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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旨金膺相爲折衝將軍行龍驤衛副護軍兼五衛將者道光二十五年正月 日[官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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吏曺道光十一年十二月二十五日奉敎權知承文院副正字金養黙爲宣務郞行承文院副正字者道光十一年十二月 日判書[着押] 參判[着押] 參議[着押] 正郎 佐郞[官印]吏吏金亨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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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5년 김응상(金膺相) 고신(告身) 1 고문서-교령류-고신 정치/행정-임면-고신 道光二十五年正月 日 憲宗 金膺相 道光二十五年正月 日 憲宗 金膺相 서울특별시 종로구 施命之寶 1개(적색, 정방형) 부안 돈계 김응상 후손가 부안 돈계리 김응상 후손가 1845년(헌종 11)에 왕이 김응상에게 통정대부의 품계를 내리면서 발급한 교지. 1845년(헌종 11)에 왕이 김응상(金膺相)에게 통정대부(通政大夫)의 품계를 내리면서 발급한 교지(敎旨)이다. 당시 김응상은 나이 70세로, 전 사헌부(司憲府) 장령(掌令) 김양묵(金養默)의 부친으로, 법전에 의하여 가자(加資)의 혜택을 받았다. 김응상이 이해 정월에 받은 교지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그는 이외에도, 절충장군(折衝將軍) 행용양위부호군(行龍驤衛副護軍), 절충장군(折衝將軍) 행용양위부호군(行龍驤衛副護軍) 겸 오위장(五衛將), 절충장군(折衝將軍)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겸 오위장(五衛將) 등 3장의 고신을 더 받았다. 그는 10년 뒤인 1855년(철종 6)에도 4장의 고신을 받았는데, 이때 받은 관직이나 자품을 차례로 살펴보면, 가선대부(嘉善大夫), 가선대부(嘉善大夫) 행용양위호군(行龍驤衛護軍), 가선대부(嘉善大夫) 행용양위호군(行龍驤衛護軍) 겸 오위장(五衛將),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겸 오위장(五衛將) 등이었다. 김응상이 1855년에 작성한 호구단자에서도 그는 절충장군(折衝將軍)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겸 오위장(五衛將)으로 나온다. 이때 그의 나이 80세였다. 한편 그가 고신을 받을 때마다 그의 처와 조부와 조모, 증조와 증조모 등이 받은 추증교지도 이 문중에 전하고 있다. 한편 문서의 배면(背面)에는 '吏吏 金貞益'이라고 적혀 있다. '이이'는 고신을 작성하는 이조의 서리로, 흔히 단골, 단골서리, 단골리로 불리웠다. 즉 김응상의 고신을 직접 작성한 사람은 김정익이었다. 이조와 병조에서 인사를 담당하는 이들 정색서리(政色書吏)들은 지방 양반들과 돈독한 관계를 맺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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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旨金膺相爲通政大夫者道光二十五年正月 日年七十侍從臣前司憲府掌令金養默父依法典加資事承傳(背面)吏吏 金貞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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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5년 김응상(金膺相) 고신(告身) 1 고문서-교령류-고신 정치/행정-임면-고신 咸豐五年正月 日 哲宗 金膺相 咸豐五年正月 日 哲宗 金膺相 서울특별시 종로구 施命之寶 1개(적색, 정방형) 부안 돈계 김응상 후손가 부안 돈계리 김응상 후손가 1855년(철종 6)에 국왕이 김응상(金膺相)을 가선대부(嘉善大夫) 행용양위호군(行龍驤衛副護軍)으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지(敎旨) 1855년(철종 6) 정월에 국왕이 김응상(金膺相)을 가선대부(嘉善大夫) 행용양위호군(行龍驤衛副護軍)으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지(敎旨)이다. 