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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경【중순】에게 보냄 與朴致敬【重淳】 동시대 이웃 고을에 살면서 죽음을 앞둔 노년에 이르러서야 처음 대면하게 되었으니, 이러한 인연을 이어가지 않으면 또 다시 볼 날이 있겠습니까. 다만 편지로 안부를 물으며 계속해서 끊이지 않게 하는 것 또한 직접 만나는 것에 버금갈 수 있을 것이니, 가슴 가득 위로되고 감사한 마음 이를 데 없습니다. 겨울철 존체(尊體)의 동정은 시절에 따라 편안하십니까. 현윤(賢胤 상대방의 아들)이 자제를 데리고 도내 덕이 있는 선생을 두루 찾아다닌 지 그간 몇 달이었는데 별 탈 없이 저를 찾아왔으니, 기쁘고 기쁜 일입니다. 내일쯤 필시 산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가정에서는 애타게 기다리는 마음이 풀리고 밖에 나간 사람은 돌아와서 인사하는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 할아버지와 아들, 손자 3대가 단란하게 모여 기뻐하는 그 즐거움이 상상이 됩니다. 손자께서 원유(遠遊)하고 돌아갈 것이니, 그 견문과 지취가 배로 활짝 열렸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부디 잘 이끌어 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倂世隣壤。至桑楡殘景。而乃始面焉。未可繼此而更有再面之日耶。但往復問聞。續續不絶。亦可爲對面之亞也。滿心慰感。不容名喩。未審冬令尊體動靜。對時寧謐。賢胤帶其子弟。遊歷乎域內長德之門。首尾數朔。而無恙過我。喜事喜事。明日間。想必還山矣。在家而弛倚閭之勞。在外而供反面之歡。祖子孫三世團聚怡悅。其樂可想。令抱遠遊而還。其見聞意趣。想一倍開豁矣。須十分提誘。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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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형삼【자현】에게 답함 答尹亨三【滋鉉】 인사하고 돌아온 지 오래지 않아 은혜로운 편지를 받고서 형의 체후가 만중함을 알았으니, 실로 우러러 축하하는 마음에 맞았습니다. 보내 주신 편지에서 운운한 것은 좁은 견해로 어찌 감히 함부로 대답하겠습니까. 하지만 강마(講磨)한 것에 대해 또 질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은(隱)은 어두운 곳이고, 미(微)는 작은 일입니다. 이미 작은 일이니 심술의 기미를 이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기(氣)로써 도를 밝힌 것은 또한 유래가 있습니다. 대개 이(理)는 형적(形迹)이 없어 헤아리기 어려운 점이 있으므로 반드시 형기(形器)의 측면에서 봐야 합니다. 이 때문에 선덕(先德)이 "오행은 태극의 체단이다.[五行 太極之體段]"라고 하였고, 또 "성인이 성을 논한 것은 마음으로 인하여 발하지 않는 것이 없다.[聖人論性 無不因心而發]"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다면 이른바 기로써 도를 밝힌다는 말은 실로 해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혹 주기론(主氣論)으로 귀결되어, 이가 기속에 내재되어 있음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기로써 도를 밝힌다고 해도 무방하지만 그냥 기로써 도를 밝힌다고 한다면 이는 주기론이 되어 도라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공허한 개념이 된다는 말인 듯합니다.) 이른바 도라는 것이 또 무슨 일이겠습니까. 기가 하는 바를 모두 도라고 이르는 것은 불가함이 필연적인 것입니다. 이 때문에 지난번에 제가 말한 것이 분명하지 않았던 것이니, 여기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을 듯합니다. 辭歸未久。承惠緘。仍審兄體衛重。實協頂祝。示喩云云。以若謏見。何敢妄對。而講磨之地。又不可無質疑也。隱暗處也。微細事也。旣是細事。則非心術幾微之謂耶。以氣明道亦有來歷。蓋理無形影。有難測度。故必於形器上見之。是故先德有言曰。五行太極之體段。又曰。聖人論性。無不因心而發。如此則所謂以氣明道之語。固無害矣。不然則或歸於主氣之科。而所謂道者。又是何事耶。氣之所爲。皆謂之道。則其不可也必矣。是以向日鄙所云未瑩。恐爲此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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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한서【우진】에게 답함 答洪漢瑞【祐震】 8일에 만나서 정담을 나누리라고 기대했는데 사증(士拯) 편에 편지만 받았을 뿐이라서 허전하고 서글픈 마음을 말할 수 없었습니다. 종이 폭 가득한 자세한 말씀 읽어보니 사람으로 하여금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게 합니다. 봉장(鳳丈)께서 피와 땀을 바쳐 가업을 계승했건만 그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고 홀연히 돌아가셨습니다. 높은 곳에 올라 상상하자니 오직 계산(溪山)의 광풍제월(光風霽月 뛰어난 인품의 비유)이 사람을 끝없이 창망하게 만듭니다. 