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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 서일마산(西一馬山) 송서방댁노(宋書房宅奴) 억석(億石) 소지(所志)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癸未年十月 奴僕 億石 癸未年十月 奴僕 億石 守令 전라북도 부안군 7.0*7.0(정방형) 적색 3개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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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 부안군(扶安郡) 일도면(一道面) 당북중리(堂北中里) 화민(化民) 김낙진(金洛晉) 소지(所志)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癸未年八月 金洛晉 癸未年八月 金洛晉 扶安守令 전라북도 부안군 일도면 당북중리 7.2*7.2(정방형) 적색 3개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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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8년 부안군(扶安郡) 일도면(一道面) 당북중리(堂北中里) 화민(化民) 김병헌(金炳憲) 소지(所志)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戊寅年 金炳憲 扶安郡守 戊寅年 金炳憲 扶安郡守 전라북도 부안군 일도면 당북중리 7.0*7.0(정방형)적색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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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西面多會化民崔賛斗右謹言情由段夫同事興利之法有利則分食有欠則分當自是通行之例也民去庚辰年分與金仁德同事行商也其興敗本錢非他人錢乃集之殖利錢是如乎興敗之間事不如意雖無分用之物渠之利条每每計朔摘取故渠則因此致富民則因此致敗如干田畓盡敀於渠家豈不寃枉哉去癸未年良中自京偕來時 渠以緊用買來木籠而到中路投宿店幕也時値夏月蚤蝎相侵不能交睫故兩人所負錢一百四十兩藏于籠中置諸房中出外睱睡之間爲賊所盜若非木籠各自看守則豈有盡失之理乎眞所謂由墻折角者也 而以同事之故所失錢折半七十兩民蕩産備報其所寃枉倘復如何然而窮居無聊去戊申年良中民請錢五十兩於同仁德則渠之言內君之侄子有保則當爲如數貸之云故果爲成手記以給後依數得出行商於焉之間民又狼貝無路備報則仁德以此呈訴於舊舊城主座政時是乎則招致民之侄子 分付內旣有汝之手記則本錢不可不報給亦敎是故民之侄子依 分付同錢五十兩備報而大年之間無復利条之說矣昨冬十二月日敢以已決之事 更爲呈訴則城主敎是自鄕廳查宲稟告事 處分故鄕廳以二十兩備報之意稟達是乎矣來歷與 官決旣如是?除良民連値蕩敗之餘辦報末由侄子蕩産本錢五十兩依 官決報給則惟彼仁德不有 官決又不念同事之誼今以利条更爲起閙欲徵於民之侄子者事甚無厭敢此仰訴 參商敎是後特爲分揀事 行下爲只爲行下向敎是事城主 處分壬辰四月 日官[着押](題辭)一事一呈足矣此則至今四呈還覺支離事卄二日[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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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西面淨塘里化民崔載信右謹言民勢本至貧商買次去甲辰年良中本里崔孝大處錢六十兩得用是乎所以若薄福之人所營到底狼貝見利姑捨反爲害者向誰而說道▣▣而他人之債不可不報賣家賣産本錢六十兩利錢十兩當年合七十兩當年內僅僅備報是遣昨年再昨年兩次所報爲六兩五戔是如乎較計其彼此細音則利錢餘条不過爲十兩內外而此則徐徐報給之意屢屢哀乞是乎矣渠以富贍之人不思窮民之情勢民之納 稅次艱辛辦備租二石乘其出他之時勒奪而去是如乎渠雖有當捧之物不過▣▣之利錢餘条?除良奪去之穀物即是稅納之所重而且不曰先公後私者乎私難頡頑緣由仰籲爲去乎上項崔孝大處見奪租二石即爲推給俾爲納稅之地千萬望良只爲行下向敎是事城主 處分 己酉二月 日官[着押](題辭)雖重於當棒以比稅穀則公私懸殊奪去二石租出給稅納是遣如有剩餘捧債事卄七日 崔孝大告崔孝憲[印][印][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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孝井里㞐崔載信右謹言情由段民去甲辰年良中與崔碩俊隣㞐而將事末業故渠矣錢兩種種與受矣當於戊申秋 每月四利邊細音則民之所捧爲六兩零而同碩俊本以貪慾之人每月六分邊反有所捧是加頡頑者久矣則此所謂賊反荷杖也同碩俊自特豪强 使其子勒奪民家垈産業不得已避禍次移㞐于他里至於相訟之境此所謂留來之嫌也至於去市碩俊之子兄弟無端悖辱 前引後推擊胸蹴背無所不至其時昏昏氣塞者矣民不及鳴寃禁乱將校俱以酒失仰達于城主前同爲捉囚一體被罪歸家是乎乃以素孫兄弟被打之毒兇背牽引隨人起㞐食飮不通詩云哿矣富人哀此煢獨也民不勝抑㭗敢玆仰訴洞燭敎是後同素孫捉致法庭嚴囚重縄是白遣所捧錢六兩與家垈價二十五兩即地推給使此孤弱之民此土奠㞐之地爲白只爲行下向敎是事城主 處分庚戌十月 日官[着押](題辭)酗酒之款曾已治罪是矣至於厚邊勒奪可謂亂法之民査實嚴治次崔孝孫捉待宜當事初一日狀者[印][印][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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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 김영술(金永述) 등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丁酉巳月十七日 丁酉巳月十七日 金永述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897년에 김영술 등이 척숙에게 보낸 서간 1897년(고종 34) 4월 17일에 김영술(金永述)과 김영달(金永達)이 척숙(戚叔)에게 보낸 서간(書簡)이다. 