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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二十九日 아침 전에 길을 나서 오수(獒樹)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가랑비가 내렸기 때문에 비를 무릅쓰고 이찬(而贊)은 매안(梅岸)으로 가고, 나는 원산(圓山)의 방 서방(房書房) 집에 가기 위해 그길로 헤어졌다. 간신히 원산(圓山)을 찾아갔으나, 방례(房禮)의 3형제는 각각 남북으로 떨어져 살고, 족질(族姪) 필흥(弼興)만 지금까지 그곳에 살고 있기에 찾아갔더니 반갑게 맞아주었다. 거기서 그대로 묵었다. 50리를 갔다. 朝前發程, 抵獒樹朝飯。 以微雨故, 冒雨而贊向梅岸, 余則欲入圓山 房書房家, 仍爲分路。 艱尋圓山, 則房禮之三兄弟, 各分南北, 只有族姪弼興至今居在, 故尋訪則忻然迎接, 仍爲留宿。 行五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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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十八日 아침을 먹고 9월 제술시험이 시(詩)라는 소식을 들었다. 느즈막이 우 참봉(禹參奉)의 집에 들어갔으나, 정 진사는 일찍 밥을 먹고 떠났다. 그길로 성균관으로 갔더니 명륜당(明倫堂) 안팎이 모두 유생들로 가득차서 동접들을 만날 수가 없어 배회하고 있을 때에 보성(寶城)의 윤 석사(尹碩士)가 정여흠(丁汝欠)과 공서(公瑞)가 앉아 있는 곳을 알려주었다. 가서 만났을 때, 마침 소낙비가 쏟아져 자리를 옮기려고 나와서 대문(大門) 사이에 있는 한 사람 옆에 앉았는데, 그 구차한 상황을 형언할 수가 없었다. 차문(借文, 남을 시켜 시문을 짓게 함)하여 써서 보냈지만, 시험관73)이 들어가는 바람에 납번(納番)할 수가 없었다. 저물녘에 주인집으로 나왔다 朝飯聞九月製之詩。 晩後入去禹參奉家, 則丁進士早食去矣。 仍往成均館, 則明倫堂內外皆滿, 不得相逢同接, 徘徊之際, 寶城 尹碩士指示汝欠與公瑞坐處。 往見之際, 適驟雨, 移接出來, 坐一者之大門間者, 其苟且之狀, 不可形言。 借文書送矣, 以試官之入去, 不得納番。 乘暮出來主人家。 시험관 저본의 '識'는 문맥상 '試'의 오기로 보고 고쳐서 번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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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二十八日 일찍 출발하여 능측(陵側)5)에서 아침을 먹었다. 여산(礪山) 읍내에 이르러 동행과 작별하고, 홀로 심천(深川) 야촌(野村)의 동종(同宗) 함(涵) 집에 가서 실기 한 권을 전한 다음, 점심을 먹고 나와 장승등(長承登) 주막에서 말편자를 박았다. 날이 아직 이른데 그 다음으로 임실(任實) 야당(野塘)으로 들어간 것은 바로 동종(同宗) 연영(延英)과 동행하여 오촌(鰲村)에 들어가기로 약속하였기 때문이다. 종일토록 머물러 기다렸으나 끝내 오지 않으니 답답하고 걱정스럽다. 50리를 갔다. 早發至陵側朝飯, 抵礪山邑內, 與同行作別, 獨入深川 野村同宗涵家, 傳實記一卷, 仍午飯出來, 長承登酒幕揷馬鐵, 日尙早矣, 而次入任實 野塘, 卽同宗延英約爲同行入鰲村故也。 終日留待, 而終不來到, 悶悶。 行五十里。 능측 삼례와 여산의 중간 지점인 것으로 보아 위에서 말한 능은 전라북도 익산시 석왕동에 있는 백제시대 무덤 익산 쌍릉(사적 제87호)으로 보인다. 이 능은 마한(馬韓)의 무강왕(武康王)과 그 왕비의 능이라고도 하며, 백제 무왕(武王)과 선화비(善花妃)의 능이라고 전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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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十二日 새벽에 출발하여 상유천(上柳川)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화성(華城)에 이르러 동행이 경치를 구경한 탓에 지체되어 뒤늦게 길을 떠났다. 지지대(遲遲臺)에 이르러 잠시 쉬다가 마침 보성(寶城) 이성범(李聖範)을 만났는데 피차간에 알아보지 못하였다. 