오랜 벗조차도 이러하니 하물며 가문의 자제들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비록 그렇다고 하더라도 문정(門庭)이 공허하지 않고 가업이 전해졌으며 한 가문 안에 문학(文學)과 예교(禮敎)를 익힌 자손이 성대하게 일어났습니다. 이 어른의 영령이 저 아득한 세상에서 스스로 위안을 얻을 뿐만 아니라 향당(鄕黨)의 사우(士友)들 또한 훗날의 복록이 다하지 않았음을 축하하지 않은 이가 없습니다. 여러모로 힘을 쓰고 조심하고 신칙하여 소망을 저버리지 말게 하기를 바랍니다. "만 장(丈) 높이 빛을 발한다."는 말은 매우 제목에 들어맞지 않습니다. 돌아보건대 이 어리석은 사람이 현사우(賢士友)들이 너그럽게 포용하는 은혜를 입어 감히 종종걸음으로 연석(宴席)에 나아갔지만, 항상 이름난 정자를 더럽혔다는 두려움을 지닌 지 오래였습니다. 그렇다면 일부러 이 말을 하여 두렵고 불안한 마음을 풀어주려는 노형(老兄)의 뜻이 아니었겠습니까. 初八日準擬握穩。士拯便。只有書而止。歉悵不可言。滿幅縷縷。讀之令人涕淚涔涔。鳳丈血力肯搆。未享其樂。而奄然逝去。登臨想象。惟是溪山風月。令人有不盡之悵。知舊猶然。況其爲門子弟乎。雖然門庭不空。算裘有傳。而一門之內。文學詩禮。蔚然與作。不惟此丈之靈。有以自慰於冥冥之中。而鄕黨士友。亦莫不賀其後祿之未艾也。幸惟周旋警勅。使之勿孤顒望也。光聳萬丈之語。太不着題。顧此癡獃蒙賢士友含容之惠。敢有趨走於樽俎之末。而常以塵穢名亭爲懼者。久矣。然則無乃老兄故爲此語。以解人恐懼不安底意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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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여정에게 보냄 與梁汝正 보내주신 선대의 행장은 망령되이 제 생각대로 대략 정리하였습니다. 분수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형의 말씀을 어기기 어려워 이렇게 하였습니다. 약간의 곡절은 살펴보면 자세히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간독(簡牘)의 서문(序文)은 또 제 생각대로 감히 한 통(通)을 찬술했는데 저를 멀리하지 않는 뜻에 감격하여 이렇게 옳지 않은 주장을 하였습니다만, 부디 사용하지 않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대체로 내 벗께서는 선세(先世) 수백 년 동안 겨를이 없던 일을 힘을 다해서 두루 찾고 깊이 숨겨진 사실을 드러내어 밝혀낸 것이 이러한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하루라도 늦추어 곧 사라지도록 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눈앞에 놓인 사실 및 자신과 집안에 관련된 사항이라면 응당 임시로 시렁에 묶어두었다가 학문이 더욱 진보하기를 기다린 다음에 하더라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옛날의 대현(大賢)들, 예를 들어 정자(程子)나 주자(朱子) 등 여러 선생은 입언 정론(立言定論)이 만년에 많이 이루어졌습니다. 대체로 사람들이 초년에는 소견이 간혹 정밀하거나 명확하지 못하니 성급하게 스스로 입론(立論)하고 스스로 정론으로 여긴다면 자신에게도 크게 발전하는 의미가 없을 뿐만 아니라 전해지는 말도 그저 후인에게 조롱거리만 제공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願示先狀。妄以鄙意略有澄裁。雖知僭越。而重違兄數。故如此。多少曲折。考可詳悉矣。簡牘序。又以鄙意敢述一通。而感不遐之意。爲此不韙之說。愼勿入用如何。大抵吾友。於先世數百年未遑之擧。極力周章。闡幽揚溯。至於如此。此固不可一日遲緩就泯然故也。若其目前事實及係身家者。則當權行倚閣。以待學問益進然後爲之。未晩也。古之大賢如程朱諸先生。其立言定論。多在晩年。蓋人之初年。所見未或精明。而遽自立說。自以爲定。則不惟在我少長進之意。而言語所傳。適足以貽譏後人矣。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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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옥견에게 답함 答李玉見 보내신 편지에 "번잡하고 어지러운 일은 어느 곳에나 다 있다."라는 말씀은 참으로 격언(格言)입니다. 마음이 안정되고 고요하다【定靜】34)면 어지러운 도회지에서도 저절로 여유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궁벽한 산에 홀로 앉아서 입정(入定)에 든 승려와 같더라도 어수선함을 견디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이른바 안정되고 고요함이라는 것을 어떻게 공부하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잘 헤아려야 할 부분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세상 구경은 이미 지나간 일에 속하니 뒤미쳐 언급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인사(人事)를 닦아 천명(天命)을 기다린다는 것은 다른 때에나 하는 말이지 지금 상황에 들어맞는 말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내면에 있는 것을 추구할 뿐 외부에서 구하지 않고 자기에게 있는 것을 추구할 뿐 남에게서 추구하지 않는 것이 어찌 인사를 닦아 천명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한겨울에 꽃을 찾고 그믐날에 달을 기다리듯 하면서 이것을 수인대천(修人待天)이라고 이른다면 잘못입니다. 