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吏曹道光十二年七月二十八日奉敎承文院著作金養默爲通德郞承文院博士兼奉常寺直長者道光十二年七月 日 [施命之寶]正郎判書 參判 參議佐郞(背面)吏〃 金貞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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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5년 김양묵(金養默) 차첩(差帖) 고문서-교령류-차첩 정치/행정-임면-차첩 乙丑七月 日 兼任行縣令爲差定事 前掌令金養黙 乙丑七月 日 扶安縣監 金養默 전라북도 부안군 6.7*6.7 1개(적색, 정방형) 부안 돈계 김응상 후손가 부안 돈계리 김응상 후손가 1865년(고종 2) 7월에 겸임(兼任) 행현령(行縣令)이 전(前) 장령(掌令) 김양묵(金養黙)을 석전제초헌관(釋奠祭初獻官)으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차첩(差帖) 1865년(고종 2) 7월에 겸임(兼任) 행현령(行縣令)이 전(前) 장령(掌令) 김양묵(金養黙)을 다음 달 초5일에 있을 석전제(釋奠祭)의 초헌관(初獻官)으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차첩(差帖)이다. 이때의 석전제는 문묘(文廟)가 아니라 향교(鄕校)에서 공자(孔子) 등 선성(先聖), 선사(先師)들에게 행해지는 제사를 가리킨다. 초헌관은 제례에서 삼헌(三獻)을 할 때 처음으로 술잔을 신위(神位)에 올리는 역할을 담당했다. 그런데 현령이 어느 곳의 현령인지 이 문서로는 확인할 없고, 향교 또한 어느 곳의 향교인지 알 수 없다. 김양묵이 부안(扶安) 출신이지만, 부안은 현령이 아닌 현감(縣監)이 다스리는 고을이었기 때문에 이곳이 부안일 수는 없다. 아마도 부안 인근의 고을에서 퇴직한 원로였을 61세의 김양묵을 석전제의 초헌관으로 초빙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렇다면 현령이 다스렸던 만경(萬頃), 용담(龍潭), 임피(臨陂) 가운데 어느 하나일 것으로 추정되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김양묵은 본관이 부안(扶安)으로, 1829년에 정시문과(庭試文科)에 급제하여 관직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가 받았던 고신(告身)들이 그의 후손 가에 오늘날도 전하고 있다. 특히 그가 문과 응시 당시 작성했던 시권(試券)과 급제하여 받았던 홍패(紅牌)를 비롯하여, 고신 16점, 차첩 2점 등 20점이 남아 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아버지 김응상(金膺相)과 어머니, 그리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증조와 증조할머니, 고조와 고조할머니 등이 받았던 고신 20점이 전하고 있는데 대부분 추증교지(追贈敎旨)이다. 이 추증교지는 김응상이 고신을 받을 때마다 함께 받았던 것들이다. 고신 외에 김응상이 1819년부터 1855년까지 작성했던 호구단자(戶口單子) 7점도 전하고 있어서 그의 가족 상황을 살펴 볼 수 있다. 이에 따르면, 김응상은 생전에 부안현 남하면 돈계리에 내내 거주하고 있었던 것으로 나오는데, 오늘날의 부안군 주산면 돈계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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兼任行縣令爲差定事來月初五日行 釋奠祭初獻官差定爲遣合下仰照驗施行須至帖者右 下前掌令金養黙 [準此]乙丑七月 日[官印]差定行縣令[着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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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2년 김양묵(金養默) 고신(告身) 3 고문서-교령류-고신 정치/행정-임면-고신 道光十二年五月初六日 吏曺 承文院正字金養黙 道光十二年五月初六日 純祖 金養默 서울특별시 종로구 8.0*8.0 1개(적색, 정방형) 부안 돈계 김응상 후손가 부안 돈계리 김응상 후손가 1832년(순조 32)에 이조(吏曺)에서 국왕의 명을 받아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 김양묵(金養默)을 무공랑(務功郞) 행승문원저작(行承文院著作)에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첩(敎牒) 1832년(순조 32) 5월 초 6일에 이조(吏曺)에서 국왕의 명을 받아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 김양묵(金養默)을 무공랑(務功郞) 행승문원저작(行承文院著作)에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첩(敎牒)이다. 발급 일자 위에 이조의 관인이 답인(踏印)되어 있고, 이조 판서(判書)가 서압(署押)하였다. 무공랑은 정7품 문관에게 주던 품계이다. 승문원은 사대교린에 관한 문서를 관장하고 이문(吏文)의 교육을 담당한 관서로 정자는 정9품, 저작은 정8품이다. 수취자의 품계인 무공랑이 관직인 승문원 정자의 품계보다 높았기 때문에 행수법(行守法)에 따라 관직명 앞에 행(行)자를 표기하였다. 한편, 문서 배면(背面) 좌측 하단에는 '吏吏金亨福'이라고 적혀있다. 吏吏는 고신을 작성한 이조의 서리이며, 김형복은 서리의 이름이다. 부안 김씨 김양묵 가문이 소장하고 있는 고신의 배면을 보면 김형복뿐만 아니라 김형복, 김정호 등의 김씨 성을 가진 서리의 이름이 연속적으로 등장한다. 이는 이조에 근무하는 서리 가운데 김씨 성이 대를 이러 부안 김씨 가문의 단골 서리 역할을 하였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김양묵은 본관이 부안(扶安)으로, 1829년에 정시문과(庭試文科)에 급제하여 관직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가 받았던 고신(告身)들이 그의 후손 가에 오늘날도 전하고 있다. 