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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씨의 청계정사50) 시에 차운하다 고창(高敞)의 갑평(甲坪)에 있다. 次姜氏淸溪精舍韻【在高敞甲坪】 당시에 지조와 절개가 물처럼 맑아 志節當年水與淸청계 옛집이 새로 이루어지게 되었네 淸溪舊舍見新成마음엔 현인의 천 년 사업 간직하고 心存賢哲千秋業한은 몇 겹 풍천의 소리에 들어갔네 恨入風泉幾疊聲골짝에는 빛나게 남긴 자취 드러나고 洞壑光輝遺躅著창에는 정결하게 속된 먼지 씻겨냈네 軒牕明潔俗塵晴시례를 잘 잇는 건 후손의 책임이니 善承詩禮雲仍責실제에 힘써야 명성을 실추하지 않으리 務實方能不墜名 志節當年水與淸, 淸溪舊舍見新成.心存賢哲千秋業, 恨入風泉幾疊聲.洞壑光輝遺躅著, 軒牕明潔俗塵晴.善承詩禮雲仍責, 務實方能不墜名. 청계정사(淸溪精舍) 강순(姜恂, 1607~1674)이 전라북도 아산면 운곡리에 지은 정사이다. 강순의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신백(信伯), 호는 청계일인(淸溪逸人)이다. 1636년 병자호란 때 거의(擧義)하여 남한산성으로 가던 중에 화의가 이루어지자 통곡하고 고창으로 내려와 은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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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에게 주다 贈壽山 백리 길에서 거듭 야귀당51) 찾았으니 百里重尋夜歸堂한 생각도 어찌하여 금방 잊지 못할까 一念如何未遽忘백발에 맺은 교분 너무 늦어 가련하고 白髮金蘭憐太晩별원 꽃나무의 외로운 꽃이 사랑스럽네 別園花木愛孤芳도를 보는 밝은 눈을 갖추기는 어렵고 難能見道具明眼시절 상심해 속 끓이는 것도 무익하네 無益傷時沸熱腸골짝엔 푸른 솔 산에는 대나무 있으니 洞有碧松山有竹이런 뜻이 세한에 긴 줄을 누가 알랴 誰知此意歲寒長 百里重尋夜歸堂, 一念如何未遽忘?白髮金蘭憐太晩, 別園花木愛孤芳.難能見道具明眼, 無益傷時沸熱腸.洞有碧松山有竹, 誰知此意歲寒長? 야귀당(夜歸堂) 수산(壽山) 오병수(吳秉壽)가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죽산리에 지은 '야귀재(夜歸齋)'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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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사오 광엽 가 나에게 대암재에서 묵으라고 요구하다 宋士午【光燁】要余宿臺巖齋 내가 대암의 멋진 경치를 사랑하노니 我愛臺巖景色佳영산과 태악이 외롭지 않게 이웃했네 瀛岑台岳不孤隣천 년 된 사찰에는 석불이 남아 있고 餘存石佛千年寺푸르른 솔숲은 사계절이 봄인 듯하네 積翠松林四節春마침 찾은 진경은 전에 보았던 곳이요 眞境適尋曾見地다시 만난 좋은 벗은 옛 친구들이네 良朋更得舊交親한가함 틈타 종일 먼 생각 일으키니 偸閒盡日起遐想새벽 맡은 문지기를 배우길 바라네 願學衛門之掌晨 我愛臺巖景色佳, 瀛岑台岳不孤隣.餘存石佛千年寺, 積翠松林四節春.眞境適尋曾見地, 良朋更得舊交親.偸閒盡日起遐想, 願學衛門之掌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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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 줄기로 시초를 대신하다 菊莖代蓍 우리나라에는 애초에 영험한 시초 없었으니 東國初無蓍草靈국화 줄기로 대신 써도 점괘가 신명하였네 菊莖代用亦神明괘분과 귀설260)로 하늘의 운세를 본뜨고 掛分歸揲象天運노소와 우기261)에 효가 이루어짐을 본다오 老少偶奇觀爻成점괘 묻는 자가 마음의 허물을 깨끗이 씻으면 問者洗淸心上累응하는 괘사는 메아리 소리 듣는 듯 빠르다네 應辭捷若響中聽중니께서 만년에 기뻐하심은262) 진실로 이 때문이니 宣尼晩喜良因是후학이 본받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못해 부끄럽네 後學效嚬慙未能 東國初無蓍草靈, 菊莖代用亦神明.掛分歸揲象天運, 老少偶奇觀爻成.問者洗淸心上累, 應辭捷若響中聽.宣尼晩喜良因是, 後學效嚬慙未能. 괘분(掛分)과 귀설(歸揲) 《주역》 점을 칠 때의 방식을 말한다. 《주역》 〈계사전 상(繫辭傳上)〉에 "대연의 수가 오십이요 사용하는 것은 사십구이다. 이를 나누어 둘로 만들어서 천지를 본뜨고, 하나를 손가락 사이에 걸어서 삼재(三才)를 본뜨고, 이것을 넷으로 셈하여 사시(四時)를 본뜨고, 남은 수를 손가락 사이에 끼워서 윤달을 본뜬다.[大衍之數五十, 其用四十有九. 分而爲二, 以象兩, 掛一, 以象三, 揲之以四, 以象四時, 歸奇於扐, 以象閏.]"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노소(老少)와 우기(偶奇) 노소는 《주역》 점을 치면 노음(老陰), 노양(老陽), 소음(少陰), 소양(少陽)의 네 가지 효가 나오는데, 노음과 노양은 변효(變爻)이고 소음과 소양은 불변효(不變爻)이다. 우기는 우수(偶數)와 기수(奇數)로, 기는 양이 되고 우는 음이 된다. 중니(仲尼)께서 만년에 기뻐하심은 《사기(史記)》 〈공자세가(孔子世家)〉에 "공자가 만년에 《주역》을 좋아하여 〈서괘〉, 〈단전〉, 〈계사〉, 〈상전〉, 〈설괘〉, 〈문언〉을 짓고, 《주역》을 하도 많이 읽어서 책을 맨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다.[孔子晩而喜易, 序、彖、繫、象、說卦、文言, 讀易, 韋編三絶.]"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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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중이 회갑 날 준 시에 화답하여 사례하다 3수 步謝汝重甲日見贈韻【三首】 평생 학문에 뜻을 두었는데 끝내 펴지 못해 志學平生竟莫申흉중은 물욕에 덮이고 얼굴엔 티끌이 묻었네 胸中茅塞面侵塵수백 수천 수만 가지 일에 겁회243)가 차갑게 식고 百千萬事劫灰冷육십일 년의 세월에 머리가 새로 희었네 六十一年頭雪新장수하여 후배들 인도하였다 말하지 말라 長壽休言開後進재주 없는 나는 늘 선친을 욕보일까 두렵다네 不才常恐忝先親시를 주니 정성스러운 뜻에 감동하였지만 贈詩縱感慇懃意기대하고 칭찬함은 되려 나를 아는 이 아니라오 期獎還非知我人어찌 생각했으랴 나 태어난 갑신년 돌아올 줄 豈意我生回甲申잔약한 몸은 가벼운 티끌 하나의 신세도 못 되네 孱軀不啻一輕塵선친의 연세 짧았으니 그 슬픔 어찌 끝이 있으랴 先齡積短悲何極천한 목숨 유독 기니 부끄러움이 다시 새롭네 賤壽偏長愧却新해진 책에서 좀 벌레나 잡으니 견식이 없어서이고 敗册掃蟫無見識빈 산에서 사슴 길들이니 친한 벗이 끊겨서라오 空山馴鹿絶朋親오늘 아침 운당포(篔簹鋪) 시244) 짓고 〈육아(蓼莪)〉시 읊으며 篔題莪詠今朝事홀로 가슴앓이할 뿐 남에게 말하지 못하겠네 獨自傷心不語人내가 태어난 해는 까마득한 지난 갑신년이니 我降邈然前甲申상전벽해 이후로 세상의 비린 티끌 실컷 겪었지 滄桑以後厭腥塵오래된 사문 힘써 부지하니 참으로 애석하고 力扶堪惜斯文舊세상에서 신학문 배움을 슬퍼한 들 어이 하랴 心痛其如世學新비록 오래 살기를 가슴속으로 간절히 바라지만 縱切長年胸裡願슬하에 직접 닥칠 재앙을 차마 보겠는가 忍看先禍膝前親늙은이의 마음 언짢으니 어찌 안정될 수 있을까 老懷作惡何能定오늘날 선비로 처신하기 어렵구나 此日難爲士子人 志學平生竟莫申, 胸中茅塞面侵塵.百千萬事劫灰冷, 六十一年頭雪新.長壽休言開後進, 不才常恐忝先親.贈詩縱感慇懃意, 期獎還非知我人.豈意我生回甲申, 孱軀不啻一輕塵.先齡積短悲何極? 賤壽偏長愧却新.敗册掃蟫無見識, 空山馴鹿絶朋親.篔題莪詠今朝事, 獨自傷心不語人.我降邈然前甲申, 滄桑以後厭腥塵.力扶堪惜斯文舊, 心痛其如世學新.縱切長年胸裡願, 忍看先禍膝前親?老懷作惡何能定? 此日難爲士子人. 겁회(劫灰) 겁화(劫火)의 재라는 뜻으로, 재앙을 뜻하는 불교 용어이다. 