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록문화
통합검색플랫폼

검색 필터

기관
유형
유형분류
세부분류

전체 로 검색된 결과 517956건입니다.

정렬갯수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신○년 이재징(李在徵)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李在徵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신○년 3월 1일에 친족 이재징이 옥산의 동상댁에 상대방이 간청한 재목을 베는 일은 네 그루 값이 2냥이며, 만약 부족하다면 나무를 더 베어 수량을 채워서 보내겠다는 내용 등을 전한 간찰 신○년 3월 1일에 친족 이재징이 옥산(玉山)의 동상댁(東上宅)에 상대방이 간청한 재목을 베는 일은 네 그루 값이 2냥이며, 만약 부족하다면 나무를 더 베어 수량을 채워서 보내겠다는 내용 등을 전한 간찰이다. 지난번에 잠깐 만나서 이야기했던 일은 지금까지 그립다는 내용, 꽃피는 따뜻한 봄날에 상대방과 가족들 모두 평안하며 이웃의 돌림병은 근래 깨끗해졌는지 안부를 묻는 내용, 자신은 어버이를 모시고 가족을 이끌며 예전처럼 지내고 있으나 가역(家役)에 골몰하는 데 형세가 곤궁하고 힘이 다하여 스스로 견딜 수 없으니 이를 장차 어찌하면 좋겠느냐는 내용, 상대방이 간청한 재목을 벌채(伐採)하는 일은 상대방이 유념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네 그루의 값은 2냥이니 확인하고 받아주는 것이 어떻겠는지, 만약 부족함이 있다면 나무를 더 베어 수량을 채워서 보내겠다는 내용 등을 담았다.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첩관통보류

1931년 월산사(月山祠) 제관(祭官) 망기(望記) 고문서-첩관통보류-망기 月山祠 盧鍾龍 月山祠印(3.0×3.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1년 3월 5일에 월산사에서 석채례의 헌관으로 노종룡을 의망하였다는 사실을 전한 망기. 1931년 3월 5일에 월산사(月山祠)에서 같은 달 15일에 이제현(李齊賢) 영정각(影幀閣)에서 지낼 석채례(釋菜禮)의 헌관(獻官)으로 노종룡(盧鍾龍)을 의망하고, 이 사실을 광주군(光州郡) 본촌면(本村面) 일곡(日谷)에 사는 노종룡 본인에게 통보한 망기(望記)이다. 월산사(月山祠)는 담양군 월산면 월산리에 위치하고 있는데, 1678년(숙종 4)에 처음 세워졌으나 1868년(고종 5)에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가 1922년에 중건하였다. 문서의 작성연도는 신미년으로만 표기되어 있으나, 1931년(신미년)에 충북 진천에서 이제현 초상 복제본을 배향한 바 있다. 따라서 본 문서의 작성연도인 신미년은 1931년으로 추정할 수 있다.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첩관통보류

1935년 노진영(盧軫永) 망기(望記) 고문서-첩관통보류-망기 道會所 盧軫永 武陽書院 2顆(흑색, 직방형, 7.3×5.4)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5년 도회소에서 노진영을 무성서원의 추향제 전사관으로 추천한다는 내용의 망기. 1935년 8월에 도회소(道會所)에서 노진영(盧軫永)을 무성서원(武城書院) 추향제(秋享祭) 전사관(典祀官)으로 추천한다는 내용의 망기(望記)이다. 입재(入齋) 일자는 8월 10일 상오 12시이다. 무성서원 인장 2건이 답인되어 있다. 노진영의 본관은 광주(光州), 소해(蘇海) 노종룡(盧鍾龍, 1856~1940)의 아들이다.