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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학동을 노닐며 遊靑鶴洞 청학은 어느 해나 이 땅에 돌아올까 靑鶴何年此地回동 입구에서 머무르니 별천지 열리네 留將洞口別天開천 겹 구름 속에 신선의 인연 있어서 雲千疊裏仙緣在백 편의 시 읊는 중에 길손이 찾아왔네171) 詩百篇中客屐來산골물은 가는 대로 들어가 작은 우물로 통하고 澗入細篁通小井바위는 멋진 나무와 이웃하여 평대가 되어주네 石隣嘉樹作平臺나그네는 절로 감흥도 많은 법이니 遊人自是多興感새 매미는 더 슬프게 울지 말지어다 莫遣新蟬響轉哀 靑鶴何年此地回, 留將洞口別天開.雲千疊裏仙緣在, 詩百篇中客屐來.澗八細篁通小井, 石隣嘉樹作平臺.遊人自是多興感, 莫遣新蟬響轉哀. 백……찾아왔네 후창이 여행을 하며 기행시를 쓰면서 청학동에 이르른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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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종44)에 가랑비가 내려 芒種小雨 때마침 이 망종일에 適玆芒種日가랑비가 남쪽 고을에 내리네 小雨下南州볏모를 심으니 푸르름이 흩어지고 靑散禾苗植보리향기 감도니 익기를 재촉하네 黃催麥氣浮신령한 공력은 밭두둑에서 보고 神功看壟畔남은 비는 구름 끝에서 바라네 餘澤望雲頭시의 소재를 보탰다 기뻐하지 말라 莫喜添詩料농사짓지 않고 유람한 것 부끄러우니 不農愧謾遊 適玆芒種日, 小雨下南州.靑散禾苗植, 黃催麥氣浮.神功看壟畔, 餘澤望雲頭.莫喜添詩料, 不農愧謾遊. 망종(芒種) 24절기의 아홉 번째이다. 소만(小滿)과 하지(夏至)의 사이인 양력 6월 5일경이 된다. 이때가 되면 보리는 먹게 되고 모를 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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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짓날에. 소강절의 시에 차운하다 冬至日 次邵康節韻 우레가 땅 아래에서 진동하니114) 雷自重泉動절기가 한밤중부터 바뀐다오 節從半夜移음과 양이 교대하는 날이요 陰陽交代日천지의 마음을 보는 때라오115) 天地見心時재계하고서 몸을 비로소 감추고 齋戒身方掩잘못 고쳐 성인을 바랄 수 있네 改遷聖可希사람은 역상과 관계있으니 人爲關易象이 이치 포희씨에게 근본을 둔다오116) 此理本庖犧 雷自重泉動, 節從半夜移.陰陽交代日, 天地見心時.齋戒身方掩, 改遷聖可希.人爲關易象, 此理本庖犧. 우레가……진동하니 《주역》에서는 동짓달인 11월을 복괘(復卦)에 대응시켰다. 《주역》 〈복괘 상(象)〉에 "우레가 땅속에 있는 형상이 복괘이니, 선왕이 이를 보고서 동짓날에 관문을 닫아 장사꾼과 여행자가 다니지 못하게 한다.[雷在地中, 復, 先王以至日閉關, 商旅不行.]"라고 하였다. 천지의……때라오 《주역》 〈복괘(復卦) 단(彖)〉에 "복에서 천지의 마음을 본다.[復其見天地之心乎!]"라고 하였다. 천지의 마음이란 양(陽)이 소멸하지 않아 끊임없이 만물을 생성하는 것을 말한다. 사람은……둔다오 포희씨(庖犧氏)는 복희씨(伏羲氏)로, 《주역》의 근간이 되는 팔괘(八卦)를 처음 만들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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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재 족형 방술 에게 곡하다 哭兢齋族兄【邦述】 세도가 쇠퇴하여 옛날과 달라졌으니 世道衰頹異古先선인의 수명과 복록 어찌 온전할 수 있으랴 善人命祿豈能全욕심 비운 신천옹처럼 온종일 기다리더니 信空靑翰長終日눈 맞은 찬 소나무는 늘그막에 이르렀네 經雪寒松到老年그만이로세 한번 잠들어 깊은 땅으로 돌아가니 一枕已焉歸厚壤온갖 인연을 어찌 하늘에 물을 수 있겠는가 萬緣何足問蒼天구비521)가 오히려 참된 군자임을 증명하니 口碑猶證眞君子이 고을에 좋은 이름을 전하기에 적합하네 副得玆鄕美號傳 世道衰頹異古先, 善人命祿豈能全?信空靑翰長終日, 經雪寒松到老年.一枕已焉歸厚壤, 萬緣何足問蒼天?口碑猶證眞君子, 副得玆鄕美號傳. 구비(口碑) 좋은 사적을 돌에 새기지 않고도 여러 사람의 입으로 전해지는 것이 비석에 새긴 것과 마찬가지라 하여 생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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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집에 손님이 들어 山牕有客 맥추43)에 한꺼번에 석류꽃 피고 비가 내리더니 麥秋榴雨一時咸냉기가 산창에 들어 베적삼 입은 이 겁이 나네 冷入山牕㤼布衫장쾌하게 관광하는 젊은이에겐 경물이 풍부하고 壯觀少年饒景物홀로 은거하는 나는 소나무 전나무를 어루만지네 深居獨我撫松杉이 마음은 기둥을 흔들기 어렵듯이 서 있거니 此心如立難搖柱백성의 풍속이 어찌 점점 바위 보기를 꺼려하랴 民俗何嫌轉見巖요즘에 스스로 맑은 운치가 많아 만족스러운데 近日自多淸致足머무는 객이 지은 시도 보통 사람보다 뛰어나네 賦詩留客亦超凡 麥秋榴雨一時咸, 冷入山牕㤼布衫.