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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4년 김양묵(金養默) 고신(告身) 고문서-교령류-고신 정치/행정-임면-고신 道光十四年四月二十日 純祖 金養黙 道光十四年四月二十日 純祖 金養默 서울특별시 종로구 施命之寶 1개(적색, 정방형) 부안 돈계 김응상 후손가 부안 돈계리 김응상 후손가 1834년(순조 34)에 4월에 국왕이 김양묵(金養默)을 통훈대부(通訓大夫) 행사헌부지평(行司憲府持平)으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지(敎旨) 1834년(순조 34) 4월 20일에 국왕이 김양묵(金養默)을 통훈대부(通訓大夫) 행사헌부지평(行司憲府持平)으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지(敎旨)이다. 통훈대부는 정3품 당하관(堂下官)의 품계이다. 사헌부장령은 사헌부의 정5품 관직이다. 통훈대부의 품계가 관직인 사헌부장령의 품계보다 높았기 때문에 행수법(行守法)에 따라 관직명 앞에 행(行)자를 표기하였다. 한편, 문서 배면(背面) 좌측 하단에는 '吏吏金貞浩'이라고 적혀있다. 吏吏는 고신을 작성한 이조의 서리이며, 김정호는 서리의 이름이다. 부안 김씨 김양묵 가문이 소장하고 있는 고신의 배면을 보면 김정호뿐만 아니라 김형복, 김정익 등의 김씨 성을 가진 서리의 이름이 연속적으로 등장한다. 이는 이조에 근무하는 서리 가운데 김씨 성이 대를 이러 부안 김씨 가문의 단골 서리 역할을 하였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김양묵은 본관이 부안(扶安)으로, 1829년에 정시문과(庭試文科)에 급제하여 관직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가 받았던 고신(告身)들이 그의 후손 가에 오늘날도 전하고 있다. 특히 그가 문과 응시 당시 작성했던 시권(試券)과 급제하여 받았던 홍패(紅牌)를 비롯하여, 고신 16점, 차첩 2점 등 20점이 남아 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아버지 김응상(金膺相)과 어머니, 그리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증조와 증조할머니, 고조와 고조할머니 등이 받았던 고신 20점이 전하고 있는데 대부분 추증교지(追贈敎旨)이다. 이 추증교지는 김응상이 고신을 받을 때마다 함께 받았던 것들이다. 고신 외에 김응상이 1819년부터 1855년까지 작성했던 호구단자(戶口單子) 7점도 전하고 있어서 그의 가족 상황을 살펴 볼 수 있다. 이에 따르면, 김응상은 생전에 부안현 남하면 돈계리에 내내 거주하고 있었던 것으로 나오는데, 오늘날의 부안군 주산면 돈계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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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6년 김양묵(金養默) 고신(告身) 1 고문서-교령류-고신 정치/행정-임면-고신 道光二十六年十一月二十日 憲宗 金養黙 道光二十六年十一月二十日 憲宗 金養默 서울특별시 종로구 施命之寶 1개(적색, 정방형) 부안 돈계 김응상 후손가 부안 돈계리 김응상 후손가 1846년(헌종 12) 11월에 국왕이 김양묵(金養默)을 통훈대부(通訓大夫) 행사헌부장령(行司憲府掌令)으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지(敎旨) 1846년(헌종 12) 11월 20일에 국왕이 김양묵(金養默)을 통훈대부(通訓大夫) 행사헌부장령(行司憲府掌令)으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지(敎旨)이다. 통훈대부는 정3품 당하관(堂下官)의 품계이다. 사헌부장령은 사헌부의 정4품 관직으로 감찰(監察) 업무를 담당하였다. 통훈대부의 품계가 관직인 사헌부장령의 품계보다 높았기 때문에 행수법(行守法)에 따라 관직명 앞에 행(行)자를 표기하였다. 한편, 문서 배면(背面) 좌측 하단에는 '吏吏金貞益'이라고 적혀있다. 吏吏는 고신을 작성한 이조의 서리이며, 김정익은 서리의 이름이다. 부안 김씨 김양묵 가문이 소장하고 있는 고신의 배면을 보면 김정익뿐만 아니라 김형복, 김정호 등의 김씨 성을 가진 서리의 이름이 연속적으로 등장한다. 이는 이조에 근무하는 서리 가운데 김씨 성이 대를 이러 부안 김씨 가문의 단골 서리 역할을 하였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김양묵은 본관이 부안(扶安)으로, 1829년에 정시문과(庭試文科)에 급제하여 관직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가 받았던 고신(告身)들이 그의 후손 가에 오늘날도 전하고 있다. 