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懶齋鄭公墓誌銘【幷序】 懶齋鄭公諱澤明惠源。隱居行義於箕東之月岳里。敎授生徒。鄕人稱鄕丈。學者稱文丈。門徒之盛彬彬焉。有河汾湖蘇之風。蓋近古湖右賢德也。歿後百餘年。狀德闕焉。五代孫一燮。質以平日所聞家庭之言。手草爲狀。問銘于駿善。駿善老病文下。不敢承當。辭之固而請愈勤。謹按。公晉陽人。晉陽伯忠壯公諱璜其顯祖。諱咸道縣令。有三子曰維監高山。曰綿監橫城。曰紬監務安。嘗於壽宴。掛四印於杏亭。後人因名四印亭。橫城生諱德新司直。生諱繼童世宗廟左贊成。三傳而諱宗舜水軍節制使。生諱主一部將。生諱㦢號月村別提。壬辰之燹。與李忠定貴倡義。生諱好禮號雲谷。丁卯虜警。從沙溪金先生倡義。後除縣監高祖諱國相從仕郞。有孝行。屢登剡薦。曾祖諱夢彪。祖諱夏基。考諱守鐸。本生諱碩侯。幷以文行著。妣咸平李氏苾女。竹谷長榮後。有婦德。以英宗己未二月十日生公于月岳。幼而聰穎異凡兒。才上學記性絶人。不煩程督而藝業日進。因授以孝經小學。旣成誦。大書于壁曰。朱二夫子之書。皆以孝爲首。人子之道當如是也。長老期以遠到。及長厲志篤學。四子五經循環熟讀。尤喜洛閩諸書。潛心硏究。弗明弗措。士友間望實俱隆。天性至孝。奉養二親。極其愉婉。與二弟友愛篤至。推以及於鄕黨宗族。憂樂與共。親癠危劇。至誠祝天。迨其遭憂。擗踊號痛。絶而復蘇襲斂諸節。一遵家禮。及葬不以寒暑廢上塚。三年如一日。前後喪皆然。鄕隣皆感服焉。不屑擧業。育德丘園。專意學問。成就後進。各因其材以敎之。及門之士。率皆勤飭修行。不問可知爲先生弟子。公可謂不負所學矣。李知事弘稷相與講磿道義。獎詡殊深。李公當時賢大夫。與之觀善則亦可以見木知山也。歿于壬午十月喪出遠近士友爲之痛惜曰斯文喪矣。門人加麻者數十人。葬在侍墓洞壬坐原。齊長澤高氏。應旻其考。龜巖敬祖後。柔嘉淑哲。婦德咸備。擧二男一女。長甫奎次亨模。女魯致爀。孫鍾瑾鍾駿。鍾駿出後嗚呼。公挺生名門。濟之以學問之功。卓立昭曠。修之以躬行之實。寬仁而樂道。誨入而不倦。有足以矜式鄕閭也。門生相與修契。置田助祭。平日敎育之義可見。鄭公漢楫李公命緖。皆公知德也。一則稱以湖南大儒。一則歸之鄕先生。二公之言。足可徵信。又何待余言謹據其狀。略加刪潤而爲之銘。銘曰。晉陽有人。行修德崇。未施所抱。利用擊蒙。康成之鄕。安定之風。彼亦芾者。其孰如公。侍墓之洞。四尺有封。勿傷梓木。尙惟敬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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謙窩梁公墓誌銘【幷序】 公諱澣觀字宗于謙窩號也。梁氏系出耽羅。顯于羅麗。累公累卿。入我朝諱彭孫。世稱學圃先生。官弘文校理。與靜菴趙先生相友善。幷享竹樹書院。生諱應箕校尉。生諱山立贈戶參。生諱仁容僉正築松石亭。以山水自樂。生諱渭南進士參奉。以孝旌閭。五世以上。高祖諱禹界贈寺正。曾祖諱之瀷贈承旨。祖諱泰夏僉正。考諱命馹號月軒有文行。妣羅州林氏。僉樞簦其考諱。婦德咸備英廟庚午十月十八日生。公于綾州月谷里第。幼而儀容端正。姿稟溫良。言動不忘。進退有節。甚得父母之愛。才上學文藝日就。長老期以遠大。及長學問優長。交遊日廣。若可以拾靑紫步亨衢。而素性澹雅。未嘗隨俗俯仰。其志尙所存。此可見矣。公於兄弟序居二。月軒公欲使分異。公辭曰古有緦服同爨。今父母俱存。何忍離側分居乎。月軒公知其意。不使强焉。自是兄弟五人侍側怡愉。承順湛樂。鯉庭之趨。春津之美兼之矣。迨其丁憂。擗踊之節。哭泣之哀。弔者釀涕。及葬朔望奠墓。風兩不廢。前後喪皆然。蓋其至性天植也。晩築精舍于楊亭小溪上。日與族親賓明。賦詩命觴。逍遙自適。自以少日爲功令所誤。昧於本源。乃取性理書以培養其心地。尢喜施予。宗黨隣里有死喪飢饉者。賙恤之不衰。或有婚嫁失時者。必爲之助資焉。鄕人久而稱頌之。歿于戊辰十一月二十日。葬在松石坊月峯案山丙坐。配全義李氏行醇女。杞川喜熊七世孫。柔嘉淑哲。配君子無失德。無男。所後子永膺。女適幸州奇象春。永膺二子相淳相益。曾玄不盡載。公生長名門。早襲庭訓。持身也淸愼。立心也忠信。子諒樂易。善與人交。至愛好人倫。推善揚美。有足多者。最其孝友之行。人所難及云。嗚呼。以若謙光之德。端確之操。足可以廉貪夫而振澆俗。畢竟命與時違。埋沒於草野。惜哉。公五世孫會石。以其族兄會洛之狀。屬余幽堂之刻。余辭以老病無文。而不擭命。遂節略其狀而爲之銘。銘曰。學圃有孫。謙光美德。孝友爲政。家道雍睦。澹於名利。昭代遺逸。以是銘公。不愧吾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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孝子吳公行狀 公諱達周字允佑。