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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홍【원현】에게 답함 答鄭琦弘【遠鉉】 형께서 장성(長城)에 가신다는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혹시 돌아가는 길에 저를 찾아오실까 생각했었는데, 내 집 아이의 말을 들으니 사정이 생겨서 지나치셨다고 하였습니다. 멍하니 넋을 놓고 있는데 뜻밖으로 젊은 사람과 동자(童子)가 날 듯이 문으로 들어오기에 누군지 물었더니 영종(令從)과 영윤(令允)이었습니다. 위로가 되고 마음이 놓이는 것이 형을 뵙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었겠습니까. 하물며 한 통의 편지가 따라왔으니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편지를 본 이후로는 더욱 그리운 마음이 깊어갑니다. 책자전(冊子錢)은 수효에 맞추어 잘 받았습니다. 다만 생각건대 형께서 넉넉지 않은 형편으로 이렇게 곤궁한 시절을 만나 어떻게 이 돈을 마련하셨습니까? 선현(先賢)을 사모하고 자손을 광구보익(匡救輔翼 잘못을 바로잡아 도와줌)하는 계책이 실로 흠앙(欽仰)스럽습니다. 며칠 전에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의 호)의 편지를 받으니 이달 그믐 안으로 책을 나누어준다고 합니다. 그때 응당 전인(專人)이 가져올 것입니다. 아우는 보름 이후로 구례(求禮)에 가려고 하는데, 대체로 영남(嶺南)의 여러 벗과 약속을 정하여 중간에서 서로 만날 계획입니다. 聞兄作長城之行。意或回程見過。及聞鄙豚語。以有礙而戞過云。悵然失圖。謂外有一少年一童子。翩然入門。問之是令從及令久也。慰豁開浣。與拜兄何間。況有一幅心畫隨之。警讀以還。尤用傾倒。冊子錢照數謹領。第念兄以不贍之力。際此窮節。何以辦此。其所以思慕先賢。救翼子孫之計。實可欽仰。日間得松沙書。以今晦內分冊云。其時當專人運來耳。弟望後作求禮行。蓋嶺南諸友有約。爲中路相見計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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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면암 어른을 모시고 최계남【숙민】, 정애산, 기송사186)【우만】 등 여러 벗들과 칠불사187)를 유람하다 陪勉庵崔丈。與崔溪南【琡民】鄭艾山奇松沙【宇萬】諸友。遊七佛寺 선생이 지팡이 짚고 남악을 유람하니 (先生杖屨遊南嶽)신비하고 신령한 곳에서 비로소 시를 지었네 (神秘靈區始賞音)우연히 부생이 낭풍188)에 오르고 싶은 소원 이루고 (偶遂浮生登閬願)겸하여 평소 스승처럼 모시고 싶은 마음을 갚았네 (兼酬平日執鞭心)쌍계의 옛 나루엔 외로운 구름이 지나니 (雙溪古渡孤雲去)칠불사 어느 누대에서 옥보를 찾을까 (七佛何臺玉寶尋)더구나 다시 시원하고 날씨가 좋으니 (況復新涼天氣好)도처에서 마음대로 읊조려도 무방하리 (不妨到處盡情吟) 先生杖屨遊南嶽。神秘靈區始賞音。偶遂浮生登閬願。兼酬平日執鞭心。雙溪古渡孤雲去。七佛何臺玉寶尋。況復新凉天氣好。不妨到處盡情吟。 기송사(奇松沙) 기우만(奇宇萬, 1846~1916)이다. 본관은 행주(幸州), 자는 회일(會一), 호는 송사이다. 전라남도 장성 출신으로, 참봉 벼슬을 하였으므로 기참봉으로 불렸다. 호남에서 이름이 높았던 참판 기정진(奇正鎭)의 손자로서 그의 학업을 이어받아 일찍이 문유(文儒)로 추앙받았다. 칠불사(七佛寺)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범왕리 지리산 반야봉에 있는 사찰이다. 낭풍(閬風) 신선이 산다는 곤륜산 꼭대기에 있는 봉우리로, 낭풍전(閬風巓) 또는 낭풍대(閬風臺)라고 한다. 굴원(屈原)의 「이소경(離騷經)」에 "아침에는 내 백수를 건너고 낭풍에 올라서 말고삐를 매려네.[朝吾將濟於白水兮, 登閬風而緤馬.]"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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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애36) 민 어른【주현】께 올림 上沙厓閔丈【胄顯】 삼가 봄이 저물어 가는 가운데 대감의 체후는 편안하신지요. 새로 우거하는 곳은 조용하고 한가하여 만년에 편안히 수양하기에 알맞은 곳이리라 생각됩니다. 문장(文丈)께서는 안으로 가정에서 익히고 밖으로 스승에게 배웠으니, 바른 학문과 높은 덕의는 실로 오늘날 후배들이 의심스러운 것을 질정하고 덕을 상고하는 터전이 됩니다. 하지만 궁벽한 시골에 칩거하며 가난과 병으로 고생하느라 아직도 나아가 책상 아래에서 절하고 문 앞을 쓰는 예를 펴지 못하고 있으니, 서운하고 슬픈 저의 마음이 어떠하겠습니까. 어른의 숙부이신 교채와(咬菜窩) 선생37)이 지은 《심경주해(心經註解)》는 소생이 몇 해 전에 읽은 적이 있습니다. 박학하고 정밀하여 사문을 보호한 것에 대해 탄복하였는데, 문득 세상을 떠나셨기에 가까이서 모시지 못한 것이 너무나 한스럽습니다. 듣건대 그 맏아들 되시는 어른께서 그 가법을 계승하여 명망이 높다고 하니, 저도 모르게 옷깃을 여미게 됩니다. 삼가 몇 글자의 편지를 보내 안부를 묻는 것을 대신하고자 하였지만 노쇠하고 병든 몸이라 어려움을 꺼려 실행하지 못했습니다. 伏未審春暮台體寧適。新寓蕭散。其爲晩景燕養。想有其所矣。文丈內襲家庭。外事師友。其學問之正。德義之崇。實爲今日後生質疑考德之地。而跧伏窮峽。困於貧病。尙未有拜床掃門之禮。下情悵缺。爲何如哉。尊叔父咬菜窩先生所撰心經註解。生讀之有年。嘆其博洽精微。羽翼斯文。而奄成千古。未得摳衣爲至恨。聞其胤丈繼述厥模。聲望隆重不覺斂衽。切欲以數字代候。而衰疚在躬。畏難未果耳。 