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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旨學生金命河贈嘉善大夫戶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五衛都摠府副摠管者咸豐五年三月 日 [施命之寶]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兼五衛將金膺相考依法典追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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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旨孺人梁氏爲淑夫人者道光二十五年正月 日 [施命之寶]折衝將軍僉知中樞府事兼五衛將金膺相妻依法典從夫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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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5년 유인김씨(孺人金氏) 추증교지(追贈敎旨) 고문서-교령류-고신 정치/행정-임면-고신 咸豐五年三月 日 哲宗 孺人金氏 咸豐五年三月 日 哲宗 孺人金氏 서울특별시 종로구 施命之寶 1개(적색, 정방형) 부안 돈계 김응상 후손가 부안 돈계리 김응상 후손가 1855년(철종 6) 왕이 김응상의 할머니 유인 김씨에게 내린 추증교지 1855년(철종 6) 3월, 왕이 김응상(金膺相)의 할머니 유인(孺人)김씨(金氏)에게 내린 추증교지(追贈敎旨)이다. 김응상이 가선대부(嘉善大夫) 행용양위호군 겸 오위장(行龍驤衛護軍兼五衛將)으로 임명되면서 그의 할머니 유인김씨는 숙부인(淑夫人)으로 추증된다. 즉, 이 문서의 맨끝에 "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兼五衛將金膺相祖妣 依法典追贈"라고 적혀 있는 기록이 바로 그 사실을 의미한다. 조선 시대에는 실직(實職)이 2품 이상인 종친(宗親)과 문무관(文武官)의 경우 그의 부(父), 조(祖), 증조(曾祖)등 3대(代)에 사후(死後) 관직을 주었고 이를 추증(追贈)이라 하였다. 또한 부모(父母)는 실직에 있는 아들과 같은 품계를 내리며 조부모(祖父母), 증조부모(曾祖父母)에게는 그의 품계에서 각각 1품씩 강등하여 추증하였다. 김응상에게 내려진 가선대부는 종2품 문무관(文武官)에게 주던 품계(品階)이다. 김응상의 할아버지 김도명(金道明)은 한 단계 낮은 통정대부(通政大夫) 승정원좌승지 겸 경연참찬관(承政院左承旨兼經筵參贊官)으로 증직(贈職)되었다. 통정대부는 정3품 문산계로 그의 할머니 유인김씨도 그의 품계에 걸맞은 숙부인으로 봉작(封爵)되었다. 김응상에게는 할머니가 두 분 계셨는데 또 다른 할머니인 유인 이씨(李氏)도 이때 숙부인으로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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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旨贈淑夫人林氏贈貞夫人者咸豐五年三月 日 [施命之寶]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兼五衛將金膺相妻依法典從夫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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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旨孺人金氏贈淑夫人者咸豐五年三月 日 [施命之寶]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兼五衛將金膺相祖妣依法典追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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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2년 김양묵(金養默) 고신(告身) 2 고문서-교령류-고신 정치/행정-임면-고신 道光十二年二月 日 吏曺 承文院副正字金養黙 道光十二年二月 日 純祖 金養默 서울특별시 종로구 8.0*8.0 1개(적색, 정방형) 부안 돈계 김응상 후손가 부안 돈계리 김응상 후손가 1832년(순조 32)에 이조(吏曺)에서 국왕의 명을 받아 승문원부정자(承文院副正字) 김양묵(金養默)을 계공랑(啓功郞) 행승문원정자(行承文院正字)에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첩(敎牒) 1832년(순조 32) 2월 28일에 이조(吏曺)에서 국왕의 명을 받아 승문원부정자(承文院副正字) 김양묵(金養默)을 계공랑(啓功郞) 행승문원정자(行承文院正字)에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첩(敎牒)이다. 발급 일자 위에 이조의 관인이 답인(踏印)되어 있고, 이조 참의(參議)가 서압(署押)하였다. 계공랑은 종7품에 해당하는 문관의 관계이다. 승문원은 사대교린에 관한 문서를 관장하고 이문(吏文)의 교육을 담당한 관서로 부정자는 종9품, 정자(正字)는 정9품 관직이다. 수취자의 품계인 계공랑이 관직인 승문원 정자의 품계보다 높았기 때문에 행수법(行守法)에 따라 관직명 앞에 행(行)자를 표기하였다. 한편, 문서 배면(背面) 좌측 하단에는 '吏吏金貞浩'이라고 적혀있다. 吏吏는 고신을 작성한 이조의 서리이며, 김정호는 서리의 이름이다. 부안 김씨 김양묵 가문이 소장하고 있는 고신의 배면을 보면 김정호뿐만 아니라 김형복, 김정익 등의 김씨 성을 가진 서리의 이름이 연속적으로 등장한다. 이는 이조에 근무하는 서리 가운데 김씨 성이 대를 이러 부안 김씨 가문의 단골 서리 역할을 하였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김양묵은 본관이 부안(扶安)으로, 1829년에 정시문과(庭試文科)에 급제하여 관직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가 받았던 고신(告身)들이 그의 후손 가에 오늘날도 전하고 있다. 특히 그가 문과 응시 당시 작성했던 시권(試券)과 급제하여 받았던 홍패(紅牌)를 비롯하여, 고신 16점, 차첩 2점 등 20점이 남아 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아버지 김응상(金膺相)과 어머니, 그리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증조와 증조할머니, 고조와 고조할머니 등이 받았던 고신 20점이 전하고 있는데 대부분 추증교지(追贈敎旨)이다. 이 추증교지는 김응상이 고신을 받을 때마다 함께 받았던 것들이다. 고신 외에 김응상이 1819년부터 1855년까지 작성했던 호구단자(戶口單子) 7점도 전하고 있어서 그의 가족 상황을 살펴 볼 수 있다. 이에 따르면, 김응상은 생전에 부안현 남하면 돈계리에 내내 거주하고 있었던 것으로 나오는데, 오늘날의 부안군 주산면 돈계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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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처중에게 답함 答梁處中 이(理)는 진실로 신(神)이라고 말해서는 안 되지만, 또한 신(神)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신(神)이라고 말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이고, 신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또한 무엇입니까. 반드시 낱낱이 이해하여 바로 알아야 비로소 이(理)자의 본래 뜻을 틀림없이 깨닫게 됩니다. '신명(神明)' 두 글자에 대해서는 더욱 이(理)라고 말할 바가 아니니, 《맹자집주(孟子集註)》와 《대학혹문(大學或問)》에서 이른바 '신명(神明)을 이(理)라고 보지 않은 것이 오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허령(虛靈) 아래에 단지 '이(以)'자만을 붙였는데, 그 위에 글에 이미 '소(所)'자가 있으므로, 쓸데없이 반복할 필요가 없으니【疊牀】,17) 소이(所以)의 뜻이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허령(虛靈)과 신명(神明)은 본래 분명하게 둘로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억지로 소(所)자의 유무를 끌어다가 이(理)가 되고 기(氣)가 되는 증좌로 삼아서야 되겠습니까. 나의 벗인 그대의 견해로 본다면, 뜻밖에 천착하다가 전하여 알게된 것이 바로 이와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덕(德)으로 도(道)를 응집하고 의(義)로써 이(理)에 처하여, 이(理)로 이(理)를 갖추었다는 설은, 도와 이는 사물에 산재해 있으나 덕과 의는 심상의 측면에서 말한 것이란 것과 같지 않으니, 그렇기 때문에 응집하다라고 하였고, 처하다라고 한 것입니다. 만약 이(理)를 갖추는 바에 지반(地盤)이 있지 않다면,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자께서 말씀하시길 "성인께서 성(性)을 논하심에 심(心)을 인하여 발하지 않음이 없었다"라고 하였고, 또한 말씀하시길, "기(氣)가 아니면 형체가 없으니, 성(性)이 부여하는 바는 없다"라고 하였으니, 여기서 볼 수 있습니다. 만약 한 국자의 물을 저장하려고 할 때 그릇이 아니면 불가한 것이니, 어찌 물로써 물을 저장하는 이치가 있겠습니까. 지금 조항마다 낱낱이 받들어 답할 겨를이 없으나, 보내온 편지를 보니 나의 설을 주재(主宰)의 권한이 오로지 기(氣)에 귀속된다고 되어 있는데, 나의 설이 어떻게 그대에게 전달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신명(神明)을 이(理)가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입니까. 