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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설 大雪 남과 북이며 동쪽 할 것 없이 無南無北復無東희디흰 눈 끝없어 온통 한 색이네 皓皓茫茫一色同무슨 일로 순식간에 별세계 되었나 底事片時成別界문득 태극이 처음 나뉘나 의심하네 却疑太極肇分中푸르고 검은 점점 흔적 어디서 찾나 點痕蒼黑何由覓짐승들 한 마리도 다니지 못하네 隻物翔毛亦不通시인의 기이한 완상거리로 삼지 말고 莫作騷人奇玩賞천지 조화의 공을 알아야 하리라 要知天地造化功 無南無北復無東, 皓皓茫茫一色同.底事片時成別界, 却疑太極肇分中.點痕蒼黑何由覓, 隻物翔毛亦不通.莫作騷人奇玩賞, 要知天地造化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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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계인【상린】에게 답함 答尹季仁【相麟】 지난번에 보내주신 편지에 오랫동안 답을 하지 못하였으니 불민함이 많습니다. 봉성(鳳城)에서 돌아온 뒤에 여러 날 동안 정신없이 바빠 잠깐의 틈이나 눈 깜빡할 시절도 없었으니, 그저 스스로 번민할 뿐이었습니다. 심기설(心氣說)에 대해 질문한 것은 마음에 의심스런 점이 있으면 대충 부질없이 넘겨버리지 않음을 볼 수 있었으니, 대단히 축하드릴 만합니다. 대저 김장(金丈)이 말한, '기(氣)는 심(心)에 있다.'는 한 구절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심(心)은 기(氣)로써 말하는 경우가 있고, 이(理)로써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만약 이(理)로써 말한다면 그 본래 그러한 주재(主宰)하는 오묘함이 있으니 진실로 기(氣)를 침범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기(氣)로써 말한다면 다시 어떠한 기(氣)가 기(氣) 안에 있겠습니까? 저는 이(理)가 마음에 갖춰져 있다고는 들었으나, 기(氣)가 심(心)에 있다고는 듣지 못하였습니다. 또한 계인(季仁)의 말은 병통이 있음을 면치 못한 것인데 그는, "심(心)이 주재(主宰)하면 기(氣) 또한 따라 속한다."라고 하였습니다. 무릇 기(氣)란 어떠한 물건이기에 시절에 따라 따르게 되는 것이겠습니까. 떨어지지도 섞이지도 않고 앞서지도 뒤처지지도 않으니, 바로 이(理)와 기(氣)의 경계에 이를 수 있습니다. 계인(季仁)은 심(心)과 기(氣)가 서로 섞인다는 실수를 보완하려고 하였으나, 도리어 심(心)과 기(氣)를 서로 떨어뜨리는 실수에 빠져버렸으니 그 실수는 같은 것입니다. 덕(德)을 커다란 종에 비유하는 것 또한 그와 나란히 놓을 수 있습니다. 만약 큰 종에 비유한다면 큰 종은 바로 심(心)입니다. 아직 두드리지 않았지만 소리가 나게 되어 있으니 이것이 성(性)입니다. 두드리면 소리가 나는데, 이것은 정(情)입니다. 두드리는 것은 외물(外物)에 의해 촉발되는 것입니다. 여운이 길게 이어지는 것은 바로 의(意)입니다. 만약 종을 치는 것을 심(心)이라 여긴다면 소리가 나는 것은 기(氣)라 할 수 있는데, 거의 비슷한 부류가 될 수 없으니 피차 근거할 바가 없습니다. 어떠합니까? 向書久未修答。不敏多矣。自鳳城返後。連日奔忙。無霎隙開睫時節。只庸自悶。所詢心氣說。可見心有所在。不草草浪過。可賀可賀。大抵金丈所謂氣在心中一句。不成說話心有以氣言者。有以理言者。若以理言。則其本然主宰之妙。固已不犯乎氣矣。若以氣言。則更有何氣在乎氣中乎。吾聞理具乎心。未聞氣在乎心者也。且季仁之言。未免有病。其曰心爲主宰。而氣亦隨屬。夫氣是何物。而有隨屬時節耶。不離不雜。不先不後。此理氣之界至也。季仁欲補心氣相雜之失。而反坐心氣相離之失。其失均矣。德哉洪鍾之喩亦左矣。若以洪鍾喩之。洪鍾是心也。未撞聲在。是性也。撞之聲發。是情也。撞之者。是外物觸之也。餘韻延連。是意也。若以撞之者爲心。聲之者爲氣。則殆不成比類。彼此無所據矣。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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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야시집》 서문 除夜詩集序 아, 이 책은 고(故) 봉남 처사(鳳南處士) 홍공(洪公)이 종가(宗家)에서 섣달그믐날 밤에 잠을 자지 않고 다가올 새해를 맞이하며 느낀 감회를 읊고, 그 자제와 조카, 손자들이 이어 화답한 것이다.무릇 섣달그믐날 밤은 묵은해와 새해가 서로 갈마들어 사람의 마음에 슬픔과 기쁨이 쉽게 느껴지는 때인데, 공은 기애(耆艾)150)의 나이로 자신의 집에 편안히 앉아 자손들이 장수를 칭송하는 즐거움을 누려도 안 될 것이 없지만, 반드시 종가(宗家)에서 밤을 지새우며 새해를 맞이하였으니, 이것이 어찌 선조를 사모하는 마음이 다른 날에 비해 배가 되어 마치 선조의 영령이 와 계시는 것처럼 느끼는 마음의 정성을 부치기 위한 것이 아니겠는가.공이 선조를 모셨으니, 자제된 자들이 어찌 부형(父兄)을 모시지 않겠는가. 이 때문에 서로 선창하고 번갈아 화답하는 것이 화기애애하고 질서정연하였다. 옛사람의 이른바 '즐거운 일[樂事]'이나 '정겨운 대화[情話]'151)라는 것은 단지 평범하고 일시적인 사이의 일일 뿐이니, 어찌 여기에 견줄 수 있겠는가.1년이 지나 2년이 되고, 10년이 지나 20년이 되도록 공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오랫동안 이러한 관례를 좇아 따르며 바꾸지 않았으니, 그 가문의 법도와 규범을 이로 미루어 대략 알 수 있다. 홍씨(洪氏)에게 앞으로 훌륭한 후손이 있을 것이니, 삼가 이 서문을 써서 책 앞에 뜻을 보인다. 嗚呼。此故鳳南處士洪公。守歲於宗家。有感而作。而其子姪孫所賡和者也。夫歲除。是新舊遞代之交。而人情悲歡易感之時也。公以耆艾之年。便坐私室。以享子孫稱壽之樂。未爲不可。而必於宗家者。豈非慕先之心。有倍他日。而以寓如存之誠耶。公旣侍先祖。則爲子弟者。獨不侍父兄耶。此所以更唱迭和。而和氣融融。等威秩秩。古人所謂樂事情話。特尋常一時間耳。曷足以況此哉。一年而二年。十年而二十年。至公沒之久而遵循不替。其家模門規。推此可槪。洪氏其將有後乎。謹書此以見志於篇端云爾。 기애(耆艾) 노인을 지칭하는 말로, 60세를 기(耆)라 하고, 50세를 애(艾)라 한다. 《예기》 〈곡례 상(曲禮上)〉에서 "50을 애라 하니 관복을 입고 정사에 참여할 수 있으며, 60을 기라 하니 사람들을 부릴 수 있다[五十曰艾, 服官政, 六十曰耆, 指使.]"라고 하였다. 즐거운……대화 '즐거운 일[樂事]'는 이백(李白)이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에서 "복사꽃과 오얏꽃이 만발한 동산에 모여 천륜의 즐거운 일을 편다.[會桃李之芳園, 序天倫之樂事.]"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인 듯하고, '정겨운 대화[情話]'는 도연명(陶淵明)이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 "친척들과의 정겨운 대화를 즐거워하고, 거문고와 책을 즐기며 근심을 해소한다.[悅親戚之情話, 樂琴書以消憂.]"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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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균【계두】에게 답함 答魏致均【啓斗】 남쪽에서 머물러 있는 구름120)을 바라보니 달려가고픈 마음이 가득 할 때 뜻하지 않게 한 통의 편지를 받았으니, 감사하고 상쾌한 마음을 형용하기 어렵습니다. 편지를 받고서 조부모님과 부모의 건강을 살피며 지내는 상황에 신의 보살핌으로 복이 많은 줄 알게 되었으니, 참으로 멀리서 바라는 마음에 부합합니다. 저는 늙고 병들어 나약해져서 아뢸만한 것이 없습니다. 늘 친구들의 타고난 자질의 아름다움과 그대 고을의 많은 선비의 융성함을 생각할 때마다, 계속해서 교류함으로써 만년을 잘 마무리할 수 있는 다소의 도움거리로 삼지 못함을 한스럽게 여깁니다. 《맹자》 〈등문공 상(滕文公上)〉에서, 공자의 상(喪)에 "자공(子貢)이 홀로 3년을 더 거처했다.