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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6년 김채상(金彩相) 산지매매명문(山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명문 경제-매매/교역-시장문기 咸豊六年丙辰四月十三日 幼學申泰學 幼學金彩相 咸豊六年丙辰四月十三日 申泰學 金彩相 전라북도 부안군 [着名] 4개, [不着] 1개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856년(철종 7)에 신태학이 부안현 하서면 길음동 계곡 무후산 근처 산을 김채상에게 팔면서 작성한 산지매매명문. 1856년(철종 7) 4월 13일에 신태학(申泰學)이 부안현(扶安縣) 하서면(下西面) 길음동(吉音洞) 계곡 무후산(無后山) 근처 산을 김채상(金彩相)에게 팔면서 작성한 산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신태학은 이 산을 사용하고자 하는 김채상에게 10냥을 받고 산지를 넘겨주었다. 거래 당시 산지주(山地主)인 신태학(申泰學)과 증인(證人) 양집(梁檝), 보인(保人)으로 고군화(高君化) 빈상홍(賓相鴻) 등 4인이 참여하였는데, 빈상홍은 마침 상중(喪中)이어서 서명에는 참여하지 못하였다. 문서의 하단에 족숙(族叔)인 도상(道相)에게도 산을 사용할 때 참석하는 것을 아울러 승인한다고 명시하였다. 관련된 문서에 의하면 거래 토지 지역은 부안현 하서면 길음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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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 송주채(宋柱埰) 등 방매(放賣) 석물매매명문(石物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大韓光武二年戊戌正月卄四日 宋柱埰 大韓光武二年戊戌正月卄四日 宋柱埰 전라북도 태인군 [着名] 4개 전주 송진택가 전주역사박물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HIKS_Z041_01_A00012_001 1898년(광무 2) 정월 24일에 송주채(宋柱埰)가 누군가에게 석물(石物)을 전문 300냥을 받고 방매할 때 작성한 석물매매명문. 1898년(광무 2) 정월 24일에 유학 송주채(宋柱埰)가 누군가에게 석물(石物)을 방매하면서 작성한 석물매매명문이다. 송주채는 자신의 태인군(泰仁郡) 남촌면(南村面) 반룡동(盘龍洞) 서록(西麓)에 있는 자신의 증조비 산소를 다른 곳으로 이장하면서 그곳에 설치한 반석(磐石) 일좌(一座)와 주석(柱石) 한 쌍(一雙)을 전문 300냥을 받고 방매하였다. 방매한 사유는 긴히 쓸데가 있어서라고 밝히고 있다. 이 거래에는 동생 송주상(宋柱祥)이 공동 주인으로, 유학 이정도(李正道)와 박성오(朴成五)가 증인으로 참여하고 각각 착명하였다. 반룡촌은 당시 태인군 남촌면 반룡리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인해 현재는 정읍시 감곡면 계룡리에 속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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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1년 김재상(金載相) 시장문기(柴場文記) 고문서-명문문기류-명문 경제-매매/교역-시장문기 道光拾㱏年辛卯四月初三日 朴羣坪金 幼學金載相 道光拾㱏年辛卯四月初三日 朴羣坪金 金載相 전라북도 부안군 [喪人], [着名] 2개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831년(순조 31)에 박군평쇠가 서십작 송자에 있는 시장을 김재상에게 팔면서 작성한 시장문기. 1831년(순조 31) 4월 초3일에 박군평쇠(朴羣坪金)가 서십작(西十作) 송자(悚字)에 있는 시장(柴塲)을 김재상(金載相)에게 팔면서 작성한 시장문기이다. 박군평쇠는 양부(養父)가 사망한 뒤에 세미(稅米)를 마련할 방법이 없어서 부득이하게 시장(柴塲)을 팔게 되었다고 매매사유를 밝히고 있다. 거래된 시장은 서십작 송자에 있는 진황지(陳荒地)로, 남쪽으로 길이 120척 동쪽으로 넓이 30척이며 거래가격은 30냥이다. 그리고 이후 만약에 사람들이 다른 말들을 하면 이 문서를 증거로 하라고 하였다. 서십작 송자 시장이 어느 지역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관련문서들에 의하면 부안현에 속한 지역으로 추정된다. 이 거래에는 시장주(柴塲主) 박군평쇠(朴羣坪金)와, 증인(訂人) 박양곤(朴良坤), 필집(筆執) 김상후(金相垕) 등 3인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당시 시장주는 상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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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년 이재실(李載實)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同治五年丙寅五月初三日 李載實 同治五年丙寅五月初三日 李載實 전라북도 부안군 [着名] 3개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866년(고종 3)에 이재실이 서도질 관인제 아래에 있는 논을 아무개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66년(고종 3) 5월 초3일에 이재실(李載實)이 서도질(西道秩) 관인제(寬仁堤) 아래에 있는 논을 아무개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이재실은 이 논을 여러 해 동안 경작하며 먹고 살았지만 부득이한 형편으로 팔게 되었다. 