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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初吉 ○새벽에 출발하여 지지현(遲遲峴)110)에 이르자 막 해가 떠올랐다. 김노가 중병이 나서 일행과 짐을 나눠서 졌다. 간신히 사근평(肆覲坪)111) 객점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김노가 주막에서 스스로 짐을 약간 졌다. 세동(細洞)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과천읍에 이르러 비를 만나 한참을 머물렀다. 비가 갠 뒤에 남태령 객점으로 올라갔다. 김노가 뒤따라와서 몹시 기뻤다. 이에 점심을 먹고 강을 건너는데 비가 다시 시작되었다. 모래사장 반도 못 가 비가 퍼붓듯이 쏟아져 옷자락이 흠뻑 젖었다. 간신히 식점거리(食店巨里)에 이르러 비를 피하였다. 비가 갠 뒤에 청파(靑坡)112)의 영대(永大) 집에 이르렀다. 의관과 짐 안의 물건들이 모조리 젖어 말할 수 없이 부아가 났다. 80리를 갔다. ○曉發, 抵遲遲峴始開東矣。 以金奴之大病, 分卜於同行。 艱抵肆覲坪店留。 金奴於酒幕自負略干卜。 抵細洞朝飯。 抵果川邑逢雨, 移時留連。 開霽後上南泰嶺店。 金奴追後來到, 可喜可喜。 仍爲午飯, 而越江, 雨更作。 沙場未半, 雨下如注, 衣裾盡濕。 艱抵食店巨里避雨。 開霽後, 抵靑坡永大家。 衣冠與卜中諸物盡濕, 憤不可言。 行八十里。 지지현(遲遲峴) '지지대고개'라고 불리는 곳이며 의왕에서 수원으로 넘어오는 길목이다. 지지현(遲遲峴)이라고 표기하는 곳이지만 본래는 '사근현(沙斤峴)' , '미륵현(彌勒峴)' 등으로 불렸다. 사근평(肆覲坪) 경기도 안양시이다. 청파(靑坡) 서울시 용산구 청파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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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二十一日 얼음을 타고 강을 건너는데, 이때는 첫추위라서 얼음이 단단하게 얼어붙지 않았다. 창고지기가 전하는 말을 들으니, 어제부터 사람과 말이 비로소 건널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얼음이 이제 막 얼어서 맑기가 유리와 같아 맑은 모래와 흰 돌을 하나하나 셀 수 있을 정도였으나 그 위태로운 상황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먼저 노복과 말을 건너가게 한 뒤에 강을 건너 평지를 밟고 나서야 비로소 생기가 돌았다.몇 마장을 지나지 않아서 신창(新倉)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채찍을 재촉하여 하행정(下杏亭) 주막에 이르러 잠시 말에게 꼴을 먹이고 곧바로 산으로 향했다. 절까지 10여 리를 채 못 갔는데 여승(輿僧)이 벌써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말에서 내려 수레를 타고 곧장 보현사(普賢寺)74)에 이르러 관음전(觀音殿)에서 묵었다. 이날 50리를 갔다. 乘氷渡江, 是時初寒, 氷不緊凝。 聞倉直所傳, 則自昨日人馬始渡云, 而淸氷初合, 淨若琉璃, 明沙白石, 歷歷可數, 其危凜之狀, 不可盡言。 先渡奴馬, 後乃渡江, 方踏平地, 始有生意。 不過數馬場, 到新倉朝飯。 促鞭至下杏亭酒幕, 暫時秣馬, 卽爲入山。 未到寺十餘里, 輿僧已來待矣。 遂下馬乘輿, 直到普賢寺, 觀音殿留宿。 是日行五十里。 보현사(普賢寺) 평안북도 영변군 북신현면의 묘향산에 있는 절이다. 고려 초기인 968년(고려 광종19) 창건 당시에는 매우 작은 사찰이었다고 한다. 1028년(고려 현종19) 이후부터는 탐밀(探密)과 굉확(宏廓)이 243칸의 건물을 이룩하여 묘향산의 대표적인 가람이 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역대 국왕의 초상화인 어진(御眞)과 《조선왕조실록》 등 각종 귀중한 기록들을 보관하기도 하였다. 또한 1592년(선조25) 임진왜란 당시 청허휴정은 경상도 양산의 통도사(通度寺)에 보관되어 있던 석가여래사리를 보현사에 봉안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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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二十二日 일찍 밥을 먹은 뒤에 견여(肩輿)를 타고 안심사(安心寺)75)에 올랐다. 안심사는 보현사(普賢寺)보다 오래전에 지어진 절이다. 그 터는 비록 석봉에 있으나 사면의 토맥(土脈)이 매우 편안하였다. 절 뒤에는 무수한 부도와 석비(石碑)가 있는데, 대개 이 절을 창건한 이래로 명사(名師)들이 있으면 반드시 절에 부도(浮屠)를 세웠기 때문이다. 마침내 상원암(上院庵)76)으로 올라갔다. 나머지는 향산일기(香山日記)에 들어 있다. 早食後, 肩輿上安心寺。 比是普賢寺, 舊創之寺, 而其基址雖在石峯之中, 而四面土脈, 極爲安穩矣。 寺後立無數浮屠, 無數石碑, 盖此寺創始後有名師, 則必建浮屠於此寺故也。 遂上上院, 餘在香山日記中。 안심사(安心寺) 향나무와 사철나무[萬年枝, 冬靑]가 많은 묘향산에 처음으로 세워진 사찰이다. 