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록문화
통합검색플랫폼

검색 필터

기관
유형
유형분류
세부분류

전체 로 검색된 결과 549132건입니다.

정렬갯수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경독재기 耕讀齋記 일찍이 한창려(韓昌黎 한유(韓愈))가 지은 〈동생행(蕫生行)〉89)을 읽은 적이 있는데, 삼가 생각건대, 그의 지극한 행실과 높은 절개가 반드시 적지 않을 것으로 상상되는데 끊임없이 칭찬하며 말하는 것은 겨우 아침에 밭을 갈고 저녁에 글을 읽었다는 몇 건의 일 뿐이다.나무를 깎아 정전(井田)을 구획한 때로부터 여덟 식구든 다섯 식구든 어느 집이 밭에서 힘들여 일한 집이 아니겠으며, 서계(書契)를 만들어 결승(結繩)의 정사를 대신한 때로부터 상상(上庠 태학(太學))이든 하상(下庠 소학(小學))이든 어느 사람이 학교에 나아가 공부한 사람이 아니겠는가. 만일 사세(事勢)와 재력(財力)이 미치지 못하고 형편상 학업에 전념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선비가 혹 밭갈이를 병행하기도 하였고, 농부가 혹 독서를 겸하는 것도 항상 밥을 먹는 것처럼 흔한 일이었으니, 어찌 동생(董生)의 제일가는 도가 될 수 있겠는가.내가 이것에 대해 일찍이 구구하게 경험한 적이 있다. 문자는 우활하고 졸렬한데 일에 한가롭지 못하여 이따금 상충되기도 하였고, 지각과 근력이 매우 피로한 상태로 망망하게 집에 돌아오면 이길 수 없는 노곤함에 혼미함과 졸음이 교대로 침범하여 비록 정신을 차려 깨고자 하더라도 곧바로 다시 전과 같은 상황이 되어버리곤 하였다. 어찌 이뿐이겠는가. 몸이 이미 일을 시작하게 되면 마음도 함께 갈팡질팡 왔다 갔다 하면서 뜻이 날로 빼앗기게 되니, 비록 여력이 있다 하더라도 책을 마주할 생각이 들지 않고 곧바로 마음이 밖으로 내달리게 된다. 이것이 어찌 나만 그렇겠는가.무릇 사람의 힘은 두 가지 일을 편안하게 수행하기 어렵고, 사람의 마음은 두 가지 생각에 작용하기 어려워 이쪽 일에 편안하면 저쪽 일에 방해가 되고, 저쪽에 마음이 작용하면 이쪽에 마음이 작용하지 못하게 된다. 세상의 이른바 주경야독하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이러한 폐단이 전혀 없을 줄 어찌 알겠는가. 반드시 독실하고 강인하여 우뚝하게 빼앗을 수 없는 뜻이 있는 연후에야 한 몸의 기운이 뜻을 따르지 않음이 없게 되어 약했던 것은 강해지고, 혼미했던 것은 명철해지면서 갈팡질팡하던 것들이 순조롭게 마무리될 수 있다. 이에 문공(文公)이 일컬었던 뜻과 동생(蕫生)이 성취했던 행실이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나의 벗 정경지(鄭敬之)는 이릉(爾陵 능주(綾州)의 별호)의 남쪽에 은거하며 그 집의 편액을 '경독(耕讀)'이라 하였으니, 실제로 행했던 일로 말미암아 마음을 세우고 덕에 나아감에 이보다 절실한 것이 없었을 것이다. 경지는 어려서는 효성스럽고 우애롭다고 일컬어졌고, 늙어서는 학문을 좋아한다고 알려졌으며, 안으로는 아내와 자식들이 아침저녁으로 근심할 것이 없었고, 밖으로는 벗들과 모여 강학하는 즐거움이 있었으니, 대체로 동생(董生)이 성취한 바와 깊이 들어맞는 바가 있고, 어리석은 우리들처럼 명분만 따르고 실상이 없이 옛 습관대로 세상일에 빠져 지내는 사람과 비견되지 않는다. 만약 이것을 인하여 더욱 힘써서 마침내 원대한 뜻을 이룬다면 이릉의 계산(溪山)이 회수(淮水)의 동백산(桐柏山)90)이 되어 천하 사람들에게 자자하게 회자(膾炙)될 줄 어찌 알겠는가. 嘗讀韓昌黎所撰蕫生行。竊意其至行高節。想必不少。而所以娓娓稱道。乃在於朝耕夜讀數件事而已。自剡木畫井。八口五口。孰非力田之家。自造書代繩。上庠下庠。孰非就學之人。至若事力不逮。勢難專業。則士或倂耕。農或兼讀。亦是恒恭飯。奚足爲董生第一道哉。余於此。曾有所區區經試者矣。文字迂拙。不閑事役。而種種撞着。知力甚勞。茫茫歸家。不勝困倒。昏睡交侵。雖欲回醒。旋復如故。豈惟此也。身旣執役。心亦與俱。憧憧往來。志日見奪。雖有餘力。無意對冊。便成坐馳。豈惟余也。凡人力難以兩便。人心難以二用。便於此則妨於彼。用於彼則奪於此。世之所謂耕讀者。安知保無此弊也。必須篤實剛毅。有卓然不可奪之志。然後一身之氣。莫不從令。而弱者可强。昏者可明。憧憧者可以妥帖矣。於是乎知文公所稱之意。董生所造之行。不偶爾之。余友鄭敬之。隱於爾陵之南。扁其堂曰耕讀。因其行事之實。而立心進德。無有切於此者。敬之幼以孝悌稱。老而好學聞。內無妻子朝夕之憂。外有朋友講聚之樂。盖董生所造。深有所契。而非如愚輩徇名無實。因循汨没之比也。若因此加勉。卒究遠大。則安知爾陵溪山不爲淮水桐柏而藉藉於天下耶。 동생행(蕫生行) 한유(韓愈)의 시 〈차재동생행(嗟哉董生行)〉을 말한다. 동생(董生)은 당(唐)나라 고사(高士) 동소남(董召南)으로, 진사과에 낙방한 다음 고향으로 돌아와 주경야독하면서 부모를 편안하게 모시고 처자식이 근심이 없도록 하니, 그의 벗 한유가 이 시를 지어서 그를 칭찬하였다. 《五百家注昌黎文集 卷2》 회수(淮水)의 동백산(桐柏山) 동소남(董召南)이 은거했던 곳이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구룡연 九龍淵 하얀 은하수 거꾸로 쏟아서 倒瀉白銀漢문득 벽옥 연못 만들었구나 飜成碧玉淵눈서리가 여름날에도 날리고 雪霜飛夏日벼락이 갠 하늘에서 일어나네 霹靂起晴天눈이 놀라 처음엔 멀리 바라보고 駭眼初望遠정신 아찔해 문득 다가서기 두렵네 眩精却怕前여산이 어찌 여기보다 낫겠는가 廬山那勝此그래서 나는 청련126)을 비판한다오 而我非靑蓮 倒瀉白銀漢, 飜成碧玉淵.雪霜飛夏日, 霹靂起晴天.駭眼初望遠, 眩精却怕前.廬山那勝此, 而我非靑蓮. 청련(靑蓮)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 701~762)을 말한다. 이백의 자는 태백(太白)이고, 호는 청련거사(靑蓮居士)이다. 이백이 여산폭포의 장관을 묘사한 〈망여산폭포(望廬山瀑布)〉 시에 "수직으로 삼천 척을 날아 떨어지니, 은하수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듯하네.[飛流直下三千尺, 疑是銀河落九天]"라고 한 구절로 유명하다. 《李太白集 卷20 望廬山瀑布》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비봉폭 飛鳳瀑 가는 폭포가 가파른 절벽에 걸려 細瀑懸巉壁흩날려 돌며 봉황의 날개 되었네 揚旋作鳳翔자색 안개가 날려 거꾸로 오르고 紫煙飛倒上서설이 뿜어대듯이 막 쏟아지네 瑞雪噴初雱언제 신묘한 도끼에 깎여졌다가 何日剜神斧이제 속인의 눈을 비비게 하는가 玆來刮俗眶굶주려도 곡식은 먹지 않는다니 有能飢不粟이 물 마시면 배를 채울 만하리 飮此可充腸 細瀑懸巉壁, 揚旋作鳳翔.紫煙飛倒上, 瑞雪噴初雱.何日剜神斧, 玆來刮俗眶.有能飢不粟, 飮此可充腸.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꾀꼬리 2장 黃鳥 二章 아침 해가 맑고 아름다우며 정원의 나무들은 짙푸르렀다. 어디선가 날아온 꾀꼬리가 이곳의 적막을 깨고 좋은 소리를 들려주니 나는 마음에 감회가 있어 마침내 〈꾀꼬리〉 2장을 지었다.아 너 꾀꼬리여 嗟爾黃鳥생황처럼 지저귀는구나 笙簧百囀가엾은 우리 백성들 哀我民生구렁에서 얼마나 뒹구는가 溝壑幾轉너의 편안한 풍류가 부럽구나 樂子之風流燕晏부이다.[賦也]아 너 꾀꼬리여 嗟爾黃鳥온 몸에 황금옷 입었구나 遍身金衣가엾은 우리 백성들 哀我民生백 번 기운 베 옷에 가죽 띠 맸으니 百結布韋너의 후황한 부귀가 부럽구나 樂子之富貴炫輝부이다.[賦也] 朝日淸佳, 庭樹陰綠.