특히 그가 문과 응시 당시 작성했던 시권(試券)과 급제하여 받았던 홍패(紅牌)를 비롯하여, 고신 16점, 차첩 2점 등 20점이 남아 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아버지 김응상(金膺相)과 어머니, 그리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증조와 증조할머니, 고조와 고조할머니 등이 받았던 고신 20점이 전하고 있는데 대부분 추증교지(追贈敎旨)이다. 이 추증교지는 김응상이 고신을 받을 때마다 함께 받았던 것들이다. 고신 외에 김응상이 1819년부터 1855년까지 작성했던 호구단자(戶口單子) 7점도 전하고 있어서 그의 가족 상황을 살펴 볼 수 있다. 이에 따르면, 김응상은 생전에 부안현 남하면 돈계리에 내내 거주하고 있었던 것으로 나오는데, 오늘날의 부안군 주산면 돈계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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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호의 '국화를 읊다' 시에 차운하다 次月湖詠菊韻 네 꽃들이 번개 같은 달빛 쫓음이 부끄럽지만 愧汝羣芳逐電蟾꽃 중의 은일자17)로 가장 고결하다오 花中隱逸最高尖아침에는 오류18)와 함께 서사를 베끼고 朝同五柳謄書史저녁에는 삼려19) 위해 장과 소금 바꾸네 夕爲三閭替醬鹽꽃 피우니 언제 봄 신에게 아양 떨었던가 色笑何曾媚靑帝기상 늠름하니 원래 바람의 신도 두려워하지 않았지 氣稜元不怕飛廉참으로 어울리네 와서 비추는 가을밤 달이 正宜來照秋宵月어떨 때는 보름달도 됐다가 초승달도 되는 것이 或作圓輪或作鎌 愧汝羣芳逐電蟾, 花中隱逸最高尖.朝同五柳謄書史, 夕爲三閭替醬鹽.色笑何曾媚靑帝? 氣稜元不怕飛廉.正宜來照秋宵月, 或作圓輪或作鎌. 꽃 중의 은일자(隱逸者) 국화를 형용하는 말이다. 송(宋)나라 주돈이(周敦頤)의 〈애련설(愛蓮說)〉에 "나는 국화는 꽃 중의 은일자이고, 모란은 꽃 중의 부귀한 자이며, 연꽃은 꽃 중의 군자라고 여긴다.[予謂 菊花之隱逸者也; 牡丹花之富貴者也; 蓮花之君子者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古文眞寶後集 卷10》 오류(五柳) 남북조 시대 진(晉)나라 은사인 도잠(陶潛)을 가리킨다. 도잠은 자신이 거처하는 집 앞에 버드나무 다섯 그루를 심어 놓고 오류선생(五柳先生)이라고 자호하고, 울타리 밑에는 국화를 심었다고 한다. 삼려(三閭) 삼려대부(三閭大夫) 벼슬을 지냈던 굴원(屈原)을 가리킨다. 굴원이 지은 〈이소(離騷)〉에 "아침에는 모란의 떨어진 이슬방울을 받아 마시고, 저녁에는 가을 국화 떨어진 꽃잎을 주워서 먹네.[朝飮木蘭之墜露兮, 夕餐秋菊之落英.]"라는 구절이 있다. 《楚辭 卷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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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의 기일에 자정76)과 함께 밤새도록 있으면서 先師諱辰 同子貞達夜 지금은 대의를 변모77) 보듯이 하는데 大義如今視弁髦선생께서 당시에 높은 공적을 드러냈네 先生當日見功高유언은 백세토록 떳떳한 법이 되었고 遺言百世爲經法서업을 계승한 어떤 사람이 호걸인가 繼緖何人是傑豪이 밤은 목성이 한 바퀴 돈 기일인데78) 此夜諱辰周木宿밤새운 제자들은 두 귀밑머리가 허옇네 達晨門弟兩霜毛신명의 도움으로 누 끼침이 없길 바라니 庶望冥佑無貽累저승과 이승이 감응하는 이치 멀지 않으리 相感幽明理不遙 大義如今視弁髦, 先生當日見功高.遺言百世爲經法, 繼緖何人是傑豪.此夜諱辰周木宿, 達晨門弟兩霜毛.庶望冥佑無貽累, 相感幽明理不遙. 자정(子貞) 간재 문인 남갑원(南甲元, 1871~?)의 자로 보인다. 변모(弁髦) 변(弁)은 치포관(緇布冠)으로 관례(冠禮)를 행하기 전에 잠시 쓰던 갓이고, 모(髦)는 총각의 더벅머리이니, 관례가 끝나면 모두 소용없게 되므로 전하여 쓸데없는 물건이라는 뜻의 비유로 쓰인다. 목성이……기일인데 스승이 돌아가신 지 12년이 되었다는 말이다. 목성은 12년을 주기로 하늘을 한 바퀴 도는데 그 궤도가 태양의 궤도인 황도(黃道)와 비슷하다고 한다. 이 별이 궤도대로 잘 운행하면 임금에게 복이 있고, 그렇지 않으면 백성들에게 질병이 많거나 병란이 일어난다고 한다. 《史記 卷27 天官書 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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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 오일에 가석의 별장에서 十月五日可石庄上 그대가 옛날 이때에 태어났다지 認君庚降昔玆辰거백옥이 그릇됨을 안 지303) 또 오년이네304) 蘧子知非又五春구로305)를 추억하면 갑절이나 애통할 것이고 追感劬勞應倍痛공경히 몸과 모발을 유지함이 바로 참됨이네 敬持體髮是爲眞일편단심으로 옛것 지킨 이 지금 세상엔 드물고 丹心守舊稀今世백발에도 경서 연구하니 더욱 멋진 사람이로세 白首窮經更可人아들들 또한 가볍고 무거움을 헤아릴 줄 아니 諸子亦知輕重數뜻을 봉양하는게 맛난 음식 드리는 것보다 낫네 養親志意勝供珍 認君庚降昔玆辰, 蘧子知非又五春.