특히 그가 문과 응시 당시 작성했던 시권(試券)과 급제하여 받았던 홍패(紅牌)를 비롯하여, 고신 16점, 차첩 2점 등 20점이 남아 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아버지 김응상(金膺相)과 어머니, 그리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증조와 증조할머니, 고조와 고조할머니 등이 받았던 고신 20점이 전하고 있는데 대부분 추증교지(追贈敎旨)이다. 이 추증교지는 김응상이 고신을 받을 때마다 함께 받았던 것들이다. 고신 외에 김응상이 1819년부터 1855년까지 작성했던 호구단자(戶口單子) 7점도 전하고 있어서 그의 가족 상황을 살펴 볼 수 있다. 이에 따르면, 김응상은 생전에 부안현 남하면 돈계리에 내내 거주하고 있었던 것으로 나오는데, 오늘날의 부안군 주산면 돈계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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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만종 군에게 주다 贈劉君萬鍾 부지런히 송독하는 그대를 아끼니 愛君勤誦讀성실과 근면도 짝할 이가 없구나 誠謹亦無匹한결같이 이리하여 변함 없으면 一此無改易학업 달성은 의당 기필할 수 있네 業成宜可必내가 듣건대 충신하지 않으면 我聞不忠信만사에 모두 실속이 없다네 萬事皆無實이를 면하기 원래 쉽지 않으니 免此元未易젊은 날에 더욱 노력해야 하네 加勉及少日옥을 만약 쪼고 갈지 않으면 玉如不琢磨온율함38)을 어찌 드러내리오 何能著溫栗 愛君勤誦讀, 誠謹亦無匹.一此無改易, 業成宜可必.我聞不忠信, 萬事皆無實.免此元未易, 加勉及少日.玉如不琢磨, 何能著溫栗. 온율함 원문의 '온율(溫栗)'은 따듯하면서도 굳센 옥의 성질을 가리킨다. 《예기》 〈빙의(聘義)〉에 "군자의 덕을 옥에 견준다. 온윤하면서 광택이 있음은 인이고, 치밀하면서 굳센 것은 지이다.[君子比德於玉焉, 溫潤而澤, 仁也;縝密而栗, 知也.]"라고 한 데서 인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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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제봉에 올라 우연히 읊다 병인년(1926) 2월 ○아래도 같다. 上望帝峯 偶吟 【丙寅二月○下同】 객과 산이 모두 세상 벗어났으니 客與山俱出世間산은 객 같고 또 객은 산 같구나 山如客又客如山까마득한 세월 부용봉은 푸른데 百千萬劫芙蓉碧마흔셋 나이 귀밑머리 희끗하네 四十三年鬂髮斑궁한 길을 다 거쳐도 끝내 믿을 데 있고 歷盡窮途終有賴폭우에 다 씻긴들 어찌 깎여지랴 洗過暴雨豈能刪종일 서로 보아도 싫지 않으니 相看盡日還無厭귀하고 무거운 우정도 똑같구나 珍重交情也一般 客與山俱出世間, 山如客又客如山.百千萬劫芙蓉碧, 四十三年鬂髮斑.歷盡窮途終有賴, 洗過暴雨豈能刪.相看盡日還無厭, 珍重交情也一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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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종형 김만당428) 어른 희현 이 방문하다 外從兄晩堂金丈【熺鉉】見訪 세밑에 바다에서 산 서재를 찾아오시니 海笻山榻歲闌天눈 내린 달 밤에 정답게 둘이 마주했네 兩對殷勤雪月邊옥동429)의 새로운 취미는 냉담하고 冷淡玉東新趣味두북430)의 옛 임천은 황량하구나 荒凉斗北舊林泉지난 일은 이미 봄밤의 꿈이 되었으나 往塵已屬春宵夢장한 뜻이야 어찌 백발의 나이에 쇠하랴 壯志寧衰白首年다만 자주 만날 날을 길이 가져야 하리니 但得源源長有日그리우면 매화 필 때까지 기다릴 것 없네 相思莫到發梅前 海笻山榻歲闌天, 兩對殷勤雪月邊.冷淡玊東新趣味, 荒凉斗北舊林泉.往塵己屬春宵夢, 壯志寧衰白首年.但得源源長有日, 相思莫到發梅前. 만당(晩堂) '만당(晩棠)'의 잘못인 듯하다. '만당(晩棠)'은 근세 유학자 김희현(金熺鉉, 1872~1951)의 호이다. 자는 정오(定五)이며, 본관은 광산이다. 김택술은 그를 위해 〈만당시고서(晩棠詩稿序)〉를 썼고 주고 받은 시 여러 편이 《후창집(後滄集)》에 실려 있다. 옥동(玉東) 옥산(玉山)의 동쪽을 말하는 듯하다. 두북(斗北) 두승산(斗升山)의 북쪽을 말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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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수 군에게 주다 贈金君基洙 이 학문은 내면의 성신37)을 중시하니 此學貴中孚비유하면 닭이 품은 알과 같다네 譬如鷄抱卵생기가 계속 이어져야 하는데 生意須接續참 정기가 끊어질까 두렵다네 眞精怕間斷이십여 일이 되기를 기다려야 待到二旬餘짧디짧은 깃텃을 볼 수 있네 羽毛見短短학문은 어떻게 이루는가 學成問何以진실로 나태를 경계하는 데 있네 亶在戒放懶권컨대 그대는 장년에 이르기까지 勸君迨壯年이십 년의 한도는 잡아야 한다네 把作二旬限얻지 못하면 마땅히 그만두지 말고 不得宜不措빠르게 하지 말며 늦게도 하지 말라 無速且無緩기틀을 갖춰야 물리를 깨닫게 되니 成形證物理묘체는 쉽게 헤아릴 수 없는 것이네 妙諦未可算 此學貴中孚, 譬如鷄抱卵.生意須接續, 眞精怕間斷.待到二旬餘, 羽毛見短短.學成問何以, 亶在戒放懶.勸君迨壯年, 把作二旬限.不得宜不措, 無速且無緩.成形證物理, 妙諦未可算. 내면의 성신 원문의 '중부(中孚)'는 《주역》 〈중부괘(中孚卦)〉의 괘사를 인용한 것이다. 그 괘사(卦辭)에 "중부는 돼지와 물고기에 미치면 길하니, 큰 냇물을 건넘이 이롭고 정함이 이롭다.[中孚, 豚魚, 吉, 利涉大川, 利貞.]" 한 데 대하여, 공영달(孔穎達)의 소(疏)에 "믿음이 마음에서 발한 것을 중부라고 한다.[信發於中, 謂之中孚.]라고 하였는데 후에 중부(中孚)는 성신(誠信)을 지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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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함60) 【재연】에게 보냄 與文仁涵【載淵】 아득히 멀리 떨어져 있어 그리움과 울적함이 날로 쌓이네. 근래 어버이를 모시고 지내는 체후는 만복하며, 공부하는 과정은 독실히 하여 멈추지 않는가? 