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感而有吟 詩存今日篋。人作去年塵。虛夜空樑月。猶疑顔色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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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서로 돌아가는 김군 성유를 송별하는 서문 送金君聖惟歸關西序 옛날 사마자장(司馬子長)은 20세에 남쪽으로 강회(江淮)를 유람하였는데103), 지금 박천(博川)의 김군(金君) 성유(聖惟)가 수천 리 길을 멀다 여기지 않고 남쪽으로 영호남 사이를 유람하기에 나이를 물어보니, 그도 20세였다. 이는 전후의 취지가 일치하고, 고금의 자취가 똑같다고 이를 만하다. 그러나 강회의 유람은 평상시의 일이었고, 영호남의 유람은 변란 때의 일이니, 그 마음을 세우고 일을 성취하는 것이 옛사람보다 더욱 어렵지 않았겠는가. 다만 부모가 생존해 계시면 멀리 나가지 않으니, 이는 평상시에도 오히려 그러한데, 하물며 변란과 우환이 눈앞에 가득하여 길목마다 저지당하고 부딪히는 때임에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아침저녁으로 마을 어귀의 문에 기대어 자식이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부모에게 끼쳐드릴 수고로움이 또한 적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니, 날씨가 추워지기 전에 빨리 수레를 돌려 산으로 돌아갈 계책을 세우는 것이 어떻겠는가?기성(箕聖)의 옛 도읍104)은 내가 평소에 유람해보고 싶은 곳이었지만, 지금은 이미 늙었다. 만약 혹시라도 하늘이 몇 년의 수명을 연장해주고, 어지러운 시세가 조금 안정된다면 오늘날 다하지 못한 유람이 대동강(大同江)과 연광정(練光亭)105)사이에서 다시 이어지지 않을 줄 어찌 알겠는가. 昔司馬子長。二十南遊江淮。今博川金君聖惟。不遠數千里。南遊嶺湖之間。問其年亦二十。此可謂前後同調。今古一轍。然江淮之遊。平時事也。嶺湖之遊。亂時事也。其所以立心就事。不爲尤難於古人乎。但親在不遠遊。此在平時猶然。況艱虞滿目。途塗阻搪之日乎。其貽尊庭朝暮倚閭之苦。想亦不少矣。迨天氣未寒。早爲回轅還山之計如何。箕聖舊都。余平生所願遊。而今已老矣。如或天暇數年。而時紛稍帖。則今日未盡之遊。安知不復續於大同練光之間耶。 옛날……유람하였는데 사마자장(司馬子長)은 한나라 무제(武帝) 때의 역사가 사마천(司馬遷)으로, 자장은 그의 자이다. 그는 20세 때에 남쪽으로 강회(江淮)ㆍ회계(會稽)ㆍ우혈(禹穴)ㆍ구의(九疑)ㆍ원상(沅湘)을 유력하고 북쪽으로는 문사(汶泗)를 건너고 제노(齊魯)의 땅에서 강학(講學)하고 양초(梁楚)를 지나 돌아왔다고 한다. 《史記 卷130 太史公自序》 기성(箕聖)의……도읍 기성은 은(殷)나라 주왕(紂王)의 숙부인 기자(箕子)를 말하고, 기성의 옛 도읍은 평양을 가리킨다. 기자는 은나라가 멸망한 후에 주(周)나라 무왕(武王)에게 천하를 다스리는 아홉 가지의 대법(大法)인 홍범구주(洪範九疇)를 가르쳐 주고 조선의 평양(平壤)으로 옮겨와 기자조선(箕子朝鮮)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연광정(練光亭) 평양부의 대동강(大同江) 가 덕암(德巖) 위에 있는 정자로, 감사 허굉(許硡, 1471~1529)이 지었다고 한다. 《국역 신증동국여지승람 제51권 평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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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석83)과 찬 강에서 함께 읊다 與可石寒江共賦 셋이 앉아 머리털 세었다고 서로 동정하니 鼎坐相憐鬢髮明어떤 사람이 기영회84)에 잘못 견주겠는가 何人錯比會耆英지금 세상 신문물에 빙탄85)처럼 번뇌하고 炭氷今世新文物평생 옛 성인의 책을 추환86)처럼 즐기네 芻豢平生古聖書입은 현묘한 도를 지켜 문을 닫듯이 하고 口可守玄如閉戶시는 의당 백전87)이라 무기를 들지 않네 詩宜戰白不持兵맑음과 깨어있음은 본디 마음속의 일이니 淸醒自是心中事창랑에서 나의 갓끈을 씻을 필요가 없네88) 未必滄浪濯我纓 鼎坐相憐鬢髮明, 何人錯比會耆英?炭氷今世新文物, 芻豢平生古聖書.口可守玄如閉戶, 詩宜戰白不持兵.淸醒自是心中事, 未必滄浪濯我纓. 가석(可石) 박상구(朴爽九, 1882~1948)의 호이다. 본관은 밀성(密城), 자는 선명(善明)이다. 송병선(宋秉璿)의 문인으로, 저서에 《가석유고(可石遺稿)》 4권 2책이 있다. 기영회(耆英會) 송나라 문언박(文彦博)이 서도 유수(西都留守)로 있을 때 부필(富弼)의 집에서 연로하고 어진 사대부들을 모아놓고 술자리를 베풀어 서로 즐겼던 모임인 낙양기영회(洛陽耆英會)를 말한다. 이 모임은 당나라 백거이(白居易)의 구로회(九老會) 고사를 본떠 13인의 노인이 모여 만든 것으로, 관직은 무시한 채 나이로만 서열을 매긴 뒤 술과 시로 즐겼다고 한다. 《宋史 文彦博列傳》 빙탄(氷炭) 가슴속에서 격렬하게 일어나는 온갖 갈등과 번뇌를 비유한 말이다. 《장자》 〈인간세(人間世)〉에 "기쁨과 두려움 등의 감정이 가슴속에서 싸우는데, 이는 원래 인간의 오장 속에 얼음과 숯이 한데 엉겨 있기 때문이다.〔喜懼戰于胸中, 固已結氷炭于五臟矣.〕"라는 말이 나온다. 추환(蒭豢) 풀을 먹여 기르는 소ㆍ양과 곡식을 먹여 기르는 개ㆍ돼지 등을 가리키는데, 사람들이 좋아하는 맛있는 육류를 비유한다.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의리가 내 마음을 기쁘게 함이 추환이 내 입을 즐겁게 함과 같다.〔理義之悅我心, 猶芻豢之悅我口.〕"라고 하였다. 백전(白戰) 시를 지어 서로 솜씨를 겨루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송나라 구양수(歐陽脩)가 취성당(聚星堂)에서 빈객들과 눈〔雪〕에 대한 시를 지으면서, 눈과 관련된 글자들을 쓰지 못하게 했는데, 그 뒤 소식이 빈객들과 함께 시를 지을 때에 구양수가 정했던 규칙을 지키며 〈취성당설(聚星堂雪)〉이라는 시를 지었다. 그 시의 끝 구절에 "당시의 규칙을 그대들은 따를지니, 맨손으로 싸워야지 무기를 잡으면 안 되네.〔當時號令君聽取, 白戰不許持寸鐵.〕" 하였다. 맑음과……없네 시류에 영합하지 말고 자신의 고결한 신념을 지켜야 한다는 말이다. 전국 시대 초(楚)나라의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辭)〉에 "온 세상이 다 흐리거늘 나 홀로 맑고, 모든 사람이 다 취했거늘 나 홀로 깨었는지라, 이 때문에 쫓겨나게 되었다.〔擧世皆濁, 我獨淸; 衆人皆醉, 我獨醒, 是以見放.〕" 하였고,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나의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나의 발을 씻으리라.