사애(沙厓) 민주현(閔冑顯, 1808~1882)으로,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치교(穉敎), 호는 사애이다. 매산(梅山) 홍직필(洪直弼)의 문인이다. 44세에 경과 정시(慶科庭試)에 급제하였다. 관직에 있을 때 국방과 교화에 대한 정책을 주장하였고, 만년에는 학문을 강론하면서 후진양성에 전념하였다. 《사애집(沙厓集)》을 남겼다. 교채와(咬菜窩) 선생 민백촉(閔百爥, 1779 ~ 1851)으로,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욱지(郁之), 호는 교채와(咬菜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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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환【갑기】에게 답함 答宋永煥【甲基】 한 폭의 덕음(德音)을 받고 놀란 듯이 하여 어루만지면서 되풀이해서 읽자니 매우 위로가 되었습니다. 서한을 통해서 남쪽에 이른지 여러 날이 되었고 부모님을 모시면서 경서를 공부하는 안부가 줄곧 여유롭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얼마나 간절히 듣고 싶었던 말이겠습니까. 다만 근래에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문장을 외우는 것은 우리 유자(儒者)가 살아가는 방도가 아니고 명리(名利)를 뒤쫓는 것은 우리 유자의 원대한 계책이 아닙니다. 최고의 진전(眞詮)의 첫 번째 법문(法門)은 집을 벗어나지 않아도 보존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고인이 자기에게서 구하고 남에게 구하지 않으며 내면에 힘쓰고 외면에 힘쓰지 않았던 까닭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가죽이 없는데 털을 장차 어디에 붙이겠으며 토대가 없는데 집을 장차 어디에 짓겠습니까. 생각건대 우리 벗께서도 이 점에 대해서 이미 환히 알고 계시며 단서를 만들고 근본을 수립하는 방도에 잘못됨이 없습니다. 굳이 이처럼 소경이나 귀머거리에게 억지로 보고 듣기를 강요하여 그들이 본 것을 찾고 들은 것을 빌리겠습니까. 도리어 부끄럽습니다. 게다가 저 같은 자는 어려서 학문을 익히지 못하고 늙어서도 알려진 것이 없이 산 아래로 기우는 해처럼 목숨이 다해가는 만년이니 어찌 이 세상에 역할이 있고 없고를 따지고 사우(士友)들 사이에서 우열을 따질 수 있겠습니까. 단지 하문(下問)하시는 성의를 입어 감히 용서받을 수 없는 말씀을 올립니다. 굽어살피고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一幅德音。得之若驚摩挲繙閱。慰沃良深。仍審南至有日。侍旁經履。一盲佳裕。何等願聞之至。但未知近來所讀何書。所業何事。文詞記誦。非吾儒活計聲利追逐。非吾儒長算。太上眞詮。一等法門。不出戶而存焉。此古人所以求諸已而不求諸人。務於內而不務於外者也。不然支皮之不存。毛將安附。基之不有。室將安築。想吾友已瞭然於此。而所以造端立本者。無有滲漏矣。何必使之勉强盲聾。而索視借聽乃爾耶。旋用愧愧。況如愚者。少而失學。老而無聞。奄奄晩景。如日下山。何足有無於斯世。而上下於士友間哉。特荷垂訊之勤。敢效不恕之言。幸俯諒而恕存之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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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중함【회철】에게 답함 答梁仲涵【會澈】 뜻밖에 정다운 편지가 손에 들어왔으니, 감사한 마음 능히 표현하지 못하겠네. 인하여 어버이를 기쁘게 모시는 체후와 절도가 더욱 복된 줄 알았으니, 실로 듣고 싶은 마음에 흡족하였네. 편지에서 "점검하는 것이 날로 해이해지고 성의가 독실하지 못하다."라고 하였으니, 스스로 반성하기를 매우 치밀하게 하면서도 날을 부족하게 여기는 뜻을 볼 수 있었네. 무릇 하루 12시 가운데 이렇게 점검하여 조금이라도 유유하게 보내는 마음과 태도가 있지 않도록 한다면 학문하는 도에 큰 근본이 설 것이니, 어찌 마장(魔障)이 많이 침범하여 변화하기가 실로 어려움을 근심하겠는가? 그러나 처음 길에 들어서는 곳에서는 오로지 독서하여 앎을 지극하게 하는데 달려 있을 뿐이네. 《논어》의 박문(博文)과 《맹자》의 명선(明善)과 《중용》의 도문학(道問學)은 이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매번 생각건대 그대는 총명하고 개오(開悟)한 재주로 고인의 위기(爲己)의 학문134)에 뜻을 두고 있고, 또 부모님이 모두 살아 계시고 형제가 무고하여 봄의 좋은 시절이니, 내가 종유하는 사이에 기대하고 바라는 것이 그대에게 있지 않은 적이 없었네. 부디 힘써 노력하시게. 謂外情幅入手。感沃不能名諭。仍審侍省怡愉。體節增祉。允副願聞。示喩點檢日弛。誠意不篤。可見自省甚密。惟日不足之意也。大抵一日十二時。若是點檢。勿使少有悠悠意態。則爲學之道。大本立矣。何憂乎魔障之侵多。變化之實難也。然其開頭入路處。則專在乎讀書而致知耳。論語之博文。孟子之明善。中庸之道問學。其非謂是耶。每念吾友以聰明開悟之才。有意於古人爲己之業。而且在俱存無故。靑陽好時節。區區所以期望於遊從之間者。未嘗不在於左右也。勉旃勉旃。 위기(爲己)의 학문 자신의 덕성을 닦기 위해 공부하는 것을 말한다. 자세한 내용은 앞의 주석 '위기(爲己)와 위인(爲人)'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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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선【병례】에게 답함 答曺亨善【秉禮】 가을의 서늘한 기운이 막 일어나는데, 그대를 그리는 마음은 참으로 깊어지네. 