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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삼【기태】에게 답함 答朴允三【淇台】 반년 사이에 두 차례나 편지를 주고받았으니, 이것은 전에 없던 일입니다. 여풍(餘風)을 그대로 이어가 이제부터 끊임없이 계속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편지를 받은 지 여러 날이 지났는데 경전(經典)을 익히며 지내는 안부가 평안하신지 모르겠습니다. 멀리서 그리워하는 마음이 더욱 간절합니다. 편지에서 말씀하신 "일생이 이미 저물었다는 것이 마음 아프고 뜻한 일을 이루기 어려운 것이 서글프다."라는 구절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읊조리려니 저로 하여금 끝없이 서글픈 감회가 일어나게 합니다. 아, 이것은 고금에 걸쳐 모두의 근심거리였으니 여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가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그러나 좌우(左右 상대방을 가리킴)의 입장에서 이 사람과 견준다면 한창 솟아오르는 해와 같습니다. 어찌 늦음이 있겠습니까. 저를 전철(前轍)로 삼아 미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농은기(農隱記)〉는 이처럼 글이 서툰 사람이 어찌 감히 손을 대겠습니까. 다만 간절한 뜻을 저버리기 어려워 대략 이렇게 추태를 보였습니다. 半歲之間。得再往復。此是前未所有。未知因仍餘風。從此源源否。未審書后有日。經履衛重。遠溯彌至。來喩感年華之已晏。悼志業之難成。此一句三復諷詠。令人有悵然不盡之懷。嗚呼。此是古今通患。其能脫然於此者。有幾人哉。然以左右而視此漢。則猶爲方升之日也。夫何晏之有。視作車鑑。俾不至靡逮之地。如何如何。農隱記。以若不文。何敢下手。但勤意難孤。略此露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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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중【진휴】에게 보냄 與李善仲【進休】 봄이 한창인 요즘 몸은 편안한지요? 그리워하는 마음을 그칠 수가 없습니다. 의림(義林)은 한결같이 병에 신음하는 것이 날마다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理)란 무엇입니까? 매양 선중(善仲)이 빈손으로 힘써 일하면 살아갈 이치가 조금씩 모여들 것이니 이것이 위로될 만합니다. 그러나 인생의 사업은 스스로 있는 것이니 어떻게 구구하게 입고 먹는 계책에만 그칠 수 있겠습니까? 모름지기 고요한 한 칸 방에서 토론하고 다소의 글을 저술하고 몸소 밭을 간 뒤에 여력이 있으면 매양 깊은 이치를 완미하는 공을 더하여 조용히 수양하며 암장(闇章)97)의 실질이 있도록 한다면 이것이 바로 그대와 그대의 집에 있어 첫 번째 계책이 될 것입니다. 만약 자신과 자신의 집에 관련이 없는 것이라면 일체 쓸어버려 그만두고 함께 교유하지 않는다면 어떻겠습니까? 이것이 오늘의 효상(爻象)에 있어서 더욱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卽惟春殷。體事佳迪。瞻溯無已。義林一病沈綿。日以甚焉。理也何爲。每念善仲赤手拮据。生理稍集。此可慰慰。然人生事業。自有所在。豈止於區區喫着之計而已也。須討靜室一間。蓄多少文字。躬耕餘力。每加沈玩溫理之功。俾有潛修闇章之實。此是身家第一策。若其無關於身事家事者。一切掃斥。不與之交涉。如何。此在今日爻象。尤宜留念也。 암장(闇章) 《중용(中庸)》 33장에 나오는, '암연이일장(闇然而日章)'의 준말이다. 군자는 도덕이 심원하여 처음에는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분명하지 않지만 도덕이 속에 있기 때문에 날로 그 빛이 드러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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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응소27)【봉현】에게 답함 答權應韶【鳳鉉】 동쪽과 서쪽으로 천애(天涯)와 지각(地角)처럼 동떨어져 있어 우체편이 드물고 비록 있다고 해도 거개가 불시에 간다고 하여 우체 편에 따라 안부를 전하지 못한 것이 오래 되었네. 보통의 정으로 헤아려보면 마땅히 배척을 당해야 할 것 같은데 오히려 또 따지지 않고 간곡하게 안부편지를 보내주는 것이 이와 같이 끊임이 없으니, 지극히 감사하는 마음에 부끄러움과 송구함이 아울러 지극하네. 더구나 나에 대해 일컬으며 장려하는 것이 실제에 너무 지나치니, 그대 같은 밝음으로 남을 위해 도모하는 충(忠)이 어찌 이러한 것인가? 의림(義林)은 젊어서는 노력하지 못하였고 늙어서는 알려진 것이 없이 좀먹어 떨어진 옷에 병충이 든 곡식을 먹으며 지내고 있어, 목거사(木居士)28)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 멀다네. 그러나 내가 노년에 수습하려는 생각은 혹 무너져 벗겨지고 가려 고질이 된 가운데에서 종종 틈발(闖發)함이 없지 않아 어진 사우의 뒤에 인연을 맺으려 생각한 것이 어찌 끝이 있었겠는가? 오직 바라건대 그대는 힘써 더욱 자중자애 하시게. 東西厓角。便遞闊然。雖或有之。而擧皆不時吿行。未得隨便致候者。久矣。揆以常情。宜若見斥。而猶且不較。繾綣垂訊。若是源源感戢之至。愧悚傡至。況稱道奬借。過浮實際。