하나의 세계가 끝날 즈음에 겁화가 일어나서 온 세상을 다 불태운다고 하는데, 한 무제(漢武帝) 때 곤명지(昆明池) 밑바닥에서 나온 검은 재에 대하여, 인도 승려 축법란(竺法蘭)이 "바로 그것이 겁화를 당한 재[劫灰]"라고 대답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高僧傳 卷1 竺法蘭》 운당포(篔簹鋪) 시 운당포 벽 위에 쓰여진 시를 말한다. 주희(朱熹)가 젊은 날 운당포에서 쉬다가 벽에 "빛나는 영지여, 한 해에 세 번이나 피었네. 나는 홀로 무엇을 하였기에, 뜻이 있으나 이룬 게 없는가.[煌煌靈芝, 一年三秀. 予獨何爲, 有志不就?]"라고 한 혜강(嵇康)의 〈유분시(幽憤詩)〉가 적힌 것을 보고는 자신의 뜻과 같다고 비통해한 고사가 있다. 《朱子大全 卷84 題袁機仲所校參同契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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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남유고》 발문 鳳南遺稿跋 봉남옹(鳳南翁)39)이 이미 돌아가시고 그 손자 승환(承渙)40)이 유고를 수습하여 하루는 다산재사(多山齋舍)로 나를 방문하여 교감하고 편집하는 일을 청하였다. 나는 안목이 고루하다는 것으로 오래 동안 굳게 사양하였으나 다만 생각건대 옹은 나의 옛날 금석지교(金石之交)이다. 지금 유묵을 보니 나도 모르게 비창(悲愴)하여 한 번 열람할 마음이 없지 않았다. 또 승환은 묘년[妙末]의 나이에 선대의 원고가 귀중한 줄 알고 그 민멸되고 흩어지는 대로 맡겨두려고 하지 않으니, 이 뜻은 지극히 우연이 아니다. 드디어 손 가는대로 교정하고 대략 재량하여 줄였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두 달 만에 비로소 일을 마쳤으니, 그 시(詩)·사(詞)·서(書)·서(序)·기(記)·설(說)·문(文)·장(狀)이 모두 1책이다.오호라! 이것이 어찌 내가 손댈 수 있는 것이겠는가. 안목이 고루할 뿐 아니라 아울러 세상 일에 분주하여 능히 세심하게 정밀히 비교할 수 없었으니, 구슬을 버리고 돌을 남겨 두는 폐단이 없지 않을 줄 어찌 보장하겠는가. 그러나 나무 인형 만들 때 코를 크게 해 두면 장차 영근(郢斤)이 흙을 깎아내는 것41)이 없지 않을 것인데, 이것은 승환의 책임이니, 원컨대 돌아가 힘쓸지어다! 鳳南翁旣沒。其孫承渙收拾遺藁。一日過我於多山齋舍。請校勘編摩之役。余以眼目固陋。牢辭久之。但念翁是余疇昔金石之交也。今見遺墨。不覺悲愴。不無一番繙閱之願。且承渙以妙末之年。知先藁之爲重。而不欲任其泯散。此意極不偶然。遂隨手點校。略加裁減。首尾二朔。乃始斷手。其詩詞書序記說文狀總二冊子。嗚乎。此豈余所可犯手者哉。不惟眼目固陋。兼以世故鞅掌。不能細心精較。安保無遺珠藏石之獘也。然木偶大鼻。將不無郢斤之斲堊。此承渙之責也。願歸而勉之哉。 봉남옹(鳳南翁) 홍채주(洪埰周, 1834~1887)를 말한다. 자는 경좌(卿佐), 다른 휘는 종진(鍾鎭), 자는 응중(應仲), 호는 봉남, 본관은 풍산(豐山)이다. 자세한 내용은 《일신재집》 권18 〈봉남 홍공 행장(鳳南軒洪公行狀)〉에 보인다. 승환(承渙):홍승환(洪承渙, 1870~?)을 말한다. 자는 사증(士拯)이다. 영근(郢斤)이……것 영(郢) 땅 사람이 자귀질하여 흙을 깎는다는 뜻으로 다른 사람의 시문을 잘 고치는 감식안을 말한다. 여기서는 정의림이 지은 글을 다른 유능한 사람이 수정해 줄 것이라는 뜻이다. 《장자》 〈서무귀(徐無鬼)〉에 "영인(郢人)이 장석(匠石)의 솜씨를 철저히 믿어 자신의 코끝에다 마치 파리 날개만 한 흙을 바르고는 장석을 시켜 그 흙을 깎아내게 하였는데, 과연 장석이 바람소리가 휙휙 나도록 자귀를 휘둘러 깎아냈는데도 흙만 깨끗이 다 깎이고 코는 아무렇지도 않았다."라는 내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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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와 정공 가장〉 뒤에 적다 題靜窩鄭公家狀後 삼가 살펴보건대, 공은 영특하고 빼어난 자질로 시례(詩禮)18)와 법필(法拂)19)의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는 효제(孝悌)로 향리에 드러났고 장성하여서는 문학으로 붕우 간에 알려졌으니, 그 젖어들고 훈도를 받아 추향과 인도가 실로 남들과 다름이 있었던 것이다. 중년에 이르러 나아가 성담(性潭) 송 선생(宋先生)20)의 문하에서 스승으로 섬겨 차례로 강토(講討)하고 차례로 증정(證正)하여 배워서 모으고 물어서 분변하며21) 정신으로 이해하고 통하게 하여 안목이 더욱 열려 넓어지고 심회가 더욱 펼쳐져 열리니, 원근의 종유하는 이들과 한 때의 여론이 자자하게 칭찬하며 추중하지 않음이 없었다. 그 축적한 것은 족히 사물에 미치고 그 품었던 포부는 족히 세상에 쓰일 만했는데, 이에 능히 남쪽 끝 바닷가 모퉁이 사이에 품고 거두어 종정(鍾鼎)22)이 부유함이 되는 것과 헌면(軒冕)23)이 영화24)가 되는 줄 모른 채 여유롭게 노닐고 장수유식(藏修遊息)25)하였으니, 그 뛰어난 운치와 고상한 자취는 어찌 보통사람이 헤아릴 수 있는 것이겠는가.오호라! 같은 도에 백 년 사이에 공과 같은 선진(先進) 숙유(宿儒)가 있었는데도 스스로 생각건대 비루하고 용렬하여 늙고 병들어 거의 죽을 때가 되어서야 이에 그 가장(家狀)을 읽어 볼 수 있었으니, 아, 또한 늦었도다! 한스럽게도, 능히 90리 길[三舍]을 지팡이 짚고 가서 당일에 거니시던 곳에서 그 정채(精采)를 상상하며 만분의 일의 뜻이나마 갚을 수 없었으니, 삼가 이 글을 써서 감회를 기록한다. 謹按。公以穎異秀爽之姿。生於詩禮法拂之家。幼以孝悌著於鄕里。長以文學聞於朋友。其擩染薰蒸。趨向指引。固有以異於人者。至中身。進而摳衣於性潭宋先生之門。次第講討。次第證正。聚而辨之。會而通之。眼目益以開廣。衿懷益以展拓。遠近遊從。一時物論。無不藉藉稱道而爲之推重焉。其所積蓄。足以及物。其所抱負。足以需世矣。而乃能懷之卷之於南荒海曲之間。不知鍾鼎之爲富。軒冕之爲勞。而優哉遊哉。修焉息焉。其偉韻遐躅。豈常調人所可涯涘哉。嗚乎。同省百年間。有先進宿儒如公之人。而自惟陋劣。至於老病垂死之日。乃得其家狀而讀之。吁亦晩矣。恨未能策藜三舍。以想象其精采於當日杖屨之地。以酬萬一之意。謹書此而志感焉。 시례(詩禮) 가정교육 또는 가학(家學)을 뜻한다. 공자의 아들 이(鯉)가 뜰에서 공자 앞을 빠른 걸음으로 지나다가 공자로부터 시(詩)와 예(禮)를 배웠느냐는 질문을 받고 또 그것을 왜 배워야 하는지에 대해 듣고서 물러나와 시와 예를 배웠던 일에서 유래한 말이다. 《論語 季氏》 법필(法拂) 법가필사(法家拂士)의 준말로, 법가는 대대로 법도 있는 집안을 말하고, 필사는 필사(弼士)와 같은 말로 보필하는 현신(賢臣)을 말한다. 《맹자》 〈고자 하(告子下)〉에 "내부에는 법가와 필사가 없고, 외부에는 적국과 외환이 없는 경우는, 나라가 항상 멸망한다.[入則無法家拂士, 出則無敵國外患者, 國恒亡.]"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성담(性潭) 송 선생(宋先生) 송환기(宋煥箕, 1728~1807)를 말한다. 자는 자동(子東), 호는 심재(心齋)·성담, 본관은 은진(恩津)이다, 송시열의 5대손이자 송인상(宋寅相)의 아들이다. 심성논변에서는 한원진(韓元震)을 지지하였다. 저서로는 《성담집》이 있다.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배워서……분변하며 원문의 '취이변지(聚而辨之)를 풀이한 말인데, 《주역》 〈건괘(乾卦) 문언(文言) 구이(九二)〉 에 "군자는 배워서 모으고 물어서 분변하며……이는 임금의 덕을 갖춘 사람이다.[君子學以聚之, 問以辨之,……君德也.]"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종정(鍾鼎) 종명정식(鐘鳴鼎食)으로, 사람이 많아서 식사 때가 되면 종을 쳐서 여러 사람들에게 식사 시간을 알리고 솥을 벌여 놓고 회식을 한다는 뜻이다. 부귀한 집안의 호사스러운 생활을 뜻한다. 왕발(王勃)의 〈등왕각서(滕王閣序)〉에 "마을에 들어찬 집들은 종을 치고 솥을 늘어놓고 먹는 집들이다.[閭閻撲地, 鍾鳴鼎食之家.]"라고 하였다. 《古文眞寶 後集 卷2》 헌면(軒冕) 고관(高官)의 거마(車馬)와 면복(冕服)을 가리키는 것으로, 전하여 높은 관작(官爵)을 말한다. 