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碧月團 蟾蜍一夜離月窟爬沙化作碧山骨老兎忽失千年騎搜覓雲間空出沒嫦娥孤棲誰與隣半面瘦生太怳惚漠漠平昌山水東百丈光怪流閃忽踏天割雲匠如神磨刀霍霍勞剞劂玉德金聲几案間玄雲碧潭輝光發一片陰鑑不用錢小囱書幌坐唐突耿照千古如在目往跡方冊相對越哉生明也水一滴旁死魄焉墨半笏四時輝暎看不厭政是蒼蒼一團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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蓮葉龜 大藕如船掩璚池其下曳尾綠雲龜山東老人抱得之百年煙霞床足支入去床空龜化石一片預拂靑山湄平安驛使有消息保護如花來不遲十眉畵出成都手橫雲却月鬪新奇氷蠶吐繭抽銀忽萬縷出沒傲松脂南坡居士服欲花滿簾波紋綠漪漪鍊丹餘沙點易床尖奴低首硯田治大市玩筴招季主後天叙疇揖箕師萬殊一本消長理有誰能悟爾獨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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卷之十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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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五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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歸家 朦朧夜月之下櫓小舟涉月峰前川家奴十餘健丁僊輿來迎纖雨濃霧之間踏汗泥超危澗二十里間關到家卽秋七月十九日丙辰早朝也南坡居士姿逍遙水國乾坤路一條鞍馬驅馳今幾日無端髀肉頓然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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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十三日 ○아침 먹기 전에 자윤(子允)과 계성사(啓聖祠)35)로 가서 김팔주(金八柱)를 만나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작별하고, 경모궁(景慕宮)36)으로 내려와 수문장(守門將) 장인원(張仁源)이 출번(出番, 당직 근무를 마치고 나옴)했는지를 물으니 아침 일찍 출번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곧바로 파천동(波川洞) 그의 집으로 갔는데, 밥을 먹고 출타한 터라 만나지 못해 몹시 아쉬웠다. 이 사람은 홍원(洪原)37) 사람이다. 무침교(無沈橋)38)의 진사 송현재(宋顯載) 집에 찾아갔는데, 마침 출타하여 만나지 못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회동의 송 장성을 만나 전주 북문의 송민수 서간에 답장을 받고자 한다고 말하니, 공교롭게 몸이 아파서 답장을 쓰지 못했다고 하였다. 그대로 작별하였다. 송지순의 집으로 내려와 작별한 뒤에 낙동(洛洞)의 구백(舊伯) 이광문 집으로 와, 잠시 만나고 나서 작별하였다. 용동으로 오니 자윤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개간소(開刊所)의 여러 사람과 작별하고 주인집으로 돌아왔다.아침을 먹은 뒤에 정동으로 가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는 길에 확교(確橋)39)의 송 판서 집에 들렀으나, 송 판서가 출타하여 작별할 수 없었다. 다만 그 아들 송지학(宋持學)과 작별하고 나와 주인집으로 왔다. 차동(車洞)40)으로 가서 민 석사와 작별하고 오니 공서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에 정동의 석사 이혜길이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날이 저무는 바람에 출발하지 못하고 그대로 머물렀다. 그러므로 저녁을 먹고 난 뒤 정동에 와서 묵으라고 간절히 부탁하고 갔다. 저녁을 먹은 후 정동으로 갔다. 밤에 비가 내렸다. ○朝前, 與子允往啓聖祠, 見金八柱, 移時談話。 仍爲作別, 下來景慕宮, 問張守門將仁源出番與否, 則早朝出番云。 故直向波川洞其家, 則食後出他, 故仍爲不見, 悵悵。 此人卽洪原人也。 尋往無沈橋宋進士顯載家, 則適出他不見, 來路入晦洞見宋長城, 以完北宋民洙書簡受答爲言, 則適以身病不爲修答云。 仍爲作別。 下來宋持淳家, 作別後, 來洛洞舊伯李光文家, 暫見後, 仍爲作別。 而來龍洞, 則子允來待矣。 與開刊所諸人作別, 來主人家。 朝飯後, 往貞洞暫話。 來入確橋宋判書家, 判書適出他, 不得作別。 只與其子持學作別, 出來主人家。 往車洞與閔碩士, 作別而來, 則公瑞來待矣。 午後貞洞李碩士惠吉來訪談話, 以日暮之致, 不得發程, 仍留。 故夕飯後, 來留貞洞之意, 懇托而去。 夕食後, 往貞洞。 夜雨。 계성사(啓聖祠) 서울시 문묘(文廟) 안에 공자(孔子) 등 다섯 성현의 아버지를 모신 사당이다. 경모궁(景慕宮) 서울시 종로구 창덕궁에 있는 사도세자(思悼世子)와 그의 비(妃) 헌경왕후(獻敬王后)의 사당이다. '경모전(景慕殿)'이라고도 했다 홍원(洪原) 함경남도(咸鏡南道)의 남부해안 중앙에 위치하는 군이다. 