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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 전주향교(全州鄕校)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사회-조직/운영-통문 丁酉十月二十五日 全州鄕校 扶安鄕校 丁酉十月二十五日 柳德根 扶安鄕校 전라북도 전주시 [署押] 1개 7.0*5.5(장방형) 흑색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897년에 전주향교의 유생들이 부안향교에 보낸 통문 1897년에 전주향교(全州鄕校)의 유생들이 부안향교(扶安鄕校)에 보낸 통문으로, 부안에 사는 김낙곤(金洛坤)의 효행을 영읍(營邑)에 알려 포창을 받게 해달라는 내용이다. 김낙곤은 문정공(文貞公) 김구(金坵)의 후예로, 그의 조부와 조모, 그리고 종조모가 효열(孝烈)로 정려를 받아 일문삼정려(一門三旌閭)의 은전을 받은 집안이다. 죽은 그의 부친 김병헌(金炳憲)도 효행이 깊었을 뿐만 아니라 향시(鄕試)에도 여러 차례 합격한 선비여서 여러 사람들이 그가 문과에 급제하지 못한 것을 애석해 하였다. 김낙곤은 이같은 가풍을 어려서부터 익혀 효행이 남달랐으며, 집이 비록 가난하여 직접 농사일을 하는 가운데에서도 기일에는 시장에 가서 제수를 마련하였으며, 매월 삭망(朔望)에는 아무리 날씨가 좋지 않아도 조부와 부모의 묘를 찾아가 참배하는 일을 거르지 않았다. 이 통문에 참여한 전주향교의 유생들은 유학(幼學) 유덕근(柳德根)을 비롯한 11명이었다. 한편 이 문서에는 작성연대가 정유년으로만 기재되어 있지만, 다행히도 김낙곤이 일제 강점기인 명치(明治) 44년 즉 1911년에 논을 팔면서 작성한 명문(明文)(1911년 김낙곤(金洛坤)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 전하고 있어서, 정유년을 1897년으로 추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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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46년 김채상(金彩相)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道光二十六年丙午九月晦日 賓有寬 金彩相 道光二十六年丙午九月晦日 賓有寬 金彩相 [着名] 3개 부안 서외 김채상 후손가 부안 서외리 김채상 후손가 1846년(헌종 12)에 빈유관이 서도질 관인제 아래에 있는 논을 김채상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46년(헌종 12)에 빈유관(賓有寬)이 서도질(西道秩) 관인제(灌仁堤) 아래에 있는 논을 김채상(金彩相)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빈유관은 이 논을 매득하여 여러 해 동안 경작해 왔지만 부득이한 사정으로 팔게 되었다고 매매사유를 밝히고 있다. 거래된 토지는 서도질 관인제 아래에 있는 황자답(惶字畓) 3두락지이며, 부수로는 6부(負)가 되는 곳으로 거래가격은 30냥이다. 서노질 관인제가 어느 지역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김채상의 거주지가 부안현 일도면 당북중리였으며, 그가 1856년에 매입한 산지(山地)가 부안현 하서면 지역이었다는 점, 그리고 이때의 거래에 빈씨(賓氏) 가문의 일원이 보인(保人)으로 기재된 점을 고려하면 부안현에 속한 논을 김채상이 매입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한편, 관련문서를 통해서 볼 때 이 논을 거래할 당시의 김채상은 73세의 노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거래에는 답주(畓主)인 빈유관(賓有寬)과 증인 박유엽(朴有燁), 필집(筆執) 송성주(宋聖周) 등 3인이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김채상은 위에 언급한 것처럼 1856년에는 산소를 쓰기 위하여 산지를 매입하기도 하였으며, 산송(山訟)과 관련하여 여러 차례 부안현에 소지를 올리기도 하였다. 