壯觀少年饒景物, 深居獨我撫松杉.此心如立難搖柱, 民俗何嫌轉見巖?近日自多淸致足, 賦詩留客亦超凡. 맥추(麥秋) 보리가 익는 계절이라는 말로, 음력 4, 5월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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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헌기 止軒記 하늘이 위에서 그쳐 일월이 빛나고 밝으며, 땅이 아래에서 그쳐 산천이 편안하고 고요하며, 아버지는 자애로움에 그치고 자식은 효도에 그치며, 임금은 인(仁)에 그치고 신하는 공경에 그치며, 여러 사물과 종류에 이르기까지 각각 그칠 곳에 그쳐 천하의 이치가 얻어진다. 솔개는 연못에서 뛸 수 없고 물고기는 하늘에 이를 수 없으며, 배는 육지에 다닐 수 없고 수레는 물에 다닐 수 없으니, 이것은 하늘이 낳을 때 굳게 정하여 옮기거나 바꿀 수 없는 도리이다. 이 때문에 행실은 방정하게 하려고 하여 움직임에 반드시 법도로써 하는데 성인의 입장에는 "당신의 마음이 그치는 바에 편안히 하라."라고 하며,229) 현인의 입장에는 "그 그침을 공경하라."라고 하였다.230) 그러나 사물에 나아감에 반드시 먼저 마땅히 그칠 바를 궁구함이 있어야 이에 능히 그 마땅히 그칠 바를 얻어 그칠 수 있다. 성현의 글은 비록 가리키는 뜻이 같지 않고, 학자의 공부는 비록 과정과 조목이 동일하지 않으나 요컨대 그칠 곳을 알아 그침을 얻는 것에서 벗어나지 않을 뿐이다. 학문사변(學問思辨)은 그 그침을 아는 소이이고, 조존천리(操存踐履)는 그 그침을 얻는 소이이다. 수레의 바퀴와 새의 날개는 형세가 반드시 서로 기다리지만 체(體)와 용(用), 본(本)과 말(本末)은 또 경중의 구분이 없을 수 없다.오호라! 물이 그치면 맑고 거울이 그치면 허명하니, 《주역》에서 이른바 "지도(止道)는 광명(光明)하다."231)라는 것은 이 때문이 아니겠는가?조자명(曺子明) 군이 '지(止)'자로 헌(軒)에 이름을 붙여 고인이 반우(盤盂)의 명(銘)232)을 지었던 것에 견주었으니, 그 요체를 얻어 힘쓸 바를 안다고 이를 만하다. 더욱더 힘쓸지어다. 天止於上而日月光明。地止於下而山川寧謐。父止於慈。子止於孝。君止於仁。臣止於敬。以至庶事庶類。各止其止。而天下之理得矣。鳶不可以躍淵。魚不可以戻天。舟不可以行陸。車不可以行木。此是天生鐵定不可移易底道理也。是以行欲其方。動必以矩。而在聖人則曰安汝止。在賢人則曰欽厭止。然卽事卽物。必先有以窮其所當止。乃能有以得其所當止而止之。聖賢之書。雖指意不同。學者之功。雖課條不一。而要不出乎知止得止而已。學問思辨。所以知其止也。操存踐履。所以得其止也。車輪鳥翼。勢必相須。而體用本末。又不無輕重之分。嗚乎。水止則淸。鑑止則虛。羲經所謂止道光明者。不以是耶。曺君子明以止號軒。視爲古人盤盂之銘。可謂得其要而知所務矣。益加勉焉。 성인의……하며 《서경》 〈익직(益稷)〉에서 신하인 우(禹)가 순(舜)임금에게 한 말이다. 현인의……하였다 《서경》 〈태갑 상(太甲上)〉에서 이윤(伊尹)이 태갑(太甲)에게 한 말이다. 지도(止道)는 광명(光明)하다 《주역》 〈간괘(艮卦) 단사(彖辭)〉에 "간(艮)은 그침이니, 때가 그쳐야 할 경우에는 그치고 때가 가야 할 경우에는 가서 동(動)과 정(靜)이 때를 잃지 않으니 그 도(道)가 광명(光明)하다."라고 한 것을 말한다. 반우(盤盂)의 명(銘) 반(盤)은 세수나 목욕을 할 때에 쓰는 그릇이고, 우(盂)는 음식을 담는 그릇이다. 《근사록》 〈존양(存養)〉에 "옛사람은……소반과 사발, 안석과 지팡이까지 명을 새기고 경계의 말을 새겼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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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암기 遯庵記 미둔(尾遯)은 위태롭고205) 계둔(係遯)은 병이 있고206) 비둔(肥遯)은 이롭지 않음이 없으니,207) 지금 주인의 은둔은 어디에 있는가?주인은 보성[山陽]의 일개 선비로 일찍 명경(明經)208)을 공부하였으나 합격하지 못하였고, 중년에 이르러 시국의 상황이 날로 그릇되어 가는 것을 보고 드디어 두봉(斗峯) 만첩 가운데 한 채의 집을 짓고 문미에 편액을 돈암(遯庵)이라 하였다. 이미 세상에 출각(出脚, 벼슬에 나아감)하지 않아 지체하여 머물며 결정하지 못할 단서가 없으니 미둔이라 할 수 없고, 얽매여 연모하여 잊지 못하는 뜻이 없으니 계둔이라 할 수 없다. 오직 먼 곳에 처하고 바깥에 있어 은둔하고 또 은둔함이 되니, 비둔이 된다. 지체하여 머물거나 얽매여 지체함이 없어 초연하게 떠나고 우뚝이 일어나기를 마치 구름에 들어가는 기러기와 물에서 헤엄치는 물고기 같이 하면 그 크고 여유 있는 것이 어찌 이른바 비둔이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산을 베게 삼고 골짝을 누대 삼아 물마시고 명아주 먹으니, 사람들은 모두 주인이 가난하다고 말하지만 나는 유독 주인은 여유롭다고 여긴다. 尾遯則厲。係遯則疾。肥遯則無不利。今主人之遯。何居焉。主人山陽一布衣。