매번 인함(仁涵)이 일찍 아버지를 잃어 집안을 담당하고 거듭 많은 일을 당한 것을 생각함에 나의 가엽고 절박한 정이 없을 수 없었네. 그러나 영고(榮枯)와 통색(通塞) 이것은 실로 천지 사이에 없을 수 없는 일이니, 마치 한서(寒暑)와 주야(晝夜)가 앞에서 서로 교대하는 것과 같아 옮기거나 바꿀 수 없는 것이 있네. 다만 마땅히 하늘의 뜻을 들어 순순히 받아들여야 하고, 힘쓸 수 있는 것은 오직 독서와 수신(修身)이니, 나의 성분에 진실로 가지고 있는 한 가지 일이라, 또 곤궁(困窮)과 불울(拂鬱)함이 두려워하고 힘써 옥성(玉成)61)시키는 바탕이 되지 않을 줄 어찌 알겠는가? 나이가 젊고 기운이 강하여 앞길이 만 리 인데, 어찌 갑자기 스스로 상실하여 한편으로 선장(先丈)62)께서 기대하고 바랐던 무거움을 저버리고 한편으로 사우가 부탁한 부지런함을 외면할 수 있겠는가? 평소 집안일을 주관하는 여가에 한 방을 깨끗이 쓸고 《논어》《맹자》 및 《심경》《근사록》등의 글을 가지고 몇 줄을 보고서 의취(義趣)를 궁구하기에 힘써, 마음을 조금이라도 방일하게 하지 않는다면 차츰 쌓은 것이 많아진 뒤에는 절로 마땅히 공효를 보게 될 것이네. 의림(義林)은 비록 지극히 보잘것없지만 선장에게는 일찍이 친구 중의 한 사람이었고, 또 임종 때 슬프고 간절하게 한 부탁을 받은 것이 진중할 뿐만이 아니었네. 오호라! 어느새 여러 해가 흘러 묘목(墓木)이 이미 굵어졌네. 매번 한 생각이 생기면 유명(幽明) 간에 저버림이 무궁할까 두렵고, 만약 하루아침에 덜컥 죽게 되면 또 무슨 말로 저승에서 만나게 될 날에 알리겠는가? 이것이 감히 이렇게 그대에게 경계하는 이유이니, 어떻게 여기는가? 蒼莽涯用。戀菀日積。未詢邇來侍省百福。鉛槧程曆慥慥不住否。每念仁涵早孤當室。荐遭多故。而不能無區區憫迫之情。然榮枯通塞。此固天地間所不無之事。如寒暑晝夜相代乎前。而有不可以移易者也。只當聽天順受。而所可勉者。惟讀書修身。性分固有底一事而已。又安知困窮拂鬱。不爲惕勵玉成之地耶。少年强氣。前程萬里。而豈可遽自隕穫。一以負先丈期望之重。一以孤士友付託之勤乎。平日幹蠱之餘。淨掃一室。將論語孟子及心經近思等文字。看得多少行。務窮義趣。勿令心少有放逸。則積累多後。自當見功矣。義林雖極無狀。而在先丈。未嘗不是知舊之一。且受其臨終悲懇之托。不啻珍重。嗚乎星霜累變。墓木已拱矣。每一念到。恐負幽明無有窮已。而若一朝溘然。則又以何語而報之於泉下相見之日乎。此所以敢爾奉規於吾友者也。如何如何。 문인함(文仁涵) 문재연(文載淵, 1873~?)을 말한다. 자는 인함, 본관은 남평(南平)이다. 정의림의 문인이다. 옥성(玉成) 송(宋)나라 장재(張載)의 〈서명(西銘)〉에 "그대를 빈궁하게 하고 시름에 잠기게 하는 것은, 장차 그대를 옥으로 만들어 주려 함이다.[貧賤憂戚, 庸玉汝於成也.]"라고 한 데서 온 말로, 학문과 인격이 시련을 통하여 귀한 옥처럼 훌륭하게 성취되는 것을 말한다. 《古文眞寶後集 卷10》 선장(先丈) 문재연의 부친 문봉환(文鳳煥, 1849~1890)을 말한다. 자는 익중(翊中), 호는 오계(梧溪), 본관은 남평(南平)이다. 자세한 행적은 《일신재집》권19〈오계 문공 행장(梧溪文公行狀)〉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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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덕소29)【우용】에게 답함 答淇德韶【祐鏞】 지난번 보내준 편지를 받았으나 미적거리다가 답장을 못했는데, 갑자기 하산(霞山)30)의 강석(講席)에서 만나게 되었네. 그러나 사람들이 많아 요란하여 다정히 대화할 수 없었으니, 뒤미처 생각함에 매우 서글펐네. 그동안 삼가 묻건대 부모님을 곁에서 모시는 생활이 어떠한가? 남는 힘으로 글을 읽어 더욱 조리와 두서가 있어서 한 가문의 여러 선비들이 많이 종유할 것이니, 매번 그리워하는 마음 감당할 수 없네. 질문한 몇 조목에서 터득하지 못하면 그만두지 않는 뜻31)을 족히 볼 수 있었네. 명덕(明德)과 신민(新民)의 말단에 결어(結語)가 같고 다른 것은 혹 문세로 인하거나 혹 말뜻으로 인해서이지만 글자를 놓고 말을 함에 각각 마땅한 바가 있으니, 위아래의 글을 상세히 살펴보면 알 수 있네. 본말장(本末章)에 대해……라 한 것은 '청송(聽訟)' 한 구절로 말하자면, '송사를 없게 한다[使無訟]'는 것은 본(本)이고 '송사를 듣는다[聽訟]'는 것은 말(末)이며, '백성의 마음을 크게 두렵게 한다[大畏民志]'는 것은 본이고 '그 거짓말을 다하지 못하게 한다[不敢盡其辭]'는 것은 말이네. 이것은 명덕과 신민의 본말의 뜻을 해석한 것이 아니겠는가? 오직 바라건대 더욱 마음을 두어 정밀하게 연구하시게. 向承惠幅。因循未復。而遽爾相面於霞山講聚之席。然人海撓撓。未得穩款。追思悵悵。邇來謹問侍旁起居何似。餘力咿晤。益有條緒。一門群彦。濟濟遊從。每不勝依然。俯詢數條足見不得不措之意明德新民末段結語之同異或因文勢。或因辭義。而下字下語。各有攸當詳考上下文可知也。本末章云云。以聽訟一節言之。使無訟。本也。聽訟末也。大畏民志。本也。不敢盡其辭。末也。此非釋明新本末之意者耶。惟加意硏精。 홍덕소(洪德韶) 홍우용(洪祐鏞, 1872~1941)을 말한다. 자는 덕소, 호는 우산(牛山), 본관은 풍산(豊山)이다. 정의림의 문인이다. 저서로는 《우산유고(牛山遺稿)》가 있다. 하산(霞山) 《일신재집》권14〈하산기(霞山記)〉에 내용이 보인다. 터득하지……뜻 《중용장구》 제20장에 "생각하지 않는다면 모르지만 일단 생각할진댄 터득하지 못하면 그만두지 않는다.[有不思, 思之, 不得, 不措也.]"라고 한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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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가을 족숙 낙표 의 별장에 갔다가 벗을 만나다 早秋 到族叔【洛杓】庄上 逢友人 가을 되어 감개가 한층 더 많아지니 秋來感恨一層多장강의 만곡 물결에도 씻기가 어렵네 難洗長江萬斛波당시의 참된 마음은 동해의 곡350)이요 當日眞情東海哭천년의 절창(絶唱)은 서산의 노래351)라 千年絶調西山歌시서가 배에 가득하나 끝내 의지할 수 없으니 詩書滿腹終無賴조수와 한 무리 되면 다시 어찌할까 鳥獸同羣復若何지기는 인간 세상에서 기다릴 것 없나니 知己不須人世上심중에 본래 옛 양아352)가 있다오 心中自有古洋峨《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권29 끝. 秋來感恨一層多, 難洗長江萬斛波.當日眞情東海哭, 千年絶調西山歌.《詩》、《書》滿腹終無賴, 鳥獸同羣復若何?