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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二十日 일찍 출발하여 삼례에 이르러 아침을 먹고, 부내(府內)에 들어가 점심을 먹었다. 한여해(韓汝海)를 만나 영문(營門)에 소장을 올리는 일로 동행했던 사람을 몹시 기다렸다. 예조에 제출할 소장을 옷 보따리 속에 넣어 두었기 때문이었는데, 날이 저물 무렵 강문명(姜文明) 부자가 그의 일가 사람과 짐을 지고 왔다. 문서를 가지고 급히 남문(南門) 밖 주막에 가서 서장(書狀)의 초본을 썼으나 날이 저물었기 때문에 영(營)에 제출하지 못하고 서문(西門) 밖에 가서 강(姜)과 함께 머물렀다. 早發抵參禮朝飯, 入府內午飯。 逢韓汝海, 以呈營門事, 苦待同行者, 禮曹呈狀入衣褓中故也。 日暮時, 姜文明父子與其一家人, 負卜而來, 故持文書, 急往南門外酒幕書狀草, 而以日暮之致, 不得呈營, 往西門外, 與姜也同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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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二十二日 일찍 출발하여 여해와 신곡(新谷)의 종인(宗人) 연규(延奎)씨의 집에 들어가 아침을 먹었다. 여해가 나의 양식이 떨어졌다고 주인에게 말하였더니, 돈 한 냥을 내주었는데, 양식이 떨어진 끝이라 매우 감사하였다. 곧바로 출발하여 도마교(逃馬橋)42) 근처에 이르러서 여해와 작별하였다. 이어 곽평중(郭平仲), 평당(坪塘)의 종인 연영(延英)과 함께 굴암(屈岩)43)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평당(坪塘)44) 주막에 이르러 평중(平仲)과 작별하고 연영(延英)과 그 집에 들어가 묵었다. 50리를 갔다. 早發與汝海入新谷宗人延奎氏家朝飯。 汝海以吾絶粮之由言及主人, 則以一兩錢出給, 絶粮之餘, 多感多感。 卽發至逃馬橋邊, 與汝海作別。 仍與郭平仲 坪塘宗人延英, 至屈岩午飯。 抵坪塘酒幕, 與平仲作別, 與延英入其家留宿。 行五十里。 도마교(逃馬橋) 전라북도 임실군 임실읍에서 내려온 시내에 놓인 나무다리로, 말이 건너다녔다 하여 도마교(道馬橋)라고 했다. 굴암(屈岩) 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에 있는 마을 이름이다. 평당(坪塘) 전라북도 임실군 오수면에 있는 마을 이름이다. 앞들이 넓고 연못이 있다 하여 지형을 따라 들땡이라고 부르다가 한자로 '평당(坪塘)'이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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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初三日 새벽밥을 먹고 동틀 무렵에 길을 떠났다. 순자강(蓴子江)을 건너 불노치(不老峙)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영귀정(咏歸亭) 마을 뒤편에 이르러 영귀정(咏歸亭)에 들어가려고 할 때 마침 길에서 송국필(宋國弼)을 만나 몇 마디 말을 나누다가 영귀정에 들어가지 않고 곧장 광청(廣淸)에 이르렀다. 마침 원동(院洞)의 이 석사(李碩士)를 만나 몇 마디 말을 나누다가 이 석사는 그의 집에 들어가고, 나는 공서(公瑞)와 주막(酒幕)에 머물렀다. 주막에는 먼저 들어온 염상(鹽商) 한 사람이 있었다. 함께 이 석사 집 앞에서 머물렀다. 90리를 갔다. 仍曉飯平明發程, 越蓴子江, 至不老峙午飯。 