早治明經。不利於有司。及至中身。見時象日非。遂構一區屋子於斗峯萬疉之中。扁其楣曰遯庵。旣不出脚於世。而無遅留不決之端。則不可謂尾遯也。無係戀不忘之意。則不可謂係遯也。惟其處遠在外。而爲遯之又遯。則天山之上九也。無遲留係滯之爲。而超然而逝。卓然而舉。如入雲之鴻。游水之魚。則其碩大寬倬。豈非所謂肥遯者耶。枕山樓谷。飲水茹萊。人皆謂主人之貧。而余擉以爲主人之肥也。 미둔(尾遯)은 위태롭고 《주역》 〈돈괘(遯卦) 초육(初六)〉에 "돈의 꼬리라 위태로우니, 가는 바를 두지 말아야 한다.[遯尾, 厲, 勿用有攸往.]"라고 한 것을 말한다. 계둔(係遯)은 병이 있고 《주역》 〈돈괘 구삼(九三)〉에 "매여 있는 은둔이라 질병이 있어 위태로우니, 신첩(臣妾)을 기르는 일에는 길하다.[係遯, 有疾, 厲, 畜臣妾, 吉.]"라고 한 것을 말한다. 비둔(肥遯)……없으니 《주역》 〈돈괘 상구(上九)〉에 "여유 있는 은둔이니 이롭지 않음이 없다.[肥遯, 無不利.]"라고 한 것을 말한다. 명경(明經) 과거 제도에 선비를 선발하는 과목의 한 가지로서 경술(經術)에 밝은 사람을 선발하는 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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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몽재151)에서 감회가 있어 訓蒙齋有感 담로152)는 옛날 어느 때에 湛老昔何日이곳 서재에서 어린아이를 가르쳤나 訓蒙此有齋샘물과 바위는 길이 변치 않으나 泉石長不改흥망성쇠가 그 사이에 있었네 興廢間有之스승 모시고 일찍이 이곳에 왔었는데 陪師曾到此때마침 중수하고 있을 때였네 適値重修時강회를 베풀자 명단에 이름 올리고 設講聯名案예를 익히며 함께 술잔을 들었네 習禮擧酒巵세월이 얼마나 흘렀는가 日月問幾何세상일은 바둑판처럼 번복되네 世事飜覆棋내가 와서 옛날 노닐던 곳인데 我來經舊遊뜨락 가득히 풀만 무성히 자랐네 滿庭草萋萋맑은 바람이 늙은 소나무에 불어오니 淸風入老松완연히 거문고를 연주하는 듯하네 宛若奏絃詩오산153)엔 사람이 이미 세상을 떠났고 鰲山人已遠화문에도 대들보가 또한 꺾였네154) 華門樑亦摧남긴 운치는 어디에 있는가 餘韻何處在말없이 그리워하는 바가 있으니 黙然有所思물고기와 산새여 江魚與山鳥이 한스러움을 너희들은 응당 알리라 此恨爾應知 湛老昔何日, 訓蒙此有齋?泉石長不改, 興廢間有之.陪師曾到此, 適値重修時.設講聯名案, 習禮擧酒巵.日月問幾何? 世事飜覆棋.我來經舊遊, 滿庭草萋萋.淸風入老松, 宛若奏絃詩.鰲山人已遠, 華門樑亦摧.餘韻何處在, 黙然有所思.江魚與山鳥, 此恨爾應知. 훈몽재(訓蒙齋)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 1510~1560)가 1548년(명종3)에 순창 점암촌 백방산 자락에 지은 강학당이다. 김인후는 조선 중기의 유학자이자 문신으로, 본관은 울산(蔚山), 자는 후지(厚之), 호는 하서(河西) 또는 담재,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1531년(중종26) 성균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입학한 뒤 이황(李滉) 등과 교우가 두터웠다. 제자로는 정철(鄭澈)ㆍ변성온(卞成溫)ㆍ기효간(奇孝諫)ㆍ조희문(趙希文) 등이 있다. 저서에 《하서집》ㆍ《주역관상편(周易觀象篇)》ㆍ《서명사천도(西銘事天圖)》ㆍ《백련초해(百聯抄解)》 등이 있다. 담로(湛老) 담재(湛齋) 김인후를 높여 칭한 말이다. 오산(鰲山) 전라남도 장성군(長城郡)의 별칭으로, 여기서는 하서 김인후를 가리킨다. 화문(華門)에도……꺾였네 화문은 계화도(繼華島)에 살았던 간재 전우의 문하를 가리키며, 여기서는 후창의 스승인 간재도 죽었다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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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곡에서 느낀 바 있어서 11세조 죽계공이 이곳에 터를 잡고 8세조 통덕랑 공에 이르러 창동으로 이거하였다. 板谷有感【十一世祖竹溪公卜居于此, 至八世祖通德郞公移居滄東,】 이 곳을 지날 때마다 슬픔을 못 이기니 每經此地不勝悲우리 선조 어느 때에 터를 잡았었던가 吾祖何時卜築爲검은 대숲은 시들어 눈 비에 꺾이었고 烏竹叢殘摧雨雪푸른 냇물은 얕아져 잡초가 자랐구네 碧溪水淺長蒿藜백 년 고향297)을 어찌 버릴 수 있으랴 百年梓里緣何棄열 척의 푸른 비석에서 공적을 알겠네 十尺藍碑蹟可知회수의 감귤298)이 지금 8대까지 살았으니 淮橘如今生八葉몸조심하여 선대의 미덕을 이어 가려네 飭身尙欲繼先徽 每經此地不勝悲, 吾祖何時卜築爲.烏竹叢殘摧雨雪, 碧溪水淺長蒿藜.百年梓里緣何棄, 十尺藍碑蹟可知.淮橘如今生八葉, 飭身尙欲繼先徽. 고향 원문의 '재리(梓里)'는 부모가 살던 고향을 뜻하는데, 《시경》 〈소반(小弁)〉에 "부모가 심은 뽕나무와 가래나무도 공경한다.[維桑與梓 必恭敬止]"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회수의 감귤 《주례(周禮)》 〈고공기 서(考工記序)〉에 "감귤이 회수를 넘어 북으로 가면 탱자로 변한다.