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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경계하다 自警 내 태어나 삼십 세가 된 지금 (我生三十歲)무슨 일을 하였는가 (問爲何事哉)농사짓는 일 익히지 않았고 (不治農圃業)창검술도 배우지 않았네 (不學弓劍才)다만 문장 짓는 일로 (只以文字事)세월을 보내고 또 보냈네 (經歲又經年)집안에는 권면하는 부형이 있고 (內有父兄責)밖에는 어진 사우가 있으니 (外有師友賢)성취한 것 얕지 않아야 하건만 (所就宜不淺)다시 어찌 이리 어리석은가 (復何倥倥爲)자신을 돌아보며48) 스스로 점검하니 (回光自點檢)그 까닭을 알기 어렵지 않네 (其故不難知)공명은 이룰 수 있다고 하면서 (功名謂可辦)고관대작 사이에서 분주하였네 (奔走槐棘間)이리저리 다니며 쓸데없는 망상을 하며49) (營營算甕轉)몇 번이나 스스로 덧없는 꿈50)을 꾸었던가 (幾自槐安還)아름다운 산수 간에 차지하려 하여 (擬占好山水)지팡이 짚고 다니며 잠시도 쉬지 않았네 (笻鞋不暫休)사람을 만나면 풍토에 대해서 묻고 (逢人問風土)나그네 마주하면 산수를 말하였네 (對客談峙流)때때로 꽃 아래에서 술을 마시며 (時將花下酒)마음껏 취해 봄 세 달을 보냈네 (荒醉度三春)가련한 것은 황량한 누대의 저녁에 (可憐荒臺夕)끊이지 않고 자주 꿈을 꿨던 것일세51) (未斷夢魂頻)장기바둑 두며 노닐던 곳 (博奕遊戱地)옛일을 생각하니 문득 생생히 떠오르네 (舊念輒復全)남령초52)의 냄새를 몹시도 좋아하여 (偏嗜南靈臭)연기를 들이마시지 않은 때가 없었네 (無時不吸煙)강력한 유혹에 빈틈이 없으니 (牽連無暇隙)온갖 방법으로 끊으려 애썼네 (攻之千百端)거울에 때가 끼면 비추지 못하고 (垢鑑索照未)의원에게 숨기면 병을 치료하기 어렵네 (諱醫療疾難)어찌 두렵게 생각하여 (寧不惕然念)낱낱이 자신에게 돌이키지 않으랴 (一一反諸身)공명과 산수를 좋아하는 뜻 (功名山水志)맞닥뜨리는 때에 온전히 맡기네 (全付所遇辰)주색 같은 온갖 욕망은 (酒色各般欲)통렬히 끊어서 싹트지 못하게 하고 (痛剗訾不萌)가난한 상황에서도 학문을 연마한다면 (修息蓬蓽裏)은연중에 날로 성취함이 있으리 (闇然日就程)경을 주장함은 지도리와 굴대처럼 중심을 잡고 (主敬如樞軸)뜻을 세움은 등뼈처럼 곧게 하며 (立志是脊樑)길을 나서선 주저하지 말아야 하니 (登程莫躊躇)이렇게 미혹됨을 경계하는 방법을 드러내네 (著此警迷方) 我生三十歲。問爲何事㢤。不治農圃業。不學弓劒才。只以文字事。經歲又經年。內有父兄責。外有師友賢。所就宜不淺。復何倥倥爲。回光自點檢。其故不難知。功名謂可辨。奔走槐棘間。營營算甕轉。幾自槐安還。擬占好山水。笻鞋不暫休。逢人問風土。對客談峙流。時將花下酒。荒醉度三春。可憐荒臺夕。未斷夢魂頻。博奕遊戱地。舊念輒復全。偏嗜南靈臭。無時不吸烟。牽連無暇隙。攻之千百端。垢鑑索照未。諱醫療疾難。寧不惕然念。一一反諸身。功名山水志。全付所遇辰。酒色各般欲。痛剗訾不萌。修息蓬蓽裏。闇然日就程。主敬如樞軸。立志是脊樑。登程莫躕躇。著此警迷方。 자신을 돌아보며 회광(回光)은 회광반조(回光反照)의 줄임 말로, 불가(佛家)에서는 자기의 본분을 돌아보아 수양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여기서는 자신을 회고하며 반성하는 뜻으로 쓰였다. 쓸데없는 망상을 하며 옛 속설(俗說)에 항아리 하나밖에 없는 사람이 그 항아리 속에 들어가 자다가, 항아리를 살 때 약간 남기고 팔 때 약간 남기면 그 이문이 갑절이 된다고 여겨 마침내 기뻐서 일어나 춤을 추다가 자기도 모르게 그 항아리를 깨뜨리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古今事文類聚 前集 卷36』 덧없는 꿈 당나라 이공좌(李公佐)의 『남가태수전(南柯太守傳)』에, 순우분(淳于棼)이 괴목(槐木) 아래서 술에 취해 잠들었는데, 30년간 남가 태수로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꿈을 꾸다가 깨어 보니 괴목 아래에 큰 개미굴이 하나 있었다는 고사가 있다. 가련한……것일세 이 내용은 두보(杜甫)의 「영회고적[詠懷古跡]」 두 번째 수의 "강산의 고택에는 부질없이 문장만 남았으니, 황폐한 양대(陽臺)에 운우지정 꿈엔들 생각하랴[江山故宅空文藻, 雲雨荒臺豈夢思.]"라는 구절을 원용한 것이다. 남령초(南靈草) 담배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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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에서 창수한 시100)【병서와 10수의 시가 있다】 瑞石唱酬韻【幷序十首】 정해년(1887, 고종24) 10월 16일. 이튿날 내가 벽지(碧池)에서 단양(丹陽)에 들렀다가 생질 이기호(李紀鎬)와 함께 칠송(七松)101)의 안국정(安國禎)102) 집에 도착하여 서석산(瑞石山 무등산(無等山))으로 가려 하였는데, 문봉환(文鳳煥), 양규환(梁奎煥)103), 김규원(金奎源), 이병섭(李秉燮)104), 이태환(李泰煥), 이인환(李仁煥), 문송규(文頌奎)105), 오장섭(吳長燮), 오문섭(吳文變)이 먼저 와서 자리에 앉아 있었다. 마침내 출발하여 2, 3리에 이르자 이승우(李承愚)106)가 뒤늦게 따라왔다. 화순(和順)의 유촌점(柳村店)에 이르러 투숙하였다. 그 다음 날 빙치(氷峙)를 넘어 수촌점(水村店)에 도착하였다. 문용환(文龍煥), 김경원(金景源)이 어제 약속을 어기고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었으니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뻤다. 오직 김장석(金章錫)만은 끝내 오지 않았으니, 너무나 이 유람의 흠결이 된다. 몇 리를 가니 창주동(滄洲洞)이 있었다. 사방에는 산이 우뚝 솟았고 붉게 물든 단풍이 앞뒤에서 비췄으니, 참으로 비단에 수를 놓은 것 같은 강산이었다. 이평중(李平中)을 방문하였다. 오후에 이평중이 길을 안내하여 마을 뒤로 오르니 석굴(石窟)이 있었는데 너비는 수백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정도였고, 내부에는 작은 굴 하나가 있었는데 맑은 샘물이 솟았다. 굴 비탈을 오른쪽으로 돌아 오르자 노은곡(老隱谷)이 있었으니, 별천지였다. 토질이 비옥하고 물이 달며 몇 이랑의 밭이 있었는데 사람으로 하여금 집을 짓고 머물러 살고 싶은 마음이 있게 하였다.이평중과 작별하고 영신(永新)에 도착하여 이문방 언씨(李文方彥氏)의 집에 유숙하였다. 다음 날 아침 주인이 도시락을 싸 주었으니, 이는 산에 올라 요기하라는 계책이었다. 조치량(曺治良)이 길을 안내하려는 뜻이 있었기에 또한 함께하였다. 도원동(桃源洞)에 이르러 술 한 병을 사서 조치량에게 차게 하고 올라 농암(籠巖)에 이르러 잠시 쉬었다가 광석대(廣石臺)에 이르렀다. 광석대는 산의 중턱에 있었으니, 대개 옛날의 절터이다. 안에는 석조(石竈)가 있었고, 석조 위에는 넓은 바위가 있었는데, 평평하고 네모반듯하여 백여 명은 앉을 수 있었다. 광석대의 사면은 층층의 기이한 암석이었으니, 세로로 놓은 것은 병풍과 같고 가로로 놓은 것은 교량과 같으며, 둥근 것은 옹기와 같고 네모난 것은 새장과 같았다. 깎아지른 것은 기둥과 같고 높이 위로 솟은 것은 모자와 같았다. 우뚝 솟은 것은 지붕이 되고 쑥 들어간 것은 방이 되고 빙 두른 것은 담이 되었다. 또 절하는 것, 읍하는 것, 끓어 앉은 것, 단정히 손을 마주 잡은 것, 우두커니 선 것이 있었다. 빙 둘리서 중첩한 것은 귀신이 새긴 듯하여 기뻐 마음이 넓어졌다. 풍혈대(風穴臺)가 있었는데, 대의 가운데가 비어 소라 같았다. 안에서 돌아서 위로 나가 풍혈대 위에 앉아서 아래를 보니 곧장 수백 척 낭떠러지인지라 오금이 저려 오래 머물 수 없었다. 내려와서 광석대에 앉아서 둘러 앉아 술을 마시고 시 한 수를 읊었으니, 그 참다운 생각과 뛰어난 흥취는 완연히 안기(安期)107)와 적송(赤松)108)이 푸른 구름과 붉은 노을 사이에서 한가롭게 거닐며 거스르지 않는 것과 같았다.도시락으로 요기하고서 산을 따라 오른쪽으로 가서 석문(石門)에 이르렀다. 석문 안에는 석실(石室)이 있었는데, 붉게 물든 넝쿨이 석실 밖을 칭칭 감고 있어 마치 한 송이 꽃과 같았다. 