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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탄기 春灘記 동경(東京)149)이 어떤 때이며, 부춘(富春)150)이 어떤 땅인가? 희희양양(熙熙穰穰)151) 왕래하다 안개와 구름이 사라지고 텅 비면 아득히 넓고 큰 바다의 한 알 좁쌀 같고, 산고수장(山高水長)152)하여 위대한 운치와 빼어난 자취가 천고에 빛나는 해와 별과 같아 사람들로 하여금 완연히 마치 운산(雲山)과 강수(江水)의 사이에서 바라보고 대하고 있는 것 같게 한다.호남(湖南)에도 또한 부춘강이 있으니 강가에 고 처사 정공(鄭公)이 장수(莊修)153)하던 곳이다. 공은 광채를 감추고 세상을 만나지 못해 남쪽 고을의 한 선비[布衣]에 불과할 뿐이다. 돌아가신 지 이미 오래되었으나 칭송이 자자하여 춘탄(春灘)으로 지목하기에 이르렀다. 대개 그 지역을 기록한 것은 그 사람을 생각하기 때문이고, 그 사람을 생각하는 것은 그 덕을 사모하기 때문이니, 이 강과 이 산은 이미 끝날 기약이 없으니, 공이 사람들에게 사모를 받는 것은 생각건대 또한 엄 선생(嚴先生)154)과 같을 것이다. 저 고거사마(高車駟馬)155)를 많은 사람들이 창야(唱喏)156)하는 것은 바로 철새나 후충(候虫)157)이 한 때 귀를 시끄럽게 하는 것이다. 내 비록 당시에 끊임없이 왕래하지는 못하였지만 만년에 이 강가에 우거하며 정채(精釆)를 상상하고 우러르니, 삼가 이것을 써서 뜻을 드러낸다. 東京何時。富春何地。熙往穰來。烟消雲空。渺然滄海之一粟。而山高水長。偉韻逸躅。日星於千古。得使人人。完若瞻對於雲山江水之間。湖之南。亦有富春江。上有故處士鄭公莊修之地。公潛光蘊輝。不遇於世。不過爲南州之一布衣耳。没世旣久。而稱誦藉藉。至以春灘目焉。蓋志其地。所以思其人。思其人。所以慕其德。此江此山。旣無有了期。則公之所以見慕於人者。想亦與嚴先生同矣。彼高車駟馬。千人唱喏。卽時鳥候虫一時之聒耳。余雖不能源源於當日。而晚寓此江之上。想仰精釆。謹書此而見志焉。 동경(東京) 후한(後漢)의 도성인 낙양(洛陽)으로, 곧 후한을 가리킨다. 부춘(富春) 부춘산(富春山)으로, 후한(後漢) 때 엄광(嚴光)이 광무제(光武帝)의 초빙을 물리치고 은거한 산이다. 희희양양(熙熙穰穰) 이익 추구를 위해 시끄럽고 번잡하게 오가는 모습을 형용한 말이다. 《사기》 권129 〈화식열전(貨殖列傳)〉에 "천하가 희희함은 모두 이익을 위해 오는 것이요, 천하가 양양함은 모두 이익을 위해 가는 것이다.[天下熙熙, 皆爲利來, 天下壤壤, 皆爲利往.]"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양(穰)과 양(壤)은 통용이다. 산고수장(山高水長) 산은 높고 물은 유유(悠悠)히 흐른다는 뜻으로, 군자(君子)의 덕이 높고 끝없음을 산의 우뚝 솟음과 큰 냇물의 흐름에 비유했다. 송(宋)나라 범중엄(范仲淹)의 〈엄선생사당기(嚴先生祠堂記)〉에 "구름 낀 산 푸르고 푸르듯, 저 강물 곤곤히 흐르고 흐르듯, 선생의 풍도 역시 산고수장이로세.[雲山蒼蒼, 江水泱泱, 先生之風, 山高水長.]"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장수(莊修) 장수유식(藏修遊息)의 준말로 늘 학문에 전념함을 뜻한다. 《예기》 〈학기편(學記篇)〉에 "군자는 학문에 대해서 학교에 들어가서는 학업을 닦고 학교에서 물러나 쉴 때는 기예를 즐긴다.[君子之於學也, 藏焉修焉, 息焉游焉.]"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저본의 '장(莊)' 자는 '장(藏)'의 오자로 보인다. 엄 선생(嚴先生) 후한(後漢)의 엄광(嚴光)을 말한다. 자는 자릉(子陵)이다. 광무제(光武帝)가 제위(帝位)에 오르기 전에 함께 공부하던 사이였는데, 광무제가 즉위하자 성명을 고치고 숨어 나타나지 않았다. 나중에 광무제가 찾아서 간의대부(諫議大夫)를 제수하였으나 받지 않고 부춘산(富春山)에 숨어 살았다. 《後漢書 逸民列傳 嚴光》 고거사마(高車駟馬) 수레덮개가 높은 수레와 네 마리의 말이란 뜻으로, 부귀한 사람이 타는 것을 말한다. 한(漢)나라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장안(長安)으로 들어가던 중 고향인 성도(成都)를 지나다가 승선교(昇仙橋) 다리 기둥에 "높은 수레와 사마를 타지 못하면 다시는 이 다리를 지나지 않겠다.[不乘高車駟馬, 不過此橋.]"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漢書 卷57 司馬相如傳》 창야(唱喏) 남자가 읍하면서 소리를 내어 공경을 보이는 것이다. 후충(候蟲) 철따라 생기는 벌레를 뜻하는데, 예컨대 봄에는 나비, 여름에는 매미, 가을에는 귀뚜라미 등을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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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탄기 松灘記 회옹(晦翁)의 시에 이르기를 "평생 비바람 부는 저녁이면, 매번 명절의 어려움을 생각하네.[平生風雨夕, 每念名節難.]"라고 하였으니,159) 풍우는 어느 때 불며, 명절은 어떤 일이며, 회옹이 탄식을 발한 것은 무슨 뜻인가?오호라! 천하에 선치(善治)가 없었던 것이 오래 되었다. 그러나 선치의 도를 강론하여 밝혀 사람을 선하게 하고 후세에 전하여 한 가닥 양의 기운을 천하에 보존하는 것은 선비 된 자의 책임이 아니겠는가. 선비의 추향이 예스럽지 못한 것이 또한 이미 오래 되었다. 이름을 따르고 실상을 잊으며 이익을 보고 의를 배반하여 평소 한가로운 날에도 동서로 넘어지고 기울어 이미 능히 스스로를 부지하지 못하는데, 더구나 비바람을 예측할 수 없는 때에야 어떠하겠는가. 온갖 초목이 모두 병들고 온갖 나무가 함께 시들어 심지어 난초가 변하여 쑥대가 되고 혜초가 변하여 띠 풀이 되지만 세한(歲寒)의 기약을 잃지 않는 것은 오직 시냇가의 푸른 소나무뿐이다.나의 벗 송탄자(松灘子)는 평소 강개하여 어울리는 사람이 적었으니, 까닭에 지극한 뜻을 무의(無意)에 깃들이고 지극한 정을 무정(無情)에 의탁하여 조석으로 서성이며 배회할 곳으로 삼았으니, 생각건대 이것이 회옹이 탄식을 발한 뜻이 아니지는 않을 것이다. 내 장차 한 번 찾아가 물어보고 인하여 가르침에 의지하기를 마치 조라(蔦蘿)가 뻗는 듯이 할 것이다.160) 晦翁詩曰。平生風雨夕。每念名節難。夫風雨何時。名節何物。晦翁之所以發歎何意。嗚乎。天下之無善治久矣。然講明善治之道。淑諸人。傳諸後。以存一縷陽脈於天下者。其非爲士者之責耶。士趨之不古。亦已久矣。徇名而忘實見利而背義。在平常燕閒之日。而東倒西歪。已不能自持。況於風雨不測之時乎。百卉具腓。萬樹同凋。以至蘭變爲蕭。蕙化爲茅。而不失其爲歲寒之期。惟是澗畔蒼然者耳。余友松灘子。平生慷慨。寡諧於人。所以寓至意於無意。托至情於無情。以爲日夕盤桓之地者。想未必不是晦翁發歎之意也。余將一造而問焉。因以依附下風。如蔦蘿之施。 회옹(晦翁)의……하였으니 이 시는 남헌(南軒) 장식(張栻)의 시 〈양정방을 보내며[送楊廷芳]〉3수 가운데 셋째 수에 나온다. 정의림의 착오로 보인다. 조라(蔦蘿)……것이다 《시경》 〈소아(小雅) 규변(頍弁)〉에 "겨우살이와 여라가 송백에 뻗어 있네[蔦與女蘿, 施于松柏.]"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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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사302)에서 제군과 함께 읊다 萬社共諸君吟 십리길 창강이 나의 거처라 十里滄江是我居두 나막신 가뿐가뿐 수레가 필요없지 輕輕雙屐不須車가증스럽게 온 세상이 금수303)로 돌아가는데 生憎擧世歸蹄跡정말 기쁘게도 제군들이 좀벌레 없애는구나304) 端喜諸君掃蠹魚늦은 국화 달게 먹으니 도굴305)의 후예요 晩菊甘餐陶屈後맑은 샘물 상쾌히 마시니 공안306)의 후학이네 淸泉爽飮孔顔餘두동의 산색은 천고토록 푸르고 斗東山色靑千古견줘 보니 흉금의 기약은 다 같구나 較看襟期一樣如 十里滄江是我居, 輕輕雙屐不須車.生憎擧世歸蹄跡, 端喜諸君掃蠹魚.晩菊甘餐陶屈後, 淸泉爽飮孔顔餘.斗東山色靑千古, 較看襟期一樣如. 만사(萬社) 만종서사(萬宗書社)를 가리키는 듯하다. 금수 원문의 '제적(蹄跡)'은 금수(禽獸)의 발자국으로 오랑캐를 뜻한다. 좀벌레 없애는구나 책을 읽는다는 뜻이다. 책을 읽기에 책종이에는 좀벌레가 슬지 않는 것이다. 도굴(陶屈) 동진(東晉)의 처사(處士)인 도잠(陶潛)과 초(楚)나라의 대부 굴원(屈原)을 가리킨다. 공안(孔顔) 공자(孔子)와 그 제자 안회(顔回)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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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덕재 문공전 好德齋文公傳 호덕재(好德齋) 문공의 휘는 영국(永國), 자는 사랑(士良)으로 강성군(江城君) 익점(益漸)이 현조가 된다. 휘가 자수(自修)이며 호가 면수재(勉修齋)라는 분은 고을 사람들이 사당에서 제사를 지낸다. 고조는 세휘(世輝)로 진사를 지냈고, 증조는 명오(命吾)로 장악원 정(掌樂院正)에 증직되었다. 조부는 희맹(喜孟)으로 호조 참의에 증직되었으며, 아버지는 필진(弼鎭)으로 호조 참판에 증직되었다. 어머니 정부인(鄭夫人)이 일찍이 꿈을 꾸었는데, 골격이 준수한 어떤 어르신이 엄숙한 모습으로 방에 들어와서 스스로를 '분양거사(汾陽居士)'174)라 말하였는데, 얼마 뒤에 공을 낳았다. 또 하루는 기어가다가 우물에 떨어진 것을 집안사람들이 알지 못하였는데, 까치떼가 우물을 둘러싸고 지저귀니 부인이 가서 보고 건져냈다고 한다. 3세에 참판공이 세상을 떠나자 슬픔을 다하여 울부짖기를 밤낮으로 그치지 않으니 보는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 어머니를 섬김에 기쁘고 화한 안색으로 효도를 다하였는데, 집안이 본래 가난하여 봉양할 것이 없는 것을 가슴 아파하며 고기 잡고 나무하고 밭 갈고 심어 온갖 필요로 하는 것은 몸소 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흉년을 당하여서 백리 밖에서 쌀을 짊어지고 올 때에 무뢰배들이 도적을 방비하고 막는다고 하면서 빼앗고자 하자 한 사람이 그를 알아보고 "이분은 백암(白巖)의 문효자이시다." 