追感劬勞應倍痛, 敬持體髮是爲眞.丹心守舊稀今世, 白首窮經更可人.諸子亦知輕重數, 養親志意勝供珍. 거백옥(蘧伯玉)이……지 거백옥은 춘추 시대 위(衛)나라 대부이다. 《회남자(淮南子)》 〈원도훈(原道訓)〉에 "거백옥은 나이 50이 되어서 49년 동안의 잘못을 알았다.[蘧伯玉年五十, 而知四十九年非.]"라고 하였다. 거백옥(蘧伯玉)이……오년이네 가석(可石)의 나이가 55세가 되었다는 말이다. 구로(劬勞) 낳아서 길러 주느라 애쓰신 부모의 은덕이라는 말이다. 《시경》 〈소아 육아(蓼莪)〉에 "슬프고 슬프다 우리 부모여, 나를 낳아 기르느라 얼마나 애쓰셨나.[哀哀父母, 生我劬勞.]"라는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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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신뢰받지 못함을 탄식하며 歎言不見信 누가 자웅을 알고 검은 까마귀를 판별하는가 誰認雄雌辨黑烏모두 내가 성인의 도와 글을 부지했다 하네 皆云余聖道文扶어두운 방에 구슬 던지면 칼을 잡고 노려보고309) 投珠暗室看持劒제문에서 비파 잘 탐이 피리 좋아함과 어긋났네310) 工瑟齊門乖好竽다만 옳고 그름은 본디부터 그대로 있거니 但見是非元自在어찌 의리와 이끗을 함께 갖출 수 있으랴 豈容義利一幷俱참으로 남을 믿기 어렵고 말에 믿음 없으니 誠難孚物言無信다만 이제부터 말없이 나를 지킬 뿐이라네 只可從今黙守吾 誰認雄雌辨黑烏? 皆云余聖道文扶.投珠暗室看持劒, 工瑟齊門乖好竽.但見是非元自在, 豈容義利一幷俱?誠難孚物言無信, 只可從今黙守吾. 어두운……노려보고 사람들이 까닭 없이 오해하여 미워함을 뜻한다. 《사기(史記)》 권83 〈추양열전(鄒陽列傳)〉에, "명월주(明月珠)와 야광벽(夜光璧) 같은 좋은 보배를 암암리에 길 가는 사람에게 던져 주면 칼자루를 잡고 노려보지 않을 사람이 없으니, 그 이유는 까닭 없이 자기 앞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한 데서 유래하였다. 제문(齊門)에서……어긋났네 자신이 세상과 서로 맞지 않음을 의미한다. 한유(韓愈)가 일찍이 진상(陳商)에게 답한 편지에서, 어떤 사람이 피리[竽]를 좋아하는 제 선왕(齊宣王)의 문에 비파를 가지고 가서 벼슬하기를 구했으므로, 끝내 벼슬을 얻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비유로 들어, 시대에 맞지 않는 난해한 문장을 즐겨 쓰던 진상에게 충고한 데서 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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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의 여러 학생에게 주다 贈書社諸生 백발로 창동에서 학문을 근심하는데 白頭憂學滄之東그대들이 찾아온 뜻이 같아 감사하네 諸子相尋感志同본디 노력하면 상성을 바랄 수 있지만518) 自有有爲希上聖원래 무식하면 영웅호걸이 될 수 없네 元無無識作豪雄원중519)이 주자에게 잘 전수했다 들었으니 曾聞愿仲能傳晦강성이 마융520)만 못하다고 누가 말하겠나 誰道康成不勝融함부로 공담을 하려는 건 좋은 계책 아니니 妄擬空談非計得진실로 정성과 공경 통해 총명함이 나오네 亶由誠敬出明聰 白頭憂學滄之東, 諸子相尋感志同.自有有爲希上聖, 元無無識作豪雄.曾聞愿仲能傳晦, 誰道康成不勝融?妄擬空談非計得, 亶由誠敬出明聰. 본디……있지만 노력만 하면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맹자》 〈등문공 상(滕文公上)〉에 "순 임금은 어떤 사람이고, 나는 어떤 사람인가. 그렇게 되려고 노력하면 또한 그와 같이 될 수 있다.〔舜何人也? 予何人也? 有爲者亦若是.〕"라고 하였다. 원중(愿仲) 주자(朱子)의 스승인 이동(李侗, 1093~1163)의 자이다. 송(宋)나라 학자로, 호는 연평(延平),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나종언(羅從彦)이 양시(楊時)에게 낙학(洛學)을 전수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종언에게 가서 배워 양시와 나종언과 함께 '검남 삼선생(劍南三先生)'으로 불렸다. 이정(二程)의 학문이 주희에게 이어지는 교량적 역할을 하였다. 