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록문화
통합검색플랫폼

검색 필터

기관
유형
유형분류
세부분류

전체 로 검색된 결과 517956건입니다.

정렬갯수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965년 보성향교(寶城鄕校)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寶城鄕校 羅州鄕校 寶城郡鄕校印(4.9×4.5), 寶城郡□□典校之章(2.5×2.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65년 보성향교(寶城鄕校)에서 열부(烈婦) 장씨(張氏)의 행적을 알리며 포양(褒揚)의 은전을 받을 수 있도록 나주향교(羅州鄕校)에서 답문을 보내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의 통문 1965년 보성향교(寶城鄕校)에서 나주향교(羅州鄕校)에 보낸 통문(通文)으로, 보성의 열부(烈婦) 장씨(張氏)의 실제 행적에 대해 알리니 나주향교의 여러 집사(執事)께서 특별히 살펴보고 천양(闡揚)하는 답문(答文)을 보내달라는 요지이다. 보성향교에서 알리고자 하는 장씨는 문강공(文康公) 우산(牛山) 안방준(安邦俊 1573~1654)의 4남 안익지(安益之, 1608~1687) 호 야옹공(野翁公)의 부인으로, 충의공(忠毅公) 장윤(張潤)의 딸이다. 장부인이 시집갔을 때 야옹공이 먼저 풍창(風瘡)을 앓아 농이 온몸에 흐를 정도였는데, 치료를 위해 별도의 방에서 동거하며 더러워진 옷과 이불을 몸소 세탁하여 집안사람들이 보지 못하도록 하였고, 밤낮으로 약을 달였으며, 오래도록 효험이 없이 마침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자, 장부인은 허벅지 살을 조금 베어 죽에 타서 먹게 하여 조금 효험을 보았고, 마침내 양쪽 허벅지가 뼈만 앙상해졌을 때 공이 완쾌되어 향년 83세를 누렸다고 한다. 부인이 죽어서 남편을 따른 경우는 있어도 돼지나 양의 살을 베는 것처럼 자신의 살을 베어서 남편의 병을 낫게 하였으니, 하늘을 감격시킨 이 행위는 옛 열부라도 드문 경우라고 평가하였다. 집안의 명성이 중간에 미약해져서 수백 년 동안 포양(褒揚)의 은전을 받지 못했으므로 유감이 없을 수 없다는 것이다. 장씨 부인의 실제 행적을 대략 써서 진달하니, 첨존(僉尊)께서 열부의 탁월함을 생각하여 다시 무너진 윤강(倫綱)을 붙들어서 천양하는 답문을 보내주기를 요청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941년 김기태(金基泰)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基泰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41년 음력 12월 10일, 김기태가 노진영에게 자신의 아들 학교 입학 일과 관련한 계기로 한번 찾아뵙겠다는 의사를 전달한 내용의 서간. 1941년 음력 12월 10일, 죄생(罪生) 김기태(金基泰)가 자신의 아들 학교 입학 일과 관련한 계기로 한번 찾아뵙겠다는 의사를 전달한 내용의 서간이다. 인사하고 헤어진 뒤로 달이 넘어갔다며 현재 그리운 마음이 더욱 간절하다는 인사로 편지를 시작했다. 지금 어른을 모시고 지내는 상대의 안부를 간단히 묻고 자신은 집안이 무고(無故)하다고 인사했다. 주요 내용은 지난달 자신의 자식 학교 입학 일로 부탁한 일로 최근 한번 다녀가겠다고 생각했는데, 사범학교통학에는 재산증명이 별로 취급되지 않기 때문에 가지 않았는데, 며칠 뒤에 한번 찾아뵙겠다고 하였다. 자세한 이야기는 곧 말씀드리겠다고 인사하고 편지를 마쳤다. 발신자 김기태는 화순군(和順郡) 이서면(二西面) 야사리(野沙里)에 거주하고 있었다.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노대련(盧大蓮)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盧大蓮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모년 10월에 종하(宗下) 노대련(盧大蓮)이 노진영(盧軫永)에게 토지 매입 관련 정보를 알려주는 내용의 간찰 모년 10월 1일에 종하(宗下) 노대련(盧大蓮)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보낸 간찰이다. 