석실의 서쪽에는 모두 돌이 수북이 쌓여 있었고, 돌 사이에 난 오솔길은 물을 건너는 곳과 같아서 걸을 때마다 발밑에는 모두 평평한 돌이었다. 돌길을 따라서 가니 옛 절터가 있었다. 큰 돌을 쌓아 계단을 만들었는데, 사람의 힘으로 만든 것이 아닌 듯하였다. 담장을 두른 것은 여전히 그대로 있었지만 이끼와 돌이 오래되어 인적을 찾을 수 없었다. 배회하며 시간을 보내노라니 슬픔이 문득 밀려왔다.아, 천지가 개벽한 뒤로 이미 이 산이 있었다. 그간에 필시 도인과 승려가 있어 계획하여 만들고 배치하여 한 시대에 가장 성대하게 스스로 뽐내었을 텐데 안개처럼 걷히고 구름처럼 사라졌으니, 또 여기에서 몇 번이나 상전벽해를 겪었는지 모른다. 1리쯤 갔을 때 돌길이 갑자기 끊어졌기에 나무꾼에게 물어 목맥적(木麥磧)에 이르니, 목맥적 가운데 수많은 돌이 우뚝 솟아 부처와 같았다. 절정에 오르니 천황봉(天皇峯), 지황봉(地皇峯)이 있었다. 시야가 시원하여 호남의 산들이 무덤처럼 즐비하였다. 동쪽으로 방장산(方丈山)에 이르고 북쪽으로 계룡산(鷄龍山)에 이르며, 서남쪽은 모두 대해이니, 마치 붉은 구름이 하늘에 잇닿아 있는 듯하였다. 이 산은 바로 한 고을의 종산(宗山)인데도 시야가 먼 것이 오히려 이와 같은데, 하물며 한 나라에서 높고 천하에서 높은 산이겠는가. 사람의 식견의 고하와 덕성의 후박은 이것을 보면 그 차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북쪽 산기슭으로 내려와 입석(立石)에 이르렀다. 돌은 모두 사각, 육각, 혹은 팔각, 십이각으로 수평을 맞춘 듯 평평하고 먹줄을 놓은 듯 곧으며, 서 있는 것이 기둥과 같고, 포갠 것이 삼[麻]과 같다. 기둥 위에 기둥을 얹고 삼 위에 삼을 연결하여 높은 것은 천 길이나 되고 낮은 것도 백 척을 밑돌지 않았다. 혹 두른 것은 병풍과 같고, 혹 늘어선 것은 목책과 같으며, 층이 진 것은 계단과 같으니, 참으로 천하의 절묘한 곳이다. 대저 이 산에는 가시나무가 자라지 않고, 뱀이 나오지 않는다. 돌은 뾰족하거나 기울어지지 않았고, 봉우리는 치우치거나 기울어지지 않았다. 무릇 천지 사이의 정기가 모인 것이 대체로 모두 이와 같다. 입석을 지나 조치량과 작별하고 내려와서 징심사(澄心寺)에 투숙하였다. 다음 날 사찰을 두루 관람하여 반나절의 유람을 하였다. 화순(和順)에 이르러 관여(寬汝 이승우)를 따라 주암서실(舟巖書室)에 들어갔다.다음 날은 바로 23일이다. 교촌(校村)에 이르러 만화루(萬化樓)에 올라 조금 휴식하고, 만연사(萬淵寺)에 이르니 건물은 허물어지고 잡초는 하늘로 뻗어 있었다. 선정암(禪定菴)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한참 동안 시를 읊조렸다. 저녁에 하동서실(荷洞書室)에 이르자 조인환(曺仁煥), 조동환(曺東煥), 조병길(曺秉吉), 조영환(曺永煥)이 모두 왔기에 만나 보았다. 한밤중까지 강학하고 토론하다가 새벽녘에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능저(綾邸)에 이르러 영벽정(映碧亭)에 올랐다. 강물이 불어나 산 빛이 난간에 어른거리는 것을 보고 잠깐 읊조렸다. 음강(陰江)에 이르러 술 한 병을 사서 속금봉(束錦峯)에 오르니 지는 해가 산에 걸려 있어 풍광이 흡족하였다. 술 한 잔에 시 한 수를 읊조린 다음 기쁨을 다 누리고 떠났다.대저 서석산(瑞石山)은 실로 남쪽 지방의 명승지이고, 벗들은 모두 한 고을의 선사(善士)이다. 평소 좋은 벗과 더불어 평소 노닐기 원하던 곳을 유람하게 되었는데, 더구나 날짜도 길한 데다 절기도 좋아 하늘이 깨끗하고 공기가 맑아 행차는 지체되는 근심이 없고, 길에서는 옷을 걷고 벗는 수고로움이 없었다. 가는 길은 화락하며 나아가고 물러남에 절도가 있었다. 바쁘지만 어지럽지 않고 조화롭지만 방탕한 데로 이르지 않아 여유롭게 가고 느긋하게 왔다. 원하건대, 벗들은 돌아가 각각 힘써서 덕을 키우고 명망을 무겁게 하기를 이 산처럼 대대로 모두 우러러보게 한다면 오늘날 우리들의 유람이 길이 할 말이 있을 뿐만 아니라, 한 고을의 서석산(瑞石山)도 장차 외진 남방의 바닷가에서 더욱 빛나 응당 길이 적막하지 않을 것이다.열다섯 사람이 와서 유람 길에 오르니 (十五人來一路登)오성에 지는 해가 숲을 붉게 물들었네 (烏城落日入林蒸)나한산 앞 객점에 투숙하여 (夜投羅漢山前店)단란히 토론하며 유유히 다시 심지를 자르네 (團討悠悠更剪燈) 歲丁亥仲秋旣望。翌日予自碧池。過丹陽。與李甥紀鎬。至七松安國禎家。將爲瑞石行。文鳳煥、梁奎煥金奎源李秉燮李泰煥李仁煥文頌奎吳長燮吳文燮先來在座。遂發至二三里李承愚追躡而至。至和順柳村店討宿。厥明。踰冰峙。到水村店。文龍煥金景源昨日迂違在此等候。喜不可言。惟金章錫終不至。甚爲此遊之缺望。至數里。有滄洲洞。四山壁立。丹楓紅蘿。照映前後。眞繡錯江山也。訪李平中。午後平中引路登村。後有石窟。廣可容數百人。內有一小窟。清泉湧出。自窟磴。右旋而上。有老隱谷。盖别局也。土沃泉甘。有田數頃。令人有卜築盤旋之意。別平中。到永新宿。李丈方彥氏家。翌朝。主人裹飯菜。盖爲登山療飢計也。曺治良以指路之意。亦與之俱。至桃源洞。沽一壺酒。尾治良而登。至籠巖小憩。至廣石臺。臺在山之中腰。盖古寺遺址也。内有石竈。竈之上。有廣石。平鋪方正。可坐人百餘。臺之四面。層巖奇石。縱者如屏。横者如橋。圓者如甕。方者如籠。削而直者如柱。秀而翹者如帽。穹窿而爲屋。窈窕而爲室。周遭而爲垣。又有拜者。揖者跪者端拱者凝立者。環列重疊。神鑱鬼刻。怡然而心曠。有風穴臺。臺中有空如螺殼。內旋上出。坐於臺上。下見直數百尺。足慄不可久留。下而坐廣石臺。列坐行酒。歌詩一絶。其眞想逸趣。宛然如安期赤松逍遥唯諾於青雲紫霞之間。因畫飯療飢。乃循山而右。至石門。門之內有石室。紅蘿丹薜。縈繞其外。便若一朶花房。石室之西。皆積石漲。漫石間有徑如濟渡處。步步下足皆平石。由石徑去。得舊寺遺址。積貼巨石以爲堦級。似非人力所造。周垣繞墻。依然尙在。而苔久石古。無跡可據。徘徊移時。悲愴旋至。嗚呼自開闢以來。已有此山。其間必有仙翁釋子。經營排鋪。全盛自誇於一時。而烟消雲空。又不知其閱此幾番滄桑也。行里許。石徑忽斷。問於樵夫。至木麥磧磧中萬石。立立如佛。上絕頂。有天皇峰地皇峯。眼界豁然湖省羣山。累累如培塿。東盡方丈。北至雞龍。西南皆大海。如紅雲連天。此山是一方之宗也。而眼界之遠。猶尙如此。況高於一國高於天下者乎。人之器識高下。體德厚薄。見此可以有感矣。下北麓。至立石。石皆四隅六隅。或八隅十二隅。準以平之。繩以直之。竪之如柱。積之如麻。柱上加柱。麻頭緝麻。高者千仞。卑不下百尺。或繞如屛障。或列如樹柵。或層如階梯。信天下絕妙處也。大抵此山不生荆棘。不産蟲蛇石不尖側。峯不偏斜。凡天地間正氣所鍾。類皆如此。過立石。別治良。下宿澄心寺。翌日。歷覽寺刹以成半日之遊。至和顺隨寬汝入舟巖書室。翌日卽二十三日也。至校村登萬化樓。小憩。至萬淵寺。屋宇毀頹。草莽漲天。至禪定菴點心。暢咏久之。暮至荷洞書室。曺仁煥曺東煥曺秉吉曺永煥皆來相見。達夜講討。雞鳴而寢。翌日。至綾邸。登映碧亭。見江水漲滿。山光搖檻。風詠數餉。至陰江。沽一壺酒。上束錦峯。夕陽在山。風光宜人。一觴一詠。盡歡而去。夫瑞石固南方勝區。諸友皆一鄉善士。與平生好友。遊平生所願遊。況日吉辰良。天朗氣清。行無濡滯之患。道無揭厲之勞。行道雍容進退有節繁而不雜。和而不流。于于而去。悠悠而來。願諸友歸各勉焉。使碩德重望。如此山之世皆仰止。則不惟吾儕今日之遊。永有辭焉。一區瑞石。亦將增光於南荒海曲之間。而不應長寂寂也。十五人來一路登。烏城落日入林蒸。夜投羅漢山前店。團討悠悠更剪燈。 서석(瑞石)에서 창수한 시 작자가 1887년 8월 17일부터 23일까지 7일간 친구나 문인들과 함께 화순에서 무등산의 광석대(廣石臺), 상봉(上峯), 징심사(澄心寺)를 거쳐 다시 화순의 만연사(萬淵寺) 선정암(禪定庵), 능주의 영벽정, 동귀봉(東歸峯) 등을 유람하고 지은 시이다. 칠송(七松)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칠송리를 이른다. 안국정(安國禎) 1854~1898. 자는 순견(舜見), 호는 송하(松下)이다. 양규환(梁奎煥) 1852~?. 자는 문오(文五), 호는 석오(石塢)이다. 이병섭(李秉燮) 1853~?. 자는 봉서(鳳瑞), 호는 백헌(栢軒), 본관은 공주(公州)이다. 문송규(文頌奎) 1859~1888. 자는 계원(啓元), 호는 귀암(龜巖)이다. 이승우(李承愚) 1855~1919. 자는 관여(寬汝), 호는 난계(蘭溪)이다. 안기(安期) 동해(東海)의 봉래산(蓬萊山)에서 살았다는 전설상의 선인(仙人) 안기생(安期生)을 말한다. 한 무제(漢武帝) 때 방사(方士) 이소군(李少君)이 자기는 장생불사의 술법을 알고 있고 또 신선도 직접 만난 적이 있다고 하여 무제의 신임을 얻었는데, 그가 "제가 일찍이 해상에서 노닐 적에 안기생을 만났더니, 참외만 한 크기의 대추를 먹고 있었습니다.