강성(康成)이 마융(馬融) 강성은 후한(後漢) 말기의 대표적 경학자(經學者)인 정현(鄭玄, 127~200)의 자이며, 마융(馬融, 79~166)은 정현의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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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광의 〈탄세음〉에 화답하다 和玄狂《歎世吟》 천지에 중화의 의관을 용납하기 어려우니 難容天地漢冠衣어디든 깊이 숨어 오래도록 돌아오지 말게나 何處深藏久莫歸예로부터 도원532)은 전하는 말이 이미 황당했고 從古桃源傳已誕오늘날에는 금화533)를 만나기가 응당 드물겠지 如今金華見應稀그 누가 큰 솜씨로 정치 운수를 담당하여 誰將巨手當治運백성이 금수로 변하는 것을 면케 하겠는가 免敎群生化走飛오직 마음 밭이 한 조각만 남아 있으니 惟有心田餘一片몸을 세워 하늘을 어기지 않을 수 있으리 安身卽可不天違 難容天地漢冠衣, 何處深藏久莫歸.從古桃源傳已誕, 如今金華見應稀.誰將巨手當治運, 免敎羣生化走飛?惟有心田餘一片, 安身卽可不天違? 도원(桃源) 도연명(陶淵明, 365~427)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서 일컬은 무릉도원(武陵桃源)을 말한다. 진(秦)나라 화를 피하여 들어간 사람들이 살았던 세상 밖의 별천지이다. 금화(金華) 중국 진대(晉代) 사람으로 금화산(金華山) 석실(石室)에서 은거하다가 도인이 되었다고 하는 선인(仙人) 황초평(黃初平)을 가리킨다. 나이 열다섯에 양을 치다가 도사를 따라 금화산(金華山) 석실(石室)로 가서 수도(修道)하였다. 그 후 40년 만에 그의 형 황초기(黃初起)가 수소문 끝에 그를 찾아가 만났더니 양은 보이지 않고 흰 돌들만 있었다. 황초평이 "양들은 일어나라."라고 소리치자, 흰 돌들이 모두 수만 마리의 양으로 변했다 한다. 《神仙傳 黃初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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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창오370) 동선 군에게 주다 贈孫君昌午【東宣】 그대의 관례를 축하한 지 오년 남짓 祝子冠階五祀餘오늘 아침에 함께 머물며 수레에 책을 실었네 今朝同住載書車순임금의 소악 듣고 고기맛 잊음을 어찌 양보하랴371) 聞韶何讓不知肉칼자루 치며 또한 항상 고기반찬 탄식하지 말라372) 彈鋏且休常歎魚계곡에 흐르는 물 맑으니 마음도 함께 깨끗해지고 石澗流淸心共潔뜨락에 가지와 잎 없어지니 지역 온통 빈 듯 하네 庭柯葉盡境全虛세한의 좋은 친분은 원래 쉽지 않으니 歲寒相好元非易반드시 참된 마음으로 시종일관 꿰뚫어야 하네 須把眞情貫末初 祝子冠階五祀餘, 今朝同住載書車.聞韶何讓不知肉? 彈鋏且休常歎魚.石澗流淸心共潔, 庭柯葉盡境全虛.歲寒相好元非易, 須把眞情貫末初. 손창오(孫昌午) 창오는 손동선(孫東宣, 1918~?)의 자이다. 본관은 밀양이며, 정읍에 거주하였다. 김택술의 문인이다. 순(舜)임금의……양보하랴 《논어》 〈술이(述而)〉에 "공자께서 제나라에 계실 때에 순 임금의 소악을 들으시고는 석 달 동안 고기 맛을 잊으시며 이르기를 '음악을 만든 것이 이렇게 아름다울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라고 하셨다.〔子在齊聞韶, 三月不知肉味, 曰: 不圖爲樂之至於斯也.〕"라는 말이 나온다. 칼……말라 전국 시대 제(齊)나라 풍환(馮驩)의 고사로, 객지에서 불우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전국책(戰國策)》제책(齊策)에 "제 나라 사람 풍환(馮諼)이 가난하여 맹상군(孟嘗君)에게 의탁해 있었는데 채소 반찬만을 먹게 하였다. 그러자 풍환이 기둥에 기대서서 칼을 두드리며 노래하기를 '긴 칼을 찬 사람아 돌아갈지어다, 식탁에는 고기 반찬이 없구나.[長鋏歸來乎食無魚]' 하였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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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촌 어른 임 병룡 에게 드리다 呈林讓村丈【秉龍】 소싯적 큰 포부를 사마처럼 다리에 적더니233) 壯圖少日馬題橋늘그막에도 경서 연구하느라 세상 걱정 사라지네 白首硏經世念消서리 내린 뒤 늦은 향기 풍기니 국화 사랑스럽고 霜後晩香憐菊朶눈 속에 살려는 뜻을 매화가지에서 보는구나 雪中生意見梅條십 년간 어찌 오랫동안 찾아오지 않았나 十年蹤跡緣何久백 리 길의 산하 멀다고 여기지 말게나 百里湖山莫謂遙서로 진중하게 세한의 약속 맺었으니 珍重歲寒相待事집구하여 오늘 아침 못 떠나게 할 필요 없네234) 縶駒不必永今朝 壯圖少日馬題橋, 白首硏經世念消.霜後晩香憐菊朶, 雪中生意見梅條.十年蹤跡緣何久? 百里湖山莫謂遙.珍重歲寒相待事, 縶駒不必永今朝. 사마(司馬)처럼 다리에 적더니 사마는 중국 전한(前漢) 때의 문장가 사마상여(司馬相如)를 말한다. 〈성도기(成都紀)〉에 "사마상여가 장안(長安)을 가는 길에 고향 촉군(蜀郡)을 지나다가 승선교(升仙橋) 기둥에 '사마의 높은 수레를 타지 못하면 다시 이 다리를 지나지 않겠다.