노대련 측에서 말했던 토지는 자신이 직접 가서 보니 우리 노씨가 거주할 만한 곳이 아니었다고 하고, 마침 산림(山林) 한 곳이 있는데 집터로 쓰기에 적당하므로 한번 직접 와서 살펴본 뒤에 도모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내용이다. 가을 추수로 바쁘더라도 다음달 10일 안에 빨리 와서 이때를 놓치지 말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때가 아니면 본인은 다음달 10일 이후에 출타할 계획이니 양해해달라고 하였다. 그리고 가부간에 속히 답장을 보내달라고 당부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노은경(盧殷卿)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盧殷卿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435 노은경(盧殷卿)이 노진영(盧軫永)에게 쌀을 보내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한 간찰 모년 2월 22일에 종생(宗生) 노은경(盧殷卿)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보낸 간찰이다. 보내준 서찰을 받으니 직접 얼굴을 뵌 것 같아 감사한데 더구나 쌀을 보내주어 썰렁한 주방에 연기를 피울 수 있게 해주어 말할 수 없이 감사하고 보답할 방도도 모르겠다고 하였다. 혹여 서신을 받고 답장을 하지 않으면 옥에 티가 될까 싶었다면서 상대방의 평안을 축원하며 마무리하였다. 또 은경이라는 이름은 소자(小字)였는데 지금은 정명(正名)으로 통용하고 있으니 허물하지 말아달라고 덧붙였다. 이 편지는 노상용(盧尙鏞)이 노진영에게 보낸 간찰과 합봉되어 있었다.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899년 윤석호(尹奭浩) 등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尹奭浩 南原鄕校 □…□ (흑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9년 2월 18일에 해남향교 교임 윤석호·박창렬 등 11인이 천만리의 10대손 천재청을 의례적으로 대우하는 폐단이 없도록 하겠다는 내용으로 남원향교에 답한 통문 1899년(광무 3) 2월 18일에 해남향교(海南鄕校) 교임(校任) 윤석호·박창렬(朴昌烈) 등 11인(人)이 천만리(千萬里, 1543~?)의 10대손 천재청(千載淸)을 의례적으로 대우하는 폐단이 없도록 하겠다는 내용으로 남원향교(南原鄕校)에 답한 통문이다. 남원향교에서 보낸 통문 내용 중에 해남에서 타향살이하는 선비 천재청은 화산군(花山君) 천만리의 10대손이라고 하였다. 이에 해남향교 교임 윤석호와 박창렬 등은 천만리의 덕화(德化)를 칭송하며 해남에 묻혀 사는 천재청에 대해 등용되어야 할 인재를 빠뜨렸다는 탄식을 면치 못하여 부끄럽다고 하였다. 이어서 남원향교의 통문 내용에 따라 천재청을 맞이하여 그의 언행과 풍모를 보니 그 유래의 근원이 있음을 알 수 있으니 온 지역을 깨우쳐서 이 충훈(忠勳)의 후예를 의례적으로 대우하는 폐단이 없도록 할 계획이니 헤아려 주기 바란다는 내용으로 남원향교에 답하였다. 통문을 보낸 날짜 위에 '해남향교(海南鄕校)' 묵인(墨印)이 찍혀있다.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교령류