示中煩擾無處無之。此眞格言也。心苟定靜雖城市撓攘中。自有餘地。不然雖獨坐窮山。如入定僧樣。不勝其撓撓矣。然則其所謂定靜者。若何而用功哉。此正恰有商量處。如何。觀光一事。已屬過境。不須追提。然修人待天。此是別時說。非目下着題語也。然則求其在內者。而不求於外。求其在己者。而不求於人。亦豈不是修人待天乎。若索花於冬。待月於晦。而謂之修人待天則左矣。 안정되고 고요하다【定靜】 《대학장구(大學章句)》에 "그칠 데를 안 뒤에 정함이 있으니, 정한 뒤에 고요할 수 있고, 고요한 뒤에 편안할 수 있고, 편안한 뒤에 생각할 수 있고, 생각한 뒤에 얻을 수 있다.【知止而后有定, 定而后能靜, 靜而后能安, 安而后能慮, 慮而后能得.】"라고 하였는데, 주자의 주에 "지(止)는 마땅히 그쳐야 할 곳이니 바로 지선(至善)이 있는 곳이다. 이것을 안다면 뜻이 정(定)한 방향이 있을 것이다. 정(靜)은 마음이 망녕되이 동(動)하지 않음을 이르고, 안(安)은 처한 바에 편안함을 이르고, 려(慮)는 일을 처리하기를 정밀하고 상세히 함을 이르고, 득(得)은 그 그칠 바를 얻음을 이른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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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운여【계룡】116)에게 답함 答魏雲汝【啓龍】 소식을 전하는 길이 막혀 연락할 수 없었는데, 오늘의 이 편지는 정말 뜻밖이었습니다. 편지를 받고 놀라서 이 세상에 없는 안약【空靑】117)을 얻은 듯 눈이 떠졌습니다. 편지를 통해서 부모님을 모시면서 지내는 체후가 건강하고 평안한 줄 알았으니, 얼마나 듣기를 바랐던 말이겠습니까? 농사짓는 일이 힘들고 괴로운 것이 올해보다 심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늘이 실로 그렇게 했으니, 누구를 원망하고 탓하겠습니까? 다만 한결같이 처분을 따를 뿐입니다. 선대의 업을 이어 집안의 일을 잘 다스리는 것도, 역시 학문 중의 큰일입니다. 다만 일에 따라 이치에 순응해서, 고인이 '의리를 집적하라.【集義】'라고 말한 것에 부끄럽지 않은 것을 아름다운 일로 여길 뿐이니, 어찌 반드시 그 외의 일을 다 물리치고, 날마다 소리 내어 글만 읽는 것을 학문이라고 하겠습니까? 쾌활하지 않은 곳에 들어가서 쾌활하게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힘을 얻을 써야 할 곳입니다. 이 말은 의미가 있으니,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便路阻隔。今此一書。眞望外也。得之若警。如世外之空靑也。因審省體衛重。何等願聞之至。田事艱辛。未有若今歲之甚。然天實爲之。向誰怨尤。只得一聽處分而已。克家幹蠱。亦是學問中一大事。但隨事順理。無愧於占人集義之云爲佳耳。何必掃却外事。日日咿唔而謂之學矣乎。入於不快活處。做得快活。正是得力處。此言有味。試思之如何。 위운여(魏雲汝) 계룡(啓龍) 1870~1951. 위계룡(魏啓龍)의 자가 운여(雲汝)이다. 안약【空靑】 공청(空靑)은 금동광(金銅鑛)에서 나는 비취색의 광물로 공작석(孔雀石)의 일종이다. '양매청'이라고도 불리며, 맹인에게 효험이 있어 안질 치료제도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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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자경(閔子敬)에게 답함 答閔子敬 지척 사이에서 서로 바라보며 대답을 주고받다가 홀연히 떨어져 지낸 지 지금 몇 달이 지났습니다. 영태(泳台) 편으로 매번 편지를 써서 안부를 묻고자 하였으나 문득 쓸데없는 일에 희롱을 당하여 붓을 잡고 놀리려 하다가 도로 그만둔 적이 많았습니다. 이곳의 여러 벗들은 근래에 가뭄이 와서 대부분 돌아갔습니다. 오직 여주(汝周 홍기창(洪起昌))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을 날마다 마주하고 있을 뿐입니다. 췌학산인(萃鶴山人)은 몸에 병이 들어서 대원산(大元山)에 들어가 약을 먹고 있다가 근래에는 집에 근심이 생겨 내려왔다고 하는데, 근래의 소식은 어떠한지 모르겠습니다만 모름지기 절실히 염려됩니다. 옛날에는 삼년상 중에 제사를 행하는 뜻이 없습니다. 중고(中古) 이래로 시의를 참작하여 장사지내기 전에는 옛날의 예전대로 제사를 폐지하고, 장사지낸 후에는 근친(近親)으로서 복(服)이 가벼운 자가 대행(代行)하였습니다. 만약 복이 가벼운 자가 없다면 곧 상인(喪人)은 패랭이【蔽陽子】와 직령의(直領衣)를 입고 제사를 행하였습니다. 무릇 상중(喪中)에 지내는 제사는 단헌(單獻)에 무축(無祝)78)으로 하며 축문(祝文)의 변통 여부는 논할 바가 아닙니다. 咫尺相望。唯諾可通。而居然阻隔。今幾月矣。泳台便。每欲修書相問。而輒爲冗撓所戲。把筆而還停者多矣。此中諸友近爲旱故所拘。多歸去。惟與汝周諸人。逐日相對耳。華鶴山人以身恙。入大元山服藥。近以家憂下來云。未知近日消息何如。須切關慮。古者三年喪中。無行祭之義。中古以來。裁酌時宜。葬前依古廢祭。葬後以近親服輕者。代行若無輊服者。則喪人以蔽陽子直領衣。行之。凡喪中之祭。單獻無祝。祝文變通與否。非所論也。 