以若左右之明。謀人之忠。何其乃爾耶。義林少而不力。老而無聞。蠹衣蝗粟。其不及木居士遠矣。然區區收桑之念。或不無種種闖發於頹剝蔽痼之中。思欲寅緣於賢士友之後者。豈有窮已哉。惟左右勉加自愛。 권응소(權應韶) 권봉현(權鳳鉉, 1872~?)을 말한다. 자는 응소, 호는 오강(梧岡),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목거사(木居士) 고목(古木)이 자연적으로 인형(人形)처럼 생긴 것을 사찰(寺刹)에 안치해 둔 것을 이르는데, 한유(韓愈)의 〈제목거사(題木居士)〉에 "물불에 타고 씻긴 게 몇 해인지 알 수 없는데, 밑동은 두면 같고 중동은 몸통과 같구나. 우연히 목거사라 적어 놓으니, 문득 복을 구하는 사람이 한도 없구려.[火透波穿不計春, 根如頭面榦如身. 偶然題作木居士, 便有無窮求福人.]"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韓昌黎集 卷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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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함에게 보냄 與黃景涵 주재(主宰)는 심(心)이고 주재하는 것은 성(性)이라는 것 이것은 나의 창견(創見)이 아니고 바로 주자의 말이네. 이것은 심성의 경계를 절단한 것이 지극히 분명하니, 어찌 입언(立言)의 본의를 궁구하지 않고 여러 가지로 지적하는 것이 가하겠는가? 보내온 편지에서 "심과 이로 말하면 구분이 없다고 이르는 것은 불가하지만 겨우 주재(主宰)라고 말하면 문득 심과 이가 합일한 곳이다."라고 하였는데, 이 한 단락은 명백하지 못한 점이 많네. 심이라는 것은 본래 주재의 이름이니, 주재 두 글자를 놓아두고 다시 따로 심이 없네. 지금 심과 이는 구분이 있다고 하면서 주재는 구분이 없다고 하였네. 그렇다면 이 심 자는 어떤 심이며, 이 주재는 어떤 주재인가? 또 "겨우 주재라고 말하면 문득 심과 이가 합일한 곳이다.……"라고 하였는데, 이미 합하여 하나가 되었다면 유독 나누어 둘로 만드는 것이 불가한가? 대저 심이 주재가 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신령하기 때문인가, 이가 있기 때문인가? 그 근본을 근원해 보면 이이지만 당체(當體, 실체) 말하면 신령하기 때문이네. 바야흐로 당체에 나아가 말하면서 잘못 원두(原頭)의 설로 섞으니, 이것이 지루하여 귀숙할 곳이 없는 까닭이네. "묘용(妙用)의 행(行)이 이발(已發)이 된다.……"라고 한 것은 아마 그렇지 않을 듯하네. 심으로 말하면 실로 동정이 있지만 이로 말하면 일동(一動)과 일정(一靜)이 모두 유행하는 것이 되니, 다시 생각해 보시게. 主宰者心也。主宰底性也。此非愚之創見。而卽朱子之語也。此是截斷得心性界至。極其端的。豈可不究其立言之本意。而曲加指摘耶。來喩以心與理言。不可謂無分。而才曰主宰。便是心理合一處。此一段多未瑩。心者。本是主宰之名。舍主宰二字。更別無心。今曰心與理則有分。而曰主宰則無分。然則此心字。是何心。而此主宰是何主宰耶。且曰才說主宰。便是心理合一云云。旣合而一之。則獨不可分而二之耶。大抵心之爲主宰。是何故。以其靈故耶。以其有理故耶。原其本則理也。而言其當體則是靈故也。方就當體語。而枉以原頭說。混之。此所以支離而無歸宿也。妙用之行。爲已發云云。恐不然。以心言之。固有動靜。而以理言之。一動一靜。均之爲流行也。更思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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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낙범【홍량】에게 답함 答魏洛範【洪良】 봄 사이에 이별하고서 시간이 많이 흐르지 않았는데도 그리워하는 마음 깊어 2~3년의 오랜 시간이 지난 듯하네. 그런데 뜻밖에도 그대 사촌과 여러 공들이 지나가다가 들렀는데, 삼가 그대의 정성스러운 편지를 받들게 되었으니 그 고마움을 말로 표현할 수 없네. 더구나 부모를 모시면서 기쁘고 화락하며 신령이 도와 건강하다고 함에랴. 남은 힘으로 공부를 함에도 또한 응당 멈추지 않고 부지런하여 날로 높고 깊게 발전할 것이네. 보낸 편지 가운데 '게으른 본성이 돌연 다시 싹터서 그 동안의 공이 흩어져 이전처럼 어리석게 되었다.'는 등의 말은 참으로 겸손함에서 나온 것임을 알겠으니, 어찌 고명 같은 자가 이런 것이 있겠는가. 그러나 일찍이 들으니, 선각의 말에 "학자는 기질에 지거나 습관에 마음을 빼앗기니 다만 그 뜻을 책망해야 한다."108)라고 하였으니, 잘 모르겠네만 이런 말을 일찍이 본 적이 있는가. '뜻을 책망한다.[責志]'는 두 글자는 보통의 많은 사람들에게 통용되는 법으로 진전요결(眞詮要訣)이 되니, 어떻게 생각하는가. 春間分離。日月無多。而懹想之積。濶然若數三年之久。料外令從氏及諸公委過。謹承惠訊之勤。其爲感豁。無容言喩。矧審侍省怡愉。神相萬祉者乎。餘力居業。亦應慥慥不住。日就崇深也。示中閒懶本色。遽然復萠渙散。依舊阿蒙等語。固知其出於撝謙也。豈以高明而有是哉。然嘗聞先覺之言有曰。學者爲氣所勝習所奪。只可責志。未知會見此語乎。責志二字。此是衆人通法眞詮要訣如何。 