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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十八日 청파(靑坡)에 가서 흥양(興陽)의 소식을 묻고자 하였으나 왕래하는 사람이 없어 들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들리는 소문에 호서와 영남에 독감이 크게 유행하였는데 사망자가 서울만큼 심하지는 않다고 하였다. 권 서방(權書房)이 술과 안주를 마련하여 대접하였다. 往靑坡, 欲問興陽消息, 而無往來人, 不得聞知, 而傳聞自湖中嶺南, 毒感大熾, 而死亡不如京中之甚云。 權書房具酒肴而饋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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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十九日 입관(入館)하는 길에 예조(禮曹)에 들렀다가 안일득(安一得)을 만났더니 춘행(春幸, 봄철 원행)이 필요 없을 듯하다고 하였다. 지난겨울의 본 계책에서 상언(上言) 한 장을 올리지 못한 것과 크게 어긋나니, 한탄한들 어찌하겠는가. 반재(泮齋, 성균관 별칭)에 들어가니 화옥(華玉)이 마침 나를 기다리며 홀로 앉아 있었다. 이에 함께 머물며 밤에 이야기를 나누었다. 入館之路, 歷入禮曹見安一得, 則春幸似不必云。 經冬本計, 大違於不呈一丈上言, 恨歎奈何? 入泮齋, 華玉方待我獨坐矣。 因與同留夜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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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初九日 새벽에 주인 영감이 입궐(入闕)하려다가 잠시 서로 작별인사를 하였다. 이날 아침에 감홍로(甘紅露)13)에 시달려서 신시(申時, 오후 3~5시 사이) 무렵에 이르러서는 몹시 취했다. 오후에 길을 나서 청파(靑坡)에 이르렀다. 이종형님, 여러 사람과 길동무가 되어 갈산(葛山)에 이르러 묵었다. 曉頭主令將詣闕, 暫與相別。 是朝爲甘紅露所惱, 至晡大醉。 午後發程, 至靑坡。 與姨兄主及諸人作伴, 至葛山留宿。 감홍로(甘紅露) 원문의 '감(監)'은 '감(甘)'의 오기로 보고 고쳐서 번역하였다. 고려 시대부터 전해진 평안 지방의 감홍로(甘紅露)는 관서감홍이라 하여 명주로 알려졌다. 감홍로는 소주에 사용되는 부재료에 따라 술 이름이 달라지는, 이른바 혼성주(混成酒)의 한 가지다. 곡주를 빚어 소줏고리로 증류한 뒤, 온갖 약재를 넣어 우려낸다. 여러 번 소주 내리기를 거친 술일수록 고급술로 통한다. 감홍주(甘紅酒)라고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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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初十日 화성(華城)에 이르러서 아침을 먹고 용주각(龍珠閣)과 다른 누각을 두루 살펴본 다음, 채찍을 재촉하여 진위(振威) 읍내에 이르렀다. 이종형님과 사희(士希)는 말을 타고 먼저 갔는데, 비가 내렸기 때문에 부득이 동행한 사람들과 진위(振威)에 머물렀다. 至華城朝飯, 周觀龍珠閣及他樓觀, 促鞭至振威邑內。 姨兄主與士希, 騎馬先行, 而雨作, 故不得已與同行諸人, 留振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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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十一日 비가 그쳤다. 달구리[鷄嗚, 닭이 울 무렵]에 출발하여 갈원(葛院)에 이르자 비로소 동이 트기 시작했다. 천안(天安) 북기점(北機店)에서 말에게 꼴을 먹이고, 덕평(德坪)에 이르러 묵었다. 雨歇。 鷄鳴發行, 至葛院, 始開東矣。 至天安 北機店秣馬, 至德坪留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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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初二日 일찍 출발하여 이찬은 여암(餘岩)에 들어가고, 나는 서령(西嶺) 주막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벌교(筏橋)에 머물러 있다가 이찬을 만나 백정자(柏亭子)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이찬은 바로 들어갔다. 