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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十一日 ○아침 전에 백운동(白雲洞)30)에 갔는데, 사서(司書) 이인필(李寅弼)은 광주(廣州)로 출타하여 그 조카 이정하(李正夏)하고만 작별하였다. 호정동(瓠井洞)으로 내려와 김병기(金秉耆)를 조문하고, 오면서 창정동(昌井洞)의 권중건(權中建) 집에 들러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돌아오는 길에 삼청동(三淸洞)31)에 들러 이병하(李秉夏) 숙질(叔姪)을 조문하였다. 오면서 장생전교(長生殿橋)32)의 생원 이장구(李章九) 집에 들러 《장릉사보(莊陵史補)》33)를 보고, 충강공(忠剛公)34) 사적(事蹟)을 베껴서 왔다. 밥을 먹은 뒤 용동에 갔다가 오후에 돌아왔다. ○朝前, 往白雲洞, 則李司書寅弼出去廣州, 只與其姪正夏作別。 下來瓠井洞吊金秉耆, 來入昌井洞權中建家暫話。 來路入三淸洞, 吊李秉夏叔侄。 來入長生殿橋李生員章九家, 見《莊陵史譜1)》, 謄忠剛公事蹟而來。 食後, 往龍洞, 午後還來。 백운동(白雲洞) 서울시 종로구 청운동에 있던 마을로서, 항상 흰 구름이 떠 있는 명승지인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삼청동(三淸洞) 서울시 종로구의 중앙부에 있는 동이다. 지명은 도교의 태청(太淸)ㆍ상청(上淸)ㆍ옥청(玉淸)의 3위(位)를 모신 삼청전(三淸殿)이 있었던 데서 유래하였다. 장생전교(長生殿橋) 서울시 종로구 연건동과 이화동 사이에 있던 다리이다. 조선 시대 궁중에서 사람이 죽었을 때 필요한 관곽(棺槨)의 제작과 수선을 담당하던 관청인 장생전(長生殿) 앞에 이 다리가 놓여 있었으므로 '장생전 다리'라고 불렀다. 장경교(長慶橋), 장교(長橋) 등으로도 불렀다. 장릉사보(莊陵史補) 1796년(정조 20) 왕명으로 단종에 관한 사적을 모아 편찬한 책이다. 앞서 1791년 5월 왕명으로 이의봉(李義鳳)과 윤광보(尹光普) 등이 편집한 것을, 1796년 5월 왕명에 따라 이서구(李書九)ㆍ이의준(李義駿)ㆍ윤광보 등이 다시 교정하고, 정족산 사고(鼎足山史庫)의 실록을 참고하여 보고된 별단(別單)을 참조하여 이서구가 최종적으로 《장릉지(莊陵誌)》 9권 3책을 완성하여 바쳤다. 찬진 당시에는 서명을 '장릉지'라 했으나 '장릉사보'로 바뀐 것은 기존 《장릉지》와 구별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충강공(忠剛公) 송간(宋侃, 1405~1480)이다. 호는 서재(西齋)이며, 본관은 여산(礪山)이다. 세종ㆍ문종ㆍ단종의 3조를 섬겨 벼슬이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이르렀다. 단종이 영월로 쫓겨갔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가 두문불출하다가 단종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깊은 산 속에 들어가 3년상을 마치고, 전라남도 고흥군 동강면 마륜리에서 은거하였다. 補 저본의 '譜'는 사료에 근거하여 '補'로 수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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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初三日 ○아침을 먹은 뒤 관정동에 가서 우 참봉(禹參奉)과 박상현을 만났다. 그 자리에 모르는 손님 서너 명이 있었다. 그래서 그 사는 곳을 물으니 고부(古阜)에 산다고 하였다. 그 성명을 물으니 두 사람은 김씨 성이고, 한 사람은 배씨 성이였다. 내가 정축년(1637, 인조 15) 호란(胡亂) 당시, 덕원 부사(德原府使)로 안변(安邊)에서 전사한 배공(裵公)113)이 누구인지 물이니, 그의 8대 조부라고 답하였다. 그 또한 우리 선조 승지공(承旨公)114)이 누구냐고 묻기에, 나는 나로서 5대조 되신다고 하였다. 모두 같은 날 전사한 분의 후손으로, 뜻하지 않게 만나 대대로 이어온 정의를 푸니 기쁘기 그지없었다. 나중에 서로 찾아볼 생각으로 그가 머무는 데를 물으니 창동 객점이라고 하였다.그길로 정동의 석사 이혜길(李惠吉) 집으로 갔다. 안부 인사를 나눈 후 그 조카 선(善)의 천연두가 어떤지 물으니, 낭패를 당해 참담하다고 하였다. 그길로 그 아우 집으로 가서 상을 당한 곡절을 위로하며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안채에서 몇 가지 음식을 내와서 몹시 고마웠다. 