【子貢獨居三年】"라고 하는 것은, 아마도 '상복을 더 입었다.【加服】'고 말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생각건대 우러러 사모하는 처지에 차마 갑자기 떠날 수 없었기 때문에 3년을 더 머문 것입니다. 《맹자(孟子)》「고자 하」의 "이이여기지지(訑訑予旣知之)"에서 '여(予)'자에는 '인장왈(人將曰)' 3자가 이미 위의 문장에 있으니, 아마도 다른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의심나고 어려운 것을 서로 묻는 것이, 벗들과 학문을 익히고 닦는 의리이고 나아가 그대가 공부하는 과정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독서할 때는 먼저 대의에 통달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만약 《대학》을 읽는다면, '명덕(明德)'은 어떤 것이고 '신민(新民)'은 어떤 것인가 하는 종류를 통달해야 하고, 그 글자의 뜻이나 문장의 구두와 같은 것은 소소하게 보고 이해해야지, 성급하게 볼 필요가 없습니다. 곧 단정하고 엄숙한 자세로 마음을 보존하여 본성을 길러 어느 때 어느 장소에서도 끊어짐이 없게 하면 독서(讀書)와 궁리(窮理)는 더욱 힘을 얻을 것입니다. 南望停雲。馳懷多時。一角珍緘。獲之不意。感豁之私。有難形喩。因審重省餘經履。神相多祉。實副遠望。義林衰病淟涊。無足奉聞。每念吾友天姿之美。貴鄕多士之盛。恨未得源源。以爲收桑多少之助也。子貢獨居三年。恐非加服之謂。想是瞻慕之地。而不忍遽去故也。訑訑予旣知之。此予字。人將曰三字旣在上文。則恐非別人也。疑難相問。此是朋友講磨之義。而尤可見賢者課程之有在也。然讀書先須務通大義。如讀大學。則如明德是如何。新民是如何之類。若其字義句讀。小小見解不必汲汲爲也。更須端莊存養。隋時隨處。無所間斷。則讀書窮理。尤宜爲力矣。 머물러 있는 구름 친구를 가리키는 중의적인 표현이다. 도연명(陶淵明)의 시 〈정운(停雲)〉 서문에서 "정운은 친구를 그리워하는 시이다.【停雲思親友也.】"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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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앞의 운자로 회포를 적어 가석에게 부칠 때 마침 섣달그믐 밤이어서 疊前韻述懷 寄可石時 適除夜 두어 칸 초가집엔 책상 하나에 책이 있고 數間茅屋一床書먹고 입을 것도 없으나 태연히 앉아 있네 無食無衣坐自如단양에선 보내준 보리 양식132)에 얼마나 의지했나 幾賴丹陽遺麥斛촉군에서 쇠수레에 실어 보냈다 말하지 말라 休言蜀郡載金車예전에 소진의 형수는 전후가 달랐다133) 들었으니 曾聞蘇嫂異前後적공의 빈객이 친소가 다름134)도 괴할 것 없다네 不怪翟賓殊戚疎이 밤에 누가 있어 함께 이야기할거나 此夜有誰堪共語후창135)은 홀로 후창과 함께 살고 있거늘 後滄獨與後滄居 數間茅屋一床書, 無食無衣坐自如.幾賴丹陽遺麥斛? 休言蜀郡載金車.曾聞蘇嫂異前後, 不怪翟賓殊戚疎.此夜有誰堪共語? 後滄獨與後滄居. 단양(丹陽)에선……양식 송(宋)나라 범요부(范堯夫)가 보리 500곡(斛)을 배에 싣고 오다가, 단양(丹陽)에서 친구인 석만경(石曼卿)이 두 달 동안이나 상(喪)을 치르지 못했다는 말을 듣고는, 그 배에 실은 보리를 모두 석만경에게 내준 뒤에 자신은 단기(單騎)로 돌아왔다는 고사를 말한다. 《冷齋夜話 卷10》 소진(蘇秦)의……달랐다 소진은 전국 시대 합종(合從)을 주장하여 육국(六國)의 재상이 되었으나, 한때는 진나라에서 오랫동안 머물다가 그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가죽옷과 황금이 모두 다 떨어져 고향으로 돌아오자 형수와 아내가 그를 냉대하였다. 《史記 卷69 蘇秦列傳》 적공(翟公)의……다름 한(漢)나라 때 적공(翟公)이 처음 정위(廷尉)가 되었을 때는 빈객(賓客)들이 문을 메웠는데, 그가 파면되자 문 밖에 새그물을 칠 정도로 사람들의 발길이 끊겼다. 그러다 뒤에 다시 정위에 임명되자 빈객들이 예전처럼 앞다투어 찾아왔다고 한다. 《史記 卷120 汲鄭列傳》 후창(後滄) 이 문집의 저자인 김택술(金澤述, 1884~1954)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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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밑에 열재 어른이 〈노회〉시 세 편을 부치면서 화답을 요구하기에 차운하여 드리다 3수 歲暮悅丈寄《老懷》詩三篇索和 次韻以呈【三首】 때까치 울음소리129)와 게걸음 같은 글씨에 鵙舌之音蟹步書온 세상은 도도하게 취해서 미친 듯하네 滔滔擧世醉狂如백성 죽이고 나라 삼키려 포탄으로 놀라게 하고 鏖民呑國驚彈礮바다에 숨고 하늘 날며 함정과 전차로 위협하네 潛海飛天嚇艇車이미 문명은 이보다 더할 수 없다고 하는데 且已文明云莫上윤리에 대해선 어찌 온통 소홀한 것인가 其於倫理柰全疎어느 때나 성인이 나와 사람의 도리를 세워 何時出聖扶人道동서에서 만백성이 편안하게 살 수 있으려나 安奠東西萬姓居평생 성인의 글 아닌 건 거들떠보지 않아 不識生平非聖書칠순에도 더욱 돈독하지만 결국 어찌 될꼬 七旬彌篤竟何如책상머리엔 붙어사는 좀 벌레만 볼 뿐 床頭只見親蟫蠹책 속에는 말과 수레를 모을 방법 없다네 卷裏無緣簇馬車천년동안 전수한 것을 실추시킬 수 없어서 千載授傳難棄墜마음을 존양성찰130)하나 허술할까 걱정이네 一心存省恐虛疎난리 땐 군자를 그리워함이 더욱 간절하니 亂時愈切思君子치의131)를 만들어 산촌에 사는 분께 보내려네 願造緇衣送峴居문득 천시를 보니 책력이 다하고 忽見天時盡曆書총총히 가는 세월은 골짜기의 뱀과 같네 光陰遽遽壑蛇如몇 년의 망령된 생각을 세 솥에 늘어놓는데 何年妄想列三鼎지난 자취에 헛된 공은 다섯 수레에 가득찼네 往跡虛功盈五車물을 마셔도 박한 생계를 걱정하지 않았는데 飮水非憂生計薄단약 달이며 되레 방술이 소홀할까 두려웠네 煮丹却怕術方疎수답하여 새로 시 지으며 좋은 일 많았으니 奉酬新什多佳況내 몸은 혼자 쓸쓸히 지낸 것이 아니었네 不是吾身在索居 鵙舌之音蟹步書, 滔滔擧世醉狂如.鏖民呑國驚彈礮, 潛海飛天嚇艇車.且已文明云莫上, 其於倫理柰全疎?何時出聖扶人道, 安奠東西萬姓居?不識生平非聖書, 七旬彌篤竟何如?床頭只見親蟫蠹, 卷裏無緣簇馬車.千載授傳難棄墜, 一心存省恐虛疎.亂時愈切思君子, 願造緇衣送峴居.忽見天時盡曆書, 光陰遽遽壑蛇如.何年妄想列三鼎, 往跡虛功盈五車.飮水非憂生計薄, 煮丹却怕術方疎.奉酬新什多佳況, 不是吾身在索居. 때까치 울음소리 듣기가 아주 나쁜 왜가리 소리를 말한 것으로, 전하여 남만(南蠻) 지방 사람의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를 비유하였다. 맹자가 이르기를 "지금 남만의 왜가리 혀를 놀리는 사람이 주장한 것은 선왕의 도가 아니다.〔今也, 南蠻鴃舌之人, 非先王之道.〕"라고 하였다. 《孟子 滕文公上》 존양성찰(存養省察) 본성을 함양하고 마음에서 일어나는 선악(善惡)의 기미를 살핀다는 뜻이다. 공자는 "잡으면 보존되고 놓으면 없어져 일정한 시간과 방향 없이 움직일 수 있는 것이 마음이다.〔操則存 舍則亡 出入無時 莫知其鄕 惟心之謂與〕"라고 하며 마음을 보존하는 공부를 강조했다. 《孟子 告子上》 또 "숨어 있는 것보다 더 드러나는 것이 없으며 미미한 것보다 더 뚜렷한 것이 없기에 군자는 혼자만 아는 마음을 삼간다.〔莫見乎隱 莫顯乎微 故君子愼其獨也〕" 하였는데, 이는 움직였을 때〔動〕의 성찰 공부를 말한 것이다. 《中庸章句 第1章》 치의(緇衣) 현자(賢者)를 좋아하는 정성을 뜻한다. 《시경》 〈정풍(鄭風)〉의 편명으로, 현자를 좋아하여 검은 옷, 즉 치의를 만들어 주고 음식을 대접한다는 내용을 읊은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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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학회안》 서문 資學會案序 옛적에는 15세에 학교에 들어가서 40세에 이르러 벼슬에 나갔는데,152) 그 사이 25년 동안 일신에 필요한 것들을 모두 학교에 의지하였다. 이 때문에 뜻이 정밀해지고, 학업이 온전하여 성취함이 쉬웠다. 