《장자》 〈선성(繕性)〉에 "헌면이 내 몸에 있는 것은 내가 타고난 성명이 아니요, 외물이 우연히 내 몸에 와서 붙어 있는 것일 뿐이다.[軒冕在身, 非性命也, 物之儻來寄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영화 저본에는 '노(勞)'자로 되어 있으나 '영(榮)' 자의 잘못으로 보고 수정 번역하였다. 장수유식(藏修遊息) 《예기》 〈학기(學記)〉에 "군자는 학문에 대해서 학교에 들어가서는 학업을 닦고, 학교에서 물러나 쉴 때는 기예를 즐긴다.[君子之於學也, 藏焉修焉息焉游焉.]"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장(藏)은 늘 학문에 대한 생각을 품고 있는 것이요, 수(修)는 방치하지 않고 늘 익히는 것이다. 식(息)은 피곤하여 쉬며 함양하는 것이고, 유(遊)는 한가하게 노닐며 함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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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효자 경수 사실〉 뒤에 적다 題曺孝子【暻洙】事實後 내 일찍이 당송(唐宋)의 고사를 보고 진신 사대부 가운데 한휴(韓休)26)·유공작(柳公綽)27)·노종도(魯宗道)28)·여공저(呂公著)29) 같은 제공들의 한 시대 가법의 아름다움을 감탄하면서 이것은 천지가 문명(文明)하고 국가가 승평(昇平)한 때라고 여겼다. 선비가 이미 삼대(三代) 이전에 태어나지 못하였다면 내려와 이 시대에 태어났다면 또한 다행이라 할 것이다. 시사(時事)가 변화함에 이르러 온 천하가 장사치여서 상인[棘人]의 소필(素韠)30)과 도인(都人)의 주직(綢直)31)을 지금은 볼 수가 없네. 당일의 기상을 뒤미처 상상해보면 사무친 그리움과 함께 돌아가고픈 소원이 어떠하겠는가.지금 고흥(高興)의 조 효자(曺孝子) 전 승지 경수(暻洙)의 지극한 행실과 아름다운 절개는 실로 사람들에게 회자된 지 오래다. 그 훌륭한 숙인(淑人) 신씨(申氏)의 규문에서의 거동과 법도는 지극히 순수하고 갖추어져 남편을 받듦에 아름다움이 짝한다고 일컬어져 부부가 함께 정려와 포상을 받았다. 네 명의 아우 전수(典洙)·인수(仁洙)·문수(文洙)·기수(錤洙) 또한 모두 독서하고 몸을 단속하여 우애가 매우 지극하여 함께 은혜로운 명을 받았다.오호라! 당시 승평의 기상이 진신 사대부들 사이에 있었던 것이 오늘에 이르러 이에 시골 사우의 집안에서 보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비록 음도(陰道)가 극성하게 된 날에 있더라도 이른바 "양(陽)은 다 없어질 이치가 없다."32)라는 것은 참으로 빈 말이 아닐 것이다. 옷깃을 여미던 끝에 삼가 권말(卷末)을 더럽혀 앙모하던 만분의 일의 뜻을 깃들인다. 余嘗觀唐宋間故事。歎搢紳士大夫如韓休柳公綽魯宗道呂公著諸公一時家法之美。以爲此是天地文明。國家昇平之會也。士旣不得生於三代之上。則降而生於此時。亦云幸矣。至於時移事變。大宇商商。棘人之素韠。都人之綢直。今不可得以見矣。追想當日之氣像。其菀結之懷。同歸之願。爲何如哉。今高興之曺孝子前承旨暻洙。至行偉節。固膾炙於人久矣。其齊淑人申氏。閫儀閨範。極爲純備。奉承君子。見稱匹休。夫婦俱蒙旌閭褒爵。有弟四人典洙仁洙文洙錤洙。亦皆讀書勅躬。友弟深至。倂蒙恩命。嗚乎。當日昇平之象。在於搢紳士大夫之間者。誰知至於今日而乃是得見於鄕曲士友之家乎。雖在陰道極盛之之日。而所謂陽無可盡之理者。信非虛語矣。歛衽之餘。謹塵穢卷末。以寓慕仰萬一之意云爾。 한휴(韓休) 673~740. 당(唐)나라 경조(京兆) 장안(長安) 사람으로, 자는 양사(良士)이며, 좌보궐(左補闕), 예부 시랑(禮部侍郞), 지제고(知制誥), 상서우승(尙書右丞)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시정(時政)의 잘잘못에 대해 모두 극간하였기 때문에 현종(玄宗)이 조금이라도 잘못이 있게 되면 번번이 좌우에게 "한휴가 아느냐?"라고 물었는데, 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휴의 상소가 올라왔다고 한다. 《新唐書 卷126 韓休列傳》 유공작(柳公綽) 765~832. 당나라 경조 화원(京兆華原) 사람으로, 자는 관(寬) 또는 기지(起之)이다. 문종(文宗) 때의 명신으로 자는 관(寬)이며 뒤에 이부 상서(吏部尙書)에 이르렀다. 가법이 엄숙하여 《소학》 〈선행(善行)〉에 그 내용이 실려 있다. 노종도(魯宗道) 966~1029. 송(宋)나라 명신으로 자는 관지(貫之), 호는 퇴사암(退思巖), 시호는 숙간(肅簡)이다. 벼슬은 해염령(海鹽令), 참지정사(參知政事) 등을 역임하였다. 특히 해염령 때 고을 동남항(東南港)이 인몰된 것을 다시 준설하여 백성들은 그 항구를 노공포(魯公浦)라 불렀다. 《宋史 卷286 魯宗道列傳》 여공저(呂公著) 1018~1089. 송나라의 명재상으로 자는 회숙(晦叔)이다. 구양수(歐陽脩)와 함께 강학하였으며, 진사에 합격한 후 영주 통판이 되고 여러 차례 어사중승(禦史中丞)을 지냈다. 왕안석(王安石)이 제정한 청묘법(靑苗法)을 반대하였으며, 철종(哲宗) 때 상서우복야(尙書右僕射)에 제수되자 사마광(司馬光)과 함께 신법(新法) 폐지를 주장하다가 당쟁에 말려들어 추방되었다. 신국공(申國公)에 봉해졌으며, 시호는 정헌(正獻)이다. 소필(素鞸) 하얀 무릎 가리개로 상주의 상복이다. 도인(都人)의 주직(綢直) 도성 사람들의 성대했던 의용(儀容)을 말한다. 《시경》 〈소아(小雅) 도인사(都人士)〉에 "저 서울 양반은 대립에 치포관(緇布冠) 쓰셨고, 저 군자의 따님은 머리숱 많고 예뻤는데, 지금은 볼 수 없는지라 내 마음 기쁘지를 않네.[彼都人士, 臺笠緇撮, 彼君子女, 綢直如髮, 我不見兮, 我心不說.]"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양(陽)은……없다 《주역》 〈박괘(剝卦)〉의 정전(程傳)에 나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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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암 김공 가장〉 뒤에 쓰다 書槐庵金公家狀後 조씨(晁氏)는 이도(以道)의 거듭한 경계를 따르고,33) 이씨(李氏)는 종악(宗諤)이 제정한 것34)을 좇아서 따라 지켜 잃지 않아 가법의 아름다움으로 중국 사대부의 모범이 되었다. 지금 회촌(會村)의 김씨(金氏) 또한 돈목(敦睦) 근칙(謹勅)으로 우리 고을의 명가가 되니, 대개 그 선대부 괴암공(槐庵公)이 창시한 덕분이다.내가 약관의 나이 때 통가(通家)35)의 자제로 책상 아래에서 공에게 인사드리고 자못 끊임없이 왕래하면서 그 몸은 후중하고 모습은 예스러우며 기는 온화하고 말씀은 엄격한 것을 보고 덕 있는 장자(長者)인 줄 알았다. 집안에서 존유(尊幼) 대소(大小)로부터 아래로 비복(婢僕)에 이르기까지 모두 온화하고 즐거워 한마디도 패려(悖戾)한 소리를 듣지 못하였다. 공이 돌아가시자 자손들이 계승하여 감히 실추시키지 않은 것이 지금 30여 년이 되었다.공은 일찍이 스스로 경계하여 충신(忠信)을 입심(立心)의 근본으로 삼고 청근(淸謹)을 지신(持身)의 근본으로 삼고 근검(勤儉)을 어가(禦家)의 근본으로 삼았으니, 이것은 그 규구(規矩)와 승척(繩尺)을 이미 고인의 법문(法文)에서 얻은 것이다. 버려진 것을 지켜 주인에게 돌려주고 그 상을 받지 않은 것과 노인을 불쌍히 여겨 부역을 면제해 주고 그 사례를 받지 않은 것에 이르러서는 모두 덕이 두터운 것이어서 남들이 능하기 어려운 것이다. 안으로는 가정에서 효도하고 종족에 화목하며, 밖으로는 벗들에게 미덥고 고을에 화합하여, 돌아가신 뒤에도 자손들은 그 가르침을 준수하고 사림들은 그 풍성을 칭송하는 것은 누구인들 스스로를 경계하는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겠는가.오호라! 소년(小年)이 대년(大年)에 미치지 못하고 후진(後進)이 선진(先進)만 못하니, 이것은 옛 사람이 이미 탄식을 일으킨 곳인데, 더구나 시대의 상황이 날로 타락하고 선비들의 추향이 날로 잘못되는데 선진과 대년의 질실(質實) 충각(忠慤)하고 박아(博雅) 장후(長厚)한 기풍을 볼 수 없단 말인가? 