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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서원장51) 新安書院狀 전라도 유생 유학(幼學) 최관현(崔寬賢) 등이 삼가 목욕재계하고 재배 후에 대종백(大宗閣, 예조판서를 달리 일컫는 말) 합하(閤下)께 글을 올립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임실현(任實縣) 신안사(新安祠)는 바로 주 부자(朱夫子)의 영정을 봉안한 곳으로 제사를 지낸 지 여러 해가 되었습니다. 향사(鄕祠)52)와 사액(賜額)53)은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선후의 다름이 있지만, 현인을 높이 받들고 도를 사모하는 정성만은 같습니다. 이미 현인을 높이 받들고 도를 사모함은 조정의 고관(高官)과 사림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 때문에 사액(賜額)을 요청하는 문제는 일단 앞날을 기다리지 않을 수 없지만 숭봉(崇奉)하는 일의 체모와 거행하는 의절(儀節) 같은 경우는 원래 피차의 구별이 없습니다. 더구나 주부자(朱夫子)의 사우(祠宇)는 우리나라의 제현과 더욱 달라서 천성(千聖)의 적통(嫡統)이 이에 빛나고 만세의 사도(師道)가 매우 엄하니, 특히나 십분 더 공경을 다하고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곳입니다.이번 신안서원의 사례(事例)는 전부터 함평(咸平)의 자양사(紫陽祠)54)와 대략 엇비슷하므로 제반 의문(儀文, 의례에 관한 법도)을 견주어 동일하게 하였습니다. 봄가을의 제수(祭需)는 이미 본도(本道)의 순영(巡營)에서 많은 선비들의 정문(呈文)55)으로 인하여 본손(本孫)에게 관문(關文)56)을 보내 신칙하였는데, 자양사(紫陽祠)의 예에 의거하여 관(官)에서 제물을 갖추어 보내고, 원생(院生, 서원의 생도)과 보노(保奴)57)의 무리도 조치한 바가 있었습니다. 이는 모두 영읍(營邑)에서 정도(正道)를 지키는 성대한 뜻인데, 본원의 모양새가 조금 이루어져 규모와 제향 의례58)에 정성과 공경을 다하였으니, 삼가 사문(斯文)의 다행스러움이 아닐 수 없습니다.다만 삼가 생각건대, 팔도의 사원(祠院)은 모두 예조 관할입니다. 그리고 예조에 《사원록(祠院錄)》이 있으니 이미 사액(賜額)하고 사액하지 않은 것을 막론하고 각각 부책(簿冊, 장부)이 있고, 그 중요한 도원(道院)에서 소중히 여기는 것은 돌보고 보호하는 것이 각별하니, 대개 또한 우리나라가 유학을 중시하고 도를 숭상하는 상전(常典)을 우러러 본받았기 때문입니다.저희들은 이에 감히 우러러 호소하노니, 삼가 바라건대 공의(公議)를 굽어 살피시어 임실(任實)의 신안사(新安祠)를 본조(本曹)의 《사원록》에 실어 일의 체모를 중히 하고 사림을 빛내신다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임오년(1822, 순조22) 10월. 全羅道儒生幼學崔寬賢等, 謹齋沐再拜, 上書于大宗伯閤下。 伏以任實縣 新安祠, 卽朱夫子影幀奉安之所, 而俎豆之享之有年矣。 鄕祠與賜額, 有公私先後之別, 而其爲尊賢慕道之誠則一也。 旣有尊賢慕道, 則縉紳與士林亦一也。 是以請額一款, 不得不姑俟來頭, 而至若崇奉之事體, 擧行之儀節, 元無彼此之區別矣。 況朱夫子祠宇, 尤異於我東諸賢, 千聖之嫡統斯光, 萬世之師道至嚴, 尤當十分致敬, 不容疎忽處也。 今此新安事例, 自前與咸平紫陽祠, 略相髣髴, 故諸般儀文, 比而同之。 春秋祭需, 已自本道巡營, 因多士呈文, 關飭本孫, 依紫陽祠例, 自官備送, 而院生保奴之屬, 亦有所措置者, 是皆營邑衛道之盛意, 而院樣稍成, 規模享儀, 庶盡誠敬, 竊不勝斯文之幸。 第伏念八路祠院, 俱是春曹所管, 而春曹有《祠院錄》, 無論已賜額未賜額, 各有簿冊, 其重道院所重, 則顧護自別, 盖亦仰體我國家重儒崇道之常典也。 生等玆敢仰籲, 伏願俯察公議, 以任實新安祠, 載入於本曹《祠院錄》, 以重事面, 以光士林, 幸甚。