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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황경함에게 답함 答黃景涵 지난 번 편지에 대해 답장을 적어 책상에 두고서 인편을 기다린 지 오래였는데, 편지를 보내기 전에 또 그대가 보내준 편지를 받았으니, 불안한 가운데 또 다시 불안하였네. 심이 이가 되고 령이 되는 것은 결안(決案)을 얻지 못한 것이 오래 되었는데, 지금 보여준 것을 받아보니 편지 가득 자세하고 긴 내용은 절실하고 정당하지 않은 것이 없으니, 족히 오래 동안 울적했던 심회를 깨드릴 수 있었네. 말단에 이른바 "당체(當體)를 취하여 바로 말하지 않으면 주리(主理)가 너무 지나친 폐단이 있고, 근본에 나아가 극도로 말하지 않으면 주리가 너무 무거운 폐단이 있다."라고 하였으니, 이 설은 지극히 옳네. 이와 같이한 이후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아 정당한 안목이 될 수 있네. 옛날 성현이 혹 심을 이로 여기고, 혹 심을 기의 신령함으로 여긴 것은 이 때문이 아니겠는가? 내가 이 설을 견지한 것이 오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가까이로는 그대에게 인정받지 못했고 멀리로는 애장에게 인정받지 못했으니, 개인적으로 불안하여 말할 만한 곳이 없었는데, 난만하게 함께 귀결됨이 오늘에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위로와 다행함이 실로 많네. 그러나 의리는 무궁하니, 오늘 스스로 치우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과연 백대의 정론이 되어 폐단이 없을 줄 어찌 보장하겠는가?무릇 이와 기는 원래 서로 떠나지 않고 원래 서로 섞이지 않네. 원래 서로 떠나지 않는다는 것으로 말하면, 이에 나아감에 기는 이미 그 가운데 포함되어 있고 기에 나아감에 이는 실로 그 위에서 누르고 있으며, 원래 서로 섞이지 않는다는 것으로 말하면, 이를 기라고 부를 수 없고 기를 이라고 부를 수 없어 이는 스스로 이이고 기는 스스로 기이네. 이것은 전날의 편지에서 '전언(專言)'과 '대언(對言)'의 설이 있었던 까닭이네. 보내온 편지에서 그 가운데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매우 당연하다고 여기고 그 위에서 누르고 있다는 것은 불가하다고 하였네. 이미 그 위에서 누르고 있다는 것을 불가하다고 여긴다면 그 가운데 포함되어 있다는 것 또한 불가해야 할 것이니, 어찌 동일한 말과 뜻인데 하나는 가하고 하나는 불가한 것이 있겠는가? 그대의 뜻은 어쩌면 기는 본래 이를 띠고 있는 물이니 그 위에서 누르고 있음을 다시 말하는 것은 불가하다는 것인가? 하문에 "《태극도》……"라고 한 것을 보면 알 수 있겠네. 만약 《태극도》로 말하자면 위의 한 개 권(圈)을 제거하고 음양의 권(圈)으로만 보면 또한 말할 수 있는 불상리(不相離) 불상잡(不相雜)이 없지 않으니, 어찌 이 한 개 권(圈)은 다시 불상잡의 오묘함이 없고 단지 불상잡만 있어 국한된다고 이르겠는가? 또 '음양' 두 글자가 경전에 드러나는 것이 한번이 아니고 많으니, 어찌 반드시 심이 음양과 같다는 것으로 바로 이 권(圈)을 가리키는 것으로 여기겠는가? 이면에 태극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원용하여 심을 풀이하려는 것이네. 그렇다면 심은 기의 정상이니, 정상의 이면에 또한 태극이 있는가? 아니면 정상을 이로 인식하기를 마치 면우(俛宇)의 설처럼 하는가? 일찍이 애장이 심은 음양과 같다는 것을 해석한 뜻을 보니, 음양으로 해석하여 동정으로 삼고 동정으로 해석하여 신(神)으로 삼고 신으로 해석하여 이(理)로 삼았으니, 이것이 그 본의이겠는가? 무릇 성은 태극과 같고 심은 음양과 같다는 것은 절로 평탄한 말인데, 어찌 지루하게 끌어 인용해서 말과 설을 허비하기를 이렇게까지 하는가? 이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주리가 너무 지나쳐 심이 이가 될 수 없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일 것이네. 무릇 불상리 불상잡은 이와 기가 모두 그러하니, 어찌 이에 불상잡이 있고 기에 유독 불상리가 있겠는가? 기에 유독 불상리가 있을 뿐이라면 이는 또한 무엇으로 말미암아 유독 불상잡이 되는 것인가? 아니면 두 개의 태극이 있어 하나는 불잡(不雜)하고 하나는 불리(不離)하는 것인가? 불리 불잡은 이것은 이와 기가 대대(對待)하는 경계인데, 만약 주복(主僕)과 수역(帥役)의 구분으로 말하면 이는 기를 통솔할 수 있고 기는 이를 통솔할 수 없으니, 이것은 선사께서 권상리(權上里)33)와 변론한 것에 "유소(有所)……"라고 하였던 것은 당시 사람의 주기의 폐단을 배척한 것으로, 그 말이 이와 같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네. 그대는 "음양권(陰陽圈)……"이라고 한 설에 대해 독실히 믿은 지 오래인데, 어찌 나의 고설(瞽說)로 능히 따질 수 있겠는가? 하단의 기질지심(氣質之心)과 본연지심(本然之心) 등 여러 가지 설은 모두 인용한 것이 정밀하고 합당하여 의리가 조창(條暢)하니, 그대가 근년에 진보한 것이 보통이 아님이 있음을 볼 수 있겠네. 作前書之答。留案俟便有日矣。書未發。而又承惠幅。不安之中。又復不安。心之爲理爲靈。未得決案久矣。今承來示。其盈幅覼縷。無非切實正當。足以破積鬱之懷。末段所謂不取當體而正言。則有主理太過之敝。不就本根而極言。則有主理過重之敝。此說極是。如此而後。可以不偏於一邊。而爲正當眼目。古昔聖賢。或以心爲理。或以心爲氣之靈者。其非爲是耶。愚之持此說。非不久矣。而近不見可於左右。遠不見可於艾丈。私竊耿耿。無可告語。誰知爛漫同歸在於今日乎。慰辛實多。然義理無窮。今之自謂不偏者。安知果爲百世之定論而無敝否也。夫理與氣。元不相離。元不相雜。以元不相離者言。則卽理而氣已包在其中。卽氣而理固壓在其上。以元不相雜者言。則理不可喚做氣。氣不可喚做理。理自理。氣自氣矣。此於前日之書。所以有專言對言之說。來書以包在其中爲甚當。而以壓在其上爲不可。旣以壓在其上爲不可。則包在其中。亦爲不可豈以同一語意而有一可一不可者乎。賢意豈以爲氣本帶理之物。不可復言壓在其上云耶。觀下文太極圖云云之說。可見矣。若以太極圖言之。則除了上一圈。只以陰陽圈觀之。亦不無不相離不相雜之可言。豈謂此一圈。更無不相雜之妙。而只有不相離者。爲之局定乎。且陰陽二字之著於經傳者。不一而多。何必以心猶陰陽。爲之正指此圈乎。以其裏面有太極。故欲援之以訓心也。然則心者氣之精爽。精爽裏面。亦有太極乎。抑認精爽爲理。如俛宇之說乎。嘗見艾丈解心猶陰陽之義。以陰陽解作動靜。以動靜解作神。以神解作理。此其本義乎。夫性猶太極心猶陰陽。自是平坦語。何其支離牽引。費了辭說乃爾耶。此非他故。以主理太過。而恐心之不得爲理也。夫不相離不相雜。理氣皆然。豈理有不相雜。而氣獨有不相雜乎。氣獨有不相離而己。則理亦何由而獨爲不相雜乎。抑有兩太極。一則不雜。一則不離者乎。不離不雜。此是理氣對待之界至。而若以主僕帥役之分言之。則理可以統氣。氣不可以統理。此先師與權上里辨者。所以有所云云。而斥時人主氣之敝。其言不得不如是也。賢者於陰陽圈云云之說。篤信之久矣。豈區區瞽說所能上下哉。下段氣質之心本然之心諸般說。皆援引精當。義理條暢。可見吾友近年進業。有不尋常也。 권상리(權上里) 권우인(權宇仁)을 말한다. 자는 신원(信元),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전라북도 정읍의 상리(上里)에서 살았다. 기정진(奇正鎭, 1798~1879)과 이기논변(理氣論辨)을 치열하게 전개한 사람이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황경함에게 답함 答黃景涵 지난번 편지에서 "양원(兩元)……"이라 한 것은 아마 그렇지 않는 듯하네. 이미 "원래 서로 섞이지 않는다.[元不相雜]"라고 하고 문득 "원래 서로 떨어지지 않는다.[元不相離]"라고 하였으니, 단지 이 두 구는 함께 거론하여 이룬 문장으로 이기의 묘함을 형용한 것은 완전하고 두루 족하여 남거나 모자라는 것이 없다고 할 수 있네. 만약 단지 "원래 서로 섞이지 않는다."는 것을 말할 뿐이라면 그 아래에 마땅히 "또한 말할 만한 서로 떨어지지 않는 것이 있다."라고 해야 하고, 만약 단지 "원래 서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할 뿐이라면 그 아래에 마땅히 "또한 말할 만한 서로 섞이지 않는 것이 있다."라고 해야 할 것이네. 지금 이미 원래 섞이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또 원래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면서, 그 사이에 또 다시 "역자(亦字)……"더하여 보태었으니, 상 위에 다시 상을 올려놓고 지붕 위에 다시 지붕을 올려놓은 것과 유사하지 않겠는가? 두 개의 원(元) 자가 만약 각각 방소(方所)가 있고 각각 시절(時節)이 있다면 천만 조각이라 해도 가하고 진흙에 물을 탔다고 해도 가할 것이네. 지금 원래 서로 섞이지 않는 가운데 원래 서로 떨어지지 않는 것이 있고, 원래 서로 떨어지지 않는 가운데 원래 서로 섞이지 않는 것이 있으니, 이른바 "너무 분개(分開)하였다."