何來黃鳥, 破此寂寞.聞爾好音, 我懷有感, 遂賦黃鳥二章.嗟爾黃鳥, 笙簧百囀.哀我民生, 溝壑幾轉, 樂子之風流燕晏.賦也.嗟爾黃鳥, 遍身金衣.哀我民生, 百結布韋, 樂子之富貴炫輝.賦也.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빈가의 아낙네 貧家婦 십 년 썰렁한 부엌에 헤진 치마 하나 十載寒廚一弊裳야윈 얼굴은 어느 날에 빛이 나려나 瘦顔何日可生光들에는 선대가 남겨준 논밭이 없고 野無先世遺田土집에는 남편이 선비나 상인도 아니네 家不阿郞業士商마을 이웃에게 수모 당해 마음은 숯검정이고 心爲村隣逢侮燼자녀들이 굶주려 우니 머리는 서리 내렸네 髮因兒女哭飢霜윤회의 한 이치가 허망한 것이 아니라면 輪回一理如非妄다음 생엔 기쁘고 즐겁기를 하늘에 비네 快樂他生禱彼蒼 十載寒廚一弊裳, 瘦顔何日可生光.野無先世遺田土, 家不阿郞業士商.心爲村隣逢侮燼, 髮因兒女哭飢霜.輪回一理如非妄, 快樂他生禱彼蒼.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정월 보름날 밤에 객이 오다 上元夜 客至 분분한 이단의 설이 세상을 어지럽히니 紛紛異說亂西東귀 밝기390) 원치 않아 술통도 비었구나 不願耳明樽亦空하늘의 기운 깨끗하고 맑음은 보름밤이요391) 天氣澄淸三五夜백성의 마음 변하는 건 고금의 풍속이지 民情變改古今風유인은 거울 속에 서리 가닥 허옇고 幽人鏡裏霜莖白만호는 시렁 끝에 등불 빛이 붉구나 萬戶棚頭燭影紅좋은 밤에 옥루392) 재촉하지 말게나 莫使良宵催玉漏이 자리 함께 하는 좋은 인연 쉽지 않네 勝緣不易此筵同 紛紛異說亂西東, 不願耳明樽亦空.天氣澄淸三五夜, 民情變改古今風.幽人鏡裏霜莖白, 萬戶棚頭燭影紅.莫使良宵催玉漏, 勝緣不易此筵同. 귀 밝기 정월 대보름 아침에 귀밝이술 즉 이명주(耳明酒)를 마시는 풍속이 있어서 한 말이다. 하늘의……밤이요 하늘은 변함이 없다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옥루(玉漏) 물시계의 미칭으로, 시간을 말한 것이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낙청헌기 樂淸軒記 낙청헌(樂淸軒) 위공(魏公)은 천관산(天冠山)22) 산중에 은거하며 덕업을 닦고 의리를 행한 세월이 앞뒤로 57년이 되기에 호남의 선비들이 일제히 흠모하여 선배와 큰 덕망을 지닌 분으로 칭송하였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진실로 이미 어르신의 명성을 익히 들어왔지만, 단지 고루하게 집에만 있었기에 공의 헌(軒)에 올라 '낙청(樂淸)'이라 하게 된 뜻을 묻지 못했다.삼가 생각건대, 시세(時勢)는 쇠퇴함과 융성함이 있기에 풍속이 모두 순박할 수 없고, 기질은 아름다움과 악함이 있기에 사람들이 모두 선할 수 없으니, 비록 맑음을 즐긴다고 하더라도 장차 어느 곳에서 즐길 수 있겠는가. 아니면 그 즐기는 바가 풍기(風氣)와 형체 밖에 있어서 평범한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바가 아닌 것인가?정해년(1887) 겨울에 내가 선롱(先壠)의 일로 금릉(金陵)23)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단촌리(丹村里)에서 공을 뵈었는데, 그 집안을 살펴보니, 산림과 수석(水石), 정원의 돌과 궤석(几席)이 거울처럼 열려 있고 옥처럼 배열되어 한 점 티끌도 없이 깨끗하였다. 또한 백발에 화사한 얼굴로 높이 관을 쓰고 느슨한 띠를 두른 채 그 사이에서 사쁜사쁜 가볍게 거니는 모습이 표연(飄然)하여 마치 하늘의 신선이 내려와 앉아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밤새도록 곁에서 모셨는데, 경계하고 깨우쳐주는 사이에서 나온 말씀들이 모두 지극하고 긴요한 것들이었고, 끊임없는 천기(天氣) 중에서 흘러나왔기에 더욱 나도 모르게 송연(悚然)히 옷깃을 여미었다.아, 풍속이 경박하여 온 세상에 탁류가 넘쳐나는데, 어느 누가 천관산 아래에 이처럼 깨끗한 한 곳이 있을 줄 알겠는가. 영원히 세속을 떠나 스스로를 깨끗하게 하는 것은 비록 그 본심이 아닐지라도 한 조각 아교(阿膠)24)가 진흙 물결이 일렁이는 사이에서 쓸모가 없다면 나의 우물을 지키며 홀로 그 맑음을 즐긴다 한들 어느 누가 불가하다고 말하겠는가. 그러나 가슴에 쌓은 경륜을 드러내지 않고, 담박하면서도 간명한 도를 스스로 감춘 것이 세상의 혼탁한 사람과 같지 않아 매우 구별되었는데, 공이 어찌 일찍이 그 맑음을 스스로 말한 적이 있었겠는가. 공이 오히려 감히 스스로 말하지 않았으니, 하물며 공의 맑음을 아는 자가 몇 사람이나 되었겠는가. 오직 남쪽 고을로 부임해 온 송석(松石) 송공(宋公)만이 한번 보고 알아서 그 헌에 '낙청'이라 썼으니, 낙청의 뜻을 송공이 아니면 누가 알 수 있었겠는가. 이것이 지사(志士)가 서로 만나 어울리는 한 부분이다.나의 어리석음으로도 감히 그 사이를 엿보아 헤아리지 못하지만, 눈과 귀로 보고 들은 것만으로도 사사로이 염모하고 흠앙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가 이와 같이 그 대략을 기술한다. 樂淸軒魏公。隱居天冠山中。修德行義。前後五七十年。湖之士。翕然向之。稱先輩長德。余自童丱。固已艶聞。而但固陋屛居。未獲登公之軒。問所以樂淸之意。切念時有汚隆。俗不能皆淳。氣有美惡。人不能皆善。雖樂淸。其將何所可樂乎。抑其所樂。有在於風氣形殼之外。而匪夷所思者耶。歲丁亥冬。予以先壠事。往金陵。其歸謁公於丹村里。見其邱林水石。庭石几席。鑑開玉排。瑩然無一點塵累。而華顔白髮。峨冠博帶。婆娑其間。飄然若天仙降坐。予終宵侍側。而發於警咳提喩之間者。皆至言要語。自滚滚天機中流出。尤不覺悚然斂衽也。嗚乎。風澆俗漓。擧世淊淊。而誰知天冠山下有此一區乾淨哉。長往自潔。雖非其心。而一片阿膠。無所用於淈泥揚波之間。則守我井渫。獨樂其淸。孰謂不可哉。然含蘊不露。淡簡自晦。與世之汶汶者不似。大故逈別。則公何嘗自道其淸也。公猶不敢自道。況知公之淸者。幾人哉。惟松石宋公來莅南州。一見知之。題其軒曰樂淸。樂淸之意。非宋公孰能知之。此是志士相遇一副節拍處也。以余之愚。亦不敢窺涯其間。而但以耳目之睹記。不勝艶欽之私。謹述其梗槩如是云爾。 천관산(天冠山) 전라남도 장흥군 관산읍과 대덕읍 경계에 있는 산이다. 금릉(金陵) 조선시대 김산군(金山郡)의 별호(別號)로 지금은 김천시에 속해 있다. 아교(阿膠) 혼탁한 물을 맑게 하는 약물이라고 한다. 《포박자(抱朴子)》 외편(外篇) 〈가둔(嘉遯)〉에 "얼마 안 되는 아교(阿膠)로는 황하의 흐린 물을 맑게 만들 수가 없다.[寸膠不能治黃河之濁]"라는 내용이 보이고, 주희가 친구 남헌(南軒) 장식(張栻)에게 준 〈수남헌(酬南軒)〉에서 "어찌 한 치의 아교로 천 길의 혼탁함을 구하겠는가.[豈知一寸膠, 救此千丈渾.]"라고 하였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단계기 丹溪記 천관산(天冠山)25) 남쪽에 살고 있는 단계자(丹溪子)는 바로 내 만년의 벗인데, 하루는 어떤 객이 그곳을 들렀다 와서 나에게 말하기를, "그대는 단계의 주인과 서로 알고 지냈으니, 또한 단계로 호를 명명한 뜻을 알고 있겠지요? 오색(五色)은 황색이 정색(正色)이 되고, 오채(五采)는 백색이 바탕이 되지만, 단색(丹色)은 정색도 아니고 바탕도 되지 않습니다. 주(周)나라 사람은 적색(赤色)을 숭상하였으되 단색을 말하지 않았고, 노성(魯聖 공자)은 주색(朱色)을 허여하였으되 단색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또 주인의 집은 청산(靑山)에 있고, 몸은 백옥(白屋)26)에 거처하고 있으며, 평일에 대하는 것은 누런 책[黃卷]이고, 만년에 얻은 것은 하얀 머리털입니다. 