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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6일 初六日 ○출발하여 사동(蛇洞)11) 객점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도중에 밤사이 지은 시를 다음과 같이 읊었다.이날 저물녘 운교에 투숙하였는데(雲橋此日暮投身)낡은 주막은 쓸쓸하여 이웃이 적네(廢幕蕭條小結隣)잠을 이루지 못하고 고향을 꿈꾸니(就寢不成鄕里夢)빈대가 우리 두세 사람을 물어대네(蝎虫侵我兩三人)윤경이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만물 가운데 너는 몸이 가지고 있는데도(萬物之中爾有身)평생 미워하며 가까이 이웃하지 못하였네(平生可憎不近鄰)그놈은 살갗도 피도 없고 부르기도 더러운데(渠無膚血喚亦醜)아무 때나 품속에 들어와 몰래 사람을 무네(時入懷中暗噬人)이찬은 병으로 화답하지 못하였다. 국평(菊坪)12) 앞에 이르러 서울에서 내려오는 배덕손(裵德孫)을 만났다. 서서 몇 마디 나누고, 다만 입으로 소식을 전하였다. 평당(坪塘)13) 앞에 이르러 일행은 곧바로 객점으로 가고, 나는 평당의 일가 송필동(宋必東) 씨 집에 들러 잠시 얘기를 나누고 거기서 요기를 하였다. 하서(夏瑞)가 사는 마을을 상세히 묻고 객점으로 나와 일행과 출발하였다. 두치(斗峙)14)를 넘다 중도에 다음과 같이 시를 읊었다.세 사람 중에 나만 유독 쫓아갈 수 없어서(三人我獨不能從)번번이 일행과 뒤처져 지팡이 하나만 짚고 가네(每後行裝但一笻)천천히 걸어서 오르고 올라 두치에 이르니(緩步登登臨斗峙)눈앞에 천만 개의 산봉우리가 펼쳐져 있네(眼前羅列萬千峰)굴암(屈岩)에 이르러 잠시 쉬었다. 도마교(逃馬橋)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이날 60리를 갔다. 이날 밤에 비가 밤새도록 내렸다. ○發抵蛇洞店朝飯。 路吟夜間韻曰: "雲橋此日暮投身, 廢幕蕭條小結隣。 就寢不成鄕里夢, 蝎虫侵我兩三人。" 允卿次曰: "萬物之中爾有身, 平生可憎不近鄰。 渠無膚血喚亦醜, 時入懷中暗噬人。" 而贊病未和。 抵菊坪前, 逢裵德孫之自京下來。 立談數語, 只傳口傳消息。 抵坪塘前, 同行直往酒店, 余則入坪塘宗人必東氏家暫話, 仍爲療飢。 詳問夏瑞所居村名出來酒店, 與同行發程。 越斗峙, 路中吟一絶曰: "三人我獨不能從, 每後行裝但一笻。 緩步登登臨斗峙, 眼前羅列萬千峰。" 抵屈岩暫憩。 抵逃馬橋留宿。 是日行六十里。 是夜雨達夜。 사동(蛇洞) 전라남도 곡성군 고달면 대사리이다. 국평(菊坪) 전라북도 임실군 오수면 대명리 국평 마을이다. 평당(坪塘) 전라북도 임실군 오수면 군평리 평당 마을이다. 두치(斗峙) 전라북도 임실과 오수를 잇는 길로 '말재'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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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10일 初十日 ○《성묘록(省墓錄)》에 이름을 적었다. 밤에 〈성묘〉 시 1수를 다음과 같이 읊었다.우리 선조의 산소에 성묘를 하면서(省拜吾先墓)어찌 근본에 보답하는18) 마음 없으리(孰無報本心)때는 서리 이슬 내리는 계절이니(時維霜露節)추모의 감회를 서글퍼 억누르기 어렵네(追感愴難禁)이찬이 차운하여 다음과 같이 읊었다.듣기로 선조의 산소를 돌보는 계절이라는데(聞得先壠守護節)산소에 들어서니 후손의 마음 부끄럽기 그지없네(入山多愧後孫心)사패지의 경계가 칠 리라는 유언이 남아있기에(環封七里遺言在)조서가 언제쯤 대궐에서 내려졌는지 생각하네(思詔何時降紫禁)윤경이 차운하여 다음과 같이 읊었다.우리의 관향은 호산이니(吾人貫鄕是壺山)어제 저물녘 투숙함은 근본에 보답하는 마음에서네(昨暮投宿報本心)귀두가 떨어져 나간 옛 유적 남아 있건만(龜頭剝落遺古蹟)묘소 모양은 새롭게 변해 한탄을 금치 못하겠네(墓貌維新恨不禁)이에 아침을 먹고 출발하였다. 소로(小路)를 거쳐 대로(大路) 객점에 이르니 심천(深川)에 사는 일가 철(澈)과 필(泌) 두 사람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여러 해 동안 만나지 못한 터에 오늘 이렇게 만나니 기쁘고 행복하였다. 그 산송(山訟)에 대해 듣고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분했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는데 닭과 술을 내와서 참으로 고마웠다. 출발하여 올정(兀項)에 이르기 전, 내려가는 사람이 길보가 사교(沙橋)19)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기별을 전하였다. 그래서 급히 사교로 갔는데, 길보는 그의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에 말을 재촉하여 전당(錢塘)의 길보 집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학동(學洞) 소식을 물으니, 재회(齋會)가 20일로 정해졌다고 하여 몹시 기대되었다. ○書名《省墓錄》。 