나는 사촌(社村)의 문경(文卿) 씨에게 들렀으나 부재중이고, 사여(士汝) 씨와 공찬(公贊)만 있어서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 용전(龍田)으로 돌아왔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곧바로 성산(城山)으로 올라가 묘 아래에 있는 상석(床石)53)을 살펴보았다. 저녁에 재동(齋洞)에서 묵었다. 60리를 갔다. 早發而贊則入餘岩, 余則至西嶺酒幕朝飯。 留筏橋逢而贊, 抵柏亭子中火, 而贊則直爲入去。 余則入社村 文卿氏不在, 只有士汝氏、公贊, 故暫敍後, 入來龍田。 暫話直上城山, 墓下見床石, 暮托齋洞留宿。 行六十里。 상석(床石) 무덤 앞에 제물(祭物)을 차리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돌로 만들어 놓은 상(床)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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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二十二日 아침 전에 공서와 함께 문내(門內)로 가는 길에 안리(安吏, 예조 서리 안인성)를 만났다. 문외(門外)의 안리(安吏)는 내가 떠나는 것을 보기 위하여 주인집으로 온 것이었다. 이어 함께 경주인(京主人) 집에 갔다가 그길로 작별하고 주인집으로 돌아왔다. 아침을 먹은 뒤에 짐을 지고 길을 나섰다. 강을 건너 남태령(南泰嶺)에서 점심을 먹었다. 갈산점(葛山店)77)에 이르자, 먼저 들어온 한 조관(朝官)이 있어 그에게 물었더니, 바로 천안(天安)에 사는 현진상(玄鎭祥)이라 하며 지금은 이조 정랑(吏曹正郞)이 되었다고 한다. 사람됨이 단아하였는데, 그대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함께 머물렀다. 40리를 갔다. 朝前與公瑞偕往門內之路逢安吏。 門外安吏, 爲見吾發行之意, 來于主人之家之意也。 仍與同往京主人家, 仍爲作別, 還來主人家。 朝飯後, 負卜發程, 越江抵南泰嶺中火。 抵葛山店, 則有先入一朝官問之, 則乃天安居玄鎭祥, 而今爲吏曹正郞也。 爲人端雅, 而仍與談話同留。 行四十里。 갈산점(葛山店) 경기도 안양시 평촌동과 의왕시 내손동 경계인 갈뫼(갈미)마을이다. 갈산점은 조선시대에 광주군 의곡면에 속했다가 1914년에 수원군 의왕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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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初四日 윤익(允益)이 함께 그의 집에 갔기 때문에 동행하여 남양(南陽) 이찬의 집으로 들어가 요기하였다. 오한이 크게 일어나고 통증도 매우 심하여 조금 진정되기를 기다렸는데, 마침내 통증이 사그라들어서 이찬과 강동(江洞) 윤익(允益)의 집으로 갔으나, 한번 누운 뒤로는 인사불성이 되었다. 연일 고통에 시달렸지만, 끝내 차도가 없었다. 允益同往渠家, 故同行入南陽 而贊家療飢。 寒栗大發, 痛勢亦爲大端, 稍待鎭定而終止, 故與而贊往江洞 允益家, 一臥以後, 不省人事。 連日苦痛, 而終無差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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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初吉 아침에 비가 오다가 저녁 무렵에 개었다. 해주(海州)에서 이 마을로 와서 살고 있는 박치환(朴致煥)은 전에 왔을 때에 서로 어긋나 만나지 못했었는데, 이번 길에 다행히도 만나게 되니 매우 기뻤다. 박 석사도 나를 보고 정성껏 맞이해 주니 또한 매우 다행스러웠다.지난달 소상(小祥) 때에 약간의 회원(會員)이 문회계(文會稧)를 약속하였다고 하므로 나도 계안(稧案)에 이름을 넣어 돈 1냥을 납부하고 계안좌목(稧案座目)을 베껴 왔다.-계안(契案)은 뒤에 붙였다.-장석(丈席)은 자운동(紫雲洞)에 행차하셨기에 임실 동종(同宗)과 그대로 하직하였다. 