모르겠습니다만, 단색과 무슨 상관이 있기에 취하여 편액으로 걸어 놓은 것인지요?" 하니, 내가 말하였다. "황암(黃巖) 위에 거처하였기에 두씨(杜氏)는 황암 처사(黃巖處士)라 한 것이고, 백운산(白雲山) 아래에 거처하였기에 허씨(許氏)는 백운 선생(白雲先生)이라 한 것인데27), 단산(丹山) 가운데 거처하는 자만 유독 단계의 주인이 될 수 없겠는가.나이가 기노(耆老)28)에 이르도록 두 부모가 모두 살아계신 경우는 예로부터 옛적에 오직 노래자(老萊子)29)와 서형중(徐衡仲) 등 몇 사람뿐이었는데, 지금 주인에게서 또한 그것을 볼 수 있으니, 쌓아온 덕이 깊고 두텁지 않다면 어찌 이렇게 천하의 가장 큰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겠는가. 흰 머리가 아롱져 빛날 때까지 기쁜 기색으로 부모님을 모시는 즐거움을 다하고 있으니, 이는 그 마음에 내재된 것도 단색이고, 밖으로 드러난 것도 단색이어서 사람과 만물에 응대하고 접할 때에도 크고 작은 일이 단심(丹心) 속에서 흘러나오지 않는 것이 없는데, 하물며 뿌리를 감추고 향기를 머금어서 고요하기가 마치 아무것도 없는 듯 꿋꿋하게 세한(歲寒)의 절개30)를 지키는 것이 어찌 우연이겠는가.내가 알기에 호를 명명한 뜻이 본디 현재 거처하고 있는 지역에서 나온 것이지만, 기쁨을 표하는 마음과 경계를 부친 의리도 일찍이 그 가운데에서 함께 행해지지 않은 적이 없을 것이네. 객이여, 만약 주인을 만나거든 나를 위해 운당(篔簹)의 시31) 한 구절을 읊어주게나. " 라고 하였다. 冠山之陽有丹溪子。卽我晩年友也。一日客有經過而來者。謂余言曰。子與丹溪主人相知。亦知其丹溪命號之意耶。五色黃爲正。五采白爲質。丹則非正非質。周人尙赤而不言丹。魯聖與朱而不及丹。且主人家在靑山。身處白屋。平日所對者黃卷。晩年所得者皓髮。未知何有於丹。而取爲扁揭也。余曰。居於黃巖之上。而杜氏所以爲黃巖處士也。居於白雲之下。而許氏所以爲白雲先生也。則居於丹山之中者。獨不得爲丹溪主人耶。行年耆老。兩庭俱存。自古在昔。惟老萊子與徐衡仲數人而已。而今於主人。又見之矣。其非積累深厚。何以享此天下太上之樂也。白首班斕。恰愉盡歡。此其存於中者丹。而著於外者亦丹。以至酬人接物。大小大事。無非自丹心中流出。況晦根含薰。寂若無有。耿耿爲歲寒之守者。豈其偶爾哉。余知命號之意。固出於見在所居之地。而其識喜之心。寓警之義。亦未嘗不倂行乎其中也。客乎如見主人。爲我歌篔簹詩一絶。 천관산(天冠山) 전남 장흥군 관산읍과 대덕읍의 경계에 위치한 산이다. 백옥(白屋) 흰 띠로 지붕을 덮은 집이나 기둥과 들보에 채색을 하지 않은 집을 말하는 것으로, 평민(平民)이나 한사(寒士)의 집을 가리킨다. 허씨(許氏)는……하였는데 허씨는 원(元)나라 때의 이학가(理學家)인 허겸(許謙)으로, 원래 송(宋)나라 사람이었는데 나라가 망함에 따라 평생 벼슬하지 않고 백운산(白雲山) 아래에 은거한 채 학문에만 전념하며 스스로 호를 백운산인(白雲山人)이라 하였으므로 사람들이 백운 선생이라고 불렀다. 김이상(金履祥)에게 수업하였고, 주자의 학문을 추종하였으며, 사방의 학자들이 그의 문하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할 정도로 이름이 높았다고 한다. 《元史 券189 許謙列傳》 기노(耆老) 나이 60세와 70세를 말한다. 예기(禮記)》 〈곡례상(曲禮上)〉에 "나이 60세를 '기(耆)'라 하니 지시하여 부린다. 70세를 '노(老)'라 하니 집안일을 물려준다.[六十曰耆指使, 七十曰老而傳.]" 라는 구절이 보인다. 노래자(老萊子) 노래자는 춘추 시대 초(楚)나라의 은사(隱士)로 나이 70에도 항상 색동옷을 입고 어린애처럼 재롱을 부려 부모를 기쁘게 해 드렸다고 한다. 《小學 稽古》 세한(歲寒)의 절개 당시 암울한 시대 상황 속에도 변함없이 자신의 뜻을 지키고 있음을 비유한 말로, 공자(孔子)가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뒤에 시듦을 알 수 있다.[歲寒,  然後知松柏之後凋也.]"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論語 子罕》 운당(篔簹)의 시 뜻을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한탄스러움을 노래한 시이다. 주희가 젊은 시절에 운당포(篔簹鋪)를 지나다가 벽에 "빛나는 영지는 일 년에 세 번 꽃이 피는데, 나는 유독 어찌하여 뜻이 있으나 이루지 못하는가.[煌惶靈芝, 一年三秀, 予獨何爲, 有志不就?]"라는 시를 보고 공감한 적이 있었는데, 40여 년이 지난 뒤 다시 그곳에 와서 당시의 시가 이미 없어졌지만, 지난 시절을 회상하며 "언뜻 지나가는 백 년 세월 얼마나 되랴. 세 번 꽃 피는 영지는 무엇을 하려는가. 말년에도 금단은 소식 없으니, 운당포 벽 위의 시가 거듭 한탄스럽네.[鼎鼎百年能幾時? 靈芝三秀欲何爲? 金丹歲晩無消息, 重歎篔簹壁上詩.]"라는 시를 지었다고 한다. 《朱子大全 卷84 題袁機仲所校參同契後》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송하기 松下記 소나무라는 식물은 복숭아나무나 오얏나무처럼 향기로운 꽃을 왕성히 피우는 데 모자람이 있고, 오동나무나 버드나무와 같이 짙은 그늘도 적다. 단지 단단한 줄기와 성근 가지, 가느다란 잎, 거친 껍질을 지닌 채 울울창창할 뿐이다. 그러나 성현(聖賢)과 은일(隱逸), 문인과 시인들 중에서 애호하고 숭상하여 노래하고 읊으면서 그 품성을 모든 나무들 위에 올려놓고, 그 부류를 장부의 반열에 견주지 않은 사람이 없었으니, 그 까닭이 어디에 있는가? 살펴보건대, 봄과 여름 사이에 온 산의 모든 식물들이 푸른빛 일색이다가도 가을 서리가 맹위를 떨치면 쇠락하여 거의 다 그 빛을 잃어버리는데, 오직 빼어나게 자신의 색을 지키고 있는 것은 이 소나무뿐이다.아, 절개를 혹 만년에 바꾸기도 하고, 지조를 혹 마지막에 잃기도 하며, 일을 혹 오랜 세월 끝에 폐지하기도 하는데, 더욱이 매우 곤궁한 때와 다급한 즈음에 지조를 잃지 않고 태연하게 나의 의리를 행할 수 있는 자가 몇 사람이나 되겠는가. 이 때문에 만년의 절개를 보호하는 것이 사군자의 첫 번째 일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창졸간에 갖출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편안하게 지내는 평소 때부터 궁리하고 실천함으로써 옳음과 그름, 삿됨과 바름이 마음과 안목 사이에서 명료하여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강대하고 충만하게 한다면 평탄한 때든 험난한 때든 처음과 끝을 보존하는 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나는 가죽나무나 상수리나무처럼 졸렬한 품성으로 풍상에 얽매여 거의 스스로를 보존할 수 없었으니, 지금 이후로 소나무 밑을 따른다면 혹 상유(桑楡)17)에 만분의 일이나마 수습할 수 있지 않겠는가. 松植物也。欠桃李之紛芳。少梧柳之繁陰。而只有硬幹疎枝。細髥鹿甲。鬱然蒼然而已。然聖賢隱逸。文人韻士。無不愛尙歌咏。擅其品於衆木之上。比其類於丈夫之班。其故何在。觀夫春夏之際。滿山品彙。一色蒼翠。及其秋霜動威。零落殆盡。而惟挺然自守者此耳。嗚乎。節或移於晩。守或失於終。事或廢於久。況於窮塞之時。顚沛之頃。能不迷所守而泰然行吾義者。幾人乎此保晩節所以爲士君子第一事也。然此非倉卒可辦。必須窮理實踐於平居燕安之日。使是非邪正。瞭然心目。而浩然之氣。剛大充滿。則其於處夷險。保終始。何難之有哉。余以樗櫟劣品。纏滯風霜。幾不能自保。