가선대부는 종2품 하계의 품계이다. 용양위는 오위(五衛)의 하나로 좌위를 이루는 것이었다. 이 중 호군은 정4품으로 가선대부의 품계가 관직인 용양위호군의 품계보다 높았기 때문에 행수법(行守法)에 따라 관직명 앞에 행(行)자를 표기하였다. 김응상은 이 교지를 포함하여 모두 여덟 차례 고신을 받았는데, 그때마다 그의 처와 부, 조부와 조모, 증조부와 증조모 등이 법전(法典)의 규정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추증교지(追贈敎旨)를 받았다. 특히 그는 임씨(林氏)와 사별했는데, 후처(後妻) 양씨(梁氏)는 물론, 전처(前妻)도 함께 교지를 받았다. 김응상 관련 고신을 모두 합하면 20점이나 된다. 뿐만 아니라, 김응상이 1819년부터 1855년까지 작성했던 호구단자(戶口單子) 7점도 전하고 있어서 그의 가족 상황을 살펴 볼 수 있다. 이에 따르면, 김응상은 생전에 부안현 남하면 돈계리에 내내 거주하고 있었던 것으로 나오는데, 오늘날의 부안군 주산면 돈계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한편 김응상의 아들 김양묵(金養默)은 1829년에 정시문과(庭試文科)에 급제하여 관직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가 받았던 고신(告身)들이 남아 있다. 특히 그가 문과 응시 당시 작성했던 시권(試券)과 급제하여 받았던 홍패(紅牌)를 비롯하여, 고신 16점, 차첩 2점 등 20점이 그의 후손가에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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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旨金膺相爲嘉善大夫行龍驤衛護軍者咸豐五年正月 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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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7년 김양묵(金養默) 고신(告身) 고문서-교령류-고신 정치/행정-임면-고신 道光十七年六月二十六日 憲宗 金養黙 道光十七年六月二十六日 憲宗 金養默 서울특별시 종로구 施命之寶 1개(적색, 정방형) 부안 돈계 김응상 후손가 부안 돈계리 김응상 후손가 1837년(헌종 3)에 왕이 김양묵(金養默)을 통훈대부(通訓大夫) 행사헌부장령(行司憲府掌令)으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지(敎旨) 1837년(헌종 3) 6월 26일에 국왕이 김양묵(金養默)을 통훈대부(通訓大夫) 행사헌부장령(行司憲府掌令)으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지(敎旨)이다. 통훈대부는 정3품 당하관(堂下官)의 품계이다. 사헌부장령은 사헌부의 정4품 관직으로 감찰(監察) 업무를 담당하였다. 통훈대부의 품계가 관직인 사헌부장령의 품계보다 높았기 때문에 행수법(行守法)에 따라 관직명 앞에 행(行)자를 표기하였다. 한편, 문서 배면(背面) 좌측 하단에는 '吏吏金貞浩'이라고 적혀있다. 吏吏는 고신을 작성한 이조의 서리이며, 김정호는 서리의 이름이다. 부안 김씨 김양묵 가문이 소장하고 있는 고신의 배면을 보면 김정호뿐만 아니라 김형복, 김정익 등의 김씨 성을 가진 서리의 이름이 연속적으로 등장한다. 이는 이조에 근무하는 서리 가운데 김씨 성이 대를 이러 부안 김씨 가문의 단골 서리 역할을 하였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김양묵은 본관이 부안(扶安)으로, 1829년에 정시문과(庭試文科)에 급제하여 관직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가 받았던 고신(告身)들이 그의 후손 가에 오늘날도 전하고 있다. 특히 그가 문과 응시 당시 작성했던 시권(試券)과 급제하여 받았던 홍패(紅牌)를 비롯하여, 고신 16점, 차첩 2점 등 20점이 남아 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아버지 김응상(金膺相)과 어머니, 그리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증조와 증조할머니, 고조와 고조할머니 등이 받았던 고신 20점이 전하고 있는데 대부분 추증교지(追贈敎旨)이다. 