라는 것은 무슨 일인가? 여기에 또한 "원래 아니다.[元不]"라고 하고 저기에 또한 "원래 아니다.[元不]"라고 하였으니, 서로 떨어지지 않고 서로 섞이지 않는 오묘함을 더욱 볼 수 있네. 또 "원불상잡 원불상리(元不相雜元不相離)" 이 여덟 글자는 나의 창설(創說)이 아니고 이미 선유들이 말해 놓은 것으로 호락(湖洛)의 사이에 자자한 것인데 그대는 보지 못했던 것인가? 이(理)는 허공에 매달린 물이 아니고 단지 음양오행이 착종(錯綜)해도 어긋나지 않는 것이니, 이를 말하면 기는 실로 그 가운데 있네. 지금 "운행의 수각(手脚)이라 말할 수 있어도 그 가운데 포함되어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라고 하니, 이것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만일 사람이라 말한다면 이른바 수각이라는 것은 유독 그 가운데 포함되어 있지 않은가? "건도 각정(乾道各正)"을 말함에 만물이 그 가운데 포함되어 있고, 천명 솔성(天命率性)을 말함에 사람과 사물이 그 가운데 포함 되어 있으니, 이것을 모두 화니대수(和泥帶水)34)라 할 수 있겠는가? 아마 그대는 이러한 곳에 혹 너무 살피는 단서가 없지 않은 듯한데, 너무 살피면 천착하기 쉬우니, 어떻게 여기는가? 내가 "그 위에서 누르고 있다."라고 한 것은 나의 뜻에도 실로 우아하지 못하다고 의심하여 고치려 하였지만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지금 그대의 말이 이와 같으니, 실로 마땅하고 마땅하네. 이미 서로 떨어지지 않음을 말하였다면 서로 떨어지지 않는 것이 주가 되기 때문에 "이가 바로 기이고 기가 바로 이이다."라고 하고, 서로 섞이지 않음을 말하였다면 서로 섞이지 않는 것이 주가 되기 때문에 "이는 스스로 이이고 기는 스스로 기이다."라고 하니, 이른바 "이는 스스로 이이고 기는 스스로 기이다."라는 것은 어찌 이와 기가 각각 한 곳에 있어 각각 스스로 용사(用事)한다는 것을 말하겠는가? 이를 기라 부를 수 없으니 이것이 이는 스스로 이라는 것이고, 기를 이라 부를 수 없으니 이것이 기는 스스로 기라는 것이네. 위아래의 단락은 단지 하나의 뜻인데 바로 위 한 단락은 옳게 여기고 아래 한 단락은 옳게 여기지 않는가?가만히 보건대 그대는 종종 같은 것을 기뻐하고 다른 것을 싫어하며 합하는 것을 기뻐하고 나누는 것을 싫어하는 뜻이 있으니, 무슨 까닭인가? 일찍이 애장(艾丈)은 "심은 음양과 같다.[心猶陰陽]"는 한 구를 음양권(陰陽圈)에 배합하여 해석한 것을 보았는데, 그대 또한 이 권(圈)을 바로 가리킨 것이라 여겼기 때문에 나의 설에서 운운한 것이 있었던 것은 위의 태극권(太極圈)에 연결하여 말한 것이 아니었네.기가 이미 그 가운데 포함 되어 있다고 한 것은 나의 뜻은 이와 기를 합하여 일물(一物)이 된 것이 마치 금과 동과 철을 합하여 하나의 기물이 되고 소진(蘇秦)과 장의(張儀), 노자와 부처가 합하여 한 사람이 되었다는 뜻을 말한 것이 아니네. 단지 이를 말하면 기는 이가 포함한 안에 있다는 말일 뿐이니, 그대가 인용한 선사(先師)의 "기는 이 가운데의 일이다."라는 말과 무슨 구별이 있는가? 동일한 말과 뜻인데 그 취사(取舍)와 향배(向背)가 어찌 이와 같이 현격하게 차이가 나는가? "월파(月波) 어른35)……"이라 하였는데, 이것은 근세 주기(主氣)의 남은 의론이네. 이 어른의 견해는 본래 이와 같으니, 수십 년 전의 설과 여전하네. 그대의 말은 모두 옳겠지만 그러나 "심은 이의 주재이고 기의 정상이니, 그 덕을 형상하면 '허령'이라 하고 그 실제를 가리키면 '신명'이라 합니다. 미발일 때 중리를 갖춘 체가 있고 이발일 때 만사에 응하는 용이 있습니다. 주재는 그 골자의 실체이고 정상은 그 경계의 지반입니다. 동정을 꿰뚫고 적감(寂感)에 통하는 것입니다.36)"라고 하였으니, 이 단락의 문사는 오직 번잡한대도 줄이지 않았을 뿐 아니고, 주재·정상·허령·신명이라 한 것은 그 층절이 외람되이 많은 것이 아니겠는가? 정상과 허령은 실로 두 가지 물이 아니고, 신명과 주재 또한 어찌 두 건이겠는가? 만일 혹 수정한다면 "심은 기의 정상이고 이의 주재이니, 주재는 그 골자의 실두(實頭)이고 정상은 지반의 당체(當體)이다. 미발일 때 중리의 체를 갖추고 있고 이발일 때 만사에 응하는 용이 있어 동정을 꿰뚫고 적감을 갖춘 것이다."라고 하는 것이 어떠하겠는가? 또 말하기를 "발자(發者)는 기이고 발지자(發之者)는 것은 심이고 소발자(所發者)는 성입니다."라고 하였으니, 이 단락 또한 온당하지 못한 점이 있네. 심 자를 가지고 이와 기에 상대하여 삼두(三頭)로 만들면 심은 이인가, 기인가? 아니면 이기의 바깥에 별도로 이른바 심이라는 것이 있는가? 또 혹 수정한다면 위의 구절 "발자기야(發者氣也)" 네 글자를 삭제하면 가할 듯하네. 그렇지 않다면 가운데 구절"발지자심야(發之者心也)" 다섯 글자를 삭제하는 것이 어떠하겠는가? 다시 더 신중히 생각하여 깨우쳐 주시게.전날 나의 편지에서 "정상과 허령은 실로 두 가지 물이 아니고, 신명과 주재 또한 어찌 두 건이겠는가?"라고 한 것은 그 뜻이 이것으로 저기에 짝하여 확정(確定)하고 적대(的對)하다는 것이 아니네. 다만 그 두서가 외람되이 많음을 보고 이에 총괄하여 요약하면 대개 이와 같을 뿐이네. 대저 정신·정상·허령·신명 등의 말은 비록 대략 정추가 있지만 그 실제는 두 가지 물이 아니니, 어찌 유독 허령과 신명만이 분별하는 것이 없겠는가? 기·심·성을 환치(換置)한 설은 비록 이전의 설보다 나은 듯하지만 끝내 삼두의 혐의가 있음을 면치 못하고, 심이 이기를 합한 의가 있음을 보지 못하니, 어찌 그대의 뜻은 두 조목의 설 아래에 주재의 의가 있음을 보지 못한다고 여겼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만약 "발자는 기이고 소발자는 성이다."라고 한다면 소발자가 주재가 되니, 바로 장자(張子)가 이른바 "기가 유행함에 성이 주재가 된다."라는 것이고, 만약 "발지자는 심이고 소발자는 성이다."라고 한다면 발지자가 주재가 되니, 바로 장자가 이른바 "성이 유행함에 심이 주재가 된다."라는 것이니, 시험삼아 생각해 보는 것이 어떠하겠는가?일간에 우연히 《남당집(南塘集)》을 읽어보았는데, "천리가 주재하는 오묘함을 밝힌다면 그 말이 작용에 저촉되기 쉽고, 도기(道器)의 간격이 없는 오묘함을 밝힌다면 그 말이 혹 주재에 소략하다.37)"라고 한 것이 있었으니, 이 말은 처음 보았을 때 좋은 듯하여 절실하고 지극한 의론이라 여겼는데, 다시 생각해 봄에 남당의 어긋난 곳은 모두 여기에 근원한 것이었네. 무릇 이가 천변만화하는 것은 모두 그 주재의 오묘함이니, 태극이 양의(兩儀)를 낳는 것을 말함에 건도가 변화한다는 설과 같은 것이 이것인데, 다시 어디에 작용한다는 혐의가 있는가? 다만 사람의 몸에서는 작용을 성으로 여기는 것은 불가하니, 심이 있기 때문이네. 석씨(釋氏)는 성을 령으로 여겨 불생불사(不生不死)한다는 미혹이 있었기 때문에 남당이 이것으로 인하여 도리어 조화 본원의 바탕에 의심하였으니, 가하겠는가? 또 그 아래 단락에 주재에 대해 소략한 것 또한 분명히 알 수 없네. "도기(道器)가 합일하였다."는 곳에 이르러서는 그 주재의 오묘함이 마치 "일음 일양을 도라고 한다."라는 것이 이것이라고 하는 것과 같음을 보겠네. 남당의 오성(五性)은 기로 인하여 있다는 설 및 한 층의 본연을 본연 위에다 별도로 세운 것은 작용의 혐의가 있을까 두렵지 않은 것이 없네. 이미 작용이 있을까 두려워한다면 주재에 대해 소략한 것은 형세상 반드시 그렇게 되는 것이니, 이 설이 어떠한가?차설(劄說)에 "성(誠)은 성(性)에서 말한 것이고, 경(敬)은 심(心)에서 말한 것이다."라고 한 것이 있으니, 봄에 그 기상과 의사가 실로 그럴 듯한 점이 있었네. 그러나 자세히 생각해 봄에 그렇지 않은 점이 있네. 무릇 성은 실리(實理)로 말하고 실심(實心)으로 말하네. 만약 성은 실리의 자연스러운 명칭이라 한다면 모두 실리로 말하니 그 성은 실로 의논할 것이 없고, 만약 성과 경을 상대하여 말한다면 성은 실심의 의인데 "성(誠)은 성(性)이고 경(敬)은 심(心)이다."라고 하면 성과 경에 체용과 본말의 혐의가 있을 뿐 아니라 성의(誠意)의 학문과 성신(誠身)의 공부는 반드시 잡을 것이 없고 손 댈 것이 없는 곳으로 귀결될 것이네. 더구나 성(誠)이라는 것은 하늘의 도라는 한 단락의 말은 본래 성인의 마음에서 말한 것인데 지금 도리어 이라고 이르는 것인가? 또 무망(無妄)과 무위(無僞)는 본래 모두 사람의 마음에 나아가 말한 것이니, 실로 말할 만한 무망과 무위가 없는데 어찌 무망을 이(理)라고 하여 성인의 분수에 소속시키고, 무위를 심이라고 하여 현인의 분수에 소속 시키는가? 무망(無妄)과 불기(不欺)는 비록 성인과 현인의 구분이 있지만 또한 이와 심으로 구분할 필요는 없을 듯하네. 미진한 뜻이 있어서 다시 이렇게 대략 말하네.[문] 도암(陶庵)38)이 말하기를 "장지(葬地)가 비록 종가와 가깝더라도 행상(行喪)한 뒤에 뒤 좆아 조조(朝祖)39)의 의식을 두는 것은 고례의 본의를 어김이 있으니, 사사로운 견해로 만들어 행하는 것은 불가하다.