壬午十月。 신안서원(新安書院) 전라북도 임실군 임실읍 신안리에 있는 서원. 1588년(선조21)에 한호겸(韓好謙)의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서 그의 제자가 신안사(新安祠)를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그 뒤 정유재란으로 소실되자 1669년(현종10)에 중건하였으며, 1788년(정조12)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송경원(宋慶元)·한필성(韓必聖)·한명유(韓鳴愈)·강백진(康伯珍)·송시태(宋時態)를 추가 배향(配享)하였다. 1819년(순조19)에는 함평의 자양서원(紫陽書院)에 안치된 주희(朱熹)의 영정을 이곳으로 옮겨와 주벽(主壁)으로 봉안함과 동시에 '신안(新安)'이라고 사액(賜額)되어 서원으로 승격되었으며, 선현 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왔다. 향사(鄕祠) 이름난 학자, 충신 등의 공적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집을 세우고 제사지내는 사당(祠堂)을 말한다. 조선 중기에 학문의 권장을 위하여 지방에 서원과 정사(精舍)가 생겨나고 자기 조상들을 위하여 사우(祠宇)가 많이 건립될 때 생겨난 특징 있는 주민들의 사당이다. 사액(賜額) 임금이 사당(祠堂)이나 서원(書院), 누문(樓門) 따위에 이름을 지어서 새긴 편액(扁額)을 내리던 일이다. 자양사(紫陽祠) 전남 함평에 있었던 사당으로, 주희(朱熹)를 향사(享祀)한 사당이다. 1783년에는 송시열(宋時烈)의 영정도 봉안했었다. 정문(呈文) 백성이 관청에, 또는 하급 기관에서 상급 기관에 제출하는 문서를 말한다. 관문(關文) 원문의 '관칙(關飭)'은 관문(關文)으로, 상급 관아에서 하급 관아에 보내는 공문(公文)이다. 감결(甘結), 예칙(禮飭)이라고도 한다. 보노(保奴) 조선 시대 병영이나 관아 또는 서원 등에 딸리어 잡역에 종사하던 하례(下隷)를 말한다. 제향의 의례 원문의 '향의(享儀)'는 제향(祭享) 후 음식을 대접하는 의식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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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八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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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初三日 면교(面橋)의 용전(龍田)에 머물렀다. 이는 대개 삼정(森亭)의 이종(姨從)형님 형제와 함께 가기로 약속하였기 때문에 일부러 우회하여 기다리려는 생각에서였다. 留面橋 龍田, 盖以森亭姨兄主昆季, 約與同行, 故故爲逶迤留待之意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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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初六日 비가 오다. 불우치(不憂峙)에 이르자 비가 내렸다. 이에 점심을 먹고 곡성 읍내에서 묵었다. 雨。 至不憂峙雨作, 因爲中火, 宿谷城邑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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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二十四日 새벽에 출발하여 묘치(峙)를 넘어 아침을 먹고, 석곡(石谷) 주막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무동정(舞童亭) 주막에 이르러 묵었다. 80리를 갔다. 