단헌(單獻)에 무축(無祝) 술잔을 한 번만 올리고 축문을 읽지 않는 것을 말한다. 거상(居喪) 중에는 4대조까지의 기제(忌祭)나 묘제(墓祭)를 지낼 때 복이 가벼운 자에게 제사를 올리게 하되 단헌무축의 예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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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종현【순묵】에게 드림 與梁宗賢【淳默】 세월이 빠른 말이 달리는 것 같으니, 삼가 생각건대 선부군의 상기가 이미 다하여 길복을 입을 것인데 효심의 개확(慨廓)52)함을 어떻게 견디는가? 몹시도 그리워하는 마음 감당할 수 없네. 의림(義林)은 평소 친밀하게 알고 지내던 처지에 있으면서도 생사 간에 슬퍼하고 위로 했던 것이 단지 한 장의 예장(禮狀)으로 상례에 따라 책임을 면했을 뿐이니, 생각하면 비통한 마음에 인사하지 못하였네. 단지 천한 이 사람은 명이 박하여 늙을수록 더욱 불우한 것이 마치 낚시 바늘에 걸린 물고기와 새장에 갇힌 새와 같아 소소한 동작도 스스로 할 길이 없으니, 이런 사정을 이미 잘 살폈을 것이라 생각되는데 혹 용서하였는지? 사문(師門)에 갑자기 닥친 일은 실로 뜻밖이니, 어찌하겠는가? 도의 흥폐(興廢)는 단지 하늘의 처분에 맡길 뿐이네. 日月如駛。伏惟先府君喪期已盡。巾裳就吉。孝思慨廓。何以堪支。馳溯無任。義林係在平素知密之地。而所以生死哀慰者。只是一紙禮狀。循例塞責而已。撫念悲悼。無以爲謝。只是賤生薄命。老益蹇滯。如掛鉤之鱗。縶籠之翼。小小動作。末由自爲。想已諒燭。而或賜恕下耶。師門橫來之事。實出意外。奈何。道之興廢。只信上蒼處分耳。 개확(慨廓) 상(喪)을 당하여 그 슬픔이 축쇄(縮殺)되어 가는 것을 표현한 말이다. 개(慨)는 소상(小祥)을 당하여 세월이 빠른 것을 탄식하는 마음을 말하고, 확(廓)은 대상(大祥) 때 정의(情意)가 허전한 것을 표현한 말로, 《예기(禮記)》 〈단궁 상(檀弓上)〉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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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옥53) 【규병】에게 답함 答朴仁玉【揆秉】 이미 욕되이 나를 찾아와 주었고 거듭 안부 편지를 보내주어 돌보아주는 마음 알았으니, 감사한 마음 어찌 끝이 있겠는가? 편지를 받은 뒤 해가 바뀌었는데, 모르겠으나 어버이의 체후는 새해를 맞아 아름답고 평안하시며, 밝은 창가 책상에서 남는 힘으로 독서하고 있는가? 이것은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업인데 그대가 행하고 있으니, 풍치를 우러름에 어찌 옷깃을 여미며 감복하는 마음 감당하겠는가? 한마디 지극한 가르침은, 그대는 생각건대 이미 얻은 지 오래 되었을 것이니, 돌아보건대 이 어리석은 사람이 어찌 적임자이겠는가? 아끼기만 하고 도움이 되지 못하니, 단지 이 때문에 매우 부끄럽네. 또 인편이 급하게 출발하여 능히 쌓였던 많은 회포를 펼치지 못했으니, 남겨두고 후편을 기다리는 것을 생각하고 있을 뿐이네. 다시 바라건대 어버이를 모시며 학문하는 것에 더욱 힘써 그대를 향한 나의 마음을 위로해 주게. 旣辱枉顧。荐賜惠問。仰認眷憐。感荷曷極。信後歲改。未審侍省候節。迓新錦安。棐几明窓。餘力讀書。此是人生太上事業。而吾友行之。馳仰風韻。曷勝斂衽一言至誨吾友想已得之久矣。顧此倥倥。豈其人耶。愛莫爲助。只用愧愧。且便發火速。未能展布多少積懷。留竢後便爲計耳。更幾侍學加勉。以慰區區相向之意。 박인옥(朴仁玉) 박규병(朴揆秉, 1864~?)을 발한다. 자는 인옥, 호는 신암(新庵),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전라남도 화순군 신기리(新基里)에 살았다. 정의림과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 1833~1906)의 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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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여정【재경】에게 보냄 與梁汝正【在慶】 삼가 체봉(髢峯)46)의 유묵(遺墨)을 여러 차례 읽어 보았습니다. 문체가 매우 고아하고 문사(文辭)의 함의도 매우 깊으니 과연 고인(古人)의 문장 체제와 격식을 지녔습니다. 저 같은 후생(後生)의 천박한 식견으로는 그 안에서 말끔하게 깎아낼 것이 없으니 모름지기 분류하고 단락별로 나누어 하나하나 기록하여 보존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만희공(晩羲公)47)이 찬술한 서문(序文)48)은 이미 상고할 수 있는 연월이 없으니 몇 대손 모서(某序)라고만 적는 것이 적절할 듯합니다. 체봉이 은봉(隱峯)에게 올린 편지는 귀하게 여겨야 할 고적(古蹟)이니 어찌 없애 버릴 수 있겠습니까. 선양(宣揚) 운운한 것은 저의 천박한 식견을 돌아보자면 어찌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윤색(潤色) 운운한 것은 성의(盛意)를 저버리기 어려워 지우거나 앞뒤를 바꾸었을 따름입니다. 저도 모르게 송연할 뿐입니다. 髢峯遺墨。擎讀數回。其文體甚古。詞義甚邃。信是古人文字體格。以若後生淺見。不可澄刪於其間。須分彙逐段。一一記存如何。晩羲公所述序文。旣無年月可稽。則只書幾代孫某序似宜。髢峯上隱峯書。此是古蹟可貴。豈可刪去也。揄揚云云。