그런데 학교의 행정이 폐지되어 거행되지 않게 되면서 선비들이 안심하고 의지할 곳이 없어져 이리저리 의식(衣食)을 꾀하는 데 급급하여 뜻이 나뉘고, 학업이 빼앗기게 되었으니, 이와 같이 하면서 성취가 있기를 바라고자 한들 또한 어렵지 않겠는가.우리 마을의 정기현(鄭基鉉)과 김권준(金權俊), 김덕희(金德熙) 세 젊은이들이 약간의 재력을 갹출해 합쳐서 계(契)를 만든 지 이미 몇 년째 되어 가는데, 하루는 나에게 찾아와 계의 이름을 지어줄 것을 청하였다. 내가 가만히 살펴보건대, 세 젊은이들은 모두 학문과 문장이 뛰어난 영재들이고, 한창 진보하여 그침이 없는 자들이니, 그 뜻이 반드시 재화를 탐해 이자를 불릴 것을 꾀하고, 또 술과 안주를 마련해서 모여 노니는 즐거움을 위함이 아닐 것이다. 어찌 집안에만 있으면 사세(事勢)와 재력이 혹 미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에 우선 이 계를 만들어서 서적과 먹 등 학업에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고, 원근의 선비들과 종유(從遊)할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가 아니겠는가. 삼대(三代)153) 시대의 선비를 기르던 규범은 이미 볼 수 없지만, 당시 선비들이 스스로를 위해 도모했던 것도 응당 이와 같지 않았겠는가. 그렇다면 자학(資學)이라 이름을 짓는 것도 마땅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학문을 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이보다 큰 것이 있다. 선(善)을 권면하고 인(仁)을 도우며, 충심으로 알려주고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줌이 이것이다. 한갓 저것만 도움이 되는 줄 알고, 이것이 도움이 되는 줄 몰라서야 되겠는가. 이는 큰 것을 버리고 작은 것을 보존하는 것이며, 내면에 소홀하고 외면에 급급해하는 것이니, 이를 더더욱 몰라서는 안 될 것이다. 바라건대, 제군들은 쑥대와 삼대처럼 서로 부축하여 지탱해주고, 옥과 돌처럼 서로 갈고 다듬어 주면서 오래도록 지켜보아 변하지 말고 함께 대도(大道)로 나아가서 같은 무리의 물고기가 용과 돼지154)로 나뉘게 되는 데 이르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다. 古者十五而入學。至四十而出仕。其間二十五年。一身所須。皆資於學。是以志精業全。易於成就。自學校之政。廢而不擧也。爲士者。無所聊賴。營營衣食。志分業奪。如此而欲望其有成。不亦難乎。吾黨有鄭基鉉金權俊金德熙三少年。出若干力。合而作契。已有年矣。而一日向余。請其所以名之者。余竊覸三少年。皆學文英秀。方進而未己者也。其志必不爲貨利牟殖之計。又爲杯盤遊聚之娛。則豈不以家居事力。或有不逮。故姑爲此擧以爲文墨支用之需。遠近遊從之費耶。三代養士之規。旣不可見。則士之所以自爲謀者。亦不應不如是矣。然則名之以資學。不亦宜乎。然學之所資。有大於此者存焉。責善而輔仁。忠告而善道。是已。徒知彼之爲資。而不知此之爲資可乎。是遺其大而存其小。緩於內而急於外。此尤不可以不知也。願諸君扶持之如蓬麻。琢磨之如玉石。視久勿替。偕之大道。毋使同隊之魚。至有龍猪之分焉。 옛날에는……나갔는데 〈대학장구서〉에 "15세가 되면 천자의 원자와 중자부터 공, 경, 대부, 원사의 적자와 백성들 중에 준수한 사람들이 모두 대학에 입학하여 그들에게 이치를 연구하고 마음을 바로잡으며 자신을 수양하고 사람을 다스리는 방법을 가르쳤다.[及其十有五年, 則自天子之元子衆子以至公卿大夫元士之適子與凡民之俊秀, 皆入大學, 而敎之以窮理正心修己治人之道.]"라고 하였고, 《예기(禮記)》 〈내칙(內則)〉에 "40세가 되면 관직에 나아가고, 70세가 되면 관직에서 물러난다.[四十始仕, 七十致仕.]"라고 하였다. 삼대(三代) 중국 고대시대 때 성왕(聖王)으로 일컬어지는 우(禹)ㆍ탕(湯)ㆍ문왕(文王)이 다스렸던 하(夏)ㆍ은(殷)ㆍ주(周)를 가리킨다. 용과 돼지 용은 준수한 사람을, 돼지는 노둔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일컬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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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14 卷之十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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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욕회안》 서문 風浴會案序 "바람 쐬고, 목욕하고, 노래하며 돌아온다."144)라는 것은 인욕(人欲)이 깨끗이 사라지고 천리(天理)가 유행함으로써 마음이 평탄하여 드넓고 생기가 충만하여 활발하게 흘러넘치는 경지이니, 바로 증점(曾點)이 본 고원(高遠)한 곳이요, 이른바 요순(堯舜)의 기상이 느껴진다. 그런데 후세 사람들은 그 자취를 사모하되 그 마음을 잃어버렸고, 그 이름을 좇되 그 실상을 잊어버렸으며, 심지어 산에 오르고 강물을 마주하여 술 마시고 시 읊는 것을 이따금 여기에 견주며 과시하고 찬미하기까지 한다. 이는 자못 인욕이 다 없어지지 않으면 천리가 유행하지 않아 구구한 한때의 즐거움이 애초에 허랑방탕으로 귀결되는 데에서 나오지 않은 것이 없음을 모르는 것일 뿐이다. 남헌(南軒) 장자(張子 장식(張栻))가 말한 "읊으며 돌아온다.[詠歸]"는 말도 도의 본체를 보았다고 이를 수 있다. 맹자도 오히려 행동이 뜻을 받쳐 주지 못한 사람을 광자(狂者)라 하였는데, 하물며 이보다 못한 사람임에랴. 이러한 폐단을 설파한 것이 아니겠는가.정해년(1887)에 나와 고을 친구들이 과감하게 서석산(瑞石山)을 유람하고, 이로 말미암아 영귀회(詠歸會)를 설립했는데, 그 뒤 을사년(1905)에 우리 마을의 젊은이들이 또 서석산에 갔다가 돌아와서 풍속회(風浴會)를 설립했다. 이것이 전후 20년간의 일이니, 어쩌면 이리도 꼭 닮은 것인가.정해년의 유람은 늘 이름만 훔치고 그 실상이 없음을 한탄하였는데, 모르겠지만 제공(諸公)들은 어느 쪽을 취할 것인가? 또 실상이 없는 자취를 좇아 답습할 것인가? 스스로 생각건대, 변변찮은 내가 벗들에게 미칠 정도의 착실한 점이 조금도 없이 도리어 허랑방탕한 풍속을 창도한 것인가?아, 천하의 형통한 사람들은 어렵고 막힌 가운데에서 나오지 않은 적이 없다. 바라건대 제공들은 규범과 준칙 속에서 괴로이 검속하고, 연못과 얼음과 가득찬 물과 옥 위에서 전전긍긍하며 보존하여145) 한 치 한 푼을 축적하고 때와 날로 변화함으로써 위태롭던 것이 안정되고, 서툴던 것이 매우 익숙한 경지에 이르게 된다면, 세속을 초탈한 깨끗한 형상과 호탕하게 성대한 기상이 어느 때든 봄바람이 불어오는 날 기수(沂水)에서 목욕하고, 무우(舞雩)에서 바람을 쐬는 사이에 있지 않은 적이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오늘날 풍욕회를 설립한 것이 앞으로 실상이 없는 데에 이르지 않을 것이고, 전날의 영귀회도 함께 빛날 것이니, 힘쓰고 힘써야 할 것이다. 風浴詠歸。是人欲淨盡天理流行底坦蕩蕩活潑潑也。乃曾點所見高處。所謂堯舜氣象也。後之人。慕其迹而遺其心。循其名而忘其實。至以登山臨水。文酒觴詠。往往比擬而夸美之。殊不知人欲不盡。則天理不行。區區一時之樂。未始不出乎放浪曠蕩之歸而已也。南軒張子所謂詠歸之語。亦可謂見道體矣。孟子猶以行不掩爲狂。而況下於此乎者。其非說破此敝耶。歲丁亥。余與鄕里知舊。果有瑞石之遊。因有詠歸之會。後乙巳。吾黨年少。又往瑞石。歸而設風浴之會。此是前後二十年間事。而何酷似乃爾也。丁亥之遊。常恨夫竊其名而無其實。未知諸公奚取焉。而又且循襲其無實之迹耶。自惟無狀。未有多少着實的及於朋友。而反以放浪曠蕩之風倡之耶。嗚呼。天下之亨。未有不自艱難窒塞中出來。願諸公苦苦檢束於規矩繩尺之中。兢兢持存於淵氷盈玉之上。分累寸積。時移日化。至於杌隉者妥帖。生澁者純熟。則其脫然灑落之象。浩然盛大之氣。將無時而不在於春風沂雩之間矣。然則今日風浴之設。將不至無實。而前日之詠歸。亦與有光焉。勉之勉之。 바람……돌아온다 《논어》 〈선진(先進)〉에 공자가 증점(曾點)에게 장래 포부를 물어보자 "늦봄에 봄옷이 이미 이루어지면 관(冠)을 쓴 어른 5, 6명 및 동자 6, 7명과 함께 기수(沂水)에서 목욕하고, 무우(舞雩)에서 바람 쐬고, 노래하면서 돌아오겠습니다.