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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二十七日 ○새벽에 출발하여 신안서원(新安書院)130)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슬치(瑟峙)131)에 이르러 떡을 사서 요기를 하였다. 두치(斗峙)132)를 넘어 평당(坪塘)에 들러 잠시 필동(弼東) 일가붙이를 보고 저물녘에 국평의 하서 집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90리를 갔다. ○曉發, 抵新院朝飯。 抵瑟峙賣餠療飢。 越斗峙, 入坪塘, 暫見弼東宗人。 暮抵菊坪夏瑞家留宿。 行九十里。 신안서원(新安書院) 전라북도 임실군 임실읍 신안리에 있는 서원이다. 선조 21년(1588)에 주희와 한호겸(韓好謙)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슬치(瑟峙) 전라북도 임실군 관촌면과 완주군 상관면의 경계가 되는 고개이다. 두치(斗峙) 전라북도 임실과 오수를 잇는 고개로 '말재'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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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晦日 ○출발하여 묘치(猫峙)133)를 넘어 대초정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광천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나는 원동(院洞)에 들러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에 출발하였다. 저물녘 무동정(舞童亭)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90리를 갔다. ○發越猫峙, 抵大抄亭朝飯。 抵廣川午飯。 余則入院洞暫話後發程。 暮抵舞童亭留宿。 行九十里。 묘치(猫峙) 전라남도 화순군의 동면ㆍ이서면ㆍ동복면이 만나는 경계에 있는 고개로 순천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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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初吉 ○새벽에 출발하여 사미정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구암(龜岩)134) 앞에 이르러 율지는 곧장 동림으로 향하고, 나는 장수동(長壽洞)으로 향하였다. 알룡치(謁龍峙)의 강이백(姜利伯) 집에 들러 점심을 먹었다. 마을 뒤 고개를 넘어 수동(壽洞)에 이르렀다. 우선 별 탈 없이 손자가 잘 자라고 있어 다행이었다. 수동 마을 앞에 이르러 마침 류 서방(柳書房) 원거(元擧)를 만났다. 어디 가느냐고 물으니 흥양 간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다음날 동행할 생각으로 함께 들어가 유숙하였다. ○曉發, 抵四美亭朝飯。 至龜岩前, 聿之直向東林。 余則向長壽洞。 入謁龍峙姜利伯家午飯。 越村後嶺, 抵壽洞。 姑無故孫兒善長, 幸幸。 至壽洞村前, 適逢柳書房元擧。 問向何處 則作興陽云。 故明日同行之意, 偕入與之同留。 구암(龜岩)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구강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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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吳載華。【在英】 去臘惠書。如得天外奇音。感慰何可勝喩。第積病在躬。尙未修謝。雖以吾宗之善恕。難免厚責。歲改春又晚。謹審體度萬護。庭下鴻福。仰溯不任。駿善冉冉下山之日也。何足遠道。所示瓊韻。情當奉和。而神思昏塞。無暇及此。今始強病拙構。半雜呻吟。不可以傳遠。亦不可以全闕。謹此仰呈。一覽付丙是仰。本是同根。各在三千里外。公爲七十一歲人。我爲八十歲人。此生此世。會合無期。