상중(喪中)에 보낸 편지로, 봄에 표숙(表叔 고모부)이 돌아가는 편에 부친 편지는 받아 보았을 것이라며, 다가오는 여름철에 상대방의 건강과 가족들의 안부를 물었다. 봄에 일어난 산변(山變)은 지금까지도 떨리는 패악한 일이라며 장사 지낼 곳을 어디로 정할지도 걱정이라고 하였다. 고애자(孤哀子)인 자신들은 종상(終祥)이 목전에 닥치니 슬프고 우울한데, 거기에 어린 누이가 방광(膀胱)의 습담(濕痰)으로 종기가 생겨 여러 차례 위험은 넘겼지만 낫기는 어렵다고 하였다. 흉년을 만나 살길이 더욱 막막하니 당장 구렁텅이에 뒹구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어 하늘의 공도(公道)를 의지하여 연명할 뿐이라며 다음 달 초로 임박한 종상에 제수와 변제(變制)를 자식된 자로서 그만둘 수 없어 여러 번 생각 끝에 상대방에게 도움을 청한다고 하였다. 이번에 가는 도(都) 노인은 선인(先人)때 부터 한 집안사람이나 마찬가지이니 편지를 가지고 가서 대신 자세히 말할 것이니 딱한 사정을 잘 물어보라고 하였다. 숙부가 염치가 없다고 물리치면 제사를 지내지 못할 것이니 아무쪼록 조처해 달라고 거듭 부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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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축년 안순(安橓)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乙丑九月卄一日 安橓 乙丑九月卄一日 安橓 서울 종로구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을축년 9월 21일에 안순이 부안의 당북에 사는 지인에게 보낸 서간. 을축년(乙丑年) 9월 21일에 안순(安橓)이 부안(扶安)의 당북(棠北)에 사는 상중(喪中)의 지인에게 보낸 서간이다. 안순은 이 서간에서 먼저 상대방의 안부를 물은 다음에 자신이 근래 겪었던 불행한 가족사를 토로하면서 분하고 원통한 마음을 달랠 수 없다고 하였다. 자신의 어린아이와 종질(從姪) 일문(一門)이 혹독한 화를 당하였다고 하였는데, 그가 쓴 다른 서간으로 미루어 볼 때 아마도 당시 유행한 천연두로 인해 가족의 일부가 죽음을 당한 일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이어서 당사자밖에 알 수 없는 얘기를 서간에 적고 있다. 안순은 족인(族人)을 통해 편지를 보내려고 한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는데, 내밀한 사정이 있는 듯 조만간 있을 관편(官便) 대신 인편을 통해 별도로 집에 서신을 보낸다고 하였다. 안순은 또 단실(丹室) 주변으로 기별을 보내 주선하는게 좋다면서 용기를 내어 일을 처리하라고 조언하고 있다. 그리고 본 고을 수령이 이미 일을 잘 알고 있고, 본가(本家)에서도 전달한 게 있으니 일이 어렵지는 않을 거라고 하였다. 한편 상대방이 조만간 과거를 치르기 위해 한양에 올 예정이어서, 안순은 상대방이 합격한 뒤에 만나기를 기약하자고 하였다. 이렇게 볼 때 안순이 얘기하고 있는 내용이 혹시 과거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도 있으나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끝으로 상대방이 과분한 선물을 보내준 것에 대하여 감사하다는 말도 덧붙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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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9년 안익(安榏)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己巳八月二十二日 安榏 金碩士 己巳八月二十二日 1869 安榏 金碩士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869년 8월 22일에 안익이 김석사에게 보낸 편지. 1869년 8월 22일에 안익(安榏)이 부안(扶安)에 사는 김석사(金碩士)에게 보낸 편지이다. 편지의 피봉(皮封)에 '대효애(大孝哀)'라고 적은 것은 당시 김석사가 부친상(父親喪)을 당했기 때문이다. 서울에 살고 있었던 안익은 마땅히 상가로 달려가 문상을 하여야 하지만, 자식 둘을 잃은 처지여서 위로조차 드리지 못해 한스럽다고 하였다. 대신 상주(喪主)께서 어머님을 모시고 평안하시길 빌 따름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아드님에게 따로 보낸 편지에 자세한 내용을 적었다고 하였다. 