[臣嘗遊海上, 見安期生, 安期生食巨棗大如瓜.]"라고 하였다.『史記 封禪書』 적송(赤松) 고대 전설상의 선인(仙人)인 적송자(赤松子)를 이른다. 적송자는 장량(張良)이 유방(劉邦)을 도와 한(漢)나라를 세운 뒤에 권세에 미련을 두지 않고 그 뒤를 따랐다. 『史記 留侯世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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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공 봉남126)을 위한 만사 挽洪公鳳南 남쪽 고을에 고상한 선비가 있었으니 (南州有高士)지금 세상에 누가 짝할 수 있으랴 (今世誰與儔)두세 칸 초가집을 짓고 (草屋數三間)오십 년 동안 금서127)를 즐겼네 (琴書五十秋)우뚝이 태어나게 하신 것 응당 뜻이 있었는데 (挺生應有意)느닷없이 빼앗아간 것 또한 무슨 까닭인가 (挺生應有意)벗들은 누구를 의지하여 우러러볼까 (朋知誰賴仰)진세의 묵은 빚 끝내 갚지 못하였네 (世債未終酬)예로부터 명철한 이들 (自古諸賢哲)응당 백옥루128)에 많을 것이네 (應多白玉樓)시대를 거슬러 벗으로 삼을 만한 점 이분에게 넉넉하였으니 (尙友於斯足)아, 안타까워할 만하네 (于于可遣憂)다만 가련한 것은 이승에 (但憐暘界上)옛 벗이 몇 사람 남지 않은 것일세 (故舊幾人留)모시고 유람하던 곳을 바라보니 (回視陪遊地)침계는 부질없이 절로 흐르네 (枕溪空自流)정자129) 위의 달은 (未知亭上月)옛 교분을 기억하는가 (能記舊交否)사람은 떠났지만 그림자는 아직 남아 있으니 (人去影猶在)서로 어울려 밤마다 유람하리라 (相隨夜夜遊) 南州有高士。今世誰與儔。草屋數三間。琴書五十秋。挺生應有意。遽奪亦何由。朋知誰賴仰。世債未終酬。自古諸賢哲。應多白玉樓。尙友於斯足。于于可遣憂。但憐暘界上。故舊幾人留。回視陪遊地。枕溪空自流。未知亭上月。能記舊交否。人去影猶在。相隨夜夜遊。 홍공 봉남(洪公鳳南) 홍채주(洪埰周, 1834~1887)이다. 본관은 풍산(豐山), 자는 경좌(卿佐), 호는 봉남이다. 문집으로는 『봉남집(鳳南集)』이 있다. 금서(琴書) 거문고와 책으로 옛날 선비의 소일거리이다. 『주자대전』 권9 「무이정사잡영(武夷精舍雜詠)」중 「정사(精舍)」시에 "거문고와 책을 벗한 지 40년, 몇 번이나 산속의 객이 되었나. 하루 만에 띳 집을 지어, 어느덧 나도 천석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네.〔琴書四十年,幾作山中客?一日茅棟成,居然我泉石.〕"라고 하였다. 백옥루(白玉樓) 상제(上帝)가 사는 곳의 누대를 말한다. 『창곡집(昌谷集)』 외집(外集) 「이장길소전(李長吉小傳)」에 "어느 날 이하(李賀)가 대낮에 졸다가 갑자기 보니 붉은 관복을 입은 도인이 옥판(玉板)을 잡고 있었는데, '상제(上帝)께서 백옥루를 완성하시고, 그대를 불러 기문을 짓게 하려 한다[上帝成白玉樓, 召君作記.]'라고 쓰여 있었다." 하였다. 정자 침수정(枕漱亭)을 이른다.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우보리에 있는 정자로, 팔우(八愚) 홍경고(洪景古, 1645~1699)가 17세기 말에 건립하였고, 그의 6세손인 홍채주가 1885년에 중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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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청헌의 운에 화운하다 步和樂清軒韻 단계의 수석은 맑아 티끌이 없는데 (丹溪水石絶塵淸)은자로 인하여 더욱 유명해졌네 (賴得幽人更有名)동파의 단방160)을 비밀리에 전수하고 (坡老單方傳授密)잉여옹161)이 남긴 법을 정밀하게 발휘하였네 (剩翁貽法發揮精)몸은 두꺼운 얼음 밟으며 찌는 더위를 식히는 듯하고162) (身如濯熱層踏氷)기운은 양쪽 날개가 생겨 한문에 날아오르는 듯하네163) (氣若羾寒兩翰生)혼연한 우주 속에서 도도하게 공은 일어나지 않으니 (渾宇滔滔公不作)창랑 한 곡조164)는 유독 가슴 아프네 (滄浪一曲獨傷情) 丹溪木石絕塵清。賴得幽人更有名。坡老單方傳授密。剩翁貽法發揮精。身如濯熱層踏氷。氣若羾寒兩翰生。渾字滔滔公不作。滄浪一曲獨傷情 동파(東坡)의 단방 동파는 소식(蘇軾)의 호이다. 소식이 지은 의서 『소학사방(蘇學士方)』을 가리킨다. 잉여옹(剩餘翁) 위명덕(魏命德, 1683~1756)의 호이다. 자는 윤보(潤甫)이다. 낙청헌(樂淸軒)은 위명덕의 후손인 듯하다. 몸은……듯하고 맑고 깨끗하다는 말이다. 두보(杜甫)의 시 「초가을 무더위에 시달리는데 문서가 계속 쌓이네[早秋苦熱堆案相仍]」에 "남쪽을 바라보니 푸른 솔이 골짜기에 걸쳐져 있는데, 어찌하면 맨발로 두꺼운 얼음을 밟아 볼 수 있을까.[南望靑松架短壑, 安得赤脚踏層氷?]" 하였다. 『杜詩全集 卷5』 기운은……듯하네 주자(朱子)가 공풍(鞏豐)에게 답한 편지에, "이 무더운 여름철에 시원한 것이 마치 한문에 날아올라 맑은 바람에 씻은 듯하다.[當此炎燠灑然, 如羾寒門而濯淸風也.]" 하였다. 『晦庵集 卷64 答鞏仲至』 『초사(楚辭)』 왕일(王逸)의 주에, 한문(寒門)은 북극에 있는 차가운 곳이라고 하였다. 창랑(滄浪) 한 곡조 『맹자』「이루 상(離婁上)」에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는다[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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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국진393)의 희성당 시에 차운하다 次鄭國振希成堂韻 크게 이룬 뒤에 또 문을 이루었으니 大成以後又文成지은 방 이름이 희제394)의 뜻과 꼭 부합하네 端合希齊錫室名인을 행하려면 네 가지를 말아야 한다395)는 논의 절실하고 論切爲仁當四勿도로 향하려면 전일하고 성실해야 한다396)는 비결 참되구나 訣眞向道必專誠용화산 아래는 풍진이 깨끗하고 用華山下風塵淨칙덕촌 가운데는 일월이 밝구나 勅德村中日月明바라건대 사문이 기대하는 뜻 잘 알아서 願體師門期待意평생토록 부지런히 심력을 다하게나 孜孜心力盡生平 大成以後又文成, 端合希齊錫室名.論切爲仁當四勿, 訣眞向道必專誠.用華山下風塵淨, 勅德村中日月明.願體師門期待意, 孜孜心力盡生平. 정국진(鄭國振) 정기성(鄭基聲, 1890~?)을 가리킨다. 희제(希齊) 어진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주돈이(周敦頤)의 《통서(通書)》 〈지학(志學)〉에 "성인은 하늘을 바라고, 현인은 성인을 바라고, 선비는 현인을 바란다.[聖希天, 賢希聖, 士希賢.]"라고 하였고, 《논어》 〈이인(里仁)〉에 "어진 이를 보거든 그와 똑같이 되기를 생각하고, 어질지 못한 이를 보거든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見賢思齊焉, 見不賢而內自省也.]"라고 하였다. 인(仁)을……한다 《논어》 〈안연(顏淵)〉에, 안연이 인(仁)의 실천 조목을 묻자, 공자가 "예가 아니면 보지 말며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며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라고 하였다. 도(道)로……한다 《중용장구》 제26장에서 천지(天地)의 도(道)를 말하였는데, 주희(朱熹)의 주에 "천지의 도는 성실하고 전일하여 변치 않기 때문에 각각 그 성대함을 지극히 한다.[天地之道誠一不貳, 故能各極其盛.]"