[不乘高車駟馬, 不復過此橋.]' 하였다."라고 하였다. 집구(縶駒)하여……없네 어진 사람이 왔다가 돌아가려 할 때 떠나지 못하게 만류하는 것을 말한다. 집구는 망아지의 고삐를 매어 머물게 한다는 것으로, 《시경》 〈백구(白駒)〉에 "깨끗한 흰 망아지가 채소밭 망친다는 구실을 붙여, 붙잡아 매어 두고 오늘 못 떠나게 하고는, 그분이 우리 집에서 소요하게 하리라.……깨끗한 흰 망아지가 저 빈 골짜기에 있도다. 싱싱한 풀 한 다발을 주노니 그 사람 옥처럼 맑도다.[皎皎白駒, 食我場苗, 縶之維之, 以永今朝, 所謂伊人, 於焉逍遙.……皎皎白駒, 在彼空谷. 生芻一束, 其人如玉.]"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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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종재25)에서 차운하여 황군 율파26) 서구 에게 주다 南宗齋 次贈黃君栗坡【瑞九】 반년 지나도록 돌아가지 못한 남쪽 나그네 未歸南客半經年선조 계승하는 그대의 깊은 정성에 감동했네 感子深誠繼述先평해27)의 고관은 화려한 문벌이요 平海簪纓華閥閱광산의 선영은 멋진 풍광이라네 匡山丘壟好風煙널리 서책 간행하느라 일이 분주한데도 廣刋緗帙行旁午짧은 시간에 정교하게 교정해 길이 전하게 하였네 精校陰陶可永傳이 외에 되려 할 일 있음을 알아야 하니 此外須知還有事입신이 바로 효도의 완성이라네 成身方是孝之全 未歸南客半經年, 感子深誠繼述先.平海簪纓華閥閱, 匡山丘壟好風煙.廣刋緗帙行旁午, 精校陰陶可永傳.此外須知還有事, 成身方是孝之全. 남종재(南宗齋) 황씨(黃氏)의 묘사(墓舍)로,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현에 소재한 듯하다. 황군 율파(黃君栗坡) 황서구(黃瑞九, 1896~1966)로, 율파는 그의 호이다. 본관은 평해(平海), 자는 순집(舜輯)이다. 9대조 이재(頤齋) 황윤석(黃胤錫, 1729~1791)의 《이재속고(頤齋續藁)》와 8대조 만은(晩隱) 황전(黃㙻, ?~1771)의 《만은유고(晩隱遺稿)》를 간행하였으며, 고창군 흥덕현에서 독립운동 자금조달과 민족 교육을 위한 흥동장학회(興東獎學會)의 활동에 참여하였다. 평해(平海) 강원도 평해군으로, 황서구(黃瑞九)의 본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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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들이 사심에 따라 의리를 어기는 것을 한탄하다 歎士子徇私悖義 저울로 무게를 알고 자로 길이를 아는데167) 權當知重度知長의를 보고 어찌하여 그 방도에 어두운가 見義胡然昧厥方애석하게도 마음이 장차 무너지고 폐해져 惜矣靈臺將壞廢애달프게 험한 길에서 오래도록 방황하네 哀哉險路久彷徨너희가 잡다하게 하는 말은 듣기 싫으니 厭聽汝所饒唇舌어찌 남들이 속마음 보는 걸 두려워하지 않나 盍懼人之視肺腸마침내 지금이라도 모름지기 능히 생각한다면 迄可及今須克念죽을 때까지 미치광이가 되지는 않으리라168) 莫爲至死作惟狂 權當知重度知長, 見義胡然昧厥方?惜矣靈臺將壞廢, 哀哉險路久彷徨.厭聽汝所饒唇舌, 盍懼人之視肺腸?迄可及今須克念, 莫爲至死作惟狂. 저울로……아는데 '권(權)'은 저울[衡]이요, '도(度)'는 자[尺]로, 사물을 헤아리는 기준이나 법도를 이른다. 《맹자》 〈양혜왕 상(梁惠王上)〉에 "저울에 달아 본 뒤에야 경중을 알고, 자로 재 본 뒤에야 장단을 아는 법이다. 어떤 사물이든 모두 그러하지만, 마음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權然後知輕重, 度然後知長短. 物皆然, 心爲甚.〕"라는 맹자의 말이 나온다. 능히……않으리라 《서경》 〈다방(多方)〉에 "오직 성인도 생각이 없으면 미치광이가 되고, 미치광이도 능히 생각하면 성인이 된다.〔惟聖罔念作狂, 惟狂克念作聖.〕"라는 말을 인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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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연정271)에서. 송연재·심석의 시에 차운하다272) 居然亭 次宋淵齋心石韻 화림273)이 빼어나다는 말 듣고 聞說花林勝지팡이 짚고 천 리를 갔네 一笻千里行보기 드문 기이한 수석들 罕看奇水石멋진 누정 일으키기에 참으로 좋네 合起好樓亭얼마나 진세의 꿈에 수고로웠나 幾處勞塵夢이제 오니 나그네 마음 상쾌하구나 今來爽客情편안하던 당시의 뜻 居然當日意사람은 없고 빈 물가 뿐이네 人去但虛汀 聞說花林勝, 一笻千里行.罕看奇水石, 合起好樓亭.幾處勞塵夢? 今來爽客情.居然當日意, 人去但虛汀. 거연정(居然亭)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봉전리 화림동(花林洞) 계곡에 있는 정자이다. 