학자는……한다 《근사록》 〈위학(爲學)〉에서 정자(程子)가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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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귀정에서 제생들에게 주어 작별하다【5수】 詠歸亭贈別諸生【五首】 지금 수많은 현자들 전현을 배우고 (今賢濟濟學前賢)가을바람 부는 팔월에 서로 전송하네 (相送西風八月天)뜰의 잣나무 한 가지 꺾어 주어 보내니 (庭柏一枝持贈去)세한에 시들지 않는 푸른빛을 보리로다 (歲寒觀取色蒼然)영귀정에서 팔월에 뭇 현자들을 전송하니 (詠亭八月送群賢)갈대 무성하고 이슬 내리는 때에 각자 떠나네 (各去蒼葭白露天)앞길에는 말을 매어 놓을 곳 많지 않으니 (前程繫馬無多處)만 가닥 버들 가을에 놀라 모두 시들었으리 (萬柳驚秋摠薾然)공부하면 성현이 될 수 있거니와 (功夫爲聖可爲賢)부귀는 사람에 달렸고 또 하늘에 달렸네 (富貴在人又在天)무엇을 가볍게 여기고 무엇을 중시해야 할지 (何者爲輕何者重)그대들은 여기에서 환하게 볼 수 있으리라 (諸君於此見昭然)지혜와 어짊보다 아름답고 귀한 것이 없으니 (莫美於知莫貴賢)단지 나의 마음이 바로 현묘한 하늘이라네 (只吾方寸是玄天)다만 마땅히 힘써 자기에게서 구해야 하니 (但當勉力求諸己)학문이 쌓이면 비로소 시원스레 관통함을 볼 수 있으리 (積累方能見脫然)무슨 까닭으로 어리석고 무슨 까닭으로 어질게 되는가 (何故爲愚何故賢)헤아려 보니 자기 때문이지 하늘 때문이 아니네 (算來由己不由天)그대 상자 안의 거울을 가져다 보라 (請君看取匣中鏡)보얀 먼지 닦아내면 다시 밝아지네 (磨去纖塵復瞭然) 今賢濟濟學前賢。相送西風八月天。庭柏一枝持贈去。歲寒觀取色蒼然。詠亭八月送群賢。各去蒼葭白露天。前程繫馬無多處。萬柳驚秋摠苶然。功夫爲聖可爲賢。富貴在人又在天。何者爲輕何者重。諸君於此見昭然。莫美於知莫貴賢。只吾方寸是玄天。但當勉力求諸己。積累方能見脫然。何故爲愚何故賢。算來由己不由天。請君看取匣中鏡。磨去纖塵復瞭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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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중에 만당형장399)을 그리워하며 病中懷晩棠兄丈 지난해 단양에서 이별할 때 去歲端陽拜別時나중에 만나자는 말씀이 간절하였네 丁寧一語後逢期반년의 풍진 세상은 어찌 그리 분란한가 風塵半載何紛擾초겨울에 앓은 질병은 몹시 위독했다오 疾病初冬亦篤危아픔을 남의 일처럼 여긴다는 걸400) 듣지 못하였고 不聞痛痒歸越視정담 중에 〈귀거래사〉401)를 외운 걸 기쁘게 생각하네 思悅情談誦陶辭형은 팔순의 고령이고 나는 일어나기 어려운데 兄年八耋吾難起동서로 외로이 떨어져 있어 그지없이 서글퍼라 落落東西絶可悲 去歲端陽拜別時, 丁寧一語後逢期.風塵半載何紛擾, 疾病初冬亦篤危.不聞痛痒歸越視, 思悅情談誦陶辭.兄年八耋吾難起, 落落東西絶可悲. 만당형장(晩棠兄丈) 김희현(金熺鉉, 1872~1951)으로, 만당은 그의 호이다.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정오(定五)이다. 후창의 외종형(外從兄)이다. 후창이 일찍이 그를 위해 〈만당시고서(晩棠詩稿序)〉를 썼다. 《後滄集 卷20 晩棠詩稿序》 남의……걸 원문의 월시(越視)는 '월시진척(越視秦瘠)'의 줄임말로, 월(越)나라 사람이 진(秦)나라 사람의 수척한 모습을 무심하게 보는 것처럼 어떤 일에 대해 자신과는 무관한 남의 일로 여긴다는 말이다. 귀거래사(歸去來辭) 원문의 도사(陶辭)는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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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견【상백】에게 답함 答李光見【常白】 생각지 않게 서한을 받았는데 하시는 말씀과 꾸짖는 뜻이 사람의 눈과 마음을 모두 깨어나게 하였습니다. 대체로 우리 두 사람이 서로 알게 된 지 이제 몇 년입니까. 매번 풍의(風義)가 단정하고 동정(動靜)이 점잖은 것을 보았지만 고상하고 우아함에 대해서는 오늘에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 눈이 부끄럽습니다. 이러한 형이 있고 이러한 아우가 있는 것이 어찌 우연이겠습니까. 저의 부러움이 전보다 배로 늘었습니다. 의림(義林)의 노쇠한 정경과 병들어 칩거하는 처지는 참으로 비루하여 형용하기 어렵습니다. 오직 영백씨(令伯氏 상대방의 백부(伯父)) 만이 가까이 있어 날마다 서로 어울리면서 겨우 버티고 있습니다. 지금 또 고명(高明 상대방)께서 저를 멀리하지 않으시고 교제를 이어가는 것이 이처럼 진중하시니, 지극한 고마움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계산(溪山)의 적막한 물가에서 고기 잡고 나무를 하며 밭을 갈고 소를 키우는 여가에 형제분이 나란히 서안(書案)을 마주하고 화목한 모습으로 경전(經典)을 연구하니 이것이 얼마나 보기 좋은 광경이겠습니까. 저에게도 종종 나누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科外獲承德音。其措辭遺意。令人心目俱醒。大抵吾兩人相知。今幾年矣。而每見其風義端飭。動止安詳。而至於文雅之贍邃。今日而後。乃始知之。可愧其眼不識人也。有是兄有是弟。豈是偶然。區區艶仰。有倍於前。義林衰索病蟄。固陋難狀。而惟是令伯氏在邇。日月相從。僅且支過矣。今又得高明之不遐。而托契定交。若是珍重感感之極。不知云喩。溪山涔寂之濱。漁樵耕牧之餘。伯兮叔兮。對床聯榻。怡怡講究於詩禮墳典之間。此何等勝致耶。爲之種種波及。是望是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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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견에게 답함 答李光見 왕림하신 지 얼마 되지 않았건만 또 정함(情函 상대방의 편지)을 받았습니다. 