曉發踰峙朝飯, 抵石谷酒幕午飯。 抵舞童亭酒幕留宿。 行八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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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회계 文會稧 송흠문 성안 경인 은진사람 청주 거주안동형 경통 정유 순흥사람 해주 거주김재봉 의지 계묘 광산사람 공주 거주홍기영 사춘 남양사람 연기 거주박치환 은문 을사 면천사람 회천 거주김재대 건지 무신 광산사람 공주 거주김이현 성서 무신 광산사람 공주 거주박재병 남중 무신 밀양사람 청주 거주임주례 성기 정사 상주사람 충주 거주김석현 성규 기미 광산사람 회천 거주성영석 원로 신축 창원사람 대흥 거주송재옥 사형 갑자 본관 여산 천안 거주정현석 군범 을묘 본관 광주 임천 거주안성흠 성태 병진 본관 순흥 옥천 거주고상의 유중 정미 본관 청주 음성 거주권중건 사극 임술 본관 안동 서울 거주금석로 영수 병진 본관 봉성 옥천 거주정재팔 순거 계해 본관 의성 용담 거주한경복 백원 갑신 본관 청주 회천 거주송수각 자신 본관 은진 회천 거주김방기 중경 정사 태인 거주박정일 윤겸 을미 본관 상주 광양 거주서택인 맹거 임자 본관 달성 대구 거주서영래 대여 경술 은진 거주송흠태 국언 계묘 태인 거주최광악 응오 정해 본관 전주 금구 거주송노전 백도 신해 본관 덕수 해주 거주최달민 인첨 정미 본관 전주 김제 거주송연영 국형 신해 본관 여산 임실 거주이주재 임신 본관 한산 해주 거주송석년 수이 무술 본관 여산 흥양 거주신재술 본관 평산 안동 거주 宋欽文 聖安 庚寅 恩津人 居淸州安東亨 敬通 丁酉 順興人 居海州金在鳳 儀之 癸卯 光山人 居公州洪沂泳 士春 南陽人 居燕歧朴致煥 誾文 乙巳 沔川人 居懷川金在大 健之 戊申 光山人 居公州金彛鉉 聖瑞 戊申 光山人 居公州朴載丙 南仲 戊申 密陽人 居淸州林周豊 聖基 丁巳 尙州人 居忠州金錫玄 聖圭 己未 光山人 居懷川成永錫 元老 辛丑 昌原人 居大興宋在玉 士衡 甲子 礪山人 居天安鄭玄錫 君範 乙卯 光州人 居林泉安聖欽 聖泰 丙辰 順興人 居沃川高尙義 由中 丁未 淸州人 居陰城權中建 士極 壬戌 安東人 居京琴錫老 永叟 丙辰 鳳城人 居沃川丁載八 舜擧 癸亥 義城人 居龍潭韓慶福 伯源 甲申 淸州人 居懷川宋秀覺 子臣 恩津人 居懷川金邦基 仲璟 丁巳 居泰仁朴楨一 允謙 乙未 尙州人 居光陽徐宅仁 孟居 壬子 達城人 居大邱徐榮來 大汝 庚戌 居恩津宋欽泰 國彦 癸卯 居泰人崔光岳 膺五 丁亥 全州人 居金溝宋魯傳 伯道 辛亥 德水人 居海州崔達旻 仁瞻 丁未 全州人 居金堤李周載 壬申 韓山人 居海州宋延英 國馨 辛亥 礪山人 居任實宋錫年 壽而 戊戌 礪山人 居興陽申在述 平山人 居安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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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初十日 일찍 출발하여 차령(車嶺)을 넘을 때에 여심(汝心)이 먼저 읊었다.둥글고 네모난 천지의 험한 길 건너(涉險止方圓)누각에 오르니 마음이 더욱 넉넉하여라(登閣意益寬)참 공부는 가는 곳마다 있으니(眞工行處在)평안히 앉아 있을 것 뭐 있겠나(何必坐平安)여백이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천 리 길 떠나온 영주의 나그네(瀛洲千里客)고개를 넘으니 마음이 여유롭네(越嶺以爲寬)계곡물 흐르는 소리 웃는 듯 성내는 듯(溪聲笑有怒)산세는 가도 가도 편안하구나(山勢行且安)경오가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길동무하며 떠나온 천릿길(作伴千里路)동행하여 마음이 참으로 여유롭구나(同行意盡寬)어젯밤엔 공주의 길손이더니(昨夜公州客)오늘 아침엔 천안에 도착하였네(今朝到天安)내가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부끄러워라 나의 시정의 졸렬함이여(愧我詩情拙)넉넉한 그대들 주량이 부럽기만 하여라(羨君酒戶寬)험난한 여행길 가도 가도 그치지 않으니(間關行不止)어느 곳이 장안이란 말인가(何處是長安)여심이 또 읊었다.