공서(公瑞)가 알려 주어서 자세히 살펴보니 지난날의 모습이 있는 듯하였는데, 피차간에 백발이 성성하였으므로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이어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동행하여 사근천(肆覲川)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과천 읍내에 이르러 묵었다. 80리를 갔다. 曉發抵上柳川朝飯。 抵華城以同行玩景之致, 爲遲滯後發程。 抵遲遲臺暫憩後, 適逢寶城 李聖範, 彼此不知矣。 公瑞指示, 故詳觀則似有前日樣, 彼此白髮蕭蕭, 故不知。 仍與相話爲同行, 抵肆覲川中火, 抵果川邑內留宿。 行八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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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二十四日 아침부터 가랑비가 내렸다. 장석 댁에서 아침을 마련해 주어 매우 감사하였다. 아침을 먹은 뒤 추수할 무렵에 다시 오겠다 아뢰고 그대로 하직(下直)하였다. 비를 무릅쓰고 행장을 꾸려 출발한 것은 비가 심하게 올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는데, 몇 리를 채 못 가서 큰비가 내렸다. 비를 맞으며 20리까지 갔으나 비가 멈추지 않아 멀리 갈 수 없기에 그대로 머물렀다. 自朝微雨。 朝飯丈席宅備給, 可感可感。 食後以秋成更來告白, 仍下直。 冒雨治發者, 以雨意之似不大端故矣。 行未數里雨大注, 冒雨至二十里, 以雨勢之不止, 不得遠行, 仍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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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二十五日 아침 전에 출발하여 유성(油城) 시장 근처에서 아침을 먹었다. 비가 그치지 않았기 때문에 비가 조금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오후에 조금 갤 기미가 있어서 비를 무릅쓰고 길을 나섰다. 척치(尺峙)를 넘어 신도(新都) 마을 어귀를 지나는데, 비가 내리는 탓에 바삐 지나가느라 들어가 보지를 못하니 한탄스럽다. 개태치(開太峙)에 이르러 묵었다. 50리를 갔다. 朝前發程, 至油城市邊朝飯。 以雨勢之不止, 留待稍霽矣。 午後少有霽意, 故冒雨發程。 越尺峙, 歷新都洞口, 而以雨意之致, 忙迫過之, 而不得入觀, 可歎。 抵開太峙留宿。 行五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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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二十二日 아침 전에 나와 사교(四橋)의 가교(柯橋) 형님 댁에서 아침을 먹은 뒤에 문중(門中)의 종친들과 유둔(油芚) 시장 근처에 갔다. 노자(路資)가 준비되지 않아서 출발을 멈추었다가 점심을 먹고 길을 나섰다. 사촌(社村)에 이르러 대곡 형님과 가아(家兒)를 돌려보냈다. 낙안(樂安) 서령(西嶺) 주막에 이르러 동향(同鄕)을 만나 동행하였는데, 안동(鴈洞)의 친구 정여환(丁汝煥)과 사교(四橋)의 족질인 필(珌) 형제, 그리고 정두화(丁斗華)이다. 함께 머물며 30리를 갔다. 해가 질 무렵에 정 진사(丁進士)도 와서 함께 머물렀다. 朝前出來, 四橋 柯橋兄主宅朝飯後, 與門中諸宗, 往油芚市邊。 以路資不備停行, 仍午飯發程。 至社村, 還送大谷兄主及家兒。 至樂安 西嶺酒幕, 逢同鄕同行, 則鴈洞 丁友 汝煥與四橋族姪珌兄弟及丁斗華也。 仍爲同留, 行三十里。 日落時, 丁進士亦來同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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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二十三日 이른 아침에 출발하여 미타정(彌勒亭)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길을 나설 때 낙안 형님과 용동(龍洞) 신 석사(申碩士)를 만나 낙수(洛水)까지 함께 가서 점심을 먹었다. 