오랫동안 격조한 가운데 뜻밖에 화려한 문장의 편지를 받아보니, 어찌 다만 공청(空靑)97)의 귀함 뿐이겠는가. 고마운 마음 말로 표현하기 어렵네. 인하여 조부모와 부모를 기쁘게 모시면서 신령이 도와 건강하다고 하니 실로 지극히 듣기 원하는 바이네. 나는 얼마 전에 생도들을 물리쳐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쉬고 있으니, 대개 노쇠함과 병환이 몸을 공격하여 견디기 어렵네. 봄철 강회에 그대가 찾아와 자리를 빛내주길 바랐는데 끝내 발걸음을 아꼈으니, 잘 모르겠네만 가을 강회 때는 분명코 멀리하지 않으시겠지. 우러러 그리는 마음 항상 간절하네. 항상 생각하건데 덕 있는 가문의 의를 행함이 사림에 알려진 지 오래 되었는데 3~4대가 모두 생존하여 아무 일 없이 지내는 것이 또한 이와 같으니, 하늘이 덕 있는 이를 돕는 것은 이치상 참으로 마땅하네. 원컨대 우리 벗은 이런 좋은 운수와 좋은 시절에 미쳐 부지런히 학문에 힘써서 옥처럼 자신을 만들어98) 하늘의 두터운 은택에 보답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秋凉初動。懐人政勤。料外賁翰入手。積阻之餘。何啻空靑之爲貴也。感感不容喩。因承審重省歡慶。神相百福實協願聞之至。義林日前謝。遣生徒。歸臥於家。盖衰疾侵凌。有難甚耐也。春講固俟賁臨。而竟靳跫音。未知秋講果爾不遐否。瞻注每至。每念德門行義。聞于士林久矣。而三四世俱存無故又如此。天相有德。理固冝然。願吾友迨此好氣數好時節。勉勉進學。益用玉成。以答天餉之厚。如何如何。 공청(空靑) 한약 약재의 한 종류이다. 옥처럼 자신을 만들어 송(宋)나라 장재(張載)의 〈서명(西銘)〉에 "빈궁과 걱정 속에 처하게 함은, 그대를 옥으로 이루어 주려 함이로다.[貧賤憂戚 庸玉汝於成也]"라는 말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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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두일에게 답함 答文斗一 보여준 내용이 자세하여 읽어봄에 나로 하여금 감탄하게 하였네. 붕우의 도움은 실로 없을 수 없으나 어버이의 연세가 많으면 형편상 멀리 나가 놀 수 없으니, 집의 글방을 깨끗이 청소하여 형제와 책상을 마주하는 것이 어찌 최선이 아니겠는가? 독서하여 이치를 궁구하다가 의심스럽고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원근의 친구들과 편지를 왕복하며 강토하면 붕우의 도움이 없지 않을 것인데, 하필 양식을 찧고 채찍을 잡아 훌륭한 스승을 두루 찾아다닌 뒤에야 도움이 된다고 하겠는가? 이것은 거의 오늘날 퇴폐한 풍습이네. 좋은 스승은 내 마음에 있다는 것은 또한 긴요하고 절실한 말이네. 마음에 갖춘 것은 바로 천리이네. 이 때문에 존심(存心)이 하늘을 섬기는 것이고 기심(欺心)이 하늘을 속이는 것이네. 하루하루 사이에 자신의 마음을 엄한 스승으로 여겨 감히 태만하지 않고 감히 속이지 않아, 오래도록 지속하여 간단(間斷)을 용납하지 않는다면, 물욕이 물러나고 천리가 유행할 것이네. 오호라! 감히 태만하지 않는 것은 경(敬)이고, 감히 속이지 않는 것은 성(誠)이네. 이것은 예로부터 여러 성현이 서로 전한 비결이니, 힘쓰시게. 示中縷悉。讀之令人發歎。朋友之助。固不可無。然親年邵隆。勢不可遠遊。則淨掃家塾。兄弟對床。豈非善之善者乎。讀書窮理。有所疑晦。則往復講討於遠近知舊之間。未嘗不是朋友之助。何必舂粮執策。遍歷周訪而後謂之助哉。此殆今日之敝風也。良師在吾方寸間。亦是緊切語。心之所具。卽天理也。是以存心所以事天也。欺心所以欺天也。日日之間。以已心爲嚴師。不敢慢不敢欺。久久接續。無容間斷。則物欲退聽。天理流行。嗚乎。不敢慢。敬也。不敢欺誠也。此是從古群聖相傳旨訣。勉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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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회【승엽】에게 답함 答金汝晦【承燁】 손자가 그대가 있는 곳으로부터 돌아온 뒤로 한결같이 소식을 듣지 못하였는데, 가을바람이 집에 불어오자 문득 편지가 따라 이르렀으니, 위로되는 마음 어찌 말하겠는가? 또 어버이를 모시며 지내는 생활이 절서에 따라 보중한 줄 알았으나 다만 형제의 근심과 아내의 병환이 오래 도록 낫지 않은 지 여러 날이 되었으니, 이 때문에 놀랍고 염려되네. 해상(海上)에 있는 안경백(安慶伯)에게 경서를 배우다가 이 때문에 그만두고 돌아와 의원을 찾고 약을 수소문하니 그 괴로움이 어떠하겠는가? 먼 외지에서 단지 무익한 생각만 간절할 뿐이네. 그러나 화락한 군자를 신명이 도우니, 어찌 조화를 얻어 태평해지는 경사가 없겠는가? 이것으로 기도하고 축원할 뿐이네. 의림(義林)은 봄과 여름동안 병으로 신음하였고 가을이 되어도 낫지 않았는데, 바로 한 달 전에 재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그저 시름을 달래는 계획을 하고 있을 뿐이네. 책자는 단지 여가가 생기는 날에 열람할 계획이니, 헤아려 주는 것이 어떠하겠는가? 음식을 고맙게 보내주었는데, 그대는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고 있는 처지에 조석으로 필요한 모든 것들이 반드시 넉넉하지는 않을 것인데, 어찌 지나치게 벗에게까지 보내주는 것인가? 매우 감사한 나머지 문득 불안한 마음 절실하네. 孫兒自那上還後。一向不聞消息。秋風入庭。便書隨至。慰豁何言。且審侍省起居。連序衛重。而但棣憂閤患。彌留有日。是庸驚慮。海上經帷。以是撤還。而尋醫問藥。其苦何如遠外只切無益之思而已。然神相愷悌。豈無天和回泰之慶。