그러나 논을 사는 사람이 누군인지는 밝혀져 있지 않다. 거래된 토지는 서도질 관인제 아래에 있는 황자답(惶字畓) 17두락지이며, 부수로는 38부(負)이다. 거래 가격은 145냥이다. 거래 당시 신구문기(新舊文記) 3장을 첨부하여 넘겨주면서 차후에 말썽이 생기면 관에 증거로 삼으라고 하였다. 서도질 관인제가 어느 지역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관련문서에 의하면 부안현 하서면 지역으로 추정된다. 이 거래에는 답주(畓主)인 이재실(李載實)과 증인(證人) 이후재(李厚載), 필(筆) 김채삼(金彩三) 등 3인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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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 최영대(崔永大)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武二年戊戌正月 幼學宋柱埰 崔永大 光武二年戊戌正月 宋柱埰 崔永大 전라북도 태인군 [着名]3개 전주 송진택가 전주역사박물관 박병호, 『韓國法制史攷 : 近世의 法과 社會』, 법문사, 1974. 최승희, 『增補版 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1989. 박병호 외, 『호남지방 고문서 기초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1999. HIKS_Z041_01_A00012_001 1898년(광무 2) 1월에 최영대(崔永大)가 송주채(宋柱埰)로부터 산지를 매입하면서 받은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98년(광무 2) 1월에 최영대(崔永大)가 송주채(宋柱埰)로부터 산지를 매입하면서 건네받은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송주채와 송주상(宋柱祥) 형제는 태인 남촌면 고당산(姑當山) 동쪽 반룡촌(盤龍村)에 있는 증조비(曾祖妣)의 묘를 1월 30일 내에 이장하기로 하고, 산지의 경계를 정해 최영대에게 이를 1,300냥에 방매하였다. 문서의 아래에 부기(附記)한 내용은 관련문서 '1903년 최영대(崔永大) 소지(所志)'를 보면, 이때 매득한 곳에 투장이 발생하자 정소(呈訴) 과정에서 투장자인 흥덕(興德) 칠성동(七星洞)에 사는 이병덕(李柄德)의 신상을 적어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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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5년 김재상(金載相) 시장문기(柴場文記) 고문서-명문문기류-명문 경제-매매/교역-시장문기 嘉慶二十年乙亥九月初七日 幼學朴乃伯 幼學金載相 嘉慶二十年乙亥九月初七日 朴乃伯 金載相 전라북도 부안군 [着名] 1개, [喪人] 2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815년(순조 15)에 박내백이 송자 진황지에 있는 시장을 김재상에게 팔면서 작성한 시장문기. 1815년(순조 15) 9월 초7일에 박내백(朴乃伯)이 송자(悚字) 진황지(陳荒地)에 있는 시장(柴塲)을 김재상(金載相)에게 팔면서 작성한 시장문기이다. 김재상이 부친의 장례를 치르기 위하여 시장을 매매하기를 원하자 박내상은 선대로부터 자신이 물려받은 시장을 한계를 정해서 팔기로 하였다고 매매사유를 밝히고 있다. 거래된 시장은 송자 진황지에 있는데, 거래가격은 13냥이다. 거래 당시 신문기 1장을 작성하여 건네주며 차후 자손들의 분란에 증거로 삼으라고 하였다. 거래된 시장의 한계(限界)는 동쪽으로는 박성량(朴成良)의 밭에 이르고, 남쪽으로는 박춘흥(朴春興)의 논, 서쪽으로는 박용인(朴龍仁)의 밭, 북쪽으로는 조가(趙哥)의 총(墳墓)에 이르도록 하였다. 이 거래에는 시장주(柴塲主)인 박내백(朴乃伯)과 증인(訂人) 동성조카(同姓侄) 진여(辰汝), 필(筆) 동성조카(同姓侄) 광여(光汝) 등 3인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때 두 조카는 상중(喪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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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4년 김재상(金載相) 시장문기(柴場文記) 고문서-명문문기류-명문 경제-매매/교역-시장문기 道光十四年甲午四月初十日 朴基俊 幼學金載相 道光十四年甲午四月初十日 朴基俊 金載相 전라북도 부안군 [喪人], [着名] 3개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834년(순조 34)에 박기준이 전해 내려온 송자에 있는 시장을 김재상에게 팔면서 작성한 시장문기. 1834년(순조 34) 4월 초10일에 박기준(朴基俊)이 전해 내려온 송자(悚字)에 있는 시장(柴塲)을 김재상(金載相)에게 팔면서 작성한 시장문기이다. 