1892년 서씨(徐氏) 추증교지(追贈敎旨) 고문서-교령류-고신 高宗 徐氏 施命之寶(10.0×10.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144 1892년(고종 29) 10월에 임금의 명에 따라 이보승 처 서씨를 정부인으로 추증한 추증교지 1892년(고종 29) 10월에 임금의 명에 따라 서씨(徐氏)를 정부인(貞夫人)으로 추증(追贈)한 추증교지이다. 정부인은 정·종2품관의 부인에게 내리는 작호(爵號)이다. 발급 연호 위에 어보(御寶)인 '시명지보(施命之寶)'가 찍혀있으며, 연호 좌방(左傍)에 '법전에 의해 남편의 직(職)에 따라 봉작한다[依法典從夫職]'라는 추증 사유가 기재되어 있다. 서씨는 이규행(李圭行)의 어머니로, 이규행의 임명과 함께 그녀의 남편인 이보승(李普升)이 종2품인 가선대부 호조참판에 추증됨에 따라 남편의 품계에 맞춰 함께 추증된 것으로 추정된다.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01년 최동룡(崔東龍)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1801 谷城縣監 崔東龍 谷城縣監<着押> 周挾無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186 1801년에 곡성현 석곡면에 사는 호주 최동룡이 주소와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 등을 기록한 호구단자를 관에 제출하여 확인을 마치고 돌려받은 준호구 1801년(순조 1)에 곡성현 석곡면에 사는 호주 최동룡이 주소와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 등을 기록한 호구단자를 관에 제출하여 확인을 마치고 돌려받은 준호구이다. 최동룡의 거주지 주소는 곡성현(谷城縣) 석곡면(石谷面) 운와리(雲臥里) 7통 1호이다. 최동룡은 양인(良人)으로 올해 나이는 53세 기사생(己巳生)이며,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최동룡의 사조(四祖)는 아버지 학생 귀선(龜善), 할아버지 증가선대부 공조참판 오위도총부 도총관 성남(聲南), 증조(曾祖) 증통정대부 공조참의 석벽(錫壁), 외조(外祖) 학생 오태위(吳泰位)이다. 최동룡의 아내 황씨(黃氏)는 나이 54세 무진생(戊辰生)이며, 본관은 장수(長水)이다. 황씨의 사조는 아버지 학생 경하(慶河), 할아버지 가선대부(嘉善大夫) 진상(進相), 증조 가선대부 서(叙), 외조 학생 김노적(金老迪)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최동룡이 모시고 사는 어머니 오씨(吳氏)의 나이는 82세 경자생(庚子生)이며, 본관은 동복(同福)이다. 이 문서에 '호구단자(戶口單子)'라고 적혀 있고 열서(列書) 형식으로 기재되어 있으나 곡성현 관인(官印)과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 및 곡성 현감의 서압(署押)이 찍혀있다. 이는 제출한 호구단자를 구호적(舊戶籍)과 대조 확인을 마친 후 최동룡에게 다시 돌려준 것이므로 준호구로 분류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갑진년 김흡(金{土+翕}) 간찰(簡札)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土+翕} 李碩士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566 갑진년에 김흡(金{土+翕})이 장산(章山)의 이석사(李碩士)에게 복시(覆試)에서 장원을 한 것을 축하하고 자신은 건강이 좋지 못하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내년 봄에 날이 따뜻해지면 향례(享禮)에 참석하겠다는 내용의 간찰 갑진년 12월 23일에 김흡(金{土+翕})이 장산(章山)의 이석사(李碩士)에게 보낸 간찰이다. 오래 소식이 막히고 한해가 저물어 가서 그립던 가운데 보내준 서찰을 받고 몹시 기뻤고, 어른 모시며 지내는 생활이 편안하다고 하여 더욱 위안이 되었는데 거기에 복시(覆試)에서 장원을 했다니 더욱 기쁘다고 인사하였다. 자신은 학질을 앓다가 중간에 점차 떨어질 듯 했는데 지난달 보름 이후에 또 재발하여 고통 받고 있으며 온갖 약이 듣지 않아 몹시 걱정이라고 하였다. 보내준 새해 선물을 받고 매우 감사했으면서도 봄가을 향례(享禮)에 한 번도 참석하지 못해 매번 편안치 못했다고 하면서 자신의 병이 봄에 날씨가 따뜻해졌을 때 낫는다면 향례에 반드시 참석하겠다고 하였다. 