以是祈祝耳。義林春夏吟病。至秋不愈乃於月前。罷齋歸家。爲聊且自遣計耳。冊子。第以餘日爲看閱計。諒之如何。惠饋。賢在篤老下。朝夕凡百。想必不贍。而何以過及於朋友耶。感感之餘。旋切不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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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남 홍경좌72)【채주】를 방문하여 회포를 풀다 訪鳳南洪卿佐【埰周】酬懷 오늘 그리움에 물가에 이르니 (今日相思到水頭)주인은 나를 맞이하려 서루에서 기다리네 (主人邀我倚書樓)월계수 사이에는 봄빛이 감돌고 (月桂樹間春色在)금오산 아래에는 골짜기에 구름이 머무네 (金鰲山下洞雲留)연조에서 검가 부르던 이73) 모두 방랑하던 자취이고 (燕趙劍歌皆浪跡)진당에서 시 짓고 술 마시는 이74) 모두 한가한 부류일세 (晉唐詩酒摠閑流)몇 년 전부터 서로 따른 것 무슨 뜻이었던가 (年來追逐曾何意)오직 공부하고 노력하여 구하는 것이었네 (惟有功夫努力求) 今日相思到水頭。主人邀我倚書樓。月桂樹間春色在。金鰲山下洞雲留。燕趙劒歌皆浪跡。晉唐詩酒摠閑流。年來追逐曾何意。惟有功失努力求。 홍경좌(洪卿佐) 홍채주(洪埰周, 1834~1887)이다. 본관은 풍산(豐山), 자는 경좌(卿佐), 호는 봉남(鳳南)이다. 연조(燕趙)에서……이 전국 시대 연(燕)·조(趙)에는 자객(刺客) 형가(荊軻)처럼 비분강개하는 호걸들이 많이 있었다. 전국 시대 때 자객인 형가가 연나라 태자 단(丹)의 부탁을 받고 진왕(秦王)을 죽이러 떠날 적에, 축(筑)의 명인인 고점리(高漸離)의 반주에 맞추어 「역수한풍(易水寒風)」이라는 비장한 노래를 부르고 작별했다는 고사가 유명하다. 『戰國策 燕策3』 진당(晉唐)에서……이 진(晉)나라 시대는 죽림칠현(竹林七賢)으로 이름난 혜강(嵇康), 완적(阮籍), 완함(阮咸), 산도(山燾), 상수(向秀), 유령(劉伶), 왕융(王戎) 등 명사들이 모여 시주(詩酒)를 즐기고 노장(老莊)에 대해 담론한 것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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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집중【용환】에게 답함 答文集中【龍煥】 늘그막에 쓸쓸하게 홀로 지내자니 저의 그리운 마음은 오직 이전부터 오랫동안 가깝게 지낸 벗들에게 빠져있습니다. 그러나 형은 산으로 들어가고 아우는 병으로 시달리고 있으니 묘연하여 서로 만날 기약이 없습니다. 멀리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바라보자니 저도 모르게 마음이 아립니다. 뜻밖으로 구생(具生) 편에 화함(華緘 상대방의 서신)을 받들었는데, 이것은 봄 여름 이래 첫 번째 소식이었습니다. 놀랍고 기쁘기가 어찌 푸른 하늘과 같은 정도일 뿐이겠습니까. 편지를 통해서 형의 체후에 손상이 없다는 것을 알았으니 실로 걱정이 가득했던 마음에 위로가 됩니다. 다만 며칠 전의 여행 끝에 일하지 않아도 땀이 흐르고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시다는데, 혹시 무더위에 시달렸기 때문이신가요? 그렇다면 이것은 여름철에 으레 나타나는 증상이니 모름지기 서둘러 잘 조섭하여 오래 끌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에게는 자기 몸 외에 별다른 것이 전혀 없습니다. 하물며 우리는 나이가 많고 기력이 쇠하였으니 어찌 더욱이 제 몸을 스스로 아끼지 않겠습니까. 아우는 슬픔과 근심이 뒤엉키고 쇠병(衰病)이 그 틈을 빌어 극성을 부립니다. 눈앞에 닥친 모든 일이 여덟 번 넘어지고 아홉 번을 엎어지는 꼴이라서 이번 생의 이 몸은 이미 가망이 없습니다. 죽어서 돌아가는 날 장차 무슨 낯으로 선인(先人)과 선사(先師)를 대할지 모르겠습니다. 두렵고 서글픕니다. 백운 주인(白雲主人)은 아직도 암자에 있는지요? 두 공(公)께서 맑은 바람과 밝은 달빛 아래 서로 마주하고 계시니 활짝 열린 흉금과 고아한 포부가 저의 마음을 치닫게 합니다. 한 번 길 떠날 채비를 갖추어 말석에 조용히 참여하지 못하는 것이 한탄스럽습니다. 서늘한 기운이 생겨날 날이 장차 멀지 않았으니, 벗끼리 모여서 정담을 나누는 것은 이때를 기약하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衰暮踽涼。區區覯降之思。惟在於平昔知舊之間。然兄入於山。以弟困於病。渺然無交會互合之期瞻望風際。不覺傷神。謂外具生便。拜承華緘。此是春夏以來初。消息。驚喜之至。奚啻空靑也。仍審兄體無損。實慰懸慮之情。但日者行役之餘。有不勞而汗。不食而飽者。或是爲暑熱所惱耶。然則是夏節例證。須早早善攝。勿爲久牽也。人於一身之外。都無他物。況吾輩年力衰晩。豈不尢加自愛也。弟悲憂纏綿。衰病闖肆。目前凡百。八顚九例。此生此身。已矣無望。未知歸化之日。將何顔而對先人先師乎。可懼可哀。白雲主人尙在庵上否。二公相對於光風霽月之中。其曠襟雅抱。令人馳想。恨未得一理中屐。從容於席末也。生涼行將不遠。未知盍簪對晤。以此證期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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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문현【우석】에게 답함 答洪文玄【祐錫】 서찰을 받은 지 여러 날이 지났는데 형의 체후가 어떠신지 모르겠습니다. 형을 향한 그리움을 가눌 길이 없습니다. 귀댁의 일가인 자현(子玄)이 죽다니 이것이 무슨 일입니까? 놀랍기 그지없습니다. 덕소(德韶)의 집안일은 근래 상황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멀리 객지에서 염려하시는 마음이 배로 형용하기 어려우리라고 생각됩니다. 