自今以往。從松下子。庶或有桑楡萬一之收耶。 상유(桑楡) 뽕나무와 느릅나무라는 뜻으로, 해가 떨어질 때 빛이 뽕나무와 느릅나무의 가지 끝에 걸린다고 하여 인생의 노년기를 비유한다.  반대로 동우(東隅)는 해가 뜨는 곳으로 젊은 시절을 비유한다. 후한(後漢)의 장군(將軍) 풍이(馮異)가 적미병(赤眉兵)과의 전투에서 처음에는 패주했다가 나중에 적을 격파하자, 광무제(光武帝)가 "동우에는 잃었으나 상유에 수습하였다.[失之東隅, 收之桑榆.]"라고 했던 고사(故事)가 전해진다.《後漢書 卷47 馮異列傳》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가석의 시에 차운하다 次可石韻 마음 공부가 아직 치밀하지 못한데 心工曾未密두발은 홀연 어찌 이리 성글어졌나 頭髮遽何疏이제라도 더욱 힘쓰지 않는다면 及此不加勉끝내 독서를 저버리게 되겠구나 竟歸負讀書 心工曾未密, 頭髮遽何疏.及此不加勉, 竟歸負讀書.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장수로 가는 도중에 2수 長水途中【二首】 천릿길 영남으로 오늘에야 가니 千里嶠南此日行젊은 시절부터 경영했던 일이네 經營曾自少年靑심진동 수석은 어찌하여 늦었으며 尋眞水石緣何晩심진은 골짜기 이름이다.수승대 정자는 몇 번이나 꿈꿨던가 搜勝亭臺夢幾成수승은 대(臺)의 이름이다.산하는 이미 상전벽해를 겪었고 已閱山河桑改碧문득 머리털 보니 눈처럼 환하네 忽看鬢髮雪如明시당자268) 덕분에 내가 일어났으니 起余賴有時堂子아침이슬 처음 마르고 산 기운 갰네 朝露初晞嵐氣晴험한 돌길을 가는 것도 싫지 않으니 不厭間關石逕行저 물 파랗고 산 푸른 걸 사랑하네 愛渠水綠與山靑용문의 장쾌한 유람은 일찍 저버렸으나 龍門壯觀雖曾負상자평269)의 여생은 끝내 이루었네 向子餘年有竟成객지의 세월은 빠름과 늦음이 없고 客裏光陰無早晩눈에 보이는 경물은 절로 선명하네 眼中景物自鮮明아득하구나 덕유산은 어느 곳일까 渺然德裕知何處동녘에 구름이 개지 않아 한스럽네 却恨東天雲未晴 千里嶠南此日行, 經營曾自少年靑.尋眞【洞名】水石緣何晩? 搜勝【臺名】亭臺夢幾成?已閱山河桑改碧, 忽看鬢髮雪如明.起余賴有時堂子, 朝露初晞嵐氣晴.不厭間關石逕行, 愛渠水綠與山靑.龍門壯觀雖曾負, 向子餘年有竟成.客裏光陰無早晩, 眼中景物自鮮明.渺然德裕知何處? 却恨東天雲未晴. 시당자(時堂子) 이한응(李漢應, 1902~1949)으로,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사유(士裕), 호는 시당(時堂)이다. 전라북도 장수군 산서면 쌍계리 마평 마을에서 출생하여 이병은(李炳殷)ㆍ김택술(金澤述)의 문하에 출입하였다. 문집으로 《시당유고》 2권 1책이 전한다. 상자평(向子平) 자평은 후한(後漢)의 고사(高士)인 상장(向長)의 자이다. 왕망(王莽) 때에 대사공(大司空) 왕읍(王邑)이 몇 년 동안 그를 부르면서 왕망에게 천거하려고 하였으나 끝내 응하지 않고 안빈낙도의 생활을 하다가 자녀들을 모두 시집 장가보낸 뒤에 자신을 이미 죽은 사람처럼 여기라고 하고는 집을 떠나 뜻이 맞는 벗들과 오악(五岳) 명산을 유람하며 종적을 감춘 고사가 있다. 《後漢書 卷83 逸民列傳 向長》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교수정277)에서. 덕곡278)의 한거잡영 시에 차운하다 5수 敎授亭 次德谷閒居雜詠韻【五首】 망복의 의리279)로 당시 이곳에 은거하였으니 罔僕當年此遯居손수 심은 송백이 아직도 남아 있구나 手栽松柏尙存餘알겠네 정자에서 제자 가르치던 때에 應知敎授亭中日날마다 《춘추》 한 책 강론한 것을 日講春秋一部書당시 세상과 사는 거처에 상관없이 不關時世與生居법이 서로 똑같아 부족하거나 남음 없었네 一揆相同無欠餘율리의 맑은 바람과 수양산의 달280) 栗里淸風首陽月열 자의 비석에 성상의 글이 빛나누나281) 螭龜十尺炳宸書생육신 가운데 한 분 生六臣中其一居어계의 충정은 20세 이후부터 닦았다네282) 漁溪忠自念修餘조손이 전후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해서 祖孫前後難爲地사책(史策)에 편입되어 계속 기록되었네 太史之編相繼書이날 남기신 거처를 직접 보니 身親此日見遺居흡사 가르침을 직접 듣는 듯하네 宛若承聞謦欬餘덕행을 흠모하는 무한한 뜻이 仰止高山無限意전날 책으로만 봤을 때보다 배나 더해지네 倍增前日但看書같은 시대 내 선조도 아주 돌아오셨으니 同時吾祖大歸居스스로 관직 버리고 고부로 온 뒤였네283) 來自投官古阜餘팔판동과 두문동284) 마을 이름 전해 오니 八判杜門傳洞號분명하게 의리의 기록이 모두 적혀있네 班班義錄已幷書 罔僕當年此遯居, 手栽松柏尙存餘.應知敎授亭中日, 日講《春秋》一部書.不關時世與生居, 一揆相同無欠餘.栗里淸風首陽月, 螭龜十尺炳宸書.生六臣中其一居, 漁溪忠自念修餘.祖孫前後難爲地, 太史之編相繼書.身親此日見遺居, 宛若承聞謦欬餘.仰止高山無限意, 倍增前日但看書.同時吾祖大歸居, 來自投官古阜餘.八判、杜門傳洞號, 班班義錄已幷書. 교수정(敎授亭)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에 있는 정자로, 두문동 72현 가운데 한 사람인 조승숙(趙承肅)이 1398년(태조7)에 건립하고 제자들을 가르쳤던 곳이다. 덕곡(德谷) 조승숙(趙承肅, 1357~1417)의 호이다.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경부(敬夫)이다. 1391년(공양왕3) 부여 감무를 역임하다가 이듬해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하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가 교수정(敎授亭)을 짓고 두문불출하면서 후진 양성에 전념하여 많은 영재를 배출시켰다. 망복(罔僕)의 의리 망국의 신하로서 의리를 지켜 새 왕조의 신복(臣僕)이 되지 않으려는 절조를 말한다. 《서경》 〈미자(微子)〉에 "은나라가 망하더라도 나는 남의 신복이 되지 않으리라.[商其淪喪, 我罔爲臣僕.]"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율리(栗里)의……달 고결(高潔)한 인품을 형용하는 말이다. 율리는 진(晉)이 망하고 유송(劉宋)이 서자 도잠(陶潛)이 정절(靖節)을 지키고자 은거했던 곳이고, 수양산(首陽山)은 백이(伯夷)와 숙제(叔齊)가 주(周)나라의 곡식을 먹을 수 없다 하여 고사리를 캐 먹다가 굶어 죽은 곳이다. 열……빛나누나 성종(成宗)이 조승숙(趙承肅)의 청절(淸節)을 가상히 여겨 사제문(賜祭文)을 내렸는데, 그중에서 '수양명월율리청풍(首陽明月栗里淸風)'이란 여덟 자의 글귀를 뽑아, 자연암반(自然巖盤)에 거북 머리를 조각한 곳에 새겨 넣었다. 어계(漁溪)의……닦았다네 어계는 생육신(生六臣) 중의 한 명인 조려(趙旅, 1420~1489)의 호로, 조승숙(趙承肅)의 후손이다.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주옹(主翁), 시호는 정절(貞節)이다. 1455년에 세조가 즉위하자 겨우 26세의 나이로 고향으로 돌아와 서산 아래에 은둔하였는데, 후세에 이 산을 백이산(伯夷山)이라고 불렀다. 같은……뒤였네 김택술의 선조인 김광서(金光叙, ?~?)가 고려가 망하자 부안(扶安)으로 돌아와 늙은 일을 가리킨다. 