抵咏歸亭村後, 欲入歸亭之際, 適逢國弼於路次, 數語而不入歸亭, 直抵廣淸, 適逢院洞 李碩士數語, 而李碩士入其家。 余則與公瑞留酒幕。 幕則有先入鹽商一人矣。 同留李之家前也。 行九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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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初六日 문대(文大) 씨, 미옥(美玉)과 유둔(油屯) 시장 근처에 갔더니 문중(門中)의 노소(老少)들이 내가 내려왔다는 기별을 듣고 몇몇이 모여 있었다. 한참 동안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요기한 뒤에 짐을 지고 들어와 과역(過驛)에 이르자 날이 이미 저물었다. 밤을 틈타 집으로 돌아오니 밤은 이미 3경이었다. 與文大氏及美玉, 往油屯市邊, 則門中老少, 聞余下來之奇, 略干來會, 仍與移時談話, 療飢後, 負卜入來, 至過驛, 則日已暮矣。 乘夜還家, 夜已三更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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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二十七日 ○아침을 먹은 뒤에 반송등(盤松登)에 가서 구관(舊官) 교리 남이형(南履炯)을 만났다. 동행과 함께 모화관(慕華館)15) 영은문(迎恩門)16)으로 갔다가 오는 길에 추문(秋門)17)에 올라 잠시 쉰 뒤에, 나는 대묘동(大廟洞)에 가서 공서(公瑞)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사(金使)와 지종현(池宗玄)을 만나려고 기보(基甫)의 집에 갔으나, 두 사람 모두 부재중이라 만나지 못했다. 오는 길에 서울의 주인집에 들어가니 경주인(京主人)도 부재중이라 만나지 못하고 주인집으로 왔다. ○食後往盤松登, 見舊官南校理 履炯。 與同行往慕華館 迎恩門, 來路登秋門暫憩後, 余則往大廟洞, 與公瑞暫話。 欲見金使及池宗玄, 往基甫家, 則兩人皆不在不見, 而來路入京主人家, 則京主人亦不在不見, 而來主人家。 모화관(慕華館)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현저동에 있었던 객관(客館)으로, 조선 시대에 중국 사신을 영접하던 곳이었다. 《궁궐지(宮闕志)》에는 태종 8년(1408)에 개경의 영빈관을 본 따 모화루를 건립하였다고 쓰여 있다. 그 후 세종 12년(1430)에 확장, 개수하여 모화관이라 개칭하였다. 영은문(迎恩門) 모화관(慕華館) 앞에 세웠던 문이다. 현재 독립문이 있는 곳의 바로 앞에 있었다. 새 임금이 즉위하여 중국사신이 조칙을 가지고 오면 임금이 친히 모화관까지 나오는 것이 상례였다. 추문(秋門) 경복궁 영추문(景福宮迎秋門)으로,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경복궁 서쪽에 있는 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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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十七日 새벽에 출발하여 희도원(希到院)에 이르러 아침을 먹고, 성환(成歡)34)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천안 신(新) 주막에 이르러 묵었다. 100리를 갔다. 曉發至希到院朝飯, 抵成歡午飯。 抵天安新酒幕留宿。 行百十里。 