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8년 박재빈(朴載彬) 호적표(戶籍表)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郡守 朴載彬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8년(광무 2) 전라남도 강진군수 신성휴가 작성한 강진군 고군내면 약산리 4통 3호에 거주한 유학 밀양 박재빈의 70세 당시 호적표. 1898년(광무 2) 전라남도 강진군 고군내면(故郡內面) 약산리(樂山里)에 거주하는 유학(幼學) 밀양 박재빈(朴載彬)의 70세 당시 호적표(戶籍表)이다. 호적표는 1896년(건양 1)에 조선왕조의 구호적과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작성하게 된 대한 제국의 호적부 양식으로 광무 연간 직전부터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광무연간에 주로 시행되었으므로 광무호적이라고 한다. 한 호에 한 장의 '호적표'를 작성하여 그것을 지역단위로 묶어서 책자로 편철하였다. 본 문서는 그 중 일부인 전남 강진군 고군내면 약산리 제4통 제3호에 거주했던 박재빈(본관 밀양)의 70세 당시 호적표이다. 그의 직업은 유업(儒業)이다. 생부, 조, 증조, 외조의 란에 기록이 되어 있으며 동거친속으로는 처 김씨, 아들 장현(章鉉), 그의 부인 김씨, 손자 윤원(潤瑗)과 그의 부인 김씨, 차손 윤통(潤統)과 윤성(潤成), 윤옥(潤玉)과 딸 1명(이름이 기재되지 않음)이 기재되어 있다. 고용하고 있던 사람으로는 남자 1명이 있었기에 총 인구가 남7, 여4, 합계 11로 기재되어 있다. 살고 있던 집은 자신의 소유 초가 3칸과, 빌린 초가 5칸으로 총 초가 8칸을 소유하고 있었다. 마지막줄에는 광무 2년 2월에 군수 신성휴(申性休)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다. 寄口: 男 口 女 口 雇傭: 男1口 女 口 現存人口: 男七口 女四口, 共合: 十一口 家宅 : 己有 瓦 間 草 三間, 借有 瓦 間 草五間, 共合: 八間 光武二年二月 日 郡守 申性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