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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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402)에게 충고하다 6절 忠告子貞【六絶】 경서에 상이 있으면 장가들지 않는다고 했는데 有喪不娶聖經云어찌하여 흩어진 구름과 동등하게 보아 경시하는가 輕視胡然等散雲준엄하고 바른 사마의 가르침403)을 다시 보게나 峻正更看司馬訓나라에 행해지는 정법은 논할 필요가 없다네 國行正法不須論노년에 후사를 잇는 것이 바쁘다고 말하지만 老年嗣續縱云忙이치와 명운 의당 길고 짧음을 따져야 하리 理命宜將較短長하늘의 운수가 앞으로 자신에게 있다면 天運前頭如在我두 달 정도 조금 늦은 들 무슨 문제이겠는가 差遲二朔豈能妨분분하게 난리라고 핑계 대지 말게나 莫以紛紛托亂離난리 중이니 예법을 더욱 지켜야 한다오 亂中禮法益當持삼가의 의절404)은 일찍이 전해져 익혔을 터 三加儀節曾傳講성 포위되고 나라 망할 때도 그치지 말게 不輟城圍國覆時사람이 욕심 이루는 데 걸핏하면 권도라 하니 人於濟慾動稱權도리어 방관자들도 웃으며 아연실색한다오 却使傍觀笑啞然형수가 물에 빠졌을 때라야 손으로 건져주는데405) 嫂溺之時方手援어찌하여 하는 일마다 견주어 나란히 보는가 如何事事比幷看누가 말하나 아버지가 죽을 때 유언 남겨 誰云父沒有遺言또한 거상 중에 자신의 손자 장가보낼 수 있다고 亦可乘喪娶我孫예법과 법률을 손수 무너뜨릴 뿐만 아니라 禮律非惟手自壞어버이를 불의에 빠뜨린 것이니 거듭 한탄스럽네 陷親不義重可歎일은 이치를 따르는 곳이 바로 조화이니 事循理處卽爲和조화로운 기운이 올 때 복록이 더해진다오 和氣來時福祿加상복 벗기를 기다렸다가 혼사 치르는 날 待到服除迎相日많은 자손들 그대 집에 가득하리라 兟兟螽羽滿君家 有喪不娶聖經云, 輕視胡然等散雲?峻正更看司馬訓, 國行正法不須論.老年嗣續縱云忙, 理命宜將較短長?天運前頭如在我, 差遲二朔豈能妨.莫以紛紛托亂離, 亂中禮法益當持.三加儀節曾傳講, 不輟城圍國覆時.人於濟慾動稱權, 却使傍觀笑啞然.嫂溺之時方手援, 如何事事比幷看?誰云父沒有遺言, 亦可乘喪娶我孫?禮律非惟手自壞, 陷親不義重可歎.事循理處卽爲和, 和氣來時福祿加.待到服除迎相日, 兟兟螽羽滿君家. 자정(子貞) 조제원(趙濟元)으로, 자정은 그의 자이다. 전우(田愚)의 문인이다. 사마(司馬)의 가르침 사마는 사마광(司馬光)으로, 그의 저작인 《서의(書儀)》를 가리킨다. 삼가(三加)의 의절 관례(冠禮) 때에 세 번 관을 갈아 씌우는 의식을 말한다. 초가(初加)에는 치포관(緇布冠)을 쓰고, 재가(再加)에는 피변(皮弁)을 쓰며, 삼가(三加)에는 작변(爵弁)을 쓴다. 형수가……건져주는데 맹자가 "남녀 사이에 서로 직접 물건을 주고받지 않는 것은 예이고 형수가 물에 빠졌으면 손으로 잡아 구원해 주는 것은 권도이다.[男女授受不親, 禮也; 嫂溺援之以手, 權也.]"라고 하였다. 《孟子 離婁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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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헌220)의 병 조리하는 자리에 드리다 呈惺軒調座 몇 번이나 기약하여 먼 유람 함께했던가 幾度爲期共遠遊십 년 간 삼상221)처럼 떨어져 보답 못했네 參商十載未曾酬마음은 깊고 높은 안협으로 치달아 구르고 心馳安峽泓崢轉꿈은 신라 도읍의 세월에 들어 아득하네 夢入羅都日月悠그대 집에서 찾아올 줄 어찌 생각했겠나 豈料仙庄今委訪병이 오래 낫지 않음을 도리어 탄식하네 却歎美愼久彌留이에 좋은 일은 운수에 달렸음을 알았으니 從知好事存乎數내년 봄을 기다렸다가 다시 짝이 되세 第待明春更作儔 幾度爲期共遠遊? 參商十載未曾酬.心馳安峽泓崢轉, 夢入羅都日月悠.豈料仙庄今委訪? 却歎美愼久彌留.從知好事存乎數, 第待明春更作儔. 성헌(惺軒) 김영우(金榮禹, 1871~1941)의 호이다. 본관은 부안(扶安), 자는 경범(敬範)이다. 삼상(參商)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삼성(參星)은 동쪽 하늘에 있고 상성(商星)은 서쪽 하늘에 있어서, 각각 뜨고 지는 시각이 다른 관계로 영원히 서로 만날 수가 없는 데에서 유래된 것이다. 《春秋左傳 昭公元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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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정 족선조 재간당(在澗堂)226)이 유식(遊息)227)하던 곳인데, 아래의 세이암(洗耳嚴)도 이와 같다. 水舂亭【族先祖在澗堂遊息之所, 下洗耳嚴同.】 물결이 뒤집히면서 방아를 찧으니 波濤飜作舂방아에서는 몇 섬 곡식이 나왔을까 舂出幾鍾粟정자 황폐해져 주관할 사람 없으나 亭廢主無人유풍이 시내 골짜기에 남아 있구나 遺風在澗谷 波濤飜作舂, 舂出幾鍾粟?亭廢主無人, 遺風在澗谷. 재간당(在澗堂) 김화(金澕, 1571~1645)의 호이다. 본관은 부안(扶安), 자는 도원(道源)이다. 1603년(선조36) 생원시와 진사시에 합격하고 참봉에 제수 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으며, 1624년(인조2)에 의병을 일으켰다. 유식(遊息) 학문을 하다가 피곤하여 쉴 때에도 항상 학문을 염두에 두는 것을 말한다. 《禮記 學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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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암15)이 찾아와 주어 기뻐서 喜省菴來訪 일만 솔의 작은 집에 문을 깊이 닫았는데 萬松一室閉門深높은 자취 왕림하니 이 무슨 마음인가 高躅光臨是底心지금 세속의 태도인 염량세태 짓지 않으니 不作炎涼今俗態쇠락한 옛 유림이 유독 가엾구나 偏憐凋落舊儒林국화가 마침 피니 약속 남겨둔 듯하고 黃花適發如留約밝은 달이 광채 더해 옷깃을 흠뻑 비추네 素月添輝剩照衿우리 만년의 절조 지킴을 증명하고 싶거든 欲證吾人持晩節천태의 빼어난 자태가 천길 높이 솟은 것 보게 天台秀色聳千尋 萬松一室閉門深, 高躅光臨是底心.不作炎涼今俗態, 偏憐凋落舊儒林.黃花適發如留約, 素月添輝剩照衿.欲證吾人持晩節, 天台秀色聳千尋. 성암(省菴) 김용선(金容璿, 1865~?)의 호로, 전우(田愚)의 제자이다. 저서에 《성암유고(省菴遺稿)》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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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헌옹16)을 애도하다 悼惺軒翁 남원의 친족 모임에서 가장 공과 친했으니 帶方花樹最親公문아(文雅)한 풍채에 깨끗한 흉중 지녔지 儒雅風標灑落胸마수에서 힘을 합해 도모한 일은 아 이루지 못하였고 麻隧協力嗟未就월성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은 허사가 되었으니 어찌하랴 月城留約柰成空돌아갈 때 일찌감치 천상에서 노닌 듯하더니 歸時早已遊天上저녁에 이른 부고는 꿈속에서 접한 듯하였네 訃夕猶能接夢中죽지 않고 남겨진 나는 지금 되려 부럽나니 後死如今還健羡청산에 아무 탈 없이 묻힌 성헌옹이 靑山無恙惺軒翁 帶方花樹最親公, 儒雅風標灑落胸.麻隧協力嗟未就, 月城留約柰成空?歸時早已遊天上, 訃夕猶能接夢中.後死如今還健羡, 靑山無恙惺軒翁. 성헌옹(惺軒翁) 김영우(金榮禹, 1871~1941)로, 본관은 부안(扶安), 자는 경범(敬範), 호는 성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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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재 어른의 〈추흥〉에 차운하다 2수 次悅丈《秋興》【二首】 어젯밤 첫서리 내렸으나 흔적이 미미했는데 初霜昨夜見痕微바람이 뜨락 오동나무 흔드니 잎이 드무네 風動庭梧葉正稀시내에 게와 물고기 가득해 그물로 건져내고 溪牣蟹魚鉤網出들녘에 벼와 기장 익어 낫으로 베어 돌아오네 野登稻黍銍鎌歸산골 부엌에 국화 술을 미리 빚어 놓고 山廚豫釀黃花酒마을 베틀은 흰 모시옷을 새로 만드네 村杼新成白苧衣여러 가지가 고루 가을의 흥취가 되니 種種均爲秋日興은자에겐 그야말로 천기95) 보기에 좋다네 幽人正好看天機가을바람 주옥같은 이슬에 청신함을 느끼니 金風玉露覺淸新몹시 무더워 고통스러웠던 때를 차마 말하랴 忍說炎天苦苦辰선명한 산은 푸른 옥홀을 드리는 듯하고 的歷山呈靑玉笏나부끼는 구름은 흰 생선비늘 흩어지는 듯 飄揚雲散白魚鱗반랑96)이 지은 부는 일찍이 감회가 많았고 潘郞作賦曾多感두자97)가 지은 시 또한 마음에 드는구나 杜子題詩亦可人산하를 둘러보면 백성들이 여름을 걱정하리니 環顧山河民病夏어느 날에나 가을철98)이 될지 모르겠네 不知何日是庚辛 初霜昨夜見痕微, 風動庭梧葉正稀.