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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5년 위친계(爲親契) 회문(回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사회-조직/운영-통문 乙亥十月初三日 扶安金氏門中 金大允 等 5人 乙亥十月初三日 1875 扶安金氏門中 金大允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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稽顙白春間表叔歸路所付上候卽當下覽矣居然之際春盡夏屆承候無階下懷哀悵只勞耿祝伏不審辰下體候連護萬安允從安侍渾致均迪竝切伏溯無任區區之下誠春間高山 山變至今追思悚悖交至襄禮定於何地且等那間過行漠爾無聞悶㭗何已戚姪孤哀子頑極不殊終祥此迫觸目哀菀益自罔涯俯仰天地此何人斯加以稚妹以肪胱濕痰因祟成腫三朔委頓屢經危城難以時日期差私憫中儉歲契活去益罔測無於目下來頭自分塡壑塡壑外無它道理而尙延一縷亦賴天翁之公道此亦謂一細故可耳㝡是先入終祥迫在來初而祀需也變制也非敢豊備後必行爲意而菲薄之奠需迷凶之變制不得不倣禮伸情爲人子所不可已者而旣無自宮辦行之道又無因人成事之方百千閒商擧歸烏有晝宵號泣拱訴無地人理到此尙復何堪於叔主前有懷安達有急必告非止一再而情勢窮迫玆又冒沒廉偶體面敢此無隱須十分下諒三思必施下助以祭需變制之資則生死殞結幽明感服當復何以顧以罔措罔極之情勢仰恃如親父兄叔以張皇伏達幸百倍下念無抔專然懸望之情千萬伏祝此去都老卽先人同乳之人而與姪家痛癢相關便是一室之人故玆令袖書替進細達此罔措之情幸伏望細叩此稚盡領書外之旨若何 叔主以無廉却之則勢將闕祭雖某樣措劃無孤專望伏望之餘萬萬留在此牙口達荒迷不次上候疏伏乞下察丁酉巳月十七日 戚姪孤哀子 金永述永達稽顙再拜66-b戚叔主前 上展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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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 이정희(李正熙) 서간(書簡)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元月旣望 李正熙 場岩 元月旣望 李正熙 場岩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모년(某年)에 이정희가 보낸 서간. 모년(某年) 1월 26일에 기복인(朞服人) 이정희(李正熙)가 장암(場岩)에 보낸 서간(書簡)이다. 어느덧 새해가 되니 그리움이 배가 된다며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새해를 맞는 감회를 억제하기 어렵다고 하였다. 도목정사(都目政事)를 보게 되었는데, 당질(堂侄)이 곤양(昆陽)에 제수되니 감축은 하지만 권속(眷屬)이 박읍(薄邑)에서 접제(接濟)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번에 가는 강우(姜友)는 마침 경락(京洛)에서 볼일이 있어 추위에도 가는 것인데, 일전에도 지나면서 상대방에게 소회를 아뢰고자 하였으나 혼담이 있으니 혐의하여 말하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이번 길에 상대방을 따라갈 사람이 없다면 이 친구가 동행하면 긴 여정에 쓸쓸함을 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 친구가 동행하고자 하는 것은 애당초 과장(科場) 안에서 문자를 파려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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居然獻發瞻詠之懷有倍常品伏惟新元靜體震艮履玆鄭重慰溯區區無任憧憧記下逢新懷緖尤難自抑得見都政則堂侄之陳拜昆陽雖曰倘來其爲感祝難以容喩第京鄕多眷以若薄邑接濟未易勢也奈何就此去姜友適有所觀事於京洛之間而寒程薄着致身擾難故有仰議于親事而不無自嫌之端日前歷拜之時欲陳其所懷而孤此自嫌欲發口而未發其掘可知所欲告者無他事也今於執事之行將欲驥附而致身則於執事不過爲一投足之勞爲姜友之地俾遂所營惠莫大焉且於執事斯中如無親近人隨往者則此友同行似免長程之孤寂至若到京後擇文取筆之際不無周旋於其間惟在默諒善處之如何耳此友之欲爲同行爲此致身之計而初無逞售其文字於場屋之間故所謂自嫌良有以也餘在此友口悉姑此不備伏惟下照謹狀上元月旣望記下朞服人李正熙拜手(皮封)場岩靜案執事嚴谷候書 謹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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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묘년 박만언(朴萬彦)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丁卯二月十五日 朴萬彦 丁卯二月十五日 朴萬彦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정묘년 2월 15일에 박만언이 사돈에게 보낸 서간 정묘년 2월 15일에 박만언(朴萬彦)이 사돈(査頓)에게 보낸 서간이다. 이전에 서로 만났다가 헤어진 지 오래되어 보고싶다고 안부를 전하고 자신도 책을 읽으면서 지낸다고 소식을 전하고 있다. 그런데 서간의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두 집안 사이에 한참 혼사가 진행 중인 것으로 보인다. 박만언은 이 서간에서 상대방에게 혼사에 사용한 예폐(禮幣) 값 25냥을 오는 17일에 보내달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 편에 상대방의 당질도 함께 보내달라고 청하였다. 