촉구한 통문이다. 섬김 중 어버이를 섬김이 가장 크고, 지킴 중 몸을 지키는 것이 가장 큰데, 힘을 다해 어버이를 섬기는 것은 효의 지극한 정성이고, 마음을 다해 몸을 지키는 것은 지킴의 큰 근본이다. 얼핏 듣기로는 고부군 부안면(富安面)에 사는 처사 정은필은 동래(東萊)에서 계출(系出)한 즉 예문관 응교 승보(承甫)의 16대손, 대호군 인(絪)의 15대손, 이조판서 승(昇)의 14대손, 예조판서 가종(可宗)의 13대손, 이조판서로 임금께 하사받은 호 풍천(楓川) 수홍(守弘)의 12대손, 진사 임(任)의 11대손, 생진사 행통훈대부 효손(孝孫)의 10대손, 참봉 확(確)의 9대손, 갑산부사(甲山府使) 집(緝)의 8대손으로 우리나라의 거족이자 호남의 명망있는 문벌이다. 정은필은 나이 겨우 열 살 때 집이 가난하고 부모가 늙어 음식을 올릴 방법이 전혀 없자 땔나무하고 물고기를 잡았으며, 한결같이 어버이의 뜻을 봉양하였다. 갑자기 어버이가 병들자 온갖 방법으로 약물을 써서 온마음으로 치료하였다. 어버이 상을 당하여서는 몸을 상하며 슬피 우는 소리에 사방 이웃에서 조문하러 온 자들이 모두 감복하였다. 소식(素食)하고 죽을 먹으며 3년 동안 여묘살이를 하였으며, 기일 3일 전부터 목욕재계하면서 장례 때처럼 슬프게 통곡하였으니 효의 지극한 정성이다. 일흔 살에 두문불출하며 은둔하여 명예를 구하지 않았고, 말과 생각을 굳게 제재하였으니 지킴의 큰 근본이다. 말은 충성스럽고 행동은 독실하였으며, 집안을 다스리고 자제를 가르치는 절도는 당세 은거하는 선비이다. 이 때문에 여러 차례 향도(鄕道)의 천망(薦望)에 올랐고, 예조에서 계사를 올렸으나 아직까지 성상의 은택을 입지 못하고 있으니 공의(公議)의 흠전(欠典)이다. 이에 소청(䟽廳)에서 사론(士論)의 한목소리로 조정에 보고할 할 생각으로 통문을 보내, 이와같은 실행(實行)이 초야(草野)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해줄 것을 촉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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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歧面農所幕戶籍單子 一統二戶新戶幼學張漢翊年五十三乙巳 本興德父同知中樞府事 孝智祖學生 致彦曾祖通政大夫 雲衢外祖通德郞許世臣 本金海妻金氏年三十九己未 籍金海父幼學 聲昌祖學生 萬赫曾祖學生 汝器外祖學生徐必恒 本利川賤口仰役婢連丹年五十四甲辰丁酉自首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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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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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乙丑二月初十日 綾州監榜目 上試任浩直一等三人 終一等三人李炳英 扶安 四 宋宰浩 光州金匡裕 康津 五 李泰孝 潭陽 三趙昌學 南原 八 李涉 興德 二二等七人 二等七人蘇泰永 南原 申龜河 潭陽金炳憲 扶安 權永錫 淳昌金敬厚 金溝 二 丁以鉉 光州李容燁 谷城 五 金載憲 玉果 二盧承壽 長水 一 金箕馥 興陽宋襆祜 興陽 三 金大炫 古阜高載謙 光州 七 鄭在炳 昌平三等二十五人 三等三十五人李志容 寶城 二 魯洙學 靈光李震爔 淳昌 四 朴仁浩 光州黃元? 光陽 四 金晩載 茂朱金益洙 康津 四 申載奎 昌平田慶爀 泰仁 一 宣秉文 谷城權喆魯 茂朱 三 朴東淸 光州宋兢勉 同福 一 李貞秀 龍潭 二金觀泰 金堤 二 柳廷植 潭陽具鍾恊 綾州 三 鄭民濟 茂朱金元植 金堤 李泰運 求禮金鍾繪 靈光 三 羅基翊 順天 一金箕謨 光陽 李實洙 興德趙永鐸 南原 任羲鼎 龍潭張基烋 金溝 李鎭濠 康津鄭桂朝 靈光 崔萬采 康津安秉祜 谷城 金基模 光陽鄭海勉 昌平 五 張元植 康津朴勝曄 靈岩 一 金亨傑【童】 光陽李畿運 求禮 二 申亨求 淳昌張復秀 昌平 朴載浩 南原丁尙圭 南原 任兢常 南原金聲義 鎭安 二 宋廷珏 井邑金容晛 光州 金馥煥 長城 一吳容翰 鎭安 申泰模【吏】 興陽吳永桓 雲峯 一 羅龍集 玉果文人燮 光州 權用浩 光州李希燁【七十】 谷城 任守柱【八十】 和順 一辛鍾斗 扶安 柳奎成 淳昌張齊澤 昌平 尹觀夏 海南 一李觀炫 