송연재(宋淵齋)․심석(心石)의 시에 차운하다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 1836~1905)과 심석재(心石齋) 송병순(宋秉珣, 1839~1912) 형제를 가리킨다. 이 시는 송병선의 《연재집(淵齋集)》 권2에 〈화림동 거연정(花林洞居然亭〉이라는 제목과 송병순의 《심석재집(心石齋集)》 권2에 〈화림동 거연정에 쓰다[題花林洞居然亭]〉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이 시 이하로는 김창술이 1941년에 안음(安陰), 즉 지금의 함양을 여행하는 중에 지은 것이다. 《後滄先生文集 卷21 安陰行記》 화림(花林)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봉전리 일대에 걸쳐있는 화림동(花林洞) 계곡으로, 농월정(弄月亭)ㆍ동호정(東湖亭)ㆍ거연정(居然亭)ㆍ군자정(君子亭) 등 수많은 정자들과 기암괴석으로 어우러진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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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암 채공424)의 묘소를 지나며 過鳳巖蔡公墓 강문의 팔학사425)로 높은 이름 날렸으니 江門八學擅高名성을 논하던 당년에 강론하여 밝히려 했네 論性當年要講明어찌 알았으랴 인물성동이 호락의 설426)이 詎料異同湖洛說점차 천고의 커다란 논쟁을 이룰 줄을 轉成千古大啁爭 江門八學擅高名, 論性當年要講明.詎料異同湖洛說, 轉成千古大啁爭? 봉암(鳳巖) 채공(蔡公) 채지홍(蔡之洪, 1683~1741)으로,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군범(君範), 호는 봉암이다. 권상하(權尙夏)의 문인으로 강문팔학사(江門八學士) 중 한 사람이며, 한원진(韓元震)ㆍ현상벽(玄尙璧) 등과 함께 호론(湖論)의 중심인물이 되어 인물성이론(人物性異論)을 주장하였다. 저서에 《봉암집》이 있다. 강문(江門)의 팔학사(八學士) 한수재(寒水齋) 권상하(權尙夏)의 문하에서 배출된 윤봉구(尹鳳九)ㆍ한원진(韓元震)ㆍ이간(李柬)ㆍ채지홍(蔡之洪)ㆍ이이근(李頤根)ㆍ현상벽(玄尙璧)ㆍ최징후(崔徵厚)ㆍ성만징(成晚徵) 등 8명의 학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인물성동이(人物性同異) 호락(湖洛)의 설 조선 후기에 권상하(權尙夏)의 문하에서 야기된 이른바 호락논쟁(湖洛論爭)을 말한다. 이 논쟁은 한원진(韓元震)과 이간(李柬) 사이에서 시작되었는데, 한원진은 인물성상이론(人物性相異論)과 미발심체유선악론(未發心體有善惡論)을, 이간은 인물성구동론(人物性俱同論)과 미발심체본선론(未發心體本善論)을 주장하였다. 한원진의 주장에 동조하는 학자들이 대부분 호서(湖西) 출신이었기 때문에 호론(湖論) 또는 호학이라 부르고, 이간의 주장에 동조하는 학자들이 대부분 낙하(洛下), 즉 서울 출신이었기 때문에 낙론(洛論) 또는 낙학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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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졸을 그리워하며 4수 憶百拙【四首】 영걸한 의표 보고 싶어도 전혀 계책 없어 欲睹英儀計絶無궁벽한 산에서 유관을 쓰고 홀로 앉았네 窮山獨坐一冠儒정토산의 밝은 달을 마음으로 따라 가니 淨山明月心從去한갓 빈 껍질인 칠 척 몸뚱이만 남았네 虛殼徒存七尺軀곤궁함이 연래에 육체를 핍박했으나 空乏年來逼體膚매양 높은 의리 의지해 조금 늦췄네 每資高義緩斯須문득 서산을 따르지 않게 된 뒤로 却令未踵西山後고금의 인간사가 달라지게 되었네 致得古今人事殊두우성 찌른 기개가 길이 탄식하니 氣衝牛斗一長吁인간 세상 모든 일이 끝나 버렸네 萬事人間已矣夫오직 심신이 머물 바를 알 뿐이니 惟有心身知所止여생을 함께하며 언덕 찾길 바라네 願同餘日覓邱隅스스로 믿는데 하필 많고 적음을 물으랴 自信何須問衆孤범과 용은 원래 미꾸라지 여우와 다르네 虎龍元不類鰍狐그대 손을 빌려 옛 성인을 뵐 수 있으니 但能藉手見先聖한 가닥 실이 원래 한나라 사직 떠받쳤네231) 一線由來漢鼎扶 欲睹英儀計絶無, 窮山獨坐一冠儒.淨山明月心從去, 虛殼徒存七尺軀.空乏年來逼體膚, 每資高義緩斯須.却令未踵西山後, 致得古今人事殊.氣衝牛斗一長吁, 萬事人間已矣夫.惟有心身知所止, 願同餘日覓邱隅.自信何須問衆孤? 虎龍元不類鰍狐.但能藉手見先聖, 一線由來漢鼎扶. 한……떠받쳤네 후한(後漢) 엄광(嚴光)의 맑은 절조를 칭송하는 고어(古語)에 "동강의 한 가닥 낚싯줄이 구정을 떠받친 것이, 지금도 청사에 아름다운 명성을 전하네.〔桐江一絲扶九鼎, 至今青史流芳聲.〕"라고 한 것을 변용한 표현이다. 엄광은 어릴 때 광무제(光武帝)와 같이 공부한 친구였다. 