같은 날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는 안익이 이달 초에 천연두(天然痘)로 여섯 살 난 딸과 두 살 난 아들을 잃어버렸다고 하였다. 천연두는 홍역(紅疫)과 함께 조선시대에 전국적으로 유행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던 대표적인 역병(疫病)이었다. 조선시대에 유아 사망률이 높은 이유의 하나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아뭏든 이로 미루어 보면 안익은 연장자인 김석사의 아들과 깊은 교우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 서간에는 작성연대가 기사로만 되어 있지만, 안익이 작성한 다른 편지에 이재원(李載元, 1831-1891) 대감의 동향을 전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1869년으로 추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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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8년 조응식(趙膺植)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戊子三月初三日 趙膺植 外翁 戊子三月初三日 趙膺植 外翁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828년(순조 26) 조응식이 보낸 서간 1828년(순조 26) 3월 3일에 조응식(趙膺植)이 외조(外祖)에게 보낸 서간(書簡)이다. 한해 지나도록 소식이 막혀 소식을 알 수 없었다며 늦봄 외조의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가문이 불행하여 세전(歲前)에 계부(季父)의 상사(喪事)를 당하여 비통한 심정은 말할 것이 없고, 초월(初月)이 지났으나 묏자리를 정하지 못해 이달 13일에 임시 매장을 결정하였다고 하였다. 어머니의 건강이 좋지 못하여 이 때문에 공부를 포기할 수밖에 없어 안타깝다고 하였다. 또 유아(乳兒)가 요절하였다는 말을 듣고 참혹하였으나 인마(人馬)가 겨를이 없어 얼굴 한번 못 보고 영결하니 아비로써 매우 경악스럽다고 하였다. 정(鄭)아(雅)가 여러 날을 머무른다니 기쁘기 짝이 없으나 몸을 빼내어 만나지 못하니 매우 서운하다고 하였다. 세전(歲前)에 사 둔 목화는 30근(斤)인데 신편(信便)이 없어서 지금에야 비로소 올려 보낸다며, 지금은 전부 매매할 시기가 아니라서 뜻대로 되지 않았으니 가격은 되돌려 준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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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김영욱(金永旭)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十二月七日 金永旭 宋淳轅 十二月七日 1927 金永旭 宋淳轅 대구광역시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927년 12월 7일에 대구에 사는 김영욱이 송순원에게 보낸 서간. 1927년 12월 7일에 대구(大邱)에 사는 김영욱(金永旭)이 익산군 낭산면 석천리에 사는 송순원(宋淳轅)에게 보낸 서간이다. 상대방을 인형(仁兄)이라고 호칭하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서로 가깝게 교유하는 사이로 보인다. 김영욱은 송순원에게 그의 안부를 물은 다음에, 자신이 산송(山訟) 일로 대전(大田)에 갔다가 어젯밤에 돌아왔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 그러면서 상고(上告)에 관한 건은 형이 깊이 헤아려 처리해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함께 한자리에 앉아 의논할 수 없는 처지인데다가 함부로 해결할 수도 없는 문제여서 한스럽고 답답하다고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고 있다. 그리고 노씨(盧氏)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노씨는 자기 조카가 아직 회답이 없다고 말하고는 부산에 간다고 말하고 떠났는데, 이미 10여일이나 지났는데도 아무런 소식이 없다면서 믿을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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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해년 김직(金直) 혼서(婚書) 고문서-서간통고류-혼서 종교/풍속-관혼상제-혼서 乙亥十二月初七日 金直 崔生員宅 乙亥十二月初七日 金直 崔生員宅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을해년 12월 초7일에 부안에 사는 김직이 최생원댁에 보낸 혼서. 을해년(乙亥年) 12월 초7일에 부안(扶安)에 사는 김직(金直)이 최생원댁(崔生員宅)에 보낸 혼서(婚書)이다. 김직은 자신의 당질(堂姪) 김혁철(金赫哲)의 혼사를 치루기 위하여 본 문기를 작성하여 예단과 함께 신부집에 보냈다.