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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경유【재업】에게 답함 答廉敬儒【在業】 뜻하지 않게 서찰로 하신 말씀이 이처럼 간절하니 돌이켜 생각해도 감격스러워 대답할 방도를 모르겠습니다. 보이신 뜻에 답이 없을 수는 없기에 매번 바로잡을 방도를 덧붙이니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대체로 회심(會心 마음으로 이해하는 것)과 상구(上口 입에 올려 외우는 것)는 본래 칼로 자르듯이 앞뒤로 나뉘지 않습니다. 오늘 상구를 하면 내일 회심이 이루어집니다. 또 음식을 한꺼번에 씹는 것처럼 서로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형세도 아닙니다. 언사(言辭)를 이해하고 그 의미를 깨우칠 수 있다면 읽는 것이 정밀하지 않을 수 없고 외우는 것이 능숙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다음 한가한 낮에 단서를 끌어내고 청정(淸靜)한 밤에 침잠해야 그 의미를 터득할 수 있으니 또한 전혀 깨닫지 못하고서 상구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또한 상구와 회심의 근본은 '정(靜)' 자 하나에 달려 있습니다. 정(靜)하면 심지(心地)가 맑고 깨끗해지며 정신이 막힘없이 통하게 되어 회심과 상구에 대해 모두 힘을 기울이기 쉽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인성(人性)과 물성(物性)의 동이(同異)에 관한 주장은 선유(先儒)의 논의가 진실로 한둘이 아닙니다. 저는 일찍이 망령되게도 인(人)과 물(物)에 대해서 이(理)는 같아도 성(性)은 다르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주서(朱書)》를 보았더니 또한 여기에 관한 주장이 있어 "물에는 오성(五性)이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일찍이 이 내용을 장석(丈席)에서 물었더니 답하시기를 "인자(仁者)가 보면 인(仁)이라 하고 지자(智者)가 보면 지(智)라 한다. 단지 이러한 사물일 뿐이니 사람의 인을 가지고 저 물(物)에게 요구하는 이치는 없다."55)라고 하셨습니다. 오상(五常)은 본래 오성(五性)에 하나하나 분속(分屬)되는 것이 아니고 부부(夫婦)와 장유(長幼)는 모두 예(禮)에 속해야 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분속하고자 한다면 예에는 질서의 의미가 있고 지(智)에는 분별의 의미가 있으니 장유유서(長幼有序)는 예(禮)에 귀속돼야 할 듯하고 부부유별(夫婦有別)은 지(智)에 귀속돼야 할 듯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謂外翰命。若是繾綣撫念感戢。不知爲對。示義不能無言。而輒付就正之計。以爲如何。大抵會心上口。本非有截然先後。如今日上口。明日會心也。且非一擧竝嚼。混無相資之勢也。得於辭而能通其義。則讀之不可不精。誦之不可不熟然後。紬繹於日間休閒之時。沈潛於夜間淸靜之際。而可以得其義矣。亦非全然不覺而能上口也。且上口會心之本。在於靜之一字。靜則心地虛明。精神流通。其於會心上口。皆易爲力。未知如何。人物性同異之說。先儒之論固不一。愚嘗妄謂人物理同而性異矣。及見朱書。亦有此說。物有五性云云。愚嘗以此問于丈席。答曰。仁者見之謂之仁。智者見之謂之智。只是此箇物事。若以人之仁。去責那物。則無是理矣。五常本非五性之逐位分屬者。而夫婦長幼。皆當屬禮。然必欲分屬。則禮有序秩底意。智有分別。底意。長幼有序。似當屬禮。夫婦有別。似當屬智。未知如何。 인자(仁者)가……없다 《노사선생문집(蘆沙先生文集)》 권12 〈답정계방(答鄭季方)〉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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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문【인석】에게 답함 答趙景文【寅錫】 칩거를 자신의 분수로 삼아 서신만이 오랜 벗들과 서로 얼굴을 마주하는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는 노쇠함이 더욱 심해져 이마저 종종 걸렀으니 사우(士友)들에게 많은 죄를 지었습니다. 좌하(座下)께서 특별히 잘못을 따지지 않는 의리52)를 진념하여 이렇게 먼저 은혜를 내리리라고 어찌 생각하였겠습니까. 감사한 마음을 뒤이어 곧바로 그런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서한을 통해서 명령(榠欞) 나무53)가 늙지 않듯 양친께서 모두 평안하시고 화기애애하며 공경이 넘쳐 길상(吉祥)이 한꺼번에 모여드는 것을 알았습니다. 명운이 순조롭고 신이 좋은 복을 내려 주었으니, 천도(天道)는 인자(仁者)를 돕지 않는다고 누가 생각하겠습니까. 창가에 놓인 책상이 고요하고 연구는 날로 깊어지며 광채가 은은히 드러나 명성이 성대하니 여풍(餘風)을 바라보면 사람이 마음을 기울이게 합니다. 의림(義林)의 천한 운명은 외롭고 고달프기만 하니 처지가 가련합니다. 이전부터 해왔던 보잘것없는 학업도 흩어지고 사라져버려 선천(先天)의 그림자가 있는 듯 없는 듯 아득한 것과 같을 뿐입니다. 지리멸렬한 결과가 참으로 합당합니다. 다만 벗들이 서신을 왕래하면서 이따금 저를 독서인(讀書人)으로 기대하시고 후생(後生)의 젊은이 한둘이 간혹 찾아와 가르침을 청하는 듯함을 보니, 이것이 어찌 꿈에서라도 저에게 견줄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삼가 스스로 물러나 자리를 피하려고 했지만 그러지 못하였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좌하(座下)의 성실하고 충직한 풍도는 이미 익히 탄복하는 바이건만, 도리어 오늘의 서한에서는 이렇게 실정에 맞지 않고 분에 넘치는 말씀을 하십니까. 부끄럽고 송구스러워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 어지러운 세상은 대국이 끝나가는 바둑판 같아서 정세를 예측하기 어렵고, 평소의 옛 벗들에게만 의지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호남의 귀퉁이와 영남의 구석에서 보잘것없는 처지로 지내면서 눈앞의 시용(時用)에 절실한 모든 환락과 근심, 크고 작은 의리를 일체 내버려 두고 묻지 않는 채 제쳐 두고 도모하지 않고 있습니다. 궁벽하게 살면서 길게 탄식할 때마다 끝없는 비통함만 절실할 뿐입니다. 존당(尊堂)의 수진운(壽辰韻 회갑 축하시)은 과연 잊고 있었습니다. 머뭇거리는 사이에 저도 모르게 문득 이렇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어찌 벗 사이에 서로를 대하는 도리이겠습니까. 대체로 이 몸은 본래 자질이 아둔하고 근년에 이르러서는 기험(崎險)이 겹겹이 닥쳐 온갖 어지러운 일이 밖에서 공격하고 갖은 근심이 안에서 들끓고 있습니다. 일상을 겪으면서 열에서 여덟, 아홉을 잊고 있다가 먼 지방에 있는 어진 덕행을 지닌 친구의 소중한 부탁도 대수롭지 않게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부끄러워 죽을 지경입니다. 