[橘踰淮而北爲枳]"라고 하였는데, 여기서는 창동으로 이거해서도 변치 않은 후손들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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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가는 도중에 扶安道中 걸어서 봉도로 나서니 徒步出蓬島여행길 참으로 힘드네 行李良苦哉이번에 가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此行問緣底죽은 이를 슬피 곡하려 함이네 只爲哭死哀죽은 이를 곡하는 건 또 왜인가 哭死亦何爲가서 돌아오지 않아도 구원할 수 없어서네 無捄去不回이 몸이 돌아간 뒤로는 此身歸去後곡하는 자가 또 얼마나 올까 哭者復幾來삶과 죽음이 오가는 중에 生死往來中세월만 절로 재촉하는구나 歲月自相催 徒步出蓬島, 行李良苦哉.此行問緣底, 只爲哭死哀.哭死亦何爲, 無捄去不回.此身歸去後, 哭者復幾來.生死往來中, 歲月自相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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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서 선생의 옛터를 지나다가 송강의 시에 차운하다 過河西先生遺墟 次松江韻 땅 기운이 모였을 뿐만 아니라 非徒鍾地氣선생은 실로 저절로 선생이 되었네 翁實自爲翁시를 외우니 참된 공부가 징험되는데 詩誦眞工驗천지 사이에는 두 사람이 있었지359) 天地二人中 非徒鍾地氣, 翁實自爲翁.詩誦眞工驗, 天地二人中. 천지……있었지 《하서집(河西集)》 제7권 〈문인에게 보여주다[示門人]〉 시에 나온다. 하서는 김인후(金麟厚, 1510~1560)의 호이다. 본관은 울산, 자는 후지(厚之), 다른 호는 담재(澹齋), 시호는 문정(文正)이다.)의 호이다. 1540년 별시 문과에 급제했고, 1545년 을사사화(乙巳士禍)를 계기로 고향 장성에 돌아가 성리학 연구에 정진했다. 저서에 《하서전집》ㆍ《주역관상편(周易觀象篇)》ㆍ《서명사천도(西銘四天圖)》ㆍ《백련초해(百聯抄解)》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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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천163)의 사려재에 이르러서 到楡川思勵齋 옛 친구를 볼 수 없으니 故人不可見묵은 풀에 눈물만 줄줄 흐르네 宿草淚潛然어찌 알았으랴 하늘이 보답 잘못하여 那知天錯報남은 난초마저 함께 시들게 할 줄을 幷與萎遺蘭봄바람이 끊임없이 불어오니 東風吹不盡말 하려다 차라리 침묵하네 欲語寧無言뒷일을 어디에 부탁하겠는가 後事託何在조카들 많은 데다 어질기도 하다네 諸姪多且賢 故人不可見, 宿草淚潛然.那知天錯報? 幷與萎遺蘭.東風吹不盡, 欲語寧無言.後事託何在? 諸姪多且賢. 유천(楡川) 경상도 청도(淸道)에 속해 있는 역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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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당 마을을 들렀다가 감회가 일어 過池塘里有感 서계공의 할아버지요 좌망공은 손자이니 西溪之祖坐忘孫이곳에 살던 그 당시엔 일족이 번성했었네 宅此當年族盛繁진씨의 관중에서 사위170)가 되었고 晉氏館中爲玉潤과거급제에 장원을 차지하였네 龍頭科第占魁元이름난 터전은 이미 남의 물건이 되었고 名基已作他人物남긴 자취만 전한다 옛 노인들이 말하네 遺蹟相傳故老言해질 무렵에 배회하며 세 번 탄식하고 薄暮徊徨三嘆息선대의 형제 같은 뿌리임에 감회가 이네 有懷先世棣同根 西溪之祖坐忘孫, 宅此當年族盛繁.晉氏館中爲玉潤, 龍頭科第占魁元.名基已作他人物, 遺蹟相傳故老言.薄暮徊徨三嘆息, 有懷先世棣同根. 사위 원문의 '옥윤(玉潤)'는 진(晉)나라 때 장인인 악광(樂廣)과 사위인 위개(衛玠)가 똑같이 명망이 높았으므로, 당시의 논자(論者)들이, "장인은 얼음처럼 깨끗하고, 사위는 옥같이 윤택하다.〔婦翁冰淸, 女壻玉潤.〕"라고 칭찬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사위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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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운자를 써서 스스로 기록하다 自誌用先師韻 공자를 배우는 한민족이 복건 하나 쓰고 孔學韓民一幅巾외로이 홀로 서서 단지 하늘에 의지하네 孑然獨立但依天적과 원수가 삼천 리에 널리 서 있었기에 敵仇遍立三千里성과 도는 오십 년 동안에 듣기 어려웠네 性道難聞五十年죽도록 중화 법도 지키니 돌아갈 땅이 있고 死守華規歸有地태어나서 '의' 자를 알아도 농사지을 밭 없네 生知義字食無田아버지와 스승이 부탁한 뜻 소중히 여기나 父師珍重託付意응당 후손 중에 말 잘못 전한 이 있으리라 應有後人論失傳 孔學韓民一幅巾, 孑然獨立但依天.敵仇遍立三千里, 性道難聞五十年.