끝으로 조만간 서로 만나 얘기를 나누고 싶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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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오년 이도성(李度聲)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庚午二月一日 李度聲 扶堂邨 孝廬 庚午二月一日 李度聲 扶堂邨 孝廬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경오년 2월 1일에 이도성이 부안 당촌에 사는 상중의 지인에게 보낸 서간. 경오년(庚午年) 2월 1일에 이도성(李度聲)이 부안(扶安)의 당촌(堂邨)에 사는 상중(喪中)의 지인에게 보낸 서간이다. 이도성은 언즉(言卽)이라는 사람을 통해 상대방의 편지를 받고 자신의 안부를 전하고 있다. 이도성은 보내 준 2백냥을 잘 받았다고 말하고 있는데, 서간의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이도성이 중간에 다리를 놓아 상대방에게 돈을 융통해 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난 그믐이 지불기한이어서 이미 기한을 지나친데다, 돈도 전부를 준 것이 아니어서 장차 독촉을 받게 될 자신의 처지가 매우 난감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니 조만간 돈을 다 올려보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상대방이 선물로 보낸 황계(黃鷄) 한 마리를 잘 받았다는 인사도 올리고 있다. 한편 홍빈(弘斌) 형이 항상 불평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답답한 마음을 토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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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년 조사식(趙寫植)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己丑三月初二夜 趙寫植 大舅主 己丑三月初二夜 趙寫植 大舅主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기축년 3월 초이틀 밤에 조사식이 장인에게 보낸 서간 기축년(己丑年) 3월 초이틀 밤에 조사식(趙寫植)이 장인에게 보낸 편지이다. 조사식은 이 편지에서 장인의 안부를 묻고, 자신의 부친은 얼마 전에 성묘 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는데, 흉년에 먼길을 떠나 걱정이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 안있으면 관직에 처음으로 나가게 되는데 제대로 준비를 못해서 모든 게 걱정이 된다고 하였다. 또한 어떻게 해서든지 말미를 내어 찾아뵙겠다고 하였다. 이 서간에서 조사식은 자신을 외생(外甥)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 말은 흔히 생질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여기에서는 외구(外舅), 즉 장인에 대해서 자신을 표현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곧 사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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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2년 조재의(趙在儀)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壬寅陽月卄四日 在儀 壬寅陽月卄四日 趙在儀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842년(헌종 8)에 조재의가 사돈에게 보낸 서간 1842년(헌종 8) 10월 24일에 조재의(趙在儀)가 사돈에게 보낸 서간(書簡)이다. 보내온 편지를 받고 상대방이 편안하니 기뻤다며 다만 손부(孫婦)가 목병으로 여러 날 아팠는데 전염병이긴 하지만 먹지 못하여 원기가 없으니 염려된다고 하였다. 낭진(廊珍)이 다시 퍼지니 더욱 걱정되는데 이 부근은 아직 그런 근심은 없지만 끝내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고 하였다. 자신은 쇠약한 몸으로 추위를 만나 집에 칩거하고 있으며 양기가 전혀 없으니 가련하다고 하였다. 손자의 병은 멀리 떠나 있었던 증거로 체질도 취약한데 입직을 거듭하여 형해(形骸)만 보존하니 보기에 민망하고 안쓰럽다고 하였다. 손부(孫婦)의 신례(新禮)를 몇 달 물리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그 마음이 한시가 급한 것을 보니 더욱 서글프다고 하였다. 