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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신미) 六日 辛未 맑음. 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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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계해) 二十九日 癸亥 흐림. 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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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갑자) 三十日 甲子 맑음. 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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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갑인) 二十日 甲寅 저녁에 비가 옴. 용호(龍湖)와 함께 산천을 완상하다가 청단리(靑丹里)에 있는 부의당(扶義堂)13)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夕雨。與龍湖。 翫山川。 到靑丹扶義堂。 留宿。 부의당(扶義堂) 곡성군 오산면 무후사(武侯祠) 내에 있는 강당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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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을묘) 二十一日 乙卯 이튿날. 박여삼(朴汝三)댁을 방문하여 점심밥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이승덕(李承德) 덕암(德菴) 댁을 방문하여 유숙하였다. 翌日。訪朴汝三宅。 午飯後。 回路。 入李承德德菴宅。 留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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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계축) 十九日 癸丑 맑음. 옥전(玉田)에 이르렀다. 陽。到玉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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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정사) 1917年(丁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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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正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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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을축) 初一日 乙丑 흐리고 찬눈 내림. 세배 오는 손님을 맞이하고 대접했다. 丁巳。正月。初一日。乙丑。陰雪寒。延接歲拜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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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十八日 밤에 눈이 내렸다. 아침을 먹고 길을 나서 원동(院洞)의 이상룡(李尙龍) 집에 들렀더니 주인 부자(父子)가 한사코 붙잡았지만, 갈 길이 바쁘기 때문에 머물지 못하고 길을 나섰다. 낙수(洛水)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미태정(米太亭)에 이르러 묵었다. 60리를 갔다. 夜雪。 仍朝飯發程, 入院洞 李尙龍氏家, 則主人父子堅挽, 而以行忙不得留發程。 抵洛水中火, 抵米太亭留宿。 行六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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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十九日 첫닭이 울자 상인과 동행하여 서령(西嶺)에 이르니 동이 트기 시작하였다. 벌교(筏橋)에 이르러 아침을 먹고, 사촌(社村)에 들어가 요기하였다. 용전(龍田)의 무안(茂安) 댁에 이르러 묵었다. 50리를 갔다. 鷄初鳴, 與商賈同行抵西嶺, 則始開東矣。 抵筏橋朝飯, 入社村療飢。 抵龍田 茂安宅留宿。 行五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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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十八日 근동(芹洞)에 가서 서봉(書封)에 내타인(內打印)4)하였다. 往芹洞, 書封內打印。 내타인(內打印) 시권을 제출할 때 예조좌랑(禮曹佐郞)이 타인관(打印官)이 되어 오시(午時)에 시권을 거두어서는 시폭(試幅)과 시폭의 연첩처(連貼處)에 예조의 인을 찍은 뒤 돌려준다. 