광무제가 왕위에 올라 그를 찾아 간의대부(諫議代夫) 벼슬을 주었으나, 그는 벼슬을 거절하고 동려현(桐廬縣) 남쪽 칠리탄(七里灘)에서 낚시를 즐기며 일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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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 친구 서영농 문환 의 별장에 이르러 벗들의 시에 화답하다 到蓼洞徐友瀛儂【文煥】庄上 和諸友韻 책 더미에 빠져서 백발에 이르렀으나 滾汨書堆到白紛도리어 몸은 조금도 보양하지 못했네 反身曾未補毫分〈양춘백설가〉456)로 착각해 외로이 읊조리고 孤吟錯認陽春雪누군가 후세에 양자운을 찾으리라457) 자신하네 自信誰求後世雲그대들 나란히 찾아와 감사와 부끄러움 많으나 高躅聯尋多感愧난리 때의 고상한 모임이라 듣기에 흡족하였네 亂時雅會足聽聞이곳에서 오히려 문풍이 있음을 보겠으니 此來猶見文風在화락한 기운은 술에 취해서일 뿐만이 아니네 和氣非徒酒以醺 滾汨書堆到白紛, 反身曾未補毫分.孤吟錯認《陽春雪》, 自信誰求後世雲.高躅聯尋多感愧, 亂時雅會足聽聞.此來猶見文風在, 和氣非徒酒以醺. 양춘백설가(陽春白雪歌) 매우 뛰어나 화답하기 어려운 시를 뜻한다. 송옥(宋玉)의 〈대초왕문(對楚王問)〉이란 글에서 나오는 고사이다. 어떤 사람이 영중(郢中)에서 처음에 〈하리파인(下里巴人)〉이란 노래를 부르자 그 소리를 알아듣고 화답하는 사람이 수천 명이었고 〈양아해로(陽阿薤露)〉를 부르자 화답하는 사람이 수백 명으로 줄었고 〈양춘백설가(陽春百雪歌)〉를 부르자 화답하는 사람이 수십 명으로 줄었다. 이렇게 곡조의 수준이 높아질수록 그에 화답하는 사람이 점점 적어졌다고 한다. 《文選 권45》 후세에 양자운(揚子雲)을 찾으리라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는 식견 높은 사람이 후대에 나타날 것이라는 말이다. 양자운은 전한(前漢)의 유학자 양웅(揚雄, BC53~AD18)으로, 자운은 그의 자이다. 양웅은 《태현경(太玄經)》을 저술한 뒤에 사람들이 모두 비웃자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지만 나쁠 것 없지. 후세에 또 양자운이 나와서 반드시 이 책을 알아줄 것이다."라고 하였다. 《宋元學案 卷8 涑水下》 사마상여(司馬相如)의 영향을 받아 사부(辭賦)에 뛰어났다. 저서에 《태현경(太玄經)》ㆍ《법언(法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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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을 찾아가다 訪壽山 교분은 돌처럼 굳고 덕은 쇠처럼 강해 交期石固德金剛늘그막에 서로 소원을 이룰 수 있겠네 晩節相將願可償세상은 명예 다퉈 예리한 칼날 같으나 世上爭名刀正利마음에 성인 사모해 아직도 향 피우네 心中慕聖瓣猶香여해에서 보주 찾는다107)고 하지 말게 休言驪海探珠寶용문108)에서 광채 입어 도리어 기쁘네 却喜龍門被彩光골짝의 푸른 솔이 별난 흥취를 이루니 洞裏碧松成別趣옷자락에 가득한 청풍을 느낄 뿐이네 淸風但覺滿衣裳 交期石固德金剛, 晩節相將願可償.世上爭名刀正利, 心中慕聖瓣猶香.休言驪海探珠寶, 却喜龍門被彩光.洞裏碧松成別趣, 淸風但覺滿衣裳. 여해(驪海)에서 보주(寶珠) 찾는다 뛰어난 시문(詩文)을 지으려고 애쓴다는 말이다. 원문의 '여해'는 검은 용이 살고 있는 바다이고, '보주'는 검은 용의 턱 밑에 있다는 구슬을 말하는데, 전하여 뛰어난 시문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백낙천(白樂天)ㆍ유우석(劉禹錫) 등 여러 사람이 모여서 금릉회고시(金陵懷古詩)를 짓다가, 유우석이 먼저 아름다운 시를 지으니, 다른 이들이 "동자(童子)가 용의 여의주〔驪龍珠〕를 얻었는데 나머지의 조개껍데기를 무엇에 쓰랴." 하고 붓을 놓았다고 한다. 《蘇東坡詩集 卷12 次韻孫巨源寄漣水李盛二著作幷以見寄五絶》 용문(龍門) 북송(北宋)의 학자 정이(程頤)가 만년에 거주했던 곳인데, 일반적으로 현자가 거처하는 곳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여기서는 수산(壽山) 오병수(吳秉壽)의 거처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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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시에 첩운하여 여중을 면려하다 疊前韻 勉汝重 뭇 사욕을 이기는 것은 혈전과 같아 克去羣私血戰如몸 떨쳐 솥 부수고 또 집도 불태우네132) 奮身破釜更焚廬강한 적과 서로 싸울 때는 근심이 깊지만 患深勁敵交攻際단병으로 곧장 막 전진해서는 용기가 배가 된다오 勇倍孤軍直前初몇 번이나 빈사의 상태 겪었던가 閱歷幾遭濱死地집안사람들 끝내 편안한 거처 얻었구나 室家終得有安居옥처럼 이룸은 더더욱 많은 시름에 달려 있으니133) 玉成尤在多憂戚그저 공부의 치밀하고 엉성함과 관계 있다오 只係工夫密與疏 克去羣私血戰如, 奮身破釜更焚廬.