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0년 송도(宋鍍)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庚子元月七日 鍍 宋生員宅 庚子元月七日 鍍 宋生員宅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840년에 도가 송생원 앞으로 보낸 편지. 전북 여산(礪山) 장암리(場巖里) 용동(龍洞)에 사는 송도(宋鍍)가 경자년(庚子年) 새 해를 맞이하여 송생원(宋生員) 앞으로 보낸 편지이다. 경자년은, 종이의 질(質)로 보아 1840년(헌종 6)으로 추정된다. 발신인의 도(鍍)의 성은 편지에 적혀 있지 않지만 수신인과 마찬가지로 송씨(宋氏)였다고 보아야 한다. 수신인과 같으므로 굳이 성을 쓰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발신인인 도에 심제인(心制人)이라고 적혀 있는데, 심제인은 심제의 기간 중에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심제는 대상(大祥)에서부터 담제(禫祭) 때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대상은 죽은 지 두 돌 때에 지내는 제사를, 담제는 죽은 지 3년이 되는 때에 지내는 의식을 말한다. 상주는 이 담제를 지낸 후에야 비로소 평상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 편지를 보낼 당시 송도는 상중(喪中)에 있었던 것이다. 한편 송도가 살았던 장암은 오늘날의 익산시 낭산면 장암길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본 편지를 받은 송생원은 도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었다. 상대방에 대하여 '형(兄)'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는 송생원에게 우선 신년 인사를 드리고, 다음으로는 상을 당한 후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은 더욱 커져만 가고 있음을 토로하고 있다. 아마도 아버지나 혹은 어머니의 상을 당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다음으로 도는 송생원이 초시에 합격하였다는 소문을 자신도 들었다고 하였다. 발해(發解)라는 단어가 곧 그 의미인데, 여기서 말하는 초시는 문과 초시였다고 보아야 한다. 송생원이라고 한 이상, 그는 이미 소과에 합격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문과였느냐가 중요한데 그 시험이 식년시 문과 초시였을 것임은 추정하기 어렵지 않다, 편지를 보낸 경자년(庚子年)은 식년이었고, 식년시 문과 초시를 식년 한 해인 전식년 가을에 마치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송생원은 본 편지를 받기 얼마 전 식년시 문과의 초시에 합격한 상태였던 것이다. 이 문과 초시는 물론 여산이 속한 전라우도(全羅右道)의 문과 초시였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궁금한 점이 있다. 송생원의 초시 합격 소문을 들었다고 말한 뒤, 도가 근심이 가득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합격자 발표 이후, 뭔가 걱정되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고 생각되는데, 그것은 아마도 송생원이 시험을 볼 때 남의 손을 빌러 글씨를 썼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한다. 남의 손을 빌러 글씨를 쓰는 일을 대서(代書)라고 하였는데, 사실 대서는 법으로 허용된 일이었다. 팔을 다친 사람이 과장(科場)에 나갈 경우, 그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서가 대술(代述)로 이어진다면 사정은 달라졌다. 용납되지 않았다. 대술을 글씨를 써 주는 사람이 글을 짓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즉 시험지에 적힌 내용은 응사지의 실력이 아니라 대술자의 지식이 반영된 결과였던 것이다. 도는 송생원이 혹시라도 대술을 받은 사람으로 의심받게 되는 점을 우려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