[莫春者, 春服旣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라고 대답한 말에서 유래한 말이다. 연못과……보존하여 깊은 못에 임하듯, 살얼음을 밟듯, 물 가득 찬 그릇을 받들 듯, 옥을 잡듯이 조심하여 잠시라도 이 같은 마음을 지녀 자신을 보존하라는 의미이다. 《시경》 〈소민(小旻)〉에 "전전하며 긍긍하여 깊은 못에 임한 듯이 하며 얇은 얼음을 밟는 듯이 한다.[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라고 하였고, 《예기(禮記)》 〈제의(祭義)〉에 "효자는 옥을 잡은 듯이 하고, 물이 가득 찬 그릇을 받들듯이 하여, 조심조심 공경하여 마치 감당하지 못하는 듯이 하고, 장차 잃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듯이 해야 한다.[孝子如執玉, 如奉盈, 洞洞屬屬然, 如弗勝, 如將失之.]"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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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암사우간독》 서문 希庵師友簡牘序 나의 벗 양군 여정(梁君汝正)이 사우(師友)와 평소 주고받았던 서찰을 편집해서 '사우간독(師友簡牘)이라 이름을 짓고, 나에게 편지를 보내 말하기를, "외로이 떨어진 곳에서 홀로 공부하는 내가 의지하는 것은 오직 주고받은 서찰에서 바로잡아 경계해준 말뿐이고, 그 말을 또 아침저녁으로 보며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책으로 엮어서 열람하고 고찰하는 데에 편리하게 하였으니, 바라건대 우리 그대가 서문을 써 주게나."하였다.아, 내가 젊었을 때에는 자못 스승을 섬기며 벗들을 따라다녔는데, 어느덧 태산은 기울어 무너지고,146) 벗들은 뿔뿔이 흩어졌으며, 나도 또한 세상의 변고에 곤란을 겪으며 첩첩산중의 궁벽한 곳으로 물러나 칩거하게 되었다. 지나온 삶을 돌이켜 생각하면 까마득하게 선천(先天)의 그림자처럼 무(無)의 속으로 흩어져 사라졌지만, 때때로 옛 종이 뭉치 속에서 간혹 당시에 주고받았던 편지를 발견하고 시험 삼아 읽어보면 그 십 년 세월의 면모와 천 리 머나먼 길의 종적이 모두 뚜렷하게 떠오르며 마치 같은 방에서 자리를 함께하는 듯하였다. 또한 서로 기약하며 힘써 노력했던 뜻이 일찍이 이와 같았는데, 스스로 오늘날 성취한 바를 돌아보면 나도 모르게 모골이 송연해지며 심장과 간담이 땅에 떨어지는 것 같아 매번 차례대로 편집하여 경계하고 반성하는 자료로 삼고자 했지만, 아득히 세월만 흘려보내며 이루지 못한 지도 10여 년이 되어 간다.지금 보건대 여정이 뜻을 세움은 나보다 늦었으나 성취는 나보다 앞섰으니, 태만한 사람과 부지런한 사람의 차이가 이처럼 현격한 것인가? 전수받아 익히는 일에 태만하지 않고 경계하여 바로잡아준 것을 잊지 않았으니, 또한 그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다. 만약 이 간독을 스스로 문집을 만들어서 남들에게 알려지는 데에 급급해한 것이라고 한다면, 이는 그의 마음이 아닐 것이다. 여정은 나이가 젊고 기력이 왕성하여 한창 나아가기만 하고 그치지 않으니, 어찌 이 간독을 얻은 것에 스스로 만족하여 대뜸 너무 이른 계책으로 삼겠는가. 행위는 같되 마음은 다름을 또한 여기에서 변별해야 한다. 余友梁君汝正。編其師友平日所與往復之書。名以師友簡牘走書於余曰獨學孤居所賴惟是往復規警之語。而其語又不可不朝夕觀省。故編爲卷帙。以便考閱。願吾子爲之序也。嗚呼。余於小少。頗事從逐。旣而泰山傾頹。朋知零散。余亦困於世故。退蟄於窮山萬疊之中。回念過境。茫然若先天影子。銷散於有無之中。而時於舊紙堆。或値當日往復。試以讀之。其十年面貌。千里蹤跡。皆渙然若同堂合席。且相期勉勉之意。曾已如此。而自顧今日所就。不覺骨寒毛聳。而心膽墮地。每欲次弟編輯。以爲警省之資。而悠悠未就者。十有餘年。今見汝正志在我後。而成在我先。人之勤慢不相及。若是其懸耶。其傳習之不怠。規戒之不忘。亦可以見其一端矣。若以此謂自作文集。急知於人。則非其心也。汝正年富力强。方進而不已。豈得此自足。遽爲太早計者耶。同行異情。亦當於此辨之。 태산은……무너지고 스승의 죽음을 비유하는 말로, 공자가 "태산이 무너지겠구나. 대들보가 쓰러지겠구나. 철인이 시들겠구나.[泰山其頹乎! 梁木其壞乎! 哲人其萎乎!]"라고 하였는데, 그로부터 병이 나 7일 만에 세상을 떠난 데서 유래하였다. 《禮記 檀弓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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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실【정현】에게 답함 答朴元實【鼎鉉】 올해가 되기 전에 이미 심부름꾼을 통해 편지를 받았는데, 새해 초에 또 그대의 아우를 보내 이처럼 위문하시니, 그대의 정성스런 마음을 알겠으니 감사한 마음 헤아릴 수 없습니다. 편지를 받고 삼가 할머님과 어머님께서 건강하고 평안하며, 네 형제는 명성이 뛰어난 줄 삼가 알겠으니, 새해의 좋은 소식에 기뻐서 축하하는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오직 바라건대, 노력하고 더욱 힘써 하늘이 나에게 매우 후하게 베풀어준 뜻에 보답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저는 눈앞의 모든 일을 근근이 헤쳐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말년에 접어들고 있는데도 구구한 내가 일생을 마칠만한 계책으로는 터럭만큼도 마음을 둘 곳이 없으니 매양 생각할 때마다 혀만 찰뿐입니다. 그러나 그대들은 이 상황을 헤아리지 못하고 자주 방문해서 마치 더불어 말할 것이 있는 듯이 하니, 내가 비록 감히 굳건하게 사양하지 못했으나, 그대들에게는 어찌 헛되이 다리 힘을 소비하고 수고로우나 공효가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멍하니 자책하며 어떻게 사례할지 모르겠습니다. 주자(朱子)는 "천하의 일은 평소 한가하게 지내면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고, 또 "이 한 몸은 하늘이 낳아주고 땅이 길러주어서 아주 많은 도리를 부담하고 있으니, 이 도리를 다할 수 있어야 개개의 사람이 될 수 있고 하늘을 떠받치고 땅을 밟을 수 있어서 이 삶을 저버리지 않는다. 만약 이 도리를 다할 수 없으면, 단지 부질없이 살고 부질없이 죽으며 부질없이 형체를 갖추고 부질없이 세상 사람의 밥을 먹는 것이며, 도리를 보고 알기를 모두 많은 하찮은 물건으로 여기고 전혀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니 무엇을 하겠는가?"라고 하였으며, 또 "주경(主敬)이란 것은 존심(存心)의 핵심이고 치지(致知)라는 것은 진학(進學)의 일이니, 이 두 가지를 서로 드러내어 밝히면 아는 것이 날로 더욱 분명해지고, 지키는 것이 더욱 견고해져, 예전에 익숙해진 잘못이 깨닫지 못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날로 고쳐지고 달로 변화될 것이다."라고 하는 등의 말이 있는데, 이 말을 이전에 읽어본 적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의 공허함은 한 마디 말로써 도울 수 없기 때문에 주자의 학설 두세 조목을 신중하게 외워서 알려주니, 부디 마음에 새겨서 반복해 읽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歲內旣專伻矣。歲初又送令弟。若是致問。仰認勤意。感佩沒量。謹審雙幃康寧。四棣芳茁。新年好消息。何等欣賀也。惟願努力加勉。以答天翁餉我至厚之意。如何。義林眼前凡百。姑且捱過。而惟是年力垂暮。區區所以爲究竟之計者。無絲毫可意處。每念咄咄而已。賢輩不諒此狀。種種垂訪。有若可與語者在。我雖不敢牢辭。在賢輩。豈不是枉費脚力。勞而無功乎。撫然自咎。不知爲謝也。朱子曰。天下事。非燕閒暇豫之可得。又曰。此身是天造地設底。擔負許多道理。盡得這道理。方成箇人。方可拄天踏地。方不負此生。若不盡得此理。只是空生空死。空具形體。空喫了世間人飯。見得道理透。許多閒物事。都沒要緊。要做甚麽。又曰。主敬者。存心之要。致知者。進學之功。