이를 내타인(內打印)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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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十八日 가랑비가 내렸다. 아침 전에 이찬(而贊)과 비를 무릅쓰고 폐문동(閉門洞)의 오위장(五衛將)이 사는 곳에 가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왔는데, 의복이 모두 젖어버렸으니 매우 속상했다. 아침을 먹은 뒤에 날씨가 개기를 기다렸다가 행장을 꾸려 동진(銅津) 어귀에 이르렀다. 광풍이 세차게 부는 바람에 모래가 날려 눈앞에 가득하였는데, 배를 타자 바람의 형세가 더욱 심하여 매우 위태로웠다. 간신히 강을 건너 승방(僧房) 주막45)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지지현(遲遲峴)46)을 넘어 화성(華城)에 이르러 묵었다. 70리를 갔다. 微雨。 朝前與而贊, 冒雨往居閉門洞五衛將所在處, 暫敍而來, 衣服盡濕, 可憤可憤。 食後待霽治發, 到銅津頭, 狂風大作, 飛沙滿目, 而爲乘船, 以風勢之極惡, 萬分危凜。 艱渡至僧房酒幕中火。 越遲遲峴, 抵華城留宿。 行七十里。 승방(僧房) 주막 승방평(僧房坪)에 있었던 객점을 말한다. 승방평은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동에 있던 마을로서, 마을 뒷산에 관음사라는 절이 있고, 그 절 앞들에 있던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하였다. 승방뜰・심방뜰이라고도 불렀다. 지지현(遲遲峴) 지지대(遲遲臺)고개로, 수원과 의왕의 경계 지점에 위치한 고개이다. 《화성지》에 따르면 원래는 사근현이었는데 정조가 '미륵현' 그 후에 다시 '지지현(遲遲峴)'으로 고쳤다고 한다. 사근현(沙近峴)이라고 한 것은 고개 아래에 사근참이 있었기 때문이며 '지지(遲遲)'라고 한 것은 사도세자 능을 참배하고 돌아갈 때 사모하는 마음이 간절하여 이곳에서 한참 지체하였던 데서 비롯되었다. 정조는 이곳에 장승과 표석을 세웠고, 1807년(순조7)에 지지대 서쪽에 지지대비와 비각을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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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十九日 갈 길이 바쁜 탓에 일찍 출발하여 두루 살피지 못하고, 다만 용두각(龍頭閣)만을 보았는데 그 구조가 기묘하였다. 다시 출발하여 하류천(下柳川)47)에 이르러 아침을 먹고, 오산(烏山)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소사(素沙)에 도착하여 묵었다. 80리를 갔다. 早發以行忙之致, 不能周觀, 而但見龍頭閣, 則制甚奇妙。 移發至下柳川朝飯, 抵烏山中火。 到素沙留宿。 行八十里。 하류천(下柳川) 수원시 권선구 세류동에 있는 아랫버드내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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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二十五日 ○일찍 출발하여 말치[斗峙]58)를 넘어, 야당(野塘)59)의 송연영(宋延英) 집에 들러 아침을 먹었다. 주인이 1냥을 노자로 주었다. 곧바로 출발하여 국평(菊坪)60)의 하서(夏瑞) 집에 들러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두 주막으로 와 일행과 잠시 얘기를 나누며, 이에 술을 사서 권하였다. 오수(鰲樹) 최복신(崔福臣) 집에 들러, 오수에게 김수재(金秀才)가 남긴 편지를 전하고 나왔다. 새 객점에서 점심을 먹었다. 주포(周浦) 객점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60리를 갔다. ○早發, 越斗峙, 入野塘宋延英家朝飯。 主人以一兩錢贐行矣。 卽發, 入菊坪夏瑞家暫話。 偕來酒幕, 與同行暫話, 仍以沽酒以勸。 而入鰲樹崔福臣家, 傳鰲樹留金秀才書簡出來。 新店午飯。 抵周浦店留宿。 行六十里。 두치(斗峙) 전라북도 임실과 오수를 잇는 길로 '말재'라고 하였다. 야당(野塘) 전라북도 임실군 남면 야당리이다. 국평(菊坪) 전라북도 임실군 오수면 대명리 국평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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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二十六日 ○일찍 출발하여 율목정(栗木亭)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입진(笠津)을 건너 율지(聿之)와 여옥(汝玉)은 조막(造幕)으로 들어가고, 나는 자윤과 천평(泉坪)으로 와서 유숙하였다. 90리를 갔다. ○早發, 抵栗木亭午飯。 越笠津, 聿之與汝玉入造幕, 余與子允來泉坪留宿。 行九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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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十六日 ○밥을 먹기 전에 나와 관정동으로 들어갔는데 박상현이 없었다. 창동에 있는 배생(裵生)의 객관에 들어가니 배생도 없었다. 다만 그 하인만 있어서, 며칠 전 나온 책자를 전하고, 주인집으로 왔다. 아침을 먹은 후 사헌과 신생(申生)이 내려갔다. 동향 사람은 먼저 각자 내려가는데 나와 율지는 같이 내려가지 못해 몹시 괴로웠다. 