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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十四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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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十五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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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十六日 죽동(竹洞)에 가서 종인(宗人)을 만나고 왔다. 옥당 서리와 하인에게 각각 돈 3냥을 나누어 주었다. 往竹洞, 見宗人而來。 玉堂 書吏及下人處, 錢各三兩處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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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初十日 바로 정시(庭試)를 보는 날이다. 닭이 울 때 아침을 먹고 동접(同接)들과 월근문(月覲門)으로 들어갔다. 한참 뒤에 동이 트자 전좌(殿座)14)하는 곳과 과장(科場)을 설치한 길을 바라보니, 모두 백포장(白布帳)으로 둘러놓았다. 처음에는 왕이 친림한다는 말이 있었으나 결국에는 옥련(玉輦, 임금의 수레)만 나왔는데 군병과 기치(旗幟)와 창검(槍劍)은 왕이 거둥할 때와 다름이 없으니 평생에 한번 보는 장관(壯觀)이었다.묘시(卯時)에 출제(出題)하였으니, 바로 '흠명문사안안(欽明文思安安)'15)이었다. 문욱 동접들과 이어 초안을 작성하였으나, 납번(納番, 답안지 제출)할 때에 혹 선비들이 밟혀 죽을까 하는 근심이 있어 마음이 몹시 두려웠다. 나 또한 납번하는 차례에 직접 들고 갔으나,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어 함께 온 동접 중에 소년을 시켜 납번하게 하였다. 낙안(樂安) 형님의 정초(正草)는 내가 가서 제출했는데, 그때에는 조금 덜했기 때문이다. 곧바로 주인집으로 와서 잠시 쉰 뒤에 문욱을 기다리는데 끝내 나오지 않으므로 먼저 나와 정 진사(丁進士)의 주인집으로 가서 잠시 쉬다가 경주인 집으로 돌아왔다. 김계한(金啓漢)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같은 고향 사람들이 모두 모레 출발하겠다고 말하였다. 卽庭試日也。 鷄鳴時仍朝飯, 與同接入月覲門。 良久開東, 望見殿座處與設場之道, 則皆以周設, 而初有親臨之言矣。 末乃只出玉輦, 而軍兵與旗幟槍劍, 無異擧動時也, 平生一壯觀也。 卯時出題, 卽'欽明文思安安'。 與文旭同接, 仍爲構草, 而納番之時, 或有士子踏死之患, 心甚悚然。 余亦納番次躬往矣, 不得前進, 來接中使少年納番。 樂安兄主正草, 則余往納之, 其時則稍歇故也。 卽爲出來主人家, 暫憩後待文旭, 則終不出來, 故先爲出來丁進士主人暫憩, 來入京主人家。 與金啓漢暫話, 而同鄕之人, 皆以再明日發程爲言耳。 전좌(殿座) 과거를 시행하거나 하례(賀禮)를 받는 것처럼 공식 행사가 있을 때 임금이 그곳에 마련된 어좌(御座)에 나와 앉는 것을 말한다. 흠명문사안안(欽明文思安安) 《서경》 〈우서(虞書) 요전(堯典)〉에 나오는 말로, 요 임금의 덕을 찬양하면서 "공경하고 밝고 빛나고 사려가 깊은 것이 자연스럽게 우러나왔다.[欽明文思安安]"라고 하였다. 일부러 힘쓰지 않아도 그 덕성(德性)의 아름다움이 다 자연스러운 속에서 나온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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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初九日 아침을 먹은 뒤에 정 진사(丁進士)의 사관(舍館)에 가서 잠시 쉬었다가 구리개동(九里介洞)의 박영수(朴永壽) 집에 갔다. 문욱(文旭)과 과장(科場)에 함께 들어가기로 약속한 뒤에 종묘동(宗廟洞)에 가서 구환(龜煥) 형제를 방문하였으나 출타하여 만나지 못했다. 오는 길에 구례(求禮)의 이지문(李志文)을 만나 빚 얻을 방도를 의논하였는데, 물어볼 만한 곳이 없다 하니 장차 어찌 한단 말인가. 해 진 뒤에 다시 오겠다 말하고 헤어졌다.성균관 앞에 가서 문욱을 만나 함께 관주인(館主人)인 이쾌철(李快哲) 집에 들어갔다. 신시(申時)에 문을 열기 때문에 저녁을 먹은 뒤에 과장에 들어갔다. 문욱의 동접(同接)13)과 정 진사(丁進士)의 동접(同接)을 찾아갔는데, 서로의 거리가 멀지 않았다. 초저녁 때에 동접들마다 등을 걸었다. 춘당대(春塘臺)의 백포장(白布帳) 안에 한 조각의 공지(空地)도 없이 등을 달고 등불을 밝힌 것이 끝이 없어 하나의 큰 장관이었다. 과거를 보는 유생의 모임은 전후로 처음인데, 경신년에 비해 더 많다고 하였다.