〔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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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졸 여중 이 나의 시 〈선사휘신〉에 차운한 절구 8수에 화답하다 和百拙【汝重】次拙詩《先師諱辰八絶》 곡조 높아 양춘곡39)에 화답하기 어려우니 調高難見和陽春온 세상에는 하리파인곡40)만 분분하네 擧世紛紛下俚人이 학문도 예로부터 이와 같았으니 此學從來亦如此조그만 사욕 다한 곳에 큰 지혜가 새로우리 纖私盡處大知新큰 지혜는 원래 천추에 드물지만 大知元是罕千春보통 지식은 어찌 몇 사람 없는가 常識如何無幾人다만 마음속에 조그만 사물이 있어서 只爲心中些有物옛것을 씻어 새것을 맞지41) 못해서라네 不能濯舊以來新맹자는 가을 숙살지기 안자는 봄기운 지녀42) 子輿秋殺子淵春천고토록 함께 아성으로 추대되었네 千古幷推亞聖人인보다 의를 높인 건 쇠한 세상에 대한 뜻이니 義尙於仁衰世意선현의 견식에서 문득 새로운 것을 알리라 前修見識却知新화도에는 해마다 풀이 절로 봄빛인데 華島年年草自春선생은 어찌 돌아오지 못한 사람 되었나 先生胡作未歸人오늘날 구원에서 만일 살려낼 수 있다면 九原如起而今日북을 울려 문장에서 내치라는 호령 새로우리43) 鳴鼓揮墻號令新발을 다쳐 부모 마음 상하게 함을 자춘이 걱정했으니44) 傷足傷親憂子春스승과 어버이는 본디 똑같은 사람이네 師親自是一般人곧장 스승의 도가 온전한 모습을 상하게 되었는데 直將師道傷全體어찌 개과천선45)하여 스스로 새로워지길 생각지 않으랴 盍思息黥圖自新송백이 변하여 도리의 봄이 되더니46) 松柏變成桃李春언행이 다른 사람이라 칭하면 더욱 성내네 更怒稱渠兩截人다행히 두남47)에 옛 견해 되돌릴 분 있으니 幸有斗南還舊見충고해 준 효과가 새로움을 이제야 알겠네 方知忠告奏功新부지런히 공부하다 청춘 지났다고 핑계대지 말게 勤工莫諉過靑春보불48)도 진실로 깨침을 이룬 사람으로 말미암나니 報佛亶由成得人악인을 미워하고 현인을 좋아하는 진절한 뜻을 疾惡好賢眞切意도리어 마음에 써서 덕이 새로워지길 구하세 反施方寸德求新이 세상에 태어나 백 년을 지내더라도 生來此世百年春마음 알아주는 한 사람을 얻기 어렵네 難得知心一箇人다만 끝내 서로 이루어 줌에 의지하여 但願相成終有賴이제부터 새로운 소문이 들리게 하세나 期令今後聽聞新 調高難見和陽春, 擧世紛紛下俚人.此學從來亦如此, 纖私盡處大知新.大知元是罕千春, 常識如何無幾人?只爲心中些有物, 不能濯舊以來新.子輿秋殺子淵春, 千古幷推亞聖人.義尙於仁衰世意, 前修見識却知新.華島年年草自春, 先生胡作未歸人?九原如起而今日, 鳴鼓揮墻號令新.傷足傷親憂子春, 師親自是一般人.直將師道傷全體, 盍思息黥圖自新?松柏變成桃李春, 更怒稱渠兩截人.幸有斗南還舊見, 方知忠告奏功新.勤工莫諉過靑春, 報佛亶由成得人.疾惡好賢眞切意, 反施方寸德求新.生來此世百年春, 難得知心一箇人.但願相成終有賴, 期令今後聽聞新. 양춘곡(陽春曲) 춘추 시대 초(楚)나라의 가곡 명칭으로, 남이 따라 부르기 어려운 고상한 시가를 일컫는 말이다. 하리파인곡(下俚巴人曲) 격조가 낮은 촌스러운 노래를 말한다. 《문선(文選)》 〈송옥대초왕문(宋玉對楚王問)〉에, "객(客)이 영중(郢中)에서 맨 처음 부른 것이 하리파인곡이었는데 국중(國中)에서 따라 화답하는 자가 수천 명이었고, 〈양아해로(陽阿薤露)〉를 부르자 화답하는 사람이 수백 명으로 줄었고, 〈양춘백설가(陽春白雪歌〉를 부르자 화답하는 사람이 수십 명으로 줄었다."라고 하였다. 옛것을……맞지 《근사록(近思錄)》 권3 〈치지(致知)〉에 "의리에 의심스러운 것이 있으면 옛 견해를 깨끗이 씻어버려 새로운 생각이 나오게 해야 한다.〔義理有疑, 則濯去舊見, 以來新意.〕"라는 장재(張載)의 말이 보인다. 맹자는……지녀 《근사록(近思錄)》 〈관성현(觀聖賢)〉에 "공자는 원기요, 안자는 봄이 만물을 냄이요, 맹자는 가을의 숙살지기(肅殺之氣)까지 모두 드러낸 것이다.〔仲尼元氣, 顔子春生, 孟子幷秋殺盡見.〕"라는 정호(程顥)의 말이 나온다. 오늘날……새로우리 저자의 스승인 간재 전우가 살아 돌아온다면 자신의 뜻을 어기고 일제의 인가를 받아 문집을 발간한 오진영 일파를 문하에서 쫓아냈을 것이라는 말이다. 《논어》 〈선진(先進)〉에 "계씨가 주공보다도 부자였는데, 공자의 제자 염구가 계씨를 위해 세금을 많이 거두어들여서 재산을 더 늘려주었다. 공자가 말하기를 '나의 제자가 아니니, 제자들아 북을 치며 그를 성토하는 것이 옳다.'〔季氏富於周公, 而求也爲之聚斂而附益之. 子曰: 非吾徒也, 小子鳴鼓而攻之可也.〕"라고 한 것과 한유(韓愈)의 〈승려인 문창대사를 전송하며[送浮屠文暢師序]〉에서 이단을 추구하는 사람에 대해 양웅(揚雄)의 말을 인용하면서 "그런 사람이 내 집 문이나 담장에 있다면 쫓아 버리고 오랑캐 땅에 있다면 나아오게 하겠다.〔在門墻則揮之, 在夷狄則進之.〕"라고 한 표현을 원용한 것이다. 발을……걱정했으니 증자(曾子)의 문인인 악정자춘(樂正子春)이 일찍이 마루에서 내려오다가 발을 다친 뒤 발이 낫고도 수개월 동안 나가지 않고서 여전히 근심한 일을 말한다. 《禮記 祭義》 개과천선(改過遷善) 원문의 '식경(息黥)'은 식경보의(息黥補劓)의 준말로 형벌을 받아 훼손된 몸을 온전하게 회복한다는 뜻인데, 허물을 고쳐 새로워짐을 비유한다. 《장자(莊子)》 〈대종사(大宗師)〉에 "조물주가 내 이마에 가해진 묵형의 흔적을 없애 주고 내 베어진 코를 보완해 주어 완전한 인간의 몸으로 선생의 뒤를 따르게 해 주지 않을 줄 어떻게 알겠는가.〔庸詎知夫造物者之不息我黥而補我劓, 使我乘成以隨先生耶?〕"라고 하였다. 송백(松柏)이……되더니 지조와 의리를 지키던 사람이 영화를 다투는 소인으로 변했다는 말이다. 이백(李白)의 〈영양별원단구지회양(潁陽別元丹邱之淮陽)〉 시에 "소나무와 잣나무는 아무리 춥고 고통스러워도, 복사꽃과 오얏꽃의 봄 좇기를 부끄러워한다네.〔松柏雖寒苦, 羞逐桃李春.〕"라고 하였다. 《李太白詩集 卷2, 卷14》 두남(斗南) 북두성(北斗星) 남쪽이란 뜻으로 천하(天下)를 의미하는데, 당(唐)나라 때 인인기(藺仁基)가 적인걸(狄仁傑)의 어짊을 일컬어 "적공의 어짊은 북두성 남쪽의 제일인자이다.〔狄公之賢, 北斗以南一人而已矣.〕"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舊唐書 卷89 狄仁傑傳》 보불(報佛) 불교에서 말하는 삼신(三身)의 하나인 보신(報身)으로, 과보와 수행의 결과에 의해 얻어진 공덕으로 갖추어진 부처의 몸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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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의 설이 도를 해치는 것을 한탄하다 歎異說害道 제가가 나불대며 어지러이 횡행하면서 喙喙諸家亂縱橫각기 당대의 문단 주도하기를 기대하네 各期一世主文盟인을 배우되 겸애해야 한다고 말하지 말라 學仁莫道當兼愛악을 행하되 형벌에 가깝게 말라76)고 누가 말했나 爲惡誰言勿近刑다만 상도로 돌아가77) 끝내 바름 얻기를 바라노니 但願反經終得正모두가 이치를 정밀하게 가려내지 못했기 때문이네 總緣擇理未能精추현이 논변한 일을 창려가 기록하였으니78) 鄒賢之辨昌黎筆천년토록 높은 명성이 역사책79)에 빛나네 千載芳名耀汗靑 喙喙諸家亂縱橫, 各期一世主文盟.學仁莫道當兼愛, 爲惡誰言勿近刑?但願反經終得正, 總緣擇理未能精.鄒賢之辨昌黎筆, 千載芳名耀汗靑. 악을……말라 선한 행동이나 악한 행동의 어느 한 쪽에도 과도하게 치우치지 않고 중도를 견지함을 말한 것이다. 《장자》 〈양생주(養生主)〉에 "선을 행해도 명성을 가까이하지 않으며 악을 행해도 형벌을 가까이하지 않아야 한다.〔爲善無近名, 爲惡無近刑.〕" 하였다. 상도(常道)로 돌아가 원문의 '반경(反經)'은 떳떳한 도리를 회복한다는 말이다. 《맹자》 〈진심 하(盡心下)〉에 "군자는 상도로 돌아갈 따름이니 일단 상도가 바르게 되면 사특함이 없어질 것이다.〔君子反經而已矣, 經正則斯無邪慝矣.〕"라는 내용이 보인다. 추현(鄒賢)이……기록하였으니 '추현'은 추(鄒) 땅 사람인 맹자(孟子)를 가리키고, 창려(昌黎)는 당나라의 문장가인 한유(韓愈)의 호이다. 한유의 〈상서 맹간에게 보낸 편지[與孟簡尙書書]〉에, "양자운이 말하기를, 옛날에 양주와 묵적이 정도(正道)를 막았는데 맹자께서 변론하여 물리쳐서 환하게 열어 놓았다.〔揚子雲曰:古者楊墨塞路, 孟子辭而闢之廓如也.〕"라고 하였다. 역사책 원문의 '한청(汗靑)'은 옛날에 청죽(靑竹)을 불에 구워서 그 속에 있는 수분이 빠져나오게 해서 쓰기에 편리하고 좀이 슬지 않게 한 것을 말하는데, 보통 사책(史冊)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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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짓달 보름밤에 至月望夜 하늘이 좋은 때 보내 취해도 막지 않고426) 天遣良辰取不禁명승지에 더구나 구름과 숲도 좋구나 名區况復好雲林땅 밑 우레소리에 양기가 막 돌아오고427) 雷聲地底陽初復중천의 달빛에 밤이 이미 깊었구나 月色天中夜已深세상 걱정도 그만 두세 백발만 생기나니 憂世且休生白髮경서를 안고서 단지 단심을 보존해야지 抱經只可保丹心도리어 담박한 맛으로 참된 지취 이루고 還將淡味成眞趣작은 티끌도 자리를 침범치 못하게 하리 未許纖塵席上侵 天遣良辰取不禁, 名區况復好雲林.