괴이한 바위 위태로운 듯 벼랑에 달려 있고(怪石懸如危)단풍은 연지를 찍어놓은 듯 붉게 단장하였네(丹楓色欲脂)우리들이 구경하는 곳에도(吾人覽物處)중양절65) 아니 잊고 누런 국화가 피었어라(重九黃花時)내가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기암괴석은 꼭대기마다 솟아있고(怪石頭頭在)단풍은 곳곳마다 붉게 물든 연지로다(丹楓面面脂)느긋하게 지팡이 짚고 봐도 봐도 질리지 않아(緩笻看不厭)날이 저물어 가는 지도 몰랐어라(不覺夕陽時)두엽(斗燁) 명이관(明以寬)이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대여섯 사람 함께 부대끼며 떠나온 길(五六人相與)걷고 또 걸으며 마음이 느긋해졌네(行行意有寬)돌아가는 길 어드메에 있으랴(歸程何處在)해 떨어지는 곳 바로 장안이라오(日下是長安)덕평(德坪)에 이르러 아침을 먹고 천안 읍내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직산(稷山) 삼거리에 이르러 묵었다. 70리를 갔다. 早發越車嶺之際, 汝心先吟曰: "涉險止方圓, 登閣意益寬。 眞工行處在, 何必坐平安。" 汝伯次曰: "瀛洲千里客, 越嶺以爲寬。 溪聲笑有怒, 山勢行且安。" 敬五次曰: "作伴千里路, 同行意盡寬。 昨夜公州客, 今朝到天安。" 余次曰: "愧我詩情拙, 羨君酒戶寬。 間關行不止, 何處是長安。" 汝心又吟曰: "怪石懸如危, 丹楓色欲脂。 吾人覽物處, 重九黃花時。" 余次曰: "怪石頭頭在, 丹楓面面脂。 緩笻看不厭, 不覺夕陽時。" 明斗燁 以寬次曰: "五六人相與, 行行意有寬。 歸程何處在, 日下是長安。" 抵德坪朝飯, 抵天安邑內中火。 抵稷山三巨里留宿。 行七十里。 중구 원문의 '중구(重九)'는 음력 9월 9일로 곧 중양절(重陽節)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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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初九日 일찌감치 판치(板峙)를 넘어 효포(孝浦)에서 아침을 먹었다. 금강(錦江)을 건너 모로원(慕露院)에서 점심을 먹었다. 나는 먼저 떠나 광정(廣亭)63)의 송상철(宋相喆) 집에 들어가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출발하려고 할 때에 한사코 만류하였다. 그러나 동행과 떨어지기가 어렵기 때문에 곧바로 출발하여 주인과 길가에 도착하였더니, 동행이 뒤처져 광정(廣亭)에서 조금 기다렸다가 길 가에서 동행을 만났다. 저녁에 팔풍정(八風亭)에 이르러 묵었다. 70리를 갔다.저녁을 먹은 뒤에 계순(啓淳) 이여백(李汝伯)이 먼저 절구 한 수를 지었다.달을 보니 더욱더 고향 생각나는데(見月倍鄕思)푸른 하늘에 달 뜬 지 얼마나 되었던고(靑天來幾時)한밤중에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中夜眠無暇)애오라지 짤막한 시를 지어보네(聊將短律詩)순근(順根) 경오(敬五)가 다음과 같이 차운(次韻)하였다.뗏목 타고 천리 먼 길 온 나그네(浮槎千里客)구월의 용산64)이 생각나는구나(九月龍山思)경성이 어디 있느냐 묻노니(京城問何在)큰 깃발 북쪽으로 돌아가네(大旆北歸時)계영(啓榮) 여심(汝心)이 다음과 같이 차운(次韻)하였다.공주로 향하는 길 나그네 생각이 많은데(公州歸路客多思)오늘밤 달이 뜨니 더욱더 간절해지네(倍切今宵且月時)회포를 풀기 위해 담소를 나누다가(爲遣心懷談且笑)술과 시로 호걸스런 흥취 즐겨보네(正耽豪興酒還詩)내가 다음과 같이 차운(次韻)하였다.