그는 또한 효자로도 널리 알려져서 누군가가 관에 그를 표창해달라고 청하면서 작성한 소지의 초안이 남아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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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道光二十六年丙午九月晦日 金彩相前明文右明文事段自己買得累年耕食是多可要用所致勢不得已西道秩灌仁堤下惶字畓參斗落只所耕六負庫叱乙價折錢文參拾兩依數交易捧上是遣日後若有異端之弊則持此憑考事畓主 賓有寬[着名]證人 朴有燁[着名]筆執 宋聖周[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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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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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道光十二年壬辰二十日朴春實前明文右明文事段自己買得累年耕食是如可要用所致故西十作悚字畓五斗落只所耕九負八束㐣折価錢文二十伍兩依數捧上是遣右人前本文記三丈幷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子孫中雜談是去㝳以此文記告官卞正事畓主 朴義仲[着名]證人 尹光弼[着名]茟 朴昌吉[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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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5년 김도명(金道明) 추증교지(追贈敎旨) 고문서-교령류-고신 정치/행정-임면-고신 咸豐五年三月 日 哲宗 金道明 咸豐五年三月 日 哲宗 金道明 서울특별시 종로구 施命之寶 1개(적색, 정방형) 부안 돈계 김응상 후손가 부안 돈계리 김응상 후손가 1855년(철종 6)에 왕이 김응상의 할아버지 김도명에게 내린 추증교지 1855년(철종 6) 3월, 왕이 김응상(金膺相)의 할아버지 김도명(金道明)에게 내린 추증교지(追贈敎旨)이다. 김도명은 통정대부(通政大夫) 승정원좌승지 겸 경연참찬관(承政院左承旨兼經筵參贊官)으로 추증된다. 증직(贈職) 사유는 김도명의 손자(孫子) 김응상이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 겸 오위장(同知中樞府事兼五衛將)으로 임명되었기 때문이다. 즉, 이 문서의 맨끝에 "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兼五衛將金膺相祖考 依法典追贈"라고 적혀 있는 내용이 바로 그 사실을 의미한다. 조선 시대에는 실직(實職)이 2품 이상인 종친(宗親)과 문무관(文武官)의 경우 그의 부(父), 조(祖), 증조(曾祖) 등 3대(代)에 걸쳐 사후(死後) 관직을 주었고 이를 추증(追贈)이라 하였다. 또한 부모(父母)는 실직에 있는 아들과 같은 품계를 내리며 조부모(祖父母), 증조부모(曾祖父母)에게는 그의 품계에서 각각 1품씩 강등하여 추증하였다. 김응상에게 내려진 가선대부는 종2품 문무관(文武官)에게 주던 품계(品階)이다. 김응상의 할아버지 김도명(金道明)은 한 단계 낮은 정3품 통정대부(通政大夫) 승정원좌승지겸경연참찬관(承政院左承旨兼經筵參贊官)으로 증직되어 본 교지를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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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旨金養黙爲通訓大夫行自如道察訪者道光十五年六月十九日 [施命之寶](背面)吏〃 金貞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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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5년 김응상(金膺相) 고신(告身) 3 고문서-교령류-고신 정치/행정-임면-고신 道光二十五年正月 日 憲宗 金膺相 道光二十五年正月 日 憲宗 金膺相 서울특별시 종로구 施命之寶 1개(적색, 정방형) 부안 돈계 김응상 후손가 부안 돈계리 김응상 후손가 1845년(헌종11)에 왕이 절충장군 첨지중추부사 겸 오위장으로 임명하면서 내려 준 교지 1845년(헌종11) 1월에 왕이 김응상(金膺相)을 절충장군(折衝將軍) 첨지중추부사 겸 오위장(僉知中樞府事兼五衛將)으로 임명(任命)하면서 내려 준 교지(敎旨)이다. 