밤이 깊은 뒤에 문욱과 함께 월근문(月覲門)으로 나와 이쾌철(李快哲) 집에 머물렀는데, 과거에 응시하는 유생들이 많이 모여서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食後往丁進士舍館, 暫憩後, 往九里介洞 朴永壽家。 與文旭同入場中之意相約後, 往宗廟洞, 訪龜煥兄弟, 則出他不得相見。 路逢求禮 李志文, 議得債之路, 則無問處, 此將奈何。 斜後更來爲言, 而相分往成均館前, 逢文旭同入館主人李快哲家。 申時開門, 故夕飯後入場中, 推尋文旭接與丁進士接, 則相去不遠也。 初昏時, 各接懸燈, 春塘臺白布帳內, 無一片空地, 懸燈觀燈無恨, 一大壯觀也。 科儒之會, 前後初度云矣, 比庚申年尤多云。 深夜後, 與文旭同爲出來月覲門, 留李快哲家, 而科儒多會, 不得就睡。 동접(同接) 과거 응시를 앞두고 선비들이 한곳에 모여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만든 동아리 또는 그 구성원을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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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初十日 종일토록 병을 조리하였다. 이날부터 날씨가 조금 풀렸다. 終日調病。 自是日日氣稍解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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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初九日 이른 아침에 칠패(七牌)에 가서 윤 생원(尹生員)을 만나 대략을 말한 뒤에 곧장 팔선의 집에 와서 머물렀다. 早朝往七牌見尹生員, 略言大槩後, 卽爲來留於八仙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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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十二日 아침에 흐리고 저녁에 온화하였다. 어제 행차할 때에 요통(腰痛)이 나아진 듯하였기 때문에 온종일 차가운 곳에 머물렀는데, 밤이 되자 또 심하게 아팠다. 이에 온돌방에서 몸조리하였다. 朝陰晩和。 昨日之行, 腰痛似向差, 故終日所處無非冷突, 夜又大痛, 遂溫突調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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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初八日 종일 비가 왔다. 아침 전에 사헌(士憲)이 파주(坡州)로 길을 떠났는데, 비가 그치지 않아 중도에서 낭패를 당했을 것이 뻔하니 매우 염려스럽다. 終日雨。 朝前士憲作坡州之行, 而雨勢不止, 中路見敗必矣, 爲慮萬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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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初十日 추웠다. 저녁 무렵 내려왔다. 청파에서 묵었다. 寒。 夕間下來。 靑坡留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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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十一日 흐리고 추웠다. 청파에서 머물렀다. 陰而寒。 留靑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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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二十一日 이날은 바로 영감(令監)의 생신이다. 술상을 차려 민 영장(閔營將)과 유 고성(柳固城) 등 여러 사람과 함께 배불리 먹고 파하였다. 是日卽令監晬日也。 有盃盤, 與閔營將、柳固城諸人, 同爲飽喫而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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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十七日 아침을 먹기 전에 내 생일이라고 하여 내간(內間, 안채)에서 술과 안주를 갖추어 대접하니 매우 감격스러웠다. 저물녘에 근동(芹洞)에 가서 술과 고기를 실컷 먹고 왔다. 朝前謂我晬日, 自內間具酒饌以饋之, 伏感伏感。 