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록문화
통합검색플랫폼

검색 필터

기관
유형
유형분류
세부분류

전체 로 검색된 결과 547568건입니다.

정렬갯수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昨今兩度惠書感怍何居伏惟比天僉體候連護万重溸仰慰賀且頌族從此依眷亦無驚耳就悚鄙之信章今日以森林讓與申請事入面所姑未出來此便不得仰呈悶㭗悶㭗耳門中得債事以一門都有司丈與兩有司之信章則共公也何以許多信章集合耶此是煩蔽而鄙之信章言之則際玆爲用故未副盛敎㭗㭗悵悵餘在座擾姑不備謝禮丁五月九日族從翊洪拜謝上(皮封前面)席洞齋僉座下回納(皮封背面)蓮洞謹上謝函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기유년 부안 전주최씨(全州崔氏) 양파비역용하기(兩派碑役用下記) 고문서-치부기록류-용하기 경제-회계/금융-용하기 己酉六月二十日 己酉六月二十日 全州崔氏門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기유년에 부안 전주최씨문중의 양파에서 비역에 지출한 내역을 기록한 문서. 기유년(己酉年) 6월 20일에 부안(扶安) 전주최씨(全州崔氏)의 양파(兩派)가 비역(碑役)에 지출한 내역을 기록한 문서이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갑인년 부안 전주최씨(全州崔氏) 전례기(傳例記) 고문서-치부기록류-물목 종교/풍속-관혼상제-물목 甲寅十月二十一日 甲寅十月二十一日 全州崔氏門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갑인년 10월에 부안 전주최씨문중에서 작성한 작성한 재중 소유물 전례기. 갑인년(甲寅年) 10월에 부안(扶安) 전주최씨문중(全州崔氏門中)에서 작성한 재중 소유물 전례기(齋中所有物傳例記)이다. 제기(祭器), 서책(書冊) 등 두 항목으로 나누어 그 물목(物目)을 적은 것이다. 임원들간의 인수인계를 위하여 작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신미년 부안 전주최씨(全州崔氏) 자하기(自下記) 고문서-치부기록류-용하기 경제-회계/금융-용하기 辛未七月 辛未七月 全州崔氏門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신미년에 부안 전주최씨문중에서 지출한 비용을 기록한 문서. 신미년(辛未年) 7월부터 8월 26일까지 부안(扶安) 전주최씨문중(全州崔氏門中)에서 지출한 비용을 기록한 문서이다. 갈촌리, 석제리, 옹정리 등 각 마을별로 부녀들이 상(床)을 차린 수와 그 비용을 기록한 일종의 상수기(床數記)이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무오년 부안 전주최씨(全州崔氏) 회계기(會計記) 고문서-치부기록류-회계기 경제-회계/금융-회계기 戊午十月十五日 戊午十月十五日 全州崔氏門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무오년 10월에 작성한 부안 전주최씨문중의 회계기. 무오년(戊午年) 10월 15일에 작성한 부안(扶安) 전주최씨문중(全州崔氏門中)의 회계기(會計記)이다. 족원들로부터 거두어들인 금액과 이자 등이 그 성명들과 함께 적혀 있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모년 부안 전주최씨(全州崔氏) 토정리(土亭里) 제수물목(祭需物目) 고문서-치부기록류-물목 종교/풍속-관혼상제-물목 全州崔氏門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모년에 부안 전주최씨문중에서 작성된 토정리 제수물목 모년에 부안(扶安)의 전주최씨문중(全州崔氏門中)에서 작성된 토정리(土亭里) 제수물목(祭需物目)이다. 건시(乾柿) 생률(生栗), 조(棗), 건석어(乾石魚), 문어(文魚), 명태(明太), 호도(胡桃), 건하(乾蝦), 홍합(紅蛤), 길경(桔梗), 궐(蕨), 염석어(鹽石魚), 정육(正肉) 4근-13냥 5전, 곡자(曲子), 백산과 시용(市用 노자) 등에 돈 48냥이 쓰였고 새로운 제수품으로 호도가 첨가되었다. 쌀은 주미(酒米), 제반미(祭飯米)로 2말을 사용하였다. 위곡(位穀) 작전가(作錢價) 50냥, 쌀 4말이 수입이다. 토정리는 현재 완주군 소양면이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신유년 부안 전주최씨(全州崔氏) 하기회계부(下記會計簿) 고문서-치부기록류-회계기 경제-회계/금융-회계기 辛酉三月 辛酉三月 全州崔氏門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신유년에 작성된 부안 전주최씨문중의 하기 회계부. 