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8년 화양간소(華陽刊所)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사회-조직/운영-통문 戊戌三月十五日 宋奎洙 등 6명 門中 戊戌三月十五日 1898 宋奎洙 門中 충청북도 부안 석동 전주최씨 류절재 부안 연곡리 유절재 1898년 3월에 화양간소에 있는 도유사 송규수 등 유생 6명이 성담 송환기의 유집을 간행하는데 재정적인 지원을 요청하면서 전국의 각 문중에 보낸 통문. 1898년 3월에 화양간소(華陽刊所)에 있는 도유사(都有司) 송규수(宋奎洙)와 문의(文義), 대구(大邱), 초계(草溪), 진산(珍山), 청주(/淸州) 출신의 유생 등 6명이 각 문중에 보낸 통문(通文)으로, 성담(性潭) 송환기(宋煥箕, 1728-1807)의 유집(遺集)을 간행하는데 필요한 재정적인 지원을 요청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성담이야말로 백세(百世)의 종사(宗師)인데도 타계 후 백년이 다 되도록 그 유집이 간행되지 못한 것은 조가(朝家)의 흠전(欠典)일 뿐만 아니라, 사림의 불행이라고 하였다. 작년 봄에 영 호남의 사림들이 발의하여 본가와 후학들이 협력하여 몇 권을 상재(上梓)하였으나 그 일이 워낙 방대하여 작업이 중지될 형편에 놓이게 되었다. 이에 간소에서는 전국에 있는 문중에 통문을 보내 재정적인 지원을 요청하기에 이르게 된 것이다. 송환기는 송시열(宋時烈)의 5대손으로, 자는 자동(子東), 호는 심재(心齋), 성담(性潭) 등이다. 1766년(영조 42) 진사시에 합격하고 1772년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순조(純祖)의 조정에서 형조참의, 예조참판, 공조판서, 의정부 우찬성 등을 지냈다. 시호는 문경(文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