신명이 비록 이(理) 자체는 아니지만, 이 이(理)의 호위병이요, 종복이니, 이(理)가 주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돌아보건대 그냥 가만히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만약 임금이 신하는 직책을 수행하여서 밥을 나르고 낭관을 때리는 일을 직접 행한다면, 그 위세가 나날이 줄어들어서 끝내 주재함을 잃게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주자(朱子)의 「왕장유에게 답하는 편지【答汪長孺書】」에 이르기를 "신령(神靈)이라는 두 글자는 성(性)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자(告子)가 말한 '타고나는 것이 성이다'라는 말과 불교인들이 말하는 이른바 '작용이 바로 성이다'라는 말은, 그 잘못이 바로 여기에 떨어졌기 때문이니,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오늘날 그대가 발한 것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내가 고통이 심해지는 것을 불쌍히 여겨서 일찍이 편작과 화타【扁華】18)와 같이 일깨워주시니, 그 정성스러운 마음에 매우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편작과 화타는 갑자기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다만 이렇게 보내주신 편지 한 통은 아무래도 사양할 수 없으니, 편작과 화타의 좋은 약제가 될 것입니다. 다만 혼폐함이 심하여서 끝내 병을 키우고 치료를 기피하는 것을 면하기 어려울 듯하니, 두렵고 두렵습니다. 선덕(先德)이 말하길 "신(神)은 생각으로 미칠 수 없다"라고 하였고, 또한 "천지의 신묘한 변화를 궁구하여 아는 것【窮神知化】은 생각하고 힘쓰는 것만으로는 미칠 수 없다"19)라고 하였습니다. 하물며 우리들과 같은 역량으로 어찌 감히 그 경지를 터득하겠습니까. 그러나 각자가 학설을 내세우고 억지로 변별하여 이에 이르면, 그 안목이 있는 자들이 옳지 못한 의논을 펼치는 것에 끼치는 영향이 적지 않을 것이라 생각됩니다."도라는 것은 잠시도 떨어질 수 없는 것이다【道也者, 不可須臾離】"라는 경문에 대한 주장의 장구(章句)에 "성의 덕은 마음에 갖추어져 있다【性之德而具於心】"20)라고 하였는데, 회락(會洛)21)은, 성의 덕은 바로 도(道)의 체(體)를 말한 것이라 여겼으니, '성(性)' 다음에 또한 '덕(德)'자를 더한 것은 도의 체에 나아가서 극언(極言)하여 찬미(讚美)한 말입니다. 철원(澈源)22)은 덕(德)은 득(得)의 의미이고 결료(結料)의 뜻이라고 여겼으니, 아마도 도의 전체를 말한 듯합니다.성의 덕은 이른바 성의 도(道), 성의 이(理), 성의 선(善)과 같은 것입니다. 글에 의거하여 읽어 나가면, 그 뜻이 저절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니, 찬미(讚美)라고 한 것은 진실로 마땅치 않고, 결과(結窠)라고 한 것도 또한 그 필연 됨을 모르겠습니다.회락(會洛)이 '미발일 때에 기질의 성(性)이 있다고 한다면 불가하지만, 기질의 성이 혹 미발일 때가 있다고 한다면 가하다'고 하였는데, 기질이 우연히 법도를 따른 경우입니다. 철원(澈源)이 '이미 기질의 성이라고 한다면 마땅히 미발이라고 말할 수 없으나, 이미 미발이라고 한다면 곧 기질의 성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기질의 성이라는 것은 혹 미발일 때가 있다'라고 하였는데, 또한 온당치 못한 듯합니다.우연히 순박함을 회복한 것은 바로 본래 그러한 것이지, 기질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회락(會洛)이 '호랑이의 인(仁)은 가히 본연의 이치가 있지 않은 곳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으니, 성의 본연이라고 하면 불가하다'라 하였고, 철원(澈源)은 '호랑이는 단지 인(仁)만을 알뿐, 다른 것은 모른다고 말한다면 진실로 옳으나, 본연의 이치가 있지 않은 곳이 없는 것을 성의 본연이라고 한다면 불가하다'라고 하였는데, 그 인(仁)이라는 것이 성의 본연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노사(蘆沙)23) 선생이 이른바 개와 소가 다르지만 저들 또한 참되다【犬牛異處彼亦眞.】24)라고 한 것이 이것입니다. 만약 성의 본연이 아니면 이 사물들이 무엇으로부터 나온단 말입니까.철원이 '사람의 사지와 골격에는 정해진 수가 있고, 나무의 가지와 줄기에는 정해진 수가 없다'고 한 것은, 그 바름과 그름, 통함과 막힘을 구분한 것입니다. 회락이 '동물은 모두 정해진 수가 있는데, 식물은 모두 정해진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조수(鳥獸)는 정해진 수가 있고, 초목은 정해진 수가 없으며, 일월성신은 정해진 수가 있고, 산악유천은 정해진 수가 없다'라고 하였습니다.번잡한 기(氣)는 정말로 그러합니다.회락이 '《중용》 서문에서 "두 가지가 방촌 사이에 뒤섞여 있어 다스리는 법을 모른다【二者雜於方寸之間 不知所以治之】"라고 하였는데, 선유(先儒)는 치(治)자를 논하여서 도심(道心)이 항상 일신의 주인이 되는 것이라 하여서, 즉 치(治)는 그 도심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고 여겼으니, 이 설은 옳습니다. 철원은 이미 잡(雜)이라고 하였으면, 치(治)자는 잡(雜)자가 되어 발한 것이라고 하였는데, 그 말이 매우 명백합니다.칠정(七情) 또한 성악이 섞인 것이기 때문에 치(治)자를 배치한 것입니다. 理固不可以言神。亦容有不能不言神處。其不可以言神是如何。其不能不言神。又是如何。須一一理會得。乃於理字本旨。見得不差。至若神明二字。尤非所以言理。孟子集註及大學或問所謂神明不可作理字看久矣虛靈下只着以字。以上文已有所字。不必疊牀。而所以之義。自足故也。虛靈神明。本非判然二物。而强引所字有無。以爲爲理爲氣之證佐耶。以吾友高明之見。而不意穿鑿傳會。乃如是也。且德以凝道。義以處理。以理具理之說。不同道與理散在事物。而德與義。以心上說。故謂之凝。謂之處。若理之所具。非有地盤則不可。是故。朱子曰。聖人論性。無不因心而發。又曰。非氣無形。性無所賦。此可見也如貯一勺水。非器則不可。豈有以水貯水之理乎。今不暇逐條奉答。但來喩以鄙說謂主宰之權。專歸之於氣。未知鄙說何如。而至於乃爾耶。抑以神明謂非理故耶。神明雖非理。而乃是此理之輿衛也。僕役也。則理之爲主宰也。顧不自若矣乎。若君行臣職。而傳餐撞郞。親自爲之。則吾恐其威勢。日替而不得爲主宰矣。朱子答汪長孺書曰。神靈二字。非所以言性。告子所謂生之謂性。佛者所謂作用是性。其失正墮於此。不可不深究也。此言似爲今日賢者而發也。閔我之加痛。而喩以早尋扁華。其意甚感。然扁華不可遽得。而只此垂喩一幅。恐不得辭爲扁華之良劑也。但昏蔽之甚。竟不免爲護疾忌醫之歸。悚悚。先德曰。神不可致思。又曰。窮神知化。非思勉之能强。況以吾輩力量。豈敢覰却其藩籬也。然而梗自立說。强辨至此。其貽有眼者。不韙之議。想亦不少矣。道也者。不可須臾離。章句性之德而具於心。會洛以爲性之德。是說道之體。而性下又加德字者。就道之體。極言而贊美之辭。澈源以爲德得也。是結料之義。蓋言道之全體也。性之德。如所謂性之道性之理性之善云爾。據文讀過。其義自見。謂之贊美。固未穩。謂之結窠。亦未知其必然也。會洛以爲謂未發有氣質之性則不可。而氣質之性。或有未發時則可也。氣質之偶然循軌處是也。澈源以爲旣曰氣質之性。則當不可言未發。旣曰未發。則便不可言氣質之性。謂之氣質之性。或有未發時。亦似未安。偶然回淳。便是本然。着氣質不得。會洛以爲虎狼之仁。可以見本然之理。無乎不在。而謂性之本然則不可。澈源以爲以虎狼之只知仁而不知他言則固可。曰本然之理無乎不在。而謂之性之本然則不可。然其仁者。則非性之本然而何。蘆沙先生所謂犬牛異處彼亦眞者。此也。若非性之本然。則此物何從出來。澈源以爲人之肢骸。有定數。木之枝幹。無定數。蓋其正倒通塞之分。會洛以爲動物皆有定數。植物皆無定數是故鳥獸有定數。而草木無定數。日月星辰有定數。山岳川流無定數。繁氣固然。會洛以爲中庸序二者雜於方寸之間。而不知所以。治之。先儒論治字。以爲道心常爲一身之主者。卽治也非治其道心也。此說是。澈源以爲旣曰雜。則治字是爲雜字而發。蓋言其明辨也。七情亦善惡雜焉。故下治字。 첩상(疊牀) 첩상가옥(疊床架屋)의 줄인 말로, 침대 위에 침대를 겹쳐 놓고, 지붕 위에 지붕을 얹는다는 뜻이다. 쓸데없이 반복하는 경우를 비유하는 고사성어입니다. 《세설신어》 등에서 유래되었다. 편화(扁華) 중국 고대의 전설적인 명의인 편작(扁鵲)과 화타(華佗)를 말한다. 《성호선생사설(星湖先生僿說)》 24권에 나오는 말이다. 도라는 것은 …… 갖추어져 있다 《중용장구》 제1장 제2절에 대한 주희(朱熹)의 주에 "도는 일용사물에 마땅히 행하여야 할 이치입니다. 모두 성의 덕으로서 마음에 갖추어져 있어서 사물마다 있지 않음이 없고 때마다 그러하지 않음이 없으니, 이 때문에 잠시도 떠날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떠날 수 있다면, 어찌 '솔성'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道者, 日用事物當行之理, 皆性之德而具於心, 無物不有, 無時不然, 所以不可須臾離也. 若其可離, 則豈率性之謂哉?】"라는 내용이 보인다. 회락(會洛) 조선 말기 유학자였던 양회락(梁會洛, 1862~1935)로, 자는 처중(處仲), 호는 동계(東溪)이다. 천성이 총명하고 행동거지가 심중하였으며, 10세에 경전을 통달하였다. 정의림(鄭義林)과 정재규(鄭載圭)의 문하에서 수업하였으며, 기정진(奇正鎭)의 영향으로 주리론(主理論)을 주장하였다. 철원(澈源) 조선 말기 유학자인 황철원(黃澈源, 1878~1932)으로, 자는 경함(景涵)이고, 호는 중헌(重軒)‧은구재(隱求齋)입니다. 기정진(奇正鎭)의 제자인 정의림(鄭義林)과 정재규(鄭載圭)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902년(광무 6) 전라남도 구례(求禮) 천은사(泉隱寺)에서 최익현(崔益鉉), 기우만(奇宇萬)과 강론을 벌였고, 스승 정재규의 권유로 「납량사의기의추록변(納凉私議記疑追錄辨)」 등을 지어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성리설(性理說)을 논박하였다. 이후 한일합방이 되자 이를 분통하게 여기며 후학들을 기르는 데 전념하였다. 1932년 6월 20일 광주(光州)에서 향년 5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저서로 《중헌집(重軒集)》 10권 4책이 있다. 노사(蘆沙) 조선 말기의 성리학자인 기정진(奇正鎭, 1798~1879)으로, 자는 대중(大中)이고, 호는 노사이며,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8, 9세에 이미 경사(經史)에 능통했고, 34세에 사마시(司馬試)에 장원으로 입격하였다. 증광시(增廣試)에 낙방하자 관직을 포기하고 낙향하여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조선 성리학의 6대가(大家) 중의 하나로 꼽힐 정도로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위정척사파(衛正斥邪派)의 정신적 지주였다. 