이 추증교지는 김응상이 고신을 받을 때마다 함께 받았던 것들이다. 고신 외에 김응상이 1819년부터 1855년까지 작성했던 호구단자(戶口單子) 7점도 전하고 있어서 그의 가족 상황을 살펴 볼 수 있다. 이에 따르면, 김응상은 생전에 부안현 남하면 돈계리에 내내 거주하고 있었던 것으로 나오는데, 오늘날의 부안군 주산면 돈계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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吏曺道光十二年二月二十八日奉敎承文院副正字金養黙爲啓功郞行承文院正字者道光十二年二月 日判書 參判 參議[着押] 正郎 佐郞[官印]吏吏金貞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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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김양묵(金養默) 고신(告身) 1 고문서-교령류-고신 정치/행정-임면-고신 同治三年五月 日 高宗 金養黙 同治三年五月 日 高宗 金養默 서울특별시 종로구 施命之寶 1개(적색, 정방형) 부안 돈계 김응상 후손가 부안 돈계리 김응상 후손가 1864년(고종 1) 5월에 국왕이 김양묵(金養默)을 선략장군(宣略將軍) 행용양위부사과(行龍驤衛副司果)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지(敎旨) 1864년(고종 1) 5월에 국왕이 김양묵(金養默)을 선략장군(宣略將軍) 행용양위부사과(行龍驤衛副司果)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지(敎旨)이다. 선략장군은 종4품의 하계 무신의 품계이다. 용양위는 조선 전기 중앙군의 근간인 오위(五衛)이다. 부사과는 오위의 종6품 관직이다. 선략장군의 품계가 관직인 용양위 부사과의 품계보다 높았기 때문에 행수법(行守法)에 따라 관직명 앞에 행(行)자를 표기하였다. 김양묵은 본관이 부안(扶安)으로, 1829년에 정시문과(庭試文科)에 급제하여 관직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가 받았던 고신(告身)들이 그의 후손 가에 오늘날도 전하고 있다. 특히 그가 문과 응시 당시 작성했던 시권(試券)과 급제하여 받았던 홍패(紅牌)를 비롯하여, 고신 16점, 차첩 2점 등 20점이 남아 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아버지 김응상(金膺相)과 어머니, 그리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증조와 증조할머니, 고조와 고조할머니 등이 받았던 고신 20점이 전하고 있는데 대부분 추증교지(追贈敎旨)이다. 이 추증교지는 김응상이 고신을 받을 때마다 함께 받았던 것들이다. 고신 외에 김응상이 1819년부터 1855년까지 작성했던 호구단자(戶口單子) 7점도 전하고 있어서 그의 가족 상황을 살펴 볼 수 있다. 이에 따르면, 김응상은 생전에 부안현 남하면 돈계리에 내내 거주하고 있었던 것으로 나오는데, 오늘날의 부안군 주산면 돈계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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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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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서

土地賣買契約書一. 土地賣買代金은拾円也一. 賣買金額을右人前領고所權을囙渡홈一. 保証人賣買契約成立을見고左에保証으로暑名捺印홈大正六年十二月二十日賣渡人 扶安郡東津面堂上里百貳拾壹番地地主代理人 孫雨琓[署押]保証人堂上里壹百貳拾六番地孫炳泰[印]土地表示扶安郡東津面堂石里西坪泰字一五三号田壹斗結五負五束金洛坤 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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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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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율려신서》100)를 읽다 讀《律呂新書》 율학이 오래도록 잔결되어 한탄했는데 律學堪歎久缺殘서산101)이 한 번에 이것을 정리하였네 一番整理得西山5성과 2변102)은 선후를 나누었고 五聲二變分先後대려와 황종103)은 본원을 궁구하였네 大呂黃鍾究本原꾸준히 쌓은 공부는 가업을 따른 것이요 積累工夫從世業넓고 정밀한 견식은 스승에게 인정받았네 博精見識許師門언제나 근역에서 태평한 날에 那當槿域昇平日이 책을 가져다 써서 악관을 거느릴거나 擧用斯書領樂官 律學堪歎久缺殘, 一番整理得西山.