臨楮不勝忡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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午憩掠庫【自五柳村十里】 想是高城外倉而蕭條如此穀簿能無鼠雀之耗也否如斗倉村屋半茅半木皮狂風太狼藉不妨低簷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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萬瀑洞【自摩訶衍十里自眞珠潭爲五里自普德里窟亦可爲五里】 百花潭與先天潭合流爲八潭至此而與須彌洞七潭相會仍謂之萬瀑洞石上有楊蓬萊【士彦】筆蓬萊楓嶽元化洞天八字其下有三山局【三山李尙書初以蔭爲通川守長在此中畵棊局與客逍遙爲樂云】傍有一大巖立而虛中刻潭谷二字盖自五臺以後周流至金剛內外有可賞處雖一片石貴人名姓無不鐫刻而至於此極矣所謂山中多宰相石面半朝廷此之謂也千巖競秀萬瀑爭流儘覺孫興公之天台山金石一賦偸竊此地韻格洞之西有石峯尖削矗天名曰靑鶴臺◌椒泉翁詩曰捨輿借錫杖步步傍溪來始自八潭曲終成萬瀑開獅蹲危擎石鶴去獨留臺洞闢元和氣羣巒護列排◌又曰白石粼粼瑩若晶仙翁遺蹟在棊枰洞陰常有蛟龍蟄境僻無聞鳥雀聲自昔名山稱第一伊今宿債了平生百川萬壑奔流水輻湊喧豗日夜鳴喧豗萬折港西東界破羣峰眼欲空鍾磬亂敲兜率塔貝珠層掛水晶官包含始識名山大排鋪終看造物工演漾百花潭上韻十分飜覺動豪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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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征賦【幷小序】 上之三年冬十一月哉生明己酉余以南至差員奉陪箋文自原州將向京師逖違之餘獲近象魏稍可慰永懷之心而代人之勞非其職也雪風如刀石路如戟役役驅馳已極關念而二子驥熊遠自南鄕來省阿熊方患癘苦吟旅舍相分尤不可堪愀然作西征一賦其詞曰烏鼠之冬律調金鍾丹邱老丞趍走爲恭承刺使命手擎錦封義重往役路指西雍何北風之瑟颯兮釀雪意而方濃來鶴橋之疊氷兮挾雉嶽之層峰黏泥錯以凍石涉畏途兮重復重寂寥兮澗邊梅慘憺兮嶺上松嘉我膂力之方剛兮未敢言夫衰慵冠不整兮短髮薄寒雪兮衝衝羌慘慘而畏咎去靡歇兮橫復縱兒吟病而遠相分兮實余憂之忡忡繄未能乎言私兮蘊如結於心胸嗟不均而獨賢兮受㶊揮如奴傭懼下位之不獲兮迺俛首而聽從客有解嘲者曰丞乎丞乎何彼穠矣儀容皂隷如貙白騧如龍道路之辟除郡縣之支供前唱後和附若蚷蛩奔走承奉夕飱朝饔揚揚織路軒駟郁穠得無爲泰乎顧其位則附庸也君其實乎鈍人一草萊之微蹤昔偃息乎莘上兮曰老圃與老農托盤谷之松桂兮挹鏡湖之芙蓉恒矻矻以處窮兮混臧獲之磨舂無棄物於化囿兮幸聖明之遭逢文莫贊於黼黻兮才未補於笙鏞行有馬而食有肉兮卸弊屩與枯筇况天門之咫尺踵羣仙而朝宗翼招搖以上征兮聽星珮之瑽瑢緣何厚於出入兮瑣則靑而階彤天庶幾乎玉汝只可俟乎陶鎔丞乃啞然一笑兮泛觥船而倒毫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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雉嶽辭【幷小序癸丑】 癸丑春正月元朝之翌日丁未余以享官登雉嶽祠峽路碻确凍雪遍山衝寒而進經宿而返王事也未敢言勞而此行又替人之勞終不無獨賢之歎馬上信口述行其辭曰客胡爲乎山之幽松鬱翠兮枝相樛老督郵兮益壯肇發軔於丹邱今夕兮何夕月之元旁死魄越翼日日吉兮辰良駕白駒之駜駜問僕夫以前路路梗澀兮山崔嵬初疑龍門之賞雪兮更似灞橋之尋梅梅消息兮寂(寥但有雪而堆堆迫黃昏兮衝寒阿導前而僕夫催王事兮靡敢懈恐或被於訶譴何谷風之剪剪射靑袍兮如箭嗟砯崖之滑削兮穿一逕而如線寥寥吠兮一犬見兩三兮村舍遵舊例於候人兮率輿徒而未迓繽舍勞而就逸兮夢非眞而非假魂煢煢與神交兮欻桂旗而上下靈偃蹇兮在坐謇申申其詒予覯斯世之躁競兮爾多讀乎古書恒自稱曰達觀兮胡若是其愀如盈虛消食陰陽之理屈伸往來鬼神攸使吉凶榮辱惟人所召羌福善而禍淫兮憬天鑑之炯照懿達人之知命兮審厥居而安安尼無援兮下位展不卑兮小官况聖明之在上臨朝歎於才難苟有才則可庸兮關不隔於天外殫吾誠兮供職祗可俟乎嘉會精瓊爢兮作餱挹桂漿兮爲醑華釆夜兮若英若有人兮容與神洋洋而旣醉兮詔錫爾以純嘏主聖世泰兮賢不遺野鴻漸九逵兮有進無退豊餼饗以萬鍾兮介眉壽而耆艾爛枝葉之峻茂兮溢芳名於明時忽寤寐以有得兮受神賚而爲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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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初九日 ○이른 아침 일행과 동구안 약방으로 가서 구경하였는데, 소전(小殿, 세자(世子))이 경우궁(慶祐宮)28)의 하향 대제(夏享大祭)에 거동한 것이었다. 구경하고 돌아오는 길에 경주인(京主人)29) 집에 들러 주인을 만나서 흥양(興陽, 고흥)에 대해 상세히 듣고 주인집으로 돌아왔다. 조금 쉬었다가 용동으로 갔다. 저물녘에 돌아오니 정동의 이 석사가 찾아왔다고 하였다. ○早朝, 與同行往洞口內藥房觀光, 而小殿以慶祐宮夏享大祭擧動也。 觀光後, 來路入京主人家, 見主人, 詳聞興陽, 而還主人家。 少憩後, 往龍洞。 乘暮還, 則貞洞李碩士來訪云矣。 경우궁(慶祐宮) 서울시 종로구 계동에 있는 정조의 후궁이자 순조의 어머니인 수빈 박씨(1770~1822)의 사당이다. 1824년에 창건하였다. 경주인(京主人) 경저리(京邸吏)이다. 