그길로 묘동(廟洞)으로 가서 공서와 잠시 얘기를 나눈 뒤에 용동의 참봉 이경화(李景燁) 집으로 와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곳이 곧 《성원현록(姓苑賢錄)》의 개간소였다. 돌아오는 길에 관정동(冠井洞)에 들러 공서와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유숙하였다. ○朝食後, 往冠井洞, 見禹參奉及朴祥顯。 座上有不知客數三人。 故問其所居, 則居在古阜云。 故問其姓名, 則兩人以金爲姓, 一人以裵爲姓。 余問丁丑胡亂時, 德原府使戰亡於安邊裵公爲誰, 則答以渠八世祖。 而渠亦問吾祖承旨公爲誰, 故余以吾爲五世祖。 俱是同日戰亡人後裔, 意外相逢, 敍其世誼, 其喜可掬。 日後尋訪之意, 問其所住處, 則蒼洞旅店云矣。 仍向貞洞李碩士惠吉家。 敍暄後, 問其姪兒善痘與否, 則見敗云慘矣。 仍往其弟氏家, 慰其見慽之由暫話。 自內間出送數器饌以饋, 可感可感。 仍向廟洞, 與公瑞暫話後, 來龍洞李參奉景燁家談話。 此卽《姓苑賢錄》開刊所也。 來路入冠井洞, 與公瑞談話, 同留宿。 배공(裵公) 배명순(裵命純, 1597~1637)이다. 자는 수초(遂初)이고, 본관은 성산(星山)이다. 병자호란 때 퇴각하는 후금(後金) 군사의 뒤를 추격하여 안변 남산역(南山驛)까지 이르러 강행군을 하던 중, 복병의 기습을 받고 전사하였다. 무덤은 성주군 조곡에 있다.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충숙(忠肅)이다. 승지공(承旨公) 송심(宋諶, 1590~1637)이다. 자는 사윤(士允)이고, 본관은 여산(礪山)이다. 1614년(광해군 6)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북변수비에 종사하고 돌아온 뒤에는 노모를 봉양하며 벼슬에 나가지 않았다. 전라도 병마우후(兵馬虞侯), 홍원 현감(洪原縣監)을 거쳐 1636년 병자호란 때 함북 병마절도사 이항(李沆) 휘하에서 척후장(斥候將)으로 있다가 화의가 성립되자 횡포를 부리며 철수하는 후금군사를 추격하여, 안변 남산역(安邊南山驛)에서 전 ㆍ후 영장(前後營將)과 함께 분전 끝에 전사했다. 좌승지(左承旨)로 추증되고, 고흥 서동사(西洞祠)에 제향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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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十三日 ○아침 먹기 전에 자윤(子允)과 계성사(啓聖祠)35)로 가서 김팔주(金八柱)를 만나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작별하고, 경모궁(景慕宮)36)으로 내려와 수문장(守門將) 장인원(張仁源)이 출번(出番, 당직 근무를 마치고 나옴)했는지를 물으니 아침 일찍 출번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곧바로 파천동(波川洞) 그의 집으로 갔는데, 밥을 먹고 출타한 터라 만나지 못해 몹시 아쉬웠다. 이 사람은 홍원(洪原)37) 사람이다. 무침교(無沈橋)38)의 진사 송현재(宋顯載) 집에 찾아갔는데, 마침 출타하여 만나지 못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회동의 송 장성을 만나 전주 북문의 송민수 서간에 답장을 받고자 한다고 말하니, 공교롭게 몸이 아파서 답장을 쓰지 못했다고 하였다. 그대로 작별하였다. 송지순의 집으로 내려와 작별한 뒤에 낙동(洛洞)의 구백(舊伯) 이광문 집으로 와, 잠시 만나고 나서 작별하였다. 용동으로 오니 자윤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개간소(開刊所)의 여러 사람과 작별하고 주인집으로 돌아왔다.아침을 먹은 뒤에 정동으로 가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는 길에 확교(確橋)39)의 송 판서 집에 들렀으나, 송 판서가 출타하여 작별할 수 없었다. 다만 그 아들 송지학(宋持學)과 작별하고 나와 주인집으로 왔다. 차동(車洞)40)으로 가서 민 석사와 작별하고 오니 공서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에 정동의 석사 이혜길이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날이 저무는 바람에 출발하지 못하고 그대로 머물렀다. 그러므로 저녁을 먹고 난 뒤 정동에 와서 묵으라고 간절히 부탁하고 갔다. 저녁을 먹은 후 정동으로 갔다. 밤에 비가 내렸다. ○朝前, 與子允往啓聖祠, 見金八柱, 移時談話。 仍爲作別, 下來景慕宮, 問張守門將仁源出番與否, 則早朝出番云。 故直向波川洞其家, 則食後出他, 故仍爲不見, 悵悵。 此人卽洪原人也。 尋往無沈橋宋進士顯載家, 則適出他不見, 來路入晦洞見宋長城, 以完北宋民洙書簡受答爲言, 則適以身病不爲修答云。 