신유년(辛酉年) 3월부터 12월 27일까지 작성된 부안(扶安) 전주최씨문중(全州崔氏門中) 하기회계부(下記會計簿)이다. 원재(元齋)와 부사공파(府使公派), 참봉공파(叅奉公派) 등의 도조(賭租) 수입과 미곡 출급 상황이 적혀 있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병술년 부안 전주최씨(全州崔氏) 수입기(收入記) 고문서-치부기록류-회계기 경제-회계/금융-회계기 丙戌九月 日 丙戌九月 日 全州崔氏門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병술년 9월에 작성된 부안 전주최씨문중의 수입기. 병술년(丙戌年) 9월에 작성된 부안(扶安) 전주최씨문중(全州崔氏門中)의 수입기(收入記)이다. 부안 내 각 마을의 족원들로부터 거둔 금액이 성명과 함께 적혀 있다. 일부는 돈으로 거두었고, 일부는 미곡으로 거두었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1956년 부안 전주최씨(全州崔氏) 전주노비급잡비(全州路費及雜費) 고문서-치부기록류-용하기 경제-회계/금융-용하기 丙申十一月 丙申十一月 全州崔氏門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956년에 부안 전주최씨문중에서 작성한 전주노비와 잡비 내역이다. 1956년에 부안(扶安) 전주최씨문중(全州崔氏門中)에서 작성한 전주노비(全州路費)와 잡비(雜費) 내역을 기록한 문서이다. 11월 15일부터 12월 24일까지의 지출 내역이 실려 있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기미년 부안 전주최씨(全州崔氏) 참봉공파(叅奉公派) 추감기(秋監記) 고문서-치부기록류-추수기 경제-농/수산업-추수기 己未秋 己未秋 全州崔氏門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기미년에 부안의 전주최씨 참봉공파에서 작성된 추감기. 기미년(己未年) 9월에 부안(扶安)의 전주최씨(全州崔氏) 참봉공파(叅奉公派)에서 작성된 추감기(秋監記)이다. 추감기는 전답과 소출량, 경작자 등이 기록된 문서로, 추수기(秋收記), 타조기(打租記), 색조기(色租記), 수세책(收稅冊) 등 여러 가지 서로 다른 이름으로 나온다. 이 문서는 학계에서 19세기 이후 지주제(地主制) 연구의 주요 자료로 흔히 이용되어 왔다. 이 문서에 지주가 작인들에게 소작을 둔 토지를 필지별로 전답의 소재지, 지적(두락), 작인 등과 함께 그 수확량이나 지대량을 매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풍흉이나 재해, 종자와 볏짚, 전세 등의 정보들을 기록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연유로 인하여, 토지경영의 실상을 담고 있는 추수기는 많은 연구자들이 지주제 연구와 관련된 주요 자료로 인식하고 활용하여 왔다. 특히 유절재는 부안의 유력한 씨족인 전주최씨(全州崔氏)의 재실(齋室)로, 각 파별로 다양한 계(契)를 설립하여 운영하여 왔다. 유절재에 소장된 회문(回文)을 통해서 드러난 계를 살펴보더라도 흥학계(興學稧), 처암공파계(處菴公派契), 봉사공파계(奉事公派契), 원재계(元齋契), 참봉공파계(叅奉公派契), 사문계(私門稧), 문중별청계(門中別廳稧) 등 다양하다. 이들 조직은 개별적으로 운영되고 있었고, 이에 따라 별도의 재원을 확보하고 있었다. 그 재원은 다름 아닌 전답의 소유이다. 이들 계의 전답은 경영 과정에서 각 계마다 추수기 또는 추감기가 작성되었다. 이들 추감기에는 토지 소재지의 고을명과 지번, 지목, 지적, 경작료, 경작인 등이 차례로 적혀 있었다. 이러한 문서를 통해 부안의 유력 세족인 전주최씨(全州崔氏)의 당시의 경제적 실태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기미년의 참봉공파 추감기에는 부안의 묵교평(墨橋坪)과 통정평(通井坪)에 있는 전답의 경작자와 두락 수와 도조(賭租) 등이 차례로 기재되어 있다. 묵교평에서는 허익로가 3두 5승락의 논을 경작하여 16두의 도조를 납부했고, 최응수가 3두 5승락의 논을 경작하여 13두의 도조를 납부했다. 통정평에서는 최성도가 5두락의 논을, 최경직이 2두락의 논을, 최경원이 10두락의 논을, 최경국이 4필지 12두의 논을 각각 경작하여, 도조로 1석 5두, 10두, 2석, 4석 40두를 각각 납부했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갑인년 부안 전주최씨(全州崔氏) 추감기(秋監記) 1 고문서-치부기록류-추수기 경제-농/수산업-추수기 甲寅 甲寅 全州崔氏門中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갑인년 이후 4년간에 걸쳐 부안의 전주최씨문중에서 작성된 추감기. 