벼슬아치나 서민으로 서울에 머물러 지방 관청의 사무를 연락하고 대행하던 사람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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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十四日 ○아침에 나와 주인집으로 돌아왔다. 애초 일찌감치 출발할 예정이었으나 궂은 날씨 탓에 그대로 아침을 먹었다. 종일 비가 그치지 않았다. 오랜 가뭄 끝에 이렇게 단비가 내리니 매우 기쁘고 다행이다. ○朝出, 來主人家。 初以早發爲定矣, 以雨戱之致, 仍朝飯。 終日雨不止。 久旱之餘, 得此好雨, 忻幸忻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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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初三日 ○문적의 수정(修正) 때문에 주인집에 남아있었다. 오후에 정동(貞洞)21)에 갔는데 이 석사가 없었다. 다만 그의 아우 이훈(李壎)하고만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오니, 석사 이혜길(李惠吉)이 혼자 찾아와 기다리고 있었다. 저녁을 먹은 후, 이혜길이 집으로 가자고 청하기에 그와 함께 가서 그대로 유숙하였다. ○以文蹟之修正留主人家。 午後往貞洞, 李碩士不在。 只與其弟壎, 暫話而來, 則李碩士惠吉專訪來待矣。 夕飯後, 惠吉請往其家, 故與之偕往, 仍留。 정동(貞洞) 조선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의 정릉이 현재 정동 4번지에 있던 데서 '정릉동'이라 하였던 것을 줄여 정동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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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初四日 ○아침밥은 안채에서 음식을 내와서 몹시 고마웠다. 오후에 일행과 영추문(迎秋門)22) 안으로 가서 궐문 밖을 지나, 그길로 유동(油洞)23)으로 갔다. 도중에 일행을 남겨두고, 나는 조문하기 위해 아전 안인성의 집을 찾아갔는데 아전 안인성의 아들이 출타하였으므로 만나지 못하였다. 일행이 머무는 곳으로 돌아와서, 함께 종각 근처로 왔다. 마침 공서을 만나 그와 잠시 얘기를 나누고 돌아왔다. ○朝飯自內間出饋, 感荷感荷。 午後與同行往秋門內, 過闕門外, 仍向油洞。 留同行於中路, 余則吊問次, 尋安吏寅成家, 則安吏之子出他, 故不見。 而還同行所留處, 與之偕來鍾閣邊。 適逢公瑞, 與之暫話而來。 영추문(迎秋門) 경복궁의 서문(西門)이며 연추문(延秋門)이라고도 한다. 조선 시대 문무백관들이 주로 출입했던 문이다. 유동(油洞)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1가에 있던 마을로, 기름을 파는 기름전이 있었으므로 기름전골이라 하고, 이를 한자명으로 표기한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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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二十一日 ○밥을 먹은 뒤 송화(宋燁) 군찬(君贊), 송낙의(宋樂義) 내직(乃直)과 나와 광암(廣岩) 객점에서 하서가 오기를 기다렸다. 한참 있으니 하서가 과연 왔길래 술을 사서 함께 마시고 군찬과 내직 두 송씨와 작별하였다. 하서와 동행하여 첩치(箑峙)를 넘어 굴암(屈岩) 아래 객점에 이르러 작별하였다. 도마교(逃馬橋)81) 주변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방동(芳洞)82)의 송렴(宋濂) 집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이 마을에 들어온 것은 송상오(宋象五), 송재환(宋在煥) 두 사람의 유고에 조문하기 위해서였다. 30리를 갔다. ○食後, 與宋燁君贊、宋樂義乃直出來, 廣岩店待夏瑞來矣。 移時夏瑞果來, 沽酒相飮, 與君贊乃直兩宋作別。 與夏瑞同行, 越箑峙, 抵屈岩下店作別。 抵逃馬橋邊午飯。 抵芳洞宋濂家留宿。 入此洞者, 吊宋象五、宋在煥兩人之故也。 行三十里。 도마교(逃馬橋) 임실군 임실읍에서 내려온 시내에 놓인 나무다리로, 말이 건너다녔다 하여 도마교(道馬橋)라고 했다. 