성환(成歡)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에 있는 읍명으로, 성환읍 성환리에 성환역(成歡驛)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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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二十八日 새벽에 출발하여 보성 대곡(大谷)의 이 석사(李碩士), 율촌(栗村)의 종인(宗人)과 동행하여 왈천(曰川)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부내(府內)의 서문(西門) 밖 전성철(全聖哲) 집에 이르자 진사 정여흠(丁汝欠)이 먼저 와서 이 집에 머물고 있었다. 두어 시간 이야기를 나누다가 정여흠이 먼저 떠났다. 나는 공서와 북문 밖의 종인(宗人) 송민수(宋民洙) 집을 찾아가 제각통문(祭閣通文)을 전하고 유숙한 것은 영문(營門)의 《사원록(祠院錄)》에 재록하기 위해서였다. 서재(書齋)에서 묵고 있는데, 주인 송약수(宋若洙)의 백씨(伯氏)가 백대(百代)의 정의(情誼)로 반기며 우리 두 사람과 함께 술집에 직접 가서 술을 사 마시다가 주객이 모두 취해서 돌아왔으니 그 마음이 매우 살뜰하였다. 曉發與寶城 大谷 李碩士及栗村宗人同行, 抵曰川朝飯。 至府內 西門外全聖哲家, 丁進士 汝欠先來, 而留在此家, 而數時談話, 汝欠則發行, 而余則與公瑞, 訪于北門外宗人民洙家, 傳祭閣通文留宿, 欲爲營門《祠院錄》中載錄之意也。 留宿書齋, 而主人若洙之伯氏, 而忻然有百代之誼, 偕吾二人親往酒家, 沽酒相飮, 主客醉而歸, 其意最爲慰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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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晦日 새벽에 출발하여 소로(小路)로 들어가자 임실(任室) 방동(房洞)의 동종(同宗)인 송염(宋濂) 집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길을 나서려고 하니 주인이 한사코 만류하였다. 하늘에서도 가랑비가 내려 그 집에 그대로 머물렀는데, 통문 1건을 베껴서 맡겨 두고 차차로 전해 달라는 부탁의 말을 하였다. ]曉發入小路, 抵任實 房洞同宗濂家朝飯。 欲爲發程, 則主人固挽。 天又細雨, 仍留其家, 而通文一件謄出留置, 次次飛傳之意言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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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初三日 ○문적의 수정(修正) 때문에 주인집에 남아있었다. 오후에 정동(貞洞)21)에 갔는데 이 석사가 없었다. 다만 그의 아우 이훈(李壎)하고만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오니, 석사 이혜길(李惠吉)이 혼자 찾아와 기다리고 있었다. 저녁을 먹은 후, 이혜길이 집으로 가자고 청하기에 그와 함께 가서 그대로 유숙하였다. ○以文蹟之修正留主人家。 午後往貞洞, 李碩士不在。 只與其弟壎, 暫話而來, 則李碩士惠吉專訪來待矣。 夕飯後, 惠吉請往其家, 故與之偕往, 仍留。 정동(貞洞) 조선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의 정릉이 현재 정동 4번지에 있던 데서 '정릉동'이라 하였던 것을 줄여 정동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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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初四日 ○아침밥은 안채에서 음식을 내와서 몹시 고마웠다. 