仍爲作別。 下來宋持淳家, 作別後, 來洛洞舊伯李光文家, 暫見後, 仍爲作別。 而來龍洞, 則子允來待矣。 與開刊所諸人作別, 來主人家。 朝飯後, 往貞洞暫話。 來入確橋宋判書家, 判書適出他, 不得作別。 只與其子持學作別, 出來主人家。 往車洞與閔碩士, 作別而來, 則公瑞來待矣。 午後貞洞李碩士惠吉來訪談話, 以日暮之致, 不得發程, 仍留。 故夕飯後, 來留貞洞之意, 懇托而去。 夕食後, 往貞洞。 夜雨。 계성사(啓聖祠) 서울시 문묘(文廟) 안에 공자(孔子) 등 다섯 성현의 아버지를 모신 사당이다. 경모궁(景慕宮) 서울시 종로구 창덕궁에 있는 사도세자(思悼世子)와 그의 비(妃) 헌경왕후(獻敬王后)의 사당이다. '경모전(景慕殿)'이라고도 했다 홍원(洪原) 함경남도(咸鏡南道)의 남부해안 중앙에 위치하는 군이다. 무침교(無沈橋) 서울시 중구 예관동과 충무로5가 부근에 있던 다리이다. 청계천의 지류인 묵사동천(墨寺洞川)에 있던 다리로 '물에 잠기지 않는 다리'라는 의미이다. 김정호의 <대동지지>와 <수선총도> 및 <슈션전도>에는 이 다리 이름이 '상무침교'로 표기되어 있다. 따라서 무침교와 상무침교를 혼용해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일명 '무침다리' 혹은 무침교를 줄여서 '침교'라고도 불렀다. 확교(確橋) 서울시 중구 서소문동과 신창동(새창골) 북쪽에 있던 다리이다. 1966년 발간된 ≪한국지명총람≫에 의하면 이 고을에 학다리가 있어 마을 이름이 학교동(鶴橋洞)이 되었다고 하며, 일명 확교(確橋)라고도 불렀다. 차동(車洞) 중구 의주로1가ㆍ순화동에 걸쳐 있던 마을로서, 수렛골을 한자명으로 표기한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추모동'이라고도 하였는데, 이는 조선 숙종의 계비 인현왕후가 태어난 터에 비석을 세우고 그를 추모했던 데서 붙여진 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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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十四日 ○아침에 나와 주인집으로 돌아왔다. 애초 일찌감치 출발할 예정이었으나 궂은 날씨 탓에 그대로 아침을 먹었다. 종일 비가 그치지 않았다. 오랜 가뭄 끝에 이렇게 단비가 내리니 매우 기쁘고 다행이다. ○朝出, 來主人家。 初以早發爲定矣, 以雨戱之致, 仍朝飯。 終日雨不止。 久旱之餘, 得此好雨, 忻幸忻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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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二十日 ○아침 먹기 전에 들어가 장석(丈席)을 뵈었다. 일행이 장석을 만나고자 하였으므로 먼저 얼굴을 돌려 나왔다. 아침을 먹은 뒤에 일행과 들어가 장석을 뵙고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옥이 《충열록(忠烈錄)》 1권을 드렸다. 그길로 하직하고 나와 출발하였다. 신탄(新灘) 저자 주변에 이르러 기주(欺酒)를 사서 먹었다. 신탄을 건너 유성(油城) 저자 주변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성전(星田)52)의 집성사(集成祠)53)에 들러 참배를 하고 봉심(奉審, 사당을 살핌)을 하였다. 곧 주부자(朱夫子)와 송우암(宋尤菴) 두 선생의 영정이었다. 주부자의 영정 위에는 '문공 회암 주선생 진상(文公晦菴朱先生眞像)'이라고 쓰여 있었다. 우암의 영정 위에는 '문정공 우암 송선생 진상(文正公尤菴宋先生眞像)'이라고 쓰여 있었다. 봉심하고 난 뒤에 강당으로 나와 잠시 쉬고 나서 출발하였다. 산정령(散亭嶺)을 넘어 척후(尺後) 주막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50리를 갔다. 절구 1수를 다음과 같이 읊었다.천 리 먼 노정을 멀다 않고 찾아오니(千里長程不遠尋)선연히 남은 영정이 예나 지금이나 같네(分明遺像古猶今)종종걸음으로 뜰을 지나 참배하니 비루한 마음 없어지고(趨庭瞻拜消鄙吝)저절로 천추토록 경외하는 마음이 생기네(自發千秋敬畏心) ○朝前, 入謁丈席。 同行欲見丈席, 故先爲旋容出來。 朝飯後, 與同行入謁, 移時談話。 汝玉納《忠烈錄》一卷。 仍爲下直而出來, 發程。 至新灘市邊, 買欺酒以食。 越新灘, 抵油城市邊午飯。 歷入星田集成祠, 參謁奉審。 卽朱夫子、宋尤菴兩先生畵像。 如朱夫子影幀上, 書文公晦菴朱先生眞像;尤菴影幀上, 書文正公尤菴宋先生眞像。 奉審後出來講堂, 暫憩後登程。 越散亭嶺, 抵尺後酒店留宿。 行五十里。 吟一絶曰: "千里長程不遠尋, 分明遺像古猶今, 趨庭瞻拜消鄙吝, 自發千秋敬畏心。" 