古阜 二 朴載璜 錦山 一金秀學 南原 朴泰夏 扶安安錫洪 井邑 二 安璛 綾州金仁錫 南原 李秉良 谷城徐永魯【七十五】 全州 一 吳思行【九十一】 綾州任泰正【七十三】 長興 一 安杙【八十四】 寶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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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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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1866년 광주감(光州監) 방목(榜目) 고문서-치부기록류-방목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66년 8월에 광주(光州)에서 설행된 감시(監試)의 합격자 방목 1866년(고종3) 8월에 광주(光州)에서 설행된 감시(監試)의 합격자 방목이다. 상시관(上試官)은 정현유(鄭顯裕)이다. 초장(初場)과 종장(終場) 모두 각각 1등 3인, 2등 7인, 3등 35인을 선발하였다. 초장은 부(賦)를 시험하였고, 시제(試題)는 "국가천만세무궁복(國家千萬世無窮福)이고, 종장은 시(詩)를 시험하였고, 시제는 "축원하오니, 성인께서 장수하고 부유하고 아들 많이 두게 하소서.[請祝聖人, 使聖人壽富多男子,]라는 시의 뜻에 대해 짓는 것이었다. 이 시는 《장자(莊子)》 〈천지(天地)〉에 나오는 구절이다. 합격자의 성명과 거주지를 나열하여 적었다. 병인년을 1866년으로 추정한 것은 종장 2등 합격자 가운데 장성(長城) 기양연(奇陽衍 1827~1895)의 생몰년으로도 가능하고, 종장 1등 3인 가운데 김제(金堤)에 거주하는 이양호(李養浩 1852~?)를 통해서도 가능하다. 이양현은 다음 해인 1867년 정묘년 식년시에서 생원시에 합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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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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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1723년 구상봉(具相鳳) 등 상서(上書) 고문서-소차계장류-상서 具相鳳 綾州牧使 使<押> □…□(6.5×6.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23년(계묘년) 11월에 대곡리 백성들이 연명하여 배이인 형제의 효행에 대해 포상을 내리게끔 조치해 달라고 능주목사에게 요청하는 상서. 1723년(계묘년) 11월에 綾州 大谷面 大谷里에 사는 具相鳳, 金始五, 洪彦宗 등 20명이 연명하여 牧使에게 올린 上書이다. 상서를 올려 요청하는 사항은 西一面 大谷里에 사는 裵以仁 네 형제가 효성이 지극하니 이들이 褒賞을 받을 수 있게 조치해 달라는 것이다. 상서 본문 서두에서 먼저 국가가 부모에게 효도한 백성을 포상하는 이유에 대하여, "누가 부모가 없어서 부모에게 효를 하지 않겠습니까. 이는 예로부터 거의 없는 일입니다. 부모에게 효를 하는 것은 진실로 하늘과 감응하는 天性이고 사람이 행하는 도리의 大綱입니다. 이를 표창하여 상을 주고 아름다움을 정려하는 일은 국가가 항상 해오던 규정이고, 이를 뭇 백성에게 베풂으로써 맑은 교화가 행하게 됩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어서 "하지만 특별히 포상받아야 하는 지극한 효자가 表揚하는 은전을 받지 못한다면, 士林의 公議가 애석해할 뿐만 아니라 실로 태평성대의 흠이 되는 일입니다."라고 하며 효도로 포상받을 사람이 빠지어 있음을 언급하고 있다. 이어서 그 포상 받을 사람의 인적사항과 효행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다. "본 里의 士人인 裵以仁은 太師 武烈公, 太師 密直公, 개국 원훈 貞節公의 후손이며, 효행으로 추천받아 참봉을 지낸 裵允德의 5세손입니다. 그의 어머니 光山 金氏는 임진왜란 공신인 忠壯公의 후손이고, 경신년생으로 올해 향년이 104세입니다. 