별지(別紙)는, 이같이 어리석은 식견으로 어찌 감히 입을 놀리겠습니까만 이택(麗澤)의 의리54)로 볼 때 강론과 연마의 방도가 없을 수 없기에 이에 감히 조목마다 채워 보냅니다. 회답을 주시기 바랍니다. 自分貞蟄。惟是書墨一路。爲知舊相面。而年歲以來。衰索轉甚。亦不免種種廢闕。而得罪於士友者。多矣。豈謂座下特軫不較之義。而有此先施之惠哉。感感之餘。旋愧其不足承當也。因審春幃具慶。榠欞不老。怡愉洞屬吉祥湊臻。好氣數好福力。孰謂天道之不祐仁也。窓几涔寂。硏究日深。潛昭闇章。聲光藉藉。瞻言餘風。令人馳神。義林窮獨賤命。情景可憐。至於平昔之所謂區區爲業者。亦且渙散頹落。如先天影子之茫然有無耳。滅裂之報。固其所也。而但見知舊往復。種種以讀書人期待之。後生少年。或不無一二過從有若請敎者。然此豈夢寐可況者乎。竊欲引身避却而不可得也竊惟座下直諒忠慤之風。已所稔服。而乃於今日之書。亦爲此浮實過當之語乃爾耶。愧汗悚悚。不知攸答。嗚呼。缺界殘枰風色叵測。而所可聊賴者。惟是平素知舊人而已。然而零零落落於湖之隅嶺之角。凡百歡戚。大小義理。有切於目前時用者。一切置之而不問。捨之而不講。每窮居長吁。只切不盡之悲而已。尊堂壽辰韻。果忘之矣。因仍推待之頃。不知不覺。遽至於此。此豈友朋相向之道耶。大抵此身。素以鈍溯之質。至於近歲奇險層至。而百撓攻其外千慮盪其中。日用經過。十忘八九以。至遠外賢朋珍重之托。亦不免尋常遺却。愧死愧死。別紙以若謏見。何敢容喙。而麗澤之義。不容無講磨之方。玆以逐條塡去。幸回敎之爲望。 잘못을……의리 《논어》 〈태백(泰伯)〉에서 "능하면서 능하지 못한 사람에게 묻고, 풍부하면서 풍부하지 않은 사람에게 물으며, 가졌는데도 없는 것처럼 여기고, 차 있는데도 빈 것처럼 여기며, 잘못을 범해도 따지지 않는 것을, 지난날 내 친구가 실천한 바 있었다.【以能問於不能, 以多問於寡, 有若無, 實若虛, 犯而不較, 昔者吾友嘗從事於斯矣.】"라고 한 증자의 말에서 유래하였다. 명령(榠欞) 나무 명령(冥靈)이라고도 한다. 오래 산다는 남국(南國)의 나무 이름이다. 《장자》 〈소요유(逍遙遊)〉에 "초나라 남쪽에 명령이라는 나무가 있는데, 500년을 봄으로 삼고, 500년을 가을로 삼는다.【楚之南有冥靈者, 以五百歲爲春, 五百歲爲秋.】"라고 하였다. 이택(麗澤)의 의리 벗끼리 서로 도와 학문을 닦고 힘쓰는 것이다. 《주역》 〈태괘(兌卦)〉에 "두 개의 연못이 나란히 붙어 있는 것이 태괘이니, 군자가 이 괘를 써서 붕우 간에 학문을 강습한다.【麗澤兌. 君子以, 朋友講習.】"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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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생을 격려하며 勉諸生 큰 바다 동쪽이 얼마나 많이 요란한가 幾多擾攘大洋東괴이타 영웅 남아가 세상에 비었는가 却怪英男世界空원컨대 참 실력을 갖춘 청년들 얻어서 願得靑年眞實力순박한 삼대581)의 기풍을 만회하려네 挽回三代朴淳風굳센 국화처럼 서리 능멸하다 꺾일지언정 寧同勁菊凌霜折시든 단풍 되어 비친 해에 붉지 않으리라 不作殘楓照日紅경물을 보고 시절을 느끼니 무엇을 줄꼬 觸物感時何以贈푸른 산 중의 이 밤을 잊지 말아야하리 莫忘此夜碧山中 幾多擾攘大洋東, 却怪英男世界空.願得靑年眞實力, 挽回三代朴淳風.寧同勁菊凌霜折, 不作殘楓照日紅.觸物感時何以贈, 莫忘此夜碧山中. 삼대(三代) 고대 중국의 하(夏)ㆍ은(殷)ㆍ주(周) 세 왕조를 이르는 말로, 정치와 교육이 가장 융성했던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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贈濟州安行五【達三】 此逢眞有數。年貌倍生顔。別後相思月。漢挐萬疊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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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만종서사에 자정이 방문하다 翼日 萬宗書社 子貞見訪 북창의 맑은 바람이 율리의 뜰 같아서 牕北淸風似栗園때로 꿈에 헌원의 세상에 온 듯하다네239) 時將一夢到軒轅짙푸른 천 봉우리 색 유독 사랑스러운데 蒼蒼獨愛千峯色시끄럽게 떠드는 온갖 새들 가증스럽네 喙喙生憎百鳥喧흥을 타고 영해의 달 아래 서로 만나니 乘興相逢瀛海月어제 초강에 술 붓던 일로 마음 상하네 傷心昨酹楚江樽육주에 비릿한 비240)가 얼마나 내렸는가 六洲腥雨知多少이 누각에서는 그 비 흔적도 걷혔구나 也向斯樓却斂痕 牕北淸風似栗園, 時將一夢到軒轅.蒼蒼獨愛千峯色, 喙喙生憎百鳥喧.乘興相逢瀛海月, 傷心昨酹楚江樽.六洲腥雨知多少, 也向斯樓却斂痕. 북창의 …… 듯하다네 만종서사를 율리에 빗대서 말한 것이다. '율리(栗里)'는 동진(東晉)의 처사(處士) 도연명(陶淵明)의 고향이다. 도연명이 〈여자엄등소(與子儼等疏)〉에서 "오뉴월 중에 북창 아래에 누워 있다가 서늘한 바람이 잠시 불면, 스스로 희황 시대 이전의 사람이라 여기곤 한다.[五六月中, 北窓下臥, 遇涼風暫至, 自謂是羲皇上人.]"라고 하였다. '헌원(軒轅)'은 삼황(三皇)으로 불리는 황제 헌원씨(黃帝軒轅氏)를 말한다. 육주에 비릿한 비 '육주(六洲)'는 세계의 육대주(六大洲)로 온 세상을 의미한다. 비릿한 비는 오랑캐들이 몰려든 것을 비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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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에서 제군에게 작별하며 주다 以承齋 贈別諸君 간밤에 내리던 강가의 빗소리 막 그쳤는데 江上初收宿雨聲서생들이 먼 길을 돌아가니 홀연 놀란다네 忽驚書客遠歸程어젯밤 밝은 달이 마음을 함께 비추었는데 前宵明月心同照남국의 가을 바람은 또 한을 생기게 하네 南國秋風恨又生배움은 반드시 탁마해야 진보함을 깨닫고 學必琢磨應覺進뜻이 법도에 부끄러우면 평안할 수 없네 志慙模範未能平흰 구름을 애오라지 가져다 줄만하니400) 白雲聊可相持贈무심한 듯해도 더욱 정이 있어서라네 也是無心更有情 江上初收宿雨聲, 忽驚書客遠歸程.前宵明月心同照, 南國秋風恨又生.學必琢磨應覺進, 志慙模範未能平.白雲聊可相持贈, 也是無心更有情. 흰 …… 줄만하니 남조(南朝) 시대 양(梁)나라 도홍경(陶弘景)의 시 〈조문산중하소유부시이답(詔問山中何所有賦詩以答)〉에 "산중에는 무엇이 있는가, 봉우리 위에 흰 구름이 많다네. 하지만 나 혼자만 즐길 수 있을 뿐, 임금님께는 부칠 길이 없다네.[山中何所有, 嶺上多白雲. 只可自怡悅, 不堪持贈君.]"라고 한 구절을 원용한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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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양절 다음날 밤에 重陽翌夜 교교한 달이 하얀 비단 같고 皎皎月如素곱디고운 국화는 황금 같네 姸姸菊似金느긋하여 일 하나도 없으니 悠然無一事맑은 감상에 내 마음 흐뭇해 淸賞愜吾心 皎皎月如素, 姸姸菊似金.悠然無一事, 淸賞愜吾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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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윤【국조】에게 답함 答安景允【國祚】 편지를 통해 한번 얼굴을 마주하는 것은 또한 얼굴을 직접 마주하는 것에 버금하니, 그 위로되고 속시원함을 무엇에 비유하겠습니까. 