절충장군은 당상관(堂上官)에 해당하는 무산계 정3품 상계(上階)이다. 첨지중추부사는 중추원(中樞院)에 소속된 정3품의 당상관(堂上官)으로 무관직(武官職)이다. 또한 오위장(五衛將)은 오위(五衛)의 군사를 통솔하던 정3품의 무관직이다. 김응상은 위 두 관직을 겸(兼)하며 임명되었다. 김응상의 오위장 임명은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1845년(헌종11) 1월 24일조에 "兵批 判書趙冀永進 參判李同淳病 參議金{金+弼}入直 參知李時愚病 同副承旨趙徽林進 以李若愚爲知事 李敏會爲副摠管 沈漢永爲同知 李明學·李顯稷爲宣傳官 鄭基弘 李豐圭 金膺相爲五衛將 金鍾緯 權啓綱爲景福將 張敬信爲昌德將 金熙民爲昌慶將 具洛喜爲宣傳官 閔晢爲全羅兵使 李赫爲大丘營將 李恒坤爲黃海兵虞候 上護軍朴岐壽 護軍徐英淳 李羲肇 洪儼 副護軍鄭基世 金箕祖 趙禹錫 李義純 李儒鳳 曺洛振 趙馨夏 副司直成近默 李豐翼 李鼎顯 尹載善 閔馨在 以上竝單付"라고 실려 있는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첨지(僉知) 김응상의 임명은 ?승정원일기? 1845년(헌종11) 1월 26일조에 "兵批 判書趙冀永病 參判李同淳入直進 參議金{金+弼}病 參知李時愚病 左副承旨曺錫亨進 同知金鍾緯 僉知鄭基弘 李豐奎 金膺相 護軍李圭祊 以上竝單付"라고 실려 있는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때 받은 고신(告身)으로 그의 부인 유인(孺人) 임씨(林氏)와 유인 양씨(梁氏)는 숙부인(淑夫人)으로 봉작(封爵)되었다. 같은 해에 김응상은 절충장군(折衝將軍) 행용호위부호군(行龍驤衛副護軍)으로 한 차례 더 고신을 받는다. 현재 부안(扶安)에 있는 김응상의 후손가에는 김응상의 고신 8점을 포함하여 그의 처와 부, 조, 증조가 받았던 고신 또는 추증교지 12점, 김응상의 호구단자 7점, 그리고 김응상의 아들 김양묵(金養黙)의 고신 16점과 차첩(差帖) 2점, 문과 홍패(紅牌)와 시권(試券) 등이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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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旨金膺相爲折衝將軍僉知中樞府事兼五衛將者道光二十五年正月 日 [施命之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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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5년 유인임씨(孺人林氏) 고신(告身) 고문서-교령류-고신 정치/행정-임면-고신 道光二十五年正月 日 憲宗 孺人林氏 道光二十五年正月 日 憲宗 孺人林氏 서울특별시 종로구 施命之寶 1개(적색, 정방형) 부안 돈계 김응상 후손가 부안 돈계리 김응상 후손가 1845년(헌종11)에 왕이 김응상의 처 유인 임씨에게 내린 고신 1845년(헌종11) 1월, 왕이 김응상(金膺相)의 처(妻) 유인(孺人) 임씨(林氏)에게 숙부인(淑夫人)의 자품(資品)을 내리면서 발급한 고신(告身)이다. 김응상의 처가 숙부인에 임명된 것은, 그의 남편인 김응상이 절충장군(折衝將軍) 첨지중추부사 겸 오위장(僉知中樞府事兼五衛將)에 임명된 데 따른 조처였다. 이 문서의 맨끝에 "折衝將軍僉知中樞府事兼五衛將金膺相妻 依法典從夫職"이라고 적혀 있는 기록이 바로 그 의미이다. 절충장군은 당상관(堂上官)에 해당하는 무신(武臣) 정3품의 품계(品階)였으며, 숙부인도 외명부(外命婦)의 3품이었다. 한편 김응상에게는 두 명의 부인이 있었는데 이번에 숙부인으로 봉작(封爵)된 유인 임씨와 또 다른 부인 유인 양씨(梁氏)로, 이때 숙부인의 칭호를 받게 되었다. 