나는 공의 손자 장석(章錫)36)이 지은 가장(家狀) 한 편에서 광감(曠感)37)의 생각을 감당할 수 없어 삼가 몇 줄의 거친 말로 써서 기록한다. 晁氏因以道之申戒。李氏由宗諤之所制。遵守不失。以家法之美。爲中州士大夫之楷範。今會村金氏。亦以敦睦謹勅。爲吾鄕名家。蓋其先大父槐庵公創始之力也。余在弱冠。以通家子弟。拜公於床下。頗源源焉。見其體厚貌古。氣和言厲。可知爲有德長者。閤門之內。尊幼大小。下至婢僕。皆溫溫怡怡。未聞一言有悖戾之聲。公歿而子孫承襲之。不敢廢墜。爲三十餘年于玆矣。公嘗自警。以忠信爲立心之本。淸謹爲持身之本。勤儉爲禦家之本。此其規矩繩尺。已得古人之法文。至於守遺還主而不受其賞。悶老除役而不納其謝。皆德之厚而人所難能也。內而孝於家庭。睦於宗族。外而信於朋友。和於鄕井。以至身沒而子孫遵其敎。士林誦其風者。夫孰非自自警中出來耶。嗚乎。小年不及大年。後進不如先進。此是古人已所興歎處。況今時象日汚。士趨日非。而先進大年。質實忠懿。博雅長厚之風。不可得以見之耶。余於公之孫章錫所撰家狀一編。不勝曠感之思。謹以數行蕪辭。書以識之。 조씨(晁氏)는……따르고 《소학》 〈선행(善行)〉에, 사마온공(司馬溫公)이 말하기를 " 근세 고가에 오직 조씨가 이도가 자제를 거듭 경계함으로 인하여 모두 법도가 있다."라고 한 것을 말한다. 이도(以道)는 조열지(晁說之, 1059~1129)의 자이다. 자호(自號)를 경우생(景迂生)이라 하여 흔히 경우(景迂) 선생이라 불렸다. 저서로는 《유언(儒言)》, 《조씨객어(晁氏客語》 등이 있다. 종악(宗諤)이 제정한 것 송나라 재상 이방(李昉, 925~996)의 집안은 자손이 몇 대를 거치면서 가족이 200여 명이 되었는데도 함께 기거하고 함께 식사하며 대가족 생활을 하였다. 전장과 상점 운영에서 나온 수입과 관직에 있는 자의 봉록을 모두 한 창고에 모아서는 식구 수대로 날마다 양식을 공급하였으며, 혼례와 장례에 소요되는 경비에도 모두 액수를 정하였다. 집안의 자제들에게 이러한 일을 분담하여 맡게 하였는데, 이러한 가정 경제의 제도는 이 재상의 아들인 한림학사 이종악(李宗諤, 964~1012)이 만든 것이라고 한다. 《小學 善行》 통가(通家) 대대로 사귀어온 집안이나 인친(姻親)의 사이를 말한다. 장석(章錫) 김장석(金章錫, 1853~?)을 말한다. 자는 보현(甫賢), 호는 하산(鰕山), 본관은 청도(淸道)이다. 광감(曠感) '광세지감(曠世之感)'의 준말로, 오래 지난 세월에 대한 감회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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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천에 제하다 2수 題藥泉【二首】 이 샘물을 마시는 자로 하여금 能令飮此者온갖 병이 스스로 물러나게 하면서 百病自退移사람 마음에 거짓이 많은 병은 人心多病詐어째서 함께 치료하지 않는가 胡不幷與治이는 약천에게 묻는 것이다.마음병은 의리로 나을 수 있고 心病義可愈몸의 병은 약으로 고쳐야 하네 身疾藥當移세상 사람들을 내가 어찌하겠는가 世人吾其柰자기 마음은 결국 스스로 다스려야지 自心竟自治이는 약천이 대답한 것이다. 能令飮此者, 百病自退移.人心多病詐, 胡不幷與治?【問藥泉】心病義可愈, 身疾藥當移.世人吾其柰? 自心竟自治.【藥泉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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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에서 돌아오던 날 등 적삼269)을 잃어버렸기에 사람을 보내 찾아오게 하고 시를 지어 사익에게 부치다 自壽洞歸日 忘却藤衫 遣人覓來 賦寄士益 옛날 운산에서 이별할 때는 古昔雲山別벽라의270)에 눈물이 흥건하였는데 碧蘿衣上淚自淫오늘 영산에서 이별할 때는 今日瀛山別어찌하여 백등 적삼을 잃어버렸는가 胡然忘却白藤衫운산의 이별은 서로 출처가 달라 雲山之別異出處친함 가운데 소원함 생겨 슬픔 금치 못하겠더니 親中有疏悲不禁영산의 이별은 아주 친하여 瀛山之別親無間결국 둘 다 형체 잊는 데271) 이르렀지 乃至乎兩忘形형체 잊는 것이야 그래도 가능하지만 形且忘猶可能등삼은 잃어버리고 싶지 않아도 어찌 가능하랴 衫欲不忘豈可能형체는 잊었지만 어찌 뜻을 기름이 없겠는가272) 形雖忘豈無養등삼은 잃어버렸지만 또한 찾을 수 있네 衫雖遺亦宜推아 지금 잃어버린 등삼과 옛날 눈물 젖은 옷 噫今之遺衫古淚衣일은 비록 다르지만 지극한 뜻은 똑같다오 事則雖殊至意同歸 古昔雲山別, 碧蘿衣上淚自淫.今日瀛山別, 胡然忘却白藤衫?雲山之別異出處, 親中有疏悲不禁.瀛山之別親無間, 乃至乎兩忘形.形且忘猶可能, 衫欲不忘豈可能?形雖忘豈無養? 衫雖遺亦宜推.噫今之遺衫古淚衣, 事則雖殊至意同歸. 등(藤) 적삼 껍질을 제거한 등나무 줄기로 만든 적삼을 말한다. 벽라의(碧蘿衣) 푸른 송라(松蘿) 덩굴로 만든 옷으로, 은사(隱士)들이 입는 옷을 말한다. 형체 잊는 데 외형에 얽매이지 않고 의기(意氣)가 투합(投合)한 절친한 친구 사이를 말한다. 형체는……없겠는가 《장자(莊子)》 〈양왕(讓王)〉에 "뜻을 기르는 자는 형체를 잊고, 형체를 기르는 자는 이욕을 잊으며, 도를 터득한 자는 마음을 잊는다.[養志者忘形, 養形者忘利, 致道者忘心矣.]"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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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사람의 입추 시276)에 차운하다 2수 次唐人立秋詩【二首】 세월은 잠시도 쉬지 않고 흘러 居諸不暫息문득 다시 초가을이 되었네 忽復遇秋初더위 기세 꺾인 줄 이미 알았고 已覺炎威薄나무 그림자 성긴 걸 점차 보겠네 漸看樹影疏교외에서 맞이하는 옛 의례277)는 상상만 하지만 郊迎儀想舊가래나무 이는 풍속278)은 남아 있으리 楸戴俗應餘내 나이는 회갑이 되었고 賤齒甲周匝천시는 반년이 지났구나 天時年半除세상 소란해 백성들 새처럼 달아나고 世騷民竄鳥날이 가물어 연못에는 물고기 없네 日旱澤無魚온갖 감정 이는 가을바람 속에 百感西風裏송옥처럼 시를 읊는다오279) 賦詩宋玉如가을 기운이 오늘 아침 불어오니 秋氣今朝立은자는 비로소 사물에 느낌 이네 幽人感物初못의 연꽃은 활짝 피고 渠荷花歷亂뜰의 나뭇잎은 무성하네 庭樹葉扶疏세찬 바람이 분 뒤라 농사는 망쳤고 農病大風後극심한 가뭄 뒤라 백성들 고생하네 民勞亢旱餘사시는 분분하게 계절이 바뀌고 四時紛代謝만사는 성하기도 쇠하기도 하네 萬事互乘除국면의 판세는 방휼의 형세280)라 局勢相蚌鷸백성들 모두 어육이 되었어라 生靈盡肉魚수많은 뜻이 있는 선비들 幾多有志士앞으로 마음이 어떠할까 從此意何如 居諸不暫息, 忽復遇秋初.已覺炎威薄, 漸看樹影疏.郊迎儀想舊, 楸戴俗應餘.賤齒甲周匝, 天時年半除.世騷民竄鳥, 日旱澤無魚.百感西風裏, 賦詩宋玉如.秋氣今朝立, 幽人感物初.渠荷花歷亂, 庭樹葉扶疏.農病大風後, 民勞亢旱餘.四時紛代謝, 萬事互乘除.局勢相蚌鷸, 生靈盡肉魚.幾多有志士, 從此意何如? 당(唐)나라……시 사공서(司空曙)의 〈입추일(立秋日)〉을 가리킨다. 《全唐詩 卷292》 교외에서……의례 《예기(禮記)》〈월령(月令)〉에 "입추(立秋)에 천자가 친히 삼공(三公)ㆍ구경(九卿)ㆍ제후(諸侯)ㆍ대부(大夫)를 거느리고 서쪽 교외에서 가을을 맞이한다." 하였다. 가래나무 이는 풍속 《몽화록(夢華錄)》에 "경사에서는 입추에 남녀가 모두 가래나무 잎을 따서 머리에 이고 와서 파는 사람이 저자에 가득하였다.[京師立秋, 男女皆翦楸葉, 戴之賣者盈市.]"라고 하였다. 《淵鑑類函 卷15 立秋二》 온갖……읊는다오 전국 시대 초(楚)나라 시인 송옥(宋玉)의 〈구변(九辯)〉 첫머리에 "슬프다, 가을 기운이여! 쓸쓸하게 초목은 바람에 흔들려 땅에 지고 쇠한 모습으로 바뀌었도다.[悲哉秋之爲氣也, 蕭瑟兮草木搖落而變衰.]"라는 구절이 있어서 이렇게 말한 것이다. 《楚辭 卷6》 방휼(蚌鷸)의 형세 큰 조개가 껍데기를 벌리고 있을 제 지나가던 황새가 쪼아 먹으려다가 조개껍데기가 닫히는 바람에 도리어 주둥이를 물리어 서로 마주 버티다가 어부에게 모두 잡혔다는 것으로, 둘이 서로 다투다가 함께 패하여 제삼자에게 이득을 취하게 하는 것을 비유한다. 