晩後往芹洞, 飽喫酒肉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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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十一日 이른 아침에 정 진사(丁進士)의 사관(舍館)에 갔다. 박종수(朴宗壽)와 삼청동(三淸洞)에 가서 판서(判書) 이헌기(李憲綺)16)를 들어가 뵈었다. 먼저 한포재(寒圃齋)17) 선생의 서원을 건립하는 일에 대해 말을 꺼내니, "본손(本孫)이 선조(先祖)의 서원 건립을 주선하는 것은 매우 온당한 일이 아닙니다."라고 답하였다. 다음에 말한 우리 선조의 사액(賜額)을 청한 일은 대사(大事)가 속히 이루어져 갑자기 쉽지 않다고 하였으므로 이번 길에 예조에 올려 재록하려는데, 부족한 것은 대감(大監)이 예조 판서로 있을 때 일을 하는 것이 구차하지 않고, 이번에는 구차한 계책이 많이 있다 하니 답하기를, "아무 때에 재록(載錄)하는 것도 다행입니다. 이는 사액(賜額)을 청하는 계제(階梯)이니 더욱 다행한 일입니다."라고 하였다.아래 사랑(舍廊)으로 가서 그의 아우 한림(翰林) 헌위(憲緯)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는 길에 재동(齋洞)의 임실(任實) 종인(宗人) 주인집에 들러 예조에 소장 올리는 일을 논의하였는데, "소장을 써 줄 사람이 없어서 애초에 성사가 안됐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급히 묘동(廟洞)의 귀환(龜煥) 주인집에 가서 상의하였는데 또한 걱정스럽다고 하면서, "아무쪼록 상의하기로 약속하였으니 반드시 소장을 얻어야 일이 성사될 수 있을 것입니다. 부디 흘려 듣지 마십시오."라고 하였다. 온 힘을 다해 이 석사에게 주선하는 방도에 대해 누누이 부탁하려고 하였으나, 이 석사가 출타하여 만나지 못하였다.저물녘에 경주인(京主人) 집에 가서 경주인과 상의해 보니 '어찌할 방법이 없다. 오늘 내일 사이에 곧장 강문명(姜文明)을 찾아가 2백여 냥의 돈을 받아 올라오는 길에 그 중 50냥을 떼어 쓰는 것이 좋겠다.' 하고, '나머지 액수는 경주인의 이름으로 보증하여 일을 처리하겠다.' 하였다. 이에 급히 재동(齋洞)으로 가서 여해(汝海)와 상의하였더니 그러면 안 된다고 하였으므로 저녁에 경주인 집으로 돌아왔다. 일이 급박하게 되었는데 끝내 변통할 방도가 없으니, 이를 장차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동행과 그대로 주인집에 머물렀다. 早朝往丁進士舍館。 與朴宗壽, 往三淸洞, 入謁李判書 憲綺。 先言寒圃齋先生建院事, 則答曰: "以本孫其先祖建院, 周旋極未安。 " 次言生之先祖請額事, 則大事速成, 猝難不易云, 故今行呈禮曹載錄, 而所欠者, 大監 禮判時做事, 則不爲苟且, 今番多有苟且之計, 則答曰: "某時載錄, 亦可幸矣, 此則請額之陛梯也, 幸幸。"云矣。 往下舍廊, 其弟翰林 憲緯暫敍。 來路入齋洞 任實宗人主人家, 論其呈禮曹事, 無入手之地, 則初不成事云, 故急往廟洞 龜煥主人家相議, 亦爲悶慮云, "約以某條相議, 必得狀後事可成, 幸勿泛聽。" 與李碩士, 極力周旋之道, 累累言托, 李碩士出他不見。 乘暮來京主人家, 與京主人相議, 則亦無奈何, 而今明間, 直訪姜文明, 持二百餘兩錢, 上來之道, 厥錢中五十兩, 推用爲可云云, 餘數則以京主人名爲證處事云云。 故急往齋洞, 與汝海相議, 則不然云, 故乘暮還京主人家。 事成急迫, 而終無變通之道, 此將奈何? 與同行仍留主人家。 이헌기(李憲綺) 1774~1824.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1822년 대사헌, 예조판서·수원부유수·우참찬·장례원제조를 지냈다. 한포재(寒圃齋) 이건명(李健命, 1663~1722)의 호이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중강(仲剛)이다. 좌의정을 지냈으며, 1721(경종1)에 왕세제 책봉을 주청하여 실현하였으나, 신임사화 때 유배되었다가 사사(賜死)되었다. 노론사대신(老論四大臣)의 한 사람이다. 저서로 시문과 소차(疏箚)를 모은 《한포재집(寒圃齋集)》 10권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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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十三日 일찍 일어나 동향(同鄕)의 여러 친구들과 작별하였다. 올 때 동행했던 이들은 모두 내려갔지만 나는 예조에 소장 올리는 일 때문에 함께 가지 못하였으니 마음이 실로 난감하였다. 오늘이 비록 삼일제(三日製)이나 돈 문제가 판가름 나지 않아서 과장에 출입하는 것이 한탄스럽다. 급히 재동(齋洞)18)으로 갔더니 만나고자 했던 사람이 이미 과장에 들어갔다. 이에 급히 묘동으로 갔으나 공서(公瑞)도 과장에 들어가 상의할 수 없으니 답답하고 걱정스러웠다.삼청동(三淸洞)19)의 이 판서(李判書, 이헌기(李憲綺)) 집에 가서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에 흥양(興陽) 장보(章甫, 유학을 공부하는 선비)들이 서원 건립하는 일의 전후 사적(事蹟)을 보고 싶다고 청하니 한번 보여 드리겠다 하고서 이에 책자를 드렸다.