라고 하니 마침내 보호하여 보내주었다. 어머니 상을 당하여서는 몸이 상할 정도로 너무 슬퍼한 탓에 거의 목숨을 잃을175) 뻔하였고, 염습하는 도구와 매장하는 절차, 궤전의 의례는 반드시 정성스럽고 미덥게 하였다. 중년 이후로 집안의 형편이 조금 펴지고, 아래로 자제(子弟)의 봉양이 있었다. 자로(子路)가 진수성찬을 먹고 호화롭게 생활하면서도 직접 쌀을 져 올 수 없다고 탄식했던 말176)을 욀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 옷깃을 적시곤 하였다. 백중(伯仲)을 섬김에 공경하기를 아버지와 같이 하여 나가고 들어오는 것과 나아오고 물러가는 것을 반드시 여쭌 뒤에 행하였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생활이 빈곤하여 백방으로 집안 일을 맡아서177)하였는데, 매번 한가한 날이면 형제들이 모여 마주하고 경전을 토론하였다. 하루는 들에 나가 밭을 갈고 있었는데 책장사가 지나가자 마침내 밭가는 소를 책과 바꿔 글방을 열어 책을 쌓아두고 널리 어진 사우(士友)를 맞이하여 여러 자손들이 학업을 익힐 수 있도록 도왔다. 평생 태만한 모습이 없었고, 빨리 말하거나 바쁜 기색이 없었다. 실질에 힘쓰고 형식적인 화려함을 제거하였으며, 의를 귀히 여기고 재물을 가벼이 여겼다. 무릇 오랜 벗과 친척 중에 궁핍한 사람이 있으면 힘이 닿는 대로 돌보지 않음이 없었다. 가난해서 장사하지 못한 자를 장사지내주었으며, 그 시집가고 장가들지 못한 자를 시집 장가 보내주었다. 일찍이 자손을 경계하기를, "궁핍하게 홀로 사는 이를 업신여기지 말고, 화려하고 사치함을 따르지 말며, 술과 고기를 즐기지 말고, 장기와 바둑을 가까이 하지 말며, 선비든 농부든 간에 각자 자기의 생업에 부지런히 힘쓰고 부귀와 문장을 능사로 삼지 말고, 다만 대대로 부지런하고 삼가는 자손을 두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라고 하였다. 부인 광산 김씨는 정숙하고 온유하여 시부모 봉양하기를 효도로써 하였고, 남편 섬기기를 공경으로써 하였으며, 집안사람들 대하기를 화목함으로 하였다. 부부가 동갑으로 오래도록 해로하다가 회근례(回巹禮)178)를 행하였다. 공의 나이 95세일 때에 정상원(鄭相元, 1678~1754) 부객(府客)이 듣고 이를 가상히 여겨 천거하니 오위장(五衛將)에 제수되었고, 곧이어 숭정대부지중추부사(崇政大夫知中樞府事)에 임명되었다. 대개 이는 우로(優老)의 특별한 은전(恩典)179)이었다. 3년 뒤에 세상을 떠났다. 고을의 후생 정의림이 다음과 같이 말한다.상고(上古)시대에는 질박함이 흩어지지 않은데다가 성왕(聖王)이 계속 일어나 표준을 세우고 복록을 내려주었기 때문에 인민(人民)이 번성하고 집안이 평안하여 온 세상을 태평성대의 세상180)에서 살게 하였다. 그러나 말세(末世)로 내려와서는 풍속이 경박하여 재앙의 징조가 늘 있는 듯하였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 일찍 요절하거나 번뇌181)에 시달리며 의지할 곳이 없이 외롭거나 노쇠한 곤액에 빠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 오복 중의 한두 개를 얻을 수 있는 자는 몇 사람이 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스스로 일을 살펴보니, 인가(人家)의 흥망성쇠를 겪는 것이 많을 뿐만이 아니었는데, 그 순전한 길복과 완전한 아름다움은 공의 집만한 곳이 없었다. 집에는 재물을 쌓는 두터움이 있고, 가정에는 후사를 잇는 번성함이 있었으며, 몸은 백수를 누려 지위가 높은 품계에 올랐으며, 강녕하여 아무 탈이 없고 고상하고 아름답게 일생을 마쳐182) 자손 백여 명이 모두 박아하고 두터워 각각 한 가지 기예에 통달하였으니, 옛사람들이 이른바 제일가(第一家)라는 것에 못지않을 것이다. 아, 감천(甘泉)은 반드시 예천(醴泉)183)의 근원에서 시작하고, 찬란한 옥찬(玉瓚)은 반드시 황류(黃流)를 기다려야 하니,184) 만일 덕과 인을 쌓아 하늘을 감동시켜 화기(和氣)를 부른 자가 아니라면, 세상의 수준이 점차 낮아지는 날에 어찌 하늘이 주신 복을 이처럼 두텁게 누릴 수 있었겠는가. 동생(董生)185)의 행의(行義)는 본래 천옹(天翁, 하늘)이 굽어 살피심이 있어서였고, 최씨(崔氏) 가문이 창대함은 실로 당씨(唐氏)의 효경(孝敬)에 힘입은 것이로다.186) 好德齋文公諱永國。字士良。江城君益漸爲顯祖。有諱自修號勉修齋。鄕人祭于社。高祖世輝進士。曾祖命吾贈掌樂院正。祖喜孟贈戶曹參議。考弼鎭贈戶曹參判。妣鄭夫人嘗夢。有一丈人。風骨俊偉。儼然入室。自稱汾陽居士。己而産公。一日匍匐而落於井。家人不知也。有羣鵲擁井而噪。夫人往視而拯救之。三歲參判公違背。索呼孺啼。晝夜不輟。見者無不釀涕。事慈幃。極其怡愉。家素貧。傷無以養。漁樵耕稼。凡百所須。無不身親爲之。遇飢歲。負米百里之外。無賴輩稱以防禁。欲攘奪之。有一人知之曰。此白巖文孝子。遂護送之。遭艱。致哀毁。幾滅性。襲斂之具。掩厝之節。饋奠之儀。必誠必信。中年以後。家力稍紓。下有子弟之奉。每誦子路列鼎累茵。歎不得爲親負米之語。而不覺嗚咽沾衿。事伯仲。敬之如嚴父。出入進退。必稟而行早孤貧。幹蠱百端。而每於暇日。兄弟聚對。討論經籍。一日出耕于野。有冊商過之。遂以耕牛易之。開塾儲書。廣延賢士友。以資諸子孫肄業。平生無怠慢之容。無疾遽之色。務實而祛華。貴義而輕財。凡知舊族戚有窮乏者。無不隨力存恤葬其不能葬者。嫁娶其不能嫁娶者。嘗戒子孫不侮窮獨。不服華靡。勿嗜酒炙。勿近博奕。於士於農。各勤其業。不以富貴文章爲能事。但世世有勤勅子孫。是吾願也。齊光山金氏。貞靜柔嘉。奉舅姑以孝。事君子以敬。待家衆以和。同庚偕老。行回巹禮。公年九十有五。鄭相元府客聞而嘉賞薦。除五衛將。尋拜崇政大夫知中樞府事。蓋優老別恩典也。後三年而終。鄕里後生鄭義林曰。上古大樸未散。加以聖王繼作。建極錫福。是以生齒繁庶。家用平康。躋四海於壽域。降及叔季。俗澆數薄。咎徵恒若。人之生於其間多夭札缺漏煢獨殘悴之厄。而得有其五福之一二者。無幾人矣。余自省事。閱人家興替。不啻多矣。而其純吉全美。未有若公家也。家有居積之厚。庭有似續之蕃。身享百壽。位躋崇品。康寧無恙。高朗令終。子孫百餘人。皆博雅長厚。各通一藝。古人所謂第一家者。不爲專美矣。嗚乎。甘泉必自醴源。瑟瓚必待黃流。如非積德累仁感召和氣者。則在世級浸降之日。而豈能享此天餉若是其厚耶。董生行義自有天翁之降監。崔門昌大。實賴唐氏之孝敬。 분양거사(汾陽居士) 당(唐) 현종(玄宗) 때의 장수 곽자의(郭子義)로, 분양왕(汾陽王)에 봉해졌기 때문에 흔히 곽분양(郭汾陽)이라 부른다. 안녹산(安祿山)의 난을 평정하는 데 큰 공(功)을 세웠다. 아들 여덟에 사위 일곱 명이 모두 조정에서 귀현(貴顯)하였고, 손자 수십 명은 다 알아보지 못하여 문안 때면 턱만 끄덕일 뿐이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역사상 가장 팔자 좋은 사람의 대명사가 되어 인신(人臣)으로서의 영화와 자손의 번성함을 이야기할 때 흔히 예로 드는 인물이다. 목숨을 잃을 원문의 '멸성(滅性)'은 부모의 상을 당해 너무 슬퍼한 나머지 목숨을 잃는 것을 말한다. 《예기》 〈상복사제(喪服四制)〉에 "사흘이 지나면 죽을 먹고, 석 달이 지나면 머리를 감고, 일 년이 지나면 연제(練祭) 이후의 상복으로 갈아입는다. 몸이 수척해질 정도로 지극히 애통해하더라도 자기의 생명만은 해치지 말아서, 어버이의 죽음 때문에 자기의 생명까지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三日而食, 三月而沐, 期而練, 毁不滅性, 不以死傷生也.]"라고 하였다. 자로(子路)가……말 자로가 일찍이 공자(孔子)를 뵙고서 "예전에 제가 두 어버이를 섬길 때에는 항상 명아주와 콩잎만 먹는 형편이었으므로, 어버이를 위하여 100리 밖에서 쌀을 져다가 봉양하곤 했는데, 어버이가 돌아가신 뒤로 남쪽으로 초나라에 노닐 적에 따르는 수레가 100여 대요, 만종의 곡식을 쌓아 두고 요를 여러 겹으로 깔고 앉아서 진수성찬을 차려 놓고 먹으면서는 다시 명아주 콩잎을 먹으면서 어버이를 위해 쌀을 져 오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昔者由也事二親之時, 常食藜藿之實, 爲親負米百里之外. 親沒之後, 南遊於楚, 從車百乘, 積粟萬鍾, 累茵而坐, 列鼎而食, 願欲食藜藿, 爲親負米, 不可復得也.〕"라고 한 말을 가리킨다. 《孔子家語 致思》 가업(家業)을 계승 원문의 '간고(幹蠱)'는 간부지고(幹父之蠱)의 준말로, 자식이 아버지의 뜻을 잘 계승하여 아버지가 미처 다 이루지 못한 사업을 완성하는 것을 말한다. 《주역》 〈고괘(蠱卦) 초육(初六)〉에 "초육은 아버지의 일을 주관함이니, 자식이 있으면 돌아간 아버지가 허물이 없게 된다.[初六, 幹父之蠱, 有子, 考无咎.]"라고 하였다. 회근례(回巹禮) 혼인(婚姻)한 지 60주년(週年)이 되는 것을 말하는데, 회혼례(回婚禮)라고도 한다. 우로(優老)의 특별한 은전(恩典) 나라에서 노인을 공경하는 뜻으로 80세 이상의 노인에게 관직(官職)을 내리는 은전을 말한다. 태평성대의 세상 원문의 '수역(壽域)'은 인수지역(仁壽之域)의 준말로, 천수(天壽)를 다하며 살 수 있는 태평성대를 가리킨다. 《한서(漢書)》 권22 〈예악지(禮樂志)〉의 "한 세상의 백성들을 몰아서 인수의 지역으로 인도한다면 풍속이 어찌 성강 때처럼 되지 않을 것이며, 수명이 어찌 고종 때처럼 되지 않겠는가.[驅一世之民 濟之仁壽之域 則俗何以不若成康 壽何以不若高宗]"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번뇌 원문의 '결루(缺漏)'는 불교 용어로 번뇌를 말한다. 번뇌는 심신을 얽매므로 결(缺)이라 하고, 눈 귀 등의 6근으로부터 밤낮으로 누설하기 때문에 누(漏)라고 한다. 고상하고……마쳐 훌륭한 행실로 유종의 미를 거두며 세상을 떠났다는 말이다. 《시경》 〈기취(旣醉)〉 3장에 "광명정대함이 환히 빛나니 고명(高明)하여 마침을 잘 하리라. 마침을 잘하는 데 시작이 있으니, 제사의 시동(尸童)이 좋은 말을 고하도다.〔昭明有融 高朗令終 令終有俶 公尸嘉告〕"라고 한 구절에서 인용한 것이다. 예천(醴泉) 감미로운 물이 솟아난다는 신비한 샘인데, 훌륭한 자손이 나는 가문에 그 조상의 근원이 있음을 말한다. 옛말에 "신령한 지초와 단맛의 샘물은 반드시 뿌리와 근원이 있다." 하였다. 