顧此淺末。其何致爾也。潤色云云。難孤感意。未免塗抹乙表之爲。不覺悚然耳。 체봉(髢峯) 양지남(梁砥南)의 호이다. 만희공(晩羲公) 만희는 양진영(梁進永, 1788∼1860)의 호이다. 양진영의 자는 경원(景遠)이고, 호는 만희 외에 만희재(晩羲齋), 재원(梓園), 학음(鶴陰) 등이 있다. 문집으로 《만희집(晩羲集)》이 있다. 서문(序文) 《만희집(晩羲集)》 권10에 실려있는 〈체봉선생유고서(髢峯先生遺稿序)〉를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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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옥견【현규】에게 답함 答李玉見【現圭】 헤어진 지 며칠 되지 않아 또 뜻하지 않게 서한이 이르러 감격스러움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서한을 통해 조용히 지내는 안부가 줄곧 편안하심을 알았으니 실로 저의 바람에 부합합니다. 지난번 종산(鍾山)의 회합은 만나기로 한 약속이 어긋나기는 했지만, 나중에 초지(草枝)까지 오셨으니 우리 벗의 정성과 노력이 아니라면 어떻게 그렇게 하였겠습니까. 뒤미처 생각해봐도 마음에 위로가 되고 기쁩니다. 문목(問目)에 운운하신 것은 애산(艾山 정재규(鄭載圭)) 어른께서 이미 충분히 설파하셨습니다. "이(理)는 심(心)에 갖추어지고 성(性)은 기(氣)를 벗어나지 않는다."라는 말은 달리 미진한 것이 없습니다. 우매한 제가 어찌 다른 말로 혹을 붙이겠습니까. 대체로 이(理)를 벗어나면 심(心)이 없고 심을 벗어나면 이가 없습니다. 따라서 이를 말하는 곳에서는 '심(心)' 자를 가지고 풀이합니다. 성(性)에 비추어 보자면 기(氣)가 그 안에 있고 기에 비추어 보자면 성이 그 안에 있으므로 성을 말하는 곳에서는 '기(氣)' 자를 끌어다 채웁니다. 다만 우리 벗께서는 심성(心性)과 이기(理氣)를 둘로 나누어 보기 때문에 이러한 의심이 들 뿐입니다. 잠깐만 인내하면서 생각할 수 있다면 저절로 얼음이 녹듯 의혹이 풀릴 것입니다. 애산께서 또 "이것은 매우 급한 공사(公事)가 아니니 모름지기 알기 쉽고 행하기 쉬운 것에 대해서 먼저 세심하게 힘을 쏟아야 한다."라고 한 것이 또 긴요한 말입니다. 여러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判襼不多日。心畵又出謂外。感不可量。仍審齋居節宣。一直沖茂。實副區區之望。向日鍾山之會。雖違一 握而草枝追到。非吾友誠力。何以及此也。追念慰悅問目云云。艾山丈已十分說破矣。其曰理具於心。性不離氣八字。更無餘蘊。愚何有贅以他語哉。大抵理外無心。心外無理。故言理處。以心字而解之。卽性而氣在其中。卽氣而性在其中。故言性處。引氣字而備之。但吾友以心性理氣。判作兩物看。故有此疑耳。苟能少頃耐思。自當釋然矣。艾山又曰。此非急切公事。須先細心着力於易知易行云者。又爲要切語。幸加三思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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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립에게 보냄 與朴景立 봄이 된 이래로 아직도 한바탕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였으니 어찌 오직 이 몸의 정상(情狀)에 여유가 없어서이겠습니까. 우리 벗의 모든 상황도 또한 넉넉하고 풍족함이 많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1년은 3백일이고 한 번의 삶은 3천 일인데 요약하면 이와 같은 시절이 아님이 없으니, 어찌 일찍이 다른 모습의 평탄한 세상이 따로 존재하겠습니까. 단지 내가 발을 딛고 걸어다니는 것이 어떠한가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아! 저와 같이 어리석은 자는 시기를 잃고 경계도 넘었으니 이미 할 말이 없습니다. 오직 도움이 되지 않는 슬픔과 미칠 수 없는 안타까움이 때때로 사람을 괴롭게 하여 스스로 견딜 수 없을 뿐입니다. 오직 경립(景立)은 천만번 더 생각하여 돌아가신 아버님의 간절한 끝없는 뜻이 허공에서 허무한 곳37)으로 떨어지는 데 이르지 않도록 한다면 어떠하겠습니까? 이는 종이 위에서 부질없이 할 말이 아니고 또한 벗 사이에 의례적으로 하는 말도 아니니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開春以來。尙不有一場接晤。豈惟此身情狀。無有餘地。可想吾友凡況。亦多浩穰。一年三百日。一生三千日。要之無非此箇時節。何嘗別有別樣。穩穩境界。只在吾着足運步之如何耳。嗚乎如愚者。失時過境。已無可言。惟無益之悲。不逮之恨。時以惱人。不能自遣耳。惟景立千萬加意。使先大人惓惓無窮之意。不至落空於烏有之地。如何。此非紙上漫說。又非朋友例語。諒之。 허무한 곳 원문은 '오유(烏有)'인데, 사마상여(司馬相如)의 자허부(子虛賦)와 상림부(上林賦)에 등장하는 가공의 인물로, 실재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이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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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선중【형식】에게 답함 答范善仲【瀅植】 그대【傾蓋】가 욕되게도 여기를 찾아오신 것이 예전 어느 날이었습니까? 