성동(性洞)에 보낼 책자는 상주(喪主)에게 부탁하고, 이어 출발하여 다박동천(多朴洞川)을 건넜다. 마포(麻浦) 주막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말에게 꼴을 먹였다. 연기(燕岐)의 삼가(三嘉) 주막에 이르러 묵었다. 40리를 갔다. 朝雨晩晴。 自海州來寓此村朴致煥, 前來時相違未見矣。 今行幸爲相見, 幸幸。 朴碩士亦見我款待, 亦爲幸幸。 去月小祥時, 略干會員約爲文會稧云, 故余亦添名於稧案, 納錢一兩, 稧案座目謄來【契案附後】。 丈席行次紫雲洞, 故與任實同宗, 仍爲下直。 性洞所去冊子, 付託於喪主, 仍發程抵多朴洞川越涉, 至麻浦酒幕, 中火秣馬。 抵燕岐 三嘉酒幕留宿。 行四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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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初二日 일찍 출발하여 미정지천(尾亭地川)에 이르렀다. 내를 건너 청주(淸州)의 조천원(朝天院) 주막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전의(全義) 읍내 시장 근처에 이르러 잠시 쉬었다가 덕평(德平) 주막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말에게 꼴을 먹였다. 천안 신은(新恩) 주막에 이르러 묵었다. 90리를 갔다. 早發至尾亭地川越川, 抵淸州 朝天院酒幕朝飯。 至全義邑內市邊暫憩, 抵德平酒幕, 中火秣馬。 天安 新恩酒幕留宿。 行九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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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二十三日 새벽에 출발하여 화성(華城)에 이르러 아침을 먹고, 이침(泥砧)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진위(振威, 경기도 평택 옛 지명)에 이르러 묵었다. 80리를 갔다. 曉發抵華城朝飯, 抵泥砧中火, 抵振威留宿。 行八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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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二十二日 ○여독(旅毒) 때문에 일찍 출발하지 못했다. 오후에 차동(車洞) 민 석사(閔碩士)에게 갔으나 날이 밝을 무렵 마침 고향으로 떠나서 그 아들만 잠시 만나 보았다. 아래 사랑 주인(舍廊主人)인 치항(致恒)이 마침 있어서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에 서소문(西小門)으로 들어갔다. 정동(貞洞)의 석사 이희(李) 집에 갔으나 주인이 부재중이어서 만나지 못하고, 찾아온 율지와 확교(確橋)14)에 들어가 진사 유영도(柳榮度)의 집에 방문하였더니, 어서각동(御書閣洞)으로 이사하였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의 집으로 찾아가 달부(達夫)씨의 서간(書簡)을 전달하고 주인집으로 돌아왔다. ○以路憊不得早發。 午後往車洞 閔碩士, 被明適作鄕行, 只有其子暫見。 往下舍廊主人致恒果在, 暫話後。 入西小門。 往貞洞 李碩士 家, 主人不在故不見, 而來訪與聿之入確橋, 訪柳進士 榮度家, 則移居于御書閣洞云, 故尋往其家, 傳達夫氏書簡, 還來主人家。 확교(確橋) 서울시 중구 서소문동과 신창동(새창골) 북쪽에 있던 다리이다. 1966년 발간된 《한국지명총람》에 의하면 이 고을에 학다리가 있어 마을 이름이 학교동(鶴橋洞)이 되었다고 하며, 일명 확교(確橋)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조선 시대에는 이 일대를 학다리골이라 하였는데, 성리학자 퇴계 이황이 살았던 곳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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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二十三日 ○아침을 먹은 뒤에 동행과 서소문(西小門)으로 들어가 확교(確橋)에 갔다. 