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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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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939년 최기홍(崔基洪) 등 토지매도증서(土地賣渡證書) 고문서-증빙류-증서 경제-회계/금융-증서 昭和14年4月8日 李彩龍 崔基洪 등 4명 昭和14年4月8日 李彩龍 崔基洪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39년에 이채룡이 최기홍 등 4인에게 논을 매도하면서 체결한 토지매도증서. 1939년 4월 8일에 이채룡(李彩龍)이 최기홍(崔基洪) 등 4인에게 부안군 부령면 연곡리의 논 1,199평을 매도하하면서 체결한 토지매도증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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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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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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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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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31년 최병기(崔秉琪)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辛三月初六日 秉琪 崔孝明 辛三月初六日 崔秉琪 崔孝明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31년에 최병기가 보낸 서간 1931년 3월 6일에 최병기(崔秉琪)가 최효명(崔孝明)에게 보낸 서간이다. 안부를 묻고 긴요하게 쓸 곳이 있으니 소나무 가운데 조현죽(鳥絃竹) 300매를 사서 세워두면 인부가 즉시 운반해 올 것입니다. 대금(代金)은 시가에 맞게 헤아려 결정한 뒤에 조카 편에 보낼 것이라고 하였다. 소나무는 쇠줄대 만하되 길수록 좋고 100매는 잘라 쓸 것이며 200매는 7월에 새를 볼 때 쓸 것이라고 하였다. 피봉에는 전라북도 부안군(扶安郡) 백산면(白山面) 면사무소에서 최병기(崔秉琪)가 부안군(扶安郡) 보안면(保安面) 부곡리(富谷里) 마구뫼에 사는 최효명(崔孝明)에게 보낸 것으로 되어있다. 최병기는 1919년~1939년 백산면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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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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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謹未審春和靜體候萬安而閤節均泰幷仰溸仰溸族從公私復雜度日耳就切有緊用處玆以仰告松木中鳥絃竹(서쥴대감으로限三百枚貿立則人夫卽送運來計耳代金想必相當時價矣諒此時勢決定後侄兒命送則備納勿慮勿疑而若無買處卽爲形便回答切企切企耳餘立竢回音不備禮辛三月初六日族從秉琪拜拜追松木은서쥴대만ᄒᆞ되長長이爲好耳百枚斷用ᄒᆞᆯ터으니長長直直可也二百枚은本年七月에鳥看時用(皮封)保安面富谷里(元마구뫼)崔孝明氏殿至急(背面)全羅北道扶安郡白山面事務所崔秉琪昭和六年旧三月六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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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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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기축년 석동재(席洞齋) 하기책(下記冊) 고문서-치부기록류-용하기 경제-회계/금융-용하기 己丑五月 日 席洞齋 己丑五月 日 席洞齋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기축년 5월에 석동재의 지출내역을 적은 장부. 기축년(己丑年) 5월에 석동재(席洞齋)의 지출내역을 적은 하기책(下記冊)이다. 문중 모임의 식사비용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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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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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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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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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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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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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기유년 부안 전주최씨(全州崔氏) 원재용하일기(元齋用下日記) 고문서-치부기록류-용하기 경제-회계/금융-용하기 己酉五月十一日 己酉五月十一日 全州崔氏門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기유년에 작성한 부안 전주최씨 원재의 수입 지출내역 장부. 기유년(己酉年) 11월에 작성한 부안(扶安) 전주최씨(全州崔氏) 원재(元齋)의 수입 지출내역 장부이다. 특히 측량(測量) 관련비가 많이 지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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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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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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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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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임술년 부안 전주최씨(全州崔氏) 하기책(下記冊) 고문서-치부기록류-용하기 경제-회계/금융-용하기 壬戌正月日 壬戌正月日 全州崔氏門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임술년에 부안 전주최씨문중에서 수입 지출 내역을 기록한 장부. 