……조조는 사자(死者)의 효심을 따르는 것이니, 사자가 생시에 종가를 지나가면서 어찌 조조의 예를 하지 않음이 있겠는가? 후세에 반드시 의로 일으킬 군자가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답] 만약 종가의 문을 지나면서 사시(已時)라고 해서 지나치는 것은 불가하네.[문]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맹자》를 통해 《주역》을 볼 수 있다."라고 하였으니, 의리(義利)의 구분이 음양 숙특(陰陽淑慝)과 같음을 말한 것입니다.[답] 왕도(王道)를 권하고 잠룡(潛龍)을 사용한 류와 같은 것이 모두 이러한 것이네. 前書兩元云云。恐不然。旣曰元不相雜。旋曰元不相離只此兩句。倂擧成文。而其形容理氣之妙。可謂完全周足。無所餘欠。若只言元不相雜而已。則其下當曰亦有不相離之可言。若只言元不相雜而已。則其下當曰亦有不相雜之可言。今旣言元不相雜。又言元不相離。而其間又復添補亦字云云。則其不類於床上之床。屋上之屋乎。兩元字。若各有方所。各有時節。則謂之千萬片可也。謂之和泥水可也。今元不相雜之中。而有元不相離焉。元不相離之中。而有元不相雜焉。則所謂太分開者。何事耶。此亦曰元不。彼亦曰元不。而其不離不雜之妙。尤可見矣。且此八字。非愚之創說也。已經先儒口語。而藉藉於湖洛間者。其未之見耶。理非懸空之物。只是陰陽五行所以錯綜而不差者。則言理而氣固在其中矣。今曰可以言運行手脚。而不可以言包在其中。此未知何說也。如言人。則所謂手脚者。獨不包在其中耶。言乾道各正。而萬物包在其中。言天命率性。而人物包在其中。此皆可謂和泥帶水耶。恐賢於此等去處或不無太察之端太察則易鑿如何如何壓在之云鄙意固疑其未雅而欲改未果今賢言如此固當固當旣言不相離。則不相離爲主。故曰理卽氣。氣卽理。言不相雜。則不相雜爲主。故曰理自理。氣自氣。所謂理自理氣自氣者。豈理與氣各在一處。各自用事之謂耶。理不可喚做氣。則是理自理也。氣不可喚做理。則是氣自氣也。上下段落。只是一意。而乃以上一段爲是。以下一段爲不是耶。竊觀賢者。種種有喜同惡異。喜合惡分底意。未知何故耶。當見艾丈以心猶陰陽一句。配陰陽圈而解之。賢亦以爲正指此圈。故鄙說有所云云。非連上太極圈而言之也。氣已包在其中云者。鄙意非謂合理與氣爲一物。如合金銀銅鐵爲一器。合蘇張老佛爲一人之意也。只是言理。則氣在理所包之內云爾。與賢所引先師氣是理中事之語。何別矣。同一語意。而其取舍向背。何若是遙絶耶。月波丈云云。此是近世主氣餘論也。此丈之見本如此。依舊是數十年前說話也。賢言恐皆得之。然其曰心者理之主宰。氣之精爽。狀其德則曰虛靈。指其實則曰神明。未發而有具衆理之體。已發而有應萬事之用。主宰。其骨子。精爽。其界至地盤。貫動靜。通寂感者也。此段文辭。不惟爲繁而不殺。而曰主宰曰精爽曰虛靈曰神明。其層節不爲猥多乎。精爽虛靈。固非二物。神明主宰。亦豈兩件。如或修潤。則曰心者。氣之精爽。理之主宰。主宰。其骨子實頭也。精爽。其地盤當體也。未發而有具衆理之體。已發而有應萬事之用。而貫動靜該寂感者。則何如耶。又曰發者氣也。發之者心也。所發者性也。此段亦有未穩。將心字對理與氣。而爲三頭。則心是理歟氣歟。抑於理氣之外。別有所謂心者耶。又或修潤。則刪去上句發者氣也四字。則似可矣。不然。刪去中句發之者心也五字。如何。更加三思。却以見喩也。前日鄙書。精爽虛靈。固非二物。神明主宰。亦豈兩件者其意不是以此配彼。而爲確定的對也。但見其頭緖猥多。而乃總而約之。大槩如斯耳。大抵精神精爽虛靈神明等說。雖約有精粗。而其實非二物也。豈獨虛靈神明無所分別耶。氣心性換置之說。雖若勝似前說。然終未免有三頭之嫌。而未見有心合理氣之義。豈賢意以爲以兩條說下。則未見有主宰之義故耶。若曰發者氣也。所發者性也。則所發者爲主宰。卽張子所謂氣之流行。性爲之主者也。若曰發之者心也。所發者性也。則發之者爲主宰。卽張子所謂性之流行。心爲之主者也。試思之如何。日間偶閲南塘集。有曰。明天理主宰之妙。則其言易涉於作用。明道器無間之妙。則其言或略於主宰。此言初看似好。以爲切至之論。更思之。南塘差處。皆原於此夫理之千變萬化。皆其主宰之妙。如言太極生兩儀。乾道變化之說。是也。更安有作用之嫌。但放人身上。不可以作用爲性者。以其有心故也。釋氏認性爲靈。有不生不死之惑。故南塘因此而反疑於造化本原之地。可乎且其下段略於主宰者。亦不可曉。到道器合一處。尤見其主宰之妙。如言一陰陽之謂道是也。南塘五性因氣有之說。及别立一層本然於本然之上者。無非怕有作用之嫌也。旣怕作用。則其略於主宰。勢所必至矣。夫知此說如何。劄說有曰。誠是性上說。敬是心上說。看來其氣象意思。固有似之。然細思之。有不然焉。夫誠以實理言。以實心言。若曰誠是命之道。若曰誠是實理自然之名。皆以實理言。其爲說。固無議爲。若以誠敬對言。則誠是實心之義。而曰誠是性。敬是心。則不惟誠敬有體用本末之嫌。而誠意之學。誠身之功。必歸沒把捉無下手處矣。況誠者天之道一段語。本以聖人心上說。而今反謂之理耶。且無妄無僞。本皆就人心上說。則固無無妄無僞之可言。豈以無妄謂理。而屬乎聖人分上。無僞謂心。而屬乎賢人分上乎。無妄不欺。雖有聖賢之分。而亦恐不必分理與心也。竊有未盡之意。復此略申。陶庵曰。葬地雖近於宗家。行喪後。追有朝祖之儀。有違古禮。本意不可以私見創行。止朝祖。所以順死者之孝心。則死者於生時過。宗家。豈有不朝祖之禮乎。後世必有義起之君子。若過宗家之門。恐不可以已時而戞過。程子曰。由孟子可以觀易。蓋言義利之分。如陰陽淑慝。如勸王道用潛龍之類。皆是。 화니대수(和泥帶水) 선(善), 악(惡), 시(是), 비(非) 등이 뒤섞여 분명히 구별되지 않음을 뜻한다. 월파(月波) 어른 정시림(鄭時林, 1837~1912)을 말한다. 자는 언백(伯彥), 호는 월파,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기정진(奇正鎭, 1798~1879)의 문인이다. 저서로는 《월파집》이 있다. 심은……것입니다 《중헌집(重軒集)》권2〈일신재 정 선생께 올리다[上日新齋鄭先生]〉제4서에 보인다. 천리가……소략하다 《남당집》권34〈한수재 권 선생 행장(寒水齋權先生行狀)〉에 나오는 말이다. 도암(陶菴) 이재(李縡, 1680~1746)로의 호이다. 자는 희경(煕卿), 호는 도암ㆍ한천(寒泉), 본관은 우봉(牛峰)이다. 1702년(숙종28) 문과에 급제, 형조 참판ㆍ이조 참판ㆍ양관 대제학ㆍ공조 판서ㆍ의정부 좌우참찬 등을 역임했다. 신임사화(辛壬士禍) 때 중부(仲父) 이만성(李晩成)이 노론 사대신(四大臣)의 당으로 몰려 피살되자 벼슬을 버리고 인제(麟蹄)의 설악(雪岳)에 들어가 성리학(性理學)을 닦는 데 힘썼다. 1725년(영조1) 여러 번 소를 올려 군흉(群凶)을 몰아낼 것을 청했으나 받아들이지 않자 용인(龍仁)에 퇴거하였다. 저서로는 《도암집》, 《사례편람(四禮便覽)》 등이 있다.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조조(朝祖) 발인하기 하루 전 조전(朝奠)을 마친 뒤에 영구(靈柩)를 모시고 사당에 가서 마지막으로 조상을 뵙게 하는 의식으로, 조묘(朝廟)와 같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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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암기 愼庵記 학문함에 요체를 알지 못하면 범람하기만 하고 공이 없고, 덕을 닦음에 요약함을 지키지 못하면 한만하여 힘이 없다. 그렇다면 이른바 요(要)와 약(約)은 어떤 일인가? 《대학》에 이르기를 "반드시 그 홀로를 삼간다.[必愼其獨]"라고 하였고,《중용》에 말하기를 "그 보지 못하는 바에 경계하고 삼가며, 그 듣지 못하는 바에 두려워한다.[戒愼乎其所不睹 恐懼乎其所不聞]"라고 하였으니, 《대학》의 신(愼)은 이미 발하였을 때 성찰하는 공이고 《중용》의 신은 아직 발하지 않았을 때 존양(存養)하는 공이다. 까닭에 체용(體用)을 통합하고 동정(動靜)을 갖추어 지요(至要) 지약(至約)의 의가 되니, 신이라는 한 글자에 더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선철(先哲)이 이른바 "천덕(天德)과 왕도(王道)는 그 요점이 다만 홀로를 삼가는 데 있다."라고 한 것209)은 바로 이 뜻이다.지금 주인 윤치화(尹致化)210)가 재사의 편액으로 내 걸어 밤낮으로 경계하고 힘쓸 바탕으로 삼은 것이 바로 여기에 있다면 그 이른바 지요(至要) 지약(至約)이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요체를 아는 것은 그 넓음[博]을 다하는 바이고, 요약함을 지키는 것은 그 용(用)을 지극히 하는 바이다. 그렇지 못하면 반드시 편고(偏枯)하고 고루(固陋)한 구덩이로 돌아가지 않겠는가. 《논어》 〈자장(子張)〉에 자하(子夏)가 말하기를 "배우기를 널리 하고 뜻을 독실히 하며, 절실하게 묻고 가까이 생각하면 인(仁)이 그 가운데 있다."라고 하였고,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먼저 그 큰 것을 확립하면 그 작은 것이 능히 빼앗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원컨대 주인은 힘쓸지어다! 學不知要。泛濫無功。德不守約。汗漫無力。然則所謂要所謂約。是甚底物事耶。大學曰。必愼其擉。中庸曰。戒愼乎其所不睹。恐懼乎其所不聞。大學之愼。是已發時省察之功。中庸之愼。是未發時存養之功。所以統體用該動靜而爲至要至約之義。孰有加於愼之一字乎。先哲所謂天德王道。其要只在愼獨者。正此意也。今主人尹致化所以標揭齋顔。而爲日夕警勉之地者。乃在於此。則其非所謂知要守約者耶。然知要所以盡其博也。守約所以致其用也。不然。必不歸於偏枯固陋之科也哉。子夏曰。愽學而篤志。切問而近思。仁在其中。孟子曰。先立乎其大者。則小者不能奪。願主人勉乎哉。 선철(先哲)이……것 《심경부주(心經附註)》 〈서(序)〉에 나오는 정자(程子)의 말이다. 