조재의(趙在儀)는 조응호(趙膺鎬)의 아버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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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8년 송생원(宋生員)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咸豐八年戊午八月二十八日 權琦瑞 宋生員 咸豐八年戊午八月二十八日 權琦瑞 宋鎭澤 전라북도 태인군 [着名] 1개 전주 송진택가 전주역사박물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HIKS_Z041_01_A00012_001 1858년(철종 9) 8월 28일에 송생원(宋生員)이 권기서(權琦瑞)에게 태인군 남면 반룡촌에 있는 산지와 송추를 전문 4냥을 주고 살 때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58년(철종 9) 8월 28일에 송생원(宋生員)이 권기서(權琦瑞)에게 산지와 송추를 매득할 때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권기서는 소유한 태인군(泰仁郡) 남촌면(南村面) 반룡촌(盤龍村) 전록(前麓) 고당산(高堂山)에 있는 친산(親山)의 용미(龍尾) 아래와 송추를 전문 4냥을 받고 방매하였다. 이곳에 대한 구문기를 중간에 잃어버렸기 때문에 이 문서만으로 거래한다는 내용을 밝히고 있다. 반룡촌은 당시 태인군 남촌면 반룡리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인해 현재는 정읍시 감곡면 계룡리에 속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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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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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59년 송진택(宋鎭澤)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咸豐玖年己未五月初九日 金洛中 宋鎭澤 咸豐玖年己未五月初九日 金洛中 宋鎭澤 전라북도 태인군 [着名] 1개 전주 송진택가 전주역사박물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HIKS_Z041_01_A00012_001 1859년(철종 10) 5월 초9일에 송진택(宋鎭澤)이 유학 김낙중(金洛中)에게 태인군 남면 반룡촌에 있는 보리밭(麥田)을 전문 3냥을 주고 살 때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59년(철종 10) 5월 초9일에 유학 송진택(宋鎭澤)이 유학 김낙중(金洛中)에게 보리밭(麥田)을 매득할 때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대상토지는 태인군(泰仁郡) 남촌면(南村面) 반룡촌(盤龍村) 전록(前麓) 소갈산(小乫山)에 있는 보리밭으로, 규모는 4부였다. 이곳은 박여순(朴汝順)의 보리밭 아래에서 이염보(李監甫)가 새로 지은 집터까지이며, 좌로는 종산(鍾山)아래에서 오른쪽으로 장곡(長谷)까지이다. 송진택은 이곳을 산소를 쓰기 위해 매득하였다. 반룡촌은 당시 태인군 남촌면 반룡리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인해 현재는 정읍시 감곡면 계룡리에 속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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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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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58년 송생원(宋生員)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咸豐八年戊午七月二十八日 權琦瑞 宋生員 咸豐八年戊午七月二十八日 權琦瑞 宋鎭澤 전라북도 태인군 [着名] 1개 전주 송진택가 전주역사박물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HIKS_Z041_01_A00012_001 1858년(철종 9) 7월 28일에 송생원(宋生員)이 권기서(權琦瑞)에게 태인군 남면 반룡촌에 있는 산지 60여보와 송추를 전문 8냥을 주고 살 때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58년(철종 9) 7월 28일에 송생원(宋生員)이 권기서(權琦瑞)에게 산지와 송추를 매득할 때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권기서는 태인군(泰仁郡) 남촌면(南村面) 반룡촌(盤龍村) 의 전록(前麓)에 있는 산지를 여러 해 동안 수호해 오다가 지난 5월에 전주에 사는 송생원이 친산을 쓰면서 누차 소송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다가 서로 간의 합의하여 용미 근처 청룡 60여보의 땅과 여간의 송추를 매매하게 되었고, 송생원은 그 값으로 전문 7냥을 지불하였다. 반룡촌은 당시 태인군 남촌면 반룡리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인해 현재는 정읍시 감곡면 계룡리에 속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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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69년 배성렬(裵成烈)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同治八年己巳十二月十六日 裴成烈 同治八年己巳十二月十六日 裴成烈 [着名] 2개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869년(고종 6)에 배성열이 서작에 있는 논을 아무개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69년(고종 6) 12월 16일에 배성열(裴成烈)이 서작(西作)에 있는 논을 아무개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배성열은 이 논을 매득하여 경작해 왔지만 부친의 장례 때 진 빚을 갚을 방법이 없어서 팔게 되었다고 한다. 