死守華規歸有地, 生知義字食無田.父師珍重託付意, 應有後人論失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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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지은 명당리의 족대부 영조 에 대한 만사 追挽明堂里族大父【永祚】 옛 덕을 이제는 보기 어려운데 舊德今難見우리 집안에서 또 공을 잃었네 吾門又失公언사는 항상 점잖하고 言辭常簡黙기상은 절로 온화했네 氣像自從容시례의 학문 평생동안 행했는데 詩禮百年在넉 자 높이의 봉긋한 무덤282)이라네 斧堂四尺崇무슨 일로 상여줄을 잡지 못하고 緣何違執紼못난 나 뒤늦게 곡하며 눈물 흘리나 追哭淚龍鍾 舊德今難見, 吾門又失公.言辭常簡黙, 氣像自從容.詩禮百年在, 斧堂四尺崇.緣何違執紼, 追哭淚龍鍾. 무덤 원문의 '부당(斧堂)'은 원래 도끼날처럼 위로 좁게 만든 무덤을 뜻하지만, 일반적인 무덤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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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와 박공 유사장 德窩朴公遺事狀 공의 휘는 준원(準元), 자는 정삼(正三)이니, 박씨의 계통은 밀양에서 나왔다. 우리 조정에서 휘 울(蔚)은 찰방(察訪)이고, 이분이 휘 맹성(孟誠)을 낳았으니 첨정(僉正)이며, 이분이 휘 영걸(永傑)을 낳았으니 부호군(副護軍)으로 이조 참의(吏曹參議)에 추증되었고, 이분이 휘 억서(億瑞)를 낳았으니 사맹(司猛)이다. 이분이 낳은 휘 지수(枝樹)141)는 감찰(監察)로 임진년(1592)에 입근(立慬 절개를 지켜 죽은 것)하였고, 좌승지(左承旨)에 추증되었으며 정려(旌閭)의 명이 내려졌다. 이분이 낳은 휘 천주(天柱)는 주부(主簿)이고, 이분이 휘 성소(成素)를 낳았으며, 이분이 휘 상언(尙彦)을 낳았으니 첨추(僉樞)이고, 이분이 휘 필익(必益)을 낳았다. 이분이 낳은 휘 경린(慶麟)은 첨추이니 공의 고조이다. 증조는 영환(英煥)이고, 조부는 재기(在璣)이며, 부친은 규진(圭鎭)이니, 대대로 은덕(隱德)이 있었다. 모친 공주 이씨(公州李氏)는 모(某)의 따님으로 2녀를 두었고, 모친 김해 김씨(金海金氏)는 모의 따님이니, 헌종 기유년(1849) 5월 6일에 능주(綾州) 벽지리(碧池里)에서 공을 낳았다. 공은 어려서 지극히 착한 성품이 있어 효우(孝友)로 널리 이름이 알려졌고, 9세에 부친상을 당했을 때에 슬프게 부르짖음이 다함이 없어 거의 기절했다가 다시 깨어났는데, 본 자들의 칭찬이 자자하였다. 모친과 조부모를 섬길 때에 정성과 노력을 다하였으니, 몸을 편안히 해드리고 입에 맞는 음식을 드리는 데에 모두 넉넉하지 않음이 없었다. 모친의 성품이 엄하였지만, 공이 온화하고 부드러운 얼굴을 하여 간모(幹母)142)의 도를 잘 얻었다. 어느 날 상자에서 우연히 그 선인(先人)이 기록한 전권(錢券)을 손에 넣고 말하기를, "저 사람이 빌려 가지 않았다고 말하는데, 만일 내가 발설한다면 그가 반드시 불복할 것이니, 쟁단(爭端)을 야기하는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하고 드디어 이를 불태웠다. 공의 족숙 우인공(愚忍公)과 함께 산소 아래에 있는 옛집을 청소하고 스승을 택하며 벗을 맞이하여 자손들의 학업을 익히는 곳으로 삼았는데, 가르치는 과정(課程)과 모든 절도가 분명하여 조리와 두서가 있었다. 종족이 번성하여 같은 마을에 함께 사는 자가 백여 집이었는데, 은의(恩誼)가 조화롭고 흡족하여 한 사람도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자가 없었다. 성품은 침착하고 장중(莊重)하며 질박하고 성실하여 평소에 말과 웃음이 적고 출입은 간소했으며, 속되고 잡스러운 장난을 눈으로 보지 않고, 진귀하고 보기 드문 물건을 집으로 들이지 않았으며, 성기(聲伎)143)·잔치·세력과 이익·번화한 것에 대해서는 담박하였다. 오직 빛을 감추고 종적을 감추어 어리석음을 안고 졸렬함을 지키는 것을 궁극의 가계(家計)로 삼았다. 무신년(1908) 12월 24일에 고종명하였는데, 임종할 때 두 아들을 돌아보고 말하기를, "위로 구순의 늙은 어버이가 계신데 내가 이 지경이 되어 불효의 죄가 크다. 너희들은 잘 섬기고 잘 봉양하여 구천(九泉)에 있는 네 아비의 한을 무겁게 하지 말라."라고 하였다. 같은 동네 신정리(新井里) 뒤 기슭 조부 산소 아래 건좌(乾坐)의 언덕에 장사지냈다. 부인 광산 이씨(光山李氏)는 이정호(李貞鎬)의 따님으로 2남 2녀를 낳았으니, 아들은 박경동(朴敬東)과 박시동(朴時東)이고, 딸은 전주 이근무(李根茂)와 진주 형시만(邢時萬)에게 출가했다. 아, 내가 중년에 공과 벗이 되었고 또 외람되게 인척이 되어 친밀하게 왕래한 지 수십 년이 되었다. 이에 그의 행동거지와 풍모, 마음가짐과 일 처리가 질박하고 참되며 성실하고 삼가는 데서 나오지 않음이 없어서 조금도 거짓으로 꾸미고 속이는 뜻이 없었음을 보았으니, 옛날에 이른바 '선진(先進)'이란 자는 공이 여기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나 선진이 삼대(三代 하, 은, 주)의 말에 있었는데도 오히려 '야인(野人)'이라고 하니, 이는 공이 종신토록 침체되어 남에게 인정받지 못한 이유이다. 