임술년(壬寅年) 정월에 원재(元齋)를 중심으로 부안(扶安) 전주최씨문중(全州崔氏門中)에서의 수입 지출 내역을 기록한 장부(帳簿)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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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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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최상규(崔庠圭), 최경열(崔景烈)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陰六月卄四日 陰六月卄四日 崔庠圭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모년(某年)에 최상규・최경열이 보낸 서간 모년 음력 6월 24일에 최상규(崔庠圭)와 최경열(崔景烈)이 최기홍(崔基洪), 최재영(崔再榮), 최동익(崔東翊) 등에게 보낸 서간(書簡)이다. 혹심한 늦더위에 종중 사람들의 건강을 묻고, 옥동(玉洞)의 일은 사태가 변하여 만회할 방법이 없고, 전일 고소(告訴)한 것도 검국(檢局)에서 조사를 하지 않아 불기소가 되었다고 하였다. 대지(垈地)는 홍순완(洪淳浣)이 소유권을 주장하고, 산지기 집 관계도 다시 공소가 제기되어 9월 24일에 대구복심법원(大邱覆審法院)으로 나오라는 호출장이 왔다며 종중(宗中)에서 책임을 지는 자가 없다고 하였다. 저들은 돈을 물 쓰듯 하며 목적을 달성하려 하니 좌시할 수 없기에 대종사(大宗舍)를 7월 10일에 개최하니 와서 서로 상의하자고 하였다. 피봉에는 전주(全州) 풍남정(豊南町) 종대(宗垈)에서 부안군(扶安郡) 부령면(扶寧面) 옹중리(瓮中里)에 사는 최기홍(崔基洪)에게 보낸 것으로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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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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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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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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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기유년 부안 전주최씨(全州崔氏) 참봉공파회계기(參奉公派會計記) 고문서-치부기록류-회계기 경제-회계/금융-회계기 己酉秋 己酉秋 全州崔氏門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기유년에 부안 전주최씨문중의 참봉공파에서 작성한 회계기. 기유년(己酉年) 4월 15일에 부안(扶安) 전주최씨문중(全州崔氏門中)의 참봉공파(參奉公派)에서 작성한 회계기(會計記)이다. 그 전년인 경술년의 구월의 추감기(秋監記), 그리고 이듬해 무신년의 기록도 함께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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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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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기유년 부안 전주최씨(全州崔氏) 옹암공비역기(甕菴公碑役記) 고문서-치부기록류-회계기 경제-회계/금융-회계기 己酉六月 日 己酉六月 日 全州崔氏門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기유년 6월에 부안 전주최씨문중에서 옹암공의 비역에 지출한 내역을 기록한 문서. 기유년(己西年) 6월에 부안(扶安) 전주최씨문중(全州崔氏門中)에서 옹암공(甕菴公) 최생명(崔生明)을 비역(碑役)에 지출한 내역을 기록한 문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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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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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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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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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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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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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을해년 부안 전주최씨(全州崔氏) 원재수세책(元齋收稅冊) 고문서-치부기록류-밧자기 경제-회계/금융-밧자기 辛未年度 昭和六年度 辛未年度 昭和六年度 扶安 全州崔氏 門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을해년에 부안의 전주최씨문중에서 작성한 원재 수세책. 을해년(乙亥年) 12월에 부안(扶安)의 전주최씨문중(全州崔氏門中)에서 작성한 원재수세책(元齋收稅冊)이다. 문중에서 받은 대세(垈稅)를 마을별로 정리한 명부이다. 기재 순서는 마을명, 지번과 대세의 금액, 대지를 빌린 사람들의 성명 등으로 되어 있다. 산직리평, 옹상리평 등 두 곳 7명의 명단이 실려 있다. 문서의 맨 끝에 을해년도의 지세금(地稅金)으로 2월 50전이 입금되었다고 적혀 있다. 이 원재수세책에 이어서 '辛未年門中土地 辛未年度 昭和六年度 門中土地結稅'라는 제목으로 1931년도의 전주최씨문중의 토지 결세가 연곡리와 신흥리, 옹중리를 대상으로 기재되어 있다. 