길을 나서 중도에서 비를 만나 옷이 다 젖어버렸으므로 길을 재촉하여 광천(廣川) 주막에 이르러 묵었다. 60리를 갔다.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앞으로 나아갈 수 없으니 한탄스럽다. 대촌(大村)의 윤보(允甫)도 와서 기다리다가 함께 묵었다. 밤새도록 비가 심하게 퍼부었다. 早朝發行, 至彌陁亭朝飯。 發程之際, 逢樂安兄主及龍洞 申碩士, 仍爲同至洛水中火。 發程至中路逢雨, 衣服盡濕, 促行至廣川酒幕留宿。 行六十里。 爲雨所戱, 不得前進, 可歎。 大村 允甫, 亦爲來待, 仍爲同宿。 達夜雨大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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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기사) 四日 己巳 맑음. 집에 돌아왔다. 陽。還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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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경오) 五日 庚午 맑고 찬바람이 불었다. 장동으로 돌아왔다. 陽寒風。還章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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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十九日 아침을 먹은 뒤에 행장을 꾸리고 만복(萬卜)에게 가서(家書)를 부쳤다. 회동(晦洞)의 장성(長城) 송운재(宋雲載)에게 가서 그 대인의 상(喪)에 조문하였는데, 장성은 현재 담복(禫服)74)을 입고 있었다. 윗사랑에 올라가 장성(長城)의 삼촌인 익정(翼廷) 씨를 만나고, 다시 아래 사랑으로 와서 서울의 동종(同宗), 각처의 제종들과 여산(礪山)의 시조(始祖) 산소(山所)에 제각(祭閣)을 짓는 일에 대해 의논하였다. 이어 예조에 정장(呈狀)할 글의 초안을 청하였더니, 장성의 재종(再從)인 진사(進士) 현재(顯載)가 초안을 작성해 주어 소매 속에 넣어 왔다. 오는 길에 날이 저물었기 때문에 우 참봉(禹參奉) 집으로 들어가 정여흠(丁汝欠)과 함께 묵었다. 食後治送萬卜付家書。 往晦洞 宋長城 雲載, 吊其大人喪, 長城方在禫服中矣。 上上舍廊, 見長城之三寸翼廷氏, 還來下舍廊, 與京中同宗及各處諸宗, 議礪山始祖山所祭閣營建事。 仍請禮曹呈狀文字構草, 則長城之再從進士 顯載構草, 故袖來。 來路以日暮之致, 入禹參奉家, 與丁汝欠同宿。 담복(禫服) 담제에 입는 의복이다. 대상(大祥)을 치른 다음 달 하순의 정일(丁日)이나 해일(亥日)에 지내는 담제(禫祭) 때 입는 옷으로, 흰색이나 옥색(玉色)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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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初九日 ○아침을 먹은 뒤에 박우(朴友, 박상현(朴祥顯))가 마침 왔는데 행자(行資)를 아직 장만하지 못해서 11일에 길을 떠나겠다고 하였다. 이에 길을 나서 장도(莊島) 시장에 이르니 송여옥(宋汝玉)과 신자윤(申子允)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요기한 뒤에 길을 나서 서령(西嶺)을 넘어 정문등(旌門登)에 이르러 묵었다. ○食後朴友果來, 而以行資之未辦, 十一日發行爲言, 故仍爲發程, 抵莊島市, 宋汝玉 申子允來待矣。 療飢後登程, 越西嶺抵旌門登留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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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十四日 ○일찍 출발하여 지소(紙所)를 지나 냇가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완영(完營)의 서문(西門) 밖 옛 주인인 전성철(全聖哲) 집에 도착하니, 얼마 안 있어 당동(唐洞)의 박영규(朴榮珪)가 도착하였다. 