溪牣蟹魚鉤網出, 野登稻黍銍鎌歸.山廚豫釀黃花酒, 村杼新成白苧衣.種種均爲秋日興, 幽人正好看天機.金風玉露覺淸新, 忍說炎天苦苦辰?的歷山呈靑玉笏, 飄揚雲散白魚鱗.潘郞作賦曾多感, 杜子題詩亦可人.環顧山河民病夏, 不知何日是庚辛. 천기(天機) 하늘의 비밀이란 뜻으로, 조화(造化)의 은밀한 기틀을 가리킨다. 《장자》 〈대종사〉에 "기욕(耆欲)이 깊은 사람은 천기가 얕다.[其耆欲深者, 其天機淺.]"라고 하였다. 반랑(潘郞) 진(晉)나라 때 시인 반악(潘岳)을 지칭한다. 32세 때부터 귀밑머리가 세기 시작하여, 그가 지은 〈추흥부(秋興賦)〉 서문에 "내 나이 서른두 살에 처음으로 흰 머리칼을 보았다.[余春秋三十有二, 始見二毛.]"라고 하였다. 《晉書 卷55 潘岳傳》 두자(杜子) 당나라의 시인 두보를 가리킨다. 두보가 지은 〈추흥(秋興)〉8수는 늙고 병든 작자의 절절한 우수를 잘 표현하였다. 가을철 원문의 '경신(庚辛)'은, 방위로는 서(西)에 해당하고 색깔로는 백(白)에 해당하며 백은 곧 (辛)을 뜻하니, 계절로 가을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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驚蟄【正月十九日。自去年七月不雨。今夜始雨。】 靈雨順春令。乾坤布好生。飄空初有影。墮地更無聲。怪底朝雲白。胡然夕照明。民情猶未洽。何日滿江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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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이 준 시에 차운하다 次子貞贈韻 좋은 일은 원래 마음대로 되기 어려우니 好事元難得自由이번 여행에 끝내 그대와 짝하지 못했네 此行竟失與君儔동쪽으로 오니 곳곳마다 명승지가 많아 東來到處多名勝늙으막에 울적함을 풀기에 조금 낫다네 老去差强散鬱幽창해는 망망하여 어느 곳이 끝이런가 滄海茫茫何地限금강산은 우뚝하여 중천에 떠있구나 剛山矗矗半天浮다시 높은 곳 올라 서쪽을 바라보니 更登高處西回首어쩌랴 오늘 한 사람이 적은127) 슬픔을 其柰今朝少一愁 好事元難得自由, 此行竟失與君儔.東來到處多名勝, 老去差强散鬱幽.滄海茫茫何地限, 剛山矗矗半天浮.更登高處西回首, 其柰今朝少一愁. 한 사람이 빠진 원문의 '소일(少一)'로, 이번 여행길에 자정(子貞) 한 사람이 빠진 것을 말한 것이다. 당(唐)나라 왕유(王維)가 객지에서 산동(山東)의 형제를 그리며 지은 〈구월구일억산동형제(九月九日憶山東兄弟)〉에 "홀로 타향에 나와 나그네 되니, 명절 만날 적마다 어버이 생각 갑절 나네. 멀리서도 알겠도다 형제들 높은 곳에 올라, 모두 수유 꽂았는데 한 사람이 적은 것을.[獨在異鄕爲異客, 每逢佳節倍思親. 遙知兄弟登高處, 遍揷茱萸少一人.]"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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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에서 날마다 희숙을 그리며 金剛 日有懷希淑 세상 밖에 있는 금강산 자취를 物外金剛跡조만간 함께 찾아가자 기약하네 聯筇早晩期굳센 용이 어찌 오래 칩거하랴 矯龍何久蟄고달픈 학 또한 높이 날아가네 倦鶴亦高飛구룡연폭포에서 마음 씻어내고 九瀑洗心處비로봉에서 맘껏 내려다보았네 毘峯縱眼時소군128)의 기묘한 이야기를 少君奇絶話머리 돌려 서글피 생각해보네 回首悵然思 物外金剛跡, 聯筇早晩期.矯龍何久蟄, 倦鶴亦高飛.九瀑洗心處, 昆峯縱眼時.小君奇絶話, 回首悵然思. 소군(少君) 이소군(李少君)으로, 한 무제(漢武帝) 때 방사(方士)이다. 한 무제에게 "단사(丹砂)를 황금으로 변화시킬 수 있고, 황금으로 식기를 만들어 사용하면 장수를 누릴 수 있으며, 장수를 누리면 해중(海中)의 봉래산(蓬萊山)에 사는 신선을 만나 볼 수 있습니다."라고 미혹시켰다. 《史記 卷12 孝武本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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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범회57) 【춘식】에게 답함 答權範晦【春植】 일전에 복주(福州)58)의 장(張)·정(丁) 두 소년이 방문하여 우리 범회의 소식을 대략 들었는데 지금 또 이런 편지를 받았으니 그 감사하고 후련함이 어떠하겠는가? 인하여 조부모님과 부모님이 강녕하시고 아침저녁으로 문안을 드리는 외에 학문을 익힘에 과정이 있는 줄 알았으니, 더욱 듣고 싶은 마음에 부합하였네. 그대의 공부는 바야흐로 《대학혹문》에 있는데 정제(整齊) 및 성성(惺惺)의 설에 묵묵히 계합하는 것이 있고, 또 두세 조목의 문목이 있었으니 읽어봄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움직였네. 대저 범회(範晦)는 아름답고 좋은 재질로 공부의 조예가 또한 이미 많을 것이네. 다만 학문(學問) 사색(思索)하는 방법에 오히려 첫머리에 힘을 얻는 실마리가 있지 않으니, 항상 서로 향하는 마음에 이것으로 알려주지 않음이 없었네. 지금 이에 한 단계 성장함이 이와 같으니 이로부터 진취를 또 어찌 헤아리겠는가? 이(理)는 형상이 없고 기(氣)는 형상이 있는 것은 이기의 큰 구분으로 말하면 실로 이와 같네. 모든 사물은 형기(形氣)와 신리(神理)를 가지고 있지 않음이 없는데, 형이라는 것은 기의 집이고 기라는 것은 신의 집이고 신이라는 것은 이의 집이니, 신은 바로 허령을 이르는 것이네. 기도 오히려 무형(無形)인 것이 있는데 더구나 허령하면서 형상이 있는 것에 있어서야 어떠하겠는가? 다만 이에 비하여 비교적 드러나네. 허령의 허를 오로지 이로 보는 것은 또한 합당하지 않네. 허령이 뭇 이치를 갖추고 있는 바인데, 만약 허를 이로 본다면 이것은 이로 이를 갖춘 것이니, 가하겠는가? 허령을 말하면 허가 체가 되고 령이 용이 되며, 허령 지각을 말하면 허령이 체가 되고 지각이 용이 되네. 그러나 이 용은 오로지 이 심이 발한 뒤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네. 비록 발하지 않아도 용은 실로 그 가운데 있으니, 이른바 "체와 용이 한 근원[體用一原]"이라는 것이고 이른바 "고요하고 막막하여 아무 조짐이 없을 때 만 가지 형상이 빽빽이 이미 갖추어져 있다.[沖漠無朕 萬象森然已具]"라는 것이 이것이네. 소이연(所以然)을 소당연(所當然)의 원두로 삼는 것은 가하고, 소이연을 깨닫는데 각(覺)을 지(知)의 원두로 삼는 것은 불가하니, 지와 각은 단지 이 심(心)의 용(用)이네. 日前福州張丁兩少年之過。槪聞吾範晦信息矣。而今又得此心畫。其爲感豁。爲何如哉。因審重省康寧。晨昏之餘。溫理有程。尤副願聞。盛課方在大學或問。而於整齊及惺惺之說。黙有契焉。又有數三問目。讀之不覺令人動情。大抵範晦以好材美質。功夫所造。亦已多矣。但於學問思索之方。尙未有開頭得力之端。尋常相向。未嘗不以此奉告矣。今乃長得一格者如此。從此進就。又何可量。理無形。氣有形。以理氣大分言之。固是如此。凡物莫不有形氣神理。形者氣之宅。氣者神之宅。神者理之宅。神卽虛靈之謂也。氣猶有無形者。況虛靈而有形乎。但比於理較著矣。虛靈之虛。專作理看。亦未安。虛靈所以具衆理。若以虛作理。則是以理具理。其可乎。言虛靈則虛爲體。靈爲用。言虛靈知覺。則虛靈爲體。知覺爲用。然是用也。非專爲此心發後事也。雖未發而用固在其中。所謂體用一原。所謂沖漠無眹。萬象森然已具者。是也。以所以然爲所當然之源頭則可。以覺其所以然而以覺爲知之源頭則不可。知與覺。只是此心之用也。 권범회(權範晦) 권춘식(權春植, 1879~?)을 말한다. 자는 범회,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정의림의 문인이다. 