《硏經齋集 卷58 羅麗遺民傳》 팔판동(八判洞)과 두문동(杜門洞) 모두 고려의 유신(遺臣)들이 숨어 살던 곳이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고운림293)에 대한 노래 孤雲林歌 함양성 북쪽에 십 리 펼쳐진 숲 咸陽城北十里林하늘 덮고 해 가리니 어찌 그리 빽빽한가 蔽天蔭日何蒙密고운이 손수 나무 심은 지 云是孤雲手自栽지금 천여 년의 세월이 지났는데 邇來一千餘歲閱울울창창한 모습 하루 같고 鬱鬱蔥蔥如一日나무 아래엔 더는 뱀과 개미 따위 없으니 樹下更無蛇蟻類당시에 도술 부렸다고 다투어 말하네 爭道當時寓道術가운데 있는 정사는 높고 시원하니 中有亭榭高且敞유람객과 가기들 늘 끊이지 않았네 遊人歌鼓長不絶또 한 가지 이상한 일 있으니 復有一種事異常숲에는 소나무 한 그루도 보이지 않네 林中不見松樹一사람들 말하길 고운이 입산하던 날 人言孤雲入山日소나무 보면 내 정히 죽은 것이라 말했다 하네 謂見松樹我定沒근래 한두 그루 간간이 자라니 近有一二間出生고장 사람들 서로 돌아보며 놀라 혀를 차네 居人相顧驚咄咄내가 이 말 듣고 마음이 안정되지 않아 我聞此言心未定그런지 그렇지 않은지 더욱 헷갈리누나 其然未然復恍惚무엇보다 이곳은 명류의 유적지라 除是名流遺跡地수목도 외려 사람 위해 애석해하였네 樹木猶爲人愛惜옛 사실을 밝히고 싶지만 누구와 말할까 欲詳故實誰共語한 조각 석비294)가 이끼에 반쯤 매몰됐구나 一片石碑苔半沒 咸陽城北十里林, 蔽天蔭日何蒙密?云是孤雲手自栽, 邇來一千餘歲閱.鬱鬱蔥蔥如一日, 樹下更無蛇蟻類.爭道當時寓道術, 中有亭榭高且敞.遊人歌鼓長不絶, 復有一種事異常.林中不見松樹一, 人言孤雲入山日, 謂見松樹我定沒.近有一二間出生, 居人相顧驚咄咄.我聞此言心未定, 其然未然復恍惚.除是名流遺跡地, 樹木猶爲人愛惜.欲詳故實誰共語? 一片石碑苔半沒. 고운림(孤雲林)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에 위치한 숲으로, 상림(上林)을 말한다.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이 천령군(天嶺郡) 태수로 부임하였는데, 함양읍을 가로질러 흐르는 위천(謂川)이 자주 범람하여 백성들이 고초를 겪는 것을 보고 위천 주변으로 둑을 쌓고 거대한 인공 숲을 조성하여 홍수를 막게 했다고 한다. 천령군은 경상남도 함양군의 옛 이름이다. 석비(石碑) 상림(上林) 내에 있는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의 신도비를 말한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증 교관 양 효자 정려기 贈教官粱孝子旌閭記 성상께서 즉위한 지 40년(1764, 영조40) 여름에 본도 유생 최병교(崔秉教)의 등장(等狀)101)에 고 사인 양복문(粱福文)의 효행을 조정에 아뢰어 정려를 내려 포장하고 증직과 복호(復戶)102)의 은전이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등장을 살펴보건대, 효자는 시례를 익힌 저명한 가문에서 집안의 가르침을 계승하여 지극한 성품과 행실이 일찍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어버이의 병을 시중 들 때 왼쪽 다리 살을 베어 소생시켰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병이 다시 심해지자 또 오른쪽 다리 살을 베어 며칠의 목숨을 연장시켰다. 돌아가시자 슬퍼하여 몸을 훼손한 것이 심하여 거의 죽을 지경이었고, 죽은 이를 장사지내고 먼 조상을 추모함에 인정(人情)과 예문(禮文)에 부족함이 없었으니, 친척과 향리에서 한결같은 말로 탄복하며 칭찬하지 않음이 없었다. 마을에서 보고하고 고을에서 추천한 것이 전후로 계속 이어져 구고(九臯)의 학이 울어 소리가 하늘에 들리기까지 하였으니,103) 잠긴 것이 밝게 드러나고104) 어둑하여 은은한 가운데 날로 드러나는 것105)은 그 이치가 실로 그러한 것이다.나의 거처가 이웃 고을에 있어 익히 들은 지 이미 오래 되었다. 그의 현손 정묵(正黙)과 5세손 재근(在瑾)이 그 일을 기록해 주기를 청하니, 내 감히 적임자가 아니라고 사양할 수 없었다. 聖上卽阼四十年夏。本道儒生崔秉教等。狀報故士人粱福文孝行于朝。以有旌褒贈貤及復戶之典。按狀。孝子以詩禮著族。承襲庭訓。至性至行。夙聞於人。侍親劑。割左肱。得蘇。居無何。疾復劇。又割右股。延數日命。及沒。哀毀過甚。幾於傷生。送終追遠。情文無闕。族戚鄕里。莫不一辭歎賞。村報鄕薦。前後續續。以至於九臯之鶴。聲聞于天。潛昭闇章。其理固然。居在隣壤。稔聞已久。其玄孫正黙五世孫在瑾。請記其事。余不敢以非其人辭。 등장(等狀) 여러 사람이 연명(連名)하여 관부(官府)에 올리는 소장(訴狀)이나 청원서, 진정서를 말한다. 소지(所志)의 일종으로 소지는 한 사람의 이름으로 올리지만, 등장은 여러 사람의 이름으로 올린다. 복호(復戶) 충신이나 효자 등에게 조세(租稅)나 요역(徭役)을 면제해 주는 것을 말한다. 구고(九皐)에……하였으니 은거하는 군자의 덕이 멀리까지 알려지는 것을 비유한다. 《시경》 〈소아(小雅) 학명(鶴鳴)〉에 "학이 구고의 늪에서 우니, 그 소리가 하늘에 들린다.[鶴鳴于九皐, 聲聞于天.]"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잠긴……드러나고 《시경》 〈소아(小雅) 정월(正月)〉에 "잠긴 것이 비록 엎드려 있더라도 또한 매우 밝다.[潜雖伏, 亦孔之昭.]"라고 한 것을 축약한 것이다. 어둑하여……것 《중용장구》 제33장에 "군자의 도는 어둑하여 은은한 가운데 날로 드러난다.[君子之道, 闇然而日章.]"라고 한 것을 축약한 것이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해은기 海隱記 발굽에 고인 물이나 표주박에 담긴 물로부터 도랑이나 시냇물에 이르기까지 백 갈래 만 갈래 온갖 물줄기들이 가까이 흐르고 멀리 흘러서 서로 모이고, 큰물이 서로 만나 합쳐지고 또 합쳐지며, 쌓이고 또 쌓여 어느 한줄기도 바다로 흘러 들어가지 않는 것이 없으니, 이것이 바다가 물의 나라가 되는 이유이다.아, 해은(海隱) 조공(趙公)이 출신(出身)하여 벼슬길에 오른 뒤 머리가 하얗게 센 나이에 벼슬에서 물러나 천 리 머나먼 바닷가 모퉁이에서 품었던 생각이 무엇이겠는가? 옛사람 중에 맑은 샘을 보고서 서울을 생각했던 사람이 있었고91), 우물을 치는 것을 보고 임금이 명철해질 것을 생각한 사람이 있었는데92), 하물며 온갖 냇물이 모여드는 바다를 바라보며 아득히 국중(國中 한양)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없을 수 있겠는가. 이에 당시 호를 취한 뜻이 단지 평범하게 은거를 뜻하는 것에 비견될 뿐만이 아님을 알 수 있으니, 벼슬에 나아가든 벼슬에서 물러나든 단연코 다른 뜻이 없음을 대략 상상할 수 있다. 공이 살아계셨을 때에 한번 나아가서 "산에는 개암나무가 있다네."93)라는 몇 곡조에 화답하지 못한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自蹄涔蠡勺之微。至於溝澮溪澗。百川萬流。遠近相聚。大水相遇。合之又合。積之又積。無一不朝宗於海。此海所以爲水之國也。噫。海隱趙公出身仕路。白首懸車。海隅千里。所懷維何。古人有見洌泉而念京師者。有見渫井而思王明者。況觀乎大海百川朝宗之所。而可無悠悠戀國之心耶。乃知當日取號之意。 非直爲尋常志居之比。而進憂退憂。斷斷無他之意。槩可想矣。恨未及在時一造。以和山有榛數闋。 맑은……있었고 《시경》 〈하천(下泉)〉 에 "차가운 저 하천이여, 우 수북이 자라는 잡초를 잠기게 하도다. 개연히 내 잠 깨어 탄식하니, 저 주나라 서울을 생각하노라.[冽彼下泉, 浸彼苞稂. 愾我寤嘆, 念彼周京.]"라고 한 데서 인용한 것으로, 〈모시서〉에 의하면, 이 시는 주나라 왕실이 쇠망해 감에 따라 작은 나라가 점점 살기 어려워지는 것을 한탄한 것이라 하였다. 