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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해년 박원호(朴遠浩)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朴遠浩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580 계해년에 박원호(朴遠浩)가 옥계(玉溪)에 안부를 전하고 자신이 상변(喪變)을 당한 심정을 전하고, 위장(慰狀)을 보내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한 간찰 계해년 12월 6일에 박원호(朴遠浩)가 옥계(玉溪)에 보낸 간찰이다. 찾아뵙지 못해 몹시 그리웠다고 하고, 혹독했던 추위가 조금 풀렸는데 지내시는 생활은 편안하고 여러 식구들도 모두 잘 지내고 있는지 물었다. 자신은 거듭해서 극변(極變)을 당하고보니 몹시 애통하고, 두 차례의 면례(緬禮)를 이제야 치렀다고 소식을 전하였다. 오직 다행인 것은 어머님의 건강이 손상이 없다는 점이지만, 자잘한 걱정거리가 계속 겹치기만 하니 답답하다고 하였다. 두 차례 보내준 서신을 전해서 받아보았고 무척 감사했다고 인사하면서 봄에 날씨가 따뜻해지면 한번 방문해주시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오래 소식이 막혔다가 지난번 만났을 때 편안히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갑작스레 돌아오게 되어 마음이 울적하니 도리어 만나지 않느니만 못한 듯하다고 소회를 적으며 편지를 마무리하였다. 면례는 무덤을 옮겨 다시 장례를 지내는 일로, 곧 이장(移葬)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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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술년 곽화준(郭和準)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郭和準 李生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갑술년 곽화준(郭和準)이 이생원(李生員)에게 장마와 가뭄 피해에 대해 묻고 안부를 전하는 내용의 간찰 갑술년 6월 24일에 곽화준(郭和準)이 사돈인 이생원(李生員)에게 보낸 간찰이다. 서신이 끊기고 소식이 막혔던 것은 자신도 서신을 보내지 않고 상대방도 보내지 않아서이니 서로 피장파장인데, 엊그제 사위가 와서 그 편에 사돈댁의 그간의 소식을 알게 되어 매우 기뻤다고 인사하였다. 장마 비가 잠깐 걷혔는데 사돈의 생활은 모두 좋은지, 아드님도 잘 지내며 대소 식구들도 모두 평안한지 물었다. 자신은 형제가 서로 의지하면서 지내고 있고 다른 식구들도 큰 탈 없이 지내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근황을 전하였다. 다만 올해 장마와 가뭄이 전에 없이 이상해서 가물지 않으면 오래 비가 내려 재해가 심한데 상대방이 사는 지역은 어떠한지 물었다. 피봉의 주소가 이생원은 청도의 오봉리, 곽화준은 밀양의 가인리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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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진년 김석례(金錫禮) 간찰(簡札)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錫禮 妹兄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529 갑진년에 김석례(金錫禮)가 옥계(玉溪)의 매형에게 안부를 묻고 서원 원장의 병세와 봄 향사 때 행공(行公)하겠다는 등의 소식을 전하는 간찰 갑진년 8월 27일에 김석례(金錫禮)가 옥계(玉溪)의 매형에게 보낸 간찰이다. 서원 인편을 통해 보내준 서신을 받고 그동안 생활이 편안하시고 누이와 아이들도 무탈함을 알게 되어 무척 위로가 된다고 인사하였다. 자신은 줄곧 일하면서 지내느라 말씀드릴만한 일은 없고 대소가에 큰 걱정거리가 없는 것이 다행이라고 하였다. 원장(院長)의 학질증세가 오래 낫지 않아 걱정이라고 하였고, 가을 향사(享祀) 때 가서 참여하지 못했지만 봄 향사 때에는 실무를 수행하겠다는 뜻을 예전에 여러 차례 상의했던 것은 원비(院費) 때문이라고 하면서 상대방이 말한 것도 이와 같으므로 일이 매우 편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성부(聖夫) 형에게는 바빠서 따로 편지를 쓰지 못하니 이 편지를 보여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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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년 김석의(金錫義)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錫義 妹兄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541 정해년에 김석의(金錫義)가 옥계(玉溪)의 매형에게 누이가 남자아이를 순산했다는 소식을 전하는 내용의 간찰 정해년 6월 18일에 김석의(金錫義)가 옥계(玉溪)의 매형에게 보낸 간찰이다. 