夜間吟《省墓》韻一絶曰: "省拜吾先墓, 孰無報本心。 時維霜露節, 追感愴難禁。" 而贊次曰: "聞得先壠守護節, 入山多愧後孫心。 環封七里遺言在, 思詔何時降紫禁。" 允卿次曰: "吾人貫鄕是壺山, 昨暮投宿報本心。 龜頭剝落遺古蹟, 墓貌維新恨不禁。" 仍朝飯發程。 由小路抵大路酒店, 則深川居宗人澈及泌兩人來待, 而積年阻面之餘, 今此逢面 忻幸。 聞其山訟事, 憤不勝言。 移時談話。 仍進鷄酒, 可賀可賀。 發程, 未及兀項, 下去之人, 傳吉甫留待沙橋之奇。 故急來沙橋, 則吉甫入去其家矣。 仍促鞭, 得達錢塘吉甫家留宿。 問3)學洞消息, 則齊會以十二日爲定, 故苦待苦待矣。 근본에 보답하는 원문의 '보본(報本)'은 조상의 은혜를 갚는 것으로 제사를 이른다. 옛날 가을에 서리가 내려 초목의 잎이 모두 떨어지면 조상을 추모하여 제향을 올렸다. 사교(沙橋)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신교리이다. 問 저본에는 '聞'으로 되어있으나 문맥에 따라 '問'으로 수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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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十三日 ○아침을 먹은 뒤 재실에 회의석을 마련하였다. 모두 자리에 모여 논의를 낼 적에 먼저 회의 안건의 조목을 적었다. 매월당(梅月堂) 김 선생(김시습(金時習))과 서재(西齋) 송 선생(송간(宋侃)), 망월암(望越菴) 이 선생(李先生) 축(蓄)24)을 추배할 생각으로 당장(堂長) 3명, 공사원(公事員) 1명, 색장(色掌) 1명을 정하였다. 이에 논의를 만들기 위해 공사원이 먼저 의견을 내니, 당장 이하 모두가 말하기를 "여러분의 의견과 서로 같습니다."라고 하였다. 오촌(鰲村) 장석(丈席)25)에게 정품(呈禀)하고, 감영에 정서(呈書)하고, 원장에게 정품할 뜻으로 충분히 의견을 주고받으며 상의를 하였다. 자리를 파한 뒤에 어떤 사람은 가고 어떤 사람은 남았다.오후에 일행과 광정(廣亭)의 김계원(金啓源)과 동학사(東鶴寺)로 갔다. 초혼각(招魂閣)을 둘러보았는데 전각 안의 단종이 쓴 어휘(御諱)와 궤(櫃) 안에서 나온 《초혼록(招魂錄)》을 다 보고 나서, 그길로 절 안에 들어가 월인(月仁) 스님을 불러서 만났다. 스님은 이 절을 중창한 스님으로 당시 나이가 83세였는데, 아주 많은 고적을 전해 주었다. 조금 쉬고 나서 서원 밑으로 내려와 유숙하였다. ○朝飯後, 設齋會席。 濟濟會座, 發論之際, 先書會議事節目。 而梅月堂金先生、西齋宋先生、望越菴李先生蓄追配之意, 定堂長三人, 公事員一人, 色掌一人。 仍爲成議, 而公事員先爲發論, 則堂長以下皆曰: "僉議詢同。" 呈禀于鰲村丈席, 呈書于營門, 呈禀于院長之意, 爛熳商議, 而罷坐後, 或去或留。 午後與同行及廣亭金啓源, 往東鶴寺。 玩招魂閣, 則閣內書端宗御諱, 自櫃中出《招魂錄》, 皆玩後, 仍入寺中招見月仁僧。 僧卽此寺重創之僧, 而時年八十三, 頗傳古蹟。 小憩後, 下來院底留宿。 이 선생(李先生) 축(蓄) 1402~1473. 자는 윤보(潤甫)이며, 본관은 한산(韓山)이다. 이색(李穡)의 증손이다. 장석(丈席) 송치규(宋穉圭, 1759~1838)이다. 자는 기옥(奇玉)이고, 호는 강재(剛齋)이며, 본관은 은진이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송시열의 6대손으로 김정묵의 문인이다. 당시 오촌에 살아 '오촌 선생(鰲村先生)'이라고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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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十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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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7년 홍성초(洪聖楚) 세음기(細音記) 1 고문서-치부기록류-추수기 경제-농/수산업-추수기 丁卯四月五日 洪聖楚 丁卯四月五日 1867 洪聖楚 地主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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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7년 정유식년(丁酉式年) 사마방목(司馬榜目) 고문서-치부기록류-방목 정치/행정-과거-방목 合格者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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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 부안김씨가(扶安金氏家) 애감록(哀感錄) 고문서-치부기록류-조객록 종교/풍속-관혼상제-조객록 癸卯十二月二十七日 癸卯十二月二十七日 1903 扶安金氏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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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례휘찬(簡禮彙纂) 목록(目錄) 고문서-치부기록류-서목 교육/문화-출판/인쇄-서목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간례휘찬의 목록. 