무침교(無沈橋) 서울시 중구 예관동과 충무로5가 부근에 있던 다리이다. 청계천의 지류인 묵사동천(墨寺洞川)에 있던 다리로 '물에 잠기지 않는 다리'라는 의미이다. 김정호의 <대동지지>와 <수선총도> 및 <슈션전도>에는 이 다리 이름이 '상무침교'로 표기되어 있다. 따라서 무침교와 상무침교를 혼용해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일명 '무침다리' 혹은 무침교를 줄여서 '침교'라고도 불렀다. 확교(確橋) 서울시 중구 서소문동과 신창동(새창골) 북쪽에 있던 다리이다. 1966년 발간된 ≪한국지명총람≫에 의하면 이 고을에 학다리가 있어 마을 이름이 학교동(鶴橋洞)이 되었다고 하며, 일명 확교(確橋)라고도 불렀다. 차동(車洞) 중구 의주로1가ㆍ순화동에 걸쳐 있던 마을로서, 수렛골을 한자명으로 표기한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추모동'이라고도 하였는데, 이는 조선 숙종의 계비 인현왕후가 태어난 터에 비석을 세우고 그를 추모했던 데서 붙여진 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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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初十日 ○아침 전에 정동으로 가서 잠시 얘기를 나누고 돌아왔다. 밥을 먹은 뒤 용동으로 가서 종일 수정 문적을 보고 왔다. ○朝前, 往貞洞, 暫話而來。 食後, 往龍洞, 終日見修整文蹟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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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十一日 ○아침 전에 백운동(白雲洞)30)에 갔는데, 사서(司書) 이인필(李寅弼)은 광주(廣州)로 출타하여 그 조카 이정하(李正夏)하고만 작별하였다. 호정동(瓠井洞)으로 내려와 김병기(金秉耆)를 조문하고, 오면서 창정동(昌井洞)의 권중건(權中建) 집에 들러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돌아오는 길에 삼청동(三淸洞)31)에 들러 이병하(李秉夏) 숙질(叔姪)을 조문하였다. 오면서 장생전교(長生殿橋)32)의 생원 이장구(李章九) 집에 들러 《장릉사보(莊陵史補)》33)를 보고, 충강공(忠剛公)34) 사적(事蹟)을 베껴서 왔다. 밥을 먹은 뒤 용동에 갔다가 오후에 돌아왔다. ○朝前, 往白雲洞, 則李司書寅弼出去廣州, 只與其姪正夏作別。 下來瓠井洞吊金秉耆, 來入昌井洞權中建家暫話。 來路入三淸洞, 吊李秉夏叔侄。 來入長生殿橋李生員章九家, 見《莊陵史譜1)》, 謄忠剛公事蹟而來。 食後, 往龍洞, 午後還來。 백운동(白雲洞) 서울시 종로구 청운동에 있던 마을로서, 항상 흰 구름이 떠 있는 명승지인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삼청동(三淸洞) 서울시 종로구의 중앙부에 있는 동이다. 지명은 도교의 태청(太淸)ㆍ상청(上淸)ㆍ옥청(玉淸)의 3위(位)를 모신 삼청전(三淸殿)이 있었던 데서 유래하였다. 장생전교(長生殿橋) 서울시 종로구 연건동과 이화동 사이에 있던 다리이다. 조선 시대 궁중에서 사람이 죽었을 때 필요한 관곽(棺槨)의 제작과 수선을 담당하던 관청인 장생전(長生殿) 앞에 이 다리가 놓여 있었으므로 '장생전 다리'라고 불렀다. 장경교(長慶橋), 장교(長橋) 등으로도 불렀다. 장릉사보(莊陵史補) 1796년(정조 20) 왕명으로 단종에 관한 사적을 모아 편찬한 책이다. 앞서 1791년 5월 왕명으로 이의봉(李義鳳)과 윤광보(尹光普) 등이 편집한 것을, 1796년 5월 왕명에 따라 이서구(李書九)ㆍ이의준(李義駿)ㆍ윤광보 등이 다시 교정하고, 정족산 사고(鼎足山史庫)의 실록을 참고하여 보고된 별단(別單)을 참조하여 이서구가 최종적으로 《장릉지(莊陵誌)》 9권 3책을 완성하여 바쳤다. 찬진 당시에는 서명을 '장릉지'라 했으나 '장릉사보'로 바뀐 것은 기존 《장릉지》와 구별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충강공(忠剛公) 송간(宋侃, 1405~1480)이다. 호는 서재(西齋)이며, 본관은 여산(礪山)이다. 세종ㆍ문종ㆍ단종의 3조를 섬겨 벼슬이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이르렀다. 단종이 영월로 쫓겨갔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가 두문불출하다가 단종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깊은 산 속에 들어가 3년상을 마치고, 전라남도 고흥군 동강면 마륜리에서 은거하였다. 