갑인년(甲寅年) 이후 4년간에 걸쳐 부안(扶安)의 전주최씨문중(全州崔氏門中)에서 작성된 추감기(秋監記)이다. 표제(標題)는 '甲寅乙卯兩年秋監記'로 되어 있지만, 갑인년, 을묘년, 병진년, 정사년 등 4년간의 추감기가 차례로 실려 있다. 추감기는 전답과 소출량, 경작자 등이 기록된 문서로, 추수기(秋收記), 타조기(打租記), 색조기(色租記), 수세책(收稅冊) 등 여러 가지 서로 다른 이름으로 나온다. 이 문서는 학계에서 19세기 이후 지주제(地主制) 연구의 주요 자료로 흔히 이용되어 왔다. 이 문서에 지주가 작인들에게 소작을 둔 토지를 필지별로 전답의 소재지, 지적(두락), 작인 등과 함께 그 수확량이나 지대량을 매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풍흉이나 재해, 종자와 볏짚, 전세 등의 정보들을 기록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연유로 인하여, 토지경영의 실상을 담고 있는 추수기는 많은 연구자들이 지주제 연구와 관련된 주요 자료로 인식하고 활용하여 왔다. 특히 유절재는 부안의 유력한 씨족인 전주최씨(全州崔氏)의 재실(齋室)로, 각 파별로 다양한 계(契)를 설립하여 운영하여 왔다. 유절재에 소장된 회문(回文)을 통해서 드러난 계를 살펴보더라도 흥학계(興學稧), 처암공파계(處菴公派契), 봉사공파계(奉事公派契), 원재계(元齋契), 참봉공파계(叅奉公派契), 사문계(私門稧), 문중별청계(門中別廳稧) 등 다양하다. 이들 조직은 개별적으로 운영되고 있었고, 이에 따라 별도의 재원을 확보하고 있었다. 그 재원은 다름 아닌 전답의 소유이다. 이들 계의 전답은 경영 과정에서 각 계마다 추수기 또는 추감기가 작성되었다. 이들 추감기에는 토지 소재지의 고을명과 지번, 지목, 지적, 경작료, 경작인 등이 차례로 적혀 있었다. 이러한 문서를 통해 부안의 유력 세족인 전주최씨(全州崔氏)의 당시의 경제적 실태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갑인년 9월에 작성된 추감기에는 부안의 묵교평(墨橋坪)과 신평리(新坪里), 묵정평(墨丁坪), 마전평(麻田坪)에 있는 전답의 경작자와 두락 수와 도조(賭租) 등이 차례로 기재되어 있다. 묵교평에서는 최운경과 최응수가 각각 6두락의 논을 경작하여 1석 16두와 2석 2두의 도조를 각각 납부했다. 신평리에서는 최성도가 5두락의 논을 경작하여 1석 5두의 도조를 내야하는데 납부하지 않았다. 묵정평에서는 김경옥이 4두락, 3두락, 7두락 등 3필지의 논을 경작하여 1석 12두, 16두, 3석 3두의 도조를 각각 납부했다. 그리고 백한서가 4두락의 논을 경작하여 1석 16두의 도조를 납부했다. 마전평에서는 최경국이 3두락, 4두락, 5두락 등 3필지의 논을 경작하여 15두, 1석, 1석 10두의 도조를 각각 납부했으며, 최성일이 5두락의 논을 경작하여 1석 5두의 도조를 납부했다. 한편 을묘년 9월에 작성된 추감기의 현황을 살펴보면, 묵교리평에서는 최응수와 최운경이 모두 13두락의 논을 경작하여 2석 17두의 도조를 납부했다. 통정평에서는 최성도가 5두락의 논을 경작하여 1석 5두의 도조를 납부했다. 정해평에서는 최경국이 2필지의 논 9두락을 경작하여 2석 15두의 도조를 납부했으며, 최성일이 5두락의 논을 경작하여 1석의 도조를 납부했다. 덕산평에서는 최경국이 3두락의 논을 경작하여 10두의 도조를 납부했다. 묵정평에서는 김경옥이 2필지의 논 9두락을 경작하여 2석 33두의 도조를 납부했다. 백한서와 김존중은 각각 4두락의 논을 경작하여 1석 2두씩 도조를 납부했다. 병진년 10월에 작성된 추감기의 현황을 살펴보면, 묵정평에서는 김재중, 김완겸, 백한서 등이 4필지 17두락의 논을 경작하여 3석 51두의 도조를 납부했다. 묵교평에서는 최응수와 최운경이 2필지의 논 13두락을 경작하여 3석 4두의 도조를 납부했다. 통정리평에서는 최성직이 5두락의 논을 경작하여 1석 15두를 도조로 납부하여야 하지만 5두를 내지 못했다. 정해평에서는 최경선이 2필지의 논 8두락을 경작하여 2석 13두의 도조를 납부했다. 그리고 최성일은 5두락의 논을 경작하여 1석 5두의 도조를 납부했다. 정사년 8월 27일에 작성된 추감기의 현황을 살펴보면, 하장평(下長坪)에서는 김경옥, 김재중, 이경일 등이 18두락의 논을 경작하여 7석 18두의 도조를 납부했다. 행안면 묵교리평에서는 최운경 등이 13두락의 논을 경작하여 2석 34두의 도조를 납부했다. 상서 통정평에서는 최경원이 5두락의 논을 경작하여 1석 10두의 도조를 납부했다. 하서 정해평에서는 최성일이 5두락의 논을 경작하여 1석 5두의 도조를 납부했다.

상세정보
상단이동 버튼 하단이동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