아, 저를 아끼고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 역시 지극하십니다. 하물며 이렇게 밤새도록 비바람이 몰아쳐 문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적막하게 칩거하면서 의지할 곳 없이 무료하게 지내고 있으니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오직 우리 벗이 가까이에 있어 서로를 따르면서 강학과 토론이 이처럼 끊이지 않으니 위안을 받고 고마움을 느끼는 심정을 어찌 말로 할 수 있겠습니까. 《주역(周易)》은 근래 과연 눈앞에 두고 시간을 보내려고 계획했지만 매운 고추를 통째로 삼킨다는 비난을 벗어나지 못했으니 끝내 무슨 보탬이 있겠습니까. 부끄럽습니다. 《맹자(孟子)》 공부는 근래 몇 권에 이르렀습니까? 노년에도 학문을 좋아하여 남모르게 날마다 성취를 이루는 것이 오늘날 누가 우리 벗과 같겠습니까. 매번 앙모하는 마음이 절실합니다. 하루 동안 유람하는 일은 중지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지금이 어느 때이겠습니까. 유람 같은 무익한 일을 하여 스스로 허물을 초래할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承枉未幾。又獲情函。其愛我惠我。吁亦至矣。況此風雨長夜。行不得門外一步。跧蟄踽凉。無聊無賴。而惟有吾友在邇。從逐講討。源源若此。慰慰感感。何以容喩耶。羲經近果爲遮眼消日計。而亦未免辣椒皮呑之譏。畢竟何益之有。愧愧。盛課近在鄒傳何卷耶。老而嗜學。闇然日就者。在今日。孰有如吾友哉。每切馳仰。一日之遊。停之似宜耳。此時何時。恐不必爲遊衍無益之擧。以自招尤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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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문【계창】에게 답함 答魏岐文【啓昌】 그대의 아들이 보잘것없는 나를 하찮게 여기지 않고 두 번이나 찾아와 주셨으니, 이것은 사사로운 정에 있어서 이미 매우 감사할 일인데, 다시 또 편지를 부탁해 보내서 곡진한 뜻을 보여 주시니, 이것이 어찌 저처럼 천박한 자가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저는 어려서부터 이 뜻이 없지는 않았으나 기질에 얽매이고 질병이 간간이 생겨 끊임없이 오가다가 하나의 쓸데없는 물건이 되었고 지금은 백발이 성성하니 매우 아득히 끝없는 한이 있을 뿐입니다. 상황이 이와 같으니 그대가 보잘것없는 나에게 기대하는 마음이 비록 무성한 관용에서 나왔더라도 또한 그대의 밝은 식견에 누가 됨을 면치 못할까 두렵습니다. 관산(冠山)은 옛날에 문명(文明)의 고을이라고 일컬어졌는데 근래에 더욱 번성했습니다. 게다가 그대의 아들은 단아하고 신중하며 깨달음이 있어서 함께 큰일을 할 만하니, 그에게 오가며 영향을 받게 하고 좌우에서 보살핀다면 어찌 성취할 가망이 없다고 근심하겠습니까? 보잘 것 없이 살아온 저 같은 처지는 지난일에 부치더라도 여파에 젖어 노년에 만분의 일이라도 거두려는 계획으로 삼을 계획이 없지는 않습니다. 令郞不鄙無狀。再度垂訪。此在私分。己極感荷。而又且委賜寵翰。示意繾綣。此豈淺淺者所可承膺耶。義林小少非無此志。而氣質局之。疾病間之。捱去捱來。成就得一箇無用之物。至今白髮紛如。只切悠悠無窮之恨而已。然則執事之寄意於鄙生者。雖出於包含之盛而亦恐未免爲明見之一累也。冠山古稱文明之鄕。而近來尤蔚然焉。且令郞端詳開悟。可與有爲。以之出入擩染左右扶將。何患無成立之望。區區衰散如此生者。雖屬過境。而不能無思霑餘波。以爲收楡萬一計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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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일【석주】에게 답함 答金宗一【錫柱】 "병이 많아 옛 벗도 멀어지네."142)라고 하였으니 옛 사람도 오히려 그러하였거늘 하물며 오늘날임에랴. 어진 그대는 내가 병이 많다고 해서 소원(疎遠)하게 대하지 않고 편지 한 통을 뜻밖에 보내주니, 이는 옛사람보다 뛰어난 것이 아니겠는가. 봉투를 열어 낮게 읊조리는 동안 나도 모르게 병세가 풀리는 것 같네. 부모를 모시면서 평안하다는 소식을 지면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한 달 전쯤의 소식이니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잘 모르겠네. 신령이 단정한 군자를 위로하여 응당 보답을 받을 때이네. 그렇다면 마음에 위안됨이 어찌 다하겠는가. 공부가 이전과 다르지 않다고 하였는데, 이는 참으로 겸손한 말이네. 그러나 마음이 있지 않으면 어찌 이전과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겠는가. 다름이 없는 것을 보고 더욱 더 노력하여 다름이 있는 지경에 이른다면 이것이 바로 학문이 발전하는 방법이네. 시속(時俗)의 말들이 어지럽다고 하였는데, 비록 지극히 두렵기는 하지만 그러나 이 어찌 한 집안 한 사람의 재앙에 그치겠는가. 최종적인 처분은 하늘에 달렸으니, 다만 내가 해야 할 일을 다한 뒤에 기다릴 뿐이네. 의리를 강론하고 밝혀서 추향을 헤매지 않게 하며 심지(心志)를 완전하게 함양하여 지킨 바를 흔들리지 않게 하여야 하니, 이것이 사문(斯文)의 요결이며 나아가 오늘날의 급선무이네. 더욱 깊이 노력하게나. 多病故人疎。古人猶然。況今日乎。賢不以多病而見疎。