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록문화
통합검색플랫폼

검색 필터

기관
유형
유형분류
세부분류

전체 로 검색된 결과 549132건입니다.

정렬갯수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848년 조응호(趙膺鎬)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戊申九月初二日 趙膺鎬 場巖 戊申九月初二日 趙膺鎬 場巖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848년(헌종 14) 조응호가 보낸 서간 1848년(헌종 14) 9월 2일에 조응호(趙膺鎬)가 장암(場巖)의 사돈에게 보낸 서간(書簡)이다. 종이 돌아와 답장을 받아 보니 위로가 된다며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극인(棘人 상중)인 자신의 병세는 점점 평상을 되찾고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며느리의 토사(吐瀉)가 근래에 유행하는 서증(暑症)인지 아니면 묵은 병이 덧난 것인지 자세하지 않아 침울한데 예사로운 것은 아닐 것이라고 하였다. 아이들의 과거가 끝났는데 결과가 어떨지 모르겠다며 별 탈이 없고 참방(參榜) 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동접(同接)이 집으로 돌아간다기에 대강 안부를 전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扶安金氏鷹山譜廳通文右文喩事凡我扶寧之金譜惟久矣諸宗闔譜之議屢擧未果各其派分譜成而惟我 少尹公雲仍居在長派迄未修譜常所慨恨往在中歲宗議會同前有戊戌之校正後有癸亥之校正將焉校讎適因先事姑以中止矣不幸丙丁大浸後流亡殆盡生存亦幾希况又散居諸宗邑各地逈無由接面殆同路人何以昭祖考穆又何以收族叙敦乎年又浸㴱百世一室莫以講究故昨秋僉議竣發設廳收單今方入梓以三月晦內期其竣事而各邑散處諸宗名單尙此稽遲故玆更專諭文到之日俾卽修單來納而各其傳來文牒與舊籍這這持來以爲稽古摭實之地幸甚丁卯九月 日都有司 弘濟副有司 基豊 基炳校正 基容監印 憲相正書 珪相收單有司 漢祚掌貨 貞容(皮封)扶安鷹山譜廳通文羅州宗中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부안 부안김씨가(扶安金氏家) 사주단자(四柱單子) 2 고문서-서간통고류-혼서 종교/풍속-관혼상제-혼서 扶安 扶安金氏家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부안의 부안김씨문중이 받은 사주단자. 부안(扶安)의 부안김씨문중(扶安金氏門中)이 신랑집으로부터 받은 신랑의 사주단자이다. 신랑의 생시(生時)를 임신 2월 초5일 미시로 적고 있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875년 문생계(門生契) 회문(回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사회-조직/운영-통문 乙亥十月初五日 扶安金氏門中 乙亥十月初五日 1875 扶安金氏門中 朴正範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換歲已過半月一次探候亦來不易伏庸悵慕伏不審新元氣體候連享萬康閤節亦得均宜否竝伏慕區區無任遠誠從侄連以痰病屢日呌苦其他柴少憂故緣綿伏悶何達西銓社洞徐台爲之而來政卽似或有依望之道從兄弟番番幷起卽此是難處之端而且李台得拜領伯云於侄大失所望未知來頭之如何耳東銓卽校洞金左根台爲之耳歲前並商便所付曆書其果推覓而能無見失之端耶未聞伏㭗婚日其間擇定而何間完定耶萬甲豈無消息姑不發程云耶京毛別無可告事而鄭注書歲前得拜洪原倅正初下去耳領相日前更爲出仕而別無所奏事耳此近運氣比前尤甚死亡相屬不勝悚懼而傳來安洞有便探候姑不備達從兄家姑安而泰鉉婚事來彼家何言入而歲前四柱還送退婚亦一怪事而更無云云處見甚悶甚悶完伯卽徐箕淳台爲之而其爲人甚雅云其致政果何如之姑未知者耳壬寅正月二十四日 從侄在明(皮封)叔主前 上書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모년 김교빈(金敎彬) 서간(書簡)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四月十八日 金敎彬 四月十八日 金敎彬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모년(某年) 에 김교빈이 보낸 서간 모년(某年) 4월 18일에 김교빈(金敎彬)이 모인(某人)에게 보낸 서간(書簡)이다. 1월에 보내준 편지가 아직도 위로되었는데 갑작스러운 소요로 답장이 늦어져 매우 한탄스럽다며 상대방의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길사(吉祀)가 지났으나 망극한 마음이 더욱 새롭다며 대기(大朞) 때 제수(祭需)를 보내주어 감사하다고 하였다. 막내 동생이 연전에 서울에서 재산을 잃고 생계를 꾸려나갈 계책이 없어 서너 명의 학생(學生)을 하숙하게 되었는데 그중 최옥환(崔玉煥)이 식비를 청산하지도 않고 말없이 돌아가 버렸으니, 번거롭지만 즉시 최군에게 말하여 돈을 부쳐 달라고 하였다. 