사명은 "중국 선종사의 초조(初祖)인 달마대사가 2조 혜가대사의 마음을 편안케 하였다"라는 고사에서 유래되었다. 특히 고려 말기에 인도에서 온 고승 지공대사의 사리가 봉안된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상원암(上院庵) 향산 제1경이자 최고의 암자이다. 상원암의 현판은 추사 김정희(金正喜)의 유작이다. 상원암 본전 툇마루에서 묘향산의 인호대 등을 조망하는 것을 으뜸으로 꼽는다. 본전 상량문에 의하면, 고려 말에 창건된 상원암은 1580년에 중창한 것을 1794년에 다시 중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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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初十日 주동(鑄洞) 각처에 갔다가 예조(禮曹)의 직방(直房)16)으로 가서 안리(安吏)를 만났다. 다시 경모궁(景慕宮)으로 가서 박 상사(朴上舍)와 고향 사람을 만나고 왔다. 往鑄洞各處, 因向禮曹直房 見安吏。 轉向景慕宮, 見朴上舍及鄕人而來。 직방(直房) 조방(朝房)이라고도 하는데 조정의 신하들이 조회(朝會) 때를 기다리느라고 모여 있던 방이다. 대궐문 밖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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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十七日 아침을 먹기 전에 박 상사(朴上舍) 형제와 소년(少年) 둘이 와서 보고는, "돌아가신 상사(上舍) 형님의 효행(孝行)으로 인해 호백(湖伯, 전라도 관찰사)의 장계가 도착하였다."라고 하기에 함께 가서 안리(安吏)와 예판(禮判)을 만나고 왔다. 저녁에 형백(馨伯)이 □덕(□德)에서 비로소 들어와 만나고 갔다. 食前, 朴上舍兄弟及兩少年來見, 因云"故上舍兄主, 以孝行, 湖伯狀啓來到。"云, 故同往見安吏及禮判而來。 夕間馨伯, 自□德始爲入來, 來見而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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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三十六日 동틀 무렵에 출발하여 어렵사리 앞강을 건너 천안읍점(天安邑店)에 이르러 말에게 꼴을 먹이고 아침을 먹었다. 금전(金田)에 이르니 잠깐 비가 내렸다가 이내 그쳤다. 원터[院基]에 이르러 다시 말에게 꼴을 먹였다. 가랑비가 그치지 않는데다가, 동풍까지 세게 불어 걸을 수가 없으므로 인주원(仁周院)에 머물렀다. 이날 밤에 비가 내렸는데 쟁기질하기에 알맞을 정도로53) 흡족하게 내렸다. 平明發行, 艱渡前江, 至天安邑店, 秣馬朝飯。 至金田, 乍雨乍歇至院基, 更爲秣馬。 細雨不止, 且東風大作, 不得行步, 故留仁周院。 是夜雨作, 洽滿一犁。 쟁기질에 알맞을 정도로 원문의 '일려(一犁)'는 논밭을 갈기에 알맞도록 내린 봄비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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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二十七日 빗줄기가 그치지 않아 일찍 출발하지 못하다가 해가 뜰 때 비로소 길을 나섰다. 금강(錦江)을 건너 효포(孝浦)에 이르러 말에게 꼴을 먹였다. 채찍을 재촉하여 사교(沙橋)에 이르러 묵었다. 以雨勢不止, 不得早發, 日出時始登程。 渡錦江, 至孝浦秣馬。 促鞭至沙橋留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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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二十日 추웠다. 김 동지를 위해 만시(挽詩)를 대신 지었다.한 가닥 영서처럼 마음이 밝게 통하니8)(靈犀一點暗通明)젊어서부터 맺은 교유의 정 형제와 같네(自少交情若弟兄)이품의 높은 직함 자헌대부에 오르고(二品崇啣資憲秩)칠순의 큰 복에 자손들도 빼어나네(七旬胡福子孫英)지팡이9) 짚고 느린 걸음으로 찾아뵈니(鳩笻緩步曾相訪)백발의 늙은이 온화하게 맞아주었네(鶴髮雍容底處迎)조만간 머나먼 저승길을 따라가리니(早晩長隨泉下路)만가 부르며 북망산 가는 길 먼저 전송하네(輀歌先送北邙塋)저녁에 우연히 독감에 걸려 밤새도록 크게 앓았다. 寒。 爲金同知代述挽詩曰: "靈犀一點暗通明, 自少交情若弟兄。 二品崇啣資憲秩, 七旬胡福子孫英。 鳩笻緩步曾相訪, 鶴髮雍容底處迎。 早晩長隨泉下路, 輀歌先送北邙塋。" 夕間偶得毒感, 達夜大痛。 영묘한 무소 뿔 영서(靈犀)는 영험한 무소의 뿔을 말하는데, 흔히 마음이 서로 통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특히 무소의 뿔 가운데 백색의 무늬가 양쪽 끝으로 통해 있는 것은 그 감응이 아주 빠르다고 한다. 중국 만당 시기의 시인 이상은(李商隱, 812~858)의 〈무제(無題)〉에 "몸에는 쌍으로 나는 채봉의 두 날개가 없고, 마음에는 서로 통하는 한 가닥 영서가 있네.