이어 어버이를 곁에서 모시고 지내는 것이 즐겁고 화목하며 정황이 더욱 다복해짐을 알았습니다. 열흘 동안 강학을 위해 모였으니 학업에 날로 성취가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어찌 일상적인 보통의 마음과 힘으로 의논할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환안(還安)96)'이라고 하셨는데 제 생각에는 이안(移安)했을 때에도 일찍이 알린 바가 없었으니 지금도 역시 고하는 말이 있을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이미 간략하게 하는 쪽을 따랐으므로 그대로 하는 것이 가할 것으로 보입니다.'선왕(先王)의 법복(法服)이 아니다'97)라고 하셨는데 반드시 법복을 먼저 말하고 다음으로 법언(法言)을 말한 뒤에 덕행을 말한 것은 어째서이겠습니까. 그 법복을 입는다는 것은 그 법언을 말한 뒤에야 덕행을 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법복을 입지 않고 법언을 말하지 않고서 그저 선왕의 덕행만을 행하고자 한다면 이른바 덕행이라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이 되겠습니까? 이것은 사리(事理)의 순서와 언어의 맥락이 그렇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 있습니다만 옳은지 모르겠습니다.나라를 다스리는 것【治國】을 말하면서 몸에 간직한 바【所藏乎身】를 말하였는데 여기에서 몸이 나라와 천하의 근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장구(章句)에, '몸이 닦여지면 집을 가르칠 수 있다.【身修則家可敎矣】'는 것의 '신(身)'자는, 또한 원문(原文)의 '몸에 간직한 것【所藏乎身】'의 '신(身)' 자에 근본합니다. 書中一面。亦對面之亞也。慰豁何喩。仍審侍旁怡愉。候節增祉。結旬講聚。居業日就。此豈尋常心力所可議到哉。還安云云。以鄙意則移安時。曾無所告。則今亦不必有告辭。蓋旣以從簡。則因以如之。似乎可矣。非先王之法服云云。必先言法服。次言法言而後。言德行何。蓋服其法服。言其法言然後。德行可見。若不服法服。不言法言。而徒然欲行先王之德行。則所謂德行者。果何物耶。是其事理次第。言語脈絡。有不得不然。未知得否。是。言治國而言所藏乎身。便見身爲國天下之本也。章句身修則家可敎矣之身字。亦本於原文所藏乎身之身字也。然。 환안(還安) 다른 곳으로 옮겨놓았던 신주를 제자리로 도로 모시는 것을 말한다. 선왕(先王)의 법복(法服)이 아니다 《효경(孝經)》 〈경대부장(卿大夫章)〉에 "선왕의 법복이 아니면 감히 입지 않는다.【非先王之法服, 不敢服.】"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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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지46)에게 답함 答吳永之 이전 편지에서 보내주신 문목(問目)은 참으로 천열(淺劣)한 제가 감히 입을 놀릴 수 없는 부분입니다만, 이택(麗澤)의 뜻47)에 있어서는 각각 자신의 견해를 말씀드려서 바른 곳으로 돌아가도록 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대략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제 보내오신 편지를 읽어보니 도리어 용납하여주시고 논박하면서 바로잡는 말씀이 한마디도 없습니다. 알지 못하겠습니다만 비설(鄙說)48)에 특별히 잘못된 부분이 없었던 것인지요? 비록 있더라도 차마 직언(直言)으로 공격하고 배척하지 못한 것인지요? 지금 하문하신 여러 조목(條目) 역시 감히 이처럼 입을 다물고 있을 수가 없으니 부디 전일처럼 하지 마시고 하나하나 지적하여 바로잡아 주시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제1단은 '의(義)와 짝하여 의(義)를 모은다【配義集義】'49)라고 하였으니, 대략적인 뜻이 참으로 그러합니다. 그러나 의(義)와 도(道)에 짝한다는 것은 체(體)와 용(用)을 모두 들어서 말한 것이고 의(義)를 모은다는 것은 단지 공력을 들여야 할 부분【用功處】으로 말한 것입니다. 만약 용(用)은 공부할 부분이 있고 체(體)는 공부할 부분이 없다고 한다면 어의(語意)가 두루 온전하지 못하고 공부에 누설되는 부분이 있게 됩니다. 체(體)와 용(用)에 비록 틈이 있더라도 어떻게 전혀 공부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른바 '공부할 것이 없는 것이 공부이다.'라는 말이 그것입니다. 또 의(義)가 주가 되고 기(氣)가 주가 된다고 말하는 것도 온당하지 않습니다. 마땅히 의(義)를 모으는 것은 주가 되는 점으로 말하자면 의(義)이고, 의(義)에 짝하는 것은 주가 되는 점으로 말하자면 기(氣)입니다. 어떻습니까? 제2단의 '물망(勿忘)'이라고 하는 것 역시 그러합니다. '반드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는 것을 일삼되, 미리 효과를 기대하지 말라.【必有事焉而勿正】'50)라고 했는데 대체로 규모와 의사가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합니다. '마음속으로 잊지 말고 억지로 조장하지 말아야 한다.【心勿忘勿助長】'는 것은 친절(親切)하게 공부할 부분입니다. 이 1단은 본래 의(義)를 모으기 위해 말한 것인데 또한 이 마음의 존주처(存主處)로서 매우 절실하고 긴요합니다. 그러므로 정자(程子)께서는, "마음속으로 잊지 말고 억지로 조장하지 말라는 것은, '솔개는 날아 하늘에 다다르고 물고기는 연못에서 뛰어논다.【鳶飛魚躍】'는 것과 같은 뜻이다. 더욱 체인(體認)하고 궁행(躬行)한 뒤에야 그 말의 뜻이 깊음을 알 수 있다."라고 하셨습니다. 시험 삼아 한 그루의 꽃나무를 보면, 생리(生理)가 두루 흐르고 조금도 쉼이 없는 것을 마음속으로 잊지 않는 것【勿忘】이라고 합니다. 털끝만 한 급박함과 억지스러움, 그리고 인위(人爲)를 받아들임도 없는 것을 억지로 조장하지 않는 것【勿助】이라고 합니다. 성인(聖人)이 덕(德)으로 들어가는 신묘함을 열어서 보여준 것이 이보다 절실한 것이 없습니다. 말의 병통과 마음의 잃음을【言之病心之失】 보내주신 편지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비유하자면 눈은 간(肝)에 속하고 귀는 콩팥【腎】에 속하는데 간과 신장이 조화를 잃으면 귀와 눈에 병이 들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50묘(畝)의 땅에는 공전(公田)이 5묘이고, 70묘의 땅에는 공전이 7묘이며 100묘에는 공전이 10묘가 됩니다. 그리고 다만 여사(廬舍)에는 10묘, 14묘, 20묘의 구분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1/10의 세금에 합치되는 것입니다. 어진 자는 부자가 되지 못하고 부자는 어질지 않다는 것은,51) 대략 세운 뜻의 방향성을 말한 것입니다. 어떻게 부자들이 모두 어질지 않고, 어진 자들은 전부 부자가 아니라는 이치가 있겠습니까? 규전(圭田)52) 역시 공전(公田)으로 백성들 사이에 있는 것인데 경(卿)․대부(大夫)의 제사에 쓰이는 경비를 대기 위해서 어떻게 세금을 다시 거둘 수 있겠습니까? 