막내 동생의 형편이 부득이하여 이렇게 부탁함을 부끄럽고 한탄스럽게 여긴다며 상대방의 농사 형편을 물었다. 길사(吉祀)는 자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자신이 제사를 맡아 지냄을 신고를 하는 제사이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모년 김교빈(金敎彬) 서간(書簡)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二月二日 金敎彬 二月二日 金敎彬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모년(某年)에 김교빈이 보낸 서간 모년(某年) 7월 7일에 김교빈(金敎彬)이 모인(某人)에게 보낸 서간(書簡)이다. 오래 소식이 끊겨 서글퍼하던 차에 먼저 편지를 보내주니 매우 위로되며 멀리하지 않으시는 정을 알 수 있다고 서두를 뗀 후에 늦더위에 벼슬살이하는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지난해 손주 얻은 것을 축하하였다. 상중(喪中)의 자신은 목숨을 구차하게 유지하고 있다며 온갖 일이 모양새를 이루지 못하고 있으니 걱정스럽고 민망하다고 하였다. 상대방 지역의 농사도 흉년을 면치 못하고 본인의 지역도 큰 흉년이어서 걱정된다고 하였다. 돌아가신 큰 형님의 회갑(回甲) 다례(茶禮)를 엊그제 지내게 되니 슬픈 감회가 더욱 새롭다고 추신하였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모년 신규석(辛圭錫) 서간(書簡) 8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辛圭錫 辛圭錫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모년(某年)에 신규석이 보낸 서간 모년(某年)에 신규석(辛圭錫)이 보낸 서간(書簡)이다. 어제 편지를 받고 위로되고 감사했다며 관직에 있는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가고(家故)가 걷히지 않으니 근심을 감내하기가 어렵다고 하였다. 하고 싶은 말은 면장(面長)과 구장(區長)의 사이에 이치와 형편이 그럴 만하긴 하나 자신이 상대방과 입장을 바꾼다면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구장에게 상의했더라도 그 결과는 군에 달렸지 면(面)에 있지 않으며, 오(吳)구장(區長)은 소작 농토가 이 땅이 아니라도 부족하지 않은데 자신의 산지기가 경작하던 땅을 소작하려 한다며 신구(新舊) 소작명의를 바꾼 상대방에게 섭섭해 하였다. 소작하는 일이 자신과 관계된 것이라면 이렇게 편지하지 않을 것이라며 회답을 해달라고 하였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모년 신규석(辛圭錫) 서간(書簡) 6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五月六日 辛圭錫 五月六日 辛圭錫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모년(某年)에 신규석이 보낸 서간 모년(某年) 5월 6일에 신규석(辛圭錫)이 모인(某人)에게 보낸 서간(書簡)이다. 방금 편지를 받았다며 관직자인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별일 없이 부모님을 모시고 있다고 하였다. 상대방이 지시한 일에 대해 잘 살펴보았으나 군(郡)에서 일이 실패한 것은 운수에 관계된 것이지 싸움을 잘못한 것이 아니라고[非戰之罪] 하였다. 군에서는 고심 끝에 출자금(出資金)을 도로 찾을 예정이고, 당사자가 인장을 지참해야 돈을 내어준다고 하니 이런 사정을 종숙장(從叔丈)에게 알려서, 즉시 군청(郡廳)에 들어와 찾을 수 있게 해달라고 하였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모년 신규석(辛圭錫) 서간(書簡) 5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九月十一日 辛圭錫 九月十一日 辛圭錫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모년(某年)에 신규석이 보낸 서간 모년(某年) 9월 11일에 신규석(辛圭錫)이 모인(某人)에게 보낸 서간(書簡)이다. 가을날, 관직자인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공무(公務)가 힘들지 않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자신은 부모님을 모시는 일과 하는 일에 별일이 없다며 송지(松枝) 벌채(伐採) 청원서(請願書)에 첨부할 조서(調書)를 즉시 제출하기 바란다고 하였다. 