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928년 이문량(李文亮)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李文亮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8년 1월 27일, 형 이문량이 노진영에게 이거한 거주지에 땅을 양보해 줄 것을 요청한 내용으로 보낸 서간. 1928년 1월 27일에 형(兄) 이문량(李文亮)이 노진영(盧軫永)에게 이거한 거주지에 땅을 양보해 줄 것을 요청한 내용으로 보낸 서간(書簡)이다. 오랫동안 막힌 회포를 풀지 못하고 또 한해가 지났다며 최근 혹심하게 추운 봄에 상대가 안녕한지, 가족도 모두 잘 있는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근래 감기와 치통으로 여러날 일어나지 못했다는 것, 이것이 반세상을 살았기 때문이냐며 한탄했다. 그리고 새로 우거하는 곳에 한 마디의 농토도 없어서 어찌해야할지 모르겠다며 살기가 실로 어렵다고 했다.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염치가 없지만 다시 말한다며 아우가 특별히 전에 없던 규정으로라도 논 5두락을 옮겨 주어서 외롭게 사는 자신이 살아가는 업(業)로 삼도록 해 달라고 했다. 자신의 몸이 회복되는 날 즉시 만나러 가겠다고 하고 박 형(朴兄)이 말로 다 전해줄 것이라고 했다. 협지에는 옥(玉)으로 짠 자리 1립을 보낸다며 정으로 받아 달라고 청했다.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피봉_앞면)光州郡 芝山面 日谷盧軫永 氏(簡紙)伏惟時下僉體萬旺하심을 慶祝하나이다. 本祠院誌는 宋祖憲氏가 嶺南으로부터 刊出하야 這間波瀾이 多有함은 本裔名家에게 已爲詳知하시는바 其間內容은 疊言할 必要가 無하압고, 今番秋享時 分秩하기로決議되여서 白亨斗氏로 外務員을 選定하야 分秩의 責任을 負擔케되여사으ᄆᆡ 本院의 后孫된 吾等은 但先祖의 事實만 善美케되여시면 第一이요,刊出方法의 差誤는 不足掛論인즉 此占을 解釋하시와 購 覽하시되 二百五十秩에 八十秩은 本祠債金으로 編入하고 一百七十秩은 宋祖憲·田亨鎭의 刊費로 支出케되여서 每秩式拾圓式査定하야 嶺南으로부터 已爲分秩되여신즉 各位는 或不無價高之嫌이오나 但先祖無價의 美蹟인바 豈論高歇於其間乎아. 以寄附樣購 覽하시면 本祠의 幸福이올시다. 至於位土代 하야도 明年春享前에는 期於完了하시로 決議되여신즉 此亦銘念하시와 維持上葛藤이 無케 하심을 敬要함.丁丑九月二十五日 [方形朱印: 景賢祠印]院有司 金肯鉉 掌議 申宣雨外務有司 白亨斗 李熙說姜晩秀 曺喜洙掌議 金演九 金源弼奇貞度 色掌 朴明煥南廷鎬 文正基金詩樂 姜在馨盧軫永 監査 曺鼎鎭鄭商鉉 金進鉉盧錫正右任員은 滿期임으로 改選, 又는 再選되여삽.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병신년 김석지(金錫智)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錫智 妹兄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병신년에 김석지(金錫智)가 옥계(玉溪)의 매형 댁에 안부를 전하고 보내준 물건에 대해 감사 표시를 하는 내용의 간찰 병신년 10월 19일에 김석지(金錫智)가 옥계(玉溪)의 매형 댁에 보낸 간찰이다. 지난 가을에 뵙고 몹시 감사했는데 뜻밖에 보내준 편지를 받게 되니 몹시 위로가 되고 또 죄송하다고 인사하였다. 편지를 통해서 매형이 잘 지내고 계시고 가족들 모두 편안하다고 해서 몹시 위안이 된다고 하였다. 자신은 어머니께서 풍담(風痰)으로 고생하시는데 겨울 추위 때문에 더욱 안 좋아져서 애가 탄다고 하였고, 계씨형(季氏兄)을 못 보다가 만났더니 몹시 기뻤지만 흉년에 많은 식솔로 생계가 어렵다고 해서 차마 들을 수가 없으니 어찌하겠느냐고 한탄하였다. 