知己不須人世上, 心中自有古洋峨.後滄先生文集卷之二十九 終 동해(東海)의 곡(哭) 전국 시대 제(齊)나라 사람 노중련(魯仲連)이, 진(秦)나라가 조(趙)나라를 포위하고서 천자로 섬기면 포위를 풀어 주겠다고 하자 "진나라가 방자하게 천자를 참칭(僭稱)하면 동해에 빠져 죽겠다."라고 말하며 절의를 지킨 고사를 가리킨다. 《史記 魯仲連列傳》 서산(西山)의 노래 서산은 수양산(首陽山)을 가리킨다. 백이(伯夷)와 숙제(叔齊)가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은(殷)나라 주왕(紂王)을 정벌하는 것을 반대하여 간하다가 듣지 않자 수양산으로 들어가 고사리를 캐 먹으면서 노래하기를 "저 서산에 올라가서 고사리를 캐도다. 포악함으로 포악함을 바꾸면서도 그른 줄을 모르도다.[登彼西山兮, 采其薇兮. 以暴易暴兮, 不知其非兮.]"라고 하였다. 《史記 伯夷列傳》 양아(洋峨) 지기(知己)가 서로 만난 것을 말한다. 거문고의 명인 백아(伯牙)가 고산(高山)에 뜻을 두고 연주하면 그의 지음(知音)인 종자기(鍾子期)가 "좋구나. 아아(峨峨)하여 태산(泰山)과 같도다." 하고, 유수(流水)에 뜻을 두고 연주하면 "좋구나. 양양(洋洋)하여 강하(江河)와 같도다."라고 평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다. 《列子 湯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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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또 읊다 是日 又吟 막내가 서쪽에서 산 지 이십 년이라345) 季也西居二十年떨어져 있으니 업보와 남은 인연 어쩔 수 없네 別離無柰業留緣때때로 홀로 《시경》 〈상체(常棣)〉346)를 읊었고 有時獨賦姫公棣어느 날인들 두자미의 운수(雲樹)347)를 보지 않았던가 曷日無看杜子雲아 나는 더욱 노쇠하여 백발만 더해지는데 嗟我益衰添白髮그대가 학문에 소홀하여 가업 잃을까 염려되네 恐君疎學失靑氈어찌하여 끊임없이 와서 보지 않는가 源源胡不來相見서글픈 마음이 오늘 배가 되누나 怊悵之懷倍此辰누이 둘 아우 셋348)은 다 노년인데 姊二弟三老大年여섯 사람 살아있으니 또한 드문 인연이네 六人在世亦稀緣지금은 모두가 집안을 꾸렸고 至今俱是偕家室아울러 후세에 전할 자손이 있다네 傳後幷皆有子孫청빈하니 속백349)이 부족하다 말하지 말라 休道淸貧歉粟帛다행히 질병으로 병석에 누운 일 없다오 幸無疾病委牀氈흩어져 살아 쓸쓸하여 그리운 마음 괴로운데 散居落落相思苦어떻게 단란하게 모여 노년을 즐길거나 團聚安能樂暮辰 季也西居二十年, 別離無柰業留緣.有時獨賦姫公棣, 曷日無看杜子雲?嗟我益衰添白髮, 恐君疎學失靑氈.源源胡不來相見? 怊悵之懷倍此辰.姊二弟三老大年, 六人在世亦稀緣.至今俱是偕家室, 傳後幷皆有子孫.休道淸貧歉粟帛, 幸無疾病委牀氈.散居落落相思苦, 團聚安能樂暮辰? 막내가……년이라 막내는 김택술의 막내아우인 김억술(金億述, 1899~1959)을 가리킨다. 자는 여안(汝安), 호는 척재(拓齋)이다.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제자이다. 김억술은 1924년에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옹중리로 이사하였다. 시경(詩經) 상체(常棣) 《시경》 〈소아(小雅)〉의 편명으로, 형제간의 우애를 표현한 작품이다. 두자미(杜子美)의 운수(雲樹) 두자미는 두보(杜甫)로, 이 시는 원래 벗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표현한 작품인데, 여기에서는 형제를 그리워하는 의미로 쓰였다. 두보의 〈봄날 이백을 그리워하다[春日憶李白]〉에 "위수 북쪽엔 봄 하늘의 나무요, 강 동쪽엔 해 저문 구름이로다.[渭北春天樹, 江東日暮雲.]"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杜少陵詩集 卷1》 누이……셋 김택술의 형제는 4남 2녀인데, 김택술이 장남이고, 차례로 봉술(鳳述), 만술(萬述), 억술(億述)이 있고, 여동생 둘은 김재봉(金在鳳), 유동기(柳東起)에게 시집갔다. 속백(粟帛) 곡물과 포백(布帛)으로, 벼슬하는 동안에 받는 녹봉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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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계기 蘭溪記 난초는 여러 화초에 견주어보면 같은 식물인데 《주역》에 드러나고, 《예기》에 보이며, 《시경》에서 노래하고, 《이소(離騒)》에서 회자되어 그 명칭과 품제(品題)가 여러 꽃들의 위에서 독차지하는 것은 어째서인가? 사람은 덕을 향기로 삼고 꽃은 향기로 덕을 삼으니, 난초가 칭송을 받는 것은 대개 그 덕이 있기 때문이다. 구원(九畹)에 이미 심어130) 그윽한 골짝에 길이 생겨 채집하고 꿰매어 차고, 깔거나 안고서 화려한 집에 바치고 금 쟁반에 드리니, 그 냄새가 정성스러워 호고(胡考)가 평안하고131) 그 향기가 비로소 올라가니 상제가 흠향하네.132)오호라! 쑥을 차는 이133)는 어떤 사람이며, 향주머니에 채운 것134)은 어떤 물건인가? 이상한 냄새 나는 유(蕕)는 함께 거처할 수 없고, 오로지 아첨하는 초(椒)135)는 함께 말할 수 없네. 적막한 곳에 외로운 뿌리 의탁하여 여러 화초와 더불어 짝이 되니, 사람이 있다고 하여 더 영화롭지 않고 사람이 없다하여 향기를 풍기지 않는 것은 아니다. 향기 머금고 뿌리에 감추어 그 덕을 축적하는 것이 마치 생강과 계피는 늙을수록 더욱 매워지는 것136) 같고, 마치 시귀(蓍龜)는 오랠수록 더욱 신령한 것과 같으니, 그 난초는 또한 아름답지 않겠는가. 내 난계자(蘭溪子)를 위하여 〈의란조(猗蘭操)〉137) 한 곡을 노래하니, 원컨대 그대는 주부자(朱夫子)의 난두시(蘭杜詩)138) 한 절구로 이어서 화답하시게. 蘭於衆卉。同植物也。而著於易。見於禮。歌於詩。膾灸於離騒。其名稱品。題擅於衆芳之上者何耶。人以德爲馨香。花以馨香爲德。蘭之見稱。盖以其有德也。九畹旣藝幽。谷成蹊。采之紉之。以藉以包。薦於華屋。進於金盤。其臭亶時而胡考是寧。其香始升而上帝是歆。嗚乎。服艾何人。充幃何物。異臭之蕕。不可與居。專佞之椒。不可與語。托孤根於寂寞。與衆艸而爲伍。不以有人而加榮。不以無人而不芳。含薰晦根。以畜其德。如薑桂之老而愈辣。如蓍龜之久而益神。則其爲蘭也。不亦美矣乎。我爲蘭溪子。歌猗蘭操一闋。