말과 정신이 조금도 흐려지지 않은 채로 부여된 수명을 오래도록 보전하며 게다가 몸에 탈도 없으니, 예부터 희귀한 일이라 지금까지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 이 어찌 고금의 매우 드문 어르신이 아니겠습니까. 그 아들인 배이인은 나이가 90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집안은 비록 가난하지만 그 동생인 裵以發, 裵以赫, 裵以斗와 더불어 정성을 다해 봉양하며, 어렸을 때부터 늙을 때까지 昏定晨省의 예를 조금도 게을리 하지 않았고, 아침 저녁으로 맛있는 음식을 바치기를 입맛에 꼭 맞게 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은 마음에서 우러나는 봉양과 곡진한 용모와 표정으로 그 도리는 끝까지 다했습니다. 그 부모님을 기쁘게 하고자 온갖 방도를 다함이 실로 王延의 色養1)1) 왕연(王延, ?~318)의 색양(色養) : 왕연은 중국 前趙 시대의 효자이다. 그는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의 얼굴 빛을 헤아려 지극히 모셨고, 겨울철에 계모가 잉어를 먹고 싶어하자, 얼음을 깨고 잡아다 바쳤다는 일화가 있다. 이이가 지은 『擊蒙要訣』에 "왕연이 추운 겨울에 몸에 걸칠 옷도 없으면서, 어버이께 맛있는 음식을 극진히 마련해 드렸음을 늘 생각하라.[每念王延 隆冬盛寒 體無全衣 而親極滋味]"라는 구절이 있다. 보다 빼어났고, 효성은 老萊子가 병아리를 가지고 노는 것2)2) 노자(老子)의 농추(弄雛) : 노자는 춘추시대 초나라의 老萊子를 가리키는데, 『小學』에 그의 효행이 실려 있다. 그는 나이 70살이 되어서도 오색 옷을 입고 어린아이처럼 재롱을 부리고, 일부러 마루에서 넘어저 아이처럼 울기도 하고 부모님 옆에서 병아리를 가지고 놀면서 부모의 마음을 즐겁게 해드렸다고 한다. 보다 더했습니다. 김씨가 104세를 향년하고 있는 것은 천성이고 인성에 당연함이어서, 효성은 하늘에 감응하고 효성은 誠에 감응하였습니다. 그 모친의 장수가 끝이 없는 것은 전부 그 자식들이 효성으로 봉양함에 말미암았습니다. 이 어찌 고금에 매우 드물게 듣는 효성이 아니겠습니까." 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裵以仁 형제의 효성을 강조하고, 이어서 "저희는 이웃에 같이 살면서 이미 오래도록 듣고 보면서 흠탄함을 이기지 못하고 있기에, 매번 대궐에 진달하려 하였습니다."라고 하고, 이어서 4명의 효성과 우애에 대해 임금께 보고함으로써 褒賞을 받은 은전을 입을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이에 대해 능주목사는 처결을 25일에 내리길, "듣자 하니 심히 가상하다."라고 하였다. 이는 단지 가상하다고만 처결을 내리고, 상부에 보고하는 조치를 어떻게 하겠다는 언급은 하지 않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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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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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1730년 박도한(朴道漢) 등 상서(上書) 고문서-소차계장류-상서 朴道漢 全羅道觀察使 巡使<押>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30년(경술년) 9월에 능주 고을의 백성들이 연명하여 배이인과 남평 문씨의 효행이 포상받을 수 있도록 조치를 해달라고 관찰사에게 요청한 상서. 1730년(경술년) 9월에 朴道漢, 尹再衡, 金遇喆 등 25명이 연명하여 전라감영에 올린 上書이다. 상서를 올려 요청하는 사항은 裵以仁과 그의 弟嫂인 南平文氏의 효성이 지극하니 이들이 褒賞을 받을 수 있게 조치해 달라는 것이다. 상서 본문 서두에서 먼저 국가가 효도에 모범을 보인 백성을 포상하는데 힘써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 "孝는 백 가지 행실의 근원이니 萬代 동안 사그라질 수 없는 법입니다. 