우물……있었는데 《주역》 〈정괘(井卦) 구삼(九三)〉에 "우물을 깨끗이 청소했는데도 먹어 주지 않아서 나의 마음이 안타깝다. 내가 그 물을 길어 줄 수 있으니, 임금이 현명하면 함께 그 복을 받으리라.[井渫不食, 爲我心惻. 可用汲. 王明竝受其福.]"라는 말이 있다. 산에는……있다네 나라를 걱정하고 임금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노래한 시이다. 《시경》 〈패풍(邶風) 간혜(簡兮)〉에 "산에는 개암나무가 있고, 진펄에는 감초가 있도다. 누구를 생각하는가, 서방의 미인이로다. 저 미인은 서방 사람이로다.[山有榛, 隰有苓. 云誰之思? 西方美人. 彼美人兮, 西方之人兮.]"라고 한 데서 인용한 것으로, 서방의 미인은 서주(西周)의 훌륭한 왕을 가리킨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변산의 영은동에 이르렀다가 선조 복야부군69)의 유적에 느낌이 일어 삼가 부군이 지은 시에 차운하다 소서를 아울러 기록한다. 到邊山靈隱洞 有感先祖僕射府君遣蹟 謹次府君題詩韻【幷小序】 부군의 시에 "누가 이 절을 지었는가, 숲 아래 흰 머리의 중이라네. 돌샘은 밤낮으로 내리는 비요, 솔 사이 달은 고금을 비추는 등불이라. 지상에는 도솔천이 솟아 있고, 인간 세상에는 무릉도원이 감춰져 있네. 선사와 나 두 늙은이, 높은 누각에 한가로이 기댔다오."라고 하였는데, 시의 격조가 전아하고 중후하며 맑고 깨끗하여 근 천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제2연은 국중에 있는 인가의 자제를 위해 학교에서 가르치는 처음 과정이다. 대개 바른 성정이 발로되어 시가 된 것이니 그 덕행을 알 수 있다. 김의는 문정 부군70)의 성대한 도학과 문장을 열어 주셨다. 시는 《여지승람》에 실려 있다.71) 대체로 이 지역은 실로 부군이 선정을 베풀던 곳으로, 김의의 일이 소백의 감당72)과 같아 후인들이 애석하게 여긴 것인데 하물며 후손이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그래서 비석을 세우고 정자를 짓는 일을 그만둘 수 없었는데, 불행히 후손 중 한 사람이 자신의 이름으로 지주가 되어 사사로이 매각하였으니 그 사람의 죄를 진실로 이루 말할 수 없다. 문중에서 매각한 사람을 밉게 본 자들이 모두 환수를 요구하지 않아 공공연히 남의 소유가 되었으니 또한 유독 무슨 마음인가. 내가 이곳에 이르니, 그저 보이는 것은 숲의 나무를 베어 곳곳마다 숯 구덩이가 있고 그을음이 가득한 모습이었으니 참으로 한탄스러웠다. 그렇지만 사물은 주인에게 돌아가는 이치가 있고 운수는 반드시 돌아오는 이치가 있으니, 그저 우리 종족이 합심하고 협의하여 성심으로 경영해서 기어코 옛 땅을 회복하는 데 달려 있을 뿐이다. 이에 삼가 시 한 수를 지어 이 같은 사실을 기록한다. 임오년(1942) 9월 그믐 문정공 시향제(時享祭) 하루 전에 택술은 쓰노라. - 훗날 비석을 세우면 '고려 은청광록대부 우복야 합문지후 김공 유적비'라고 써야 하고, 정자를 세우면 '월천정'이라고 편액을 달아야 할 것이다. 부군의 시 제 2연의 시어를 사용하였데, 이 구절은 주부자의 시73)에 '삼가 천년의 마음을 생각하니, 가을 달이 차가운 물을 비추는 듯하네.'라는 뜻을 취한 것이다. -어느 해던가 영은사에서 何年靈隱寺복야께서 산승을 만난 때가 僕射見山僧아직도 돌샘에는 빗소리 들리고 猶聽石泉雨공연히 솔 사이 달은 등불처럼 남아 있네 空餘松月燈신선 인연은 봉도에 있고 仙緣有蓬島승경은 파릉74)과 같구나 勝狀等巴陵유적 보니 뒤미처 감회가 이는데 遺蹟生追感아득하니 누구에게 기댈거나 蒼茫問孰憑 府君詩曰 '誰創此蘭若 白頭林下僧 石泉日夜雨 松月古今燈 地上聳兜率 人間藏武陵 與師成二老 高閣等間憑' 詩之爲調 典重淸絶 至今近千載 猶膾炙人口 第二聯則 爲國中人家子弟上學初課 蓋性情之正發而爲詩 其德行可知 宜啓文貞府君道學文章之盛也 詩載《輿地勝覽》 蓋此一區 實爲府君憇苃之所 後人愛惜宜同於召伯之甘棠 矧在後承哉 立碑作亭 不容已也 而不幸後裔一人 以己名爲地主 私自賣却 其人之罪 固不可勝言 而宗中之憎視賣却者 幷不徵還 而公然作他人有 亦獨何心 余之到此 但見斫伐林木 在在炭坑 煙煤漲天 可勝歎哉 雖然物有歸主之理 運有必返之天 只在吾宗族同意協論 誠心經紀 期於復舊耳 玆謹賦一詩以記之 壬午九月晦 文貞公歲一祀 前一日澤述識【後日立碑 則當書之曰 '高麗銀靑光祿大夫右僕射閤門祗侯金公遺蹟碑' 作亭 則當扁之曰 '泉月亭' 用府君詩第二聯語 而取朱夫子詩 '恭惟千載心 秋月照寒水'之義】何年靈隱寺, 僕射見山僧?猶聽石泉雨, 空餘松月燈.仙緣有蓬島, 勝狀等巴陵.遺蹟生追感, 蒼茫問孰憑? 복야 부군(僕射府君) 고려 문신인 김의(金宜)를 말한다. 본관은 부령(扶寧)이고, 우복야(右僕射)를 지냈다. 우복야와 이부 상서(吏部尙書)를 지낸 김작신(金作新)의 아들이고, 지포(止浦) 김구(金坵)의 아버지이다. 문정 부군(文貞府君) 김의(金宜)의 아들인 김구(金坵, 1211~1278)를 말한다. 자는 차산(次山), 호는 지포(止浦), 시호는 문정공(文貞公)이다. 시는……있다 이 시는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권5상 〈전라도(全羅道) 부안현(扶安縣)〉의 영은암(靈隱菴)을 설명하는 곳에 실려 있다. 소백(召伯)의 감당(甘棠) 주 문왕(周文王) 때 서백(西伯)에 임명된 소공의 선정(善政)에 감사하는 뜻에서 백성들이 그가 머물고 쉬었던 감당나무를 소중히 여겨 "무성한 감당나무 자르지도 말고 베지도 말라. 소백께서 그 그늘에 쉬셨던 곳이니라."라고 노래했다 한다. 《詩經 甘棠》 주부자(朱夫子)의 시 주희(朱熹)의 〈재거감흥이십수(齋居感興二十首)〉를 가리킨다. 《晦庵集 卷4》 파릉(巴陵) 중국 호남성(湖南省) 악양(岳陽)을 가리킨다. 이곳에 동정호(洞庭湖)가 있어 예로부터 시인과 묵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던 곳이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송봉기 松峯記 능주(綾州)의 송석(松石) 마을에 오봉산(五峯山)이 있고, 오봉산 아래에 나의 벗 송봉(松峰)이 거주하고 있으니, 대체로 거주하는 곳을 표지하여 호로 삼은 것이다. 그러나 일찍 핀 것이 먼저 시드는 것은 일반적인 만물의 이치이고, 처음엔 부지런하다가 나중엔 나태해지는 것은 보통 사람의 마음이니, 천 리 길을 혹 중도에 그만두기도 하고, 아홉 길 높이 쌓아올린 산이 한 삼태기의 흙이 부족해서 무너지게 되는 경우도 많은데, 하물며 사람이 늙고 남은 수명이 짧아지면 헛된 욕심이 일어나기 쉽고, 기운이 쇠퇴하고 마음이 약해지면 만년의 절개를 지키기 어려움에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옹(翁)은 지금 52세이니, 젊고 장성했을 때의 화려한 시절은 이미 지난 일에 속하고, 앉아서 기다리는 것은 오직 앞으로 남은 쇠잔한 시절일 뿐이다. 이는 뭇 초목들이 봄여름의 좋은 시절을 보내고 기다리는 것은 가을날의 서리뿐인 것과 같다. 그렇다면 옹이 지니고 있는 호가 비록 거처를 표지한 것이라고 말할지라도 일찍이 한편이나마 현위(弦韋)18)를 뜻하는 데에서 나오지 않은 적이 없을 것이다.공은 어려서는 효성스럽고 우애가 있었으며, 늙어서는 의리를 좋아하였으며, 모든 말과 행동에 있어도 다른 사람을 따라 둘러대는 뜻이 없었으니, 청컨대 한 가지 일로 말해보겠다. 