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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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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갑인년(甲寅年) 민홍식(閔洪植)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甲寅流火月初旬日 閔洪植 甲寅流火月初旬日 閔洪植 전북 남원시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갑인년(甲寅年) 6월 초순에 사하생(査下生) 민홍식(閔洪植)이 보낸 서간(書簡). 갑인년 6월 초순에 사하생(査下生) 민홍식(閔洪植)이 보낸 서간(書簡)이다. 여름이 다 가고 가을이 다가왔는데 소식이 묘연(墓然)하니 그리움이 더욱 간절하다며 늦더위에 벼슬살이하는 상대방의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그런대로 지낸다며 여름철에도 공부는 진전이 있겠지만 서늘한 기운이 생기면 하고 한번 명하여 보내주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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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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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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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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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서

1932년 김영래(金永來) 토지소작계약서(土地小作契約書) 고문서-명문문기류-계약서 경제-매매/교역-계약서 昭和七年參月拾七日 金永來 李容器 昭和七年參月拾七日 金永來 李容器 전북 남원시 1.0*1.0 6개(적색, 원형)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1932년 3월에 김영래(金永來)가 작성한 토지소작계약서(土地小作契約書) 1932년 3월에 김영래(金永來)가 작성한 토지소작계약서(土地小作契約書)이다. 당시 김영래는 남원군 서매면 관풍리에 거주하고 있었다. 이 문서에 지주(地主)의 이름은 적혀 있지 않지만, 이 문서가 남원의 전주이씨 소장문서이고, 같은 시기에 작성된 토지소작계약서에 지주를 이용기(李容器)로 밝히고 있는 것도 있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이용기가 지주였을 가능성이 크다. 이용기는 관련문서에 따르면 남원군 보절면 신파리에 거주하고 있었다. 소작료 등 8개의 조항이 계약서에 적혀 있고, 토지소재, 지번, 지목, 지적, 지가, 적요 등 6개 항목을 정리한 표가 그려져 있었지만, 이것은 이미 인쇄된 서식에 지나지 않고, 소작료의 액수 등 구체적인 내용은 적혀 있지 않다. 다만, 소작인과 연대보증인 2인의 주소와 성명에 날인만 찍혀 있다. 요컨대 사실상 백지 계약서나 다름없는 토지소작계약서인 셈이다. 1920년대 일제는 산미증식계획에 따라 생산량의 증대를 꾀하면서 미곡의 본격적인 수탈에 나섰다. 연평균 미곡생산량이 증가하였지만 한국인의 1인당 미곡소비량은 1917∼1921년 평균 0.68석에서 1927∼1931년 평균 0.49석으로 감소하였다. 이는 산미증식계획이 한국 농민의 식량을 약탈하여 일본인들의 배를 채우는 제국주의 식량수탈정책의 표본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1920년대 산미증식계획의 일환으로 시행된 토지개량사업은 대지주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가는 수리조합 설치비용을 중소지주·자작농·자소작농, 심지어 소작농민들에게까지 전가함으로써 이들의 경제적 몰락을 촉진시켰다. 따라서 1920년대 농민층은 자작농→자소작농→소작농·화전민으로 하층분해되어 갔다. 소작농의 생활을 더욱 어렵게 만든 것은 지주의 고율소작료 부과와 마름의 횡포였다. 소작인은 지주의 지시에 따라 소작계약서를 제출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소작계약서에는 소작료의 납입방법과 기준, 계약기간 설정 등이 명시되어 있다. 이 기준에 의하면 소작인이 부담해야 할 소작료는 지대(地代)와 토지개량비, 영농에 필요한 자재비, 공과금을 포함한 것이다. 그밖에도 소작인들은 소작료 운반비와 종자대·수리조합비·비료대까지 부담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따라서 소작인들은 수리조합 구역 내에서는 수확량의 7∼8할까지도 소작료로 지불해야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마름은 지주를 대신한 소작지 관리인으로 농민들에게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이들은 소작계약 체결권을 악용하여 소작인들의 경작권을 위협했고, 소작료를 증액하며, 소작인들의 선물증여 등 물품공세 여부에 따라 소작권을 이동하는 등 각종 폐해를 자행하였다. 그 외에도 소작인에게서 받는 소작료와 지주에게 납부하는 소작료 사이의 차액을 가로채고, 추수 종사원들의 접대비를 소작인에게 전가시키며, 소작인에게 금전이나 곡물을 고리대로 빌려주거나 물자를 고가로 팔아 폭리를 취하였다. 따라서 1920년대 농촌은 산미증식계획에 따른 수리조합 건설비의 부담과 고율 소작료 등으로 농민층은 경제적으로 몰락하여 갔고, 거기에 더한 마름의 횡포로 인해 소작농민의 궁핍화는 가속화되었다.(1920년대의 대중운동, ?신편한국사? 