오늘날 전하고 있는 김응상의 호구단자에 따르면, 양씨는 남편 김응상과는 19살 차이가 나며, 김응상의 만년에 이르기까지 해로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후처(後妻)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김응상의 아들로 문과에 급제했던 김양묵(金養默)은 양씨와는 10살 차이밖에 나지 않았다. 김양묵은 전처(前妻) 임씨의 소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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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5년 유인유씨(孺人柳氏) 추증교지(追贈敎旨) 고문서-교령류-고신 정치/행정-임면-고신 咸豐五年三月 日 哲宗 孺人柳氏 咸豐五年三月 日 哲宗 孺人柳氏 서울특별시 종로구 施命之寶 1개(적색, 정방형) 부안 돈계 김응상 후손가 부안 돈계리 김응상 후손가 1855년(철종 6) 3월, 왕이 김응상의 어머니 유인 유씨에게 내린 추증교지 1855년(철종 6)에 왕이 김응상(金膺相)의 어머니 유인(孺人) 유씨(柳氏)에게 내린 추증교지(追贈敎旨)이다. 김응상을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겸오위장(同知中樞府事兼五衛將)으로 임명하면서 그의 어머니 유인 유씨를 정부인(貞夫人)으로 추증(追贈)되었다. 즉, 이 문서의 맨 끝에 "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兼五衛將金膺相妣 依法典追贈"라고 적혀 있는 내용이 바로 그 사실을 의미한다. 조선 시대에는 실직(實職)이 2품 이상인 종친(宗親)과 문무관(文武官)의 경우 그의 부(父), 조(祖), 증조(曾祖) 등 3대(代)에 걸쳐 사후(死後) 관직을 주었고 이를 추증(追贈)이라 하였다. 또한 부모(父母)를 추증할 때에는 실직에 있는 아들과 같은 품계를 내렸다. 김응상의 아버지 김명하(金命河)는 아들과 같은 가선대부로 증직(贈職)되었고 김응상의 어머니 유인 유씨는 그에 걸맞게 정부인으로 봉작되었다. 김응상에게는 두 분의 어머니가 있었는데, 바로 유인 유씨와 유인 박씨(朴氏)이다. 두 사람 모두 이때 정부인으로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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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旨學生金道明贈通政大夫承政院左承旨兼經筵參贊官者咸豐五年三月 日 [施命之寶]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兼五衛將金膺相祖考依法典追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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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5년 유인정씨(孺人鄭氏) 추증교지(追贈敎旨) 고문서-교령류-고신 정치/행정-임면-고신 咸豐五年三月 日 哲宗 孺人鄭氏 咸豐五年三月 日 哲宗 孺人鄭氏 서울특별시 종로구 施命之寶 1개(적색, 정방형) 부안 돈계 김응상 후손가 부안 돈계리 김응상 후손가 1855년(철종 6) 왕이 김응상의 증조할머니 유인 정씨에게 내린 추증교지 1855년(철종 6) 3월, 왕이 김응상(金膺相)의 증조할머니 유인(孺人) 정씨(鄭氏)를 추증(追贈)하면서 내린 교지(敎旨)이다. 김응상이 절충장군(折衝將軍) 첨지중추부사겸오위장(僉知中樞府事兼五衛將)으로 임명되면서 그의 증조할머니 유인 정씨는 숙인(淑人)으로 추증된다. 즉, 이 문서의 맨끝에 "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兼五衛將金膺相曾祖妣 依法典追贈"라고 적혀 있는 내용이 바로 그 사실을 의미한다. 조선 시대에는 실직(實職)이 2품 이상인 종친(宗親)과 문무관(文武官)의 경우 그의 부(父), 조(祖), 증조(曾祖) 등 3대(代)에 걸쳐 사후(死後) 관직을 주었고 이를 추증(追贈)이라 하였다. 또한 부모(父母)는 실직에 있는 아들과 같은 품계를 내리며 조부모(祖父母), 증조부모(曾祖父母)에게는 그의 품계에서 각각 1품씩 강등하여 추증하였다. 김응상에게 내려진 가선대부는 종2품 문무관(文武官)에게 주던 품계(品階)이다. 