여름 석 달이 다 지나가는데도 더위가 심한 요즘 매형의 생활은 편안하시고 식구들 모두 잘 지내고 있는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들은 각기 목숨과 천한 모습을 보전하고 있다고 하고, 누이가 이번 달 6일 새벽닭이 세 번 울 때에 남자아이를 순산했고 별다른 증상이 없어 매우 다행이며, 곧바로 심부름꾼을 보내 알리려고 했는데 가뭄과 더위가 이와 같아 지금에서야 보내게 되었다고 소식을 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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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진년 유수진(柳秀晉) 혼서(婚書) 고문서-서간통고류-혼서 柳秀晉 郭生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갑진년 11월 1일에 신랑측인 유수진이 신부측 곽생원댁에 보낸 혼서 갑진년 11월 1일에 신랑측인 유수진(柳秀晉)이 신부측 곽생원댁에 보낸 혼서이다. 유수진은 자신의 딸의 혼사를 진행하고 있다. 주요내용은 성단(星單)을 적어 보내니 연길(涓吉)을 알려달라는 내용이다. 성단은 사주단자로 신랑의 생년월일시를 말한다. 신부집에서 허혼편지나 전갈이 오면 신랑집에서는 신랑의 사주와 정식으로 결혼을 신청하는 납채문을 써서 홍색 보자기에 싸 보낸다. 신부집에서는 사주단자를 받으면, 신랑 신부의 운세를 가늠해보고 혼례날짜를 택하여 신랑측에 통지하는데 이를 연길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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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2년 공명첩(空名帖) 3 고문서-교령류-공명첩 高宗 施命之寶(10.0×10.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144 1892년(고종 29) 10월에 임금이 아무개를 통정대부 병조참의에 추증하는 공명첩 1892년(고종 29) 10월에 임금이 아무개를 통정대부 병조참의(兵曹參議)에 추증(追贈)하는 공명첩(空名帖)이다. 발급 연호에 찍혀있는 '시명지보(施命之寶)' 위에 휘지(諱紙)가 부착되어 있으며, 좌방(左傍)에 추증 사유가 기재되어 있어 통정대부 행돈녕부 도정에 임명된 증손자로 인하여 그의 증조부를 법전에 따라 추증한 공명첩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규행(李圭行)의 증조부 이인열의 추증교지인 소장자료 '1892년 이인열(李仁烈) 추증교지(追贈敎旨)'와 연관되어 있으며, 추증내용과 발급 연월도 서로 동일하다. 그러나 이인열의 추증교지에는 추증 사유가 방서(傍書)되어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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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2년 공명첩(空名帖) 4 고문서-교령류-공명첩 高宗 施命之寶(10.0×10.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144 1892년(고종 29) 10월에 임금이 유인 아무개를 정부인으로 추증하는 공명첩 1892년(고종 29) 10월에 임금이 유인(孺人) 아무개를 정부인(貞夫人)으로 추증하는 공명첩(空名帖)이다. 유인은 정·종9품관의 부인에게 내리는 작호(爵號)이다. 발급 연호에 찍혀있는 '시명지보(施命之寶)' 위에 휘지(諱紙)가 부착되어 있으며, 좌방(左傍)에 추증 사유가 기재되어 있어 통정대부 행돈녕부 도정에 임명된 아들로 인하여 법전에 따라 그의 어머니를 추증한 공명첩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규행(李圭行) 어머니의 추증교지인 소장자료 '1892년 서씨(徐氏) 추증교지(追贈敎旨)'와 연관되어 있으며, 추증내용과 발급 연월도 서로 동일하다. 