49, 국사편찬위원회,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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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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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1942년 이용기(李容器) 차용금증서(借用金證書) 고문서-치부기록류-근현대문서 사회-조직/운영-서식 昭和拾七年四月貳拾貳日 李容器 獒樹金融組合 昭和拾七年四月貳拾貳日 李容器 獒樹金融組合 전북 남원시 2.7*1.8 12개(청색, 타원형)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1942년 4월에 이용기(李容器)가 오수금융조합(獒樹金融組合)으로부터 7백원을 빌리면서 작성한 차용금증서(借用金證書). 1942년 4월에 남원군(南原郡) 보절면(寶節面) 신파리(新波里)에 사는 이용기(李容器)가 오수금융조합(獒樹金融組合)으로부터 7백원을 빌리면서 작성한 차용금증서(借用金證書)이다. 이자는 매일 1전 9리로 하고, 내년 3월 9일까지 반환하기로 하였다. 단, 이자는 매년 3월, 6월, 9월, 12월의 말일까지 각 4회에 걸쳐 나누어 납부하기로 약정하였다. 차용인 이용기 외에, 연대보증인 이궁교현(李宮敎玄)이 거래에 참여하고 서명하고 날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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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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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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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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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병오년(丙午年) 남원(南原) 전주이씨가(全州李氏家) 도조기(賭租記) 고문서-치부기록류-추수기 경제-농/수산업-추수기 丙午 丙午 전북 남원시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병오년(丙午年)에 남원(南原) 거주 전주이씨가(全州李氏家)에서 작성한 도조기(賭租記) 병오년(丙午年)에 남원(南原) 거주 전주이씨가(全州李氏家)에서 작성한 도조기(賭租記)이다. 병오년은 1906년으로 추정된다. 문서 첫머리에는 뜻을 정확히 알 수 없는 글이 수록되어 있다. 그 뒤 본 문서가 朴敬七(박경칠)과의 자세한 회계 관계 관련 자료라는 점을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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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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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修業證書李金剛山年 月 日生普通學校第貳學年ノ課程ヲ修了セシコトヲ證ス大正十四年三月卄七日 [學校印]寶節公立普通學校第參貳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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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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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925년 이금강산(李金剛山) 보절공립보통학교(寶節公立普通學校) 2학년 수업증서(修業證書) 고문서-증빙류-증서 교육/문화-근대교육-졸업장 大正十四年三月二十七日 寶節公立普通學校 李金剛山 大正十四年三月二十七日 寶節公立普通學校 李金剛山 전북 남원시 3.5*3.5 1개(적색, 정방형)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1925년 3월에 남원(南原)의 보절공립보통학교(寶節公立普通學校)에서 이금강산(李金剛山)에게 발급한 2학년 수업증서(修業證書). 1925년 3월 27일에 남원(南原)의 보절공립보통학교(寶節公立普通學校)에서 이금강산(李金剛山)에게 발급한 2학년 수업증서(修業證書)이다. 2학년의 전과정의 수료하였음을 증명하는 수료증명서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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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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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서

契約書一金四拾円也右金을確實借用홈一利子은月四利로고期限은陰十一月三十日로定야南原郡寶節面新波里(一新洞)村前坪 番 坪畓三斗只[印]을典執인바右期日을經過時何等의異議無히引渡야所有權을承諾기를玆契約홈大正十一年陰七月四日契約主 金顯俊[印]訂人 李敎哲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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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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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서