김응상의 증조할아버지 김덕렴(金德濂)은 통훈대부로 정3품에 봉(封)해지며 그의 부인 유인 정씨는 그에 걸맞게 숙인으로 봉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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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旨孺人李氏贈淑夫人者咸豐五年三月 日 [施命之寶]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兼五衛將金膺相祖妣依法典追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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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旨孺人鄭氏贈淑人者咸豐五年三月 日 [施命之寶]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兼五衛將金膺相曾祖妣依法典追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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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旨學生金德濂贈通訓大夫司僕寺正者咸豐五年三月 日 [施命之寶]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兼五衛將金膺相曾祖考依法典追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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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旨孺人林氏贈淑夫人者道光二十五年正月 日 [施命之寶]折衝將軍僉知中樞府事兼五衛將金膺相妻依法典從夫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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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5년 김양묵(金養默) 고신(告身) 고문서-교령류-고신 정치/행정-임면-고신 道光十五年六月十九日 憲宗 金養黙 道光十五年六月十九日 憲宗 金養默 서울특별시 종로구 施命之寶 1개(적색, 정방형) 부안 돈계 김응상 후손가 부안 돈계리 김응상 후손가 1835년(헌종1) 6월에 국왕이 김양묵을 통훈대부 행자여도찰방으로 임명하면서 내려 준 교지 1835년(헌종1) 6월 19일에 왕이 김양묵(金養黙)을 통훈대부(通訓大夫) 행자여도찰방(行自如道察訪)으로 임명(任命)하면서 내려 준 교지(敎旨)이다. 통훈대부는 정3품 당하관(堂下官)으로 문관의 품계이다. 찰방(察訪)은 역참(驛站)을 관장하던 종6품의 관직으로 행수법(行守法)에 따라 관직명 앞에 '행'(行)을 적었다. 행수법(行守法)은 품계가 높고 관직이 낮으면 '행'을 썼고 그 반대로 품계가 낮고 관직이 높으면 '수(守)'를 적었다. 이를 계고직비(階高職卑), 그 반대는 계비직고(階卑職高)라 하였다. 자여도(自如道)는 창원을 중심으로 동쪽의 김해, 서쪽의 함안, 남쪽의 웅천, 북쪽의 칠원에 걸쳐있던 조선 시대의 교통로였다. 중심역인 자여역(自如驛)에는 종9품의 역승(驛丞)이 소재하였으나 뒤에 종6품의 찰방이 파견되었다. 김양묵의 자여도찰방 임명은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1835년(헌종1) 6월 19일조에 "吏批 再政 以崔拱辰爲德陵直長 李是鍊爲開城經歷 金養默爲自如察訪 判敦寧單金逌根 知敦寧單鄭尙愚 行左承旨單嚴燾"라고 실려 있는 기록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한편 문서의 배면(背面)을 보면 '이〃(吏〃) 김정호(金貞浩) '라는 기록이 있다. '이이'는, 이조(吏曹)의 서리(胥吏)를 지칭하는데, 흔히 단골, 단골서리, 단골리로도 불렸다. 즉 김양묵의 고신을 작성해 준 사람이 김정호였다. 