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7년 최동룡(崔東龍)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1807 谷城縣監 崔東龍 谷城縣監<着押> 周挾無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186 1807년에 곡성현 석곡면에 사는 호주 최동룡이 주소와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 등을 기록한 호구단자를 관에 제출하여 확인을 마치고 돌려받은 준호구 1807년(순조 7)에 곡성현 석곡면에 사는 호주 최동룡이 주소와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 등을 기록한 호구단자를 관에 제출하여 확인을 마치고 돌려받은 준호구이다. 최동룡의 거주지 주소는 곡성현(谷城縣) 석곡면(石谷面) 운와리(雲臥里) 2통 3호이다. 그는 양인(良人)이고 올해 나이는 59세 기사생(己巳生)이며,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최동룡의 사조(四祖)는 아버지 학생 귀선(龜善), 할아버지 증가선대부 공조참판 오위도총부 도총관 성남(聲南), 증조(曾祖) 증통정대부 공조참의 석벽(錫壁), 외조(外祖) 학생 오태위(吳泰位) 본관은 동복(同福)이다. 최동룡의 아내 황씨(黃氏)는 나이 60세 무진생(戊辰生)이며, 본관은 장수(長水)이다. 황씨의 사조는 아버지 학생 경하(慶河), 할아버지 가선대부(嘉善大夫) 진상(進相), 증조 가선대부 서(叙), 외조 학생 김노적(金老迪)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이외 가족으로 아들 덕련(德連)이 있으며, 그의 나이는 19세 기유생(己酉生)이다. 이 문서에 '호구단자(戶口單子)'라고 적혀 있고 호구단자의 기재형식인 열서(列書)로 되어 있으나 곡성현 관인(官印)과 주협무개인(周挾無改印) 및 곡성 현감의 서압(署押)이 찍혀있다. 이는 제출한 호구단자를 구호적(舊戶籍)과 대조 확인을 마친 뒤에 최동룡에게 다시 돌려준 것이므로 준호구로 분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