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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十一日 올여름 4월에 《성원현보(姓苑賢譜)》 발간 관련 일로 친구들과 상경하였다. 다만 단자(單子, 명단)만 받고, 예물(例物)은 받지 않아, 가을을 기약하고 돌아왔다. 올해 곡식이 비록 익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가서 보는 것이 좋겠기에 율지(聿之) 형과 동행하였다. 是年之夏四月, 以《姓苑賢譜》事, 與諸益上京。 只納單子, 不納例物, 故以秋爲期而來矣。 今年穡事, 雖云不登, 不得已往觀爲可, 故與聿之兄作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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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十九日 ○어제 혜길이 이른 아침에 나온다고 하였으므로 아침밥을 일찍 짓게 해서 일찍이 먹고 기다렸지만, 해가 이미 정오가 되었는데도 아직 오지 않아 몹시 괴로웠다. 오전에 직접 정동으로 가 보니, 혜길이 밤새 갑자기 몸에 병이 나서 출발할 수가 없었다며 내일은 일찍 출발하자고 약속하고 나왔다. 오후에 혜길이 나와서 말하기를 "내일 새벽에 나오면, 이 마을 사람들이 일어나기 전이라 이 집을 찾기 어려울 듯해서 그저 집을 알아둘 생각으로 나왔습니다."라고 하였다. 내일 새벽 일찍이 나올 생각이라며 누누이 말하고 갔다. ○昨日惠吉早朝出來云。 故朝飯使之早作早食以待, 而日已午矣, 而尙不出來, 苦悶苦悶。 午前躬往貞洞, 則惠吉夜間, 猝發身病不得發程, 明日則早發爲言。 故相約而出來矣。 午後惠吉出來曰: "明曉出來, 此村人未起之前, 尋此家似難, 故專爲知家之意出來。"云。 明曉早早出來之意, 累累言托而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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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十五日 ○아들을 데리고 추동으로 오니 율지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수동(壽洞)에서 아들을 돌려보내고, 나는 그길로 출발하여 정문등(旌門登)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50리를 갔다. ○率家兒出來楸洞, 則聿之來待矣。 送家兒于壽洞, 余則仍爲登程, 抵旌門登留宿。 行五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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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二十三日 ○새벽에 출발하여 덕평(德坪)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차령을 넘어 광정(廣亭)에 이르렀다. 상철(相喆)의 집에 들러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로원(慕露院) 아래 객점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85리를 갔다. ○曉發, 抵德坪朝飯。 越車嶺。 抵廣亭入相喆家暫話。 抵慕露院下店留宿。 行八十五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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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二十四日 ○새벽에 출발하여 금강(錦江)을 건너니 막 동이 터 올랐다. 널티[板峙]125)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노성(魯城)126) 읍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사교(沙橋)127)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90리를 갔다. ○曉發, 越錦江, 則始開東矣。 抵板峙朝飯。 抵魯城邑午飯。 抵沙橋留宿。 行九十里。 널티[板峙]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월암리에 있는 야트막한 고개이다. 노성(魯城)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이다. 