나는 송 판서(宋判書)의 집에 들러 판서(判書) 부자(父子)를 만나고 종각 쪽으로 돌아오니 동행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어 대묘동(大廟洞)으로 가서 보성(寶城)의 종인(宗人) 귀환(龜煥)을 방문하였으나 마침 부재중이어서 통지하고, 지난해에 머물렀던 파정동(波井洞)의 기보(基甫) 집에 오니 주인은 일단 무고하였다. 한참 있으니 귀환이 마침 나와서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올라온 연유를 이야기하였다. 그 먼저 서울에 도착하여 일의 기미를 살펴보았는데, 서울의 여론이 혹은 가하고 혹은 불가하다는 논의가 있으니 끝에 가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그길로 술집으로 나와 술을 사 마시다가 나는 남동(南洞)에 가서 잠시 마전(麻田) 김민계(金民桂)를 만나고 주인집으로 왔다. ○食後與同行入西小門往礭橋。 余則入宋判書家, 見判書父子, 還來于鍾閣邊, 則同行留待矣。 仍往大廟洞, 訪寶城宗人龜煥, 適不在故通奇, 而來于前年所住波井洞 基甫家, 主人姑無故矣。 移時龜煥果爲出來, 與之相話, 仍說上來之由, 則渠則先到京中, 探知事機, 則京中物議, 或可或不可之論, 未知末稍之如何云。 仍爲出來酒家, 沽酒相飲, 余則往南洞, 暫見金麻田 民桂, 而來主人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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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十四日 ○아들이 김노(金奴)를 데리고 나왔다. 재동(齋洞)72) 귀산(龜山)73)의 제족들에게 모이라고 통지하여, 개인 문중의 제수는 대략 형편에 맞게 정하고, 8냥 7전으로 여장을 꾸리겠다고 말하였다. 그러므로 김노를 율지에게 보냈다. 내일 추동(楸洞)에서 만날 생각으로 그대로 유숙하였다. ○家兒率金奴出來。 通奇于齋洞ㆍ龜山諸族來會, 私門中祭駄, 略略的定, 以八兩七戔錢 治行爲言。 故送金奴於聿之。 以明日相會于楸洞之意, 而仍留。 재동(齋洞) 전라남도 고흥군 대서면 화산리에 있는 재동서원을 중심으로 형성된 여산 송씨 파족을 말한다. 재동파는 고흥 대서의 귀산파, 두원의 금성파, 동강의 대강파가 있다. 귀산(龜山) 전라남도 고흥군 대서면 화산리 귀산 마을이다. 여산 송씨 재동 귀산파의 집성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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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十六日 ○일찍 출발하여 상삼례(上參禮)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여산(礪山) 읍내에 이르러 신동(新洞)의 백교귀(伯交歸)를 만나 그대로 점심을 먹었다. 작천(鵲川)에 이르러 묵었다. 70리를 갔다. ○早發抵上參禮朝飯, 抵礪山邑內, 見新洞 伯交歸, 仍爲中火。 抵鵲川留宿。 行七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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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十五日 ○아침을 먹은 뒤에 북문 밖의 송약수(宋若洙) 집에 갔으나, 마침 출타하여 만나지 못하고 왔다. 영문(營門)으로 가서 순상(巡相)을 보고자 하였는데, 마두(馬頭)가 통자(通刺)하지 못해서 만나지 못하고 주인의 집으로 돌아오니, 간촌(看村) 박상현(朴祥炫)과 옹포(甕浦) 송격(宋格)이 도착하였다. 오후에 출발하여 삼례 천변주막에 이르러 묵었다. 30리를 갔다. -밥값으로 두 냥을 냈다.- ○食後往北門外宋若洙家, 則適出他不見而來, 往營門欲見巡相矣。 以馬頭不得通刺, 不見而還來主人家, 則看村 朴祥炫及甕浦 宋格來到。 午後而發, 抵參禮川邊酒幕留宿。 行三十里【飯錢二兩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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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初一日 날이 밝기 전에 길을 나섰다. 곡성(谷城) 읍내(邑內)에 이르러 아침을 먹고 불로치(不老峙)까지 50리를 가서 말에게 꼴을 먹였다. 