여부(餘夫)의 밭은 자력(自力)으로 경작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세금을 거두어야 할 것입니다. 어진 사람이 지위에 있고 능력 있는 자가 직책에 있는 것은 삼공(三公)이 도를 논하고 나라를 다스리는 것처럼 포괄하는 직책이 매우 넓은 것이고, 갑병(甲兵)과 전곡(錢穀)처럼 각각 하나의 직책이 있는 것과는 비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지위와 직책으로 나누어 말한 것이지, 지위가 있으면 반드시 직책이 없어서 하는 일 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녹봉만 축내는 것을 이른 것은 아닙니다. 어진 자는 반드시 능력이 있지만, 능력 있는 자가 반드시 어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맹공작(孟公綽)53)과 같은 자는 어질지만 능력이 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의리(義理)의 성(性)은 좋은 도리(道理)이고 기질(氣質)의 성은 좋지 않은 도리라고 하니 이 말이 참으로 옳습니다. 만약 아직 태어나지 않은 것과 이미 태어난 것으로 나누어 말하는 것은 불가합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것은 어떠한 성(性)으로 부를 수 있으며, 이미 태어나면 어떠한 선(善)이 갖추어지지 않았겠습니까. 성선(性善) 두 글자는 1서 7편(一書七篇)54)의 강령(綱領)이니 어찌 다만 지언(知言), 양기(養氣)55)만을 일컫는 것이겠습니까? 계선(繼善)56)이라는 것은 비록 공자의 학설이지만 그저 조화(造化)가 발육(發育)하는 측면을 가지고 말하였기 때문에 성선(性善)의 설은 맹자(孟子)에게서 처음으로 나와 밝히지 못했던 의리를 확장하였다고 이르는 것입니다. 여러 조목의【條】 중요한 핵심에 대해서는 저같이 우매한 자가 감히 논할 바가 아니나, 저의 억측으로 논변하였으니 어찌 오류가 없음을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다시 더욱 깊이 생각하여 사실에 부합하는 논의를 보여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前書問目。固知非淺劣所敢容喙。而其在麗澤之義。不可不各陳已見。俾歸於正。故略有云云。今讀來書。倒蒙領可而無一言駁正處。未知鄙說別無差失歟。雖有之而不忍直言攻斥耶。今於俯詢諸條。又不敢緘黙如此。幸加一一訂砭。勿似前日之爲。如何。第一段配義集義之云。大意固然。然配義與道。是統擧體用而言。集義特以用功處而言。若曰用則有做工夫處。體則無做工夫處。則語意不圓全。功夫有滲漏矣。體與用雖有間。而豈可謂專無工夫耶。所謂無工夫處是工夫者。此也。且云義爲主。氣爲主者。亦未安。當曰集義是所主而言者。義也。配義是所主而言者。氣也。如何。第二段勿忘云云。亦然。必有事焉而勿正。是大體規模。意思當如此。心勿忘勿助長。是親切下功夫處也。此一段本爲集義語。而亦於此心存主處。極爲要切。是故程子曰。勿忘勿助。與鳶飛魚躍底意同。更加體認躬行然後。方知斯言之有味也。試以一株花木觀之。生理周流。無少停息者。是勿忘也。無一毫急迫强排容其人爲者。是勿助也。此是聖人開示入德之妙。莫切於此矣。言之病。心之失。來示得矣。比如目屬肝。耳屬腎。肝腎失和。則耳目受病也。五十畝則公田爲五畝。七十畝則公田爲七畝。百畝則公田爲十畝。而但廬舍有十畝十四畝二十畝之分。故合於十一之稅耳。爲仁不富。爲富不仁。槪以立心向背言之。豈有富皆不仁。仁皆不富之理耶。圭田亦是公田之在民間者。以供鄕大夫祭祀之用。有何更征耶。餘夫之田。以其自力耕作者。則其有征必矣。賢者在位。能者在職。如三公論道經邦所包甚廣。非如甲兵錢穀。各有一職之比也。故以位與職分言之。非謂位必無職而尸位素餐也。賢必有能。能不必有賢。然如孟公綽者。可謂賢而不可謂能也。義理之性。是好底道理。氣質之性。是不好底道理。此言誠是。若以未生已生分言之。則不可未生何性之可名。而已生何善之不具。性善二字。此是一書七篇之綱領。豈特知言養氣之謂歟。繼善雖是孔子之說。而只就造化發育處言。故謂以性善爲始出於孟子。而擴所未發耳。諸條肯綮。有非愚昧昕敢上下者。而臆說取辨。安知保無疪纇。更加細思。以示稱停之論。如何。 오영지(吳永之) 오영지의 이름은 장섭(長燮)이다. 기우만(奇宇萬)과 최익현(崔益鉉)의 문집에 오장섭에게 답하는 편지가 남아있어 이들 사이의 교유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이택(麗澤)의 뜻 이택(麗澤)은 친구 사이에 절차탁마(切磋琢磨)하여 학문을 강습한다는 의미이다. 《주역》 〈태괘(兌卦)〉에, "두 못이 서로 붙어 있는 것이 태괘이니, 군자는 이것으로 붕우 사이에 강습한다.【麗澤兌, 君子以朋友講習.】"라고 하였다. 비설(鄙說) 자신의 학설에 대한 겸칭이다. 의(義)와 짝하여 의(義)를 모은다【配義集義】 호연지기(浩然之氣)의 속성을 말한 부분이다. 《맹자(孟子)》 〈공손추 상(公孫丑上)〉에, "호연지기의 속성은 의(義)와 도(道)에 짝하는 것이니, 이것이 없으면 굶주리게 된다. 호연지기는 의리를 많이 축적하여 생겨난다. 의는 어느 날 갑자기 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행하고서 마음에 허전함이 있으면 호연지기가 굶주리게 된다. 【其爲氣也, 配義與道, 無是餒也. 是集義所生者, 非義襲而取之也. 行有不慊於心則餒矣.】"라고 하였다. 반드시……기대하지 말라 《맹자》 〈공손추 상(公孫丑上)〉에서 온 구절로, "반드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는 것을 일로 삼되, 미리 효과를 기대하지 말고, 마음속으로 잊지 말고 억지로 조장하지 말아야 한다.【必有事焉而勿正, 心勿忘, 勿助長也.】"라는 내용이 있다. 어진 자는 …… 않다는 것은 《맹자》 〈등문공 상(滕文公上)〉에 "부자는 어질지 않고, 어진 자는 부자가 되지 못한다.【爲富不仁矣, 爲仁不富矣.】"라는 말이 양호(陽虎)의 말로 인용되어 나온다. 규전(圭田) 고대에 국가에서 경(卿)ㆍ대부(大夫)ㆍ사(士)가 제사를 지내는 데 소요되는 경비에 쓰도록 나누어 준 전지(田地)를 말한다. 《맹자(孟子)》 〈등문공 상(滕文公上)〉에 "경(卿) 이하는 반드시 규전(圭田)이 있는데, 규전의 면적은 50무(畝)이다."라고 하였는데, 조기(趙岐)의 주에 "고대에 경으로부터 사에 이르기까지 모두 규전 50무를 받았는데, 이는 제사를 지내는 경비를 제공하는 것이다. 규(圭)는 정결하다는 의미이다."라고 하였다. 맹공작(孟公綽) 춘추 시대 노(魯)나라의 대부이다. 청렴하고 욕심이 적었지만 재능이 부족하였기 때문에, 공자가 "맹공작이 조씨와 위씨의 가신(家臣)의 우두머리가 되기에는 넉넉하지만 등나라와 설나라의 대부가 될 수는 없다.【孟公綽爲趙魏老則優, 不可以爲滕薛大夫.】"라고 하였다. 1서 7편(一書七篇) 《맹자》를 가리킨다. 《맹자》는 원래 7편으로 되어 있었는데 후한(後漢)의 조기(趙岐)가 주석을 달고, 매 편을 각각 상하(上下)로 나누어 총 14편으로 만들었다. 지언(知言), 양기(養氣) 모두 《맹자》 〈공손추 상(公孫丑上)〉에 나오는 내용이다. 지언(知言)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진의를 잘 파악하는 것이다. 