그리하여 하늘은 반드시 이에 감응하여 얼음 물고기와 눈 속 죽순의 징험이 있는 것이고, 국가는 반드시 이를 포상하여 旌閭하고 贈職하는 법이 있는 것입니다. 하물며 한집안에서 두 효행의 모범이 제수씨와 아제비가 함께 나와서 그 부모를 봉양함에 있어서겠습니까."라고 말하고 있다. 이어서 그 포상 받을 사람의 인적사항과 효행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다. "한 집안의 두 효행이란, 곧 고을의 士人인 裵以仁과 그 弟嫂를 말합니다. 배이인은 太師 武烈公 裵玄慶과 密直公 裵廷芝 및 개국 원훈 貞節公 裵克廉의 후손이며, 효행으로 추천받아 참봉을 지낸 裵允德의 5세손입니다. 그리고 열녀로서 旌閭를 받은 金氏는 그의 고조모이니, 그 집안에서 孝烈은 역시 대대로 전해지는 유풍입니다. 하지만 배이인의 집은 심히 가난했습니다. 이에 그 제수씨 文氏와 함께 부모를 봉양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품을 팔아 쌀을 지고 나름으로써 맛있는 음식을 대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항상 옷을 온전히 갖추어 입지 못하면서도 부모님께는 좋은 음식이 끊이지 않게 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향년 84세에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향년 105세에 돌아가셨습니다. 고을의 이웃은 모두 그 아들과 며느리의 지극한 효도를 칭송하며 부모의 장수는 이 때문이라고 말하였습니다. 하루는 그 어머니의 병이 심해져서 의원이 말하길 산삼을 써볼만 하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배이인은 동생 裵以潑과 함께 산삼을 구하기 위해 깊은 산을 두루 돌아다녔는데, 수일이 되어도 끝내 얻을 수 없었습니다. 이에 울면서 돌아오는 길에 나무 아래에서 휴식을 취하는데 갑자기 늙은 산삼이 보였습니다. 이에 바위 아래로 숙여 캐다가 다려서 드시게 했습니다. 이로 인해 묵은 병이 모두 나을 수 있었고 피부와 살결이 풍성해졌습니다. 이는 실로 하늘이 감응한 결과이니 얼음 물고기와 눈 속 죽순을 얻은 미담과 견줄만합니다. 그 弟嫂인 文氏는 남평 문씨인데, 江城君 三憂堂1)1) 江城君 三憂堂 : 문익점(文益漸 1329~1398)을 가리킨다. 문익점은 목화씨를 고려에 도입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왜구가 창궐하는 와중에 피난을 가지 않고 홀로 부모님 산소를 지켜 왜구를 감동시킨 일화가 알려져 있다. 문익점은 이로 인해 정려를 받았고 그가 살던 마을인 산청의 효자리에는 문익점 효자비가 남아 있다고 한다. 의 후예입니다. 본성이 慈孝하여 몸소 나물을 캐고 물을 길어 시부모를 봉양했습니다. 그리고 몸을 편안하게 해드릴 물건과 입맛에 맞는 음식을 힘써 구하여 반드시 바쳤으니, 이로 인해 시어머니가 105살의 나이에 이도록 병이 없을 수 있었습니다. 하루는 시어머니의 병이 심해 百味에 입 맛을 모두 잃어버려서 음식 봉양이 망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갑자기 야생 메추라기가 부엌에 날아 들어왔고, 문씨가 이를 구워다가 드림으로서 병중에 미음을 먹을 생각이 나게 해드렸습니다. 이 어찌 하늘이 감응한 결과가 아니겠습니까. 이는 실로 崔山南의 집안에서 시부모에게 젖을 먹인 효성2)2) 崔山南 : 『小學』 善行篇에 최산남의 증조모인 長孫夫人이 시어머니에게 젖을 먹인 일화가 실려 있다. 과 맞먹습니다. 이 때문에 문씨의 효성이 이웃 마을에 알려져 아이들이 노래를 지어 부른다고 합니다."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裵以仁과 그의 동생인 裵以潑의 처 文氏 효성을 강조하고, 이어서 "저희는 같은 고을에 살면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기에 공경하고 칭찬하는 마음을 이길 수 없습니다."라고 하고, 이어서 이들이 褒賞을 받은 은전을 입을 수 있도록 임금께 轉報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이에 대해 관찰사는 처결을 4일에 내리길, "들으니 극히 가상하다. 