영귀정(咏歸亭)에 이르러 먼저 소식을 물어보려고 온 집안이 병을 앓고 있는 상황이지만 사매(舍妹)를 나오라고 했다. 잠시 울타리 밖에서 보니 오래지 않아 굶어 죽을 것이 분명한 데다 어린아이도 병이 들어 낫지 않고 있으니, 그 광경이 근심스럽고 답답하였다. 천평(泉坪)의 소식을 물었는데, 그도 지금 병을 앓고 있다고 하므로 집에 들어가지 않고 곧장 낙수(洛水)에 이르니 날이 이미 어두워졌다. 이날 100리를 갔다. 未明登程。 至谷城邑內朝飯, 至不老峙五十里秣馬。 至咏歸亭, 先問消息, 擧家方痛, 而舍妹要出。 暫見於籬外, 則非久餓死丁寧, 而且兒少沒痛未蘇, 景色愁阻矣。 問泉坪消息, 則亦方痛云, 故不爲入去, 直驅至洛水, 日已黑矣。 是日行百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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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十九日 새벽에 길을 나서 중진원(中津院)6)에 이르렀는데 수해가 크게 일어나 지척을 분간할 수가 없었다. 증산(甑山) 주막에 이르러 말에게 꼴을 먹이고 점심을 먹었다. 올 여름의 물난리 때문에 길이 몹시 험악해져서 주포(周浦)에서 오수(獒樹)7)까지 종일토록 걸어갔는데, 길 좌우로 보이는 수해의 참상을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농사 작황도 좋지 않아 흉년을 면치 못한 것처럼 보이니 백성들의 사정이 가련하였다. 임실(任實)의 야당리(野塘里)에 이르러 묵었다. 이날 80리를 갔다. 曉頭登程, 至中津院, 水瘴大發, 咫尺不辨矣。 至甑山酒幕, 秣馬中火。 以今夏水破之故, 道路極惡, 自周浦終日徒步, 至獒樹, 則沿路水破之狀不可言。 且農形不登, 所見未免歉歲, 民事可憐。 至任實 野塘留宿。 是日行八十里。 중진원(中津院) 중진(中津)은 순자진(鶉子津)으로, 곡성군 북쪽으로 10리 되는 남원(南原)경계의 대로(大路)에 있었고, 순자원(鶉子院)은 순자진(鶉子津) 언덕 위에 있었다고 한다. 이곳에는 섬진강을 건널 수 있게 설치된 중진원교(中津院橋)가 있었다. 오수(獒樹) 전라북도 임실군 오수면으로, 과거 역참이 있던 지역이다. 역참일 당시 오수역은 남원, 구례, 광양, 순천 등 호남 지역의 역참을 관할하던 대형 역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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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二十日 날이 채 밝기 전에 길을 나서 노고소회(奴古所回)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말에게 꼴을 먹였다. 전주(全州) 부내(府內)의 주인집에 이르니 주인은 마마로 손녀딸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온 집안이 경황이 없으므로 서문 밖 여점에 가서 머물기로 했다. 가는 길에 우연히 경성(京城)의 이 석사(李碩士)를 만나 동행하기로 약속하고 이에 그가 머무는 객점으로 가서 묵었다. 집안에 보낼 편지를 집주인에게 써서 주고, 인편을 기다려 부치게 하였다. 이날 80리를 갔다. 未明登程, 至奴古所回, 中火秣馬。 至全州府內主人家, 主人以其孫女之逝於西神, 擧家無況, 故往留於西門外旅店。 盖於中路偶逢京城 李碩士, 相約同行, 故往尋其所留店留宿, 而書給家書於主人, 使之待便付送。 是日行八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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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二十七日 아침을 먹은 뒤에 주동(鑄洞)18)에 가서 종친들을 만나고 왔다. 朝飯後, 往鑄洞, 見僉宗而來。 주동(鑄洞) 서울특별시 중구 남학동・예장동・주자동・충무로2가・충무로3가・필동1가에 걸쳐 있던 마을로서, 이곳에 조선시대에 활자를 만들어 책을 찍어 내던 주자소(鑄字所)가 있었기 때문에 주잣골이라 하고, 한자명으로 주자동이라 하였으며 줄여서 鑄洞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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