[身無彩鳳雙飛翼, 心有靈犀一點通.]"라고 하였다. 지팡이 원문의 '구공(鳩笻)'은 손잡이 부분을 비둘기 모양으로 조각한 지팡이로 예전에 임금이 나이 많은 신하에게 비둘기처럼 소화를 잘 시키라는 의미에서 내려 주었는데 구장(鳩杖)이라고도 한다.《後漢書 志5 禮儀中》 《呂氏春秋 仲秋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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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十九日 예조에 가서 안일득(安一得)을 만나 상언(上言)5)하는 일을 상의하였다. 오는 길에 대묘동(大廟洞)에 들어가서, 삼정(森亭)의 접(接)6)과 임 상사(林上舍)에 대해 물었다. 현재 이문동(里門洞)에 머물고 있다는 기별에 다시 이문동(里門洞)으로 들어가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왔다. 往禮曹見安一得, 相議上言事。 來路入大廟洞, 問森亭接及林上舍, 方留里門洞之奇, 轉入里門洞, 暫話而來。 상언(上言) 주로 집안 일로 백성이 임금에 진정(陳情)하는 글을 올리는 것, 또는 그 글을 말한다. 상언의 내용을 보면, 주로 자손이 조상을 위해서거나 또는 사림(士林)이 선열(先烈)을 위해서 올리기도 하고, 충절(忠節)ㆍ효행(孝行)ㆍ정렬(貞烈)에 대한 정표(旌表)ㆍ증직(贈職)이나 신원(伸冤) 등을 위해 올리기도 하는 것으로, 일정한 서식(書式)이 있다. 접(接) '접'은 글방 학생들이나 과거에 응하는 유생들이 모여 이룬 동아리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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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二十日 밥을 먹은 후에 민 상사(閔上舍)와 여러 동접(同接)들과 함께 성균관에 들어갔다. 점심을 먹고 나서 이소(二所)7)의 과거 시험장에 들어가니 시험장은 협소한데 사자(士子)들이 너무 많아 세 곳으로 통설하기에 이르렀다. 노숙하며 밤을 새웠다. 食後與閔上舍及諸同接, 入成均館。 中火後, 因入二所場中, 則場中狹少, 士子甚多, 至以三所通設矣。 夜間經宿露處。 이소(二所) 문과 초시와 회시 때의 시험장의 하나로, 시험장을 각각 둘로 나누어 제1시험장은 일소(一所), 제2시험장은 이소(二所)라고 불렀다. 일소는 예조에, 이소는 성균관에 설치하였다. 《無名子集 文稿 册14 記丙戌別試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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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二十日 일찍 출발하여 실음소(失音所)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직산(稷山, 천안 옛 지명) 삼거리에 이르러 길에서 장달소(張達紹)를 만났다. 그가 집에서 온 편지를 전했는데, 집안에 별 탈 없는 것이 다행스럽고, 집을 떠난 지 30일 만에 소식을 듣게 되니 몹시 기뻤다. 잠깐 이야기를 나누다가 작별하여 천안읍(天安邑) 어귀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김제역촌(金堤驛村)48)의 주막에 이르러 회덕(懷德)의 노차(路次)49)를 묻고, 이어 소로(小路)로 길을 잡아 고동령(高東嶺)을 넘어 전의(全義) 읍내에 이르러 묵었다. 90리를 갔다. 早發至失音所朝飯。 抵稷山三巨理, 路上逢張達紹。 乃給家信, 而家中別無故幸喜, 離家三十日, 始見消息忻喜。 暫話作別, 抵天安邑前中火。 到金堤驛村酒幕, 問懷德路次, 仍爲小路作行, 越高東嶺, 抵全義邑內留宿。 行九十里。 김제역촌(金堤驛村) 충청남도 연기군 소정면 대곡리 역말마을이다. 노차(路次) 길 가는 중 잠시 쉬기 위해 길가에 마련하는 임시 거처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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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初六日 아침을 먹기 전에 박 진사(朴進士)가 반궁(泮宮)에서 찾아왔는데, 몹시 아팠던 곡절을 자세히 말해주었으니 그 위태로움이 심하였다. 다만 각각의 병으로 인사를 살피지 못하여 생사를 모르고 있다가 지금 얼굴을 마주하니 기쁘고 다행스러운 마음을 이루 말할 수 없다. 朝前朴進士, 自泮宮來見, 而備說其大痛之由, 危凜甚矣。 但各病不省, 不知存沒矣, 今而相面, 喜幸不可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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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二十四日 이종형님, 후장(厚長) 등 여러 사람과 함께 종각(鍾閣) 행랑(行廊)에 가서 술을 마시고 요기를 하였다. 나는 주동(注洞)으로 가서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다가 돌아오는 길에 창동(倉洞)의 박 감사(朴監司) 집에 들러 그때 들어온 기별을 물어보고 왔다. 