吳氏系出羅州。高麗司正諱敬眞後。屢傳而諱得隣。壬辰之燹殉節。贈掌樂院正。生諱後獻武科咸平縣監。丙子倡義勤王。事載湖南節義錄。寔公五世祖。高祖諱碩贇曾祖諱以福嘉善同樞祖諱赫東考諱光烈。妣咸豐李氏。宗碩其考也。正廟乙巳。生公于州南公樹面上九村第。幼有深愛於父母。稍長器度若成人。早失怙。奉養偏慈。誠敬備至。甘旨之供。定省之禮。一心不懈。母夫人年踰六十。宿患添劇。數月彌留。公殫誠竭慮。百方調治。未獲神佑。病勢甚危。幾乎殞絶。公刲股進血。煮肉以飮。始得回甦。遠近人士無不驚歎。以爲至孝天也。及丁憂。號痛屢絶。能自力爲禮。三年如一日。日上塚拜哭。雖祁寒盛暑。未嘗或廢。以早喪嚴顔。爲一生至恨。每喪餘之日。哀動左右。常如袒括。致哀致慤。率禮罔愆。至行懿蹟。屢登鄕道薦章。而未蒙天褒。識者恨之。圽于純廟壬申十一月二十九日。得年僅二十八。葬于公樹面小雩峯卯坐原。配光山金氏處鳴女。配君子無失德。敎子女以法度。嘗於姑病。嘗糞嘗藥。祝天願代。此可見公修齊之一端也。墓在村西麓西坐。擧一男閨欽。無子。所後子承鉉。鳴呼世降矣俗下矣。人於父母昆弟之間。能盡性知倫者鮮矣。若公可謂盡性知倫者非耶。竊惟割股斷指。雖非君子所許。而苟非誠心所發無一毫私意者。亦何能辨人所難。而少延親壽於幾絶之際耶。以若姿質之美。誠孝之篤。宜得神明所佑。而年又不永。湮沒無聞。天之報施善人。其何如哉。歿後百餘年。公之傍後孫弘植。掇拾其家庭遺蹟鄕道薦章。屬余爲狀。遂不忍終辭。略書之如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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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十七日 아침을 먹고 태평동(太平洞)으로 가서 진사(進士)와 작별하였다. 이어 경성동(京成洞)의 이 임천(李林川) 집으로 가서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에 회동(晦洞)으로 가서 익형(翼亨)씨 형제에게 작별 인사를 하였다. 차동(車洞) 민 석사(閔碩士)의 집으로 갔으나 주인이 부재중이어서 작별하지 못하였다. 이어 민치명(閔致明)의 집에 들렀더니 정성스레 맞이하고는 술을 사와서 권하였다.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눈 뒤에 서소문(西小門) 밖의 이 참봉(李參奉) 집으로 갔는데, 이 참봉은 정묘년에 작고하였고, 그 동생도 작고하였으니 상전벽해(桑田碧海)와 같은 세상43)이라 말할 수 있겠다. 참봉의 아들 희()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주인도 그 부친의 풍도가 있고, 자못 은근한 뜻이 있었다. 또한 술을 사서 올리니 기쁘고도 슬펐다. 이어 작별한 뒤에 약고개[藥峴]44)의 박 영암(朴靈岩) 집에 가서 오위장(五衛將) 송인서(宋璘瑞)의 소식을 물었다. 신문(新門) 밖으로 이주하여 폐문동(閉門洞)의 심 도사(沈都事) 집에 살고 있다고 하였으나 날이 저문 탓에 찾아가지 못하고 주인집으로 돌아왔다. 朝飯往太平洞, 與進士作別。 仍往京成洞 李林川家, 敍話後, 往晦洞, 拜辭于翼亨氏兄弟。 出來車洞 閔碩士家, 則主人不在, 故不得作別。 仍入閔致明家則款接, 仍爲沽酒以勸。 移時敍話後, 仍往西小門外李參奉家, 則參奉丁卯年作故, 其弟氏亦爲作故, 可謂滄桑世界。 只與參奉之子暫敍, 則主人亦有乃父之風, 頗有慇懃之意, 亦以沽酒以進, 可喜可悲。 仍爲作別後, 往藥峴朴靈岩家, 問宋五衛將 璘瑞消息, 則移居于新門外, 居閉門洞 沈都事家云, 而以日暮之致, 不得往尋, 出來主人家。 상전벽해(桑田碧海)와 같은 세상 원문의 '창상(滄桑)'은 창상지변(滄桑之變)으로, 큰 바다가 변하여 뽕나무밭이 되고, 뽕나무밭이 변하여 큰 바다가 된다는 말이다. 흔히 세상의 변화가 매우 심함을 비유하는데,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과 같다. 약고개[藥峴] 지금의 서울시 중구 중림동(中林洞)에 위치한, 만리동(萬里洞) 입구에서 충정로(忠正路) 3가로 넘어가는 고개의 이름으로, 서대문 밖에 있었다. 