1922년 김현준(金顯俊) 계약서(契約書) 고문서-명문문기류-계약서 경제-매매/교역-계약서 大正十一年陰七月四日 金顯俊 大正十一年陰七月四日 金顯俊 전북 남원시 [印] 2개 1.0*1.0 2개(적색, 원형)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1922년 음력 7월 4일에 김현준(金顯俊)이 남원군(南原郡) 보절면(寶節面) 신파리(新波里)의 논을 전당 잡히고 돈을 빌리면서 작성한 계약서(契約書). 1922년 음력 7월 4일에 김현준(金顯俊)이 남원군(南原郡) 보절면(寶節面) 신파리(新波里)의 논을 전당 잡히고 돈을 빌리면서 작성한 계약서(契約書)이다. 김현준은 신파리의 논 3두지(豆只)를 담보로 40원을 빌리면서 이자는 월 4리(利)로 정하여 음력 11월 30일까지 갚기로 하였다. 만약 기일을 넘기면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위 논의 소유권을 넘기기로 약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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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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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서

契約書右約事은去丁卯二月日에肥料二斗을貸來一曰約書後로報當然而其時肥料價가爲三圓也迄今屢次違限와更以來十六日로爲限이고所有畓種麥與小麥合爲三斗落只을玆成契約인바若過來十六日인면右麥與小麥永爲許給인바以此約을爲準홀사戊辰陰閏二月十二日契約主 金正根[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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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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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남원(南原) 전주이씨가(全州李氏家) 작농일기(作農日記) 고문서-치부기록류-일기 정치/행정-조직/운영-일기 庚申 庚申 전북 남원시 1.2*0.9 2개(적색, 타원형)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남원(南原)에 거주하는 전주이씨가(全州李氏家)의 작농일기(作農日記) 남원(南原)에 거주하는 전주이씨가(全州李氏家)에서 작성한 작농일기(作農日記)이다. 그러나 보통의 농사 일기처럼, 매일 매일의 일을 기록한 것은 아니다. 소작인으로부터 받은 도조(賭租)를 정리한 부분도 있고 또는 소작인과의 금전 거래에 관한 내역을 기재한 부분도 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본 일기는 소작기(小作記)의 성격이 더 강하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본 일기는, 같은 소장처의 "남원(南原) 전주이씨가(全州李氏家) 기미일기(己未日記)"와 연관된 것이다. 이 "기미일기"는 1919년분의 일기이고, 지금 소개하는 작농일기는 1920년분의 일기이기 때문이다. 본 작농일기에는 별도의 표지가 없다. 다만 원래부터 표지가 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원래는 있었지만 전래(傳來)되는 과정에서 탈락된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일기의 첫 부분을 보면 "경신작농이십팔두지(庚申作農二十八斗只)"라는 기록이 보인다. 이를 통하여 본 일기장에 적힌 내용은 28두지에 관한 것이라는 점을 짐작할 수가 있다. 경신년은 1920년을 말한다. 그러니까 본 일기장에는 28두지와 관련하여 1920년의 소작인 관계 혹은 소작인으로부터 거두어들인 도조 관계가 적혀 있는 것이다. 한편 본 일기장의 전체 분량은 64면이다. 한편 본 일기와 관련하여 주목되는 부분이 있다. 일기장으로 사용된 것이 백지를 묶은 것이 아니라 금전출납부라는 점이다. 매일 매일의 금전출납 관계를 정리하도록 제작된 것을 활용한 것인데, 각 면마다, 그러니까 각 날짜마다 그 날 그 날 역사적으로 일어났던 일이 기록되어 있다. 예를 들어 첫 면을 보면 이는 5월 19일자의 금전출납부인데, 이 면의 맨 왼쪽을 보면 "고구려부분노 파선비위속국 유리왕임자(高句麗扶芬奴破鮮卑爲屬國類利王壬子)"는 설명이 있다. 이는 고구려 유리왕(瑠璃王, 위 類利王은 誤記.) 임자년(壬子年) 5월 19일에 있었던 사건을 말한다. 유리왕 임자년이라면 유리왕 11년이다. 본 일기장은 1920년대 농업 사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라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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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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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류

촉석루운(矗石樓韻) 고문서-시문류-시 교육/문화-문학/저술-시 전북 남원시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진주 촉석루에 대하여 누군가 지은 7언 율시 경상남도 진주(晉州)에 있는 촉석루(矗石樓)에 대해 읊은 7언 율시(律詩)이다. 당연히 전체 56자로 이루어져 있다. 작자(作者)는 알 수 없다. 완성된 작품은 아니고, 초고(草稿)인 듯하다. 특히 뒷면에 다른 시 구절이 적혀 있는 점을 보아 더욱 그렇다는 느낌이 든다. 아닌 것 같고, 초고를 옮겨 쓴 것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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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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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서