섣달그믐이 멀지 않은데 오직 새해에 더욱 큰 복을 받기를 바란다고 인사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을미년 김형진(金炯鎭)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炯鎭 査頓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을미년에 김형진(金炯鎭)이 사돈에게 안부를 묻고 자신과 식구들의 안부를 전하며 다시 만나기를 기약하는 내용의 간찰 을미년 12월 24일에 김형진(金炯鎭)이 사돈에게 보낸 간찰이다. 한해가 저물어가니 그리움 더욱 간절한데 요즈음 섣달 추위에 생활은 편안하고 대소가 식구들 고루 좋으며, 아드님은 어른 잘 모시면서 성실하게 공부하고 마을도 청정한지 물었다. 자신은 그럭저럭 지내고 있고 식구들도 무탈하며 조카도 덕분에 잘 지내고 있어 다행이라고 하면서 다만 세상이 어지러워 모든 일이 두서가 없으니 어찌하겠느냐고 한탄하였다. 그리고 상대가 왕림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언제 가능할지 물었다.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신해년 신재곤(辛載坤) 간찰(簡札)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辛載坤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615 신해년 7월 25일에 모평에 사는 신재곤이 옥산에 살고 있는 상대방에게 책지는 이곳에서 사려는 사람이 없어 다시 돌려 보낸다는 내용 등을 전한 답장 신해년 7월 25일에 모평(茅坪)에 사는 신재곤이 옥산(玉山)에 살고 있는 상대방에게 책지(冊紙)는 이곳에서 사려는 사람이 없어 다시 돌려 보낸다는 내용 등을 전한 답장이다. 상대방의 심부름꾼을 통해 또 편지를 받고서 매우 기뻤다는 내용, 상대방과 부인의 안부를 묻는 내용, 자신은 예전처럼 지내고 있는데 아내가 지금까지 대소변이 원활하지 않아 계속 약을 조제하여 먹고 있지만 아직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어 가련하다는 내용, 상대방이 편지에서 언급한 안동 사람의 설은 고하를 막론하고 가부(可否)를 타파해야 한다지만 한쪽에서는 정해진 곳이 없다고 하니 다시 자세히 알아본 뒤에 통지해 주는 것이 좋겠다는 내용, 책지는 자신이 있는 곳에서는 사려는 사람이 없어 온전히 돌려 보낸다는 내용, 나머지 사연은 머지 않아 만나서 이야기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기미년 최세휘(崔世徽) 간찰(簡札)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崔世徽 査頓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659 기미년 1월 28일에 최세휘가 사돈에게 건강이 좋지 못하다는 소식을 들어 매우 걱정스러우며, 아들이 이전에 사돈에게 문안 드리려고 했으나 모순되는 일이 많아 지금까지 미뤄지게 되어 부끄럽다는 내용 등을 전한 간찰 기미년 1월 28일에 최세휘가 사돈에게 건강이 좋지 못하다는 소식을 들어 매우 걱정스러우며, 아들이 이전에 사돈에게 문안 드리려고 했으나 모순되는 일이 많아 지금까지 미뤄지게 되어 부끄럽다는 내용 등을 전한 간찰이다. 무오년도 이미 지나갔으니 사돈이 더욱 간절히 그립다는 내용, 뜻밖에 사돈 쪽의 종이 와서 안부를 자세히 묻다가 건강이 좋지 못하시다는 말을 듣고 매우 놀라 끝없이 염려됐다는 내용, 밤사이에 병환이 더 심해지지는 않았는지, 다른 식구들은 모두 잘 지내고 있는지 안부를 묻는 내용, 자신은 여전하고 며늘아기도 어린 아이 거느리며 무탈하게 지내고 있으니 매우 다행이라는 내용, 아들이 일찍이 한 번 사돈에게 문안 드리려고 했으나 모순되는 일이 많았던 탓에 지금까지 미뤄지게 되어 얼굴이 붉어지고 땀이 날 정도로 부끄럽다는 내용, 사돈의 건강이 회복되기를 바란다는 내용 등을 담았다.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첩관통보류