五聲、二變分先後, 大呂、黃鍾究本原.積累工夫從世業, 博精見識許師門.那當槿域昇平日, 擧用斯書領樂官? 율려신서(律呂新書) 송(宋)나라 채원정(蔡元定)이 1187년에 지은 악서(樂書)이다. 13개 항목으로 구성된 〈율려본원(律呂本元)〉과 10개 항목으로 구성된 〈율려증변(律呂證辨)〉으로 나뉘어 있다. 서산(西山) 채원정(蔡元定)의 호이다. 5성(五聲)과 2변(二變) 5성은 음악의 다섯 음계로, 궁(宮)ㆍ상(商)ㆍ각(角)ㆍ치(徵)ㆍ우(羽)를 말한다. 2변은 5성에 변궁(變宮)과 변치(變徵)를 더한 7음을 가리킨다. 《통전(通典)》에 "상(商)나라 이전에는 5음(五音)만 있었는데 주(周)나라 때에 여기에 문(文), 무(武) 2성(聲)이 추가되었으니, 이것을 2변이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事物紀原 卷2 樂舞聲歌部11》 대려(大呂)와 황종(黃鍾) 12율의 성음(聲音) 중 하나로, 황종은 홀수에 해당하는 양률(陽律)에 속하고 대려는 짝수에 해당하는 음려(陰呂)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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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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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12속체. 유병산76)을 본받다 十二屬軆 效劉屛山 곤궁하게 칩거함은 쥐구멍에 사는 것 같아 窮蟄同於鼠穴居평생 그저 우거 신세77)를 면하고 싶었네 生平但欲免牛裾영원히 남을 이름은 바란 적 없고 虎皮名字曾無望교묘하게 생계 꾸리는 방법도 엉성하였네 兎窟謀生亦所疏앉아서 용의 간78) 말한들 끝내 무슨 이익이랴 坐說龍肝竟何益화사첨족하는 것도 되려 허사가 되고 말았네 畵添蛇足反歸虛늙은 말이 길을 가는 날에 지혜를 오로지하고79) 智專老馬行途日뭇 양이 막 나무를 해칠 때 경계를 두어야 하네80) 戒在羣羊害木初원숭이 새는 봄 저물 제 놀라지 않고 猿鳥不驚春暮際닭과 술은 곡식 여문 뒤에 익어간다오 鷄醪方熟歲登餘세간에 개처럼 구차한 분분한 무리81) 世間狗苟紛紜輩다투어 요동 돼지 자랑하니 가소롭구나 競詑遼猪可笑渠 窮蟄同於鼠穴居, 生平但欲免牛裾.虎皮名字曾無望, 兎窟謀生亦所疏.坐說龍肝竟何益? 畵添蛇足反歸虛.智專老馬行途日, 戒在羣羊害木初.猿鳥不驚春暮際, 鷄醪方熟歲登餘.世間狗苟紛紜輩, 競詑遼猪可笑渠. 유병산(劉屛山) 송(宋)나라 사람 유자휘(劉子翬)로, 병산은 그의 호이다. 주희(朱熹)의 스승이다. 주희가 유병산에게 성인의 도(道)로 들어가는 차례를 묻자, 병산이 기뻐하며 "나는 《주역》에서 덕에 들어가는 문을 얻었다. 이른바 '멀리 가지 않고 돌아온다.[不遠復]'는 것이 나의 삼자부(三字符)이다. 그대는 항상 이것을 힘쓸지어다."라고 하였다. 《心經 卷1》 우거(牛裾) 신세 소에 옷을 입혔다는 뜻으로, 무지함을 비유한 말이다. 한유(韓愈)의 〈부독서성남(符讀書城南)〉에 "사람이 고금의 도리를 통하지 못하면, 말과 소에 사람 옷을 입혀 놓은 것과 같다.[人不通古今, 馬牛而襟裾.]"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韓昌黎集 卷6》 용의 간 여덟 가지의 진미(珍味) 중 하나이다. 늙은……오로지하고 춘추 시대 제(齊)나라 관중(管仲)과 습붕(隰朋)이 환공(桓公)을 수행하여 고죽국(孤竹國)을 정벌했는데, 봄에 갔다가 겨울에야 돌아오면서 옛길을 잃어버리고 헤매게 되자, 관중이 말하기를 "늙은 말의 지혜를 쓸 만하다.[老馬之智可用也.]" 하고, 이에 늙은 말을 풀어놓아 말이 가는 대로 따라가다가 마침내 옛길을 찾게 되었다는 데서 온 말이다. 《韓非子 說林上》 뭇……하네 인의(仁義)의 선한 양심을 잘 보존하여 기르고 욕망이 이를 해치지 않도록 조심한다는 뜻이다. 《맹자》 〈고자 상(告子上)〉의 우산지목장(牛山之木章)에서 온 말이다. 개처럼……무리 명리(名利)를 추구하는 데 몰두하여 염치를 돌아보지 않으며 수단 방법도 가리지 않고 비굴하게 처신하는 사람을 비유한다. 