원문 '逃'는 저본의 오류로 보이나 확실치 않다. 방동(芳洞) 전라북도 임실군 관촌면 방수리 방동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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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二十日 ○주인이 극구 만류하여 그대로 머물렀다. 낮에 김노가 다리 통증으로 아파서 드러누워 있으니 몹시 걱정되었다. 거처 앞에는 시내가, 뒤에는 소나무가 있어 아주 고즈넉하였다. 절구 한 구절을 다음과 같이 읊었다.개울물 소리는 밤새도록 울리고(澗有通宵響)둥글고 깊다라니 진종일 그늘 드네(圓深盡日陰)거처하는 곳이 시내 저자 주변이건만(攸居城市邊)혹 속인이 찾아오는 건 싫어하네(倘嫌俗人尋) ○以主人之堅挽, 仍留。 午間, 金奴以脚病痛臥, 悶悶。 所居前溪後松甚幽寂。 吟一絶曰: "澗有通宵響, 圓深盡日陰。 攸居城市邊, 倘嫌俗人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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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二十六日 ○밥을 먹은 뒤 길을 떠날 무렵, 마침 암자 아래를 지나는 상선(商船)이 있어서 어디로 가는지 물으니 공주로 간다고 하였다. 뱃사공을 불러 급히 배에 올랐다. 배를 띄운 지 몇 리 못 가서, 바람과 일기가 순조롭지 못해 도로 배에서 내려 육지에 올랐다. 선덕(先德) 객점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삼거리 객점을 지나 발치(發峙)100)를 넘어 이인(里仁)101) 객점에 이르렀다. 잠시 쉬고 나서 우금치(于今峙)102)를 넘어 공주 화산교(花山橋) 객점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70리를 갔다. ○食後, 離發之際, 適有商船之過菴下, 故問其所向, 則往于公州云也。 招津夫急登船。 浮江數里, 以風日之不順, 還下船登陸。 抵先德店午飯。 歷三巨里店, 越發峙, 抵里仁店。 暫憩後, 越于今峙, 抵公州花山橋店留宿。 行七十里。 발치(發峙) 충청북도 충주시의 직동과 살미면 재오개리 사이에 있는 고개이다. 옛날 삼남대로로 통하는 대로의 첫 고개였다고 한다. 이인(里仁)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이다. 우금치(于今峙) 우금치(牛禁峙)를 말한다. 공주 분지의 남쪽 끝에 낮은 안부를 이루어 형성된 고개로 높이가 약 100m이며, 부여에서 공주 시내로 진입하는 길목에 있다. 동학운동 때 관군과 싸워 동학 농민군 10만 명이 전사한 역사적 장소로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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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初二日 ○밥을 먹은 뒤 류 서방, 안(安) 서방과 동행하여 주로치(周魯峙)를 넘었다. 벌교에 이르니 율지가 과연 일찍 와서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요기하고 나서 출발하였는데 날이 이미 저물었다. 율지는 곧바로 마륜으로 들어가고 나는 안 서방, 류 서방 두 친구와 함께 용전(龍田)으로 들어가 유숙하였다. 저녁을 먹은 뒤 증손자가 가교(柯橋) 댁으로 올라왔다. 내가 내려온다는 기별을 듣고 오늘 나온 것이다. ○食後, 與柳書房、安書房作伴, 越周魯峙。 抵筏橋, 則聿之果如早來, 尙今企待矣。 療飢後, 登程。 日已暮矣。 聿之直入馬輪, 余則與安、柳兩友, 入龍田留。 夕食後, 曾兒自柯橋宅上來。 聞6)吾下來之奇, 今日出來矣。 聞 저본은 '問'으로 되어있으나 문맥상 '聞'으로 보고 수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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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初三日 ○나는 밥을 먹기 전에 사교로 내려가 먼저 문옥(文玉)을 만나고, 가교 댁으로 내려와 아침을 먹고 출발하였다. 구룡정(九龍亭)에 들러 잠시 경수(敬叟) 씨를 만났다. 