委存一書。出於料外。此其非過於古人者耶。披玩沈吟。不覺病情釋然也。侍省平安之報。得於紙面。而以一月之信。又未知見作何狀也。神勞愷弟。定應如見報時矣。慰仰曷已。工夫之無差殊處。此固撝譕之語。然心不存。則安能見其無差殊處也。見其無差殊而益加勉焉。使之至於有差殊者。此進乾之方也。時說紛紜之示。雖極可畏。然此豈一家一人之厄耶。究竟處分。有天翁在焉。惟盡其在我者以待之而已。講明義理。使所向不迷。完養心志。使所守不撓。此是斯門要旨。而尤爲今日之急事也。千萬勉㫋。 병이……멀어지네 맹호연(孟浩然)의 시 〈세모귀남산(歲暮歸南山)〉에 나오는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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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중27) 【찬호】에게 보냄 與李美中【燦鎬】 우리 두 사람이 종유하면서 모여 강론한 지 전후로 20년이나 오래 되지만 스스로 생각하건대 보잘것없는 나는 평소 멸렬하여 하나를 알고 반이라도 이해하여 그대에게 유익함을 도울 수 있은 것이 없음을 근심하였네. 지금 비록 병에 걸려 조석에 죽기를 기다리고 있지만 일찍이 나의 일념은 이것을 잊은 적이 없었네. 그대가 일전에 와서 유익한 한 마디를 청하였으니, 그대의 뜻은 또한 반드시 전날의 학업이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여겨 더욱 힘쓸 수 있기를 생각한 것이리라. 그렇다면 그대의 후회 또한 늦었다고 할 만하네. 그대는 오늘날 또한 청양(靑陽, 봄)한 시절이 아니라고 할 수 없으니, 이른바 늦었다는 것은 늦은 것이 아니네. 다만 미적거리며 등한히 기다리기를 전날과 같이 한다면 후일에 또한 오늘 같은 후회가 없다고 어찌 보장하겠는가? 격물(格物) 궁리(窮理)하여 그 뜻을 밝히고 수심(收心) 양성(養性)하여 그 실상을 실천 하는 것 이것이 학문하는 제일의 공부이니, 지역을 가려서 할 것이 아니고 또 때를 기다려 행할 것이 아니네. 밥 먹고 옷 입는 것이 이 공부가 아님이 없고, 물 긷고 땔나무하는 것이 이 공부가 아님이 없는데, 백성이 날마다 사용하면서도 알지 못하네. 단지 내가 뜻을 두는 것이 어떠한가에 달려 있을 뿐이니, 원컨대 그대는 힘쓰시게. 吾兩人遊從講聚。爲前後二十年之久。而自惟無狀。素患滅裂。無一知半解。有以資益於賢者。今雖賤疾。朝夕俟盡。而未嘗無區區一念耿耿乎此也。賢者日者來。請一言之益。賢者之意。亦必以前日之業爲未足。而思有以增勉之也。然則賢者之悔。亦云晩矣。賢於今日。亦不可謂非靑陽時節。則所謂晩者非晩也。但因循等待如前日。則安知後日亦無今日之悔也。格物窮理以明其義。收心養性以踐其實。此是學文第一功夫。非擇地可爲。又非待時可行。喫飯着衣。無非此功夫也。運水搬柴。無非此功夫也。百姓日用而不知焉。只在乎吾加之意如何耳。願賢者勉乎哉。 이미중(李美中) 이찬호(李燦鎬, 1879~?)를 말한다. 자는 미중, 호는 죽헌(竹軒),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정의림의 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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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형신【대량】에게 답함 答魏亨信【大良】 헤어진 뒤에 하염없이 시간은 흘러 이미 한 해가 지났으니, 그리운 마음은 더욱 암담해져 지나간 날만큼 쌓이네. 문득 편지를 받으니 음이 꽉 찬데서 하나의 양을 보는 것 같아 그 위안과 고마움이 어떻겠는가. 인하여 부모를 모시면서 기쁜 일이 많고 신령이 도와 건강하며, 부모를 봉양하고 남은 힘으로 공부하여 날마다 과정을 따른다고 하니, 붕우의 좋은 소식이 어찌 이보다 좋으랴! 더욱 듣고 싶었던 바라네. 나는 노쇠함이 날로 심하여 지팡이를 짚을 힘도 없으니 세상에 알려지지 못하고 죽은 귀신이 됨을 면치 못할까 두렵네. 다만 나를 따르는 사우(士友) 가운데 젊은이들이 많은데 그들의 기대에 만분의 일도 부응하지 못하니, 생각하면 항상 대단히 두렵다네. 잘 모르겠네만 우리 벗처럼 빼어난 젊은이는 나를 보고서 감계(鑑戒)로 삼는가. 그대가 〈외필(猥筆)〉에 운운한 것은 말하자면 매우 길고 현재 이러한 상황은 그 유래가 또한 오래 되었네. 유자 기풍의 쇠퇴와 선비 추향의 분열을 지나간 역사책에서 찾아보아도 또한 이런 일이 있는가. 사람으로 하여금 분격에 개탄하게 만드니 차라리 말 하고 싶지 않네. 다만 푸른 하늘이 저 위에 있으니, 백 대 이후에 반드시 정상으로 돌아옴을 기다릴 뿐이네. 別後荏苒。已易一寒暑。懷思悵黯。與日俱積。忽承惠書。怳然若窮陰之見陽。其慰沃感豁。爲何如耶。仍審侍省歡慶。神相百福。餘力佔畢。日趲程曆。朋知好音。曷踰於此尤叶願聞。義林衰索日深。策理無力。恐未免爲無聞之鬼而已。但遊從士友多少年。未有以塞其相期萬一之意。念之每切悚然。未知少年英秀如吾友者。視之爲鑑戒否。猥筆云云。言之甚長。且今日爻象。其來亦已久矣。儒風之衰薄。士趨之分裂。求之往牒。亦有是耶。令人憤歎。寧欲無言。但蒼天在上。只俟百世必反之常而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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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신재집(日新齋集) 21권 12책 日新齋集 日新齋集 고서-집부-별집류 교육/문화-문학/저술-문집 문집 국역 日新齋集 丁卯 丁卯 [1927] 鄭義林 목활자본 『일신재집(日新齋集)』 12 有界 10行22字 註雙行 한자 內向3葉花紋魚尾 전남대학교도서관_불명처1 전남대학교도서관 1927년에 간행한 조선 말기의 학자 정의림(1845~1910)의 시문집. 