이곳에 약초를 재배하는 밭이 있던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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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晦日 ○출발하여 묘치(猫峙)133)를 넘어 대초정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광천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나는 원동(院洞)에 들러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에 출발하였다. 저물녘 무동정(舞童亭)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90리를 갔다. ○發越猫峙, 抵大抄亭朝飯。 抵廣川午飯。 余則入院洞暫話後發程。 暮抵舞童亭留宿。 行九十里。 묘치(猫峙) 전라남도 화순군의 동면ㆍ이서면ㆍ동복면이 만나는 경계에 있는 고개로 순천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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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十一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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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初吉 ○새벽에 출발하여 사미정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구암(龜岩)134) 앞에 이르러 율지는 곧장 동림으로 향하고, 나는 장수동(長壽洞)으로 향하였다. 알룡치(謁龍峙)의 강이백(姜利伯) 집에 들러 점심을 먹었다. 마을 뒤 고개를 넘어 수동(壽洞)에 이르렀다. 우선 별 탈 없이 손자가 잘 자라고 있어 다행이었다. 수동 마을 앞에 이르러 마침 류 서방(柳書房) 원거(元擧)를 만났다. 어디 가느냐고 물으니 흥양 간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다음날 동행할 생각으로 함께 들어가 유숙하였다. ○曉發, 抵四美亭朝飯。 至龜岩前, 聿之直向東林。 余則向長壽洞。 入謁龍峙姜利伯家午飯。 越村後嶺, 抵壽洞。 姑無故孫兒善長, 幸幸。 至壽洞村前, 適逢柳書房元擧。 問向何處 則作興陽云。 故明日同行之意, 偕入與之同留。 구암(龜岩)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구강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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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二十四日 ○영윤과 같이 자면서 실로 뜻이 맞아, 절구 한 수를 다음과 같이 읊어서 주었다.우연히 서로 만난 것이 기약해서 만난 것보다 나으니(偶與相逢勝有期)산은 온통 붉은 단풍 들판은 황금빛으로 물든 시절이라(山多紅葉野黃時)하룻밤 나란히 누워 자니 오히려 서글픈 마음만 남기에(一宵聯枕猶餘悵)은근한 마음으로 이별을 아쉬워하는 시를 지어서 주네(贈以慇懃惜別詩)영윤이 차운하여 다음과 같이 읊었다.벗이 먼 곳으로부터 와서 기약도 없이 만났으니(朋自遠方會不期)단풍 물들고 노란 국화 피는 마침 좋은 계절이라(丹楓黃菊正佳時)가슴에 쌓인 회포 다하지 못했건만 도로 이별하니(襟懷未盡還爲別)은근한 마음에 같이 술을 마시며 다시 시를 논하네(慇懃同酌更論詩)율지가 차운하여 다음과 같이 읊었다.