보내주신 건어(乾魚)는 잘 받았고 초자(椒子)는 감사하지 않은 것은 아닌데 다만 양이 적어서 아쉬웠다며 다음 인편에 혹 더 보내주면 어떻겠느냐고 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시나 鄙地方面으로 말하면 全異한 細雨도 업난事實임이다 鄙地의 送人하시와 形便를 보시면 다알의시것심이다 鄙地年▣로 말하면 十分에 九은 災라 할수잇고 一은 豊이라고 할수잇심니다 弟의小作한畓租中에不可三束以上에 넘지못하게 收取하고 그대로 잇심니다 先尺決定은 每年의 定尺하엿시나어너니廢農故로 更히 送人하시라한거심니다 其時에도 不安心를 두시지만은 右記와갓치 年運닌니 十分容恕하시고 送覽하여주시면 以後부터셔난 만닐못먹난形便이잇드라도 更히말슴告白치안커심이다 歸去한 鄙妹의 苦痛한 事情과 遺語로하다하드라도 銘心不忘 先尺一升도 懶惰치안키로함니다 그리알으시고 二十五日內로 送覽하여주시룬 千萬大望하난밤니다 今年갓튼 年勢과 ᄯᅩ잇실가요 十分顧護하시와 今年에 更히 보와주시시오 麥를 갈게되야신니 速速키 送覽하여주시를 切望함이다 餘不備書舊九月二十五日 弟朴判根 上呈他人定尺도 更히보와갓신니곳來臨하시오못오게되면回答하여주시시오【피봉】〈前面〉光州郡本村面日谷里▣▣永氏〈後面〉緘 長城郡森溪面社倉朴判根拜二十五日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兄의팬지를拜讀하고그동안修謝가遲延되여서大端未安함니다弟는其間例의胸膈痛으로連日出入을全廢하엿다가今日에사兄의照會件으로某方面에알아보앗는대그內容이米穀을時方滿洲로輸出시키는것은別利益이無하다함니다近日滿洲政府에서米穀輸入統制必要上政府에서一手買点하기ᄯᅢ문이고米穀을北支로輸出하는대는多大한利益이잇스나左記의條件이俱備한사람의ᄭᅴ輸出을許可하기됨니다一. 天津이나北京等地在駐領事官이証明하여준該當地米穀商으로領事館証明을添付하여朝鮮總督府에提願하는者二. 右의証明이有한米商으로부터幾萬石送付하여달나는注文을得한人士의ᄭᅴ이른한條件下에朝鮮總督府는비로소許可할可能性이有한대그럿다고반다시許可하여주는것도안이라님다目下上海居留民團及漢口居留民團側으로 同証明을添付하여朝鮮總督府에提願한것이數百萬石이나마다不許可되고잇슴니다何故오하면自今으로支那人衆이全部朝鮮米食을所願하는대萬一無制限으로그양放任하면朝鮮米는出回前부터라도支那人의ᄭᅴ全部預賣或은買点되고말것이다그려면內鮮食粮問題가大打擊을바들憂慮가잇다는意味에서農商務省에서는絶對禁輸方針을樹立한것을外務省에서我國在外居留民을엇덧케하는야하는問題에서右와如한最小範圍의條件ᄭᅡ으로兩省間에協定된것인대朝鮮總督府에서는同兩省의根本方針에基하야政務를遂行할ᄲᅮᆫ外라다시朝鮮內實地現況에參照하여多小加減은할수잇지만은大方針의協定的軌道는到底히違越할수업다는것인대時方北支ᄭᅡ지輸送하면每石에四円五十錢假量의純利가잇스나將來난乃至十餘円假量ᄭᅡ지도 純利가잇겟다함니다然則大兄게서萬一生覺이게신다면天津이나北京이나兩處에領事館証明을가진當地商人과連絡하여幾萬石注文이兄의名義로오면本府交涉은弟가하여드리겟슴니다그리아시고工作하여보시오北京으로가시던지或은坐而周旋하던지그것이必要하게되엿슴니다그것이ᄯᅩ한잇다고本府에서何等의考慮도업시얼는하여주는것도안이올시다滿洲輸出은自今作罷하시오이른것은다商工政策上當筋의秘話오니絶對嚴秘하시오萬一그른周旋을할수잇거든곳回示하여주시오餘惟祝侍體大安不備上五月二十四日 弟安秉鉉上盧軫永 仁兄【피봉】〈前面〉全南光州府大正町一一二盧軫永 仁兄〈後面〉京城府內需町七0 七七安秉鉉上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계묘년 김극영(金極永)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極永 李生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493 계묘년에 김극영(金極永)이 고모부인 이생원(李生員)에게 안부를 전하며 자신 집안에서 당숙모를 열부 정려를 받기 위해 정장을 추진하는 과정이니 명첩을 써서 보내주기를 요청하는 내용의 간찰 계묘년 8월 10일에 김극영(金極永)이 이생원(李生員)에게 보낸 간찰이다. 