연곡리는 원재(元齋)의 대지와 논을, 신흥리와 옹중리는 논을 대상으로 경작 규모와 도조를 기록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수세책이 작성된 을해년은 1935년도일 가능성이 크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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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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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무자년 석동재(席洞齋) 추감기(秋監記) 고문서-치부기록류-추수기 경제-농/수산업-추수기 戊子九月 日 戊子九月 日 全州崔氏門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무자년에 석동재에서 작성된 추감기. 무자년(戊子年) 9월에 석동재(席洞齋)에서 작성된 추감기(秋監記)이다. 추감기는 전답과 소출량, 경작자 등이 기록된 문서로, 추수기(秋收記), 타조기(打租記), 색조기(色租記), 수세책(收稅冊) 등 여러 가지 서로 다른 이름으로 나온다. 이 문서는 학계에서 19세기 이후 지주제(地主制) 연구의 주요 자료로 흔히 이용되어 왔다. 이 문서에 지주가 작인들에게 소작을 둔 토지를 필지별로 전답의 소재지, 지적(두락), 작인 등과 함께 그 수확량이나 지대량을 매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풍흉이나 재해, 종자와 볏짚, 전세 등의 정보들을 기록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연유로 인하여, 토지경영의 실상을 담고 있는 추수기는 많은 연구자들이 지주제 연구와 관련된 주요 자료로 인식하고 활용하여 왔다. 특히 유절재는 부안의 유력한 씨족인 전주최씨(全州崔氏)의 재실(齋室)로, 각 파별로 다양한 계(契)를 설립하여 운영하여 왔다. 유절재에 소장된 회문(回文)을 통해서 드러난 계를 살펴보더라도 흥학계(興學稧), 처암공파계(處菴公派契), 봉사공파계(奉事公派契), 원재계(元齋契), 참봉공파계(叅奉公派契), 사문계(私門稧), 문중별청계(門中別廳稧) 등 다양하다. 이들 조직은 개별적으로 운영되고 있었고, 이에 따라 별도의 재원을 확보하고 있었다. 그 재원은 다름 아닌 전답의 소유이다. 이들 계의 전답은 경영 과정에서 각 계마다 추수기 또는 추감기가 작성되었다. 이들 추감기에는 토지 소재지의 고을명과 지번, 지목, 지적, 경작료, 경작인 등이 차례로 적혀 있었다. 이러한 문서를 통해 부안의 유력 세족인 전주최씨(全州崔氏)의 당시의 경제적 실태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무자년의 이 추감기에는 부안의 석동평(席洞坪) 연곡리와 통정리와 신흥리 등 세 곳에 있는 전답의 지번과 지목, 지적, 경작지의 종류, 경작인 등이 차례로 기재되어 있다. 연곡리에 있는 전답은 16곳이며, 경작인 중 안복동(安福同)이 연곡리 내 8곳을 경작했으며, 황종술(黃鍾述)이 6곳을 경작했다. 연곡리의 전답은 모두 8,140평이다. 통정리의 전답은 1,1517평이다. 신흥리의 전답은 1,191평이다. 이 성책문서의 끝에는 무자추향제수전기(戊子秋享祭需錢記)가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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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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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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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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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신유년 부안 전주최씨(全州崔氏) 추감기(秋監記) 고문서-치부기록류-추수기 경제-농/수산업-추수기 辛酉九月 日 辛酉九月 日 全州崔氏門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신유년에 작성된 부안 전주최씨문중의 추감기. 신유년(辛酉年) 9월에 부안(扶安)의 전주최씨문중(全州崔氏門中)에서 작성된 추감기(秋監記)이다. 추감기는 전답과 소출량, 경작자 등이 기록된 문서로, 추수기(秋收記), 타조기(打租記), 색조기(色租記), 수세책(收稅冊) 등 여러 가지 서로 다른 이름으로 나온다. 이 문서는 학계에서 19세기 이후 지주제(地主制) 연구의 주요 자료로 흔히 이용되어 왔다. 이 문서에 지주가 작인들에게 소작을 둔 토지를 필지별로 전답의 소재지, 지적(두락), 작인 등과 함께 그 수확량이나 지대량을 매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풍흉이나 재해, 종자와 볏짚, 전세 등의 정보들을 기록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연유로 인하여, 토지경영의 실상을 담고 있는 추수기는 많은 연구자들이 지주제 연구와 관련된 주요 자료로 인식하고 활용하여 왔다. 특히 유절재는 부안의 유력한 씨족인 전주최씨(全州崔氏)의 재실(齋室)로, 각 파별로 다양한 계(契)를 설립하여 운영하여 왔다. 유절재에 소장된 회문(回文)을 통해서 드러난 계를 살펴보더라도 흥학계(興學稧), 처암공파계(處菴公派契), 봉사공파계(奉事公派契), 원재계(元齋契), 참봉공파계(叅奉公派契), 사문계(私門稧), 문중별청계(門中別廳稧) 등 다양하다. 이들 조직은 개별적으로 운영되고 있었고, 이에 따라 별도의 재원을 확보하고 있었다. 그 재원은 다름 아닌 전답의 소유이다. 이들 계의 전답은 경영 과정에서 각 계마다 추수기 또는 추감기가 작성되었다. 이들 추감기에는 토지 소재지의 고을명과 지번, 지목, 지적, 경작료, 경작인 등이 차례로 적혀 있었다. 이러한 문서를 통해 부안의 유력 세족인 전주최씨(全州崔氏)의 당시의 경제적 실태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신유년의 이 추감기에는 부안의 묵교평(墨橋坪)과 통정평(通井坪), 정해평(井海坪), 마전평(麻田坪) 등에 있는 전답의 경작인과 두락 수, 도조(賭租) 등이 차례로 기재되어 있다. 묵교평에서는 최응수가 7두락을 경작하여 2석을 조로 납부했으며, 통정평에서는 최경도가 5두락을 경작하여 1석 15두를 조로 납부했다. 정해평에서는 최경선이 5두락 1곳과 4두락 3곳 등 4필지 17두락을 경작하여 5석 40두를 조로 납부했다. 마전평에서는 최경직이 2두락을 경작하여 10두를 조로 납부했으며, 이명언이 7두락 1곳과 3두락 1곳을 경작하여 모두 5석 18두를 조로 납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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