사교(沙橋)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신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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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十七日 새벽녘에 아침을 먹고 낙안(樂安) 읍내에 이르러 약노(若老) 씨를 만난 다음 곧바로 길을 나서 유점(鍮店) 주막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천평(泉坪)2)에 이르니 이미 해가 저물었다. 이날 70리를 갔다. 曉頭朝飯, 至樂安邑內, 見若老氏, 卽爲上程, 至鍮店酒幕中火。 至泉坪, 已黃昏矣。 是日行七十里。 천평(泉坪) 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에 있는 천평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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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十六日 맑았다. 아침 전에 군배(君培)와 윤급(允乃) 씨가 찾아와서 만났다. 아침을 먹은 뒤에는 덕철(德哲)도 왔다 갔다. 오후에 죽동(竹洞)에 이르러 묵었다. 晴。 朝前君培及允乃氏來見。 食後德哲亦來見而去。 午後至竹洞留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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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十二日 아침을 먹은 뒤에 전동(磚洞)으로 갔으나, 이조 판서가 궐내로 들어가 또 만나지 못했다. 곧장 안현(安峴)에 가서 예조판서를 만나보고, 다시 예조로 갔는데 안리(安吏)를 만나지 못하여 곧바로 경모궁(景慕宮)으로 향했다. 사람을 시켜 화옥(華玉)을 오라고 하여 도포(道袍)로 갈아입도록 하고, 호동(壺洞)으로 가서 진 판관(陳判官)을 만났다. 또 호동(壺洞)으로 가서 박 곡성(朴谷城)에게 조문하였다. 또 죽동(竹洞)으로 향하였으나 사수를 만나지 못하고 왔다. 食後往磚洞, 則吏判入闕內又未見。 直往安峴見禮判, 轉往禮曹, 則不見安吏, 直向景慕宮。 使人要華玉, 換着服道袍, 往壺洞見陳判官。 又向壺洞, 吊朴谷城。 又向竹洞, 不遇士洙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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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二十二日 또 입골(笠骨)을 준비해 놓았기 때문에 내간(內間)과 영감(令監)이 모두 한사코 만류하였으나, 돌아가고픈 마음이 화살과 같았다. 또 흥양(興陽)의 내행(內行)이 출발하였기 때문에 함께 동행하고 싶어 낙안(樂安) 최가(崔哥)의 고마(雇馬)11)를 얻고 도화(道化, 고흥의 옛 지명)의 해의(海衣) 상인을 데려와 그에게 말을 몰게 하였다. 작별인사를 나누고 출발하여 강에 이르니 말이 야위고 병들어 앞으로 나가지를 않았다. 천 리 길을 갈 가망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도로 들어오지 못하였고, 복가(卜家) 상원(尙元)의 집으로 내려가 차동(車洞)으로 들어갔더니 막 술상을 차리고 있었다. 마침내 그대로 묵었다. 又設笠骨, 故內間及令監皆强挽, 而以歸心之如矢。 且興陽內行離發, 故欲與同行, 得樂安 崔哥雇馬, 率道化海衣賈人, 使之驅馬。 作別發行至江, 則此馬瘦病不前, 萬無千里致身之慮, 故不得還爲入來, 下卜家尙元家, 入去車洞, 則方設盃盤矣。 遂因爲留宿。 고마(雇馬) 시골 관아(官衙)에서 민간으로부터 징발하여 쓰던 말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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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二十三日 일찍 청리(靑梨)로 가서 한 마리의 말을 구하여 값을 치르기로 약속하고서 도로 차동(車洞)으로 돌아왔다. 말 값 20동(銅)을 변통하여 오는 길에 황장계(黃長溪)와 백현(柏峴)의 김선달(金先達)을 만나 잠시 길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즉시 말을 사서 출발하여 오산(烏山)까지 40리를 가서 묵었다. 早往靑梨, 求得一馬, 決價相約, 還爲入去車洞。 推移二十銅馬價, 而來路逢黃長溪及栢峴 金先達, 暫與相話於路次。 