고모부의 병환 소식을 듣고 염려스러웠는데 그사이 다 나았는지, 집안 식구들은 다들 잘 지내는지에 대해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부모님이 그럭저럭 예전처럼 지내고 있어 다행이지만 작년 연말 전후로 집안의 상변(喪變)을 거듭 당하여 비통한 심정으로 날을 보내고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치수(致受) 사촌이 상대방 고을로 갔다가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는데 아마도 당신이 있는 곳을 방문할 것 같다고 소식을 전하였고, 보내준 여러 물품들에 대한 감사도 전하였다. 자신 집안에서 당숙모(堂叔母)의 열부(烈婦) 정려(旌閭)를 추진하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상대방 고을의 여러 사람들에게도 많은 명첩(名帖)을 받았다고 하면서 고모부도 인편을 통해 써서 보내주기를 청하였다. 고모부의 형님께서 서울 행차에서 돌아오셨는지 묻고 바빠서 따로 서찰을 쓰지 못하니 안부를 전해 달라 부탁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첩관통보류

1931년 무성서원유회소(武城書院儒會所) 망기(望記) 고문서-첩관통보류-망기 茂城書院儒會所 李鍾聲 茂城書院 2顆(흑색, 직방형, 7×4.8)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161 1931년 11월에 무성서원유회소에서 유학 이종성을 본원의 도내훈장 후보로 추천한 문서 1924년 11월에 무성서원(武城書院)의 유림도회소[유회소]에서 강진군 작천면(鵲川面) 내기리(內基里)에 사는 유학 이종성(李鍾聲)을 무성서원의 도내훈장(道內訓長) 후보로 추천한 문서이다. 문서의 발급날짜 등에 '무성서원(武城書院)' 묵인(墨印)이 찍혀있다.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25년 김계현(金啓鉉)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和順縣監 金啓鉉 和順縣監 <着押> 周挾無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191 1825년 화순현에서 호주 김계현에게 동년의 호적대장에서 해당 내용을 등서하여 발급한 준호구 1825년(순조 25) 화순현에서 호주 김계현에게 동년(同年)의 호적대장을 토대로 작성하여 발급해 준 등본 성격의 준호구이다. 김계현의 거주지 주소는 화순현(和順縣) 동면(東面) 제10 물찬내마을[水冷川里] 제2통 1호이다. 직역은 유학(幼學)이고 올해 나이는 66세 경진생(庚辰生)이며,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김계현의 사조(四祖)는 아버지 학생 일해(日海), 할아버지 학생 석삼(錫三), 증조(曾祖) 학생 자광(自光), 외조(外祖) 학생 박인삼(朴仁森)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김계현의 아내 이씨(李氏)는 연령 66세 경진생(庚辰生)이고 본적은 전주(全州)이다. 이씨의 사조는 아버지 학생 만영(萬榮), 할아버지 학생 우춘(遇春), 증조 성균진사(成均進士) 욱(旭), 외조 학생 김대백(金大白) 본관은 의성(義城)이다. 가족으로 어머니 박씨(朴氏)는 연령 85세 신유생(辛酉生)이고, 아들 재우(在宇)는 나이 28세 무오생(戊午生)이며, 며느리 김씨(金氏)는 연령 28세 무오생이다. 소유하고 있는 여종 악춘(惡春)은 나이 24세 임술생(壬戌生)이다. 문서에는 화순 현감(和順縣監)의 관인(官印)과 주협무개인(周挾無改印) 및 현감의 서압(署押)이 실려 있으며, 1822년 호적과 대조 확인을 마쳤다는 '임오호구상준인(壬午戶口相凖印)'이 기재되어 있다.