《戰國策 燕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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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범회50)의 《이택회첩》 뒤에 쓰다 書權範晦麗澤會帖後 두 연못이 서로 걸려 상호간에 적셔주고, 끊임없이 이어져 다하지 않아 붕우 간에 상관(相觀)51)하고, 상호간에 규계하고 경계하여 순순하게 진보가 있으니, 이것이 성인께서 특별히 이 뜻을 《주역》에 드러내어 만세에 벗을 취하는 자의 경계로 삼은 까닭이다. 그러나 나의 입장에서 남에게 미칠 수 있는 선이 없고 남의 입장에서 나에게 미칠 수 있는 선이 없다면 이것은 마른 연못이다. 마른 연못이 서로 걸려 있다면 말할 만한 어떤 유익함이 있겠는가. 반드시 모름지기 먼저 그 우물을 파되 구인(九仞)의 수고로움52)을 꺼리지 않아 샘물이 솟아남에 이른다면 이어서 서로 도움을 주는 것이 날로 더욱 깊게 고여 멀리로는 바다에 도달할 수 있고 넓게는 만물을 윤택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니, 원컨대 이택회(麗澤會)의 제군들은 힘쓸지어다! 兩澤相麗。互相滋潤。源源不竭。朋友相觀。互相規警。循循有進。此聖人所以特著此義於大易。以爲萬世取友者之戒也。然在我無善可以及人。在人無善可以及我。則是渴澤也。以渴澤相麗。有何資益之可言哉。必須先掘其井。不憚九仞之勞。以至於及其泉焉。則所以因仍相資者。日益渟滀。遠可以達海。廣可以澤物。願麗澤諸君勉乎哉。 권범회(權範晦) 권춘식(權春植, 1879~?)을 말한다. 자는 범회,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정의림의 문인이다. 상관(相觀) 친구 간에 서로 좋은 점을 보고 본받는 것을 말한다. 《예기》 〈학기(學記)〉에 "대학의 교육 방법은 좋지 않은 생각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을 예라고 하고, 적절한 시기에 가르치는 것을 시라 하고, 감당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가르치는 것을 손이라 하고, 서로 좋은 점을 보고 배우도록 하는 것을 마라고 한다.[大學之法, 禁於未發之謂豫, 當其可之謂時, 不陵節而施之謂孫, 相觀而善之謂摩.]"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구인(九仞)의 수고로움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함이 있는 자는 비유하면 우물을 파는 것과 같으니, 우물을 아홉 길을 팠더라도 샘물에 미치지 못하면 오히려 우물을 버리는 꼴이 되는 것이다.[有爲者辟若掘井, 掘井九軔而不及泉, 猶爲棄井也.]"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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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박씨 변정세계서〉 뒤에 쓰다 書密陽朴氏辨正世系序後 무릇 윤상(倫常)은 지극히 무겁고 세리(勢利)는 지극히 가볍다. 사해(四海)의 귀함을 들어 천륜을 바꾸는 것은 할 수 없고, 한 가지 일의 그릇된 것을 행하여 천하를 얻더라도 하지 않으니, 사람이 사람 되고 금수와 다른 까닭이 바로 이곳에 있다. 시대가 내려오고 풍속이 떨어져 윤리가 밝지 못하고 인욕이 멋대로 행해져 이익을 사모하여 선조를 잊고 세력을 좆아 어버이를 배신하는 자가 흘러넘치니, 이루 탄식을 감당하겠는가.밀양 박씨(密陽朴氏) 일파가 능주(綾州)에 살면서 잠영(簪纓)과 시례(詩禮)로 호남에 알려진 것이 오래되었다. 다만 그 중엽의 명휘(名諱)가 영체(零替)되고 실전(失傳)되었는데 중간에 다른 계보를 인용하여 그 결함을 보충하였다. 대개 그 가문의 한 사람이 세계의 중요함을 강구하지 않고 갑자기 중간에 끊어진 것을 흠으로 여겼기 때문이었다.나의 벗 사문(斯文) 박인진(朴麟鎭)38)은 독행(篤行)의 선비이다. 이것으로 항상 분탄(憤歎)하게 생각하였는데, 하루는 선계는 지극히 엄하여 옮기거나 바꿀 수 없다는 뜻으로 서술(序述)하여 글을 지어 종족과 향당에 두루 고하여 빨리 되돌렸다. 무릇 효자가 어버이 명에 대해 실로 소홀하거나 어기는 것은 불가하다. 그러나 불의를 당하여서는 애써 간하고 힘껏 다투어 회초리를 맞아 피가 흐르더라도 그만 두지 않으니, 그 까닭이 무엇인가? 대개 이치를 따르는 것은 어버이를 따른 것이고 하늘을 공경하는 것은 어버이를 공경하는 것이다. 더구나 이 일은 선대 항렬의 당일 본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면 빨리 바른 데로 돌려야 하니, 어찌 자손이 뜻을 계승하는 효가 아니겠는가.내가 보건대, 사람들의 집안에 종종 이러한 일이 있지만 편안히 일상으로 여기고 뻔뻔하게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사람은 실로 족히 말할 것이 없다. 혹 그 의가 아닌 줄 알면서도 어려움을 두려워하여 눌러 참고는 감히 손을 대지 못하는 자도 또한 있을 것이다. 오직 사문 박인진은 안으로 마음을 속이지 않고 밖으로 남을 속이지 않아 붕우들과 강론하고 종족과 도모하여 천리의 바름에 합할 것을 생각하여 인심의 편안함에 나아간 사람이니, 가위 명백(明白) 탄이(坦夷)하고 뇌락(磊落) 정대(正大)하다고 하겠다.오호라! 이것은 백성이 살아가는 떳떳한 윤리 가운데 제일의 의체(義諦)이다. 나는 원컨대 표시하여 드러내어 한 시대를 밝게 깨우쳐 천부(淺夫)와 소인(宵人)들로 하여금 모두 알 수 있게 한다면 말속의 병폐가 거의 나음이 있을 것이다.나는 서로 아는 처지에서 찬탄(贊歎)하는 사사로운 마음을 감당하지 못하여 분수에 넘는 것을 잊어버리고 위하여 이와 같이 말한다. 夫倫常至重。勢利至輕。擧四海之貴而易天倫不得。行一事之非而得天下不爲。人之所以爲人而異於禽獸者。正在此處。世降俗下。倫理不明。人欲橫流。慕利而忘先。趨勢而背親者。滔滔焉。可勝歎哉。密陽朴氏一派。居於綾州。以簪纓詩禮。聞於湖省者久矣。但其中葉名諱。零替失傳。而間引他系。以補其缺。蓋其門內一人。未講世系之重。而遽以中絶爲欠故也。余友朴斯文麟鎭。篤行士也。以此常懷憤歎。一日以其先系至嚴不可移易之意。序述爲文。遍告于宗族鄕黨而亟反之。夫孝子之於親命。固不可毫忽違逆。然當不義則苦諫力爭。至於被撻流血而不已。其故何哉。蓋順理所以順親也。敬天所以敬親也。況此事非出於先行當日之本心。則亟爲反正。豈非子孫繼志之孝乎。余見人家種種有此。而恬以爲常。靦不知愧者。固不足道。或有知其非義。而畏難隱忍。不敢下手者。亦有矣。惟斯文。內不欺心。外不誣人。講之於朋友。謀之於宗族。思所以合乎天理之正。而卽乎人心之安者。可謂明白坦夷。磊落正大矣。嗚乎。此是民生彛倫第一義諦也。吾願表以出之。曉喩一世。使淺夫宵人。皆得以知之。則末俗之膏肓。庶其有瘳乎。忝在相知。不勝贊歎之私。忘其僭越。而爲之說如是云爾。 사문(斯文) 박인진(朴麟鎭) 1846∼1895. 자는 학중(學中), 호는 우인당(愚忍堂),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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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와 박공 가장〉 뒤에 적다 題悔窩朴公家狀後 고인의 말에 이르기를 "안으로 어진 부형이 없고 밖으로 엄한 사우가 없으면서 능히 성취함이 있는 자는 적다."라고 하였는데,42) 지금 회와(悔窩) 박공(朴公)의 유장(遺狀)을 읽고 가만히 부합하는 점이 있음을 알았다. 공의 조카 인진(麟鎭)이 일찍 고아가 되어 집안일을 맡게 되자, 공이 집안일 때문에 학문에 방해가 있을까 염려하여 경계하기를 "사람이 배우지 않으면 금수에 가까운데, 더구나 부모의 바람과 가문의 책임이 너의 몸에 있으니, 그 중요함이 어찌 다만 집안일과 견주겠느냐?"라고 하고, 이에 대소가의 일을 몸소 스스로 주관하여 관리하고 그로 하여금 안심하고 오로지 힘써 어진 사우들과 종유하게 하였다. 여러 해가 쌓여 그 학업을 성취하여 마침내 사문(斯文)의 순유(醇儒)와 오당(吾黨)의 위인(偉人)이 되었다. 그러나 회와공의 훈도한 힘이 아니었다면 그 수립한 것이 어찌 능히 이럴 수 있었겠는가. 이 한 가지 일에서 공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나는 그의 조카와 더불어 종유하며 강마한 지 10여 년 동안에 책상 아래에서 공에게 인사 드릴 수 있었던 것이 또한 자못 자주 있었다. 