『일신재집(日新齋集)』은 21권 12책으로 문인 박준기(朴準基), 홍승환(洪承渙) 등과 족인(族人) 정병해(鄭炳海) 등이 유고를 모아 1927년 간행했으며, 서문과 발문은 없다. 권1은 시 175제가 수록되어 있다. 대체로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으며, 사우들을 만나고 지은 교제시가 대부분이며, 뒷부분은 만시가 많다. 그는 노문삼자로 불리웠던 정재규와 특별한 교분이 있어서 서로 영호남을 방문하고 시를 남겼으며, 1902년에는 『노사선생문집(蘆沙先生文集)』중간을 위해 단성의 신안정사를 방문하고 이어 최익현(崔益鉉), 기우만(奇宇萬), 정재규(鄭載圭), 최숙민(崔琡民) 등과 칠불사(七佛寺)에서 함께 지은 시가 남아 있다. 대표적인 시로는 「서석창수운(瑞石唱酬韻)」10수를 들 수 있다. 정의림은 이 시의 서문에서 1887년 8월 17일부터 8월 23일까지 7일간 친구나 문인들과 함께 화순에서 무등산의 광석대(廣石臺), 상봉(上峯), 증심사(澄心寺)를 거쳐 다시 화순의 만연사선정암(萬淵寺禪定庵), 능주의 영벽정(映碧亭)과 동귀봉(東歸峯)을 다녀오면서 지은 것이라고 하였는데, 방문한 곳에 대한 자신의 느낌과 그 곳의 풍광을 잘 묘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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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사열228)【계학】이 어머니를 위해 축수한 시에 차운하다 次魏士悅【啓學】壽母詩 미세한 양이 동할 때 주렴과 휘장 깨끗하니 (簾幃蕭灑動微陽)무리 지어 색동옷 입고 춤을 추며 북당을 에워쌌네 (舞綵相群繞北堂)정치한 강릉은 삼수와 벗을 맺고229) (鼎峙岡陵三壽作)태평의 연월 속에 백 년토록 강건하였네 (泰平煙月百年康)사람이 어지니 과연 큰 복이 있을 것이고 (人仁果有應胡福)물이 푸르니 어찌 각로방을 배우리오230) (水碧奚爲却老方)이날 관산에서 일제히 모인 자리에 (是日冠山齊會席)내 가지 못하고 궁벽한 곳에 은거함이 부끄럽네 (愧余未赴僻隅藏) 簾幃蕭灑動微陽。舞綵相群繞北堂。鼎峙岡陵三壽作。泰平烟月百年康。人仁果有膺胡福。水碧奚爲却老方。是日冠山齊會席。愧余未赴僻隅藏。 위사열(魏士悅) 위계학(魏啓學, 1868~1919)이다. 자는 사열(士悅), 호는 청계(淸溪)이다. 삼수와 벗을 맺고 『시경』「비궁(閟宮)」에 "삼수(三壽)로 벗을 맺어 산과 같고 구릉과 같으소서.[三壽作朋, 如岡如陵.]"라고 하였다. 물이……배우리오 각로방(却老方)은 선가(仙家)에서 불로장생하는 방법을 이른다. 한무제(漢武帝)가 방사(方士)인 이소군(李少君)으로부터 각로방을 전수받고는 이소군을 극진히 대우하였다.『漢書 郊祀志』 이곳이 선계와 같아서 달리 신선의 방술을 배울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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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은【수근】에게 보냄 與李明恩【守桹】 전일에 돌아오는 행차는 편안하였는지요? 이어서 겨울이 장차 끝나가니, 경체(經體)의 기거하심에 큰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몹시 그리워하는 심정을 멀리서 가눌 길이 없습니다. 여러 번 돌보아주심이, 어찌 이리도 친절하고 은근하십니까. 그러나 기구하고 험난한 상황에서 온갖 사정에 묶여 있기에, 사례하는 뜻을 표하기 위해 한 번도 가지 못하였습니다. 감사하기도 하고 또 죄송한 마음이 간절합니다. 생각건대 남파선생(南坡先生)게서 후학들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나신 뒤로 세월이 이미 많이 흘렀는데, 유고(遺稿)가 다소 있으나 아직도 간행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실로 유림(儒林)들의 잘못이니 개탄스러운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듣자하니 존문(尊門)의 여러 군자들이 성대하게 생각을 말하여 미처 마치지 못한 일을 맡아주었다니, 참으로 문헌(文獻)의 고가(古家)에서 일을 처리하고 의(義)를 지키는 방법이 과연 일반 사람들과는 다른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사문(斯文)을 지키고 후학에게 은혜를 끼치는 일은 어떠합니까? 이미 일을 시작하였고, 권질(卷帙)이 많으니, 널리 전파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일을 할 만한 능력이 어떠한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염려되는 마음이 절실할 따름입니다. 의림(義林)은 이른 봄 즈음에 한 번 직접 판각하는 곳을 찾아가서 하루 정도 연참(鉛槧)4)의 일을 돕고자 합니다만 이 몸의 상황을 말씀드리기 어려우니, 끝내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曩也返次無撓。繼而冬令將暮。經體動止。茂納崇祉。馳溯耿耿。不任遠情累荷枉顧。何等鄭重。而惟此崎嶇險戲。局束百故。未得有一者回謝之行。感戢之餘。旋切主臣。伏惟南坡先生棄後學。日月已多。而多少遺稿。尙稽刊行。此實儒林之責。而不能無慨歎之私。仄聞尊門諸君子。蔚然發慮。營此未遑之擧。信知文獻古家。處事制義之方。果有以異於人也。其所以衛斯文惠後學爲何如耶。旣爲設始。則多其秩。可以廣其布。但未知事力爲何如耶。