아우는 보잘것없이 세월만 허비하고 있으니 고할 것도 없습니다. 다만 손녀의 혼사가 이달 23일로 정해졌는데 고인(古人)이 말했던 '개 한 마리를 끌고 가는 사소한 일'이건만 머리를 아프게 하기에 충분하니 가소롭습니다. 편지에서 보여주신 체천(遞遷)에 관한 말씀은 비록 선유(先儒)의 학설이 이와 같기는 하지만 제 마음에는 끝내 석연치 못한 점이 있습니다. 무릇 삼년상 동안 살아계실 때처럼 모시는 의리는 본래 종자(宗子)와 지자(支子)의 구분이 없습니다. 어찌 종가(宗家)에서 살아계실 때처럼 모시는 의리를 사용하건만 지손(支孫)에게만 살아계실 때처럼 모시는 의리가 없겠습니까. "죽은 자에 대해 완전히 죽은 자로만 대하는 것은 어질지 못하다."76)라고 한 것이 바로 이러한 유형을 이르는 것입니다. 지손의 집안이더라도 증조 이하의 신주(神主)가 있다면 어찌 유독 고조의 신주만 고쳐 써서 다른 곳으로 옮기겠습니까. 제 생각은 이와 같으니 형께서 다시 잘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拜書有日。未審兄體何似。瞻溯無任。貴宗子玄之喪。是何事是何事。驚愕萬萬。德韶家故。近作何狀。想客地馳慮。一倍雖狀矣。弟狀碌碌捱遣。無足云喩。但孫女昏事定在今二十三日。而古人所謂牽一犬者。亦足爲惱。可笑。俯示遞遷之說。雖先儒說如此。而鄙意終有未釋然者。夫三年象生之義。固無宗支之分。豈於宗家用象生之義。而於支孫獨無象生之義乎。知死而致死之。不仁也者。正此類之謂也。雖支孫家而有曾祖以下祀板。則豈獨改題其高祖之板。遷而之他乎。鄙意如此。願兄更加量察焉。 죽은……못하다 《예기(禮記)》 〈단궁 상(檀弓上)〉에 "죽은 자를 보내면서 완전히 죽은 자로 대하는 것은 불인(不仁)한 일이니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죽은 자를 보내면서 완전히 산 자로 대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일이니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라는 말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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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지【장섭】에게 답함 答吳永之【長燮】 뜻하지 않게 한 폭의 서한을 받았으니 감사함을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여력으로 익히는 학업이 크게 진전되었으리라고 생각했는데 보낸 편지를 보고 징험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저에게 너무 지나친 일을 맡기셨으니 서로 잘 아는 처지에 어떻게 이와 같은 일을 용납하겠습니까. 우리는 오늘날 쓸데없이 따라다니고 쓸데없이 얘기를 나누는 일을 통렬하게 모두 제거해야 합니다. 한번 보는 것은 한번 보는 만큼의 보탬이 되고 한 권의 책은 한 권의 책만큼 보탬이 되니 때를 놓치고 만년으로 향하는 우리의 학문이 전혀 성취를 이루지 못하는 데 이르지 않게 해야 합니다. 어찌 반드시 부질없이 지나친 칭찬을 하여 서로를 떠받들겠습니까. 벗이 서로 서찰로 왕래하는 도리는 하나가 규계(規戒)이고 하나가 강마(講磨)입니다. 이 둘이 아니라면 모두 쓸데없는 대화를 벗어나지 못할 뿐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보내신 서한에 "어려서 정도(正道)로 덕을 기르지 못하고 순서를 잃고 근본이 없게 된 것이 한탄스럽다.……"라는 말씀은 그 뜻이 절대로 우연이 아닙니다. 그러나 오늘의 근본은 비록 이미 이전에 이미 이지러졌더라도 훗날의 근본만은 지금에 있지 않겠습니까. 모름지기 오늘부터 시작해서 부지런히 힘을 쏟아 뒷날의 후회가 오늘 후회하는 것과 같은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一幅德音。獲之不意。感不容喩餘力之業。想長進以來書觀之可驗。但見屬太過。相悉之地。豈容如是。吾儕今日。正當於閒追逐閒說話處。痛加斷除。一見有一見之益。一書有一書之益。使失時向晩之學。庶幾不至全然無成可也。何必虛爲溢美之言。以相推與乎。朋友往復之道。一則規警也。一則講磨也。非此二者。則皆不免爲閒說話耳。如何。來書歎早不能蒙養以正。而至於失序無本云云。此意極不偶然。然今日之本。雖已缺於前日。而後日之本。獨不在於今日耶。須從今日爲始。俛焉孜孜。俾無後日之悔。如今日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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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문영【우진】에게 답함 答洪文寧【祐鎭】 지난번 편지는 받기만 하고 보내드린 것이 없으니 매우 편안하지 못합니다. 서신을 받은 후에 며칠이 지났는데 모르겠습니다만 시봉(侍奉)하는 겨를에 글을 읽으며 즐기면서 초연(超然)함을 더하는지요? 강실(講室)의 일은 우리들의 좋은 일인데 만약 나아간다면 평생토록 모여 지낼 수 있는 계책일 것이니 어떠하겠습니까? 허령(虛靈)에 대한 설81)은 선유(先儒)의 논의에 혹 분수(分數)가 없다고 하였는데 대개 허령(虛靈)을 명덕(明德)으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오직 우리 노사 선생(蘆沙先生; 기정진(奇正鎭))은, '허령에서 분수(分數)가 없다면 어떻게 성인(聖人)과 우인(愚人)의 나뉨이 있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이 매우 명백하니 시험 삼아 생각해보시면 어떻겠습니까? 매우 바빠서 휘갈겨 쓰고 미처 길게 쓰지 못합니다. 向日書。有來無往。不安大矣。書後有日。