양기(養氣)는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는 양기(養氣)로써, 밖으로부터 의가 들어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행실을 쌓아 자신의 마음에 아무 부끄러움이 없는 충만함에서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계선(繼善) 《주역》 〈계사전 상(繫辭傳上)〉에 "한 번 음(陰)이 되고 한 번 양(陽)이 되는 것을 도(道)라고 하고, 일음일양(一陰一陽)을 계속하여 만물을 화육(化育)하는 것이 선이고, 사물이 생겨나면서 갖추고 있는 것이 성이다.【一陰一陽之謂道, 繼之者善也, 成之者性也.】"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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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문영에게 답함 答洪文寧 아득히 헤어져 만나지 못한지 얼마인가요. 애타는 심정이 너무나 간절하여 잠깐의 틈도 없습니다. 알지 못하겠습니다만 시성(侍省)하는 상황은 절서마다【連序】 왕성하신지요? 가르치는 데 몸이 매여 있더라도 또한 교학상장(敎學相長)으로 이익을 취할 방법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찾아가 뵙고자 하지만 소식을 듣고자 하는 마음을 가눌 수가 없습니다. 저는 몸이【鼎器】84) 망가져서 한가지를 얻으면 그대로 잃어버려서 전혀 바뀌지 않는 데로 돌아갈 것 같습니다. 생각하면 슬픔이 밀려와 어찌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물어보신 권경(權經)에 대한 설은 철저하게 연구한 정밀함을 충분히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권(權)과 경(經)은 단지 하나면서도 둘이고 둘이면서도 하나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자(程子)의 말씀이 아니라면 사람들은 그것을 둘로 보고 하나라고는 보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주자(朱子)의 말씀이 아니면 사람들은 그것을 하나라고만 보고, 둘이라고는 보지 않을 것입니다. 두 설(說)이 서로 연관되어 그 뜻이 갖추어지게 되니 정자의 설이 잘못되었고 주자의 설이 옳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주자는 경(經)을 이미 정해진 권(權)이라고 하였고, 권(權)을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경(經)이라고 하였다는 것이 이미 충분히 명백하게 밝혀졌으므로 다시 평할 여지가 없습니다. 무릇 권(權)과 경(經)은 진실로 분수(分數)가 있습니다. 그러나 마땅히 경이어야 할 때는 경이고, 마땅히 권이어야 할 때는 권인 것입니다. 또 일찍이 경이 아님이 없는 것이고, 또한 권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對)로 말하자면 권은 스스로 권이고, 경은 스스로 권입니다. 단언(單言)하면 권은 경이 되기도 하고 경은 권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정자와 주자의 두 가지 설을 문득 그 사이에서 선택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보내오신 편지에서, '경은 일정하게 획정한 것이고 권은 대상의 경중을 헤아리는 것이다.'라고 하셨는데 과연 두가지 사물로 보신 것입니까? 자세히 생각해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蒼莽葦刀。貽阻幾時。耿耿懷逞。無間晷刻。未審侍省候節。連序茂謐。絆身斅學。亦不無相長取益之方。爲之瞻溯。不在願聞。義林昇器敝漏。隨得隨失。其爲不移之歸決矣。撫念悲悼曷以云喩俯詢權經之說足見硏窮之密然愚意以爲權與經。只是一而二而一者也。非程子之言。則人見其爲二。而不見其爲一。非朱子之言。則人見其爲一。而不見其爲二。二說相須。其義乃備。不可以程子之說爲失。而朱子之說爲得也。朱子所謂經是已定之權。權是未定之經者。已是十分明白。無容更評夫權與經。固有分數。然當經而經。當權而權。亦未嘗不是經。又不可不謂之權也。是故。對言則權自權。經自經。單言則權便是經。經便是權。不當將程朱兩說。而輒可取舍於其間也。且來諭以爲經是一定畵定。權是稱物輕重。則此果二物乎。細思之如何。 몸이【鼎器】 원문의 '정기(鼎器)'는 원래 단약(丹藥)을 고아내는 솥인데, 여기서는 육신을 비유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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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 그믐날 六月晦日 한 기운이 무궁하여 사방381)으로 퍼지고 一氣無窮遍四遊저 물처럼 흘러가는 것382)을 탄식하네 却歎逝者若斯流일년도 절반이 되어 세 달 여름 지났고 半分周歲經三夏내일 아침이 되면 또 초가을이로구나 纔到明朝又早秋일천 나뭇잎들 우수수 시들어 지고 颯颯凋來千樹葉몇 사람의 머리가 성성한 백발될까 星星白盡幾人頭봄이 가면 상심 많다고 누가 말했나 誰云春去多怊悵부질없이 이제야 배나 슬피 깨닫네 懸覺如今一倍悲 一氣無窮遍四遊, 却歎逝者若斯流.半分周歲經三夏, 纔到明朝又早秋.颯颯凋來千樹葉, 星星白盡幾人頭.誰云春去多怊悵, 懸覺如今一倍悲. 사방 원문의 '사유(四游)'로 사방의 끝을 말한다. 옛사람들은 대지와 별이 사계절에 따라 동서남북 4극(極)으로 옮겨 다닌다고 믿었다. 《禮記 月令 注》 저 …… 것을 공자가 물가에서 흘러가는 물을 바라보며 도체(道體)의 유행(流行)이 흐르는 물처럼 다함이 없는 것을 느껴 "가는 것이 이와 같구나, 밤낮을 쉬지 않는도다.[逝者如斯夫! 不舍晝夜.]"라고 하였다. 《論語 子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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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훈대부 한성부 판관 김공 묘지명 通訓大夫漢城府判官金公墓誌銘 공의 휘는 성준(成俊), 자는 시응(時應), 호는 금계(錦溪)이다. 김씨(金氏)의 본관은 광산(光山)인데, 신라(新羅) 왕자 휘 흥광(興光)이 지파(支派)의 시조가 된다. 이로부터 12대에 이르기까지 고려에서 모두 평장사(平章事)를 지냈다. 휘 류(流)에 이르러 감찰 어사(監察御史)를 지냈고, 덕룡(德龍)은 대사헌을 지냈으며 휘 신좌(信佐)는 공조 판서를 지냈고, 효충(孝忠)은 관직이 홍문관 응교를 지냈는데, 모두 본조에 들어온 이후의 현조(顯祖)이다. 고조는 휘 치섬(致銛)인데, 진사이고, 증조는 휘 철(轍)인데, 생원이다. 조부는 휘 정언(廷彦)인데, 생원이고, 부친은 휘 홍(洪)인데, 첨중추부사이다. 모친은 완산 이씨(完山李氏)로, 생원 이학(李鶴)의 따님이다. 명종 임자년(1552, 명종7)에 나주(羅州) 장원도(壯元洞) 옛집에서 공을 낳았다.공은 성격이 조용하고 풍도가 고결하여 많은 사람 속에서 운학(雲鶴)처럼 무리와 견주기 어려운 점이 있었다. 어려서 아이들과 물건 파는 놀이를 하였는데, 어른이 꾸짖어 말하기를, "옛날 맹자(孟子)가 이 놀이를 할 적에 학궁(學宮)의 가르침이 아니었다면 아마 장돌뱅이가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니, 어찌 맹자가 되었겠는가."라고 하였다. 공이 듣고 개연히 물리치고 더이상 장난하지 않고 마침내 책을 가지고 서당에 나아가 날마다 수업을 받았다. 