찬란한……하니 옥찬(玉瓚)은 옥 손잡이에 바닥은 금으로 된 국자로 강신제 때 쓰며, 황류(黃流)는 종묘의 제사에 쓰기 위하여 울금향을 넣어 만든 술이다. 울금의 뿌리를 넣으면 술빛이 황색으로 변하므로 황류라고 한 것인데, 모두 귀한 인재를 뜻한다. 《시경》〈대아(大雅) 한록(旱麓)〉에 "아름다운 저 옥 술잔에 황류가 담겨 있도다.[瑟彼玉瓚, 黃流在中.]"라고 하였다. 동생(董生) 동생은 중국 당(唐)나라의 동소남(董召南)을 말한다. 동소남(董邵南)이라고 하기도 한다. 동소남은 진사과에 낙방한 다음 고향으로 돌아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주경야독하면서 살림을 잘 꾸려 부모를 편안하게 모시고, 처자식이 근심이 없도록 하였다. 이러한 동소남의 모습을 그와 친분을 가지고 있었던 한유가 〈차재동생행(嗟哉董生行)〉이라는 고시를 지어 "아, 동생이여, 아침엔 들에 나가 농사를 짓고, 저녁엔 돌아와서 옛사람의 글을 읽네. 하루 종일 쉬지를 않으며, 산에 가서 나무도 하고, 물에 가서 고기도 잡네. 주방에는 맛난 음식 갖춰져 있고, 대청에선 평안한지 물어본다네. 부모님은 근심을 아니하시고, 처자식은 탄식을 아니 한다네.[嗟哉董生朝出耕, 夜歸讀古人書. 盡日不得息, 或山而樵, 或水而漁. 入廚具甘旨, 上堂問起居. 父母不戚戚, 妻子不咨咨.]"라고 칭찬하였다.《韓愈集 卷2 古詩》 최씨(崔氏)……것이로다 최씨 가문에 시집온 당부인(唐夫人)이 효경(孝敬)으로 최씨 집안을 창대하게 하였다는 말로, 김씨 부인을 칭찬한 표현이다. 당(唐)나라 때 산남서도 절도사(山南西道節度使)를 지낸 최관(崔琯)의 증조모 장손 부인(長孫夫人)이 나이가 많아 치아(齒牙)가 없어 밥을 먹지 못하자, 최관의 조모 당부인이 수년 동안 시어머니인 장손 부인에게 젖을 먹이는 등 효성이 지극하였다. 장손 부인은 죽을 때 집안 식구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며느리의 은혜를 갚을 수 없으니, 며느리의 자손들이 모두 며느리처럼 효도하고 공경하기를 바란다. 그렇게 된다면 최씨의 가문이 어찌 창대(昌大)하지 않겠느냐."라고 하였다. 《新唐書 卷182 崔琯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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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자전 金孝子傳 김효자(金孝子)의 휘는 기원(基源), 자는 군진(君眞), 호는 심헌(心軒)으로 계파는 김해(金海)에서 나왔다. 고(故) 충신 염헌공(淡軒公) 김극검(金克儉)187)의 후손이며, 효자 참봉 김선(金銑)의 7세손이다. 일찍 어버이를 여의고 집안살림이 가난하여 시서(詩書)를 공부할 방도가 없었지만, 천성이 유순하고 신중하여 홀어머니를 섬김에 매우 효성스러웠고, 산에서 나물을 캐고 물에서 고기를 낚아 맛있는 음식을 장만하였으며, 몸을 삼가고 집안을 잘 다스려 그 뜻을 받들었다. 어머니가 병이 있으면 조심스럽게 걷고 크게 웃지도 않으면서188) 한데에서 기도를 올리고 약을 먼저 맛보며189) 지극히 근심하였다. 하루는 병이 위독해지자 마침내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내어 이미 끊어진 목숨을 되살아나게 했다. 초상을 당해서는 애통해 하고 슬퍼함이 지극한 정성에서 우러나와 이웃 마을 사람들이 이를 듣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 종제 중 한 사람이 일찍이 그의 땅을 몰래 팔아먹었는데, 효자는 그 어머니가 들어서 알까 두려워 숨기고 말하지 않았다. 얼마 뒤에 어머니가 들어서 알고는 밥상을 마주하고 드시지 않았다. 효자는 남몰래 스스로 돈을 빌려 값을 지불하고 땅을 돌려받았는데, 어머니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전날에 몰래 팔아먹었다고 한 것은 헛소문입니다."라고 하였다. 그 표형(表兄)이 하루는 집에서 기르던 소를 빼앗아 가자 어머니가 또 밥상을 마주하고 드시지 않았다. 효자가 이에 쫓아가 잡고는 본래의 값만큼 형에게 주고서 소를 끌고 돌아와 어머니의 뜻을 위로하고 기쁘게 해드렸는데, 또 소 값을 지불한 연유를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종제와 표형 대하기를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얼마 뒤 종제가 의지할 곳 하나 없자 효자가 집을 경영해서 편안한 마음으로 생업에 종사하게 했다. 또 한 친척이 공포(公逋, 국가의 재물을 사사로이 소비함)를 범함이 적지 않으니 효자가 타일러 말하기를, "내가 비록 집이 가난하나 마땅히 3분의 2를 갚아줄 것이니 그 3분의 1은 네가 일찌감치 마련하여 관청의 독촉을 받지 않도록 하여라."라고 하였다. 하루는 밖에서 돌아오니 관리가 이미 잡아간 것을 알고는 효자가 즉시 쫓아가 관가의 뜰에 이르자 바야흐로 엄중한 장형을 당하고 있었는데, 효자가 울부짖으며 간절히 빌며 말하기를, "기간을 어긴 죄는 나에게 있고 저 사람에게 있지 않으니 그 곤장을 나누어 받겠습니다."라고 하였다. 관리가 물어서 기특하게 여겨 특별히 그 기한을 늦추어 주니 효자가 힘을 다해 빌려서 그 3분의 1까지도 모두 지급하였다. 그 마음을 미루어 나가 붕우와 향당에 이르기까지 그들과 더불어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이해를 다투지 않으며 화락하고 온화하였으므로 모두 그들의 환심(歡心)을 얻었다. 외사씨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독서하고 학문하는 근본 목적은 자신을 수양하여 행함에 이롭게 하고자 하는 것인데, 겉치레만 숭상하는 폐해가 날로 많아져 진솔한 정이 날로 침체되었다. 효자처럼 가난하고 누추한 환경 속에서 성장하여 글을 읽고190) 종유할 방도가 없는데, 일찍이 스스로 깨달아 부모를 섬김에 있어서 효순한 자식이 되고, 형제들 간에 있어서는 돈독하고 화목한 사람이 되며, 향려(鄕閭)에 있어서는 충신한 선비가 된 분으로 말하자면, 어찌 지금사람이면서 옛 사람이 아니겠으며, 배우지 않고도 배움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떳떳한 본성이 아름답게 여기는 바에 향리(鄕里)의 천거와 사림(士林)의 보답이 한두 번이 아니고 여러 번인 것이 당연하다. 金孝子諱基源。字君眞。號心軒。系出金海。故忠臣淡軒公克儉后。孝子參奉銑七世孫也。早孤貧。居寓甚僻。無詩書遊業之方。而天性馴謹。事偏慈甚孝。採山釣水以供其旨。謹身克家以奉其志。有疾則不翔不矧。露禱嘗藥。極其致憂。一日疾劇。遂嚼指注血。以甦旣絶之命。及遭艱。哀傷慘怛。出於至誠。隣里聞之。莫不釀涕。有一從弟。嘗竊賣其土。孝子恐其母氏聞之。匿不以言。頃之母氏聞之。對案不食。孝子乃潛自稱貸。給價還土。而告于母氏曰。前日之竊賣云者是浪言也。其表兄一日攘家牛而去。母氏又對案不食。孝子乃追而得之。依價與兄。牽牛而還。以慰悅親意。而又不言給價之由。然待從弟與表兄。與平時無異。旣而從弟蕩然無依。孝子爲營室屋。使之安業。又有一族親。犯公逋不少。孝子諭之曰。吾雖貧。當報三分之二。其一汝宜早辦。毋見官督也。一日自外還。見官吏已捉去矣。孝子卽時追去至官庭。方被嚴杖。孝子號泣懇乞曰。愆期之罪。在我不在彼。願分受其杖。官問而奇之。特寬其限。孝子盡力假乞。倂其三分之一而給之。推而至於朋友鄕黨。不與之較曲直。不與之爭利害。而愷悌溫良。皆得其歡心焉。外史氏曰。讀書學問本欲修身利行。而文弊日繁。眞情日替。若孝子生長於艱難朴陋之中。寡佔畢遊從之方。而早自開悟。事父母爲孝順之子。處兄弟爲惇睦之人。在鄕閭爲忠信之上。豈非今人而古人。無學而有學耶。秉彛攸好。鄕里之薦。士林之報。宜其不一而多矣。 김극검(金克儉) 1439~1499.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사렴(士廉), 호는 괴애(乖崖)이다. 문장에 능했고 성품이 청렴결백했다. 《대조실록(世祖實錄)》ㆍ《예종실록(睿宗實錄)》ㆍ《성종실록(成宗實錄)》의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호조 참판(戶曹參判)ㆍ동중추부사(同中樞府事) 등을 지냈다. 조심스럽게……않으면서 부모가 병환이 있을 때, 행동을 경계한 말이다. 《예기(禮記)》 곡례(曲禮)편에, "행불상 소부지신(行不翔笑不至矧)"이라 하여, "다닐 때에도 조심하여 나는 듯이 걷지 말고 웃어도 잇몸이 드러나지 않도록, 즉 크게 웃지 않는다."고 하였다. 약을 맛보며 원문의 '상약(嘗藥)'은 약을 맛본다는 뜻으로 부모님이 병환이 있어 약을 드실 경우 자식이 그 약성을 시험하기 위하여 먼저 약을 맛보는 것을 말한다. 《예기(禮記)》 〈곡례 하(曲禮下)〉에, "임금이 병이 들어 약을 먹을 경우에는 신하가 먼저 맛보고, 부모가 병이 들어 약을 먹을 경우에는 자식이 먼저 맛본다.[君有疾, 飲藥, 臣先嘗之, 親有疾, 飲藥, 子先嘗之.]"라고 하였다. 즉 어버이를 정성껏 효도로 봉양하는 것을 말한다. 글을 읽고 《예기》 〈학기(學記)〉에 "오늘날 가르치는 자들은 그 글자만 보고 웅얼거릴 뿐이다.[今之敎者 呻其佔畢]" 하였다. 신(呻)은 음(吟)의 뜻이고 점(佔)은 시(視)의 뜻이고 필(畢)은 간(簡)의 뜻이니, 오늘날 경서를 가르치는 스승들은 경서의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단지 간편(簡片)에 있는 글자만 보고 송독(誦讀)하여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말이다. 대개 '점필'은 글의 내용은 모른 채 입으로만 송독한다는 다소 부정적인 뜻인데, 후세에는 글을 송독하는 것을 범칭하는 말로 쓰였다. 여기서는 '송독'의 뜻으로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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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녀 설씨전 烈婦薛氏傳 설씨(薛氏)의 본관은 순창(淳昌)으로 진사 응룡(應龍)의 딸이며, 참판 옥천군(玉川君) 훈현(勳玄)의 후손이다. 어려서부터 온화하고 정숙하였으며, 부인의 덕행을 일찍 성취하였다. 