그러나 남이 알아주고 알아주지 못하는 것이 공에게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살고 죽는 것에 활발하고 저승과 이승에 유감이 없었으니, 이와 같을 뿐이었다. 박경동이 가장(家狀)을 가지고 와서 불후(不朽)의 글을 부탁하였는데, 내가 늙고 게다가 병까지 들어 받아서 감당하기 어려움이 있었지만 옛일을 생각해보고 또한 차마 끝내 사양하지 못하였다. 公諱準元字正三。號德窩。系出密陽。我朝有諱蔚。察訪。是生諱孟誠。僉正。是生諱永傑。副護軍贈吏曹參議。是生諱億瑞。司猛。是生諱枝樹監察。壬辰立慬。贈左承旨命旌閭。是生諱天柱。主簿。是生諱成素。是生諱尙彦。是生諱必益。是生諱慶麟。僉樞。是公之高祖。曾祖英煥。祖在璣。考圭鎭。世有隱德。妣公州李氏某女。有二女。妣金海金氏某女。憲宗己酉五月六日。生公于綾州碧池里。幼有至性。孝友著聞。九歲遭外艱。哀號罔極。幾絶復甦。見者嘖嘖。事慈夫人及祖父母。盡誠力。便身適口。無不畢給。慈夫人性峻。公怡色婉容。甚得幹母之道。一日篋笥中。偶得其先人所錄錢券。乃曰。彼不言借貸。若自我發口。彼必不服。非所以惹起爭端乎。遂焚之。與其族叔愚忍公。掃墓下舊構。擇師邀友。爲子孫肄業之所。而指授課程。凡百節度。的有條緒。宗族蕃衍。同住一巷者。爲百餘家。而恩誼諧洽。無一人失和。禀性沈重質慤。平居寡言笑簡出入。俚雜之戱。不接於目。珍怪之物。不入於家。於聲伎遊宴勢利紛華泊如也。惟以潛先斂迹。抱愚守拙。爲究竟家計。戊申十二月二十四日考終。臨終顧二子曰。上有九耋老親。而吾至於斯。不孝罪大。汝等善事善養。母重乃父九泉之恨也。葬同坊新井里後麓祖墓下乾坐原。配光山李氏貞鎬女。圭二男二女。敬東時東。女適全州李根茂晉州邢時萬。嗚呼。余中年得與公友。又忝瓜誼。綢繆往來數十年。見其容止風儀。處心行事。無不出於質實誠慤。而無一毫欺誣矯僞之意。古所謂先進者。公其庶幾焉。然先進在三代之末。猶謂之野人。此公所以終身沈淹而不見知於人也。然人之知不知。於公何有。生死活潑。幽明無憾。斯焉而己矣。敬東奉家狀。屬以不朽之文。余老且病。有難承堪。而撫念疇昔。又不忍終辭云。 박지수(朴枝樹) 1552~1593. 임진왜란 때에 순절한 화순 출신의 문신이다. 자는 무중(茂仲), 호는 모봉(茅峰)이다. 임진왜란 때 특명으로 왕자 임해군(臨海君)과 순화군(順和君)을 호위하여 북도로 피난 도중 적병 수천 명을 만나 삼일간의 접전 끝에 온몸에 상처를 입어 회령에서 순절하였다. 간모(幹母) 《주역(周易)》 〈고괘(蠱卦) 구이효(九二爻)〉에 "어머니의 일을 주관함이니, 곧고 굳세게 해서는 안 된다.〔幹母之蠱, 不可貞.〕"라고 한 데서 나왔다. 성기(聲伎) 궁중이나 귀족의 집에 종사하는 가희(歌姬)와 무녀(舞女)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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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효자 풍양 조공 병희 병필 정려기 故孝子豐壤趙公【秉熙秉弼】旌閭記 오호라! 이것은 고 효자 조공 형제 두 분의 효행에 대한 정려이다. 세종 때 명신 호조 참판 휘 주(注)의 13세손으로 가정에서 시례의 가르침을 받아 대대로 충효를 계승하였다. 태어나 이를 갈 나이 때부터 이미 지극한 행실이 드러났는데, 종일 곁에 모시며 응대함에 어김이 없었다. 조금 자라서는 부지런히 물고기 잡고 나무하여 음식을 제공하고, 아침저녁으로 문안을 살펴 그 몸을 편안하게 해드리며 몸을 삼가고 학문에 힘써 그 뜻을 봉양하였다. 온화하고 화락하여 안팎으로 원망이 없고, 조심조심 경건하게 하여 좌우로 빠뜨리는 것이 없었다. 부모님 상을 당하여서는 슬픔으로 몸을 훼손함이 예를 지나쳐 지팡이를 짚어야 일어났고, 죽은 이를 장사지내고 먼 조상을 추모함에 반드시 정성스럽고 미덥게 하여 인정(人情)과 예문(禮文)이 모두 지극하고 슬픔과 예에 유감이 없었다. 형제간에 화락하고 즐거워 낮에는 평상을 마주하고 밤에는 이불을 같이 덮으며, 근심과 즐거움 좋은 일 괴로운 일에 어느 곳인들 같이 하지 않음이 없고 어느 때인들 함께하지 않음이 없었다. 집안일을 주관하여 일을 함에는 반드시 형을 먼저 하고 자신의 집을 뒤로 하며, 계절의 음식에 새로운 것이 생기면 반드시 형을 먼저하고 자신을 뒤로 하니, 한 집안이 화락하고 자손이 그와 같이 하였다.오호라! 이런 형이 있어 이런 아우가 있네. 위로는 그 효를 다하고 아래로는 그 우애를 다하니, 천하의 일락(一樂)220)과 군자의 삼서(三恕)221)가 여기에 있지 않다고 누가 말하겠는가. 마땅하도다! 고학(臯鶴)이 하늘에 들리고 임금의 포장이 융숭하여 오두적각(烏頭赤脚)222)이 백세토록 찬란함이여!정려의 명이 내린 것은 당저(當宁) 정묘년(1867, 고종4)인데 지금 30년이 되도록 아직 정려기를 짓지 않아 증손 창구(昌九)가 백리 길을 산 넘고 물 건너 찾아와 나에게 부탁하였다. 오호라! 공의 고을은 바로 우리 집안의 병주(倂州)223)여서 종유하여 인연을 맺은 것이 몇 세대가 되니, 어찌 일찍이 그 일을 익히 듣지 않았겠는가. 세대의 교분이 중하고 사모하여 우러른 지 오래여서 감히 적임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사양할 수 없었다. 