나는 옹에게 죽마고우로서 죽고 사는 일이나 기쁘고 슬픈 일을 서로 구제하지 않은 적이 없었고, 드나들며 놀고 즐길 때도 서로 따르지 않은 적이 없었으며, 시비(是非)와 득실(得失)을 서로 바로잡지 않은 적이 없었고, 재산을 경영하고 저축하는 데 서로 관여하지 않은 적이 없었는데, 어려서부터 50대의 노년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 가지 일도 서로 속이는 것을 일찍이 본 적이 없었으니, 이를 미루어 보면 다른 것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세한(歲寒)의 약속19)을 부칠 수 있고, 스스로 호로 삼는 바에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니, 청컨대 이것을 써서 송봉기(松峯記)로 삼게나. 綾之松石坊。有五峯峯之下。余友松峰翁居之。蓋志其居而號焉者也。然早發先萎。恒物之理也。始勤終怠。凡人之情也。千里之軔。或廢於半途。九仞之山。多虧於一簣。況人老年促。虛欲易動。氣衰情弱。晩節難持乎。翁今五十有二歲矣。少壯繁華。已屬過境。而坐以待之者。惟是前頭衰颯時節。如衆卉群木。閱春夏許多時。而所待者。秋霜而已。然則翁之有號。雖云志居。而亦未嘗不出於一副弦韋之意也。翁幼而孝弟。老而好義。至於凡百云爲。無有徇人回互底意。請以一事言之。余於翁竹馬舊交也。死生歡戚。無不相求。出入遊衍。無不相從。是非得失。無不相規。財産營畜。無不相關。自幼至老五十年。未嘗見其有一事相欺。推此以觀。其他可知。此可以付歲寒之約。而無愧乎所自號者矣。請書此爲松峯記。 현위(弦韋) 활시위와 다룬 가죽을 말하는 것으로, 팽팽함과 부드러움을 상징하는 물건이다. 전국(戰國) 시대 위(魏)나라 서문표(西門豹)는 성질이 너무 급해 자기의 성질을 느슨하게 하기 위해서 부드러운 가죽을 차고 다녔고, 진(晉) 나라 때 동안우(董安于)는 자기의 성질이 너무 느슨하여 이를 바로잡기 위해 팽팽한 활시위를 차고 다녔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로, 전하여 자신의 단점을 보충하는 자료가 됨을 뜻한다. 《韓非子 觀行》 세한(歲寒)의 약속 만년의 절개를 지키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공자(孔子)가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뒤에 시듦을 알 수 있다.[歲寒,  然後知松柏之後凋也.]"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論語 子罕》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이씨 소년에 대한 노래 李氏少年行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君不見산서308)의 이씨 소년들을 山西李氏諸少年효도하고 공경하며 여력이 있으면 글을 배운다오309) 孝悌餘力則學文산서의 땅은 비옥하니 山西之土肥而沃아침이면 나가 자신의 밭을 갈고 朝而出耕我田산서의 집은 깊고 조용하니 山西之屋幽而靜저녁이면 돌아와 자신의 책을 읽는다오 暮而歸讀我篇먹을 것 있어 어버이 봉양할 수 있고 有食可以養其親배움이 있어 옛사람을 바랄 수 있다네 有學可以希古人아아 산서리 한 지역은 吁嗟一區山西里흡사 옛날 안풍 마을310)과 비슷하네 宛如昔日安豊村옛날에는 동생 한 사람 뿐이었는데 抑昔董生一而已어찌하여 지금은 동생 같은 무리가 떼로 나왔나 胡今董生輩出羣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君不見서옹311)이 의를 행하여 집안 법도에 영향 준 것을 瑞翁行義貽家謨물 맑고 가지 창달함은 근원과 뿌리 좋아서라네 流淸枝達自源根또 보지 못했는가 又不見시당312)의 인도에 좋은 방법 있는 것을 時堂導率妙有術솔선수범한지 지금까지 십 년이라오 以身先之今十年당대에도 이런 일 있다는 걸 듣지 못했으니 未聞唐代曾有此이씨 가문의 자제들 어진 이 많은 이유라오 所以李門子弟多佳賢내가 노래를 지어 후세에 드날리노니 我作歌行揚今後한창려313)의 대수필이 아닌들 어떠하랴 巨手柰非昌黎韓원컨대 저마다 스스로 더욱 노력한다면 願言各自彌努力몸 세우고 덕 이루어 좋은 명성 전해지리라 立身成德流芳芬 君不見山西李氏諸少年? 孝悌餘力則學文.山西之土肥而沃, 朝而出耕我田.山西之屋幽而靜, 暮而歸讀我篇.有食可以養其親, 有學可以希古人.吁嗟一區山西里, 宛如昔日安豊村.抑昔董生一而已, 胡今董生輩出羣?君不見瑞翁行義貽家謨? 流淸枝達自源根.又不見時堂導率妙有術? 以身先之今十年.未聞唐代曾有此, 所以李門子弟多佳賢.我作歌行揚今後, 巨手柰非昌黎韓?願言各自彌努力, 立身成德流芳芬. 산서(山西) 전라북도 남원(南原)에 소재한 마을 이름이다. 효도하고……배운다오 《논어》 〈학이(學而)〉에 "자제가 집에 들어가서는 효도하고 밖에 나와서는 공경하며, 행실을 삼가고 말을 미덥게 하며, 널리 사람들을 사랑하되 어진 이를 가까이 해야 하니, 이것을 행하고 여력이 있으면 글을 배워야 한다.[弟子入則孝, 出則弟, 謹而信, 汎愛衆而親仁, 行有餘力, 則以學文.]"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안풍(安豊) 마을 중국 수주(壽州)의 속현(屬縣)이다. 당(唐)나라 때 안풍 사람 동소남(董卲南)이 몇 차례 진사시에 응시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은둔하여 주경야독하면서 효성을 다하여 어머니를 모셨는데, 동시대의 문장가인 한유(韓愈)가 그를 칭송한 글인 〈동생행(董生行)〉이 《소학(小學)》〈선행(善行)〉에 실려 있다. 서옹(瑞翁) 누구인지 미상이나, 문맥상 산서(山西)에 사는 이씨의 선조인 듯하다. 시당(時堂) 이교익(李喬翼, 1830~1890)의 호이다. 본관은 연안(延安)이다. 1858년(철종9) 별시(別試)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공조 판서(工曹判書), 협판내무부사(協辦內務府事) 등을 역임하였다. 한창려(韓昌黎) 〈동생행(董生行)〉을 지은 한유(韓愈)를 말한다. 창려는 그의 호이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족조 명은공295) 수민 의 유고를 읽다 讀族祖明隱公【壽民】遺稿 명은의 기절이 온 천하를 덮으니 明隱氣節蓋九州명은 두 자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오 明隱二字足可知명나라 망한 지 벌써 이백 년이니 明亡已爲二百載명나라에 숨고자 하나 장차 어디로 갈까 欲隱於明將何之공의 마음은 천지처럼 광대하여 吾心廣大如天地일찍 존화양이의 의리296)에 종사하였네 早事尊攘華與夷본래 마음속에 대명국이 있었으니 自有心中大明國어찌 신주297)의 산하에서만 그러하랴 何獨神州河山爲선대를 추증하는 고명이 내려온 날 先世贈誥命下日위호를 받지 않고 굳게 지조 지켰네298) 不受僞號堅執持우리 김씨는 대대로 주나라를 높혔으니 吾金世世尊周家이 임명장은 사당에 들어갈 수 없었네 此紙無以入廟祠찬란하게 숭정이라고 특별히 썼으니 特書煌煌崇禎地천추를 밝게 비춰 길이 할 말이 있게 되었네 輝映千秋永有辭박학하고 뛰어난 글솜씨는 적수가 드물었고 博學雄文罕敵手천인 성명의 은미한 이치를 궁구하였네 天人性命究厥微평생 공부한 《춘추》의 엄정한 의리를 平生春秋嚴正義〈내성지〉299)에서 살짝 볼 수 있다오 柰城誌中一斑窺아아 그 포부가 이와 같은데 嗚呼抱負有如此초막에서 늙어 죽은 것은 어째서인가 老死蓬蓽胡然而조정의 관로 세계를 한번 봐 보게 請看朝著仕路界혼탁하고 어지러워 술지게미 진흙 뒤섞였다오 泯泯棼棼混糟泥어찌하여 자신의 강대한 기운을 굽히고 安能屈我剛大氣떼지어 몰려다니며 굶주림만 구제하는가 隨羣逐隊但救飢아정(雅正)한 유서가 책 상자에 가득하니 遺書爾雅滿箱架세상과 백성 구제하는 방법 모두 여기에 있네 淑世澤民都在斯어찌 이 글을 세상에 널리 알려서 盍將此篇公諸世우리 유림에 보관하고 집집마다 간직하지 않으랴 奉弆吾林家家丌 明隱氣節蓋九州, 明隱二字足可知.