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으나 이 혼서의 소장처가 전주최씨(全州崔氏)의 재실(齋室) 유절재라는 점을 고려하면, 혼인을 맺은 쌍방은 부안의 유력씨족이었던 부안김씨와 전주최씨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두 씨족은 산송(山訟)으로 오랫동안 싸움을 벌였지만, 사실 이미 오래 전부터 서로 혼인을 맺었던 사돈지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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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년 안영중(安永重)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庚午三月二十四日 安永重 庚午三月二十四日 安永重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870년에 안영중이 보낸 서간 1870년(고종 7) 3월 24일에 안영중(安永重)이 보낸 서간(書簡)이다. 천만뜻밖에 선대인(先大人)의 상사(喪事)를 듣고 놀라고 슬퍼 말을 하지 못하겠다며 늦봄에 시전(侍奠)하는 상대방의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병중(病中)이라 가서 곡하기 어려워, 흉변을 듣고도 늦게서야 한 통의 편지로 대신하니 정례(情禮)에 모두 어긋나 식은땀이 나고 송구스럽다며 마침 귀읍(貴邑)의 과거 보러 온 인편이 있어 편지를 보낸다고 하였다. 슬픔을 절제하고 변화에 순응하기 바란다고 하였다. 안영중은 『승정원일기』 1868년 4월 9일 조에 '부안(扶安)에 사는 김채상(金彩相)의 효행과 그의 아우 김우상(金祐相)의 처 박씨의 열행을 들어 정려해 달라.'고 청원한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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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인년 조한병(趙漢秉)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壬寅七月二十四日 趙漢秉 壬寅七月二十四日 趙漢秉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임인년에 조한병이 보낸 서간 임인년(壬寅年) 7월 24일에 조한병(趙漢秉)이 보낸 서간(書簡)이다. 여러 달 동안 소식이 막혀 사모하고 염려하는 마음이 간절하였는데, 방금 보내준 편지를 보고 가을철 상대방의 건강이 좋고 가내가 균경하니 위로된다고 하였다. 자신은 부모님께서는 무손(無損)하시나 더운 날씨에 저절로 생기는 사소한 근심은 많다고 하였다. 삼하(三夏)에는 놀고먹는 것과 다름이 없어 더욱 나태하다며 찬바람이 나면 찾아가겠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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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오년 안순(安橓)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庚午四月三日 安橓 庚午四月三日 安橓 서울 종로구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경오년 4월 3일에 안순이 부안 당촌에 사는 상중의 지인에게 보낸 서간. 경오년(庚午年) 4월 3일에 한양에 사는 안순(安橓)이 부안(扶安) 당촌(堂邨)에 사는 상중(喪中)의 지인(知人)에게 보낸 서간이다. 지난 겨울에 아우의 집이 우환으로 매우 위태한 지경이었는데 근래에 회복되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하고, 자신은 먹은 것이 체하여 여러 달이나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으며, 기혈도 떨어지고 있지만 시험삼아 먹은 약이 반드시 효과가 있을는지는 장담할 수 없다고 하였다. 안순은 또 이 편지에서 선효사(先孝事)에 대한 고민도 털어놓고 있는데, 그 내용만으로는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자신이 병약하여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여 한스럽다는 말을 전하고 있다. 그리고 상대방이 붓 다섯 자루를 준 데 대하여 매우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있다. 자기집 가풍(家風)이 청한(淸寒)하여 이런 귀한 붓은 쉽게 얻을 수 없는 것이어서 더더욱 고맙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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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7년 조응호(趙應鎬)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丁未至月十日 趙膺鎬 丁未至月十日 趙膺鎬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847년(헌종 13)에 조응호가 사돈에게 보낸 서간 1847년(헌종 13) 11월 10일에 조응호(趙膺鎬)가 사돈에게 보낸 서간(書簡)이다. 