1923년 최봉구(崔奉九) 고목(告目) 고문서-첩관통보류-고목 崔奉九 李太沃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3년 9월에 행정사 고지기 최봉구가 생원 이태옥에게 이달 22일 가을 향사에 전작으로 추천되었음을 알리는 고목 1923년 9월에 행정사(杏亭祠) 고지기 최봉구(崔奉九)가 생원 이태옥(李太沃)에게 이달 22일 가을 향사(享祀)에 전작(奠爵)으로 추천되었음을 알리는 고목이다. 강진군 작천면 신기(新基)에 사는 생원 이태옥에게 문안 인사와 함께 9월 22일에 있을 행정사 가을 정향(丁享)에 전작으로 추천되었다는 것을 아뢰는 내용이다. 가을 정향은 음력 8월 정(丁)자일에 제향하는 것으로 정제(丁祭)라고도 한다. 한 달에는 상정(上丁)·중정(中丁)·하정(下丁)이 있다. 전작은 헌관(獻官)이 올리는 술잔을 받아서 신위 앞에 드리는 일을 말한다. 행정사는 전라남도 강진군 작천면 군자리에 있는 양산김씨(梁山金氏)의 사우이다. 유항재(有恒齋) 김양(金亮, ?~1569), 절효(節孝) 김호광(金好光, 1600~1624), 행정(杏亭) 김신광(金伸光, 1608~1666)을 향사하는 곳이다. 1820년(순조 20)에 통문을 발의하여 유항재의 강도지(講道地)였던 행정동(杏亭洞)에 사우를 세워 향사하였으나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 그 뒤 설단(設壇)에 향사하다가 1960년에 향중유림(鄕中儒林)이 신실(神室)과 강당(講堂) 등을 중건하고 2008년에 동재(東齋)와 서재(西齋)를 신축하였다. 1994년 성균관 답통(答通)에 따라 도유향사(道儒享祀)로 승격되고 2004년에 강진군 향토문화유산 제8호로 지정되었으며, 2009년에는 군자서원(君子書院)으로 승격되었다.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첩관통보류

1924년 무성서원유회소(武城書院儒會所) 망기(望記) 고문서-첩관통보류-망기 茂城書院儒會所 李太沃 茂城書院(흑색, 직방형, 7×4.8)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4년 11월에 무성서원유회소에서 유학 이태옥을 본원의 도내색장 후보로 추천한 문서 1924년 11월에 무성서원유회소에서 강진군 작천면(鵲川面) 내기리(內基里)에 사는 유학 이태옥(李太沃)을 무성서원의 도내색장(道內色掌) 후보로 추천한 문서이다. 문서의 발급날짜 위에 '유회소인(儒會所印)' 묵인(墨印)이 찍혀있다.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16년 최덕련(崔德連)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1816 谷城縣監 崔德連 谷城縣監<着押> 周挾無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186 1816년에 곡성현 석곡면에 사는 호주 최덕련이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과 소유 노비 현황 등을 기록한 호구단자를 관에 제출하여 확인을 마치고 돌려받은 준호구 1816년(순조 16)에 곡성현 석곡면에 사는 호주 최덕련이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과 소유 노비 현황 등을 기록한 호구단자를 관에 제출하여 확인을 마치고 돌려받은 준호구이다. 최덕련의 거주지 주소는 곡성현(谷城縣) 석곡면(石谷面) 운와리(雲臥里) 8통 4호이다. 직역은 유학(幼學)이고 올해 나이는 28세 기유생(己酉生)이며,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최덕련의 사조(四祖)는 아버지 학생 동룡(東龍), 할아버지 학생 귀선(龜善), 증조(曾祖) 증가선대부 공조참판 오위도총부 도총관(贈嘉善大夫工曹叅判五衛都摠府副摠管) 성남(聲南), 외조(外祖) 학생 황경하(黃慶河) 본관은 장수(長水)이다. 최덕련의 아내 박씨(朴氏)는 나이 29세 무신생(戊申生)이며, 본관은 밀성(密城)이다. 박씨의 사조는 아버지 유학 광욱(光旭), 할아버지 학생 경(璟), 증조 학생 무춘(茂春), 외조 학생 장시엽(張時燁)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이외 소유하고 있는 여종 상원(尙元)이 있다. 