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9년 임피유생(臨陂儒生) 채홍운(蔡弘運) 등 상서(上書)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己丑十月 日 蔡弘運 御史道 己丑十月 日 蔡弘運 暗行御史 전라북도 군산시 暗行御史[署押] 3개(적색, 원형) 임피 김정우가 전주역사박물관 전북대학교 박물관, 『박물관도록 –고문서-』, 1998. 전경목 등 역, 『儒胥必知』, 사계절, 2006. 최승희, 『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8. 1829년 10월에 임피현(臨陂縣)의 유생 채홍운(蔡弘運) 등 34명이 암행어사(暗行御史)에게 올린 상서(上書). 1829년 10월에 임피현(臨陂縣)의 유생 채홍운(蔡弘運) 등 34명이 암행어사(暗行御史)에게 올린 상서(上書)이다. 이들은 이 상서에서 임피 출신의 유생 고(故) 김정우(金鼎祐)와 그 아들 김덕강(金德鋼), 손자 김지황(金之璜)의 뛰어난 효행을 열거하면서, 한 집안에서 3대에 걸친 보기 드문 효행을 조정에 알려 정려의 특전을 내려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이 문서에는 작성연대가 기축년으로 되어 있는데, 『승정원일기』 고종 5년 4월 9일 기사에 각도에서 올린 정려 요청 건을 조정에서 논의하는 내용 가운데 마침 임피의 김정우와 관련된 기록이 실려 있어서 작성연대를 추정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런데 이때에는 임피에 사는 고 학생 김정우와 그의 아들 김덕강과 그의 손자 김지황과 증손 김기회(金驥會), 김태회(金駾會) 등 4대의 여섯 효자에 대하여 정려해 달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3대의 정려를 요청한 기축년은 고종 5년보다 앞선 기축년, 즉 1829년(순조 29)으로 추정된다. 김정우는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가 병이 들었을 때에는 6월에 오리가 저절로 품안으로 날아들었는가 하면, 9월에 앵두나무에 열매가 맺어 병중의 부모에게 맛있는 음식과 열매를 드릴 수 있었다. 또한 부모가 위독하자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약과 함께 드렸으며, 대변을 맞보면서 부모의 증세를 관찰하였다. 마을사람들이 그 효행에 감복하여 향리와 감영을 거쳐 조정에 정려를 내려달라고 호소했지만 아직껏 정려를 받지 못하였다. 그래도 마을 사람들은 그를 김효자라고 불렀다. 김정우의 아들 김덕강도 어려서부터 보기 드문 효자이자 형제간에 우애가 깊은 인물로 향리에 널리 알려졌으며, 그의 나이 60세와 70세 때 각각 부친상과 모친상을 당했을 때에도 예를 다하며 장사를 치렀으며, 10여 리(里)나 멀리 떨어진 부모의 산소에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침저녁으로 다니면서 호곡(號哭)을 하였다. 김덕강의 아들 김지황도 효행이 깊어 초봄인데도 부친의 숙환에 얼음을 깨고 잉어를 잡아 부친에게 대접하였다. 부친의 병세가 심해지자 대변을 맞보면서 증세를 관찰하였고,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부친에게 마시게 하여 연명하도록 하였다. 모친이 병들었을 때에도 약을 대접하는 등 온갖 정성을 다하였다. 임피의 유생들은 이처럼 뛰어난 효행을 반드시 조정에 알려 정려의 혜택을 받게 해달라고 암행어사에게 탄원을 올렸다. 이에 대하여 암행어사는 한 집안에서 세 명의 효자가 나온 것은 척박한 풍속에 모범이 되는 일로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기는 하지만, 임금에게 이를 아뢰는 일은 신중히 해야 하는 일이니 마땅히 잘 헤아려서 처리하겠다는 처분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