雷聲地底陽初復, 月色天中夜己深.憂世且休生白髮, 抱經只可保丹心.還將淡味成眞趣, 未許纖塵席上侵. 취해도 막지 않고 원문의 '취불금(取不禁)'은 취해도 금하지 않는 것으로, 맑은 바람과 밝은 달 등 자연의 풍경을 마음껏 취하는 것을 말한다. 소식(蘇軾)의 〈적벽부(赤壁賦)〉에 "오직 강 위의 맑은 바람과 산간의 밝은 달은 귀로 들으면 소리가 되고 눈으로 보면 빛을 이루는데, 이를 취하여도 금하는 사람이 없고, 아무리 써도 없어지지 않으니, 이것이 바로 조물주의 다함이 없는 창고이다.[惟江上之淸風, 與山間之明月, 耳得之而爲聲, 目寓之而成色, 取之無禁, 用之不竭, 是造物者之無盡藏也.]"라고 하였다. 땅 …… 돌아오고 순음(純陰)의 달인 10월을 지나 동지(冬至)가 되면 오음(五陰)의 아래 초효(初爻)에서 일양(一陽)이 처음 생겨나 자라는 지뢰복괘(地雷復卦)를 이룬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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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 십사일 이승재에서의 좋은 모임 小春小望 以承齋雅會 얼마나 많은 선비가 풍상에 시달렸나 幾多韋布弊風霜달 아래 은근하게 초당을 찾았구나 月下殷勤訪草堂어찌 인간을 금수와 같게 만드는가 怎遣人羣同鳥獸한족의 얼굴에 오랑캐 마음 가진 자가 밉네 生憎漢面具胡腸사귐이 오랜 뒤에 깊고 얕음 논할 수 있고 定交久後論深淺도를 봄이 분명할 때 형체와 방소가 없지6) 見道明時無體方그대는 가을 뒤의 동리7)의 국화 보았나 君看東籬秋後菊시들고 말랐어도 남은 향기 품어 어여쁘네 却憐枯槀抱餘香 幾多韋布弊風霜, 月下殷勤訪草堂.怎遣人羣同鳥獸, 生憎漢面具胡腸.定交久後論深淺, 見道明時無體方.君看東籬秋後菊, 却憐枯槀抱餘香. 도를……없지 《주역》 〈계사전〉에 "천지의 조화를 본받아 지나치지 않으며, 만물을 곡진히 이루어 빠뜨리지 않으며, 주야의 도를 겸하여 안다. 그러므로 신(神)은 일정한 방소가 없고 역(易)은 일정한 체(體)가 없는 것이다.[範圍天地之化而不過, 曲成萬物而不遺, 通乎晝夜之道而知. 故神无方而易无體.]"라고 한 것을 인용한 것이다. 동리(東籬) 동쪽 울타리인데, 도연명(陶淵明)의 〈음주(飮酒)〉시에서 유래하여 국화를 심은 곳이나, 은거하는 곳을 이른다. 〈음주(飮酒)〉 다섯 번째 수에 "동쪽 울타리 밑에서 국화를 따니, 아득히 남산이 보이네.[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라는 명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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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사 헐성루94)에서 정호음95)의 시를 생각하며 차운하다 正陽寺歇惺樓 思鄭湖陰詩 次韻 이 헐성루가 아니면 어디로 돌아갈까 微此歇惺誰與歸나그네가 속진 묻은 옷 털기 좋구나 好敎遊子拂塵衣쉬고 깨닫는 중에도 허실이 구분되니 歇惺中也分虛實혜안으로 보면 시비가 분별된다네 慧眼看來辨是非 微此歇惺誰與歸, 好敎遊子拂塵衣.歇惺中也分虛實, 慧眼看來辨是非. 정양사 헐성루 헐성루(歇惺樓)는 정양사 경내의 오른쪽에 있는 작은 누각으로, 금강산 일만 이천 봉을 한꺼번에 구경할 수 있다고 하여 금강산에서 가장 유명한 누각이다. 정호음(鄭湖陰) 호음은 정사룡(鄭士龍, 1491~1570)의 호이다.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운경(雲卿)이다. 영의정 정광필(鄭光弼)의 조카로, 사간ㆍ부제학ㆍ예조 판서ㆍ대제학ㆍ판중추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칠언율시에 능하였으며, 당시 문단에서 그와 신광한(申光漢)을 쌍벽으로 꼽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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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판상의 시에 차운하다 又次板上韻 일만 이천 봉우리 진면목이 萬二峯眞面누대에서 역력히 보이구나 樓頭歷歷看행인이 이곳에 오르지 않으면 行人不登此금강산에 헛되이 온 것이리라 枉到金剛山 萬二峯眞面, 樓頭歷歷看.行人不登此, 枉到金剛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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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회안 서문》 五常會案序 송(宋) 나라 신하 서안국(徐安國)의 집에 일락당(一樂堂)이 있었고, 남헌(南軒) 장 선생(張先生 장식(張栻))이 그 기문(記文)을 지었는데, 이는 대체로 안국의 양친이 기모(期耄)106)에 이르도록 장수하여 모두 생존해 계시고, 안국의 사형제가 기애(耆艾)107)가 되도록 아무런 탈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건대 천하의 즐거움 중에 이보다 좋은 것이 없지만, 이러한 즐거움을 얻은 자는 거의 없다시피 하고 간혹 있었는데, 지금 강씨(姜氏)의 오상계(五常契)가 또한 그것에 딱 맞는 경우라고 이를 만하였다.나는 강 사문(姜斯文) 문욱(文郁)과 평소 친분이 있었기 때문에 을유년(1885) 여름에 내가 일이 있어 금릉(金陵 강진(康津))에 갔다가 지나는 길에 관산(冠山 장흥(長興))의 아름다운 마을로 강 사문을 방문하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백발에 별 탈 없이 풍채가 늠름한 분을 뵈었는데, 이분이 사문의 대인이었고, 의관을 가지런히 한 채 책상을 마주하고 걸상에 나란히 앉아 있는 분들은 사문의 형제 네 사람이었다.아, 만약 선조께서 공덕을 쌓아 당대에 누리지 않은 보답이 없었다면 인간의 좋은 운수가 어찌 유독 이 한 집안에만 모여 있겠는가. 이른바 일락(一樂)108)이 서씨와 다름이 없었는데, 다만 연령이 위로는 기모에 이르지 않았고, 아래로는 기애에 이르지 않았으니, 현재를 기준으로 헤아려 계산하면 비록 조금 손색이 있는 듯하지만, 앞으로 누릴 복은 도리어 더 나을 것이다.내가 떠나려고 할 때 사문이 나에게 이르기를, "우리 형제들이 맏이를 인형(仁馨), 둘째를 예형(禮馨), 셋째를 의형(義馨), 막내를 지형(智馨)이라 명명하여 인의예지(仁義禮智)가 각기 한 몸씩 점유하게 되었으나 '신(信)' 글자의 자리가 비게 되었기 때문에 강신회(講信會)를 만들어 이를 채우고 '오상(五常)'이라 명명하였으니, 그대가 서문을 지어주기 바라네.하니, 내가 말했다. "오행(五行)은 토(土)가 아니면 생성되지 않고, 오상(五常)은 신(信)이 아니면 성립되지 못한다. 지금 사문의 형제가 비록 각기 하나의 덕을 차지하고 있지만, 충신(忠信)과 진실함이 그 본령이 아니겠는가. 아! 여러 부류로 말한다면 부모님이 모두 생존하신 것은 양의(兩儀)이고, 형제가 무고한 것은 사상(四象)이며, 집안을 화목하게 하는 것은 팔괘(八卦)이니, 팔괘가 낳고 쌓여서 효(爻)가 되는 것이 사 백이고, 변하여 괘(卦)가 되는 것이 사 천이며109), 그 작용은 광대하여 만물의 수를 다해도 끝이 없다. 내가 생각건대, 강씨(姜氏) 자손이 매우 많아지고, 복록이 가득 넘쳐나는 것이 반드시 이와 같을 것이다. 나는 부모를 여읜 몸으로 홀로 외롭게 지내기에 일락당의 기문을 읽을 때마다 나도 모르게 여러 번 감탄하였는데, 지금 오상계(五常禊)에 대해서도 또한 그러네." 宋臣徐安國家有一樂堂。南軒張先生爲之記。蓋安國之二親。期耄而俱存。安國之兄弟四人。耆艾而無故也。余謂天下之樂。無以加此。而得之者。絶無而僅有焉。今姜氏之五常契。亦可謂與之的對矣。余與姜斯文文郁有雅。乙酉夏。余有事往金陵。歷訪姜斯文於冠山之芳村。見白首無恙。風儀偉然。是斯文大人也。對床連榻。衣冠濟濟是斯文兄弟四人也。噫如無積累不食之報人間好氣數。豈獨萃此一門耶。所謂一樂者。與徐氏無異。但年齡上不至期耄。