대표적인 저술로 〈납량사의(納凉私議)〉, 〈이통설(理通說)〉 등이 있으며, 문집으로는 《노사집(蘆沙集)》이 있다. 개와 소가 다르지만 저들 또한 참되다 《노사집(蘆沙集)》 권2 〈오상영기회정(五常詠寄晦亭)〉에, "순 임금과 도척이 똑같이 사람으로서 가장 귀하고, 개와 소가 다르지만 저 또한 온전합니다. 다만 이 자의 진면목을 잃음으로 인연하여, 성 중에 나아가 헛되이 연구하느라 애쓴다.【舜跖同時吾最貴, 犬牛異處彼亦全. 只緣理字失眞面, 枉就性中費究硏.】"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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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립에게 보냄 與朴景立 우리 경립(景立)이 병에서 나은 이후로 항상 한번 찾아보고자 하였으나 그럴 방도가 없었습니다. 이것은 제 정의(情義)가 부족하기 때문입니까? 말하기 어려운 신고(身故) 때문입니까? 슬픈 마음은 또한 단지 구구한 모임이 오랫동안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여력이 있을 때 문장을 하여 갑자기 잊어버리는 데 이르지는 않았는지요? 눈앞의 잡다한 일에 얽매여 세월을 헛되이 보내지 않는다면 어떠하겠습니까? 영남에서 보낸 편지는 일전에 월송(月松)33)이 가지고 왔는데, 편지를 통해 계남(溪南 최숙민(崔琡民))과 애산(艾山 정재규(鄭載圭))을 비롯한 여러 어르신들의 근황이 편안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네 통의 서찰을 부쳤는데 수령하셨는지요. 선부군(先府君)의 종제(終制)34)가 멀지 않은 시기에 닥쳤으니 풍수(風樹)35)의 추모하는 마음이 끝이 없겠습니다. 이처럼 천하고 비루한 자에게도 평생 서로 이어져 두텁게 대해주심에, 며칠이나 지났다고 상생(象生)36)하는 곳을 또한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몇 줄의 글을 지어서 영결(永訣)하는 끝없는 뜻을 가서 고하고자 합니다만 몸이 병마(病魔)에게 희롱을 당하고 있으니 과연 그럴만한 여유가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의림(義林)은 봄 이후로 근력을 점점 빼앗겨서 마치 가랑비에 옷이 젖는 듯이 지금까지 지내고 있습니다. 마치 매우 늙어서 심한 병에 걸린 사람과 같으니, 평생의 지업(志業)을 한 푼이라도 성취할 수가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경립(景立)은 이때에 미쳐 점검하고 성찰하여 저와 같은 지경에 이르지 않기를 바랍니다. 自吾景立出病以後。常欲一省而末由也。此其情義之不足耶。身故之難狀耶。悲傷之私。又不但爲區區會聚之久曠也。但未知餘力鉛槧。不至頓忘否。幸不以目前小小。惹絆捱過時日如何。嶺札。日前自月松來到。而知溪艾諸丈近節之安耳。四札付去。考領也。先府君終制。隔在不遠。風樹感慕之情。想無涯極。如淺陋者。係在平生相厚之地。而過了幾日。則象生之所。亦不得以見矣。擬以數行文。往告永訣無窮之意。而未知身戲病魔。果爲之饒貸否也。義林自春以來。筋力漸奪。如微雨漬衣。至於今日。如極老極病之人。而其於平生志業。無一分成就。是爲慨然耳。願景立趁此提省。毋至如此生也。 월송(月松) 이기환(李基煥, 1904~?)이다. 호는 월송(月松)이고 본관은 전주(全州), 거주지는 영광(靈光)이다. 기우만(奇宇萬)과 이종택(李鍾宅)의 제자이다. 종제(終制) 담제(禫祭)를 마치는 것을 가리킨다. 풍수(風樹) 부모(父母)에게 효도(孝道)를 다하려고 생각할 때에는 이미 돌아가셔서 그 뜻을 이룰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이다. 상생(象生) 생전에 망자(亡者)가 사용하던 것들을 사용하는 등, 망자가 아직 살아 있는 것으로 간주하여 의식을 진행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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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립에게 보냄 與朴景立 지난번에 그대의 당숙(堂叔)께서 돌아가신 뒤로 그대로 막연하게 소식이 끊어지게 되었습니다. 모르겠습니다만 조부모와 부모를 모시면서 상복을 입고 지내는 정황이 좋으며, 함애(咸哀)38)도 무양(無恙)하게 지내며 책을 읽고 있는지요? 양친이 모두 잘 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은 복 있는 집안의 운수라고 할 것이지만 순식간에 기울어져 이와 같은 지경이 되고 말았습니다. 인생의 모든 일들은 헤아리기가 어려우니 어버이를 잃은 어린 것들을 어루만져주고 돌보아주십시오. 경립(景立) 또한 한 층 세상의 풍파를 겪게 되었습니다. 다만 오늘날 경립의 정세(情勢)는 그 부담이 실로 나머지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선친(先親)께서 부탁하신 뜻과 가문이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는 계책 및 사우(士友)들의 기대가 그대의 한 몸에 모여들었으니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비록 온갖 바쁜 일이 수없이 있어 어지러운 와중에서도 책을 읽는 한 가지 일은 결단코 그만두어서는 안 됩니다. 모쪼록 바라는 것은 1부(副)의 규구(規矩)를 뽑아 정리하여, 몸과 집안을 가장 잘 다스리는 계책으로 삼는다면 어떻겠습니까? 의림(義林)은 병든 몸에 실낱같은 목숨이 붙어 있어 날마다 고단한 상황으로39) 나아가고 있습니다. 비록 다소간 자신을 책려(策勵)하여 구업(舊業)을 정리하여 만에 하나라도 뒤미처 보완하고자 하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매번, "내 이럴 줄 알았다면 태어나지 않느니만 못하였다."40)라는 구절을 읽을 때마다 저도 모르게 슬픔과 한스러움이 마음속을 가득 채우게 됩니다. 경립은 나를 전철 삼아 경계하기를 바랍니다. 向者令堂叔返駕後。信息隨以漠然。不審重省下持服衛重。咸哀無恙讀字否。俱存無故。福家氣數。轉眄之頃。至於如此。人生萬事。有難料測撫孤恤哀。景立亦添一層世故矣。但今日景立情勢。其擔負。實有異於餘人者。先親付託之意。門戶禦侮之計。士友期待之望。萃於一身者。爲何如耶。雖百忙千撓之中。而讀書一事。斷不可已。望須折斷得一副規矩。以爲身家究竟之計如何。義林病軀殘喘。日就卷婁。雖欲策理多少。以爲追補萬一之地。而不可得。每讀知我如此。不如無生之語。而不覺悲恨塡中。幸景立視爲前車也。 함애(咸哀) 상중에 있는 조카를 가리킨다. 고단한 상황으로 원문은 '권루(卷婁)'인데, 외물을 좇아 자신의 심신을 고되게 만드는 것이다. 《장자》 〈서무귀(徐無鬼)〉에 나오는 구절이다. 내 이럴 …… 못하였다 《시경(詩經)》 소아(小雅) 〈초지화(苕之華)〉에 나오는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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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밤에 제생의 시에 보운하다 翌夜 步諸生韻 좋은 계절 정히 깊은 가을3)이 되었는데 佳辰正屬九秋天애석해라 흐르는 세월은 가는 냇물 같도다 堪惜流光若逝川작은 뜰의 국화와 단풍은 눈 내리기 재촉하고 小院菊楓催雨雪먼 하늘의 별과 달은 속세의 연무 씻어주네 長空星月滌塵煙밤새 북두성4)에 연연해하는 걸 누가 동정하랴 誰憐北斗終宵倚옛날 걸어둔 뽕나무 활5) 저버린 게 부끄럽네 愧負桑弧昔日懸고상한 사람들이 있어서 때로 오고가니 爲有高人時往返탁한 세상에 신선술 배우나 의심하구나 錯疑濁世學神仙 佳辰正屬九秋天, 堪惜流光若逝川.小院菊楓催雨雪, 長空星月滌塵煙.誰憐北斗終宵倚, 愧負桑弧昔日懸.爲有高人時往返, 錯疑濁世學神仙. 깊은 가을 '구추(九秋)'는 9월의 깊은 가을을 이르고, 또 가을철 7월ㆍ8월ㆍ9월의 약 90일 동안을 이르기도 하는데 여기서는 깊은 가을을 뜻한다. 북두성(北斗星) 임금을 상징하는 별이다. 뽕나무 활 원문의 '상호(桑弧)'로 뽕나무로 만든 활인데, 남아의 큰 포부를 비유한 것이다. 《예기》 〈사의(射儀)〉에 "남자가 태어나면 뽕나무 활과 쑥대 화살 여섯 개로 천지와 사방을 쏘니, 천지와 사방은 남자가 일할 곳이기 때문이다.[男子生, 桑弧蓬矢六, 以射天地四方, 天地四方者, 男子之所有事也.]"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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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재 방철수에게 주다 贈房季才哲洙 깨끗한 자질 달게 여겨 그대 아끼는데 愛爾甘白質성대한 명성은 드러나지 않았구나 不著赫然聲공교함은 곧 인을 행함에서 커지고 巧乃爲仁遠재능은 응당 경418)에서 생긴다네 才應自敬生가을바람에 영주산의 나뭇잎 지고 秋風瀛木落아침비에 초강의 물결은 잔잔하네 朝雨楚江平한 번 이별을 어찌 아쉬워하랴 一別何須惜천 년의 정을 남겨주었는 걸 爲留千載情 愛爾甘白質, 不著赫然聲.巧乃爲仁遠, 才應自敬生.秋風瀛木落, 朝雨楚江平.一別何須惜, 爲留千載情. 경(敬) '경(敬)'은 성리학에서 심성을 수양하는 대표적인 방법으로, 북송(北宋)의 정이(程頤)는 '주일무적(主一無適)'과 '정제엄숙(整齊嚴肅)' 두 가지로 설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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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동 강계일에 제군의 시에 차운하다 滄東講契日 次諸君韻 초당의 모습이 홀연 싱그러워지는데 草堂顔色忽生新빽빽이 찬 선비들419) 모두 인재로다 襟佩林林摠可人구름 사이에 들어간 달은 빛을 감추고 月入雲間鞱耀彩가을 밤 맞은 산은 작은 띠끌도 씻겼네 山當秋夜洗纖塵높은 뜻으로 천사420)를 가벼이 보고 須令高志輕千駟꽃다운 명성을 만년토록 떨쳐야 하리 好把芳名亘萬春오늘처럼 해마다 좋은 행사 이룰 것이니 此日年年成勝事진경이나 찾는다고 방관자는 말하지 말라 傍觀莫道枉尋眞 草堂顔色忽生新, 襟佩林林摠可人.月入雲間鞱耀彩, 山當秋夜洗纖塵.須令高志輕千駟, 好把芳名亘萬春.此日年年成勝事, 傍觀莫道枉尋眞. 선비들 원문의 '금패(襟佩)'는 푸른 옷깃과 푸른 패옥(佩玉)을 말한 것으로 유생이나 선비들을 가리킨다. 《시경》 〈자금(子衿)〉에 "푸르고 푸른 그대의 옷깃이여, 아득하고 아득한 나의 그리움이로다. …… 푸르고 푸른 그대의 패옥이여, 아득하고 아득한 나의 그리움이로다.[靑靑子衿, 悠悠我心. …… 靑靑子佩, 悠悠我思.]"라고 하였다. 