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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初五日 날씨가 조금 나아졌다. 日氣差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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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初四日 날씨가 조금 맑아져 다행이지만 조사(朝士, 조정의 관리)가 사망했다는 기별이 하루에 네다섯 명 아래로 내려가지 않으니 두려움을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저녁 무렵 다시 쌀쌀해지면서 비가 내렸다. 日氣稍淸和, 可幸, 但朝士死亡之奇, 日不下四五人, 懍懍不可言。 夕間復爲陰冷而雨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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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十一日 청파(靑坡)에 가서 권 서방(權書房)에게 1냥 3전 4푼의 채전(債錢, 남에게 빚을 진 돈)을 얻어 오는데 추웠다. 往靑坡, 得一兩三戔四分債錢於權書房而來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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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十九日 일찍 밥을 먹은 뒤에 길을 나섰다. 과역(過驛)에 이르러서 점심을 먹고 왔다. 早飯後登程, 至過驛中火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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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十二日 몹시 추웠다. 아침을 먹기 전에 주동(注洞)에서 종을 보내 돈을 재촉하였으므로 아침을 먹은 뒤에 1냥을 가져와서 자(子)에게 주고 왔다. 極寒。 朝前注洞送奴促錢, 故食後持一兩, 給子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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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十三日 또 몹시 추웠다. 又極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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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十二日 동이 틀 무렵에 길을 나서 모란원(牧丹院)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금강(錦江)을 건너 효포(孝浦) 부동리(釜洞里)의 이 석사(李碩士) 집에 머물렀다. 平明登程, 至牧丹院中火。 渡錦江, 留孝浦 釜洞 李碩士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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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十四日 장선(長善)에 머물렀다. 사헌(士憲)의 집 아이, 인서(仁瑞)와 옥계동(玉溪洞)17)에 들어가 수석점(水石店)을 두루 살펴보고 우암(尤菴)의 〈옥계동(玉溪洞)〉 시에 차운하였다.바람과 안개 모두 비단 주머니에 거두었는데(風烟都括錦囊收)맑은 시내는 바위 돌에 굽이쳐 흘러가누나(只有淸溪噴石流)흘러가는 것이야 멈추게 할 수 없나니(逝者縱然留不得)오직 원천18)에 내맡길 뿐이라오(惟能管領發源頭)또 읊었다.빽빽한 나무숲에 기이한 바위 적으나(樹密奇巖小)깊은 산속에 괴이한 새들 많구나(山深怪鳥多)쏟아지는 폭포소리 참으로 장쾌하니(最宜懸瀑響)원망하는 듯 노래하는 듯하구나(如怨又如歌)이어 한 고개를 넘어 안심사(安心寺)19)에 들어가니, '적설루(積雪樓)'라는 세 글자가 있는데, 이는 우옹(尤翁)이 쓴 것이다. 벽에는 점필재(佔畢齋), 율곡(栗谷), 중봉(重峯) 세 선생의 사운(四韻) 시가 있었지만 어수선해서 미처 화답할 수가 없었다. 저녁 무렵에 내려와서 사헌의 집에서 머물렀다. 留長善, 與士憲家兒及仁瑞, 入玉溪洞, 周觀水石店, 次尤菴 玉溪洞韻, "風烟都括錦囊收, 只有淸溪噴石流。 逝者縱然留不得, 惟能管領發源頭。" 又吟, "樹密奇巖小, 山深怪鳥多。 最宜懸瀑響, 如怨又如歌。" 因踰一嶺, 入安心寺, 額有積雪樓三字, 而是尤翁筆。 壁有佔畢齋、栗谷、重峯三先生公字四韻, 而擾未及奉和。 夕時下來, 留士憲家。 옥계동(玉溪洞) 전라북도 완주군 옥계동으로, 운주면 산북리 대둔산과 천등산 두 산 사이 협곡에 있었다. 