이 문서에 '호구단자(戶口單子)'라고 적혀 있고 호구단자의 기재 형식인 열서(列書)로 되어 있으나 주협무개인(周挾無改印)이 찍혀있고 주묵(朱墨)의 오가작통 통호(統戶)가 기재되어 있으며, 1813년 호적과 대조 확인을 마쳤다는 '계유상준인(癸酉相凖印)'이 적혀 있다. 이는 제출한 호구단자를 구호적(舊戶籍)과 대조 확인을 마친 뒤에 최덕련에게 다시 돌려준 것이므로 준호구로 분류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通文右敬通事 窃伏念夫人有卓犖之行 而孝烈間未得旌褒 於後世公議愈鬱 誦義無窮 則齊聲一籲於諸道郡 典校僉執 以冀其闡揚之方 烏可已乎 玆將寶城之宅村 故烈婦張氏實蹟 照人耳目者 一一陳達 伏維尊執事特垂察焉 文康公牛山安先生四子宣敎郎益之號野翁公 娶忠毅公 贈兵曺判書張潤 而端女 張夫人自歸野翁公 先已患風瘡濃汁遍身淋灕 爲治特室同居 衣衾穢汚 躳自洗濯 不使家人見 日夜殫藥 久益不效 竟至奄奄 張夫人乃刲股少許 和粥以進 病才少間 喜不自勝 遂迺盡股肉 兩股骨立 公遂得快完 以至老壽令 終享年八十三 嗚呼夫婦人之殺身以從夫則有之 至若割其肉如屠豕羊 不覺其身之自愛 而竟已其不可已之夫病其感神格天之行 雖古之烈媛 實罕其儔 豈不誠卓爾驚世人哉 顧迺其家聲中微沉沉 數百載未蒙褒異之典 惜哉 此豈能無憾於彼蒼哉 今者生等略擧其實蹟 拜手陳達 伏乞僉尊 特念烈婦之卓越 更扶倫綱之頹靡 卽 賜闡揚答文 俾伸幽明之情 千萬幸甚 右敬通于羅州鄕校僉座下乙巳四月 日 寶城鄕校典校安應淳 掌議鄭行根 多士金垠九乙巳四月 日 寶城鄕校典校安應淳 掌議鄭行根 多士金垠九掌議朴泰衡 多士李允明 朱柄琯安圭章 崔桂成丁泰社 李道卿崔栢炫 丁益壽【피봉】〈前面〉羅州鄕校 典校 儒林 僉座下〈後面〉寶城鄕校發通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임진년 김석례(金錫禮) 간찰(簡札)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錫禮 妹兄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529 임진년에 김석례(金錫禮)가 옥계(玉溪)의 매형(妹兄)에게 안부를 묻고 자신의 동생 병세에 대해 소식을 전하며, 조카의 혼사에 대한 의견을 전하는 내용의 간찰 임진년 9월 11일에 김석례(金錫禮)가 옥계(玉溪)의 매형에게 보낸 간찰이다. 인사하고 물러난 지 며칠이 지났는데 그동안 건강이 회복되었는지, 누이와 아이들 삼형제는 예전모습대로 지내고 있는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사흘 밤을 묵고 집으로 돌아왔더니 피곤이 쌓인 몰골을 무어라 말하기 어렵다고 하였다. 가운데 동생의 병이 중간에 위태로웠다가 근래 조금 나았는데 아직 앞으로의 증세가 어떠할지 몰라서 걱정이 크다고 하였다. 저쪽 집에 이야기를 넣어보니 과연 다른 뜻이 없으니 얼른 사람을 보내 허락을 받아서 추워지기 전에 혼례를 성사시키면 어떠하냐고 의향을 물었다. 혼례는 매형의 아들 혼사를 가리킨다.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임진년 김석례(金錫禮) 간찰(簡札) 3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錫禮 妹兄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529 임진년에 김석례(金錫禮)가 옥계(玉溪)의 매형에게 안부를 전하면서 조카의 학질에 지네를 복용할 것을 권하고, 조카의 사주단자는 받아서 보냈다고 알리는 내용의 간찰 임진년 윤월 16일에 김석례(金錫禮)가 옥계(玉溪)의 매형에게 보낸 간찰이다. 그동안 소식이 뜸했는데 이번에 인편을 통해 보내준 서신을 받고 마치 대화를 하는 것 같았다고 하고, 서신을 통해 매형도 편안하고 누이도 아픈 데 없이 잘 지내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인사를 하였다. 다만 두 아이가 학질을 앓고 있어 걱정인데 이것은 갑작스레 떨어질 증세가 아니니 지네를 많이 복용하면 효험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복용을 권하였다. 