願子以朱夫子蘭杜詩一絶。繼以和之也。 구원(九畹)에 이미 심어 굴원(屈原)의 〈이소(離騷)〉에 "내가 구원의 땅에다 이미 난초를 심고, 다시 백묘의 땅에다 혜초를 심었노라.[余旣滋蘭之九畹兮, 又樹蕙之百畝.]"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호고(胡考)가 평안하고 호고는 수고(壽考)와 같은 뜻이다. 《시경》 〈주송(周頌) 재삼(載芟)〉에 "음식이 그 향기로우니 국가의 영광이며, 후추가 향기로우니 호고의 편안함이로다.[有飶其香, 邦家之光. 有椒其馨, 胡考之寧.]"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그 향기가……흠향하네 《시경》 〈대아(大雅) 생민(生民)〉에 "그 향기 비로소 올라가니, 상제가 편안히 흠향하시도다.[其香始升, 上帝居歆.]"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쑥을 차는 이 굴원의 〈이소〉에 "집집마다 쑥을 허리춤에 가득 차고 다니면서 유란(幽蘭)은 찰 것이 못 된다고 한다네.[戶服艾以盈腰兮, 謂幽蘭其不可佩.]"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향주머니에 채운 것 굴원의 〈이소〉에 "거름을 가져다가 향주머니를 채우고, 신초는 향기롭지 않다고 말하네.[蘇糞壤以充幃兮, 謂申椒其不芳.]"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오로지 아첨하는 초(椒) 굴원의 〈이소〉에 "산초는 오로지 아첨하여 거만하네.[椒專侫以慢慆兮]"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생강과……것 《송사(宋史)》 〈안돈복열전(晏敦復列傳)〉에 "나는 끝내 내 한 몸을 위하여 국가를 그르치지 않을 것이고, 더구나 내 생강과 계피 같은 성질은 늙을수록 더 매워짐에랴.[吾終不爲身計誤國家, 況吾薑桂之性, 到老愈辣?]"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의란조(猗蘭操) 공자가 지은 금곡(琴曲)이다. 공자가 위(衛)나라에서 노(魯)나라에 돌아온 뒤에 깊은 골짜기에 핀 향기로운 난초를 보고서 스스로 때를 만나지 못했음을 마음 아프게 여겨 이 노래를 지었다고 한다. 주부자(朱夫子)의 난두시(蘭杜詩) 주자의 시 〈봉동장경부성남십이영(奉同張敬夫城南二十詠)〉에서 여섯 번 째 난간(蘭澗)에 대한 절구에 "광풍이 푸른 시내 위에 떠가니, 난초와 방두는 나날이 성하도다.[光風浮碧澗, 蘭杜日猗猗.]"라고 한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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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기 霞山記 하(霞)는 멀다는 뜻이다. 연기도 아니고 구름도 아니며 아지랑이도 아니고 안개도 아니면서 연기와 구름, 아지랑이와 안개 위에 멀리 솟아 있으니, 이것이 영대(靈臺)167)가 관측하는 것이고 신선이 깃들어 지내는 곳이다. 천하의 산은 연기와 구름, 아지랑이와 안개 속에 있지 않는 것이 없는데 여기에 유독 '하(霞)' 자로 이름하였으니, 그 고상(高爽)하고 청수(淸秀)한 모습을 대개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하라는 사물은 걷었다 펼치는 것이 일정함이 없고 숨었다 드러나는 것이 방소가 없어 아침저녁으로 모습이 다르고 흐리고 맑음에 따라 기후가 달라 오색의 문양을 토해내고 사시의 경치를 제공함에 자욱하다 흩날려 천만 가지로 변화하지만 산은 실로 여전하다. 대개 지극히 고요하여 바뀌지 않는 체(體)가 그 가운데 보존됨이 있으면 절로 지극히 움직여 쉬지 않는 용(用)이 밖으로 드러남이 있으니, 이것이 천지 만물의 실정이고 학문(學問)과 인도(人道)의 떳떳함이다.나의 벗 김백현(金伯顯) 군은 그 산에 사는 사람으로 은거하며 뜻을 구하였는데, 그 마음 속 생각을 보건대 마음이 초연하여 만 길 멀리 솟은 기상이 있으니, 대개 그 풍기가 도와 드러내 준 것은 우연이 아닌 점이 있다. 그렇다면 동정 체용(動靜體用)의 이치에 또한 묵묵히 이해하여 가만히 수양하는 것이 있는가? 궁구하지 못한 것을 더욱 궁구하고 부지런히 하지 못한 것을 더욱 부지런히 하여 본원의 바탕으로 하여금 정정(定靜) 순고(純固)하여 털끝만큼이라도 굽힘이 없게 한다면 사위(事爲)의 사이에 드러나는 것은 장차 천만 가지 변화에 응수해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나아가서는 영대(靈臺)의 상서로움을 드러내고 들어와서는 신선의 즐거움을 함께하는 것 같은데 이르러서는 오직 만나는 것이 어떠한가에 달려 있을 뿐이다. 霞。遐也。非烟非雲。非雺非霧。而遐擧於烟雲雺霧之上。此靈臺之所俟望。仙翁之所棲息也。天下之山。未有不在於烟雲雺霧之中。而此獨以霞名。其高爽淸秀之容。槩可想也。然霞之爲物。捲舒無常。隱現無方。朝暮殊象。陰睛異候。吐五色之文。供四時之景。氤氳飄颻。千變萬化。而山固自如矣。蓋有至靜不易之體。存乎其中。則自有至動不息之用。著見於外。此天地萬物之情。學問人道之常也。余友金君伯顯。其山人也。隱居求志。而見其懷想。衿抱超然。有遐擧萬丈之像。蓋其風氣助發。有非偶然者耳。然則其於動靜體用之理。亦有所黙會而潛修者否。益窮其所未窮。益謹其所未謹。使本源之地。定靜純固。無一毫撓屈。則其發於事爲之間者。將酬千變應萬化而有餘矣。至若出而呈靈臺之祥。人而同仙翁之樂。則惟在所遇之如何耳。 영대(靈臺) 중국 고대에 제왕(帝王)이 천문을 관측하기 위해 세운 건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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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암기 黙庵記 공자께서 위인(爲仁)의 물음169)에 답한 것 가운데 "인자는 그 말하는 것을 참아서 어렵게 한다."170)라고 한 것이 있고, 사마온공(司馬溫公)이 진심행기(盡心行己)의 질문에 답하기를 "말을 함부로 하지 않음으로부터 시작한다."라고 하였고,171) 정자(程子)는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라는 〈언잠(言箴)〉에서 "말을 낼 때에 조급함과 경망함을 금하여야 중심이 이에 고요하고 전일해 진다."라고 하였으니, 대개 마음을 보존하고 덕에 나아가는 요체는 '묵(黙)'이라는 한 글자보다 우선하는 것이 없을 것이다. 