오후에 일행과 영추문(迎秋門)22) 안으로 가서 궐문 밖을 지나, 그길로 유동(油洞)23)으로 갔다. 도중에 일행을 남겨두고, 나는 조문하기 위해 아전 안인성의 집을 찾아갔는데 아전 안인성의 아들이 출타하였으므로 만나지 못하였다. 일행이 머무는 곳으로 돌아와서, 함께 종각 근처로 왔다. 마침 공서을 만나 그와 잠시 얘기를 나누고 돌아왔다. ○朝飯自內間出饋, 感荷感荷。 午後與同行往秋門內, 過闕門外, 仍向油洞。 留同行於中路, 余則吊問次, 尋安吏寅成家, 則安吏之子出他, 故不見。 而還同行所留處, 與之偕來鍾閣邊。 適逢公瑞, 與之暫話而來。 영추문(迎秋門) 경복궁의 서문(西門)이며 연추문(延秋門)이라고도 한다. 조선 시대 문무백관들이 주로 출입했던 문이다. 유동(油洞)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1가에 있던 마을로, 기름을 파는 기름전이 있었으므로 기름전골이라 하고, 이를 한자명으로 표기한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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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二十三日 ○밥을 먹은 뒤 출발하였다. 북문 밖으로 가 잠시 송약수 씨를 만났는데 서울로 보내는 편지를 주었다. 그길로 출발하여 장대(將臺) 앞에 이르자 나를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돌아보니 남문 밖에 사는 류하석(柳夏錫) 영윤(令倫)이었다. 내가 이미 부내에 들어섰으니 찾아가지 못할 것도 없는데, 갈 길이 바쁜 관계로 그렇게 하지 못하고 왔다. 그런데 갑자기 여기에서 뜻하지 않게 만나 무척 기뻤다. 그길로 동행하여 삼례(參禮)83)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저물녘에 능측(陵側)84) 객점에 이르러 함께 유숙하였다. 50리를 갔다. ○食後發程。 往北門外, 暫見若洙氏, 則付京簡矣。 仍發, 抵將臺前, 則有呼我之人 。 故顧見, 則乃南門外居柳夏錫令倫也。 余旣入府, 則非不爲尋訪, 而以行忙之致, 未果而來矣。 忽於此地意外相面, 其喜可掬。 仍與同行, 抵參禮午飯。 暮抵陵側店, 同留宿。 行五十里。 삼례(參禮)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이다. 능 전라북도 익산시 석왕동에 있는 익산 쌍릉으로 보인다. 마한(馬韓)의 무강왕 및 왕비의 능이라고도 하고, 백제 무왕과 왕비의 능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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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二十六日 ○밥을 먹은 뒤 길을 떠날 무렵, 마침 암자 아래를 지나는 상선(商船)이 있어서 어디로 가는지 물으니 공주로 간다고 하였다. 뱃사공을 불러 급히 배에 올랐다. 배를 띄운 지 몇 리 못 가서, 바람과 일기가 순조롭지 못해 도로 배에서 내려 육지에 올랐다. 선덕(先德) 객점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삼거리 객점을 지나 발치(發峙)100)를 넘어 이인(里仁)101) 객점에 이르렀다. 