19세에 첨정(僉正) 정진(鄭縉)191)에게 시집갔는데, 정진은 본래 나주 사람으로 문정공(文靖公) 가신(可臣)의 후손이며, 가선대부(嘉善大夫) 사현(士賢)의 아들이다. 설씨는 시부모를 섬기고 남편을 받들 적에 내칙을 준수하여 종족에게 칭찬을 받았다. 임진왜란 때에 첨정공(僉正公)이 재종숙인 정응(鄭鷹)·정홍(鄭鴻) 두 사람과 의병을 일으켜 충렬공 고경명의 막하에 나아갔다. 한달 여 만에 금산에서 패배하였다는 소식이 이르자 설씨가 말하기를, "패하였다고 하니 부군도 필시 화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하고는 갑자기 자결하고자 하니 집안사람들이 힘써 만류하였다. 그날 저녁에 남몰래 후원(後園)으로 들어가 또 스스로 목을 매려고 하자 시어머니 김씨가 뒤를 밟아 구원하여 풀어주고 말하기를, "네 남편의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황이니, 그때 죽어도 늦지 않다."라고 하였다. 며칠 뒤에 첨정공이 과연 이르렀는데, 마침 일 때문에 밖에 있어서 죽지 않았던 것이다. 정유재란에는 첨정공과 김억추(金億秋) 등 여러 공들이 다시 의병을 일으켜 대동강을 방어하고 지켰다. 이때에 설씨는 늙은 시어머니 및 재종숙모 정씨와 김씨를 모시고 산골짜기로 피난하고, 여종 몽란(夢蘭)이 따라왔다. 하루는 적이 갑자기 이르러 먼저 그 시어머니를 해치고 또 설씨에게 향하자 설씨가 높은 바위 벼랑에 앉아 큰 소리로 꾸짖으며 말하기를, "너희가 비록 견양(犬羊)과 같은 오랑캐이지만 어찌 조선의 예의의 풍속을 모른단 말이냐."하고는 마침내 바위 아래로 몸을 던져 죽었다. 정씨와 김씨도 모두 가까운 곳에 있다가 또 따라 몸을 던져 죽었다. 몽란이 시체를 끌어안고 통곡하다가 이어 돌에 부딪혀 죽었다. 그때에 첨정공은 서북 길에서 이리저리 옮겨가며 싸우다가 남쪽으로 내려와 이 충무공의 막하에 속하였는데, 노량의 전투에서 재종숙 두 사람과 동시에 순절하였다. 외사씨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천보(天寶)의 난192)에 의사(義士)는 오직 안노공(顔魯公)193) 한 사람뿐이었으며, 오계(五季)194)의 말엽에 정녀(貞女)는 오직 왕응(王凝)의 처 이씨(李氏)195) 한 사람 뿐이었다. 충렬(忠烈)의 어려움이 예로부터 이미 그러한데, 정씨 일문에 충신과 열부가 성대하여 끊이지 않았으며, 그 크나큰 기강과 절개, 유풍과 여운이 환하게 사람의 이목을 비추었으니 아, 공경할 만하도다. 다만 구중궁궐은 깊고도 멀어 정려(旌閭)하고 포장(褒獎)하는 일이 적막하여 비록 유감스러운 것 같지만, 만고의 강상(綱常)에 공이 있는 자는 응당 만고의 강상과 시작과 끝을 함께할 것이니, 어찌 한 때에 드러나고 묻힌 것으로 낮다 높다 할 수 있는 것이겠는가. 薛氏貫淳昌。進士應龍女。參判玉川君勳玄孫。自幼溫仁貞靖。婦行夙就。十九歸僉正鄭縉。縉本羅州人。文靖公可臣后。嘉善士賢子。薛氏事舅姑。奉君子。克遵內則。見稱宗族。壬辰之亂。僉正公與再從叔二人鷹鴻倡義。赴忠烈公幕。月餘錦山敗報至。薛氏曰。一陳敗北。夫君亦必不免。遽欲自處。家衆挽之甚力。其夕潛入後園。又欲自經。姑金氏跟至救解曰。汝夫生死不可知。未晩也。居數日。僉正公果至。適以事在外而得不死也。丁酉再亂。僉正公與金億秋諸公。復起義旅。防守大同江。是時薛氏奉老姑及再從叔母鄭氏金氏。逃難于山峽。婢夢蘭隨之。一日賊猝至。先害其姑。又向薛氏。薛氏據危巖而坐。大聲責之曰。汝雖犬羊。豈不知朝鮮禮義之俗乎。遂投巖下而死。鄭氏金氏俱在傍近。又從而投死。夢蘭抱尸痛哭。因觸石而死。時僉正公自西北路。轉戰南下。隸李忠武幕。露梁之戰與再從叔二人。同時殉節。外史氏曰。天寶之亂。義士惟顔魯公一人。五季之衰。貞女惟王凝妻一人。忠烈之難。自古已然。鄭氏一門。忠臣烈婦。磊落相望。而其宏綱大節。遺風餘韻。炳炳然照人耳目。吁可敬也。但九閽深遠。旌褒寥寥。雖若可憾。然有功於萬古綱常者。當與萬古綱常同其始終。豈一時顯晦所能低昂也耶。 정진(鄭縉) 미상~1598.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자의(子儀)이다. 무과에 급제한 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그의 삼종형제인 정응(鄭鷹)·정홍(鄭鴻)과 함께 고경명(高敬命)의 의진(義陣)에 합세하였다. 고경명의 의병군이 금산전투에서 패배하자, 도원수 김명원(金命元)의 묘막에 잠시 피하였다가, 정부에서 우수사 이억기(李億祺)의 진(陣)에 보내는 문서를 전달하는 데 공을 세워 훈련원첨정에 임명되었다. 그 뒤 1598년 노량해전에 참가하였다가 순절하였다. 천보(天寶)의 난 천보는 당 현종(唐玄宗)의 연호이다. 즉 당시에 일어난 안녹산(安祿山)의 반란을 가리킨다. 안노공(顔魯公) 노군공(魯郡公)에 봉해진 당나라의 안진경(顔眞卿, 709~785)을 이른다. 자가 청신(淸臣)으로, 안녹산(安祿山)의 난에 평원 태수(平原太守)로 있으면서 의병을 모아 혁혁한 공을 세우자, 현종(玄宗)이 하북 초토사(河北招討使)로 삼아 북방 일대의 의병(義兵)을 이끌게 하였다. 난이 끝난 뒤에 호부 상서(戶部尙書)에 제수되고 대종(代宗) 때에 노군공에 봉해졌다. 덕종(德宗) 때에 태자 태사(太子太師)가 되었으며, 이희열(李希烈)이 반란을 일으키자 75세의 노구를 이끌고 초유(招諭)하러 갔다가 구금되어 3년간 온갖 회유를 받았으나 끝내 거절하고 살해되었다. 오계(五季) 당나라가 망하고 송나라가 일어나기까지의 다섯 나라를 말하는데, 후량(後梁)ㆍ후당(後唐)ㆍ후진(後晉)ㆍ후한(後漢)ㆍ후주(後周) 등이다. 왕응(王凝)의 처 이씨(李氏) 왕응은 당(唐)나라 때 학자로, 지방의 관찰사(觀察使)가 되었을 때 왕선지(王仙芝)의 반란을 만나 끝까지 성(城)을 지켰다. 왕응이 타향에서 벼슬살이를 하다가 병으로 죽게 되자 그의 아내 이씨(李氏)가 어린 아들과 함께 남편의 유해(遺骸)를 지고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 개봉(開封)에 들러 숙박을 하게 되었다. 이때 여관 주인이 그녀를 보고 수상하게 여겨 숙박을 거절하며 팔을 잡아당겨 끌어내자, 이씨가 하늘을 보고 통곡하며 "내가 여자가 되어 수절하지도 못하고 다른 남자에게 손이 잡혔으니, 이 손 때문에 내 몸을 더럽힐 수 없다." 하고는 도끼를 가져다 팔을 잘라 버렸던 고사(故事)가 있다. 《新五代史 卷54 雜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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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警 知非欽伯玉。覺是慕淵明。所以古人學。戰兢保一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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永錫齋偶吟 短髮千莖白。晩花百日紅。平生辛苦地。畵柱愧成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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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坐 獨處寬無事。柴扉盡日關。閒中心似水。靜裏意如山。當戶鳥啼下。隔籬人往還。仙鄕不離室。忘却損宋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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用劉屛山韻 風摩空壁去。月入小窓來。中有一寒叟。擁衾古昔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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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자명【진섭】에게 답함 答姜子明【晉燮】 지난날 단란하게 모여 여러 날을 머물지 않음이 없다가, 돌아온 후에 그리워하며 다시 옛날처럼 돌아갈 것을 생각하니, 인정이 끝없음을 참으로 알겠습니다. 집안에 뜻밖의 소란이 일어났다고 들었는데, 근심을 끼친 것이 아마도 적지 않을 듯하니 멀리 바깥에서 걱정하는 마음을 어찌 가눌 수 있겠습니까? 주자가 말하기를, "사람이 환란을 당했을 때에는 단지 하나의 처리 방법이 있을 뿐이니,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극진히 한 다음에 태연히 대처하는 것이다. 만약 제대로 처리하지도 못하고 그 뒤에 놓아 버린다면, 그것은 즉 의(義)도 없고 명(命)도 없는 일이 되고 말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꼭 염두에 두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예전에 경립(景立)이 심을 성정과 대비시키는 것에 대해 물었는데, 이에 대한 저의 답변이 끝내 편안치 못하였습니다. 마음은 성정을 거느리는 것인데, 만약 성정을 말하면서 마음이 그 안에 있다고 하면 마음은 빈 그릇이 되고, 성과 정은 뼈대가 없고 귀결도 없는 것입니다. 저의 실언을 돌이켜보니, 황공하여 불안함을 가누지 못하겠습니다. 복괘(復卦)를 운운했던 것은, 선유(先儒)는 모두 정(靜)에서 천지의 마음을 본다고 하였습니다. 주자에 이르러, "동(動)하는 단서가 곧 천지의 마음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자 또한 복괘를 인용하여 발하지 않았을 때의 지각(知覺)이 어둡지 않다는 뜻을 증명하였습니다. 이는 마땅히 뜻을 따라 상호 참작해야 하니, 성급히 하나의 설만 고집해서는 안 될 듯합니다. 동정(動靜)은 사물의 차원에서 말한 것이고, 미발(未發)과 이발(已發)은 마음의 차원으로 말한 것입니다. 천지 다음에 '미발(未發)'이란 글자를 둔 것은 마땅치 않으니, 헤아려주심이 어떻겠습니까?【질문】복괘 하단의 한 획은 동처(動處)라, 사람의 마음에 있어서는 역시 이발(已發)로써 말한 것입니다. 주자(朱子)가 장흠부(張欽夫)에게 답한 글에 말하기를, "마음이 보존되어 있을 때는 사려(思慮)가 아직 싹트지 않았어도 지각(知覺)은 어둡지 않다. 이것은 정(靜) 가운데의 동(動)이니, 복괘를 통해 천지의 마음을 알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른바 복괘를 통해 천지의 마음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오로지 사람의 마음이 미발(未發)하였을 때를 말한 것입니까?