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923년 주태선(朱泰鮮)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朱泰鮮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3년 6월 23일에 주태선이 모친상 중 장례를 치른 것을 위로하기 위해 노진영에게 보낸 위문 서간. 1923년 6월 23일, 주태선(朱泰鮮)이 노진영(盧軫永)의 모친상 중 장례를 치른 것을 위로하기 위하여 보낸 위문 서간(書簡)이다. 상대가 어머니를 잃고, 상을 치르기 시작하여 장례(葬禮)를 마치고 성복(成服)을 마친 것에 대하여 애통함과 망극함이 어떠하겠냐며 마음을 위로했다. 기력이 어떠한지 묻고 채식이라도 열심히 하고, 예제(禮制)를 잘 따르기를 바란다고 했다. 자신은 일 때문에 끝내 직접 가서 위문하지 못했다며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며 인사했다. 노진영은 노종룡(盧鍾龍, 1856~1940)의 아들이다.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924년 정순묵(鄭淳默)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鄭淳默 盧鍾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4년 7월 4일에 사생 정순묵이 사돈 노종룡의 손자 죽음을 위로하는 내용으로 보낸 위문 서간. 1924년 7월 4일에 사생(査生) 정순묵(鄭淳默)이 사돈 노종룡(盧鍾龍, 1856~1940)의 손자 죽음을 위로하는 내용으로 보낸 위문 서간(書簡)이다. 덕문(德門)에 무슨 뜻밖의 일이냐며 탄식하고 이치(理)는 헤아리기가 어렵고, 하늘(天)은 누가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자애로운 사돈이 어지 견딜지 걱정하며 변화에 순응하기 위해 슬픔을 절제하고 건강을 잘 유지해서 문호(門戶)와 친구들의 바람을 위로해주기 바란다고 했다. 일이 이렇게 되었지만 위로 성현(聖賢)을 따라 모두 이치대로 보내야 한다고 했다. 자신은 어머니의 병환과 아내의 우환, 자식과 자신의 병이 여러 날 동안 이어진다고 전했다. 병이 낫고, 더위가 좀 덜해지면 찾아뵙겠다고 인사하고 편지를 마쳤다.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94년 박재빈(朴載彬)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朴載彬 康津縣監 <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4년에 康津縣監이 朝奉大夫 前童蒙敎官 朴載彬(66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1894년에 康津縣監이 朝奉大夫 前童蒙敎官 朴載彬(66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父 贈通政大夫 工曹參判 千益 祖 贈通訓大夫 司僕寺正 碓俊 曾祖 學生 師正 外祖 學生 金龍郁 *주소: 古郡內面 朴東里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97년 박재빈(朴載彬)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郡守 朴載彬 康津郡守 <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7년에 康津郡守가 朝奉大夫 前童蒙敎官 朴載彬(69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1897년에 康津郡守가 朝奉大夫 前童蒙敎官 朴載彬(69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父 贈通政大夫 工曹參判 千益 祖 贈通訓大夫 司僕寺正 碓俊 曾祖 學生 師正 外祖 學生 金龍郁 *주소: 古郡內面 樂山里 4統 1戶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임술년 서경순(徐璟淳) 소지(所志)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徐璟淳 城主 城主<着名> □…□ 3顆 (적색, 정방형, 6.