下不至耆艾。則目前經算。雖若少遜。而前頭享用。反復勝焉。臨發。斯文謂余曰。吾兄弟命名。伯曰仁馨。仲曰禮馨。叔曰義馨。季曰智馨。仁義禮智。各占一身。而信字位虛。故作講信會而足之。名曰五常。願吾子爲之序焉。余曰。五行非土不生。五常非信不立。今斯文兄弟。雖各據一德。而忠信誠慤。非其本領耶。噫。以衆類言之。父母俱存。是兩儀也。兄弟無故。是四象也。宜爾室家。是八卦也。八卦生積。而爲爻者四百。變而爲卦者四千。其用之廣。至於盡萬物之數而無窮焉。吾謂姜氏子孫之兟兟。福祿之穰穰。必將有如之者矣。義林風樹餘生。隻身煢煢。每讀一樂堂記。不覺三復感歎。今於五常禊。亦然云。 기모(期耄) 80세에서 100세의 나이를 말하는 것으로, 《예기》 〈곡례 상(曲禮上)〉에는 80, 90세를 모라 한다[八十、九十曰耄.]"라고 하였고,  "100세를 기라 하니, 봉양을 받는다.[百年曰期, 頤.]"라고 하였다. 기애(耆艾) 50세에서 60세의 나이를 말하는 것으로, 《예기》 〈곡례 상(曲禮上)〉에 "50을 애라 하니 관복을 입고 정사에 참여할 수 있으며, 60을 기라 하니 사람들을 부릴 수 있다[五十曰艾, 服官政, 六十曰耆, 指使.]"라고 하였다. 일락(一樂) 부모가 다 생존하고 형제가 무고한 즐거움을 말하는 것으로,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군자가 세 가지 즐거움이 있으니, 천하에 왕 노릇하는 것은 여기에 끼지 않는다. 부모가 다 생존하고 형제가 무고한 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요, 위로는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아래로는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요,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시키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君子有三樂, 而王天下不與存焉. 父母俱存, 兄弟無故, 一樂也; 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 二樂也; 得天下英才而敎育之, 三樂也.]"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팔괘가……천이며 팔괘가 중첩되어 8괘✕8괘=64괘가 되고, 하나의 괘마다 6개의 효로 구성되어 64괘✕6효=384효가 되는데, 이를 반올림하면 400효가 되며, 64괘가 다시 중첩되어 64괘✕64괘=4,096괘가 되는데, 이를 반올림하면 4000괘가 되는 것을 말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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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남 김공 진의록》 서문 山南金公振義錄序 대장부의 평소 포부는 똑같지만, 그 사적과 공적은 성공과 실패, 드러남과 감추어짐 등의 차이가 있으니, 평소의 포부가 이미 바르다면 비록 조그만 공효가 없다 하더라도 충분히 숭상할 만한 점이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비록 남들보다 뛰어난 불세출의 공적이 있다 하더라도 취하지 않는 바가 있다.산남(山南) 김공(金公)은 우리 고을의 선배이다. 신장이 9척에 이르고, 근력이 남보다 훨씬 뛰어났으며, 품은 뜻이 강개하고 우뚝하여 천만 명이라도 내가 가서 대적할 수 있다는 기상이 있었다. 그의 학문은 기억하고 암송하는 세속 선비들의 관습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고, 사물의 이치에 해박하고 세상일에 통달하였으며, 산수와 말타기, 활쏘기, 진(陣)을 펴고 수레를 모는 등의 방법에 이르러서도 정통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병인년(1866)에 서양의 추악한 무리들이 변란을 일으켰을 때에, 공이 개연히 스스로 분발(奮發)하여 말하기를, "평소에 배운 것을 여기 말고 어디에 쓰겠는가." 하고 마침내 격문(檄文)을 써서 의병을 일으킬 것을 알렸다. 이에 고을의 자제들 중 풍문을 듣고 모집에 응한 자들이 끊이지 않으며 구름처럼 모여들었고, 활과 창, 갑옷, 양식이 바로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없었다. 훈련을 하고 기강과 군율을 세운 뒤에 출군(出軍)할 날을 잡았으나 적들의 변란이 평정되어 미쳐 공적을 이루지 못하고 그만두었다.아, 당(唐)나라의 장순(張巡)과 허원(許遠)89)은 한 지역을 지키는 관리였고, 우리나라의 건재(健齋)90)와 여러 공들의 경우에는 비록 몸은 초야에 있었지만, 이름은 조정의 반열에 있었다. 그런데 공과 같은 경우에는 한 지역을 지키는 관리도 아니었으며, 조정의 반열에 있는 사람도 아니었고, 단지 산남의 일개 벼슬하지 않은 선비일 뿐이었다. 하지만 정의로운 외침이 한번 나오자 떨쳐 일어나 모집에 응한 자들이 사방에서 이르렀고, 기약한 월일을 알리지 않았음에도 온갖 일을 맡을 사람들이 저절로 모여들었다. 만약 평소 의로운 행실이 진중하여 다른 사람을 감복시킬 수 없었다면 어찌 이와 같을 수 있었겠는가. 이것으로 보건대 비록 공적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명성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의 평소 바른 포부만큼은 단연코 숨길 수 없는 점이 있었다.의로움을 지키는 자는 일에 임하여 반드시 이익을 바라보지 않고, 공변됨을 유지하는 자는 난리에 임하여 반드시 사심을 따르지 않으니, 만약 서양의 추악한 무리들이 조금만 항복을 늦추어 산남의 의로운 깃발이 심도(沁都 강화도(江華島))에 도착했다면 수양(睢陽)의 큰 승리와 진양(晉陽 진주(晉州))의 위대한 절개91)가 다만 공에게 있지 않았을 줄 어찌 알겠는가. 그렇다면 성공과 실패, 드러남과 감추어짐은 때와 만남에 관계된 것이고, 사람을 논하는 수단이 아닐 것이다.내가 고을의 후배로 효상(爻象 형적(形跡))을 목격한 것만도 이미 30년간의 일이고, 당시 고을의 장로들이 지금은 모두 죽었지만, 오직 찬란한 풍도와 의리만큼은 역력하게 사람들에게 남아 있는지라 우러러 감복하는 나머지 삼가 약간의 말을 서술하여 외사씨(外史氏)92)가 취하기를 기다린다. 大丈夫素抱一也。而其事功則有成敗隱顯之不同。素抱旣正。雖靡尺寸之效。有足可尙。不然。雖有絶人不世之功。有所不取。山南金公吾鄕先進也。身長九尺。膂力過人。懷慨磊落。有千萬人吾往之氣。其學不屑屑於俗儒記誦之習。而博於物理通於世故。至於算數騎射布陣行車之法。無不精通。丙寅洋醜之變。公慨然自奮曰。平生所學。捨此焉用。遂草檄文。喩以擧義。於是鄕子弟。聞風應募者。陸續雲集。弓弩戈戟。甲冑芻粮。無不立辦。錬習紀律。啓行有日。而賊變告平。未及有爲而止。嗚呼。唐之張許。守土者也。我朝之健齋諸公。雖身在草野。而名在朝班。至若公非守土非朝班。而只是山南一布衣耳。然而義聲一出。奮募四至。不喩期月。衆務自集。如非平日行義之重。有以素服於人。安能如此。此雖功未就名未著。而其素抱之正。斷然有不可掩者矣。守義者。臨事必不見利。持公者。臨亂必不徇私。若使洋醜少緩授首。而山南義旗。達於沁都。則安知睢陽大捷。晉陽偉節。獨不在於公乎。然則成敗隱顯。時也遇也。非所以論人也。余以鄕里後生。目擊爻象。已是三十年間事。當日鄕老。今皆殞沒。而惟有風義煒燁。歷歷在人。感仰之餘。謹述略干語。以待外史氏取焉。 장순(張巡)과 허원(許遠) 당(唐)나라 현종(玄宗) 때의 관리이다. 안녹산(安祿山)이 반란을 일으켜 일거에 장안(長安)과 낙양(洛陽)을 함락하자, 진원 현령(眞源縣令)인 장순과 수양 태수(睢陽太守)인 허원(許遠)이 함께 수양성(睢陽城)을 굳게 지키며 반란군을 수차례 격파하였으나, 구원병이 오지 않고 양식도 떨어져 마침내 성이 함락되면서 모두 사로잡혔으나 끝까지 적에게 굴복하지 않고 죽었다. 《新唐書 忠義列傳 張巡, 許遠》 건재(健齋) 김천일(金千鎰, 1537~1593)의 호로,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나주에서 의병을 일으켜 경기ㆍ경상ㆍ전라ㆍ충청 4도에서 활약하였다. 진주성에서 성이 함락되자 아들 상건(象乾)과 함께 남강(南江)에 투신 자결하였다. 