복주(福州) 경상북도 안동시의 고려 시대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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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옥에게 답함 答鄭士玉 경함(景涵)53)은 주재(主宰)를 이(理)로 여기니, 이것은 주리(主理)가 너무 지나친 소치이네. 무릇 천하의 만사와 만물은 이 이(理)가 아님이 없는데 더구나 주재를 이라고 말한다면 무엇을 말해도 불가하겠는가? 그러나 이 말은 천지조화 상에서 말한다면 가하지만 인심의 운용 상에서 말한다면 의논할 만한 것이 없지 않네. 무릇 천(天)은 무위(無爲)하기 때문에 이가 주재가 되고, 인(人)은 유위(有爲)하기 때문에 심이 주재가 되니, 정자(程子)가 이른바 "도체는 무위하지만 인심은 지각이 있다.[道體無爲而人心有覺]"라는 것이 이것이네. 또 심이 주재가 되는 소이는 무엇인가? 허령지각이 있기 때문이네. 만약 허령지각이 아니라면 마른 나무와 꺼진 재나 다름이 없으니, 말할 수 있는 어떤 주재가 있겠는가? 허령지각은 실로 기의 정상(精爽)이지만 허령지각하는 소이는 이(理)이니, 령(靈)이 아니면 능히 각(覺)할 수 없고 이(理)가 아니면 각(覺)할 바가 없네. 만약 '소이(所以)' 자를 쓰지 않고 곧장 주재를 이라고 이른다면 이는 작용하는 물이 되고 이와 기, 심과 성이 섞여 경계가 없을 것이네. 대저 주기설은 실로 지금의 고질인데 이른바 주리를 주장하는 사람 또한 교왕과직(矯枉過直)의 폐단이 없지 않으니, 매우 탄식스럽네.[문] 공자가 말하기를 "향원(鄕原)은 덕의 적이다."라고 하였는데, 주자가 해석하기를 "덕(德)과 비슷하나 덕이 아니어서 도리어 덕을 어지럽힌다."라고 하였습니다. 대저 향원과 광견(狂狷)은 서로 머니, 광자는 진취적이고 견자는 하지 않는 것이 있는데, 향원은 진취적이지도 않고 또 하지 않는 것도 없습니다. 성인이 미워했던 것은 유속(流俗)과 함께 하고 더러움에 영합하여 더불어 큰일을 할 수 없었던 까닭 때문입니다. 옛날에 애산(艾山) 선생54)께서 소자에게 한 말씀을 내려 주셨는데 그 뜻이 이와 같았고, 스승의 문하에서 귀에 대고 말씀하고 대면하여 타일러 주신 것 또한 애초에 이런 부류에 귀착될까 두려워하지 않음이 없었으며, 소자도 자신에게 절실한 실제의 병통이 되는 줄 모르는 것은 아니었으나 병은 쉽게 얻고 고치기는 어려우니, 어찌하면 좋겠습니까?[답] 사옥(士玉)은 자질이 십분 순근(醇謹)한데 과감하게 진작하는 기상이 부족하니, 한 사람의 근칙(謹勅)하는 선비가 되기에는 족하지만 무거운 책임을 맡아 멀리까지 도달하는 것에는 흠결이 있지 않겠는가? 이것이 애산 선생이 이른바 "병이 없는 병이 가장 치료하기 어렵다."라는 것은 자못 생각할 만 하네. 오호라! 성인께서 이런 순근한 사람을 취하지 않고 특별히 광견한 사람을 취한 것은 그 뜻을 알 수 있네. 기질을 고쳐서 바로잡는 이것은 사람마다 자신에게 절실한 공부이니, 원컨대 사옥은 힘쓸지어다.[문] 주자가 이른바 "이에서 발하고 기에서 발한다.[發於理發於氣]"라는 것은 그 발하는 근본이 하나인데 이미 발한 뒤에는 같지 않음이 있기 때문에 하나의 '발(發)' 자 아래에 이(理) 자와 기(氣) 자를 나누어 둔 것입니다. 퇴계(退溪)가 이른바 "[사단은] 이가 발하여 기가 따르는 것이고, [칠정은] 기가 발하여 이가 타는 것이다."라고 한 것은 분명 이 일변과 기 일변이 상대하고 병립하여 혹 여기에서 발하고 혹 저기에서 발하는 것이 있습니다. 대개 '발' 자를 이 자와 기 자 아래에 두었기 때문에 그 뜻이 서로 현격하게 되는 것입니다.[답] "혹 생겨나고, 혹 근원한다."라고 말하면 본원이 하나가 되는 것에 해롭지 않지만, 다만 발할 즈음에 인심과 도심을 변별했을 따름이네. 만약 "기가 발함에 이가 타고 이가 발함에 기가 따른다."라고 한다면 분명 머리를 나란히 하여 서로 발한다는 혐의가 있을 것이네.[문] 성(誠)은 일(一)이니, 이른바 성의(誠意)라는 것은 불일(不一)의 사의(私意)를 하나로[一]한다는 것입니까?[답] 일(一)로 성의의 성을 해석하는 것은 주자가 '실(實)' 자로 해석하여 착수할 곳이 있는 것만 못하네.[문] "고요하고 막막하여 아무 조짐이 없을 때 만 가지 형상이 빽빽이 이미 갖추어져 있다.[沖漠無朕 萬象森然已具]"라고 하니, 만약 중인으로서 이런 경계를 묵묵히 알려고 하면 새벽녘 사물과 접하지 않아 담연(湛然)하고 허명(虛明)할 때에 가능하겠습니까?[답] 새벽녘 담연할 때 및 우연히 순수함을 회복했을 때가 이것이네. 그러나 조금이라도 알려고 하는 뜻이 있으면 문득 무짐(無朕)이 아니고 문득 삼연(森然)이 아니네.[문] 《대학》의 지선(至善)이 바로 《중용》의 중(中)입니까?[답] 지선은 실리(實理)로 말한 것이고, 중은 체단(體段)으로 말한 것이네.[문] 혹 고요히 앉아 수렴하지만 혼매하고 치달려 만족스럽지 못한 때가 있기도 하고, 혹 수렴할 겨를도 없는데도 부지불각 중에 스스로 만족스러운 때도 있는데, 모두 어렴풋하여 그 실마리를 모르겠으니, 어찌하면 가하겠습니까?[답] 이것은 함양이 미숙하여 실심(實心)이 안정되지 못한 소치이니, 정히 마땅히 더욱 힘써야 하네.[문] 맹자가 말하기를 "마음을 기르는 것은 욕심을 적게 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養心莫善於寡欲]"라고 하였으니, 다만 욕심을 적게 하는 곳[寡欲]에서 몇 년의 공부를 쏟으면 천기(天機)가 자연한 본체는 보존하기를 기약하지 않아도 절로 보존되겠습니까?[답] 욕심을 적게 하는 것은 실로 마음을 기르는 제일의 방법이네. 그러나 욕심이라는 것은 단지 식색(食色)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이 법도에 따르지 않는 모든 곳이 모두 욕심이니, 장차 모름지기 거친 곳에서 정밀한데로 들어가는 것이 가할 것이네.[문] 기(氣)는 볼 수 있는 바탕이 있지만 이(理)는 볼 수 있는 형상이 없으니, 다만 바탕이 있는 기에 나아가 형상이 없는 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까?[답] 이것은 아래 한 절의 설이니 만약 위 한 절에 나아가 말한다면 어찌 일찍이 기를 기다려 이를 말하겠는가?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이라고 한 것과 같은 것이 이것이네.[문] 다만 마땅히 그 선념(善念)을 보존하기만 하면 악념(惡念)은 자연스럽게 물러납니다. 만약 선념이 생기는 곳에 가서 접속하지 않고 다만 악념을 제거하려고 한다면 마치 도둑이 동서로 치달려 들어오는 것과 같고 마치 불을 끄려고 하면 더욱 치솟아 번지는 것과 같아 그 형세는 제거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답] 고인의 기허(器虛)와 기실(器實)의 비유55) 또한 이 뜻이네. 이것은 고생스럽게 경험한 속에나 나온 말이니, 어찌 귀하지 않은가? 힘쓰고 힘쓰시게![문] 정자(程子)는 이른바 "타고난 것을 성이라고 한다."라는 것은 바로 사람이 태어나 고요한 상태 그 이전은 말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태어난 이후를 성이라 한다고 하였는데, 고자(告子)는 바로 그 지각운동(知覺運動)을 가리켰기 때문에 맹자가 물리친 것입니다.[답] "타고난 것을 성이라고 한다."라는 것에 정자의 뜻은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성이 바로 기이고 기가 바로 성이라고 여긴 것이고, 하나는 사람이 태어난 뒤에 바야흐로 성을 말할 수 있다고 여긴 것인데, 고자는 오로지 기에 나아가 말하였네.[문] 수렴(收斂) 제철(提綴)하여 허명(虛明) 정일(靜一)함은 바로 이른바 "이미 놓아 버린 마음을 가져다 돌이켜서 몸에 들어오게 하는 것이다."라는 것56)입니다. 대저 심(心)과 인(仁)은 본래 두 가지 물이 아니니, 심이 보존되면 인이 보존되고, 심이 달아나면 인이 달아납니다. 그렇다면 방심을 구하는 것은 바로 인을 구하는 공부입니다.[답] 자네 말이 좋네. 景涵以主宰爲理。是主理太過之致也。夫天下萬事萬物。莫非是理。況以主宰謂之理。孰云不可。然此言在天地造化上說則可。在人心運用上說。則不能無可議者。夫天無爲。故理爲主宰。人有爲。故心爲主宰。