세월이 덧없이 재빨리 흘러 아득하기가 허공과 같으나, 오직 온화한 모습이 아련하게 마음과 눈 속에 남아있어 지금까지도 감히 잊을 수 없었습니다. 뜻밖에 그대의 종형제가 멀리서 일부러 찾아왔는데, 그대의 편지를 가지고 와서 펼쳐보고 감동했으니, 실로 울적한 마음에 위로가 되었습니다. 편지를 받고서 그대 부모님의 건강이 오래도록 좋지 못했는데, 근래에 원기를 회복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사이의 근심은 필시 적지 않았을 것이나, 오늘 날이 있게 되었으니, 또한 어찌 정성과 효성에 감동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위로되고 축하하는 마음이 멀리서도 금할 길이 없습니다. 글을 읽으려고 하는 것은, 여력이 있을 때의 일입니다. 게다가 부모님이 병환 중이니 어찌 오로지 글을 읽을 수 있는 도리가 있겠습니까? 부모님을 모시고 형을 따르는 것은 학문을 하는 실질이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한번 찾아와 주신다고 하셨으니, 벌써부터 기쁘게 기다려집니다. 그러나 몸소 먼 곳까지 오는 노역을 행하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습니까? 그대 부친의 목재(牧齋)에 대해 읊은 시【牧齋韻】와 죽취정(竹翠亭)에 대한 상량문【六偉文】을 함께 지어 보냅니다. 졸렬하고 거칠어 취할 바가 없으니 읽어 본 후에 없애버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傾蓋屈旆。昔何日矣。荏苒流光。茫然若空。而惟有愷弟風度。黯黯留在於心目之間。而至今不敢忘也。不謂令從氏遠垂委枉。惠存隨之。披玩感感。賓慰積菀之懷。仍審庭候久愆之餘。近復天和云。其間致憂想必不少。而至有今日。亦豈非誠孝攸感耶。爲慰且賀。不任遠情佔畢一着。此是餘力底事。況親癠之中。安有專一咿唔之理。事親從兄。此是爲學實地。如何如何。一枉之示。預用欣企。然親下遠役。豈易事也。尊府牧齋韻與竹翠亭六偉文。竝此構呈。拙澁無取。覽後滅棄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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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경【은환】에게 답함 答李士敬【殷煥】 편지를 받아보매 얼굴을 마주한 것 같아 쓸쓸히 지내는 마음이 조금은 풀어지니, 그 고마움이 어찌 다하랴. 봄날이 더욱 따뜻해지는데 부모를 모시고 경전을 공부하면서 줄곧 건강한 지, 걱정되는 마음 그만둘 수가 없네. 편지의 '자질이 본래 변변찮다'는 말에서 겸손하게 행동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뜻을 볼 수 있으니, 학문이 발전하는 소식이 바로 여기에 있네. 다만 사경은 평소 책을 읽을 때 착실하게 탐색하는 뜻이 적기 때문에 대충대충 넘어가는 폐단이 혹 학문의 과정이 나아가는 단계에 있으니, 이는 맹렬히 살펴서 빨리 돌이켜야 하네. 통렬하게 채찍을 가할 사람으로 내가 어찌 그에 걸맞겠는가. 서로 만나 왕래한 지 오래 되었기에 의리상 도외시할 수 없네. 그러므로 나의 좁은 견해를 보내니, 아마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허물하지 않을 것이라 여겨지네. 옛사람이 말하기를 "학문은 생각을 기본으로 한다."113)라고 하였으며, 또한 "책을 읽을 때 깊이 생각하는 자를 두려워한다."114)라고 하였는데, 이 말을 절대로 대충대충 보아 지나쳐서는 안 되네. 시험 삼아 깊이 생각해보게나. 書幅相面。少紓離索之懐。慰感何已。春序向暄。侍省經況。連序貞靖。懸溯難任。姿本非薄之諭。足見譕已。省身之意。進步消息。有在於此。但士敬平日讀書。少著實探索之意。此所以悠泛之敝。或不能不在於進就之地。此可猛省而亟反之者也。痛加鞭策。愚豈其人。相從日久。義不可以相外。故敢貢謏見。想應樂聞而不以爲咎也。古人曰。學原於思。又曰。讀書只怕深思。此處切不可草草看過。試加意焉。 학문은……한다 《근사록》 〈위학(爲學)〉에 보이는 말이다. 책을……두려워한다 《소학》 〈가언(嘉言)〉에서 "후배 중에 재질이 나보다 뛰어난 자는 두려울 것이 없다. 다만 글을 읽을 때 깊이 생각하고 미뤄 탐구하는 자가 두렵다.〔後生才性過人者 不足畏 惟讀書尋思推究者 爲可畏耳〕"라 하였다. 본문의 '심(深)'은 원문에서는 '심(尋)'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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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옥에게 답함 答鄭士玉 가을바람이 교외에 불어 그리운 생각 정히 간절하였는데 한 통의 편지로 안부를 물어주니, 얼마나 위로가 되었겠는가? 더구나 집안 어른의 체후가 강녕하고 부모님을 모시는 형편이 좋은 줄 알았으니, 더욱 듣고 싶은 마음에 흡족하였네. 일본만수(一本萬殊)에 두 가지 의가 있으니, 하나는 이분(理分)으로 말한 것이고 하나는 체용(體用)으로 말한 것이네. 이분은 실로 계위(界位)의 다름이 없지만 체용은 말할 수 있는 계위가 없네. 만약 한 그루 나무로 보자면 근간(根幹)을 일본(一本)으로 삼고 지엽(枝葉)을 만수(萬殊)로 삼는 것은 이것은 체용의 설이고, 그 일리(一理)가 생생하여 천지만엽(千枝萬葉)이 활짝 피어나지 않음이 없는 것은 이것은 이분의 설이네. 그대가 논한 것은 이분과 체용에 있어 합하여 섞어 매우 분명하지 못한 것이 있음이 면치 못할까 두렵기 때문에 언급했으니, 어떻게 여기는가? 