성전(星田) 대전시 유성구 학하동 별밭 마을이다. 집성사(集成祠) 선조 혹은 선현의 신주나 영정을 모셔두고 배향하는 곳으로 사당, 사우라고 한다. 고려말 주자학이 도입되면서 향촌 교화 정책의 일환으로 건립되었다. 특히 중국 남송 때의 유학자 주희를 모시는 사당이 많이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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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初七日 ○밥을 먹은 뒤 10냥을 개간소에 냈다. 저녁 무렵 관정동으로 돌아왔다. 저녁을 먹은 뒤 정동으로 가 이혜길 집에서 묵었다. ○食後, 持十兩錢納刊所。 夕時還冠井洞。 夕飯後, 往貞洞留李惠吉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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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十五日 ○밥을 먹은 뒤 여러 벗과 종루로 갔다. 비 때문에 발이 묶여 저녁때까지 비가 개기를 기다렸다. 나는 정동으로 들어가 유숙하였다. ○食後與諸益往鍾樓, 滯雨夕間待霽。 余則入貞洞留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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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二十六日 ○아침 전 북문 밖 송약수(宋若洙) 집으로 가니 형제가 모두 없어서 도로 주인집으로 왔다. 아침을 먹기 전에 읍인 박광옥(朴光玉)이 관원을 데리고 부중(府中)으로 찾아왔다. 아들이 보낸 편지를 열어보니 집안은 별고 없고 14일에 손자를 낳았다고 하였다. 우리 집안의 경사로 아주 큰 행운이었다. 예전에 서울에 있을 때 꾼 꿈과 점괘가 실로 헛되지 않았다. 밥을 먹은 뒤 율지와 함께 영주인(營主人)129) 집으로 가서 흥양 하인을 만났다. 돌아서 남문 밖으로 가서 류석하(柳錫夏)를 찾았는데 마침 출타하고 없었다. 그길로 동문으로 들어가 북문으로 나왔다. 마침 종인(宗人, 먼 일가) 상준(相俊)을 만나 송약수 씨 형제가 들어왔는지를 상세히 물으니, 오늘은 들어오지 않는다고 하여 주인집으로 돌아왔다. 노자가 부족해서 김제의 이 상인(李喪人)에게 1냥을 꾸었다. 그길로 출발하여 동문(東門)을 나와 법사산(法司山)의 노원(魯源) 집으로 가서 유숙하였다. 회동의 일가 송 장성의 서간을 전하고 여산의 석회 채굴을 금하는 일에 대해 상의하였는데, 11월 시사(時祀) 때 각처의 일가와 상의하여 소장을 올리겠다고 하였다. ○朝前, 往北門外宋若洙家, 則兄弟皆不在, 還來主人家。 朝飯前, 邑人朴光玉陪官行來, 府中來訪。 傳家兒書披覽, 則家中無故, 十四日得男孫云。 吾家之慶, 極爲大幸。 向日在京時, 夢中與占理, 實不虛矣。 食後, 與聿之往營主人家, 見興陽下人, 轉向南門外, 訪柳錫夏, 適出他 仍入東門出北門。 適相俊宗人, 詳問5)若洙氏兄弟入來與否, 則今日不入云, 故還來主人家。 以路貰之不足。 推一兩錢於金堤李喪人。 仍爲發程, 出東門, 往法司山魯源家留。 傳晦洞長城宗氏書簡, 相議於礪山禁灰事, 則至月時祀時, 與各處宗人相議入呈云。 영주인(營主人) '영저리(營邸吏)'라고도 하며, 감영(監營)과 각 고을의 연락을 맡아보는 아전을 말한다. 問 저본에는 '聞'으로 되어있으나 문맥상 수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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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二十九日 ○밥을 먹기 전에 출발하여 선제정(先帝亭) 주점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부용치(芙蓉峙)를 넘어 창화(昌華) 객점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상동(上東) 주막에 이르자 날이 벌써 저물었다. 마침 강성주(姜聖周)를 만나 그와 함께 유숙하였다. 80리를 갔다. ○食前發程, 抵先帝亭酒店朝飯。 越芙蓉峙, 抵昌華店午飯。 抵上東幕日已暮矣。 適逢姜聖周。 與之同留。 