추신으로 도면은 필요 없다며 근래에는 청원서 1매만 제출하면 군에서 처리한다고 하였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모년 세함(世涵)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己二旬二 世涵 己二旬二 世涵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모년(某年) 세함이 보낸 서간 작성년도의 간지(干支)가 앞에 기(己)자가 들어가는 해의 2월 12일에 세함(世涵)이 장암(場巖)에 보낸 편지이다. 부모님을 모시며 공제(功制)를 만났으니 애처로운 마음을 상상할 수 있다며 우러러 위로할 말이 없다고 하였다. 자신은 부모님 곁에서 여전한데 쓸데없는 근심이 잇달아 고민이라고 하였다. 며느리를 맞는 날은 3월 18일이 가장 길하고, 4월 13일도 쓸 만하지만 오직 상대방의 재량에 달려 있다며 가장 길한 날에 예를 행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경과(慶科)가 멀지 않았으니 용기 있게 과거에 응시하여 합격하라고 하였다. 아들을 지금 보낸다며 오래 잡아두어야 긴요하지 않으니 속히 돌려보내라고 하였다. 부례(婦禮)의 날짜를 두 날 중에 결정하여 연산(連山) 내행이 내려올 때 회답해 달라고 하였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임인년 이덕희(李德熙)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壬寅七月念三 李德熙 大興宅 壬寅七月念三 李德熙 大興宅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임인년에 이덕희가 작성한 서간. 임인년에 이덕희(李德熙)가 부안(扶安) 장암(場巖)의 대흥댁(大興宅)에 보낸 안부 편지.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부안 부안김씨가(扶安金氏家) 사주단자(四柱單子) 3 고문서-서간통고류-혼서 종교/풍속-관혼상제-혼서 扶安 扶安金氏家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부안의 부안김씨문중이 받은 사주단자. 부안(扶安)의 부안김씨문중(扶安金氏門中)이 신랑집으로부터 받은 신랑의 사주단자이다. 신랑의 생시(生時)를 정묘 10월 28일 인시로 적고 있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부안 부안김씨가(扶安金氏家) 연길(涓吉) 고문서-서간통고류-혼서 종교/풍속-관혼상제-혼서 扶安 扶安金氏家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부안김씨가에서 받은 연길. 부안김씨가에서 신부집으로부터 받은 연길(涓吉)이다. 신랑은 정묘생, 신부는 계유생으로 혼인날짜를 경인년 12월 27일로 잡았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모년 이정희(李正熙) 서간(書簡)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李正熙 李正熙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모년(某年)에 이정희가 보낸 서간 모년(某年) 10월 20일에 기복인(朞服人) 이정희(李正熙)가 보낸 서간(書簡)이다. 돌아온 뒤에 즉시 찾아뵈려 하였으나 마음이 어지러워 못하고 그리워하던 차에 편지를 받았다며 상대방의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변방에서 온갖 고생을 하며 3,000리 멀리 관문(關門)에 들어왔는데 중간에 숙부의 상사(喪事)를 만나 멀리서 부음을 들으니 비통한 심정을 억누르기 어렵다고 하였다. 자신의 가족은 그런대로 편안하여 다행이나 흉년이 들어 살아갈 길이 없다고 걱정하였다. 조카의 혼인날이 머지않은데 사무가 많아 몸을 뺄 수가 없기에 이달 안에는 찾아가지 못하고 내달 초에 가겠다고 하였다. 이 편지를 보낸 이정희는 당시 함경북도 관찰부 주사(咸鏡北道觀察府主事)로 있던 이정희가 아닌가 추정되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부안 부안김씨(扶安金氏) 혼서(婚書) 고문서-서간통고류-혼서 종교/풍속-관혼상제-혼서 扶安金氏 門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부안의 부안김씨문중에서 받은 혼서. 부안의 부안김씨문중에서 신랑집으로부터 받은 납폐(納幣)이다. 혼례일이 그해 12월 20일 오시(午時)로 적혀 있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모년 장두엽(張斗燁)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丙臘十五日 斗燁 丙臘十五日 張斗燁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모년(某年) 장두엽이 보낸 서간 작성년도의 간지(干支)가 앞에 병(丙)자가 들어가는 해의 12월 15일에 이질(姨侄) 장두엽(張斗燁)이 보낸 서간(書簡)이다. 