천사(千駟) '사(駟)'는 네 마리 말로 '천사(千駟)'는 4천 마리의 말인데 큰 부귀를 상징한다. 《논어》 〈계씨(季氏)〉에 "제나라 경공은 말 4천 필을 가지고 있었으나, 죽을 때에 그의 덕을 칭송하는 사람이 없었다.[齊景公有馬千駟, 死之日, 民無德而稱焉.]"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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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여주에게 답함 答吳汝周 일전에 잠깐 출입하였다가 어자(御者)82) 때문에 헛되이 돌아오게 되어 생각할수록 아쉽습니다. 인편을 통해 다시 다정한 편지를 받게 되었는데 돌아보아 주시고 알아주시는 지극함으로, 더욱 감격스럽고 슬퍼졌습니다. 또한 부모님의 상황이 강녕하시고 여력이 있을 때에는 글을 읽으며, 근래에는 《소학(小學)》을 읽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구구하게 위로되고 시원하니 실로 듣길 바랐던 소식과 부합합니다. 대저 이 책은 바로 성인(聖人)을 배우는 터전이라 할 수 있으니, 사람의 모양을 갖추고자 한다면 한 단락을 읽으면 또한 한 가지를 행하여야 하고, 두 단락을 읽으면 또한 두 가지를 행하여야 하니, 조금도 소홀하거나 대강 넘겨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매양 생각건대, 지금은 비록 어린아이의 학문에 종사하고 있을 뿐이지만, 그 체국(體局)과 식량(識量)은 대인(大人)의 학문을 겸하고 덧보태는데 해롭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섬기고, 웃어른을 공경하고, 말끔히 청소하고, 손님을 응대하는 일에 대하여 반드시 하나하나 깊이 연구하게 되어 그렇게 된 까닭을 알게 된다면 바꿀 수가 없을 것이고, 그 당연한 것과 함께한다면 그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자세하고 분명하게 하되, 그 사이에 의심되거나 명료하지 못한 것이 있으면 일일이 기록하여 후일을 기다려 깊이 헤아리고 결론을 정하십시오. 참으로 성실한 마음으로 공부를 한다면 그 사이에서 곡절을 가감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말을 기다리지 않고서도 스스로 짐작하여 알맞게 조절하는 점이 있을 것입니다. 하물며 지리멸렬한 기교에 대해서 어찌 입을 놀릴 필요가 있겠습니까. 감히 변변치 않다고 여기지 않으신다면 부디 답장을 해주시기 바랍니다.【질문】아직 발하지 않았을 때는 어떻게 공부해야 합니까?【대답】아직 발하지 않았을 때는 더욱 공부에 힘써야 합니다. 주자는, "아직 발하기 전에는 찾아볼 수 없고, 이미 발하고 났을 때는 안배를 허용하지 않는다. 다만 평소에 경장(敬莊)과 함양(涵養)의 공부를 지극히 하여 사사로운 인욕에 어지러워지지 않으면 아직 발하기 전에는 맑은 거울이나 잔잔한 물과 같으며 발한 뒤에는 절도에 맞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83)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말은 명명백백(明明白白)하고 간단하면서도 의미가 깊으니, 배우는 자들에게 경(敬)을 위주로 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으로 이보다 절실한 것은 없습니다.【질문】〈서명(西銘)〉에서, "천지의 장수는 내가 성으로 삼았다."84)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이(理)가 기(氣)의 장수가 되는 것입니다. 맹자가 말하기를, "지(志)가 전일하면 기(氣)를 움직인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지(志)가 기(氣)를 이끄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천지에 있다면 바로 이(理)가 기(氣)를 이끄는 존재가 되는 것이고, 사람에게 있다면 지(志)가 기(氣)를 이끄는 존재가 되는 것은 어째서인지요?【대답】이(理)가 이끌고 기(氣)가 이끄는 것은 하늘과 사람이 다른 점이니, 하늘은 무위(無爲)이고, 사람은 유위(有爲)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志)가 바로 이(理)의 기력과 골자가 있는 것이라면 하늘과 사람이 같지 않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질문】주돈이(周敦頤)는, "사랑함을 인(仁)이라고 한다."85)라고 하였으며 한유(韓愈)는, "널리 사랑하는 것을 인(仁)이라고 한다."86)라고 하였으니 말의 뜻은 무엇입니까?【대답】주돈이는 흘러가는 것을 들어서 근원을 가리켰으며 한유(韓愈)는 곧 흘러가는 것을 인식하여 근원으로 삼았으니 다릅니다.【질문】사람은 이(理)를 온전하게 된 몸으로 태어났는데, 그리하여 이것이 사단(四端)이 되고, 초목(草木)이나 금수(禽獸)는 편벽된 기질을 가지고 태어났는데, 그리하여 사단(四端)의 이치가 없는 것입니까?【대답】편벽된 기질이 상승하면 또한 사단(四端)과 방불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日者有小出入。致使御者虛歸。追念耿缺。便頭又得情函眷認之至。尤覺感惻。仍審庭候康寧。餘力咿唔。近在小學。區區慰豁。實副願聞。大抵此書。是學聖田地。做人樣子。讀得一段。亦須行得一段。讀得二段。亦須行得二段。毋敢有毫忽放過也。且念左右今雖從事於小子之學。而其體局識量。不害兼補於大人之學。須於事親敬長灑掃應對之事。必一一窮格。知其所以然而不可易。與其所當然而不容已。使之了了分明。間有疑晦。須一一記錄。以俟後日商確也。誠能實心下功。則其間曲折加減。不待人言。而自有斟酌樽節處。況此滅裂伎倆。何足爲容喙也。敢荷不鄙。不容無說。未發時如何用工。未發時。更着甚工夫。朱子曰。未發之前。不可尋覓已發之際。不容安排。但平日敬莊涵養之工至。而無人欲之私以亂之。則其未發也。鏡明水止。其已發也。無不中節。此語明白簡奧。指示學者主敬之方。莫切於此。西銘曰。天地之帥吾其性。是理爲氣之帥也。孟子曰。志一則動氣。是志爲氣之帥也。在天地則理爲氣之帥。在人則志爲氣之帥何。理帥志帥。此天人之別。天無爲人有爲故也。然志是理之有氣力骨子處。則不可謂天人不同也。周子愛曰仁。與韓公博愛之爲仁。語意何如。周子據流而指源。韓子直認流而爲源。所以不同。人得理之專體而生。故有是四端。草木禽獸得偏氣而生。故無此四端之理耶。偏氣上亦有四端之髣髴處。 어자(御者) 말 모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상대방을 가리킨다. 오여주가 출타하여 만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주자는 …… 없을 것이다 이 글은 《주자전서(朱子全書)》 〈답호남제공서(答湖南諸公書)〉에 실려 있는 편지에 있다. 천지의 …… 삼았다 이 글은 장재(張載)의 〈서명(西銘)〉 "천지의 사이에 가득한 것은 내가 형체로 삼았고, 천지의 장수는 내가 성으로 삼았다.【天地之塞吾其體, 天地之帥吾其性.】"라고 하였다. 사랑함을 인(仁)이라고 한다 주돈이(周敦頤)의 《통서(通書)》 성기덕장(誠幾德章) 제3에 나오는 글을 주희(朱熹)가 《근사록》 권1 도체류(道體類)에 수록하였는데, "사랑하는 것을 인이라고 하고, 올바르게 행하는 것을 의라고 하고, 조리 있게 행하는 것을 예라고 하고, 사물의 이치에 통달하는 것을 지라고 하고, 확고하게 지키는 것을 신이라고 한다.【愛曰仁, 宜曰義, 理曰禮, 通曰智, 守曰信.】"라고 하였다. 널리 사랑하는 …… 인(仁)이라고 한다 한유(韓愈)가 지은 〈원도(原道)〉의 첫 문장으로, "널리 사랑하는 것을 인이라고 한다.【博愛之爲仁.】"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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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립에게 보냄 與朴景立 예의를 생략합니다. 생가(生家)의 왕부인(王夫人 조모)의 상사(喪事)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데서 나왔습니다. 삼가 효성스러운 마음이 순수하고 지극한 데다 또다시 풍수(風樹)의 탄식41)을 하는 나머지 그 애통한 슬픔이 분명히 몇 배는 될 것일 터인데 찾아가 위로해 드리고 싶은 마음을 가눌 수가 없습니다. 모르겠습니다마는 어버이를 모시는 복체(服體)42)는 어떠하신지요? 원부(院府)에 계신 형제 어르신들은 애절(哀節)을 어떻게 지탱하고 계신지요? 산지(山地)에 과연 뛰어난 점쟁이가 있어 장례를 지낼 길일을 택하셨는지요? 매번 소식을 듣고 싶었습니다. 의림(義林)은 지난달에 사문(師門)에 일이 있어 영남(嶺南)으로 가서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 어른과 애산(艾山 정재규(鄭載圭)), 계남(溪南 최숙민(崔琡民)),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과 함께 방장(方丈)의 산수(山水) 사이에서 여러 명승지를 달포 가량【旬月】 노닐었습니다. 영남과 호남에서 모인 자들이 역시 무려 백여 명에 이르렀습니다. 다만 그대의 당숙(堂叔)과 그대가 참여하지 못하였으니, 한 사람이 모자란다는 탄식43)이 없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애산(艾山) 어른은 이별할 적에 또한 이러한 뜻으로 간곡하게 부탁하기를 그치지 않으며, "이 말을 나를 위해 경립(景立) 숙질(叔姪)에게 전해주시게.……"라고 하셨습니다. 영남(嶺南)의 발문(發文)에서 말한 것은 이미 들으셨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말하려면 글이 매우 길어질 것이니 제기할 수가 없겠습니다. 오직 훗날 만나서 회포를 풀어볼 뿐입니다. 省禮。尊生庭王夫人喪事。出於千萬料外。伏惟孝心純至且在風樹之餘。其哀痛感愴。必有倍蓰者。爲之慰溯不任。未審侍愉服體何如。院府昆季丈哀節。亦何以支持耶。山地果有宿占。而襄奉亦有定日否。每庸願聞。義林月前有事師門。作嶺南行。得與勉庵丈及艾山溪南松沙諸名勝。作旬月之遊於方丈山水之間。而嶺湖會者。亦無慮百餘人。但尊堂叔及景立不與焉。不能無少一之歎。艾山丈臨別。亦以此意惓惓不已。而至曰。願以此言。爲我告于景立叔姪云云耳。嶺南發文云云。想已聞之矣。言之甚長。不能提起。惟在日後面敍耳。 풍수(風樹)의 탄식 춘추 시대 공자(孔子)가 길을 가는데 고어란 사람이 나무를 안은 채 슬피 울고 있기에 까닭을 물었더니, "나무는 고요하고자 하여도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봉양하고 싶어도 어버이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 하고는 서서 울다가 말라 죽었다 한다. 