하지만 장계를 올려 보고하는 것은 체면이 무거우니 갑자기 명령할 수는 없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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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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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간찰(簡札) 초(抄)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재종형(再從兄)에게 보내려고 쓴 간찰의 일부 재종형(再從兄)에게 보내려고 쓴 간찰의 인사말 부분이다. 재종형의 안부가 강녕하고 집안 사람들 모두 평안한지 묻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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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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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伏未審日來再從兄主氣體候康寧 少大各節俱在平泰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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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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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간찰(簡札) 초(抄) 3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누군가에게 보내기 위해 쓰다가 중단한 간찰의 일부 누군가에게 보내기 위해 쓰다가 중단한 간찰의 일부이다. 다른 의견이 발생해서 서로 아는 사이에 낯을 붉혔고, 해당 목재의 가격도 필시 가격이 높아질 우려가 있다고 하였는데,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가격의 고하는 따질 것 없다고 하는 내용이고, 간찰을 더 이상 쓰지 않고 중단하였다. 문서의 좌측 하단에는 글자 연습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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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原儒生安錫元李基忠金禮遠等謹齋沐再拜上書于繡衣閤下伏以孝烈二字棟標宇宙綱紀人彛是以 朝有旌褒之典士有闡揚之道一人之身一行猶難況兼二行乎本邑王之田居士人李玹凡卽 璿源華胃孝寧大君十四世孫瑞原君十三世孫高林君十二世孫柒山君十一世孫壺隱公十世孫也世世家行孝友稱道一鄕所共知其長子鍾道[譜會{各+日}]娶於淸州韓氏啓倫之女其三子鍾益娶於廣州李氏尙珣之女也而孝哉是兩夫人烈哉是兩夫人在家之時養其父母一不踰矩順志焉供旨焉靡不庸極至於于歸之後事其舅姑小不忒於所生之父母去己巳年分鍾道偶然得病至於孔劇則其妻韓氏祝天願代之誠甞糞試差之節孰不感欽至於壽盡之境割指注血以濟旣絶之命於五日雖是天命有限果非至誠之所感乎其三子鍾益又得重症呻吟數月其妻李氏供藥之誠奉饋之節亦如韓氏之至盛〖誠〗而殞絶之境斷指注口更甦一旬而終一家二烈古今罕聞男子强膓者實是難行以夫人柔性能立此節令人驚歎者久矣至於凡事猶不掩匿況此卓異烈行安可不揄揚乎生等皆有秉彝之性聞之莫不欽歎見者爲之流涕故玆敢齊籲於按廉仁政之下矝其一門雙烈之卓行 上達 天陛俾蒙㫌褒之恩無至泯沒之地謹冐昧以 陳行下向敎是事繡衣閤下 處分暗行御史[署押]戊寅二月 日安宗濂 金漢卓 盧鼎壽 金礪啇 崔遇祥 許漍 安秉浩 金弘術 許表 金處啇 安時經 崔錫泰 柳煥涉 李會澈 洪宜爕 金文述 韓裕權 崔秉璣 金轍遠 李恒林 朴奎采 金鳴述 盧鳳儀 房賢相 梁在琪 金奎烈 李圭鐸 張喆淳 吳在善 張時華 房煥瑛 宋凞睦 安宗河 李承愚 趙鍾豊 蘇秉柱 陳錫在 尹正誼 丁庠圭 房煥星 權芝壽 鄭載河 李奎煥 沈鎭恒 朴一鉉 金龍柱 李圭寶 等〈題辭〉一門雙烈聞極嘉尙褒揚之典當益採公議向事卄八日[馬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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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 최정구(崔玎九) 등 상서(上書)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崔玎九 行官[着押] 5顆(7.2×7.