【대답】음양(陰陽)이 소장(消長)하는 차례로 말하면, 복괘는 일양(一陽)이 처음으로 동(動)하는 것이니 정(靜)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음양이 서로 내재하는 체(體)로 말하자면, 복괘는 음 중에 양이 있는 것이요, 정 가운데 동이 있는 것이니, 사람의 마음에 있어서 사려(思慮)가 아직 싹트지 않았어도 지각(知覺)은 어둡지 않다는 시절이 되는 것입니다. 각각의 차원으로 나아가 그 말의 뜻이 있는 곳에서 보아야 할 것입니다.【질문】밝아서 통하고 공평하여 넓게 되니, 밝아짐은 인(仁)이요, 통함은 의(義)이며, 공평함은 예(禮)요, 넓어짐은 지(知)입니다. 그런데, "사랑함을 인이라 하고 마땅함을 의라 하고 다스림을 예라 하고 통함을 앎이라 한다."16)는 것으로 말하자면, 통함은 지(智)에 속하지 않고 의(義)에 속하는 것은 어째서인지요?【대답】통함은 밝음의 성대함이니, 예에 속하는 것이 맞을 것인데, 이를 일러 의에 속한다고 한 것입니까? 예는 불과 짝하고, 불이 뻗쳐서 환히 드러나는 것은 통함의 의미가 있습니다. 지(智)가 물과 짝하는 것은 물이 두루 흘러가기에, 또한 통함의 뜻이 있는 것입니다.【질문】정자(程子)가 말하기를, "「서명(西銘)」에서 그 경지가 이미 높아졌다 하였는데, 이러한 경지에 이르면 절로 따로 보이는 곳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고,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동명(東銘)」과 같은 글은 의미에 다함이 있다. 어찌 「서명」에 담긴 상하로 통하는 도【徹上徹下】와 모든 이치가 하나로 관통되는【一以貫之】 뜻과 더불어 같이 두고 말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 주자의 말을 통해 본다면, 하학(下學)의 공부에 있어서 보완함이 없을 수 없고, 정자의 뜻을 통해 보면, 이러한 위치에 도달한 연후에 절로 보완하는 바가 있을 것이니, 어떻습니까.【대답】초학은 초학에서 터득하는 것이 있고, 현인(賢人)은 현인이 터득하는 바가 있으며, 성인은 성인으로서 터득하는 바가 있으니, 공부된 바가 더욱 깊고, 소견이 더욱 다릅니다.【질문】「정성서(定性書)」에서, "분노의 감정이 일어날 때에도, 사리의 옳고 그름을 살필 수 있어야 한다."라고 하였는데, 대개 분노가 치솟을 때를 당하여, 어찌 사리의 옳고 그름을 살필 수 있겠습니까? 옳고 그름을 살피는 것을 생각하여서 능히 얻을 수 있다는 뜻입니까?【대답】분노를 잊었기 때문에 능히 옳고 그름을 살필 수 있으니, 만약 분노가 치밀어 급박하게 한다면 어떻게 사리를 살필 수 있겠습니까? 분노를 잊고 사리의 옳고 그름을 살피는 것은 두 가지 마음이 있어야 하니, 다만 존양(存養)을 익숙하게 하고 밝은 지혜로 비추는 바가 있다면 자연스럽게 말하지 않아도 깨닫게 될 겁니다. 또한, 사리의 옳고 그름을 살피고 깊이 생각한 끝에 결론을 얻는 것도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疇曩圑聚。非不累日。而歸來戀戀。旋復如故。儘覺人情無窮已。聞門內方有橫來之撓。其貽憂虞。想亦不細。遠外曷勝貢悶。朱子曰。人於患難。只有一䓢處置。盡人謀之後。却須泰然處之。若不會處置了放下。便是無義無命。此言當留心也。如何。昔者。鄙答景立以心對性情之問。果爲未安。心是統性情者也。若曰。言性情而心在其中。則心爲虛器。而性與情。爲無骨子沒着落矣。追念失言。不勝悚仄。復卦云云。先儒皆以靜爲見天地之心。至朱子以爲動之端。乃天地之心。然朱子亦引復卦。以證未發時知覺不昧之義。此當隨意互看。不可遽執一說也。動靜是物上說。未發已發是心上說。不當於天地。下未發字。諒之如何。復卦下面一晝。是動處。則在人心。亦以已發言。而朱子答張欽夫書曰。方其存也。思慮未萌。而知覺不昧。是則靜中之動。復之所以見天地之心也。然則。所謂復見天地之心。專以人心未發之時言之耶。以陰陽消長之序言。則復是一陽初動。不可謂靜也。以陰陽互藏之體言。則復是陰中之陽。靜中之動。在人心。爲思慮未萌。知覺不昧時節也。各就地頭。而觀其旨意之所在可也。明通公溥。明仁也。通義也。公禮也。溥知也。而以愛曰仁。宜曰義。理曰禮。通曰智言之。則通不屬於智。而屬於義何也。通是明之盛。則屬於禮可也。而謂之屬於義耶。禮配於火。火之宣著者。有通之意。智配於水。水之周流者。亦有通之意。程子曰。西銘其地位已高。到此地位。自別有見處。朱子曰若東銘。則意味有窮。安得與西銘徹上徹下。一以貫之之意同日而語哉以朱子之說則於下學功夫不能無補而以程子之意則到此地位然後自有所補如何初學有初學見處。賢人有賢人見處。聖人有聖人見處。所造愈深。所見愈別。定性書。第能於怒時。觀理之是非。蓋當怒急遽之時。何以觀理之是非耶。觀是非是慮而能得之意否忘怒故能觀是非。若當怒急遽。則何以觀理也。忘怒觀理非是。有兩樣心。但存養所熟。明睿所照。自然不言而喩。且觀理是非。與慮而能得。是一般時節。 사랑함을 인이라 …… 앎이라 한다 《근사록》 권1의 성무위장(誠無爲章)에 나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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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백32)【홍기】에게 답함 答金毅伯【弘基】 접때 그대 집에 갔으나 서로 어긋나 만나지 못하였더니, 뜻밖에 그대 아우가 내 집에 찾아왔고 또 그대의 편지를 전해주어 펼쳐 읽어봄에 감사하여 완연히 그대 얼굴을 마주한 듯 하였네. 의림(義林)은 오래 병을 앓은 뒤라 후유증으로 파리해 지는 것이 점점 심해지니, 이것은 늙어가는 광경인지라 매번 "의리는 미루어 찾기 어렵고 공부는 중간에 끊어지기 쉬운데, 세월은 물처럼 흘러간다."33)라는 말을 외움에 개연(慨然)히 망연자실하지 않은 적이 없네. 생각건대 의백은 이 청양(靑陽)한 좋은 시절에 평생의 큰 사업을 해 내는 것이 어떠하겠는가? 이것은 실로 우리 유학과 세도(世道)가 박복(剝復)34)하고 왕래하는 기괄(機括)35)이니, 부디 힘써 노력하시게. 순제(旬題)36)는 시속을 따라 응납(應納)하더라도 무엇이 해롭겠는가? 다만 득실(得失)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 옳을 것이네. 청한다고……한 것은 그대가 생각하지 못한 것인가? 돌아보건대 이렇게 쇠잔하고 병든 나는 이런 글에 대해 사양하고 짓지 않은 지가 이미 여러 해 되었으니, 비록 억지로 힘써 그대의 두터운 뜻에 부응하려고 해도 거북 등에서 털을 깎는 것과 같은 것37)을 어찌하겠는가? 曩到貴軒。交違未穩。謂外令弟臨門。又傳惠幅。披玩感感。完對芝字。義林積病之餘。餘悴轉甚。此是催老光景。每誦義理難推尋。工夫易間斷。而日月如流之語。未嘗不慨然自失也。惟毅伯趁此靑陽好時節。辨得平生大事業。如何如何。此實斯文世道剝復往來之機括也。勉旃勉旃。旬題從俗應納。何妨也。但不爲得失所累則可矣。俯請云云。吾友其未之思耶。顧此殘病餘喘。於此等文字。廢閣已多年雖欲勉强以副厚意。而龜背刮毛何哉。 김의백(金毅伯) 김홍기(金弘基, 1870~?)를 말한다. 자는 의백, 호는 태곡(台谷), 본관은 진주(晉州)이다. 정의림의 문인이다. 의리는……흘러간다 《주자대전》 권33 〈여백공에게 답함[答呂伯恭]〉에 나온다. 박복(剝復) 성쇠를 뜻한다.《주역》의 〈박괘(剝卦)〉와 〈복괘(復卦)〉를 가리키는데, 〈박괘〉는 음(陰)이 성하여 양(陽)이 쇠한 것을 의미하고, 〈복괘〉는 음이 극에 이르러 다시 양이 회복한 것을 의미한다. 기괄(機括) 쇠뇌의 시위를 거는 곳[弩牙]과 화살의 시위를 메우는 부분[箭括]을 말하는데, 곧 사물의 매우 중요한 부분을 뜻한다. 순제(旬題) 열흘마다 한 번씩 보이는 시험이다. 순시(旬試)와 같은 말이다. 거북……것 거북의 등은 아무리 긁어 봤자 터럭을 얻을 수 없다는 말에서 유래하여 수고만 할 뿐이라는 말이다. 소식(蘇軾)의 〈동파팔수(東坡八首)〉에 "거북의 등에서 터럭을 긁어내어, 어느 때에 털방석을 만든단 말인가.[刮毛龜背上, 何時得成氈?]"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蘇東坡詩集 卷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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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부40) 【상의】에게 답함 答尹仁夫【相義】 금오산(金鰲山)41)을 바라봄에 일찍이 거룻배도 용납하지 못하는데42) 외롭게 소식이 막힘이 이렇게 오래되었단 말인가? 모르겠으나 부모님을 모시는 체후의 절도는 형통하여 더욱 복을 누리며, 남는 힘으로 글을 읽어 새로운 아취가 흘러넘치는가? 의림(義林)은 풍파를 겪은 뒤 쇠잔한 정신을 수습하여 목전의 상황을 버텨낼 계획을 하지만 냉랭하기가 마치 마른 나무, 식은 재와 같아 정경이 가련하네. 모르겠으나 우리 인부(仁夫)는 기력을 부지하여 와서 이 노쇠한 벗으로 하여금 다소 뜻을 만족하게 해 줄 수 있겠는가? 가만히 보건대 인부은 자질이 아름답고 뜻이 두터워 내면으로 향상하니, 항상 아끼고 바라는 마음 실로 적지 않았네. 원하건대 부모님이 모두 살아계시는 이 좋은 시절에 맞추어 자신의 평소 큰 계획으로 하여금 미적거리다가 후회하는 데 이르게 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네. 그대 증조부 어른43)의 실기는 부지런한 뜻을 저버리기 어려워 감히 둔필(鈍筆)을 적시지만 사람은 미천하고 필력은 졸렬하여 도리어 누를 끼침을 면하지 못할까 몹시 염려되니, 송구스런 마음이 그지없네. 그러나 어버이를 드러내는 방도는 몸을 세워 도를 행한다는 '입신행도(立身行道)' 네 글자에 달렸으니, 원컨대 인부는 더욱 힘쓰시게.〔문〕일용의 사이에 인심(人心)이 도심(道心) 앞에 먼저 발하는 것입니까?〔답〕선악의 분수는 사람마다 같지 않아, 오로지 도심을 따라 발하는 경우가 있고 오로지 인심을 따라 발하는 경우가 있으며, 도심을 먼저하고 인심을 뒤로하는 경우가 있고 인심을 먼저하고 도심을 뒤로하는 경우가 있으니, 어찌 일괄 인심이 도심 앞에 먼저 발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문〕내면으로 하나의 성(誠) 자를 가지고 보존해 두면 사(邪)가 비록 들어오려고 해도 들어올 수 없습니까?