行八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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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二十三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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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二十二日 주동(鑄洞)에 가서 정담을 나누고, 오는 길에 유수(留守) 댁에 들어가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왔다. 往鑄洞穩話, 來路入留守宅暫話, 因爲出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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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十三日 일찍 주동(鑄洞)에 가서 정서(正書)를 마치고 왔다. 早往鑄洞, 盡書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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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十四日 환궁하셨기 때문에 석종(石宗)에 가서 상언(上言)을 올리고 관광하다가 왔다. 이날은 극도로 추웠다. 還宮故, 往石宗呈上言, 爲觀光而來。 是日極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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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十八日 일찌감치 주교(舟橋) 송상원(宋尙元)의 집에 가서 흥양 가는 인편을 물어보고 왔다. 早往舟橋 宋尙元家, 探問興陽往便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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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二十四日 아침 전에 한동(翰洞)에 가서 이 흥양(李興陽)을 만나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정오 무렵에 출발하여 군포막(軍布幕)에 이르러 묵었다. 朝前往翰洞, 見李興陽作別。 午間發行, 至軍布幕留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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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十九日 춥다. 아침을 먹기 전에 내려와서 사헌과 함께 주동(注洞)으로 가서 종일토록 있다가 왔다. 寒。 食前下來, 與士憲往注洞, 終日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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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十八日 근동(芹洞)에 가서 이 석사(李碩士)와 이 흥양(李興陽)을 만나고 차동에 머물렀다. 往芹洞見李碩士及李興陽, 留車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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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二十一日 유둔(油屯) 시장 근처에 이르러 말에게 꼴을 먹이고 요기하였다. 이에 용전(龍田)에서 머물렀다. 到油屯市邊, 秣馬療飢, 因留龍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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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正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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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初三日 매우 늦게 길을 떠나 과역(過驛)에 이르러 말에게 꼴을 먹였다. 마침내 집으로 돌아왔다. 最晩發程, 至過驛秣馬後, 遂還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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