한유(韓愈)의 〈송궁문(送窮文)〉에 "아침에 그러한 행동을 후회했다가 저녁이면 또다시 그러하여, 파리 떼가 윙윙거리고 개가 구차하게 자꾸 덤벼들 듯해서 쫓아버려도 다시 돌아오곤 한다.[朝悔其行, 暮已復然, 蠅營狗苟, 驅去復還.]"라고 하였다. 《古文眞寶後集 卷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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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께서 신축년(1901, 고종38) 동짓날에 봉서사에서 회옹의 운에 차운한 시117)에 삼가 차운하다 소서를 아울러 기록한다. 謹次先師辛丑南至鳳棲寺所次晦翁韻【幷小序】 이때 선사께서 시를 지어 제생에게 보이셨는데 모인 자가 70여 명이었다. 각자 차운시를 짓게 하고 직접 우열을 매기셨는데 나이가 어려서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나에게 윤색하게 하셨으니 그 가르치는 뜻이 하나같이 어찌 그리 정성스러우셨던가. 이제 어느덧 42년이나 지났고 스승께서 돌아가신 지도 또 그중에 반이 지났다. 옛날과 지금을 돌아보매 성취한 것 없는 나를 생각하니 감개하는 마음 이기지 못하겠다.학문의 요체는 마음 밭에 있으니 學要心田中훈과 유118)를 잘 취사해야 하네 去取薰與蕕만약 이것을 분별하지 못하면 如不辨得此어디에 수오지심이 있겠는가 安所有惡羞아 내가 일찍 스승께 배웠는데 嗟余早從學백발에도 이 문제로 근심한다네 白首以是憂봉서사의 모임은 옛날 언제였나 鳳寺昔何日스승과 제자 유명을 달리하였네 師生隔明幽이제 또 동짓날이 되었는데 今又逢南至학업은 퇴보하고 세월만 흘러갔네 業退歲不留어떻게 하면 크게 분발하여 安能大奮發선철의 자취를 뒤따를거나 追及曩哲輈 是時, 先師作詩以示諸生, 會者七十餘人, 令各次作.親自考批, 其年少不嫺者, 命澤述修潤, 其敎意一何勤也? 今忽忽爲四十二年之久, 而山頹之年, 又居半其數矣.俯仰今昔, 念余無成, 不勝感慨之意.學要心田中, 去取薰與蕕.如不辨得此, 安所有惡羞?嗟余早從學, 白首以是憂.鳳寺昔何日? 師生隔明幽.今又逢南至, 業退歲不留,安能大奮發, 追及曩哲輈? 선사께서……시 이 시는 전우(田愚)의 《간재집(艮齋集))》에는 보이지 않고, 이와 같은 운을 쓴 것은 《간재집 후편》 권18에 〈병진년 동짓날에 회옹의 시에 삼가 차운하다[丙辰南至 敬次晦翁韻]〉라는 제목의 시가 있다. 훈(薰)과 유(蕕) 훈은 향기로운 풀을, 유는 악취 나는 풀을 가리킨다. 비유하여 선악(善惡), 현우(賢愚) 등을 의미하고, 또 군자와 소인을 구분하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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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범황극》104)을 읽다 讀《洪範皇極》 서산을 계승한 구봉105) 繼述西山又九峰범주의 학문에 진실로 정통하였네 範疇之學儘精通낙서가 상을 보여주었으니106) 깊은 뜻 알았고 洛書示象知深意기자가 경을 진달하였으니107) 큰 공로 우러렀네 箕聖陳經仰大功천인의 이치에 감응하여 상하의 구분이 없고 理感天人無上下팔십 개로 장을 나누어 시종을 갖추었네 章分八十備初終한 편의 요점은 어디로 귀결되나 一篇樞紐歸何處오직 군주가 준칙을 세운 데 있다오108) 只在惟皇建極中 繼述西山又九峰, 範疇之學儘精通.洛書示象知深意, 箕聖陳經仰大功.理感天人無上下, 章分八十備初終.一篇樞紐歸何處? 只在惟皇建極中. 홍범황극(洪範皇極) 채침(蔡沈)이 그의 부친 채원정(蔡元定)과 스승 주희(朱熹)의 유명(遺命)을 받들어 저술한 책이다. 《주역(周易)》의 수리(數理)를 《서경》의 〈홍범(洪範)〉에 맞추어 놓은 책으로, 3편의 논(論)과 〈구구원수도(九九圓數圖)〉,〈범수지도(範數之圖)〉 등 15도(圖)가 수록되어 있다. 서산(西山)을 계승한 구봉(九峰) 서산은 채원정(蔡元定)의 호이고, 구봉은 그의 아들 채침(蔡沈)의 호이다. 낙서(洛書)가 상(象)을 보여주었으니 낙서는 하(夏)나라의 우(禹) 임금이 홍수(洪水)를 다스렸을 때 낙수(洛水)에서 나온 거북이〔神龜〕 등에 있었던 마흔다섯 점의 글씨로서, 《서경(書經)》 〈주서(周書) 홍범(洪範)〉의 원본(原本)이 되었다. 기자(箕子)가 경(經)을 진달하였으니 무왕(武王)이 기자에게 천도(天道)를 물었을 때 기자가 이 〈홍범〉을 가지고 천하를 다스리는 이치를 설명하였다고 한다. 