맑은 밤 달빛에 걸으니 더욱 고향 생각나는데(淸宵步月倍鄕思)더구나 누런 국화 한창인 중양절이로다(況又重陽黃菊時)억지로 술잔 잡고 두세 잔을 마신 뒤(强把數三盃酒後)취한 끝에 호방한 흥취 일어 부질없이 시를 읊네(醉餘豪興浪吟詩) 早發越板峙, 至孝浦朝飯。 越錦江, 抵慕露院中火。 余則先行, 入壙亭 宋相喆家。 暫話欲發則堅挽, 而以同行難離之致, 卽發與主人來路邊, 則同行落後, 廣亭稍待, 路邊逢同行。 暮抵八風亭留宿。 行七十里。 夕飯後, 李啓淳 汝伯先吟一絶曰: "見月倍鄕思, 靑天來幾時。 中夜眠無暇, 聊將短律詩。" 順根 敬五次曰: "浮槎千里客, 九月龍山思。 京城問何在, 大旆北歸時。" 啓榮 汝心次曰: "公州歸路客多思, 倍切今宵且月時。 爲遣心懷談且笑, 正耽豪興酒還詩。" 余次曰: "淸宵步月倍鄕思, 況又重陽黃菊時。 强把數三盃酒後, 醉餘豪興浪吟詩。" 광정(廣亭) 충청남도 공주군 정안면 소재지의 마을이다. 삼남길이 통과하는 길목이고 서울로 가던 인마가 차령을 넘기 전에 한숨 돌리던 곳이다. 때문에 광정역(廣亭驛)이 설치되어 운영되었다. 용산 진(晉)나라 맹가(孟嘉)가 일찍이 정서 장군(征西將軍) 환온(桓溫)의 참군(參軍)이 되었을 때, 한번은 중양일(重陽日)에 환온이 용산에서 연회를 베풀어 그의 막료들이 모두 모여서 술을 마시며 즐겁게 놀았다. 그때 마침 바람이 불어서 맹가의 모자가 날려갔으나 맹가는 미처 그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풍류를 한껏 발휘했던 데서 온 말이다. 후에 중양절에 높은 곳에 올라 모임을 갖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로 쓰였다. 《晉書 卷98 孟嘉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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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二十三日 서반(西泮) 김재광(金再光)의 집에 들어갔다. 오후에 다시 예조에 갔다가 신시(申時, 오후 3시~5시까지) 무렵에 과장(科場)으로 들어가 밤을 새웠다. 入西泮 金再光家, 午後復來禮曹, 申時量入場中達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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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二十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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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二十一日 꼭두새벽에 밥을 먹고 궐문 밖에 갔다. 박씨 척족(戚族)도 모두 와서 모였는데 오늘은 바로 삼일제(三日製)17)가 있는 날이다. 동이 틀 무렵 돈화문(敦化門, 창덕궁 정문)으로 들어가 진선문(進善門)18)에서 숙장문(肅章門)19) 앞까지 장막을 설치하고 좌정(坐定)하였다. 잠시 뒤에 인정전(仁政殿)20)으로 들어오라는 명이 있었기에 인정문(仁政門)21)으로 들어갔다. 동편의 인정전 월랑(仁政殿月廊)22)에 앉아 '근원이 있는 물이 끊임없이 솟아나 밤낮으로 흘러서 구덩이를 채우고 난 뒤에 나아가 사해에 이른다.[原泉混混, 不舍晝夜, 盈科而後進, 放乎四海.]'23)라는 부제(賦題)24)로 부(賦)를 지어 올렸다. 대개 경과(慶科)25)를 치르는 날이라서, 팔도의 과유(科儒)들이 모두 전정(殿庭)에 모였는데, 그 수가 너무 많아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曉頭食飯, 往闕門外。 朴戚亦皆來會, 而是日乃三日製也。 平明入敦化門, 自進善門, 至肅章前, 設幕坐定。 有頃有入仁政殿之命, 故入仁政門。 坐東邊月廊製進, '原泉混混, 不舍晝夜, 盈科而進, 放乎四海'賦, 而盖當慶科之日, 八道科儒, 咸集殿庭, 其數夥多, 不可言矣。 