只切馳慮而已。義林第擬以開春。一番躬造於剞劂之所。以相一日鉛槧之役。但身故難狀。未知竟作如何也。 연참(鉛槧) 참(槧)은 목판이요, 연(鉛)은 연분필을 말한다. 《서경잡기(西京雜記)》에, "양자운(揚子雲)이 항상 연필을 품고 목판을 들고 다녔다." 하였다. 여기에서는 목판에 문집을 새기는 작업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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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백150)【창섭】이 관례를 행하는 날 적어서 주다 安慶伯【昌燮】加冠日題贈 안씨의 아들 태어나 십오 세가 되었으니 (安氏子生十五年)풍모는 속유의 모습에서 멀리 벗어났네 (風儀逈出俗儒邊)총각 머리 사랑스러움 가문으로 말미암고 (丱髦婉變由房戶)별 고깔 높게 쓰고 객연에서 술 따르네 (星弁頍峨醮客筵)간곡하게 네 가지 행실을 요구함은151) 그 덕을 이루기 위함이고 (責四諄諄成厥德)정연하게 세 가지 절차를 행함은152) 하늘에 근본한 것이네 (加三秩秩本於天)이름이 창섭이고 자가 경백인 것 무슨 뜻인가 (名昌字慶知何意)심은 것 북돋아 주는 이치 실로 당연히 이치라네 (栽者培之理固然) 安氏子生十五年。風儀逈出俗儒邊。卯髦婉變由房戶。星弁頍峨醮客筵。責四諄諄成厥德。加三秩秩本於天。名昌字慶知何意。栽者培之理固然。 안경백(安慶伯) 안창섭(安昌燮, 1874~?)이다. 본관은 죽산(竹山), 자는 경백이다. 네……요구함은 『소학』「가언(嘉言)」에 "성인이란 장차 아들이 되며 동생이 되며 신하가 되며 젊은이가 된 자의 행실을 요구하는 것이다. 네 가지의 행실을 사람에게 요구하려 하니, 그 예를 중하게 여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成人者, 將責爲人子, 爲人弟, 爲人臣, 爲人少者之行也. 將責四者之行於人, 其禮可不重與?]"라고 하였다. 세……행함은 관례에서 행하는, 관을 세 차례 갈아 씌우는 의식을 말한다. 맨 처음에는 치포관(緇布冠)을 씌우고 다음에는 피변(皮弁)을 씌우고 마지막에는 작변(爵弁)을 씌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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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치도【종국】에게 답함 答邊致道【鎭國】 그대가 날 찾아온 이후로 세월이 벌써 많이 흘렀는데, 벗의 우아한 몸가짐이 항상 마음속에 떠오르지 않음이 없으니, 어찌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그리는 마음이 이처럼 지극함에 이르게 하는가. 한 마디 해달라는 부탁이 있었는데, 다만 이별한 이후로 병도 많고 일도 많아 조금도편안한 시절이 없어서 벗의 근후한 뜻을 저버린 것이 많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니, 많은 책과 많은 경전의 천 마디 만 마디 말은 도를 밝히는 요점과 덕에 들어가는 문이 되지 않음이 없으니, 어찌 침상 위에 침상을 놓고 지붕 위에 지붕을 이는 것처럼 이를 버리고 다른 방법을 구하려고 하는가. 대저 학문은 뜻을 세우는 것을 우선해야 하니, 이른바 뜻을 세운다는 것은 반드시 성인이 되는 것으로 기대해야 하며 조금이라도 자신을 작다고 여기거나 물러나 핑계를 대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되네. 대저 그러한 연후에 큰일을 담당하여 용감하게 곧장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니, 이른바 경(敬)을 주장하여 근본을 세우는 것이나 이치를 궁구하여 선을 밝히는 것 등은 모두 그 다음의 일이네. 뜻이 참으로 서지 않으면 비록 성인의 훌륭한 말씀이라도 오히려 어찌 내치지 않겠는가. 더구나 나처럼 어리석고 비루한 자의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나 쓸 데 없이 덧붙인 말임에랴. 무거운 병을 앓고 난 뒤라 정신이 몽롱하여 붓 가는 대로 대충 쓰다 보니 글이 뜻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였네. 깊이 헤아려주기 바라네. 自蒙枉願。日月非不久矣。而故人雅儀。未嘗不常常往來於心目之間。何令人致思一至於是耶。旦有一言之託。而別離以來。多病多故。無霎時妥帖時節。以負故人勤厚之意多矣。然旋念群書群經。千言萬言。無非明道之要。入德之門。何必舍此而別求方法。如床上之床屋上之屋乎。大抵學問。以立志爲先。所謂立志者。必以聖人期待。不可有一毫自小退托之念。夫然後可以擔當大任。勇往直前。所謂主敬而立本。窮理而明善。皆其次第事。志苟不立。雖聖人格言。尙且奈何不下。況如愚陋者瞽說贅言乎。重病之餘。精神矇矇。信筆胡草。言不達意。惟諒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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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중추부사 박공【재원】에게 답함 答同樞朴公【在源】 책상 아래에서 인사드린 지 이미 한 해가 지난 듯하니, 늘 마음에 잊혀지지 않습니다. 뜻밖에 공의 손자께서 상중에 찾아와 주시고, 공의 편지를 또 소매에서 내어 전해 주었으니 너무나 감사하고 또 너무나 송구하였습니다. 많은 연세에 절선(節宣)하고 부지하는 모든 일이 어려울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어긋나고 형편없는 사람을 잊지 않고 굽어살펴 주심이 이처럼 정성스럽단 말입니까. 