영특한 자질로 더욱 독실하게 노력하고 계속하여 매진하니 문장이 넉넉하고 시원하여 훌륭하다는 명망이 당대에 자자하였다.병자년(1576, 선조9)에 문과에 급제하고 갑술년(1574, 선조7)에 주서(主書)에 제수되었다.32) 정축년(1577, 선조10)에 외직으로 나가 강화부 경력(江華府經歷)이 되었고, 임오년(1582, 선조15)에 내직으로 들어와 한성부 판관(漢城府判官)이 되었는데, 이르는 곳마다 모두 청렴하고 신중하다고 칭찬을 받았다. 공의 중씨(仲氏) 좌랑공(佐郞公)이 일찍이 연이어 당화(黨禍)를 입어 제명에 죽지 못하였기에 공이 늘 통한으로 여겼다. 그런데 이 때에 이르러 당론이 성행하여 조정이 안정되지 않으니, 공이 스스로 과거의 일을 깊이 교훈으로 삼고는 마침내 관직을 버리고 낙향하여 문을 닫고 자취를 감춘 채 날마다 시를 짓고 술을 마시는 것으로 즐거움으로 삼았다. 일찍이 시를 짓기를,등나무 덩굴 비추던 달빛 사랑스러우니 愛藤蘿月아름다운 자태 옛 모습 드러내네. 娟舊面開남은 생 얼마나 될까 生能幾許시절의 경물 재촉하지 말라. 時物莫相崔하였으니, 여기에서 그의 뜻을 알 수 있다.어버이를 섬기는 효성에 있어서는 간병(看病)할 적에 지극히 근심 하여 밤에도 허리띠를 풀지 않았고 상례를 거행할 적에는 슬픔이 절도를 넘었으니, 지켜보는 사람들이 눈물을 흘릴 정도였다. 출사하여 군주를 섬길 적에는 한결같이 정성스럽고 미덥게 하여 주저하거나 구차한 마음이 있지 않았다. 기미를 보고 용기있게 결단하여 바닷가 산골 마을 고요한 곳으로 멀리 떠나 성내지 않고 근심하지 않으며 그럭저럭 지내면서 한평생을 마쳤다. 일관된 의리와 출처의 절도는 먼 후대에서도 늠름하게 사람으로 하여금 공경심을 갖게 할 것이다.경신년(1620, 광해군12) 10월 13일에 졸하였다. 나주의 세동(細洞) 왼쪽 산기슭 자좌(子坐) 언덕에 장사 지냈다. 배위(配位)는 하동 정씨(河東鄭氏)로, 정수(鄭琇)의 따님이다. 2남 1녀를 낳았는데, 장남은 극윤(克潤)으로 훈련원 주부이고, 차남은 방윤(邦潤)으로 통정대부이다. 딸은 원윤(裵元胤)에게 출가하였다. 장자의 아들은 위(煒), 차자의 아들은 오규(五圭), 중규(重圭),신규(信圭), 환규(桓圭), 참의(參議)에 추증된 만규(萬圭)이다. 증손과 현손 이하는 기록하지 않는다.10세손 영하(永夏)가 가장(家狀)을 가지고 와서 묘지명을 지어 주기를 청하였다. 이에 다음과같이 명을 짓는다.은미함도 알고 드러남도 아는 것 知微知彰고인도 어렵게 여겼네. 古人所難벼슬 버리고 산으로 돌아가 投緩還山가난한 생활을 즐거워하였네. 樂我瓢簞등나무 덩굴 비추던 달빛 藤蘿之月호해의 기개가 있는 벗일세. 湖海之友시와 술로 날을 보냈으니 文酒日夕그 풍류와 운치 상상할 수 있네. 風韻可想 公諱成俊。字時應。號錦溪。金氏本光山人。新羅王子諱興光爲分系之祖。自此至十二世。在麗朝。皆官平章事。至諱流。官監察御史。諱德龍。官大司憲。諱信佐。官工曹判書。諱孝忠。官弘文應敎。皆入我朝以後顯祖也。高祖諱致銛進士。曾祖諱轍生員。祖諱廷彦生員。考諱洪僉中樞。妣完山李氏生員鶴女。明宗任子生公于羅州之壯元洞舊第。性氣恬靜。風儀高潔在稠人中。如雲鶴之在難群。幼而與群兒戱爲沽衒。長老責之曰。昔孟子作此戱。若非學宮之敎。幾不免爲市賈之人。何以爲孟子乎。公聞之慨然。絶不復戱。遂挾冊就塾。日受其業。以穎悟之資。加篤實之力。接續征邁。贍富宏暢。令聞令望。藉藉一時。丙子擢文科。甲戌除注書。丁丑出爲江華府經歷。壬午入爲漢城府判官。所至皆以淸謹見稱。公仲氏佐郞公。嘗連累於黨禍。未得考終。公常痛恨之。至是黨論盛行。朝家不靖。公深自懲毖。遂棄官歸鄕。杜門斂迹。日以文酒自娛。嘗有詩曰。可愛薦蘿月。娟娟舊面開。餘生能幾許。時物莫相催。此可以見其志矣。事親至孝。侍疾致憂。夜不解帶。執喪哀戚過節。見者釀涕。出身事君。一於誠信。未嘗有依違苟且之意。及其見幾勇決。而遐擧遠引於海山閒寂之濱。不慍不悶。聊以卒歲。其終始之義。出處之節。百世之下。凜凜然令人起敬。庚申十月十三日卒。葬羅之細洞左麓子坐原。配河東鄭氏琇女。生二男一女。男長克潤。訓鍊主簿。次邦潤。連政。女適裵元胤。長房孫煒。二房孫五圭重圭信圭桓圭萬圭。贈參議。曾玄以下不錄。十世孫永夏抱家狀來。謁誌墓之文。銘曰。知微知彰。古人所難。投緩還山。樂我瓢簞。藤蘿之月。湖海之友。文酒日夕。風韻可想。 병자년에……제수되었다 원문에는 '丙子擢文科甲戌除主書'로 되어 있다. 문맥에 근거할 때 병자와 갑술의 간지가 바뀐 듯하다. 갑술년에 급제하고, 병자년에 주서가 된 듯하나, 일단 원문대로 번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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憶秋旅【金大源】 秋旅今何去。超然謝俗群。論經多入室。弄筆足張軍。棄似功名屣。看同富貴雲。生前無限癖。地下倘修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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望日同亨魯兄允性兄晉一甫。會金谷精舍。敍懷拈韻。共發一笑。 行年三十七。自顧蕪靈臺。九仞高還遠。半途去復回。別時慘臘柳。到日綻寒梅。此會知難忘。共傳望月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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翊日旣望臨分。結約暮春者往遊芙蓉菴。 春入全多事。勝遊不負心。樽仍酬酌醉。筒遞往來吟。紛綠時難得。老蒼日轉深。蓉山曾有思。休惜踏層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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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十一日。金陵宋兄過余。竟日遊談。 書菴筵始闢。忽見故人來。舊學終難進。新功却未回。欽天賓致日。出地奮思雷。相到志言處。幽懷得好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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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앉아서 夜坐 살랑살랑 풍창에 주렴엔 달빛이 비치고 灑灑風牕又月簾초연한 거처에는 티끌 한 점 안보이네 超居不見一塵纖이 마음 이리 맑음을 우연히 깨닫나니 此心偶覺澄如許고요 속 말없이 있으니 도의 맛 더하네 靜裏無言道味添 灑灑風牕又月簾, 超居不見一塵纖.此心偶覺澄如許, 靜裏無言道味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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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제봉 望帝峯 망제봉 맑은 달빛이 짧은 주렴 적시는데 望帝晴光滴短簾저녁 무렵 삽상한 기운 살며시 일렁이네 晩來爽氣動纖纖저 무정한 것들이 가장 다정한 벗들이니 無情最是多情友인정과는 더하고 덜함을 비교하지 말라 不向人情較減添 望帝晴光滴短簾, 晩來爽氣動纖纖.無情最是多情友, 不向人情較減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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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주【계반】에게 답함 答魏玖周【啓泮】 생각지도 않았는데 영랑(令郞)이 환하게 문으로 들어오고 아울러 존함(尊緘 상대방의 편지)이 이르러 펼쳐 놓고 여러 차례 정성스럽게 읽었습니다. 