삼일제(三日製) 유생의 학문을 장려하기 위하여 성균관에서 실시하는 제술 시험으로, 절일제(節日製)의 하나이다. 의정부(議政府)와 육조(六曹), 관각(館閣)의 여러 당상관이 성균관에 모여 거재생(居齋生)과 지방 유생에게 제술(製述)만으로 시험을 보인다. 진선문(進善門)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을 지나 금천교(錦川橋)를 건너면 나오는 중문(中門)이고 창덕궁 창건 무렵에 세워졌으며 1908년 인정전 개수공사 때 헐렸다가 1999년 복원공사를 완료하였다. 숙장문(肅章門)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敦化門)을 통과하여 금천교(錦川橋)와 진선문(進善門)을 지나면 진선문 맞은편에 나오는 중문(中門)이다. 숙장문은 성종 6년(1475) 좌찬성 서거정이 지어 올린 이름을 성종이 낙점하여 사용된 이름으로, 일제에 의해 헐렸다가 1996년 시작된 복원공사를 통해 재건되었다. 인정전(仁政殿) 창덕궁의 정전(正殿)으로, 조정의 각종 의식이나 외국 사신의 접견을 하던 곳이다. 인정문(仁政門)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에 이르는 정문으로, 국왕 즉위식이 거행된다. 인정문은 태종 5년 창덕궁의 창건 때 다른 전각들과 함께 지어졌다. 효종·현종·숙종·영조 등 조선왕조의 여러 임금이 이곳에서 즉위식을 거행하고 왕위에 올랐다. 인정전 월랑(仁政殿月廊) 월랑(月廊)은 궁궐이나 사찰과 같이 규모 있는 건물에서 앞이나 좌우에 줄지어 만든 건물을 지칭한다. 비슷한 의미의 말로는 행랑, 행각, 상방이 있다. 기둥과 지붕으로 구성되어 있는 복도 모양의 형식을 갖춘 것도 있고, 건물로 이루어진 경우도 있다. 종묘의 월랑은 익실의 끝에서 직각 방향으로 연접한 건물을 말한다. 근원이……이른다 《맹자》 〈이루 하(離婁下)〉에 나오는 구절로, "근원 있는 물이 끊임없이 솟아나 밤낮으로 흘러서 구덩이를 채우고 난 뒤에 나아가 사해에 이른다. 학문에 근본이 있는 자가 이와 같은지라 이 때문에 취한 것이다.[原泉混混, 不舍晝夜, 盈科而後進, 放乎四海. 有本者如是, 是之取爾.]" 하였다. 이는 사람이 실제 행실이 있으면 그만두지 않고 점차 진보하여 지극한 경지에 이른다는 내용이다. 《일성록》 정조 18년 갑인(1794) 2월 21일(기묘)에 "인정전에 나아가 삼일제를 행하였다."라는 기사가 보인다. 부제(賦題) 과거를 보일 때 과문(科文)의 부(賦)를 지으라고 내는 글제목이다. 경과(慶科)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임시로 보이는 과거이다. 이는 특별히 대궐 뜰에서 보이므로 정시(庭試)라 하며 문무과(文武科)에 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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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二十八日 차동에 머물렀다. 동향 여러 사람들이 모두 내려가므로 약간의 글을 써서 집에 소식을 부쳐 보냈다. 아침을 먹은 뒤에 근동(芹洞)에 가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왔다. 留車洞。 同鄕諸人皆下去, 故付送家信若干字。 食後往芹洞, 暫話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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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十七日 일찍 황해 감사가 머물고 있는 곳에 갔으나 어수선하여 얼굴을 보지 못하고 왔다. 이날은 황해 감사가 떠났다. 早往海伯所住處, 撓不能相面而來。 