오직……있다오 《서경》 〈홍범〉에 "황극은 군주가 그 준칙을 세움이니, 이 오복을 거두어서 백성들에게 베풀어 주면 백성들도 너의 준칙에 대해 네가 준칙을 지킬 수 있도록 해 줄 것이다.[皇極, 皇建其有極, 斂是五福, 用敷錫厥庶民, 惟時厥庶民, 于汝極, 錫汝保極.]"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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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중129)에게 화답하다 2수 和汝重【二首】 유유히 흐르는 세월은 골짝의 뱀 같은데 歲行冉冉壑蛇如큰 눈이 초가집 하나를 깊이 덮었네 大雪深封一土廬경내는 하늘이 세상을 연 뒤와 같고 境若天皇開世後몸은 화상이 단교한 처음130)과 같네 身同和尙斷橋初어찌 왔는가 친한 벗에게서 좋은 소식이여 何來好信從親契또 새 시 부쳐 쓸쓸한 나를 위로하는구나 更寄新詩慰索居도의를 지니고서 진중하게 처한다면 道義相將珍重處분분한 진세의 생각 멀어지리라 紛紛塵念覺稀疏사람으로 태어나 경서 공부함이 가장 좋으니 戴髮擔經莫所如죽음 기다리며 궁려에서 칩거함이 제격이라오 待符端合蟄窮廬좋지 못한 때에 태어났다고 어찌 한탄하랴 不辰何恨生身際여생에 외려 성의 처음 회복하길131) 구한다오 餘日猶求復性初고기 비단의 태평 시절은 어떤 세계인가 肉帛昇平何世界골짜기에서 전전함이 곧 집에서 사는거지 壑溝輾轉卽家居반찬을 멀리서 보내주니 참으로 감사하네만 饌需遠送雖珍感은혜 손상시켰으니 아 그대 계산 틀렸구려 傷惠嗟君一算疏 歲行冉冉壑蛇如, 大雪深封一土廬.境若天皇開世後, 身同和尙斷橋初.何來好信從親契, 更寄新詩慰索居?道義相將珍重處, 紛紛塵念覺稀疏.戴髮擔經莫所如, 待符端合蟄窮廬.不辰何恨生身際? 餘日猶求復性初.肉帛昇平何世界? 壑溝輾轉卽家居.饌需遠送雖珍感, 傷惠嗟君一算疏. 여중(汝重) 김택술의 문인인 최태일(崔泰鎰, 1899~?)의 자이다. 화상(和尙)이 단교(斷橋)한 처음 중이 참선을 부지런히 한다는 말이다. 《송자대전》 권4 〈수차(隨箚)〉에 "옛날에 어떤 승려가 다리를 끊고 참선하였기에 단교 화상(和尙)이라 칭하였다.[古有僧斷橋而修禪, 謂之斷橋和尙.]"라고 하였다. 성(性)의 처음 회복하길 본연의 성(性)이 선함을 분명하게 알아서 그 본연을 회복한다는 말이다. 《논어》 〈학이(學而)〉의 《집주(集註)》에 "선을 밝게 알아서 그 처음을 회복한다.[明善而復其初也.]"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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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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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119)에서 눈으로 길이 막히다. 두남120)의 시에 차운하다 阻雪壽洞 次斗南韻 객지에서 열흘 넘게 괴롭게 쓸쓸히 지내다가 旅食兼旬苦索居돌아오는 길에 신선 소매를 잡아 기뻤네 歸程喜得接仙裾벗의 도리는 삼익121)을 따를 줄 알아야 하니 須知友道從三益인의 공이 이여122)에 있다 어찌 믿지 않으랴 盍信仁功在二如책 상자는 그야말로 함께 좀 잡기에 좋지만 芸篋端宜同掃蠹매화 핀 다리에는 함께 나귀 탈 겨를 없다오123) 梅橋未暇伴騎驢하물며 천시가 회복됨은 인사와 관계 있으니 天時況復關人事미약한 양기가 막 점차 자라는 때를 보노라 看取微陽漸長初 旅食兼旬苦索居, 歸程喜得接仙裾.須知友道從三益, 盍信仁功在二如.芸篋端宜同掃蠹, 梅橋未暇伴騎驢.天時況復關人事, 看取微陽漸長初. 수동(壽洞) 현재 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함열리에 속하는 마을이다. 두남(斗南) 오해겸(吳海謙)의 호이다. 삼익(三益) 세 가지 유익함을 주는 벗이라는 뜻이다. 《논어》 〈계씨(季氏)〉에 "유익한 벗이 셋이 있고 손해 되는 벗이 셋이 있으니, 벗이 정직하고 성실하고 견문이 많으면 유익하다.[益者三友, 損者三友, 友直、友諒、友多聞, 益矣.]"라고 하였다. 이여(二如) 여오악취(如惡惡臭)와 여호호색(如好好色)을 가리키는 것으로, 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함을 이른다. 《대학장구》 전 6장에 "이른바 그 뜻을 성실히 한다는 것은 스스로 속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니, 악을 미워하기를 악취를 미워하는 것과 같이 하며, 선을 좋아하기를 호색을 좋아하는 것과 같이 해야 한다.