二者交相發焉。則知日益明。守日益固。而舊習之非。自將日改月化於冥冥之中矣云云。未知曾見此語否胸中空疎。無一言可以相助。故謹誦朱子說二三條以告之。幸留意而反復焉。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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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자선【희원】에게 답함 答朴子善【熙元】 천태(天台)가 어떤 벽지인데, 금과 옥 같은 형제가 영광스럽게도 나란히 말을 달려서 왕림해 주셔서, 매우 고마워서 그 풍모를 잊을 수 없게 했습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았는데, 백아(白雅)가 찾아와서 그대의 편지를 소매 속에서 꺼내주었습니다. 편지를 받고서, 부모님을 모시며 기뻐하고, 형제간에 화목해서, 평화로운 기운이 상서로움을 불어와 온갖 복이 넘쳐나는 것을 알았으니, 고개를 들어 우러러보며 축하하는 마음 그지없습니다. 여력이 있을 때 복습하고 정리함에 날마다 일정한 과정을 두었습니까? 보내온 편지에서 "복잡한 세상의 일에 속박되었다."라고 말한 것은 진실로 사람들 마다 공통적으로 근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자기 한 몸에도 많은 일이 있는데, 하물며 위로는 부모님을 모시고 아래로는 자제들을 돌봄에 있어서이겠습니까? 게다가 가문이 매우 깊고 넓으니, 일상에서 마땅히 해야 할 업무가 어찌 보통의 사람과 비교하겠습니까? 그러나 만약 사람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집안의 일을 끊어버리고 우뚝하게 혼자 앉아서 공부하기만을 바란다면 이것이 어찌 학문이겠습니까? 주자(朱子)의 「답진부중서(答陳膚仲書)」에서 "집안일이 번잡해서 학문에 방해가 된다는 것으로 근심하고 있다는 편지를 받았는데, 이것은 참으로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공부하는 현실일 뿐입니다. 다만 모든 일에 도리를 살펴서 이해하고 쉽게 지나치지 않게 해야 하고, 또 그 속에서 평소의 병폐를 살펴보고 힘껏 제거해야 합니다. 학문을 하는 방도에서 무엇을 여기에 더하겠습니까. 만약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이 일어나고 물리치고 싶다는 생각이 생겨나면, 일과 이치가 도리어 두 개로 나누어져 버리니, 독서해도 역시 쓸 데가 없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내가 평소에 매우 사랑하면서도 체득하지 못하는 것이지만, 지금 그대를 위해 한번 외워봅니다. 부디 여러 번 반복해서 읽고 일상에서 경계할 말로 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天台是何等僻隅。而金昆玉季。賁然聯鞭。軫賜儼顧感感。風義令人不忘。料外白雅見過。袖致光函。因審侍省怡愉。塤箎湛樂。和氣致祥。百福津津。翹首瞻賀。不任傾倒。餘力溫理。日有課程否。來喩所謂纏縛於世故叢中云者。固人人通患。然人有一箇身。便有許多事。況上省下率。門戶深闊。日用應務。豈尋常人比哉。若欲廢人事絶家務。而兀然獨坐者。此何學耶。朱子答陳膚仲書有曰。承以家務叢委。妨於學問爲憂。此固無可奈何。然只此便是用功實地。但每事看得道理。不令容易放過。更於其間。看得平日病痛。痛加剪除。爲學之道。何以加此。若起脫去之心。生排遣之念。則事與理。却成兩截。讀書亦無用處矣。此語。愚所尋常酷愛而不得者。今爲左右一誦之。幸加三復。以爲平日之箴。如何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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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29 卷之二十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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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유재 시를 차운하다 재의 주인은 김일재이다. 次承裕齋韻【齋主金日載】 건축 전에도 승유의 마음359) 간직하더니 承裕心存建築前재를 지은 뒤에도 정성 쏟는 걸 다시 보네 齋成更見用誠專선군의 뜻을 이어 사람들이 효를 허여하고 繼先君志人歸孝한 가문의 공을 메어 그대 홀로 애썼구나360) 擔一門功子獨賢봉유도는 다정하게 재의 문에 들어오고 入戶多情蓬有島석류천은 쉬지 않고 뜰을 둘러 흐르네 繞庭不息石流川이 큰 은혜 생각하여 폐하지 않고 전하리니 念玆嘉錫傳無替청컨대 집안에 옥수361)가 이어지는 걸 보시라 請看家中玉樹連 承裕心存建築前, 齋成更見用誠專.繼先君志人歸孝, 擔一門功子獨賢.入戶多情蓬有島, 繞庭不息石流川.念玆嘉錫傳無替, 請看家中玉樹連. 승유의 마음[承裕] '승선유후(承先裕後)'를 말하는 것으로, 선조를 계승하고 후손에게 넉넉한 업적을 남겨주는 것을 말한다. 홀로 애썼구나 원문의 '독현(獨賢)'은 혼자서만 고생한다는 뜻으로, 흔히 훌륭한 재주를 지닌 자가 홀로 어려운 일을 담당하여 고생하는 것을 이른다. 《시경》 〈북산(北山)〉에 "대부의 일 처리 공평하지 못한지라 나만 홀로 어질다하여 일을 하게 하네.[大夫不均, 我從事獨賢]"라고 하였다. 옥수(玉樹) 훌륭한 남의 자제에 대한 경칭이다. 진(晉)나라 사현(謝玄)이 숙부인 사안(謝安)에게 말하기를 "비유하자면 지란과 옥수가 섬돌 앞 뜰에 피어나 향기를 내뿜는 것과 같게 하겠다.[譬如芝蘭玉樹, 欲使其生於階庭耳.]"라고 자신의 소망을 밝힌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晉書 卷79 謝安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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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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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5일에 무인년(1938) 五月五日【戊寅】 때마침 오월 오일이라 時當五月五부들 푸르고 앵두가 처음 익었네 蒲綠櫻初熟사람들은 모두 명절을 기뻐하는데 人皆喜佳節누굴 위해 나는 미간을 찌푸리나 爲誰余頞蹙예전에 삼려대부가 충간했다가 在昔三閭忠참소 때문에 추방을 당했는데 以讒見斥逐조국의 멸망을 통한으로 여겨 痛恨宗國亡이날 물고기 뱃속에 장사했네1) 此日葬魚腹〈이소〉와 〈구가〉2)에서는 離騷與九歌글자마다 한 움큼 눈물 뿌렸는데 字字淚盈掬굴원을 경모하는 회옹을 만나 敬慕遇晦翁주해를 지어 읽게 되었네3) 至作註解讀아, 나는 간재 선생의 문인으로 嗟余于艮門삼려대부와 몹시 닮았으니 三閭相似酷스승을 무함하고 원고를 고친 것은 誣師與改稿그 죄가 형벌을 받아 마땅하네 厥罪宜法伏기강이 하나같이 무너졌으나 綱紀一以墮누가 감히 조금이라도 범하랴 誰敢毫髮觸내가 제 힘을 헤아리지 못한 채 余不自量力분변하고 토론하여 두 눈 밝혔으나 辨討明雙目죄는 도리어 공훈이 되었고 罪反爲勳勞바름은 결국 사특함으로 돌아갔네 正乃歸邪曲비유하자면 초나라 조정에서 譬彼鄢郢朝충신과 간신의 상하가 바뀐 것 같고 忠佞到首足게다가 거기에 호응하는 자들은 亦復同聲者권세를 좇아 기회주의자가 되었네 趨勢爲蝙蝠천여 명이나 되는 수많은 무리에서 林林千餘徒혈혈단신 나 혼자뿐이었으니 孑孑惟余獨그동안에 당한 일신의 재앙은 其間一身禍말하자니 오싹 소름이 생기네 言之寒生粟천추에 스승의 도가 없어졌으니 千秋師道亡생각하면 마음이 쓰디쓰네 念之心荼毒옛사람이 먼저 터득하지 않았던가 古人先獲否한번 죽더라도 원하는 걸 하겠다고 一死寧所欲다만 두려운 건 중도에 지나치면 但恐過中處훗날 의론이 심해진다는 점이네 不無後論篤삶과 죽음은 규모가 다르지만 生死殊規模맑음과 깨어있음은 궤폭이 같으니 淸醒一軌輻명백히 분변한 수많은 서적이 多少明辨書깊은 산골에 보관되어 있네 藏在深山谷유유하게 백세가 지나고 나면 悠悠來百世나를 알아줄 사람은 누구일까 知我復有孰시절을 느끼고 고금을 슬퍼하며 感時傷今古시 짓고서 공연히 세 번 반복하네 詩成謾三復 時當五月五, 蒲綠櫻初熟.人皆喜佳節, 爲誰余頞蹙?在昔三閭忠, 以讒見斥逐.