원천 주자의 시 〈관서유감(觀書有感)〉에 "조그맣고 모난 연못에 한 거울이 열리어, 하늘빛 구름 그림자가 함께 배회하네. 묻노니 어찌하면 저처럼 맑을까, 원천에서 콸콸 쏟아져 내려서라네.[半畝方塘一鑑開, 天光雲影共徘徊. 問渠那得淸如許, 爲有源頭活水來. ]"라고 하여, 학문을 통해 심성을 수양하는 즐거움을 읊었다. 안심사(安心寺)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대둔산(大芚山)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 자장율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안심사(安心寺) 경내(境內)에 '적설루(積雪樓)'가 있었는데 지금은 폐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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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三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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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初二日 다시 들어가 고하였는데, 장석(丈席)은 담벽증(痰癖症)과 치질(痔疾)로 간혹 말을 주고받는 사이에 끙끙 앓았다. 이에 허락을 받지 못하고 물러 나왔으니 걱정스럽다. 更爲入告, 而丈席以痰癖痔疾, 間或呻吟於酬酢之間, 故不得受許而退, 悶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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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初五日 사랑에 머물며 때때로 나아가고 물러 나왔다. 산정(刪正)도 하였다. 留廊底有時進退, 亦爲刪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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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初六日 오촌(鰲村)에 들어가 절구 한 수를 지었다.십여 일 온갖 고초 겪은 끝에(萬苦千辛十日餘)이제야 간신히 인후한 고을에 이르렀다네(間關始到里仁廬)마을 앞 흐르는 냇물 드넓고 뒷산은 높은데(前川水闊山高後)그 사이 초가 있어 장자13)가 살고 있네(中有茅宮長者居)윤익(允益)이 차운하였다.고향을 뒤로하고 북쪽 향해 온 지 십여 일(背南首北十日餘)험한 여정 끝에 이곳에 이르렀어라(間關行色到此廬)물 따라 밀려온 자라가 이른 듯한 마을인데(水流鰲退格當村)그 위에 하늘이 내린 장자가 살고 있구나(其上天然長者居)이찬(而贊)이 용담(龍潭) 정재팔(丁載八)에게 시를 지어 주었다.객지에서 같은 도의 친구를 만나니(客裡相逢同道友)예전에 본적 없어도 더욱 오랜 친구 같아라(曾雖無面倍知舊)함께 모여 놀지도 못하고 도로 이별하는데(團遊未極還爲別)어느 때나 다시 손을 맞잡을른지 모르겠네(不識何時更握手)나도 그에게 주었는데, 시는 다음과 같다.오촌 문하 높은 제자 중 이런 사람 있다니(鰲門高弟有斯人)그 용모 단아하고 몸가짐 신중하여라(端雅其容謹飭身)오손도손 맘껏 즐기지 못하고 이별하는데(未極團欒旋贈別)푸르고 푸른 강가 나무 새봄을 둘렀구나(蒼蒼江樹帶新春)윤익이 주었는데, 시는 다음과 같다.객지에서 만난 사람과 친구를 맺었나니(客地逢人結親友)교분의 깊고 친밀함이 옛 친구 같아라(交契深密如故舊)가련타 한 자리에 모여 얼마간 얘기 나누는데(可憐一席多少話)머지않은 훗날 다시 손을 맞잡을 수 있으려나(早晩他時更握手)내가 차운하였다.고상한 친구 처음 만나 이야기를 나누니(逢初敍話是高友)오랜 친구인 듯 한참을 앉아 회포를 풀었네(坐久論懷若故舊)몇날 며칠 밤 베개를 나란히 하여도 부족하니(聯枕數宵猶不足)회화나무 꽃 노래지면14) 다시 만나 손을 맞잡으세나(槐秋爲約又摻手)또 절구 한 수를 읊었다.선조의 일 경영하려 현자의 집에 이르렀는데(經營先事到賢門)다행히 저버리지 않고 정성스런 은택 베푸시네(幸被不遐眷眷恩)그믐 이래로 실컷 취하고 배불리 먹으니(承晦以來精醉飽)한 무더기 화한 기운15)에 사시가 훈훈하네(一團和氣四時薰) 入鰲村, 吟一絶曰: "萬苦千辛十日餘, 間關始到里仁廬。 前川水闊山高後, 中有茅宮長者居。" 允益次曰: "背南首北十日餘, 間關行色到此廬。 水流鰲退格當村, 其上天然長者居。" 而贊贈龍潭 丁載八韻曰: "客裡相逢同道友, 曾雖無面倍知舊。 團遊未極還爲別, 不識何時更握手。" 余贈之曰: "鰲門高弟有斯人, 端雅其容謹飭身。 未極團欒旋贈別, 蒼蒼江樹帶新春。" 允益贈之曰: "客地逢人結親友, 交契深密如故舊。 可憐一席多少話, 早晩他時更握手。" 余次曰: "逢初敍話是高友, 坐久論懷若故舊。 聯枕數宵猶不足, 槐秋爲約又摻手。" 又吟一絶曰: "經營先事到賢門, 幸被不遐眷眷恩。 承晦以來精醉飽, 一團和氣四時薰。" 장자 '장자(長者)'는 덕망이 있는 사람을 뜻으로, 여기서는 오촌 송치규를 가리킨다. 