未審侍奉多暇。伊唔趣樂。增益超然否。講室事。此是吾儕好事。若就則其爲平生相聚之計。爲何如哉。虛靈之說。先儒之論。或以爲無分數。蓋認虛靈爲明德故也。惟我蘆沙先生以爲虛靈若無分數。緣何有聖人愚人。此言極爲明白。試思之如何。忙甚胡草。未及拕長。 허령(虛靈)에 대한 설 허령(虛靈)이란 물들지 않은 본래의 마음을 형용하는 말로, 텅 빈 가운데 신령스럽기 그지없다는 뜻이다. 《대학장구》 경 제1장 제1절에 주희(朱熹)의 해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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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여【경주】에게 답함 答洪榮汝【慶周】 따라서 노닐던 날이 오래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한 차례 편지를 주고받는 것이 아직도 이처럼 빠뜨렸으니 어찌 좌우(座右)를 오히려 포용하고 먼저 곡진히 베푸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편지 끝에서 말씀하신, '다만 집안의 일로 인하여 기꺼이 소인이 되었습니다.【只因家務. 甘歸小人】'라는 한 구절은 제 생각에는 알지 못할 바가 있습니다. 무릇 일【事】 밖에는 도(道)가 없고, 도(道) 밖에는 일【事】이 없습니다. 모든 일에서 도리(道理)를 보고 쉽게 넘겨버리지 않고서, 더욱이 남은 힘과 여유가 있는 날에 다소의 글【文字】을 읽고 푹 무젖도록 익힌다면 어찌 통달하지 못할 것을 걱정하겠습니까? 다만 세운 뜻이 굳세지 않고 상황에 따라 골몰(汨沒)하게 되며, 또 조금이라도 틈이 나거든 무익한 말을 하고, 무익한 일을 하고, 무익한 사람을 만난다면 어느 시간에 독서를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그럭저럭 살아가는 해악이니 뭇사람들의 공통된 근심거리가 되는 까닭입니다. 받은 편지의 뜻으로 인하여 감히 이러한 내용까지 언급하게 되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遊從之日。非不久矣。而一書往復。尙爾闕焉。豈謂座右猶且包容。而曲加先施哉。紙末所云。只因家務。甘歸小人。此一節。於鄙意有所未喩。夫事外無道。道外無事。每事看得道理。不令容易放過。更於餘力暇日。看得多少文字。以浸灌之。何患不達也。但立志不牢。隨事汨沒。且於小小暇隙。打無益之語。作無益之事。接無益之人。則更有何時可以讀書乎。此因循之害。所以爲衆人通患也。因來書之意。敢此及之。未知以爲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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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사증에게 답함 答洪士拯 뜻밖에 한 통의 소중한 편지가 인편을 따라왔기에, 펼쳐 읽어보니 고맙고 후련하여 완연히 마치 몸이 갠 달 속에 있는 듯합니다. 지금은 사특한 학문이 날마다 치성하여 그러하지 않은 곳이 없는 지경입니다. 그러나 도깨비나 괴이한 물건들은 반드시 태양 아래에서 형체를 갖출 수가 없으니, 단지 바른 것을 지키고 흔들리지 않고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그대는 의관(衣冠)과 시례(詩禮)가 있는 집안의 후손이니 어찌 오늘날 또한 이러한 것이 있다는 것을 면치 못하게 됨을 짐작하였겠습니까? 듣고서 놀랍고 두려워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웃의 도가 있음에 비록 일반적인 잘못이라도 오히려 서로 경계하여야 할 것인데, 하물며 이러한 일에 있어서 어찌 차마 분명하지 않게 숨기면서 구해주려는 계책을 생각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늘의 이치와 사람의 도리는 바꿀 수 있는 도가 아닙니다. 중화와 오랑캐, 그리고 사람과 짐승에 대해서는 그 향배가 두려워할 만한 구분이 있으니, 이해(利害)와 화복(禍福)에 이르러서 뚜렷하게 알기 쉬운 말로 상세하게 깨우쳐 주면서 마음을 바꾸게 한다면 어떠하겠습니까? 지금 세상에 살면서 일부의 사람을 구해내는 것도 작은 일이 아니니 사증(士拯)은 천번 만번 유념해 주시기 바랍니다. 강실(講室)의 일은 아직 분열의 단초가 있다고 하니 우울합니다. 지금의 세상을 살아가면서 평생토록 좋은 벗과 함께 한가롭고 적막한 물가에서 묻고 답하며 잘못되는 지경에 빠지지 않도록 한다면 이 얼마나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일이 희롱하고 사물이 시기하여 종종 방해하니 한스럽습니다. 또한 이후로 어떤 상황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意外一幅珍緘。隨風而至。披玩感豁。完然若身在於霽月之中也。目今邪學日熾。無處不然。然魑魅怪物。必不能售形於太陽之下。但守正不撓以待之可也。貴邊乃是衣冠詩禮之社。而豈料今日亦不免有此耶。聞之驚懼。心膽墮落。然在隣里之道。雖尋常過失。猶能相規。況於此等事。豈可隱忍含胡。不思所以救拔之策乎。以天理民彛。不可移易之道。華夷人獸。向背可畏之分。及利害禍福。較然易知之語。詳細曉喩。使之革面如何。居今之世。救得一箇半箇人。亦非小事。願士拯千萬留意也。講室事。尙有携貳之端。可鬱。居今之世。與平生好友。講聚問辨於幽閒寂寞之濱。無至淪胥之地。未嘗不是好事。而事戲物猜。種種間之。可恨。又未知從此而作何狀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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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경보【수학】에게 답함 答廉景甫【洙學】 은혜로운 편지를 얻어본 뒤로 세월이 이미 반년이나 흘렀습니다. 