거래된 토지는 송자답(悚字畓)에 있는 5두락지이며, 부수로는 10부(負)가 되는 곳으로 거래가격은 60냥이다. 이후 자손들이 다른 말들을 하면 이 문서를 증빙자료로 관에 고하라고 하였다. 이 거래에는 답주(畓主)인 배성열(裴成烈)과 증필(證筆) 박영백(朴永白)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토지를 산 사람이 누구인지는 밝혀져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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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년 부안김씨(扶安金氏) 분급기(分衿記) 고문서-명문문기류-분재기 경제-상속/증여-분재기 壬午年 扶安金氏家 壬午年 扶安金氏家 奴僕 億石 전라북도 부안군 7.0*7.0(정방형)적색 7개+7.7*3.3(장방형)2개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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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0년대 노(奴) 태선(泰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鄭禮先 奴僕 太善 鄭禮先 奴僕 太善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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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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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6년 송추남(宋秋男)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咸豊六年丙辰十月二十一日 朴億龍 宋秋男 咸豊六年丙辰十月二十一日 朴億龍 宋秋男 喪不着, [着名] 1개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856년(철종 7)에 박억용이 중방후평에 있는 논을 송추남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1856년(철종 7) 10월 21일에 박억용(朴億龍)이 중방후평(中方後坪)에 있는 논을 송추남(宋秋男)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박억용은 이 논을 매득하여 여러 해 경작하며 살아나가다가 긴요하게 쓸 데가 있어서 팔게 되었다. 거래된 토지는 진자답(陳字畓) 1두락지이며, 부수로는 1부(負)가 되는 곳으로, 거래가격은 2냥이다. 구문기를 중간에 잃어버렸기 때문에 신문기 1장을 주었다. 답주(畓主)인 박억용(朴億龍)은 상중(喪中)이어서 서명하지 못하였고, 증필(證筆) 이명숙(李明叔)만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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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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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5년 김도현(金道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道光十五年乙未四月十一日 高範山 幼金道亨 道光十五年乙未四月十一日 高範山 金道亨 [喪人], [着名] 3개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835년(헌종 1)에 고범산이 송자답 논을 김도형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1835년(헌종 1) 4월 11일에 고범산(高範山)이 송자답 논을 김도형(金道亨)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고범산은 이 논을 궁핍한 가세 때문에 세미(稅米)를 낼 길이 막막하여 부득이 팔게 되었다고 매매사유를 밝히고 있다. 거래된 토지는 송자답(悚字畓) 4두락지이며, 부수로는 9부(負)가 되는 곳으로 거래가격은 4냥 5전이다. 거래 당시 신문기와 구문기 3장과 공문(公文) 소지(所志) 1장을 함께 넘겨주면서, 뒷날 분란이 일어나면 이를 증빙문서로 삼으라고 하였다. 