진실로 능히 침묵하여 스스로 지켜 조급하고 경망한 실수가 없으면 존양(存養)이 순수하고 견고하여 대본(大本)이 확립될 것이다. 학문 사변(學問思辨)과 성찰 천리(省察踐履)의 갖가지 공부가 어찌 일찍이 이 가운데에서 나오지 않겠는가. 옛날 말에 이른바 "연못처럼 고요히 있는 것이 도리어 우레 소리를 낸다."라는 것172)이 이것이다.묵암(黙庵) 주인 김찬배(金燦培)가 90리 길[三舍]을 산 넘고 물 건너 가천(佳川)의 내 집을 방문하여 인하여 한마디 말을 청하기에 감히 과루(寡陋)하다고 스스로 도외시 할 수 없어 그저 들은 것을 외워 나를 멀리하지 않은 뜻에 보답할 뿐이다. 孔子答爲仁之有曰。仁者。其言也訒。司馬溫公答盡心行己之問有曰。自不妄語始。程子非禮勿言箴有曰。發禁躁妄。內斯静專。蓋存心進德之要。莫有先於黙之一字矣。苟能沈黙自持。無操妄之失。則存養純固。而大本立矣。學問思辨。省察踐履。種種功夫。何嘗不從此中出耶。古語所謂淵黙却雷聲是也。黙庵主人金燦培。跋涉三舍。過我佳川敝廬。因有一言之請。不敢以寡陋自外。聊誦所聞。以塞其不遐之意云爾。 위인(爲仁)의 물음 원문의 '答爲仁之'는'答爲仁之問'의 오류로 보고 풀이하였다. 인자(仁者)는……한다 사마우(司馬牛)가 인에 대해 질문한 것에 답한 말로, 《논어》 〈안연(顔淵)〉에 나온다. 사마온공(司馬溫公)이……하였고 《심경부주》 권2 〈성의장(誠意章)〉에 "유 충정공[유안세(劉安世)]이 사마 온공을 뵙고는 마음을 다하고 몸을 행하는 요점 중에 종신토록 행할 만한 것을 묻자, 공은 '성일 것이다.' 하고 대답하였다. 또다시 '이것을 행하려면 무엇을 먼저 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공은 '말을 함부로 하지 않음으로부터 시작하여야 한다.'라고 하였다.[劉忠定公見溫公, 問盡心行己之要, 可以終身行之者, 公曰其誠乎! 又問行之何先? 公曰自不妄語始.]"라고 한 것을 말한다. 옛날……것 《장자》 〈재유(在宥)〉에 "시동처럼 가만히 있다가 용처럼 나타나며, 못처럼 고요히 있다가 우레처럼 큰 소리를 낸다.[尸居而龍見, 淵默而雷聲.]"라고 한 것을 변용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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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재 어른이 전날 작별하고 돌아갈 때 읊은 시를 부쳐왔기에 화답시를 드리다 悅丈以前日別歸吟寄來 和韻以呈 뜨락 오동나무는 그늘 엷어 빗소리가 가늘고 庭梧陰薄雨聲微적막한 서재에는 하는 일마저 드문드문하네 涔寂芸牕事事稀어디선가 부는 맑은 바람이 좋은 소식 전해주고 何處淸風傳信好지난밤에 뜬 밝은 달은 돌아간 사람 기억하리라 前宵明月憶人歸주옥같은 시를 보내주니 백붕83) 같아 고맙고 百朋多謝投瓊什갈옷을 갈아입으니 이별한 듯해 깜짝 놀라네 一別飜驚易葛衣멀리서 형문84)의 고요한 땅을 부러워하니 遙羡衡門閑靜地갈매기와 사슴들도 모두 기심을 잊었으리85) 潁鷗峴鹿共忘機 庭梧陰薄雨聲微, 涔寂芸牕事事稀.何處淸風傳信好, 前宵明月憶人歸.百朋多謝投瑗什, 一別飜驚易葛衣.遙羡衡門間靜地, 潁鷗峴鹿共忘機. 백붕(百朋) 많은 재물을 뜻한다. 고대(古代)에 패각(貝殼)을 화폐로 사용할 때 오패(五貝)를 일관(一串), 양관(兩串)을 일붕(一朋)이라고 하였다. 《시경》 〈소아(小雅) 청청자아(菁菁者莪)〉에 "군자를 만나 뵌 이 기쁨이여, 마치 보화(寶貨)를 나에게 내려 주신 듯하도다.[旣見君子, 錫我百朋.]"라는 말이 나온다. 형문(衡門) 나무를 가로질러 만든 보잘것없는 문으로, 안분자족(安分自足)하는 은자(隱者)의 거처를 뜻한다. 《시경》 〈형문(衡門)〉에 "형문의 아래여, 쉬면서 노닐 만하도다. 샘물이 졸졸 흐름이여, 굶주림을 즐길 만하도다.[衡門之下, 可以棲遲. 泌之洋洋, 可以樂飢.]"라는 말이 나온다. 기심(機心)을 잊었으리 원문의 '망기(忘機)'는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꾀하는 마음을 잊는다는 뜻이다. 《열자(列子)》 〈황제(黃帝)〉에 "어떤 사람이 바닷가에 살면서 매일 갈매기와 놀았더니, 갈매기들이 그를 피하지 않았다. 어느 날 그의 아버지가 '내일은 갈매기를 한 마리 붙들어 가지고 오너라.'라고 하여 다음 날 바닷가에 나갔더니 갈매기가 멀리 피하고 오지 않았다. 그것은 갈매기를 잡겠다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었다."라는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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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마의태자 유허를 보고 느낀 바 있어서 觀新羅麻衣太子遺墟 有感 울며 간하고 돌아와 이곳에 들어 숨었는데 泣諫歸來入此逃지금까지 유적이 다 사라지지는 않았구나 至今遺跡未全消동경96)의 왕의 기운 천 년 만에 다했으나 東京王氣千年盡북지97)의 영웅의 기풍은 만 장이나 높네 北地英風萬丈高삼베옷 입고 풀에 앉아 홀로 고심하고 坐草衣麻心獨苦보루 쌓고 군영 바라보며 헛수고했구나 望軍築壘力徒勞얼마나 많은 길손들이 추모하며 슬퍼했나 幾多行客追傷感후손98)은 갑절이나 깊은 수심에 잠기네 一倍忉忉後裔苗 泣諫歸來入此逃, 至今遺跡未全消.東京王氣千年盡, 北地英風萬丈高.坐草衣麻心獨苦, 望軍築壘力徒勞.幾多行客追傷感, 一倍忉忉後裔苗. 동경(東京) 신라의 도읍이었던 경주(慶州)를 가리킨다. 북지(北地) 촉한 후주(蜀漢後主) 유선의 아들 북지왕(北地王) 유심(劉諶)을 말하는데, 위(魏)나라 군사가 침입하여 후주가 항복하려 하자 반대하였다. 후주가 끝내 항복하자 유비(劉備)의 사당에 사실을 고하고 처자를 죽인 다음 자살하였다. 《三國志 蜀志》 태자의 후손 김택술이 자신을 가리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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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폭동 萬瀑洞 조각조각 유리요 많고많은 진주들이라 片片琉璃斛斛珠여기저기 못과 폭포가 새 그림 펼치네 潭潭瀑瀑展新圖많은 이의 마음과 눈을 씻고 깨우치니 洗醒多少人心目이를 만든 조물주가 어찌 뜻이 없으랴 作此天工意豈無 片片琉璃斛斛珠, 潭潭瀑瀑展新圖.