수양(睢陽)의……절개 수양(睢陽)의 큰 승리는 안녹산(安祿山)의 난 때 장순(張巡)과 허원(許遠)이 소수의 부하들과 함께 수양성(睢陽城)에서 안녹산의 장수 윤자기(尹子奇)가 이끄는 대군을 막아 크게 격파한 일을 말한다. 진양(晉陽 진주(晉州))의 위대한 절개는 임진왜란 때 진주성(晉州城)에서 김천일(金千鎰)과 최경회(崔慶會), 황진(黃進) 등이 의병을 이끌고 왜병에 맞서 항거하다 성이 함락되자 남강(南江)에 투신 자결한 일을 말한다. 외사씨(外史氏) 외방에 거주하면서 조정 이외의 외부에 관계된 사항을 기록하던 사관(史官)을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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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약안》 서문 鄕約案序 선왕(先王)이 천하의 전토(田土)를 구획하자 백성들이 모여살며 생활하였는데, 사는 곳을 각기 구분 짓고 통속(統屬)하는 바를 두었다. 이런 까닭에 5가(家)를 인(隣)이라 하고 인에는 인장(隣長)을 두었으며, 5린을 이(里)라 하고 이에는 이장(里長)을 두었으며, 4리를 족(族)이라 하고 족에는 족장(族長)을 두었으며, 5족을 당(黨)이라 하고 당에는 당정(黨正)을 두어 주(州)ㆍ향(鄕)ㆍ방(邦)ㆍ국(國)에 이르렀다. 이렇게 조리(條理)와 기강(紀綱)이 찬란하게 빛나고 어지럽지 않게 되어 교화가 일어날 수 있었다.아, 삼고(三古) 시대94)의 아름다운 법이 땅을 쓴 듯 사라진 지 오래되었으니, 훗날의 군자들이 오히려 남아 있는 법을 주워 모아 향촌과 마을 사이에서 모방하며 의지할 수 있는 것은 횡거(橫渠)의 정제(井制)95)와 남전(藍田)의 향약(鄕約)96)과 같은 것일 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대대로 여러 임금이 연이어 일어나 더욱 향수(鄕遂)97)의 제도를 중시하고 상서(庠序)98)의 가르침을 밝혔으니, 그 깊이 젖어 들고 배어든 것이 이미 오래되었다.우리 능주(綾州) 고을에 마을[黨]이 여덟 곳인데, 송석(松石) 마을은 그중 하나이다. 강의 상류 쪽에 위치해 있고, 들과 산이 서로 섞여 있어 예로부터 의관을 차려입은 지체 높은 집안과 유림(儒林)에서 명망이 높은 가문이 많아 유풍과 여운이 여전히 남아 있으니, 이것이 어찌 유래한 바가 없겠는가. 다만 세대가 내려오면 기풍이 시들고, 법이 오래되면 실정이 쇠퇴하기 때문에 답습해 오던 것들이 흩어지고 사라져서 이에 이르렀다.내가 변변찮은 사람으로 간혹 이곳에서 부형과 장로의 뒤를 따르며 삼가 들은 것이 있었다. 고금을 돌아봄에 사사로이 감개한 마음이 없을 수 없는데, 닦아 거행하고 고쳐 새롭게 할 것을 도모함에 어찌 분수에 넘친다는 이유로 사양할 수 있겠는가.무릇 가정에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에게 공손한 행실이 있고, 마을에는 어질고 후덕(厚德)한 풍속이 있으며, 골목에는 거문고를 타며 시를 암송하는 소리가 있고, 들판에는 망을 보며 지키는 관리의 도움이 있으며, 마을에는 예의를 지켜 사양하는 풍도가 있다. 어느 마을이든 그렇지 않은 곳이 없어 가까운 곳에서부터 먼 곳으로 미쳐나간다면 나라가 다스려지고 천하가 태평해질 것이다.우리 동향의 여러 군자들은 서로 각기 이에 힘써서 자신에게 있어서는 몸을 수양하고, 집에 있어서는 그 집안을 가지런히 다스리고, 이웃에 있어서는 그 이웃을 교화하고, 마을에 있어서는 그 마을의 풍속을 바르게 하여 《여씨향악(呂氏鄕約)》99)의 규약처럼 덕업을 서로 권면하고, 과실을 서로 바로잡아 주며, 예의 바른 풍속으로 서로 사귀고, 어려움을 당하면 서로 구휼해야 한다. 또한 옛 규약을 참작하여 늘리거나 줄이는 등 알맞게 고쳐서 한 통을 써 놓고 매달 초하루 회합하기로 약속한 날이나  향음(鄕飮)과 향사(鄕射)100)를 행하는 날이 되면 반드시 큰 소리로 읽어 내려가면서 서로 갖추게 하고 깨우치게 해야 한다. 게다가 훌륭한 일과 잘못한 일에 대한 두 개의 장부를 만들어서 권면하고 경계하게 해야 한다. 이것이 어찌 삼고 시대의 남겨진 법이 아니겠으며, 우리나라의 여러 임금께서 선포한 조칙이 아니겠는가. 先王疆理天下。居聚生息。各有區分。而有所統屬。是故五家爲隣。隣有隣長。五隣爲里。里有里長。四里爲族。族有族正。五族爲黨。黨有黨正。以達於州鄕邦國。條理紀綱。燦然不亂。而敎化可興也。嗚呼。三古美法。掃地久矣。後之君子。猶能掇拾遺經而依倣鄕里間者。如橫渠之井制。藍田之鄕約而已。至於我東。列聖繼作。尤重鄕遂之制。明庠序之敎。其所以涵濡薰蒸者。蓋已久矣。惟我綾之鄕。爲黨者八。松石其一也。處於上流。山野相錯。多衣冠舊族儒林名家。而遺風餘韻。猶有存焉。此豈無所自耶。但世降則氣有所蔽。法久則情有所替。故因仍渙解。以至于玆。余以無似。間從父兄長老之後於此。竊有所聞矣。緬古覸今。不能無感慨之私。而謀所以修擧更張者。又安得以僭踰而辭也。夫家有孝悌之行。里有仁厚之俗。巷有絃誦之聲。野有守望之助。黨有禮讓之風。無黨不然。自近及遠。則國治而天下平矣。維我同鄕諸君子。胥各勉焉。在身則修其身。在家則齊其家。在隣則化其隣。在里則正其里。以德業相勸。過失相規。禮俗相交。患難相恤。如呂氏鄕約之規。而且爲增損裁酌。書其一通。至於月朔會約之時。及鄕飮鄕射之日。必爲抗聲讀過。使相備曉。且立善惡二籍。俾有勸戒焉。此豈非三古遺法。而我朝列聖之所宣勑者耶。 삼고(三古) 시대 중국 고대를 세 시기로 나누어 상고(上古), 중고(中古), 하고(下古)라 하는데, 구체적인 시기에 대해서는 복희를 상고, 신농(神農)을 중고, 오제(五帝)를 하고라 하기도 하고, 복희(伏羲)를 상고, 문왕(文王)을 중고, 공자(孔子)를 하고라 하기도 한다. 여기에서는 성인이 정치와 교화를 담담하여 태평성대를 이룬 하ㆍ은ㆍ주 삼대(三代)를 가리키는 듯하다. 횡거(橫渠)의 정제(井制) 횡거(橫渠)는 송나라 때 학자인 장재(張載)의 호이고, 정제(井制)는 장재가 "정전법을 천하에 시행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한 고을에서 시험해 볼 수는 있다."라고 하여 시행하려고 했던 정전제로,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다는 내용이 《맹자집주》 〈등문공 상(滕文公上)〉의 정전제에 대한 주석에 보인다. 남전(藍田)의 향약(鄕約) 송(宋)나라 때 여대충(呂大忠)ㆍ여대방(呂大防)ㆍ여대균(呂大鈞)ㆍ여대림(呂大臨) 4형제가 남전현(藍田縣)에서 고을 사람들과 서로 지키기로 약속한 자치 규범으로, 여씨향악(呂氏鄕約)이라고도 한다. 그 대강은 "덕행과 공업을 서로 권하고, 허물과 그른 일을 서로 경계하며, 예의 바른 풍속으로 서로 사귀고, 근심스럽고 어려울 때 서로 구한다.[德業相勸, 過失相規, 禮俗相交, 患難相恤.]"로 구성 되어 있는데, 이것이 후세 향약의 모범이 되었다. 《宋史 呂大防列傳》 향수(鄕遂) 지방의 고을을 비유하는 말이다. 주(周)나라 때 왕성(王國) 밖 100리 이내를 향(鄕)이라 하고, 100리에서 200리 사이를 수(遂)라 하여 각각 육향(六鄕)과 육수(六遂)로 행적 구역을 나눈 데서 유래하였다. 《周禮 地官司徒》 상서(庠序) 국가의 교육 기관을 비유하는 말로, 하(夏)나라 때에는 교(校)라고 하였고, 은(殷)나라 때에는 서(序)라고 하였고, 주(周)나라 때에는 상(庠)이라고 한 데에서 유래하였다. 《孟子 滕文公上》 여씨향악(呂氏鄕約) 송(宋)나라 때 남전(藍田)에 살던 여대충(呂大忠), 여대방(呂大防), 여대균(呂大鈞), 여대림(呂大臨) 형제가 그 고을 사람들과 서로 지키기로 약속한 자치 규범이다. 그 대강은 "덕업을 서로 권면하고[德業相勸], 과실을 서로 바로잡아 주고[過失相規], 예의 바른 풍속으로 서로 사귀고[禮俗相交], 어려움을 당하면 서로 구휼한다[患難相卹]."라는 등의 네 조목으로 구성되어 있고, 후세 향약의 기준이 되었다. 향음(鄕飮)과 향사(鄕射) 향음주례(鄕飮酒禮)와 향사례(鄕射禮)를 말한다. 