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임술년 2월에 곡성현 예산면 신기리에 사는 서경순이 곡성 수령에게 자신의 당질이 서울 빚을 내지 못하도록 경주인에게 전령을 내려 돈길을 막아줄 것을 청원한 소지 임술년 2월에 곡성현(谷城縣) 예산면(曳山面) 신기리(新基里)에 사는 서경순이 곡성 수령에게 자신의 당질(堂姪)이 서울 빚을 내지 못하도록 경주인(京主人)에게 전령(傳令)을 내려 돈길을 막아줄 것을 청원한 소지이다. 서경순은 전임 수령의 자손으로 신기리에 세거(世居)하고 있으나 가문이 쇠퇴하고 복이 없어 십 수호도 되지 않은 친족이 모두 가난하게 근근이 사는 처지였다. 올봄 정월에 서울 사람에게 진 빚으로 패가망신한 평지촌(平地村)에 사는 이기무(李基茂)가 노점(路店) 술자리에서 서경순의 당질 연국(延國)을 불러서 이번 한성시(漢城試)에 함께 가자고 하자 당질이 자신은 집이 가난하여 노잣돈이 없어 함께 갈 수 없다고 하였다. 이기무는 웃으며 자기와 서울로 올라가면 서울 빚 5, 600전을 얻을 수 있고 무과 선달(武科先達)도 얻을 수 있다고 유혹하였으나 곁에서 듣고 있던 사람들은 농담으로만 알았더니 이달 12일에 당질 연국과 이기무가 함께 서울로 떠나버렸다. 이에 서경순은 절박한 마음으로 경주인에게 전령을 내려서 당질이 서울 빚을 내지 못하도록 돈길을 막아줄 것을 청원하는 내용이다. 이 청원서에 대해 곡성 수령은 2월 10일에 '경저리(京邸吏)에 전령을 내릴 것'이라는 처분을 내렸다.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谷城居幼學徐永修右謹陳事段本縣曳山面沿江十餘里有一帶柴塲壬子爲始自面中定爲巡山衆力守護每年發賣補用於民役以其餘剩買置田畓數石落是加尼昨冬良▣(中)有司數人不善擧行是如奸鄕輩訐告官家柴塲及田畓並爲奪入属公於雇馬廳而諸有司決罪放送矣身段謂有饒名多般威脅該面氷丁租六十石及 進上所用價一百二十兩使矣身白地擔當又稱罰贖錢六十兩公然責納於矣身此何事理節節可寃最所極痛者非它矣身先塋在於巡山之內龍虎六谷如干松楸所植處納畓七斗庫及錢三十兩於面中 成文卷買得禁養矣同畓土既入於雇馬廳而松楸之地渾歸属公故屢次呼訴久未决正是如可舊官臨歸時更呈所志始得許題而所志忽失去處方事推尋之際舊官座首鄭仁國邀請矣身好言誘說曰官家許題吾與有力七十兩錢即今備納則所志當出給亦爲去乙矣身初既切憎於渠輩貽害之事及聞此言越添肚氣峻責其誤官蠧民之習棄置而歸家則當日夜間兵房軍官吕善黙假托官令送將校捉去矣身出示所志曰所志在吾手錢文三十兩速速備來亦爲去乙矣身大笑曰所志題辞豈有價直雖三文錢吾無可給之義是如據理叱退舊官發行後徃推所志則吕善黙諉以還納於舊官終不出給爲臥乎所右項凶〖區〗地當初買得既已明白所志有無無甚係關畓土付諸雇馬廳則山地之渾奪萬無其理從文券出給之意 論題行下敎是遣許多錢穀之無端見失亦豈非橫政乎 並爲査實還徵俾免殘氓徹天之怨事 參商處分爲只爲行下向敎是事巡使道 處分壬申六月 日〈題辭〉詳査來歷且考本券可以推給者推給徵給者徵給事兼官 卄四日[官印]都巡使[署押]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기인섭(奇寅燮)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奇寅燮 姻兄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모년 10월에 인제(姻弟) 기인섭(奇寅燮)이 처형(妻兄)에게 안부 인사를 전하는 내용의 간찰 모년 10월에 인제(姻弟) 기인섭(奇寅燮)이 처형(妻兄)에게 보낸 간찰이다. 처형이 보내준 편지를 받고 몹시 기뻤던 심경으로 인사를 시작하였다. 