성대한 도량으로 감싸 주시는 것이 과연 상정으로 헤아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하여 수체(壽體)를 보양하여 신상(神相)이 편안하시다고 하니, 너무나 듣고 싶은 말이었습니다. 저는 작년 가을부터 기침하는 증상이 있었는데 지금까지 심해지기만 하고 차도가 없으니, 죽을 날이 필시 멀지 않았을 것이기에 다만 조용히 기다릴 따름입니다. 아, 가슴에 가득 쌓인 회포를 하소연할 곳이 없었는데 하소연할 수 있는 대상이 어른이 아니면 누구이겠습니까. 그런데도 정신은 혼미하고 숨은 가빠 한 자를 적는 것이 바둑알을 아홉 개 쌓는 것보다 어려우니 어찌합니까. 우선 남겨 두었다가 후일을 기다리겠습니다. 하지만 또 남은 날이 다시 얼마나 되겠습니까. 이로 보나 저로 보나 정신이 손상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저는 어른에 비해 나이가 비록 적지만 노년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마땅히 많이 드시고 잘 조섭하여 영위(營爲)함이 없이 행동을 살펴보아 길흉을 상고하는 터전으로 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저도 궁극적으로는 또한 여기에 마음을 써야 하지만 박복한 천한 소생이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拜違床下。洽已周歲。懷仰耿耿。昕宵無間。謂外賢抱棘人。委辱枉顧。尊函又自其袖中出。感感之至。旋切悚悚。大耋之年。節宣扶持。凡百爲難。而何以不忘醜差無狀之物。爲垂俯存。若是懇惻耶。盛度所包。果非常情可涯也。因審頤養壽體。神相康謐。尤協願聞之至。生自去秋。得咳喘之證。至于今日。有加無減。其爲溘然。必無多日。只當待之而已。嗚乎。滿腔積懷。無可告訴。而所可告訴者。非丈氏而誰耶。然而神昏氣促。作一字。艱於累九棊。奈何。姑且留之以待後日耶。又未知後日能復幾何。以彼以此。無非傷神處也。生之於丈氏。年紀雖不同。而其爲晩景則一也。只宜加餐善攝。無營無爲。以爲視履考祥之地。如何。生之究竟。亦未始不在於此。而賤生薄命。未知果爾否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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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윤에게 답함 答鄭周允 10년이 지나도록 서로를 보지 못하였으니 이것이 활별(濶別 오랫동안 만나지 못함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활별이 이와 같다면 거의 서로를 잊었으련만 잊지 못하고 떠오르는 생각이 하루라도 형 옆에 있지 않은 날이 없습니다. 이것은 인정이 본래 그러한 것이기 때문이겠지요. 늘그막에 남겨진 시간이 거의 없건마는 앞으로의 활별은 더 심할 듯합니다. 우리 둘이 다시는 살아 있는 세상에서는 서로 볼 수 없겠지요. 형이 말씀하시는 "흙이 아니고 나무가 아니니 어떻게 마음을 가누겠는가."라는 것은 애초에 아우에게 해당하는 말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지난가을에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의 호)가 형의 편지를 보내주어 인하여 형이 근래 머리 아픈 일 없이 지내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험난한 세상에 어찌 이것보다 좋은 소식이 있겠습니까. 다만 그 당시에 앓았던 병환은 과연 일찌감치 일상을 회복하여 줄곧 평안하신지요? 형제가 책상을 마주하고 노년에 덕을 닦아나가는 것이 더욱 정밀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아우는 노쇠한 징후가 갑자기 이르고 기침이 잦고 숨이 가쁜 증상이 날이 갈수록 심해져 베개에 엎드려 신음하고 있으니 단지 아직 식지 않은 시체일 뿐입니다. 보내신 편지에 자세하게 의리(義理)를 죄다 말씀하셨는데 아주 명명백백하여 덕으로 사람을 아끼는 군자의 지극한 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른바 유종(儒宗)의 말에 관해서는 이보다 앞서 참으로 이미 들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이 옳은 듯하지만 그릇된 것입니다. 옳은 듯하기 때문에 사람을 미혹하기가 쉽습니다. 하물며 한 시대의 명망을 짊어진 입장에서 옳은 듯한 말을 하여 이익을 좋아하는 마음에 호응해준다면 어느 누가 그를 흠모하면서 기꺼이 따르지 않겠습니까? 혀를 찰 괴이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十年不相見。此非濶別耶。濶別如此。幾乎相忘。而心心念念。無一日不在於兄邊。此人情之所固然耶。葉楡殘景。所餘無幾。而前頭之濶似復甚焉。吾兩人。其不得復以陽界相見耶。兄所謂非土非木。何以爲心者。未始非弟之語也。前秋松沙送兄書。因審兄近來經過無撓。險世好消息。何踰於此。但其是有所愼之節。果能趁早復常。一味泰平否。聯棣對床。老年進德。想益邃密也。弟衰徵驟至。咳嗽喘促。日甚一日。伏枕叫囈。特一未冷尸耳示喩縷縷。說盡義理。十分明白。可見君子愛人以德之至意也。所謂儒宗之言。前此固己聞之矣。天下最可畏者。似是之非。似是故惑人易。況以一時負望之地。而持似是之說。以中其嗜利之心。則孰不欣慕而樂從之哉。可謂咄咄怪事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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