이를 풍수(風樹)의 정이라 하여 일반적으로 어버이 생전에 모시지 못하고 사후에 슬퍼하는 마음을 뜻하는 고사로 쓴다. 복체(服體) 상중에 있는 사람에게 안부를 물을 때 사용하는 말이다. 한 사람이 모자란다는 탄식 원문은 '소일지탄(少一之歎)'인데, 이는 왕유(王維)의 「구월구일억산동형제(九月九日憶山東兄弟)」라는 시에서 유래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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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립에게 보냄 與朴景立 가을바람이 교외에 불어오니 그대에 대한 그리움이 참으로 간절합니다. 어버이를 모시는 상황이 모두 괜찮은지 모르겠습니다. 생가(生家) 왕부인(王夫人)의 상기(祥期)44)는 따져보면 이미 지났을 것으로 보이는데 병으로 칩거하는 와중에 여러 문제가 발생하여 달려가 위로해 드릴 수가 없었으니, 부끄럽고 슬퍼서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종숙(從叔) 어른과 여러 형제들은 변제(變制)45)하고 길함에 나아가셨는지요? 개확(慨廓)46)한 마음을 어찌 견디는지요? 그저 구구하게 그리워하는 마음이 간절할 뿐입니다. 용연(龍淵)47) 댁과 백순관(伯順寬) 어른, 직부(直夫)의 여러 상황은 모두 평안한지요? 아침저녁으로 따라 모여서 덕이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을 것이니 매번 간절히 흠모해 마지않습니다. 그대는 영특한 자질로 일찍부터 뜻을 세우니 이미 사방의 사우(士友)가 우러러 본 지 오래입니다. 이로부터 계속하여 끝까지 궁구하고 원대하게 된다면 어찌 선대인(先大人)이 당일 간곡하게 말한 지극한 뜻이 아니겠습니까. 손가락 하나로 가려도 태산의 높음을 잃어버릴 수 있고, 한 마디 구름이 태양의 밝음을 덮을 수가 있습니다. 사람이 구구하게 가깝고 자질구레한 계획에 눈앞을 가리워진다면 이것과 무엇이 다르겠으며, 중요하고 큰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 이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부디 천번 만번 거듭 헤아리고 살피는 것이 제가 깊이 바라는 바입니다. 형편없는 자신을 돌아보면 외람되이 선장(先丈)의 당일에 정의(情誼)를 받들어 어둑어둑한 사이에서 매번 지극한 뜻을 헛되이 저버린 것이 두려워서 감히 이렇게 말씀드릴 뿐입니다.【질문】태극(太極)이 움직여서 양(陽)이 생겨나고 고요해지면 음(陰)이 생겨납니다. 양(陽)이 변하여 음(陰)과 합해지면 수화목금토(水火木金土)가 생겨납니다. 여기에서 '생(生)' 자와 묘합(妙合)하여 응결한다는 '응(凝)' 자, 그리고 만물(萬物)을 화생(化生)한다는 '생(生)'자는 모두 어떠한 때를 가리키는 것인지요? 아니면 말할 수 있는 선후(先後)와 차례가 있는 것인지요?【대답】선사(先師)48)께서 일찍이 말씀하시기를, "태극(太極)을 설한 말은 대저 '자리는 비어있고 이치는 채워져 있다【位虛理實】'는 넉 자면 충분히 그 뜻을 다할 수 있다네. 「태극도(太極圖)」 중에서 상면의 1권자(圈子)부터 만물화생(萬物化生)의 권자(圈子)49)까지 어찌 일찍이 확정된 계층과 등급이 있을 수 있겠는가. 이것이 이른바 자리는 비어있다【位虛】는 것이네. 다섯 층의 권자(圈子)는 모두 한결같이 맛이 순백하고 담담하며 원만하고 구족하여 흠결이 없으니 이것이 이른바 이치는 채워져 있다【理實】는 것이네.……"50)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오늘날의 의문을 기다렸다가 말한 것처럼 보이는데 자세히 살펴주시기 바랍니다.이(理)로 말하자면 통체(統體)가 각각 갖추어져 있는데 어떠한 장소가 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심(心)으로 말하자면 통체(統體)가 갖추어져 있는데 어떠한 장소가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다만 보는 바가 어떠한가에 있을 뿐입니다.【질문】'배우는 자는 이 마음을 온전히 체득해야 한다.'51)는 말에서 '체(體)' 자는 아마도 마음으로 마음을 보존하라는 뜻인 듯합니다.【대답】'체(體)'라는 말은 체인(體認)하고 체찰(體察)한다는 뜻의 체(體)입니다. 만약 여기에서 두 마음을 두었다는 혐의가 있다면 진심(盡心), 정심(正心), 구방심(求放心)과 같은 부류에서도 모두 두 마음이 있다는 것이겠습니까?【질문】사람에게 있어서는 성(性)이 되고 몸을 주재하는 것은 심(心)이 됩니다. 몸은 사람의 몸인데 분별하여 설하는 것은 어째서입니까?【대답】성(性)은 품부(稟賦) 받은 것을 말하였기 때문에 사람으로써 말한 것이고, 심(心)은 주재(主宰)하는 것으로 말하였기 때문에 곧 그 몸으로 말한 것입니다.【질문】심(心)은 기(氣)의 정상(精爽)인데, 이 기(氣)는 이오(二五)의 정(精)52)입니다.【대답】이오(二五)의 정(精)은 음양오행(陰陽五行)의 기(氣)로 말한 것이고, 정상(精爽)이라고 한 것은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측면에서 지극히 허령(虛靈)하고 밝은 것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다.【질문】"몸속에 가득한 것이 측은지심(惻隱之心)이다."53)라고 하였는데, 이 심(心)은 미발(未發)을 말하는 것입니까? 이발(已發)을 말하는 것입니까? 특별히 측은지심(惻隱之心)을 거론한 것은 어째서입니까?【대답】몸속에 가득한 측은지심에 어찌 일찍이 미발(未發)과 이발(已發)의 간격이 있겠습니까. 측은지심이 사단(四端)을 포함하는 것은 인(仁)이 사덕(四德)을 포함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질문】배우는 사람들이 성인(聖人)을 배우지 않는다면 그만이겠지만, 배우려고 한다면 모름지기 성인의 기상(氣象)을 익숙하게 완미(玩味)하여야 한다고 하는데 어느 곳에서 성인의 기상을 완미할 수 있습니까?【대답】곧 그 말씀을 완미하면 성인의 기상(氣象)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님이 없다는 말입니다. 하물며 《논어(論語)》 〈향당편(鄕黨篇)〉에서 성인(聖人)을 묘사한 내용은 어떠하겠습니까?【질문】"하나이기 때문에 신묘하다.【一故神】"54)에서, 이 '신(神)'이라는 글자는 오로지 이(理)로 인식할 수도 없고 역시 오로지 기(氣)로 인식할 수도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와 기를 합하여 볼 수 있겠습니까?【대답】할 수 있습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이(理)에 있습니다.일과 사물마다 본래부터 하늘에서 생겨나는 철저하고 바꿀 수 없는 도리(道理)가 있습니다. 사람도 마땅히 그 이치를 따라 머물러야 할 곳에 머무른다면 어떠한 어지러움과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이것이 마음의 주장이 정하게 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질문】고요한 뒤에 만물(萬物) 바라보면 자연스럽게 모두 봄 뜻이 있습니다. 이는 미발(未發) 이전의 기상(氣象)입니까? 이발(已發) 이후의 기상입니까?【대답】여기에서 '고요하다【靜】'는 글자는 동정(動靜)에서 정(靜)의 뜻을 포함하고 있으니 《대학(大學)》에서 '정정(定靜)'55)이라고 한 정(靜)과 같습니다.【질문】성(性)이라는 것은 만물(萬物)의 일원(一原)인데, 이 '성(性)'이라는 글자는 오로지 '인생이정이상(人生而靜以上)'56)을 말한 것인지요?【대답】형기(形氣)의 이전인 일원(一原)으로 돌아가는 것과 형기(形氣)의 이후인 만수(萬殊)에 국한되는 것은 이는 근래 이(理)를 논한 것의 폐단이니 빨리 돌이켜야 할 것입니다.【질문】입도(入道), 수도(修道), 응도(凝道), 달도(達道), 행도(行道)에 구분할 수 있는 글자의 의미가 있습니까? 또 말할 수 있는 차례가 있습니까?【대답】입도(入道)는 배우는 자의 일이고, 수도(修道) 성인(聖人)의 일입니다. 수도(修道)는 사물을 이루는 것으로 말하는 것이고, 응도(凝道)는 자신을 이루는 것으로 말한 것이며, 달도(達道)는 일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고, 행도(行道)는 몸에 대해 말한 것입니다.【질문】호승심(好勝心)과 자긍심(自矜心)과 원망하는 마음과 욕심내는 마음57)을 모름지기 뿌리부터 제거하여 다스리려면 그 제거하는 공부를 시작하는 곳이 미발(未發)의 때입니까, 아니면 이발(已發)의 때입니까?【대답】근본을 바르게 하고 근원을 맑게 하는 공부는 진실로 미발(未發)할 때에 있습니다. 그런데 밖에서 제어하여 그 안을 편안하게 하려 한다면 뿌리를 바르게 하고 근원을 맑게 하는 공부가 또한 이발(已發)할 때에 있지 않다고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질문】성(性)은 탁연(卓然)하여 볼 수 있는 하나의 물건이 아니라고 하였는데, 이 뜻은 마땅히 태극(太極)이 하늘에 걸려 있는 어떤 물건이 아니라는 뜻과 서로 참고하여 살펴보아야 하는 것입니까?【대답】이른바 '참고하여 살펴본다'는 것은 아마도 무극태극(無極太極)의 의미에서 본 적이 있는 듯합니다.【질문】근세(近世)에도 간혹 이(理)를 주장하는 이가 있고, 간혹 기(氣)를 주장하는 이가 있습니다. 이(理)를 주장하면 그 결과가 어떠하며 기(氣)를 주장하면 그 결과가 어떠합니까?【대답】이(理)가 기(氣)의 주(主)가 된다는 것은, 마치 임금이 신하를 통솔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통솔하고 지아비가 아내를 통솔하는 것과 같습니다. 기(氣)가 이(理)의 주(主)가 된다는 것은 마치 신하가 임금의 지위를 빼앗고, 자식이 아버지의 지위를 빼앗고, 아내가 지아비의 지위를 빼앗는 것과 같으니 그 득실(得失)을 볼 수 있습니다.【질문】선유(先儒)께서 말씀하시기를, "처음에는 보이고 들리는 곳에 나아가 공부했다면, 나중에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곳에서 공력을 쏟아야 바야흐로 세밀해질 수 있다. 너희들은 평일에 가르침을 들으면 반드시 보지 않고 듣리지 않는 미발(未發)할 때의 공부가 있어야만, 바야흐로 보이고 듣리는 이발(已發)할 때에도 힘을 얻을 수 있다."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으로 참고하여 본다면 아마도 서로 반대되는 듯합니다.