구사한 말에 정이 깊고 말씀하신 뜻이 간곡하여 천박한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감사함과 부끄러움이 교차합니다. 지금 존체(尊體)가 평안하고 존종(尊從 상대방의 사촌 형제)인 치검(致儉)은 거상(居喪) 기간이 이미 지났으며 따님을 출가시키고 며느리를 맞이하는 일을 차례대로 치렀다는 소식을 들으니 한편으로 서글프기도 하고 한편으로 기쁘기도 합니다. 영랑(令郞)이 단정하고 점잖으며 언행에 예의가 바르니 부럽기 그지없습니다. 서신에서 동래(東萊)57) 운운하신 것은 진실로 기질을 변화시키는 첫 번째 방법입니다. 우리 벗께서 바야흐로 여기에 마음을 다하고 계시건만 도리어 몸에 지닌 신방(神方)을 다른 사람에게서 구하십니까. 또한 불치병에 시달리고 있으면서 치료할 방도를 모르는 자가 어찌 다른 사람에게 미칠 힘이 있겠습니까. 부끄럽고도 감사합니다. 세상 형편은 다시 논할 만한 점이 없습니다. 크게 한숨을 쉬는 것으로 부족하여 눈물을 흘리고,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부족하여 통곡을 하지만 통곡도 부족하니 어찌하겠습니까. 응당 문을 걸어 닫고 책을 읽어 자신의 분수를 지키는 방책을 생각할 뿐입니다. 멀리서 서로를 바라보자니 그리움을 견딜 수 없습니다. 謂外。令郞憤然入門。兼玖尊緘。披玩三復。其遣辭之繾綣。命意之懇惻。有非淺淺者所可承當。感愧交至。卽惟辰下。尊體衛重。尊從玖儉喪期已過。而嫁。女娶婦次第徑行。聞之一悲一喜。令郞端詳雅飭。欽艶萬萬。示中東業云云。此眞變化氣質第一法。吾友方且從事於此。而乃別。求肘下神方乎人也。方亦困於膏盲。而不知所以爲醫者顧安有及人之力乎。愧愧謝謝。時象更無可論。太息而不足。流涕之。流涕而不足。痛哭之。痛哭不足。奈何奈何。惟宜杜門讀書。以思自靖之策而已。遙遙相望。不任依然。 동래(東萊) 여조겸(呂祖謙)의 호이다. 《주자대전(朱子大全)》 권54 〈답노덕장(答路德章)〉에, "지난번에 여백공을 만났는데, 그가 말하길 '젊었을 적에 성품과 기질이 거칠고 포악해서 음식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살림살이를 때려 부수곤 했는데, 후일에 오랫동안 병을 앓으면서 다만 《논어》 책 하나를 아침저녁으로 익숙히 보았다. 그러다가 홀연 마음이 화평해지는 것을 느껴 마침내 종신토록 갑자기 화를 내는 일이 없게 되었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기질을 변화시키는 법으로 삼을 만하다.【向見伯恭, 說少時性氣粗暴, 嫌飮食不如意, 便敢打破家事. 後因久病, 只將一冊論語, 早晩閑看, 忽然覺得意思一時平了 遂終身無暴怒. 此可爲變化氣質之法.】"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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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익【영모】에게 답함 答孫子翼【永謨】 연전에 올린 서찰은 역시 때가 매우 늦었습니다. 급히 달려가 조문하려 했으나 도리어 차질이 생겨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서찰로 대신 위로를 드렸습니다. 인정과 도리로 보자면 매우 실정에 맞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애시(哀侍 상중에 있는 상대방)께서 저를 허물하지 않으시고 외람되게도 서찰을 보내셨으니 극도로 정성스럽고 간절하여 무어라고 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때에 부모를 잃은 슬픔과 사모하는 마음을 어떻게 견디시는지 다시 묻습니다. 멀리서 그리움이 간절하여 견디기 어렵습니다. 의림(義林)은 늙고 병든 몸으로 칩거하느라 만사를 다 제쳐 두었지만, 배움을 놓쳤다는 탄식만은 잠시도 떨쳐내기 어렵습니다. 매번 아직 남아있는 동료들 가운데 견줄 이가 매우 드문 애시(哀侍)의 문장과 품행을 볼 때마다 늘 경애하는 마음이 들어 가까이하면서 밤낮으로 가르침을 받아 조그마한 성취를 이루는 데 도움을 얻고자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운명이 순탄하지 않고 얽매인 몸이 벗어나지 못해 매번 애시의 풍류와 운치를 우러러보면서 그저 그리운 마음만 절실할 뿐이었습니다. 어찌 집사(執事)께서 저를 멀리하지 않고 이렇게 서신으로 왕래하는 길을 열어 주시는 것이 이처럼 부지런하리라고 생각하였겠습니까? 이것이 참으로 만년에 이른 저의 보잘것없는 소원이었으니 감히 지극한 뜻을 받들어 힘쓰기를 스스로 도모하지 않겠습니까.문목(問目)의 여러 조항은 모두가 핵심이 되는 말들이니 학문이 정밀하고 심오한 경지에 나아가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처럼 보잘것없는 사람이 어찌 그 사이에서 우열을 따질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물었는데 답을 하지 않는 것은 불공(不恭)에 가까우니 감히 비루한 견해를 대략 말씀드립니다. 다시 가르침을 주시기 바랍니다.【문】 지손(支孫)이 부제(祔祭)62)할 때 간혹 종자(宗子)가 멀리 나가 있다면 종자가 돌아온 뒤로 물리어 행합니까, 지손이 섭주(攝主)가 되어 행합니까? 또 종가(宗家)가 멀리 있으면 지손의 집에서 지방(紙傍)으로 행하는 것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답】 종자가 돌아오는 것을 기간을 정해 기다릴 수 없다면 섭행(攝行 대신 거행함)하는 사유를 고하고 행하는 것이 옳습니다. 또 종자가 먼 곳에 산다면 지방(紙榜)으로 행하는 것도 가능합니다.【문】 무릇 제사에서 유식(侑食)63)의 절차를 행할 때 숟가락을 꽂고 젓가락을 바르게 한다는 규정이 있지만, 삼년상 동안 제사할 때는 어디에도 없으니 무엇 때문입니까?【답】 우제(虞祭)64)를 지낼 때 숟가락을 꽂고 젓가락을 바르게 한다는 규정이 없는 것이 매우 의심스럽기 때문에 《상례비요(喪禮備要)》에서 이를 보충해65) 넣었습니다.【문】 우제와 졸곡(卒哭)66), 대상(大祥)67)과 소상(小祥)68)에 참신(參神)69)의 절차가 없는 것이 삼년상 동안 항상 살아계실 때처럼 궤연을 모시는 상주의 의리 때문이라면 사신(辭神)70)의 절차도 없어야 하건만 있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답】 상례의 제사에서 참신을 하면서 재배(再拜)를 한다는 규정이 없더라도 또한 곡을 하는 것으로 참신을 대신하는 절차도 없습니다. 사신을 하면서 재배를 하는 것은 끝맺음을 귀하게 여기는 예(禮)의 정신 때문인 듯합니다.【문】 "무릇 제사에서 삼헌(三獻)을 하면서 술로 고수레를 하는 것은 신령을 대신하여 고수레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제(時祭)의 경우는 술을 올린 뒤에 고수레를 하고 우제의 경우는 고수레를 한 뒤에 올리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답】 고수레를 하고 올리는 것은, 이때는 슬픔에 경황이 없는 중이라서 세세한 절문을 다 갖출 수 없어서 생략하는 듯합니다.【문】 '지지능득(知止能得)'71)부터 '물유본말(物有本末)……'72)까지 보건대, 《전(傳)》 4장에서 본말에 대해서만 풀이한 것은 무슨 뜻입니까? 