〔답〕이미 외면에서 하나의 성 자를 잡아 보존해 두는 것이 아니라면 또 어찌 별도로 내면에 하나의 성 자를 잡을 수 있겠는가? 이른바 "용모를 바르게 움직이고 사려를 정돈한다.[動容貌整思慮]"라는 것44)은 공부를 착수한 뒤에 하는 것이 이미 십분 명백하네.〔문〕사람 가운데 경으로써 내면을 바르게 하는 데만 오로지 힘쓰고 외면을 방정하게 하는 데는 힘쓰지 않는 자가 있고, 또 외면은 비록 긍지를 가지지만 내면은 독실함이 드문 자가 있습니다.〔답〕내면을 바르게 하기를 겉과 같게 하고 외면을 방정하게 하기를 그림자 같이 하면, 어찌 겉은 단정하면서 그림자가 바르지 않는 이치가 있겠는가? 그러나 학자의 병통은 혹 내면에 힘쓰면서 외면에 소략한 경우가 있고, 혹 외면은 자세히 살피면서 내면에 간략한 경우가 있으니, 이것은 모두 마땅히 바로잡아야 할 것이네.〔문〕학문은 위기(爲己)와 위인(爲人)45)의 구분보다 앞서는 것이 없으니, 초학자의 입각 공부는 진실로 이것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답〕위기와 위인 이것은 천리와 인욕이 나누어지는 것이고 학자가 최초 시작할 때 제일로 착수해야 하는 것이네. 그렇지 아니하면 천만 가지 모든 것들이 가죽 없는 털과 밀가루 없는 수제비46)일 것이네.〔문〕정자(程子), 사씨(謝氏), 윤씨(尹氏)가 말한 경(敬)의 차이에 대해 묻습니다.〔답〕성성(惺惺)47)은 마음이 어둡지 않는 것으로 말하였고, 불용일물(不容一物)48)은 마음을 수렴하는 것으로 말하였고, 정제엄숙(整齊嚴肅)49)은 내외를 겸하여 말한 것이네.〔문〕사특함이 없다는 '무사(無邪)'와 사특함을 막는다는 '한사(閒邪)'를 두 항목으로 나누어 말하면, 무사는 외물이 접하지 않았을 때이고, 한사는 외물이 막 접할 때입니까?〔답〕무사는 《시경》에서 나왔고 한사는 《주역》에서 나왔으니, 만약 본문의 문의(文義)로 본다면 무사는 '용(用)'의 측면에서 말한 것이고, 한사는 '체(體)'의 측면에서 말한 것이네.〔문〕계간(溪澗)의 풀은 먼저 생장의 기운을 받고 산정(山頂)의 나무는 먼저 숙살의 기운을 받는 것은 《복괘(復卦)》의 양이 아래에서 시작하고 《구괘(姤卦)》의 음이 위에서 시작하기 때문입니까?〔답〕《구괘》또한 아래에서 시작하니, 어찌 일찍이 위에서 시작하였던가? 초목이 피고 지는 빠름과 늦음은 지세(地勢)와 풍기(風氣)가 그렇게 만든 것일 뿐이네. 瞻望金鰲。曾不容刀。而煢煢貽阻。乃至此久耶。未審侍省體節。履亨增祉。餘力咿晤。新趣津津否。義林風波之餘。收拾殘魂。爲目前支拄計。而冷冷如枯木死灰。情景可憐。未知吾仁夫扶竪得氣力出來。使此衰頹一友生。得有所多少差强底意否。竊覸仁夫質美意厚。近裏向上。尋常愛仰。實不淺淺。願趁此具慶好時節。使我平生大計。無至因循貽悔。千萬千萬。尊曾王考丈實記。難孤勤意。敢泚鈍筆。而切恐人微筆拙。反不免有所貽累。悚悚。然顯親之道在於立身行道四字。願仁夫勉勉焉。日用之間。人心先發於道心之前。善惡分數。人人不同。有專從道心發者。有專從人心發者。有先以道心而後以人心者。有先以人心而後以道心者。豈可槩謂人心先發於道心之前耶。內而將一箇誠來存着。則邪雖欲入而不能入旣不是外面捉一箇誠來存着。則又豈別有內面一箇誠可把捉。所謂動容貌整思慮者。其於下功。已是十分明白人有專務敬以直內。不務方外者。又有外雖矜持。而內鮮篤實者。直內如表。方外如影。豈有表端而影不正之理。然學者之病。或有務於內而略於外者。或有審於外而簡於內者。此皆正宜矯捄也。學莫先乎爲己爲人之分。初學立脚功夫。誠不外是。爲己爲人。此是天理人欲之分。而學者最初發軔第一着也。不然。千般萬般。皆是不皮之毛。無麵之托。問程子謝氏尹氏言敬之異。惺惺。以心之不昧言。不容一物。以心之收斂言。整齊嚴肅。兼內外而言。無邪閒邪。分兩項說。則無邪是外物不接時。閒邪是外物方接時。無邪出於詩。閑邪出於易。若以本文文義觀之。則無邪是用上說。閑邪是體上說。溪澗之草。先受生長之氣。山頂之木。先受肅殺之氣。以復之陽始於下。姤之陰始於上故歟。姤亦始於下。何嘗始於上也。草木之開落早晏。是地勢風氣之使然耳。 윤인부(尹仁夫) 윤상의(尹相義, 1872~?)를 말한다. 자는 인부, 호는 오산(鰲山), 본관은 파평(坡平)이다. 정의림의 문인이다. 금오산(金鰲山)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에 있는 산이다. 일찍이……못하는데 가까운 거리여서 쉽게 갈 수 있음을 말한다.《시경》 〈위풍(衛風) 하광(河廣)〉에 "누가 하수가 넓다고 이르는고? 거룻배도 용납할 수 없도다.[誰謂河廣? 曾不容刀.]"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그대 증조부 어른 윤방형(尹邦衡, 1797~1873)을 말한다. 자는 완여(完汝), 호는 양한당(養閒堂), 본관은 파평(坡平)이다. 《일신재집》권20에〈양한당 윤공 유사장(養閒堂尹公遺事狀)〉이 있다. 이른바……것 《심경》역건지구이장(易乾之九二章) 아래 부주(附註) 정이천(程伊川)의 말인데, 여기에 두 가지 토가 있다. 하나는 '동용모에'라는 것이 있고 하나는 '동용모하며'라는 것이 있다. 둘 다 퇴계의 토인데, 한강(寒岡) 정구(鄭逑)는 후자가 뒤에 단 토라고 하였다. 위기(爲己)와 위인(爲人) 위기지학(爲己之學)과 위인지학(爲人之學)으로, 자신의 덕성을 닦기 위해 공부하는 것과 남의 인정을 받기 위해 공부하는 것을 이른다. 《논어》 〈헌문(憲問)〉의 "옛날에 배우는 자들은 자신을 위한 학문을 하였는데, 지금에 배우는 자들은 남을 위한 학문을 한다.[古之學者爲己, 今之學者爲人.]"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가죽……수제비 근본적인 요소가 준비되지 않고는 어떤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말이다. 성성(惺惺) 마음이 맑게 깨어 있음을 뜻하는데, 사양좌(謝良佐)가 경(敬)에 대해 "항상 마음을 맑게 깨어 있게 하는 것[常惺惺然]"이라고 하였다. 《大學或問 經1章》 불용일물(不容一物) 한 가지 일도 마음에 두지 않는 공부를 말하는데, 윤돈(尹焞)은 경(敬)을 "그 마음을 수렴해서 한 가지 일도 마음에 두지 않는 것이다.[其心收斂, 不容一物.]"라고 하였다.《大學或問 經1章》 정제엄숙(整齊嚴肅) 몸가짐을 단정하고 엄숙하게 하는 것을 말하는데, 정이(程頤)가 경(敬)에 대해 설명하면서 한 말이다. 《大學或問 經1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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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백연55) 【내룡】에게 답함 答趙伯淵【來龍】 설월(雪月)의 광경이 근래 좋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흥을 타고 노를 저어 험한 물결 거슬러 올라가다가 산음(山陰)에서 머뭇거렸던 처지56)와 같으니 서글픈 마음 어찌 감당하겠는가? 다만 세밑이 가까워졌으니, 벗의 고향 방문이 일간에 있어 만나서 이야기 나눌 수 있을 것이라 여겼네. 모르겠으나 몇 개월 동안 가르치고 배우던 동안 예전의 학업을 익히고 새로운 지식을 배양하여 이번 행차를 저버리지 않을 수 있는 것이 있는가? 만나서 그 실마리를 조금이라도 들을 수 있기를 기다릴 뿐이네. 중락(仲洛)57)이 떠나려고 하기에 몇 마디 적고, 지난번에 질문하였던 것에 뒤늦게 답하면서 아울러 작별한 뒤의 안부를 묻네.〔문〕명덕(明德)은 마음의 본체이니, 명이라 하고 덕이라 한 것은 모두 의미가 존재합니다. 만약 이것을 '이(理)'라 한다면 천하의 사물에 이가 있지 않음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천하의 사물을 가리켜 명덕이라 하는 것이 가합니까? 만약 이것을 '기(氣)'라 한다면 천하의 사물은 이 기가 아님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천하의 사물을 가리켜 명덕이라 하는 것이 가합니까? 진실로 천하의 사물이 모두 이 명덕이라면 성인께서 하필 사람의 본심을 가리켜 명덕이라 하였습니까?〔답〕이가 아니고 기가 아니라면 이른바 명덕이라는 것은 또 무슨 물(物)인가? 또한 절반은 기와 관계 되고 절반은 이와 관계 되어 화니대수(和泥帶水)58)의 모양과 같은가? 그대의 의론은 매번 이와 같으니, 이것은 견해가 직절(直折)하지 못한 까닭이네. 빨리 마땅히 돌이키는 것이 어떠하겠는가? 명덕은 단지 이 이가 마음에 얻어진 것인데 그 조리와 절문이 찬연하여 어지럽지 않기 때문에 명덕이라 한 것이네.〔문〕미발(未發)의 애(愛)는 인(仁)이 이것이고, 이발(已發)의 애는 공(公)이 이것입니다. 이천(伊川)이 말하기를 "인의 도는 요컨대 단지 하나의 '공' 자를 말하기만 하면 되니, 공은 단지 인의 이치인지라, 공을 가지고 문득 인이라 해서는 불가하고, 공평하면서 사람이 체득하기 때문에 인이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59) 바로 이 뜻입니까?〔답〕공 자를 가지고 전적으로 이발(已發)에 소속 시키면 너무 치우친 것이 아니겠는가?〔문〕사려가 어지러울 때 진망(眞妄)을 변별하여 의근(意根)이 절로 바르게 되도록 하는 것 이것은 건도(乾道)이고, 한 가지 일을 별도로 궁구하는 것은 곤도(坤道)이니, 두 가지의 고하와 천심을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학자가 진실로 능히 한 가지 일을 별도로 궁구하는 사이에 종사하여 얻음이 있으면 또한 장차 구별할 만한 진망이 없을 것입니다.〔답〕만약 이것이 건도라면 곧장 잘라 제거할 뿐이니, 어찌 변별을 사용할 것이 있겠는가? 변별 또한 곤도이네. 雪月光景。近非不好。而乘興一棹。溯洄阻隮於山陰止舍之下。悵然遐懷。曷以勝堪。但歲除在近。故人還山之行。想在日間。而可以面穩矣。末知數朔斅學之餘。溫理舊業。培養新知。而有可以不負此行者否。第俟相奉得聞緖餘之萬一耳。仲洛將行。略修數語。追答向日之問。兼詢別後節宣。明德是心之本體也。曰明曰德。皆有意存焉。若以此謂之理。則天下之物。莫不有理。然則指天下之物而謂之明德可乎。若又謂之氣。則天下之物。莫非是氣。然則指天下之物而謂之明德可乎。苟天下之物。皆是明德。則聖人何必特指人之本心。謂之明德。非理非氣。則所謂明德者。又是何物。抑半涉於氣。半涉於理。如和泥帶水樣耶。吾友議論。每每如此。此是見不直折之故也。亟宜反之如何。明德只是此理之得於心者。而其條理節文。粲然不亂。故謂之明德。未發之愛。仁是也。已發之愛。公是也。伊川曰。仁之道。要之只消道一公字。公只是仁之理。