程子所謂道體無爲。而人心有覺者。此也。且心之所以爲主宰。何也。以其有虛靈知覺故也。若非虛靈知覺。則與枯木死灰無異。有何主宰之可言也。虛靈知覺。固氣之精爽。而所以虛靈知覺者。理也。非靈則不能覺。非理則無所覺。若不下所以字。而直以主宰謂理。則理爲作用之物。而理與氣。心與性。混無界至矣。大抵主氣之說。固今日之膏肓。而所謂主理者。亦不無矯枉過直之敝。可歎可歎。孔子曰。鄕原德之賊。朱子釋之曰。似德非德。反亂乎德。大抵鄕原與狂狷相遠。狂者進取。狷者有所不爲。鄕原者未嘗進取。又無所不爲。聖人所惡者。以其同流合汚。不可與有爲故也。昔艾山先生賜小子一言。其意在此。師門平日耳提面命者。亦未始非恐歸此流。小子亦非不知爲切己實病。而病易得而難瘳。如之何則可。士玉姿質。十分醇謹。而少果敢振作之氣。其爲一箇謹勅之士則足矣。而於任重致遠。不其有欠乎。此艾山先生所謂不病之病。最爲難治者。殊可念也。嗚呼。聖人不取此醇謹底人。而特取狂狷之人者。其意可知。矯捄氣質。此是人人切己之功。願士玉勉之。朱子所謂發於理發於氣者。是其發之本一也。而及其已發之後。有不同者。故一發字下。分着理氣字。退溪所謂理發而氣隨之。氣發而理乘之者。是分明有理一邊。氣一邊。相對竝立。或發於此。或發於彼。盖其着發字於理氣下。故其義相爲懸殊。曰或生或原則。不害爲本原之一。而特於臨發之際。辨別其人心道心之義而已。若曰氣發而理乘。理發而氣隨。則分明有齊頭互發之嫌。誠一也。所謂誠意者。是一其不一之私意。以一釋誠意之誠。不如朱子以實字釋之。而有下手處沖漠無眹。萬衆森然已具。若以衆人而欲黙識此境界。則於平朝未與物接。湛然虛明之時。可乎。平朝湛然。及偶然圓淳之時。是也。然纔有欲識底意。則便非無眹便非森然。大學之至善。卽中庸之中。至善以實理言。屮以體段言。或靜坐收斂。而有昏昧走作不慊之時。或未暇收斂。而有不知不覺自好之時。皆怳惚而莫知其端。如何則可。此是涵養未熟。實心未定之致。正宜加勉。孟子曰。養心莫善於寡欲。但於寡欲上。費得幾歲幾年工夫。則天機自然之體。不期存而自存否。寡欲固養心第一方。然欲非特食色之謂凡心不循軌處。皆欲也。且須由粗入精。可也。氣則有質可觀。而理則無形可見。但就有質之氣。知其有無形之理乎。此是下一節說。若就上一節說。則何嘗待氯而言理。如曰無極而太極。是也。但當存其善念。惡念自然退聽。若於善念處。不之接續。而但欲除去惡念。則如寇之東驅西入。如火之愈撲愈熾。其勢有不可得以除者。古人器虛器實之喩。亦比意。此是辛苦經歷中出來語。豈不可貴。勉之勉之。程子所謂生之謂性。正以其人生而靜以上。不容說。故以爲生以後。謂之性。告子則正指。其知覺運動。故孟子闢之。生之謂性。程子之意。有兩般焉。一則以爲性卽氣。氣卽性。一則以爲人生以後。方說性。告子專就氣說。收斂提綴。虛明靜一。卽所謂將己放之心。反復入身來。大抵心與仁。本非二物。心存則仁存。心亡則仁亡。然則求放心。卽求仁工夫好。 경함(景涵) 황철원(黃澈源, 1878~1932)의 자이다. 자세한 내용은 앞의 주석 "황경함(黃景涵)" 참조. 애산(艾山) 선생 정재규(鄭載圭, 1843~1911)를 말한다. 자세한 내용은 앞의 주석 '애산(艾山)' 참조. 고인의……비유 《근사록》 권4 존양류(存養類)에 정호(程顥)가 "빈 그릇을 물속에 넣으면 물이 자연히 들어가겠지만, 하나의 그릇에 물을 채워서 물속에 두면 물이 어떻게 들어갈 수 있겠는가. 대개 내부에 주가 있으면 실하니, 실하면 외부의 환란이 들어올 수 없어 자연히 무사할 것이다.[虛器入水, 水自然入, 若以一器實之以水, 置之水中, 水何能入來? 蓋中有主則實, 實則外患不能入, 自然無事.]"라고 한 것을 말한다. 이른바……것 《맹자》 〈고자 상(告子上)〉 '구방심장(求放心章)'의 주석에서 명도(明道)가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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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령 도중에 鳥嶺途中 비온 뒤 맑은 시내 티끌을 다 씻어내니 雨後淸溪洗點塵나그네는 정신이 맑아짐을 깨닫는다오 行人覺得爽精神바라건대 내 마음도 이처럼 깨끗하여 吾心亦願淨如此오묘한 곳이 무극의 진429)과 간격 없기를 妙處無間無極眞석산에 들러 두 손씨 벗에게 지어 주다 過石山贈二孫友-신재(新齋) 손성철(孫聖徹)과 두봉(斗峯) 손성율(孫聖栗)이다.-석산에 사흘 동안 돌아가는 걸음 멈추니 石山三日住歸筇신재와 두봉 두 벗이 있기 때문이라오 爲有新齋與斗峯시렁 덮은 푸른 등덩굴은 짙은 그늘 이루고 覆架蒼藤成厚蔭동산 가득 긴 대나무는 맑은 바람 일으키네 滿園脩竹動淸風시비 양쪽은 털끝만큼의 어긋남도 없거니와 是非兩莫微毫錯사정 사이는 어찌 한 터럭이라도 용납하리오 邪正間何一髮容이별할 때 두 벗에게 간곡하게 권면하니 臨別丁寧相勉意추현의 호변430)에 더욱 공력을 들이기를 鄒賢好辯益加功 雨後淸溪洗點塵, 行人覺得爽精神.吾心亦願淨如此, 妙處無間無極眞.過石山, 贈二孫友【新齋聖徹、斗峰聖栗】石山三日住歸筇, 爲有新齋與斗峯.覆架蒼藤成厚蔭, 滿園脩竹動淸風.是非兩莫微毫錯, 邪正間何一髮容?臨別丁寧相勉意, 鄒賢好辯益加功. 무극(無極)의 진(眞) 송(宋)나라 주돈이(周敦頤)의 〈태극도설(太極圖說)〉에 "무극(無極)의 진(眞)과 이기(二氣)·오행(五行)의 정기(精氣)가 묘하게 합하고 엉기어 건도(乾道)는 남(男)을 이루고 곤도(坤道)는 여(女)를 이루어 두 기운이 교감(交感)하여 만물을 화생(化生)하니, 만물이 낳고 낳아 변화가 무궁하게 된다.[無極之眞、二五之精, 妙合而凝, 乾道成男, 坤道成女, 二氣交感, 化生萬物, 萬物生生而變化無窮焉.]"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천지(天地)가 생기기 전부터 있었던 지순(至純)한 이치를 뜻한다. 《近思錄集解 卷1 道體》 추현(鄒賢)의 호변(好辯) 추현은 추(鄒) 땅 사람인 맹자(孟子)를 가리킨다. 호변은 소위 《맹자》의 호변장(好辯章)을 가리키는 것으로, 맹자가 "내가 또한 인심을 바로잡아 부정한 학설을 종식시키며, 편벽된 행실을 막으며, 음탕한 말을 추방하여 우(禹)임금·주공(周公)·공자(孔子) 세 성인을 계승하려고 하는 것이니, 어찌 변론을 좋아하겠는가? 내 부득이해서이다. 능히 양주(楊朱)와 묵적(墨翟)을 막을 것을 말하는 자는 성인의 무리이다.[我亦欲正人心, 息邪說, 距詖行, 放淫辭, 以承三聖者, 豈好辯哉? 予不得已也. 能言距楊墨者, 聖人之徒也.]"라고 하였다. 《孟子 滕文公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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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말을 듣고 개연하여 쓰다 2수 聞人言慨然而題【二首】 기년의 상이 없어야 혼인할 수 있다는 말406) 無朞之喪乃昏娶해와 별처럼 밝게 예경에 실려 있네 昭在禮經如日星그런데 평생 노학자 같은 사람 있으니 有若生平老學者되려 난세와 말세에는 행할 수 없다 하네 乃謂世亂年晩不可行행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도 오히려 모자라 謂不可行猶不足낡은 유자와 고지식한 선비가 예법 지킨다고 기롱하네 拘儒曲士譏守經예는 잠시라도 몸에 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말 禮不可斯須去회옹이 편찬한 《소학》에 실려 있는데407) 載之小學有晦翁오히려 말하기를 말세와 난세는 尙謂晩年與亂世'잠시'라는 말 속에 포함 안 된다 하네 不入斯須中급박할 때는 예를 귀히 여기지 않는다는 急遽之時禮不貴그 말 가릉408)에게서 나왔으니 어찌 그리 흉한가 言出嘉陵一何凶좌중의 소년들 하직 인사를 하지 않았으니 座中少年不告別그 말 듣고 공경할 게 없다고 여겨서이겠지 聞言不足加敬恭선사께서 이 일을 제자들에게 말하면서 先師擧此語諸子근심 깊고 세상 해침이 맹수 홍수보다 심하다 하셨네 憂深害世甚猛洪금일 노학자의 말과 비교해서 보면 較看今日老學語식견과 사기가 너무나도 서로 흡사하구나 見識辭氣酷相同아아 차라리 나는 낡고 고지식한 선비가 될지언정 嗚呼寧爲吾之拘曲저들이 생각하는 곧음과 통달을 원치 않는다오 不願彼之直與通자신과 혼사 주관자가 기년복이 없어야 身及主昏無朞服성혼할 수 있는 것은 예에 당연하네 乃可嫁娶禮固然노학자가 이미 권하여 사람들 이를 어기고 老學旣勸人冒犯몸소 참최복을 입고서 자식의 혼사 주관하네 身持斬衰主子昏그 자식은 또 지금 조부상에 복을 입고 있으니 其子又是方服祖하나의 일에 두 가지 잘못 저질러 사람들 놀라게 하네 一擧二犯可駭人돌아가신 부친이 유언을 남겨서 謂是亡父有遺敎어쩔 수 없이 달권409)을 썼다고 하네 不得已處用達權자신의 행실에 