患深勁敵交攻際, 勇倍孤軍直前初.閱歷幾遭濱死地? 室家終得有安居.玉成尤在多憂戚, 只係工夫密與疏. 뭇……불태우네 사욕(私欲)을 이겨내는 것을 전쟁에서 결사의 각오로 싸우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항우(項羽)가 진(秦)나라와 싸우러 가면서 하수(河水)를 건넌 뒤, 배를 모두 가라앉히고, 솥과 시루를 깨뜨리고, 막사를 불태우고, 사흘 양식을 지니고서 사졸에게 반드시 죽을 각오로 싸울 것임을 보여주었던 데서 유래한다. 《史記 項羽本紀》 옥처럼……있으니 시련을 통하여 학문과 인격이 귀한 옥처럼 훌륭하게 성취되는 것을 말한다. 송(宋)나라 장재(張載)의 〈서명(西銘)〉에 "그대를 빈궁하게 하고 시름에 잠기게 하는 것은, 그대를 옥처럼 성취시키려는 것이다.[貧賤憂戚, 庸玉汝於成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古文眞寶後集 卷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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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그믐에 흥덕의 고암에 오르다 三月晦日 上興德之鼓巖 객창에서 봄 한 철 다 보내니 一春送盡旅窓中더는 풍광이 예전과 같지 않네 非復風光昔日同마른 꽃술은 일천 숲에 붉게 흩날리고 敗蕊千林紅作霰빽빽한 그늘 몇 곳엔 녹음이 무성하네 密陰幾處綠成幪노년에도 금단(金丹)은 소식이 더디니23) 丹頭暮境遲消息평소 뜻을 어느 때나 마칠 수 있을까 素志何時有克終이날 높은 곳에 오르니 뜻이 무한하여 此日登高無限意멀리 노성 동쪽에서 바람 쐬고 읊조리네24) 遙遙風詠魯城東 一春送盡旅窓中, 非復風光昔日同.敗蕊千林紅作霰, 密陰幾處綠成幪.丹頭暮境遲消息, 素志何時有克終?此日登高無限意, 遙遙風詠魯城東. 노년에도……더디니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는 뜻이다. 주희가 지난 시절을 회상하며 지은 시에 "언뜻 지나가는 백 년 세월 얼마나 되랴. 세 번 꽃 피는 영지는 무엇을 하려는가. 말년에도 금단은 소식 없으니, 운당포 벽 위의 시가 거듭 한탄스럽네.[鼎鼎百年能幾時? 靈芝三秀欲何爲? 金丹歲晩無消息, 重歎篔簹壁上詩.]"라고 하였다. 《朱子大全 卷84 題袁機仲所校參同契後》 멀리……읊조리네 공자(孔子)의 제자 증점(曾點)이 자신의 뜻을 말하라는 공자의 명에 슬(瑟)을 울리다 말고, "늦은 봄날 봄옷이 이루어지거든 어른 대여섯 사람, 동자 예닐곱 사람과 함께 기수(沂水)에서 목욕하고 무우(舞雩)에서 바람 쐬고 시 읊으면서 돌아오겠다."라고 하였다.《論語 先進》 기수는 춘추 시대 노(魯)나라에 있던 물 이름이며, 무우(舞雩)는 하늘에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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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암 최형이 부채를 보내준 것에 사례하며 절구 3수 謝新菴崔兄寄扇【三絶】 어디서 왔나 그 부채79)가 몹시 다정해라 何來便面最多情손안에서 바람 이니 홀연 맑아짐을 느끼네 手裏風生忽覺淸시기에 맞추어 쓸 수 없다 말하지 말게나 莫道時期違適用가을 날씨 다시 뜨거워 혹독한 삼복 같거늘 秋天再熱酷三庚함께 달 감상하려 했으나 하지 못했는데 擬同賞月未曾能둥근 부채가 도리어 밝은 달 모양 같구나 團扇却如明月形구중천 밖에 높이 매달린 것 잡고 싶은데 欲把高懸九天外똑같은 정으로 이곳과 그곳을 비춰주리라 照來兩地一般情제갈의 백우선80) 어느 해에 또 벼슬을 사양했나 葛白何年又謝靑웃으며 백만의 위나라 진나라 병사를 지휘했지 笑揮百萬魏秦兵그대가 보낸 부채 받고 되레 과분함에 부끄러워 領君此物還慙侈공연히 스스로 마음 아파 손안에 비껴두었다네 空自傷心手裏橫 何來便面最多情, 手裏風生忽覺淸.莫道時期違適用, 秋天再熱酷三庚.擬同賞月未曾能, 團扇却如明月形.欲把高懸九天外, 照來兩地一般情.葛白何年又謝靑? 笑揮百萬魏、秦兵.領君此物還慙侈, 空自傷心手裏橫. 부채 원문의 '편면(便面)'은 옛사람들이 얼굴을 가리던 부채 등을 이르는 말이다. 제갈(諸葛)의 백우선(白羽扇) 제갈은 삼국(三國) 촉한(蜀漢)의 승상(丞相) 제갈량(諸葛亮)이며, 백우선은 새의 흰 깃털로 장식한 부채로 제갈량이 쓰던 것이다. 제갈량이 후주(後主) 유선(劉禪)에게 출사표를 올리고는 위(魏)나라 조비(曹丕)를 공격하였는데, 싸울 때 언제나 윤건(綸巾)을 쓰고 백우선을 들고서 삼군(三軍)을 지휘하였다. 《三國志 卷35 蜀書 諸葛亮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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