不可將公。便喚做仁公而以人體之。故爲仁。卽此意否。將公字。專屬之已發。不已偏乎。思慮紛擾。辨別眞妄。使意根自正。此乾道也。別窮一事者。坤道也。二者之高下淺深。於此可見。然學者誠能從事於別窮一事之間而有得焉。則亦將無眞妄之可別。若是乾道。則直加斷除而已。何用辨別之爲。辨別亦是坤道。 조백연(趙伯淵) 조내룡(趙來龍)을 말한다. 자는 백연, 본관은 함안(咸安)이다. 정의림의 문인이다. 설월(雪月)의……처지 찾아가고 싶었지만 만나지 않고 돌아오게 될 입장이었다는 말이다. 진(晉) 나라 때 왕자유(王子猷)가 산음(山陰)에 살았는데, 하루 밤에는 설월(雪月)의 경치를 보다가 홀연히 섬계(剡溪)에 있는 친구 대안도(戴安道)가 그리워서 배를 타고 밤새도록 가서 대안도의 문 앞에 이르러서는 만나보지 않고 돌아왔다. 누가 물으니 그는 답하기를, "흥(興)을 타고 왔다가 흥이 다 되면 돌아가는 것이지 하필 안도를 볼 것이랴."라고 한 고사에서 원용한 말이다. 《晉書 卷80 王徽之列傳》 중락(仲洛) 조내룡(趙來龍)의 아우 조내귀(趙來龜)의 자이다. 화니대수(和泥帶水) 진흙에 물을 탄 것처럼 선(善),악(惡),시(是),비(非) 등이 뒤섞여 분명히 구별되지 않음을 뜻한다. 이천(伊川)이……하였으니 《근사록》 권2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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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년(1941) 생일에 중제340)에게 주다 3수 辛巳生朝 贈仲弟【三首】 그대는 나보다 3년 뒤에 태어났는데 君生於我後三年태어난 날짜가 같으니 묘한 인연이네 月日相同是妙緣갑정341) 천황절 歲在甲丁天貺節-6월 6일을 천황절이라고 한다.-차서가 첫째 둘째요 또 신재-조고(祖考)342)의 호는 또 신재(新齋)이다.-의 손자라 序居伯仲又新孫총명과 우둔 조금 달라 미세함을 다투다가 稍殊聰鈍爭微髮독서와 농사 나누어 맡아 가업을 보전했네 分掌書農保舊氈나라가 깨지고 지금 집안도 무너져 國破而今家亦敗육십의 고로한 신세 생일날 운다오 六旬孤露泣弧辰젊어서는 평안했는데 늙어서 곤궁하니 安平小少困衰年모두 인생살이에 업보와 인연 있구나 總是人生有業緣새하얀 천 올의 머리털만 남았는데 白雪千莖餘鬢髮세찬 바람이 어느 날 농막을 쓸어버렸지 疾風何日掃廬田그대의 마음은 본래 복을 받을 수 있으나 君心自可膺祥福세상 운세는 오랑캐가 침입했으니 어이 하랴 世運其如値卉氈곤궁한 상황은 그동안 피차가 없었으니 涸轍邇來無彼此어떻게 많지 않은 세월 버티며 살거나 那能支過未多辰선비가 곤궁하면 죽는 날이 바로 생년이니 士窮死日卽生年나쁜 운수 도리어 좋은 인연 될 수 있다오 惡運還能作好緣어느 곳의 낭간343)으로 봉황을 맞이할까 何處琅玕迎鳳鷟한때의 더러움은 까마귀 솔개에게 맡기리 一時腥穢任烏鳶인의는 원래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요 義仁元自天來物염절은 더욱 대대로 지켜온 가업이라 廉節尤曾世守氈〈소완〉 시에 욕되게 하지 말라는 뜻344) 小宛詩中無忝意서로 노력하세 감히 노년이라고 잊겠는가 交修敢忘白頭辰 君生於我後三年, 月日相同是妙緣.歲在甲丁天貺節,【六月六日謂天貺節】序居伯仲又新【祖考號又新齋】孫.稍殊聰鈍爭微髮, 分掌書農保舊氈.國破而今家亦敗, 六旬孤露泣弧辰.安平小少困衰年, 總是人生有業緣.白雪千莖餘鬢髮, 疾風何日掃廬田?君心自可膺祥福, 世運其如値卉氈.涸轍邇來無彼此, 那能支過未多辰?士窮死日卽生年, 惡運還能作好緣.何處琅玕迎鳳鷟? 一時腥穢任烏鳶.義仁元自天來物, 廉節尤曾世守氈.《小宛》詩中無忝意, 交修敢忘白頭辰. 중제(仲弟) 김택술의 둘째 아우인 김봉술(金鳳述)을 가리킨다. 갑정(甲丁) 갑신년(1884, 고종21)과 정해년(1887)을 가리키는 말로, 각각 김택술과 중제(仲弟)가 태어난 해이다. 조고(祖考) 김경순(金景淳)을 가리킨다. 낭간(琅玕) 본래 아름다운 옥돌을 가리키는데, 흔히 푸른 대나무를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봉황은 대나무의 열매를 먹고 산다고 한다. 소완(小宛)……뜻 형제가 각각 노력하여 부모를 욕되게 하는 일이 없기를 경계한 말이다. 《시경》 〈소완(小宛)〉에 "내 날로 매진하거든, 너도 달로 나아가라.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 잠자서, 너를 낳아 준 분을 욕되게 하지 마라.[我日斯邁, 而月斯征. 夙興夜寐, 無忝爾所生.]"라고 한 것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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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형 김공 종현 송재의 시에 차운하다 次戚兄金公【綜鉉】松齋韻 정정한 칠십 일곱의 나이로 亭亭七十春사물에 기탁한 덕이 새롭네384) 託物德惟新범질은 만취로 조카에게 기대하고385) 晩翠范期姪중니는 후조로 사람에게 가르쳤네386) 後凋尼敎人눈 내린 아침에는 별난 정취가 많고 雪朝多別趣달 뜬 저녁엔 이웃 되어 외롭지 않네 月夕不孤隣내가 원하건대 더욱 부지런히 힘써서 我願彌勤勵초연히 티끌 세상을 벗어나야 하리라 超然出世塵 亭亭七十春, 託物德惟新.晩翠范期姪, 後凋尼敎人.雪朝多別趣, 月夕不孤隣.我願彌勤勵, 超然出世塵. 사물에……새롭네 호가 '송재(松齋)'인 것을 두고 한 말이다. 범질은……기대하고 조급히 이루려 하지 말라는 뜻이다. '범(范)'은 곧 '범질(范質)'이다. 그가 송(宋) 나라 재상이 되자 조카인 고(杲)가 품계를 올려주도록 요구하자 시를 지어 깨우쳤다. 그 시에 "활짝 핀 정원의 꽃은 일찍 피나 도리어 먼저 시들고, 더디게 자라는 시냇가 소나무는 울창하게 늦도록 푸르름을 머금는다.[灼灼園中花, 早發還先萎, 遲遲潤畔松, 鬱鬱含晩翠.]"라고 소나무를 칭찬한 것을 인용한 것이다. 《小學集註 卷5 嘉言》 중니는……가르쳤네 굳은 절조를 말한 것이다. '니(尼)'는 곧 '중니(仲尼)'로 공자의 자이다. 공자가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뒤늦게 시듦을 알 수 있다.[歲寒, 然後知松柏之後凋也,]"라고 소나무를 칭찬한 말을 인용한 것이다. 《論語 子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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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연정기 玉蓮亭記 주 부자(朱夫子) 시에 이르기를 "강을 건너 연꽃 따니, 열 번이나 반복해도 마음에 싫증나지 않네. 무극옹을 만나지 못하였으니, 깊은 속마음 마침내 누가 알아주랴.[涉江采芙蓉, 十反心無斁. 不遇無極翁, 深衷竟誰識?]"라고 하였는데,161) 읽을 때마다 사물에 의탁하여 정을 붙여 감개가 무량한 뜻을 볼 수 있었다.무릇 연(蓮)이라는 사물은 《시경》에 드러나고〈이소(離騷)〉에 보이고 여러 시인들이 읊조린 작품에 섞여 나오는데, 염계 부자(濂溪夫子)의 〈애련설(愛蓮說)〉에 이르러 비로소 발휘되어 남은 뜻이 없게 되었고, 이어서 그 속마음을 깊이 얻은 것이 있으니, 바로 주 부자의 이 시이다. 이것은 양춘(陽春)의 원기는 천년에 한 맥으로 통하는 것이 아니겠는가.노사 선생(蘆沙先生)162)의 증손 눌경(訥卿) 씨가 연(蓮) 꿈을 꾸고 연을 얻어 인하여 연못에 심고는 그 가에 정자를 지어 편액을 옥연(玉蓮)이라 하였다. 옛날에 매화·소나무·꽃·풀에 대해 꿈을 꾼 것이 하나가 아니고 많이 있다. 대개 성리 사화(聲利詞華)와 유방 사상(遊放思想)의 정이 각각 그 유(類)로써 응한 것이다. 지금 눌경의 뜻이 성리 사화와 유방 사상의 사이에 있지 않으니, 힘쓰고 힘써 기대할 것은 오직 가정의 사업과 염민(濂閩)163)의 학문일 따름이다. 그렇다면 꿈속에 드러남이 있는 것은 생각건대 또한 한가로운 초목에 있지 않을 것이다.오호라, 슬프도다! 이 때가 어느 때인가? 완악한 음의 기운이 긴 밤을 이루고 천지가 막혔으니, 원컨대 눌경은 그 뿌리를 깊이 숨기고 그 아름다움을 잘 감추어 박괘(剝卦)의 위164)와 복괘(復卦)의 아래165)에서 먹히지 않는 종자로 삼으면 내 장차 옥련의 한 가지를 보고서 봄이 오는 소식을 찾을 것이네. 朱夫子詩曰。涉江采芙蓉。十反心無斁。不遇無極翁。深衷竟誰識。每讀之。可見其托物寓情感慨不盡之意。夫蓮之爲物。著於詩。見於離騷。雜出於諸家歌詠之作。至濂溪夫子愛蓮說。始發揮之無餘蘊。繼之而有深得其衷者。卽朱夫子此詩也。此非陽春元氣千載一脈也耶。蘆沙先生曾孫訥鄕甫。夢蓮得蓮。因栽于池。築亭其上。題其顔曰玉蓮。古有夢梅夢松夢花夢草。不一而多矣。蓋其聲利詞華遊放思想之情。各以其類而應焉。今訥卿之志。不在於聲利詞華遊放思想之間。而所以勉勉期待者。惟是家庭之業。濂閩之學而已。然則其有以發於夢寐者。想亦不在於閒草木也。嗚乎悲夫。此時何時。頑陰長夜。九野閑塞。願訥卿深晦其根。好藏其艶。以爲剝上復下不食之種也。吾將視玉蓮一枝。以訪開春消息焉。 주 부자(朱夫子)……하였는데 주자의 시 〈봉동장경부성남십이영(奉同張敬夫城南二十詠)〉가운데 열 넷째 탁청(濯清) 시를 말한다. 노사 선생(蘆沙先生) 정의림의 스승 기정진(奇正鎭, 1798~1879)을 말한다. 염민(濂閩) 염계(濂溪)와 민중(閩中)으로, 염계는 호남성(湖南省)에 있는데 주돈이(周敦頤)가 살던 곳이고, 민중은 복건성(福建省)에 있는데 주희(朱熹)가 살던 곳이다. 박괘(剝卦)의 위 《주역》 〈박괘(剝卦) 상구(上九)〉에 "큰 과일은 먹히지 않는다.[碩果不食]"라고 한 것을 말한다. 복괘(復卦)의 아래 《주역》 〈복괘(復卦) 초구(初九)〉에 "멀리 가지 않고 돌아오는지라 후회하는 데 이르지 않으니, 크게 선하여 길하다.[初九, 不遠復, 毋祗悔 元吉.]"라고 한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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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산기 玉山記 《예기》〈학기(學記)〉에 이르기를"옥은 쪼지 않으면 그릇을 이루지 못하고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도를 알지 못한다."라고 하였다. 