[所謂誠其意者, 毋自欺也. 如惡惡臭, 如好好色.]"라고 하였다. 매화……없다오 당(唐)나라 맹호연(孟浩然)이 매화를 찾으러 나귀를 타고 눈발이 휘날리는 중에 장안(長安)의 파교(灞橋)를 지나다 그럴듯한 시상(詩想)이 떠올랐다는 '답설심매(踏雪尋梅)'의 고사를 원용한 것이다. 《全唐詩話 卷5 鄭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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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149)을 생각하다 憶敬山 그리움에 며칠 밤 꿈에서 나타나니 相思連夜夢相成갈동에 있는 선장이 매번 기억나네 每記仙庄葛洞名눈썹 찌푸려 소락150)의 부끄러움 되지 말고 不作皺眉慙邵樂응당 실지로 유성151)을 힘써야 하리라 應從實地勉劉誠적적한 창가에서 구름과 함께 묵고 一牕寂寂雲同宿멀고 먼 백 리에 달만 홀로 밝겠지 百里迢迢月獨明가을 흥취에 옛 유람을 어찌 다시 계속할까 秋興舊遊那復續기약에 앞서 내 군평152)처럼 점치고 싶네 前期我欲同君平 相思連夜夢相成, 每記仙庄葛洞名.不作皺眉慙邵樂, 應從實地勉劉誠.一牕寂寂雲同宿, 百里迢迢月獨明.秋興舊遊那復續, 前期我欲同君平. 경산(敬山) 정기성(鄭基聲, 1890∼1968)의 호이다. 또 다른 호는 담재(淡齋)이다.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출신이다. 저서에 《담재유고(淡齋遺稿)》 25권 25책이 전한다. 소락(邵樂) 소옹(邵雍)의 즐거움을 말한다. 송(宋)나라 소옹이 사마광(司馬光) 등 낙양(洛陽) 인사들의 도움을 받아 천진교(天津橋) 남쪽에 안락와(安樂窩)라는 집을 짓고 유유자적하는 삶을 누린 고사가 있다. 《聞見錄 卷18》 유성(劉誠) 유안세(劉安世)의 성(誠)을 말한다. 송(宋)나라 유안세가 사마광(司馬光)에게 "마음을 다하고 몸을 닦는 요체로서 죽을 때까지 행할 만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고 묻자, 사마광이 "그것은 성(誠)일 것이다."라고 대답하였다. 이에 다시 유안세가 "그것을 행하려면 무엇을 먼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으니, 사마광이 대답하기를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라고 하였다. 《小學 善行》 군평(君平) 한(前漢) 성제(成帝) 때의 은사 엄준(嚴遵)의 자이다. 그는 촉(蜀) 땅에 은거하여 성도(成都)의 저잣거리에서 점을 쳐주며 먹고 살았다. 《漢書 王貢兩龔鮑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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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동의 임씨 병사에 쓰다 題眞洞林氏丙舍 날 듯한 누각은 어느 해에 일으켰나 翼然樓閣起何年평택의 집안 명성이 대대로 전해졌네 平澤家聲世世傳명승지 봉래는 신비한 땅이요 名勝蓬萊神秘地곧은 충정의 감정은 마점의 언덕이라143) 貞忠監正馬粘阡진정에 편액 걺은 선조를 생각해서이고144) 甄亭揭號思先祖이사에 서책 보관함은 후현을 기다려서지145) 李舍藏書待後賢벽옹이 열심히 공부한 곳임을 알겠으니 認是碧翁攻苦處옛 자취 뒤미쳐 생각하며 새 시편 읊노라 追憶舊蹟賦新篇 翼然樓閣起何年, 平澤家聲世世傳.名勝蓬萊神秘地, 貞忠監正馬粘阡.亭揭號思先祖李, 李舍藏書待後賢.認是碧翁攻苦處, 追憶舊蹟賦新篇. 곧은……언덕이라 임씨(林氏) 병사(丙舍)의 터를 임득춘(林得春)이 잡았다는 말이다. 감정(監正)은 군자감 정(軍資監正)에 추증된 임득춘으로, 병자호란에 나라를 위해 싸우다가 죽었는데 이로 인해 군자감 정에 추증되었다. 《後滄集 卷23 贈嘉善大夫漢城府左尹林公墓碣銘》 진정(甄亭)에……생각해서이고 진정은 진씨(甄氏)의 정자로, 사정(思亭)을 가리킨다. 송(宋)나라 때 서주(徐州)의 부호였던 진씨 집안이 진군(甄君)의 대(代)에 이르러 빈한해졌다. 그래서 부모 형제가 죽어도 장례를 치르지 못하다가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여러 영구(靈柩)를 함께 장사지내고 무덤 가에 조상을 추모한다는 뜻을 담은 사정을 지었다. 《古文眞寶後集 卷10 思亭記》 이사(李舍)에……기다려서지 이사는 이씨 산방(李氏山房)을 가리킨다. 송(宋)나라 이상(李常)은 젊었을 때 여산(廬山)의 백석승사(白石僧舍)에서 공부하였다. 