기수(器水)와 병공(甁空)은 그 취하여 비유한 뜻이 이(理)는 기(氣)로 인하지만 같지 않다는 데 있으니, 마치 수(水)와 공(空)이 기(器)와 병(甁)으로 인하지만 방원(方圓)과 대소(大小)의 같지 않음이 있다는 것과 같음을 이르는 것이지 이가 수와 공과 같다는 말은 아니네. 秋風入郊。懷想政勤。一書垂存。何等慰沃。矧審庭候康寧。侍省珍勝。尤叶願聞一本萬殊有二義一則以理分說。一則以體用說。理分固無界位之殊。體用不無界位之可言。若以一株樹觀之。而以根幹爲一本。以枝葉爲萬殊者。此體用說也。其一理生生而千枝萬葉。無不敷榮者。此理分說也。盛論。於理分體用。恐不免合而混之。而有不甚分明者。故及之耳。如何如何。器水甁空。其取譬之意。在於理因氣而不同。如水空之因器甁。而有方圓大小之不同云耳。非理之如水空云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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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사영50) 【우경】에게 답함 答洪士瑩【祐璟】 작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또 편지를 받아 벗이 나를 멀리하지 않는 뜻을 알았으니, 매우 감사할 뿐만이 아니네. 편지를 받은 지 며칠이 되었는데, 조부모와 부모님의 병환은 점차 평상을 회복하였으며, 아침저녁으로 기쁘게 모시며 모든 절도가 아름답고 마땅하신가? 바라보며 그리운 마음 감당할 수 없네. 7,8개월 동안 서로 따르며 얻은 것이 무슨 일이었던가? 요란한 객지 서재에서 고생스러움을 참는 것은 아마 가정에서 어버이를 모시는 여가에 방을 깨끗이 하여 고요히 지내는 안온함만 못할 것이니, 어떻게 여기는가? 가만히 보건대, 그대는 지의(志意)가 아름답고 두터워 가욕(可欲)의 사람51)인데, 다만 재주가 깨닫는데 조금 부족하니, 이것이 진취함에 있어 능히 빨리 그 효과를 보지 못했던 까닭이네. 그렇다면 공부를 함에 더욱 마땅히 남들보다 몇 곱절 노력하여 밥을 먹거나 쉬는 시간에도 중단하지 않아야 큰일을 해낼 수 있을 것이네. 그렇다면 이른바 조금 부족하다는 것은 또 어찌 고인이 덕에 나아간 바탕이 되지 않을 줄 알겠는가? 부디 힘써 노력하시게. 分張未幾。又承心畫。仰認故人不遐之意。不啻感感。信後有日。重庭患節。漸復安常。晨夕怡愉。凡百佳宜瞻溯不任七八朔相從。所得何事。撓撓客齋。喫苦耐辛。恐不如趨庭侍側之餘。靜掃一室之爲安穩也。如何竊覸座右志美意厚。未嘗不是可欲底人。而但才性稍欠開悟。此於進就。所以未能遽見其效也。然則其下功。尤當倍蓰他人。無食息間斷。可以有爲。然則所謂稍欠者。又安知不爲古人進德之基也。勉旃勉旃。 홍사영(洪士瑩) 홍우경(洪祐璟, 1873~?)을 말한다. 자는 사영·원중(元仲), 호는 신암(愼庵), 본관은 풍산(豐山)이다. 정의림의 문인이다. 가욕(可欲)의 사람 선인(善人)이라는 말이다.《맹자》 〈진심 하(盡心下)〉에 "가욕스러움을 선인이라 한다.[可欲之謂善]"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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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옥에게 답함 答鄭士玉 이발(已發)과 미발(未發)은 심(心)에서 말한 것이지 기질(氣質)에서 말한 것이 아니네. 정자(程子)의 말은 사람이 태어남에 기질을 품부 받는 것이 본래 이와 같다고 말한 것일 뿐이네. 이 때문에 주자(朱子)는 '이(理)' 자를 '합(合)' 자로 보아 그 아래에 말한 "어려서부터 선하고 어려서부터 악하다."43)라는 한 단락은 바로 유행을 설명한 것인 뿐이니, 다시 상세히 살펴보는 것이 어떠하겠는가? 발하지 않았을 때 기(氣)는 용사(用事)하지 않으니, 악이 그 가운데 있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은 실로 그대가 말한 것과 같네. 오상(五常)의 편전(偏全)과 동이(同異)는 또한 잠깐 사이에 설파할 수 없으니, 모름지기 선사께서 이른바 "같으면서 다른 것은 실제 다른 것이 아니고, 다르면서 같은 것이 바로 참으로 같은 것이다."라고 한 것과 또 "동이가 원융한 것을 천이라 하니, 산수가 바야흐로 일원이라는 것을 믿겠네.[同異圓融是曰天 散殊方信一原然]"44)라고 한 것을 알아야 하니, 바라건대 모름지기 여기에 머물러 생각해 보는 것이 어떠하겠는가? 己發未發。是心上說。非氣質上說。程子之言。是說人生氣稟。本自如此云耳。是以。朱子以理字作合字看。其下所云。自幼而善。自幼而惡一段。乃是說流行耳。更詳之如何。未發時。氣不用事。則不可謂惡在其中。固如來諭。五常偏全同異。亦不可卒乍說破。須知先師所謂同而異。非實異。異而同。乃眞同也。又曰。同異圓融是曰天。散殊方信一原然。望須於此。留作商量。如何。 어려서부터……악하다 《주자어류)》 권95 〈정자지서(程子之書) 1〉에 나온다. 동이가……믿겠네 《노사집(蘆沙集)》 권2 〈오상을 읊어 회정에 부치다[五常詠寄晦亭]〉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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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애산, 안순견과 정답게 이야기하다 與鄭艾山安舜見話情 매미 소리 근일 더욱 맑고 높으니 (蟬聲近日益淸高)정자 위에서 몇 명의 호걸 만났네 (亭上相逢幾傑豪)십년 동안 종유하며 비분강개 하였고121) (十載從遊悲劍筑)두 고을 소식은 강 언덕122)에서 늙는다고 하네 (兩鄕消息老江皐)연원은 확실하게 사문에 대한 책임이 있고 (淵源的有斯文責)행동거지 누가 이처럼 조심할 때를 만났으랴 (行止孰如此時遭)어느 청산에서 깊이 사립문을 닫았나 (何處靑山深掩戶)그대들과 마주하니 즐겁기 그지없네 (與君相對樂陶陶) 蟬聲近日益清高。