박기준은 이 시장을 장례 때 진 빚과 세미(稅米)를 납부할 길이 없어서 팔게 되었다고 매매사유를 밝히고 있다. 거래된 시장은 진황지(陳荒地)에 있는 시장으로, 가격은 7냥이다. 시장의 길이와 넓이는 한계를 정해서 매매하기로 하였다. 본문기(本文記)는 중간에 잃어버렸기 때문에 매입자에게 넘겨주지 못하였다. 뒷날 자손이나 족속들이 다투면 이 신문기를 증거로 하라고 하였다. 거래에는 시장주(柴塲主)인 박기준(朴基俊)과 증인(證 人) 박창길(朴昌吉), 필(筆) 조흥규, 증참(證叅) 동성 5촌 박진덕(朴震德) 등 4인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한편 문서 말미에 매매할 시장의 한계는 후록(後錄)으로 범표(犯標)를 작성하여 표시하였다. 즉, 길이는 남쪽에 있는 박흥업(朴興業)의 밭을 지나서 북쪽의 김영집(金英集)의 시장에 이르는 98척(尺)이며, 넓이는 동쪽에 있는 박진덕(朴震德)의 밭을 지나서 서쪽의 박춘엽(朴春葉)의 시장에 이르는 60척(尺)으로 한계를 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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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6년 이윤범(李允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咸豊六年丙辰五月二十日 金秉權 李允範 咸豊六年丙辰五月二十日 金秉權 李允範 전라북도 부안군 [着名] 3개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856년(철종 7)에 김병권이 서도작 중방 서평에 있는 논을 이윤범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56년(철종 7) 5월 20일에 김병권(金秉權)이 서도작(西道作) 중방(中方) 서평(西坪)에 있는 논을 이윤범(李允範)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김병권은 대대로 물려받은 논을 경작해 왔지만 긴히 사용할 일이 생겨서 팔게 되었다고 매매이유를 밝히고 있다. 거래된 토지는 서도작 중방 서평의 황자답(惶字畓) 7두락지이며 거래가격은 145냥이다. 거래 당시 본문기(本文記)를 건네주면서 만약에 말썽이 일어나면 관에 제출하여 증거로 삼으라고 하였다. 서도작 중방이 어느 지역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그 동안의 관련 자료에 의하면 부안현에 속한 지역으로 추정된다. 이 거래에는 답주(畓主) 김병권(金秉權)과 증인(證人) 박응원(朴應元), 필(筆) 김채삼(金采三) 등 3인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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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 장영후(張永厚)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畓主張永厚 張永厚 [着名] 전주 송진택가 전주역사박물관 HIKS_Z041_01_A00012_001 모년에 인동장씨 장영후(張永厚)가 논을 팔 때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인동장씨 가문의 張永厚가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문서. 문서가 훼손되어 언제 누구에게 어떤 곳의 논을 팔았는 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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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2년 박춘실(朴春實)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道光十二年壬辰二十日 朴義仲 朴春實 道光十二年壬辰二十日 朴義仲 朴春實 [着名] 3개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832년(순조 32)에 박의중이 서십작에 있는 논을 박춘실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32년(순조 32)에 박의중(朴義仲)이 서십작(西十作)에 있는 논을 박춘실(朴春實)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박의중은 이 논을 매득하여 여러 해 동안 경작해 왔지만 급히 사용할 일이 생겨서 팔게 되었다고 매매사유를 밝히고 있다. 거래된 토지는 서십작 송자답(悚字畓) 5두락지이며, 부수로는 9부(負)가 되는 곳으로 거래가격은 25냥이다. 거래 당시 본문기(本文記) 3장을 넘겨주면서 이후 만약에 자손 가운데 잡담을 일으키면 증거로 하라고 하였다. 