【대답】각각 그 기질(氣質)의 아름다움과 공부(功夫)의 깊이에 따라서 알려주어야 하는 것이니, 그 말에 대략의 완급(緩急)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공부(功夫)의 차서(次序)로 말하자면 선유(先儒)의 말씀은 진실로 정당하고, 체용(體用)의 완급(緩急)으로 말하자면 평소에 들은 것이 또한 긴요하고 절실할 것입니다.【질문】하늘의 도(道)를 세운 것을 음(陰)과 양(陽)이라고 하고, 땅의 도를 세운 것을 부드러움【柔】과 굳셈【剛】이라고 하고, 사람의 도를 세운 것을 인(仁)과 의(義)라고 합니다. 하늘은 기(氣)로 말한 것이고, 땅은 형(形)으로 말한 것이고, 사람은 덕(德)으로 말한 것이라 하는데 어떠한 것인지요?【대답】천지(天地)의 주된 역할은 사물을 생성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氣)와 형(形)으로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천지(天地)와 같이 사물을 생성하지 못하고 오직 사물에 상응하는 법칙이 있을 뿐입니다. 그리하여 이(理)로 말한 것입니다.【질문】수(水)는 음(陰)이고 화(火)는 양(陽)입니다. 수(水)는 밖이 어두우나 안이 밝아서 양(陽)이 음(陰) 가운데 있습니다. 화(火)는은 밖이 밝으나 안은 어두워서 음(陰)이 양(陽) 가운데 있습니다. 이것으로 살펴보면 음양(陰陽)은 서로 그 근본이 되는데, 수(水)화 화(火)가 서로를 수용하지 못하는 것은 어째서입니까?【대답】이(理)에 있어서는 서로 수용하겠지만 기(氣)에 있어서는 서로 수용하지 않습니다.【질문】정자(程子)가 말하기를, "귀신(鬼神)이라는 것은 조화의 자취이다."58)라고 하였습니다. 장자(張子)가 말하기를, "귀신은 두 기(氣)의 양능(良能)이다."59)라고 하였습니다. 자취로 기(氣)를 말하면 이(理)와 기(氣)를 겸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요?【대답】귀신(鬼神)이라는 두 글자는 본래 이(理)와 기(氣)가 묘하게 합하여 하나로 된 것입니다. 지금 자취가 기(氣)에 속한다고 하여 양능이 이(理)에 속한다고 하면 아마도 지리(支離)하고 구차(苟且)한 데 빠지게 될 것입니다.【질문】"담일(湛一)이 기(氣)의 본체이다."60)라고 하는데 기(氣)의 정상(精爽)과는 어떠합니까?【대답】담일(湛一)은 기(氣)의 체단(體段)이니 정상(精爽)은 그 영처(靈處)입니다.【질문】"하나이기 때문에 신묘하다."라고 하였는데, 이 부분에서 몸속에 가득한 것이 측은지심이라는 말과 함께 본다면 어떠합니까?【대답】이 '일(一)'이라는 글자는 천지만물(天地萬物)을 들어 말한 것이기 때문에 아래의 글에서는 사람의 몸을 가지고 비유하였습니다.【질문】금(金)은 인(寅)에서 끊어지고, 수(水)와 토(土)는 사(巳)에서 끊어지고, 목(木)은 신(申)에서 끊어지고, 화(火)는 해(亥)에서 끊어집니다. 이 뜻은 상극(相克)으로서 본 것입니까? 신(申)은 서방(西方)으로 금(金)이 되고, 해(亥)는 북방(北方)으로 수(水)가 되면 목(木)이 끊어지는데, 화(火)가 끊어지는 것도 비슷합니다. 그런데 금(金)이 끊어지면 목(木)과 토(土)도 끊어지는데 그 뜻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대답】목(木)은 화양(火陽)입니다. 양(陽)이면 자신을 극(克)하는 곳에서 끊어지게 됩니다. 금(金)은 수음(水陰)입니다. 음(陰)이면 자신을 극(克)하는 곳에서 끊어지게 되니 대개 음양(陰陽)의 성질이 그러한 것입니다.【질문】"주인이 증한다.【主人贈】"61)는 것은 대저 주인(主人)이 그 부친을 존경하여 물건을 주는 의(義) 인지요? 아니면 망인(亡人)이 후토(后土)를 존경하는 의(義)인지요? 주(註)에서는, "검은색 비단 6단과 담홍색 비단 4단【玄六纁四】"62)이라고 하였는데 6단과 4단의 검은색과 담홍색 비단은 천지(天地)를 형상화한 것인데 모두 음수(陰數; 짝수)를 쓴 것은 어째서인지요? 또한 장(丈) 8척(尺)으로 한정한 것은 무슨 의미인지요?【대답】기석례(旣夕禮)63)에서는, '널이 방문(邦門)까지 이르면 군주가 재부(宰夫)를 파견하여 현훈 두 색깔의 비단 1속(束)을 보낸다.'라고 하였고, '하관(下棺)을 마치고 나서는 주인이 이 현훈을 사용하여 묘(墓)의 들에서 죽은 분에게 준다.'64)라고 하였습니다.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가 말씀하시기를, "후세에는 임금이 하사하는 예가 없는데도 《가례(家禮)》에 이 예를 기재한 것은 애례존양(愛禮存羊)65)의 뜻이다"라고 하였습니다.【질문】누군가 묻기를, "8세에 어머님을 여의고66) 서모(庶母)에게 【어머니의 역할이】 승섭(承攝) 몸은 이미 길러짐을 입었는데 【서모가 돌아가신다면】 복(服)을 어떻게 해야만 정례(情禮)에 합당하겠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대답하기를, "아들이 있는 경우, 중자(衆子)67)는 시마복(緦麻服)을 입는 뜻으로 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미 부후(父後)68)가 되었는데 서모(庶母)에게 아들이 없으면 응당 복(服)이 없습니다. 또 《예기(禮記)》 〈잡기(雜記)〉에는, '정실부인과 첩의【主妾】69)의 상(喪)에는 부군이 직접 부제(祔祭)를 지낸다,'고 하였습니다. 그 주(註)에는, '본처【女君】가 죽으면 첩이 본처를 대리한다. 이 첩이 죽으면 남편이 그의 상을 주관하고 합사제(合祀祭)도 남편이 직접 주관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스스로 주관한다는 글은, 《가례(家禮)》의 〈팔모도(八母圖)〉에서 자신을 사랑해주는 것에 따라 복이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의리상 5월의 복(服)을 입는 제도로 참고하여 살펴본다면 【어머니의 역할을】 승섭(承攝)한 은혜가 있고 또한 길러진 은혜가 있으니 다른 사례와 구별됩니다. 아마도 당연히 5월 복에서 줄여서는 안 될 듯합니다.【대답】복이 없다면 지나치게 가벼운 것이고 5월이면 지나치게 무겁습니다. 알지 못하겠으나 3월이면 어떻겠습니까?【질문】《가례(嘉禮)》 〈분상(奔喪)〉조에, "이미 장사 지냈으면 먼저 묘소로 간다.……"라고 하였습니다. 효자(孝子)는 부모님에 대하여 그 용모와 음성을 항상 마음에 두고 눈앞에 계신 듯이 하는데, 갑자기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황황망망(皇皇望望)한 마음 때문에 먼저 체백(體魄)70)을 모시는 것입니까?【대답】예(禮)는 영좌(靈座)가 우선이나 정(情)은 체백(體魄)이 더 중합니다.【질문】명덕(明德)은 이(理)와 성(性)과 심(心)에 있어서 치우쳐 말할 수가 없는데, 어떻게 말해야 그 본래의 뜻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마음에서 얻은 이(理)를 명덕(明德)이라고 하는 것인지요?【대답】이(理)는 심(心)에서 얻어서 성정(性情)을 포괄하는 것은 덕(德)입니다.【질문】장자(張子)가 말하기를, "인(仁)을 하려고 하되 아직 배움에 뜻을 두지 않았다."71)라고 하였는데 배움에 뜻을 두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인(仁)을 하려 한다고 말할 수 있는지요?【대답】지금 어떤 사람이 있는데, 어버이에게 효도하고 형제와 우애롭게 지내는데 학문(學問)과 공부(功夫)를 하지 않는 사람이 그러한 경우입니다.【질문】인(仁)은 애(愛)가 미발(未發)한 것인데, 인(仁)을 다하지 못하는 것은 어째서입니까?【대답】치우치게 말하였으므로 인(仁)을 다할 수 없는 것이니 하물며 정(情)을 성(性)이라 인식할 수 있겠습니까. 秋風動郊。懷人政切。未審侍履珍勝。生王庭祥期。計已經過。而病蟄多故。末由趨慰。愧愴何言。從叔丈昆季變制就吉。慨廓何堪。只切區區溯往之情。龍淵宅及伯順寬甫直夫諸節。皆爲平安。晨夕聚從。爲德不孤。每切馳仰。賢者以雋異之姿。早年立志。已有四方士友之望久矣。從此接續卒究遠大。豈非先大人當日惓惓之至意耶。一指之蔽而泰山失其高。寸雲之翳。而太陽失其明人之蔽於目前區區近小之計。而不知有重且大焉者。何以異此也。千萬諒察。是所深望。顧此無狀。猥受先丈當日之誼。而幽明之間每恐其虛負至意。故敢此及之耳。太極動而生陽。靜而生陰。陽變陰合。而生水火木金土。此等生字及妙合而凝之凝字。化生萬物之生字。皆指何時乎。抑有先後次第可言。先師嘗曰。太極說話。大抵位虛理實四字。足以盡之。圖中上面一圈至萬物化生圈。曷嘗有層等確定。此所謂位虛也。五層圈子。皆一昧白淡淡底。圓足無欠缺底。此所謂理實也云云。此言似爲等待今日之疑而發。幸取詳之。以理言。則統體各具。不可謂有方所。以心言。則統體具。亦不可謂無方所。只在所見之如何耳。學者全體此心。體字似有以心存心之意。體是體認體察之體也。若以此爲有二心之嫌。則盡心正心求放心之類。皆可謂有二心耶。在人爲性。主於身爲心。身卽人身也。而分別說。何耶。性是稟受說。故以人言。心是主宰說。故卽其身而言。心者氣之精爽。此氣是二五之精。二五之精。以陰陽五行之氣言。精爽之云。就陰陽五行上。指其至靈至明者而言。滿腔子是惻隱之心。此心以未發言耶。以已發言耶。特擧惻隱何耶。滿腔子惻隱。何嘗有未發已發之間。惻隱之包四端。猶仁之包四德。學者不學聖人則已。欲學之。須熟玩味聖人氣象。何處玩味氣象耶。卽其言。玩其辭。無非氣象之可見。況如鄕黨篇之畵聖人者乎。一故神。此神字。不可專認爲理。亦不可專認爲氣。合理與氣而看如何。得之。然所重在理。事事物物。本自有天生鐵定不易底道理。人當各循其理而止其所止。則有何攪亂之有。此所以作得心主定。靜後見萬物。自然皆有春意。此是指未發前氣象耶。已發後氣象耶。此靜字。是包動靜之靜。如大學定靜之靜。性者萬物之一原。此性字。專指人生而靜以上而言耶。歸一原於形氣之前。局萬殊於形氣之後此近日論理之獘。亟宜反之。入道修道凝道達道行道。有字義之可分。又有次序之可言耶。入道是學者事。修道是聖人事。修道是成物上說。凝道是成己上說。達道是事上說。行道是身上說。克伐怨欲。須從根上除治。其除治功夫下手處。在於未發時耶。已發時耶。端本淸源之功。固在於未發時。而制之於外。以安其內。則端本淸源之功。亦不可謂不在於已發時矣。性不是卓然一物可見者。此義當以太極非懸空底物之意。相參看耶。所謂參看者。恐有見於無極太極之義。近世或有主理。或有主氣。主理則其末委何如。主氣則其末委何如。理爲氣主。如君之統臣。父之統子。夫之統妻。氣爲理主如臣奪君位。子奪父位。妻奪夫位。其得失可見矣。先儒說曰。先且就睹處與聞處做了。後就不睹不聞處用功。方能細密。小子平日聞命。則必有不睹不聞未發時工夫。方於睹聞已發時。有所得力。以此參看。則似爲相反。各隨其氣質美惡功夫淺深而告之。其言不得不略有緩急。以功夫次序言。則先儒說固爲正當。以體用緩急言。則平日之聞。亦爲緊切。立天之道。曰陰與陽。立地之道。曰柔與剛。立人之道。曰仁與義。天以氣言。地以形言。人以德言。何耶。天地主生物。故以氣形言之。人則不能生物如天地。而惟有應物之則。故以理言之。水陰火陽。而水則外暗內明。陽在陰中也。火則外明內黑。陰在陽中也。以此觀之。陰陽互爲其根。然而水火不相容者。何耶。理則相涵。而氣不相容。程子曰鬼神者造化之迹張子曰鬼神者二氣之良能迹言氣。能兼理氣言否。