단 서씨의 추증교지에는 '법전에 의해 남편의 직(職)에 따라 봉작한다'는 추증 사유가 방서(傍書)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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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7년 최동룡(崔東龍)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1807 谷城縣監 崔東龍 谷城縣監<着押> 周挾無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186 1807년에 곡성현 석곡면에 사는 호주 최동룡이 주소와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 등을 기록한 호구단자를 관에 제출하여 확인을 마치고 돌려받은 준호구 1807년(순조 7)에 곡성현 석곡면에 사는 호주 최동룡이 주소와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 등을 기록한 호구단자를 관에 제출하여 확인을 마치고 돌려받은 준호구이다. 최동룡의 거주지 주소는 곡성현(谷城縣) 석곡면(石谷面) 운와리(雲臥里) 2통 3호이다. 그는 양인(良人)이고 올해 나이는 59세 기사생(己巳生)이며,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최동룡의 사조(四祖)는 아버지 학생 귀선(龜善), 할아버지 증가선대부 공조참판 오위도총부 도총관 성남(聲南), 증조(曾祖) 증통정대부 공조참의 석벽(錫壁), 외조(外祖) 학생 오태위(吳泰位) 본관은 동복(同福)이다. 최동룡의 아내 황씨(黃氏)는 나이 60세 무진생(戊辰生)이며, 본관은 장수(長水)이다. 황씨의 사조는 아버지 학생 경하(慶河), 할아버지 가선대부(嘉善大夫) 진상(進相), 증조 가선대부 서(叙), 외조 학생 김노적(金老迪)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이외 가족으로 아들 덕련(德連)이 있으며, 그의 나이는 19세 기유생(己酉生)이다. 이 문서에 '호구단자(戶口單子)'라고 적혀 있고 호구단자의 기재형식인 열서(列書)로 되어 있으나 곡성현 관인(官印)과 주협무개인(周挾無改印) 및 곡성 현감의 서압(署押)이 찍혀있다. 이는 제출한 호구단자를 구호적(舊戶籍)과 대조 확인을 마친 뒤에 최동룡에게 다시 돌려준 것이므로 준호구로 분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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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봉산정사(鳳山精舍) 서간(書簡)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鳳山精舍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5년 1월, 스승님 장사를 지낸 다음날에 봉산정사의 임언재 등 5명이 노진영에게 봉산정사 후원금에 관해 전한 서간. 1935년 1월, 스승님 장사를 지낸 다음날에 봉상정사(鳳山精舍)의 임언재(任漹宰) 등 5명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봉산정사(鳳山精舍) 후원금에 관해 전한 서간이다. 여기서 스승님은 고광선(高光善, 1855~1934)을 말한다. 지난번의 공부하다가 갑자기 이별하게 되어 슬펐다는 인사로 편지를 시작했다. 당후(堂候)가 안녕하신지 안부를 묻고 본론을 이야기 했다. 편지의 본론은 이번에 우리 선생님의 장례를 다행히 여러 분들이 스승을 존경하고 정성(精誠)을 다한 덕분에 잘 치렀다고 인사한 후 장례비용으로 부족하여 빌려준 돈들에 대해 언급하였다. 이번 장례비용은 우리 문도들이 제공한 것으로 부족한 액 300여 엔을 마련하기 위해 각자 돈을 50엔에서 70엔에 이르기까지 빌렸다며 이것을 설명하고 귀 문중에서 빌려온 돈 70엔을 양해해 달라는 내용이다. 장례를 치른 다음날짜로 편지를 썼으며 편지의 발신인은 인언재(任漹宰), 이재춘(李載春), 유병구(劉秉龜), 나종우(羅鍾宇), 윤경혁(尹璟赫) 5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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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승현(盧承鉉)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盧承鉉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365 11월 18일, 종생 노승현이 노진영에게 노진영 자손의 학교 수속 문제로 보낸 서간. 11월 18일, 종생(宗生) 노승현(盧承鉉)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노진영 자손의 학교 수속 문제로 보낸 서간이다. 경성공립공업전수학교(京城公立工業專修學校)가 찍힌 세로줄 인찰지 1장을 이용하여 펜으로 작성하였다. 노진영의 안부를 물은 후 자신은 11월 1일부터 무사 통근 중이라고 했다. 경성공립공업전수학교에서 근무하는 것으로 보인다. 주요 내용은 동봉하여 보낸 성적기입표에 기록을 하여 지섭(地燮) 편에 보내어 담임선생께 전하도록 해 달라고 하였다. 