조선 세종 때에 이루어진 《오례의(五禮儀)》에 의하면 향음주례는 한성부(漢城府)와 외방 각 고을에서 매년 10월에 날을 가려서 나이가 많고 덕이 있는 사람과 재행(才行)이 뛰어난 사대부나 서인들을 모아 술을 마시게 하면서 충효와 교화 등을 펴는 의례이고, 향사례는 개성부(開城府)와 외방 각 고을에서 매년 3월 3일과 9월 9일에 효제충신(孝悌忠信)하며 예를 좋아하고 행실이 난잡하지 않는 사람을 뽑아 활쏘기와 잔치를 베풀면서 유학의 도덕과 기풍을 배양시키던 의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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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승동동안》 서문 佳勝洞洞案序 선비가 이 세상에 태어나 뜻을 얻는다면 요순(堯舜)시절의 임금과 백성처럼 천하 사람들과 선(善)을 함께하는 것이 진실로 평소의 포부이다. 이와 같이 하지 못하면 산림 속으로 물러나 숨어 지내면서  마을 사람이나 친구들과 함께 향례(鄕禮)와 향약(鄕約)의 절목을 강론하고 실행하여 서로 바로잡고 경계하며, 서로 친근하고 화목하게 지내는 것이 애초에 하나의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장횡거(張橫渠)는 정전(井田)을 그리고110), 주회암(朱晦庵)은 사창(社倉)을 설치하여111) 혹 학자들과 함께하기도 하였고, 혹 시골 마을 사람들과 함께하기도 하였으니, 우리나라의 경우에 이문순공(李文純公) 온계(溫溪)의 향약112)과 이문성공(李文成公) 석담(石潭)의 학규113)가 모두 이러한 것이다.능주의 부춘방(富春坊)114)에 가승동(佳勝洞)이 있는데, 또한 남쪽 지방에서 이름난 마을이었다. 산수가 탁 트이고, 바람과 햇볕이 모여 예로부터 의관을 차려입은 지체 높은 집안과 시례(詩禮)의 가학(家學)이 전승되어온 명망 높은 가문이 옛부터 많이 거주하였으니, 마을의 풍속이 아름답고, 인심이 순박한 데에는 대체로 유래가 있었다. 그러나 법이 오래되면 폐지되고, 일이 오래되면 쇠퇴하게 되니, 이는 예로부터 공통된 근심거리였는데, 하물며 오늘날에도 그렇지 않다고 어찌 보장하겠는가.사문(斯文) 김경원(金景源)과 김권회(金權晦)는 마을에서 학식과 덕행이 뛰어난 선비였는데, 개연히 옛 규례를 회복하는 데에 뜻을 가지고 장로(長老)에게 여쭈어 아뢰고 동료들과 모의하여 동안(洞案)을 다시 수정하였다. 이어서 동약(洞約)을 세우되 시대에 적합한 것을 참고하고 지방의 풍속을 참작함으로써 오랫동안 준행(準行)될 수 있도록 계획하였으니, 매우 훌륭한 일이다.아, 천하의 일 중에 이미 내 힘이 미칠 수 있는 것이 아니면 진실로 할 수 있는 방도가 없지만, 내 힘이 미칠 수 있는 것은 오직 이와 같은 일 몇 가지뿐이다. 더구나 이것을 말미암아 나아간다면 선을 함께하는 바탕이 되지 않을 줄 어찌 알겠는가. 오직 우리들이 노력하느냐, 노력하지 않느냐, 성실하느냐, 성실하지 않느냐 여하에 달려 있을 뿐이다. 나는 늙고 병들어서 온갖 생각이 재처럼 식어 버렸지만, 이 삼대(三代)로부터 남아 전해진 의례(儀禮)가 우리 고을 사이에서 행해짐을 직접 볼 수 있게 되는 것이 실로 구구한 바람이다. 바라건대 여러 군자들은 힘써야 할 것이다. 士生斯世而得其志。則堯舜君民。兼善天下。固其素抱也。不爾則退藏於山林之中。與鄕井知舊。講行鄕禮鄕約之節。互相規警。互相親睦。未始非一副當好事也。張橫渠井田之畫。朱晦庵社倉之設。或與學者共之。或與鄕隣同之。至我東李文純公溫溪之鄕約。李文成公石潭之學規。皆是也。綾之富春坊有佳勝洞。亦南州之名村也。山水開爽。風日會聚。衣冠舊族。詩禮名家。自古多居焉。其村俗之美。人心之醇。蓋有所自來矣。然法久則敝。事久則替。此是自古通患。況在今日而安保其不然乎。斯文金景源金權晦。洞之秀士也。慨然有意於復古之規。稟告長老。謀及儕友。重修洞案。因立洞約。參以時宜。酌以土俗。爲視久準行之計。甚盛擧也。嗚呼。天下事。旣非吾力可及。則固無可爲之道。而吾力可及者。其惟此等事數件而已。況由此而進。安知不爲兼善之本乎。惟在乎吾輩之勉不勉誠不誠如何耳。余老且病。萬念如灰。而使此三代遺儀。得親見其行於吾鄕井之間。實區區之願也。願諸君子勉乎哉。 장횡거(張橫渠)는……그리고 장횡거는 송나라 때 학자인 장재(張載)로, 횡거는 그의 호이다. 《맹자집주》 〈등문공 상(滕文公上)〉의 정전제에 대한 주석에서 장재가 "정전법을 천하에 시행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한 고을에서 시험해 볼 수는 있다."라고 하여 시행하려고 했지만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다는 내용이 보인다. 주회암(朱晦庵)의 사창(社倉) 주회암(朱晦庵)은 남송의 주희(朱熹)로, 회암은 그의 호이다. 사창은 주희가 효종(孝宗) 건도(乾道) 4년(1168)에 건녕부(建寧府) 숭안(崇安)에 흉년이 들었을 때에 재해를 입은 빈민을 구제하기 위하여 제시한 구제책이다. 주희는 본부(本府)에 곡식 600섬을 청하여 백성들의 사정이 급할 때 2할의 이자를 받고 빌려주되 조금 가뭄이 들면 이자의 반을 면제해 주고, 크게 가뭄이 들면 이자를 모두 면제해 줌으로써 백성들이 부자들에게 미곡을 빌려 쓰고 높은 이자를 착취당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하면서 민가에서 보관하기가 불편하므로 사창(社倉)을 세워 미곡의 관리를 전담하게 할 것을 청하였다. 그 결과 1171년 건녕부 숭안현(崇安縣) 개요향(開耀鄕) 오부리(五夫里)에 사창이 세워졌으며, 1181년 8월에 절동 제거(浙東制擧)에 임명된 뒤에 사창법을 실시해야 한다는 의견을 황제에게 아뢰어, 전국에 확대하여 시행하라는 조서(詔書)가 내려졌다. 《朱子大全 卷13 辛丑延和奏箚4》 《朱子年譜 卷2》 《朱子大全 卷77 建寧府崇安縣五夫社倉記》 《宋史 卷35 孝宗本紀3》 이문순공(李文純公) 온계(溫溪)의 향약 퇴계 이황이 1556년(명종11)에 경북 안동 예안(禮安) 지방에서 중국의 《여씨향약(呂氏鄕約)》을 본떠 제정한 〈예안향약(禮安鄕約)〉으로, 문순과 온계는 이황의 시호와 호이다. 이문성공(李文成公) 석담(石潭)의 학규 율곡 이이가 청주 목사(淸州牧使)로 부임하여 제정한 〈서원향약(西原鄕約)〉과 해주에 머물 때 제정한 〈해주향약(海州鄕約)〉을 말하는 것으로, 문성과 온계는 이이의 시호와 호이다. 부춘방(富春坊) 옛 능주의 부춘면을 말한다. 훗날 행정구역 개편으로 인해 능주군이 화순군에 통합되면서 부춘면도 단양면과 통합되어 각각 한 글자씩 취한 춘양면으로 바뀌고 화순군에 예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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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암유고》 서문 愼庵遺稿序 뽕나무나 가래나무를 감히 업신여기지 못하는 것은 부모님의 손자취가 남아 있기 때문이고, 그릇이나 잔을 감히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부모님의 입 기운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아, 손자취와 입 기운도 이처럼 공경하고 사모하는데, 하물며 정신과 마음이 당일의 기술(記述) 사이에 깃들어 있는 것임에랴. 보배롭게 여겨 보호하고, 진귀하게 여겨 간직하고자 생각할 것이니, 그러한 마음이 어찌 다함이 있겠는가.신암(愼庵) 손공(孫公)은 집에 있을 때에는 효성스럽고 우애롭다고 소문이 났고, 관직에 임해서는 자애롭고 은혜롭다고 일컬어졌으며, 심지어 베풀어 행하는 모든 일이 어느 것 하나 사람을 이롭게 하고, 만물에 은택을 입히는 마음에서 나오지 않은 것이 없었으니, 그 글에 나타난 것이 또 어찌 다만 평범한 월로(月露)115)에 비하겠는가.천성이 질박하고 진실한데다 담박하고 조용하여 겉으로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으며, 문사(文辭)가 어눌하고 저술한 것도 적었다. 무슨 일이 있는 경우가 아니면 글을 짓지 않았고, 글을 짓더라도 일찍이 건연(巾衍 책이나 글을 넣어 두는 상자)에 보관하여 후대에 보일 계책으로 삼지 않았다. 이 때문에 전해진 것이 많지 않아서 편질(編帙)과 문류(門類)가 쓸쓸할 정도였다. 그러나 백세토록 정신을 전하여 끝없는 사모의 정을 붙이는 바탕으로 삼는 것을 어찌 편질의 많고 적음으로 차이를 둘 수 있겠는가.