잘못 없으면 성인에게 질정할 수 있으니 吾行無錯可質聖저 잘못된 선비의 말 어찌 상관하겠는가 彼哉何關曲士言아아 옛날의 군자는 잘못을 자기에게 돌렸는데 嗚呼古之君子過歸己지금의 군자는 잘못을 어버이에게 돌리는구나 今之君子過歸親달권이여 달권이여 어찌 이와 같단 말인가 達權達權豈若是한 번 행하면 이적(夷狄)되고 두 번 행하면 만이(蠻夷)되네 一行爲夷再行蠻남자는 나이 삼십에 여자는 나이 이십에 男子三十女二十선왕이 시집가고 장가가는 연령을 제도로 정하였네410) 先王定制嫁娶年연고가 있으면 이십 삼세에 시집가니411) 有故二十三年嫁남자 또한 어찌 이를 준행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男子亦豈不此遵하물며 아들의 나이가 삼십도 되지 않았는데 子年況未至三十부득이하다고 한 것은 무슨 말인가 不得已者是胡云가령 임종 때에 유언을 남겼다면 假使臨終有所敎위과의 아름다운 일412)이 이미 과거에 있다오 魏顆美擧已在先문제가 붕어하는 날 단상하라는 조서413)를 文帝崩日短喪詔뒤이은 경제가 경건하게 받들어 행하였네 景帝嗣位奉行虔훗날 천년을 위로 올라가 논하는 선비들은 後來千秋尙論士경제를 크게 죄주고 문제는 죄주지 않았네 深罪於景不於文이 의리 명명백백하여 알기 어렵지 않으니 此義明明不難識일찍이 노학자는 흐리멍덩하다고 생각하였네 曾謂老學矇矇焉모두 '사'라는 한 글자를 제거하지 못해서이니 總爲未除私一字큰길을 버리고 가시덤불로 들어가는 격이네 舍却大路入荊榛노학자의 달권이라는 것이 끝내 이와 같으니 老學達權竟如是도도한 지금 세상 보며 길게 탄식하노라 滔滔今世堪長歎 無朞之喪乃昏娶, 昭在禮經如日星.有若生平老學者, 乃謂世亂年晩不可行.謂不可行猶不足, 拘儒曲士譏守經.禮不可斯須去, 載之小學有晦翁.尙謂晩年與亂世, 不入斯須中.急遽之時禮不貴, 言出嘉陵一何凶?座中少年不告別, 聞言不足加敬恭.先師擧此語諸子, 憂深害世甚猛洪.較看今日老學語, 見識辭氣酷相同.嗚呼寧爲吾之拘曲? 不願彼之直與通.身及主昏無朞服, 乃可嫁娶禮固然.老學旣勸人冒犯, 身持斬衰主子昏.其子又是方服祖, 一擧二犯可駭人.謂是亡父有遺敎, 不得已處用達權.吾行無錯可質聖, 彼哉何關曲士言?嗚呼古之君子過歸己, 今之君子過歸親.達權達權豈若是? 一行爲夷再行蠻.男子三十女二十, 先王定制嫁娶年.有故二十三年嫁, 男子亦豈不此遵?子年況未至三十, 不得已者是胡云?假使臨終有所敎, 魏顆美擧已在先.文帝崩日短喪詔, 景帝嗣位奉行虔.後來千秋尙論士, 深罪於景不於文.此義明明不難識, 曾謂老學矇矇焉.總爲未除私一字, 舍却大路入荊榛.老學達權竟如是, 滔滔今世堪長歎. 기년(朞年)의……말 《가례(家禮)》 권3 〈혼례(昏禮) 의혼(議昏)〉에 "자신과 혼사를 주관하는 사람에게 기년(期年) 이상의 상이 없어야 성혼(成昏)할 수 있다.[身及主昏者, 無期以上喪, 乃可成昏.]"라고 하였다. 예(禮)는……있는데 주희(朱熹)가 편찬한 《소학》 〈입교(立敎)〉에, 《예기》 〈악기(樂記)〉의 "예악은 잠시라도 몸을 떠나서는 안 된다.[禮樂不可斯須去身.]"라고 한 말이 수록되어 있다. 가릉(嘉陵) 경기도 가평(加平)이다. 이곳 귀곡(龜谷)에 중암(重菴) 김평묵(金平默)의 거처가 있었으므로, 김평묵을 가리킨다. 달권(達權) 상황에 따라 임시로 변통하는 예를 말한다. 남자는……정하였네 《주례주소(周禮註疏)》 권14에 "남자는 30세에 장가를 가고, 여자는 20세에 시집을 간다.[男三十而娶, 女二十而嫁.]"라고 하였다. 연고가……시집가니 《예기(禮記)》 〈내칙(內則)〉에 "여자는 20세에 시집을 가는데, 연고가 있으면 23세에 시집을 간다.[二十而嫁, 有故二十三年而嫁.]"라고 하였는데, 연고란 부모의 상(喪)을 말한다. 위과(魏顆)의 아름다운 일 춘추 시대 진(晉)나라 위무자(魏武子)가 아들 위과에게 자기 첩을 개가(改嫁)시키라고 유언하였다가 다시 죽으면서 순장(殉葬)하라고 하였는데, 위과는 차마 서모를 순장하지 못하고 개가하도록 한 일을 말한다. 《春秋左氏傳 宣公 15年》 문제(文帝)가……조서(詔書) 단상(短喪)은 복상(服喪) 기간을 단축한다는 뜻이다. 한 문제(漢文帝)가 삼년 복상(三年服喪)의 제도를 하루를 한 달로 계산하는 이일역월제(以日易月制)로 고쳐서 36일 만에 복을 벗게 하는 제도를 만들었다. 이 뒤로 역대 왕조에서는 모두 그 관행을 따랐다. 《漢書 卷4 文帝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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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도를 개탄하다. 횡거의 시414)에 차운하다 慨世, 次橫渠韻 상사 있어도 힘쓰지 않아 도가 끝내 그릇되니 有喪不勉道終非젊어선 어버이를 늙어서는 쇠함을 핑계한다오415) 少爲親嫌老爲衰온 세상 사람들이 부모를 높일 줄만 아니 擧世但知隆考妣공시416)가 내 비통한 마음을 보지 못하누나 功緦不見我心悲-횡거(橫渠)의 시이다.-상례 버리면 금수이지 사람 아니니 棄喪卽獸乃人非세도가 이토록 쇠해짐을 개탄한다오 世道堪歎至此衰지금 시속은 부모도 높일 줄 모르니 今俗不知隆考妣어찌 공시가 슬퍼하지 않음을 따지리오 功緦豈問不能悲 有喪不勉道終非, 少爲親嫌老爲衰.擧世但知隆考妣, 功緦不見我心悲.【橫渠詩】棄喪卽獸乃人非, 世道堪歎至此衰.今俗不知隆考妣, 功緦豈問不能悲? 횡거(橫渠)의 시(詩) 횡거는 송(宋)나라 학자 장재(張載, 1020~1077)의 호이다. 그의 자는 자후(子厚), 시호는 명공(明公)이다. 송대 이학(理學)을 창시한 오현(五賢) 중의 한 사람으로, 관중(關中)에서 강학하였으므로 그의 학문을 '관학(關學)'이라 부른다. 그의 기일원론(氣一元論)은 왕정상(王廷相), 왕부지(王夫之), 대진(戴震) 등에 의해 계승 발전되었고, 인성론(人性論)은 주희(朱熹)에 의해 계승 발전되었다. 저서에 《정몽(正蒙)》, 《이굴(理窟)》, 《역설(易說)》 등이 있다. 그의 시(詩)는 〈상사(喪事)가 있다[有喪]〉를 가리킨다. 《張子全書 卷13》 젊어선……핑계한다오 사람들이 젊을 때에는 늙은 어버이가 자신의 소복 차림을 보기 싫어함을 혐의한다는 핑계로 상복(喪服)을 입으려 하지 않고, 늙어서는 자신의 몸이 이미 쇠약해짐을 핑계하여 상복을 입으려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 시구에 대한 송시열(宋時烈)의 해설에 의하면, 횡거 때에도 사람들이 예를 소홀히 하여 친척의 초상을 만난다 해도 상복을 입지 않았는데, 횡거가 비로소 친척의 상에 상복을 입기 시작하여 대공(大功), 소공(小功), 시마복(緦麻服)에 해당하는 초상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그에 해당하는 복을 입자, 처음에는 사람들이 이를 모두 괴이하게 여겼으나 결국에는 모두 횡거를 존신(尊信)하여 따르게 되었다고 하였다. 《宋子大全拾遺 卷9 經筵講義》 공시(功緦) 오복(五服) 가운데서 9개월 복(服)에 해당하는 대공(大功), 5개월 복에 해당하는 소공(小功), 3개월 복에 해당하는 시마(緦麻)를 가리키는데, 주로 손자와 종손자 이하의 항렬이나 다소 먼 친족이 이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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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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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달구경 見月 너에게 묻노니 푸른 하늘에 뜬 달은 問爾靑天月어쩌면 저렇듯이 밝을 수가 있을까 那能如許明그런데 사람 마음은 무슨 일 때문에 人心緣底事맑지 못하여 항상 괴로워하는가 恒苦未澄淸-달에게 묻다.-이렇게 구름 걷힌 밤을 만나니 値玆雲掃夜정녕 본래 밝은 모습을 본다네 定見本來明사사로운 뜻을 없앨 수만 있다면 但得除私意어찌 마음 맑지 못할까 걱정하랴 何憂心未淸-달이 대답하다.- 問爾靑天月, 那能如許明?人心緣底事, 恒苦未澄淸?【問月.】値玆雲掃夜, 定見本來明.但得除私意, 何憂心未淸?【月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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