잠시 쉬고 나서 우금치(于今峙)102)를 넘어 공주 화산교(花山橋) 객점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70리를 갔다. ○食後, 離發之際, 適有商船之過菴下, 故問其所向, 則往于公州云也。 招津夫急登船。 浮江數里, 以風日之不順, 還下船登陸。 抵先德店午飯。 歷三巨里店, 越發峙, 抵里仁店。 暫憩後, 越于今峙, 抵公州花山橋店留宿。 行七十里。 발치(發峙) 충청북도 충주시의 직동과 살미면 재오개리 사이에 있는 고개이다. 옛날 삼남대로로 통하는 대로의 첫 고개였다고 한다. 이인(里仁)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이다. 우금치(于今峙) 우금치(牛禁峙)를 말한다. 공주 분지의 남쪽 끝에 낮은 안부를 이루어 형성된 고개로 높이가 약 100m이며, 부여에서 공주 시내로 진입하는 길목에 있다. 동학운동 때 관군과 싸워 동학 농민군 10만 명이 전사한 역사적 장소로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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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初吉 ○밥을 먹은 뒤 일행과 용동(龍洞)19)의 이 참봉 집으로 가서 《명현록(名賢錄)》 개간(開刊) 일을 보고 돌아왔다. ○食後, 與同行往龍洞李參奉家, 見《名賢錄》開刊事而還。 용동(龍洞) 서울 노원구 하계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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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十九日 ○밥을 먹은 뒤 하서와 야당(野塘)으로 와서 송필동(宋弼東) 씨를 만났다. 이에 점심을 먹고 동행하여 계동(桂洞)80)의 송화(宋燁) 집으로 왔다. 저녁을 먹은 뒤 그 마을 종인(宗人, 먼 일가)인 상향(象亨), 상풍(象豊), 상정(象貞), 상의(象義), 상태(象台)가 다 같이 찾아왔다. ○食後, 與夏瑞偕來野塘, 見宋弼東氏。 仍爲午飯, 而同行來桂洞宋燁家。 夕食後, 其村宗人象亨、象豊、象貞、象義、象台, 皆來見。 계동(桂洞) 전라북도 남원시 사매면 계수리 계동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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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二十日 ○주인이 극구 만류하여 그대로 머물렀다. 낮에 김노가 다리 통증으로 아파서 드러누워 있으니 몹시 걱정되었다. 거처 앞에는 시내가, 뒤에는 소나무가 있어 아주 고즈넉하였다. 절구 한 구절을 다음과 같이 읊었다.개울물 소리는 밤새도록 울리고(澗有通宵響)둥글고 깊다라니 진종일 그늘 드네(圓深盡日陰)거처하는 곳이 시내 저자 주변이건만(攸居城市邊)혹 속인이 찾아오는 건 싫어하네(倘嫌俗人尋) ○以主人之堅挽, 仍留。 午間, 金奴以脚病痛臥, 悶悶。 所居前溪後松甚幽寂。 吟一絶曰: "澗有通宵響, 圓深盡日陰。 攸居城市邊, 倘嫌俗人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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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계미) 十四日 癸未 맑음. 