고종 연간에 간행된 서식집 간례휘찬(簡禮彙纂)의 목록(目錄)이다. 간례휘찬은 통상 간찰서식집을 가리키지만, 여기에 제시된 목록에서는 각종 축문과 제문 등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여지는 각종 문서의 투식을 기록해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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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5년 부안군(扶安郡) 동도면(東道面) 향약법문(鄕約法文) 고문서-치부기록류-계문서 사회-조직/운영-계문서 乙亥七月 乙亥七月 1875 留鄕所 전라북도 부안군 동도면 7.4*7.4(정방형) 적색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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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8년 부안김씨가(扶安金氏家) 조객록(吊客錄) 고문서-치부기록류-조객록 종교/풍속-관혼상제-조객록 戊辰十一月二十八日 戊辰十一月二十八日 1868 扶安金氏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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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5년 희현당(希顯堂) 동연록(同硏錄) 고문서-치부기록류-계문서 사회-조직/운영-계문서 乙卯年五月 乙卯年五月 1855 扶安金氏家 전라북도 전주시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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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부안김씨가(扶安金氏家) 계안(稧案) 고문서-치부기록류-계문서 사회-조직/운영-계문서 庚申十一月 庚申十一月 1860 扶安金氏家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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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년 임재근(林在根) 모(母) 관련 기록. 고문서-치부기록류-문중기록 사회-가족/친족-종중/문중자료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임재근의 모와 관련된 단편 기록. 임재근(林在根)의 모(母)와 관련된 단편 기록이다. 임신년 6월 초2일에 임재근의 어머니가 30냥을 가지고 올라가라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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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부안김씨가(扶安金氏家) 계안(稧案) 고문서-치부기록류-계문서 사회-조직/운영-계문서 壬戌十一月日 壬戌十一月日 1862 扶安金氏家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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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 부안김씨가(扶安金氏家) 추수기(秋收記) 고문서-치부기록류-추수기 경제-농/수산업-추수기 戊戌年十二月 戊戌年十二月 1898 扶安金氏家 地主 小作人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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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생 관상조감평(觀相藻鑑評) 고문서-치부기록류-추수기 경제-농/수산업-추수기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000162로 추가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정해년에 작성된 관상조감평. 