성적기입은 형식적으로 사무에만 사용하는 것이니 담임인 송(宋) 선생께 극비리로 취급해 달라고 특별해 두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광주(光州)에 있는 학교에 가서 중5학년 성적을 기입해 달라고 부탁하여 일자 내로 도착되도록 해 달라고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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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拜復)▣▣(尊体)萬康하시며 營事에 奔走하시옵지요. 遠外에서 想像하며 仰祝하옵나이다. 宗生은 無事히十一月一日부터 通勤中이오니 大幸千萬耳.就拜告, 同封中 成績記入表에 記入하여 가지고地燮便에 付送하시와 擔任宋先生께 傳하도록 하시압.成績記入은 形式的으로 事務■(만)〔오〕에만 手續하고 極秘裏에 宋先生에게 特別付託하엿슴니다. 安心하시고光州尊敎에 가셔셔 中五學年 成績記入하여 주도록交涉하시여 期日內에 到着爲計하시압.宋先生과는 約束한배 有하오니 絶對安心을 仰望. 餘不備, 申書.十一月十八日, 承鉉 拜上.盧軫永 氏 侍史.○ 관련 문서1939년 안병현(安秉鉉) 서간(書簡)1939년 노진영(盧軫永) 서간(書簡)1939년 노진영(盧軫永) 간찰별지(簡札別紙)_우편물수령증(郵便物受領證)1939년 노진영(盧軫永) 통상위체금수령증서(通常爲替金受領證書)1939년 노승현(盧承鉉) 서간(書簡)1940년 노승현(盧承鉉) 서간(書簡) 11940년 노승현(盧承鉉) 서간(書簡)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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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봉산정사(鳳山精舍)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鳳山精舍 盧軫永 鳳山精舍(흑색, 4.5×4.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41년 3월 23일, 봉산정사의 고선주 등 3인이 노진영에게 봉산정사의 재실 중수문제로 의논하기 위해 4월 5일에 왕림해 줄 것을 청한 서간. 1941년 3월 23일, 봉산정사(鳳山精舍)의 고선주(高善柱) 등 3인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봉산정사의 재실 중수문제로 의논하기 위해 4월 5일에 왕림해 줄 것을 청한 서간이다. 간단히 상대의 상중 안부를 물은 후 본론을 시작했다. 봉산(鳳山)의 지붕을 묶고, 재실을 중수하는 일에 대하여 이미 하기로 결정한 일인데, 까닭 없이 미루어서는 안된다며 작년 9월에 한번 모였으나 일을 진해하기 어려웠고, 음력 4월 보름 내에 다시 모이기로 했다며 정확히 4월 5일에 봉산(鳳山)에 왕림해 주시어 일을 진행할 수 있게 해 달라는 내용이다. 작성년 부분에 '봉산정사(鳳山精舍)'라는 도장을 붉은색 인주로 찍었고, 발신자로 고선주(高善柱), 유병구(劉秉龜), 윤경혁(尹璟赫) 3인의 이름을 적었다. 추신에는 만약 비가 오면 15일로 연기한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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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곤(辛載坤)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辛載坤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615 편지를 받은 당일에 모평에 살고 있는 신재곤이 어버이 상중인 옥산의 이 모씨에게 자신이 몹시 가난하지만 약속한 대로 이십 수량을 상대방이 보낸 심부름꾼에게 부친다는 내용 등을 전한 답장 편지를 받은 당일에 모평(茅坪)에 살고 있는 신재곤이 어버이 상중인 옥산(玉山)의 이 모씨에게 자신이 몹시 가난하지만 약속한 대로 이십 수량을 상대방이 보낸 심부름꾼에게 부친다는 내용 등을 전한 답장이다. 상대방이 보낸 심부름꾼을 통해 편지를 받고 매우 감사했다는 내용, 상대방 맏형의 조섭하는 안부가 아직 완쾌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매우 염려된다는 내용, 편부모를 모시며 상중인 상대방의 생활과 여러 식구들의 안부가 모두 평안하다고 하니 매우 위로되고 그립다는 내용, 자신은 한결같이 혼란스러워 드릴 말씀이 없다는 내용, 약속한 일은 자신이 비록 몹시 가난하지만 상대방이 말한 대로 이십 수량을 보낸다는 내용, 김 노인에게 편지를 써야 하지만 상대방이 그동안 김 노인과 왕래하였다면 어찌 허술하게 할 단서가 있겠느냐며 오로지 상대방만을 믿는다는 내용 