공의 맏아들 영렬(永烈)이 종제(從弟) 영모(永謨)로 하여금 모아 편집하게 함으로써 대대로 전해 실추시키지 않을 계책으로 삼고, 이어서 나에게 현안(玄晏 서문)을 부탁하였다. 내가 공에게 외람되게도 두터운 지우(知遇)를 받은 지 오래되었고, 공의 맏아들과는 또 서로 따르며 노니는 교분을 계속 이어오고 있으니, 어찌 감히 사람이 미천하고 문장이 졸렬하다 하여 구구하게나마 한마디 말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桑梓之不敢慢焉。以手迹之所在也。杯圈之不敢用焉。以口澤之所存也。嗚呼。以手之迹口之澤。而敬慕之如此。況精神心術之寓於當日記述之間者。思欲爲之寶護而珍藏者。其心豈有窮己哉。愼庵孫公。居家以孝友聞。莅官以慈惠稱。以至凡百施爲。無一不出於利人澤物之心。則其著於文字者。又豈止爲尋常月露之比也。天性質實澹黙。不喜表襮。訥於文辭。簡於著述。非有甚故。未嘗下筆。下筆又未嘗貯之巾衍。以爲示後計。是以所傳無多。而編帙門類。至爲寂寥。然百世傳神以爲寓慕無窮之地者。豈以編帙多寡而有間哉。遺胤永烈。令其從弟永謨。裒稡而編摩之。以爲傳世不墜計。因有玄晏之託。余於公。猥承辱知之厚者久矣。而於遺胤。又有源源遊從之契。豈敢以人微文拙。而不有區區一言之役也耶。 월로(月露) 음풍농월(吟風弄月)의 소재인 풍화월로(風花月露)의 준말로, 내용은 없으면서 겉만 화려하게 꾸민 시문(詩文)을 비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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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을 보이다 見志 은사256)가 동으로 건너온 지 몇천 년인가 殷師東渡幾千年백색을 숭상하는 유풍이 오늘까지 전해졌네 尙白遺風此日傳더구나 나는 어버이를 여읜 적장자257)로서 矧我孤哀當室子차마 흑색의 옷을 몸에 입을 수 있겠는가 忍將黑服著身邊 殷師東渡幾千年, 尙白遺風此日傳.矧我孤哀當室子, 忍將黑服著身邊. 은사 은(殷)나라 태사(太師)였던 기자(箕子)를 가리킨다. 《사기》 권38 〈송미자세가(宋微子世家)〉에 의하면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기자(箕子)를 조선(朝鮮)에 봉하였다고 한다. 어버이를 여읜 적장자 원문의 '고애(孤哀)'는 부모를 모두 여의어 상중(喪中)에 있는 사람이 자신을 가리키는 말이다. '당실(當室)'은 아버지가 죽은 후 집안 일을 담당한 사람으로, 주로 적자(嫡子)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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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견과 최여중의 방문을 받고 田士狷崔汝重見訪 동남에서 꽃다운 발걸음 때마침 찾아와서 東南芳躅適相求백설 속에 청등 켜니 밤이 더욱 그윽하네 白雪靑燈夜轉幽대지는 지금 문득 상전벽해 되었으니 大地如今飜桑海고사는 어느 곳 산림에서 늙어가는가 高士幾處老林邱뉘 알았으리 졸계가 신묘한 작용으로 귀결되고 誰知拙計歸神用또 광생이 상류를 차지하게 할 줄을 且許狂生占上遊휩쓸려 가는 세상 돌아보니 어디로 가야하나 環顧滔滔安所往시절 슬퍼하니 또 머지 않아 배를 타야 하리365) 傷時亦不遠乘舟 東南芳躅適相求, 白雪靑燈夜轉幽.大地如今飜桑海, 高士幾處老林邱.誰知拙計歸神用, 且許狂生占上遊.環顧滔滔安所往, 傷時亦不遠乘舟. 배를 타야 하리 도(道)가 행해지지 않는 세상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서 살고 싶어하는 생각을 말한다. 공자가 일찍이 천하에 현군(賢君)이 없어 도를 행할 수 없음을 탄식하면서 이르기를 "도가 행해지지 않으니, 뗏목 타고 바다에 떠서 떠나리라.[道不行, 乘桴浮于海.]"라고 한 것을 원용한 것이다. 《論語 公冶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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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군 인수 의 시에 차운하다 次李君【仁洙】 바탕이 어리석다 한스러워 말고 莫恨質蚩蚩큰 일을 하는 데에 뜻을 두게나 志乎大有爲어느 곳에서나 성실로 통하고 誠通幽顯地어느 때나 공경으로 일관해야지 敬貫始終時이치를 궁구해 마음의 거울 열고 窮理開心鏡인륜을 두터히 해 덕의 기반 쌓게 敦倫積德基그대 부지런히 배우는 뜻에 감동해 感君勤學意진중히 새로운 시로 화답한다네 珍重和新詩 莫恨質蚩蚩, 志乎大有爲.誠通幽顯地, 敬貫始終時.窮理開心鏡, 敦倫積德基.感君勤學意, 珍重和新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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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일89)에 천태산에 오르다 기묘년(1939) 上巳日, 上天台山【己卯】 병든 몸으로 맑은 봄에 오른 건 登臨扶病趁春晴세속을 벗어난 동풍이 있어서네 爲有東風不世情원림 몇 곳엔 꽃이 활짝 피었고 幾處園林花亂發산야엔 일시에 풀이 많이 돋았네 一時山野草多生인심은 모두 양장90)처럼 험하고 人心盡是羊腸險부귀는 원래 깃털처럼 가볍다네 富貴元來羽翅輕하늘가의 낙조는 어쩔 수 없는데 落照天涯無柰矣제 경공은 어찌 홀로 눈물 흘렸나91) 齊公何獨淚縱橫 登臨扶病趁春晴, 爲有東風不世情.幾處園林花亂發, 一時山野草多生.人心盡是羊腸險, 富貴元來羽翅輕.落照天涯無柰矣, 齊公何獨淚縱橫? 상사일(上巳日) 음력 3월 첫째 사일(巳日)을 말한다. 예부터 이날에는 흐르는 물에 몸을 씻고 상서롭지 못한 것을 불제(祓除)하는 수계(修禊)의 풍속이 있었다. 진 목제(晉穆帝) 영화(永和) 9년(353) 상사일(上巳日)에 왕희지(王羲之), 사안(謝安), 손작(孫綽) 등 당대의 명사 40여 인이 회계(會稽) 산음(山陰)의 난정에 모여서 계사(禊事)를 행하고, 이어 곡수(曲水)에 술잔을 띄우고 시를 읊으면서 성대한 풍류놀이를 했던 고사가 전한다. 양장(羊腸) 태항산(太行山)에 있는 옛날의 판도(阪道) 이름으로, 세상길의 어려움을 비유하는 말이다. 삼국 시대 조조(曹操)의 〈고한행(苦寒行)〉에 "북쪽으로 태항산을 오르니, 길도 험하여라 어쩌면 이리 높은가? 구절양장 구불구불한 길에, 수레바퀴가 부서지누나.〔北上太行山, 艱哉何巍巍? 羊腸阪詰屈, 車輪爲之摧.〕" 하였다. 하늘가의……흘렸나 해가 지듯 죽음은 필연적이라 슬퍼할 일이 아니라는 말로, 춘추 시대 제 경공(齊景公)이 우산(牛山)에서 놀다가 아름다운 국토를 내려다보면서 얼마 후에 죽을 것을 슬퍼하여 눈물을 흘리며 탄식했던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晏子春秋 內篇 諫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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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북으로 가는 양순집을 전송하는 서문 送梁順集往漢北序 호남(湖南)과 한북(漢北 한양(漢陽)의 북쪽)은 천 리나 떨어진 지역이고, 전쟁의 기운이 가득한 풍진 세파를 도로에서 맞닥뜨리게 되는데도 우리 벗 순집(順集)은 사문(師門)과 종유(從遊)하여 일 년에 한 번씩 다녀오는 것을 너무 멀다는 이유로 꺼리지도 않고, 어려움이 많다는 이유로 그만두지도 않았다. 진실로 도를 지향하는데 근면하고 뜻을 세움이 독실한 사람이 아니라면 어찌 이런 일을 해낼 수 있겠는가.나는 약관(弱冠) 때부터 이미 이러한 행차에 뜻을 두었으나 전후로 30년 동안 끝내 이루지 못했고, 지금 순집이 가는 것을 보면서 또 천리마의 꼬리에 붙은 파리116)가 되지도 못했다. 아, 나는 유독 어떤 사람이기에 미치지 못함이 이처럼 현격하게 차이가 나는 것인가. 비록 그렇긴 하지만, 순집의 이 행차가 만약 벼슬살이를 구하는 데서 나온 것이라면 그의 얻음과 잃음, 통달함과 막힘이 진실로 나와는 관계가 없을 것이고, 만약 유람하는 데서 나온 것이라면 그의 즐거움과 괴로움, 수고로움과 편안함이 또한 나에게 있지 않을 것이다. 