洗醒多少人心目, 作此天工意豈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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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자명17)에게 답함 答姜子明 생각을 지극히 하여 마음이 상해 무근(無根)의 화(火)18)가 날마다 가슴속에 성하게 생긴다고 하니, 이것은 알지 못하겠네. 만약 태사공(太史公)이 빌미를 만든 것19)이 아니라면 혹 사마자휘(司馬子徽)의 좌치(坐馳)20)를 범한 잘못일 것이네. 저것 때문이든 이것 때문이든 모두 좋은 의사는 아니네. 지금 사람은 대부분 단계를 뛰어넘고 쉽게 여겨 망령되이 행동하여 고생만 하고 실득이 없어 이런 병을 초래하네. 만일 이치를 궁구하는 것을 말하자면 마땅히 일상의 평이한 곳에서 그 사물을 변별하여 곧 공사(公私)의 천리와 인욕의 구분을 또렷하고 분명하도록 하고, 만일 실천을 말하자면 마땅히 어묵(語默)과 동정(動靜)에 십분 힘을 붙여 성(誠)을 기르고 진(眞)을 쌓아 오래 되어 절로 편안히 쉬는 날이 있도록 해야 할 것이요, 흐릿하고 아득한 곳에서 탐색하고 생각하며, 마음을 보존하고 지키는 공부에 안배하고 조작하여 마음이 수고롭고 기가 부족하도록 하여 병폐를 생기게 해서는 불가하네. 그렇게 되면 이것은 창포(菖蒲)나 복령(伏令) 등으로 효험을 바랄 수 없네. 보내온 편지에서 이른바 마음을 보존한다는 '존심(存心)' 두 글자는 실로 창편(倉扁)21) 집안 제일의 법문(法門)이 되니, 모름지기 허다한 생각과 허다한 수고와 분주한 것을 쓸어내어 어린아이가 처음 학교에 갈 때의 모양을 하여 쇄소응대(灑掃應對)와 사친종형(事親從兄)을 하는 것에서부터 오늘 한 가지 일을 행하고 내일 한 가지 일을 행하여 성심(誠心)이 날마다 자라도록 힘쓴다면 사의(私意)는 사라지기를 기약하지 않아도 절로 사라질 것이니, 반드시 채워지지 못한 힘으로 갑자기 배척하고 공격하다가 스스로 낭패를 취하지 않을 것이네.〔문〕심술(心術)의 사이에 염려의 은미함이 조금이라도 미진한 것이 있는 것 이것이 안자(顔子)의 비례처(非禮處)이니, 시청언동(視聽言動) 상에 무슨 비례(非禮)가 있어 사물(四勿)22)로 알려준 것입니까?〔답〕심술염려와 시청언동은 비록 내외의 구별이 있지만 그 작용은 서로 기다리지 않은 적이 없으니, 어찌 심술에서 잃고서 시청에서 얻는 자가 있겠는가?〔문〕쇄소응대(灑掃應對)는 효제(孝弟) 가운데 한 가지 일이고, 효제는 성명(性命) 가운데 한 가지 일이라면 쇄소응대의 소이연(所以然)은 효제이고, 효제의 소이연은 성명입니다.〔답〕실로 그러하네.〔문〕병들어 침상에 누워 있을 적에 용렬한 의원에게 내맡기는 것은 자식을 사랑하지 않고 어버이에게 효도하지 않음에 비견된다고 하였는데,23) 병들어 침상에 누운 사람은 자신을 말하는 것입니까, 부모와 자식을 말하는 것입니까? 허씨(許氏)의 설24)로 보면 자신을 말하는 것이 아니겠으며, 진씨(陳氏)의 설25)로 보면 부모와 자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답〕허씨 설은 조금 상고하였다고 하겠지만 끝내 진씨 설이 평온한 것만 못한 듯하니, 율곡(栗谷)이 진씨 설을 따랐던 이유이네.〔문〕"사람이 능히 이와 같지 못한 것은 단지 실리(實理)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니, 실리라는 것은 실제로 옳음을 보고 실제로 그름을 보는 것이다."26)라고 하였는데,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실리(實理)와 실견(實見)은 같지 않으니, 아마 기록할 때 빠진 글자가 있는 듯하다."라고 하였습니다. 대개 이(理)는 실하지 않음이 없고 다만 보는 것이 실하지 않음이 있는데, "실리라는 것은 실제로 옳음을 보고 실제로 그름을 보는 것이다."라는 문장으로 보면 실제로 봄이 있은 뒤에 실리가 있는 듯하기 때문에 주자가 "기록할 때 빠진 글자가 있는 듯하다."라고 말한 것입니까?〔답〕실리는 천연적으로 절로 인력(人力)과 상관이 없으니, 어찌 사람이 보는 것의 실불실(實不實)이 어떠한가를 기다리겠는가? 만약 수양하는 측면에서 말하자면 실제로 본 뒤에 실리가 있는 것이네. 致思傷心。無根之火。日熾于中。此則未喩。若非太史公作祟。則或犯司馬子徽坐馳之失耶。以彼以此。皆非好意思。大抵今人。多是躐易忘作。徒勞無得。致有此病。如言窮理。則當於日用平易處。辨別其物。則公私天理人欲之分。使之了了分明。如言踐履。則當於語默動靜上。十分着力。使之養誠積眞。久自有稅駕之日。不可探索摸想於悅惚渺茫之地。安排造作於操存持守之功。使心勞氣乏。以生病敗也。然則此非菖蒲伏令等所可責效。來喩所謂存心二字。實爲倉扁家第一法門。切須掃却許多思量。許多勞攘作小兒子初上學時模樣。自灑掃應對事親從兄上。今日行一事。明日行一事。務使誠心日長。則私意不期消而自消。不必以未充之力。遽加排攻。而自取狼狽也。心術之間。念慮之微。少有未盡者。是顔子之非禮處。則視聽言動上。有何非禮。告之以四勿。心術念慮。與視聽言動。雖有內外之別。而其用。則未嘗不相須。豈有失於心術而得視聽者哉。灑掃應對。是孝弟中一事。孝弟是性命中一事。則灑掃應對所以然。孝弟是也。孝弟所以然。性命是也。固然。病臥於床。委之庸醫。比之不慈不孝。病臥於床者。以身之謂耶。以父母與子之謂耶。以許氏說觀之。則非以身之謂耶。以陳氏說觀之。則非以父母與子之謂耶。許氏之說稍考。終不似陳說之爲平穩也。所以栗谷從陳氏之說。人不能若此者。只爲不見實理。實理者。實見得是。實見得非。朱子曰。實理與實見不同。恐記錄漏字。蓋理無不實。但見未有實。而以實理者。實見得是。實見得非之文。觀之。則似有實見然後。有實理。故朱子言記錄之漏否。實理。是天然自有不犯人力底。何待乎人之見實不實如何也。若以修爲上言之。有實見而後實理者。 강자명(姜子明) 강진섭(姜晉燮, 1870~?)을 말한다. 자는 자명, 본관은 진주(晉州)이다. 정의림(鄭義林, 1845~1910)의 문인이다. 무근(無根)의 화(火) 명문(命門)과 원양(元陽)의 병 기운으로 되는 화를 말한다. 허해서 생기는 화〔虛火〕라고도 한다. 《국역 동의보감》 태사공(太史公)이……것 지나치게 책을 읽어 병이 생기는 것을 말한다.《주자대전》 권47 〈여자약에게 답함〔答呂子約〕〉26서에 "다만 보내신 편지에서 보면 수고롭게 심력을 소비한 소치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다른 벗들의 편지에서도 독서하는데 지나치게 힘을 들여 그렇게 되었다고 하는데, 무슨 책을 읽는지요? 성현이 남긴 말들은 마음을 보존하고 본성을 기르는 일이 아님이 없으니, 결단코 도리어 병을 생기게 하는데 이르러서는 마땅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태사공이 병의 빌미를 만들었을 것입니다.