일전에 노(奴)가 돌아오면서 가져온 답장이 아직껏 위로되고 있다며 상대방의 안부를 물었다. 며느리의 병은 약을 써도 낫지 않아 쾌차를 바라기는 어렵지만, 조금이라도 일어나 움직이고 살아서 시가(媤家)에 돌아온다면 정말 다행일 것이라고 하였다. 친구 권익산(權益山)을 만났더니 이미 환곡을 마감했다 하여 기뻤다고 하면서 여러 달 업무가 적어 가려고 했는데 마침 작은 일이 있어 며칠 기다렸다가 길을 나설 계획이라고 하였다. 조응호(趙膺鎬 1795~?)의 본관은 임천(林川)이며 자(字)는 명여(命汝)이고, 부는 조재의(趙在儀)이다. 1837년 식년시 진사로, 훈련주부(訓鍊主簿), 정포만호(井浦萬戶)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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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년 재종손(再從孫) 김익현(金翼鉉)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丁未四月二十日 翼鉉 丁未四月二十日 崔翼鉉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정미년에 재종손 김익현이 보낸 서간 정미년(丁未年) 4월 20일에 재종손(再從孫) 김익현(金翼鉉) 이 보낸 서간(書簡)이다. 지난번 올린 편지는 받았으리라 생각되건만 소식이 막힌 지 한 달이 넘었다고 하였다. 그 사이의 상대방 건강과 가족들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부모님 곁에서 그런대로 지내는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고 하였다. 돌아가는 인편에 묵(墨) 1정(丁)을 보냈는데 받았는지 물었다. 상경(上京)한 뒤에 사용해야 할 돈이 많지만, 나올 곳이 조금도 없으니 상대방 쪽에 혹 돈이 있어 한 꿰미 빌려준다면 올해 안에 갚겠다고 하였다. 재촉할 돈은 8, 9냥이니 어려운 사정을 헤아려 빌려달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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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인년 두엽(斗燁) 한글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甲寅十二月卄七日 張斗燁 金生員 甲寅十二月卄七日 張斗燁 金生員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갑인년에 이질 장두엽이 김생원에게 보낸 한글 서간 갑인년(甲寅年) 12월 27일에 이질(姨侄) 장두엽(張斗燁)이 김생원(金生員)에게 보낸 한글 서간(書簡)이다. 목화 30근을 다른 사람에게 방매할 처지이나 품질이 좋아 통지하니 몸소 내려와서 보고 가져가라고 하였다. 오늘 배를 띄우니 모든 일 제쳐 두고 내려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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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8년 조응호(趙膺鎬)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戊申元月七日 趙膺鎬 戊申元月七日 趙膺鎬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848년(헌종 14) 조응호가 보낸 서간 1848년(헌종 14) 1월 7일에 조응호(趙膺鎬)가 사돈에게 보낸 서간(書簡)이다. 수신자는 장암(場巖) 송대흥(宋大興)이다. 지난번에 심부름꾼이 돌아와 상대방의 편지를 보았다며 새해의 안부를 물었다. 손부(孫婦)의 환후는 속히 완쾌되어 완전해지겠는지 묻고 자신은 어제와 같고 아이들 감기가 나아지니 다행이라고 하였다. 반물완(盤物阮)의 명을 받들었으나 지금 서울 편지에 있는 일을 보니, 반직(盤直)이 추수(推輸)하여 올리라고 하기에 보고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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昨者伻回伏承下覆伏審新正靜中體度迓新萬護閤節安重何等伏賀令孫婦患候尙未奏效子嫌藥後動靜猶有未祛本誠極悶然何對速瘳就完耶伏問日間體節護安諸憂或有益勝之喜耶伏溸且念査下生省引猶昨室憂拔報而向合兒子感証有減私幸私幸盤物阮承命矣以換而定矣今見京書有悶慮之事自盤直推輸上之報云故玆以仰告考標仗卽爲出給去隷若何近來人心多有未盡信之患矣今見此報良覺脫然爲此略白不備上候禮戊申元月七日査下生趙膺鎬再拜數爲回台五十五矣日前自此標紙竝套送若何(皮封)場巖宋大興宅入納三閒上候書 謹封(別紙)錢文肆百伍拾兩出付此報事(別紙)戊申元初八日盤谷標錢文肆拾伍兩送三閒印戊申正月初三日場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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