가만히 보건대 공의 형체와 모습이 풍후(豊厚)하고 의용(儀容)이 장중(莊重)하여 남과 더불어 말하거나 웃는 것이 적었고, 일에 임하여 표시 나게 드러내는 것이 적었으니, 아름답게 옛 선진의 기풍이 있었다.오호라! 공과 조카가 차례로 돌아가신 지 장차 지금 20년이 되어가니, 모시고 따르던 나는 외롭고 쓸쓸하여 누구를 의지하겠는가. 다만 그 아들 규진(奎鎭)43)과 종손(從孫) 준기(準基)44)가 경전에 힘쓰고 몸을 신칙하여 바야흐로 진보가 끝이 없을 것이라, 또한 공께서 가르친 방법이 돌아가신 뒤에도 실추되지 않음을 볼 수 있으니, 아, 공경할 만하다. 삼가 가장 뒤에 기록하여 내가 뒤미처 생각하는 만분의 일의 정을 깃들인다. 古人有言曰。內無賢父兄。外無嚴師友。而能有成者少矣。今讀悔窩朴公遺狀。竊有槪焉。公從子麟鎭。早孤當室。公慮其以家務而妨於學問。戒之曰。人而不學。近於禽獸。況父母之望。門戶之責。在於汝躬者。其重豈特家務之比哉。於是大少家務。躬自幹理。使之安心專力。遊從賢士友。積歲積年。以就其業。卒爲斯文之醇儒。吾黨之偉人。然非悔窩公訓迪之力。其所樹立。安能乃爾。於此一事而可以見公之爲公也。余與其從子。遊從講磨十餘年。得以拜公於床下者。亦頗頻頻矣。竊見公體相豊厚。儀容莊重。與人寡言笑。臨事少表襮。偉然有古先進之風。嗚乎。公與從子次第就幽。將二十稔于玆。陪從餘生。踽凉奚依。但其遺胤奎鎭從孫準基。劬經勅躬。方進未已。亦可以見公之敎法。不墜於身後。吁可敬也。謹識狀後。以寓區區追想萬一之情云爾。 고인의……하였는데 《소학》 〈선행(善行)〉에 나오는 여희철(呂希哲, 1039~1116)의 말이다. 아들 규진(奎鎭):박규진(朴奎鎭, 1858~1934)을 말한다. 자는 대규(大圭),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종손(從孫) 준기(準基) 박준기(朴準基, 1864~1940)를 말한다. 자는 경립景立), 호는 겸산(謙山),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저서로는 《겸산유고(謙山遺稿)》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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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졸이 예전 지은 시에 차운하다 2수 次百拙舊作【二首】 상전벽해 속의 변고 몇 년이나 지났나 滄桑變劫幾經秋산하를 보기 싫어 누대에 오르지 않았네 厭見河山不上樓조부 자식 손자의 몸은 수치 씻기 어렵고 祖子孫身難洗恥신라 고려 대한 시대에는 뿌리 깊은 근심 있네 羅麗韓代有根愁삼천리 초토에는 백성들 남아 있지 않고 三千焦土無黎首재앙으로 인한 곤경에 백발이 되려 하네 百六難關欲白頭박상에 이르지 않았다면 어찌 회복이 있으랴290) 未到剝床焉有復우렛소리 나는 곳291)에서 훌륭한 공 거두리라 雷聲發處妙功收상장의 옥사292)는 옛날 어느 때이던가 上章屋社昔何時저들이 정한 처음 계획은 멸종시키는 것이었지 彼定初籌滅種期삼십여 년의 세월 동안 오히려 명맥을 이어왔지만 三紀猶能寬命脈결국에는 양식과 숟가락 빼앗아도 괴이할 것 없네 畢場無怪奪粮匙동포가 어찌 차마 응견293)이 되었나 同胞胡忍爲鷹犬살점이 잘려 나가 상해를 입었으니 가련하구나 割肉堪憐作瘇痍하늘이 벌줄 날 만을 기다리노니 待到天公行罰日그들의 죄악이 가득 찼음을 그들도 알리라 貫盈渠罪亦渠知 滄桑變劫幾經秋, 厭見河山不上樓.祖子孫身難洗恥, 羅麗韓代有根愁.三千焦土無黎首, 百六難關欲白頭.未到剝床焉有復? 雷聲發處妙功收.上章屋社昔何時? 彼定初籌滅種期.三紀猶能寬命脈, 畢場無怪奪粮匙.同胞胡忍爲鷹犬, 割肉堪憐作瘇痍.待到天公行罰日, 貫盈渠罪亦渠知. 박상(剝床)에……있으랴 재앙의 때가 왔으므로 순환의 원리에 따라 다시 회복되리라는 말이다. 박상은 〈박괘(剝卦) 육사(六四)〉에 "상을 깎아 살갗에 이름이니, 흉하다.[剝床以膚, 凶.]"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재앙이 아주 가까워짐을 말한 것이다. 박괘(剝卦)는 음(陰)이 성하고 양(陽)이 다하는 괘인데, 다시 복괘(復卦)로 순환된다. 우렛소리 나는 곳 복괘(復卦)를 말한다. 《주역》 〈복괘(復卦)〉상전(象傳)에 "우레가 땅속에 있는 것이 복이니, 선왕이 이를 보고서 동지에 관문을 닫아 장사꾼과 여행자가 다니지 못하고, 임금은 사방을 살피지 않는다.[雷在地中復. 先王以, 至日閉關, 商旅不行, 后不省方.]"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상장(上章)의 옥사(屋社) 상장은 고대의 간지로 경(庚)이고, 옥사는 멸망한 나라의 사직을 뜻한다. 여기서는 경술년(1910) 일본에 대한제국의 국권을 빼앗긴 일을 가리킨다. 응견(鷹犬) 사냥하는 매와 개로, 남의 앞잡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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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망실248)의 식물을 읊다. 10절 詠不忘室植物 十絶 뒤늦게 시드는 나무 없지 않지만 匪乏後凋樹너와 함께 이웃이 되었구나 與之接爲隣어찌 손때 묻은 것만 하겠는가마는 豈如經手澤심신을 하나로 합할 수 있어 좋구나 好作一心身-소나무[松]-이것 없으면 사람을 속되게 하니249) 無此令人俗옛 현인은 이미 먼저 내 마음 알았네 古賢獲已先창 앞에서 날마다 마주하고 있으니 窓前日相對어찌 평안하다는 소식 기다릴 것 있으랴 何待平安傳-대나무[竹]-푸른 수염 늙은이250)와 백중간이니 伯仲蒼髥老깨끗한 향기가 엇비슷하도다 潔香反覆勝대와 함께 삼익우(三益友)이니251) 益三竹與幷벗의 덕이 크게 차이 나지 않네 友德不逕庭-삼나무[杉]-예로부터 사람의 사랑을 받았으니 從古爲人愛응당 칠절252)에 뛰어났기 때문이리라 應緣擅七絶나는 하나도 능한 것 없으니 一能於我無이 나무만 못함이 부끄럽구나 堪愧不如物-감나무[柹]-마음속에 생각하는 이는 누구인가 所懷伊何人천추의 도이 늙은이253)라네 千秋陶李翁유허가 마을 골짝에 전해 오니 遺墟傳里谷억지로라도 누추한 거처에서 함께 하고 싶네 强欲陋居同-밤나무[栗]-과일이 떨어졌다 말하지 말라 莫說果爲下신선 세계가 일찍이 여기에 있었다오 仙源曾在斯어떻게 하면 땅에 가득 심어서 安能種滿地곧 무릉254)처럼 되길 기약할까 便與武陵期-복숭아[桃]-붉고 둥근 모습 사랑스러우니 紫圓形可愛달고 신 맛이 되려 신선하네 甛酢味還新오릉중자255)를 비웃지 말라 莫笑於陵子지금 시대에 또한 짝할 이 드무니 今時亦罕倫-오얏[李]-궐리에 있는 선니의 행단(杏壇)256)을 尼壇在闕里어떻게 본받을 수 있겠는가마는 胡爾效嚬爲이 나무 진실로 싫지 않으니 此固未爲嫌성신을 오히려 기약할 수 있다네 聖神尙可期-살구나무[杏]-꽃이 화사하여 《시경》에 실렸으니 韡韡登周詩천륜으로 만세를 밝혔다네257) 天倫明萬世아 지금 형제들은 嗟哉今弟兄이 나무 대하매 어찌 부끄러움 없으랴 對此寧無愧-아가위나무[棣]-호상258)에는 사람 자취 멀고 湖上人蹤遠도산259)에는 시의 운치 끊겼네 陶山詩韻絶나는 황량하고 적막한 동산에서 而余荒寂園인물이 없음을 함께 탄식하네 俱歎病人物-매화[梅]- 匪乏後凋樹, 與之接爲隣.豈如經手澤? 好作一心身.【松】無此令人俗, 古賢獲已先.窓前日相對, 何待平安傳?【竹】伯仲蒼髥老, 潔香反覆勝.益三竹與幷, 友德不逕庭.【杉】從古爲人愛, 應緣擅七絶.一能於我無, 堪愧不如物.【柹】所懷伊何人? 千秋陶李翁.遺墟傳里谷, 强欲陋居同.【栗】莫說果爲下, 仙源曾在斯.安能種滿地, 便與武陵期?【桃】紫圓形可愛, 甛酢味還新.莫笑於陵子, 今時亦罕倫.【李】尼壇在闕里, 胡爾效嚬爲?此固未爲嫌, 聖神尙可期.【杏】韡韡登周詩, 天倫明萬世.嗟哉今弟兄, 對此寧無愧?【棣】湖上人蹤遠, 陶山詩韻絶.而余荒寂園, 俱歎病人物.【梅】 불망실(不忘室) 김택술이 1944년에 지은 토실(土室) 이름이다. 《맹자》 〈등문공 하(滕文公下)〉에 "지사는 자신의 시신이 구렁에 버려질 것을 잊지 아니하고, 용사는 자신의 머리를 잃을 것을 잊지 않는다.[志士不忘在溝壑, 勇士不忘喪其元.]"라고 한 구절을 차용하였는데, 난세(亂世)에 출처(出處)와 거취(去就)를 절도에 맞게 하려는 뜻을 담고 있다. 《後滄集 卷21 不忘室記》 이것……하니 소식(蘇軾)의 〈어잠승녹균헌(於潛僧綠筠軒)〉에 "고기가 없으면 사람을 수척하게 하지만, 대가 없으면 사람을 속되게 한다.[無肉令人瘦, 無竹令人俗.]"라고 한 구절에서 온 말이다. 《蘇東坡詩集 卷9》 푸른 수염 늙은이 소나무의 별칭이다. 