세 늙은이 옷깃 나란히 하여 기약이 있는 듯하니(三老聯襟若有期)마침 북쪽 기러기가 남쪽으로 가는 계절이로구나(正當北雁向南時)새벽 창가에 새벽달 희미해질 때 서로 헤어지니(曉窓殘月相分手)아쉬운 작별의 회한이 남아 시를 지어서 드리네(惜別餘懷贈以詩)그길로 헤어져 출발하였다. 여산(礪山)85) 읍 앞 객점에 이르러 밥을 먹기로 하고 황산(黃山)86)과 부여(扶餘)로 가는 노정(路程)을 물었다. 그곳에 들리는 것은 황산의 죽림서원(竹林書院)87)에 참배하고, 그길로 부여로 가서 생원 김호일(金浩一)을 찾아가는 일 때문이었다. 황산에 못미처서 중도에 길을 잃은 것이 수차례여서 간신히 찾아가 황산의 서원 밑에 이르렀다. 먼저 장암(場岩)에서 이 마을로 이거한 송문언(宋文彦)을 찾아갔다. 안부 인사를 나누고 나서 서원을 참배하려는 뜻을 말하고, 이에 모두 원우(院宇)로 갔다. 수복(首僕)을 불러 분부하니, 수복이 재복(齋服, 재계할 때 입는 옷) 2벌을 가지고 왔다. 그러므로 재복을 입고 서원 마당에서 참배하고 신실(神室)로 들어가 봉심(奉審, 사당을 살핌)하니, 정암(靜庵), 퇴계(退溪), 율곡(栗谷), 우계(牛溪), 사계(沙溪), 우암(尤菴) 여섯 분의 선생이 배향되어 있었다. 신실(神室)의 처마 사이에는 '죽림서원'이라고 걸려 있었다, 강당 앞에는 작은 석비가 세워져 있었는데, 앞면에 팔분체(八分體)로 '황산서원비(黃山書院碑)'라고 적혀있었다. 서원 터와 원우(院宇)가 아주 넓고 훤했다.참배하고 나서 《심원록(審院錄)》에 이름을 적고, 송문언을 따라 황산 봉우리에 오르니 송림이 깊고 그윽한 곳에 정자 하나가 있었다. 처마에 '팔괘정(八卦亭)'88)이라는 편액이 있었다. 방안 사방 벽에는 팔괘가 그려져 있었는데 바로 노 선생(송시열)이 그 당시 독서를 하던 당이었다. 지금도 독서하는 두서너 관동(冠童)이 있었다. 당 뒤의 수풀 사이 석벽에는 "청초안(靑草岸), 몽괘벽(夢掛壁), 일감당(一鑑塘), 삼계리(三桂里), 평주도(平疇島)"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는데 모두 노 선생의 필적이었다. 앞에는 큰 바다(금강(錦江)을 말함)가 있고 뒤에는 강경(江鏡)이 있어 매우 아름다운 곳이었으나, 갈 길이 바쁜 관계로 상세히 보지는 못하고 그길로 내려와 술을 사서 서로 마시고 작별하였다. 송문언은 영윤이 알려준 사람이었다. 날이 이미 저물어 급히 강경 마을 앞 나루를 건너 5리를 갔다. 또 굴암(屈岩) 나루를 건너 출발하였다. 석성(石城)89)의 마치(麻峙) 객점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60리를 갔다. 강경은 여염집이 즐비하고, 선박이 왕래하여 원산(元山)보다 못하지 않았다. ○與令倫同聯枕, 實是意同, 吟一絶以贈。 "偶與相逢勝有期, 山多紅葉野黃時。 一宵聯枕猶餘悵, 贈以慇懃惜別詩。" 令倫次曰: "朋自遠方會不期, 丹楓黃菊正佳時。 襟懷未盡還爲別, 慇懃同酌更論詩。" 聿之次曰: "三老聯襟若有期, 正當北雁向南時。 曉窓殘月相分手, 惜別餘懷贈以詩。" 仍爲分袂而登程。 抵礪山邑前店期飯, 問黃山扶餘路程。 仍入者, 欲爲審拜於黃山竹林書院, 仍向扶餘, 訪金生員浩一故也。 未及黃山, 中路失路者數次, 艱尋抵黃山院底。 先訪自場岩移寓於此村宋文彦。 敍寒暄後, 因言瞻拜書院之意, 則仍爲偕往院宇。 招首僕分付, 則首僕持來齋服二領。 故着齋服, 瞻拜院庭, 入神室奉審, 則靜菴、退溪、栗谷、牛溪、沙溪、尤菴六先生配享。 而神室楣間, 揭以"竹林書院"。 講堂前立小石碑, 前面以八分書"黃山書院碑"。 基址與院宇甚宏闊。瞻拜後, 書名《審院錄》, 隨宋文彦上黃山山峯, 則松林深邃之地, 有一間亭閣。 楣間扁以"八卦亭"。 房內四壁畵八卦, 卽老先生當日讀書之堂也。 而至今有數三冠童讀書矣。 堂後林間石壁, 刻"靑草岸、夢掛2)壁、一鑑塘、三桂里、平3)疇島" 皆是老先生筆。 前有大洋, 後有江鏡, 甚佳麗之地, 以行忙之致, 不能詳玩, 仍爲下來, 沽酒相飮而爲作別。 宋則令倫指示之人也。 日已夕矣, 急渡江鏡村前津, 行五里。 又渡屈岩津發。 抵石城麻峙店留宿。 行六十里。 江鏡閭閻之櫛比, 船隻之往來, 不下於元山矣。 여산(礪山) 전라북도 익산의 옛 지명이다. 황산(黃山)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이다. 