契約書右契約은 一金貳拾圓을以月利得用이고 所有畓一斗只伏在項越坪典當이고 隨辦報納次로 契約候也辛酉九月十一日契約主丁星文[印]再米壹斗을本人病時得去인바右金二十원內에除納홈李元暢 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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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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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경술년(庚戌年) 남원(南原) 전주이씨(全州李氏) 개성댁(開城宅) 수조기(收租記) 고문서-치부기록류-추수기 경제-농/수산업-추수기 庚戌 開城宅 庚戌 1910 開城宅 전북 남원시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경술년(庚戌年) 12월 14일 개양댁(開陽宅)이 작성한 수조기(收租記) 경술년(庚戌年) 12월 14일 개양댁(開陽宅)이 작성한 수조기(收租記)이다. 경술년이란 1910년으로 추정되며, 작성자는 남원에 거주하는 전주이씨 집안이었다. 그리고 개양댁은, 문서 내용으로 보아 전주이씨 집안의 소작인(小作人)으로 추정된다. 본 문서는 소작인이었던 개양댁과의 거래 내역,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도조(賭租)와 혹은 도조를 돈으로 환산하여 갚은 내역, 그 돈에 대한 이자, 토지 매매 내역 등이 기록되어 있다. 전주이씨 집안이 가지고 있는 전답이 얼마나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소작인 한 사람마다 본 문서와 같은 성격의 문서가 작성되었으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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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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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서

契約書右契約은 米租価八兩四卜入 利条合条於하야 九月晦內九兩六戔四卜報債次로 者에 契約홈大正三年陰四月十五日契約主 姜乃興租三斗丙辰秋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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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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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明治四十五年七月十一日 前明文右明文事段以要用所致傳來畓累年耕食是多可伏在南原郡宝節面華山里五也坪謂字二十四番畓四列田二斗五升只卜捧六卜六束㐣價折錢文二百五十六兩五戔依捧矣曷捧上是遣右前以新文記一張永永放賣爲去乎日後如有他說以此文記憑考事全北南原郡宝節面華山里賣主 吳秉允[印]同郡同面同里保人 李敎冕[印]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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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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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912년 오병윤(吳秉允)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明治四十五年 賣主 吳秉允 明治四十五年 吳秉允 전북 남원시 [印] 2개 1.0*1.0 4개(적색, 원형)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1912년 7월 11일 오병윤(吳秉允)이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912년 7월 11일 오병윤(吳秉允)이 토지를 매도하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매수자에 관한 내용은 알 수 없다. 오병윤이 팔고자 한 논은 남원군(南原郡) 보절면(宝節面) 화산리(華山里) 오야평(五也坪)의 위자(謂字) 24번(番)에 있는 답(畓) 2두(斗) 5승지(升只)였다. 이 논은 오병윤이 집안 대대로 경작해 오던 것이었다. 매매가는 256량 5전이었다. 오병윤은 본 매매문서를 작성하면서 앞으로 혹시라도 이번 거래와 관련하여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본 문서로 일을 바로 잡으라고 하였다. 한편 본 문서 작성시 증인은 이교면(李敎冕)이었다. 그는 오병윤과 같은 고을에 사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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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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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서

契約書右契約事은 現今粮道가 乏絶하와 以外上으로 白米拾伍升을 得去인바 価夕兩는 限來十月二十日하야 八月市上価로 報納次로 玆契約홈大正五年丙辰五月八日契約主 魯成道[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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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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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서

1916년 노성도(魯成道) 계약서(契約書) 고문서-명문문기류-계약서 경제-매매/교역-계약서 大正五年 契約主 魯成道 大正五年 魯成道 전북 남원시 [印] 1.3*1.3 1개(적색, 원형)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남원 보절 전주이씨가 1916년 5월 5일 노성도(魯成道)가 작성해 준 계약서(契約書) 1916년 5월 5일 노성도(魯成道)가 작성해 준 계약서(契約書)이다. 노성도가 백미(白米) 75승(升)을 차용하고, 이 돈은 오는 10월 20일 안으로 갚기로 한다는 내용이다. 갚을 때 변동된 쌀 값을 반영한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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