창염수(蒼髥叟)라고도 한다. 대와 함께 삼익우(三益友)이니 소식(蘇軾)의 〈유무창한계서산사(遊武昌寒溪西山寺)〉에 "풍천은 양부악이요, 송죽은 삼익우라네.[風泉兩部樂, 松竹三益友.]"라고 하였는데, 여기서는 소나무와 삼나무를 동일시하여 말하였다. 참고로 주희(朱熹)는 부친의 이름인 '송(宋)'을 휘하여 '삼(杉)'으로 표기하였다. 삼익우는 세 가지 유익한 벗을 말한다. 칠절(七絶) 감의 일곱 가지 좋은 점으로, 첫째 수명이 긴 것, 둘째 잎이 풍성하여 그늘이 짙은 것, 셋째 새의 둥우리가 없는 것, 넷째 좀이나 벌레가 없는 것, 다섯째 단풍이 들었을 때의 아름다운 잎, 여섯째 먹음직스러운 고운 열매, 일곱째 낙엽(落葉)이 매우 비대(肥大)하여 글씨를 쓸 수 있는 점이다. 《本草 卷30 果部 柿》 도이(陶李) 늙은이 도암(陶菴) 이재(李縡)를 말하는 듯하다. 무릉(武陵) 무릉도원(武陵桃源)을 가리킨다. 오릉중자(於陵仲子) 전국 시대 제(齊) 나라 오릉에 살았던 진중자(陳仲子)로, 아주 청렴결백하였다. 형이 많은 녹봉을 받는 것을 의롭지 않다고 여겨, 초(楚) 나라의 오릉에 가서 은거하며 가난하게 살았는데, 당시 그는 3일 동안이나 굶주려 우물가로 기어가서 굼벵이가 반 넘게 파먹은 오얏[李]을 삼키고 나서야 귀에 소리가 들리고 눈이 보였다고 한다. 그에 대해 맹자는 "나는 제나라 인물 중에서 중자(仲子)를 으뜸으로 꼽는다. 하지만 중자를 어찌 청렴하다 할 수 있는가. 중자가 견지하는 지조를 유감없이 지키자면 물만 먹고 사는 지렁이가 되어야 할 것이다.[於齊國之士, 吾必以仲子爲巨擘焉. 雖然, 仲子惡能廉? 充仲子之操, 則蚓而後可者也.]"라고 하였다. 《孟子 滕文公下》 궐리(闕里)에……행단(杏壇) 궐리는 공자가 태어난 마을 이름이다. 선니(宣尼)는 공자를 말하고, 행단(杏壇)은 공자가 제자들과 강학(講學)하던 곳으로, 단을 쌓고 그 둘레에 살구나무를 심었기 때문에 행단이라고 하였다. 꽃이……밝혔다네 《시경》 〈소아(小雅) 상체(常棣)〉에 "아가위의 꽃이여, 꽃받침이 화사하지 않는가. 무릇 지금 사람들은, 형제만 한 이가 없느니라.[常棣之華, 鄂不韡韡? 凡今之人, 莫如兄弟.]"라고 한 구절을 원용한 것으로, 형제간의 우애를 비유하는 말이다. 호상(湖上)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 1711~1781) 살았던 안동(安東) 소호리(蘇湖里)를 가리키는 듯하다. 도산(陶山)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이 만년에 강학했던 도산서원(陶山書院)을 가리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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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의 '탄식이 있어' 시에 차운하다 次尤菴有歎詩 세월이 유수 같다고 한스러워할 필요 없지만 不須歲月恨如流봄과 가을 헛되이 보내 스스로 후회되네 自悔枉過春與秋앎은 진실하지 못했으니 어떻게 지혜를 얻겠는가 識未眞時焉得智행동은 실천하지 못했으니 문득 수심 생기누나 行違實處輒生愁삼강의 체용은 공자(孔子)가 증자(曾子)에게 전수하였고282) 三綱體用曾傳孔일경의 시종은 부옹(涪翁)이 회암(晦庵)에게 열어주었네283) 一敬初終晦闡涪노년에 공을 이루는 것은 비록 늦었지만 楡暮收功雖晩矣부지런히 하면 일거284)의 무리는 면할 수 있으리 孜孜庶免逸居儔 不須歲月恨如流, 自悔枉過春與秋.識未眞時焉得智? 行違實處輒生愁.三綱體用曾傳孔, 一敬初終晦闡涪.楡暮收功雖晩矣, 孜孜庶免逸居儔. 삼강(三綱)의……전수하였고 삼강은 증자가 지은 《대학》의 세 가지 강령인 명명덕(明明德), 신민(新民), 지어지선(止於至善)을 가리키는데, 이것을 체(體)와 용(用)으로 구분하면 명명덕은 체이고 신민은 용이며 지어지선은 전체 대용(全體大用)이다. 증자는 공자의 도통(道統)을 전해 받았다. 일경(一敬)의……열어주었네 부옹(涪翁)은 부주(涪州)에 유배된 일이 있었던 이천(伊川) 정이(程頤)의 별칭이다. 이천이 부주로 귀양 가면서 강을 건너는데 풍랑이 심하여 배가 거의 전복되려 하니, 배 안의 사람들이 모두 부르짖으며 울었으나, 이천만은 유독 옷깃을 단정히 하고 편안히 앉아서 평상시와 같았다. 언덕에 정박하자 초부(樵夫)가 묻기를, "배가 위태로울 때에 그대만이 유독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으니, 사(舍)해서 이와 같은 것인가, 달(達)해서 이와 같은 것인가?" 하였다. 이천이 대답하기를, "마음에 성경(誠敬)을 지녔기 때문이다." 하자, 늙은이가 "마음에 성경을 지닌 것도 진실로 좋은 일이나 무심(無心)함만 못하다." 하였다. 《伊洛淵源錄 卷4》 이천의 사상을 이어 받은 회암(晦庵) 주희(朱熹)는 "경은 성학의 시종을 이루는 것이다.[敬者, 聖學之所以成始成終者也.]"라고 하여 경의 일관성을 말하였다. 《朱子語類 卷12》 일거(逸居) 일거무교(逸居無敎)와 같은 말로, 가르침을 받는 일이 없이 편안히 지내기만 해서 인간의 도리를 포기하고 금수(禽獸)와 가깝게 되는 것을 말한다. 《맹자》 〈등문공 상(滕文公上)〉에 "인간에게는 도리가 있는데,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입으면서 편안히 지내기만 하고 가르침을 받는 일이 없으면 금수와 가깝게 되고 말 것이다.[人之有道也, 飽食煖衣, 逸居而無敎, 則近於禽獸.]"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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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회옹전〉 뒤에 쓰다 書晩悔翁傳後 지난 계유년(1873, 고종10)에 호부 시랑(戶部侍郞) 면암 선생(勉庵先生) 최공(崔公)이 언사(言事)로 죄를 얻어 장차 제주도[耽羅]로 귀양 가게 되었다. 사림들은 길에 나와 전송하고 부녀자와 어린 아이들은 거리에서 모여 구경하였으며 심지어 주막이나 시장 점포의 백정이나 술파는 아낙도 이마에 손을 얹고 바라보지 않음이 없어 노참(路站)은 시장처럼 북적였고 술상은 비가 내리는 듯 침울하여, 물리쳐도 떠나지 않고 금지해도 중지하지 않았으니, 지나가는 천리 길에 이어져 끊어지지 않았다. 나루터에 도착하자 전송하는 사람들은 돌아가고 모였던 사람들은 흩어져 감히 함께 배를 타는 사람이 없었고, 가시울타리 속에 갇혀 있어 또 달려가 안부를 묻는 사람도 없었다. 대개 제주도는 푸른 바다 만 리 가운데 있어 악어 같은 물결과 고래 같은 파도가 거세고 험하여 조금이라도 역풍이 불면 목숨을 보존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배를 저어 왕래한 것은 예로부터 매우 드물었다.오직 고 만회 처사(晩悔處士) 최승현(崔勝鉉) 공은 선생과 일면식의 친분도 없는데 힘을 팔아 양식을 모아 위험을 무릅쓰고 나아갔다. 선생이 제주도에서 풀려나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또 흑산도(黑山島)로 귀양 갔는데, 흑산도는 제주도에 비하여 더욱 험하고 멀었지만 공이 또 갔다. 옛날 채명원(蔡明遠)은 안 노공(顔魯公)이 조정에 있었던 날에 안부를 물은 적이 없었지만 강회(江淮)에서 굶주릴 때 쌀을 운반하여 대접하였고,45) 장의보(張毅甫)는 문문산(文文山)이 재상이 되었을 때 나아가지 않았으나 연옥(燕獄)에 구금되었을 때 몸을 맡겨 따랐으니,46) 지금 공의 일은 이것과 유사하지 않은가. 이것은 모두 고금의 영렬한 대장부이니, 풍치를 상상함에 나도 모르게 감탄이 일어난다. 탁계순(卓契順)이 해남(海南)으로 한 번의 행차를 한 것47)도 오히려 족히 백세토록 불후하였으니, 더구나 공이 힘썼던 것은 한 번에 그치지 않았고 그 마음을 먹고 의에 나아간 것은 또 탁계순이 견줄 것이 아닐 것이다.공은 우리 고을 사람이다. 이 때 나는 묵계(墨溪)의 집에서 어버이 병을 시중들고 있어 선생이 도내를 지난다고 들었으나 문을 나가 전송하지 못하였고, 같은 고을에 있으면서 또 선생을 본 사람을 만나려고 하였으나 능히 보지 못하였으니, 푸른 바다를 건넜던 사람과 비교하면 어찌 다만 황곡(黃鵠)과 양충(壤虫)48)의 차이일 뿐이겠는가. 