죽림서원(竹林書院)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에 있는 서원으로 1626년(인조 4)에 세워졌다. 1663년(현종 4)에 중건하였으며, 2년 뒤 1665년 사액되었다. 본래 창건 때에는 지명을 따서 '황산 서원(黃山書院)'이라 하였다. 서원에 제향된 조광조, 이황, 이이, 성혼, 김장생, 송시열의 6인이 모두 문묘(文廟)에 배향된 유현(儒賢)이라 하여 '육현 서원(六賢書院)'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팔괘정(八卦亭)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에 있는 누정으로, 1663년(현종 4)에 송시열이 건립하였다. 석성(石城)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이다. 掛 저본의 '桂'는 송병선(宋秉璿)의 《연재집(淵齋集)》 〈유황산급제명승기(遊黃山及諸名勝記)〉에 의거하여 '掛'로 수정하였다. 平 저본에는 없는 글자인데 송병선(宋秉璿)의 《연재집(淵齋集)》 〈유황산급제명승기(遊黃山及諸名勝記)〉에 의거하여 추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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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二十五日 ○일찍 출발하여 석성읍 앞 콩죽 객점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부여읍 앞에 이르러 김호일이 사는 마을을 물으니 규암(窺岩)90) 마을에 산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규암 나루를 건너 김 생원 집을 찾아갔는데, 사랑채가 마침 비어있었다. 사랑 앞에서 서성거리니 소동(小童)이 안에서 나왔다. 그래서 김 생원의 거취를 자세히 물으니 주막에 갔다고 대답하였다. 소동과 주막집으로 가다가 길에서 김 생원을 만났다. 안부를 묻기도 전에 하는 말이, 수백 리 밖에서 누추한 곳을 찾아준 것이 실로 뜻밖이라고 하였다. 이에 사랑에 들어가 안부를 물으니, 그간에 그 동생 김호선(金浩善)이 부인상을 당했다고 하였다.안채에서 삶은 밤 한 그릇을 대접해 주었다.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모두 나룻가 객점으로 나와 술을 사서 마셨다. 수북정(水北亭)91)에 올라 잠시 구경하였는데 정자는 규암 절벽 위에 있었다. 난간 앞에는 백강(白江)92)이 흐르고, 정자 뒤에는 푸른 벼랑이었다. 곳곳이 높은 봉우리고 사방은 강모래로 정취가 가득하지 않은 곳이 없으니, 눈에 담긴 풍경은 흥양(興陽)의 쌍충사(雙忠祠)93)보다 더 아름다웠다. 정자의 사방 벽에 고인의 제영(題詠)이 많이 있었으나 바빠서 기록하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작은 나루를 건너 백강서원(白江書院)94)에 가서 참배하고 봉심하였다. 신독재(愼獨齋)95) 김 선생과 백강(白江)96) 이 선생이 배향되어 있었다. 《심원록(審院錄)》에 이름을 적었다. 그길로 백강 나루를 건너 김 진사 집으로 들어가 잠시 쉬고 나서 뱃사공을 불러 배를 타고 낙화암(落花巖)97)을 지나 고란사(皐蘭寺)98) 앞에 이르러 육지에 내렸다. 고란사에 오르니 암자는 큰 강가 절벽 아래 있었고, 낙화암은 그 왼쪽에 있고, 조룡대(釣龍臺)99)는 그 오른쪽에 있었다.사방에 펼쳐진 강과 산은 모두 정감에 젖게 하였고, 굽이굽이 흐르는 모래와 강물은 모두 아름답고 수려하였다. 절에는 책을 보는 관동(冠童) 몇 사람이 있었는데 그들과 함께 유숙하였다. 30리를 갔다. 모래는 밝고 물은 푸르며 산은 수려하였지만, 평생 보아온 것이기도 하고 내가 갈 길이 바쁜 관계로, 여러 날 동안 머무를 수가 없어 참으로 안타까웠다. ○早發, 抵石城邑前豆粥店朝飯。 