이 거래에는 답주(畓主)인 박의중(朴義仲)과 증인(證人) 윤광필(尹光弼), 필(筆) 박창길(朴昌吉) 등 3명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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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년 김병헌(金炳憲)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同治九年庚午三月十二日 幼學金炳憲 同治九年庚午三月十二日 金炳憲 喪不着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870년(고종 7)에 김병헌이 서도질에 있는 논을 아무개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70년(고종 7) 3월 12일에 김병헌(金炳憲)이 서도질(西道秩)에 있는 논을 아무개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김병헌은 이 논을 긴급히 쓸 일이 생겨서 팔게 되었다고 매매사유를 밝히고 있다. 거래된 토지는 원래 서도질에 있는 재자답(再字畓) 5두락지이며, 복수로는 9복(卜)이 되는 곳인데, 이곳을 같은 서도질의 동자답(同字畓) 1두락지이며, 부수로는 1부(負)가 되는 곳과 맞바꿔 팔면서 3냥을 주기로 하였다. 거래 당시 신문기와 구문기 2장을 건네주면서 이후에 만약에 잡음이 일어나면 증거로 삼으라고 하였다. 당시 답주(畓主)인 김병헌(金炳憲)은 상중(喪中)이어서 서명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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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장경의(張京仅)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大韓光武十一年丁未十二月初一日 張京儀 大韓光武十一年丁未十二月初一日 張京儀 [着名] 2개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907년(순종 1)에 장경의가 화동 전평에 있는 논을 아무개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07년(순종 1) 12월 초1일에 장경의(張京儀)가 화동(花洞) 전평(前坪)에 있는 논을 아무개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장경의는 긴급히 사용할 데가 있어서 이 논을 팔게 되었다고 매매사유를 밝히고 있다. 거래된 토지는 화동 전평에 있는 상자답(顙字畓) 서도질(西道秩) 7두락지이며, 부수로는 14부(負)가 되는 곳으로 거래가격은 75냥이다. 거래 당시 구문기와 신문기를 각각 1 장씩을 매입자에게 넘겨주면서 차후 일어날 말썽에 대비하라고 하였다. 이 거래에는 답주(畓主)인 장경의(張京儀)와 증필(證筆) 이수경(李守京)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토지를 산 사람이 누구인지는 밝혀져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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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년 박집중(朴執中)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同治九年庚午十月初三日 幼學朴執中 同治九年庚午十月初三日 朴執中 [着名] 2개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870년(고종 7)에 박집중이 서도질에 있는 논을 아무개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70년(고종 7) 10월 초3일에 박집중(朴執中)이 서도질(西道秩)에 있는 논을 아무개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박집중은 이 논을 매득하여 경작하여 오다가 긴급히 사용할 데가 있어서 팔게 되었다고 매매사유를 밝히고 있다. 거래된 토지는 서도질에 있는 재자답(再字畓) 6두락지이며, 부수로는 10부(負)가 되는 곳으로 거래가격은 39냥이다. 거래 당시 신문기와 구문기 3장을 매입자에게 함께 넘겨주면서 이후에 말썽이 일어나면 이 문서를 관에 고하라고 하였다. 이 거래에는 답주(畓主)인 박집중(朴執中)과 증필(證筆) 김병효(金炳孝)가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토지를 산 사람이 누구인지는 밝혀져 있지 않다. 문서의 뒷면에는 김국명(金局明)이 왔다는 문구가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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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년 김경문(金敬文)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十年甲申二月二十六日 金敬文 光緖十年甲申二月二十六日 金敬文 [着名] 2개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884년(고종 21)에 김경문이 당후리 전평에 있는 논을 아무개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1884년(고종 21) 2월 26일에 김경문(金敬文)이 당후리(堂後里) 전평(前坪)에 있는 논을 아무개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김경문은 이 논을 다른 곳으로 이사하기 위하여 팔게 되었다고 매매사유를 밝히고 있다. 거래된 토지는 당후리 전평에 있는 송자답(悚字畓) 5두락지이며, 부수로는 1부(負)가 되는 곳으로 거래가격은 2냥이다. 