卽爲買馬發行, 至烏山四十里留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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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十五日 아침을 먹은 뒤에 건(健)·순(順) 형제, 욱여(旭汝)와 함께 송현(松峴)으로 갔다. 이어 육각치(六角峙)의 필운대(弼雲臺)에 올라 종일토록 꽃을 감상하였는데, 저녁 무렵에 송현(松峴)에서 차를 보내왔다. 그러므로 실컷 마시고 배불리 먹고 왔다. 食後與健、順兄弟旭汝往松峴。 因上六角峙 弼雲臺, 終日賞花, 而夕間茶饋自松峴來, 故醉飽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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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十一日 온화하였다. 이른 아침에 영감(令監)을 만나고 나와서 아침밥을 먹은 뒤에 주동(注洞)으로 가서 종일토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는 길에 다시 칠패(七牌)로 가서 윤 생원(尹生員)을 만나 한참 동안 정담을 나누고 왔다. 溫和。 早朝見令監, 因爲出來, 朝飯後往注洞, 終日談話, 而來路轉往七牌見尹生員, 移時穩話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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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十六日 일찌감치 가서 황해 감사를 여점(旅店)에서 만났다. 이어서 근동(芹洞)에 가서 이 흥양(李興陽)과 이 석사(李碩士)를 만나 보았다. 또 칠패(七牌)에 가서 윤 생원(尹生員)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왔다. 춘백(春伯)이 말을 도로 물렸기 때문에 천노(千奴)로 하여금 청배(靑排)로 견송(牽送)하게 하였다. 早往見海伯於旅店, 因往芹洞見李興陽及李碩士。 又往七牌見尹生員, ▣談而來。 春伯者還退馬匹, 故使千奴牽送靑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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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二十五日 일찍 주동(注洞)에 갔으나 보지 못하고 오는 길에 청배의 상원 집에 들렀다. 마침 흥양(興陽) 사람이 왔기에 집에 보낼 편지를 부치고 왔다. 早往注洞不見, 而回路入靑排 尙元家。 興陽之人適來, 自其處付家書而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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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十三日 이른 아침에 조카를 윤랑(尹郞)에게 보내어 말을 전하고 오게 하였다. 창동(倉洞)에 천노(千奴)를 보내어 박 령(朴令)에게 전갈(傳喝)하게 하였는데, 박 령(朴令)이 입궐하였다고 하였다. 아침을 먹은 뒤에 팔선(八仙)과 김 객(金客)이 모두 와서 모이고, 오득(五得) 형제도 모두 찾아왔다.길을 나서 강가에 이르자 사나운 바람이 크게 일어났다. 간신히 강을 건너 과천(果川)에 이르렀을 때 바람이 그치지 않았고 자못 한기(寒氣)까지 있었는데 채찍을 재촉하여 갈산(葛山)까지 40리를 갔다. 요기를 한 다음 미륵당(彌勒堂)까지 20리를 가서 유숙하였는데, 연시(延諡)하는 날짜를 앞당겨 정한 뜻을 김 객(金客)에게 써 주고 먼저 가게 하였다. 그러나 발병[足病]으로 서둘러 갈 수 없어서 권 서방(權書房)을 갈산(葛山)에 먼저 보내어 어제 떠난 이·공 두 사람 편에 급히 가서 편지를 전하게 하였다. 早朝送姪客於尹郞, 使傳馬而來。 送千奴於倉洞, 傳喝朴令, 而朴令入闕云。 食後八仙及金客皆來會, 五得兄弟皆來見。 登程至江頭, 盲風大作。 艱辛渡江, 至果川, 風吹不止, 頗有寒氣, 促鞭至葛山四十里。 療飢至彌勒堂二十里留宿, 而以延諡日進定之意, 書給金客, 使之先去云矣。 以足病不得急往, 故已於葛山先送權書房, 急往傳書於昨去李、孔兩人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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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十四日 밤사이 편안히 잠을 이루고, 또 별다른 증세가 일어나지 않았으니 다행이다. 해가 뜨자 길을 나서 화성(華城)에 이르러 요기를 한 다음, 오산(烏山)까지 50리를 가서 말에게 꼴을 먹이고 점심을 먹었다. 소사(素沙)까지 40리를 가서 묵었다. 