인편을 찾을 길이 없어 오랫동안 답례를 하지 못하였습니다. 50리 떨어진 길이 이다지도 멀단 말입니까?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여름과 가을 이후로 어버이를 모시는 모든 상황이 충만하고 평온하신지요. 책을 보고5) 이치를 따지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일취월장하는 과정이 분명하게 있는지요? 그리운 마음에 못내 말씀을 청합니다. 의림(義林)은 신세가 퇴락(頹落)하여 참으로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다만 예전부터 하던 일은 사라져버리고, 이전에 힘쓸 만하던 것에는 또한 다소 생각할만한 부분을 보지 못하였으니,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하문하신 여러 조목에 대하여 감히 저의 뜻을 소략하게나마 답한 것이 오래입니다. 다만 인편이 없어 아직 드리지 못하였으니, 지금 이렇게 함께 보내드립니다. 그러나 이는 저의 억견(臆見)이자 아무것도 모르고 하는 말이니, 어찌 과실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부디 재차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自得惠函。日月已過半年。而覓便無階。久稽謝答。五十里程途。若是其迂遠耶。歉愧無已。夏秋以來。侍省凡節。一視沖謐。尋數溫理。步步就將。的有科程否。區區馳仰。不任願言。義林身事頹落。固無可言。只有一副舊業。是溘然前所可着力者。而亦未見多少可意處。奈何奈何。俯詢諸條敢以鄙意。略略奉答者久矣。而無便未呈。今玆胎去耳。然此是臆見瞽說。安得保無差失耶。幸再敎之也。 책을 보고 원문은 '심수(尋數)'인데, 이는 심항수묵(尋行數墨)의 준말이다. 글을 읽기만 하고 그 뜻을 제대로 모른다는 의미의 겸사인데, 여기에서는 단순히 책을 읽는다는 뜻으로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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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백순【효동】에게 답함 答朴伯順【孝東】 서울로 간 뒤에 비록 조용히 찾아가지 못하였는데 인편으로 온 소식이 여러 가지로 자못 위로됩니다. 하물며 천 리 먼길을 왕래하면서 사문(斯文)의 장덕(長德)을 만나보고 돌아왔으니, 이 얼마나 좋은 일이며 친구의 정으로서도 또한 영광입니다. 대저 그대는 자질이 아름답고 재주가 뛰어나며 나이가 젊고 힘이 있습니다. 위로는 부모님이 모두 생존해 계시고, 아래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또한 먹고 입을 것에 대한 계책과 일을 맡길 수 있는 사령(使令)이 대략 있어 비록 스스로의 힘이 아니더라도 어른을 봉양하고 아랫사람들을 양육하기에 충분합니다. 그러나 매번 그대가 일하는 데는 부지런하지만 책을 읽는 데는 느릿느릿하여 평소 밝지 못한 것을 볼 때마다, 생각건대 부자와 형제 사이에 분명히 일부의 정해진 계획이 있어서 주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이 있는 것이 아닌지요. 구구하게 서로 사랑하는 심정으로 늘 한 번 나의 어리석은 생각을 바치고 싶었지만 미처 결행하지 못했는데, 지금 온 편지를 보니 그 간절히 후회하는 뜻이 조금도 부족하지 않으니 참으로 치하할 만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찌 백 리 마다 한 번씩 쉬면서99) 이처럼 고생스럽게 스승을 찾는 일을 하겠습니까. 덕 있는 집안에 어진 선비가 많아진 것을 축하드립니다. 洛行後。雖違造穩。便頭消息。不啻種種。頗用爲慰。況千里宿糧。得見斯文長德而歸。此何等好事。朋友之情。亦榮矣。大抵。伯順質美才悟。年富力强。上有俱存之慶。下有無故之樂。且粗有衣食之計。使令之任。雖非自力足以爲上奉下育。而每見伯順勤於幹務。而緩於讀書。尋常未瑩。意謂其父子兄弟之間。必有一副定算。非傍人所可知者。區區相愛之情。常欲一番貢愚而未果矣。今見來書。其縷縷悔悟之意。不一而足。可賀可賀。不然。其何以百舍重趼。判此從師之行哉。爲德門賀其賢士之多也。 백사(百舍) 백 리마다 한 번씩 쉰다는 뜻으로, 고생고생을 하며 찾아가는 것을 말한다. 《장자》 천도(天道)에, "사성기(士成綺) 노자(老子)를 찾아뵙고는 말하기를, '백 리마다 한 번씩 쉬면서 발에 물집이 겹으로 생겼어도 쉬지 않고 왔습니다.【百舍重趼而不敢息.】' 하였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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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석두【덕흥】에게 주다 答方錫斗【德興】 한 통의 귀한 편지가 생각지도 않게 왔는데, 상쾌한 사람의 상쾌한 글자가 사람을 깨치기에 충분하였습니다. 그대가 병을 앓고 있다는 소식은 전부터 들어 알고 있어서, 항상 이 때문에 안타깝고 답답했는데, 지금 병이 나은 지 여러 날이 되었다는 소식을 받드니, 몹시 위로되고 기쁩니다. 인간이 세상을 살면서 젊고 건강한 날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세상의 일은 복잡다단하여 그저 지나치기에는 예사롭지 않습니다. 가령 이 한 때의 좋은 시절을 인식하지도 깨닫지도 못하는 사이에 쉽게 놓쳐버리게 된다면, 어찌 두렵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양기가 돌아와 천지가 온화해진 이후에 새로운 정신을 정돈해 추슬러서 예전의 학업을 익히고 정리해서, 날마다 높고 깊은 경지에 나아가 참으로 조리가 있도록 계획해야 할 것입니다. 