是日海伯出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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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十八日 비가 내렸다. 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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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十九日 행장을 꾸려 천노(千奴)를 고향으로 돌려보냈는데 마음이 매우 편치 않았다. 治送千奴還鄕, 而情懷頗不安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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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十六日 흥양이 와서 천노가 올라온다고 기별해 주었는데, 여산(礪山)에서 뒤처졌다고 하였다. 고대하던 끝에 조금은 마음이 편안해졌다. 興陽來言千奴上來之奇, 而礪山落後云, 苦待之餘, 稍可寬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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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十七日 주동(注洞)에 가서 정오(正午)에 돌아오니 천노가 왔다. 집안 소식을 상세히 들을 수 있어 다행이었지만 책값이 태반이나 오지 않았으니 이를 장차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往注洞向午出來, 千奴來矣。 詳聞家信可幸, 而但冊價錢太半不來, 此將奈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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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十七日 정시(庭試)를 보는 날이다. 꼭두새벽에 동접(同接)들과 과장에 들어가려고 관문(關門) 밖에 갔더니, 날이 밝기 전이라서 연달아 매달아 놓은 등(燈)이 하나의 큰 장관이었다. 이어 성균관 아래 집춘문(集春門)71)으로 가서 간신히 문에 들어서니 동이 트기 시작했다. 과거보는 유생들이 모인 것은 봄에 열린 과거에 견주어 못하지 않았다.진시(辰時)가 되어 출제(出題)되었다. 표제(表題)는, '주(周) 나라 신하들이 하례하였는데, 우(虞)와 예(芮)가 송사하러 왔다가 국경에 들어오는 날에 밭갈이를 하는 자가 밭을 양보하고 길 가는 자가 길을 양보하자 물러나 다투던 밭을 한전(閑田)으로 삼았다는 것을 두고 의작(擬作)하라[擬周群臣賀虞芮來訟入境之日耕者讓畔行者讓路退以所爭之田爲閒田]'72)였다. 그런데 우리 동접들뿐만 아니라 과장 안의 거의 절반이 백지를 내고 나왔다. 우리도 백지를 내고 저물녘에 나왔다. 오는 길에 차동 우 참봉(禹參奉)의 집에 들어가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주인집으로 나왔다. 乃庭試日也。 曉頭與同接入場次, 往關門外, 則日未明, 而接接懸燈, 一大壯觀也。 仍往成均館下集春門, 艱辛入門, 始開東矣。 科儒之會, 比春科不下矣。 辰時良出題, 而乃表題題則'擬周群臣賀虞芮來訟入境之日耕者讓畔行者讓路退以所爭之田爲閒田' 而非但吾接也, 場中居半, 曳白而出, 吾亦曳白, 乘暮出來。 來路入車洞 禹參奉家暫話, 出來主人家。 집춘문(集春門) 창경궁 동북쪽 담장에 있는 궁문으로, 문묘가 마주 바라보이는 곳에 있다. 《동국여지비고》에 의하면 이 문은 후원의 동문으로, 태학(太學) 서쪽 반교(泮橋)와 제일 가까워 역대 임금들이 태학으로 나갈 때에는 이 문을 경유하였다고 한다. 