鬼神二字。本是理氣合一之妙。今以跡屬氣。以能屬理。恐涉支離苟且。湛一氣之本。與氣之精爽。何如。湛一氣之體段。精爽其靈處也。一故神。此處。合以滿腔子惻隱之心看。如何。此一字擧天地萬物而言。故下文以人身取譬。金絶於寅。水土絶於巳。木絶於申。火絶於亥。此義以相克看耶。申是西方而爲金。亥是北方而爲水。則木絶火絶似然。而於金絶木土絶。不會其意。木火陽也。陽則絶於克我之地。金水陰也。陰則絶於我克之鄕。蓋陰陽之性然矣。主人贈。大抵贈是自主人而尊敬厥考之義耶。無乃自亡人而尊敬后土之義耶。註曰玄六纁四。六四玄纁。是天地之象。而皆用陰數何耶。且限以丈八尺。何義耶。旣夕禮。柩行至邦門。公使宰夫贈玄纁束。旣窆。則主人用以贈死者於墓之野。沙溪曰。後世雖無君贈之禮。而家禮存之。疑亦是存羊之義。人問八歲先妣見背。有承攝之庶母。而身已被養。則其服當何如合於情禮耶。曰以有子者。衆子服緦之義。觀之。旣爲父後。而庶母又無子。則應無服。又以雜記所謂主妾之喪。則自祔。註女君死。妾攝如君。此妾死。則君主其喪。其祔祭。自主之文。與八母圖自少慈己者。義服五月之制。參看。則有承攝之恩。又有被養之恩。與他自別似當不減於五月耳。無服則過於輕。五月則過於重。未知以三月何如。奔喪條。旣葬則先之墓云。孝子於父母。其容貌聲音。常在心目。而奄忽不見。有皇皇望望之情。故先之體魄所藏否。以禮則靈座爲先。以情則體魄爲重。明德於理於性於心。不可以偏言。則當何云而得其本旨耶。曰理之得於心者。謂明德。理之得於心而該性情者。德也。張子曰。欲仁而未志於學。其未志於學者。有何欲仁之可言耶。今有一樣人孝於親。友於兄弟。而無學問功夫者。是也。仁是未發之愛。則不能盡仁何耶。偏言故不能盡仁。況認情爲性。 상기(祥期) 상제(祥祭)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상제는 상(喪)을 벗는 제사인데 소상(小祥)과 대상(大祥)이 있으나 대개 대상을 가리킨다. 변제(變制) 우제(虞祭), 연사(練祀), 상제(祥祭), 담사(禫祀) 등 상기(喪期)의 경과에 따라 상복의 제도를 가벼운 쪽으로 바꾸어 가는 것을 말한다. 개확(慨廓) 상(喪)을 당하여 슬퍼하는 모습을 표현한 말로, 개(慨)는 소상(小祥)을 당하여 세월이 빠른 것을 탄식하는 마음을 말하고, 확(廓)은 대상(大祥) 때 정의(情意)가 허전한 것을 표현한 말이다. 《禮記 壇弓上》 용연(龍淵) 이용연(李龍淵, 1897~?)으로 자는 일용(用日), 호는 경당(敬堂)이다. 선사(先師) 여기에서는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을 가리킨다. 태극도(太極圖) …… 권자 「태극도(太極圖)」는 총 오층의 권역으로 나뉘어 있다. 위가 제 1층으로 태극 권역이며, 그 아래 2층이 음양 권역, 그 아래 삼층이 오행 권역, 그 아래 4층이 남녀 권역, 그 아래 5층이 만물 권역이다. 권역이란 둥근 원을 말한다. 태극(太極)을 설한 …… 것이네 이 말은 《노사집(蘆沙集)》 권12, 「김경범의 문목에 답함(答金景範問目)」의 첫 번째 문목에 실려 있다. 배우는 …… 한다 정호(程顥)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전체적으로 존양(存養)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오(二五)의 정(精) 음양(陰陽)과 오행(五行)의 정체(精體)를 가리킨다. 몸속에 가득한 것이 측은지심이다 정자(程子)가 한 말로, 《맹자집주(孟子集註)》 「공손추상(公孫丑上)」의 주석에 해당 내용이 실려 있다. 하나이기 때문에 신묘하다 장재(張載)의 《정몽(正蒙)》 〈태화편(太和篇)〉에, "하나의 물(物)에 두 개의 체(體)가 있는 것이 기(氣)이다. 하나이기 때문에 신묘하고, 둘이기 때문에 변화한다. 이것이 천(天)이 삼(三)이 되는 이유이다.【一物兩體, 氣也. 一故神, 兩故化. 此天之所以參也.】"라는 말이 나온다. 음(陰)과 양(陽)이라는 상이한 두 개의 요소가 하나의 존재 속에 들어 있기 때문에 신묘하게 서로 감응하면서 변증법적으로 발전한다는 말이다. 정정(定靜) 《대학장구(大學章句)》에 나오는 내용으로, '정한 뒤에 고요할 수 있다【定而后能靜.】"라고 하였다. 인생이정이상(人生而靜以上) 명도(明道) 정호(程顥)가 "사람이 태어나기 이전에는 성을 말할 수 없다. 성이라고 말할 때에는 이미 그것은 성이 아니다.【人生而靜以上不容說. 才說性時, 便已不是性也.】"라고 한 말에 대해서, 주희(朱熹)가 제자들의 질문을 받고 답변한 바가 있다. 호승심과 …… 욕심내는 마음 원문은 '극벌원욕(克伐怨慾)'인데, 각각 호승심(好勝心)과 자긍심(自矜心)과 원망하는 마음과 욕심내는 마음을 가리킨다. 《논어》 〈헌문(憲問)〉에서, 공자의 제자 원헌이 '극벌원욕이 행해지지 않게 하면 인(仁)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克伐怨欲不行焉, 可以爲仁矣.】'라고 자부하며 물었을 때, 공자는, "어려운 일이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인(仁)인지는 알지 못하겠다.【可以爲難矣, 仁則吾不知也.】"라고 대답하였다. 귀신이라는 것은 조화의 자취이다 이 내용은, "천지에 세워도 어그러지지 않으며, 귀신에게 질정하여도 의심할 것이 없다.【建諸天地而不悖, 質諸鬼神而無疑.】"라는 경문에 대해서, 주희는 "천지는 도요, 귀신은 조화의 자취이다.【天地者道也, 鬼神者造化之迹也.】"라고 해설한 것이 《중용장구(中庸章句)》 제29장에 보인다. 귀신은 두 기(氣)의 양능(良能)이다 이 내용은 《근사록》 〈도체〉 등에서 천지의 공용【天地之功用.】, 조화의 자취【造化之迹】, 두 기의 양능【二氣之良能.】 등의 개념로 귀신을 설명하고 있다. 담일(湛一)이 기(氣)의 본체이다 장재(張載)의 《정몽(正蒙)》 〈성명(誠明)〉에, "담일이 기의 본체이고, 공취가 기의 충동이다.【湛一氣之本, 攻取氣之欲.】"라는 명제가 나온다. 주인이 증한다 《예기》 「잡기」의 주에 이르기를, "곽(槨) 안에 물품을 넣어서 죽은 자를 송별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검은색 비단 6단과 담홍색 비단 4단 《가례》 〈상례(喪禮)〉에, 하관할 때에 주인(主人)이 광중(壙中)에 검은색 비단 6단과 담홍색 비단 4단【玄六纁四】을 넣되, 주인이 가난하여 수량을 구비할 수 없다면 검은색 비단과 담홍색 비단을 각각 1단씩만 넣어도 된다고 한 것을 가리킨다 기석례(旣夕禮) 《의례》의 편명. 〈사상례(士喪禮)〉의 하편(下篇)에 해당하는 것으로 장사(葬事) 지내기 전에 치러야 할 의식과 절차를 기록하였다. 하관을 …… 준다 《집설》에 "영구가 길을 떠나 성문에 이르면 공(公 제후왕)이 재부(宰夫)로 하여금 현훈의 묶음을 주도록 하니, 이미 하관을 한 뒤에 이 현훈을 사용하여 묘(墓)의 들에서 죽은 분에게 준다.【柩行至城門, 公使宰夫贈玄纁束. 旣窆, 則用此玄纁, 贈死者於墓之野.】"라고 보인다. 애례존양(愛禮存羊) 《논어(論語)》 〈팔일(八佾)〉에 "자공이 희생양을 없애려 하자, 공자께서 '사야, 너는 그 양을 아까워하느냐? 나는 그 예를 아까워한다.' 하였다.【子貢欲去告朔之餼羊, 子曰: "賜也, 爾愛其羊, 我愛其禮."】"라고 한 데서 나온 고사로, 예를 보호하기 위해 형식일 뿐이라도 옛 제도를 보존한다는 말이다. 여의고 원문은 '견배(見背)'인데 친족의 죽음을 말할 때 해당 표현을 쓴다. 중자(衆子) 적자(適子), 즉 맏아들을 제외한 다른 모든 아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부후(父後) 아버지의 후계 즉 적자를 말한다. 정실부인과 첩의 정처(正妻)가 죽어서 정처의 역할을 대신하는 첩을 말한다. 여기에서는 정실 부인과 첩을 동시에 가리킨다. 체백(體魄) 죽은 시신과 혼백을 일컫는 말로, 곧 무덤에 묻힌 송장을 가리킨다. 인(仁)을 하려고 하되 아직 뜻을 배움에 두지 않았다 이 말은 《논어》 「선진(先進)」 19장의 주(註)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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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자경【관호】에게 답함 答閔子敬【寬鎬】 이별한 뒤에 소식을 갖가지로 주고받지 않은 것이 아니지만, 벗을 떠나 쓸쓸히 살아가는 감회는 마치 풀을 베어도 다시 자라나는 것과 같습니다. 뜻밖에 보내주신 편지72)는 위로됨이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하물며 문목(問目) 한 장은 핵심적이고 절실한73) 말이 아님이 없습니다. 읽어보면 황홀하여 마치 한 공간에서 무릎을 마주 대고 있는 것 같아 그 맛이 한량이 없었습니다. 보내주신 시편은 더욱 정성스럽고 간곡한 뜻을 볼 수 있어서 읊조리기를 그칠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부탁이 과중하여 제가 감당할 수 없는 점이 있습니다. 서로 아는 입장에서 어찌 이러한 일이 있겠습니까. 문목(問目)에 대해서는 삼가 저의 뜻으로 답을 하여 보내드립니다만, 확실한 결론74)으로 삼지는 말아 주시고 더욱 자세히 생각하여 의견을 알려주시기 바랍니다.고요할 때 잠이 많은 것은 지(志)가 기(氣)를 통솔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고인(古人)이 정신을 깨우치는75) 말을 한 이유입니다. 그런데 정신을 깨우치는 것은 또한 어떻게 공부해야 하겠습니까? 다만 용모를 움직임에 거만함을 멀리하고76) 생각을 정돈하면 자연스럽게 깨어 있게 되어 잃어버린 마음을 수습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이미 잃어버렸다면 구하는 사람은 누구이겠습니까? 무릇 잃어버린 것은 마음이고, 구해야 할 것 역시 마음입니다. 이것은 서로 대하고 있는 두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이것은 잠깐 놓아버리면 구할 수 없고 잠깐 구하면 방일하게 되지 않게 되는 것은 마치 추위와 더위가 번갈아 오는 것과 같습니다. "인심(人心)이 스스로 움직이면 그것은 곧 놓아버리는 것이다."77)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정부자(程夫子)의 말씀이지 공자(孔子)의 말씀이 아닙니다. 보내주신 편지에서 단지 '부자왈(夫子曰)'이라고 일컬은 것은 아마도 구별이 없다는 혐의가 있을 듯합니다. 다만 정자(程子)가 인심(人心)에 대해 말한 것은 사람의 마음을 통틀어 말한 것입니다. 위대한 순(舜) 임금이, 인심(人心)의 형기(形氣) 측면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다. 別後消息。非不種種。離索之懷。如剗草復生。料外心畵。慰不可言。況問目一紙。無非肯緊親切語。讀之。怳然若同堂促膝。趣味津津。瓊律尤見懇惻之意。諷咏無已。但見屬過重。有令人不敢當處。相悉之地。豈容有是。問目謹以鄙意答去。勿爲歸宿。更加細思。幸以見示也。靜時多睡。此是志不率氣之故。