이종형님의 참방(參榜)11)은 축하할 만하였다. 與姨兄主及厚長諸人, 同往鍾閣行廊後, 飮酒療飢。 余則往注洞, 移時談話, 來路入倉洞 朴監司家, 問其時入來之奇而來。 姨兄主參榜, 可賀。 참방(參榜) 과거의 합격자 명단에 오르는 것을 말한다. 과거 합격자의 명단을 적어 게시하는 것을 방목(榜目) 또는 방(榜)이라 하고 여기에 참여되는 것을 참방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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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二十七日 주동(注洞)에 가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는 길에 종현(鍾峴) 갑산(甲山)의 집에 들렀으나 주인은 보지 못하고, 이 도사(李都事)가 그의 집안 하인[家僮]을 거느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장흥동(長興洞)으로 들어가 이 충주(李忠州)를 만나고 왔다. 往注洞暫話。 來路入鍾峴 甲山家, 不見主人, 因見李都事率其家僮。 入長興洞見李忠州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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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初一日 창동(倉洞)에 가서 박 감사(朴監司)를 만나고, 이어 독송정(獨松亭)에 가서 문중 어른의 상(喪)을 조문하였다. 다시 주동(注洞)으로 돌아갔다가 마침 군회(君會)와 주인을 만나 종일토록 이야기를 나누고 왔다. 이날 화옥(華玉)이 떠났다. 往倉洞見朴監司, 因往獨松亭, 弔門長之喪。 轉往注洞, 適逢君會與主人, 終日談話而來。 是日華玉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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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二十六日 일찍 출발하여 직산(稷山) 삼거리에서 아침을 먹고, 여산(礪山)의 삼치(三峙)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전주 삼례(參禮)의 대천(大川)에 이르러 묵었다. 110리를 갔다. 早發抵稷山三巨里朝飯, 抵礪山之三峙中火。 抵全州 參禮 大川留宿。 行百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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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二十七日 일찍 출발하였다. 노자(路資)가 부족하였기 때문에 부내(府內) 영주인(營主人) 집에 들러 변통할 요량으로 주인집에 들어갔으나 주인이 부재중이라서 곧바로 길을 나섰다. 신외(新隈)에 이르러 점심을 먹은 뒤 임실(任實)의 방동(方洞) 송연규(宋延奎) 집에 가서 묵었다. 80리를 갔다. 주인은 돈학공(遯壑公)50)의 자손이다. 早發。 以路資之不足, 入府內營主人家, 辨通意專, 入主人家, 則主人不在, 故卽爲發程抵新隈中火, 卽到任實 房洞 宋延奎家留宿。 行八十里。 主人則遯壑公子孫也。 돈학공(遯壑公) 송경원(宋慶元, 1419∼1510)으로, 본관은 여산(礪山), 호는 돈학이다. 김종직·남효온 등과 교유하였다. 1455년 음보로 전라도사에 임명되었다. 1457년(세조3) 단종이 영월에 유폐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재종형 송간(宋侃)과 함께 영월로 달려가 문밖에서 복명하고 돌아왔다. 단종이 사사되자 송간과 함께 계룡산으로 들어가 2년간 복상하였다. 그 뒤 출세를 단념하고 임실 백이산(伯夷山)에 은거하고, 그곳에서 일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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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계미) 十五日 癸未 흐리고 큰 비가 내려 계곡물이 불어났다. 陰大雨。 溪水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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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갑신) 十六日 甲申 갬. 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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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계미) 十六日 癸未 갬. 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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