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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御書碑閣【幷誌】 臣按鶴城邑乘曰御書碑閣乃仁烈王后誕生舊址在衙東數十步西平府院君韓浚謙宣廟癸巳爲牧使倭賊退後設衙於官吏崔斷龍家翌年七月初一日誕生王妃殿厥後王妃殿下敎問以所生之地今爲何人所居悵然有養不及之敎浚謙記其事留揭客館遺址初無封標英廟戊寅禮曺判書洪象漢於莊陵奉審之行歸奏故事監司沈鏞狀聞基址右議政李[土+厚]奉審以來上令道臣竪碑䢖閣仍親寫碑前後面以下又親製記文命西平外孫翰林洪秀輔書進刻揭工訖面賜廐馬於道臣地方官秀輔亦陞六◌碑前面書曰仁烈王后誕生之地後面書曰西平府院君記旣稱聖后之敎邑誌亦爲詳悉鳴呼我聖后誕生之處豈可泯於後乎盥手親書令道臣竪石海西有聖祖誕降碑於海州關東有聖后誕降碑於原州豈偶然哉戊寅陽至月敬寫◌親製記曰原州仁烈王后誕生舊基小識噫先祖遺址敬而守之者子孫之道也王后誕生之地其或私第其或公館何標識之有而若不然表而記之不泯於後於義當然列聖誌狀中王妃誕降之地稱寓所者二稱村舍者一而村舍卽新豊國舅田廬與私第無異寓舍一則端懿王后誕生之所今無可問之人一則原州仁烈王后誕生之處宣廟癸巳西平國舅爲本牧而當壬辰兵燹之餘處於村舍翌年甲午檜山府夫人誕生聖后本事國舅記文中詳備而邑誌中亦載焉所謂村舍卽官吏崔斷龍家而其外孫女聞於其母而指點其基前民安九雄聞於古老而亦爲指示所謂銀杏樹旣得其根以今番右相奉審者聞之兩人指點亦不過三四間範圍之內而其爲府東則無疑噫頃於辛亥百年之後拜聖后之梓宮于今望七之年得聖后誕降之地於鶴城其豈偶然愴慕一倍况我聖后以祿不及養之意下敎于國舅省墓時使之尋訪舊址昔年聖后之意若此而爲其孫知而不標使數三草舍屑越其間則可謂孝乎鳴呼二去庚午我聖考特命竪碑於海州聖祖誕降之地今幾七十載吁嗟不肖又爲竪石於原州聖后誕降之處追憶昔年此心難抑前後面盥手親書仍令道臣依豊壤制樣從簡竪碑建閣於兩人指點處以伸追慕之意歲皇明崇禎紀元後三戊寅陽至之月拜手謹識朝奉大夫行藝文館待敎兼春秋館記事官臣洪秀輔奉敎謹書◌臣過鶴城仰瞻碑閣之翼翼伏讀宸章之爛爛不覺感歎賦五言古風二十韻雉山何磅礡毓氣靈且秀樹德西平家膺運降聖后淑女與君子龍潛正相姤桓桓撥亂日密謨多保佑正位垂坤裳承乾贊化囿澣衣昭儉德而不被文繡祿養恨不逮永慕藹如幼宗祊流景祚篤生寧王又春秋大義理日月明宇宙胎敎知有自母道仰成就漠漠鶴城東遺址近湫陋指點塗莘屋州人傳不謬往蹟百年後神孫棲感舊璀璨降雲章上應奎璧宿畵閣何巍岌穹碑更雕鏤照暎祥日麗衛護瑞雲逗地靈儼相守可朋東岡壽幾多古哲辟坐饗萬來富于嗟封表擧前史曾未覯孝哉我英廟追遠聖德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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手抄眉山蒐獵序 余於客夏僑居漢北楓下屋畏景爍爍恒潦淫淫顧無以自娛借主人書籍摘蘇長公事文之散出者手抄爲送夏之資旁有識之者曰子成名而年且衰矣以有限之精力空費於無益之書不其近於淫且愚乎古之杜武庫癖於左氏而子之癖於坡者抑何意見余以詩解嘲曰霧色長霖火色暉百坡於我弗相違抽毫正學蠅頭細運臂猶爭鶻翮飛自笑聞中緣底劇如癡坐上任他譏且書且讀役心欲不妨身家頓忘機居未幾何余出補東郵丞丞舍又寂如僧寺苦難自適搜破篋檢古籍手抄爛藁顧自如也仍復分類精寫間因事東征西馳越明年春正月始克成編凡幾十百條總爲一卷名之曰眉山蒐獵嗟乎昔我先君子恒言聰明不如鈍筆余今而後儘覺前言之不吾欺也余幼少時天資不甚魯鈍經史雜書過眼輒誦自以爲天下無難事忽焉年未半百舊聞新見都付亡羊恍然情神如墮雲霧縱欲收拾而不可得矣今此拭昏眸呵凍手而役役自苦者幸借未老之鈍筆欲以爲餘生之一半分聰明良可一歎後來嗣我者開卷而覽此序則庶或追感於先君子之格言而能使此翁之手澤得無爲蟲鼠之所點汚否唯彼坡翁之文章事實自有先哲定評不欲爲畵蛇之添足而盖文苑百體於斯約而該矣苟能詳味則欲學文章者亦豈曰全然無益也哉歲昭陽赤奮若春正月晦鈍翁書于丹邱之羽化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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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香寺【幷序】 