무릇 옥이라는 물건은 광물로 바탕으로 하고 있고 박옥(璞玉)으로 온축하고 있어 그 겉은 거칠고 그 본질은 희니, 반드시 숫돌로 다스리고 창(磢)으로 연마해야 하는데 부지런히 다스리면 거친 것이 정밀해지고 오래 연마하면 흰 것이 광채가 난다. 더욱 정밀하고 더욱 광채가 나는 데 이르러 천하의 보배가 이루어 질 수 있으니, 이것이 고인이 학문을 옥에 견주었던 까닭이다. 학문이 이미 조예가 있으면 덕은 진보할 수 있는데, 옥이 온화하면서 윤택함은 인(仁)이고, 치밀하면서 견고함은 지(智)이고, 모가 져도 상처내지 않음은 의(義)이고, 드리워 떨어질 듯함은 예(禮)이고, 부윤(孚尹)이 사방에 두루 통함은 신(信)이라고 하였으니,166) 이것이 고인이 덕을 옥에 견주었던 까닭이다. 학문이 이미 성취가 있고 덕이 온전하지 않음이 없으면 출처에 대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극한 보배가 몸에 있으면 실로 바깥에 아름다움을 자랑해서는 불가하고 또 남에게 팔기를 구하는 것이 불가하니, 만약 털끝만큼이라도 스스로 자랑하려는 마음이 있다면 나는 그것이 반드시 깨진 옥인 줄 알 것이다. 이것이 고인이 출처를 옥에 견주었던 까닭이다.사문(斯文) 이영일(李榮一)은 고가(古家)의 이름난 후예이고 우리 고을의 걸출한 선비이다. 옥산(玉山)에 살기에 그것으로 재사에 이름을 붙였는데, 그 뜻을 취한 것은 생각건대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나 또한 감히 빈말로 언급할 수 없어 삼가'옥(玉)'한 글자를 거론하여 붕우 간에 절차탁마하는 뜻을 다할 뿐이다. 禮曰。玉不琢。不成器。人不學。不知道。夫玉之爲物。藉之以礦。蘊之以璞。其殼也麤。其質也素。必攻之以礛。磨之以磢。攻之勤則麤者精。磨之久則素者光。至於益精益光。而天下之寶。得以成焉。此古人所以比學於玉也。學旣有造。則徳可以進。溫而澤仁也。密而栗知也。廉而不劌義也。垂之如墜禮也。孚尹房達信也。此古人所以比德於王也。學旣有成。德無不全。則可以語出處矣。至寶在躬。固不可以誇美於外。又不可以求售於人。若有一毫自衒之心。吾見其必敗玉矣。此古人所以此出處於玉也。李斯文榮一。古家名裔。吾鄕偉儒。所居玉山。因以名齋。其意所取。想不出此。余亦不敢以謾語及之。謹擧玉一字。以效朋友切磨之義云爾。 옥이……하였으니 《예기》 〈빙의(聘義)〉에 나오는 말이다. 부윤(孚尹)에 대해 정현(鄭玄) 주(注)에는 "옥의 채색을 말한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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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의 기일에 밤을 세울 때 진후산의 '향래일판향 경위증남풍' 시42)를 사용하여 분운해서 절구 시 10수를 짓다 先師諱辰 達夜時 用陳後山向來一瓣香敬爲曾南豐之詩 分韻得十絶 예로부터 사람은 세 분의 은혜로 살아가니 從古人生三섬기는 도리를 똑같이 해야 하네43) 事之道非兩구산44)에는 명철하신 스승 계시니 臼山有哲師나를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셨네 爲我正趨向지와 행은 여전히 형편없는데 知行尙鹵莽치아와 두발은 대뜸 쇠해졌네 齒髮遽衰頹초심 저버려 참으로 부끄러우니 愧煞負初心이제는 변변찮은 사람이 되었네 至今作底來근심스레 앉으니 생각이 끝없는데 悄坐思何極망연하여 뭔가 잃은 듯하네 茫然如有失내 나이 이제 59세요 吾年五十九스승 돌아가신 지 21년이네 樑折卄加一스승의 정령을 거의 첨앙할 수 있으니 精靈庶可瞻북쪽 향해 숲 골짜기로 흘러가누나 北指流林磵따라가고 싶지만 끝내 무엇으로 말미암을까 欲往竟何由멀리서 공경히 향불 사를 뿐이네 遠呈心裏瓣고개 들어 사해를 바라보고 擧頭望四海묵묵히 헤아린다오 黙爾有商量실컷 먹으며 어찌 더러움 달게 여기랴 飽飫寧甘穢야위어도 끝까지 향기 간직하리라 槁枯終抱香학문은 묻노니 어떻게 해야 하는가 學問問何如마음을 전함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 傳心爲究竟마음공부는 또 어떻게 해야 하는가 心功復何如시종 경의 상태에 있어야 한다네 終始在於敬존덕성(尊德性)의 비결이 분명한데 分明尊性訣그 일맥을 누가 붙들어 유지할거나 一眽孰扶持노유(老儒)께서 당시에 흘렸던 눈물 禪宿當年淚지극히 공정하고 작위함 있지 않았네 至公非有爲화도45)에는 꽃이 다시 피고 華島花重發월암에는 달이 절로 맑네 月菴月自澄스승께 가르침을 받았던 곳 坐春立雪處또렷하게 예전 일이 기억나네 歷歷記前曾오늘 밤은 어떤 밤인가 今夕是何夕해마다 오는 7월 3일이네 年年七月三나그네 회포에 마음까지 좋지 않은데 旅懷兼作惡가을 기운이 또 강남 같구나 秋氣又江南이내 생애 무슨 일 할거나 此生何所事부처에 보은하여 충성하려네 報佛願言忠곧장 죽음에 이른 뒤에는 直到斃而後운명의 후박과 상관 없다네 不關命嗇豊 從古人生三, 事之道非兩.臼山有哲師, 爲我正趨向.知行尙鹵莽, 齒髮遽衰頹.愧煞負初心, 至今作底來.悄坐思何極? 茫然如有失.吾年五十九, 樑折卄加一.精靈庶可瞻, 北指流林磵.欲往竟何由? 遠呈心裏瓣.擧頭望四海, 黙爾有商量.飽飫寧甘穢? 槁枯終抱香.學問問何如? 傳心爲究竟.心功復何如? 終始在於敬.分明尊性訣, 一眽孰扶持.禪宿當年淚, 至公非有爲.華島花重發, 月菴月自澄.坐春立雪處, 歷歷記前曾.今夕是何夕? 年年七月三.旅懷兼作惡, 秋氣又江南.此生何所事? 報佛願言忠.直到斃而後, 不關命嗇豊. 진후산(陳後山)의……시 진후산은 송(宋)나라 진사도(陳師道)로, 이 시는 〈연국 문충공 집에서 육일당의 도서를 보고 짓다〔觀兗國文忠公家六一堂圖書〕〉라는 제목의 시이다. 거기에 "지난날 한 줌 향을, 공경히 증남풍을 위해 살랐네.[向來一瓣香, 敬爲曾南豐.]"라고 하였다. 《後山集 卷1》 증남풍은 진사도의 스승 증공(曾鞏)을 이른다. 예로부터……하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의 도리를 말한다. 《국어(國語)》 〈진어(晉語)〉에 "사람은 세 분의 은혜로 살아가는 것이니, 섬기기를 똑같이 해야 한다.[民生於三, 事之如一.]"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구산(臼山) 어디인지는 모르나 간재(艮齋) 전우(田愚)가 강학했던 곳으로, 전우의 또 다른 호이기도 하다. 화도(華島) 전라북도 부안의 계화도(繼華島)로, 전우(田愚)가 만년에 은거하며 후진을 양성하였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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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보112) 【용동】에게 답함 答朴寬甫【容束】 매번 생각건대 우리 관보(寬甫)는 의용(儀容)은 단정하고 순수하며 재성(才性)은 열리고 시원하여 선을 즐기고 의를 좋아하며 경전에 힘쓰고 학문을 쌓았지만, 부족한 점은 단지 격려하여 진작하는 뜻일 뿐이었네. 이것은 전체에 있어서는 한 가지 선이 미비한데 불과하지만 진덕수업(進德修業)의 요체와 귀결을 논하자면, 어찌 다만 큰 수레에 예(輗)가 없고 작은 수레에 월(軏)이 없는 것113)일 뿐이겠는가? 보잘것없는 벗의 마음은 일찍이 이것을 염려하여 갖가지에 대해 어리석은 견해를 말하지 않은 적이 없었네. 경문(景文)이 와서 그대 편지를 받았으니, 뉘우쳐 깨닫고 근심하여 분발하는 뜻이 언사(言辭)에 넘쳐나는 것이 끊임없이 이어졌네. 오호라! 이 같이 좋은 자질에 또 이러한 좋은 의사를 가지고 있으니, 이로부터 진취(進就)하는 것이 어찌 한량이 있겠는가? 전지(田地)가 이미 마련되었으니 농사짓고 수확하는 것을 바랄 수 있고, 근원이 이미 확립 되었으니 지류는 통달할 수 있네. 다시 바라건대 지금부터 이후로 이 뜻을 굳게 지켜 조금이라도 해이한 때가 없게 하여, 음식과 기거 등 일상생활의 모든 것들이 일일이 이 뜻에서 나오도록 하시게. 문목은 조목대로 답하지만 어찌 오류가 없다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바라건대 다시 깨우쳐 주시게.[문] 《맹자》 〈이루 하(離婁下)〉에 "천하에 성을 말함은 고일 뿐이다.〔天下之言性也 則故而已矣]"라고 한 것은 성(性)을 형용할 수 없어 단지 이미 그러한 사적을 들어서 말한 것이니, 성선(性善)을 말함에 반드시 요순을 일컬었다114)는 뜻과 같은 것입니까?[답] 실로 그러하네.[문] "진심(盡心)"의 '심(心)' 자는 온전히 이(理)의 심을 가리키는 것입니까, 이기(理氣)의 심을 가리키는 것입니까?[답] 이 심 자는 이(理)의 양(量)이네. 每念我寬甫儀容端粹。才性開爽。樂善嗜義。劬經績學。而所少者。只是激厲振發底意耳。此在全體。不過爲一善之未備。而論其進修要歸。則奚但大車之無輗。小車之無軌而已哉。區區知舊之心。曾不無以此爲慮。而種種效愚者也。景文來。得承心晝。其悔悟憂憤之溢於言辭。娓娓而不止。嗚乎。以若好資質。又有此好意思。從此進就。豈有涯量。田地旣辨。耕獲可望。根源旣立。枝流可達。更願自今以往。堅守此志。勿使少有解散時節。至於飮食起居凡百云爲。一一自此志中流出也。問目逐條奉答。安知無差謬也。幸再諭之。天下之言性也。則故而已云者。性不得形言。而只擧已然之事迹而言。如道性善。必稱堯舜之意耶。固然。盡心之心字。是全指理之心耶。理氣之心耶。此心字。是理之量。 박관보(朴寬甫) 박용동(朴容東, 1860~?)을 말한다. 자는 관보,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정의림의 문인이다. 큰 수레에……것 《논어》 〈위정(爲政)〉에 "사람으로서 신의가 없다면 그런 사람을 어디에 쓸지 나는 알 수가 없다. 비유하자면 대거에 예가 없거나 소거에 월이 없으면, 어떻게 굴러갈 수가 있겠는가.〔人而無信, 不知其可也. 大車無輗, 小車無軏, 其何以行之哉?〕"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대거는 짐수레, 소거는 병거(兵車)나 사냥하는 수레를 말한다. 예(輗)는 수레 앞에 뻗친 두 개의 채장〔轅〕 끝에 가로로 붙인 나무인데, 이것을 소의 멍에에 묶어서 끌게 하는 것이고, 월(軏)은 원(轅)의 끝에서 위로 구부러진 것으로, 가로 댄 나무〔橫木〕에 걸어서 말의 목에 얹어 끌게 하는 것이다. 성선(性善)을……일컬었다 《맹자》 〈등문공 상(滕文公上)〉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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