補 저본의 '譜'는 사료에 근거하여 '補'로 수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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夜宿泉谷文生家戱用前韻 仄逕陂塘日易斜一宵緣業野人家纖埃缺壁優容鼠古紙歌窓亂畵鴉顚倒冠裳修禮貌太平耕識話生涯共君低仰猶堪愛强半淳風去俗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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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松坡喜豊與文竹坡思健來訪拈金河西詩集酬得三壘 竹扉斜亞小山居慣耳跫音兩不疎有信霜前來似鴈相從溪上聚如魚松湖處士秋收釣錦里先生晝掩書一笑無端歌且嘯蒼蒼雲鳥野天虛春氣溶溶屋一間故人談笑破幽閒興來難忘陶潛酒老臥多慙謝眺山玉局前身今夜坐金剛裏面去年還秋燈禿髮相低仰如夢蘭臺舊日班老屋脩然出樹間挑燈夜話劇淸閒書中隻眼明如水酒後雙肩聳若山簿宦初休驢病立遠人相憶鴈嘶還莫言村野無佳趣秋菊秋蘭可序班【松坡】綠琴今夜得鍾期下手高低未敢遲兒不鋤蘭花有數妻能舂秫酒無時詩家綺綉貧猶在世味酸醎老始知相守一燈眠靡暇孰云黃嬭我神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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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松坡雪裏惠然鄭小山大杓亦至戱酬三律 雪壓黃茆老屋低臥松眠竹小城西名山有恨庭留石大海難忘巷引溪果腹一捫憐鼠飮華顚半脫笑鷦棲狂歌楚士知心者打戶頻挑醉蜨迷竹樹交柯雪向低玲瓏在屋東西長歌拊節吟梁甫小睡支頤夢剡溪觀海此人難與語買山何處可同棲松坡五十身猶健一醉相分路不迷【松坡】碎玉埋珠太不寥詩家難老足稱饒影中藻荇承天寺夢裏梅花灞上橋月與良朋相適値秋於古木未全凋淸宵一刻難虛度手拂塵琴笑更調石友相酬夜欲沈靑燈結穗月移陰三盃白酒分蕉葉一塵玄談坐竹林驟雪如往看獨潔寒山雖小坐猶深大家經濟終何在禿髩多違少壯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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過五間水門望訓練院有感【三月初旬】 破鞋輕踏水門西嫩柳疎松望眼迷題鳳遠過紅樹洞亡羊獨立白沙提護亭苔髮危如墮暎圃菘華染不齊逸豫百年休用武戎垣晝寂聽烏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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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松坡和東坡韻 海嶽迢迢竹掩村短藤聞憩綠胡孫楓人已矣秋歸壑梅使來耶雪扣門春帖潑鴉餘舊戀夜琴嘶鴈聽新翻問君能醉朱樓否禿首猶非李壯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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入紅樹洞咏荷屋新搆亭子【三月二十四日在東大門外】 萬樹桃花錦障環綠雲亭榭相公閒人間自有楊州鶴半是紅塵半碧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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楓溪屋會諸益相酬【六月念六日】 十年甘作北溪賓笑笑相看百不嗔古法松醪傳尙在解敎癯面借新春座上常多不速賓廚貧一任屋中嗔山醪野蔌猶和氣大异朱門寂寂春花似將歸强挽賓囑他風雨反逢嗔自從洞裏修甁史三百六旬都是春【右懶散齋金承旨敬鎭】兒童亦喜慣看賓來挽霜髥未卽嗔但使庭花開次第四時何日不三春【右四休李承旨應寅】百年人是百年賓潦止霽行任笑嗔但喜新晴楓樹屋逢君留得一盃春【右怡觀黃敎理鐘顯】故舊何如見惡賓咄嗟蔬麥斷貪嗔溪堂選勝知多少芍藥花殘又一春【右小山李注書應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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贈別海州客閔益行【三月十五日】 征人理屐海雲晴過夢應鶩杜宇聲米価空添風雨店花緣又失漢江城能言可奈猩猩醉遠別無端燕燕情得意他時如再遇頓醒非復舊往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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出楊花渡訪判書箕晩【步何操亭楣上韻春山金相弘根江舍八月十三日】 楊柳江之上排鋪一廣庭石癯千雨洗松老十霜經地勝猶前日人歸未百齡鴨頭秋色綠大酒有遺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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憩瑞雲驛舍【銀溪屬郵自勿驅峙五里】 銀溪丹邱可謂膝薛爭長山郭殘郵在蕭疎四五隣然猶臨大道迎此不期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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雉嶽祠【在丹邱東相去十五里許】 星壇如水玉層層蕙帶荷衫颯颯登[虫+兮]蠁岳靈來顧否應憐此夜禿頭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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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神堂 騎如馴鹿抱如貓兩虎相從不寂寥黃幘綠袍天上客如何托跡在僧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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