추위에 한결같이 평안하기를 바란다며 혼인날이 가까워지니 모든 것이 구차하지만 그중에 가장 어려운 것은 진미(珍味)이니 돈 1냥을 구해주면 혼사 후에 갚겠다고 하였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59년 송진택(宋鎭澤)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咸豐玖年己未五月初九日 朴日壽 宋鎭澤 咸豐玖年己未五月初九日 朴日壽 宋鎭澤 전라북도 태인군 [着名] 2개 전주 송진택가 전주역사박물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HIKS_Z041_01_A00012_001 1859년(철종 10) 5월 초 9일에 송진택(宋鎭澤)이 박일수(朴日壽)에게 태인군 남면 반룡촌에 있는 진전(陳田)을 전문 4냥을 주고 살 때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59년(철종 10) 5월 초9일에 유학 송진택(宋鎭澤)이 유학 박일수(朴日壽)에게 진전(陳田)을 매득할 때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대상토지는 태인군(泰仁郡) 남촌면(南村面) 반룡촌(盤龍村) 전록(前麓)에 있는 진전이며, 위로는 석대(石隊)에서 아래는 길까지, 오른쪽으로 구가(具哥)의 무덤 7보 밖에서 왼쪽으로 등척(嶝尺)까지였다. 송진택은 이곳을 송추를 금양하기 위해 매득하였다. 반룡촌은 당시 태인군 남촌면 반룡리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인해 현재는 정읍시 감곡면 계룡리에 속해 있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44년 김재상(金載相)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道光二十四年甲辰六月初一日 幼學金載相 道光二十四年甲辰六月初一日 金載相 [着名] 2개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844년(헌종 10)에 고춘성이 처가 쪽 산 아래 묘답에 붙어 있는 토지를 유학 김재상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44년(헌종 10) 6월 초1일에 고춘성(高春成)이 처가(妻家) 쪽 산 아래 묘답(墓畓)에 붙어 있는 토지를 유학 김재상(金載相)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고춘성은 가난하여 생활이 곤궁하게 되자 처가 쪽 산 아래 묘답의 북쪽에 붙어 있는 토지를 팔게 되었다. 거래된 토지는 중방리(中方里) 서십작(西十作) 황자(惶字) 정태(丁太) 논 3두 5승락지이며, 부수로는 6부 5속이다. 그리고 그 토지에 붙어 있는 시장(柴塲) 25동락지(同落只) 등 두 곳을 합해서 5냥에 팔기로 하였다. 거래에 관련된 본문기(本文記) 1장을 첨부하여 나중에 만약 자손들 가운데 말썽이 생기면 증거로 관에 제시하라고 하였다. 이 거래에는 전시장주(田柴塲主)인 고춘성(高春成)과 증필(訂筆)로 유학 송형주(宋亨柱)가 참여하였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758년 조개찬(趙介贊)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乾隆二十二年戊寅十二月初二日 金壽福 趙介贊 乾隆二十二年戊寅十二月初二日 金壽福 趙介贊 [着名] 3개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758년(영조 34)에 김수복이 서십작에 있는 논을 조개찬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758년(영조 34) 12월 초2일에 김수복(金壽福)이 서십작(西十作)에 있는 논을 조개찬(趙介贊)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김수복은 이 논을 조상에게 물려받아 경작하여 오다가 살아가기 힘들어서 어쩔 수 없이 팔게 되었다고 한다. 거래된 토지는 송자답(悚字畓) 50락지이며, 부수로는 9부(負)가 되는 곳으로 거래가격은 38냥이다. 거래 당시 문기 2장을 아울러 첨부하여 넘기고, 이후 만약에 자손들이 잡음을 일으키면 관에 알려서 증빙문기로 삼으라고 하였다. 이 거래에는 답주(畓主)인 김수복(金壽福)과 정인(訂人) 강재귀(腔才貴), 필집(筆執) 박수금(朴秀禁) 등 3인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명문(明文) 작성년대를 '乾隆二十二年戊寅'이라고 적고 있으나, 건륭 22년에 해당하는 간지는 무인(戊寅)이 아니라 정축(丁丑)이다. 무인은 건륭 23년의 간지이다. 당시에는 보통은 간지보다는 수치를 오기(誤記)하는 경향이 많았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乾隆二十三年戊寅'의 오기로 추정하여, 작성연대를 1758년으로 잡았다.

상세정보
상단이동 버튼 하단이동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