등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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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簡札)伏請比寒調節快復常和否仰慮之極 阻耿尤勤也 有一近邑士人來 傳兄家近出無前駭機 此果○兄老妄而然乎 抑或失眞而然歟 ○令咸平日 設或有悖義不順之擧 誘之責之 圖所以雍和之方 卽叔侄間常情也 正理也 而況○咸氏所執之義 非惟○兄家之得其正也 抑亦士友之所共許者 而○兄獨執拗 轉生葛藤 畢竟至於難言之境 此何故也 傳此說者苟非○兄家 則必不▣(言)▣ ▣▣亦非○老兄 則必不欲直說而聞來驚怪 有此云云 大抵叔侄之間 若辨其孰是孰非 彼直此曲 則反▣▣彼人之道 而○兄亦大家之人也 朝暮之年也 何可自我手毁其家 而甘受人侮耶遂事勿說 ○覽此▣…▣〈背面〉招○咸氏 自引其咎▣▣以後 互相悅豫以過 則彼豈有矛盾圭角之理哉 苟或不然 則○兄之身後 年少後進輩 皆染於○兄之悖擧 而恐難免先正門中一大罪人 以○兄博識 何不念及於此耶 庶可諒燭 而不我深誅也 弟病日益深 百爲無心 而兄若一顧 可攄者 不啻山積而已 餘萬燭下眼昏姑此不備 上癸十念二 病弟 李憲▣ 拜(皮封)謹拜謝上 登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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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년 박이충(朴以忠)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朴以忠 康津縣監 <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82년에 康津縣監이 鰥夫 幼學 朴以忠(54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1882년에 康津縣監이 鰥夫 幼學 朴以忠(54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父 學生 信益 祖 學生 碓俊 曾祖 學生 師正 外祖 學生 金子雲 *주소: 古郡內面 朴東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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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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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882년 박재빈(朴載彬)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朴載彬 康津縣監 <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82년에 康津縣監이 幼學 朴載彬(54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1882년에 康津縣監이 幼學 朴載彬(54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父 學生 千益 祖 學生 碓俊 曾祖 學生 師正 外祖 學生 金龍郁 *주소: 古郡內面 朴東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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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무성서원유림도회소(武城書院儒林道會所) 망기(望記) 고문서-첩관통보류-망기 茂城書院儒林道會所 李鍾聲 茂城書院 2顆(흑색, 직방형, 7×4.8)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161 1929년 11월에 무성서원의 유림도회소에서 유학 이종성을 본원의 도내집강 후보로 추천한 문서 1924년 11월에 무성서원의 유림도회소(儒林道會所)에서 강진군 작천면(鵲川面) 내기리(內基里)에 사는 유학 이종성(李鍾聲)을 무성서원의 도내집강(道內執綱) 후보로 추천한 문서이다. 발급날짜에 '유회소인(儒會所印)' 묵인(墨印)이 찍혀있다. 직임인 '집강'과 문서의 발급날짜 위에 '무성서원(武城書院)' 묵인(墨印)이 찍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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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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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임진년 안문환(安文煥)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安文煥 査兄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임진년 8월 13일에 임고에 있는 안문환이 가인에 살고 있는 사돈에게 안부와 함께 명절 선물에 대한 감사 인사 등을 전한 답장 임진년 8월 13일에 임고(臨皐)에 있는 안문환이 가인(佳仁)에 살고 있는 사돈에게 안부와 함께 명절 선물에 대한 감사 인사 등을 전한 답장이다. 