痛恨宗國亡, 此日葬魚腹.《離騷》與《九歌》, 字字淚盈掬.敬慕遇晦翁, 至作註解讀.嗟余于艮門, 三閭相似酷.誣師與改稿, 厥罪宜法伏.綱紀一以墮, 誰敢毫髮觸?余不自量力, 辨討明雙目.罪反爲勳勞, 正乃歸邪曲.譬彼鄢郢朝, 忠佞到首足.亦復同聲者, 趨勢爲蝙蝠.林林千餘徒, 孑孑惟余獨.其間一身禍, 言之寒生粟.千秋師道亡, 念之心荼毒.古人先獲否? 一死寧所欲.但恐過中處, 不無後論篤.生死殊規模, 淸醒一軌輻.多少明辨書, 藏在深山谷.悠悠來百世, 知我復有孰?感時傷今古, 詩成謾三復. 삼려대부(三閭大夫)가……장사(葬事)했네 전국 시대 초(楚)나라 충신 굴원(屈原, 기원전 343~기원전 277)이 회왕(懷王)의 신임을 받아 삼려대부(三閭大夫)가 되었으나 뒤에 상관대부(上官大夫)의 참언에 의해 면직되었다가 다시 간신의 참소로 호남성의 상수(湘水)로 추방당했다. 그는 머리를 풀어헤치고 10년간 방랑 생활을 하였는데, 진(秦)나라에 의해 조국인 초나라가 멸망당하자 울분을 참지 못해 멱라수(汨羅水)에 투신하여 별세하였다. 이소(離騷)와 구가(九歌) 춘추(春秋) 시대 초(楚)나라의 충신 굴원(屈原)이 지은 《초사(楚辭)》의 편명(篇名)이다. 모두 우국충정(憂國衷情)의 뜻을 담고 있다. 굴원(屈原)을……되었네 주희(朱熹)가 《초사(楚辭)》를 주해하여 《초사집주(楚辭集註)》를 엮은 것을 말한다. 그는 〈초사집주서(楚辭集註序)〉에서 "굴원의 사람됨은 그 뜻과 행동이 비록 중용(中庸)을 벗어나 모범을 삼을 수는 없으나 모두가 임금에게 충성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정성된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라고 하여, 그 충성을 칭송하였다. '회옹(晦翁)'은 주희의 만년의 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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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절의 〈수미음〉에 차운하다 11수 次康節《首尾吟》【十一首】 강절의 시에 화락한 흥취가 많고 내 시에 우려하고 탄식하는 뜻이 많은 것은 참으로 소양(所養)의 깊이와 자득(自得)의 유무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절이 태평하여 아무 일도 없는 날을 만나고 내가 나라가 망하고 도가 없어진 때를 당한 것도 때가 그러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후세에 논하는 자가 혹 성정(性情)의 바른 데로 똑같이 돌아간 것으로 여길 수 있을 것이다. 무인년(1938) 5월 모일에 짓다.후창은 시 읊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後滄非是愛吟詩시는 바로 후창이 세상을 걱정한 때라네 詩是後滄憂世時운수가 다시 오지 않아 이제 끝이 났으니 運不復來今已矣짐승과 함께 살기 어려우니 나는 어디로 갈까 獸難同處我何之비록 해는 여전히 길이 비춰준다고 하지만 縱云白日猶長照한스럽게도 광풍이 끊임없이 불어오네 可恨狂風不盡吹한 선비가 누구와 함께 하늘에 간쟁할까 一士爭天誰與此후창은 시 읊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네 後滄非是愛吟詩후창은 시 읊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後滄非是愛吟詩시는 바로 후창이 도를 걱정한 때라네 詩是後滄憂道時명분 이치는 분분히 언쟁으로 돌아가고 名理紛紛歸口舌선비4)들은 하나하나 기만에 익숙하네 縫章箇箇慣誣欺어찌 학계가 이렇게 어지러울 줄 짐작했으랴 豈料學界斯乖亂순박한 풍속으로 되돌릴 수 있는 길이 없네 無路淳風可反移오늘날 참된 선비가 나오길 간절히 바라니 切願眞儒生此日후창은 시 읊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네 後滄非是愛吟詩후창은 시 읊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後滄非是愛吟詩시는 바로 후창이 학문을 걱정한 때라네 詩是後滄憂學時타고난 자질은 원래 중간 이하인데도 賦質元來中下也공부할 때에 백 배 천 배를 하지 않네 用功又不百千之마음 터놓고 잡초 제거할 계책이 없고 開胸無計去茅塞욕심에 빠져 항상 물가에 임하듯 위태롭네 陷慾常危臨水湄노년에 힘써 두려워할5) 것은 이것뿐이니 乾惕餘年惟此已후창은 시 읊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네 後滄非是愛吟詩후창은 시 읊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後滄非是愛吟詩시는 바로 후창이 분수에 편안한 때라네 詩是後滄安分時세도의 흥망은 하늘의 명에 달려있으나 世道廢興天有命심신의 치란은 스스로 기미를 보아야 하네 身心治亂自觀機구렁텅이6)가 앞에 있음을 잊지 않았거니 不忘溝壑前頭在참된 미치광이 남겨둔 걸 훗날에 알리라 留與眞狂異日知사물에 각기 부여한 걸 내 어찌 참견하랴 物各付之我何預후창은 시 읊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네 後滄非是愛吟詩후창은 시 읊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後滄非是愛吟詩시는 바로 후창이 가소로워한 때라네 詩是後滄堪笑時염자는 계강자 곳간 늘려주는 걸 당연시 했고7) 冉子宜其增季廩소진은 망녕되이 아내가 베틀에서 내려오길 바랐네8) 蘇秦妄欲妻下機사람은 권세와 이익 좇아 혼백이 혼미해지고 人趨勢利迷魂魄귀신은 금전을 따라 지휘를 들어주네 鬼逐金錢聽指揮지금이나 예나 유유하게 이와 같으니 今古悠悠如此已후창은 시 읊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네 後滄非是愛吟詩후창은 시 읊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後滄非是愛吟詩시는 바로 후창이 고립되었을 때라네 詩是後滄孤立時벗들의 평소 지식은 이미 그만두었고 已息交朋平日識심사를 하늘이 알아주기만 바라네 但求心事上天知《역상》9)의 두려울 것 없음을 살펴보려고 欲觀易象無攸懼먼저 《대학》의 자신 속이지 않음에 힘쓰네 先務曾經毋自欺오직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이 이르니 惟有淸風明月到후창은 시 읊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네 後滄非是愛吟詩후창은 시 읊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後滄非是愛吟詩시는 바로 후창이 노쇠해졌을 때라네 詩是後滄衰老時갖가지 질병이 항상 증세를 더해가니 百般疾病恒添祟일체 영위하는 것에 기심10)을 없앴네 一切營爲幷息機이 몸을 수양하며 죽기를 기다릴 뿐이니 修得此身惟待死앞길이 공연히 기로에 임하지 않게 하리 免敎前路枉臨岐지난날을 추억하면 한바탕 꿈과 같으니 追憶經過如一夢후창은 시 읊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네 後滄非是愛吟詩후창은 시 읊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後滄非是愛吟詩시는 바로 후창이 깊이 들어갔을 때라네 詩是後滄深入時천지가 뒤집혀 의관과 신발이 바뀌었고 天地飜傾易冠屨윤리 강상이 뒤섞여 헝클어진 삼실 같네 倫綱紛錯亂麻絲당시에 동해에서 머리털을 보존했을 뿐이니 當年東海惟存髮어느 곳 도원에서 옷을 바꾸지 않을까 何處桃源不改衣바로 지금은 당연히 이것 밖에 없으니 目下當然無此外후창은 시 읊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네 後滄非是愛吟詩후창은 시 읊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後滄非是愛吟詩시는 바로 후창이 이치를 연구할 때라네 詩是後滄硏理時인물의 근원에는 오직 성만 있으니 人物源頭惟性在공부의 전체는 모두 마음이 한다네 工夫全體總心爲성경이 철저해야 효과를 거둘 수 있고 敬誠到底方收效격치가 정밀해야 비로소 의심을 없애네 格致精來始去疑실행을 잘하고 못하냐에 달렸을 뿐이니 只在行之能否爾후창은 시 읊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네 