밥을 먹은 뒤 관정동으로 가니 박 상인이 또 없었다. 다만 주인 우 참봉만 있어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제 정동에서 묵으며 밤에 꿈을 꾸었는데, 집에 돌아가니 손자가 나왔는데, 한 살배기 아이만큼 커, 마음이 아주 흡족하였다.우 참봉에게 점을 치게 하니 오늘 과연 해산하여 득남할 것이라고 하였다. 과연 꿈속 내용과 점괘가 같으니 우리 집안의 큰 행운 중 무엇이 이보다 크겠는가. 멀리 밖 사정을 상세히 알지 못해 몹시 걱정되고 답답하였다. 그길로 정동으로 가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소문(西小門)으로 나와 차동으로 들어갔는데 사상(士常)은 출타하였다. 아랫사랑에 들르니 주인의 사촌 감찰(監察) 민치원(閔致遠)이 마침 와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뭐라 말할 수 없이 기뻤다. 내일 찾아보기로 약속하고 주인집으로 왔다. ○食前出來, 入冠井洞朴祥顯不在, 入來倉洞裵生所館, 則裵生又不在。 只有其下人, 故傳日前所來冊子出來主人家。 朝飯後, 士憲及申生下去。 同鄕之人先各下去, 而余與聿之不得同行, 悶悶。 食後, 往冠井洞, 則朴喪人又不在。 只在主人禹參奉暫話。 昨日留貞洞, 夜夢, 歸家孫兒出, 大如一歲兒, 心甚喜之矣。 作卦於禹參奉, 則今日果爲解産而得男云。 果如夢中與占理, 則吾家大幸, 孰大於此? 遠外事未能詳知, 悶㭗悶㭗。 仍往貞洞暫話。 出西小門入車洞, 士常出他。 入下舍廊, 則主人從氏閔監察致遠適來, 仍與相話, 其喜何言。 明日尋訪之意相約, 而來主人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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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十九日 ○일찍 출발하여 노계(蘆溪) 주막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초치원(草致院) 저자 주변에 이르러 잠시 쉬고 나서 출발하였다. 연기(燕岐) 삼거리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부강(浮江)과 매포(梅浦)를 지나, 신탄강(新灘江)을 건너, 저물녘 오촌에 도착하였다. 저녁밥을 먹은 뒤 들어가 장석(丈席)50)을 뵈니, 기후(氣候, 안부)가 요사이 평안하여 다행이었다. 외방(外房)으로 나와 목천 현감(木川縣監)을 지낸 송흠성(宋欽成)51)을 위문하였다. 목천은 작년 12월에 그 생부(生父) 상을 당하였다. 한참 동안 안부를 묻고 회포를 풀고 나와, 처소로 내려가 유숙하였다. 80리를 갔다. ○早發, 抵蘆溪酒店朝飯。 抵草致院市邊, 暫憩後登程。 抵燕岐三巨里午飯。 歷浮江及梅浦, 越新灘江, 暮抵鰲村。 夕飯後, 入謁丈席, 則氣候近得安寧, 幸幸。 出外房, 被慰於木川欽成。 木川前年十二月, 遭其生父喪矣。 移時敍暄出來, 下處留宿。 行八十里。 장석(丈席) 송치규(宋穉圭, 1759~1838)이다. 자는 기옥(奇玉)이고, 호는 강재(剛齋)이며, 본관은 은진이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송시열의 6대손으로 김정묵(金正默)의 문인이다. 당시 오촌에 살아 '오촌 선생(鰲村先生)'이라고도 하였다. 송흠성(宋欽成) 1794~1862. 자는 흥경(興卿)이다. 송치규의 양자이다. 생부는 송득규(宋得圭)인데, 1827년 12월에 세상을 떠났다. 《恩津宋氏族譜 卷1 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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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初十日 ○아침 전 관정동으로 왔다. 아침을 먹고 용동으로 갔다. 그길로 북치로 가서 정 생원 병문안을 하고, 도로 개간소로 왔다. 오전에 사헌(士憲)과 신성칙(申聖則)이 들어왔다. 그길로 함께 영대 집으로 와서 머물렀다. 그길로 낙동으로 가 참판 이광문을 만나, 그의 사촌 이광헌(李光憲)의 상을 조문하고,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아우 이광정이 있는지를 물으니 마침 출타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상갓집으로 내려와 곧바로 궤연(几筵)116)에 들어가 곡을 하고 절을 하고 나서 사랑에 올라가 상인(喪人)에게 조의를 표하고 왔다. ○朝前, 來冠井洞。 朝飯往龍洞。 仍往北峙, 問丁生員病, 還來刊所。 午前士憲及申聖則入來。 仍爲偕來永大家留。 仍往洛洞, 見李參判光文, 吊其從氏光憲喪, 移時談話。 問其弟氏光貞有無, 則適出他云。 故下來喪家, 直入几筵哭拜後, 入上舍廊, 與喪人致吊而來。 궤연(几筵) 죽은 사람의 영궤(靈几)와 주(神主)를 모셔두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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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初九日 ○밥을 먹은 뒤 개간소로 갔다. 낮에 회동으로 가서 송 장성을 만나 전주 송민수의 서간을 전해 주었다. 저녁에 곽교(㰌橋)로 들어가 송 판서를 잠시 만나고 관정동으로 왔다. 저녁을 먹은 후 율지와 함께 정동으로 가서 유숙하였다. ○食後, 往刊所。 午間往晦洞, 見宋長城, 傳全州宋民洙書簡。 夕間入㰌橋宋判書暫見 而來冠井洞。 夕飯後, 與聿之往貞洞留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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