亭上相逢幾傑豪。十載從遊悲劒筑。兩鄕消息老江皐。淵源的有斯文責。行止孰如此時遭。何處靑山深掩戶。與君相對樂陶陶。 비분강개하였고 전국 시대 협객인 형가(荊軻)는 본디 독서와 검술을 좋아하였는데, 연나라에 가서는 축(筑)을 잘 치던 고점리(高漸離) 등과 사귀어 날마다 시중(市中)에서 술 마시고 비분강개하여 노래하며 지냈는데, 술이 거나해지면 고점리는 축을 치고 형가는 거기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史記 刺客列傳 荊軻』 강 언덕 굴원(屈原)의 「상부인(湘夫人)」에 "아침에는 강 언덕에서 말을 달리고, 저녁에는 북쪽 물가에서 수레를 멈추네. 새는 지붕 위에 앉았고, 물은 당 아래에 흐르네.[朝騁騖兮江臯, 夕弭節兮北渚. 鳥次兮屋上, 水周兮堂下.]"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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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학경【교인】에게 답함 答白學卿【敎寅】 한 차례 나를 찾아와준 것도 대단히 고마운 일인데, 이어서 안부를 묻는 편지와 도움을 주는 선물을 보내주심이 이처럼 정성스러우니, 보잘 것 없는 내가 어찌 감당하겠는가. 더욱 두려운 마음이 일어 어떻게 말로 표현할지 모르겠네. 인하여 부모를 모시면서 공부하는 가운데 건강이 줄곧 좋다고 하니 실로 듣기 원하던 바이네. 보내준 편지에서 자세하고 길게 말한 것에서 깊이 파고드는 절실함과 조예의 깊음을 알 수 있는데, 그 가운데 '마음은 붙들어 두면 있고 놓아버리면 없게 된다.'109)는 한 단락의 말이 가장 긴요한 곳이네. 이 말은 만고의 많은 성인들이 서로 전하는 지결(旨訣)이니, 바라건대 더욱 깊이 생각해 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나는 이제 늙어 나날이 맥이 빠져 가는데 이전에 익혔던 보잘 것 없는 학문은 하늘의 그림자나 메아리 같아서 아무 것도 있지 않으니, 매번 한번 생각이 이르면 다만 매우 슬퍼하며 탄식할 뿐이네. 현재 세상의 상황이 날로 잘못되어 가는데, 소문을 들어보면 그 끝을 짐작할 수 없네. 날개 달린 새도 아니고 자맥질하는 물고기도 아니어서 달아나도 숨을 곳이 없으니 어찌하면 좋겠는가. 다만 바라건대 날마다 의리를 연구하고 날마다 더욱 마음을 보존하고 함양하여 기로 하여금 몸에 가득 차게 하고 덕으로 하여금 주변에 두루 미치게 한다면 비록 아주 다급한 상황이라도 내가 대처하는 것이 어찌 넉넉하여 여유가 없겠는가. 노력하고 또 노력하게나. 一番枉屈。已極感荷。而繼以有存訊之儀。饋恤之物。若是懇至。自惟無狀。何以當之。旋切悚悚。不知爲喩。仍審侍經節宣。連護增休。實叶願聞。來喩縷縷。足見鞭辟之切。造詣之深。而橾存舎亡一段語。最其要處。此是萬古群聖。相傳旨訣。幸加意焉如何。義林衰頽委靡。日甚一日。而殘課舊業。如先天影響。漠然無有。每一念到。只切悲歎而已。時衆日非。流聞叵測。匪翰匪潛。遁逃無地。奈何奈何。只望日究義理。日加存養。使氣充於身。而德周於物。則雖顚沛流離。而吾之所處.豈不綽綽有裕乎。勉之勉之。 마음은……없게 된다 《맹자(孟子)》 고자 상(告子上)에 "마음이라는 것은 잡아 두면 있고 놓아 버리면 없어지는 것으로서, 나가고 들어오는 것이 일정한 때가 없으며, 어디로 향할지 종잡을 수가 없는 것이다.[操則存 舍則亡 出入無時 莫知其鄕 惟心之謂與]"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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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대곡 선생113)【운】의 시에 뒤미처 화운하다 追和成大谷先生【運】詩 구절산 서쪽에 지은 한 초당엔 (九節山西一草堂)새로 돋은 죽순과 어린 버들 모두 줄을 이루었네 (新篁稚柳摠成行)천년의 수석을 보니 마음이 편안하고 (千年水石襟期穩)만권의 시서를 읽으니 사업이 바쁘네 (萬卷詩書事業忙)객이 온 작은 길엔 푸른 이끼 미끄럽고 (客來小徑蒼苔滑)새가 내려앉은 깊은 정원엔 해가 길기만 하네 (鳥下深園白日長)「자지가」114) 그치자 자지 캐는 사람이 없으니 (紫芝歌罷無人釆)춘심을 머금은 채 다만 절로 향기롭네 (涵蓄春心只自香) 九節山西一草堂。新篁稚柳摠成行。千年水石襟期穩。萬卷詩書事業忙。客來小徑蒼苔滑。鳥下深園白日長。紫芝歌罷無人釆。涵蓄春心只自香。 성대곡 선생(成大谷先生) 성운(成運, 1497~1579)이다.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건숙(健叔), 호는 대곡이다. 중종(中宗) 때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했지만, 그의 형 성우(成遇)가 을사사화로 화를 입자 보은 속리산에 은거하였다. 시문에 능하였으며 은둔과 불교적 취향을 드러낸 시를 많이 남겼다. 자지가(紫芝歌) 진(秦)나라 말기에 어지러운 세상을 피하여 상산(商山)에 은거했던 네 사람의 은자, 즉 동원공(東園公), 하황공(夏黃公), 녹리선생(甪里先生), 기리계가 한 고조(漢高祖)의 초빙을 거절하고 자지(紫芝)를 캐 먹으면서 부르던 노래이다.『史記 留侯世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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