이 장이 삼강령(三綱領)의 뒤 팔조목(八條目)의 앞에 들어가 있는데 또한 둘 곳이 있습니까? 삼강령과 팔조목 사이에 둘 공간이 있느냐는 뜻인 듯합니다.)【답】 '지지(知止)'와 '물유(物有)' 두 구절은 삼강령과 팔조목의 중간에서 맥락이 이어지는 곳입니다. 그러나 지지(知止)는 바로 지지(知至)73)를 말하니 별도의 전문(傳文)을 마련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본말(本末)' 2자는 바로 그사이의 요체가 되는 곳이므로 특별히 풀이한 것입니다. 年前一疏。亦已晩矣。期擬匍匐。輒見差池。而爲此不得己替慰之擧。揆以情理。太不稱停。然而哀侍不以爲咎。而辱賜手疏。極其懇惻。不知所以攸答。更問歲次餞迓哀慕孝思。何以支堪。馳溯憧憧。不在情懇。義林衰病跧伏。萬事都休。而惟是失學之歎。耿耿難遣耳。每覵哀侍文學操履。在今儕流。甚罕其比。尋常愛仰。思欲獲近日夕擩染光薰。以爲毗倚扶竪。萬一之計。而命道不媚身繫莫解。每瞻望風韻。只切依然。豈意執事爲之不遐。開此書疏往復之路。若是密勿哉。此誠葉楡區區之願。敢不承膺至意以自圖勉也。問目諸條。無非肯綮語。可見所造之情且深也。以若膚淺。何足以上下其間。然有問無答。近於不恭。敢以鄙見。略綽言之。幸復見敎也。支孫祔祭時。或宗子出遠。則退行於宗子返後耶。以攝主行之耶。此宗家遠。則紙傍行之。未知如何。宗子之還。若不可以日月支待。則告攝行之可也。且宗子遠居。則紙榜行之亦可。凡祭侑食。雖有扱匙正筋之文。而三年內竝無之何虞之無扱匙正筋。殊涉可疑。故備要補入之。虞卒哭大小喪。無參神之節。是三年內孝子常侍之義。則辭神亦當無而獨有之。何耶 喪之祭。雖無參神再拜之文。而亦無以哭代參之節乎。辭神之有再拜。似是禮貴有終之義也。凡祭三獻祭酒。乃代神之祭。而時祭則獻而後祭。虞祭則祭而後獻。何也。祭而後獻。此在哀遽之中。似不得盡其節文之委曲。故略之也。自知止能得至物有本末云云。傳四章特釋本末者。何義。此章八於三綱後八條前。亦有所措歟。知止物有兩節。此是三綱八條中間脈理連續處。然知止卽知至之謂。不必別立傳文。但本末二字。乃其間總要處。故特釋之。 부제(祔祭) 졸곡제(卒哭祭)를 지낸 다음 날 지내는 상제(喪祭)의 명칭이다. 사당(祠堂)에서 부제를 마친 후 새로 죽은 사람의 신주(神主)는 협제(祫祭)를 지낼 때와 마찬가지로 곧바로 정침(正寢)으로 되돌려 놓는다. 그 후 삼년상이 끝나는 일정한 시점에 친진(親盡)한 고조의 신주를 조묘(祧廟)로 옮겨 안치하고 새로 죽은 사람의 신주를 사당에 들이는데 이를 천묘(遷廟) 또는 부묘(祔廟)라고 한다. 유식(侑食) 제사의 한 절차로, 신에게 식사를 권한다는 뜻이다. 삼헌(三獻)을 마친 뒤 밥에 숟가락을 꽂고서 모든 제관(祭官)이 밖으로 나와 문을 닫고 서서 아홉 숟갈을 먹는 시간【九飯之頃】을 기다린다. 우제(虞祭) 매장을 한 뒤 혼령이 방황하지 않도록 안정시키기 위하여 지내는 상제(喪祭)이다. 신분에 따라 9번, 7번, 5번, 3번 지낸다. 《의례》 〈기석례(旣夕禮)〉에 "세 번 우제(虞祭)를 지낸다.〔三虞〕" 한 것에 대해 정현(鄭玄)은 주(注)에서 "우(虞)는 상제(喪祭)의 이름이다. 우는 안정시킨다는 뜻이다. 뼈와 살은 흙으로 돌아갔으나 정기는 가지 않는 곳이 없으므로, 효자는 그 혼령이 방황하지 않도록 세 번 제사를 지내 안정시킨다. 아침에 장례를 치르고 해가 중천에 있을 때 우제를 지내는 것은 차마 하루라도 혼령이 돌아갈 곳이 없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虞, 喪祭名. 虞, 安也. 骨肉歸於土, 精氣無所不之, 孝子爲其彷徨, 三祭以安之. 朝葬, 日中而虞, 不忍一日離.】"라고 하였다. 《상례비요(喪禮備要)》에서……보충해 《상례비요(喪禮備要)》 〈우제(虞祭) 유식(侑食)〉의 "집사자가 주전자를 들고 나아가 잔에 첨작을 한다.【執事者執注, 就添盞中酒.】" 구절의 소주(小註)에 "밥에 손잡이를 서쪽으로 향해서 숟가락을 꽂고, 젓가락은 바르게 놓는다. ○ 살피건대, 모든 제사에서 유식을 하고 나서는 숟가락을 꽂고 젓가락을 똑바로 올려놓는다는 문구가 있으나, 《가례》의 우제ㆍ졸곡ㆍ부제ㆍ소상ㆍ대상ㆍ담제에는 다 같이 없고, 《가례의절》에도 없으니, 어떻게 된 것인지 모르겠다.【扱匙飯中 西柄, 正筯. ○ (按) 凡祭侑食, 俱有扱匙正筋之文, 而家禮虞卒哭祔練祥禫祭幷無之, 儀節亦無, 未知何也.】"라고 하였다. 졸곡(卒哭) 우제(虞祭)를 모두 마친 다음 첫 번째 강일(剛日)에 지내는 상제(喪祭)이다. 슬픔이 줄어들어 이후로는 무시(無時)로 하던 곡을 그치고 조석곡(朝夕哭)만 하므로 졸곡제라고 한다. 졸곡제 이전에는 살아 있는 분을 섬기듯이 하는 예를 계속 적용하지만 졸곡제를 지낸 다음에는 신명(神明)으로 대우하게 되므로 귀신의 이름을 공경하는 뜻에서 사자(死者)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의례》 〈기석례(旣夕禮)〉에 "졸곡제(卒哭祭)를 지낸다.〔卒哭.〕" 한 것에 대해 정현(鄭玄)은 주(注)에서 "졸곡(卒哭)은 삼우제(三虞祭) 뒤에 지내는 제사 명칭이다. 처음에는 조석곡을 하는 사이라도 슬픔이 밀려오면 곡을 하지만, 이 제사를 지내고 난 후에는 그치고 조석곡만 할 뿐이다.【卒哭, 三虞之後祭名. 始朝夕之閒, 哀至則哭, 至此祭, 止也, 朝夕哭而已.】"라고 하였다. 대상(大祥) 죽은 지 만 2년째(기년상의 경우는 13개월째)에 지내는 상제(喪祭)이다. 상(祥)이라고도 한다. 고례(古禮)에 따르면, 삼년상의 경우 만 2년째인 25개월에, 특별히 아버지가 생존 중인 상황에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해 하는 기년상의 경우에는 13개월째에 지내는 제사로, 상주가 상복(喪服)을 벗고 길복(吉服)을 입은 채 제사를 지낸다. 그러나 아직 완전한 길(吉)로 나아간 것이 아니므로 잿물에 담갔다가 말려 희고 부드럽게 하지 않은 호관(縞冠)만은 착용하고, 아침저녁의 정해진 곡을 하지는 않지만 슬픔이 북받칠 때는 곡을 하며, 고기도 먹을 수 있다. 소상(小祥) 돌아가신 지 만 1년째(기년상의 경우는 11개월째)에 지내는 상제(喪祭)이다. 연(練)이라고도 한다. 연(練)은 누인다, 곧 '잿물에 담갔다가 말려 희고 부드럽게 한다'는 뜻으로, 소상(小祥)에는 누인 대공포(大功布)로 만든 중의(中衣)와 누인 대공포로 만든 관(冠)을 착용하고 상제(喪祭)를 지내므로 소상을 연제(練祭) 또는 연이라고 한다. 연제를 지낸 뒤에야 야채와 과일을 먹을 수 있다. 아버지의 생존 중에 어머니가 사망한 기년상의 경우에는 11개월째에 연제를 지낸다. 참신(參神) 제사 지낼 때 신주(神主)에 절하고 뵙는 것을 이른다. 사신(辭神) 종헌(終獻)한 다음 신주를 들이기 전에 신주에게 절하고 작별하는 의식이다. 지지능득(知止能得) 《대학장구》 경(經) 1장에서 "그칠 데를 안 뒤에 정함이 있으니, 정한 뒤에 고요할 수 있고 고요한 뒤에 편안할 수 있고 편안한 뒤에 생각할 수 있고 생각한 뒤에 얻을 수 있다.【知止而后有定, 定而后能靜, 靜而后能安, 安而后能慮, 慮而后能得.】"라고 하였다. 물유본말(物有本末) 《대학》 경 1장에 "물에는 본과 말이 있고, 일에는 종과 시가 있으니, 먼저 하고 뒤에 할 것을 알면 도에 가깝다.【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 則近道矣.】"라고 하였다. 지지(知至) 《대학장구》 경 1장에 "사물이 이른 뒤에 앎이 지극하고【物格而后知至.】"라고 하였는데, 집주에 "지지(知至)는 내 마음의 앎이 다하지 아니함이 없는 것이다.【吾心之所知, 無不盡也.】"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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