윤치화(尹致化) 윤병현(尹秉玹, 1857~?)을 말한다, 자는 치화 호는 신암(愼庵), 본관은 남원(南原)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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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재기 修俟齋記 갑진년(1904) 가을에 백경인(白景寅) 군이 영귀정사(詠歸亭社)211)로 나를 방문하여 말하기를 "제 부친께서 근래 부춘산(富春山) 산속에 한 채의 집을 지어 만년에 지내실 장소로 삼으려 하니, 원컨대 편액을 지어주십시오."라고 하기에, 내가 다음과 같이 말하기를, "그렇게 하겠네. 천하의 모든 일은 각각 주관하는 바가 있으니, 분수를 넘고 직분을 침범하면 나라에 떳떳한 형벌이 있는데, 더구나 사람이면서 하늘의 명을 대신하고 하늘의 직분을 침범한다면 어떠하겠는가. 승침(升沈)과 헌지(軒輊),212) 영고(榮枯)와 궁통(窮通)은 모두 하늘의 명이고 조물주의 직분이다. 그러므로 맹자가 말하기를 "요절하거나 장수함에 의심하지 않아서 몸을 닦아 기다린다."라고 하여 자신에게는 닦는 것을 말하고 하늘에는 기다리는 것을 말하였으니, 단지 이 두 글자는 많은 의리를 함축하고 있어 우리들이 몸을 편안히 하고 명을 바르게 확립할 곳이 된다. 더구나 온 천하가 도도하여 도가 시대와 어긋나 두문불출하고 있으니, 힘쓸 수 있는 것은 오직 자기 분수의 일일 뿐이다. 또 듣건대, 그대 부친께서는 은거하여 행실을 쌓은 지가 수십 년이니, 백발의 노년에 이르러 무엇을 구할 것이 있겠는가. 반드시 수신(修身)하는 것을 여생을 마칠 계획으로 삼을 것이니, 부친에게 배우는 날에 시험삼아 '수사(修俟)'두 글자를 나를 위해 올려 드리면, 생각건대 반드시 빙그레 웃으며 애초에 자신의 뜻이 아님이 없다고 하실 것이네. 甲辰秋。白君景寅。過余於詠歸亭社曰。家親近構一區屋子於富春山中。以爲晩年樓息之所。願賜所以題其顔者。余曰。然。天下萬事。各有所管。越分侵職。邦有常刑。況人而代天之命侵天之職乎。升沈軒輊。榮枯窮通。皆上天之命。造物之職也。故孟子曰。殀壽不貳。修身以竢之。於己言修。於天言竢。只此二字。涵蓄多少義理。而爲吾人安身立命處也。況大宇滔滔。道與時違。杜門塞竇。所可勉。惟己分事而已。且聞大人丈隱居積行數十年。至老白首。而有何所求哉。必以修身之爲餘日究竟計。趨庭之日。試以修俟二字。爲我而獻焉。想必莞爾而笑。以爲未始非吾意也。 영귀정사(詠歸亭社) 영귀정(詠歸亭)을 말한다. 정의림(鄭義林)이 강학을 위해 1893년 12월에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회송리(會松里)에 건립한 건물이다. 여기에 아홉 성인의 진영(眞影)을 봉안하였다. 헌지(軒輊) 고저(高低), 경중(輕重), 우열(優劣)을 의미한다. 수레가 앞이 높고 뒤가 낮은 것을 헌(軒)이라 하고, 수레가 앞이 낮고 뒤가 높은 것을 지(輊)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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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금양정사에 이르러 到全州錦陽精舍 존망은 예나 지금이나 번갈아 이어지는데 存亡今昔迭相尋찾아가서 오히려 옛 사림을 의지하네 尋訪猶依舊士林이요재를 생각하니 난초가 빼어났고 憶二要齋蘭有秀삼효동에 들어서니 초심이 생기네467) 入三孝洞草生心더위 먹은 행인은 매우468)를 생각하고 行人病暑思梅雨속세에서 깬 서객은 대 그늘에 앉았네 書客醒塵坐竹陰새 벗과 옛 친구가 회포 논하는 자리라 新交舊契論懷席방관자가 깊고 얕음 따지는 건 허락지 않네 不許傍觀較淺深 存亡今昔迭相尋, 尋訪猶依舊士林.憶二要齋蘭有秀, 入三孝洞草生心.行人病暑思梅雨, 書客醒塵坐竹陰.新交舊契論懷席, 不許傍觀較淺深. 초심이 생기네[草生心] '초심(草心)'은 자식의 마음을 비유하는데, '삼효동(三孝洞)'에 들어가므로,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이 생긴다는 뜻이다. 맹교(孟郊)의 〈유자음(遊子吟)〉에 "한 치 풀의 마음을 가지고 삼춘의 햇볕에 보답하기 어려워라.[難將寸草心, 報得三春暉.]"라고 하였다. 매우(梅雨) 매실이 익는 계절인 초여름에 내리는 장맛비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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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양정사에서 이사유 한은ㆍ임병일ㆍ병렬 제군에 화답하다 錦陽精舍 和李士裕【漢膺】ㆍ林【秉一秉烈】諸君 세속 티끌이 계속 괴로이 찾아드는데 俗塵滾滾苦侵尋공연히 허명을 갖고 사림에 들어있네 枉把虛名在士林옛날 이별하고 몇 번이나 푸른 눈 씻었나 昔別幾何靑拭眼새 친구도 도리어 붉은 마음 통하구나 新知還可赤通心모름지기 장년때 참된 학업을 연마해서 須從壯歲硏眞業태평성대에 뭇 음기 물리침을 보아야지 佇見昌辰退衆陰세간의 끈끈한 교분469) 도리어 우습나니 却笑世間膠漆契황금이 다하는 곳엔 우정도 깊지 않다네 黃金盡處不交深 俗塵滾滾苦侵尋, 枉把虛名在士林.昔別幾何靑拭眼, 新知還可赤通心.須從壯歲硏眞業, 佇見昌辰退衆陰,却笑世間膠漆契, 黃金盡處不交深. 끈끈한 교분 원문의 '교칠(膠漆)'은 우정이 매우 두터운 것을 말한다. 교칠은 아교와 옻인데, 아교와 옻을 합하면 매우 견고하게 결합한다. 뇌의(雷義)와 진중(陳重)의 우정이 매우 두터웠으므로, 그때 사람들이 말하기를 "아교와 칠이 단단하다고 하지만 뇌의와 진중 두 사람의 우정만은 못하다.[膠漆自謂堅, 不如雷與陳.]"라고 하였다. 《後漢書 卷81 雷義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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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축하하며 春祝 봄 축하하는 진실한 뜻을 헛되다 하지 말라 祝春誠意莫云虛바라는 바를 구구하게 다음과 같이 쓰노라 所願區區列左如세상에 성현이 나와 해와 달처럼 밝여주고 世出聖賢明日月집에 효순한 아이 태어나 시서에 힘쓰기를 家生孝順勉詩書파랑 이는 육주에 바람이 다시 잠잠해지고 六洲波浪風還靜인민은 오전50)을 익혀 예를 소홀히 않기를 五典人民禮不疏이를 도부51)에 써서 상제가 보길 기원하니 寫得桃符祈帝鑑공적인 일을 위한 일념이요 다른 뜻은 없네 爲公一念更無餘 祝春誠意莫云虛, 所願區區列左如.世出聖賢明日, 月家生孝順勉詩書.六洲波浪風還靜, 五典人民禮不疏.寫得桃符祈帝鑑, 爲公一念更無餘. 오전(五典) 다섯 가지 윤리 도덕을 이른다. 《서경》 〈순전(舜典)〉에 "오전을 삼가 아름답게 하라 하시니 오전이 능히 순하게 되었다.[慎徽五典, 五典克從.]"라고 하였는데, 채침(蔡沈)의 《집전》에 "오전은 오상(五常)이니, 부자유친(父子有親)ㆍ군신유의(君臣有義)ㆍ부부유별(夫婦有別)ㆍ장유유서(長幼有序)ㆍ붕우유신(朋友有信)이다."라고 하였다. 도부(桃符) 복숭아나무가 귀신을 쫓는다고 하여 입춘이나 단오에 문에다 부적으로 복숭아나무 조각을 붙였으며 이를 도부(桃符)라고 한다. 후대에 여기에 상서로운 글귀를 적은 것이 입춘첩(立春帖)이나 단오첩(端午帖)의 유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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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경【정원】에게 답함 答李泰卿【正遠】 앞뒤로 두 통의 편지가 한꺼번에 도착하였는데, 연달아 봉투를 열고 읽어보니 마주앉아 차분히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네. 인하여 조부모와 부모를 모시면서 건강하여 몸에 병이 없으며 또한 더욱 좋아진다고 하니, 대단히 위로가 되네. 동서로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가르치는 것은 참으로 곤궁함을 견디는 본래 모습이니, 자신을 옭아매어 출입하지 않는 것이 비록 목전의 어떤 일에는 괴로워서 아쉽기는 하지만, 그러나 또한 네 가지 이익99) 가운데 한 가지가 아니겠는가. 더구나 농사를 대신하여 음식을 마련하는 방법은 이것을 놔두고서 다시 어찌 다른 방법이 있겠는가. 현재 처한 상황에서 보면 내가 마땅히 해야 할 바라네. 영남 사람 아무개 등이 의리의 옳고 그름을 알지 못하고서 거취를 어떻게 해야 한다고 의논하면서 애매모호한 것을 지적하고 황당무계함을 널리 퍼트려서 모함100)하는 계책으로 삼으려 하니, 이는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사로움에서 나온 것이 아님이 없네. 애초에는 그들과 더불어 변론하지 않고 도외시하려고 하였는데, 곧 부모와 스승이 모욕을 받으니 한 마디 변론이 없을 수 없다고 생각하였네. 그러므로 그들에 대해 영남에 소리 높여 책망하였으며 사방에 무고를 변론하였네. 이로부터 다시 말없이 고요하게 있으면서 저들의 행동이 어떤가를 살펴보려고 하였네. 