정해생(丁亥生)에 작성된 관상조감평(觀相藻鑑評)이다. 감결류(鑑訣類)의 문기(文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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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년 부안김씨가(扶安金氏家) 추수기(秋收記) 일편(一片) 고문서-치부기록류-추수기 경제-농/수산업-추수기 己巳正月二十三日 己巳正月二十三日 扶安金氏 門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기사년 정월에 부안김씨가에서 작성된 추수기 일편. 기사년(己巳年) 정월 23일에 부안김씨가(扶安金氏家)에서 작성된 추수기(秋收記)의 한 조각으로, 도조건(賭租件)이라는 제목 아래 고을별로 소작인들의 도조가 적혀 있다. 이 쪽지에는 3명이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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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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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갑자년 부안김씨가(扶安金氏家) 추수기(秋收記) 일편(一片) 고문서-치부기록류-추수기 경제-농/수산업-추수기 甲子四月初五日 甲子四月初五日 扶安金氏 門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부안김씨가에서 작성된 추수기 일편. 부안김씨가(扶安金氏家)에서 작성된 추수기(秋收記)의 한 조각으로, 갑자년 4월 초5일 박덕유(朴德裕) 3냥 5전라고 적고, 5냥은 오는 가을 추심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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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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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관통보류

감결류(鑑訣類) 문기(文記) 초(抄) 고문서-첩관통보류-감결 정치/행정-명령-감결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감결류의 내용을 베낀 문서. 감결류(鑑訣類)의 내용을 베낀 문서로, 전체의 일부로 추정된다. 중간 중간에 간지를 적고, 그 해에 상응하는 비상한 내용을 은유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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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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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837년 김응상(金膺相) 호구단자(戶口單子) 고문서-증빙류-호적 사회-인구/호적-호적 道光十七年丁酉 幼學金應相 道光十七年丁酉 金膺相 扶安縣監 전라북도 부안군 行縣監[着押] 부안 돈계 김응상 후손가 부안 돈계리 김응상 후손가 1837년(헌종 3)에 부안현 남하면 둔계리에 거주하는 김응상이 작성하여 부안현에 제출한 호구단자. 1837년(헌종 3)에 부안현(扶安縣) 남하면(南下面) 둔계리(遯溪里)에 거주하는 김응상(金應相)이 작성하여 부안현(扶安縣)에 제출한 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김응상의 본관은 부령(扶寧)으로, 당시 62세였다. 그는 아내 남원양씨(南原梁氏, 43세)와 결혼한 큰 아들 양묵(養黙, 33세) 큰며느리 개령신씨(開寧尋氏, 28세) 둘째아들 일묵(一黙, 23세) 둘째며느리 전의이씨(全義李氏, 22세) 및 아직 결혼하지 않은 세째아들 원묵(元黙, 14세) 등과 함께 살고 있었다. 이 때 호주 응상(應相)은 응상(膺相)으로 개명하였으며 아들 일묵(一黙)도 천묵(天黙)으로 개명한 것으로 나온다. 문서 하단이 절단되어 노비에 관한 기록은 알 수 없고 다만 '주협무개인(周挾無改印)'은 추정하여 기록하였다. 부안현 남하면 둔계리는 오늘날의 부안군 주산면 돈계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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