嗚乎。此故孝子趙公兄弟雙孝閭也。以世宗名臣戶曹參判諱注十三世孫。家傳詩禮。世襲忠孝。生自髫齔。已著至行。侍立終日。唯喏無違。稍長。服勤漁樵以供其口。定省溫淸以安其體。謹身力學以養其志。溫溫怡怡。內外無怨。洞洞屬屬。左右無關。及喪親也。哀毁過禮。杖而後起。送終追遠。必誠必信。情文俱至。哀禮無憾。兄弟湛樂。晝則對床。夜則同被。憂樂甘苦。無處不須。無時不俱。幹蠱服役。必先兄而後家。時食新味。必先兄而後已。一家和之。子孫如之。嗚乎。有是兄有是弟。上以盡其孝。下以盡其友。天下之一樂。君子之三恕。孰謂不在於是耶。宜乎臯鶴聞天。天褒隆重。而烏頭赤脚。煒燁於百世也。命旌在當宁丁卯。至今三十年。尙未有記事之筆。曾孫昌九。跋涉百里。屬諸不佞。嗚乎。公之鄕卽鄙家之傡州也。遊從綢繆數三世。何嘗不稔聞其事耶。世契之重。慕仰之久。不敢以非其人辭。 천하의 일락(一樂) 맹자(孟子)가 말한 군자삼락(君子三樂) 가운데 첫 번째 즐거움인 부모가 다 생존하고 형제가 무고한 것을 말한다. 군자의 삼서(三恕) 《공자가어》 권2 〈삼서(三恕)〉에 공자가 말하기를 "군자에게는 삼서가 있으니, 임금을 능히 섬기지 못하면서 신하에게 복종을 요구하는 것은 서가 아니고, 어버이에게 능히 효도하지 못하면서 자식에게 보답을 요구하는 것도 서가 아니며, 형을 능히 공경하지 못하면서 아우에게 순종을 요구하는 것도 서가 아니다. 선비가 삼서의 근본을 밝게 안다면 몸을 단정히 하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君子有三恕,有君不能事,有臣而求其使,非恕也;有亲不能孝,有子而求其报,非恕也;有兄不能敬,有弟而求其顺,非恕也. 士能明于三恕之本,则可谓端身矣.]"라고 한 것을 말한다. 오두적각(烏頭赤脚) 윗부분은 검고 기둥은 붉은색으로 된 정려문을 말한다. 병주(倂州) 병주(幷州)의 오기인듯하다. 병주는 오래 살아 정이 든 타향을 뜻한다. 당나라 시인 가도(賈島)의 시 〈도상건(渡桑乾)〉에 "병주의 나그네살이 십 년이 지나도록, 밤낮으로 고향 함양이 그리웠네. 무단히 다시금 상건수 물을 건너니, 돌아보매 병주가 바로 고향처럼 느껴지더라.[客舍幷州已十霜, 歸心日夜憶咸陽, 無端更渡桑乾水, 却望幷州是故鄕.]"라고 한 데에서 나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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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암기 耻庵記 똑같이 사람인데 순임금은 성인이고 나는 어리석은 사람이니, 이것이 부끄러워할 만함이 심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미 그 부끄러움을 안다면 분발하여 흥기하려는 마음이 생기니, 공자께서 이른바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용(勇)에 가깝다."224)라고 한 것은 이것이 아니겠는가. 경(敬)과 태(怠) 라는 것에서 군자와 소인, 흥망과 치란이 나누어지니, 사람은 마땅히 경외(敬畏)를 항상 보존하여 동정운위(動靜云爲)에 감히 털끝만큼이라도 어기지 말아야 하니, 공자께서 이른바 "몸가짐에 부끄러움이 있어야 한다."225)라고 한 것은 이것이 아니겠는가. 소인이 자포자기하여 꺼리는 것이 없어 금수에 이르는 것 같은 것은 모두 부끄러움을 쓰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진학(進學)과 행기(行己)의 요체는 어찌 '치(恥)'라는 한 글자에서 벗어나겠는가. 맹자가 이른바 "부끄러움이 사람에 있어서 매우 크다."226)라고 한 것 또한 이것이다.김윤여(金允汝) 군이 금릉(金陵)227)의 용정(龍亭)에 집을 지어 편액을 치암(恥庵)이라 하였다. 대개 경험한 것이 점점 오래되어 들뜬 생각이 사라지고 징비(懲毖)228)한 것이 이미 많아 진심이 드러나 전날의 지나왔던 광경을 돌아봄에 그 비분(悲憤) 회오(悔悟)의 절심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그러므로 이를 게시하여 표시하고 새겨서 항상 바라보며 경계하는 마음을 깃들인 것이니, 또한 부끄러움을 알고 부끄러움이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겠다.오호라! 허물을 알고 그름을 아는 것은 사람이면 누구인들 그러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남 때문에 땀을 흘리는 자가 있고, 위엄을 두려워하여 죄를 적게 하려는 자가 있고, 명예를 바라고 나쁜 소리를 듣기 싫어하여 그러한 자가 있으니, 이것은 모두 겉으로만 바꾸고 마음을 바꾸지 못하고, 외면만 진작시키고 내면을 진작시키지 못한 것이니, 자주 회복하면서도 자주 잃어버리는 데 이르지 않을 사람이 거의 드물다. 마음을 바꾸고 내면을 진작시켜 오래고 크게 할 만한 것은 같은 것은 부끄러움이 아니면 할 수 없다. 지금 윤여는 부끄러움을 알고 부끄러움이 있는 것이 이와 같으니, 그 진학과 행기가 어찌 한량이 있겠는가. 이름을 돌아보고 의를 생각하여 힘쓰고 힘쓰며 순서에 따라서 문미 끝에 하나의 '치' 자로 하여금 남에게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均是人也。而舜爲聖。我爲愚。此非可恥之甚乎。旣知其恥。