明亡已爲二百載, 欲隱於明將何之?吾心廣大如天地, 早事尊攘華與夷.自有心中大明國, 何獨神州河山爲?先世贈誥命下日, 不受僞號堅執持.吾金世世尊周家, 此紙無以入廟祠.特書煌煌崇禎地, 輝映千秋永有辭.博學雄文罕敵手, 天人性命究厥微.平生《春秋》嚴正義, 《柰城誌》中一斑窺.嗚呼抱負有如此, 老死蓬蓽胡然而?請看朝著仕路界, 泯泯棼棼混糟泥.安能屈我剛大氣, 隨羣逐隊但救飢?遺書爾雅滿箱架, 淑世澤民都在斯.盍將此篇公諸世? 奉弆吾林家家丌. 명은공(明隱公) 김수민(金壽民, 1734~1811)으로, 본관은 부안(扶安), 자는 제옹(濟翁), 호는 명은(明隱)이다. 미호(渼湖) 김원행(金元行)에게서 수학하였고,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동하였다. 평생 초야에 묻혀 학문과 저술에만 전념하였다. 저서에 《명은집》이 있다. 존화양이(尊華攘夷)의 의리 중화를 숭상하고 오랑캐를 물리친다는 뜻으로, 여기서는 한족이 세운 중국의 명(明)나라를 종주국으로 받들고 오랑캐 민족인 청(淸)나라를 물리친다는 말이다. 신주(神州) 중국을 가리킨다. 전국 시대(戰國時代)에 추연(騶衍)이 중국을 '적현신주(赤縣神州)'라고 한 데서 유래한다. 선대를……지켰네 김수민(金壽民)이 자신의 집안 대대로 충절이 있는 사람 7인을 조정에 상언(上言)하자 성상이 가납(嘉納)하여 관직을 추증하였는데, 이때 으레 쓰던 방식으로 청인(淸人)의 연호를 썼다. 그러자 김수민이 개연하여 청인의 연호를 쓴 임명장을 선조에 고할 수 없다 하여 받지 않았다. 이 일이 알려지자 '숭정기원(崇禎紀元)'이라고 특별히 쓰도록 명하였다. 《惕齋集 卷9 明隱金君墓誌銘》 내성지(柰城誌) 김수민(金壽民)의 《명은집》 권18에 실린 글로, 단종(端宗)과 명나라 건문(建文) 황제의 역사적 사건을 비판적으로 구성한 소설이다. 춘추 의리에 바탕을 둔 역사적 인물들의 잘잘못을 가려 민족의 자존 의식을 높인 문학 작품이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족조 습정공300) 한충 의 유고를 읽다 讀族祖習靜公【漢忠】遺稿 남원(南原)의 산수 기운이 帶方山水氣모여서 습정공을 낳았네 鍾生習靜公마음은 의리의 길과 통하고 心通義理路성품은 강직한 풍모 지녔네 性帶剛直風천 리 머나먼 한강 가 千里漢之上매산(梅山)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네 就正梅門中세도가 날로 변하여 世道日以變향사 올리던 만동묘301)를 철거하였네 廟享撤萬東아아 잊을 수 없어라 於虖不可忘신종과 의종 두 분이여 神毅有兩宗하물며 이는 의리에 근거해 예를 제정한 것이니 矧玆義起禮우재옹302)에게서 나온 것이라네 出自尤齋翁이 일은 게다가 사문과 관계되니 事又係斯文초야의 선비들 어찌 입 닫고 귀 닫을까 韋布豈啞聾곧 나라의 선비들을 창도하여 乃倡國中士좋은 계책을 구중궁궐에 올렸네 琅玕呈九重어찌 생각했으랴 임금께서 들어주지 않고 豈料邈荃聽대궐에서 견책이 내려올 줄을 譴責降天門머나먼 초나라 산중에서 逖矣楚山中〈복조부〉303) 읊은 지 5년이라네 賦鵬五經年대로304)의 수제자였고 大老首弟子두 황조의 한 충신이었네 兩皇一忠臣조야에서 공공연히 칭송하였으니 朝野公共誦백대 기다리고 귀신에게 질정해도 의혹 없으리305) 百世質鬼神일에 도움 되지 않는다 말하지 말라 莫曰事無補그저 대의를 보존한 것이라네 而但大義存훗날 다시 제향하는 날 後來復享日이 상소가 원인이 되리라 此疏爲原因만약 그 공로를 논한다면 苟可論厥功공이 실로 으뜸을 차지하리라 公實居首先아 나는 너무 늦게 태어나 嗟余生太晩직접 얼굴을 뵙지 못했네 未及拜承顔이제 남긴 글을 읽노라니 今來讀遺文흉중이 탁 트여 맑구나 豁然淸心肝만약 조정에 서게 한다면 如使立人朝어찌 이 같은 반열에 그치랴 豈止若是班임금의 덕에 흠이 있을 때는 時當君德闕장유306)처럼 간쟁하였고 長孺非別人위태롭고 망하려던 때는 時當危亡際문산307)처럼 행동하였지 文山卽其身같은 시대를 산 비평가들은 幷世月朝家이러한 뜻을 자세히 논하리라 此意合詳論 帶方山水氣, 鍾生習靜公.心通義理路, 性帶剛直風.千里漢之上, 就正梅門中.世道日以變, 廟享撤萬東.於虖不可忘, 神毅有兩宗.矧玆義起禮, 出自尤齋翁.事又係斯文, 韋布豈啞聾?乃倡國中士, 琅玕呈九重.豈料邈荃聽, 譴責降天門?逖矣楚山中, 賦鵬五經年.大老首弟子, 兩皇一忠臣.朝野公共誦, 百世質鬼神.莫曰事無補, 而但大義存.後來復享日, 此疏爲原因.苟可論厥功, 公實居首先.嗟余生太晩, 未及拜承顔.今來讀遺文, 豁然淸心肝.如使立人朝, 豈止若是班?時當君德闕, 長孺非別人.時當危亡際, 文山卽其身.幷世月朝家, 此意合詳論. 습정공(習靜公) 김한충(金漢忠, 1801~1873)으로, 자는 효백(孝白), 호는 습정(習靜)이다. 1865년(고종2)에 대원군이 만동묘(萬東廟)를 철폐하자, 〈만동묘를 다시 제향할 것을 청하는 상소[請萬東廟復享疏]〉를 올렸고, 이 일로 인해 이듬해에 평안북도 초산(楚山)으로 귀양을 가서 1870년에 사면되었다. 저서에 《습정재선생유고》가 있다. 만동묘(萬東廟)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를 도와준 명(明)나라의 의종(毅宗)과 마지막 황제인 신종(神宗)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세운 사당이다. 송시열(宋時烈)의 유명을 받아 문인 권상하(權尙夏)가 1704년(숙종30)에 현재의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 화양리(華陽里)에 세웠다. 그러다가 1865년(고종2)에 대원군이 서원을 철폐할 때 헐어버리고 신주와 편액(扁額) 등을 대보단(大報壇)의 경봉각(敬奉閣)으로 옮겼다. 대원군이 실각한 후 1874년(고종11)에 다시 세웠으며, 일제 강점기에도 유생들이 모여 명나라 황제의 제사를 지내므로 총독부가 강제로 철거하였다. 우재옹(尤齋翁)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을 가리킨다. 복조부(鵩鳥賦) 한(漢)나라 가의(賈誼)가 장사왕(長沙王)의 태부(太傅)로 있을 때 복조(鵩鳥)가 지붕 위에 날아와 모였는데, 당시 민간에 전하는 말로는 복조가 지붕에 앉으면 그 집 주인이 죽는다고 하였으므로, 가의가 슬퍼하여 〈복조부〉를 지었다고 한다. 《史記 賈生列傳》 대로(大老) 매산(梅山) 홍직필(洪直弼)을 가리킨다. 백대……없으리 진실하여 의심할 것이 없다는 말이다. 《중용장구》 제29장에 "군자의 도는……귀신에게 질정하여도 의심이 없으며, 백대에 성인을 기다려도 의혹하지 않는다.[君子之道……質諸鬼神而無疑, 百世以俟聖人而不惑.]"라고 하였다. 장유(長孺)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의 신하인 급암(汲黯)의 자이다. 그는 간쟁을 서슴지 않아 무제로부터 '사직지신(社稷之臣)'이란 칭찬을 받았다. 《史記 汲黯列傳》 문산(文山) 남송(南宋)의 정치가 문천상(文天祥)의 호이다. 남송이 원(元)나라에 항복하자, 1276년 수도 임안(臨安)이 함락된 뒤 근왕군(勤王軍)을 일으켜 원나라에 대항하다가 1278년에 사로잡혀 시시(柴市)에서 처형되었다. 쿠빌라이칸이 그의 재능을 아껴 몽고에 전향할 것을 권유했지만, 거절하고 죽음을 택했다. 《宋史 文天祥列傳》

상세정보
상단이동 버튼 하단이동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