그러나 이는 또한 사문(斯文), 세도와 중대한 관계가 있는 곳이니, 저 공백료(公伯寮)와 장창(臧倉)101) 같은 저들이 그에 대해 어찌할 수 있겠는가. 보내준 편지에서 자세히 길게 말한 것은 안에 쌓인 의기가 분출한 것으로 읽으매 나도 모르게 가슴속에서 뜨거운 피가 올라오네. 다만 바라건대 드러내지 않고 함양하며 남몰래 수신하는 공부를 더욱 실천하여 깊은 땅속 일양(一陽)으로 하여금 발전하여 하늘에 밝게 빛나게 한다면,102) 저 하찮은 무지개103)가 그 빛에 사라지지 않겠는가. 더욱 더 노력하게나. 前後兩書。一時倂至。續續披玩。可敵對穩。仍審重省康寧。體上莫痾。亦且向和。慰仰萬萬。東西往敎。此固固窮本色。絆已不出入。雖於目前甚事。苦爲可憾。然亦非四益之一端耶。況代耕供旨之方。舍此更安有別筭耶。素其位。而爲吾所當爲而已。嶺人某某軰。不知義理可否。議論去就之爲何如。而指摘其疑似。傳衍莫謬妄。以爲萋斐貝錦之計者。無非出於猜嫌之私。初不欲與之辨焉。而置之度外。旋念父師受誣。不可無一言之辨。故己有所聲責。嶺中又有所辨誣於四方。自此更欲守靜無言。以觀彼輩擧措之如何耳。然此亦斯文世道一大關數處。彼伯寮臧倉。焉能爲甭也。示中縷縷。無非自義氣蓄積中出來。讀之不覺腔血盪激。惟願益加晦餋濳修之工。使窮泉一脈。進而爲中天之明。則彼么麽蝶蝀。不其見晛乎。勉之。 네 가지 이익 《근사록(近思錄)》 권10 〈정사(政事)〉 64조에 나오는 내용이다. "횡거 선생(橫渠先生)이 말하기를 '사람들이 어린 아이를 가르치는 일에도 또한 유익함을 취할 수 있으니, 자기를 옭아매어 출입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첫 번째 유익함이요, 사람을 여러 번 가르침에 자신도 글 뜻을 분명하게 아는 것이 두 번째 유익함이요, 아이들을 대할 적에 반드시 의관을 바르게 하고 시선을 공경하게 하는 것이 세 번째 유익함이요, 항상 자신으로 인해 남의 인재를 파괴함을 근심한다면 감히 게을리 하지 못할 것이니, 이것이 네 번째 유익함이다'[人敎小童, 亦可取益, 絆己不出入, 一益也, 授人數數, 己亦了此文義, 二益也, 對之, 必正衣冠, 尊瞻視, 三益也, 常以因己而壞, 人之才爲憂, 則不敢墮, 四益也.]"라고 하였다. 모함 '처비금패(萋斐貝錦)'는 《시경》 〈항백장(巷伯章)〉에 보이는 말로 "반짝반짝 작은 무늬 자개 비단 이뤘도다.〔萋兮斐兮 成是貝錦〕"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소인들이 처음부터 작은 일을 큰 일로 만들어 군자를 모함한다는 뜻이다. 공백료(公伯寮)와 장창(臧倉) 공백료는 《논어(論語)》 〈헌문(憲問)〉에 보인다. 즉 "공백요가 계손씨에게 자로를 참소하였는데, 자복 경백이 이 일을 공자에게 고하고 말하기를 '계손씨가 틀림없이 공백료의 참소에 마음이 현혹되었습니다마는, 내 힘은 오히려 공백료를 처형하여 주검을 시장에 버리게 할 수 있습니다.' 하니, 공자가 말하기를 '도가 장차 행하여지는 것도 운명이고, 도가 장차 폐기되는 것도 운명인데, 공백료가 운명을 어찌하겠는가?' 하였다.〔公伯寮愬子路於季孫 子服景伯以告曰 夫子固有惑志於公伯寮 吾力猶能肆諸市朝 子曰 道之將行也與 命也 道之將廢也與 命也 公伯寮其如命何〕"라 하였다. 장창은 《맹자》 〈양혜왕하〉에 보인다. 전국 시대 노 평공(魯平公)이 맹자(孟子)를 만나려고 했을 때, 폐인(嬖人) 장창이 맹자가 예(禮)를 지키지 않는다는 이유로 평공으로 하여금 맹자를 만나지 못하게 하였다. 맹자의 제자인 악정자(樂正子)가 그 사실을 맹자에게 고하자, 맹자가 이르기를 "가는 것도 누가 시켜서 갈 수 있고, 못 가는 것도 누가 막아서 못 갈 수 있지만, 가고 못 가는 것은 인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노후를 만나지 못한 것은 하늘의 뜻이거니, 장씨의 자식이 어떻게 나로 하여금 만나지 못하게 하겠는가.〔行或使之, 止或尼之, 行止非人所能也. 吾之不遇魯侯天也, 臧氏之子焉能使予不遇哉?〕"라고 하였다. 깊은……한다면 주자는 〈감흥(感興)〉에서 "추운 위엄이 온 세상을 덮었어도 양맥(陽脉)은 궁천(窮泉)에서 밝아온다.[寒威九野閉 陽德昭窮泉]"라 하였다. 복괘(復卦)에서 일양(一陽)이 오음(五陰)밑에 있으면서 양(陽)이 커져 가는 모양을 지니니, 즉 난세가 치세로 변해가는 모습을 형상한다. 무지개 원문의 '접동(蝶蝀)'에서 접은 체(螮)의 오자이다. 체동(螮蝀)은 무지개의 이칭이다. 무지개는 천지의 음기(淫氣)가 뭉쳐서 된 것이므로 음흉하고 간사한 사람을 가리킨다. 《시경》 〈체동(蝃蝀)〉에 "무지개가 동쪽에 있으니, 감히 이를 가리킬 수 없네.〔蝃蝀在東, 莫之敢指.〕"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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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심숙에게 답함 答魏心叔 편지를 받들어 보매 참으로 지난해 왕림하였을 때와 같으니, 나의 고마운 마음은 오랫동안 답답했던 것을 풀어내는 것 같네. 더구나 부모를 모시면서 기거하는데 건강이 좋은 것도 알았음에랴. 편지 가득히 써놓은 내용을 보면, 마음 세움의 돈독함과 학문을 향한 부지런함을 볼 수 있으니, 이제부터 어찌 발전하지 않음을 걱정하겠는가. 비록 눈을 부비고 무릎을 맞대며 그 실마리를 엿볼 수 있는 이야기를 듣지는 못하지만, 멀리서 기대하는 마음은 더욱 커지네. 약을 쓰지도 않고 병이 낫는 약은 어찌 특별한 방법이 있겠는가. 보내준 편지에서 말한 '성실(誠實)' 두 글자가 바로 그 참된 처방이니,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는 노둔하고 저열한 하근(下根)104)으로 늙을수록 더욱 상태가 나빠져 가니, 아마도 이러한 의체(義諦)에 대해 헤아려서 답할 수 없는데, 그대의 근후한 뜻에 감동하여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으니 혜량해 줄 수 있겠는가. 문목은 또한 조목에 따라 대답할 것이니 바라건대 자세히 살펴보고 그 시비를 다시 알려주기 바라네. 《대학》은 《예기》의 편 가운데 하나로 있어서 세상 선비들은 〈내측(內則)〉이나 〈곡례(曲禮)〉 등 여러 편 등과 함께 똑같이 보았네. 그러다가 비로소 《예기》에서 뽑아내서 한 책으로 드러낸 자는 바로 정자(程子)라네. 그러므로 〈서문〉에서 특별히 정자 형제에 대해 말하였고,105) 주자(周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네. '공자'라고 하지 않고 '공씨'라고 하였는데, 증자와 자사가 모두 공씨라는 말 안에 포함되니, 전(傳) 10장이 자사가 지은 것이 아닌가.'초학자의 입문'은 공부의 발단을 가리켜서 말하고, '대인(大人)의 학문'은 도리(道理)의 처음과 끝을 총괄하여 말한 것이네106). '물(物)'은 체이고 '사(事)'는 용이네. 명덕(明德)과 신민(新民)은 남과 나에 대해서 말한 것이기에 물(物)이라고 이르고, 지지(知止)와 능득(能得)은 공부의 과정에 대해서 한 것이기에 사(事)라고 이르네. '종(終)'을 먼저 말하여야 문장이 순하네.107) 承書。正是去年承枉時。區區感沃。足令積菀釋然。矧審侍省之餘。起居百福。滿紙臚列。可見立心之篤。向學之勤。率是以往。何患不進。雖不能拭眼促膝.參聽緖餘。而遙遙期仰。於玆尢至。勿藥之藥。有何別方。來喻所謂誠寶二字。是其眞詮。如何如何。義林魯劣下根。老益荒廢。恐不足以上下於此等義諦。而感服勤意。有不能無言。倘諒恕耶。問目亦且逐條答去。幸爲視至。而回示其可否爲望。大學在禮記篇中。世儒與內則曲禮諸篇。一例等視。而始簡別而表出之者。程子也。則於序文特言兩程而不及周子者。此也。不曰孔子而曰孔氏。則會子子思皆在其中。傳十章。其非子思所述耶。初學之門。指功夫發端而言。大人之學。統道理終始而言。物體也事。用也。明德新民。是人我上說。故謂之物。知止能得。是功夫邊說。故謂之事。先言終。順文也 하근(下根) 불교의 진리를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이 약한 사람을 가리킨다. 특별히……말하였고 주희(朱熹)의 〈대학장구서(大學章句序)〉에서 "천운이 순환하여 가면 돌아오지 않음이 없기에 송(宋)나라의 덕이 융성하여 정치와 교화가 아름답고 밝았다. 이에 하남(河南) 정씨(程氏) 양부자가 나와서 맹자의 전함을 이어 진실로 이 책을 존신(尊信)하고 표장(表章)하셨다."라 하였다. 초학자의……것이네 초학지문(初學之門)이란 말은 《대학》 수장의 첫 구절 들어가기 전의 정자의 말에 보이니 "《대학》은 공씨가 남긴 책으로 초학자들이 덕에 들어가는 문이다.〔大學 孔氏之遺書而初學入德之門也〕"라 하였다. 대인지학(大人之學)이란 말은 수장 첫 구절의 주에서 "대학이란 대인의 학문이다.〔大學者 大人之學也〕"라는 말에 보인다. ​명덕과……순하네 문장이 순하다는 것은 "물에는 본말이 있고 일에는 종시가 있으니, 먼저 하고 뒤에 할 것을 알면 도에 가까울 것이다.〔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則近道矣.〕"라는 《대학》 수장의 구절을 가리킨다. 명덕과 신민은 물(物)이라 하고 지지와 능득은 사(事)라고 한 것은 위 구절의 주에서 "덕을 밝히는 것은 근본이 되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 것은 끝이 되며, 머무를 곳을 아는 것이 시작이고 머무를 곳을 얻는 것이 마지막이다.