後滄非是愛吟詩후창은 시 읊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後滄非是愛吟詩시는 바로 후창이 분명하게 분변한 때라네 詩是後滄明辨時성은 중인, 마음은 임금이라는 건 무슨 말인가 性衆心君是何說중화인과 오랑캐 짐승은 정히 의심할 것 없네 華人夷獸定無疑거짓과 진실은 천추의 눈 가리지 못하고 假眞難掩千秋眼승패는 한 판의 바둑과 동일하지 않네 勝敗非同一局棋심문과 신사11)가 모두 이것을 위해서니 審問愼思都爲此후창은 시 읊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네 後滄非是愛吟詩후창은 시 읊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後滄非是愛吟詩시는 바로 후창이 요체를 알아낸 때라네 詩是後滄知要時기절이 사람 놀래키는 것이 큰 것 아니고 氣節驚人非大者문장이 세상에 빛나는 것도 사소한 일이네 文章耀世亦些兒어찌 정일의 심법12)을 지니는 것만 하랴만 豈如精一持心法절로 영화가 있어 얼굴에 윤기가 돈다네13) 自有英華睟面眉이에 이르러야만 할 일을 마쳤다고 하니 到此方爲能事畢후창은 시 읊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네 後滄非是愛吟詩 康節詩多和樂之趣, 余詩多憂歎之意, 是固所養淺深自得有無之異.然康節遇太平無事之日, 余當國亡道喪之際, 亦時然也.後之論者, 或可視以同歸情性之正也歟! 戊寅榴夏日.後滄非是愛吟詩, 詩是後滄憂世時.運不復來今已矣, 獸難同處我何之?縱云白日猶長照, 可恨狂風不盡吹.一士爭天誰與此? 後滄非是愛吟詩.後滄非是愛吟詩, 詩是後滄憂道時.名理紛紛歸口舌, 縫章箇箇慣誣欺.豈料學界斯乖亂? 無路淳風可反移.切願眞儒生此日, 後滄非是愛吟詩.後滄非是愛吟詩, 詩是後滄憂學時.賦質元來中下也, 用功又不百千之.開胸無計去茅塞, 陷慾常危臨水湄.乾惕餘年惟此已, 後滄非是愛吟詩.後滄非是愛吟詩, 詩是後滄安分時.世道廢興天有命, 身心治亂自觀機.不忘溝壑前頭在, 留與眞狂異日知.物各付之我何預? 後滄非是愛吟詩.後滄非是愛吟詩, 詩是後滄堪笑時.冉子宜其增季廩, 蘇秦妄欲妻下機.人趨勢利迷魂魄, 鬼逐金錢聽指揮.今古悠悠如此已, 後滄非是愛吟詩.後滄非是愛吟詩, 詩是後滄孤立時.已息交朋平日識, 但求心事上天知.欲觀《易象》無攸懼, 先務曾經毋自欺.惟有淸風明月到, 後滄非是愛吟詩.後滄非是愛吟詩, 詩是後滄衰老時.百般疾病恒添祟, 一切營爲幷息機.修得此身惟待死, 免敎前路枉臨岐.追憶經過如一夢, 後滄非是愛吟詩.後滄非是愛吟詩, 詩是後滄深入時.天地飜傾易冠屨, 倫綱紛錯亂麻絲.當年東海惟存髮, 何處桃源不改衣?目下當然無此外, 後滄非是愛吟詩.後滄非是愛吟詩, 詩是後滄硏理時.人物源頭惟性在, 工夫全體總心爲.敬誠到底方收效, 格致精來始去疑.只在行之能否爾, 後滄非是愛吟詩.後滄非是愛吟詩, 詩是後滄明辨時.性衆心君是何說? 華人夷獸定無疑.假眞難掩千秋眼, 勝敗非同一局棋.審問愼思都爲此, 後滄非是愛吟詩.後滄非是愛吟詩, 詩是後滄知要時.氣節驚人非大者, 文章耀世亦些兒.豈如精一持心法? 自有英華睟面眉.到此方爲能事畢, 後滄非是愛吟詩. 선비 원문의 '봉장(縫章)'은 봉액(縫掖)과 장보(章甫)로서 선비의 의관(衣冠)을 말한다. 봉액은 의복의 한 종류이고 장보는 관(冠)의 한 종류이다. 공자가 어린 시절 노(魯)나라에 살 때는 봉액을 입고, 자란 뒤에 송(宋)나라에 살 때는 장보를 썼다. 《禮記 儒行》 힘써 두려워할 원문의 '건척(乾惕)'으로, 항상 두려워하는 심정으로 조심하며 자기 단속을 철저히 하는 것을 말한다. 《주역》 〈건괘(乾卦) 구삼(九三)〉에 "군자가 종일토록 부지런히 힘써 저녁에도 삼가고 두려워하면, 위태로우나 허물이 없으리라.〔君子終日乾乾, 夕惕若, 厲無咎.〕" 하였다. 구렁텅이 원문의 '구학(溝壑)'으로 산골짜기나 계곡을 말하는데, 떠돌다가 객사한 장소나 곤궁한 처지를 뜻한다. 염자(冉子)는……했고 공자의 제자 염구(冉求)가 권력자인 계강자(季康子)의 가신이 된 뒤에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여 그의 재산을 늘려 주자, 공자가 크게 노하여 제자들에게 "그는 더 이상 우리 무리가 아니니, 자네들은 북을 울려 성토하며 그를 공격해도 좋다.〔非吾徒也, 小子鳴鼓而攻之可也.〕"라고 말하였다. 《論語 先進》 소진(蘇秦)은……바랐네 전국 시대 소진이 집을 떠나 돌아다니다가 성공하지 못하고 꾀죄죄한 행색으로 돌아오자 그의 아내가 베틀에서 내려와서 그를 예로써 맞아주지도 않더니, 뒤에 육국(六國)의 재상이 되어 돌아오자 아내를 비롯한 온 집안사람이 소진을 환영하였다고 한다. 《戰國策 秦策上》 역상(易象) 《주역》을 설명한 단사(彖辭)와 효사(爻辭)인데, 주 문왕(周文王)과 주공(周公)이 각각 지었다고 전한다. 기심(機心) 자기의 사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교묘하게 꾀하는 마음을 말한다. 심문(審問)과 신사(愼思) 자세히 따져서 묻는 것과 신중하게 생각하는 것인데, 《중용장구》 제20장에서 군자가 성(誠)을 실천하는 구체적 방법으로 박학(博學)ㆍ심문ㆍ신사ㆍ명변(明辨)ㆍ독행(篤行)의 다섯 가지를 들었다. 정일(精一)의 심법(心法) 인심(人心)은 사욕에 빠지기 쉽고 도심(道心)은 밝아지기 어려우므로 정(精)으로 도심을 보존하여 기르고, 일(一)로 인심을 성찰하는 수양법이다. 요 임금이 순 임금에게 제위(帝位)를 선양하면서 "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은미하니, 정밀하게 살피고 전일하게 지켜야 진실로 그 중도를 잡을 것이다.〔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라고 하였다. 《書經 大禹謨》 얼굴에 윤기가 돈다네 군자의 내면에 축적된 것들이 넘쳐서 몸으로 드러난 것을 말한다.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군자의 본성은 인의예지가 마음속에 뿌리하여, 그 드러나는 빛이 얼굴에 윤택하게 나타나고 등에 가득하게 나타난다.〔君子所性, 仁義禮智根於心, 其生色也, 睟然見於面, 盎於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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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산에게 부쳐 보내고 화답을 구하다 寄鄭敬山求和 해와 달14)은 분분하게 번갈아 날고 달리는데 烏兔紛紛迭走飛걸핏하면 해를 넘기도록 서신을 보내지 못했네 音書動輒隔年違강가에서 읊조리는 나는 몰골이 어찌 수척하나 我吟江上形何槁산중에 은둔한 그대는 몸이 절로 살이 쪘네 子遯山中體自肥한번 죽고 곰 발바닥 택한 맹자15) 들어보았고 一死取熊聞孟聖오래 살다가 학으로 변한 정위16)는 가소롭네 久生化鶴笑丁威서로 닦는 걸 늘그막에도 저버린 적 없었으니 交修晩節無相負이것 이외에는 더이상 바랄 것이 아니네 此外非曾更有希 烏兔紛紛迭走飛, 音書動輒隔年違.我吟江上形何槁? 子遯山中體自肥.一死取熊聞孟聖, 久生化鶴笑丁威.交修晩節無相負, 此外非曾更有希. 해와 달 원문의 '오토(烏兔)'는 일월(日月)의 별칭이다. 신화에 해 속에는 세 발 달린 까마귀가 있고 달 속에는 옥토끼가 있다고 하여 해와 달을 가리켜 오토라고 한다. 좌태충(左太冲)의 〈오도부(吳都賦)〉에 "하늘에 올라 해와 달 속의 까마귀와 토끼를 잡고, 날짐승과 길짐승의 소굴을 모두 뒤진다.〔籠烏兔於日月, 窮飛走之棲宿.〕"라는 구절이 있다. 《文選 第5卷》 한번……맹자(孟子) 맹자가 삶을 버리고 의리를 택하였다는 말이다.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물고기도 내가 원하는 바요, 곰 발바닥도 내가 원하는 바이지만, 두 가지를 겸하여 얻을 수 없다면 물고기를 버리고 곰 발바닥을 택하겠다. 삶도 내가 원하는 바요, 의도 내가 원하는 바이지만, 두 가지를 겸하여 얻을 수 없다면 삶을 버리고 의를 택하겠다.〔魚我所欲也, 熊掌亦我所欲也, 二者不可得兼, 舍魚而取熊掌者也. 生亦我所欲也, 義亦我所欲也, 二者不可得兼, 舍生而取義者也.〕"라고 하였다. 오래……정위(丁威) 정위는 한(漢)나라 때 요동 사람 정 영위(丁令威)의 약칭이다. 그가 일찍이 영허산(靈虛山)에 들어가 선술(仙術)을 배우고 뒤에 백학(白鶴)으로 변화하여 고향에 돌아가서 성문(城門)의 화표주(華表柱)에 앉았는데, 한 소년이 활을 가지고 그를 쏘려 하자, 그 학이 날아올라 공중을 배회하면서 말하기를 "새여 새여 정 영위가, 집 떠난 지 천 년 만에 이제야 돌아왔네. 