새로 혼인을 맺은 관계에서 소식이 끊긴 서운함이 곱절로 사무치는데 하물며 푸른 갈대에 흰 이슬이 내리는 가을이니 오죽하겠느냐는 내용, 심부름꾼이 와서 받은 상대방의 편지는 막힌 회포에 위로되기 충분하고, 보내준 음식은 온 식구들의 입을 배불리기 충분하니 매우 감사하고 기쁘다는 내용, 보낸 편지를 통해 한가위에 사돈 어른과 형제분들 그리고 사돈과 가족들의 안부가 편안하다는 것을 알게 됐으며, 며늘아기의 근래 상황은 비록 편지에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상대방의 보살핌을 받고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내용, 어버이 상 중인 자신은 요즘에는 계절의 감회와 미치지 못하는 비통함을 견디기 어렵다는 내용, 흉년에 보내 준 명절 선물에 대한 감사 인사와 빈 그릇으로 다시 보내 매우 부끄럽다는 내용 등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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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簡札)日長如少年 政是吾儒做業之辰也 謹詢此際堂上鼎茵 神佑康泰 侍中棣履 一衛崇寧 區區慰祝 聞以雇奴見闕 躬執來鋤 夙夜靡懈云 此乃吾們活生涯也 尤庸健艶 大堯之黝瘦 神禹之胼胝 周公之旡逸 是皆聖人之代天理物 至誠無息 與太和元炁 同其流行 此乃天理在吾 吾不得不然者也 如吾蠢蠢者視聖人 不啻鳳鷟之蠛蠓耳 雖千吾齡而萬吾力猶恐不逮其萬一 況偸逸肆妄 餒其炁而死其心 自陷於暴棄之科乎 故曰 人勞則思 思則善心生 逸則淫 淫則忘善 沃土之民 不材 淫也 瘠土之民 莫不嚮義 勞也 敬姜此言 實千古閨房之冠冕也座右之服勤習勞 其亦有服於斯訓也歟尊先祖考滴翠公手墨朱子語二十四字 示警者至矣 夫大而天下之存亡 小而一身之得失 何莫不由一■(身)〔心〕之操舍哉 試將斯訓 以觀今日變怪 可謂有先見之智矣 窃有所傷感者 叵耐五神之抑欝而噴薄爲一語 以控之○覧之酬應 怡渙于○雅衷也 中暑呌囈 去閻府才一髮間耳 然篤保斯心 守死善道毋負四大生成之重 此乃蓋棺前 心切切也苟非同志 安能吹吷乃爾乎哉 餘不備戊申七夕 老弟 安曅 二拜陽叔兄所遭 不勝悼䀌 而中阜老少候 大都平安否(皮封)萬吾 侍棣史 敬展凡儂候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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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정해년 석준(錫駿)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錫駿 西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정해년 5월 20일에 농화 석준이 서강에 상대방이 힘을 다해 그 읍에서 먼저 주선하여 기어이 일을 끝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권유하며 자신들의 몇 백 년 동안 묵은 빚을 상대방이 쾌하게 마치길 바란다는 내용 등을 전한 답장 정해년 5월 20일에 농화(弄花) 석준이 서강(西岡)에 상대방이 힘을 다해 그 읍에서 먼저 주선하여 기어이 일을 끝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권유하며 자신들의 몇 백 년 동안 묵은 빚을 상대방이 쾌하게 마치길 바란다는 내용 등을 전한 답장이다. 성 모퉁이에서의 이별로 지금까지 서운하였는데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상대방의 편지를 받고서 어버이를 모시며 사는 형제분들의 안부가 편안하다는 것을 알고 매우 위로되었다는 내용, 자신은 늙은 어버이의 근력이 늘 편찮은 곳이 많아 헤아릴 수 없이 애가 타고 근심스럽다는 내용, 상의한 일은 자신이 애쓰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인심이 내 마음 같지 않으니 어찌하겠느냐는 내용, 근처 여러 논의는 모두 추후에 상계(上計)하여 앞에서 주장하는 것이 어떤지를 살펴보아야 하니 상대방이 반드시 온 힘을 다해 상대방의 읍에서 먼저 주선하여 기어이 일을 끝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내용, 우리들의 몇 백 년 동안 묵은 빚을 상대방이 상쾌하게 마친다면 어찌 다행스럽지 않겠느냐며 오직 상대방이 천만 정중하길 바란다는 내용 등을 담았다. 신(辛) 씨 어른은 평안한지 안부를 묻고, 안부편지를 쓰지 못하였으니 만약 군(君)을 만날 길이 있다면 자신의 이런 한스러운 마음을 전해줄 것을 부탁하는 내용을 추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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