출발할 때에 뒤따라오겠다며 약속했던 사람이다. 내일 도착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오늘 만난 것은 마침 뜻밖이라 피차간에 기쁜 마음을 어찌 말로 다할 수가 있겠는가. 오전에 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그대로 주인집에 머물렀다. ○早發過紙所, 抵川邊朝飯。 得達完營 西門外舊時主人全聖哲家, 俄已唐洞 朴榮珪來到。 卽發行時, 以追後之意, 相約之人也。 意謂明日得達矣, 今日相逢, 果是意外, 彼此相喜, 何可盡言。 午前雨始, 仍留主人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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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十八日 아침 전에 이 흥양(李興陽)이 사람을 시켜 만나기를 청하였기 때문에 가서 만나고 왔다. 사수와 형백이 찾아와서 만나고 갔다. 아침을 먹은 뒤에 간촌(看村)의 송생(宋生)과 창포(倉浦)의 김생(金生)이 비로소 와서 내려간다고 하였으므로 집에 보낼 편지를 부쳤다. 팽갑(彭甲)이 와서 말하기를, "임질(林侄)이 아파서 누워있습니다."라고 하므로 가서 만나 보았다. 박씨 척족(戚族)을 만났는데, 양언(良彦)도 올라왔기에 비로소 만났다. 朝前, 李興陽使人邀見, 故往見而來。 士洙及馨伯來見而去。 朝後, 看村 宋生及倉浦 金生, 始來言下去, 故付家書。 彭甲來言, "林侄痛臥"云, 故往見。 邀見朴戚, 而良彦亦上來始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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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初六日 대가(大駕)가 사직단(社稷壇)에 거둥하여 기곡 대제(祈穀大祭)1)1) 기곡 대제(祈穀大祭) : 매년 음력 정월 첫 신일(辛日)에 그해의 풍년을 빌기 위하여 사직(社稷)에서 임금이 친히 지내는 제사이다.를 지냈다. 흥양(興陽) 경주인(京主人)이 흥양 상인을 데리고 왔다. 김득성(金得成)의 동생이 와서 보고 갔다. 大駕擧動於社壇, 祈穀大祭。 興陽 京主人, 率來興陽商賈人。 金得成之弟, 來見而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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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初七日 인일제(人日製)1)를 행하였다. 行人日製。 인일제(人日製) 성균관의 원점 유생(圓點儒生)을 대상으로 인일인 1월 7일에 보는 제술 시험이다. 특교(特敎)가 있을 경우에만 방외 유생(方外儒生)까지 통틀어 시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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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十四日 아침 전에 흥양(興陽)의 공촌(貢村) 임일한(林一漢)이 찾아와서 보고, 이어 아침을 먹고 갔다. 아침을 먹은 뒤에 명두엽(明斗燁)과 길동무하여 청동(淸洞)으로 가는 길에 나는 차동(車洞) 민 판서(閔判書)의 집에 들러 민치항(閔致恒)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또 그 마을 민치명(閔致明)의 집에 가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주인은 지금 아내의 병 때문에 근심하고 있다고 했다. 또 이희(李)의 집에 갔으나 또 출타하여 얼굴을 보지 못하고, 단지 그 아우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왔다. 우 참봉(禹參奉)의 집에 들렀더니 안동(鴈洞)의 진사 정두옥(丁斗玉)이 그 자리에 있었다. 뜻밖에 만나니 기쁜 마음을 헤아릴 수가 없었다. 그는 어제 입성(入城)했다고 했다. 