則舊迅興起之心生焉。孔子所謂知恥近乎勇。非此耶。敬怠者。君子少人興亡治亂之分。人當常存敬畏。而於動靜云爲。不敢毫忽違越。孔子所謂行己有恥。非此耶。若小人之自暴自棄而無所忌憚。以至於乃獸乃禽者。皆無所用恥焉。然則進學行己之要。豈有以外乎恥之一字乎。孟子所謂恥之於人大矣者。亦此也。金君允汝。築居于金陵之龍亭。題其顔曰恥庵。蓋其閱歷漸久。浮念剝落。懲毖已多。眞心呈露。回視前日之過境。其悲憤悔悟之切。有不可以言辭可盡。故揭之標銘。以寓常目之警者。亦可謂知恥而有恥者矣。嗚乎。知過識非。人孰不然。然有爲人而泚者。有畏威而寡罪者。有要譽惡其聲而然者。此皆革於面而不革於心。作於外而不作於內。其不至於頻復而頻失者。幾希矣。若其革於心作於內。而可久可大者。非恥不能也。今允汝之知恥而有恥如此。則其進於學行其已者。曷有量哉。顧名思義。勉勉循循。母使楣端一恥字。見恥於人也。 부끄러움을……가깝다 《중용장구》 제20장에 "학문을 좋아함은 지에 가깝고, 힘써 행함은 인에 가깝고, 부끄러움을 앎은 용에 가깝다.[好學, 近乎知; 力行, 近乎仁; 知恥, 近乎勇.]"라고 한 것을 말한다. 몸가짐에……한다 《논어》 〈자로(子路)〉에 보인다. 부끄러움이……크다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보인다. 금릉(金陵) 전라남도 강진(康津)의 옛 이름이다. 징비(懲毖) 징창(懲創)되어 삼간다는 뜻이다. 《시경》 〈주송(周頌) 소비(小毖)〉에 "내 그 징계하는지라, 후환을 삼갈 수 있을까.[予其懲, 而毖後患?]"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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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와기 醒窩記 바야흐로 꿈을 꾸고 있을 때는 스스로 평소의 진경(眞境,)이라 여기고 그것이 꿈임을 모르다가 꿈에서 깨어 그 허무(虛無)하고 환망(幻妄)함을 추산하면 허탈한 웃음거리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오호라! 온 세상사람 가운데 꿈속에 있지 않는 이가 몇 명인가? 꿈속에 있으면서 진경이라 여기지 않는 이가 또 몇 명인가? 긴 밤이 지루하여 도깨비[鬼魅]가 서로 침범하여 전도되어 미친 듯 울부짖어 죽은 것도 아니고 산 것도 아니니, 만일 꿈꾸지 않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곁에 있게 한다면 누군들 그를 위해 측은하게 여겨 깨어날 수 있기를 생각하지 않겠는가.구주[九有]는 회양(懷襄)233)하고 육경(六經)은 쓸어버린 듯한데, 완도와 해남[莞海]의 물가에 현송(絃誦)234)이 성대하다고 들어 항상 공경하고 부러워하여 매번 그 사람을 찾아보려고 하였으나 할 수 없었다. 근래에 김여회(金汝晦)를 통하여 전공서(全公瑞) 군의 어짊을 듣고 비로소 완도와 해남에 흥학(興學)의 기풍은 참으로 이유가 있는 줄 알았으니, 이가 스스로 깨어서 남을 깨우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그 깨우는 방법은 어떠한가? 학문사변(學問思辨)은 몽교관(夢覺關)이고 존양성찰(養省察)은 인귀관(人鬼關)이니,235) 모르겠으나 성와(醒窩)의 성(醒)은 과연 여기에 관계된 점이 있는가. 모름지기 큰 소리로 길게 불러 천만 사람들의 꿈을 깨우기를 마치 어두운 길가의 촛불같이 해야 할 것이다. 方其夢也。自以爲平日之眞境。而不知其爲夢。及醒而追算其虛無幻妄。不過爲虛發一笑。嗚乎。擧一世而不在夢中者。幾人。在夢而不以爲眞者。又幾人。長夜漫漫。鬼魅交侵。顚倒狂叫。非死非生。如使不夢人在於其側。孰不爲之惻然思有以醒覺乎。九有懷襄。六經掃如。而聞莞海之濱。絃誦蔚然。尋常欽艶。每欲求其人而不得。近因金汝晦。聞全君公瑞之賢。姶知莞海興學之風。良有以也。此非自醒而醒人者乎。然則其醒之之術若何。學問思辨。是夢覺關。存養省察。是人鬼關。未知醒窩之醒。果能有在於此乎。須大聲長呼。以醒千萬群夢。如昏衢之旁燭也。 회양(懷襄) 회산양릉(懷山襄陵)의 준말로, 재앙이 매우 큼을 뜻한다. 《서경》 〈우서(虞書) 요전(堯典)〉에 "넘실거리는 홍수가 널리 해를 끼쳐 거세게 산을 에워싸고 언덕을 넘는다.[湯湯洪水方割, 蕩蕩懷山襄陵.]"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현송(絃誦) 거문고를 타며 시를 읊는다는 뜻으로, 부지런히 학문을 닦고 교양을 쌓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학문사변(學問思辨)은……인귀관(人鬼關)이니 주자가 "격물은 몽교관이요, 성의는 인귀관이다.[格物是夢覺關, 誠意是人鬼關.]"라고 하였는데, 《주자어류》 권15 〈대학〉에 나온다. 몽교관은 꿈을 꾸느냐 잠을 깨느냐의 관문을 말하고, 인귀관은 사람이 되느냐 귀신이 되는가의 관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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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15 卷之十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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