회화나무 꽃 노래지면 원문의 '괴추(槐秋)'는 홰나무 꽃이 누렇게 변할 무렵의 가을이라는 뜻이다. 당(唐)나라 때 과거에 실패한 응시생들이 6월 이후 계속 장안(長安)에 머물러 공부하면서 서로 간에 시험 문제를 출제하여 실력을 점검한 뒤 홰나무 꽃이 노랗게 될 즈음에 해당 관원에게 새로 지은 글을 작성하여 천거되기를 원했으므로 '홰나무 꽃이 노래지면 수험생들이 바빠진다.[槐花黃, 擧子忙.]'라는 말이 유행했다. 《南部新書 卷乙》 한 무더기 화한 기운 사양좌(謝良佐)가 정호(程顥)의 인품을 평하기를 "명도 선생은 온종일 단정히 앉아 있을 때에는 흙으로 만든 소상과 같았으나, 사람을 대하면 완전히 한 덩어리의 화기셨다.[明道先生, 終日端坐, 如泥塑人, 及至接人, 則渾是一團和氣.]"라고 하였다. 《近思錄 卷14 觀聖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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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初七日 아침을 먹기 전에 남평(南平) 댁에 가서 문병하고 왔다. 이는 병이 든 뒤에 처음으로 나갔다 들어온 것이다. 오후에 비가 온종일 내렸다. 朝前往南平宅, 問病而來, 此是病後, 初出入也。 午後雨作終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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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二十二日 여러 날을 머물러 있으면서 청한 문자를 받아가려는 생각에 동행 윤익(允益)을 오후에 행장을 꾸려 내려 보냈다. 객지에서 서로 헤어지니 서글픈 마음을 말로 다할 수가 없었다. 欲爲多日留連, 奉請文字受去之意, 同行允益, 午後治發下送。 客裡相分, 悵懷不可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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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四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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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년(신미) 1811年(辛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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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춘 仲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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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춘 仲春 아! 이는 선고(先考) 절와부군(節窩府君)1)께서 우리 집안의 보첩(譜牒)과 선조 충강공(忠剛公)의 시호(諡號)를 청하는 일로 서행(西行)한 것을 기록한 일기(日記)이다.아! 선조가 아름다운 행적을 남겼는데도 자손이 그것을 기술하지 않는다면 이는 자기 선조를 잊어버린 것이요, 선조가 아름다운 행적이 없는데도 자손이 거짓말을 꾸며서 치켜세운다면 이는 자기 선조를 기만한 것이다. 잊어버린 것과 기만한 것이 비록 성격은 다르다 할지라도 불의(不義)의 나락에 떨어지는 것은 매한가지이다. 그러므로 문인(文人)이나 학사(學士)들이 그 선조의 덕을 스스로 기술한 것은 이루 다 기록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태사공(太史公) 사마천(司馬遷)은 스스로 그 세가(世家)의 실보(實譜)를 기술하여 선열(先烈)을 잊지 않았으며, 주자(朱子) 또한 위옹(韋翁)2)의 행록(行錄)을 기술하되 선조의 뜻을 기만하지 않았으니 후세 사람들이 이를 훌륭하게 여겼다. 불초가 비록 옛사람의 만분의 일이라도 감히 바랄 수는 없지만 어찌 감히 거짓말로 꾸며 선조의 덕을 기만하겠는가.아! 우리 선고(先考)께서는 충효 집안의 명성을 잘 따라 선업을 빛내고 후손을 위하는 것으로 자신의 책무를 삼아 10여 년 동안 서울을 오르내리는 것이 거의 수십 차례였는데, 시호를 내려 주는 은전(恩典)이 특별히 내려 백대(百代)의 보첩(譜牒)이 능히 완성되었다.아! 진실로 우리 선조의 순수한 충성과 아름다운 절의가 대범하고 특출한 것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조정의 은전을 받을 수 있었겠는가. 또한 우리 선고(先考)의 선조를 위한 성의(誠毅)가 지극한 것이 아니었다면 또한 어찌 그 일을 이룰 수 있었겠는가. 다만 선인(先人)이 뜻을 두었으나 아직 이루지 못한 것이 남아 있다. 