거래 당시 구문기와 신문기를 각각 1장씩을 매입자에게 넘겨주면서 차후 일어날 말썽에 대비하라고 하였다. 이 거래에는 명문주(明文主)인 김경문(金敬文)과 증필(證筆) 신원문(申元文)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토지를 산 사람은 누구인지 밝혀져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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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7년 조개찬(趙介贊)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嘉慶二年丁巳二月初十日 趙介賛 李恒瑞 嘉慶二年丁巳二月初十日 趙介賛 李恒瑞 [着名] 3개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797년(정조 21)에 조개찬이 서십작에 있는 논을 이항서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797년(정조 21) 2월 초10일에 조개찬(趙介贊)이 서십작(西十作)에 있는 논을 이항서(李恒瑞)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조개찬은 이 논을 매득하여 여러 해 동안 경작하며 먹고 살다가 마침 쓸데가 생겨서 팔게 되었다고 매매사유를 밝히고 있다. 거래된 토지는 송자답(悚字畓) 5두락지이며, 부수로는 9부가 되는 곳이다. 거래가격은 25냥이며, 본문기(本文記) 2장을 넘겨주면서 이후에 혹시라도 자손들이 서로 다툴 시 증거로 하라고 하였다. 이 거래에는 답주(畓主)인 조개찬(趙介贊)과 증인(訂人) 김수문 증보(訂保) 박금봉(朴今奉) 등 3인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이 문기는 답주인 조개찬이 자필(自筆)로 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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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 김낙곤(金洛坤)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明治四十四年辛亥三月初二日 幼學金洛坤 明治四十四年辛亥三月初二日 金洛坤 전라북도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911년 일제 강점기에 김낙곤이 부안군 일도면 당후리 후평에 있는 논을 아무개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11년 3월 초3일 일제 강점기에 김낙곤(金洛坤)이 부안군(扶安郡) 일도면(一道面) 당후리(堂后里) 후평(後坪)에 있는 논을 아무개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김낙곤은 긴히 사용할 곳이 있어서 일도면 당후리 후평에 있는 논을 매매하게 되었다고 한다. 거래된 토지는 국자(鞠字) 17호답(畓) 5두락지이며, 부수로는 13부(負)되는 곳으로 매매가격은 300냥이다. 거래 당시 구문기 3장과 신문기 1장을 함께 넘겨 주면서 이후 만약에 다른 말썽이 있으면 이 문기들로 증명하라고 하였다. 일도면 당후리가 어느 지역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 거래에는 답주(畓主) 김낙곤(金洛坤)과 증인 최진환(崔震煥)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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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년 박영수(朴永秀)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同治九年庚午三月十二日 朴永秀 同治九年庚午三月十二日 朴永秀 [着名]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870년(고종 7)에 박영수가 서도질에 있는 논을 아무개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70년(고종 7) 3월 12일에 박영수(朴永秀)가 서도질(西道秩)에 있는 논을 아무개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박영수는 이 논을 긴급히 사용할 데가 팔게 되었다고 매매사유를 밝히고 있다. 거래된 토지는 원래 서도질에 있는 송자답(悚字畓) 5두락지이며, 부수로는 10부(負) 5속(束)이 되는 곳인데, 이것을 재자답(再字畓) 5두락지로 바꿔 매매하였다. 거래가격은 13냥이다. 거래 당시 신문기와 구문기 2장을 건네주면서 이후 만약에 서로 엇갈리는 말이 나오면 이 문서로 증빙하라고 하였다. 