이 거래에는 답주(畓主)인 고범산(高範山)과 증인(訂人) 김군재(金君才), 증보(訂保) 박창광(朴昌光), 필(筆) 조흥규(趙興奎) 등 4인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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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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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34년 김순필(金順弼)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道光十四年甲午四月十四日 朴春實 金順弼 道光十四年甲午四月十四日 朴春實 金順弼 [着名] 2개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834년(순조 34)에 박춘실이 서십작에 있는 논을 김순필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34년(순조 34) 4월 14일에 박춘실(朴春實)이 서십작(西十作)에 있는 논을 김순필(金順弼)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박순실은 이 논을 매득하여 여러 해 동안 경작하여 왔지만 아내를 장사지낼 때 진 빚 때문에 부득이하게 팔게 되었다고 매매사유를 밝히고 있다. 거래된 토지는 서십작에 있는 송자답(悚字畓) 5두락지이며, 부수로는 7부(負)가 되는 곳으로 거래가격은 25냥이다. 거래 당시 본문기(本文記) 3장을 함께 넘겨주면서 이후 다른 말이 있으면 이를 증거로 하라고 하였다. 이 거래에는 답주(畓主)인 박춘실(朴春實)과 증필(訂筆) 윤용규(尹龍奎)가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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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교령류

1855년 김덕렴(金德濂) 추증교지(追贈敎旨) 고문서-교령류-고신 정치/행정-임면-고신 咸豐五年三月 日 哲宗 金德濂 咸豐五年三月 日 哲宗 金德濂 서울특별시 종로구 施命之寶 1개(적색, 정방형) 부안 돈계 김응상 후손가 부안 돈계리 김응상 후손가 1855년(철종 6)에 왕이 김응상의 증조할아버지 김덕렴에게 내린 추증교지 1855년(철종 6)에 왕이 김응상(金膺相)의 증조할아버지 김덕렴(金德濂)을 통훈대부(通訓大夫) 사복시정(司僕寺正)으로 추증(追贈)하며 내린 교지(敎旨)이다. 김응상이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 겸 오위장(同知中樞府事兼五衛將)으로 임명되면서 그의 증조할아버지 김덕렴은 증직(贈職)되었다. 즉, 이 문서의 맨끝에 "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兼五衛將金膺相曾祖考 依法典追贈"라고 적혀 있는 내용이 바로 그 사실을 의미한다. 조선 시대에는 실직(實職)이 2품 이상인 종친(宗親)과 문무관(文武官)의 경우 그의 부(父), 조(祖), 증조(曾祖) 등 3대(代)에 걸쳐 사후(死後) 관직을 주었고 이를 추증(追贈)이라 하였다. 또한 부모(父母)는 실직에 있는 아들과 같은 품계를 내리며 조부모(祖父母), 증조부모(曾祖父母)에게는 그의 품계에서 각각 1품씩 강등하여 추증하였다. 김응상은 종2품 가선대부로 임명되었고 그의 증조할아버지 김덕렴은 정3품의 통훈대부로 봉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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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계축년 부안김씨가(扶安金氏家) 연길(涓吉) 고문서-서간통고류-혼서 종교/풍속-관혼상제-혼서 癸丑三月二十六日 癸丑三月二十六日 扶安 扶安金氏家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부안김씨가에서 받은 연길. 부안김씨가에서 신부집으로부터 받은 연길(涓吉)이다. 신랑은 무술생, 신부는 병신생으로 혼인날짜를 계축년 3월 26일로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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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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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다산재에서 벗들과 작별할 적에 감회가 있어 짓다【소서를 붙이다】 多山齋別諸友有感【幷小序】 내 여기에 온 지 꼭 10년이 되었다. 오랫동안 교유한 나머지에 갑자기 작별해야 할 때가 되었으니 그 슬픔은 진실로 인정상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원하건대 그대들은 더욱 학문에 힘써 매진하여 서로 기약한 바를 저버리지 않는다면 정신과 마음이 융회하여 같은 자리에 함께 앉아 있는 것과 다름없을 것이다. 아, 세한의 절개를 서로 지키기를 바라니, 힘쓰고 힘쓸 것이다.우리 유자의 본업은 사문에 있는데 (吾儒本業在斯文)다만 요즘 사람들로 인하여 근본을 보지 못하네 (只坐時人不見根)독서하여 장차 무슨 일을 이루고자 하는가 (讀書將欲成何事)쇄소하는 것이 실로 마음을 보존하는 방법이네 (灑掃無非實所存)작은 글방에서 아침저녁을 먹느라 날만 허비하고 (小塾薤鹽徒費日)멀리 있는 벗은 채찍질하여 동문을 두렵게 하네 (遠朋鞭策猥同門)세모에 작별하고 슬프게 떠나니 (歲暮別離怊悵去)두꺼운 얼음과 쌓인 눈이 들판에 가득하네 (層氷積雪滿郊原) 余之來此。恰已一周星。久允追逐之餘。遽作參商之分。其爲悵悢。固人情所不能堪耐處。願諸君增勉征邁。不負其所以相期者。則神會心交。與同堂合席無異。嗚乎。歲寒相守。所望有在。勉之勉之。吾儒本業在斯文。只坐時人不見根。讀書將欲成何事。灑掃無非實所存。小塾薤鹽徒費日。遠朋鞭策猥同門。歲暮別離怊悵去。層氷積雪滿郊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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