이미 벼슬살이를 구한 것도 아니고, 또 유람하는 것도 아니니, 진실한 마음으로 구하는 것이 오직 도의(道義)에 있지 않겠는가.도의(道義)는 하나이니, 간간(侃侃)하게 강직하고 은은(誾誾)하게 화락한 모습으로 봄바람 앞에 앉아 있는 듯하고 눈이 쌓이도록 서서 기다리는 것처럼 하면서117) 천하의 도(道)를 강론하고, 천하의 의(義)를 밝히는 것이 어찌 한 집안이나 한 사람의 사사로운 일이겠는가. 더구나 돌아와 돌이켜보고 나머지 파급될 만한 것들을 아끼지 않는다면 그대가 들은 것이 바로 내가 들은 것이고, 그대가 얻은 것이 또한 내가 얻은 것이 될 것이다.나는 늙은 몸이라 비록 억지로 행장을 꾸릴 수 없지만, 사우(師友)를 인연한 관계로 소문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에 일찍이 그대에게 기대를 걸지 않은 적이 없었다. 다만 생각건대, 천 리 먼 길 사람을 전송함에 예의상 노자가 있어야 하는데, 서생의 집에 장물(長物)118)을 가진 것이 없기에 단지 졸렬한 말 몇 줄로 노자를 대신하고, 또 "누가 물고기를 요리하는가? 작은 가마솥과 큰 가마솥을 씻어 주리라. 누가 장차 서쪽으로 돌아갈까? 좋은 목소리로 위로하리라."119)라는 한 문장을 노래하여 전송할 뿐이다. 湖南漢北。千里之地。干戈風埃道路抵搪。吾友順集。從遊師門。一年一行。不以絶遠而憚焉。不以多難而沮焉。苟非向道之勤。立志之篤烏能辦此也。余自弱冠。已有意此行。而前後三十年。竟未就矣。今見順集之行。又未作附驥之蠅。嗚呼。余獨何人。其所不及若是懸絶哉。雖然。順集此行。若出於干進。則其得失通塞。固無關於我矣。若出於遊觀。則其苦樂勞佚。亦無有於我矣。旣非干進。又非遊觀。而所以血心尋覓。獨不在於道義乎。道義一也。侃侃誾誾。坐春立雪。講天下之道。明天下之義者。豈一家一人之私哉。況歸而顧之。不吝餘波。則子之聞卽我之聞也。子之得。亦我之得也。吾老矣。縱不能强理鞭策。而所以夤緣師友。得聞所聞。未嘗不有望於子也。但念千里送人。禮合有贐。而書生門戶。無有長物。只用蕪詞數行。以替贐儀。又歌誰能烹魚。漑之釜鬵。誰將西歸。懷之好音。一章以送之。 천리마의……파리 선현이나 명사(名士)의 뒤에 붙어 명성을 얻는다는 뜻으로 쓰이는데, 여기에서는 정의림이 양순집을 따라가서 한북에서 사문과 종유하는 것을 비유한다. 《사기(史記)》 권61 〈백이열전(伯夷列傳)〉에 "안연(顔淵)이 비록 독실하게 학문을 닦았지만, 천리마의 꼬리에 붙었기 때문에 그 행실이 더욱 드러나게 되었다." 하였는데, 사마정(司馬貞)의 주(注)에 "파리가 천리마의 꼬리에 붙어서 천리에 이르듯,[蒼蠅附驥尾而致千里] 안회(顔回)도 공자 덕분에 이름이 드러나게 되었다는 뜻이다."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간간(侃侃)하게……하면서 원문의 "侃侃誾誾, 坐春立雪"을 국역한 것으로, "간간은은(侃侃誾誾)"은 《논어》 〈선진(先進)〉에 "민자가 옆에서 모실 때에는 온화하였고, 자로는 굳세었고, 염유와 자공은 강직하니, 공자께서 즐거워하셨다.[閔子侍側, 誾誾如也; 子路, 行行如也; 冉有、子貢, 侃侃如也. 子樂.]"라고 한 구절을 원용한 것이다. "좌춘(坐春)"은 스승의 훈도와 덕화를 뜻하는 것으로, 송나라 때 주광정(朱光庭)이 명도(明道) 정호(程顥)를 여남(汝南) 땅에서 뵙고 돌아와 "광정이 봄바람 속에 한 달 동안 앉아 있었다."라고 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宋元學案 卷14 明道學案》 "입설(立雪)"은 제자의 예를 갖추고 가르침을 받으려는 정성을 뜻하는 것으로, 송나라 양시(楊時)가 처음 정이(程頤)를 찾아갔을 때 마침 정이가 눈을 감고 앉아 있으므로 인기척을 내지 않고 서서 기다렸는데, 정이가 눈을 떴을 때는 문밖에 내린 눈이 한 자가량이나 쌓여 있었다고 한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宋史 卷428 楊時列傳》 장물(長物) 여유 있는 물건이나 좋은 물건을 비유하는 말이다. 진(晉) 나라 왕공(王恭)이 숙부인 왕침(王忱)의 요청을 받고 단 하나밖에 없는 돗자리를 주었는데, 나중에 그 사실을 알고 왕침이 미안하게 생각하자, "숙부께서 나를 잘 이해하지 못해서 그런 것일 뿐입니다. 저는 원래 장물(長物)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한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世說新語 德行》 누가……위로하리라 《시경》 〈비풍(匪風)〉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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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회와 김익부를 전송하는 소서 送鄭景晦金翼夫小序 을사년(1905) 겨울에 정군 경회(鄭君景晦)와 김군 익부(金君翼夫)가 영상(嶺上)으로부터 가천(佳川)의 아픈 나의 집을 방문하여 이틀 밤을 서로 마주하며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들의 해박한 포부와 정밀하고 깊은 조예가 참으로 소년 중에서 뛰어났다. 그들이 떠나려고 할 때 한마디 해줄 것을 청하였다.무릇 그대들은 문명한 교령(嶠嶺 영남) 지방에서 태어나고, 높은 덕을 지닌 애산(艾山)120)의 문하에서 노닐었으니, 학문의 절도(節度)에 대해 반드시 상세하게 들었을 것이고, 덕을 쌓고 공업을 닦는 방법에 대해 반드시 익히 배웠을 것인데, 이것 외에 다른 사람에게 무슨 들을 만한 것이 있겠는가. 스스로 생각건대, 천박하고 용렬한 내가 설령 조금 아는 것이 있어 멀리서 찾아온 뜻에 부응하고자 한들 구구하게 소나 말의 발굽 자리에 고인 물이 어찌 바다를 구경한 눈에 물로 보일 수 있겠는가.아, 온 세상이 기나긴 어둠에 잠기고 온 천하가 서양의 물결로 뒤덮이고 있는 때에 간혹 공맹(孔孟)의 책을 읽고 공맹의 학문을 따르는 사람이 있기도 하지만, 또한 천 갈래 만 갈래로 나뉘고 찢기어 온통 참됨에서 벗어나고 바름을 잃었는데, 연원을 지켜 순박하면서도 잡되지 않은 경우는 오직 존사문(尊師門)121) 뿐일 것이다.선비가 되어 이러한 세상을 살면서 이러한 문하에서 노니는 것은 천 년에 한 번 있을 만한 기이한 만남이라 이를 만하니, 나머지는 말할 것도 못된다. 만약 존사문의 학문이 전해지지 않는다면 한 가닥 바른 학맥이 더이상 붙어 있을 곳이 없을 것이니, 어찌 애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것은 존사문이 말하지 않는 것이겠지만, 그대들이 과연 이것을 알고 힘쓸 수 있다면, 오늘날 석과(碩果)의 씨앗이 되는 것을 잃을 수 있겠는가. 추운 계절에 그대들을 전송하며 아득히 끝없는 슬픔을 이길 수 없어서 삼가 이 글을 써서 노자를 대신한다. 歲乙巳冬。鄭君景晦金君翼夫。自嶺上過佳川病廬。信宿相對。娓娓傾倒。其抱負之該洽。造詣之精深。信是少年翹楚。將行。請以一言之贈。夫君輩生於嶠嶺文明之邦。遊於艾山碩德之門。其學問節度。聞之必詳。進修蹊逕。講之必熟。外此而有何可聞於人者乎。自惟淺劣。設有一知半解。欲以塞遠來之意。而區區蹄涔。何足爲水於觀海之眼乎。嗚呼。大宇長夜四海懷襄。間或有讀孔孟之書。從孔孟之學。而亦且千分萬裂。擧不免離眞失正。若其淵源持守。醇而無雜。其惟尊師門乎。爲士而居此世遊此門者。可謂千載奇遇也。餘不足言。若使尊師門之學而有不傳焉。則一縷正脈。更無可寓。豈不可惜。此則尊師門所不言者也。君輩果能知此而勉焉。不失爲今日之碩果種子耶。歲寒相送。不勝悠悠無窮之感。謹書此而贐焉。 애산(艾山) 정재규(鄭載圭, 1843~1911)의 호이다. 자는 영오(英五)ㆍ후윤(厚允)이고, 호는 노백헌(老柏軒)이며, 본관은 초계(草溪)이다. 경상남도 합천군 쌍백면 묵동에서 살았으며, 일신재(日新齋) 정의림(鄭義林)ㆍ대곡(大谷) 김석구(金錫龜)와 더불어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 문하의 3대 제자로 불리었다. 저서로 《노백헌집》이 있다. 존사문(尊師門) 상대방의 스승에 대한 경칭으로, 애산(艾山) 정재규(鄭載圭)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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