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년 석동재(席洞齋) 추감기(秋監記) 고문서-치부기록류-추수기 경제-농/수산업-추수기 戊子九月 日 戊子九月 日 全州崔氏門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무자년에 석동재에서 작성된 추감기. 무자년(戊子年) 9월에 석동재(席洞齋)에서 작성된 추감기(秋監記)이다. 추감기는 전답과 소출량, 경작자 등이 기록된 문서로, 추수기(秋收記), 타조기(打租記), 색조기(色租記), 수세책(收稅冊) 등 여러 가지 서로 다른 이름으로 나온다. 이 문서는 학계에서 19세기 이후 지주제(地主制) 연구의 주요 자료로 흔히 이용되어 왔다. 이 문서에 지주가 작인들에게 소작을 둔 토지를 필지별로 전답의 소재지, 지적(두락), 작인 등과 함께 그 수확량이나 지대량을 매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풍흉이나 재해, 종자와 볏짚, 전세 등의 정보들을 기록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연유로 인하여, 토지경영의 실상을 담고 있는 추수기는 많은 연구자들이 지주제 연구와 관련된 주요 자료로 인식하고 활용하여 왔다. 특히 유절재는 부안의 유력한 씨족인 전주최씨(全州崔氏)의 재실(齋室)로, 각 파별로 다양한 계(契)를 설립하여 운영하여 왔다. 유절재에 소장된 회문(回文)을 통해서 드러난 계를 살펴보더라도 흥학계(興學稧), 처암공파계(處菴公派契), 봉사공파계(奉事公派契), 원재계(元齋契), 참봉공파계(叅奉公派契), 사문계(私門稧), 문중별청계(門中別廳稧) 등 다양하다. 이들 조직은 개별적으로 운영되고 있었고, 이에 따라 별도의 재원을 확보하고 있었다. 그 재원은 다름 아닌 전답의 소유이다. 이들 계의 전답은 경영 과정에서 각 계마다 추수기 또는 추감기가 작성되었다. 이들 추감기에는 토지 소재지의 고을명과 지번, 지목, 지적, 경작료, 경작인 등이 차례로 적혀 있었다. 이러한 문서를 통해 부안의 유력 세족인 전주최씨(全州崔氏)의 당시의 경제적 실태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무자년의 이 추감기에는 부안의 석동평(席洞坪) 연곡리와 통정리와 신흥리 등 세 곳에 있는 전답의 지번과 지목, 지적, 경작지의 종류, 경작인 등이 차례로 기재되어 있다. 연곡리에 있는 전답은 16곳이며, 경작인 중 안복동(安福同)이 연곡리 내 8곳을 경작했으며, 황종술(黃鍾述)이 6곳을 경작했다. 연곡리의 전답은 모두 8,140평이다. 통정리의 전답은 1,1517평이다. 신흥리의 전답은 1,191평이다. 이 성책문서의 끝에는 무자추향제수전기(戊子秋享祭需錢記)가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