성곽은 예전 같은데 사람은 그때 사람 아니어라, 어이해 신선 안 배우고 무덤만 즐비한고."라고 하였다. 《搜神後記 卷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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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건당 황공8) 정려중수기 兩蹇堂黃公旌閭重修記 아, 이곳은 고(故) 선묘조(宣廟朝 선조(宣祖)) 명신(名臣) 양건당(兩蹇堂) 황공(黃公)의 충효(忠孝)를 기리는 정려문(旌閭門)이다. 공은 어버이를 섬김에 지극히 효성스럽고, 임금을 섬김에 충성을 다하여 처음에는 효건(孝蹇)으로, 뒤에는 충건(忠蹇)으로서 끝내 대방성(帶方城 남원성(南原城))이 함락되는 날에 목숨을 바쳐 절개를 지킬 수 있었으니, 지극한 행실과 큰 절개, 곧은 충정과 위대한 공열은 천하에 강상(綱常 삼강오륜)을 부지하고, 백세토록 나약하거나 완악한 사람을 흥기시키기에 충분하였다. 그 사적(事蹟)의 대략적인 내용은 야사(野史)와 국승(國乘 나라의 역사)에 분명하게 실려 있고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으니, 여기에서 굳이 중첩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정종(正宗 정조(正祖)) 을묘년(1795)에 정려문을 세우라는 임금의 명으로 7세손 진규(鎭奎)가 여러 종친과 함께 처음 건립하였고, 97년 뒤 금상(今上 고종(高宗)) 갑오년(1894)에 추증(追贈)의 은전을 받들었으며, 이로 인하여 현판을 고쳐 써서 게시하는 것과 단청을 새롭게 칠하는 꾸밈은 9세손 간(柬)이 주관하였다. 14년 뒤 정미년(1907)에 세월이 오래되어 목재가 썩게 됨에 따라 무너지는 우환이 있을까 염려하여 다시 고쳐 건립하여 완전히 새롭게 하였으니, 10세손 경현(慶炫)과 12세손 열주(悅周)가 여러 종친들에게 제창(提唱)하여 중수한 것이다.아, 세상이 쇠퇴하고 도가 미약해져 온 천하가 닫히고 막혔으니, 공의 충성스럽고 의로운 혼백도 이 일을 살펴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오늘날의 중건이 애당초 세상의 교화를 돕는 데 약간의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嗚乎。此故宣廟朝名臣兩蹇堂黃公忠孝褒旌之閭也.公事親至孝。事君盡忠。始以孝蹇。後以忠蹇。卒能殞身立。慬於帶方城陷之日。至行大節。貞忠偉烈。足以扶綱常於天下。起懦頑於百世。若其事蹟梗槩。野史國乘。昭載備錄。此不必架疊焉。至正宗乙卯。棹楔成。命七世孫鎭奎與諸宗創始之。後九十七年。今上甲午。承贈貤之典。因以改題揭板及新丹雘之飾。蓋九世孫柬尸之也。後十四年丁未。以歲久材朽。慮有頽圮之患。將改建而一新之。蓋十世孫慶炫十二世孫悅周。倡諸宗而經營之也。嗚乎。世衰道微。九野閉塞。未知公之忠魂義魄。其亦有以鑑此耶。今日之重建。未始非裨補世敎之一助云爾。 양건당 황공 임진왜란 때 남원에서 의병으로 활동했던 황대중(黃大中, 1551~1597)으로, 양건당(兩蹇堂)은 그의 호이다. 본관은 장수(長水)이고, 자는 정숙(正叔)이며, 전라남도 강진(康津) 출신이다. 어머니가 병환 중일 때 자신의 신체 일부를 잘라 약재로 사용하면서 한쪽 다리를 절게 되어 효건(孝蹇)이라는 호를 얻었다. 임진왜란 때 장사(壯士)로 뽑혀 여러 전투에 참여하였는데, 진주성이 함락되면서 겨우 빠져나온 그는 이순신 장군의 휘하로 들어가 해상 전투 중 총탄을 맞아 나머지 한쪽 다리마저 절게 되자 이순신으로부터 "효건(孝蹇)이 이제 충건(忠蹇)이다."라는 찬탄을 받으며 효건과 충건, 즉 양건당으로 불려졌다. 정유재란 때 병사(兵使) 이복남(李福男)과 더불어 남원성을 사수하다가 순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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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씨모선록》 서문 曺氏慕先錄序 스스로 생각건대, 서계(書契)147) 이후로 예전의 말과 지나간 행적들을 모두 갖추어 기록하지 않음이 없게 되면서 서적을 겹겹이 쌓아 놓으며 그 많음을 싫어하지 않고, 아침저녁으로 읊고 외우면서 그 익숙함을 싫어하지 않았으니, 대체로 현인을 사모하는 마음은 타고난 본성에서 나와 그치지 않음이 이와 같다.아, 옛날의 현인에 대해서도 오히려 그러하였는데, 하물며 선조(先祖)에게 법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칭송하며 기술하고자 하는 그 마음이 어떠하겠는가. 공류(公劉)의 풍화(風化)에 대한 기술148)이 자기의 집에서 나오고, 공백(龔伯)의 술동이나 대접에 새겨진 명(銘)149)이 다른 사람에게는 있지 않다면 작게는 보존하여 한 집안의 계책과 교훈으로 삼고, 크게는 전하여 한 시대의 모범과 법식으로 삼았으니, 이것이 효자와 어진 사람의 마음이다.나의 벗 조군 석준(曺君錫俊)이 선대의 사실을 기록한 책 한 권을 가지고 와서 나에게 서문을 지어 줄 것을 청하였다. 삼가 생각건대, 조씨(曺氏)는 충의(忠義)의 큰 절개와 효우(孝友)의 지극한 행실로 혹 나라에서 빛나기도 하고, 혹 고을에서 드러나기도 한 것이 전후로 수백 년이 되었지만, 유고(遺稿)가 흩어져 없어지고, 남아있는 것이 얼마 없어 자손들이 세월이 오래 지날수록 더욱 사라지게 될까 두려워하였다. 이에 유실된 것들을 수습하여 세고(世稿)를 편집해 만들고서 길이 전할 계책으로 삼았다.아, 자손들이 이 책을 읽으면 근본을 사모하고 조상을 추모하는 마음과 선조의 뜻을 계승하고 사업을 이어 나갈 생각이 어찌 성대하게 일어나지 않겠는가. 이로 인하여 더욱 힘써서 자신을 맑게 하여 안으로는 가족을 보호하고 집안을 화목하게 하며, 밖으로는 세상을 일깨우고 세속에 모범이 된다면, 이 책이 어찌 한 가문의 건연(巾衍 서적을 넣어두는 상자) 속에서 전해지는 것에 그칠 뿐이겠는가. 自惟書契以來。凡前言往行。無不備錄。連編累牘而不厭其多。朝吟暮誦而不厭其熟。蓋慕賢之心。出於秉彛而有不可已者如此。嗚呼。在先賢猶然。況在先祖而有可以爲法焉。則所欲稱述者。其心爲何如哉。公劉風化之述。出於其家。龔伯尊敦之銘。不在他人。小則存以爲一家之謨訓。大則傳以爲一世之矜式。此孝子仁人之心也。余友曺君錫俊。持其先世事實一冊。請余弁之。竊惟曺氏以忠義大節。孝友至行。或光于王國。或著于鄕里者。前後數百年矣。遺稿散逸。存者無幾。子孫懼其愈久而愈泯。收拾遺漏。編成世稿。以爲不朽計。嗚呼。爲子孫而讀此書。其懷本追遠之情。繼志述事之意。豈不油然而生乎。因此加勉以淑其身。內而保族宜家。外而牖世範俗。則此書豈止爲一門巾衍之傳而已哉。 서계(書契) 상고 시대에 나무에 새겨 썼다는 최초의 문자를 말하는 것으로, 문자를 비유하는 말이다. 《주역》 〈계사전 하(繫辭傳下)〉에 "상고에는 노끈을 묶어 뜻을 전하여 다스렸는데, 후세에 성인이 서계로 바꾸었다.[上古結繩而治, 後世聖人易之以書契.]"라는 글이 보인다. 공류(公劉)의……기술 공류는 후직(后稷)의 증손으로, 하(夏) 나라의 박해를 피해 빈(豳)으로 이주한 뒤에 후직의 유업을 닦아 농사에 힘쓰며 백성을 교화함으로써 훗날 주(周)나라가 일어날 발판을 마련하였는데, 주나라가 창업된 뒤 주공(周公)이 섭정(攝政)할 때에 공류의 풍화(風化)를 《시경》 〈빈풍(豳風) 칠월(七月)〉 편에 기록하여 조카 성왕(成王)을 경계하였다. 여기에서는 세속의 교화에 공헌한 선조의 기록을 비유하는 말인 듯하다. 공백(龔伯)의……명(銘) 원문의 "공백준대지명(龔伯尊敦之銘)"을 국역한 것으로, 선조가 사용하던 그릇이나 물건에 새겨 놓은 글을 비유하는 말인 듯하다. 참고로 원문의 "공백준대(龔伯尊敦)"는 《시경》 〈대아(大雅) 강한(江漢)〉의 주에 "옛 기물에 이르기를. '?은 절하고 머리를 조아려 감히 아름다운 천자의 명을 대양(對揚)하여 짐의 황고(皇考)인 공백(龔伯)의 술동이와 대접을 받드노니, ?은 미수(眉壽)를 누려 만수무강하게 하소서' 하였다.[古器物銘云 : '?拜稽首, 敢對揚天子休命, 用作朕皇考龔伯尊敦, ?其眉壽, 萬年無疆.']"라는 글에 나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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