이는 근대(近代) 양세(兩世)에 시호(諡號)를 청하는 일로 여러 차례 상언(上言)을 올렸는데 끝내 은전을 받지 못하였다. 이 때문에 통탄스럽기 그지없지만, 깊이 생각해보건대 한 집안의 대사가 동시에 이루어진다는 것이 일의 형편상 끝내 쉽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혹 시운이 돌아오지 않아서 그러한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아! 일의 전말이 여기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으니, 불초(不肖)가 감히 덧붙일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건대 위의 기록은 햇수에 따라 기록되어 있어 혹은 물에 잠겨 자획(字畵)을 판별하기도 어렵고 혹은 먼지 속에 파묻혀 문리(文理)를 이해하기도 어려워 세월이 오래되면 장차 유실(遺失)되고 훼손되는 결과를 면치 못할 것 같았다. 그러므로 감히 이를 수집하고 베껴 써서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 우리 집안의 유물3)로 만들고, 장차 우리 선고(先考)의 자손 된 자들로 하여금 그 일을 생각하여 척연(惕然)히 계술(繼述, 선대의 사업을 계승)하게 하고 이 책을 열람하여 출연(怵然)히 느끼고 사모하여 백세(百世)토록 실추되지 않게 한다면 또한 어찌 선조를 계승하고 후손에게 복록을 물려주는 도리가 아니겠는가. 이에 감히 외람됨을 잊고 대강의 전말을 서술하였다.숭정기원 후 네 번째 신미년(1811, 순조11) 중춘에 불초고(不肖孤) 석년(錫年)이 피눈물을 흘리며 삼가 쓰다.서행록(西行錄) ③ - 송석년(宋錫年) 嗚呼! 此先考節窩府君, 爲吾家譜牒與先祖忠剛公請諡事, 西行錄日記也。 噫!, 先祖有美實, 而子孫不述焉, 則是忘其先也; 先祖無美實, 而子孫飾虛辭稱道之, 則是誣其先也。 忘與誣雖殊, 其陷於不義則一也。 是故文人學士, 自述其先德者, 不可殫記。 太史遷自述其世家實譜, 而不忘其先烈, 朱夫子亦述其韋翁行錄, 而不誣其先志, 後世韙之。 不肖雖不敢望古人之萬一, 而安敢飾虛辭誣先德也? 嗚呼! 吾先考克遵忠孝家聲, 以光先裕後爲己責, 十餘年間, 上下京洛將至數十度, 而贈諡之恩典特蒙, 百代之譜牒克成。 噫! 苟非吾先祖精忠姱節磊落偉卓, 安能蒙朝家之全? 亦非吾先考爲先誠毅之極, 亦安能就其事乎? 但先人之有志, 未就者存焉。 近代兩世請諡事, 累呈上言, 終未蒙恩典。 庸是爲痛遺恨, 盖深竊想一家之大事, 同時幷成, 事勢之終未易而然歟? 抑或運會之不迴而然歟? 嗚呼! 事之顚末, 詳記於是錄, 則非不肖所敢贅者, 而竊恐右錄隨年隨記, 或水沈而字畵難辨, 或塵埋而文理難曉, 歲久年深, 將未免遺失而毁傷, 故敢此收集謄, 合爲一卷, 以爲吾家之靑氊, 將使爲吾先考之子孫者, 想其事而惕然繼述, 覽是編而怵然感慕, 以至百世而不墜, 則亦豈非承先貽後之道也耶? 玆敢忘猥, 略敍顚末。崇禎紀元後, 四辛未之仲春, 不肖孤 錫年, 泣血謹書。 절와부군(節窩府君) 송지행(宋志行)을 가리킨다. 부군(府君)은 죽은 아버지나 남자 조상을 높여 이르는 말이다. 위옹(韋翁) 주자의 부친인 위재(韋齋) 주송(朱松, 1097~1143)으로, 남송 고종 때의 문신이자 학자이다. 위재는 호이고 자는 교년(喬年), 시호는 헌정(獻靖)이다. 남송 고종 때 이부랑(吏部郞)의 벼슬을 지냈으나 간신 진회(秦檜)가 주도하는 금나라와의 화의에 반대하다가 폄적되었다. 저서로 《위재집(韋齋集)》 등이 있다. 청전(靑氈) 대대로 전승된 가업(家業)이나 한 유물을 가리킨다. 진(晉)나라 왕헌지(王獻之)가 누워 있는 방에 도둑이 들어와서 물건을 모조리 훔쳐 가려 할 적에, 그가 "도둑이여, 그 푸른 모포는 우리 집안의 유물이니, 그것만은 두고 가는 것이 좋겠다.[偸兒! 靑氈我家舊物, 可特置之.]"라고 하자, 도둑이 질겁하고 도망쳤다는 고사가 있다. 《晉書 卷80 王羲之列傳 王獻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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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初十日 ○아침 전에 정동으로 가서 잠시 얘기를 나누고 돌아왔다. 밥을 먹은 뒤 용동으로 가서 종일 수정 문적을 보고 왔다. ○朝前, 往貞洞, 暫話而來。 食後, 往龍洞, 終日見修整文蹟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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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初八日 ○밥을 먹은 뒤 용동으로 가서 종일 놀며 쉬다가, 돌아오는 길에 동구안(돈화문(敦化門) 앞길) 약방으로 가서 내일 거동(擧動, 임금의 행차)할 때 여기 와서 구경하겠다는 뜻을 언급하고 주인집으로 돌아왔다. ○食後, 往龍洞終日遊憩, 而來路, 往洞口內藥房, 以明日擧動時, 來此觀光之意言及, 而還主人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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