〔明德爲本 新民爲末 知止爲始 能得爲終〕"라는 구절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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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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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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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정 선생 조공찬 병서 老稼亭先生曺公贊【幷序】 여양(汝陽)에는 옛날 독행의 선비가 있었으니, 노가(老稼) 선생 조공(曺公)이 그 사람이다. 나는 근방의 후생으로 높은 산처럼 우러른 것이 지금 40년이 되었다.기축년(1889, 고종26) 여름 그의 손자 회계옹(晦溪翁)100)이 선생의 유장(遺狀)을 가지고 벽산(碧山)의 숙소로 나를 방문하여 보여주었다. 삼가 살펴보니, 선생은 평소에 독서는 실천을 위주로 하고 실천은 어버이 섬기는 것을 우선으로 삼았다. 근본이 확립되어 도가 생겨나 차례로 확충하였는데 한마디 말과 한 가지 행실이 순수하여 법도 가운데에서 나오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 성대한 덕과 지극한 행실은 전날 사우들의 입을 통해 들은 것과 더불어 부절을 맞춘 것 같았고 그 시종의 섬세한 것은 더욱 상세하였다. 회계옹의 문학과 명망이 세상에서 추중 받는 것은 어찌 유래한 바가 없이 그러하겠는가. 《시경》〈대아(大雅) 기취(旣醉)〉에 "군자가 효자를 두었도다.[君子有孝子]"라고 하였고, 《주역》〈박괘(剝卦) 상구(上九)〉에 "큰 과일은 먹히지 않는다.[碩果不食]"라고 하였으니, 어찌 훌륭하지 않은가.찬(贊)은 다음과 같다.은거하여 효성으로 봉양함에 隱居孝養상제의 법칙 힘써 따랐네 勉循帝則물고기 잡고 나무하며 농사지어 漁樵耕稼숙수101)가 끊이지 않았네 菽水不絶지극한 정성이 감응하는 바에 至誠攸感하늘이 상서를 내리네 天翁生祥하루의 봉양을 一日之養삼공과 바꾸지 않네102) 不換三公광채를 숨겨 베풀지 않았지만 潛光不施여풍은 사람에게 남아있네 餘風在人많은 사람들의 칭송 쇠하지 않아 輿誦不衰후백이 서로 천거하네 侯伯交薦포증하는 일명이 貤褒一命돌아가신 뒤에 더욱 융숭하네 身後彌隆서석산103) 남쪽에 瑞石之陽여수가 넘실거리네 汝水洋洋물가에 한 언덕 있으니 濱有一邱화목이 무성하네 有亭瀟灑선생께서 지내시던 곳이네 先生遺庄노가라 편액을 걸었으니 揭以老稼은미한 뜻 더욱 드러나네 微意愈彰후손이 아름다움 계승하여 有孫趾美문과 담장이 공허하지 않네 門墻不空나의 숙소로 방문하여 過我旅榻유문을 보여 주네 示以遺文두 손으로 받들어 장엄하게 읽어보니 雙擎莊讀글자마다 전훈이네 字字典訓생전에 미처 뵙지 못한 것 한스러우니 恨不及時이것을 보고 스스로 힘쓰네 鑑此自勵실추시킨 고아가 失墜孤苦슬피 눈물 흘린들 어찌 쫒을 수 있으랴 哀霣曷追아, 너희 후생들은 嗟爾後生이 유장을 보아라 視此遺狀한마디가 하나의 약석이니 一言一藥어찌 공경한 마음 일으키지 않으랴 曷不起敬 汝陽古有篤行士。老稼先生曺公其人也。余以傍近後生。高山仰止。爲四十年于玆矣。己丑夏。其孫晦溪翁。持先生遺狀。過余於碧山旅舍而示之。謹覵先生。平日讀書以踐履爲主。踐履以事親爲先。本立道生。次第充拓。而一言一行粹然。無不出於規矩繩墨之中。其盛德至行。與前日得於士友之口者。如合左契。而其始終纖悉。則爲加詳矣。晦溪翁之文學聲望。見重於世者。豈無所自而然耶。詩曰。君子有孝子。易曰。碩果不食。曷不偉哉。贊曰。隱居孝養。勉循帝則。漁樵耕稼。菽水不絶。至誠攸感。天翁生祥。一日之養。不換三公。潛光不施。餘風在人。輿誦不衰。侯伯交薦。貤褒一命。身後彌隆。瑞石之陽。汝水洋洋。濱有一邱。花木蔥籠。有亭瀟灑。先生遺庄。揭以老稼。微意愈彰。有孫趾美。門墻不空。過我旅榻。示以遺文。雙擎莊讀。字字典訓。恨不及時。鑑此自勵。失墜孤苦。哀霣曷追。嗟爾後生。視此遺狀。一言一藥。曷不起敬。 회계옹(晦溪翁) 조병만(曺秉萬, 1829~1895)을 말한다. 자는 흠일(欽一), 호는 회계(晦溪),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전라도 화순에 살았던 유학자로 흥선대원군이 실세하여 직곡산장(直谷山莊)으로 은퇴하자 1875년(고종12) 대원군을 고종이 직접 모셔와야 한다는 상소를 올려 위리안치되었다. 저서로는 《회계집》이 있다. 숙수(菽水) 콩죽과 맹물이라는 뜻으로, 가난하지만 효자가 어버이를 극진하게 봉양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자로(子路)가 집안이 빈궁해서 효도를 제대로 행하지 못한다고 탄식하자, 공자가 "콩죽을 끓여 먹고 맹물을 마시더라도 기쁘게 해 드리는 일을 극진히 행한다면, 그것이 바로 효이다.[啜菽飮水盡其歡, 斯之謂孝.]"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禮記 檀弓下》 하루의……않네 왕안석(王安石)의 시 〈송교집중수재귀고우(送喬執中秀才歸高郵)〉에 "고인이 하루 동안이라도 부모를 봉양하는 것을, 삼공의 벼슬과도 바꾸지 않았네[古人一日養, 不以三公換.]"라고 하였다. 서석산(瑞石山) 무등산(無等山)을 말한다. 호남정맥의 중심 산줄기이자,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의 진산이다. 소백산맥에 솟아 있으며, 산세가 웅대해 성산으로 알려져 있다. 백제 때는 무진악, 신라 때는 무악, 고려 때는 서석산, 그밖에 무정산·무당산·무덕산 등으로도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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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수정찬 병서 枕潄亭贊【幷序】 천지 일종의 청수(淸秀)한 기(氣)가 흐르고 솟아 명산(名山)과 호수(好水)가 되고, 배태하여 일인(逸人)과 달사(達士)가 된다. 일인과 달사가 명산과 호수를 만나면 그 취미가 합하는 것은 비록 관포(管鮑)의 교분104)이라도 그 뜻을 넘을 수 없다. 이 때문에 만나면 반드시 올라 임해보고, 올라 임해보는 것이 부족하면 반드시 거닐어보고 거닐어보는 것이 부족하면 반드시 그 땅에 나아가 정자를 지어 마치 장차 거기서 몸을 마칠 것 같이 한다.호남에 금오산(金鰲山)105)이 있으니, 대개 남쪽 지방의 승구(勝邱)이다. 중고에 향 선생(鄕先生) 팔우(八愚) 홍공(洪公)106)이 일찍이 이곳에서 장수유식(藏修遊息)107)하였다. 선생은 일찍 세상을 경륜하고 백성을 구제할 뜻을 품었으나 결국 등용되지 못하였고, 뜻을 얻은 것은 오직 이 한 구역 수석(水石)일 뿐이었다. 지극한 정은 무정(無情)에 있고, 지극한 맛은 무미(無味)에 있어 여기에서 잠자고 양치하면서 그저 여생을 마쳤다. 오호라! 흥폐(廢興)는 일정하지 않고 유무(有無)는 서로 바뀌니, 사람과 정자는 볼 수 없으나 오직 바위에 걸린 구름, 고개 위의 달, 시냇가의 새, 강가의 원숭이가 있어 사람으로 하여금 옛날을 회상하며 다하지 않는 정을 갖게 한다.을유년(1885, 고종22) 봄에 6대손 채주(埰周) 씨108)가 여러 종친들과 도모하여 옛터의 조금 북쪽에 나아가 중건하여 한 번 새롭게 하였으니, 그 계술(繼述)109) 긍구(肯構)110)의 지극한 뜻에서 나온 것은 또 산수를 만난 것 때문만이 아니다. 어진 주인을 만난 것은 금오산의 다행이고, 어진 자손을 만난 것은 침수정의 다행이다. 나는 비록 불민하지만 우선 금오산을 위해 축하하고 이어서 침수정을 위해 축하한다.찬(贊)은 다음과 같다.금오산 아래는 維鰲之下홍씨의 토구111)이네 洪氏菟裘초연히 멀리 떠나 超然遐擧조용히 수양하는 것에 힘썼네 俛焉潛修정자가 황폐해 진 지 이에 오래 되었으니 亭廢斯久후손들이 도모하였네 雲仍是圖이미 정자를 지어 旣肯其構그 도모를 전술할 것 생각하네 思述厥謨종족을 모아 기뻐하고 合族懽忻벗을 불러 절시112)하였네 聚友切偲강습에 과정이 있고 誦習有程가곡113)을 때로써 하네 歌哭以時감화가 미친 곳에 濡染攸曁종유하니 또한 영광일세 從遊亦榮오호라! 세세토록 嗚乎世世그 명성 실추시키지 말지어다 無替厥聲 天地一種淸秀之氣。流峙而爲名山好水。胚胎而爲逸人達士。以逸人達士而遇名山好水。則其趣味之合。雖管鮑之契。不足以兪其意。是以。遇之必登臨焉。登臨之不足。必徜徉焉。徜徉之不足。必卽其地結其亭。若將終身焉。湖之陽有金鰲山。蓋南方勝邱也。中古鄕先生八愚洪公。嘗藏修於此。先先夙抱經濟。竟不見用。而所以相得。惟此一區水石。至情在於無情。至味在於無味。枕焉潄焉。聊以卒歲。嗚乎。廢興不常。有無相禪。人與亭不可得見。而惟有巖雲嶺月。溪鳥江猿。令人有懷古不盡之情。歲乙酉春。六代孫埰周氏。謀與諸宗。就舊址之稍北。重建而一新之。其出於繼述肯構之至意者。又不但爲山水之遇而已也。遇賢主人。金鰲山之幸也。遇賢子孫。枕潄亭之幸也。余雖不敏。先爲金鰲山賀。繼以爲枕潄亭賀。贊曰維鰲之下。洪氏菟裘。超然遐擧。俛焉潛修。亭廢斯久。雲仍是圖。旣肯其構。思述厥謨。合族懽忻。聚友切偲。