이어 청동(淸洞)으로 갔더니 이 판서(李判書)가 병으로 누워 있기 때문에 들어가 보지 못하고, 그 아우 한림(翰林)과 판서의 아들만 만나 보았다. 오는 길에 재동(齋洞)으로 가서 진사 오우상(吳羽常)을 찾아가 임실(任實) 한용(韓溶)에 대해 물었다. 주인이 가서 보았더니 야당(野塘)의 종인(宗人) 형제와 한용(韓溶)이 함께 머물러 있다고 하였다. 잠깐 만나 보고 주인집으로 나왔다. 朝前興陽 貢村 林一漢來見, 仍爲朝飯而去。 食後與明斗燁, 作伴往淸洞之路, 余則入車洞 閔判書家, 與閔致恒暫話。 又往其村致明家暫話, 而主人方以內患憂慮云矣。 又往李家, 則又爲出他, 不得相面, 只與其弟暫話出來。 入禹參奉家, 則鴈洞 丁進士 斗玉在座, 意外相面, 忻喜難量, 昨日入城云矣。 仍往淸洞, 則李判書以病臥之致, 不得入見, 只見其弟翰林與判書之子。 來路往齋洞, 訪見吳進士 羽常, 問任實 韓溶。 主人往見, 則野塘宗人兄弟與韓溶同留云矣。 暫見而出來主人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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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十四日 ○새벽에 출발하여 노령(蘆嶺)을 넘었다. 순창(淳昌) 읍내에 이르러 여막(旅幕)에 노복과 말을 남겨두고 화방재(畫舫齋)9)에 갔다. 지난 10일에 내훈(乃勳)이 이곳에 와서 기다리다가 우리 일행이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도로 문암리(門岩里)로 들어가 문암리(門岩里)로 찾아오라는 뜻을 벽에 써 놓고 갔다. 그래서 교촌(校村) 뒤 주점으로 가 점심을 먹고, 길을 재촉하여 간신히 담양(潭陽)의 문암리를 찾아갔더니, 내훈이 내행(內行)10)을 거느리고 먼저 새벽에 길을 떠났다고 하였다. 교촌(校村) 뒤 주점(酒店)으로 돌아오니 밤이 이미 깊었다. 그대로 머물렀다. ○曉發越蘆嶺, 抵淳昌邑內, 留奴馬於旅幕, 往畵舫齋, 則去初十日, 乃勳來待此處, 以吾行之不及, 還入門岩里, 而尋門岩里來到之意, 書壁而去, 故往校村後酒店中火。 促鞭艱尋潭陽 門岩里, 則乃勳率內行, 先曉發程云, 故還來校村後酒店, 則夜已深矣。 仍留。 화방재(畫舫齋) 순창 읍성 관아에 달린 건물이었다. 지금은 사라지고 1957년에 편찬한 순창군지에 전하고 있다. 여암 신경준의 《여암유고》 권4에 기록된 <화방재기>에, "1769년에 세운 화방재는 당시 순창의 명승으로 알려진 응향각 주변에 자리했다. 응향각은 주위에 대숲과 나무들이 둘러싸 그윽한 맛이 있었으나 넓게 트인 경치를 볼 수 없어 응향각 서쪽 남지(南池)와 시내 사이 긴 언덕에 새로 누각을 세워 화방재라 했다"라고 전하고 있다. 내행(內行) 내행은 원래 길을 나선 부녀자를 말하는데, 글의 흐름으로 볼 때 여기서는 내훈(乃勳)의 안식구를 말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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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十六日 ○새벽에 출발하여 원동(院洞)의 이중규(李重奎) 집에 들어가니, 이우(李友)가 마침 다른 곳으로 나가고, 그의 부친 상엽(象燁) 씨가 있어서 아침을 먹었다. 곧바로 출발하여 사미정(四美亭)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장수동(長壽洞)으로 가려고 귀암(龜岩) 마을 어귀에 이르러 소로(小路)에 들어갔다. 갈용치(渴龍峙) 강이백(姜利伯)의 집에 들렀더니, 강생(姜生)이 마침 출타하였는데 날도 저물어 어쩔 수 없이 머물렀다. 밤에 비가 내렸다. ○曉發入院洞 李重奎家, 則李友適出他, 其大人象燁氏在, 仍爲朝飯。 卽發抵四美亭中火, 欲向長壽洞, 至龜岩村前入小路。 入渴龍峙 姜利伯家, 則姜生適出他, 而日力且暮, 不得已留。 夜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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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무진) 三日 戊辰 맑음. 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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