此古人所以有喚醒之語。然喚醒亦着何功夫。只是動容貌。整思慮。則自然惺惺。求放心。心旣放。求之者誰。夫放之者心也。求之者亦心也。此非有兩心相對。只是纔放不求。纔求不放。如寒暑相禪人心自由。便放去。此是程夫子言。非孔子言。來諭但稱夫子曰者。恐嫌無別。但程子之言人心。是統言人之心也。大舜之言人心。是指形氣一邊說。 편지 원문은 '심화(心畵)'인데 이는 《법언(法言)》의, "말은 마음의 소리요, 서예는 마음의 그림이다."고 한 데서 나왔다. 핵심적이고 절실한 원문은 '긍긴(肯緊)'인데, 긍경(肯䋜)의 뜻으로, 뼈와 근육이 한데 엉켜서 칼을 대기가 어려운 부위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이른다. 《장자(莊子)》 〈양생주(養生主)〉에 "소의 관절 사이에는 빈틈이 있고 나의 칼날은 두께가 없으니, 두께가 없는 그 칼을 빈틈이 있는 관절 사이에 집어넣으면, 그 공간이 넓고 넓어 칼을 놀릴 때 반드시 여유가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근육과 뼈가 엉켜 있는 복잡한 부위에도 칼날이 다쳐 본 적이 없는데, 더구나 큰 뼈와 같은 것이겠는가."라는 백정의 말이 있다. 확실한 결론 원문은 '귀숙(歸宿)'인데 자리 잡고 머무른다는 의미이다. 정신을 깨우치는 당(唐)나라 때 서암(瑞巖)이란 승려가 매일 스스로 자문자답(自問自答)하기를, "주인옹아! 깨어 있느냐?" "깨어 있노라."라고 하였다 한다. 《심경(心經)》에서, 마음이 외물(外物)에 이끌리지 않도록 시시각각(時時刻刻) 일깨우는 지경(持敬) 공부의 한 방법이다. 용모를 움직임에 거만함을 멀리하고 증자(曾子)가 "군자가 도에 귀한 것 세 가지가 있으니, 용모를 움직임에 포만함을 멀리하며 안색을 바르게 함에 믿음에 가깝게 하며 말을 냄에 비루하고 도리에 어긋남을 멀리하라.【君子所貴乎道者三, 動容貌, 斯遠暴慢矣, 正顔色, 斯近信矣, 出辭氣, 斯遠鄙倍矣.】"라고 한 것을 이른다. 《論語 泰伯》 인심(人心)이 …… 놓아버리는 것이다 《이정유서(二程遺書)》 권18 〈유원승수편(劉元承手編)〉에 나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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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여주에게 답함 答吳汝周 매양 그대를 볼 때마다 자질이 훌륭하고 재주가 빼어난 것이 비할 만한 이가 드물었으니 마음으로 아꼈습니다. 편지 끝에서 보여준, "유약(柔弱)하다는 병통은 가장 변화하기 어렵습니다.……"라는 것은 그대가 근심하는 바이지만, 이는 나의 숙증(宿症)이기도 합니다. 20년 전부터 주제 넘게 이 일에 대해 뜻을 두었으나 아직까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것은 모두 '유약(柔弱)'이라는 두 글자가 빌미가 되었을 따름입니다. 스스로 자신을 위해 도모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여주(汝周)를 위해 도모할 수 있겠습니까? 청컨대 일찍이 경험한 자로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차례에 따라 학문을 하지 않으면 인(仁)의 방법을 알 수가 없으니 이른바 구구하게 힘을 쓰는 자는 단지 사사로이 임시로 미봉책79)을 쓰게 되니 하물며 중간에 끊어지면서 따르는 경우에는 어떠하겠습니까? 기질(氣質)은 갑자기 변하는 것이 아니며, 학문은 갑자기 논할 만한 일이 아니니 어찌 지리멸렬한 것으로 능히 명료히 분별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한갓 기질(氣質)의 탓으로 돌리는 일이 불가능합니다. 아! 이전의 실수를 생각해보아도 후회막급하니 오직 여주(汝周)는 나이가 젊고 힘이 있으니 바로 지금이 시작할 만한 때이니, 나를 전철 삼아 경계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대저 사람의 병은 오직 스스로 알지 못함이 근심이니, 이미 그 병을 안다면 이는 곧 병을 치료할 약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물며 성현(聖賢)의 경(經)과 현인(賢人)의 전(傳)은 한 글자 한 구절이 나에게 약석(藥石)이 될 뿐만이 아닙니다. 《중용(中庸)》에서, "과연 이 방법 대로만 한다면 비록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반드시 명석해지고 비록 유약한 사람이라도 반드시 강해진다."80)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이른바 도(道)라는 것은 어떠한 도입니까? 찾아 헤아려 여기에서 터득함이 있다면 힘을 쓰는 방법을 분명하게 알 것입니다. 《주역(周易)》의 「풍뢰 익괘(風雷益卦) 상(象)」에서는, "군자가 선을 보면 옮겨가고, 허물이 있으면 고친다."라고 하였고, 「뇌천 대장(雷天大壯)」에서는, "군자는 예가 아니면 처하지 않는다."라고 하였습니다. 무릇 이 세상에가 가장 분발(奮發)하는 것으로 우레와 같은 것이 없고, 가장 빠른 것으로 바람 같은 것이 없습니다. 곧 군자가 허물을 고치고 선함으로 옮겨가는 이유와 예가 아니라면 처하지 않는 공을 알 수 있습니다. 바라건대 여주(周以)는 《중용(中庸)》에서 말한 것으로 그 과정을 세우고, 《주역(周易)》에서 말한 것으로 기력(氣力)을 세워 부지런히 노력하여 한갓 기질(氣質)의 품부(稟賦)를 받은 것에 허물을 돌리지 않는다면, 전날에 발호(拔扈)한 것이 오늘날 신복(臣僕)이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어찌 알겠습니까? 每覵左右。質美才高。鮮見其比。心乎愛矣。尾示柔弱之病。最難變云云。子之所患。是我宿症也。二十年前。妄意於此事。尙今未進一步者。皆柔弱二字爲之祟耳。自家猶不能爲自家謀。安能爲汝周謀耶。請以曾絰者言之。學不循序。仁不知方。而所謂區區用力者。只是安排牽補之私。而況又間斷隨之乎。氣質非遽變之物。學問非遽議之事。而豈滅裂者之所能了辨哉。此不可徒歸咎於氣質也。嗚乎。追念前失。悔恨莫追。惟汝周年力甚富。正是發軔之日。以我爲前車之鑑如何。大抵人之病。惟患不自知。旣知其病。則卽此便是治病之藥。況聖經賢傳。一字一句。無非吾藥石哉。中庸曰。果能此道矣。雖愚必明。雖柔必剛。所謂此道。是何道也。尋繹而有見於此。則用力之方。躍如矣。易之風雷益曰。君子以見善則遷。有過則改。雷天大壯曰。君子以非禮不履。夫天下奮發之物。莫如雷迅疾之物莫如風則君子所以遷善改過。非禮不履之功。可知矣。願汝周以中庸所言。立其課程。以大易所言。立其氣力。勉勉孜孜。毋徒歸咎於氣稟。則安知前日之拔扈。不爲今日之臣僕耶。 임시로 미봉책 원문은 '견보(牽補)'인데, 담쟁이덩굴을 끌어다가 새는 지붕을 덮는다는 견라보옥(牽蘿補屋)의 준말이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강구하지 않고 임시로 미봉책을 쓴다는 의미이다. 중용(中庸)》에서 …… 강해진다 《중용장구(中庸章句)》 20장의 내용으로, 전문은 다음과 같다. "남이 한 번에 잘하면 나는 그것을 백 번이라도 하고, 남이 열 번에 잘 하면 나는 그것을 천 번이라도 할 것이다. 과연 이 방법대로 잘 행하기만 한다면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반드시 밝아지고, 아무리 유약한 사람이라도 반드시 강해질 것이다.【人一能之, 己百之, 人十能之, 己千之. 果能此道矣, 雖愚必明, 雖柔必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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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에 들어가 읊다 入金剛山吟 삼신산이 해동에 있다고 들었는데 聞說三神在海東이 산의 절승이 그와 같구나 此山絶勝與之同일천 봉우리 하얗게 모여 눈이 덮인 듯 千峯白攢疑封雪일만 폭포 다투어 떠들어 세찬 바람 이네 萬瀑爭喧怒起風금강 개골 풍악 봉래로 때로 번갈아 변하고 剛骨楓萊交幻際유가 선가 도가 불가가 그 중에 왕래하네 儒仙道釋往來中산신령 또한 오늘날의 세태를 알아서 嶽靈亦識今時態공원을 만들어 세계로 통하게 하였네 許作公園世界通 聞說三神在海東, 此山絶勝與之同.千峯白攢疑封雪, 萬瀑爭喧怒起風.剛骨楓萊交幻際, 儒仙道釋往來中.嶽靈亦識今時態, 許作公園世界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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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훈사에서 짓다 題表訓寺 누가 이 절을 창건했는지 誰人創此寺일천 년이나 되었다 하네 云距一千年왕실에서 은사를 내린 것은 恩賜來王室법사들이 변경을 진압해서네 法師鎭徼邊누대는 꿩이 나래를 편 듯하고 樓臺飛翬翼종경소리는 용의 잠을 깨울 듯하네 鍾磬徹龍眠멋진 풍경을 시로 쓰기 어려우니 形勝難題得재주 없어 허연93)에게 부끄럽네 不才愧許燕 誰人創此寺, 云距一千年.恩賜來王室, 法師鎭徼邊.樓臺飛翬翼, 鍾磬徹龍眠.形勝難題得, 不才愧許燕. 허연(許燕) 당 현종(唐玄宗) 때 허국공(許國公) 소정(蘇頲)과 연국공(燕國公) 장열(張說)을 병칭한 것이다. 이들은 문장으로 세상에 유명해 당시 사람들이 연허 대수필(燕許大手筆)이라고 일컬었다. 《新唐書 卷125 蘇頲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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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오년255) 동지 庚午冬至 살면서 동지를 몇 번 만났나 生逢幾南至만날 때마다 새 시를 지었네 逢輒賦新詩무엇을 하려고 시를 짓는가 賦詩欲何爲천시를 바꾸어 보려 해서지 爲有改天時나라의 운도 사람 일과 함께 邦運與人事하늘과 함께 변해 옮겨가네 與天同推移경건한 마음으로 하늘에 빌며 虔心禱上天동지의 기약 묵묵히 기다렸지 黙待日至期세월 또한 이미 오래되었건만 歲月亦已久소식은 묘연해 알 길이 없네 消息杳莫知운은 떠나 돌아오지 않으려나 運將去不回덕은 어찌 이리도 노쇠했는가 德何老且衰그 시가 도움을 못 주느니 與其詩無益차라리 다시 쓰지 않으리라 寧將不復爲이제부터 더욱 일도 줄어서 從此尤省事산중의 해는 절로 더디겠네 山中日自遲 生逢幾南至, 逢輒賦新詩.賦詩欲何爲, 爲有改天時.邦運與人事, 與天同推移.虔心禱上天, 黙待日至期.歲月亦已久, 消息杳莫知.運將去不回, 德何老且衰.與其詩無益, 寧將不復爲.從此尤省事, 山中日自遲. 경오년 1930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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