탄포(炭浦)135) 객점을 나오니 율지가 일찍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또 박상현을 만나 동행하여 과역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문등(門登)에 이르러 율지와 박상현은 곧바로 간촌(看村)으로 가고, 나는 집으로 돌아와 집안의 사당에 공경히 배알하였다. 안으로 들어가 손자를 보니 그 기쁨이 한량없었다. 그러나 산모가 유종(乳腫, 젖멍울)이 점점 더해지는 듯하니 이 또한 걱정되는 부분이다. ○余則食前下去四橋先見文玉, 下來柯橋宅, 朝飯發程。 入九龍亭, 暫見敬叟氏。 出炭浦店, 則聿之早來待矣。 又逢朴祥顯與之同行, 抵過驛午飯。 抵門登, 聿之與朴祥顯直向看村, 余則還家, 祗謁家廟。 入內見孫兒, 其喜不可量。 而産母似有乳腫之漸, 此亦悶慮處也。 탄포(炭浦) 전라남도 고흥군 대서면 탄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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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二十日 ○새벽에 일어나 일찍 불을 지펴 밥을 먹었다.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렸으나 惠吉은 오지 않았다. 해가 점점 높아지도록 끝내 오지 않았다. 저녁 먹을 때까지 끝내 그림자도 비치지 않았다. 몹시 괴로웠다. 주인 영대(永大) 또한 같이 가자고 끊임없이 재촉해댔다. 그래서 너무 늦어지고 나서 어쩔 수 없이 출발하였다. 안주인에게 정동의 이 생원이 꼭 올 테니, 서둘러 쫓아오면 수청거리(需廳巨里)에서 기다렸다가 출발하겠다고 말해두었다.수소거리(需所巨里)에 이르러 한참을 기다렸지만 오지 않았다. 그길로 나루를 건너 승방점(勝房店)에 이르러 기다렸으나 끝내 오지 않았다. 천천히 걸어서 사근천(肆覲川)120) 객점에 이르러 유숙하였으나 끝내 오지 않아 몹시 괴이쩍었다. 50리를 갔다. ○曉起, 早炊仍食。 平明以待而不來。 日漸高而終不來。 至於晩食時, 終無影形。 可悶可悶。 主人永大亦爲同行, 而摧促不已。 故最晩後。 不得已發程。 而言於內主人貞洞李生員必來, 急急追來, 則待之需廳巨里而發。 抵需所巨里, 移時待之, 而不來。 仍爲越津, 抵勝房店待之, 而終不來。 徐徐緩步, 抵肆覲川店留宿, 而終不來。 可怪可怪。 行五十里。 사근천(肆覲川) 경기도 안양시에 있으며 '사근내'라고도 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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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十七日 ○일찍 출발하여 사교(沙橋)에 이르러 아침을 먹고 수월점(水越店)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판치(板峙)를 넘어 효포(孝浦)에 채 못가서, 마침 성찬(聖燦)과 이 석사(李碩士)를 만났다. 이들은 신파(新波)에서 내려오는 사람들로 도중에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녁에 고대도(高大道)에 이르러 묵었다. 80리를 갔다.-밥값으로 한 냥을 냈다.- ○早發抵沙橋朝飯, 抵水越店中火。 越板峙, 未及孝浦, 適逢聖燦及李碩士。 自新波下來之人, 路中暫話, 暮抵高大道留宿。 行八十里【飯錢一兩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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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록 同行錄 정효영 율지 계사년(1773) 본관 영광박상현 사원 기축년(1769) 본관 창원송석년 수이 무술년(1778) 본관 여산송 격 내원 신유년(1801) 본관 남양송 호 여옥 을묘년(1795) 본관 남양박종운 병오년(1786) 본관 창원신희록 자윤 을축년(1805) 본관 고령조성령 무진년(1808) -임피(臨陂) 서면(西面)67) 상동촌(尙洞村)에 거주-박영규 여경 계해년(1803) 본관 밀양 丁孝榮聿之, 癸巳, 靈光人。朴祥顯士元, 己丑, 昌原人。宋錫年壽而, 戊戌, 礪山人。宋 格 乃元, 辛酉, 南陽人。宋 琥汝玉, 乙卯, 南陽人。朴宗運, 丙午, 昌原人。申希祿子胤, 乙丑, 高靈人。趙成靈, 戊辰, 人。 【居臨陂西面尙洞村。】朴榮珪汝卿, 癸亥, 密陽人。 서면(西面) 전라북도 군산시 개정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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