誦習有程。歌哭以時。濡染攸曁。從遊亦榮。嗚乎世世。無替厥聲。 관포(管鮑)의 교분 춘추 시대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의 우정을 말한다. 《열자(列子)》 〈구명(九命)〉에 "관중이 일찍이 탄식하기를 '내가 젊어서 곤궁했을 때 포숙과 장사를 하였는데 내 몫으로 많이 이익을 취해도 포숙은 나를 욕심 많다고 하지 않았으니 이는 내가 가난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나를 낳아 준 분은 부모요,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이다.' 하였다."라고 하였다. 금오산(金鰲山) 전라남도 화순군 한천면에 위치해 있는 용암산(聳岩山, 547m)의 옛 이름이다. 용암산이라는 이름은 솟을 용(聳)과 바위 암(岩)자인데, 원래는 산위의 샘에 금자라[金鰲]가 있다고 하여 금오산으로 불렸다고 한다. 또 '산 정상에 용암이 솟아오르듯 솟은 바위가 있다'고 하여 바꿔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향 선생(鄕先生) 팔우(八愚) 홍공(洪公) 홍경고(洪景古, 1645~1699)를 말한다. 호는 팔우, 본관은 풍산(豊山)이다. 장수유식(藏修遊息) 《예기》 〈학기(學記)〉에 "군자는 학문에 대해서 학교에 들어가서는 학업을 닦고, 학교에서 물러나 쉴 때는 기예를 즐긴다.[君子之於學也, 藏焉修焉息焉游焉.]"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장(藏)은 늘 학문에 대한 생각을 품고 있는 것이요, 수(修)는 방치하지 않고 늘 익히는 것이다. 식(息)은 피곤하여 쉬며 함양하는 것이고, 유(遊)는 한가하게 노닐며 함양하는 것이다. 채주(埰周) 씨 홍채주(洪埰周, 1834~1887)를 말한다. 자는 경좌(卿佐), 호는 봉남(鳳南)이다. 계술(繼述) 조상의 하던 일이나 뜻을 끊지 아니하고 이어 가는 것을 말한다. 긍구(肯構) 긍당긍구(肯堂肯構)의 준말이다. 기꺼이 집터를 닦고 집을 짓는다는 뜻으로 아버지의 사업을 아들이 잘 계승함을 비유하는 말이다. 《서경》 〈주서(周書) 대고(大誥)〉에, "아버지가 집을 지으려 작정하여 이미 그 규모를 정했는데도 그 아들은 당(堂)의 터도 만들려고 하지 않으니 하물며 기꺼이 건물을 만들려고 하겠는가.[若考作室, 旣底法, 厥子乃弗肯堂, 矧肯構?]"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토구(菟裘) 춘추 시대 노 은공(魯隱公)이 왕위에서 물러나 노년을 보내려고 한 곳인데, 전하여 은거지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春秋左氏傳 隱公11年》 절시(切偲) 절절시시(切切偲偲)의 준말이다. 절절은 간곡하고 지극한 것이고, 시시는 자상하고 부지런한 것으로, 붕우 간에 강마하고 권면하는 모양을 형용한 말이다. 자로가 공자에게 어떠해야만 선비라고 할 만한가를 묻자, 공자가 답하기를 "간곡하고 지극하며 자상하고 부지런하며 화락하면 선비라고 이를 만하다.[切切偲偲, 怡怡如也, 可謂士矣.]"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論語 子路》 가곡(歌哭) 신령에게 노래하고 곡(哭)을 하는 것이다. 《주례》 〈춘관종백(春官宗伯)〉에 "나라에 큰 재앙이 있으니 노래와 곡을 하기를 청합니다.[凡邦之大烖 歌哭而請]"라고 하였는데, 정현의 주(注)에 "노래하는 자가 있고, 곡을 하는 자가 있는 것은 슬픔으로써 신령을 감동시키고자 한 것이다.[有歌者, 有哭者, 冀以悲哀感神靈也.]"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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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보름밤에 九月望夜 달이 아주 둥근 보름에 국화가 막 피니 月正圓輪菊發初중구일이 마침 조금 지난 때라오 時當重九適過餘부슬비에 먼지 씻겨 일천 산이 깨끗하고 塵晴小雨千山淨된서리에 잎 떨어져 일만 나무 성글구나 葉脫嚴霜萬木疏가을 경치 참으로 유람하며 즐길 만하고 秋景正堪遊賞樂산 사람 또 조용히 거처함을 좋아한다오 山人且喜自幽居맑고 진솔한 의미를 누가 알 수 있으랴 淸眞意味誰能識빈 창가에 조용히 앉으니 노승 같구나 靜坐空窓老釋如 月正圓輪菊發初, 時當重九適過餘.塵晴小雨千山淨, 葉脫嚴霜萬木疏.秋景正堪遊賞樂, 山人且喜自幽居.淸眞意味誰能識? 靜坐空窓老釋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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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양절 초당에 홀로 앉다. 주자의 시에 차운하다 重陽日 草堂獨坐 次朱子韻 적적한 초당 중구일에 寂寂草堂重九時대문 나섰는데 함께 돌아갈 이 없네 出門無與可同歸술을 사서 가절에 보답할 필요 없으니 不須沽酒酬佳節병든 몸 이끌고 석양빛 대하며 스스로 웃네 自笑扶疴對晩暉축 늘어진 정원의 솔은 푸른 빛이 문을 덮고 落落園松靑遮戶우뚝 솟은 창가의 국화는 향기가 옷에 스미네 亭亭窓菊馥沾衣내 마음 아는 것은 되려 정 없는 물건이니 知心却在無情物은자를 이끌어 움직이매 흥이 적지 않아라 惹動幽人興不微 寂寂草堂重九時, 出門無與可同歸.不須沽酒酬佳節, 自笑扶疴對晩暉.落落園松靑遮戶, 亭亭窓菊馥沾衣.知心却在無情物, 惹動幽人興不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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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양절 다음날에 전연심61) 어른, 벗 김정재 및 과암과 읊다 重陽翌日 與田丈鍊心金友貞齋及果菴吟 달빛 가득한 하늘에 뜰 국화가 꽃 머금으니 庭菊留花月滿天올해도 또 중양의 가절이 찾아왔구나 重陽佳節又今年빈산에서 고아한 모임을 정답게 가지고 穩成雅會空山裡흘러가는 물에 진세의 인연을 모두 맡겼네 都付塵緣逝水邊오직 평생토록 상전벽해의 눈물 있으니 惟有平生桑海淚혹시 깨면 어느 곳 초당에서 잠들거나 倘醒何處草堂眠밤 깊도록 이별 아쉬워하며 술통 다 비웠으니 夜深惜別樽醪盡훗날 서신 전하며 멀리 떨어지지 마세나 他日相魚莫越燕 庭菊留花月滿天, 重陽佳節又今年.穩成雅會空山裡, 都付塵緣逝水邊.惟有平生桑海淚, 倘醒何處草堂眠?夜深惜別樽醪盡, 他日相魚莫越燕. 전연심(田鍊心) 전희순(田煕舜)을 가리킨다. 전우(田愚)의 《간재집(艮齋集)》과 김택술의 《후창집(後滄集)》에 그와 주고받은 편지가 다수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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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기 松汀記 송정(松汀) 주인은 내가 만년에 사귄 벗이다. 하루는 나를 방문하여 말하기를 "흘러가는 세월을 막을 수 없어 갑자기 이렇게 몽범(濛氾)215)에 이르러 같은 연배의 벗들은 쓸쓸히 신성(晨星)216)이 되어 벗들과 헤어져 홀로 지내 외롭고 쓸쓸하여 매우 무료한데, 오직 손수 심은 시냇가 한 그루 소나무가 있어 이것이 60년 동안의 오랜 벗일 뿐이네. 날마다 그 아래에 가서 배회하며 읊조림에 애석한 마음이 오랠수록 더욱 지극하니, 청컨대 그대가 기문을 지어주시게."라고 하기에 내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소나무는 주인과 오랜 교분이 있고 주인은 나와 만년에 친분을 맺었으니, 새롭고 오램이 같지 않아 아는 것에 천심(淺深)이 있는데, 내가 어찌 그 사이를 엿 보아 한마디를 도울 수 있겠는가. 비록 그러하나 일찍 주인으로 하여금 향기로움을 탐하고 번화함을 사모하여 심은 것이 평범한 화훼나 한가로운 초목이었다면 아침저녁으로 모습을 달리하고 봄가을로 빛깔을 바꾸어 잊어버리는 영역에서 주인을 저버림이 오래되었을 것이니, 어찌 능히 오늘날이 있겠는가. 오직 심은 것이 소나무이기 때문에 정정하게 빼어나고 울창하게 푸르러 천겁을 지나도록 세한에 서로 지키는 마음은 일찍이 하루도 옮긴 적이 없으니, 여기에서 주인이 교유를 선택한 뜻과 소나무가 주인을 저버리지 않음이 또한 두터움을 볼 수 있다.주인이 효우(孝友)와 가학[詩禮]으로 알려진 것은 젊었을 때부터 이미 그러하였다. 보건대 지금 백발이 살쩍을 덮어 엄자산(崦嵫山)217)의 남은 햇살이 빠르게 저물어가니, 이것은 백년 인생의 가을쯤이 아니겠는가. 평소의 마음을 자주 돌아보고 더욱 만년의 절개에 힘쓰기를 마치 위 무공(衛武公)218)과 거원(蘧瑗)219)이 했던 것처럼 하여 나의 성망(聲望)과 풍운(風韻)을 온 세상이 막힌 가운데 우뚝이 세운다면 주인이 소나무를 저버리지 않음이 어찌 소나무가 주인을 저버리지 않음만 못하겠는가.나는 떡갈나무 같은 하찮은 사람이라 비록 소나무와 벗하려 해도 소나무가 반드시 벗으로 여기지 않을 것이니, 혹 친구의 친구라는 것으로 한 자리 남은 그늘을 빌려 주시겠는가? 