편지에서 하신 처형의 말씀이 매우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자신이 부모님에게 순종하지 않고 효도하지 못한 사실은 세상 최고의 기술자나 미술가라 하더라도 제대로 그려내지 못할 것이라 자책하기도 하였다. 자신이 세상 풍조에 휩쓸려 고향을 나가 해외로 유랑하는 사람이 된 것을 너그러이 용서하여 달라고 하였고, 서늘한 가을 날씨에 처형의 건강을 축원하였으며, 자신은 될 수 있는 한 빨리 본국에 돌아갈 계획임을 전하였다. 편지는 국한문혼용으로 작성되었고, 피봉이 없어서 기인섭이 어느 나라에서 보내온 것인지 확인할 수 없다.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937년 정선채(鄭選采)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鄭選采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7년 7월 29일, 소제 정선채가 노진영에게 부탁받은 암소의 구입 건으로 살만한 소의 정보를 보내며 그 의사를 타진하는 내용으로 보낸 서간. 1937년 7월 29일, 소제(少弟) 정선채(鄭選采)가 노진영(盧軫永)에게 부탁받은 빈우(牝牛) 구입건으로 살만한 소의 정보를 보내며 그 의사를 타진하는 내용으로 보낸 서간이다. 일전에 영근(永根)이가 와서 대략 소식을 들었다고 말하고 그 뒤로 어찌 지내시는지 댁내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가족들 모두 별 탈 없어 다행이라고 했다. 주요 내용은 자신이 사는 화면(火面) 성덕리(聖德里)의 윤덕홍(尹德洪)이 4~5일 전에 와서 당신이 있는 곳에서 왔다며 말하기를, 당신의 마굿간에 기를 소를 구입하는 일로 부탁을 해왔다고 했다. 암소로 살만한 것은 자신이 사는 면(面) 가곡리(柯谷里) 이동근(李東根) 집에서 기르는 암소 한마리가 털색이 순황색이고, 뿔이 매우 힘이 있다는 것, 그 소는 먹는 것과 밭을 가는 힘이 상당하고 나이가 6세인데다 10일전에 송아지를 낳았다고 하며 이상의 여러 일들은 자신이 평소 상세히 알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만약 구입할 뜻이 있다면 금액은 100원 가량이라고 전했다. 추신에는 신유선(辛有善) 집에서는 암소를 금년 봄에 150원에 사들여 기르는 중이라고 하며 만약 매매하고 싶다면 이번 봄의 시세(市勢)를 놓치면 안 될 것 같다고 하고, 두 군데 소를 매입할지에 대하여 어찌할지 속히 회시해 줄 것을 요청했다.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피봉_앞면)全南 光山郡 芝山面 日谷里盧 軫永 殿(피봉_뒷면)黃海 甕津郡 西面內 錢山里貞峴洞盧秉來 疏上敬.(중봉_앞면)疏上盧 碩士 大孝 苫前盧秉來 謹封(簡紙)頓首再拜. 禮書之外, 復有何言.患候雖云沈重, 意謂以若淸粹之氣節, 溫潤之德行, 百歲康寧, 以待此生之一晋門屛, 復承德音矣. 遽至於此, 今焉已矣. 何痛如之, 何恨如之. 秉來自前秋拜辭之後, 常欲上書者久, 而於焉未遂于今. 雖有莫及之嘆, 奈何. 伏惟尊哀孝心純至, 哀慕諭節, 想必毁瘠矣. 伏願俯從禮制, 勿犯古人傷孝之戒, 如何. 秉來 自二月初客居於同郡交井面愼氏家, 與六七冠童, 以爲消遣法也. 而本第去來, 則數月一番, 故前者 貴從前上禮書式, 不免怱遽失節,惶恐惶恐. 今又以道途之遠, 不卽奔哭, 只以一紙替唁, 是豈百世宗誼深知之道乎. 忉恒不已. 想應誠敬之所占得何處, 牛眠之地否. 德門百靈所助自副, 古人所云吉人逢吉矣. 來惟以此仰祝而已. 令允諸玉無瑕善侍善課否. 此總是急於情私哀遑中, 敢此仰煩 恕諒焉. 封中誄詞一首, 以文短意拙不能道 先德之萬一, 伏悚伏悚耳. 餘姑此, 不備疏上.庚辰七月二十九日, 族末 秉來 再拜上.

상세정보
517956
/25898
상단이동 버튼 하단이동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