丹邱丞以將事之役入雉岳洞門雪裏砯崖滑如水晶舍馬就便輿迫黃昏一老衲迎候忽見山凹裏蝸角小刹蕭條着地問其名則曰國香卽雉岳祠守護之刹而自國家歲降香祝此寺實主之因以得名云停輿而入經一宿眼界紆鬱別無可賞只有二三老髡其中曰聖益者頗能玄談娓娓可聽古有無錯禪師修戒此山適出山門路傍有母雉方乳忽見一大蠎盤回欲嚼師住杖謂蛇曰汝雖餒可不忍歟彼方乳矣母若見嚼則羣雛亦隨而畫以汝一口欲喫無罪之羣生可乎蛇乃移怒於師仍作人語曰吾實餒矣聽汝之言而欲活羣雉則替啖汝一箇身亦不可乎便張吻欲咬之師脫衣向前蛇更人語曰吾聞汝生佛也多神術云使我能聽法鍾於此地則當釋汝矣能然否盖師之所住刹與此地稍隔而日色方晝正非打鐘之時語未幾何忽聞法鍾之聲函胡鳴動歷歷中節蛇以爲神釋而去師歸問法徒則皆以爲雌雄雙雉俄忽飛來以尖嘴相爭啄鍾血流鍾下實不知其故也師愀然長嘆備述所經始知打鐘者出於乳雉之報恩也山以此錫名雉嶽至今相傳云云此說極涉荒唐而亦足爲山囱下破寂一資故戱錄之【寺名國享而享字不韻故換用香字】寂寥神宇南剝落小僧巢庭砌難容馬四山環而包凍林何紆鬱危石更碻磝只愛雪後景氷綃織江鮫舊號空帶香短壁見斗筲偪側如蝸殼黏着山之凹深鎖一洞門不見十里郊破瓦數間屋正似掩荒茅蕭瑟三兩髡䳡鷯托小梢尙能依神祠堅守太黏膠何處得齋飯供佛銅磬敲辛勤候老丞叉手禮相交今夕免荒凉小廚設大庖冠珮來肅肅桂醑又蘭殽煖堗坐妥怗雪風任颵颵半宵玄談裏賴渠塵念抛荒唐無錯說援古正嘐嘐惜爾頗聰慧未能透理爻緣底守空門大界嗟同胞枯木與死灰終歸一漚泡指證其然否雉山怳解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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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文 書者六藝之一而書有六書象形指事會意諧聲轉注假借是也如今學者尠有知其法者易曰上古結繩而治後世聖人易之以書契百官以治萬民以察盖取諸夬史曰宓犧氏造書契以代結繩之政又曰史皇氏見鳥跡始制文字天雨粟鬼夜哭所謂鳥跡篆是也然則宓犧史皇以前無書可徵太古五龍攝提合雒連通叙命循蜚因提等諸紀從何而紀抑或後來浮誕之士增衍敷益創出無名之名矣歟是未可知也五帝三王之書以古文紀之則鳥跡蝌蚪之文後人誠䵝䵝難讀博學如倚相識奇如楊雄者流移摹楷書以誨後人乎否抑未知上世又別有楷書也已古文於今之世旣無所適用然學者亦不可不識倉籒氏古文諸法雖變化不一而其可疑者無可攷豐叔氏金石古文自汗簡文說文演說古經石經夏書古史此干塚石槨文華嶽碑商鼎周彛盤匜簠簋之文籒韻古世本岐陽石鼓大傳切韻集字羣玉古文凡百三十字其文蒼古簡嚴或怪怪奇奇多不可名狀盖自軒轅以來麟鳳龜龍嘉禾雲鳥星文之書特記瑞而已不可用史籒變古文爲籒書曰大篆至秦李斯壞古文爲小篆漢唐來諸作者十四家芝英飛帛金錯玉筋之類七曺劉王衛韋史之作又七皆非古文可見秦漢以降風氣淺薄不能效古嗟乎太昊蒼古之氣亡於秦歷漢氏無餘矣今也秦漢風氣亦難摹法何况古文上古未有文字結繩以記事庖犧氏始造書契謂刻木書字有龍瑞又作龍書史皇氏兄弟三人一造笁國字一造天宮字季曰倉頡造華字所謂始制文字是也見空階鳥跡又作鳥跡書神農氏有嘉禾瑞作穗書黃帝氏有雲瑞作雲書顓頊氏作科斗文字夏禹氏作獸篆務光作倒薤書又有奇字古文蒼古難知漢時楊雄識奇字鳳書龜書皆因古文紀瑞至周媒氏作墳書伯氏因鍾鼎古文作笏記文曰殳書古文不知作於何世而三代用之史佚作鳥書司星子韋作星書孔氏弟子作麟書皆從龜龍古文史籒變古文作十五篇曰籒書秦壞古文作刻符文字八體丞相斯作小篆始皇帝至以衡石量書文書繁上谷王次仲變古文爲書令隸人佐書曰隸書或云程邈作之邈出於徒隸故曰隸書隸書作而古文廢邈餙小篆作上方篆用之印璽王次仲減隸書作八分文字割隸書去八分法小篆取八分云秦胡毋敬因大篆變小篆漢孝武時甘泉産芝令陳遵作芝英篆曹喜【或作善】作垂露篆又作懸針篆書五經篇目唐時有碧落篆似小篆李陽氷善玉筋篆後世用之焉魯秋胡妻玩蚕作彫虫書【或曰楊雄作雕虫篆】漢時有鵠頭篆韋誕作剪刀篆史游造其極劉德昇觀星文作纓絡篆蔡邕見人以帚求書作飛帛文字韋誕【字仲將】又作金錯古錢等書晉衛瓘三世攻書作柳葉書王羲之以飛字龍爪形作龍爪書【盖古文變爲籒書籒書變爲小篆小篆變爲隸書隸書變爲八分八分變爲楷楷變爲行行變爲草至此而古文掃盡無餘矣章草漢杜伯度所作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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