그 뒤에 공이 나를 한 번 방문하였고 내가 공을 한 번 방문하였지만 모두 만나지 못하였는데 공은 이미 돌아가셨다. 풍의(風義)를 뒤미처 생각하니 단지 슬픔과 후회만 간절하네.신묘년(1891, 고종28) 봄에 공의 아들 영호(永皓) 씨가 천태 우사(天台寓舍)로 나를 방문하여 집안에 보관하던 글을 소매에서 꺼내어 보여주고 인하여 한마디 말을 청하였다. 나는 매몰된 천한 자취로 실로 감히 받들어 응할 수 없지만 다만 평소 향하여 우러르던 처지에 이미 얼굴을 보지 못하였으니, 혹 이것으로 인하여 어둡고 어두운 가운데에서 유향(遺響)을 의탁할 수 있을 것인가.아! 인간에게 도리가 있는데 어진 이를 좋아하는 것이 그 본령이 되니, 진실로 이 마음이 없다면 백 가지 행실 만 가지 선을 어디에 붙이겠는가. 공을 알려고 하는 사람은 단지 바다를 건넜던 한 가지 절개에서 다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가 평생 의를 행하였던 상세함 같은 것은 면암 선생이 이미 기록하였으니,49) 족히 천고에 불후할 공안(公案)이 될 것이다. 往在癸酉。戶部侍郞勉庵先生崔公。言事得罪。將貶謫于耽羅也。士林出送於道。婦孺聚觀於巷。以至店幕市肆屠夫沽媼。無不加額瞻望。路站如市。酒盤如雨。揮之而不去。禁之而不止。所經千里。接屬無間。及到津頭。送者返。聚者散。無敢與之同舟者。在棘中。又寂然奔訊之人。蓋耽羅在滄溟萬里之中。鰐浪鯨波。瀰漫洶涌。少有逆風。性命難保。是以舟楫往來。自古絶罕。惟故晩悔處士崔公勝鉉。與先生無一面之分。而賣力聚粮。冒危凌險而赴之。先生自耽羅解歸。未幾。又謫于黑山。黑山視耽羅。尤爲險遠。而公又往焉。昔蔡明遠無問於顔魯公立朝之日。而在淮飢餓。運米而餉之。張毅甫不就於文文山作相之時。而被燕獄拘幽。委身而隨之。今公之事。不其類此乎。此皆古今烈烈大丈夫。想像風致。不覺興歎。卓契順辦海南一番之行。而猶足不朽於百世。況公之所辦。非止一番。而其設心就義。又非契順比耶。公吾鄕人也。是時余侍親疾于墨溪村舍。聞先生過省內。而未得出門相送。在同鄕。又欲見見先生之人而不能得。視諸越涉滄溟者。奚但黃鵠壤虫之分耶。其後公一過余。余一過公。皆未遇而公已千古矣。追念風義。只切悲悔。歲辛卯春。公胤子永皓甫。訪余於天台寓舍。袖示家藏文字。因請一言。余以埋沒賤迹。固不敢承膺。但平日向仰之地。旣違顔範。則或可因此而托遺響於冥冥耶。噫。人之有道。好賢爲其本領。苟無此心。百行萬善。何所附着也。欲知公者。只於涉海一節。可以槪矣。若其平生行義之詳。勉庵先生已記之。足可爲千古不朽之公案。 채명원(蔡明遠)은……대접하였고 채명원은 파양(鄱陽)의 교위(校尉)고, 안 노공(顔魯公)은 노군공(魯郡公)에 봉(封)해진 당(唐)나라 안진경(顔眞卿, 709~784)을 말한다. 이 사실은 안진경이 51세 때에 채명원에게 보답의 의미로 써 준 글씨 〈채명원파양첩(蔡明遠鄱陽帖)〉에 보인다. 《顔魯公集 年譜》 장의보(張毅甫)는……따랐으니 문문산(文文山)은 남송(南宋)의 문천상(文天祥, 1236~1282)을 말한다. 장의보가 문천상의 해골을 업고 길주(吉州)로 돌아가서 장례를 치렀던 것을 말한다. 탁계순(卓契順)이……것 소식(蘇軾)이 유배를 당했을 때 찾아 주었던 일을 말한다. 《동파전집(東坡全集)》 권23 〈차운정혜흠장로견기(次韻定慧欽長老見寄)〉의 서(序)에 "소주(蘇州) 정혜사 장로 수흠이 그 문도 탁계순을 혜주(惠州)로 보내 나의 안부를 물었다."라고 하였다. 황곡(黃鵠)과 양충(壤蟲) 남만 못한 데 대한 탄식을 말한다. 전국(戰國) 시대의 연(燕)나라 사람 노오(魯敖)가 유람하기를 좋아하여, 천하에 자기보다 많은 곳을 유람한 자가 없다고 자부하였는데, 북쪽의 몽궐산(蒙闕山)에 올라 한 도사(道士)를 만나서 천상천하(天上天下)를 다 돌아다녔다는 말을 듣고는 "이 도사는 한 번의 날갯짓에 천 리를 나는 황곡(黃鵠)과 같고, 나는 땅을 기어가는 작은 벌레[壤蟲]와 같다."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淮南子 道應訓》 면암 선생이 이미 기록하였으니 《면암집(勉菴集)》권40〈최만회옹전(崔晩悔翁傳)〉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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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함53)의 《암간우록》 뒤에 쓰다 題黃景涵巖間偶錄後 하나의 태극인데 나누어 말하면 건순(健順)이고, 또 나누어 말하면 원형이정(元亨利貞)이다. 단지 이 네 가지는 또 무한한 조리를 함축하고 있으니, 모름지기 기(氣)나 물(物)을 말하지 않아도 이(理)의 체단(體段)은 본래 이와 같다. 그러나 선각자들이 이(理)는 같고 기(氣)는 다른 곳을 말함에 한결같지 않으니, 그 까닭은 무엇인가?무릇 이른바 이(理)가 같다는 것은 구분이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저곳이 곧 원형이정이고 이곳이 곧 원형이정이니, 성색 모상(聲色貌象)과 운운 직직(云云職職)54)이 하나라도 이 네 가지의 밖을 벗어나는 것이 없으니, 이것이 이른바 이(理)가 같다는 것이다. 물에 비유하자면, 씻고 빨며, 삶고 마심에 그 용도는 같지 않지만 그것이 물이라는 것은 동일한 것과 같다. 물은 실로 동일한데 씻고 빨고 삶고 마실 수 있는 구분은 이미 물에 모두 갖추어져 있으니, 이른바 일(一)이라는 것은 어찌 일찍이 구분이 없는 일(一)이겠는가.그대의 의론은 대체로 모두 좋으나 다만 다섯 째 단락에서 소는 밭 갈고[耕] 말은 달리며[馳] 솔개는 날고[飛] 물고기는 연못에서 뛰는[躍] 다름을 말하면서 "이미 형기(形氣)가 같지 않음이 있으면 갖춘 바의 이(理) 또한 다르다."라고 하였으니, 이 말은 어찌 형기(形氣)에 떨어진 뒤에서 분수(分殊)를 구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이것은 견해가 이르지 못한 것이 아니라 단지 억양의 사이에 말투가 그러했기 때문일 뿐이네.여덟째 단락에 또 '기질성지기(氣質性之氣)'의 기(氣)를 '기질(氣質)'이라고만 말할 때의 기(氣) 자와 같지 않다고 하였으니, 이 말 또한 의아스럽네. 기질은 단지 기질이니, 어찌 일찍이 두 단계의 기질이 있었던가. 이 말은 선사(先師)55)께서 발명하신 것이 상세하니, 바라건대 취하여 보는 것이 어떠하겠는가?또 입론(立論)은 이치를 발명하는 것일 뿐이니, 세상을 나무라는 불평한 뜻을 그 사이에 두어서는 불가하니, 바라건대 헤아려 주시겠는가? 一太極矣。而分以言之。則健順。又分以言之。則元亨利貞。只此四者。又且涵蓄無限條理在。不須說氣說物。而理之體段。本自如此。然而先覺說理同氣異處不一。其故何耶。夫所謂理同者。非無分之謂也。那底便是箇元亨利貞。這底便是箇元亨利貞。聲色貌象。云云職職。無一出乎此四者之外。此所謂理同也。比如水。漑之濯之。烹之飮之。其用不同。而其爲水則一也。水固一也。而可漑可濯可烹可飮之分。已悉具於水。則所謂一者。何嘗是無分之一耶。賢論大槪皆好。但於五段。言耕馳飛躍之異。而曰旣有形氣之不同。則所具之理亦異。此語豈不是求分殊於隨形氣之後者耶。然非是見不到。只爲抑揚之間。語勢然耳。八段又以氣質性之氣氣。與單言氣質字不同。此言亦可訝。氣質只是氣質。何嘗有兩段氣質耶。此言先師發明詳悉。幸取看之如何。且立論貴乎發明理致而已。不可有譏世不平之意於其間。惟諒之否。 황경함(黃景涵) 황철원(黃澈源, 1878~1932)을 말한다. 자는 경함, 호는 은구재(隱求齋)·중헌(重軒), 본관은 장수(長水)이다.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기운동에서 태어났다. 정의림의 문인이다. 저서로는 《중헌집》이 있다. 운운직직(云云職職) 운운과 직직은 모두 만물이 무성하게 자라는 모습을 형용하는 말이다. 《노자》에 "무릇 만물은 무성하다가도 각각 그 뿌리에 복귀한다.[夫物芸芸, 各復歸其根.]"라고 하였고, 《장자》 〈지락(至樂)〉에 "만물이 번성하나, 모두 무위로부터 자라는 것이다.[萬物職職, 皆從無爲殖.]"라고 하였다. 저본의 '운운(云云)'은 '운운(芸芸)'의 오류로 보인다. 선사(先師) 정의림의 스승 기정진(奇正鎭, 1798~1879)을 말한다. 초명은 금사(金賜), 자는 대중(大中), 호는 노사(蘆沙), 본관은 행주(幸州)이다. 서경덕ㆍ이황ㆍ이이ㆍ임성주ㆍ이진상과 함께 성리학의 6대가(六大家)로 꼽힌다. 저서로는 《노사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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