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3124 1897년 11월에 전라도 남원에 사는 유학 최정구·안석문 등 유림 49인이 효자 이동우의 지극한 행실 및 열부 청주 한씨와 광주 이씨의 실적을 임금께 보고하여 정려 포상의 은전을 입을 수 있도록 해줄 것을 관에 청원한 상서 1897년(광무 1) 11월에 전라도 남원에 사는 유학 최정구·안석문(安錫文) 등 49인이 효자 이동우(李棟宇)의 지극한 행실 및 열부(烈婦) 청주 한씨(淸州韓氏)와 광주 이씨(廣州李氏)의 실적(實蹟)을 임금께 보고하여 정려 포상의 은전을 입을 수 있도록 해줄 것을 관에 청원한 상서이다. 왕지전방에 거주하고 있는 선비 이동우는 효령대군 보(補)의 15세손이자 호은공(壺隱公) 수(洙)의 11세손으로, 고관과 충효로 대대로 그 미덕을 계승하였다. 이동우의 어머니 청주 한씨는 시부모님을 모시면서 그 뜻을 봉양하고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는 효성을 극진히 하였으며, 남편이 병을 앓을 때 똥을 맛보고 손가락을 자르는 열행(烈行)을 이루었다. 이동우의 숙모인 광주 이씨 또한 효성의 절도가 한씨와 같았으며, 남편이 병에 걸렸을 때에 손가락을 잘라 남편 입에 피를 흘려 열흘 동안 회생시켰다. 이에 고을에서 여러 차례 청원하여 암행어사의 판결과 감영의 찬탄이 앞뒤로 있었으므로 속히 임금의 포상을 입었어야 하지만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공의(公議)가 억울해 하는 점이다. 이동우는 이러한 효열의 후사로, 태어난 지 3일만에 부친상을 당하여 홀어머니를 봉양하면서 아침에는 농사짓고 저녁에는 공부하여 가정의 가르침을 계승하였으며, 겨울에는 온돌을 따뜻하게 하고 여름에는 시원하게 해드리면서 모친의 안부를 안락하게 하였다. 모친이 병에 걸리자 단을 만들어 하늘에 자신이 대신 아프게 해달라고 빌었으며, 손가락을 잘라 쏟은 피를 모친 입에 넣어 회생시켰다. 모친상에는 달을 넘겨 집 가까운 5리 즈음에 장사지내고, 날씨에 상관하지 않고 한번도 빠짐없이 묘에 조석으로 문안하였으며, 거적자리를 깔고 흙덩어리를 베고 자면서 상복을 벗지 않았다. 그는 부모를 언급할 때마다 먼저 눈물을 줄줄 흘렸으니, 이 일은 이웃에서 목격한 것이고, 원근의 사람들이 전파한 소문이다. 단효(單孝)와 단열(單烈)도 세상에 드문 일인데 한 효자와 두 열부가 모두 한 집에서 나왔으니 참으로 그런 어머니 밑에 그런 아들이 있다고 할만하다. 이에 최정구 등은 이동우와 한 고을에 살고 있으면서 침묵할 수 없어, 이동우의 지극한 행실 및 한씨와 이씨의 실적(實蹟)을 관에 아뢰어 '사실을 취하여 부(府)에 보고해 임금께 계달(啓達)하여 한 효자와 두 열부에게 특별히 정포(㫌褒)의 은전을 내려 묻혀 사라지는 일이 없도록 해줄 것'을 청원하였다. 이 상서를 접수한 행관은 11월 18일에 '효열은 모두 한 가문을 빛내는 것이니 영지(靈芝)와 예천(醴泉)은 반드시 근원이 있다는 것을 알겠다. 듣고서 매우 흠탄하였으니 의당 표창이 있어야 하나 계문(啓聞)은 일의 체모가 중대하므로 갑자기 논의하기 어려운 점이 있으니 우선 회답을 기다릴 것'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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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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境內化民幼學崔玎九安錫文盧鳳儀等謹齋沐再拜上書于城主閤下伏以孝烈三綱以之而立五倫以之而叙故 國有㫌褒之典士有闡善揚樹之論者固宜矣王之田坊居士人李棟宇卽孝寧大君諱補之十五世孫壺隱公諱洙之十一世孫也以簪纓忠孝世濟其美而其母親淸州韓氏侍舅姑極養志悅口之孝事君子致甞糞割指之烈其叔母廣州李氏奉親之節一如韓氏而夫病斷指注口回甦一旬苟非天出之誠而然乎坊許鄕禀積成券? 