이 거래에는 답주(畓主)인 박영수(朴永秀)가 혼자 자필로 문서를 작성하고 서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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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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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784년 김준기(金俊起)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乾隆肆拾玖年甲辰十月十四日 金斗應 金俊起 乾隆肆拾玖年甲辰十月十四日 金斗應 金俊起 [喪人], [着名] 2개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784년(정조 8)에 김두응이 진황처에 있는 밭을 김준기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784년(정조 8) 10월 14일에 김두응(金斗應)이 진황처(陳荒處) 서십작(西十作)에 있는 밭을 김준기(金俊起)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김두응은 이 밭을 조상한테 물려받아 계속 경작하여 왔으나 생활이 빈궁하여 팔게 되었다고 매매사유를 밝히고 있다. 거래된 토지는 진황처 서십작 간자전(簡字田)으로, 길이가 서쪽을 지나 남북으로 30척(尺)이고, 크기가 동서로 35척(尺)이 되는 곳이다. 거래가격은 6냥이다. 이 거래에는 구진전주(舊陳田主)인 김두응(金斗應)과 증(證) 홍하찬(洪夏讚), 필집(筆執) 박인봉(朴仁鳳) 등 3명이 참여하였다. 이 때 박인봉은 상중이어서 서명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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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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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906년 최상엽(崔相燁)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武十年丙午二月二十八日 崔相燁 光武十年丙午二月二十八日 崔相燁 전라북도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906년(고종 10)에 최상엽이 염소질에 있는 논을 아무개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06년(고종 10) 2월 28일에 최상엽(崔相燁)이 염소질(塩所秩)에 있는 논을 아무개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최상엽은 이 논을 직접 매득하였으나 매매사유는 밝히지 않고 있다. 거래된 토지는 이자답(異字畓) 9두락지이며, 부수로는 17(負)가 되는 곳으로 가격은 90냥이다. 염소질 이자답이 어느 지역인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단지 관련 문서로 볼 때 부안현에 속하는 지역이라고 추정된다. 거래 당시 구문서 1장이 유실되어 새로운 문서 1장을 작성하여 주면서 다른 말들이 오가면 관에 증거로 삼으라고 하였다. 이 거래에는 답주(畓主)인 최상엽(崔相燁)과 증필(證筆) 김형술(金瀅述)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토지를 산 사람이 누구인지는 밝혀져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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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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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령류

1855년 김명하(金命河) 추증교지(追贈敎旨) 고문서-교령류-고신 정치/행정-임면-고신 咸豐五年三月 日 哲宗 金命河 咸豐五年三月 日 哲宗 金命河 서울특별시 종로구 施命之寶 1개(적색, 정방형) 부안 돈계 김응상 후손가 부안 돈계리 김응상 후손가 1855년(철종 6)에 왕이 김응상의 아버지 김명하에게 내린 추증교지 1855년(철종 6) 3월, 왕이 김응상(金膺相)의 아버지 김명하(金命河)에게 가선대부(嘉善大夫) 호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 오위도총부부총관(戶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五衛都摠府副摠管)의 관직을 내리면서 발급한 추증교지(追贈敎旨)이다. 김응상이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 겸 오위장(同知中樞府事兼五衛將)으로 임명되자 그의 아버지도 증직(贈職)되었다. 즉, 이 문서의 맨 끝에 "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兼五衛將金膺相考 依法典追贈"라고 적혀 있는 기록이 바로 그 사실을 말해주는 내용이다. 조선 시대에는 실직(實職)이 2품 이상인 종친(宗親)과 문무관(文武官)의 경우 그의 부(父), 조(祖), 증조(曾祖)등 3대(代)에 걸쳐 사후(死後) 관직을 주었고 이를 추증(追贈)이라 하였다. 이는 김응상의 아버지 김명하가 증직된 사유이다. 또한 부모(父母)는 실직에 있는 아들과 같은 품계를 내리며 조부모(祖父母), 증조부모(曾祖父母)에게는 그 품계에서 각각 1품씩 강등하여 추증하였다. 이러한 사유로 김응상의 아버지 김명하가 종2품 가선대부로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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