과거에 급제하고 나서 장서(藏書) 1만 권을 뽑아서 공부하던 집에다 기증하고, 그곳을 '이씨 산방'이라 명명하였다. 《古文眞寶後集 卷9 李君山房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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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산 족형 양식 을 애도하다 悼晦山族兄【亮植】 용성157)에서 고아한 명망 공보다 앞선 이 없는데 龍城雅望莫公先하물며 우리 일가에서 노전158)처럼 숭상받음에랴 矧在吾宗魯殿崇칠절의 이름난 가문은 대대로 내려온 덕을 전하였고 七節名門傳世德팔순의 오랜 수명은 인의 공을 보답받은 것이네159) 八旬遐壽報仁功뭇 신선들 천상에서 자리를 비워 두겠지만 列仙天上應虛座인간 세상 경박한 세태 누가 풍속 바로잡을까 薄俗人間孰矯風서리 이슬 내릴 제 봉산160) 길에서 3년 전 헤어졌는데 霜露蓬阡三載別결국 이날 되니 한이 끝이 없구나 竟成此日恨無窮 龍城雅望莫公先, 矧在吾宗魯殿崇.七節名門傳世德, 八旬遐壽報仁功.列仙天上應虛座, 薄俗人間孰矯風?霜露蓬阡三載別, 竟成此日恨無窮. 용성(龍城) 전라북도 남원(南原)의 고호이다. 김양식(金亮植)은 지금의 전북 남원시 산동면 목동리에 거주하였다. 노전(魯殿) 서한(西漢) 경제(景帝)의 아들 노공왕(魯恭王)이 세운 영광전(靈光殿)을 가리킨다. 뒷날 많은 궁전들이 모두 없어지고 영광전만 홀로 남았기에, 후한(後漢)의 왕연수(王延壽)는 〈노영광전부서(魯靈光殿賦序)〉에서 "영광전만 우뚝 홀로 서 있었다.[靈光巋然獨存.]"라고 읊었다. 이후로는 홀로 남은 인물이나 건물 등을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 인(仁)의……것이네 《논어》 〈옹야(雍也)〉에 "지혜로운 자는 즐겁고, 인한 자는 장수한다.[ 知者樂, 仁者壽.]"라고 한 말을 원용한 것이다. 봉산(蓬山) 전라북도 변산면 중계리에 소재한 봉래산(蓬萊山)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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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전 황군 욱 에게 주다 贈石田黃君【旭】 석전의 고아한 흥취가 문단을 뒤흔들었고 石田雅致動詞林게다가 서법에 뛰어나 촌음을 아꼈지 亦復工書惜寸陰조적의 고문163)은 응당 궁구할 수 있고 鳥跡古文應可究마제의 묘법164)은 어찌 찾기 어려우랴 馬蹄妙法豈難尋섬등165)에 붓을 휘두르니 바람이 일려 하고 剡藤落筆風將起단석166)에 못을 뚫으니 물이 얼마나 깊은가 端石穿池水幾深장욱167)은 천추의 명필이요 황욱도 그러하니 張旭千秋黃旭又사람으로 하여금 〈팔선가〉168)를 짓게 하네 令人堪作八仙吟 石田雅致動詞林, 亦復工書惜寸陰.鳥跡古文應可究, 馬蹄妙法豈難尋.剡藤落筆風將起, 端石穿池水幾深.張旭千秋黃旭又, 令人堪作八仙吟. 조적(鳥跡)의 고문(古文) 새 발자국 모양의 서체를 이르는 말로서, 중국 황제 때 창힐(蒼頡)이 새의 발자국을 보고 글자를 만들었다는 데서 유래한다. 조전(鳥篆)이라고도 한다. 마제(馬蹄)의 묘법(妙法) 말발굽 모양의 필법(筆法)을 이르는 말로, 글자의 가로획을 긋는데 왼쪽 끝은 말굽 형상으로, 오른쪽 끝은 누에의 대가리 형상으로 하였다. 섬등(剡藤) 섬계(剡溪)에서 나는 등(藤)으로 만든 종이를 말하는데, 이 종이가 가장 좋기로 유명하다. 단석(端石) 단계(端溪)의 돌로 만든 벼루인 단계연(端溪硯)을 말한다. 중국 광동성(廣東省) 조경부(肇慶府) 단계에서 생산되는 자석연(紫石硯)으로 만드는데, 먹이 진하게 잘 갈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장욱(張旭) 당(唐)나라 때의 서가(書家)로, 초서(草書)에 능하여 세칭 초성(草聖)이라고 한다. 팔선가(八仙歌) 당(唐)나라 때 술을 즐겨 마시며 풍류를 만끽하여 음중팔선(飮中八仙)이라 불렸던 이백(李白), 하지장(賀知章), 이적지(李適之), 여양왕(汝陽王) 이진(李璡), 최종지(崔宗之), 소진(蘇晉), 장욱(張旭), 초수(焦遂)에 대해 읊은 노래로, 두보(杜甫)의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를 말한다. 《杜少陵詩集 卷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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