1829년(순조 29)에 정시문과(庭試文科)에 급제한 김양묵은 김응상(金膺相)의 아들로, 현재 부안(扶安)에 있는 김응상의 후손가에는 김응상의 고신 8점을 포함하여 그의 처와 부, 조, 증조가 받았던 고신 또는 추증교지 12점, 김응상의 호구단자 7점, 그리고 아들 김양묵의 고신 16점과 차첩(差帖) 2점, 문과 홍패(紅牌)와 시권(試券) 등이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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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5년 숙부인(淑夫人) 임씨(林氏) 고신(告身) 고문서-교령류-고신 정치/행정-임면-고신 咸豐五年三月 日 哲宗 淑夫人 林氏 咸豐五年三月 日 哲宗 孺人林氏 서울특별시 종로구 施命之寶 1개(적색, 정방형) 부안 돈계 김응상 후손가 부안 돈계리 김응상 후손가 1855년(철종 6)에 왕이 김응상의 처 숙부인 임씨에게 내린 고신 1855년(철종 6) 3월, 왕이 김응상(金膺相)의 처(妻) 숙부인(淑夫人) 임씨(林氏)에게 내린 고신(告身)이다. 김응상이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겸오위장(同知中樞府事兼五衛將)으로 임명되면서 김응상의 처숙부인 임씨는 정부인(貞夫人)으로 봉작(封爵)되었다. 이 문서의 맨 끝에 "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兼五衛將金膺相妻 依法典從夫職"라고 적힌 내용이 그 사실을 의미한다. 가선대부는 종2품 문무관(文武官)에게 주던 품계(品階)로 그 아내는 "남편의 관직에 따른다(從夫職)"는 규정에 따라, 임씨는 정부인으로 봉작되었다. 한편 김응상에게는 두 명의 부인이 있었는데 이번에 정부인으로 봉작된 숙부인 임씨와 또 다른 부인 숙부인 양씨(梁氏)도 이때 정부인의 칭호를 받게 되었다. 오늘날 전하고 있는 김응상의 호구단자에 따르면, 양씨는 남편 김응상과는 19살 차이가 나며, 김응상의 만년에 이르기까지 해로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후처(後妻)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김응상의 아들로 문과에 급제했던 김양묵(金養默)은 양씨와는 10살 차이밖에 나지 않았다. 김양묵은 전처(前妻) 임씨의 소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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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5년 유인양씨(孺人梁氏) 고신(告身) 고문서-교령류-고신 정치/행정-임면-고신 道光二十五年正月 日 憲宗 孺人梁氏 道光二十五年正月 日 憲宗 孺人梁氏 서울특별시 종로구 施命之寶 1개(적색, 정방형) 부안 돈계 김응상 후손가 부안 돈계리 김응상 후손가 1845년(헌종11)에 왕이 김응상의 처 유인 양씨에게 내린 교지 1845년(헌종11) 1월 김응상(金膺相)의 처(妻) 유인(孺人) 양씨(梁氏)에게 내린 교지(敎旨)이다. 유인이었던 양씨를 숙부인(淑夫人)으로 임명한다는 내용이다. 김응상의 부인 양씨에게 이러한 교지가 내려오게 된 이유는 그의 남편 김응상이 절충장군(折衝將軍) 첨지중추부사 겸 오위장(僉知中樞府事兼五衛將)으로 임명되었기 때문이다. 이 문서의 맨끝에 "折衝將軍僉知中樞府事兼五衛將金膺相妻 依法典從夫職"라고 적혀 있는 기록이 바로 그 사실을 의미한다. 절충장군은 당상관(堂上官)에 해당하는 무신(武臣) 정3품의 품계(品階)로 그들의 아내는 종부직(從夫職)에 따라 숙부인으로 봉작(封爵)되었다. 한편 김응상의 또 다른 아내 유인 임씨(林氏)도 이때 숙부인의 칭호를 받게 되었다. 오늘날 전하고 있는 김응상의 호구단자에 따르면, 양씨는 남편 김응상과는 19살 차이가 나며, 김응상의 만년에 이르기까지 해로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후처(後妻)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김응상의 아들로 문과에 급제했던 김양묵(金養默)은 양씨와는 10살 차이밖에 나지 않았다. 김양묵은 전처(前妻) 임씨의 소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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