한참 뒤에 어디에서 온 음식을 나에게 나눠 먹자기에, 감히 먹을 수 없다고 하였더니 퇴상(退床)을 보내온 것이라 하여 배불리 먹었다. 음식은 모두 여행하면서는 보지 못한 것들이었으므로 매우 감사하였다. 한참 있다가 대감이 취하였으므로 나와서 다시 재동으로 가니 과장에 들어갔던 사람들이 모두 나와 있었다. 공서(公瑞)와 함께 이 석사(李碩士)를 뵙고 상의하였더니 내일 다시 오라고 말하였기 때문에 재동(齋洞)으로 돌아왔다.여해(汝海)와 예조에 소장을 올려 받은 제사(題辭)20)를 즉시 예조 장방(長房)21)에 들어가서 재록(載錄)하려 했으나, 서리(書吏) 배광옥(裵光玉)이 밖에 나가 부재중이어서 재록하지 못하고 도로 주인집으로 와서 머물렀다. 早起與同鄕諸益作別, 來時同行, 皆爲下去, 而余則以呈禮曹之事, 不得同行, 心懷實爲難堪。 今日雖三日製, 而以錢事之不得辦, 出入場中, 可歎。 急往齋洞, 則欲見之人, 已爲入場, 故急往廟洞, 則公瑞亦爲入場, 不得相議, 悶悶。 往三淸洞 李判書家, 暫話後, 請其興陽 章甫, 以建院事前後事蹟欲見, 則答以一覽爲言, 故仍納冊子。 移時有自何來飮食, 使余分食, 而以不敢之意言及, 則饋以退床故飽食。 飮食皆以在行時, 不見之物也, 多感多感。 移時大監醉睡, 故仍爲出來, 更往齋洞, 入場之人皆出來。 與公瑞請李碩士相議, 明日更來爲言, 故還來齋洞。 與汝海呈禮曹得題, 卽爲入去禮曹 長房載錄, 則書吏 裵光玉出外不在, 故不得載錄, 還來主人家留。 재동(齋洞) 서울시 종로구 재동으로, 명칭은 계유정난에서 유래했다. 수양대군은 계유정난 때 희생된 사람들의 시신으로 피비린내가 진동하자, 이곳을 재로 덮어서 냄새가 나지 않도록 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이곳은 잿골로 불렸고, 잿골을 한자로 표현한 것이 재동이다. 삼청동(三淸洞)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동에 있던 마을로, 도교의 뿌리로 도교 신인 태청(太淸)・상청(上淸)・옥청(玉淸)의 삼청성신( 三淸星辰)을 모신 삼청전(三淸殿)이 있던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하였다. 제사(題辭) 조선 시대에 백성이 올린 소장(訴狀), 청원서(請願書), 진정서(陳情書)의 좌편 하단 여백에 관에서 써 주는 판결문 또는 처결문을 말한다. 주로 관찰사나 순찰사에게 올린 의송(議送)에 내리는 판결문을 말하며, 수령에게 올린 민원서에 쓴 처분(處分)은 '제김[題音]'이라고 한다. 장방(長房) 서리(胥吏)들이 집무하거나 거처하는 방, 또는 서리를 지칭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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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十五日 조금 눈이 내렸다. 요통이 끝내 조금도 차도가 없어 출입할 수 없는데, 큰일이 여러 가지이니 초조하고 근심스러운 마음을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小雪。 腰痛終無小差, 不得出入, 而大事多端, 焦悶不可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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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十二日 차동, 근동, 합동에 가서 이야기를 나누고 왔다. 往車洞及芹洞、蛤洞, 談話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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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十三日 주동(注洞)에 갔다 왔다. 往注洞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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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十四日 오전에 종이를 사고 즉시 출발하여 두곡(杜谷)에 이르러 묵었다. 20리를 갔다. 午前買紙, 卽發抵杜谷留宿。 行二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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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十四日 차동에 갔다가 저녁 무렵에 내려왔다. 往車洞, 夕間下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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