〔但來書以爲勞耗心力所致, 而諸朋友書亦云讀書過苦使然, 不知是讀何書? 若是聖賢之遺言, 無非存心養性之事, 決不應反至生病. 恐又只是太史公作祟耳.〕"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사마자휘(司馬子徽)의 좌치(坐馳) 조용히 앉아 있는 듯해도 마음속으로는 온갖 번뇌가 치달리는 것을 말한다. 좌치는《장자》 〈인간세(人間世)〉에 "저 비어 있는 공간을 볼지어다. 텅 빈 방에 햇살이 비치니 길상은 고요한 곳에 머무르는 것이다. 또한 (길상이 머물지 않는 것은) 마음이 고요히 머물지 않기 때문이니, 이것을 일러 몸은 가만히 앉아 있지만 마음이 이리저리 치닫는다고 한다.[瞻彼闋者, 虛室生白, 吉祥止止. 夫且不止, 是之謂坐馳.]"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송(宋) 나라 사마자휘(司馬子徽)가 《장자》에 나오는 '좌망(坐忘)'의 설을 좋아하여 〈좌망론(坐忘論)〉을 짓자, 정자(程子)가 "잊으려고 하는 그 자체가 벌써 좌치(坐馳)에 떨어진 것이다."라고 비평한 고사가 있다. 《近思錄 卷4 存養》 창편(倉扁) 한나라 때 창공(倉公)과 전국 시대 편작(扁鵲)으로, 모두 명의(名醫)로 일컬어진다. 사물(四勿) 《논어》 〈안연(顏淵)〉에서 공자의 제자 안연이 '극기복례(克己復禮)'의 조목을 물었을 때 공자가 "예가 아니면 보지 말며,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며,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라고 한 것을 말한다. 병들어……하였는데 《소학》 〈가언(嘉言)〉에 나오는 정이(程頤)의 말이다. 허씨(許氏)의 설 병상에 누운 사람은 부모와 자식이 아니고 자신이 병들어 누운 것이라고 하였다.《소학집주증해》에서 이 문장의 고증(攷證)에 나온다. 허씨는 허형(許衡, 1209~1281)을 말한다. 진씨(陳氏)의 설 이 구절 주석에 나오는 진순(陳淳, 1159~1223)의 설을 말한다. 사람이……것이다 《근사록》 권7 출처(出處)에 나오는 정이(程頤)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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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현63) 【기현】에게 보냄 與朴世顯【冀鉉】 지지난 달에 그대 집을 들러 숙원을 푼 것이 실로 적지 않았네. 다만 돌아오는 길에 장애가 생겨 지나쳐 오게 되었으니, 뒤에 생각함에 매우 서글프고 서운하였네. 이후 가을이 겨울로 교체되어64) 햇볕이 차가워져 가는데, 당상(堂上)의 병환은 원기를 회복하였는지 모르겠지만 금옥 같은 형제들의 지극한 정성과 효성에 어찌 감응하여 변화하는 기미가 없을 수 있겠는가? 항상 축원하며 멀리서 생각하는 마음 감당할 수 없네. 의림(義林)은 옛날 그 쪽에서 돌아 온 뒤로 아들이 죽었고, 또 얼마 되지 않아 거듭 백모 상을 당하였으니, 인가(人家)의 화액(禍厄)은 늘 있는 일이지만 어찌 이와 같이 참혹하단 말인가? 슬프고 애통하여 차라리 덜컥 죽어 아무것도 몰랐으면 하네. 지난 갑오년(1894, 고종31)에 그대 4촌이 순절한 위대한 사적은 접때 그 쪽으로 갔다가 비로소 그 상세한 내용을 알았는데, 나의 고루함이 심함이 부끄러웠네. 지척의 이웃 고을에서도 오히려 이와 같은데, 더구나 천하의 선비와 벗하여 위로 만고의 선을 논하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그 순절한 전말 및 동시에 화약고에서 분사(焚死)한 사람은 성은 김씨인데 이름은 무엇인가? 또 중군(中軍)의 성명을 상세히 기록하여 보내주기를 바라네. 이것은 어찌 비바람 속에 닭이 울고65) 큰 물결 속의 지주(砥柱)66)로 만세에 불후할 것이 아니겠는가? 대저 덕문(德門)의 행의(行義)는 실로 감탄하며 우러를 만하네. 그대 4촌은 이미 이와 같은 위대한 절의가 있고, 그대 형제는 또 효우의 행실로 사림에 자자하니, 고인이 이른바 "비록 깎아 내어 다하는 날에 있어도 양(陽)은 다 없어질 이치가 없다."라고 한 것67)을 어찌 믿지 않겠는가? 再去月。歷進仙庄。獲償宿願。實不淺淺。但廻程有礙。未免戛過。追切悵缺。伊後金水交遞。日色向寒。未審堂上愼節。有臻天和。金昆玉季。至誠至孝。安得無感應轉移之機也。常常顒祝。不任遠情。義林昔自那上還。遭家兒化逝。又未幾日。荐遇伯母喪事。人家禍厄。未或不有。而豈有若是之慘酷耶。悲霣痛怛。寧欲溘然而無知也。往在甲午。令從氏殉節偉蹟。向日那邊之行。始得其詳。可愧固陋之甚也。咫尺隣壤。猶尙如此。況敢望友天下之士。尙萬古之善乎。其殉節顚末。及同時焚死火藥庫者。姓金氏名云誰也。且中軍姓名。詳悉錄送爲望。此豈非風雨雞鳴。洪流砥柱。而爲萬世之不朽者乎。大抵德門行義。實可歎仰。從氏公。旣有若是之偉節。左右兄弟。又以孝友之行。藉藉士林。古人所謂雖在剝盡之日。而陽無可盡之理者。豈不信然耶。 박세현(朴世顯) 박기현(朴冀鉉, 1864~?)을 말한다. 자는 세현, 호는 강재(剛齋),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정의림의 문인이다. 가을이 겨울로 교체되어 원문의 '금수교체(金水交遞)'를 풀이한 말이다. 오행(五行)의 금(金)은 가을에 해당 되고 수(水)는 겨울에 해당 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비바람……울고 《시경》〈정풍(鄭風) 풍우(風雨)〉에 "비바람 자욱한데, 닭소리 그치지 않네. 이미 군자를 만났으니, 어찌 기쁘지 않으리.[風雨如晦, 鷄鳴不已. 旣見君子, 云胡不喜?]"라고 하였는데, 주자는 남녀 간의 풍속이 문란한 시로 보았으나 고주(古註)에 "풍우는 군자를 생각함이다. 세상이 어지러우면 군자를 생각하여 그 법도를 바꾸지 않는다.[風雨, 思君子也. 亂世則思君子, 不改其度焉.]"라고 하였다. 여기에서는 후자의 뜻을 취한 것이다. 지주(砥柱) 중국 하남성(河南省) 삼문협(三門峽)에 있는 산 이름으로, 황하(黃河) 강줄기 안에 서 있었다. 《水經注 河水4》 황하의 세찬 물결에도 굽히지 않고 버티고 서 있는 그 형상으로 인해, 세상 풍파를 견디며 굳센 지조를 지키는 사람을 비유할 때에 인용하는 말이다. 고인이……것《주역》 〈박괘(剝卦)〉의 정전(程傳)에 나오는 말인데, 변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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