주(周) 나라……의작하라 주 문왕(周文王)이 서백(西伯)이 되어 덕을 쌓자 사방에서 귀의하였는데, 그때 우(虞)와 예(芮) 두 나라에서 서로 국경의 전답을 다투어 오래도록 결정하지 못하였다. 이에 판결을 받고자 주 문왕을 찾아가게 되었는데, 가는 도중에 주나라 백성들이 밭두둑을 서로 양보하고 행인들이 어른에게 길을 양보하는 광경을 보고 크게 감화되어 그 길로 돌아와 다투던 전답을 묵히고 평화스럽게 지냈다는 고사를 가리킨다. 《詩經 大雅 緜》 《史略 卷1 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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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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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21일 二十一日 정 진사(丁進士)가 오늘 내려간다고 말하였는데, 나는 정장(呈狀) 때문에 동행하지 못하여 아쉬웠다. 이른 아침에 대묘동(大廟洞)에 가서 공서(公瑞)와 그 아들 참(參)을 만나서 돈 문제를 상의하였는데, 다만 20관뿐이라 했다. 돈을 가지고 예조 직방(直房) 앞의 술집으로 가서 안인성(安寅成)을 기다렸다. 한참 지나도 오지 않아서 그 까닭을 물었더니 예조 본부에 일이 있어서 현재 본부에 있다기에 급히 갔다. 안리(安吏)와 함께 직방(直房)으로 와서 정장(呈狀)을 찾아보았더니, 제사(題辭)가 과연 뜻대로 되어 있어 다행스러웠다. 이어 약간의 물건을 주고 급히 대묘동(大廟洞)으로 가서 공서와 내일 동행하기로 약속하였다.회동(晦洞)76)에 갔더니 여산(礪山) 제각(祭閣)에 관한 일로 통문(通文)을 주어서 가지고 왔다. 오는 길에 차동(車洞)의 이희(李) 집에 들렀으나 주인이 부재중이라서 작별하지 못하였다. 민치항(閔致恒)의 집에 들러 작별 인사한 다음, 그의 아우 민치명(閔致明) 집에 들어갔으나 마침 출타하여 작별하지 못하였으니, 한탄스럽다.저녁에 주인집에 이르니 공서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저녁밥을 먹은 뒤에 명생(明生, 명두엽(明斗燁))도 와서 그대로 함께 묵었다. 대개 내일 동행하여 고향에 내려가려고 했기 때문이다. 丁進士今日下去爲言, 而余則以呈狀之致, 不得同行, 欠事欠事。 早朝往大廟洞, 見公瑞與其子參, 以錢相議, 只以二十貫云, 故持去禮曹 直房前酒家, 待安寅成矣。 稍久不來, 故問其故, 則有事於禮曹本府, 方在本府云, 故急往。 與安吏偕來直房, 推尋呈狀, 則題辭果爲如意, 可幸。 仍給略干物, 急往大廟洞, 與公瑞約以明日同行。 往晦洞, 則以礪山祭閣事通文以給, 故持來。 來路入車洞 李家, 則主人不在, 不得作別。 入閔致恒家, 仍爲作別。 入其弟致明家, 適出他, 不得作別, 可歎耳。 暮抵主人家, 則公瑞來待矣。 夕飯後, 明生亦來, 仍爲同宿。 盖明日同行, 下鄕之意也。 회동(晦洞)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4가・인현동1가・인현동2가에 걸쳐 있던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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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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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13일 十三日 경모궁(景慕宮) 앞에 가서 고향 사람을 만나고 왔다. 往景慕宮前, 見鄕人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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