抵扶餘邑前, 問金浩一所居村, 則居在窺岩村云。 故越窺岩津, 訪金生員家, 則舍廊適空。 廊前徘徊之際, 有小童自內而出, 故詳問金生員去就, 則答以往于酒家。 偕小童往酒家, 路上逢金生員。 則寒暄前所言, 數百里之外, 委訪陋巷, 實是意外。 仍入舍廊, 得問伊間, 遭其弟浩善之妻喪云矣。 自內間待之以一器熟栗矣。 移時談話後, 皆出津頭店, 沽酒以飮。 上水北亭暫玩, 則亭在窺岩絶壁上。 檻前百江, 亭後蒼崖。 處處峯巒而面面江沙, 無非多情, 滿目景處, 勝於興陽 雙忠祠矣。 亭之四壁。 多有古人題詠。 而忙未記之可歎。 越一小津, 往白江書院, 瞻拜奉審, 則愼獨齋金先生、白江李先生腏享矣。 書名《審院錄》。 仍越白江津, 入金進士家, 暫憩後, 招津夫乘船, 過落花岩, 抵皐蘭寺前下陸。 上皐蘭寺, 庵在大江上絶壁下, 落花岩在其左, 釣龍臺在其右。 面面江山, 皆是多情;曲曲沙流, 盡爲佳麗。 寺有讀書冠童數人, 與之同留宿。 行三十里。 沙明水碧, 秀麗群山, 平生所見, 以吾行忙之致, 不得數日留連, 可歎可歎。 규암(窺岩)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이다. 수북정(水北亭) 충청남도 부여군 백마강 절벽 위에 있는 누각으로, 광해군 때에 양주 목사로 있던 김흥국(金興國)이 여생을 보내기 위하여 지었다. 백강(白江) 충청남도 부여의 북부를 흐르는 강이다. 쌍충사(雙忠祠) 전라남도 고흥군 도양읍에 있는 사당으로, 조선 전기 무신 이대원(李大源, 1566~1587)과 정운(鄭運, 1543~1592)을 배향하였다. 백강서원(白江書院) 부산서원(浮山書院)을 말한다. 1719년(숙종 45)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김집(金集)과 이경여(李敬輿)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였다. 같은 해에 '부산(浮山)'이라고 사액되어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오던 중,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71년(고종 8)에 훼철되었다. 그 뒤 군수 정연달(鄭然達)을 중심으로 한 지방 유림에 의해 1980년에 복원되었다.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 1574~1656)이다. 자는 사강(士剛)이고, 호는 신독재(愼獨齋)이며,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아버지 김장생(金長生)과 함께 예학의 기본적 체계를 완비하였으며, 송시열(宋時烈)에게 학문을 전하여 기호학파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백강(白江) 이경여(李敬輿, 1585~1657)이다. 자는 직부(直夫), 호는 백강(白江)ㆍ봉암(鳳巖)이며, 본관은 전주이다. 세종의 7대손이며, 할아버지는 첨정(僉正) 이극강(李克綱)이다. 저서로는 『백강집(白江集)』이 있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낙화암(落花巖)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부소산에 있는 바위로, 삼국시대 백제의 의자왕과 관련이 있다고 전해진다. 고란사(皐蘭寺) 충청남도 부여군 부소산에 있는 백제 말기에 창건된 절이다. 앞에는 백마강이 흐르고, 그 뒤 벼랑에 희귀한 고란초가 자생하기 때문에 '고란사'라 불리게 되었다. 조룡대(釣龍臺) 충청남도 부여군 백마강 가에 있는 바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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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十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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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二十五日 비가 왔다. 매우 늦게 출발하여 인주원(仁州院)에 이르러 묵었다. 雨。 最晩發程, 至仁周院留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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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十九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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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二十一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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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二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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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初二日 정오 무렵에 들어왔다. 午間入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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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初一日 새벽밥을 먹은 뒤에 길을 떠나 소령(疏嶺)에 이르러 말에게 꼴을 먹였다. 재동(齋洞)에 이르자 날이 이미 어두워졌다. 曉食後發行, 至疏嶺秣馬。 至齋洞, 日已昏黑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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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三十日 곡성(谷城) 역곡(驛谷)에 이르러 말에게 꼴을 먹이고 요기하였다. 천평(泉坪)에 이르러 묵었다. 至谷城驛谷, 秣馬療飢。 至泉坪留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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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五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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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二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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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卄一日 화옥이 말 때문에 일을 망치게 되어 내지(內地)로 들어갔다고 하였으므로 다시 용전(龍田)에서 머물렀다. 聞華玉致敗於馬事, 入去內地云, 故更留龍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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