松汀主人。余晩年友也。一日過余曰。叵耐歲月。遽此濛氾。年輩知舊。落落晨星。離索踽涼。殊無了聊。而惟有手植澗畔一株松。是六十年舊契耳。日往其下。盤桓吟哦。愛惜之心。久而愈至。請吾子爲之記也。余曰。松於主人爲舊交。主人於余爲晩契。新舊不同。知有淺深。余何以窺其際而贊一辭乎。雖然。早使主人耽芬芳慕繁華。所植是凡卉閒木。則其朝暮異態。春秋改色。而負主人於相忘之域久矣。何能有今日哉。惟其松也。故亭亭而秀。鬱鬱而翠。閱千劫而歲寒相守之心。未嘗一日而移焉。此可見主人擇交之義。而松之不負主人亦厚矣。主人以孝友詩禮者聞。自少壯時已然。見今白髮被鬢。崦嵫殘景。苒苒遲暮。此非人生百年之秋乎。屢顧宿心。益勵晩節。如衛武蘧瑗之爲。使吾聲望風韻。挻然特立於九野閉寒之中。則主人之不負松。何不若松之不負主人乎。如余樸樕劣品也。雖欲與松友。而松必不爲之友矣。或以友之友而借一席餘蔭否。 몽범(濛氾) 해가 지는 곳으로, 노경을 뜻한다. 신성(晨星) 새벽별이라는 뜻인데, 벗들이 잇달아 죽어 마치 새벽별처럼 얼마 남지 않았음을 비유한 말이다. 당(唐)나라 시인 유우석(劉禹錫)의 〈송장관부거병인(送張盥赴擧幷引)〉에 "옛날에 함께 급제했던 벗들과 어울려 노닐 때에는 말고삐를 나란히 하고 마치 병풍처럼 대로(大路)를 휩쓸고 돌아다녔는데, 지금은 마냥 쓸쓸하기가 새벽 별빛이 서로 멀리서 바라보는 것 같기만 하다."라고 하였다. 엄자산(崦嵫山) 옛날에 해가 들어가는 곳으로 생각했던 산의 이름으로, 만년(晩年) 또는 노년의 비유로 쓰인다. 위 무공(衛武公) 노년에 나태해지는 마음을 경계하기 위하여 95세에 《시경》의 억(抑)편을 지었다고 한다. 거원(蘧瑗) 춘추 시대 위(衛)나라 대부 거백옥(蘧伯玉)의 본명이다. 《장자》 〈칙양(則陽)〉에 "거백옥은 나이 육십이 되는 동안 육십 번이나 잘못된 점을 고쳤다.[蘧伯玉行年六十而六十化]"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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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재기 寒守齋記 이릉(爾陵)213)의 산은 동남쪽보다 많은 곳이 없고, 동남쪽의 산은 망방산(望防山)보다 깊은 것이 없는데, 나의 벗 남덕로(南德老) 군이 그 산에 우거하고 있다. 대개 덕로의 재주와 국량, 지조와 기개는 사방을 두루 돌아다니며 한 시대에 오르내릴 수 있는 사람인데 이에 능히 번연히 도모를 바꾸어 아무도 모르게 거두어 단속함이 이와 같이 과감한가! 10년을 살면서 또 마을의 벗과 산의 가장 깊은 곳 사람들의 경계와 멀리 떨어진 곳에 나아가 나무를 서까래로 삼고 바위를 벽으로 삼아 경영하기 시작하여 몇 칸 집을 지어 날마다 복건(幅巾)과 망혜(芒鞋) 차림으로 그 가운데서 소요하고 있다.오호라! 산이 이미 궁벽한데 오직 궁벽하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지역이 이미 후미진데 오직 후미지지 않을까 두려워하여 반드시 몸을 민연히 작위가 없는 곳에 몸을 둔 뒤에야 그만두려 하니, 이것은 세속에 동화되고 더러운 세상에 영합하는 사람이 헤아릴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또한 멀리 떠나 세상을 잊어버리는 사람이 견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시국의 상황은 헤아리기 어렵고 세상의 일은 형상하기 어렵기 때문에 기미를 보고 분명하게 결정하여 독선(獨善) 자정(自靖)할 곳으로 삼은 것이다. 더구나 흘러가는 세월을 막을 수 없어 이미 노경에 이르러 교유를 끊고 고요한 곳에 나아가 한가로이 지내며 덧없는 생각을 사라지게 하고 실제의 덕이 내면으로 살찌게 하는 것을 일생의 궁극적 목표로 삼았으니, 또 어찌 다만 신도반(申屠蟠)214)의 아류가 될 뿐이겠는가.나는 죽마고우로써 백수에 서로 바라보니 슬픔과 위로가 더욱 지극하여 삼가 세한(歲寒)에도 서로 지킨다는 뜻에 의거하여 편액을 한수(寒守)라 하고 인하여 졸렬한 말을 붙인다. 爾陵之山。莫多於東南。東南之山。莫深於望防。余友南君德老。寓居焉。蓋德老才局志槩。可以周旋四方。上下一世者。而乃能幡然改圖。闇然收束。若是其果耶。居十年。又與村之友。就山之最深人境遙絶處。因樹爲椽。因巖爲壁。經始得數間屋子。日以幅巾芒鞋。逍遙其中。鳴乎。山旣窮矣。而惟恐其不窮。地旣僻矣。而惟恐其不僻。必欲置身於冺然無爲之地而後已。此非同流合汚者所可涯涘。亦非長往忘世者所可比倫。正以時象叵測。世故難狀。所以見幾明決。而爲獨善自靖之地。況叵耐歲月。已屬桑楡。絶遊息交。就靜養閒。使浮念銷歇。實德內腴。爲一生之究竟者。又豈但爲申屠蟠之流亞哉。余以竹馬舊交。白首相望。悲慰增至。謹据歲寒相守之義。題其顔曰寒守。因以蕪辭隨之。 이릉(爾陵) 이릉부리현(爾陵夫里縣)으로,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綾州面)의 옛 지명이다. 신도반(申屠蟠) 후한(後漢) 시대 진류(陳留) 사람으로, 집안이 가난해 칠공(漆工)이 되었다. 군(郡)에서 주부(主簿)로 불렀지만 나가지 않고 숨어살면서 학문에 정진하여 오경(五經)에 두루 정통했으며, 도위(圖緯)에도 밝았다. 한나라 황실이 기울어가는 것을 보고 양(梁)나라 탕현(碭縣)에 자취를 감추고 나무에 의지하여 집을 지었다. 태위(太尉) 황경(黃瓊)과 대장군 하진(何進)이 연이어 불렀지만 역시 나가지 않았다. 나중에 동탁(董卓)이 황제를 폐위시키고 대신하자 순상(荀爽) 등이 모두 협조했지만 그만 홀로 끝까지 고귀한 뜻을 지켰다. 《後漢書 卷53 申屠蟠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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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제 흥술101)에게 보여주다 示族弟興述 이 학문은 강령이 있음을 알아야만 하니 此學須知有領綱가는 곳마다 그 마땅함을 구할 뿐이라네 只求隨處得其當먼저 밝은 등불처럼 그 이치를 연구하고 先硏厥理如明燭다시 괄낭102)처럼 이 말을 신중히 하게 更愼斯言戒括囊우직103)은 본디 사업을 도와 경영하였고 禹稷固將經事業원안104)도 조강을 실컷 먹을 수 있었네 原顔亦可厭糟糠지금 세상에 옛 덕을 먹은105) 이 드물기에 罕看食舊今之世초당에 들어오는 그댈 반갑게 맞이하네 喜接君裾入草堂 此學須知有領綱, 只求隨處得其當.先硏厥理如明燭, 更愼斯言戒括囊.禹、稷固將經事業, 原、顔亦可厭糟糠.罕看食舊今之世, 喜接君裾入草堂. 김흥술(金興述) 1890~? 본관은 부녕(扶寧), 자는 치운(致雲)이다. 노가암(老可庵) 김낙필(金洛弼, 1850~1919)의 문인이다. 괄낭(括囊) 주머니를 묶는 것처럼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는 것이다. 《주역》 〈건괘(乾卦) 육사(六四)〉에 "주머니를 묶듯이 하면 허물도 없으며 칭찬도 없으리라.〔括囊, 无咎无譽.〕" 하였다. 우직(禹稷) 모두 우순(虞舜)의 신하인 우(禹)와 직(稷)을 말한다. 두 사람이 중국 9주(州)의 전지 경계를 정리했다. 원안(原顔) 가난한 사람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원헌(原憲)과 안회(顔回)를 말한다. 두 사람 모두 공자의 뛰어난 제자로 몹시 곤궁한 속에서도 안빈낙도(安貧樂道)하는 삶을 살았다. 옛 덕을 먹은 조상의 음덕에 의해 먹고 산다는 말이다. 《주역》 〈송괘(訟卦) 육삼(六三)〉에 "옛 덕을 먹어 정하면 위태로우나 끝내 길하리라.[食舊德, 貞厲, 終吉.]"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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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 승장 영규142)의 정려를 지나며 過義兵僧將靈圭閭 승려가 순국하고 더욱 출중하였으니 緇徒殉國更超倫자비의 일념으로 만 백성 위했구나 一念慈悲爲萬民근래 임금 팔아 호화롭게 사는 무리143) 近日賣君鍾鼎輩무슨 낯으로 이 비석을 볼 수 있으랴 何顔能視此貞珉 緇徒殉國更超倫, 一念慈悲爲萬民.近日賣君鍾鼎輩, 何顔能視此貞珉. 영규(靈圭) ?~1592.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금산전투에 참전한 승려이다. 공주 출신으로, 계룡산 갑사(甲寺)에 들어가 출가하고, 뒤에 휴정(休靜)의 제자가 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승(義僧) 수백 명을 규합하여 청주성의 왜적을 공격해 승리하였고, 1592년(선조25) 금산전투에서 전사하였다. 호화롭게 사는 무리 원문의 '종정(鍾鼎)'은 종명정식(鐘鳴鼎食)의 준말로, 종을 울려 가족을 모아 솥을 늘어놓고 음식을 할 정도로 부귀한 집안을 말한다. 왕발(王勃)의 〈등왕각서(滕王閣序)〉에 "마을에 들어찬 집들은 종을 치고 솥을 늘어놓고 먹는 집들이다.[閭閻撲地, 鍾鳴鼎食之家.]"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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