夜間安寢, 又無別症之作, 可幸。 日出登程, 至華城療飢, 至烏山五十里, 秣馬中火。 至素沙四十里留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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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晦日 이찬(而贊)을 중주원(中周院)에서 기다리기로 약속하였기 때문에 나루 어귀에 이르렀다. 한낮[日中]에 이찬을 기다리다가 절구 한 수를 지었다.동행이 좋은 줄 알지 못했는데 不識同行好지금 뒤처져 보니 알겠어라 今因落後知강변을 서성이다 생각하노니 徘徊江上意어제 아침의 기약 잊었을까 걱정이네 恐負昨朝期오후에 도착하였으므로 바로 길을 나서 곡성(谷城) 유치(峙)에 이르러 묵었다. 50리를 갔다. 與而贊約以中周院留待, 故到津頭。 日中待而贊, 吟一絶曰: "不識同行好, 今因落後知。 徘徊江上意, 恐負昨朝期。" 午後來到, 故仍爲發程, 抵谷城 峙留宿。 行五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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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十四日 날씨가 조금 풀렸다. 식후에 청파(靑坡) 상원(尙元)의 집에 가서 흥양(興陽)의 제태(祭駄, 제수(祭需)를 실은 짐바리) 하인으로 온 자를 보고자 하였는데 없다고 하니, 괴이하다. 감기가 가는 곳마다 크게 기승을 부리니 중도에 아파 눕는다 해도 어찌할 수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오늘 한성부(漢城府)2)에서 초보(抄報, 뽑아 보고함)하였다. 오부(五部)3)에서 죽은 자가 4만 8000여 명이라고 하는데, 남쪽 소식을 전혀 들을 수 없어 답답한 심정을 이루 말할 수 없다. 日氣稍解。 食後往靑坡 尙元家, 欲見興陽祭駄下人來者而無之云, 可怪。 感氣到處熾盛, 無奈中路痛臥而然耶? 今日自漢城府抄報, 死亡於五部者, 乃爲四萬八千餘名云, 而南中消息, 寂然無聞, 悶菀不可言。 한성부(漢城府) 조선왕조 수도의 행정구역 또는 조선왕조 수도를 관할하는 관청의 명칭이다. 오부(五部) 조선 시대 한성부에 설치한 중(中)·동(東)·남(南)·서(西)·북(北)의 부의 종5품 아문으로 오부 관내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위법 사항과 교량·도로·반화(頒火, 매년 병조에서 써 오던 불씨를 버리고 새로운 불씨를 만들던 의식)·금화(禁火)·가대타량(家垈打量, 집터 측량), 그리고 사람이 죽으면 검시하는 일 등을 관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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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十五日 온화하고 청명하다. 오늘은 바로 기일(忌日)이다. 마음이 안 좋은 것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심하다. 아침을 먹은 뒤에 경욱(景旭)과 냉동(冷洞)의 김 찰방(金察訪) 집에 가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거문고 소리를 들으며 노닐다가 월암(月巖)에 가서 심 도정(沈都正)을 만나 한참 동안 머물며 이야기하고 왔다. 溫和淸明。 今日則卽忌日也。 心懷之惡, 不堪言不堪言。 食後與景旭, 往冷洞 金察訪家暫話, 聽琴而遊, 因往月巖見沈都正, 移時留話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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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初七日 또 벗들과 종루(鐘樓)로 가서 길에서 등죽(燈竹)과 등불을 파는 등의 여러 가지 놀이를 보고 왔다. 이날 밤에 비가 왔다. 사희(士希)가 서울에 들어온 뒤부터 시종 건강이 좋지 않고, 병세가 심했다 덜했다12)를 반복하며 말끔히 낫지를 않았다. 돌아갈 기일이 점점 다가오고 있어 매우 염려스러웠는데 어제부터 점차 회복될 가망이 있으니 기쁘고 다행스럽다. 又與諸友往鍾樓, 路上見燈竹及賣燈雜戱而來。 是夜雨。 士希自入京後, 終始不健, 苦歇異常, 病不快差。 歸期漸迫, 深以爲慮, 自昨日現有漸蘇之望, 可喜。 병이 심했다 덜했다 원문의 고헐(苦歇)은 병을 오래 앓는 중에 병이 더했다 덜했다 하는 일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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