繡題 營褒相繼前後而宜亟蒙 天褒尙此湮泯豈非公議之抑欝者哉斯人也以君孝烈之嗣夙遭憫㐫懸弧三日奄哭失怙只奉偏慈朝耕暮讀以承庭訓冬溫夏淸以安親候及其有癠設壇祝天請以身代斷指注血甦焉永訣踰月而葬近五里許雖祈寒暑雨晨昏定省一無停廢拜處亦穿寢苫枕塊不脫巾絰語及父母淚先泫然此是隣里之所目覩遠近之所播聞也單孝單烈世所罕有而一孝䨇烈并出一家眞可謂有是母有是子也民等同在一鄕不可含嘿故略擧斯人之至行而并以韓氏李氏實蹟聯帖齊聲仰籲伏願 摭實報 府 啓達 天陛使此一孝雙烈 特蒙 㫌褒之典而不至泯沒之地彜倫幸甚風化幸甚毋任祈懇之至城主閤下 處分行官[署押]丁酉十一月 日幼學李會文 吳永善 金時龍 安秉鉉 崔炳武 金正淑 進士金在淵 幼學黃璹 尹琦燮 金燦述 許極 梁基黙 吳匡烈 韓容肅 李秉玟 盧義鉉 崔漢宇 朴珓鉉 柳時潤 林湧圭 盧一源 申台秀 陳秉澈 蘇東燮 張漢淳 房煥駐 尹珩鉉 李憲相 韓鐸履 晉台旭 邢錫璜 張柄禧 韓泰錫 李秉震 姜舜馨 邊漢植 尹秉鏞 鄭仁圭 李敏相 金澮經 宋圭伯 高在星 李彰鎬 洪鍾壽 金兌中 鄭雲錫〈題辭〉曰孝曰烈倂華一門是知靈芝醴泉必有根源聞甚欽歎宜有褒獎〈背面〉而至若 啓聞一欵事體重大有難遽議姑竢下回向事十八日[官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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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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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1854년 창평식(昌平式) 방목(榜目) 고문서-치부기록류-방목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54년에 창평(昌平)에서 설행된 식년시 합격자의 방목 1854년에 창평(昌平)에서 설행된 식년시 합격자의 방목이다. 상시관(上試官)은 김세호(金世鎬)이고, 과목은 부(賦), 의(義), 시(詩)이다. 각 과목별로 나뉘어 합격자의 성명과 거주지를 기재하였다. 부 합격자는 1인, 시 합격자는 44인, 의 합격자는 45인이다. 부 합격자인 이지용(李志容 1825~1891)은 41세 때인 1865년(고종2) 식년시에서 진사 3등 59위로 합격한다. 자(字)는 상언(尙彦), 호(號)는 소송(小松)이고, 본관은 성주(星州), 거주지는 보성(寶城)이다. 이 문서의 연대는 이지용의 생몰년으로 추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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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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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道內金溝縣儒林幼學宋喆鑑等謹齋沐再拜上書于巡相閤下伏以㫌忠褒孝 朝家之盛典闡幽掦美士林之公議也人有出天之孝希卋之行而泯沒無稱則其在褒掦之道豈非欠事耶本縣士人郭永春即正懿公諱鏡之後淸白吏諱安邦之十四卋孫也既有異禀天性純粹眞有古家之風資禀誠慤能盡孝之道其老母累月搆疾百藥無效將至殞絶裂脂垂口有頃回甦豈非之誠孝所及乎又是其老父宿病累年長在床褥轉側随人不自飮食極誠孝養不懈不怠晝夜侍側暫不離席一心孝養其誠如一其他取養之方甘旨之供無所不用其極而一無違逆盡其子職與其弟永福友愛甚篤盡其在我之道衣食同之別無彼我則亦豈非誠孝中流出者也鄕隣莫不稱歎曰郭孝子之孝友古人亦莫過矣其父母常曰孝㦲吾兒孝㦲吾兒曾氏之養旨老萊之孝奉亦莫愧矣生等居在一鄕素所觀感不可含嘿故玆敢齊聲仰籲伏乞閤下今當式抄慱採公議以達天陛以爲褒掦之地千萬屛營祈懇巡相 閤下 處分都巡使[署押]癸巳八月 日儒林幼學宋喆鑑 張友一 金淑 崔光岳 宋承源 李昉 金昌鉉 張友仁 溫鳳元 金在鉉 崔錫珪 吳致瓛 李晩 宋永源 李魯赫 溫德基 等〈題辭〉從當慱採公議向事初九日[官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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