하물며 그대는 타고난 자질이 온화하고 뜻이 고상해서 얽매이지 않으며, 근래에 유가의 덕이 높은 스승들을 찾아다니는 일이 많음에 있어서이겠습니까? 우러러 바라며 감탄하고 축하하는 마음 그지없습니다. 一角珍緘。謂外來到。欣豁人欣豁字。令人十分提醒。美痾之報。前此聞知。而常庸悶鬱。今承勿藥有日慰悅多矣。人生世間少壯幾何。世故多門。着遇無常。而使此一片好時節。易致蹉失於不知不覺之頃。豈可不懼。計應陽回天和之餘。整頓得新精神。溫理舊業。日就崇深。綽有條緖也。況乎天姿溫雅。志尙不拘。而近多從逐於儒門長德之間哉。瞻望區區。不任贊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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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중【치균】에게 답함 答柳子中【稚均】 재작년에 그대의 형제가 죽는 아픔을 겪었다는 말을 듣고, 정중하게 여러 글자를 거론해서 위로와 문안의 편지를 썼으나, 뒤늦게 중도에 편지가 분실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아마도 지금까지 편지가 도착하지 않았을 텐데, 인편을 통해 그대의 편지를 받으니 감사한 마음과 부끄러운 마음이 아울러 생겨나니,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지나간 일을 뒤늦게 말할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부모님을 모시며 지내는 상황이 근래에는 어떠하며 남은 힘으로 학업을 익히는 일이 스스로 위로할 만한 것이 있는지, 조심스레 묻습니다. 이때는 우리들이 마음을 분발시키고 성질을 강인하게 하면서 열심히 갈고 닦으며 노력해야 하는 날입니다. 앞으로 닥칠 굴곡은 미리 헤아릴 바가 아니니, 어찌 구차하게 얽매이겠습니까? 현인이 세상을 걱정하는 뜻이 비록 매우 간절하더라도, 분수를 편안하게 여기고 천리(天理)를 즐거워하는 뜻도 그 마음에 나란히 유행하도록 하여야 비로소 치우치지 않게 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천 리 먼 곳에서 서로 그리워하니 그 마음을 이루다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저는 학문이 아직 진보하지 않았는데 늙음이 벌써 왔으니, 눈앞의 천만 가지 기이하고 놀라운 일을 어찌 떠맡아서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겠습니까? 저의 쇠퇴한 상황은 말하지 않아도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라건대, 그대와 같이 현명한 이가 나를 먼 관계라고 여기지 않은 지 오래되었으니, 이따금씩 나를 바르게 경계해 주는 것이 어떻습니까? 前前年。聞座右遭終鮮之痛。謹擧數字。以修慰存之儀。追聞喬沈中路。而想今未達矣。便頭得承惠訊。感與愧倂。不知攸謝。過境不須追說。謹請侍省候節。邇來何如。餘力溫業。有可以自慰者否。此是吾儕動心忍性。琢磨淬礪之日。前頭夷險。有非豫算。何須區區也。賢人憂世之志。雖極切至。而要使安分樂天之意。竝行於其中。方爲不偏。如何如何。千里相向。不勝情緖。義林學未進而老已至。目下千怪萬驚。其何以擔擡得一半分耶。其頹缺之狀。不言可想。幸賢如吾友。爲之不遐者久矣。時惠規警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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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중에게 답함 答李善仲 그대의 동생이 와서 편지를 볼 수 있었으니 위로됨이 끝이 없습니다. 편지를 통해 부모님의 건강도 좋으시다는 것을 알았으니 얼마나 듣고 싶은 소식이었는지 모릅니다. 다만 오래 앓던 병이 아직도 쾌차하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더욱 오래된 나머지 병세가 이와 같으니 더욱 잘 조섭하여 자그마한 남은 증세도 확실하게 안개가 걷히듯 하시길 바랍니다. 매양 우리 선중이 독노(篤老)98)를 모시고 있는데 집안의 재력에 대한 계책이 없으니, 어찌 고인(古人)이 슬퍼한 탄식99)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얻거나 잃음과 모으고 흩어짐은 본디 천지 사이에 없을 수 없는 이치입니다. 마치 더위와 추위, 낮과 밤이 앞에서 번갈아 오는 것 같으니 마땅히 허심탄회하게 이치로써 추스르고 그 사이에서 구구하게 꽉 막혀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이는 군자가 의(義)에 거처하는 도이니 해로움이 있을 뿐만 아니라 병을 조섭하는 방법에도 큰 손해가 있을 것이니 천만번 마음을 편안히 가지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令季來。得見惠訊。慰豁無涯。因審庭候康寧。何等願聞。但宿愼。尙未快復云。彌久之餘。勢應如此。惟益加攝理。使小小餘證霍然霧除也。每念吾善仲在篤老之下。家力無以爲計。安得無古人傷哉之歎也。然得失聚散。固天地間所不無之理。如寒暑晝夜之相代乎前。當廣衿坦懷。以理遣之。不必區區窒塞於其間也。此於君子處義之道。不惟有害。而於養病之方。甚有所損。千萬安心如何。 독노(篤老) 70세 이상의 노인을 가리킨다. 고인(古人)이 슬퍼한 탄식 《예기(禮記)》 〈단궁 하(檀弓 下)〉에, "자로(子路)가 '슬픈 일이다. 가난함이여! 살아 계실 적에는 봉양할 것이 없고 돌아가신 뒤로는 예를 행할 수 없네.'"라고 한 내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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