사주단자는 매형이 말한 대로 받아서 보냈다고 하였고, 혼례는 추워지기 전에 택일을 하는 것이 어떠하겠냐고 의견을 말하고, 먼길을 왕래하는 것은 꺼려지므로 인편을 통해 종종 소식을 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목화 13근을 보내니 누이에게 전해달라고 덧붙였다.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임자년 박원호(朴遠浩)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朴遠浩 李生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580 임자년에 박원호(朴遠浩)가 옥계(玉溪)의 이생원(李生員) 댁에 아들의 혼인을 축하하고, 자신의 중제(仲弟)가 두풍(頭風)으로 고통 받고 있다는 소식과 올해 농사가 가뭄 재해로 겨우 흉년을 면했다는 소식을 전하는 내용의 간찰 임자년 8월 11일에 박원호(朴遠浩)가 옥계(玉溪)의 이생원(李生員) 댁에 보낸 간찰이다. 적조했던 중에 서신을 보내주어 위로가 되고 기뻤으며, 쌀쌀한 가을 날씨에 생활이 편안하시다는 것을 알게 되어 몹시 위안이 되었다고 인사하였다. 자신은 어버이 모시며 지내는 생활이 편안하여 다행이지만 중제(仲弟)가 두풍(頭風)으로 몇 달을 고통스러워하고 있고 오른쪽 귀 아래 목 쪽으로 큰 종기가 생겨서 지금 침으로 터뜨리려고 하는 중이라 온 집안사람들이 당황스러워하고 있다고 하였다. 상대방 아들이 혼인을 하게 된 것을 축하하였다. 그리고 올해 가뭄으로 인한 재해가 도처에서 발생하여 농사가 겨우 흉년을 면한 지경이라 답답하다고 하였다. 직접 만나 뵐 수 있는 기회가 언제나 있을는지 편지를 쓰려고 하니 서글프고 그립다고 하면서 마무리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928년 김희도(金熙道)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熙道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8년 12월 1일에 척제 김희도가 자신의 일본 유학 생활의 안부를 전하는 내용으로 노진영에게 보낸 서간. 1928년 12월 1일에 척제(戚弟) 김희도(金熙道)가 노진영(盧軫永)에게 자신의 일본 유학 생활의 안부를 전한 서간(書簡)이다. 금년 봄에 서로 답장한 후에 소식을 오랫동안 전하지 모했다며 슬픔이 심해진다고 인사 했다.눈 내리는 추위에 상대의 안부와 손자가 별고 없는지, 집안은 모두 잘 계신지 물었다. 자신은 멀리서 생각해주시는 덕택으로 객지에서 별 탈 없이 지낸다고 인사하고는 이곳에 도착한 일은 남아의 청춘을 밝게 하려는 시대적 상황 때문이기도 하고, 학식을 닦으려는 목적도 있다며 객지의 형편이 좋지 못해 매사 모든 것에 낭패를 보더라도 너무 책망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또한 이 편지에 즉시 회답해 주시기를 바란다며 편지를 마쳤다.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935년 최남두(崔南斗)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崔南斗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5년 2월 28일, 생 최남두가 노진영에게 벽오동목과 산앵목 각 3본을 보낸다는 내용으로 보낸 서간. 1935년 2월 28일, 생(生), 최남두(崔南斗)가 노진영(盧軫永)에게 벽오동목(碧梧桐木)과 산앵목(山櫻木) 각 3본(本)을 보낸다는 내용으로 보낸 서간이다. 상대의 안부를 간단히 물은 후 자신은 상대방 덕택으로 무사히 지내고 있다고 했다. 벽오동나무 세 뿌리와 산앵목 세 뿌리를 보낸다며 귀하의 정원에 식재하게 되어 축하한다고 말하고 편지를 마쳤다. 발신자 최남두가 사는 곳이 '양산리(陽山里)'라고 피봉에 적혀 있는데 편지의 수신자와 발신자의 주소 기록에 도, 시군 등의 명칭을 기록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광주에 속한 양산리로 보인다.

상세정보
517956
/25898
상단이동 버튼 하단이동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